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9_0961_a_01L출요경 제26권
029_0961_a_01L出曜經卷第二十六

요진 양주 사문 축불념 한역
029_0961_a_02L 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30. 척요품(䨥要品)
029_0961_a_03L䨥要品第三十

1
야광충[夜光]도 어둠을 비추지마는
그것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니
햇빛이 크게 광명을 펼치면
야광충의 안색은 새까매진다.
029_0961_a_04L夜光照於冥
至日未出閒
日光布大明
夜光便黤黮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 부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후생들로 하여금 그 일을 밝게 알게 하셨다.
가령 야광충이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 있으면서 그 광명을 놓아 멀리까지 비추는 것을 보고는 ‘우리의 광명을 따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해가 백천 광명을 놓으면서 동쪽에서 솟으면, 그때 야광충의 광명은 없어지면서 그 안색은 진먹처럼 새까매진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1_a_06L觀此義已如來引喩欲使後生明達其事猶若夜光之虫處在幽冥布其光明遠有所照謂爲己明無有及者値日天子放百千光明昇于東方無復有夜光虫明顏色黤黮像如純墨是故說曰

야광충도 어둠을 비추지마는
그것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니
햇빛이 크게 광명을 펼치면
야광충의 안색은 새까매진다.
029_0961_a_12L夜光照於冥
至日未出閒
日光布大明
夜光便黤黮也

2

관찰하는 사람도 광명을 펴지만
그것은 부처님이 나오시기 전이요
부처님이 큰 광명을 놓으면
관찰하는 이도 없고 성문도 없다.
029_0961_a_13L察者布光明
如來未出頃
佛出放大明
無察無聲問

외도 범지들은 그 행이 같지 않으니, 어떤 이는 관찰하여 알고, 어떤 이는 선정에 들어서 알며, 또 어떤 이는 스승의 교훈을 듣고 깨닫는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세상에 활개치고 다니면서 제각기 제일이라고 자칭하는데, 그 까닭은 부처님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부처님께서 나타나시어 큰 광명을 놓으면서 교화를 펴면, 그때 외도들은 저절로 없어지면서 그 도가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위신(威神)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1_a_15L外道梵志所行不同或有察而知者或有入定而知者或有聞教而寤者此三種人在世跨行各自謂尊所以然者蓋由如來未現於世設如來降神於世放大光明流教布化爾時道梵志自然消歇其道不行無復威是故說曰

관찰하는 사람도 광명을 펴지만
그것은 부처님이 나오시기 전이요
부처님이 큰 광명을 놓으면
관찰하는 이도 없고 성문도 없다.
029_0961_a_22L夜光照於冥
至日未出
日光有大明
夜光便黤黮也
029_0961_b_02L
3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 생각하고
견고한 것을 견고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견고한 곳에 이르지 못하나니
삿된 소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029_0961_b_02L不牢起牢想
牢起不牢想
彼不至於牢
由起邪見故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 생각하고”란 무슨 뜻인가?’
이 중생들은 생사를 연모해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다섯 가지 쾌락에 탐착하여 스스로 즐기는 것은 견고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니, 그러므로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 생각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견고한 것을 견고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이란 무슨 뜻인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오랫동안 자기 의견에 집착하면서 서로 지적하다가 이렇게 주장한다. “사사로이 듣건대 불가에서는 ‘열반에는 생멸도 없고 생멸하는 생각도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즐거운 노래나 기쁜 춤도 없고 부모ㆍ친척도 없으며, 가고 오고 나아가고 멈추는 것도 없고 동산과 못도 없는 것이니, 거기 무슨 견고한 것이 있겠는가?”
029_0961_b_04L不牢起牢想者此衆生類戀慕生死若自生念人處世閒樂著五欲以自娛樂者乃爲牢固是故說曰不牢起牢想也牢起不牢想者邪見之人執意來久共相指授乃興此論竊聞佛家稱說泥洹無生無滅無起滅想復無有歌歎喜儛宗親五族行來進止園觀浴池都無此者有何牢固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니, 그들은 뒤바뀌고 삿된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견고한 것으로 열반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도 도리어 견고하지 않다고 비방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러므로 “견고한 것을 견고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견고한 곳에 이르지 못하나니, 삿된 소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멸진(滅盡)의 열반에는 어떠한 근심도 없으니, 맑은 무위(無爲)로서 응결된 신(神)이 흔들리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진실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는 견고한 곳에 이르지 못하나니, 삿된 소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1_b_12L言不爾斯等顚倒邪心不滅牢而固者莫過泥洹反更毀呰以爲不牢故說曰牢起不牢想也彼不至於牢由起邪見故者滅盡泥洹無有衆患澄然無爲凝神不動亦不變易愚者不解以爲非眞是故說曰彼不至於牢由起邪見故也

