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의 흠을 잘 관찰하고 자기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흠이 있거니 가벼운 티끌을 날리는 것 같아라.
029_0944_b_04L善觀己瑕隙, 使己不露外, 彼彼自有隙,
如彼飛輕塵。
“자기의 흠을 잘 관찰하라”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인가? 사람은 다만 남의 잘못만 보고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 시비하고 서로 비방한다. 그것은 마치 타작 마당의 농부가 곡식을 높이 들어올릴 때 가벼운 낟알은 멀리 가고 무거운 낟알은 가까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신의 흠은 잘 관찰하고, 자기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흠이 있거니, 가벼운 티끌을 날리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기에게 흠이 없다고 말하면 두 가지 일(허물)이 한꺼번에 온다. 다만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면 언제나 해칠 마음을 품으리니 멀리는 잘 보지만 가까운 것은 보지 못한다.
029_0944_b_11L若己稱無瑕, 二事俱幷至, 但見外人隙,
恒懷危害心, 遠觀不見近。
대개 사람이 세상에 살 때는 대부분 스스로 교만하며 자기 공덕을 찬양하되 세상에 둘도 없다고 말한다. 즉 ‘내가 가진 계율과 들음과 보시와 지혜는 가장 높고 특별하여 그 짝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흠이 없다고 말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온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마치 도박하는 사람이 거스르면 이기고 순종하면 항상 지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이 덕을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자기 허물을 알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44_c_02L“다만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면, 언제나 해칠 마음을 품으리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고 다만 바깥 일, 즉 선하지 않은 법과 나쁜 근심만을 보면 나쁜 세계에 떨어지고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고통을 심는다. 그러므로 “다만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면, 언제나 해칠 마음을 품으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허공과 땅이 따로 떨어진 것처럼, 진실한 법도 보지 못하고 진실하지 않은 법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멀리는 잘 보지만 가까운 것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면 가장 오래 산다. 솔개는 탐욕 때문에 물건 덮치고 역사는 두려워하거나 꺼려 하지 않지만 그들의 목숨은 길지 못하다.
029_0944_c_05L知慚壽中上, 鳶以貪掣搏, 力士無畏忌,
斯等命促短。
“부끄러움을 알면 가장 오래 산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면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없다. 마치 사납게 날뛰는 소가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함이 없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생각을 내거나 행동할 때 아무 두려움이나 꺼리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을 알면 가장 오래 산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솔개는 탐욕 때문에 물건 덮치고”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마치 솔개가 먹이를 탐하여 만족할 줄 모르고 사람의 물건을 덮치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재물과 색을 탐하고 집착하여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솔개가 탐욕 때문에 물건 덮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역사(力士)는 두려워하거나 꺼려 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저 힘센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함이 없어서 대중 가운데서 마음대로 행동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혹 누가 꾸짖거나 충고하거나 와서 권하여 타이르면 곧 화를 내어 그의 목숨을 끊어 버린다. 그러므로 “역사는 두려워하거나 꺼려 하지 않지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의 목숨은 길지 못하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남은 업신여기고 자신은 귀히 여겨서 다만 뒤바뀐 소견으로 미혹하여 깨달을 줄 모르고, 삼보의 재물을 침략하면서 제 힘만 믿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리의 목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목숨은 길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면 그 목숨 끝없나니 한결같이 청정한 행을 구하라.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게 하려면 진실하고 청정한 목숨[壽] 관(觀)하라.
029_0944_c_22L知慚不盡壽, 恒求淸淨行, 威儀不缺漏,
當觀眞淨壽。
029_0945_a_02L “부끄러움을 알면 그 목숨 끝없나니”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인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옷이나 음식을 간절히 바라지 않고 얻은 재물이나 돈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에 만족하고 장식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세상에 목숨만 유지할 뿐으로 어떤 영화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을 알면 그 목숨 끝없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결같이 청정한 행을 구하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 행하는 바가 청정하여 삿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니,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여 위없는 행과 호응하며, 밖으로 청정하면 말을 내거나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청정한 행을 구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의에 결함이 없게 하려면”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모든 감관을 거두어 잡아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에 결함이 없게 하려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실하고 청정한 목숨 관하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나아가거나 정지하거나 가고 오거나 말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그것으로써 목숨을 기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진실하고 청정한 목숨 관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에는 장님이 가득 차 있어 진실한 눈 가진 이 아주 적구나. 새들은 모두 그물에 걸리듯이 하늘에 나는 중생 족히 말할 것 없네.
029_0945_a_12L世閒普盲冥, 有目尟尟耳, 群鳥墮羅網,
生天不足言。
“세상에는 장님이 가득 차 있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마치 장님이 좋은 색이나 나쁜 색, 평지나 언덕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덮여, 선악의 행을 보지 못하고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며, 또 희고 검은 법도 알지 못하고, 마음이 미혹하여 좋은 곳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장님이 가득 차 있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실한 눈 가진 이 아주 적구나”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즉 부처님께서 장조범지(長爪梵志)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선행을 닦는 이가 아주 적구나. 요컨대 뒤바뀐 소견을 가진 중생은 대지(大地)의 흙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처님도 알지 못하고 법도 알지 못하여 비구승도 알지 못하고 부모도 알지 못하며 또 귀천[尊卑]과 높고 낮음[高下]을 알지 못한다. 바른 소견을 가진 중생은 손톱에 끼인 흙과 같다. 그들의 소견은 비록 어긋나지 않지만 그들이 구하는 바는 같지 않나니
029_0945_b_02L마치 외도 범지 니건자(尼揵子) 등이 집을 나와 도를 배울 때 제각기 높다고 하여 책을 분별하여 해탈을 구하며 무지에 집착하고 뜻은 미혹하여 큰 도를 통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진실한 눈 가진 이 아주 적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새들은 모두 그물에 걸리듯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비유하면 마치 사냥꾼이 그물을 치고 덫을 놓아 새와 짐승을 수없이 잡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놈은 한두 마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하늘에 태어나는 중생도 그와 같다. 즉 한 사람 내지는 두 사람 정도가 하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에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옥에 들어가는 중생은 땅덩이의 흙보다 많다. 그들은 지옥에서 나와 다시 지옥에 나며, 아귀와 축생의 경우도 그와 같다. 천상에 나는 중생은 손톱 위의 흙과 같다.’” 그러므로 “새들은 모두 그물에 걸리듯이, 하늘에 나는 중생 족히 말할 것 없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의 쇠하고 멸하는 법 관찰할 때 다만 온갖 색의 변하는 것 보겠구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여 어둠 속에 겹겹이 싸여 있네.
