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9_0756_b_01L출요경(出曜經) 제1권
029_0756_b_01L出曜經卷第一

요진(姚秦) 양주(凉州) 사문 축불념(竺佛念) 한역
029_0756_b_02L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1. 무상품(無常品) ①
029_0756_b_03L無常品第一之一

옛날 부처님께서는 바라날국(波羅捺國)1)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미래 세상의 중생들은 그 수명이 8만 4천 세가 될 것이다. 그때의 그 중생들은 이 염부리(閻浮利)2) 안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니, 곡식은 풍성하고 백성들은 번성하여서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다 같이 듣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때의 백성들은 여자 나이 5백 세가 되어서야 시집을 갈 것이다.
그때에 상가(蠰佉)라는 왕이 있을 것이니, 7보(寶)를 지니고 법으로써 다스리매 어긋남이 없으리라. 또 그는 우보(羽寶)의 수레를 타고 다니는데, 그 높이가 1천 주(肘)에 너비는 16주로서 온갖 보배와 영락(瓔珞)으로 장엄된 것이다.
029_0756_b_04L昔佛在波羅捺國佛告諸比丘當來之世衆生之類壽八萬四千歲爾時壽八萬四千歲衆生輩於此閻浮利衆生共居一處穀米豐熟人民熾鷄狗鳴喚共相聞聲佛告比丘等當知爾時人民女年五百歲便外適娶爾時有王名曰蠰佉七寶導從以法治化無有阿曲有自然羽寶之高千肘廣十六肘豎立修治衆寶瓔珞
그는 대중 가운데서 보시를 하되, 아끼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며 공덕을 지어서 대중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나 도를 얻은 이들이 멀리 가거나, 머무르거나 지나갈 때에는 거처할 곳을 다 제공할 것이며, 그들의 구함이 있으면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중생의 수명이 8만 4천 세가 될 그때에 여래가 세상에 출현할 것이니, 그 명호(名號)는 미륵(彌勒) 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明行成)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다. 그것은 마치 지금 내가 위없이 바르고 참된 정등각을 이루어 10호(號)를 완전히 갖춘 것과 같을 것이다. 또 그는 항상 무수한 백천 비구들을 보호할 것이니, 그것은 마치 지금 내가 무수한 백천의 비구와 대중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029_0756_b_14L在大衆中分檀布施無悋悔心造立功德爲衆導首與諸沙門婆羅門諸得道者遠行住止經過居宿皆悉給施有所求索無所悋惜爾時衆生壽八萬四千歲有如來出世名曰彌勒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號佛如我今日成無上正眞等正覺號具足常當將護無數百千諸比丘僧如我今日將護無數百千諸比丘僧
029_0756_c_01L또 그는 대중을 위해 깊은 법을 널리 설할 것이니, 그 법은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고 이치와 맛이 미묘하며, 청정함을 완전히 갖추어서 범행을 닦게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지금 내가 대중을 위해 깊은 법을 널리 설할 때에 그 법이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고 이치와 맛이 미묘하며 청정함을 완전히 갖추어서 범행을 닦게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 부처님께서 자세히 말씀하신 것과 같다.)
029_0756_c_01L諸大衆廣說深法上中下善義味微具足淸淨修於梵行如我今日諸大衆廣說深法上中下善義味微具足淸淨修於梵行廣說如彌勒下生
『육경낙도(六更樂道)』라는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그곳에 태어나면, 눈으로 색을 보아도 좋은 색만을 보고 나쁜 색은 보지 않으며, 사랑스런 것만을 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며, 공경할 만한 것만을 보고 공경할 만하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며, 생각할 만한 것만을 보고 생각할 만하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며, 아름다운 색만을 보고 아름답지 않은 색은 보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중생이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촉감을 느끼거나 뜻으로 법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제석천[天帝]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029_0756_c_06L如佛所說有經名曰六更樂道若有衆生生其中者若眼見色盡見善色不見惡色見愛不見非愛見可敬不見非可敬見可念不見非可念見美色不見非美色諸有衆生耳聞聲者鼻嗅香舌知味身知細滑意知乃至天帝亦復如是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3)의 미후지(獼猴池) 옆에 있는 대강당(大講堂)에 계셨다.
많은 비사리의 소년들은 각기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모두 모여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문안을 드려야 한다.’
그 중의 한 소년은 푸른 말을 탔는데 일산[蓋]과 옷도 모두 푸르렀다. 혹 누렇거나 붉거나 흰색의 말을 탄 소년은 그 의복이 다 흰색이었다.
그들은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흥겨운 가락 속에 앞뒤로 줄을 지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천인[天]들이 뒷동산이나 연못에 놀러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이가 있다면, 지금 저 동자들을 보아라. 왜냐 하면, 저들이 입고 있는 법복(法服)이나 타고 있는 수레들은 천인들의 것과 다름이 없으니, 천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이것과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029_0756_c_12L爾時世尊遊毘舍離彌猴池水大講堂上爾時衆多毘舍離諸童子等各生此念我等宜可共相率合至世尊所問訊禮覲其中童子或有乘載靑馬靑蓋被服皆靑或有乘載靑黃赤白被服皆白搥鍾鳴鼓作倡伎樂前後導從至世尊所爾時世尊告諸比丘汝等當知若有不見諸天遊觀至後園浴池者今當觀此諸童子等所著法服乘載輿輦與彼諸天亦無差別所以然者諸天被服與此無異
029_0757_a_01L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수백천의 중생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는 마땅히 진실로 참된 서원을 세우자. 그래서 다음 생(生)에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언제나 저런 법복을 입어 영원히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또 미래 세상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면, 그 깊고 심오한 법문을 들어서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 열반에 들게 하겠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마음으로 3유(有)4)에 나기를 구함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아시고, 곧 그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56_c_23L爾時坐上數百千衆生之類各作是念我等宜可發眞誠誓使我等後生生天上人中著此法服永已不離使當來世有佛興出聞甚深法永離苦惱入泥洹界如來以知衆生心念求生三有不離苦惱便與大衆而說此偈

1
모든 행은 덧없으니
닳아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은 의지할 수 없으니
변하고 바뀌어 머무르지 않는다.
029_0757_a_06L所行非常
爲磨滅法
不可恃怙
變易不住

그때에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중생들은 이 한 구절의 게송을 듣고 현재에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려서 모두 도(道)의 과(果)를 얻었다.
029_0757_a_08L爾時衆生聞此一句偈不可稱計百千衆生於現法中漏盡意解皆得道果
옛날에 바라문 네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통을 얻었기 때문에 능히 하늘을 날 수 있어서 신족(神足)이 걸림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맛난 음식을 구담(瞿曇) 사문께 보시하고는 천상에 나서 복된 곳을 떠나지 않게 되고, 또 어떤 이는 그 법을 듣고 해탈문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하늘 복을 탐하지만 해탈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법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각기 달고 맛있는 석밀(石蜜) 네 개씩을 가지고 가서 한 사람이 먼저 부처님께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그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행은 덧없으니

그는 이 게송을 듣자 곧 손으로 귀를 가렸다.
029_0757_a_11L昔有婆羅門四人皆得神通身能飛行神足無㝵此四梵志自相謂言有人民以餚饌食施瞿曇沙門者便得生天不離福堂有聞法者入解脫我等今日意貪天福不願解脫不須聞法是時四人各執四枚甘美石一人先至如來所奉上世尊如來受已告彼梵志而說此偈所行非常梵志聞已以手掩耳
029_0757_b_01L이어 두 번째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니라.

그도 이 게송을 듣자 곧 손으로 귀를 가렸다.
이어 세 번째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

그도 이 게송을 듣자 곧 손으로 귀를 가렸다. 이어 네 번째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이 적멸(寂滅)이 즐거움이다.