4

견고한 것을 견고하다고 알고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지 않다고 알면
그는 곧 견고함을 구하나니
바른 다스림으로 근본을 삼는다.
029_0961_b_19L牢而知牢者
不牢知不牢
彼人求於牢
正治以爲本
029_0961_c_02L
만일 어떤 중생이 멸진의 열반에는 생멸이 없는 줄을 알면, 그는 세상에 속거나 미혹되지 않는다. 모든 부처님은 영원히 쉬는 집이니, 만일 어떤 중생이 그 집에 들어가면 그는 영화가 이르러도 더 기뻐하지 않고 어떤 훼욕이 닥쳐와도 더 걱정하지 않는다. 뒤바뀐 소견을 가진 사람과는 그 말이 다르고 삿된 무리들과는 그 뜻이 달라서, 마치 아득한 허공이 영원히 쉬면서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나니, 이는 지혜로운 이의 사모하는 것이지 무지한 이의 익힐 바가 아니다.
그 집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반드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건너야 하고, 열 두 가지의 큰 벼랑을 뛰어넘기를 구해야 하니, 그렇게 하여 생사의 험한 언덕을 건너면, 신(神)이 안정되고 무위의 맑디맑은 경지에 이른다. 그때는 오랫동안 겪은 모진 고통을 뒤돌아보면서, ‘아아, 괴로워라. 그처럼 무지하고 미혹하였구나’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1_b_21L若有衆生解滅盡泥洹無生無滅不欺詐誑惑於世諸佛世尊永息之其有衆生入此室者寵位至不以增歡毀辱逼不以加慼與倒見異其邪部殊其趣冥然太虛永息不起智者之所慕非愚之所習欲至彼室要涉八正之徑路求度十二之洪崖以渡生死之嶮岸安神無爲之澹然顧眄悠悠之楚酷苦哉愚惑之滋甚是故說曰

견고한 것을 견고하다고 알고
견고하지 않은 견고하지 않다고 알면
그는 곧 견고함을 구하나니
바른 다스림으로 근본을 삼는다.
029_0961_c_08L牢 而知牢 者
不牢 知不牢
彼人求於牢
正治以爲本也

5

무지한 사람은 견고하다 생각하다가
도리어 아홉 가지 결박을 받는 것이
마치 새가 그물에 드는 것 같나니
그것은 깊고 굳은 애욕 때문이니라.
029_0961_c_09L愚意以爲牢
反被九結縛
如鳥投羅網
斯由愛深固

“무지한 사람은 견고하다 생각하다가”란 무슨 뜻인가?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고치기 어려우니, 다섯 가지 요소를 견고하다 하기도 하고 혹은 번뇌의 근본을 견고하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속에서 온갖 생각을 일으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니, 비록 집을 떠나 도를 배운다고 하지만 도리어 삿된 행을 익힌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은 견고하다 생각하다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도리어 아홉 가지 결박을 받는 것이”란 무슨 뜻인가?
수도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집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쁜 벗을 만나서 그릇된 길을 배우면, 과거의 결박을 버리려 하다가 도리어 아홉 가지 결박을 받으니, 마치 저 부나비가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고 불에 날아드는 것과 같다. 이는 깊고 굳은 애욕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러므로 “도리어 아홉 가지 결박을 받는 것이, 마치 새가 그물에 드는 것 같나니, 그것은 깊고 굳은 애욕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1_c_11L愚意以爲牢者夫人在世意愚難革或言陰聚爲牢或言結本爲牢於中興想不別眞僞雖復出家學道及習邪行是故說曰愚意以爲牢也反被九結縛者人之修道要當捨家遇惡知識指授邪徑捨故結縛反被九結如蛾投火不顧後慮斯由愛深固故說曰反被九結縛如鳥投羅網由愛深固也