029_0945_b_14L觀世衰耗法, 但見衆色變, 愚者自繫縛,
爲暗所纏裹。
“세상의 쇠하고 멸하는 법 관찰할 때, 다만 온갖 색의 변하는 것 보겠구나”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대개 사람이 세상에 살 때 천 가지 만 가지로 그 행이 같지 않다. 세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기세계(器世界)요, 둘째는 음세계(陰世界)며, 셋째는 중생세계(衆生世界)이다. 이른바 기세계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이고, 중생세계란 삼계의 중생들, 네 종류의 생태[胎ㆍ卵ㆍ濕ㆍ化]와 다섯 가지 세계가 그것이며, 음세계란 형상 있는 음세계와 형상 없는 음세계가 그것이다. 이 세계 가운데서 어째서 중생세계만을 쇠하고 멸하는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쇠하고 멸하는 법이란,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때문에 쇠하고 멸하는 법이라 말한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장사꾼이 먼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얻은 재물을 모두 탈취당하는 것처럼,
029_0945_c_02L이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게 겁탈을 당한다. 겁탈로 인해 선(善)의 뿌리가 끊기고 재물이 탕진되면, 사람들은 모두 그가 쇠하고 멸하는 것을 보아 안다. 그리하여 억천만 무리 속에서 벗어나는 이는 간혹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쇠하고 멸하는 법 관찰할 때, 다만 온갖 색의 변하는 것 보겠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여, 어둠 속에 겹겹이 싸여 있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행적(行跡)은 동일하지 않아 항상 두 가지 결박에 얽매여 있으니 하나는 매어부림[結使]이요 다른 하나는 음(陰)의 결박이다. 이 두 가지에 결박됨으로써 무명에 덮여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하지 않고 차례를 넘어 진리를 증득하면, 번뇌가 다하여 무루(無漏)를 성취할 것이다. 마치 죄를 범한 사람이 감옥에 갇혀 해와 달의 광명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 중생들도 그와 같다. 무명의 어두운 방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결박되어, 해탈을 구하려 하지만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여, 어둠 속에 겹겹이 싸여 있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어떤 공덕행도 볼 수 없기에 아무리 관찰해도 한 가지 선도 없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성품으로써 관찰할 때 공덕의 근본을 도무지 볼 수 없고, 또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그 어려움을 면하게 해주려 하여도 그것을 면할 만한 하나의 선근(善根)도 없다. 마치 어떤 사람이 깊은 뒷간에 빠져 온몸에 똥물을 뒤집어썼을 때, 자비스런 사람이 그 곤욕을 구제해 주기 위해 깨끗한 곳을 찾아 손으로 잡으려고 두루 살펴보았으나, 한 곳도 깨끗한 곳이 없기 때문에, 그만 버려 두고 가버리는 것과 같다. 번뇌를 없앤 사람이 중생을 관찰하면서, 혹 털끝만한 선의 근본이라도 있어서 그를 고칠 수 있는가 하고 두루 관찰하였으나 고칠 만한 선의 근본이라곤 조금도 없을 때에 그 성인은 생각하기를 ‘아, 모두 쇠하고 사그러진 무리들, 그 죄가 이처럼 중하구나’라고 한다. 그러므로 “또 어떤 공덕행도 볼 수 없기에 아무리 관찰해도 한 가지 선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생들 모두 나[我]가 있다 하나니 그 때문에 거기서 근심 생긴다. 하나하나 서로들 보지 못하고 삿된 소견의 가시도 보지 못한다.
029_0946_a_02L衆生皆有我, 爲彼而生患, 一一不相見,
不睹邪見刺。
“중생들 모두 나가 있다 하나니, 그 때문에 거기서 근심이 생긴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그 성질이 모두 전도된 소견을 가지고 있어서 중생들은 내가 만든 것이요 나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하며, 또 다른 설에는 다른 이로부터 생겨나고 다른 것을 좇아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모두 나가 있다고 하나니, 그 때문에 거기서 근심이 생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하나 서로들 보지 못하고, 삿된 소견의 가시도 보지 못한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하나란 이른바 외도 범지들이니, 그들은 바른 소견을 생각하지 못하고 삿되고 뒤바뀐 소견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하나 서로들 보지 못하고, 삿된 소견의 가시도 보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가시의 인연을 관찰하건대 중생들의 집착에서 생겨난다. 내가 만든 것이어니 저들의 소유 아니며 저들이 만든 것이어니 나의 소유 아니다.
029_0946_a_12L觀此刺因緣, 衆生所染著, 我造彼非有,
彼造非我有。
“이 가시의 인연을 관찰하건대”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가시란 삿된 소견의 가시요, 인연이란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人道)ㆍ천도(天道)이다. 이들은 제각기 달라 그 심은 바가 같지 않다. 그러므로 “그 가시의 인연을 관찰하건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생들의 집착에서 생겨난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외도들은 밤낮으로 허덕이면서 제각기 스스로 진실이라 생각하고 삿되고 뒤바뀐 소견을 믿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중생들의 집착에서 생겨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만든 것이어니 저들의 소유 아니며, 저들이 만든 것이어니 나의 소유 아니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저들은 제각기 옳다고 생각하여 서로 간섭하고 중생들은 내가 만든 것이어니 저들의 소유가 아니라고 하고, 또 저들이 만든 것이어니 나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만든 것이어니 저들의 소유 아니며, 저들이 만든 것이어서 나의 소유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생들은 교만에 얽매여 있고 또 그 교만에 물들어 있으며 또한 견해에 미혹되어 있어 생사의 끝을 벗어나지 못한다.