그도 이 게송을 듣자 손으로 귀를 가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부처님을 두고 제각기 떠나 버렸다.
029_0757_a_20L次第二人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復說此偈謂興衰法梵志聞已以手掩耳次第三人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受已復說此偈夫生輒死梵志聞已以手掩耳次第四人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受已復說此偈此滅爲樂梵志聞已以手掩耳各捨之去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살펴보시고 마땅히 제도받을 수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방편으로 몸을 숨기어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들 네 사람은 모두 한곳에 모여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구담 사문께 보시하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앞서 먼저 간 사람에게 물었다.
“석밀을 올릴 때 무슨 말씀이 있었느냐? 또는 법을 듣지 않았느냐?”
“나는 부처님에게서 ‘모든 행은 덧없으니’라고 하신 한 구절의 이치를 들었다. 그 이치를 듣고는 곧 손으로 귀를 가려서 더 듣지 않았다.”
이어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부처님께 가서 어떤 말씀을 들었느냐?”
그는 상세히 말하였다.
“내가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바칠 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니라’라는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그것을 듣고 곧 손으로 귀를 가려서 더 듣지 않았다.”
029_0757_b_04L如來觀彼心意知應得度便以㩲便隱形不現人各聚一處自相謂言我等雖施瞿曇沙門意不決了瞿曇沙門有何言先問前者奉上石蜜得何言教不聞法乎對曰我從如來聞一句義所行非常聞此義已卽以手掩耳亦不承受次問第二人至如來所得何言教其人復自陳說吾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與我而說此偈謂興衰吾聞此已以手掩耳亦不承受
이어 세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부처님께 나아가 어떤 말씀을 들었느냐?”
그는 상세히 말하였다.
“내가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바칠 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라고 하는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그것을 듣고 곧 손으로 귀를 가려서 더 듣지 않았다.”
이어 네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부처님께 나아가 어떤 말씀을 들었느냐?”
“내가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바칠 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라는 게송을 들려 주셨다.”
그들은 각기 그 게송을 말하고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서 아나함(阿那含)5)의 도를 얻었다.
029_0757_b_14L問第三人汝至如來所得何言教人復自陳說至如來所貢上石蜜來與我而說此偈夫生輒死吾聞此已以手掩耳亦不承受次問第四人汝至如來所得何言教其人對曰如來所貢上石蜜如來與我而說此此滅爲樂四人說此偈已心開意得阿那含道
029_0757_c_01L그때에 그 네 사람은 각기 자기가 도를 깨쳤음을 알고, 지금까지의 자기들의 잘못을 한없이 자책하였다.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 아래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다가 조금 뒤에 다시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이 그 도 안에서 사문이 되는 것을 허락하여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들이여, 범행을 잘 닦아라.”
그러자 그들의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입고 있던 옷이 변해서 가사가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서 이내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029_0757_b_22L爾時四人自知各得道證還自懇責至如來所頭面禮足在一面立須臾退坐白世尊曰唯願如來聽在道次得爲沙門世尊告曰善來比丘快修梵行爾時四人頭髮自墮身所衣服變爲袈裟尋於佛前得羅漢道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려고 할 때에 대가섭(大迦葉)과 아나율(阿那律)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잘 받들고 부처의 말을 공경하고 섬겨라. 너희 두 비구는 바로 열반에 들지 말고, 먼저 계경(契經)과 계율과 아비담(阿毘曇)6)과 보잡장(寶雜藏)을 집성한 뒤에 열반에 들어라.”
이와 같은 말씀이 있고 나서 사리(舍利) 공양을 열흘 만에 모두 마쳤다.
그들은 함께 모여 이 경전들을 집성하였으며 5백의 아라한들은 모두 다 해탈을 얻었다. 그리하여 빠르고 예민한 근기와 온갖 덕을 갖춘 이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아난(阿難)을 위해 높은 사자좌(師子座)를 만들고 아난에게 청하여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아난이 자리에 올라앉자, 그들은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어느 곳에서 설법하셨습니까?”
029_0757_c_05L佛臨欲般泥洹時告大迦葉及阿那律汝等比丘當承受我教敬事佛語汝等二人莫取滅度先集契經戒律阿毘曇及寶雜藏然後當取滅度廣說乃至供養舍利盡耶旬便共普會集此諸經五百羅漢皆得此解脫捷疾利根衆德備具普集一處便與阿難敷師子高座勸請阿難使昇高座已昇高座便問阿難來最初何處說法
아난이 곧 말하였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그러자 5백의 아라한은 모두 승상(繩床)에서 일어나 맨땅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우리는 직접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아난님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소리를 내어 마주 보고 슬피 울었다.
이 때 가섭이 아난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비로소 깊이 감추어진 법이 드러날 것이오. 항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말해야지, ‘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난이 이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날(波羅捺)의 선인(仙人)이 살던 녹야원(鹿野苑)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근본이다. 이것은 일찍이 듣지도 못한 것이요, 보지도 못하던 것이다.’”
(자세한 것은 경전과 같다.)
029_0757_c_14L時阿難便說聞如是一時說此語已時五百羅漢皆從繩牀上起在地長跪我等躬自見如來說法今日乃稱聞如是一時普皆擧聲相對悲泣大迦葉卽告阿難從今日始出法深藏皆稱聞如是勿言見也佛在波羅捺仙人鹿野苑爾時世尊告五比丘此苦原本所未聞本所未見廣說如經本
029_0758_a_01L그때에 비구들은 이미 경전을 다 집성하였다.
가섭 존자가 다시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어느 곳에서 계율을 말씀하셨습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에게서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열성(羅閱城)7)의 가란타죽원(伽蘭陀竹園)8)에 계셨습니다.
그때에 가란타(迦蘭陀)의 아들 수진나(須陳那)는 집을 떠나 도를 배워서 비구의 경계 안에 있었으나 최초로 계율을 범하여서 제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계율과 같다.)
가섭이 다시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어느 곳에서 아비담(阿毘曇)을 말씀하셨습니까?”
029_0757_c_22L是時衆人已集契經是時尊者迦葉復問阿難如來最初何處說戒律時阿難報大迦葉吾從佛聞如是一時佛在羅閱城迦蘭陁竹園時迦蘭陁子名曰須陳那出家學道在比丘境最初犯律至不度法廣說如戒律是時葉復問阿難如來最初何處說阿毘
아난이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에게서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의 미후지(獼猴池) 옆에 있는 보집강당(普集講堂)에 계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발기자(拔耆子)의 내력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두려움과 성내고 한탄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지옥에도 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아비담과 같다.)
그래서 초저녁에 아비담을 집성하고 새벽에 『출요경』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라.
029_0758_a_07L阿難曰吾從佛聞如是一時佛在毘舍離獼猴池側普集講堂所爾時世尊見拔耆子因緣本末告諸比丘諸無五畏恚恨之心者便不墮惡趣亦復不生入地獄中廣說如阿毘曇初夜集阿毘曇竟後夜便說出曜說此偈睡眠覺寤

무엇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세존ㆍ등정각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대개 잠자는 이는 수명이 줄어들고 어리석고 미혹하여 마음을 해치기 때문에 도의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목숨을 마치고는 구제될 수가 없어서 밝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 왜냐 하면, 사람이 깨어 있으면 덕을 닦아 선의 근본을 지어 세울 수 있지만, 잠에 빠져 있으면 이 법을 잃기 때문에 어리석고 미혹하다고 하는 것이다.’
029_0758_a_13L何以故說睡眠覺如世尊等正覺所說夫睡眠者命愚惑有所傷壞不成果證沒命無不至明處所以然者如人覺寤便能修德造立善本耽著睡眠便失此故謂愚惑
029_0758_b_01L그때에 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비구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어떤 중생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온갖 일을 생각하지만 잠자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잠만 자고 깨어 있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도를 통하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잠을 없애고 항상 깨어 있기를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게송에서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디 기뻐하며 그 말씀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쁘고 즐거워서 선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기뻐하며 들은 것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내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029_0758_a_18L時座中復有說者如佛所言若有衆生覺寤之中所念衆事於睡眠中澹然無想世尊告諸比丘寧睡不覺此云何通是故佛說除去睡眠常念覺寤如佛說偈睡眠覺寤宜歡喜思言歡者內心踊躍喜怡歡樂善心生焉是故稱說宜歡喜思我所說者
부처님의 말씀을 듣되, 뜻을 굳게 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면, 뜻이 고요하고 틀림이 없어서 능히 그것을 이어 받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요(出曜)를 찬술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항하의 모래알 같은 과거의 부처님도 모두 이 출요의 이치를 찬탄하셨고, 현재의 부처님도 가장 훌륭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가장 훌륭하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불선법(不善法)을 이기고,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이기며, 모든 생사의 속박을 이기고, 외도(外道)인 니건자(尼乾子) 등의 아흔여섯 종류의 술수(術數)를 이길 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기 때문에 ‘가장 훌륭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연설이 유창하여 막힘이 없고, 여러 천인들과 인간을 위해 널리 펴고 나타내어서 그 이치를 성취시켰기 때문에 ‘출요를 찬술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연설처럼 유창하여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029_0758_b_02L專意一心無有亂想意定無誤堪任承受是以故說聽我所說撰記出曜言出曜者過去恒沙諸佛世尊皆共讚歎出曜法義如來世尊亦名最勝云何爲最勝勝諸結使不善之法勝婬怒癡勝一切生死結縛勝外道異學尼乾子等九十六種術於中特出故曰最勝演說暢達無有留滯布現演吐爲諸天人義味成就是故說撰記出曜如世尊所說演說暢達無有留滯

2

부처님의 말씀은
일체에 통달하며
선인(仙人)은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의 한 몸은 남음이 없다.
029_0758_b_12L如世尊說
一切通達
仙人慈哀
一身無餘

