통합대장경

029_0486_c_01L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제1권
029_0486_c_01L分別功德論卷第一


실역인명(失譯人名)1)
이태승 번역
029_0486_c_02L失譯人名附後漢錄



처음의 게를 세워서 말하기를 “가섭이 정법(正法)의 근본을 사유한다”라고 한 것은, 소위 경법(經法)을 사유하는 데 언교(言敎)가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가섭은 비교함으로써 그 많고 적음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029_0486_c_03L建初偈所說曰迦葉思惟正法本者謂思惟經法言教甚多何以知之葉卽以比較明其多少
법을 비교하는 것은 열 마리의 당나귀로부터 시작한다. 열 마리 당나귀의 힘은 한 마리 범낙타(凡駱駝)의 힘과 같지 않다. 열 마리 범낙타의 힘은 한 마리 범상(凡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 마리 범상은 하나의 세각상(細脚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세각상은 하나의 도식상(盜食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도식상은 하나의 연화상(蓮華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연화상은 하나의 청련화상(靑蓮華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청련화상은 하나의 홍련화상(紅蓮華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홍련화상은 하나의 백련화상(白蓮華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백련화상은 하나의 설산상(雪山象)의 힘과 같지 않다. 열의 설산상은 하나의 향상(香象)의 힘과 같지 않다. 당나귀로부터 향상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나누어 이와 같이 8만 4천의 향상에 비할 정도로, 그 가죽의 겉과 속에 경을 쓰고 그와 같은 수만큼 향상에 실려 있는 것이 아난이 들은 것이며 알고 있는 것이다. 대략 비교하여 그 수를 알아야 한다. 그 하나하나를 문자로 나타내려고 하는 자는 수명을 다하도록 능히 다할 수 없다.
029_0486_c_06L較法從十驢云十驢力不如一凡駱駝力十凡駱駝力不如一凡象力十凡象不如一細腳象力十細腳象不如一盜食象力十盜食象不如一蓮華象力蓮華象不如一靑蓮華象力十靑蓮華象不如一紅蓮華象力十紅蓮華象不如一白蓮華象力十白蓮華象不如一雪山象力十雪山象不如一香象力從驢至香象爲一分如是八萬四千香象以較皮表裏書經滿如是數香象比載阿難所聞所知事可都較知大數欲一一演其文字者壽不能暢也
경법(經法)을 사유하는 것은 실로 광대한 것이다.
어떻게 천하에 유포시켜야 오랜 세월 동안 중생으로 하여금 법의 혜택을 입도록 할 수 있겠는가? 지극한 이치를 깊이 생각하여 누가 능히 법을 가릴 수 있는가? 오직 아난만이 능히 모을 수 있을 뿐이다.
029_0486_c_19L思惟經法甚爲浩大何當使流布天下千載衆生得蒙法澤耶深思至理誰能撰法唯有阿難乃能集耳
029_0487_a_01L가섭이 건추(揵槌)를 울려 대중을 모으자 바로 8만 4천의 모든 아라한이 명(命)을 받들어 와서 모였으니, 그들은 번뇌를 다하였고, 모두 구해탈(俱解脫)을 이룬 이들이었다. 이 모든 현성(賢聖)을 부른 까닭은, 그들이 모두 멸진정(滅盡定)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멸진정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현세에 복을 얻게 하고 그를 고난과 재액에서 건져준다.
029_0486_c_22L迦葉卽時鳴揵搥集衆時尋有八萬四千諸羅漢等承命來此等無漏皆是俱解脫人所以召此諸賢聖者以其盡能入滅盡定故諸有入滅盡定者能使衆生現世得福濟其苦厄
대천세계의 모든 무착(無著:아라한) 등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모두 3도(道)를 없애며, 각각 하나씩 증가한다. 지금 단지 이근(利根)과 구해탈을 지녀 능히 멸진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는 까닭에 복전(福田)이라 일컫는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029_0487_a_05L大千世界諸無著等其數難算除諸三道各各一倍今但錄利根俱解脫能以滅盡定度脫衆是故稱爲福田何以明之
옛날 제석천(帝釋天)이 복이 다하여 수명을 마치려고 할 때, 다섯 가지 서응(瑞應)이 일어나니, 마음이 두려워져 도움을 구하고자 했다. 곧바로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도움을 구하고자 부처님의 관대한 은혜를 생각하였지만 두려움은 풀리지 않고 목숨은 위태로웠다. 사리불ㆍ목건련 등을 떠올렸지만 능히 목숨을 구할 수 없을까 걱정되었다. 오직 대가섭만이 멸진정의 힘으로써 그 위급함을 구할 수 있었기에 곧 가섭의 처소로 갔다. 그때 가섭은 가난한 집에 이르러 복으로 제도하고자 하였다.
029_0487_a_08L昔日天帝釋福盡命終時五瑞應至心卽恐懼欲求救護正欲至佛所求救念佛恩寬緩懼不解命急念舍利弗目連亦恐不能濟命唯有大迦葉以滅盡定力尋濟危急卽往迦葉所時迦葉適欲至貧家福度
제석은 ‘곧바로 천신(天身)을 나타내면 두려워하여 나의 보시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곧 길 옆에 풀로 지은 작은 집을 지어 놓고 여윈 병자의 모습을 하였다. 가섭이 걸식하자 병자는 곧 손을 뻗어 음식을 보시했다. 가섭이 발우로 음식을 받자 그것이 변하여 감로가 되니, 곧 허공에 천신을 나타내었다.
029_0487_a_14L諦念正欲現天懼恐不受我施便於中路現作草羸病在中迦葉從乞病人卽申手施食迦葉以鉢受之變成甘露還現天身於虛空中
가섭이 말했다.
“왜 거짓말로써 나를 속이느냐?”
제석천이 말했다.
“망어가 아니고, 저는 지성으로 보시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석천으로서 다섯 가지 서응이 나타나 목숨이 끊어지려는 까닭에 와서 소원을 비는 것입니다. 저의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가섭은 곧 침묵으로써 그것을 허락했다.
제석천은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법을 듣고, 곧바로 깨달았다.
부처님께서 제석천에게 “너는 이미 죽음을 향하고 있지만, 다시 살아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다시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이것은 곧 가섭의 멸진정에 의한 힘에 감응한 것이다.