029_0946_b_02L衆生爲慢纏, 染著於憍慢, 爲見所迷惑,
不免生死際。
“중생들은 교만에 얽매여 있고, 또 그 교만에 물들어 있으며”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들은 그 성질이 교만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대중 가운데서 가장 높고 제일 으뜸이 된다. 종족이나 덕망이나 집이나 토지나 종이나 재산으로는 나에게 미칠 자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굳게 믿어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교만에 얽매여 있고, 또 그 교만에 물들어 있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견해에 미혹되어 있어, 생사의 끝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저들은 상견(常見) 즉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는 견해에 집착하여, 단견(斷見) 즉 사람의 몸과 마음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는 견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단견에 집착하여 상견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사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한 견해에 미혹되어 있어, 생사의 끝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이르렀고 장차 이를 것이라 하면 저 둘은 똑같이 번뇌를 받으리라. 그 병의 근본을 익혀 배우고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울지어다.
029_0946_b_13L以逮及當逮, 二俱受塵垢, 習於病根本,
及學諸所學。
계율을 지키는 모든 사람을 관찰하고 범행이 깨끗한 사람들을 관찰하며 병들어 앓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면 그런 이를 변제(邊際)에 이르렀다 한다.
029_0946_b_15L觀諸持戒者, 梵行淸淨人,
瞻視病瘦者, 是謂至邊際。
세상의 중생들은 삿된 소견을 가진 마음이 왕성하여 애욕에 대한 탐착을 버리지 못하다가, 욕심을 깨끗이 하고 청정한 것을 즐겨 익히면 거기서 그만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 스스로 고치지 못한다. 이것을 두 번째의 변제(邊際)라 하고, 또한 그것은 현인들이 여러 가지 집착을 늘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이르렀고 장차 이를 것이라 하면”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쌓임[陰]을 얻고 감관[入]을 가지는 이도 있고, 쌓임이나 감관을 가지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 둘은 똑같이 번뇌를 받으리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첫째 삿된 소견의 번뇌요, 둘째는 애욕의 번뇌이다. 이 번뇌의 부림을 받아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 둘은 똑같이 번뇌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46_c_02L“그 병의 근본을 익혀 배우고”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다른 수행을 하는 외도들이 바로 그들이니, 그들은 기술을 배워 스스로 영화를 누린다.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울지어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여러 중생들은 기술을 배워 말타기와 수레를 모는 등 온갖 기술을 다 갖추고, 그런 행을 갖춘 이는 모두 해탈을 얻는다. 그러므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울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율을 지키는 모든 사람을 관찰하고”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범지들은 계율을 받들어 지킨다. 까마귀의 계율을 지켜 까마귀처럼 소리를 내고 혹은 머리 벗겨진 올빼미의 계율을 지켜 때때로 꿇어앉아 꾸벅거리면서 올빼미의 소리를 내며, 혹은 사슴의 계율을 지켜 사슴의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는 모든 사람을 관찰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범행이 깨끗한 사람들을 관찰하며”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달리 수행하는 외도들은 저희들끼리 말하기를 “청정한 행을 원만히 행하는 자는 해탈을 얻어 청정한 곳에 이르게 된다. 또 불ㆍ해ㆍ달ㆍ신기한 구슬ㆍ약초ㆍ옷ㆍ궁전ㆍ집 따위를 섬기면 열반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을 첫 번째의 변제(邊際)라고 한다. 이 세상의 어떤 중생은 삿된 소견의 마음이 왕성하여 애욕에 탐착하고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애욕을 청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외인(外人)들은 그것을 익혀 간다. 이렇게 애욕을 범하여 틈을 보이지 않나니, 이것을 여러 현인들의 여러 가지 집착을 늘리는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은 역시 생사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눈이 있는 이는 본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눈이 있는 이란 바로 모든 불세존(佛世尊)을 말한 것이니, 그분들을 믿고 잘 관찰하면 생사의 흐름이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눈이 있는 이는 본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알면 거기에 더러워지거나 집착하지 않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한다.
마땅히 물 위의 거품이라 관찰하고 또 허깨비나 아지랑이라 관찰하라. 이와 같이 이 몸에 대해 관심 두지 않으면 역시 죽음의 왕을 만나지 않으리.
029_0946_c_20L當觀水上泡, 亦觀幻野馬, 如是不觀身,
亦不見死王。
029_0947_a_02L “마땅히 물 위의 거품이라 관찰하고, 또 허깨비나 아지랑이라 관찰하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몸은 물 위의 거품과 같아서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옛날 어떤 국왕은 그 딸을 못내 사랑하여 잠깐도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때마침 비가 내려 물 위에 거품이 생겼다. 딸은 그것을 보고 매우 좋아하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저 물거품을 가져다가 머리에 쓰는 화만(花鬘)을 만들고 싶습니다.”
왕은 딸에게 말하였다. “저 물거품은 손으로 잡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것으로 화만을 만들겠는가?” 딸은 다시 말했다. “만일 저것을 가지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버리고 말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장식품 만드는 사람들을 불러 명령하였다. “너희들의 묘한 솜씨라면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을 터이니, 저 물거품을 가져다가 내 딸의 화만을 만들라.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너희들의 목을 베리라.” 그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은 물거품으로 화만을 만들 수 없나이다.”
그 중의 한 늙은 장인(匠人)이 스스로 그 거품을 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왕을 위해 물거품으로 화만을 만들겠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딸에게 말하였다. “지금 어떤 사람이 물거품으로 화만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네가 직접 가서 구경해 보라.” 딸은 왕이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가 구경하였다. 그때 늙은 장인이 왕의 딸에게 말하였다. “나는 원래 물거품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줄 모릅니다. 왕녀께서 직접 집어 주시면 제가 그것으로 화만을 만들겠습니다.”
029_0947_b_02L왕녀는 곧 물거품을 집었다. 그러나 집자마자 거품은 곧 부서져 집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종일토록 하나도 집지 못하였다. 왕녀는 매우 피로하여 그것을 버리고 돌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물거품은 허망한 것으로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나이다. 원컨대 대왕은 나를 위해 자마금(紫磨金)으로 화만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것으로 만들면 밤이고 낮이고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 물 위의 거품이란 사람의 눈을 속이고 홀리는 것으로서, 비록 그 형상과 바탕은 있지만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것이요, 왕성한 불꽃이나 아지랑이도 또한 그와 같다. 사람은 목마름 같은 애욕으로 피로해져서 그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허망한 것으로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으며, 또한 닳아서 없어지는 것으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자꾸만 변한다. 그리하여 죽음의 왕을 만나지 않고 세상에 사는 것이 얼마 동안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물 위의 거품과 같다고 관찰하고, 또 허깨비나 아지랑이와 같다고 관찰하라. 이와 같이 이 몸에 관심두지 않으면 죽음의 왕을 만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땅히 물 위의 거품이라 관찰하고 또 허깨비나 아지랑이라 관찰하자. 이와 같이 세상을 아니라고 관찰하면 죽음의 왕을 만나지 않으리.