“부처님의 말씀”이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연설은 유창하여 막힘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신 것이다.
“일체에 통달하며”란 무슨 뜻인가?
일체의 지혜를 통달하여 일체를 나타내 보이고 일체를 환히 알며 일체의 이치를 분별하는 것이다. 또한 6신통(神通)을 부리고 위없는 도를 이루었으므로 여래의 신통은 저 아라한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제도 중에서 부처님의 제도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제일이며 모든 법의 모양을 모두 분별하신다. 그러므로 “일체에 통달하며”라고 하신 것이다.
029_0758_b_13L如世尊所說者暢達演說言無留滯故曰世尊說也一切通達者一切智達一切示現切通了分別一切義遊六神通成無上道如來六通亦非羅漢所能及逮佛爲諸度最勝最上於諸法相悉能分別故曰一切通達也
029_0758_c_01L“선인은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란 무슨 뜻인가?
그 마음은 중생들 일체의 생사에 충만하여서 중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생각처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을 선인이라고도 하니, 신통의 도를 닦은 이도 선인이라 하고, 온갖 공덕을 완전히 갖춘 이도 선인이라 하며, 오랫동안 선을 닦은 이도 선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인은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라고 하신 것이다.
“그의 한 몸은 남음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몸이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 근본도 없고 또 끝도 없으며 또 태어남도 없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직접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최후의 경계에 있어서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받은 이 몸이 가장 최후니라. 아난이여, 나는 천지의 방위와 경계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다시 이런 몸을 받더라도 그것은 괴로움의 끝이다.”
그러므로 “그의 한 몸은 남음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029_0758_b_19L仙人慈哀者一切充滿生死悕望如父母之想護心慈哀之意諸佛世尊亦言仙人修神足道亦名仙人衆德具足亦名仙人長夜修善亦名仙人是以故說仙人慈哀也一身無餘者所謂身者依四大根本更無復有亦無邊際無出生如佛存在躬自演說阿難知末後境界末後無胎末後所受形分如我阿難更不復見天地方域受此身此是苦邊故曰一身無餘也

3

모든 행은 덧없으니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다.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
이 적멸(寂滅)이 즐거움이다.
029_0758_c_06L所行非常
謂興衰法
夫生輒死
此滅爲樂

옛날 여러 범지(梵志)들은 자신들의 스승의 법에 따라 두 파로 나뉘었는데, 한 파는 만물은 모두 있는 것이라 하였고, 또 한 파는 만물은 모두 없는 것이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있다’고 하는 이들을 분별하여 그 의심을 버리고 미련이 없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행은 덧없으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029_0758_c_08L昔諸梵志各誦師法分爲二部所見萬物皆有一部自稱萬物皆無諸言有者如來分別除去猶豫斷其悕望便與演說所行非常諸言有者自有讚誦

날카로운 바퀴와 칼로써
중생들을 죽이더라도
언제나 보시를 행할 줄 알면
거기에는 그 어떤 선악도 없다.
029_0758_c_13L以利輪劍
殺害衆生
恒知惠施
無有善惡

몸은 죽어도 정신은 변치 않으니
이 몸뚱이 구석구석을
날카로운 칼날이 오고 가더라도
그 목숨만은 해치지 못한다.
029_0758_c_15L亡形不變
身體中閒
利劍來往
不傷其命

지(地)의 요소는 일정하고
풍(風)의 요소는 머무름이 없다.
이들9)도 괴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니
목숨의 근본도 또한 그렇다.
029_0758_c_16L地大恒在
風界無著
火受苦樂
命根亦爾

비록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거침없이 다니며 해치더라도
선악의 과보가 있음을
또한 보지 못하였다.
029_0758_c_17L正使利劍
通達來往
亦不見有
善惡之報

비록 그 부모를 해치더라도
선악의 과보가 없으니
하물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
무슨 과보가 있겠는가.
029_0758_c_19L設害父母
無善惡報
況當餘者
而有其果

그들은 생각하길, ‘마치 병에 새를 잡아 넣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병을 부수면 새가 곧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중생이 죽더라도 그 목숨은 멀리 날아가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삿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모든 행은 덧없으니 의지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것은 자꾸 변하여 머무르지 않고 닳아 없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의 목숨은 아침 이슬과 같아서 잠깐 있다가 어느새 없어지므로 “모든 행은 덧없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58_c_20L猶如以甁盛雀有人打甁雀便飛逝傷害衆生命自遠逝無所傷損如來世尊欲去彼邪見衆生故曰所行非常不可恃怙遷轉不住爲磨滅法如朝露暫有便滅故曰所行非常
029_0759_a_01L만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또 한 파의 사람들은 말하길, “우리 주장이 성취되었다”라고 하며 서로 기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란 무슨 뜻인가?
대개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몸이 없으면 상관없지만 몸을 받고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범지들은 다시 생각하길, ‘비록 쇠퇴하여 없어지는 법이라 하더라도 다시 생기지 않으면 우리 주장이 성취된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거듭 그 이치를 말씀하시기를,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수레바퀴처럼 생사에 헤매는 중생들은 모두 5음(陰)10)을 받아서 서로 같은 모양의 몸을 받으니, 그것은 지혜의 눈이라야 관찰하여 분별할 수 있다.
029_0759_a_02L部自稱萬物無者共相慶賀成我等如來觀彼心中所念而告之曰興衰法夫興衰者夫盛有衰合會有無身則已受身有何可避梵志復作是念設衰耗法更不生者則成我是故世尊重與說義夫生輒死轉不住諸受陰持共相受入慧眼觀察乃能分別
마치 햇빛에 티끌이 흘러 다니면 그것을 셀 수 없는 것처럼, 5음으로 된 몸이 온갖 행의 핍박을 받으며 생과 사를 되풀이하되, 잠깐도 쉬지 않기 때문에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기 때문에 욕심을 내거나 집착하는 뜻이 없고 언제나 편안하고 안락하여서 가장 즐거운 것이다. 나고 사라지는 생각이 없이 제일의 이치를 성취하여서 욕심이 없는 즐거움, 무위(無爲)의 즐거움, 번뇌가 없는 즐거움, 번뇌가 다한 즐거움, 모든 것이 사라진 즐거움이기 때문에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59_a_10L猶如日光塵數流馳難可稱計此五盛陰身衆行所逼流轉生死無有懈息故曰夫生輒死此滅爲樂者所謂永盡無餘無欲著意息安寧最第一樂無生滅想成第一無欲樂無爲樂無漏樂盡樂滅樂故曰此滅爲樂

4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
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029_0759_a_16L何喜何笑
念常熾然
深蔽幽冥
而不求錠
029_0759_b_01L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공양을 마치고 해질녘이 되자, 여러 비구들과 임금, 신하, 백성 등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부처님의 감로법(甘露法)을 들으려 하였다.
그때에 다른 지방의 도사(道士)와 외도의 바라문 일곱 사람이 하얀 머리와 수염에 지팡이를 짚은 채 숨을 몰아 쉬면서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들은 땅에 엎드려 발 아래에 예배한 다음 합장하고 말씀을 드렸다.
“저희들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거룩한 교화를 엎드려 받들고 있었습니다. 진작 귀의하여야 옳았지만, 도술에 구별이 있어서 이제야 거룩한 모습을 뵙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제자가 되어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자 하나이다.”
029_0759_a_18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食後日晡有衆比丘及天帝臣民四輩弟欲聽如來說甘露法有異方道士異學婆羅門七人頭鬚皓白拄杖呻吟來至佛所稽首作禮叉手白佛言吾等遠人伏承聖化久應歸命道術有簡今乃得來覲睹聖顏願爲弟子得滅衆苦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모두 사문으로 만드신 다음 그 일곱 비구들로 하여금 한방에 같이 있게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부처님을 뵙고 도를 닦게 되었지만, 덧없이 변하는 법에 대해서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한방에 같이 앉아 세상 일을 생각하며 소곤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면서 일의 성패(成敗)와 목숨을 날로 재촉하여 사람과 기약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를 희롱해 웃으며 자만심으로 나태해져서 덧없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일어나 그 방으로 가셔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도를 닦는 것은 세상을 제도할 무위(無爲)의 도를 구하는 데 있는데, 어찌하여 웃고 떠들기만 하느냐?
모든 중생들은 다섯 가지를 믿는다. 그 다섯이란, 첫째는 젊음을 믿으며, 둘째는 아름다움을 믿고, 셋째는 세력을 믿으며, 넷째는 재주를 믿고, 다섯째는 귀한 종족임을 믿는 것이다. 지금 그대들은 소곤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였는데, 대체 그대들은 무엇을 믿는가?”
부처님께서는 곧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29_0759_b_03L佛卽聽受悉爲沙門勅七比丘共止一房然此七人睹見世尊尋得爲道不計無常變易之法共坐房中思惟世事小語大笑不念成敗命日促盡不與人期但共戲笑恣意放逸不念無常爾時世尊起至房中而告之曰卿等爲道當求度世無爲之道何爲大笑一切衆生自憑五事何謂爲五一者恃怙年少二者恃怙端正三者恃怙力勢四者恃怙才器五者恃怙貴族卿等七人小語大笑恃怙何等於是世尊卽說頌曰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
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029_0759_b_14L何喜何笑
念常熾然
深蔽幽冥
而不求錠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란 무슨 뜻인가?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일곱 바라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도의 경계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역시 수다원(須陀洹),11) 사다함(斯陀含),12)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도 되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번뇌를 없애지 못하면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고 가르쳐 주었다. 너희들은 몸을 받아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사와 같이 있으면서 5음을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한 가운데서 소곤거리며 크게 웃을 수 있느냐? 부디 그 괴로움은 영원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런데 실없는 웃음으로써 번뇌를 짓는구나. 괴롭도다. 깨닫기 어려운 사람들이 바로 그대들이구나.”
그러므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029_0759_b_16L何喜何笑者爾時世尊告七人曰汝等七人來在道境亦復不在須陁洹斯陁含阿那阿羅漢復告比丘我先有教未能盡漏不可有所恃怙汝等受形未脫結縛蛇蚖共居成五盛陰云何於中小語大笑當念此苦永劫不除方興戲笑以成塵垢苦哉難悟卿等是也故曰何喜何笑是世尊教勅之言
029_0759_c_01L“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란 무슨 뜻인가?
무엇이 불타 오르고 있는가? 덧없음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고, 괴로움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으며, 근심 걱정과 고뇌의 불길이 타 오르고 있다. 또 무엇으로써 불타 오르고 있는 것을 보는가? 애욕, 분노, 어리석음, 교만, 질투, 의심으로 불타 오르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란 무슨 뜻인가?
마치 사람이 밤에 다니면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면서부터 장님이 되어 하늘 빛과 땅 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그런 어둠도 있지만 그것은 말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른바 큰 어둠이란 무명(無明)으로서, 사람의 온몸을 두루 속박하는데 조금의 빈틈이나 허술함도 없다. 이 큰 어둠은 중생들을 가려서 중생들이 선악의 중요한 근본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시시비비의 속박을 벗어나게 해주는 도(道)와 세속적인 법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며, 역시 선취(善趣)와 악취(惡趣)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59_c_01L常熾然者云何爲熾然以無常火而爲熾然亦以苦火而爲熾然愁憂苦惱而爲熾然又以何等而見熾然欲瞋恚愚癡憍慢嫉妒恚疑所見熾故曰念常熾然深蔽幽冥者猶人夜行不睹顏色生盲無目不見玄黃如此幽冥蓋不足言所謂大幽冥者無明纏絡遍人形體無空缺處是謂大冥覆蔽衆生不別善惡趣要之本不別白黑縛解之要道俗之法亦復不知善趣惡趣出要滅盡故曰深蔽幽冥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란 무슨 뜻인가?
등불이란, 지혜의 등불이니, 지혜의 등불로써 무엇을 비추는가? 대답한다면, 번뇌의 일어나는 원인과 도로써 그것을 멸하는 법을 알고, 선취와 악취에서 벗어나는 근본을 분별하며, 시시비비의 속박을 벗어나게 해주는 도와 세속적인 법을 분별하고, 역시 선취와 악취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잘 분별하는 것이니, 즉 모든 법을 비추지 않는 곳 없이 두루 밝게 비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어둠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에,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59_c_13L而不求錠者云何爲錠所謂智慧之錠以智慧錠爲照何等荅曰結所興以道滅之分別善趣惡趣出要之本能別白黑縛解之要道俗之善能分別善趣惡趣出要滅盡曜諸法無不明照而更捨之乃趣冥道故曰而不求錠