029_0487_a_18L迦葉曰何以妄語誑我耶天答曰不妄語我至誠施我是天帝五瑞至命欲終故來求願願濟我命迦葉卽默然可之天至佛所聽須臾便睡睡卽覺佛語天帝汝向已死今已還活不復命終還復本身此卽是迦葉滅盡定力之所感也
029_0487_b_01L가섭이 멸진정의 힘을 사용하는 데 가장 뛰어난 까닭은 가섭이 본래 벽지불이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벽지불의 법은 설법으로 교화하지 않고 오직 신족(神足)으로 감동시켜 삼매를 현현시킨다. 대가섭이 비록 아라한을 증득하였지만 본식(本識)은 여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8만 4천 대중의 덕은 감동시키는 공력(功力)이 가섭과 같다.
029_0487_b_01L葉所以用滅盡定力最勝者以迦葉本是辟支佛故也夫辟支佛法不說法教化專以神足感動三昧變現迦葉雖復羅漢取證本識猶存向所錄八萬四千衆德能所感功齊迦葉
아난이 물었다.
“가섭은 본래 벽지불인 까닭에 그 뛰어남을 칭찬하지만, 이들 나한들도 벽지불인가?”
이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비록 벽지불은 아니더라도 두루 멸진정을 닦아 그 힘은 같다. 이러한 까닭에 가섭과 대중 스님들을 중생의 복전이라고 말한다.”
029_0487_b_06L難曰迦葉以本是辟支佛故稱其勝此等羅漢復是辟支佛耶答曰雖非辟支佛遍習滅盡定其力是同以是故言迦葉衆僧衆生福田也
게(偈)에서 ‘모두 아라한으로 마음이 해탈하였다’고 한 것은 구해탈을 얻은 것이다.
029_0487_b_10L偈云得羅漢心解脫俱解脫也
게에서 ‘이미 계박[縛著]을 벗어나 복전에 처한다’라고 한 것은, 가섭이 불러 모은 8만 4천의 대중이 모두 구해탈을 얻어 멸진정으로써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현세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후에 열반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복전에 처한다고 한다.
029_0487_b_11L偈云脫縛著處福田謂迦葉所集八萬四千衆皆得俱解脫以滅盡定能使衆生現世脫苦後獲涅槃故曰處福田也
게에서 ‘4부(部)를 모으니’라고 한 것은 생략한 것이다. 이치에 응해 4부이며, 다시 인천(人天)에 8부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찰제리ㆍ바라문ㆍ장자ㆍ사문ㆍ사천왕ㆍ삼십삼천ㆍ마왕ㆍ범왕, 이것이 8부이다. 따라서 모두 12부가 있다. 4부라고 말한 것은 대략 그 요점만을 든 것일 따름이다.
029_0487_b_15L偈云集四部略也理應四部表更有八部剎帝利婆羅門沙門四天王三十三天魔王梵王是爲八部凡有十二部言四部者擧其要耳
‘모든 법은 깊고 깊어’라는 것은 12인연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위해 12인연의 지극히 깊고 미묘함을 말씀하셨다.
아난이 여쭈었다.
“이 인연에는 어떠한 깊고 묘한 것이 있습니까?”
029_0487_b_19L諸法甚深謂十二因緣佛爲阿難說十二因緣甚深微妙阿難云此之因緣有何深妙耶
029_0487_c_01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깊고 묘하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또 전생에도 그것이 깊지 않다고 말했느니라.
옛날에 아수륜왕(阿須輪王)이 있었는데, 신장은 8천 유순, 상하의 입술 사이가 천 유순이었다. 왕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항상 그 아이를 사랑하여 안아서 무릎 위에 놓았다. 바다의 깊이가 336만 리인데, 아수륜이 서면 꼭 배꼽에 해당했다.
029_0487_b_21L佛語阿難勿言不深妙汝乃前世時亦言不深昔有阿須輪王身長八千由旬下脣相去千由旬王有小兒常愛此兒抱在膝上海深三百三十六萬里須輪立中正齊腹臍
아이가 아버지에게 ‘바다가 얕으니 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안 된다. 바다가 깊어 네가 빠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도 들어가고자 하니, 아버지는 그를 놓아두었다. 그러자 바다 밑에 빠져 허둥대고 무서워했다. 아버지가 곧 손을 뻗어 끄집어내어 말하기를 ‘너에게 안 된다고 말했지만 너는 믿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것은 무엇과 비슷한가?
029_0487_c_02L兒見父謂海爲淺欲得入水父語不可海深沒汝故欲得入父卽放之沒於海底惶怖%(口*彊)嘅父卽申手還執出水語曰語汝不可而汝不信今者何似
그때의 왕은 바로 나이고, 그 아이는 바로 너이다. 옛적에도 깊은 것을 믿지 않더니, 지금도 여전히 믿지 않는구나. 너는 단지 무명(無明)이 행을 연(緣)하는 것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37품을 알겠는가?”
029_0487_c_06L爾時王者我身兒者汝是昔日不信深今故不信汝但思無明緣行尚不能了況了三十七品乎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에 네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중생 불가사의ㆍ세계 불가사의ㆍ용(龍) 불가사의ㆍ불(佛) 불가사의이다. 세계 불가사의로 인해 옛적에 만원자(滿願子)와 범지(梵志)가 함께 논쟁을 벌였다.
029_0487_c_09L如來所說四不可思議何謂四衆生不可思議世界不可思議龍不可思佛不可思議所以世界不可思議昔滿願子與梵志共論
범지가 스스로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연못가에 이르러 생각하다가, 네 종류의 군대가 연꽃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스스로 놀라 나의 눈과 연꽃이 실제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말해도 모두들 믿지 않았다. 마침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본 것을 아뢰었다.