029_0947_b_03L當觀水上泡, 亦觀幻野馬, 如是不觀世,
亦不見死王。
“세상을 아니라고 관찰하면”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다섯 가지 쌓임으로 된 이 몸은 오래지 않아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쌓임의 몸을 없다고 보면 죽음의 왕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029_0947_b_05L不觀世者,五盛陰身如是不久當復消滅,設能滅此五陰身者,不與死王相見也。
13
이와 같이 이 몸을 잘 관찰하라. 마치 온갖 색의 왕의 수레 같다. 무지한 사람은 거기 집착하나니 그것 여의기를 잘 구하라.
029_0947_b_08L如是當觀身, 如王雜色車, 愚者所染著,
善求遠離彼。
“이와 같이 이 몸을 잘 관찰하라. 마치 온갖 색의 왕의 수레 같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온갖 색으로 장엄한 왕의 수레가 비록 형상과 색은 있지만 든든하지 못하여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이 몸을 잘 관찰하라. 마치 온갖 색의 왕의 수레와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지한 사람은 거기 집착하나니, 그것 여의기를 잘 구하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무지한 사람은 몸에 탐착하여 그것을 즐기고 익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 버리기를 마치 똥을 버리는 것과 같이 한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은 거기에 집착하나니, 그것 여의기를 잘 구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몸을 잘 관찰하라. 마치 온갖 색의 왕의 수레와 같다. 무지한 사람은 거기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멀리 여읜다.
029_0947_b_17L如是當觀身, 如王雜色車, 愚者所染著,
智者遠離之。
지혜로운 사람은 동요하는 마음을 알아 즐거움을 원하지 않고 늘 여의려고 하는데, 마치 화재를 피하는 것같이 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멀리 여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47_b_19L智人知動搖,心不願樂,常意欲遠離如避火災,是故說曰,智者遠離之。
15
이와 같이 이 몸을 잘 관찰하라. 그것은 온갖 병의 원인이다. 병과 어리석음이 한데 어울린 것이니 어떻게 그것을 믿고 의지하리.
029_0947_b_21L如是當觀身, 知病之所因, 病與愚合會,
焉能可恃怙?
029_0947_c_02L 사람이 어머니 태에서 나오면 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병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으며 얼굴이 예쁠 수도 있고 미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이 몸을 잘 관찰하라. 그것은 온갖 병의 원인이다. 병과 어리석음이 한데 어울린 것이니, 어떻게 그것을 믿고 의지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땅히 그림에 그려진 형상을 보되 마니의 감청색 털처럼 보라.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인연하여 저 언덕으로 건너기를 구하지 않는다.
029_0947_c_03L當觀畫形像, 摩尼紺靑髮, 愚者以爲緣,
不求越彼岸。
“마땅히 그림에 그려진 형상을 보되 마니의 감청색 털처럼 보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온갖 향기가 풍기는 목욕물에 머리를 감고 온갖 향기 나는 물로 목욕하면 그 향기가 멀리 퍼진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림에 그려진 형상을 보되 마니의 감청색 털처럼 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인연하여, 저 언덕으로 건너기를 구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얽매여 멀리 떠나지 못하고, 교묘한 방편이 없어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한다. 이른바 저 언덕이란 번뇌가 아주 없어진 니원(泥洹)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인연하여, 저 언덕으로 건너기를 구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땅히 그림에 그려진 형상을 보되 마니의 감청색 털처럼 보라.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인연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싫어한다.
029_0947_c_12L當觀畫形像, 摩尼紺靑髮, 愚者以爲緣,
智者所厭患。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고 잘 관찰하며 깊이 생각하고 잘 헤아려, 그것을 생각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싫어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47_c_14L智慧之人,分別妙觀思惟挍計,不興想著,是故說曰,智者所厭患。
18
애써 채색으로 형상을 그리고 추하고 더러운 몸 장엄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인연하여 스스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029_0947_c_16L强以彩畫形, 莊嚴醜穢身, 愚者以爲緣,
亦不自求度。
029_0948_a_02L 옛날 어떤 호족(豪族)의 집에 재물과 보배가 많이 있었으니 일곱 가지 보배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 장자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젊은 도인들은 아직 정욕을 끊지 못하였다. 내 이제 그들을 청해 집에 있게 하고, 여러 부녀자들로 하여금 음식을 받들어 공양하게 하면 누가 정욕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고 곧 절에 가서 여러 젊은 도인들을 청하여 장자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부녀자들에게 새 옷을 갈아입히고 장엄하게 꾸며 모두 나와 예배하고 공경하게 하였다. 그때에 6신통을 가진 어떤 아라한이 금세 장자의 뜻을 알아차리고 곧 죽은 사람의 해골로 변하여 살과 피가 모두 사그라지고 두개골과 손과 다리가 각기 흩어진 모습으로 있었다. 그때에 그 아라한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부디 마음을 오로지 하여 세상을 벗어나기를 구할 것이요 여색을 보고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장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감응하는 것을 보고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면서 마음으로 제 자신을 꾸짖었다. 스스로 잘못한 것을 깨달아 온몸을 땅에 던져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나는 이제야 법의 미묘함을 알았습니다.” 여자들은 제각기 부끄러워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에 그 아라한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법은 넓고 넓어 끝이 없소. 그대는 지금 범부의 지혜로 성인을 헤아리려 하지만 그것은 바른 도리가 아니오. 마치 주먹만한 흙덩이로 수미산에 견주려 하는 것과 같고, 한 되나 한 홉의 그릇으로 바닷물을 되 보려는 것과 같소.” 이렇게 말하고는 이어 게송을 설하였다.
탐욕에 집착하고 탐욕에 물들어 번뇌[結使]의 인연을 끝까지 보지 않네. 그 번뇌를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욕유(欲有)의 흐름을 건너야 한다.