6

온갖 존재[有]가 의심을 품고 있지만
이승에 있어서나 또 저승에서나
선정으로 능히 멸진(滅盡)한다면
괴로움 없이 범행을 닦으리라.
029_0961_c_20L諸有懷狐疑
今世及後世
禪定盡能滅
無惱脩梵行
029_0962_a_02L
“온갖 존재가 의심을 품고 있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몸뚱이가 추악하고 더럽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의심하거나 질투하는 마음을 버리지만, 법을 들으면 그것을 곧 믿으면서 되풀이해 생각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온갖 존재가 의심을 품고 있지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승에 있어서나 또 저승에서나”란 무슨 뜻인가?
이승이란 현세의 몸이요 저승이란 후생이니, 지금이란 현세요 나중이란 후생이다.
이 가운데 있으면서 망설이거나 의심을 내지 않으면 그것이 곧 안정된 마음이니, 그러므로 “이승에 있어서나 또 저승에서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선정으로 능히 멸진한다면”이란 무슨 뜻인가?
선정에 든 사람은 그 마음이 견고하여 집착하는 생각을 모두 없애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니, 그러므로 “선정으로 능히 멸진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괴로움 없이 범행을 닦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번뇌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고 마음가짐이 청정하여 그 마음이 항상 한결같으면, 닦는 공덕의 근본이 남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니, 그러므로 “괴로움 없이 범행을 닦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1_c_22L諸有懷狐疑者彼脩行人思惟惡露不淨之想除去狐疑憎嫉之心則得信不重思惟是故說曰諸有懷狐疑也今世及後世者今者現身後者後身今者現世後者後世於中不興猶豫生狐疑者乃應定意是故說今世及後世也禪定盡能滅者入定之人心意堅固盡能消滅不興想著是故說曰禪定盡能滅也無惱脩梵行者不爲結使所煩惱執意淸淨常如一心所脩德本超越人上故說曰無惱脩梵行

7

티끌을 없애서 티끌을 여의면
그는 이 옷을 입을 수 있다.
제어하지 못해서 이르는 곳 없으면
그는 이 법복에 맞지 않는다.
029_0962_a_11L無塵離於塵
能持此門者
無御無所至
此不應法服

많은 사람들은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더러운 생각을 갖기 때문에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가 가사를 입었더라도 이 세 가지 독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도에 이르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티끌을 없애서 티끌을 여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이 옷을 입을 수 있다”란 무슨 뜻인가?
오직 현성이라야 온갖 악을 막아 버리기 때문에 이 진실한 법의 옷을 입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입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옷을 입을 수 있다. 제어하지 못해서 이르는 곳 없으면, 그는 이 법복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2_a_13L人之脩道常懷染污癡垢不去于心雖披袈裟不去三毒此則不至於道是故說曰無塵離於塵也能持此服者唯有賢聖之人防塞衆惡服此眞法之服無有此者則不應服是故說曰能持此服者無御無所至此不應法服

8

만일 온갖 더러운 때를 버리고
계율과 평등한 지혜와 선정을 닦으면
그는 마땅히 업을 생각할 것이니
응당 법복 가사도 입을 만하다.
029_0962_a_20L若能除垢穢
修戒等慧定
彼應思惟業
此應服袈裟
029_0962_b_02L
“만일 온갖 더러운 때를 버리고, 계율과 평등한 지혜와 선정을 닦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공부할 때에 더러운 때를 버리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면, 세 가지 독의 번뇌가 남김없이 영원히 없어진다. 그러나 비록 아라한이 되었더라도 선정에 들지 못하면, 무기(無記)가 닥칠 때에야 그 잘못을 알 수 있을 것이니, 계율을 닦고 때를 버려서 도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온갖 더러운 때를 버리고, 계율과 평등한 지혜와 선정을 닦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마땅히 업을 생각할 것이니, 응당 법복 가사도 입을 만하다”란 무슨 뜻인가?
선정에 드는 사람은 반드시 이익이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에 모두 그 결과가 있다. 그래서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ㆍ악마ㆍ하늘 악마ㆍ제석ㆍ범천ㆍ사천왕들도 모두 받들고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업을 생각할 것이니, 응당 법복 가사도 입을 만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2_a_22L若能除垢穢脩戒等慧定者人之脩學除穢爲本三毒結使永盡無餘得羅漢不入定意無記對至乃知謬脩戒除垢穢不失其道心是故說若能除垢穢修戒等慧定也彼應思惟業應此服袈裟者入定之人必有所益心有所念無事不果諸天魔及魔天釋梵四天王靡不宗奉而承事者是故說曰彼應思惟業此服袈裟