029_0487_c_13L梵志自云曾至池水上思惟見有四種兵衆來入蓮華孔中卽自驚怪不知我眼華爲實有是向人說之人皆不信遂至佛所云所見如是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것은 실제의 일로 허망한 것이 아니다. 아수륜이 네 종류의 군대를 일으켜 제천(諸天)과 싸운 것이다. 아수륜이 여의치 않자 퇴각하여 연꽃 구멍에 들어가 스스로 숨은 것이다. 이것은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까닭에 세계 불가사의라 말한 것이다. 세계는 범천이 만든 것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6천(天)이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029_0487_c_17L佛語此是實事非爲虛妄阿須輪興四種兵與諸天鬪須輪不如退入此蓮華孔中自隱非思度所及故曰世界不可思議界或云梵天所造或云六天所造
029_0488_a_01L범지가 또 말하였다.
“범천은 누가 만들었는가? 혹은 범천에게 아버지가 있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있다고 한다면 아버지는 곧 연꽃이다.”
또 물었다.
“연꽃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우다연(憂陀延)의 배꼽으로부터 나왔다.”
“우다연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산차왕(散嵯王)으로부터 나왔다.”또 물었다.
“산차왕은 어느 성(姓) 출신인가?”
“찰제리 종이다.”
029_0487_c_21L志又云梵天誰造或云梵天有父云自造言有父者父卽蓮華也有云蓮華者何從出憂陁延齊中出也憂陁延從何出從散嵯王出又曰散嵯王出何姓剎帝利種也
또 물었다.
“범천은 바라문 종이다. 지금 찰제리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무엇인가?”“겁소(劫燒)의 때에 대략 특별한 것을 얻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가?”
이에 대답하였다.
“겁소의 때에 땅의 끝으로부터 위로 15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김없이 태워진다. 이렇게 가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16천 이상 33천이 존재한다. 이 사이는 비록 타더라도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이것을 두고 말하지만, 다시 알지 못한다.”
이것이 세계 불가사의이다.
029_0488_a_03L又曰梵天是婆羅門種今言由剎帝利出是何言歟又曰劫燒時粗可得別以言之劫燒時從地際已上至十五天蕩然燋盡如似可知然復有十六已上三十三天在此閒雖燒他世界在以此言之復不可知是爲世界不可思議
무엇이 중생 불가사의인가? 더러는 말한다.
“겁소 이후에 물이 화처(火處)를 보충하고, 바람이 부는 데 따라 궁전이 지어지며, 아래의 땅은 비옥해진다. 광음천(光音天) 위의 모든 무리들이 장난치며 놀다 땅에 이르러 점차 땅의 비옥함을 맛보고는 몸이 무겁게 되어 다시 본래로 돌아가지 못한다. 음식을 많이 먹은 자는 변하여 여자가 되며, 점차 없어져 박병(薄餠)과 갱미(粳米)가 나타나게 되면 신족(神足)과 광명을 잃고 다시 또 사람이 된다. 선을 행하면 천(天)에 태어나고, 악을 행하면 3도(塗)와 5도(道)에 유전하며 항상 의지되는 것이 없다. 가령 한 사람의 근본 연유를 모두 남김없이 다 알려고 해도 오히려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어찌 일체 중생을 가히 생각하여 분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중생 불가사의이다.
029_0488_a_10L何謂衆生不可思議或云劫燒後補火處隨嵐吹造宮殿訖下有地肥光音天上諸天輩遊戲至地漸嘗地遂便身重不能復還食多化爲女轉減至薄餠粳米失神足光明還復爲人善行生天惡行三塗流轉五道無有常准正使欲窮盡一人根本所尚不能知況復一切衆生而可思度也是爲衆生不可思議也
무엇이 용(龍) 불가사의인가? 구름이 일어나 비가 되는 것은 모두 용에 의한 것이다. 비는 용의 눈ㆍ귀ㆍ코ㆍ입으로부터 나오는가, 그 몸으로부터 나오는가, 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가?
수미산에 의지해 다섯 가지의 천이 머물러 있는데 또한 능히 비를 뿌린다. 그러면 용의 비와 그 천의 비는 어떻게 다른가? 천의 비는 미세한 안개같이 내리는 것이다. 거칠게 내리는 것은 용의 비이다.
029_0488_a_19L何謂龍不可思議凡興雲致雨者皆由於龍雨之從龍眼耳鼻口出爲從身出耶爲從心出乎依須彌山止有五種天亦能降雨何以別龍雨天雨天雨者細霧下者是麤下是龍雨
029_0488_b_01L무엇이 다섯 가지 천인가? 첫째는 곡각천(曲脚天)이요, 둘째는 정상천(頂上天)이다. 셋째는 방일천(放逸天)이며, 넷째는 요력천(饒力天)이며, 다섯째는 사왕천(四王天)이다. 아수륜이 군대를 일으켜 천과 싸울 때, 먼저 곡각천과 싸워 승리를 얻은 뒤에 정상천에 이르렀으며, 차례로 방일천과 사왕천, 나아가 33천에 이르렀다. 아래의 4천과 싸우려고 했을 때, 무기도 없이 비로써 적을 물리쳤다.
029_0488_b_01L謂五種天第一曲腳天第二頂上天第三放逸天第四饒力天第五四天阿須輪興兵上天鬪時先與曲腳天鬪得勝然後次至頂上次至放逸及與四天王乃至三十三天下四天欲鬪時以雨卻歒更無兵仗
두 종류의 비가 있는데 환희의 비와 성냄의 비이다. 조화롭게 내리는 비는 환희이고, 우레ㆍ우박ㆍ벼락을 동반하는 것은 성냄이다. 아수륜도 비를 내리고, 천도 비를 내리며, 용도 또한 비를 내린다. 각각 비를 내리는 이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까닭에 용우(龍雨)의 불가사의라 하는 것이다.
029_0488_b_07L有二種有歡喜雨有瞋恚雨和調降雨是歡喜也雷雹霹靂是瞋恚也阿須輪亦降雨天亦下雨龍亦降雨各各致理不可定故曰龍雨不可思議
불(佛) 불가사의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옛적에 부처님께서 정실(靜室)에 계셨다. 항하의 모래와 같은 수의 모든 범천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부처님께서 어떠한 삼매에 계시는가를 알고자 했지만, 어떠한 삼매에 계시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신족 변현(變現)의 비밀스런 일은 2승(乘)으로서는 능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니, 하물며 범부임에랴.
029_0488_b_11L佛不可思議者昔時佛在靜室諸梵天如恒邊沙來至佛所欲知佛在何三昧而不能知在何定中三昧如是神足變現秘密之事二乘所不能思豈況復凡庶
아난이 가섭에게 미루어 먼저 말하였다.
