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9_0896_c_01L출요경 제18권
029_0896_c_01L出曜經卷第十八

요진 양주 사문 축불념 한역
029_0896_c_02L 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17. 잡품 ②
029_0896_c_03L雜品之二

부처님께 스스로 귀의하니
거룩한 사문을 뵙고 싶어라.
오랫동안 지어 온 그 죄업을
나는 지금 스스로 참회하려네.
029_0896_c_04L自歸大聖雄
欲覲尊沙門
今欲自悔過
久來所作罪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시니 그 위신이 밝고 빛났다. 부처님께서는 손수 지만을 붙잡고 기원정사(祇洹精舍)로 가셔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지만을 데리고 가서 제도하여 비구로 만들어라.”
그는 부처님을 따라 수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들어갔다.
그때에 그 성문 안쪽에 있던 어떤 암코끼리가 새끼를 배어서 낳으려고 하였으나 좀체로 되지 않았다. 코끼리 주인은 멀리서 비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일어나 맞이하면서 말하였다.
“만일 비구께서 이 코끼리로 하여금 곧 새끼를 낳게 해 주시면 성안에 들어가 걸식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 성에 들어가 걸식하지 못할 것이오.”
029_0896_c_06L爾時世尊還現色相威神炳著手執指鬘詣祇洹精舍告諸比丘汝等將此指鬘度爲比丘卽如佛教得爲道淸旦著衣持鉢入舍衛城分越時城門裏有一牝象懷妊欲產不時得產象主遙見比丘來卽起迎逆丘若能使象時產者可得入城乞能使象產者不得入城分越
029_0897_a_02L비구는 대답하였다.
“나는 아직 그런 주문을 외우지 못하오. 우선 잠깐만 기다리시오. 지금 곧 부처님께 신주(神呪)를 배우고 돌아와서, 코끼리가 새끼를 낳게 하겠소.”
그래서 지만 비구는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얼굴을 대어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조금 전 걸식을 하기 위해 성으로 들어가다가 마침 성문 안에 있던 어떤 코끼리가 새끼를 낳으려고 하여, 그 주인은 저에게 주문을 청하고, 새끼를 낳은 뒤에라야 걸식하러 갈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제게 신주를 가르쳐 주셔서 그 코끼리로 하여금 새끼를 낳게 하고 또 저로 하여금 걸식을 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거기 가서 이런 말로 축원하여라. ‘나는 지금 지성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난 뒤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살생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여라. 이렇게 지극히 정성스런 말로 축원하면, 그 코끼리는 무사히 새끼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앙굴마(鴦掘魔)는 부처님께 이런 신주를 받들고 가서 축원하여, 그 코끼리는 무사히 새끼를 낳게 되었다.
029_0896_c_14L比丘答吾先不誦此呪且小停住須吾還至世尊所受誦神呪還當呪之使得時指鬘比丘卽至世尊所頭面禮足白世尊曰向者入城分越値城門裏有象欲產責我呪術象得產者然後得乞唯願世尊願受神呪使象得產使得分越佛告指鬘汝往彼所當以此言呪之今至誠呪自生以來初不殺生持是至誠語使象得產無他爾時鴦掘魔從佛受呪術卽往呪象安隱得產
사람들은 모두 찬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이런 기이한 일도 다 있구나. 저 지만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살생하였는데, 그 지성스런 말 한 마디로 코끼리 새끼를 무사히 낳게 하였다.”
그가 성 안으로 들어가자,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지만이 오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는 혹 그들의 부모나 형제나 처자가 지만에게 죽은 사람들이 있어서, 모두 앞으로 나와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칼이나 몽둥이나 기왓장이나 돌로 지만을 때려서 몹시 괴롭혔는데, 머리를 터지게 하고 살을 찢었으며 또 옷을 찢고 발우를 깨뜨리기도 하였다. 그는 곧 도망쳐 나와 끝내 걸식을 하지 못하고, 부처님께 돌아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그 사정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사정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 지만의 인연 갚음은 어찌 이리도 빠른가?”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니, 그는 그 자리에서 수다원과(須陀洹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차례로 얻고, 6신통(神通)이 맑게 트였다.
029_0897_a_04L時諸人民皆稱善哉世間乃有此奇怪之事此指鬘前後殺生不可稱計今方自呪從生以來初不殺持是至誠語使象得產無他便得入城街巷人民見指鬘來其中或父母兄弟妻息爲指鬘所殺者皆前報或以刀杖瓦石打指鬘極使牢熟破頭傷體裂壞衣被鉢盂亦破卽走出城竟不乞食還至世尊所頭面禮足自說緣本佛知其意指鬘受緣報何其速哉爾時世尊漸與說法卽於坐上得須陁洹果乃至羅漢六通淸徹
029_0897_b_02L그때에 바사닉왕(波斯匿王)은 말ㆍ코끼리ㆍ수레ㆍ보병 등 네 종류의 군사를 모아, 저 동산으로 가서 앙굴마와 싸우기 위해 사위성을 나갔다. 그러나 도중에 행인들에게, 그 대적 앙굴마가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비구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곧 군사를 멈추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을 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왕이 올 줄 아시고, 신통으로써 앙굴마의 몸을 숨겨 나타나지 않게 하셨다. 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왕에게 물으셨다.
“왕은 무기를 갖추고 네 종류의 군사를 모아 어디로 가려 하시오?”
왕은 말씀드렸다.
“이 나라에는 앙굴마라는 도적이 있어서 험난한 곳을 의지해 도적질을 하는데 굉장히 포악무도합니다. 그래서 군사를 모아 그를 치러 가다가 도중에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앙굴마는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도를 닦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029_0897_a_15L爾時波斯匿王卽集四種兵馬兵象兵車兵步兵欲往詣彼園與鴦掘魔共鬪出舍衛城中道聞行人說鴦掘魔大賊受如來教得爲比丘卽停兵衆入祇洹精舍與如來相見爾時世尊知王當來卽以神足隱鴦掘魔形使不顯露王波斯匿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爾時世尊卽知而問王嚴備戰具集四種兵爲欲何至王白佛言界內有賊名鴦掘魔依嶮作賊暴虐無道故集兵衆欲往攻伐中路聞人說鴦掘魔受佛來化得爲道次不審其人今爲所在
부처님께서는 왕의 뜻을 아시고는 곧 신통을 거두어 왕으로 하여금 앙굴마를 보게 하셨다. 왕은 그를 보자마자 두려워서 기절하고 말았다. 신하들은 왕을 부축해 일으킨 다음 얼굴에 물을 뿌렸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왕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런 작은 두려움과 마주친 것이오. 저 사람은 이미 아라한의 과(果)를 얻었소. 만일 대왕이 저 깊은 동산으로 가서 그 본래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는 머리에 손가락을 잘라서 만든 화환을 이고 사람의 피를 몸에 바르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그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오. 만일 왕이 직접 보았다면 심장과 간이 터져 곧 죽었을 것이오.”
029_0897_b_05L佛知王意卽攝神足使王見鴦掘魔王見恐懼面投於地諸臣扶起以水灑之佛告王曰是王大幸遇此小恐其人已得阿羅漢果設當王詣彼深園見其本形頭戴指鬘人血塗體身執利劍顏色隆怒王當見者心肝摧碎卽喪命根
왕은 다시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아직 항복받지 못한 이를 항복받고 제도하지 못한 이를 제도하십니다. 그러나 부처님이시여, 그 사람은 무수한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아라한의 과(果)를 성취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의심하지 마시오. 그 행에는 앞과 뒤가 있고, 익고 익지 않은 것이 있으며 처음과 나중이 있는 것이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의 전생 인연을 관찰하신 뒤에,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897_b_12L王白佛言如來今日未降者降未度者度云何世尊其人乃殺無央數人云何得成羅漢果佛言無苦有前後有熟不熟有初有終爾時世尊觀宿因緣便於大衆而說斯頌