5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029_0759_c_19L諸有形器
散在諸方
骨色如鴿
斯有何樂
029_0760_a_01L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어떤 비구가 날마다 성 밖 넓은 들판의 무덤 샛길에 있는 남의 밭을 밟고 지나다녔다. 밭 주인은 그것을 보고 화가 나서, ‘저 도사는 도는 닦지 않고 날마다 여기를 왔다갔다하는가’라고 생각하고, 그 도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걸사(乞士)길래, 나의 밭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발자국을 내십니까?”
도인은 대답하였다.
“나는 송사(訟事)가 있어서 여기 와서 증인을 찾고 있습니다.”
029_0759_c_21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有異比丘日至城外曠野塚閒路由他田乃得達過其主見已便興瞋恚此何道士日此往來不修道德卽問道人汝何乞士在吾田中縱撗往來乃成人蹤道人對曰吾有鬪訟來求證人
그때 밭 주인은 전생의 인연에 끌려 제도를 받을 인연이 되었다. 그는 가만히 도인을 쫓아가서 황량한 무덤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보았다. 심하게 부어 오르거나 썩어 문드러진 시체를 날짐승들이 먹다가 다른 곳에 흩어 놓거나, 혹은 먹다가 남기기도 하였고, 또한 비둘기나 구더기 같은 것이 파먹어서 역한 냄새가 나서 가까이할 수 없었으며, 까마귀, 까치, 여우, 개, 독수리, 솔개, 부엉이 따위들도 시체를 파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구가 손을 들고 그에게 말하였다.
“이 짐승들이 모두 나의 증인입니다.”
그는 물었다.
“그 짐승들이 증인이라면, 당신은 지금 비구인데 누구와 송사를 하는 것입니까?”
비구는 대답하였다.
“나는 마음의 병이 되어 온갖 번뇌와 근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해골들을 보면 오로(惡露)13)를 분별하게 됩니다. 곧 내 방으로 돌아가 내 몸을 관찰하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저 해골들과 다름이 없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끝간 데 없이 흩어져 하나의 허깨비인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 따위를 쫓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마음의 근본에 대해 경계합니다. 즉,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나를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 빠지게 하지 말아라’라고 말입니다.
029_0760_a_04L時彼田主宿緣鉤連應蒙得度便逐道人私匿從行見曠塚閒尸骸狼藉胮脹臭爛鳥狩食噉散落異處或有食噉盡不盡者有似炙鴿蛆虫 ((口*束)) 臭穢難近烏鵲狐狗老鷲鴟鵂噉死人屍比丘擧手語彼人曰此諸鳥獸是我證人其人問曰此諸鳥獸可爲證人汝今比丘與誰共諍比丘報曰心之爲病多諸漏患我觀此骸分別惡露便還房室還自觀身從頭至足與彼無異然此心意流馳萬端追逐幻僞色聲香味細滑之法我今欲誡心之原本汝心當知興起是念無令將吾入地獄餓鬼之中
029_0760_b_01L나는 지금 범부로서 모든 속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의 도적은 내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광야에 와서 마음을 위해, 불결한 오로(惡露)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거듭 마음을 위해 설명하지만, 마음은 경솔하고 사나우며 혼란스러워서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고쳐서 다시는 나쁜 인연을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밭 주인은 이 도인의 말을 듣고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흐느끼고 한숨지었다.
그런데 그 밭 주인은 이미 가섭불(迦葉佛) 때의 만 년 동안에, “이 몸은 더럽다”는 관(觀)을 닦다가 이내 서른여섯 가지 오로의 더러움을 분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비구와 밭 주인은 그 광야의 두려운 무덤 사이에서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029_0760_a_17L我今凡夫未脫諸縛然此心賊不見從命是之故日住曠野爲說惡露不淨之復與心說心爲卒暴亂錯不定今當改無造惡緣時彼田主聞道人以手揮淚哽咽歎言然彼田主於迦葉佛十千歲中修不淨想尋時分別三十六物惡露不淨爾時比丘及彼田主卽往曠野大畏塚閒得須陁洹道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그 두 사람이 전생의 인연에 의해 도를 증득한 것을 보시고는, 이후의 도를 닦는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미래 세상에 큰 광명을 보이며, 바른 법이 오래도록 전하여 중간에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곧 스스로 찬탄하시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60_b_03L爾時世尊天眼淸淨無瑕穢觀見二人成其果證因宿本緣亦欲示現後學之徒使將來世現其大明正法久存無能中滅便自稱慶而說此偈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14)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란 무슨 뜻인가?
즉, 손, 발, 다리, 팔, 팔꿈치, 허리, 척추, 장딴지, 넓적다리, 무릎, 봉숭아뼈, 발꿈치, 두개골, 사지의 뼈마디가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60_b_07L諸有形器者或有手腳臂肘腰髖髀膊膝踝足跟髑髏支節各在異處是故說曰諸有形器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란 무슨 뜻인가?
해골은 나무처럼 의식이 없지만, 본래부터 사람들은 그 몸을 사랑하여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향과 꽃과 연지와 분으로 장엄하고 꾸민다. 그러나 그 몸은 지금 모두 다른 곳에 각각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란 무슨 뜻인가?
본래는 여러 백천억의 중생들이 보고 사랑하여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여러 백천억 중생들이 그것을 보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온몸의 터럭이 다 일어선다. 그러므로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란 무슨 뜻인가?’
세상에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바로 미련한 범부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받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비루하게 생각하여 부끄러워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즐겨 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추어 숨겨 두며 담아 둔다.
029_0760_b_11L散在諸方者猶木無識本所愛樂不去心懷莊嚴文飾香花脂粉芬熏其身今皆散落各在異處骨色如鴿者本所衆生億百千數而見愛念觀無厭足如今億百千衆所見薄賤睹皆怖懅身毛爲豎是故說曰骨色如鴿斯謂何樂者世言有樂則是凡夫愚惑之人智者所棄愚人所樂者懷愧但有醜陋愚者翫習甘樂不藏匿懷抱