“상좌[耆年]는 중생을 위해 법을 펴는 것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장(尊長)은 오랫동안 배우고 아는 것이 많아 세존께 위촉받으셨으니, 장래의 중생을 위하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정법이 오랫동안 세간에 머물게 하려 하셨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자리를 반분(半分)하여 명하셨습니다. 존자께서는 이미 승가 대중의 상좌이며, 또 지혜를 널리 감싸고 있으니, 오직 자비와 애민(哀愍)을 드리워 법보를 말씀하소서.”
029_0488_b_16L阿難推先迦葉云年堪任爲衆演法所以然者尊長舊學多識世尊所委爲將來衆生故使正法久存於世是以如來半坐相仁尊旣是衆僧上座又復智慧包唯垂慈愍時宣法寶
외국의 법사가 말하였다.
“가섭이 법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4변(辯) 가운데에 사변(辭辯)2)이 없었던 까닭이다.”
또 말하였다.
“본래 이 사람은 벽지불로서 단지 신족으로써 교화를 나타내었다. 처음에 법을 연설하지 않고, 가섭이 대답을 사양하며 스스로 ‘쇠하고 정기가 어두워져 잊는 것이 많다’라고 말하였다.”
029_0488_b_21L外國師云葉所以不說法者於四辯中無有辭又云本是辟支佛但以神足現化初不演法迦葉答讓自云朽邁情闇多忘
029_0488_c_01L답하여 말하였다.
“4제(諦)의 진정한 법이 어찌 쇠망하겠는가? 비유하면 금강이 훼손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단지 생사는 4대에 증감이 있는 것일 뿐이다.”
029_0488_c_02L答曰四諦眞法豈可衰亡耶如金剛不可虧損生死四大乃有增減耳
살바다가(薩婆多家)가 또 말하였다.
“9종의 나한에 퇴전하는 자가 있다. 어떠한 일로써 퇴전하는가? 네 가지 일이 있다. 즉 나이가 들어 노쇠해 가는 것,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 멀리 유행(遊行)하기를 좋아하는 것, 복용한 약이 잘못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로 곧 잘못과 잊음이 있을 뿐이다. 진리의 미묘한 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029_0488_c_04L薩婆多家又云九種羅漢有退轉者以幾事退有四事年在衰邁病苦逼好遠行遊服藥不順以此四事乃有誤忘耳眞諦妙慧豈可忘乎
가섭이 아난에게 권해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한창 때이다. 게다가 문지(聞智)와 등지(等智)3)가 있어 총지(總持)하여 잊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매일 경을 말씀하시어 항상 너에게 부촉하셨으니, 그대는 마땅히 경법(經法)을 선포하여야 한다.”
029_0488_c_07L迦葉勸阿難曰汝今年在盛時加復有聞智等智摠持强記佛每說經常囑累汝以是故汝當宣布經法
어떻게 아난이 등지를 갖고 있음을 아는가? 옛날 사위성 동쪽에 니구류(尼拘類)라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그늘은 5백 대의 마차를 뒤덮을 만하였다. 성 안에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산술에 밝아 95종 가운데 제일이었다. 이 나무 아래에서 아난과 서로 만났다.
029_0488_c_10L何以知阿難有等智昔舍衛城東有尼拘類大樹蔭五百乘車城中有梵志於算術於九十五種中最爲第一此樹下與阿難相遇
아난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구담의 제자 중 지혜 제일인 자가 여기에 있습니까?”
“조금 알 뿐입니다.”
“적으나마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 잎사귀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아난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고 이에 대해 대답하였다.
“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 잎사귀는 각각 약간씩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 떠나갔다.
029_0488_c_14L謂阿難曰人云瞿曇弟子智慧第一頗有此不答曰所知少耳少欲問一事此樹莖節枝葉凡有幾枚阿難擧頭視樹便答之曰此樹莖節枝葉各有若干卽便捨去
범지가 뒤에 남아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그 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보고 답하는 것이 이러하니, 그를 시험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나뭇잎을 60매 정도 따서 흙 속에 묻었다.
029_0488_c_19L梵志在後思惟此沙門必不知其於見答乃爾今當試之卽處處取葉六十枚藏之土中
아난이 걸식에서 돌아오자, 또 물었다.
“저는 아까 그 수를 잊었습니다. 다시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아난이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고 다시 답하여 말하였다.
“이 나뭇잎은 어찌하여 적어졌습니까?”
“어느 정도 적어졌습니까?”
“60매 정도 적어졌습니다.”
029_0488_c_21L阿難乞食還復問曰我向忘數更與我說阿難擧頭視之再遍答曰此樹葉何以少耶又曰少幾枚答曰少六十枚
029_0489_a_01L그러자 범지가 두 손을 잡고 사죄하며 말하였다.
“미증유의 일입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나한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아나함이나 사다함입니까?”
“아닙니다.”
“수다원입니까?”
“왜 그렇게 묻습니까?”
그러자 다시 물었다.
“스승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진정왕(眞淨王)의 아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셨으니, 그 사람이 곧 저의 스승입니다.”
029_0489_a_01L梵志卽叉手謝曰未曾有也又問曰君是羅漢耶答曰非也是阿那含斯陁含耶非也是須陁洹耶何以問耶有師耶答曰眞淨王子出家得卽是我師
그러자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스승의 지혜를 빌린 것이지, 자기가 안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사문이 되기를 구해, 곧 나한을 얻었다. 이것으로써 아난이 등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029_0489_a_06L心念曰此假師智非己所知卽隨至佛所求爲沙門卽得羅以是知阿難有等智
아난이 가섭을 나아가 받든 까닭은, 이미 그는 상좌이며, 또 존중받으며, 옛적 5백 세 동안 항상 그의 아버지였기에, 숙식(宿識)으로 존앙하여, 깊은 정을 의지한 까닭이다. 가섭이 아난에게 은근(慇懃)한 까닭은, 그는 옛적에 쌓은 두터운 인연으로 말사(末嗣)로서 은혜를 남겼으며, 덧붙여 다문(多聞)ㆍ등지(等智)ㆍ강기(彊記)로서 중생의 상수(上首)가 되고, 남겨진 전적 8만을 속집(屬集)하는 데 그보다 앞서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029_0489_a_08L阿難所以推先迦葉者旣是上座又是所尊昔五百世常爲其父宿識尊仰憑仗情深也迦葉所以慇懃於阿難者以其曩積厚緣遺恩末嗣加復聞等智强記於衆爲上屬集遺典八萬莫先
두 사람은 맹인과 앉은뱅이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이 서로 도움이 된다. 만약 두 사람이 불시에 천근(千斤) 단(段:300평의 땅 넓이의 단위)의 금을 줍는다면, 올바로 서로 함께 하고자 하여 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으며, 바르게 나누고자 하여 공(功)을 더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서로 의논하여 합세하여 가지고 돌아와 마침내 큰 효용을 얻으니, 가히 지혜를 구족했다고 할 수 있다. 가섭과 아난의 그 비유는 이와 같다. 두 사람은 모두 합쳐 법보를 오랫동안 보존시킨다.