5

악한 행을 저질렀어도
선한 행으로 그것을 없애면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구름 걷힌 뒤의 달과 같으리라.
029_0897_b_16L人前爲惡
以善滅之
是照世間
如月雲消
029_0897_c_02L
“악한 행을 저질렀어도, 선한 행으로 그것을 없애면”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마치 저 지만이 무수한 사람을 죽였지만 현성의 8정도[品道]로써 그것을 없앤 것과 같다. 그는 모든 악이 뿌리째 영원히 사라지고 끝까지 청정하여 다시는 생기하지 않는 법을 얻었다. 그러므로 “악한 행을 저질렀어도, 선한 행으로 그것을 없애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구름 걷힌 뒤의 달과 같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세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衆生)세간이고 둘째는 기(器)세간이며 셋째는 음(陰)세간이다. 마치 가을달이 뭇 별에 둘러싸일 때, 달은 그 중에서 홀로 밝아 그 광명이 어디고 비치는 것처럼, 저 나쁜 비구도 모든 악이 이미 다하고 청정한 행을 닦으면, 많은 대중들을 두루 제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구름 걷힌 뒤의 달과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7_b_18L人前爲惡以善滅之者如彼指鬘害無數千人以賢聖八品道而滅其諸惡已盡永無根本究竟淸淨得不起法是故說人前爲惡以善滅之是照世間如月雲消者世間者其義有三一名衆生世二名器世三名陰世猶如秋月衆星圍繞於中獨明光照遠近弊惡比丘諸惡已盡修淸淨行便於大衆廣有濟度是故說是照世間如月雲消也

6

악한 행을 저질렀어도
선한 행으로 그것을 없애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은
그 이치의 공(空)함을 생각하여라.
029_0897_c_05L人前爲惡
以善滅之
世間愛著
念空其義

“악한 행을 저질렀어도, 선한 행으로 그것을 없애라”란 무슨 뜻인가?
대개 악을 저지르는 것은 모두 애착 때문이다. 저 범지의 아내가 무해에 대해 나쁜 생각을 낸 것도 모두 그 애욕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행을 저질렀어도, 선한 행으로 그것을 없애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은, 그 이치의 공(空)함을 생각하여라”란 무슨 뜻인가?
애욕이 깊고 단단하여 삼계를 떠돌면서, 4생(生)을 받고 5도(道)를 윤회하는 것은 다 애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그것이 허망하고 진실이 아님을 분별하며, 다 공(空)하여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은, 그 이치의 공(空)함을 생각하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7_c_07L人前爲惡以善滅之者夫作惡皆由愛著彼梵志妻興惡向無害皆由愛心是故說人前爲惡以善滅之也世間愛著念空其義者愛心深固流轉三界受四生分廻趣五道皆由愛著不能捨離行人分別虛而不眞皆空寂不可恃怙是故說世間愛著念空其義也

7

젊어서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으면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구름 걷힌 뒤의 달과 같으리라.
029_0897_c_15L少壯捨家
盛修佛教
是照世間
如月雲消
029_0898_a_02L
부처님께서 경전에 말씀하셨다.
‘코끼리 조련사의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때에 코끼리 조련사는 젊은 코끼리를 훈련시키고 있었는데, 그 코끼리는 넓은 들판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훈련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곳에서 죽고 말았다.
젊은 비구도 그와 같아서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죽게 되고, 또 장로 비구도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죽게 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젊은 코끼리는 훈련을 받고도 죽게 되며, 나이든 코끼리도 훈련을 받고도 죽게 된다. 그와 같이 젊은 비구도 교훈을 받고도 죽으며 장로 비구도 가르침을 받아 현성의 법을 얻었어도 죽는다. 젊은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닦아 빠짐 없이 부처님의 법을 완전히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완전히 갖추는가? 차례를 넘고 도를 깨달아 위없는 과(果)를 얻는다.”
그러므로 “젊어서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구름 걷힌 뒤의 달과 같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마치 가을 달빛이 멀리 비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029_0897_c_17L佛契經說因象師喩時象師教訓少壯象樂於曠野不被調御卽於曠野命終復有中象不被調御於彼取命終少壯比丘此亦如是不被教訓而取命終長老比丘不被教訓而取命比丘當知此亦如是少壯象調御而取命終中年象被調御而取命終少壯比丘被教訓而取命終長老比丘被教訓得賢聖法而取命終少壯比丘盛修佛教無所漏失具足佛法云何爲具足越次取證成無上果是故少壯捨家盛修佛教也是照世間如月雲消者猶如秋月光明遠照也

8

젊어서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아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은
그 이치의 공(空)함을 생각하여라.
029_0898_a_07L少壯捨家
盛修佛教
世間愛著
念空其義

“젊어서 출가하여”란 무슨 뜻인가?
애착을 끊고자 하면 그는 모든 천인들과 아수륜(阿須倫)들의 공경과 대우를 받을 것이요, 가유라(加留羅)나 건답화(乾沓和) 등도 모두 그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은, 그 이치의 공(空)함을 생각하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a_09L少壯捨家者欲斷愛著諸天阿須倫所見敬侍加留羅乾沓和等皆悉承事供養是故說世間愛著念空其義也

9

살아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죽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정진하여 도를 깨친 사람은
중도(中道)에 머무니 근심이 없다.
029_0898_a_13L生不施惱
死而不慼
是見道悍
應中勿憂

“살아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죽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이 세상에 난 뒤로 살생하거나 도둑질하거나 음탕하지 않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임종 때에도 정신이 맑아 놀라움이나 두려움이 없으며, 지옥이나 축생, 아귀도 보지 않고, 또 그 밖의 나쁜 귀신도 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상서로운 징조만을 본다. 그러므로 “살아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죽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진하여 도를 깨친 사람은, 중도에 머무니 근심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도를 깨친 사람은 이미 다섯 가지 재난을 겪었기 때문에 슬픔 속에 있어도 담담하고 지음이 없으며, 슬피 울거나 부르짖으면서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진하여 도를 깨친 사람은, 중도에 머무니 근심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a_15L生不施惱死而不慼者自生以來不殺盜婬妷不犯諸邪臨命終時神識澄靜亦不驚懼亦復不見地獄畜生餓鬼不見弊惡鬼但見吉祥瑞應是故說生不施惱死而不慼也是見道悍應中勿憂者彼見諦人已離五雖在憂慼之間淡然無爲亦不悲號哭泣生諸衆惱是故說是見道悍應中勿憂也
029_0898_b_02L
10

살아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죽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
정진하여 도를 깨친 사람은
친척들 속에서도 홀로 빛나리라.
029_0898_a_24L生不施惱
死而不慼
是見道悍
在親獨明

“살아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죽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그는 이 세상에 난 뒤로 부모나 형제나 가까운 친척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친척들 속에서도 홀로 빛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b_03L生不施惱死而不慼者自生已來由父母兄弟宗親五族而行惡法也是故說在親而獨明