029_0948_a_18L著欲染於欲, 不究結使緣, 不以生結使,
當度欲有流。
029_0948_b_02L “탐욕에 집착하고 탐욕에 물들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세상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그 뜻과 취미가 같지 않아서, 혹은 탐욕이 적은 이도 있고 혹은 마음이 치우쳐 탐욕이 많은 이도 있다. 그래서 탐욕이 치우쳐 많은 이는 현성의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탐욕에 집착하고 탐욕에 물들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번뇌의 인연을 끝까지 보지 않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탐욕과 질투와 간탐의 번뇌는 모든 병 중에서도 중한 것으로서, 골수에 박혀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억만의 재물을 쌓아 두고도 보시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목숨을 마칠 때가 되면 한푼도 가져가지 못한다. 중생으로서 탐욕과 질투를 일삼으면 그 몸에는 위신이 없고 마침내는 빈궁하게 되며, 친척들과도 화목하지 못하고 또 남의 무시를 당한다. 그러므로 “번뇌의 인연을 끝까지 보지 않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번뇌를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욕유의 흐름을 건너야 한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흐름에는 네 가지가 있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욕류(欲流)요, 둘째는 유류(有流)며 셋째는 무명류(無明流)요, 넷째는 견류(見流)니, 중생들은 모두 이 네 가지 흐름 때문에 생사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번뇌에 떠다니면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면 반드시 다섯 갈래의 나쁜 길을 헤매며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 번뇌를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욕유의 흐름을 건너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와 일체에 욕심 없는 일 이것을 살피어 크게 관(觀)하라.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도 그렇게 하면 해탈할 수가 있다.
029_0948_b_12L上一切無欲, 當察此大觀, 如是有解脫,
本所未度者。
029_0948_c_02L “위와 일체에 욕심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위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말한 것이요, 욕심이란 욕계(欲界)를 말한 것이다. 이 세 종류의 세계에서 세 가지 독(毒)이 없으면 영원히 해탈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와 일체에 욕심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살피어 크게 관하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은 바로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이다. 부처님에게는 네 종류의 제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 아라한이 제일 훌륭하고 높으며 귀하고 제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살피어 크게 관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해탈할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인은 행을 닦을 때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 네 가지 흐름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 다시는 몸과 입의 행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면 해탈할 수가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도”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옛날부터 겪던 생사의 어려움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방편을 구해 세 세계를 건너 다시는 존재의 몸을 받지 않는, 네 가지 요소로 된 몸을 짓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동산을 비난하고 거기서 나왔다가 다시 그 동산에 들어가는 것처럼 저런 사람들 자세히 관찰해 보자. 결박에서 벗어났다 다시 묶이는구나.
029_0948_c_03L非園脫於園, 脫園復就園, 當復觀此人,
脫縛復就縛。
옛날 부처님께서 석시수가유라갈국(釋翅搜迦維羅竭國)의 니구류(尼拘類) 동산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밥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시자 아난(阿難)을 데리고 가유라갈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그때 동자(童子) 난타(難陀)가 높은 누각 위에 있다가, 멀리서 부처님이 성에 들어와 걸식하시는 것을 보고 급히 누각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의 성은 이 나라에서 큰 종족으로서 앞으로 전륜성왕이 되실 것이온데 왜 스스로 욕되게 발우를 들고 다니면서 걸식하시나이까?”
그리고 난타는 여래의 발우를 받아 가지고 안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담아 드리려 하였다. 난타가 집에 들어간 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니구류 동산으로 가겠다. 난타가 나오면 발우를 받지 말고 난타에게 ‘그대가 직접 그 발우를 가지고 여래께 가라’고 말하라.” 난타는 그 분부를 받고 부처님 뒤를 따라 발우를 가지고 갔다. 아내도 또 난타의 뒤를 따라오면서 말하였다. “오래 있지 말고 빨리 돌아오십시오. 당신이 와야만 밥을 먹겠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아내는 다시 난타에게 부탁하였다. “지체하지 말고 곧 돌아오십시오.” 이렇게까지 간절히 부탁한 까닭은 혹 난타가 도를 배우려고 집을 버리고 나갈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난타는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손수 발우를 받들어 여래께 드리면서 말하였다. “빨리 받아 주소서. 나는 지금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나이다.”
029_0949_a_02L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집을 버리고 수염을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으라. 무엇 때문에 다시 집으로 가려 하는가?” 그때에 여래께서 위신(威神)의 힘으로 난타를 재촉하여 집을 떠나 도를 닦으라 하며 조용한 방에 두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뒤에 난타의 당직 차례가 되었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당직이 되어 일이 조용하게 되었다. 이 한가한 때를 틈타 도망쳐 집으로 돌아가리라. ’ 그때 난타는 당직을 맡고는 물을 길어다 땅을 쓰는 등 낱낱이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다 하였다. 그때에 천신(天神)이 난타를 호위하였는데, 물을 길어다 통에 가득 채우면 통이 저절로 뒤집혀 물이 땅에 쏟아지고, 풀과 티끌이 다시 지저분하게 더럽히고, 문을 닫으면 곧 저절로 열리곤 하였다.
난타는 생각하였다. ‘우리 집안은 왕족으로서 재물과 보배가 많아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지금 집으로 도망쳐 가리라. 혹 잃어버리는 물건이 있더라도 다른 물건으로 보상해 주면 되지 않겠는가. 이제 지름길로 몰래 가자. 큰길로 가다가는 틀림없이 여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난타는 세 가지 법의를 벗어버리고 흰 옷으로 갈아입고는 어디론가 떠났다. 얼마 가지 않아 저쪽에서 오는 여래를 만나게 되었다. 난타는 부처님을 뵙게 되자 큰 나무 있는 곳으로 달아나 숨으려 하였다. 여래께서는 신력으로 그 큰 나무를 난타 뒤에 있게 하였다. 난타는 당황해 하면서 몸 둘 곳이 없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자 여래께서 다시 신력으로 그 큰 나무를 뽑아 허공에 매달아 놓았다.
그때에 난타는 나무 뿌리가 빠진 곳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여래께서 그 곳으로 가서 만나 보고 말씀하셨다. “난타여, 왜 여기까지 왔느냐?” 난타는 부끄러워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여래께서 재삼 난타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난타는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집에 돌아가 아내를 보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도를 배우면서 마음이 전일하지 못하고 욕심에 탐착하면, 그것은 후세의 몸을 태우는 재앙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이어 게송을 설하셨다.