029_0489_a_14L二人相須猶盲跛相賴也相爲利若二人卒遇千斤段金正欲相幷力所不勝正欲分割不可加功於是共議幷勢持歸遂得大用可謂俱智迦葉阿難其喩如是二人齊契法寶長存
029_0489_b_01L그때 아난이 경을 말한 것은 무량이니, 누가 능히 그것을 구비해 한 무더기를 이루겠는가?경이 무량이란 12부경이 광대하고 몹시 많은 것이다. 적시에 말하며, 차서(次緖)를 논하지 않고, 혹은 한 가지를 말한다. 곧 열 가지를 말한다. 혹은 열 가지를 말하고 두 가지를 논한다. 혹은 세 가지를 말하고 열한 가지를 논한다. 상하(上下) 그리고 다음은 없고, 한 무더기가 될 수 없다. 혹은 어떤 설자(說者)는 “여래는 법을 말하고, 혹은 교계(敎誡)를 말하며, 혹은 단결(斷結)을 말하며, 혹은 천인 가운데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무더기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029_0489_a_19L時阿難說經無量誰能備具爲一聚經無量者十二部經浩漫甚多適時而說不論次緖或說一事也乃云十事或說十事乃論二事或說三事乃說十一事上下不次不得爲一聚或有說如來說法或說教誡或說斷結或說生天人中以是言之復不得爲一聚
아난은 ‘1은 곧 1로부터 나오며, 2는 2로부터, 3ㆍ4ㆍ5ㆍ6 내지 10은 각각 그와 동일한 일로 하여금 서로 집착하게 한다’라고 생각한다. 혹은 어느 설자는 “이치는 그렇지 않다. 생각건대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에 비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029_0489_b_02L阿難思惟一便從一二從二三四五六乃至十各令事類相著或有說者不可爾按如佛語不可次比也
아난이 다시 ‘경법은 넓고 크니, 마땅히 나누어 세 무더기로 하리라’라고 생각한다. 아난이 홀로 이 생각을 일으키자, 수다회천(首陀會天)은 비밀스럽게 아난에게 일러 말하기를 “올바로 마땅히 셋으로 나누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곧 천이 이른 바와 같이 분별하여 셋으로 나누었는데, 첫째는 계경(契經)이요, 둘째는 비니(毘尼)요, 셋째는 아비담(阿毘曇)이다.
029_0489_b_05L阿難復思惟經法浩大當分作三聚阿難獨生此念首陁會天密告阿難曰當作三分耳卽如天所告判作三分一分契經二分毘尼三分阿毘曇
계경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 혹은 제천(諸天)ㆍ제왕(帝王) 혹은 외도ㆍ이학(異學)을 위해 각각에 따라 분별하여 각기 개해(開解)를 얻게 한 것이다. 계(契)란 실[線]의 뜻으로, 이치를 연속하여 행법을 성취시키는 것과 같기 때문에 계라 한다.
029_0489_b_09L經者佛所說法或爲諸天帝王或爲外道異學隨事分別各得開解也猶線連屬議理使成行法故曰契
비니란 금률(禁律)이다. 2부 승가를 위해 악을 막고, 비리를 단속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혹은 250, 혹은 500가지 일로 법을 이끌어 삿됨을 막는 것으로, 마치 왕이 비밀리에 감춰둔 것으로 외관(外官)이 담당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내장(內藏)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계율장도 이와 같이 사미ㆍ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가 듣고 볼 수 없는 까닭에 율장이라 한다.
029_0489_b_13L毘尼者禁律也爲二部僧說撿惡斂非或二百五十或五百事引法防猶王者秘藏非外官所司故曰內藏也此戒律藏者亦如是非沙彌信士女所可聞見故曰律藏也
아비담이란 대법(大法)이다. 대라고 말하는 까닭은 4제(諦)의 큰 지혜는 모든 법의 우두머리로서 모든 사견과 무명의 큰 어리석음을 끊는 까닭에 대법이라 한다. 또한 무비법(無比法)이라고도 하는데, 8지(智)ㆍ10혜(慧)ㆍ무루(無漏)의 정견은 삼계의 장애를 초월하고, 그와 동등한 것이 없는 까닭에 무비법이라고 한다. 가전연자(迦旃延子)는 여러 경을 찬집하여 그 요긴한 지혜를 엮어 부처님의 인가(印可)를 드러낸 까닭에 대법장이라고 한 것이다.
029_0489_b_17L阿毘曇者大法也所以言大者四諦大慧諸法牙旗斷諸邪見無明洪癡故曰大法也亦名無比法八智十慧無漏正見越三界閡無與等者故曰無比法也迦旃延子撰集衆經抄撮要慧呈佛印可故名大法藏也
029_0489_c_01L아난이 또 생각하기를, ‘이 3장(藏)의 뜻은 3탈(脫)과 상응한다. 무엇이 계경인가? 묘한 지혜의 이치와 공(空)은 합치한다. 비니는 악을 제어하는 것으로 현묘한 것은 무상(無相)과 같다. 대법은 올바로 적(迹)을 보는 까닭에 무원(無願)과 같다. 따라서 3장과 3탈은 명적현회(冥迹玄會)라 한다’라고 했다.