11

혼탁한 법을 끊고
오직 맑은 법을 배우면
깊은 연못을 건너 다시는 돌아옴이 없다.
의지함을 버리고 행이 그치면
다시는 쾌락에 물들지 않고
욕심을 끊어 걱정이 없다.
029_0898_b_06L斷濁黑法
學惟淸白
渡淵不反
棄猗行止
不復染樂
欲斷無憂

“혼탁한 법을 끊고”란 무슨 뜻인가?
어떤 것을 혼탁한 이라고 하는가? 대답하자면 그것은 모든 부림ㆍ결박ㆍ티끌ㆍ때이고 일체의 선하지 않은 법이며 타락한 법으로서 생사에 집착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끊고 이미 끊었고 영원히 끊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혼탁한 법을 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직 맑은 법을 배우면”이란 무슨 뜻인가?
어떤 것을 맑은 이라고 하는가? 대답하자면 그것은 의지(意止)ㆍ의단(意斷)ㆍ신족(神足)ㆍ근(根)ㆍ력(力)ㆍ각의(覺意)ㆍ8정도(正道) 따위의 37도품(道品)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법이 있어서 생사를 떠나고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맑은 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직 맑은 법을 배우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b_08L斷濁黑法者云何名爲濁黑法答曰一切諸使縛結塵垢一切諸不善法退墮法諸染著生死者當斷已斷永是故說斷濁黑法也學惟淸白者云何名曰淸白法答曰意止意斷覺意八正道三十七品正使有法離於生死得出要者亦名淸白法是故說學惟淸白也
“깊은 연못을 건너 다시는 돌아옴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왜 연못이라고 하였는가? 이른바 연못이란, 삼계와 5취(趣)로 흐르면서 생사를 더욱 불어나게 하는 것이니, 그 연못으로 말미암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생사를 헤매고, 3도(塗) 8난(難)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네 가지 못을 없애고 위없는 도를 구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깊은 연못을 건너 다시는 돌아옴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지함을 버리고 행이 그치면”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의지한다는 것은 탐욕과 선하지 않은 법에 의지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의지함을 버리고 집착이 없어야 진실한 행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함을 버리고 행이 그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b_16L渡淵不反何以故名爲淵所謂淵者流在界趣轉增生死由此淵故流轉生死不可稱記墮三塗八難是故世尊說滅四淵求無上道是故說渡淵不反棄猗行止者云何爲猗所謂猗者猗欲不善法是故如來說棄猗無著乃謂眞行是故說棄猗行止也
029_0898_c_02L“다시는 쾌락에 물들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다섯 가지 쾌락에 물들지 않고 현성의 계율을 가까이하여서 끝내 그것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쾌락에 물들지 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욕심을 끊어 걱정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대개 사람들이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욕심이 있어서 여색에 집착하기 때문이니, 잡된 생각을 일으켜 그 여자의 얼굴ㆍ머리결ㆍ손발톱ㆍ이ㆍ살결 따위의 희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뜻을 굳게 하여 이런 생각을 버리면, 탐욕은 곧 그쳐서 다시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끊어 걱정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b_23L不復染樂者不染五樂親近賢聖律終不捨離是故說不復樂也欲斷無憂者夫人不至於無爲皆由有欲染著女色興意思想念彼色貌髮毛瓜齒肥白端正行人執意除去彼念欲想便息不復熾然是故說欲斷無憂也

12

애욕을 밭이라 하고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종자라 한다.
그러므로 보시하여 세상을 제도하는 이
그는 한량없는 복을 얻으리라.
029_0898_c_06L愛欲意爲田
婬怒癡爲種
故施度世者
得福無有量

“애욕을 밭이라 하고”란 무슨 뜻인가?
거친 밭과 더러운 땅은 자주 돌보지 않으면, 왕골풀 따위가 다투어 나서 좋은 묘종을 해치므로, 열매가 불어나지 않고 철따라 잘 익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이 애욕에 집착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애욕을 밭이라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종자라 한다”란 무슨 뜻인가?
무릇 수행자가 도를 닦을 때에는 항상 스스로 관찰해야 한다.
만약 공덕을 심으려면 어디에 보시해야 좋은 과보를 얻을 수 있겠는가? 무공(無空)에 보시하게 되면 그 과보가 적고, 공(空)에 보시하게 되면 그 과보가 많은 것이다.
029_0898_c_08L愛欲意爲田者猶如荒田穢地不數修治菅草競生傷害良苗穀子不滋時不豐熟人染著愛欲亦如是是故愛欲意爲田也婬怒癡爲種者行人習行常自觀察若人種德爲施何處而獲果報答曰施無空入者少施空入者多
어떤 것이 무공에 보시하게 되면 그 과보가 적다는 것인가?
저 외도들이나 벌거숭이 바라문인 니건자(尼乾子)들에게, 무지한 사람들은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복을 구하지만 그 16분의 1도 얻지 못한다. 마치 더러운 밭은 좋은 묘종을 해치는 것처럼, 더러운 행을 가진 범지는 선의 뿌리를 해치고,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에 덮이기 때문에 도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므로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종자라 한다. 그러므로 보시하여 세상을 제도하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한량없는 복을 얻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복을 보시하는 과보를 찬탄하는 것이다. 대중들 속에서 욕심을 끊은 사람은 비록 보시는 적게 하더라도 그가 얻는 복은 한량없어서, 그 과보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한량없는 복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8_c_15L云何施無空入者少諸在外道異學及裸形梵志尼乾子等愚人好施於中望福於十六分而不獲一猶如穢田傷害善苗穢行梵志傷害善根爲婬怒癡所覆不生道果是故說婬怒癡爲種故施度世者也得福無有量者嘆說如來聖衆施福之報於大衆之中有斷欲人施雖少獲福無量所得果報不可稱是故說故施度世者得福無有量
029_0899_a_02L
13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분노가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분노를 가라앉혀라.
보시하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
029_0898_c_24L猶如穢惡田
瞋恚滋蔓生
是故當離恚
施報無有量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분노가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왜 더럽고 나쁘다고 하는가? 이른바 더럽고 나쁘다는 것은 자신도 허물고 남도 허무는 것이다. 자신을 허문다는 것은 분노가 불꽃처럼 일어나 안색이 변하고 본성이 바뀐다는 것이니, 이것이 자신을 허문다는 것이다. 또 남도 허문다는 것은 분노가 불꽃처럼 일어나 남을 허물고 나아가서는 그 목숨까지 해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분노가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를 가라앉혀라. 보시하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분노하는 사람은 뒤에 가서 그 과보를 받고, 분노로 말미암아 나라를 망치고 가산을 탕진한다. 인자한 마음으로 복덕을 베풀고 성내지 않는 사람은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분노를 가라앉혀라. 보시하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9_a_03L猶如穢惡田瞋恚滋蔓生者何以故名爲穢惡所以名穢惡者亦自毀己復毀他人所以自毀者瞋恚熾盛顏色變易本性改異是謂自毀復毀他人瞋恚熾盛毀損他人乃至失其命是故說猶如穢惡田瞋恚滋蔓生是故當離恚施報無有量者人不懷恚後受恚報人由瞋恚亡國破家皆由瞋恚仁施福德施無恚者獲福無量是故說當離恚施報無量也