6

만약 첫날 밤에
의식이 어머니의 태(胎)에 들어가게 되면
날마다 변하고 변하니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029_0760_b_20L若如初夜
識降母胎
日涉遷變
逝而不還
029_0760_c_01L
부처님께서 세 가지 유위(有爲)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유위의 모양은 흥하고 쇠하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만일 만물이 언제나 한결같이 존재한다면, 시체의 해골은 왜 항상 존재하지 않겠는가? 1백20시간을 하루 낮 하룻밤이라 하는데, 만일 해골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존재한다면 한 사람의 몸이 이 세계에 가득 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중생은 감각기관과 함께 나고 감각기관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해골은 오래 존재하지 못한다.”
“비록 중생이 감각기관과 함께 사라지더라도 감각기관과 함께 생기면, 해골은 오랫동안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029_0760_b_22L如佛世尊敷演言教有三有爲有爲之相興衰變易問曰故當萬物恒有常者死屍骸骨不久存乎百二十時謂之一日一夜若當形骸久存世者一人形體遍滿世界答曰以其衆生與根共生與根共滅以是之故骸不久存設當衆生與根共滅與根共生骸骨便當久存於世
“중생은 의식과 함께 생기고 의식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해골은 이 세상에 오래 존재하지 못한다.”
“만일 중생이 의식과 함께 사라지더라도 의식과 함께 생기면, 해골은 오랫동안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또 물었다.
“만일 중생이 늙어서도 이 세상에 오래 존재할 수 있다면, 처음 태(胎)에서 나올 때부터 머리털은 항상 희지 않았겠는가?”
“이른바 머리털이 희다는 것은 그가 늙었다는 뜻이 아니다.”
029_0760_c_07L復次與識共生與識共滅是時形骸不久在世當衆生與識共滅與識共生爾時形骸久存於世問曰若當老耄久存世人初出胎頭髮恒不白乎答曰謂頭髮皓然白者非衰老義
“그러면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가 몸을 받을 때부터 퇴색의 변화로 말미암아 흰 털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술이나 소(酥)나 마유(麻油)에는 반드시 흐린 찌꺼기가 있는 것처럼 중생이 몸을 받을 때에도 이와 같아서 퇴색의 변화로 말미암아 흰 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첫날밤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식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게 되면’이란 무슨 뜻인가?
남자의 의식이나 여자의 의식이 어머니 태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잠깐 동안 의지해 있는 것으로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여 백천 가지의 변화를 겪으면서 일고 사라짐이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수레바퀴 도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오직 천안(天眼)이라야 볼 수 있는 것이니, 때로 그 의식이 지나가고 돌아오는 것 역시 신비한 주문이나 기술로도 제어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나가거나 스스로 아주 갔다 왔다 하더라도 또한 자취가 없다. 의식이 어머니 태에 있으면서 생기고 사라지기를 그치지 않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또 마치 강물이 동으로 흐르면서 결국은 서쪽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태 안에 있는 의식도 지나가면 결국은 돌아보지 않으니, 오직 천안을 가진 사람이라야만 태 안의 의식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029_0760_c_12L此義云何乎荅曰依彼受形分時便有衰色之變有白髮生猶酒酥麻油必有濁受形分時亦復如是便有衰色白髮生焉是故說曰若如初夜識降母胎者猶如男識女識降在母胎據在一時之內或生或滅經百千變起滅不息猶如輪轉不可稱計唯有天眼乃得見耳時識過去及還來者亦非神呪技術能制去自永逝來亦無迹識處母胎生滅不停亦復如是猶河東流終不西顧胎識去過終不還反唯有天眼見胎識還見胎識去
029_0761_a_01L
7

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
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
029_0761_a_01L晨所睹見
夜則不現
昨所瞻者
今夕則無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
029_0761_a_03L我今少壯
無所恃怙
少者亦死
男女無數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아난 존자는 탁발할 때가 되어서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닌 채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들어갔다. 그는 성문 앞에서 많은 남자들이 흥겹게 노는 것을 보았다. 아난 존자가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다시 성을 나올 때, 그 광대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어서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때 아난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기이하다. 변괴가 닥치는 것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내가 아침에 걸식하러 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저 남자는 5락(樂)15)으로 스스로 즐거워서 그 얼굴이 마치 천인과 같더니, 어찌 지금은 저렇게 죽게 되었는가?’
그래서 아난 존자는 사위성을 나와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서 가사를 두르고 손발을 깨끗이 씻은 뒤에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029_0761_a_04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尊者阿難到時著衣持鉢入舍衛城分衛遙見門外有衆男子作倡伎樂而自娛樂尊者阿難入城乞食訖欲還出城見此伎人忽已命終衆人舁擧號哭相向時尊者阿難便生此念奇哉變怪無常對至何其速乎我向晨朝入城乞食見此男子五樂自娛像如天子如今受對取無常耶時尊者阿難出舍衛城祇洹精舍收攝衣服淨洗手足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立
029_0761_b_01L그리고 나서 아난은 꿇어앉아 합장하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침에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닌 채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들어가다가 어떤 남자가 흥겹게 5욕(欲)을 스스로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되돌아올 때, 그 남자가 갑자기 죽어서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에 생각하길, ‘기이하다. 변괴가 닥치는 것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내가 아침에 걸식하러 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저 남자는 5락으로 스스로 즐거워서 그 얼굴이 마치 천인과 같더니, 어찌 지금은 저렇게 죽게 되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본 것은 너무 놀라워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029_0761_a_16L爾時尊者阿難長跪叉手前白佛言唯然世尊我向晨朝著衣持鉢入城乞食見有男子作倡伎樂五欲自娛便入城乞還出在外見此男子忽已命終衆人舁擧號哭相向世尊便生此念奇哉變怪無常對何期速乎我向晨朝入城乞食此男子五樂自娛像如天子如今受取無常耶我今所見甚爲奇特曾所睹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지금 네가 본 것을 놀랍다고 하는가? 내가 과거에 본 것은 네가 지금 본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다.
나도 옛날, 탁발할 때가 되어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닌 채 사위성 안으로 걸식하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난이여, 그때에 나는 어떤 남자가 기원문(祇洹門) 밖에서 흥겹게 놀며 5욕(欲)을 스스로 즐기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나는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다시 성 밖으로 나왔는데, 그 남자는 조금 전처럼 흥겨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너보다 더 놀라운 일을 본 것이다.”
그러자 아난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놀랍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목숨은 바람보다 빨라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 너는 지금 무엇이 놀랍다고 말하는가?”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이치의 처음과 끝을 관찰하시고는 비구들에게 이 법을 널리 알리고,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을 나타내 보이며,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출요(出曜)의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61_b_02L世尊告曰汝今阿難有何奇我曾所睹乃爲奇特出過汝今所見者上我曾昔日到時著衣持鉢舍衛城分衛乞食時我阿難見有男子在祇洹門外作倡伎樂五欲自娛時我入城乞食訖還出城外見此男子作倡伎樂如本不誤我見奇特出汝者上爾時阿難卽白佛言此是常有何奇特佛告阿難命速於風難制御汝今方言有何奇耶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欲使比丘明鑑此法爲將來衆生現大光明亦使正法久存於世爾時世尊便說出曜之偈

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
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
029_0761_b_15L晨所睹見
夜則不現
昨所瞻者
今夕則無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
029_0761_b_17L我今少壯
無所恃怙
少者亦死
男女無數

“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란 무슨 뜻인가?
새벽에 보이던 중생들이 수천백이나 되었지만 날이 저물어서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많은 중생들이 잘 생각하고 헤아려서 선의 근본을 완전히 갖추고 그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으면,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마치 돌을 쪼을 때에 번쩍 일어났다 사라지는 불꽃과 같은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마땅히 누가 마음을 내어 그것에 탐착하겠는가?
그러나 무지한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내어 목숨에 탐착한다.
029_0761_b_18L前所睹者夜則不見者晨朝所見衆生之類數千百衆暮則不見諸有衆生思惟挍計善根具足意不錯亂自覺知命如琢石閃現已滅誰當興意貪著此乎唯有無聞凡夫愚人興此心生貪著意
029_0761_c_01L“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란 무슨 뜻인가?
어제 보던 것도 나아가고 멈추며 또 가고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유념하여 선의 근본을 잘 생각하고 여러 가지 공덕을 심으면, 마음에 용기가 생겨서 스스로 뉘우치며 마음속으로는 ‘즐거워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 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란 무슨 뜻인가?
저 무지한 사람이 아는 것도 들은 것도 없이 스스로 힘센 것과 기운이 왕성한 것만을 믿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여서 뒷걱정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는 스스로 말하길, “나는 용모가 단정하고 뛰어나지만 남은 비천하여서 내가 지닌 용모와 재력 그리고 인물의 출중함을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스스로 힘이 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 으뜸이어서 상대할 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거역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행하여서 어떤 강한 상대라 할지라도 피하지 않는다. 또 갑자기 닥칠 죽음에 대해서도, 나고 죽는 괴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61_c_01L昨所瞻者今夕則如昨所見進止行來設彼有念思惟善本殖衆功德心便勇猛能自改內自興發不可樂想是故說曰所睹見夜則不現昨所瞻者今夕則無也我今少壯無所恃怙如有愚人無所聞知自怙强壯氣力熾盛茍得自縱隨其所如不顧後慮自稱端正顏貌殊特餘者卑賤非我等友色力財富出衆人表旣自盛壯獨步無侶所願者得無能拒逆所欲自恣不避豪强亦復不思無常對至不睹生死苦惱之患是故說曰我今少壯無所恃怙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란 무슨 뜻인가?
비록 무수한 남녀와 크고 작은 몸을 받은 이 가운데 혈기가 왕성하고 재물이 많아서 무엇이나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모두 젊었을 때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젊어서 목숨을 바치는 이가 늙은이보다 많기 때문에 다 덧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짓밟히면서 목숨을 마치는 이들은 전생에 공덕을 닦지 않은 이들이며, 모든 선의 근본에도 의지하지 않던 이들이다. 그래서 이승이나 저승이나 5취(趣)를 돌아다니면서 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61_c_14L少壯亦死男女無數正使無數衆生之類男女大小受形分者氣力殊特財富無數所欲自恣年皆盛壯於人世閒壯者命終多於老者皆爲無常所見蹈藉然彼終者先在世時不修功德諸善之本無所恃怙從今世至後世流馳五趣無有懈息是故說曰少者亦死男女無數