029_0489_b_23L阿難復思此三藏義與三脫相應何者契經妙慧理與空合毘尼制惡玄齊無相大法正見迹同無願故曰三藏三脫冥迹玄會
아난이 또 생각하기를, ‘계경의 대본의(大本義)는 4단으로 나뉘어 있다. 왜냐하면 문의(文義)가 혼잡하여 마땅히 사리(事理)로써 대소에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증일(增一)이요, 둘째는 중(中), 셋째는 장(長), 넷째는 잡(雜)이라 부른다. 1로써 근본을 삼고 이어서 10에 이르며, 1ㆍ2ㆍ3이 각각에 따라 증가하는 까닭에 증일이라 한다. 중(中)이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중간에 딱 알맞은 까닭에 중이라 한다. 장(長)이란 구원(久遠)의 일을 말하며, 겁이 다하도록 끊이지 않으며, 본말 근원의 일로 7불을 거쳐 성왕 7보(寶)가 있는 까닭에 장이라 한다. 잡(雜)이란 모든 경이 결(結)을 끊지만, 암송하기 어렵고 기억하기 어려워 복잡하고 잡다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잊게 하는 까닭에 잡이라 한다’라고 했다.
029_0489_c_04L阿難復思惟契經大本分四段何者文義混雜宜當以事理相從大小相次第一增一次名曰中三名長第四名曰雜以一爲本次至一二三隨事增上故曰增一中者不大不小不長不短事處中適故曰中也長者說久遠事歷劫不絕本末源由事經七佛聖王七寶故曰長也雜者諸經斷結難誦難憶事多雜碎憙令人忘故曰雜也
아난이 3장을 찬(撰)하여 마치고, 10경을 기록해 1게로 삼았다. 왜 그런가하면 장래 외우고 학습하는 자를 위해 그 잊어버릴 것을 걱정한 까닭이다. 이름을 보고 근본을 기억해 사유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한 까닭에 10경으로서 1게를 삼은 것이다.
029_0489_c_13L阿難撰三藏訖錄十經爲一偈所以爾者爲將來誦習者懼其忘誤見名憶本思惟自寤故以十經爲一偈也
소위 잡장(雜藏)이란 한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다. 혹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혹은 제자의 말이며, 혹은 제천의 찬송이며, 혹은 숙연(宿緣)으로 3아승기의 보살이 생기는 바를 말한 것이며, 문의(文義)도 일정하지 않으며, 3장보다 많은 까닭에 잡장이라 한다.
029_0489_c_16L所謂雜藏者非一人說或佛所說弟子說或諸天讚誦或說宿緣三阿僧祇菩薩所生文義非一多於三藏故曰雜藏也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불보살의 행사를 물었다. 여래께서 자세히 그를 위해 법을 말씀하셨다. 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무엇을 법으로 삼습니까?”
이에 답하였다.
“법은 곧 보살장입니다.”
모든 방등(方等)의 정경(正經)은 모두 이 보살장 가운데 있는 것이다.
029_0489_c_20L佛在世時阿闍世王問佛菩薩行事如來具爲說法設王問何謂爲法法卽菩薩藏也諸方等正經皆是菩薩藏中事
029_0490_a_01L일찍이 부처님께서 계셨을 때 이미 대사장(大士藏)이라 불렀다. 아난이 찬한 바는 곧 지금의 이 4장이다. 합하여 그것을 말하면 5장이 된다.
029_0489_c_23L先佛在時已名大士藏阿難所撰者卽今四藏是也合而言之爲五藏也
“혹은 1법(法)이 있어 뜻 또한 깊고 수지하기 어렵고, 암송하기 어려우며, 가히 기억할 수 없다.”1법이란 곧 공법(空法)이다. 무형(無形)과 무상(無像)으로 가히 호지할 수 없다.
고요하여 소리와 음향이 없으며, 무심ㆍ무념ㆍ박연(泊然)ㆍ무상(無想)하고 최고의 제일공(第一空)이다. 그 뜻에 둘이 없고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까닭에 수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말로 가히 대답할 수 없는 까닭에 암송하기 어렵다고 한다. 뜻으로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까닭에 기억하기 어렵다고 한다. 소위 깊은 뜻은 이와 같다.
029_0490_a_02L或有一法義亦深難持難誦不可憶一法者卽空法也無形無像不可護持寂無聲響無心無念泊然無想最第一空義無二故無容可測故曰難持無言可詶故曰難誦無意可思故言叵憶也所謂深義其事如此
또 1법이란 갖가지 수의 근본이다. 1은 수의 시작이며, 10은 수의 끝이다. 10에서 끝나며, 또 1로부터 일어난다. 바로 천만에 이르는 것도 항상 1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이 모든 1은 가히 다함이 없다. 모든 경 가운데에 혹은 1의(義)ㆍ1법(法)ㆍ1행(行)ㆍ1사(事)가 서로 따라 그 차례를 잃지 않는다. 그 까닭에 하나하나가 서로 따라 그 차례를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029_0490_a_07L復一法者衆數之本一者數之始者數之終終於十復從一起正至千常始於一如是諸一不可窮盡諸經之中或一義一法一行一事各各相不失其緖也故曰一一相從不失緖也
2법, 즉 둘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혹은 선악을 말하며, 혹은 지관(止觀)을 말하며, 혹은 명색(名色)을 말한다. 지(止)란 허(虛)이며, 관(觀)이란 실(實)이다. 지란 삼매의 정(定)이며, 마음이 고요하고 욕심이 적어[泊然] 상(想)을 멸하며, 무명의 도리를 없애는 까닭에 허라 말한다. 관을 실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것으로써 분별하여 행이 있으며,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식별이 명료하여 뜻이 어지럽지 않은 까닭에 실이라 한다.
029_0490_a_13L二法就二者或云善惡或云止觀云名色止者虛也觀者實也止者三昧定泊然滅想冥爾亡懷故曰虛也觀所以言實以其分別有行是非好惡識別明了意不惑亂故曰實也
3법은 셋으로 이루어진다. 셋이란 보시와 공덕, 사유이다. 이 세 가지 행은 세속의 생천법(生天法)이며, 3탈문(脫門)의 행은 열반법에 이른다. 모든 유(有)에는 3법(法)ㆍ3행(行)ㆍ3복(福)ㆍ3분법신(分法身)ㆍ3상(相)이 서로 따르며, 비유하면 이어진 구슬과 같다.