14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어리석음의 더러움이 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
029_0899_a_13L猶如穢惡田
愚癡穢惡生
是故當離愚
獲報無有量
029_0899_b_02L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어리석음의 더러움이 나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장님은 높은 산도 들판도 보지 못하고, 또 좋은 색이나 나쁜 색이나, 푸른 빛ㆍ누른 빛ㆍ붉은 빛ㆍ흰빛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무명의 어두운 법으로 스스로를 얽매어서, 4제(諦)나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법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밝은 지혜와 37도품(道品)을 가린다.
저 외도와 범지들은 어리석음에 덮여 진실한 도를 알지 못하지만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런 걱정이 없다. 그러므로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어리석음의 더러움이 나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이 어리석음을 없애려면 어디에 가서 그것을 구해야 하는가? 대답한다면,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가서 구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제자들은 늙거나 젊거나 좋거나 나쁜 것의 처음과 끝을 관찰하고 4제(諦)를 분별하여서 눈이 밝고, 지혜를 깨달아 조금도 그 보시에 실수가 없기 때문이니, 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는 어리석은 사람이 없어서 한량없는 과보를 받는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어리석음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9_a_15L猶如穢惡田愚癡穢惡生者猶彼盲人目不睹高原平地亦不見善色惡色靑黃赤白此衆生類亦復如是無明闇法而自纏絡不睹四諦善不善法覆蔽慧明及三十七道品外道異學及諸梵志癡所覆蓋不識道眞如來聖衆永無此患是故說猶如穢惡田愚癡滋蔓生也是故當離愚福無有量者彼修行人欲求無愚者當從何求答曰當從如來聖衆求以故已其聖衆觀察本末若大若小若好若醜分別四諦眼明智覺毫釐不失施彼如來聖衆無有愚癡者報無量也是故說當離癡施報無有量也

15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교만함이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
029_0899_b_07L猶如穢惡田
憍慢滋蔓生
是故當離慢
獲報無有量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교만함이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외도들은 교만함이 매우 많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29_0899_b_09L猶如穢惡田憍慢滋蔓生者外道異學憍慢最甚是故如來說偈曰

저 바라문들은 교만함이 매우 많아
이 세상에서 목숨을 마치면
6취(趣)에 떨어질 것이니, 그것은
닭ㆍ돼지ㆍ개ㆍ이리ㆍ나귀의
다섯과 지옥을 합해 여섯이다.
그들에게 아무리 보시를 해도
그 과보를 얻지 못하리라.
029_0899_b_11L婆羅門憍慢滋多
從今世命終
當生六趣
鷄猪狗狼驢
五泥犂六
施彼人者
不獲其報
029_0899_c_02L
그러므로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교만함이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큰 법 안에서는 교만함을 버리는 것이다. 즉,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마음을 낮추고 스스로를 비천히 여긴다. 저 전다라(旃陀羅)의 처녀가 백천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보배로운 옷을 입고도 남의 집에 가서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문에 기대어 서 있는 것처럼, 저 교만함을 버린 비구도 그와 같아서, 그 근본은 큰 종족의 출신이지만 스스로 그 몸을 괴롭히면서 걸사(乞士)의 법을 닦되, 마음을 제어하고 뜻을 다루기를 마치 날카로운 칼을 잡은 것같이 하고, 손에 발우를 들고서는 세상에서도 가장 곤궁한 사람인 듯이 한다.
염부리(閻浮利)의 사람들은 머리카락으로써 장식을 삼지만 우리 사문은 그것을 깎아 버리고, 염부리의 사람들은 옷에 탐심이 많지만 우리 사문은 희고 깨끗한 옷을 만들어 입으며, 염부리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을 깊은 산으로 쫓아 버리지만 우리 사문은 숲으로 집을 삼는다. 욕심이 없는 사람도 이렇게 수행하거늘, 하물며 과(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이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9_b_14L是故說猶如穢惡田憍慢爲滋多也是故當離慢獲報無有量於如來大法中除去憍慢或時著衣持鉢入村乞食下意自畀如旃陁童女身被寶衣價直百千若詣他舍倚門侍立不敢入舍侮慢比丘亦復如是本出豪族自苦其形修乞士御心調意如執利劍手執鉢盂如世窮人閻浮利人以髮爲飾我沙門便取剃之閻浮利人衣裳多貪白淨沙門染污爲色閻浮利人諸犯罪者遂著深山沙門山藪爲家無欲之人執行如是況得向果者心可移乎故說當離憍慢獲報無有量也

16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탐욕이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탐욕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
029_0899_c_04L猶如穢惡田
貪欲爲滋蔓
是故當離貪
獲報無有量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탐욕이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탐욕을 가지되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하고, 혹은 그 때문에 목숨까지 일찍 마치게 된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을 버린다. 그러므로 “마치 저 더럽고 나쁜 밭에는 탐욕이 덩굴처럼 뻗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탐욕을 버려라. 얻는 과보가 한량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9_c_06L猶如穢惡田貪欲爲滋蔓者人懷慳貪至死不改或由慳貪傷夭命根故智者去離慳貪是故說猶如穢惡貪欲爲滋蔓是故當離貪獲報無有量也

17

여섯째가 증상왕(增上王)이니
그 물듦은 으뜸가는 물듦이다.
물들지 않으면 번뇌를 여의었다고 하고
물들면 어리석다고 한다.
029_0899_c_11L六增上王
染爲染首
無染則離
染者謂愚

‘여섯째가 증상왕이니’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의식[意]이다. 차례로 세어도 여섯이 되고 거꾸로 세어도 여섯이 된다.
증상(增上)이란 무슨 뜻인가? 의식이 움직이면 그에 따라 다섯 가지가 일어나 다섯 감관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감각은 다 의식이 만든 것이다.
저 부처님의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치 다섯 감관은 각각의 경계가 있어서 서로 뒤섞이거나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의식은 그 다섯 감관에 이르러 제일 우두머리가 된다. 그래서 그 다섯 경계를 간섭하여 그 다섯 감관을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고, 가장 힘이 강하고 미묘하기 때문에 왕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섯 째가 증상왕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9_c_13L六增上王者所謂王者何者是曰意以次數者則名六逆數者亦爲六增上者意動則五隨走作五情設使諸入盡意所造如佛契經說猶如五根各各有境界不相錯涉亦不相侵意者至此五處最爲原首侵彼五界設使五情不得停住於五事中最勝最妙是故名爲王是故說六爲增上王也
029_0900_a_02L“그 물듦은 으뜸가는 물듦이다”란 무슨 뜻인가?
물듦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물듦이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에 물든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 물듦이 으뜸가는 물듦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들지 않으면 번뇌를 여의었다고 하고”란 무슨 뜻인가?
어떤 이를 물들지 않았다고 하는가? 물들지 않은 이란 바로 아라한이다. 저 수다원(須陀洹)은 모든 번뇌를 여의어 법안(法眼)이 깨끗하지만, 영원히 깨끗해진 것은 아니니, 아라한만이 영원히 깨끗하다. 그러므로 “물들지 않으면 번뇌를 여의었다고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들면 어리석다고 한다”란 무슨 뜻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에 집착하는 것을 익힌다. 그래서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을 도리어 생각한다. 그러므로 “물들면 어리석다고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899_c_22L染爲染首者云何爲染所謂染染色聲香味細滑法是故說染爲染首無染則離者云何名無染所謂無染者阿羅漢是雖言須陁洹諸塵垢盡得法眼淨不永得淨羅漢者永已得淨是故說無染則離也染者謂愚人所習習著色香味細滑法思惟者然不思惟不應思惟者反更思惟是故說染者謂愚也