동산을 비난하고 거기서 나왔다가 다시 그 동산에 들어가는 것처럼 저런 사람들 자세히 보라. 결박에서 벗어났다 도로 묶이는구나.
029_0949_a_23L非園脫於園, 脫園復就園, 當復觀此人,
脫縛復就縛。
029_0949_b_02L
“나는 지금 너를 데리고 천상을 구경하러 갈 것이니, 너는 마음을 가다듬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신통의 힘으로써 손으로 난타를 붙잡고 천상에 데리고 올라가 일곱 가지 보배로 된 한 궁전을 보여 주었다. 그 궁전은 금과 은으로 아로새겨졌으며 미녀와 시종들도 이루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모두 여자 뿐이고 남자는 없었으며 또 그 여자들은 남편도 없었다. 그때에 난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것은 어떤 하늘의 궁전이기에 즐겁기 비할 데 없습니까? 일곱 가지 보배로 된 전각에서는 거문고와 비파를 뜯는 소리가 나고 서로 이렇게 노래하며 즐기는 것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하였나이다. 그리고 저 천녀들은 왜 그 남편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저의 의심을 풀어 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직접 저들에게 가서 실정을 물어 보라. 저들은 너에게 사실을 말해 줄 것이다.” 난타는 분부를 받고 천궁으로 가서 천녀들에게 그 사실을 물었다. “너희 천녀들은 자연의 복을 받아 일곱 가지 보배로 된 궁전에서 다섯 가지 음악으로 서로 즐기는데, 너희들의 남편은 어디 있는가?” 천녀들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모르십니까? 염부리지(閻浮利地)의 가유라갈국(迦維羅竭國)에 계신 석가문(釋迦文)부처님의 사촌동생[竝父弟] 난타는, 목숨을 마친 뒤에 여기 태어나 이 천궁에 살 것입니다. 그 이가 바로 우리 남편입니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기뻐하였다. “지금 그대들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나다.”
029_0949_c_02L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돌아가 사정을 자세히 아뢰었다. “저 궁전의 미녀와 시종들은 모두 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행을 잘 닦아라. 그렇게 하면 오래지 않아 반드시 여기에 와서 저절로 그런 복을 받을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신통의 힘으로써 손으로 난타를 붙잡고 지옥으로 데리고 가셨다. 마침 철위산(鐵圍山) 곁을 지나다 한 마리의 애꾸 원숭이를 보았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내 손타리(孫陁利) 부인을 저 애꾸눈 원숭이와 비교하면 어떤가?”
난타는 아뢰었다. “그만두소서. 세존이시여, 다시는 그런 말씀하지 마소서. 어떻게 이것을 그 사람에게 비교하겠나이까? 손타리는 여자 중에서도 꽃답고 아름다우며, 육십네 가지 기술을 가져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나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애꾸눈 원숭이를 손타리에 비교하는 것보다 손타리를 저 천녀들에게 비교하면, 천녀들은 억천만 배나 더 훌륭하여 비유로써 비교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 세존께서 다시 난타를 붙들고 지옥으로 데리고 가서, 고문과 매질로 모진 고통을 받는 지옥 중생들을 보이셨다. 8대지옥(大地獄)에서 죄인들을 삶고 있었다. 한 큰 지옥은 열여섯 작은 지옥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도산(刀山)지옥ㆍ검수(劍樹)지옥ㆍ화거(火車)지옥ㆍ노탄(爐炭)지옥ㆍ소자(燒炙)지옥ㆍ삶는 지옥 따위의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큰 가마솥이 하나 있었고 그 주위를 옥졸이 둘러 서 있었다. 물이 끓고 불꽃은 왕성한데 죄인은 보이지 않았다. 난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지옥에는 모두 죄인이 있는데 어째서 이 가마솥에는 죄인이 보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직접 가서 저 옥졸들에게 물어 보아라. 그들이 너에게 그 내력을 말해 줄 것이다.” 그때에 난타는 그 분부를 받고 옥졸들에게 가서 물었다. “이것은 어떤 가마솥인데 죄인이 없는가?”
029_0950_a_02L옥졸이 대답하였다. “저 염부리지(閻浮利地)에 있는 진정왕(眞淨王:정반왕)의 아들이 도를 이루었는데, 그 아버지의 아우인 감로왕(甘露王)의 아들 난타는 사람됨이 방탕하여 음욕이 많으며, 스스로 귀족임을 믿고 만민(萬民)을 업신여깁니다. 그러므로 그가 목숨을 마친 뒤에 이 가마솥에 들어가 여러 겁을 지낸 뒤에야 여기서 벗어날 것입니다.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사정은 이러합니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면서 몸이 떨리고 안색이 변하였다. 그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그러하나이다. 천상 인간의 스승이시며 삼계(三界)의 큰 보호자시여, 지금 이런 변화를 보니 더욱 두렵습니다.” 잠시 후 그는 부처님 앞에서 다음 게송을 읊었다.
이제 저 천상의 자리도 버리고 생사의 근본도 짓지 않을 것이며 지옥의 고통을 떠나기 바라오니 번뇌 없는 열반을 말씀해 주소서.
029_0950_a_03L今捨天上位, 不造生死本, 求離地獄苦,
願說泥洹滅。
그때에 세존께서 난타를 위해 미묘한 법을 연설하시어 함이 없는[無爲] 경지에 있게 하시고, 다시 도량(道場)으로 가게 하시려고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029_0950_a_05L爾時,世尊漸與難陁說微妙法,安處無爲令至道場。
푸른 옷 입고 흰 일산 받쳐 들고 어자(御者)가 한 수레 몰고 가더라도 조그만 번뇌라도 있는 것 보거든 영원토록 결박과 집착을 끊기 구하라.
029_0950_a_07L靑衣白蓋覆, 御者御一輪, 觀彼末塵垢,
永便斷縛者。
22
많은 사람들 스스로 귀의할 곳 구하여 산이나 물이나 나무의 귀신[神]이나 동산이나 혹은 귀신 사당에서 온갖 근심과 괴로움 면하기를 구하네.