8

태(胎) 안에서 죽거나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거나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죽거나
어머니 품에 안겨서도 죽는다.
029_0761_c_21L在胎自敗
初出亦殤
旣生子壞
孩抱而喪

모든 늙은이나 젊은이
중년의 사람들도
차례대로 죽어 가니
과일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029_0761_c_23L諸老少壯
及中閒人
漸漸以次
如果待熟
029_0762_a_01L
육십천 생(生)이나 육십백 생이나 태 안에서 죽는 것은 전생에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왕이나, 일억의 재산을 가진 부자나, 도사, 상인, 부모,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을 해친 것을 말한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해치고 아비(阿鼻)지옥이나 혹은 열(熱)지옥, 대열(大熱)지옥, 제곡(啼哭)지옥, 대제곡(大啼哭)지옥, 등활(等活)지옥, 흑승(黑繩)지옥 등에 들어가고, 그 지옥에서 죄가 끝나면 또 6축(畜)으로 태어나 여러 겁 동안 오가며 맴도는데, 다시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그 동안에 태 안에서 죽어 그 수명을 다 마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태 안에서 죽거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62_a_01L六十千生六十百生於生藏壞斯由害人所謂人者國王一億則害導師商人父母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興心起意害此輩人或入阿鼻地獄或熱大熱啼哭大啼哭等活黑繩等會地獄畢此罪已生六畜中經歷劫數往來周旋乃復人身於其中閒在生藏中不卒其命故說曰在胎自敗也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거나”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처음으로 어머니의 태 문(門)을 나서자마자 이내 죽으며, 어떤 중생은 처음으로 복을 지으려다가 공업(功業)16)을 마치기 전에 태 문에서 일찍 죽는다. 그것은 다 전생에 나쁜 마음을 내어 복을 짓는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거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죽거나”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공업을 베풀고 덕을 세우고자, 여러 절에 과수원과 연못과 다리와 깨끗한 해우소[淸厠]를 만들려고 했다가 그 공업을 이루기도 전에 남의 해침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 전생에 복덕을 지은 사람을 해친 까닭이니, 죽어서는 지옥, 축생, 아귀의 세계에 들어가 오랜 시간을 헤매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이미 태를 떠났더라도 중간에 일찍 죽게 된다. 그러므로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죽거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62_a_09L初出胎亦壞者或有衆生始出胎門而命終者或有衆生始欲造福功業未果便於胎門中夭命者斯由前身興心傷害彼造福人是故說曰初出亦殤旣生子壞或有衆生施功立德在諸塔寺施設園菓浴池橋梁淸廁功業未就爲人所害斯由先世害福德人死入地獄畜生餓鬼經歷久遠乃還復人生離胎於中逝殤是故說曰旣生子壞也
029_0762_b_01L“어머니 품에 안겨서도 죽는다”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공업을 베풀고 덕을 세우고자 여러 절에 과수원과 연못과 다리와 깨끗한 해우소를 만들려고 했다가 그 공업을 이루기도 전에 남의 해침을 받아 죽는다. 그것은 다 전생에 나쁜 마음을 내어 복을 지은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는 몸이 망가지고 목숨이 다한 뒤에는 지옥에 들어가며, 지옥에서 죄가 끝나면 다시 축생 세계에 나는데, 비록 사람이 되더라도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린이로서 어머니 품에 안긴 채 명을 마친다.
029_0762_a_19L孩抱而喪者或有衆生於塔寺中施功立德施設園菓浴池橋梁淸功業已就餘功未幾便爲人所害斯由前身興心殤害彼造福人身壞命終入地獄中於中畢罪生畜生中雖得爲人未別白黑便於孩抱夭其命也

모든 늙은이나 젊은이
중년의 사람들도
차례대로 죽어 가니
과일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029_0762_b_02L諸老少壯
及中閒人
漸漸以次
如菓待熟

옛날 마성(馬聲) 존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029_0762_b_04L昔日尊者馬聲說偈曰

어머니 태 안에서 죽기도 하고
이미 나서 밖에서 죽기도 한다.
젊어서도 죽음을 면치 못하고
늙어서는 그것을 달게 받는다.
029_0762_b_05L或有在胎喪
已生在外終
盛壯不免死
老耄甘心受

마치 나무에 광화(狂花)가 피어도
열매를 맺는 것은 아주 드문 것처럼
죽음을 잊어버리려고 하나
죽음의 영을 받아 어쩔 줄을 모른다.
029_0762_b_07L猶樹生狂花
結實時希有
志故必欲捨
伺命召不忍

마치 저 철따라 무성한 과일 나무에 광화(狂花)가 피어나더라도, 바람을 만나면 힘없이 떨어져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주 드물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더라도 우박을 만나면 이내 떨어진다. 미처 꽃이 피기도 전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중에서 열매가 맺힌 다음 익어서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주 작다.
중생들도 이와 같아서 백천 생(生)을 지나는 동안에 그 몸이 1생(生)이거나 혹은 2생(生)이거나, 태 안에 있거나, 태에서 나왔거나, 젊었거나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간에 모두 이 길을 되돌아가 그 재앙을 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백천 생 동안에 대개는 늙어서 목숨을 마치지만, 1생이나 2생 동안에 젊어서 죽는 이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762_b_08L猶彼菓樹隨時繁茂狂花生長遇風凋落結實者尟或已結實遇雹墮落或有未花而凋落者或有已花而凋落者其中成實待熟落者少少耳衆生類亦復如是於百千生其中身若一若二處胎出胎少壯老疾悉歸斯道無免此患於百千生老壽命終若一若二少壯死者不可稱計是故說曰

모든 늙은이나 젊은이
중년의 사람들도
차례대로 죽어 가니
과일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029_0762_b_17L諸老少壯
及中閒人
漸漸以次
如菓待熟

9

목숨은 익기를 기다리는 과일처럼
일찍 떨어질까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미 나면 다 괴로움이니
그 누가 죽음을 면하겠는가.
029_0762_b_18L命如菓待熟
常恐會零落
已生皆有苦
孰能致不死
029_0762_c_01L
옛날 악생명왕(惡生明王)은 수레를 타고 시중들을 데리고 후원으로 나갔다. 많은 과일 나무가 줄을 지어 그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예(禮)는 익은 과일만을 먹고 절대로 풋것은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때 왕이 정원사에게 명령하였다.
“땅에 떨어진 과일은 내게 올리지 말아라. 만일 이 명령을 어기면 목을 베리라.”
그러자 정원사는 가만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이 악생명왕은 자비심이 없고 포악무도하여 중생을 함부로 죽인다. 만일 내가 이 명령을 어기면 그 화를 면치 못하여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과수원에는 과일 나무가 많지만, 나무에 달려 있는 과일은 적고 땅에 떨어진 것이 많다. 아무리 나를 책망하더라도 과일이 다시 열릴 리가 없다. 우선 여기서 도망친 다음 출가하여 도를 배우리라.’
그는 곧 담을 넘어 도망가 버렸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온몸을 땅에 던지고 사문이 되기를 원하였다.
029_0762_b_20L昔惡生明王嚴駕翼從詣後園遊觀衆菓樹木行列相當彼國常禮菓熟乃食終不噉生時王有教勅守園者若有菓蓏墮落地者不應獻上有犯此制當梟其首時守園人內自思惟此惡生明王暴虐無道殺害生類無慈愍心若當我今犯制者死在旦夕不免其困然今此園樹菓衆多在樹旣少墮落者衆設責我菓更無於出且自逃走求出家學卽踰牆出至世尊所五體投地願爲沙門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는 도를 닦는 사람이 되었으나, 아무 하는 일이 없이 고요히 있으면서 묘한 방편으로써 참선하거나 경전을 외우지도 않았으며, 또 계율이나 아비담(阿毘曇)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만 황량한 광야를 거닐다가 12부(部) 경전을 외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 울력에 대해 모르면서 스스로 3사(事)를 빙자하고 뒷 일을 염려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나는 이미 이 몸뚱이의 급한 걱정을 벗어났으니 이제 우선 편히 지내자. 다른 일이나 알아 보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고는, 온갖 괴로움과 액난에서 그를 제도하여 선법(善法)의 묘당(妙堂)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자 하셨다. 또한 번뇌의 근본을 뽑고 생사의 광야에서 벗어나 장차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해탈의 길에 들어서게 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출요의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62_c_08L佛卽然可得在道次靜寂無爲不興巧便坐禪誦經亦復不習戒律阿毘曇謂爲行道齊是而已亦復不惟空閑曠野經行諷誦十二難得懃勞之要自憑三事不慮後緣內自喜慶我今已脫形急之患今且自安焉知餘者爾時世尊觀其人心欲使免苦濟衆戹難使安處善法妙堂欲拔根本離生死將入解脫無退轉道爾時在衆便說此出曜偈曰