18

뼈대로써 성(城)을 만들고
피와 살을 거기에 발라
감관의 문을 열어 놓으면
번뇌의 도적이 날뛰게 된다.
029_0900_a_07L骨幹以爲城
肉血而塗之
根門盡開張
結賊得縱逸

“뼈대로써 성을 만들고, 피와 살을 거기에 발라”란 무슨 뜻인가?
성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성이란, 5음(陰)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담을 삼고 뼈대로 담벽을 삼아 거기에 피로 물들이는 것이다. 만일 그 안의 물질이 밖으로 흘러 나오면 더럽다는 생각을 낼 것이다.
그래서 그 몸에 집착하지 않고 즐길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피부로써 뼈를 덮고 장식하여 몸이 되었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관찰하여 하나도 탐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뼈대로써 성을 만들고, 피나 살을 거기에 발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감관의 문을 열어 놓으면, 번뇌의 도적이 날뛰게 된다”란 무슨 뜻인가?
눈을 떠서 바깥의 색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눈을 뜨는가?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번뇌의 도적을 들여서 선근의 재물을 짓밟게 하고,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며, 의식의 문을 열어서 번뇌의 도적이 들어오게 한다. 그러므로 “감관의 문을 열어 놓으면, 번뇌의 도적이 날뛰게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0_a_09L骨幹以爲城肉血而塗之者所謂城者以五陰身爲牆骨幹垣壁以血染之當以內物現露於外者便生惡露觀不染著身興不可樂想以其皮膚覆骨莊飾爲形智者觀察無一可貪故說骨幹以爲城肉血而塗之根門盡開張結賊得縱逸者眼根開張受於外色曰誰開乎答曰由不思惟使結賊得入劫善根財貨耳鼻口身心亦復如是意根開張結賊得入故說根門得開張結賊得縱逸也

19

인연이 있으면 괴로움이 더하니
세 가지 인연의 속박을 보아라.
그것은 성스런 대중에 의해 없어지지
다른 것에 의해 없어지지 않는다.
029_0900_a_20L有緣則增苦
觀彼三因縛
滅之由賢衆
不從外愚除
029_0900_b_02L
“인연이 있으면 괴로움이 더하니”란 무슨 뜻인가?
먼저 인연이 있으면 뒤에 가서 고통이 더한다. 먼저 인연이 없으면 괴로움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마치 샘에서 물이 흘러 나와 강을 이루는 것처럼, 앞의 인연에 의하여 고통이 생기고 또 점점 불어나 사백네 가지 병이 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으면 괴로움이 더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 가지 인연의 속박을 보아라”란 무슨 뜻인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을 잡아다 집을 지을 때, 자꾸 일을 시켜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5음[五盛陰]으로 이루어진 이 몸을 번뇌로 묶어 놓고, 우수고뇌(憂愁苦惱)로 그 마음을 괴롭혀서 잠깐도 쉬지 못하게 하고 4백 네 가지 병을 치르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세 가지 인연의 속박을 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0_a_22L有緣則增苦者前有因緣後生增苦前無因緣苦何由生猶如泉源出水成江河此亦如是因前有緣則有苦漸漸增長至四百四患是故說緣則增苦也觀彼三因縛者猶如遇事人閉在作坊役使不住此亦如是五盛陰身以結使爲縛憂愁苦惱役使心識不得停住復當經歷四百四是故說觀彼三因縛也
“그것은 성스런 대중에 의해 없어지지”란 무슨 뜻인가?
대개 신념으로 보시하려면 대중에게로 가야 하니, 보시는 적더라도 복은 많이 얻기 때문이다. 마치 용감한 대부가 외적을 물리치되, 그 무리를 모두 무찔러야 용감한 장부라 할 수 있고, 상도 남보다 많이 얻는 것처럼, 부처님의 대중도 그와 같다. 마치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일 때 아무리 작은 물길도 거절하지 않는 것처럼, 누가 공양하러 오더라도 그 때문에 더 기뻐하지도 않고, 공양하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스런 대중에 의해 없어지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0_b_08L滅之由賢衆者夫欲信施當詣大衆施少獲福猶如勇健丈夫能卻外敵摧敗彼乃名勇健加得賞賜過出衆人來賢衆亦復如是如海納萬川不拒細流有來供養者不存用喜不供養者亦不憂慼是故說滅之由賢衆也
“다른 것에 의해 없어지지 않는다”란 무슨 뜻인가?
이 세상의 미련한 사람은 오랫동안 전도된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의 나[我]가 있다고 생각하여, 5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진실한 몸이라고 집착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일찍이 독사에게 물려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것처럼, 일찍이 번뇌의 속박을 당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줄 모르고 업을 짓는다. 그러므로 “다른 것에 의해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잡(雜)’이라고 하는가? ‘잡’이라고 한 까닭은 게송이 여러 가지요, 그 설명이 같지 않아서, 다른 게송의 단순한 이치와 같지 않기 때문에 ‘잡’이라고 한 것이다.잡품(雜品) 제17을 마친다.
029_0900_b_14L不從外愚除者世愚惑人顚倒來久計著吾我著五陰身計爲實身猶如有人曾不被毒蛇螫而不避之曾不被結使縛者而造其行爲外塵所染是故說不從外愚除也何以故名爲所以言雜者偈義種種演說不同餘偈單義不與此同是故說雜也雜品第十七竟

18. 수품(水品)
029_0900_b_22L出曜經水品第十八

1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고요하여
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을 건너가니
기러기가 그 연못을 버리는 것과 같다.
029_0900_b_23L心淨得念
無所貪樂
已度癡淵
如鴈棄池
029_0900_c_02L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고요하여, 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마음을 깨끗한 데에 매어 두고 항상 방편을 구하여 생사를 벗어나려고 하되, 저 생사를 요술이나 허깨비처럼 보고, 언제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타는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고요하여, 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기러기가 그 연못을 버리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그 연못에는 여러 가지 두려운 것이 많고, 또 사냥꾼이 자주 와서 두렵게 하는 것을 알기에 기러기는 그 온갖 어려움을 피해, 그 연못을 버리고 높이 날아간다. 그러므로 “기러기가 그 연못을 버리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을 건너가니”란 무슨 뜻인가?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에 잠겨 그것이 골수에 사무치면, 방편을 구해서 남김없이 영원히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의 깊은 연못을 건너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0_c_02L心淨得念無所貪樂者係心於淨求巧便欲得出要觀此生死如幻如常懷恐懼心如熾火是故說心淨得念無所貪樂也如鴈棄池者知彼池水多諸畏懼又爲獵者數來驚怖鳥卽棄池高翔避此衆難是故說鴈棄池也已度癡淵者癡淵所蔽入骨徹髓便求方便永滅無餘是故說已度癡淵也

2

비유하면 마치 저 기러기가
공중에서 잠깐 내려와서
위험한 곳을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
029_0900_c_11L譬如鴈鳥
從空暫下
出惡道
至無爲處