029_0950_a_09L人多求自歸山, 川樹木神,
園觀及神祠, 望免苦患難。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그 뜻이 미욱하여 깨닫지 못하면 어디를 가서 기도하거나 제사지내더라도 그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다. 옛날 월지국(月支國)에 악소(惡少)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이 천하의 왕이 되어 모든 나라를 항복받았다. 그 어머니는 왕에게 당부하였다. “왕은 비록 죽을 처지에 놓이는 일이 있더라도 부디 불사(佛寺)를 왼쪽으로 돌지 말고 항상 오른쪽으로 돌기를 기억해 두시오. 부디 내 당부를 어기지 마시오.” 이때에 악소왕은 군사를 크게 일으켜 순서성(純西城)을 공격하였다. 손수 큰 칼을 잡고 3억 명이나 죽였다. 그러나 4억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5억을 채우려고 하였으나 뒤에 싸움이 불리하게 되어 코끼리를 타고 달아났다. 마침 부처님의 탑[佛圖]을 보고는 그 어머니의 당부를 생각하고, 곧 코끼리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적군은 그것을 보고는 모두 항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왕은 적군이 돌아간 것을 보고, 군사를 거두어 그 뒤를 쫓아가 적군을 부수고 그 왕을 사로잡았다. 왕은 스스로 부처님 말씀을 생각하였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어서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그리고 또 만일 내가 오른쪽으로 돌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 적군을 쳐부수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까닭에 그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 의지할 곳 구하여 산이나 물이나 나무의 귀신이나 동산이나 혹은 귀신을 모신 사당에서 온갖 근심과 괴로움 면하기를 구하네.
029_0950_a_22L人多求自歸, 山川樹木神, 園觀及神祠, 望免苦患難也。
029_0950_b_02L 저것은 훌륭한 귀의(歸依)가 아니요 또 길(吉)하고 유익한 귀의도 아니다. 아무리 그렇게 귀의하여도
그것으로 모든 고통 벗어나지 못한다.
029_0950_a_24L此非自歸上, 亦非有吉利, 如有自歸者,
不脫一切苦。
만일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과 비구 대중에 스스로 귀의하며 네 가지 진리를 닦아 익히면 그것은 지혜로운 소견이니라.
029_0950_b_03L若有自歸佛, 歸法比丘僧,
修習聖四諦, 如慧之所見。
괴로움의 인(因)에서 그 연(緣)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괴로움의 근본을 끊어라. 현성의 거룩한 여덟 가지 길은 멸진(滅盡)과 감로(甘露)의 끝이니라.
029_0950_b_04L苦因苦緣生,
當越此苦本, 賢聖八品道, 滅盡甘露際。
23
이것이 훌륭한 귀의가 되고 또 길하고 유익한 귀의니라. 만일 이렇게 스스로 귀의하면 어떠한 괴로움도 벗어나리라.
029_0950_b_05L是爲自歸上, 非不有吉利, 如有自歸者,
得脫一切苦。
사람이 도를 닦을 때는 오직 믿음과 계율이 있을 뿐이다. 만일 믿음의 뿌리가 완벽해지면 계율이 무너지지 않는다. 만일 어떤 중생이든 이 삼보에 귀의하기만 하면 어떤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 그리하여 신과 사람[天人]의 공양을 받고 스스로 도를 이룰 수 있으며, 또 영겁의 복을 받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믿을 곳이 없으면 그것은 마치 나무의 뿌리가 없는 것과 같으니, 만일 의지할 곳이 있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관찰하고 이미 관찰하며 장차도 관찰하라. 관찰하지 않았으면 마땅히 관찰해야 하고 관찰하고서도 또다시 되풀이해 관찰하며 이미 관찰하였으면 다시 관찰하지 말라.
029_0950_b_12L觀以觀當觀, 不觀亦當觀, 觀而復重觀,
觀而不復觀。
029_0950_c_02L 관찰이라고 말한 것은 고(苦)ㆍ습(習:集)ㆍ진(盡:滅)ㆍ도(道)의 네 가지 진리를 관찰한다는 말이다. 행을 닦는 사람은 이미 고ㆍ습ㆍ진ㆍ도의 네 가지 진리를 관찰해야 한다. 관찰한다[觀]는 것은 현재를 관찰한다는 말이고, 이미 관찰했다[以觀]는 것은 과거를 관찰한 것이며, 장차 관찰할 것이라는 것은 미래를 관찰하라는 말이다. 번뇌[塵勞]를 일으키는 것은 다 이 세상을 말미암아 생겨난다. 그래서 생사에 떨어져 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찰하고 이미 관찰하고 장차도 관찰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관찰하지 않았으면 마땅히 관찰해야 하고”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관찰하지 않았다는 것은 고ㆍ습ㆍ진ㆍ도를 관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관찰하되 깊이 살펴 분명하게 밝히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ㆍ습ㆍ진ㆍ도의 네 가지 진리를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찰하지 않았으면 마땅히 관찰해야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관찰하고서도 또다시 되풀이해 관찰하며”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진실로 고ㆍ습ㆍ진ㆍ도를 잘 분별하고 낱낱이 생각해 그 이치를 끝까지 통달하라는 것이다. “이미 관찰하였으면 다시는 관찰하지 말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미 관찰하였고 이미 알았으면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미 관찰하였으면 다시는 관찰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관찰하고 되풀이해 또 관찰하여 그 성품의 근본을 분별하라. 낮을 헤아려 밤이라 생각하면 보배의 몸도 무너져 오래가지 못하리.
029_0950_c_03L觀而復重觀, 分別彼性本, 計晝以爲夜,
寶身壞不久。
“관찰하고 되풀이해 또 관찰하여”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관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재물을 관찰하는 것이요, 둘째는 최상의 진리[第一義]를 관찰하는 것이다. 재물을 관찰하는 것은 번뇌[結使]를 늘리는 것이요, 최상의 진리는 번뇌[有漏]를 없애고 번뇌 없는 행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찰하고 되풀이해 또 관찰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성품의 근본을 분별하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혹 사람은 그 성품과 행이 같지 않고 여러 나라의 법도 일정하지 않다. 성인은 거기서 그것을 낱낱이 분별한다. 그리하여 혹은 그것을 깨닫는 이도 있고 깨닫지 못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깨닫기도 하고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또 중생들은 그 깨닫는 성품이 더딘 이도 있고 빠른 이도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들을 도로써 가르치나니, 더더욱 힘써 수행하되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성품의 근본을 분별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낮을 헤아려 밤이라 생각하면”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중생들의 성품과 행이 동일하지 않아, 선한 일을 생각하는 이도 있고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않는 이도 있다. 그러므로 “낮을 헤아려 밤이라 생각하면”이라고 말한 것이다. “보배의 몸도 무너져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 세상의 재물은 세상의 평범한 법으로서 온종일 모아 쌓아 두어도 결국엔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근기가 선한 사람의 재물은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율책에 이르기를 ‘마땅히 보배롭지 않은 몸은 보배로운 몸과 바꾸고, 보배롭지 않은 재물은 보배로운 재물과 바꾸며, 보배롭지 않은 목숨은 보배로운 목숨과 바꾸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보배의 몸도 무너져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관찰해도 되풀이해 관찰하지 않으면 비록 보았다 해도 본 것 아니다. 만일 보았어도 본 것 아니면 관찰하고도 보지 못한 것이다.