목숨은 익기를 기다리는 과일처럼
일찍 떨어질까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미 나면 다 괴로움이니
그 누가 목숨을 면하겠는가.
029_0762_c_18L命如菓待熟
常恐會零落
已生皆有苦
孰能致不死

그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꾸짖고 부끄러워하여 고요한 곳에서 악로지관(惡露止觀)의 도를 깊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다.
029_0762_c_20L爾時比丘聞佛所說內自怨責懷慚愧心在閑靜處思惟惡露止觀之道卽於彼處成阿羅漢
029_0763_a_01L
10

비유하면 옹기장이는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것은 반드시 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029_0762_c_23L譬如陶家
埏埴作器
一切要壞
人命亦然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한 옹기장이가 있었는데, 그는 어떤 주문도 물리치지 않고 그릇의 형상을 만들어 내되,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구살라국(拘薩羅國)17)의 바사닉왕(波斯匿王)18)이 그 옹기장이에게 명령하여 그릇을 만들게 하였다. 그런데 그는 일이 너무 바빠서 마침내 기일에 대지 못하였다. 그래서 바사닉왕은 화가 잔뜩 나서 곁의 신하에게 옹기장이 집에 가서 그릇들을 모두 부숴 버리라고 하였다.
029_0763_a_02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有一陶師造作瓦器觸物不卻隨其形狀亦無疑難時拘薩羅國波斯匿勅諸瓦師使造器皿彼人事猥竟不成辦時波斯匿王內懷恚怒勅語傍臣至瓦師家毀壞其器
옹기장이는 생명에 두려움을 느껴 몰래 가시국(迦尸國)19) 국경 근처로 도망쳐서 그곳에서 다시 옹기를 만들며 살았다. 왕은 그가 그곳에서 다시 그릇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또 신하를 그 나라로 보내어서 그가 만든 그릇을 모두 부숴 버리게 하였다.
옹기장이는 다시 구살라국으로 도망쳐 와서 그곳에서 그릇을 만들며 살았다. 그러나 왕은 그가 그릇을 다시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또 신하를 보내어 그릇을 부숴 버리게 하였다. 그래서 옹기장이는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살아갈 도리가 없어서 헐벗고 굶주리며 지냈다. 또 항상 왕에게 잡혀 죽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는 다시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서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그의 수도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나는 이제 액운에서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왕에게 잡혀 죽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029_0763_a_08L時彼瓦師懼失命根竊自逃走至迦尸國界於彼土造作瓦器波斯匿王聞彼造復遣臣佐至彼國界悉使壞破所造瓦器時彼瓦師復自逃走至拘薩羅國復於彼土造立瓦器波斯匿王聞彼造器復遣臣佐使壞其器時彼瓦師財產竭盡無復生理食不充口衣不蓋形恒懼波斯匿王當取殺之便復逃走入深山中往至世尊所求爲道人時佛默然聽在道次然彼人內不思惟謂爲永離困戹之難不復懼彼爲王所害
029_0763_b_01L그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도 도덕을 생각하지 않았고, 경전이나 계율이나 아비담도 공부하지 않았으며, 또 그 이치도 분별하지 못하였고 세상을 제도할 도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선과 경전을 외우는 것과 대중 울력 등과 같은 3사(事)에 힘쓰지 않고 아예 그만두었으며,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만용을 부려서 상인(上人)의 법을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증득하기를 힘쓰지 않고, 과(果)를 얻지 못했으면서도 과를 얻으려 힘쓰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지혜[三達智]로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는 차츰 그를 교화하여서 의심의 그물을 없애 주고자 하셨다.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미 옹기 만드는 일을 그만두었으니, 또한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오직 5음[五盛陰]이 옹기의 형상을 이룬 것이니,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 그 근심만은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옹기가 부서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ㆍ마귀ㆍ축생의 길에 떨어질 것이다.
5음은 옹기를 본뜬 것이므로 먼저 온갖 공덕의 복된 업을 짓거나 선의 근본을 닦지 않으면 의지할 곳도 없고 또 돌아갈 곳[趣]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라.”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셔서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영원히 여의게 하고,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고,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63_a_20L在閑靜處不思道德亦不習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分別義理諸度世道亦復不習坐禪誦經佐助衆事永離三事不懃採習爲行道齊是而已不增翹勇進求上人法然未得證不懃求證然未得果不懃求果如來世尊以三達智觀察其心以漸化彼無疑網意便告彼人以免瓦器之功更不懼喪身之惱有五盛陰爲瓦之形此爲大畏無免其患瓦器雖壞不懼當墮地獄餓鬼畜生之道五盛陰爲形瓦器先不造諸功德福業修諸善本無所恃怙亦無歸趣恒畏地獄餓鬼畜生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觀了此義已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爾時在衆便說此偈

비유하면 옹기장이는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것은 반드시 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029_0763_b_14L猶如陶家
埏埴作器
一切要壞
人命亦然
029_0763_c_01L
굽지 않은 것이나 구운 것이나 간에 그릇이란 반드시 깨어져서 끝내는 티끌 더미가 되고 마는 것으로 탐할 만한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5음을 받으니, 그들은 이 날기와 그릇 같은 것들이다. 찰리(刹利)20)거나 바라문이거나 전다라(栴陀羅)21)거나 몸을 받은 사람들은 수명이 길거나 짧거나, 재물이 많거나 적거나, 몸이 단정하거나 누추하거나, 종족이 귀하거나 비천하거나, 얼굴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모두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마땅히 덧없어 변하는 것은 모두 버려서 광야의 무덤 사이에 묻어야 한다.
그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무상함을 깨닫고 죄와 복의 근원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에 대해서도 깨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열반의 행을 따라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029_0763_b_16L諸有生熟之器要當歸壞漸成糞聚無可貪者諸有生類受五盛陰爲坏之器及剎利婆羅門栴陁羅種受形分者短壽長壽饒財貧匱端正醜陋豪族卑賤有顏無顏智慧愚闇盡歸於死無常變易皆當捐棄在曠塚閒時彼比丘聞如來所說教訓之道無常之要達罪福之源解興衰之變遵滅度之行卽於佛前得阿羅漢道

11

마치 잉아[綜]를 밀치고
북[杼]을 보내어 베를 짤 때에
차츰 그 날실이 줄어드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029_0763_c_02L猶如張綜
以杼投織
漸盡其縷
人命如是

옛날 고기 그물을 잘 뜨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평소 몹시 게을렀다. 그래서 자주 아들에게 부지런하기를 권하였지만, 그는 대답하였다.
“천천히 하지요. 그렇게 바쁘게 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다른 일도 없을 텐데…….”
아버지는 말하였다.
“이 일이 끝나더라도 또 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십 번씩 말이 오고 갔다. 마침내 아들은 정신이 착란되어 그 아버지 앞에서 간이 터져 죽고 말았다.
029_0763_c_04L昔日有人善能織罽兼有一息意常惰懶數勸語公作應舒遲何必速疾此功適訖後更無作父告其子此功雖訖更有餘務如是語公往來數十兒神識錯尋於父前肝裂命終
아버지는 아들이 죽자, 곧 집안 살림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그는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아들 생각에 마음이 빠져 있어서 그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덕을 생각하거나 참선에 전념하여서 보다 훌륭한 법을 구하지도 않았고, 또 경전이나 계율이나 아비담을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또 좌선을 하거나 경전을 외우거나 대중 울력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마음은 죽은 아들에게만 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지혜로써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관찰하시고는 처음과 끝을 살피셔서 그 이치를 밝히셨다. 그리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영원히 여의게 하고, 미래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출요의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63_c_09L時父見子命根已斷卽捨居業出家學道雖爲沙門念子在心不能捨離亦復不思惟道德專定坐禪求增上法復不思惟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坐禪誦經佐助衆事唯心存在念彼亡子爾時世尊以三達智觀察彼人心意所向尋究本末觀了此義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在於衆中便說出曜之偈