029_0490_a_18L法就三三者布施也功德也思惟也此三行世俗生天法三脫門行至涅槃法也諸有三法三行三福三分法三三相從喩如連珠也
029_0490_b_01L4법은 4를 이루며, 5법도 그와 같다. 5법 다음에 6, 6법 다음에 7, 8법의 의미는 광대하다. 9 다음에 제10법이 이르며, 10으로부터 11에 이른다. 이와 같이 모든 수는 모두 2ㆍ3과 동일하게 사류(事類)가 서로 따른다.
029_0490_a_22L四法就四亦然五法次六六次七八法義廣次第十法從十至十一如是諸數皆同二三事類相從
“아난이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는 사자좌(師子座)이다. 경에서 사자좌에 비유한 것은 사자가 짐승 가운데 왕이며, 항상 높은 곳에 머물며, 낮은 곳에 머물지 않는 까닭에 높은 자리에 비유한 것이다. 또 그 두려움 없음[無畏]을 취한다. 아난이 한량없이 널리 들어 성문(聲聞) 가운데에 홀로 두려움 없이 걷는 까닭에 무외좌(無畏座)라고 말한다.아난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이와 같다.
029_0490_b_02L阿難卽時昇于座座者師子座也經所以喩師子座者師子獸中之王常居高地不處卑下故喩高座也又取其無畏阿難無量博聞於聲聞中獨步無畏故曰無畏座也阿難昇高座如此也
“미륵이 선(善)이라 일컬으며, 쾌재(快哉)를 말한다.”미륵이 그와 같이 한 까닭은 아난이 보살법에 합치해 삼장의 대소를 구별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놋쇠와 금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은근하게 부(部)를 나누기를 권청(勸請)하는 것이다.
029_0490_b_08L彌勒稱善快哉說彌勒所以下者懼阿難合菩薩法在三藏大小不別也鍮金同貫是以慇懃勸請分部
옛적에 대천성왕(大天聖王)이 네 개의 범당(梵堂)을 가지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서로 이어져 8만 4천의 왕이 모두 범당을 갖게 되었다. 오직 대천(大天) 한 사람만이 대사(大士)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소절(小節)로서 이것으로써 그것을 말한다. 대승은 말로 나타내기 어려우며, 대다수는 성문으로 나아간다. 미륵 또한 아난이 3장을 부분으로 나눈 것을 알고, 더욱이 후학이 오로지 공을 닦아 결(結)을 끊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대승을 선양하고 나누어 별장을 삼는 까닭에 6도의 제행을 말하니, 대사의 목요(目要)이다.
029_0490_b_09L昔大天聖王具四梵堂轉相紹乃至八萬四千王皆有梵堂唯大天一人是大士其餘皆是小節以是言之大乘難辯多趣聲聞彌勒亦知阿難部分三藏然猶懼後學專習空法斷結取證是以顯揚大乘爲別藏故說六度諸行大士目要也
보시에 두 가지가 있는데, 신시(信施)와 공포시(恐怖施)이다. 근(根)을 세워 인(忍)을 얻는 것을 곧 신시라 하며, 위력에 핍박(逼迫)되어 본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을 공포시라 한다. 믿는 것은 곧 도(度)를 성취하는 것이고, 두려워하는 것은 곧 복을 구하는 것이다.
029_0490_b_15L施有二種有信施有恐怖施立根得則曰信施威力逼迫不由本心名恐怖施信則成度畏則求福
도속(道俗)의 차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구별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두목시(頭目施)란 7주(住) 이상을 말하며, 재물시(財物施)란 6주(住) 이하를 말한다. 이로부터 물러나는 자도 생사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열반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그것을 밝히는가? 대품의 본무설(本無說) 가운데에 말하기를, “60의 보살이 나한도를 얻었는데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029_0490_b_18L道俗之殊不待言而自別也其人云頭目施七住已上財物施者六住已下此退者不墮生死要至涅槃耳何以明之大品本無說中云六十菩薩得羅漢道此其事
029_0490_c_01L‘계가 금강과 같다’는 것은 대승계이다.
‘계가 배병(坏甁)과 같다’는 것은 소승계이다. 왜냐하면 금강은 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029_0490_b_23L戒如金剛大乘戒戒如坏甁小乘戒何者金剛者不可沮壞
옛날, 비할 데 없이 단정한 보살비구가 걸식에 나섰는데, 길에서 단정한 한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보살을 보고 곧 욕심의 뜻을 일으켜 부부가 되기를 원하였다. 도리어 스스로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단지 함께 앉기만 해도 나는 곧 무상(無上)의 뜻을 내리라’라고 생각했다.
보살이 여인의 마음을 알고 곧 앞에 가서 함께 앉았다. 잠시 있은 뒤에 앞으로 그를 당겼다. 비구는 잠잠히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거듭 그에게 가까이 갔지만 여전히 적연(寂然)했다.
029_0490_c_02L昔者菩薩比丘端正無比出行乞食路遇一端正女人女視菩薩便起欲意願爲夫婦覆自思惟同叵得但共坐者我便發無上意薩知女心便前共坐有頃便前牽之比丘默然不答復重近之如故寂然
비구는 곧 그녀에게 공법(空法)을 말하였다.
“눈은 곧 어디에서 오고 가며 어느 곳에 이르는가? 부모로부터 온다고 말하려고 하는가? 아직 만나지 않았을 때는 이 눈도 없다. 후에 부서지게 될 때는 또 어느 곳에 이르는가? 눈은 소유한 것이 없으며, 5정(情) 또한 그렇다.”그러자 활연히 공을 해득해 수다원을 얻었다. 마땅히 유(有)를 말하고 다시 곧 공을 말해야 하는데 보살의 법은 마땅히 유에 들어가서 공을 말하니, 그러므로 본의를 모두 드러낸 것은 아니다.