“비유하면 마치 저 기러기가”란 무슨 뜻인가?
기러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온갖 시달림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안온한 곳을 구한다. 그러므로 “비유하면 마치 저 기러기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중에서 잠깐 내려와서”란 무슨 뜻인가?
그 몸은 어디라도 걸림없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위태로운 곳을 버리고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잠깐 내려와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험한 곳을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현성 제자들과 여래ㆍ등정각은 중생들을 위해, 온갖 악을 버리고 악도(惡道)를 벗어나기를 구하여, 선한 업을 닦고 모든 번뇌를 떠난다. 그러므로 “위험한 곳을 벗어나, 안온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안온한 곳이란, 또한 모든 번뇌가 사라진 열반으로서, 거기에는 생멸이라거나 끊을 집착도 없고, 언제나 변하지 않으며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 선정을 얻은 수행하는 사람은 늙음과 병의 핍박을 받아 항상 4백 네 가지의 시달림을 받기 때문에, 4대(大)를 싫어하고 걱정하여, 5음(陰)으로 이루어진 몸을 버리고 열반으로 들어간다.
029_0900_c_12L譬如鴈鳥者畏諸衆鳥飛在虛空避此諸難自求無爲是故說譬如鴈鳥也從空暫下者能飛行遠近無㝵去危就安是故說從空暫下也求出惡道到無爲處也賢聖弟子如來等正覺爲人除惡求出惡道修於善業離一切結是故說求離惡道至無爲處也亦名滅盡泥無生滅著斷恒不變易亦不磨滅彼得定修行人爲老病所逼四百四病恒切己身厭患四大身捨五陰形入無爲處

3

범행을 닦지도 않고
젊어서 재물을 쌓지도 않고
어리석게도 졸면서
옛일만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 없다.
029_0900_c_23L不修梵行
少不積財
愚者睡眠
守故不造
029_0901_a_02L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공양하실 때가 되어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시자 아난(阿難)을 데리고 이 염부리(閻浮利)를 관찰하시다가, 어떤 두 늙은이가 초췌한 행색으로 등을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을 보셨다.
곧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그러자 아난은 다시 가사를 단정히 한 다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끊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헛되이 웃으시지 않으시니, 웃으시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 습니다. 지금 웃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029_0901_a_02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到時著衣持鉢將侍者阿難閻浮界二人耆老形變色衰僂步而見已世尊便笑爾時阿難更整衣右膝著地長跪叉手白佛言佛不妄笑笑必有以願說其意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행색이 초췌한 저 두 늙은이가 보이느냐? 만일 저들이 이 사위국에서, 젊었을 때부터 재산을 모았더라면 이 나라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또 만일 처자와 살림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오래 전에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다. 또 만일 적은 재물을 쌓되 만족할 줄 알았더라면 오늘날에는 이 성안에서 둘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만일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아나함(阿那含)의 과(果)를 얻었을 것이다.
029_0901_a_08L爾時世尊告阿難曰汝頗見此二耆舊長老不形變色衰若此二人於此舍衛國從少積財者於舍衛國第一豪富當捨妻子棄捐居業出家學道卽成阿羅漢若小積財至足今日於此舍衛城里復在第二家若出家學道阿那含果
또 만일 저들이 중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재물을 쌓았더라면 넉넉히 셋째가는 부자가 되었을 것이요, 출가하여 도를 배웠더라면 사다함(斯陀含)의 과(果)를 얻었을 것이다. 저들은 본래의 원을 어기고서 근본을 버리고 끝을 따랐기 때문에 지금 고생하면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갖가지 병으로 고생하는 것이니, 이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는, 후세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901_a_15L此二人若在中年積財至今日足在第三家若出家學道者斯陁含果愍此二人違前所願捨本隨末飢寒勤苦萬患竝至爾時世尊觀察此義爲後衆生敷演大明在於大衆而說斯偈

범행을 닦지도 않고
젊어서 재물을 쌓지도 않으면
연못을 엿보는 두루미와 같으니
옛일을 생각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
029_0901_a_20L不修梵行
少不積財
如鶴在池
守故何益
029_0901_b_02L
마치 늙은 두루미가 연못가를 지키고 서서, 물고기가 상류로 올라오면 잡아먹기 위해, 종일토록 마음을 졸였으나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쉬지 않고 마음을 쓰는 동안에 스스로 목숨을 마치는 것과 같다.
늙으면 늙음의 법이 있고 젊으면 젊은 힘이 있다. 저 두루미는 늙은 몸을 가지고 젊은 힘을 행세하려 하되, 날이 다하도록 그 원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다만 젊어서 물고기를 잡던 생각만을 하고 자신이 이미 늙은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저 늙은 장로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젊었을 때에 노래와 춤과 웃음과 도박으로 즐기던 일만을 생각하고, 이제는 늙은이가 된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릎을 싸고 쭈그리고 앉아 지나간 일을 생각하니, 그것은 늙음의 법은 행하지 않고 다만 젊었을 때의 일만을 생각하여 갖가지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못을 엿보는 두루미와 같으니, 옛일을 생각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1_a_22L猶如老鶴伺立池邊望魚上岸乃取食之終日役思不果其願用意不息自致亡軀老有老法壯有壯力鶴以老法行於壯力終日不果但念少壯捕魚不覺耆年已至今此耆年長老亦復如是自念力壯歌儛戲笑博弈戲樂不慮今日年邁耆艾抱膝蹲踞憶彼所更不行老法但念少壯欺詐萬端是故說如鶴在池守故何益

4

조그만 악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
무릇 가득한 저 큰 죄악도
작은 것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029_0901_b_08L莫輕小惡
以爲無殃
水渧雖微
漸盈大器
凡罪充滿
從小積成

“조그만 악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악을 행할 때 그것이 비록 작더라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독사가 아무리 작아도 사람을 물면, 그 독이 온몸에 두루 퍼져 끝내 목숨을 잃게 된다.
사람의 죄악도 그와 같아서,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사람의 바른 행을 방해하여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뒷일을 생각하지 않다가 장래에 그 과보를 받는다. 날마다 그것을 되풀이하면서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멀리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악은 계속 불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조그만 악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재앙이 없다고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란 무슨 뜻인가?
마치 큰 그릇을 놓고 새는 물을 받으면 방울방울 자꾸 떨어져서 그 그릇을 채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릇 가득한 저 큰 죄악도 작은 것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행을 익히되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고, 날마다 그것을 즐겨 익히면서 재앙이 닥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릇 가득한 저 죄악도, 작은 것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1_b_10L莫輕小惡以爲無殃者人爲惡行雖小不可輕蚖蛇雖小螫嚙人身毒遍其身以喪命根毒藥雖微人來得食見毒便死此亦如是爲惡雖小妨人正行不至究竟不慮於後當受其報日復一日不肯改更不念遠離惡遂滋長是故說莫輕小惡以爲無殃也水渧雖微漸盈大器者猶如大器仰承水漏渧渧相尋溢滿其器是故說水渧雖微漸盈大器也凡罪充滿小積成者愚人習行從小至大日日翫習不覺殃至是故說凡罪充滿從小積成