마치 잉아를 밀치고
북을 보내어 베를 짤 때에
차츰 그 날실이 줄어드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029_0763_c_19L猶如張綜
以杼投織
漸盡其縷
人命如是
029_0764_a_01L
모든 만물은 모두 죽음으로 돌아가기에 덧없이 변하는 것들은 다 버려서 광야의 무덤 사이에 묻어야 한다.
그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무상함을 깨닫고, 죄와 복의 근원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에 대해서도 깨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열반의 행을 따라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029_0763_c_21L一切萬物皆當歸死無常變易皆當捐棄在於曠野塚閒時彼比丘聞如來所說教訓之道知無常之要達罪福之原解興衰之變遵滅度之行於佛前得阿羅漢道

12

마치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죽음의 길로 향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029_0764_a_03L猶如死囚
將詣都市
動向死道
人命如是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어느 때 구살라국의 바사닉왕이 전옥(典獄)에게 명령하였다.
“도적질한 자들은 모두 죄를 물어 형장으로 끌고 가서 죽여라.”
그러자 대중 가운데 있던 한 도적이 그곳을 빠져 나와 거짓으로 법복(法服)을 입고 사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나는 이제 액운에서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하고는 왕에게 잡혀 죽을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도덕을 생각하지 않고 경전과 계율과 아비담도 공부하지 않았으며, 또 그 이치도 분별하지 못하였고, 세상을 제도할 도(道)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선과 경전을 외우는 것과 대중 울력 등과 같은 3사(事)에 힘쓰지 않고 아예 그만두었으며,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만용을 부려 상인(上人)의 법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증득하기를 힘쓰지 않았고, 과(果)를 얻지 못했으면서도 과를 얻으려 힘쓰지 않았다.
029_0764_a_05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時拘薩羅國波斯匿王勅典獄者諸有盜賊罪應入律詣市殺之時有一賊在大衆中逃竊得脫外假法服私爲沙然彼人內不思惟謂爲永離困厄之難不復懼彼爲王所害在閑靜處不思道德亦不習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分別義理諸度世道亦復不習坐禪誦經佐助衆事永離三事不懃採習謂爲行道齊是而已不增翹勇進求上人法然未得證不懃求證然未得果不懃求果
029_0764_b_01L부처님께서는 세 가지의 지혜로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는 차츰 그를 교화하여 의심의 그물을 없애 주고자 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사느냐, 죽느냐는 도적의 재난은 면하였으나 아직 남은 것이 있다. 즉, 5음으로 된 몸이 5취(趣)를 떠돌아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번뇌의 해침을 받아서 장차 아귀나 축생의 길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는 처음과 끝을 살피셨다. 그래서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멀리 여의게 하고,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며,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764_a_17L如來世尊以三達智觀察其心以漸化彼無疑網意便告彼人以免生死賊寇之難故有餘怨五盛陰身輪轉五趣無有解已爲諸結使所見殘害便當墮於餓鬼畜生之道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於大衆前便說此偈

마치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죽음의 길로 향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029_0764_b_02L猶如死囚
將詣都市
動向死地
人命亦然

그때에 그 비구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고 헤아려 마음속 깊이 스스로를 꾸짖고는, ‘만물은 모두 덧없는 것이어서 한번 난 것은 오래 존재하지 못하고 모두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흥했다가 쇠퇴하는 변화는 오랜 옛날부터 있어 온 것으로서 바로 지금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여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
029_0764_b_04L時彼比丘在閑靜處思惟挍計內自懇責解知萬物皆悉無常生不久存盡歸於滅興衰之變斯來久矣非適今也卽於佛前悔責自改成阿羅漢道

13

세차게 흐르는 저 강물이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니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029_0764_b_08L如河駛流
往而不反
人命如是
逝者不還

옛날 어떤 많은 사람들이 강 기슭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면서 강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쳤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 끝이 없었다. 혹 부모나 처자나 아들이나 딸 가운데 물에 빠져 죽은 이가 한량이 없었다. 그 중에서 살아 남은 이는 만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 깊은 물 속에서 살아 남은 한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허락하시고 도인들의 끝자리에 있게 하셨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이제 액운에서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시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도 도덕을 생각하지 않고 경전이나 계율이나 아비담도 익히지 않았으며, 세상을 제도할 도(道)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선과 경전을 외우는 것과 대중 울력 등과 같은 3사(事)에 힘쓰지 않고 아예 그만두었으며,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만용을 부려 상인(上人)의 법을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하기를 힘쓰지도 않았고, 과(果)를 얻지 못했으면서 과를 얻으려고 힘쓰지도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의 지혜로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는 차츰 그를 교화하여 의심의 그물을 없애 주고자 하셨다.
029_0764_b_10L昔有衆人在江水側坐而觀看瞻水成敗傷害人民無復齊限或有父母妻子男女墮水死者亦無有量其中得解脫者萬中有一於深水得解脫往至佛所求爲沙門佛便然可在道末內不思惟謂爲永離困厄之不復懼彼爲水所溺在閑靜處不思道德亦不習契經戒律阿毘曇復不分別義理諸度世要亦復不習坐禪誦經佐助衆事永離三事不懃採習謂爲行道齊是而已不增翹勇進求上人法然未得證不懃求證未得果不懃求果如來世尊以三達智觀察其心以漸化彼無疑網意
029_0764_c_01L그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물에 빠져 죽는 재난은 면하였지만22)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 즉, 5음으로 된 몸이 5취(趣)를 떠돌아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번뇌의 해침을 받아서 장차 아귀나 축생의 길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는 처음과 끝을 살피셨다. 그래서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멀리 여의게 하고,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며,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2권에 있음)을 읊으셨다.
029_0764_c_01L便告彼人以免生死賊寇之難故有餘怨五盛陰身輪轉五趣無有解已諸結使所見殘害便當墮於餓鬼畜生之道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於大衆前便說此偈
出曜經卷第一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1)부처님의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인 bārāṇasī의 음사이다.
  2. 2)2)염부찰(閻浮刹:jambudvīpa) 혹은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세계를 4주(州)로 나누어서 자신들이 있는 곳을 염부제(閻浮提)라고 불렀는데, 후에는 인간 세계를 가리키게 되었다.
  3. 3)3)중인도에 있는 vaiśālī의 음사이다. 비야리(毘耶離)라고도 번역한다.
  4. 4)4)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뜻하는 삼계(三界)와 동일어이다.
  5. 5)5)불환(不還), 불래(不來)를 뜻하는 anāgāmin의 음사로서, 번뇌를 끊어서 다시는 미혹된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6. 6)6)각각 경(經)ㆍ율(律)ㆍ논(論)의 삼장(三藏)을 뜻한다.
  7. 7)7)마가다국(magadha)의 수도인 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을 가리킨다.
  8. 8)8)죽림정사(竹林精舍, karaṇḍa veṇuvana)를 가리킨다.
  9. 9)9)고려대장경에는 화(火)로 되어 있지만, 대구가 되는 구절이므로 요소를 뜻하는 대(大)를 취하여 번역하였다.
  10. 10)10)5온(蘊)인 skandha와 동의어이다.
  11. 11)11)입류(入流), 역류(逆流), 예류(預流)를 뜻하는 srota āpanna의 음사로서, 성문(聲聞)의 수행의 네 계위(階位) 가운데 초과(初果)를 가리킨다.
  12. 12)12)일래(一來)를 뜻하는 sakṛd-āgāmin의 음사로서, 성문(聲聞)의 수행의 네 계위(階位) 가운데 두 번째 과(果)를 가리킨다. 오직 한 번 더 생을 받되, 종국에는 미혹을 완전히 끊어서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
  13. 13)13)사람의 몸에 있는 불결한 진액(津液)이다.
  14. 14)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없으나, 번역자가 내용편의상 게송을 넣었다.
  15. 15)15)출가(出家)의 즐거움, 멀리 떠난 즐거움, 적정(寂靜)의 즐거움, 보리(菩提)의 즐거움, 열반의 즐거움이라는 다섯 가지 즐거움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탐욕의 마음을 일으키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을 뜻하는 5욕(欲)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16. 16)16)공들여 얻는 업적인 공덕업적(功德業績)의 줄임말이다.
  17. 17)17)고대 인도의 16국(國)의 하나로서 사위(舍衛)라고도 한다.
  18. 18)18)파리명(巴梨名)으로는 pasenadi이고, 범명(梵名)으로는 prasenajit이다.
  19. 19)19)고대 인도의 16국의 하나이며, 구살라국의 북쪽에 있는 나라이다.
  20. 20)20)인도 사성(四姓)계급의 하나로서 왕족인 kṣatriya의 음사이다.
  21. 21)21)사성계급에 속하지 않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인 caṇḍāla의 음사이다.
  22. 22)22)고려대장경에는 “이면생사적구지난(以免生死賊寇之難)”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이전 문맥을 반복하여 내려오다가 생긴 착오로 보이므로, 여기서는 이 문맥에 맞게 고쳐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