029_0490_c_07L比丘卽與說空法眼本從何來去至何所欲言從父母來耶未會之時亦無此眼至後壞時復到何所以是言眼無所有五情亦然豁然解空須陁洹應與說有乃更說空菩薩法當入有而說空是以不全本意
아난이 그때 이 비구와 여인이 함께 앉아 있어 비구의 위의를 범한 것을 보고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조금 전에 비구와 여인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먼저 사실을 아시고 잠잠히 계셨다. 비구는 아난이 세존께 아뢴 것을 알고 ‘생각건대 내가 바로 가지 않으면 아마도 비방한 이가 죄에 빠질 것이다’라고 하고는 바로 신변을 나타내서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것이지만 곧바로 날아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
029_0490_c_13L阿難時見此比丘與女坐犯比丘儀卽還白佛向見比丘與女人共坐佛以先知便默然比丘知阿難白世尊我正不往恐誹謗者墮罪正欲現變佛所不許直飛至佛所
029_0491_a_01L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전에 본 계율을 어긴 비구가 지금 여기로 날아온 비구이다. 너는 모름지기 욕(欲)을 범한 자가 능히 나는 것을 보았는가? 이 비구는 조금 전에 여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그 여인이 마음으로 ‘이 비구가 나와 함께 앉는다면 나는 마땅히 무상의 뜻을 일으키리라’라고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여인의 뜻을 알고 곧 함께 앉았다. 곧 그녀를 위해 공법을 말하고 눈의 공함을 분별하였고, 5정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여인은 곧 두려워하여 바로 도적(道迹)을 얻었다. 그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김으로써 생사를 두려워하는 까닭에 소승을 얻었다. 만약 이 비구가 조금 전에 여인과 더불어 말한 행을 저지른 비구라면 도리어 본심을 성취시킨 것이다.”
029_0490_c_18L佛語阿難所見犯律比丘者今此飛來比丘是汝頗見犯欲人能飛不也此比丘向者與女人共坐時以女人心念是比丘與我共坐者我當發無上意此比丘知女人意便與共坐卽與說空法別眼空五情亦爾女卽恐畏便得道以其恐懼心生畏生死故得小乘若此比丘向者與說有行者還成本
이일로써 알아라. 이 보살은 아직 불퇴를 성취하지 못했으며, 사람의 마음을 관하는 데 아직 지극히 좋지는 못하니, 소위 금강계이다.
029_0491_a_04L以此事知是菩薩未成不退於觀人心未盡善也所謂金剛戒也
소위 인도(忍度)란 꾸짖음을 당하거나 훼방을 당해도 묵묵히 받아들여 보복하지 않는다. 보살이 인을 행하는 데 항상 자비 등으로써 하며, 남과 나에 있어 평등하게 한다. 남과 나는 서로 같으며, 원수와 친구는 둘이 아니다.
029_0491_a_05L所謂忍度者見罵見毀默受不報菩薩行常以慈等等於彼我彼我旣齊親不二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소승의 자비는 살과 피부에 자애로우며, 대사의 자비는 골수에 투철하다”라고 하였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만약 사람이 보살의 팔다리를 자른다면 변하여 젖이 되리니, 이것이 자비의 증거이다. 찬제(羼提) 비구는 곧 그와 같다. 비유하면 어머니가 자식을 낳으면 젖이 나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자애로운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자연히 변해 이루어진 것이다. 대사도 이와 같다. 자비의 삼매에 들어가는 까닭에 능히 젖[乳]을 느낀다. 자비를 행하는 데 이르면 비록 활과 화살을 집더라도 중생은 도리어 나를 따른다. 자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비록 막대기를 잡지 않더라도 보고 모두 버리고 달아난다. 이것으로써 깨닫는 까닭에 대소의 차이는 스스로 오는 것이 있다.
029_0491_a_08L故經曰小乘之慈慈猶肌膚士之慈徹於骨髓何以明之若人割截菩薩手足變成爲乳者卽是慈證羼提比丘便是其事也喩若母人生子便有乳出此慈念所感自然變成也大士如是入慈三昧故能感乳行慈之至雖執弓矢衆生反來附慈之不徹雖不執杖見皆捨走是證故大小之殊有自來矣
‘선악의 행을 짓는다’는 것은, 소위 정진하여 모든 선의 공덕을 짓는 것이다. 악을 행하는 것은 옛적 화만 동자(火鬘童子)가 가섭불을 비방하여 “까까머리 사문이여, 어떠한 도가 있는가?”라고 말한 것과 같다. 얻기 어려운 도에서 능히 도를 얻는다. 이런 까닭에 후에 6년의 근고(勤苦)를 받고 그제야 도를 얻었다. 유법(遺法) 가운데 모든 비구는 항상 이것을 논쟁했다. 더욱이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데 그 과보를 말했다. 6년 고행이란 행해서는 안 되는데 그 과보를 행한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몸과 입으로 한 악행이다.
029_0491_a_16L作善惡謂精進作諸善功德惡行者昔火鬘童子誹迦葉佛言禿頭沙門何有道道難得能得道也由是後受六年勤苦方乃得道遺法之中諸比丘常諍此猶口不可言而言報也年苦行者不可行而行報也是爲菩薩身口惡行也
‘선정’이란 적(寂)에 들어가 마음이 고요하고 욕심이 적으며 부동한 것이다.
禪定入寂泊然不動
029_0491_b_01L‘지혜’란 미진과 강하(江河)의 모래 수를 억 년 동안 센다 해도 가히 헤아릴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지혜로써 명료히 아는 것은 가히 다함이 없다.
029_0491_a_23L智慧知塵數及江河沙數億載不可慧明所了不可窮盡
이 6도의 무극사(無極事)는 남김없이 보살장에 존재한다. 마땅히 3장과 합치하지 않는다. 아난이 대소의 인연을 구분하고자 하더라도 그것을 서로 알지 못한다. 그 이치는 스스로 공하여, 분명히 이해하기 어렵다. 대사로서 공을 의심하는 자는 깨달음을 취하지 못하는 까닭에 호의(狐疑)라고 한다.
029_0491_b_02L此六度無極事盡在菩薩藏不應與三藏合阿難欲使大小殊因緣彼不相知其理自空難可明了大士疑空者不取證故狐疑也
分別功德論卷第一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역자에 대한 후한(後漢) 시대의 기록이 붙어 있다.
  2. 2)사무애변(辭無礙辯).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3. 3)세속의 사소한 것까지도 아는 지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