029_0950_c_22L觀而不重觀, 雖見亦不見, 如見而不見,
觀而亦不見。
029_0951_a_02L “관찰해도 되풀이해 관찰하지 않으면”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미묘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도인은 관찰하여 저 수행하는 사람은 미묘한 관찰이 없이도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선정을 닦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관찰을 얻은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관찰을 얻지 못한 사람이다. 또 어떤 도사(導師)는 수행하는 사람을 관찰하여, 거룩한 진리에 상응하는 사람이 있고, 혹은 두루 관찰하지 않아서 거룩한 진리에 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관찰해도 되풀이해 관찰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록 보았다 해도 본 것 아니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사람은 많이 생각하고 도의 행을 닦아 익히며 또 오랜 과거의 세상 일을 관찰하여 그것을 통달하는 이도 있고 통달하지 못하는 이도 있는데, 어떤 이는 낱낱이 분별하여 조금도 뒤섞임이 없다. 그러므로 “비록 보았다 해도 본 것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보는 것과 보지 않음 어떤 것인가. 무엇을 보고 보지 않은 것이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보고 보지 않음이라 말하며 무엇을 봄으로써 해탈하는가.
029_0951_a_10L云何見不見? 何說見不見? 因何見不見?
因爲出何見。
“보는 것과 보지 않음 어떤 것인가”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본다는 것은 수행하는 사람이 법을 닦을 때 존재하는 것[有]을 ‘이것은 항상되고 청정한 법이다’라고 헤아려 아는 것이고, 이른바 보지 않음이라고 하는 것은 고ㆍ습ㆍ진ㆍ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는 것과 보지 않음 어떤 것인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을 보고 보지 않은 것이라 하는가”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오직 한 가지 연(緣)만 본다. 즉 색을 반연하는 것만 보든가 혹은 소리ㆍ냄새ㆍ맛을 반연하는 것만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생각하고 어떤 이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고 보지 않은 것이라 하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보고 보지 않음이라 말하며”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마치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은 온갖 행을 갖추어 공덕이 원만함으로써 비록 생사 속에 있어도 겁내거나 약해지지 않고 번뇌를 끊으려 하되 아무 걸림이 없으며, 한 사람은 마음이 편벽하여 구경(究竟)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번뇌 끊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생사 속에 있음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엇 때문에 보고 보지 않음이라 말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을 봄으로써 해탈하는가”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현성의 법으로 인하여 스스로 생사를 벗어나는 이치를 보면,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아무 두려움이나 꺼림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봄으로써 해탈하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직 괴로움을 관찰하지 못했거든 언제나 깊이 스스로 관찰하라. 그 괴로움의 근원을 알면 그것을 밝고 묘한 관찰이라 한다.
029_0951_b_02L猶若不觀苦, 常當深自觀, 以解苦根源,
是謂明妙觀。
“아직 괴로움을 관찰하지 못했거든”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마치 공부하는 사람이 괴로움과 공(空)과 몸이 아니라는 것과 나가 없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또 모든 행의 쌓임[行陰]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타락한다. 그리하여 제 몸 곳곳의 더러운 것을 관찰하게 되니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하나도 탐할 만한 것이 없건만, 나라는 것은 제 자신의 소유요 몸도 제 자신의 몸이라 하여 그 몸의 내력을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직 괴로움을 관찰하지 못했거든, 언제나 깊이 스스로 관찰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괴로움의 근원을 알면, 그것을 밝고 묘한 관찰이라 한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괴로움과 공과 덧없음과 몸이 아니라는 이치와 몸이란 온갖 병이 넘쳐흐르는 근심 덩어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여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서 병의 근원을 자세히 안다. 즉 ‘몸은 네 가지 요소가 모여 성립된 것으로서 세상에 붙어 살면서 무수한 겁 이전부터 지금까지 큰 밝음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다 무지와 미혹으로 말미암아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벗어났으므로 그런 인연을 짓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그 괴로움의 근원을 알면 그것을 밝고 묘한 관찰이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누가 이 범부들로 하여금 온갖 행의 근본을 못 보게 하는가. 그로 인해 잘 관찰하면 어둠을 버리고 큰 밝음 보리.
029_0951_b_16L誰令凡夫人, 不睹衆行本, 因彼而觀察,
去冥見大明。
029_0951_c_02L “그 누가 이 범부들로 하여금, 온갖 행의 근본을 못 보게 하는가”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세상은 어두워 누가 큰 밝음을 지었는지를 보지 못한다. 중생은 여유를 부려 바른 길을 알지 못하고, 또 현재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몸과 다섯 가지 쌓임[陰]과 여섯 가지 감관[入]을 가졌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무지한 사람은 그것에 집착하여 그것들이 근심이 되는 근본임을 믿지 않고 온갖 삿된 소견을 일으켜 마침내 번뇌를 늘려 나간다. 그러다가 수행하는 사람에 의하여 스스로 관찰하게 되니,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고 번뇌 끊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어둠을 떠나 큰 밝음을 보게 될 것이다. 큰 밝음의 근본에는 어둠의 뿌리가 없다. 그들은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법과 비구승(比丘僧)을 알지 못하며, 또 네 가지 진리인 고ㆍ습ㆍ진ㆍ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경계에 대한 청정한 행을 닦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누가 이 범부들로 하여금, 온갖 행의 근본을 못 보게 하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제28 관품(觀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