5

조그만 선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복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물방울이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점점 모이면 큰 그릇을 채우니
무릇 가득한 저 큰 복도
작은 것들이 쌓인 것이다.
029_0901_b_23L莫輕小善
以爲無福
水渧雖微
漸盈大器
凡福充滿
從纖纖積
029_0901_c_02L
“조그만 선이라고 가벼이 여겨서, 복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마치 어떤 선한 사람이 절에 가서 예배하고 복을 구할 때에, 등불을 켜서 올리거나 향을 사르거나, 물을 뿌려 청소를 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더라도, 적은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또 남에게 보시할 마음을 내게 하여 한 덩이의 밥을 대중에게 공양하게 하거나, 혹은 칫솔[楊枝]과 깨끗한 물을 공급하여 청정하게 하거나 혹은 기름 등불을 켜서 계속 밝게 하는 이러한 조그만 일들도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니니, 그것은 그 마음에 의해 한량없는 복을 받기 때문이다. 등불 하나를 켜면 집안의 어둠을 몰아내어 어둠의 자취를 알지 못하고, 고운 향을 사르면 더러운 냄새를 없애어, 그 냄새의 간 곳을 모르는 것과 같다.
잘 드는 칼이 비록 작더라도 해로운 나무를 끊는 것처럼 선한 행이 아무리 작더라도 무거운 죄를 없애기 때문에 천상과 인간 세상을 왕래하면서 다시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 여기저기로 옮겨 가면서도 한량없이 복을 받는 것은 현재에도 알 수 있다. 물방울이 계속 끊이지 않고 떨어져 드디어 큰 그릇을 채우듯이, 용감한 사람은 복을 행하여 점점 그것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무릇 가득한 저 큰 복도, 작은 것들이 쌓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1_c_02L莫輕小善以爲無福者如有善人詣彼塔寺禮拜求福或上明燃燈燒香掃灑作倡伎樂懸繒幡蓋從一錢復勸前人使發施心一搏已上供養聖衆或以揚枝淨水供給淸淨脂燈續明如此小小亦不可輕依彼心識獲報無量如然一燈除舍闇冥不知冥之蹤迹如燒極微妙香盡除臭穢不知所在利劍雖小能斷毒樹此亦如是善行雖微能除重罪往來人天不更苦惱從此適彼受福無量現在可知渧渧不絕遂滿大器勇者行福漸漸成就是故說凡福充滿纖纖積

6

마치 세상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
뗏목을 튼튼히 만드는 것과 같다.
피안으로 가고자 하나 건너지 못하니
지혜로운 이라야 비로소 건넌다.
029_0901_c_16L猶如人渡河
縛筏而牢固
彼謂渡不渡
聰睿乃謂渡
029_0902_a_02L
“뗏목을 튼튼히 만드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중생들이 깊은 못을 건너려고 할 때에, 혹은 뗏목으로 건너거나 혹은 배를 타고 건너거나, 혹은 큰 배를 타거나 작은 배를 타거나 혹은 풀과 나무로 뗏목을 만들거나 하여서, 모두 무사히 피안에 이른다. 그러므로 “마치 세상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 뗏목을 튼튼히 만드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피안으로 가고자 하나 건너지 못하니”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애욕의 연못은 깊은 근원에서 흘러 나와 강을 이루는 것과 같아서, 삼계에 두루 가득 차 다시 삼계로 향해 흐르면서, 4생(生)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5도(道)를 윤회하기도 하며, 또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따위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피안으로 가고자 하나 건너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이라야 비로소 건넌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바로 벽지불(辟支佛)이다. 세상의 연못을 건넌다는 것은 그리 장할 것이 없다. 왜냐 하면 세상의 연못은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 애욕의 못을 건넌 사람이라야 비로소 장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라야 비로소 건넌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1_c_18L縛筏而牢固者猶彼衆生欲渡深淵或筏而渡或腰舩而渡或浮瓠或載小舩或草木爲筏皆得至岸而無罣是故說猶如人渡河縛筏而牢固彼謂渡不渡者謂愛淵猶如深淵流出成河彌滿世界流向三界趣四生遍五道復流至色聲香味細滑法是故說彼謂渡不渡也聰睿乃謂渡者所謂聰睿者佛辟支佛雖渡世淵不足爲奇何以故世淵無盡渡愛欲淵者乃謂爲奇是故說聰睿乃謂渡也

7

부처님은 이미 건너가셨고
범지는 나루로 건너갔으며
비구는 깊은 연못에서 목욕하고
성문은 튼튼한 뗏목을 만든다.
029_0902_a_07L佛世尊已渡
梵志渡彼岸
比丘入淵
聲聞縛牢筏

옛날 범지인 두 명의 큰 스승이 있었다. 그들은 파라리불다라(波羅利弗多羅)의 큰 성(城)을 만들었는데, 공사를 마치고 장식을 다 끝낸 뒤에, 부처님과 대중을 성안으로 청하여 공양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그 성에 있는 모든 문의 이름을 짓지 못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구담(瞿曇) 사문이 어느 문으로 나오시면 그 문을 구담의 문이라고 이름하고 또 부처님께서 긍가(恒伽)의 물을 건너시면 그 나루를 구담의 나루라고 이름하리라.’
그리고 범지는 다시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뗏목을 타고 건너시려는지, 배를 타고 건너시려는지, 큰 바가지를 띄우시려는지, 혹은 작은 배를 타고 건너시려는지 알 수 없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범지의 생각을 아시고, 곧 신력으로써 비구 대중과 함께, 어느새 물을 건너 저쪽 언덕에 계셨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029_0902_a_09L昔有兩師大梵志立波羅利弗多羅大城功夫已擧莊飾成辦便請佛及衆僧入城供養未與諸門立號梵志內心作是念若沙門瞿曇從所門出當名爲瞿曇門若復如來渡恒伽水當名彼渡爲瞿曇渡時梵志復生是念不審如來爲欲載筏渡腰舩浮瓠小舩爲載河渡爾時世尊知彼梵志心中所念卽以神力及比丘僧忽然而渡在彼岸立爾時世尊在大衆中而說此偈

부처님은 이미 건너가셨고
범지는 나루로 건너갔으며
비구는 깊은 연못에서 목욕하고
성문은 튼튼한 뗏목을 만든다.
029_0902_a_19L佛世尊已渡
梵志渡彼岸
比丘入淵浴
聲聞縛牢筏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절로 돌아가셨다.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029_0902_a_21L說此偈已各還精舍梵志聞佛所說歡喜奉行

8

이 샘물은 무엇에 쓰려는가?
그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있구나.
애욕의 근본을 빼어 버리면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
029_0902_a_23L是泉何用
水恒停滿
拔愛根本
復欲何望
029_0902_b_02L
“이 샘물은 무엇에 쓰려는가? 그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있구나”란 무슨 뜻인가?
이 3유(有)를 샘물에 비유하였고, 또 애욕을 샘물이라고도 말한다. 물이 언제나 가득 차 있다는 것은 모든 번뇌가 다 애욕의 샘물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샘물을 무엇에 쓰려는가? 그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의 근본을 빼어 버리면,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란 무슨 뜻인가?수행하는 사람이 애욕의 근본을 뽑아 버리면 다시는 생사가 없다. 마치 저 해로운 나무 뿌리를 영원히 끊어 버리면, 거기에 다시는 가지나 잎이 나지 않는 것처럼, 애욕도 그와 같아서 다시는 가지나 잎이 없다는 것이다.
“그 근본을 빼어 버리면,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란, 즉 다시는 몸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그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2_b_02L是泉何用水恒停滿者三有者假謂爲泉愛亦名爲泉水恒停滿一切諸結皆集愛泉是故說是泉何用水恒停滿也拔愛根本復欲何望者行人以能拔愛根本無復生死猶如毒樹究盡其根無復出生亦無枝葉愛亦如是無復枝葉拔其根本復欲何望更不受有更不復生是故說復欲何望也

9

저 뱃사공은 배를 손보고
활잡이는 뿔을 다루며
솜씨 좋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몸을 다룬다.
029_0902_b_11L水人調舩
弓師調角
巧匠調木
智人調身

“저 뱃사공은 배를 손보고”란 무슨 뜻인가?
뱃사공은 배의 용골대를 튼튼히 만들고, 배 안의 구멍을 막아 물이 새어 들지 않게 하여, 중생들을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네 준다.
활잡이는 짐승의 뿔이나 힘줄을 알맞게 다루고 불에 잘 구우면, 그 뿔이나 힘줄은 아무리 써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 뱃사공은 배를 손보고, 활잡이는 뿔을 다루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솜씨 좋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란 무슨 뜻인가?
먹줄을 똑바로 튀겨서 높거나 낮게 하지 않으면, 짓고 싶은 궁전이나 집을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솜씨 좋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몸을 다룬다”란 무슨 뜻인가?
항상 바른 가르침을 따라 계율을 허물지 않고, 경전의 깊은 이치를 탐구하면서 상인(上人)의 법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몸을 다룬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2_b_13L水人調舩者治牢固揨治諸孔不使漏水使衆生類從此岸得至彼岸匠修治筋角調和得所火炙筋被用不知折是故說水人調舩弓師調角巧匠調木者墨縷拼直高下齊平意欲造立宮室成就是故說巧匠調智者調身者恒以正教不毀法律搜求義味求上人法是故說智者調身也

10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
법을 듣는 마음이 그와 같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
029_0902_b_22L猶如深泉
表裏淸徹
聞法如是
智者歡喜
029_0902_c_02L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이러한 게송으로써 밝힌 까닭은,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하면 잘 알아듣기 때문이다.
어떤 샘물은 깊어도 항상 흐려 있어 맑지 않고, 어떤 샘물은 깊고도 맑아 거기에 얼굴을 비춰 보면 그 얼굴이 모두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법을 듣는 마음이 그와 같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란 무슨 뜻인가?
옛날 어떤 국왕이 세상 법률에 염증을 느끼고 세속의 일에 매우 지쳐서 절에 가서 바른 설법을 들으려고 하였다.
029_0902_b_24L猶如深泉表裏淸徹者所以說偈者以譬喩自解或有深泉不淸恒濁或復有泉深而且淸於彼自照面像悉現是故說猶如深泉表裏淸徹也聞法如是智者歡喜者
어느 날 상력(象力) 비구가 아라한으로서 마침 설법할 차례가 되었다. 그때에 그 국왕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신을 신은 채 대중 속에 들어가 설법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 아라한 비구가 왕에게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의 법에 ‘신을 신은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라고 하였소.”
왕은 잔뜩 화가 났지만 곧 신었던 신을 벗었다. 그러자 아라한 비구가 또 왕에게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또 ‘두건을 쓴 이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라고 하셨소.”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나 가만히 생각하였다.
‘아아, 나는 지금 이 비구에게 창피를 당하였다. 이 비구는 벗겨지고 하얗게 된 내 머리를 일부러 드러내게 하여, 창피를 주려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설법하여 그 말이 내 귀에 전달되지 않으면 나는 그 머리를 베리라.’
029_0902_c_06L昔有國王患世典疲倦俗業往至塔寺欲聽正時象力比丘得阿羅漢道當次說時彼國王以巾覆頭腳著履屣入衆聽法羅漢比丘告彼王曰昔佛有不得爲著屣者說法王內恚隆盛卽脫履屣羅漢比丘復告王曰昔佛如來亦說此限不得與覆頭者說法王聞是語遂興瞋恚內自思惟咄今爲此比丘所辱此比丘故當見我頭白禿故欲辱我耳若此比丘說法不入我耳者當取斫頭
왕은 곧 두건을 벗고 말하였다.
“사문은 속히 나를 위해 설법하시오.”
비구는 대답하였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또 이렇게 분부하셨소. 즉, ‘성난 이에게는 설법하지 말라’라고 하셨소. 지금 왕은 성을 내고 있는데 어떻게 설법하겠소. 왕은 부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내가 말하는 비유를 들으시오. 마치 흐린 샘물이 쉬지 않고 솟는 것처럼, 왕도 지금 그처럼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져 있는데, 어떻게 법을 들을 수 있겠소.”
029_0902_c_17L爾時國王卽卻頭覆沙門速爲我說法比丘報曰至眞等正覺亦說此教不得爲瞋恚者說法王今瞋恚何由得說法當正意聽說譬喩猶如濁泉涌沸不王今如是心意倒錯何由聞法
029_0903_a_02L그때에 왕은 마음속으로 몹시 부끄러워하며 곧 공경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틀림없이 성인이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을 살펴서 환히 아는 것이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 말하였다.
“원컨대, 거룩한 존자님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셔서 이 더러운 몸으로 하여금 영원히 그 은덕을 입게 하소서.”
그리고 왕은 자리에 앉아 법을 들으려 하였다.
그때에 비구는 왕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029_0902_c_22L時國王內自慚愧卽興敬心此比丘必是聖人乃能玄鑑通達人心卽從坐起右膝著地頭面禮足白比丘言唯願聖尊與我說法使此穢形永蒙蔭覆王卽就坐欲得聞法爾時比丘便以此偈向王說曰

마치 저 깊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은 것처럼
법을 듣는 마음이 그와 같으면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
029_0903_a_05L猶如深泉
表裏淸徹
聞法如是
智者歡喜

그리고 거듭 설법하여서 왕의 마음을 뛸 듯이 기쁘게 하였으며, 도(道)의 근본과 신심이 흔들리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기뻐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03_a_07L爾時比丘重與王說法令彼王心歡喜踊躍道根信心而不傾動是故說聞法如是智者歡喜也

11

참는 마음은 저 땅과 같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
맑기는 저 맑은 샘물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지럽지 않다.
029_0903_a_10L忍心如地
不動如安明
澄如淸泉
智者無亂

“참는 마음은 저 땅과 같고”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땅은 깨끗한 것도 받고 더러운 것도 받으면서 ‘나는 이것은 받으리라. 이것은 버리리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수행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누가 칭찬을 한다고 하여 기뻐하지 않고, 누가 비방을 한다고 하여 슬퍼하지 않으며, 선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고 악을 보고도 성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는 마음은 저 땅과 같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수미산만이 홀로 여러 산들과 같이 있으면서 사나운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것처럼, 현성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공양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맑기는 저 맑은 샘물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지럽지 않다”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맑은 샘물이 속속들이 맑아, 작은 물 때문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마음에 그릇된 생각이 없으므로 외부의 적들이 들어오지 못하며, 그 마음은 금강(金剛)과 같아서 부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맑기는 저 맑은 샘물과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지럽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수품(水品) 제18을 마친다.
029_0903_a_12L忍心如地者猶如此地亦受於淨亦受不淨地亦不作是念我當捨是受智者執行亦復如是若人嘆譽不以爲歡有毀辱者不懷憂慼見善不喜聞惡不怒是故說忍心如地也動如安明者猶如安明獨處衆山爲暴風所傾動賢聖之人亦復如是不爲闕四事心有增減是故說不動如安明也澄靜如淸泉智者無亂者如澄靜泉表裏淸徹不爲小流所嬈濁智者如是內旣無非外奸不入心如金剛不可沮壞是故說猶如澄泉者不亂也水品第十八竟
出曜經卷第十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