9

부드럽고 순한 말 쓰지 않아도
남의 칭찬을 받는 수 있고
좋은 얼굴빛을 가진 사람도
거짓된 마음을 품을 수 있다.
029_0962_b_09L不以柔和言
名稱有所至
人有善顏色
乃懷巧僞心

“부드럽고 순한 말 쓰지 않아도, 남의 칭찬을 받는 수 있고”란 무슨 뜻인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남과 이야기할 때 마음속으는 간사와 거짓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어리석은 체한다. 그러므로 “부드럽고 순한 말 쓰지 않아도, 남의 칭찬을 받는 수 있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좋은 얼굴빛 가진 사람도, 거짓된 마음을 품을 수 있다”란 무슨 뜻인가?
옛날 바사닉왕은 동산에 놀러 나갔다가 어떤 두 범지가 몸을 괴롭히면서 수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해와 달을 우러러 섬기고 물이나 불에 제사하였는데, 왕은 그들이 마음을 괴롭히면서 수도하는 것을 보고는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저는 아까 동산에 놀러 나갔다가 범지 두 사람을 보았는데, 그들이 몸을 괴롭히면서 수도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워서 아무도 따를 수 없었습니다.”
029_0962_b_11L不以柔和言名稱有所至者世多有人與人言談內懷奸宄外如現愚故說曰不以柔和言名稱有所至也人有善顏色乃懷巧僞心者往昔波斯匿王園觀遊戲見二梵志苦形學仰事日月祭祀水火王見此人學道志苦尋往佛所白世尊言向行遊觀見二梵志苦形學道至爲難及亦無儔匹
029_0962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덕을 닦는 사람으로서 상대가 계율을 완전히 갖추었는가를 알려고 하면, 반드시 같이 살면서 그 위의를 관찰하고 말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비로소 그가 계율을 갖췄는지 갖추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부끄러이 여겼다. 그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를 드리고는 하직하고 물러갔다.
왕은 궁중으로 돌아가자마자 곁의 신하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는 빨리 가서 저 두 범지를 불러다 내 뒷동산에 있게 하라. 과연 그들이 고행하면서 도를 구하는지, 아니면 거짓으로 속이면서 그 행이 합치하지 않은지 살펴보리라.”
신하는 분부를 받고 그들을 불러다 뒷동산에 있게 하였다. 왕은 누각 위에서 그들의 행을 보고 비로소 그들이 거짓으로 도를 닦는다고 속이는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거듭 부끄러이 여기고 후회하고는 굳건한 믿음으로 부처님의 도를 즐거워하였다. 왕은 즉시 나라의 백성들에게 영을 내렸다.
“누구나 외도를 받드는 이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고 모두 죽이리라.”
029_0962_b_20L佛告王曰人之脩德持戒完具欲得知者要當同止觀察威儀尋省來語然後乃知有戒無戒王聞斯語內懷慚愧卽從坐起頭面禮足辭退而去還至宮殿告語傍臣汝速詣彼喚二梵志在我後園吾觀察之審有苦行求於道德爲虛稱詐逸行不合臣受其教卽喚在園王自樓上遙觀其行知彼巧僞詐稱爲道重懷慚愧思心自悔信心隆盛貪樂佛道令國界人民之類其有供事外學異道者皆受誅戮不得從容
그리고는 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는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말하였다.
“지금부터는 4사(事)로 삼보를 공양하고 공경하겠사오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 맹세를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얼굴빛 가진 사람도, 거짓된 마음을 품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2_c_08L王至佛所頭面禮足悔本不及自今以往四事供養恭敬三寶盡其形壽不違此誓是故說曰人有善顏色乃懷巧僞心也

10

그것을 잘 끊는다는 것은
그 뿌리를 아주 뽑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온갖 더러움 버리고
비로소 좋은 얼굴빛을 가진다.
029_0962_c_11L有能斷是者
永拔其根本
智者除諸穢
乃名爲善色

“그것을 잘 끊는다는 것은, 그 뿌리를 아주 뽑는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세상 사람들은 간사한 마음을 많이 품고 있어서 비록 몸에는 가사를 입었지마는 안의 행은 진실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 간사한 마음을 능히 끊어야 비로소 도의 문에 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잘 끊는다는 것은, 그 뿌리를 아주 뽑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온갖 더러움 버리고, 비로소 좋은 얼굴빛을 가진다”란 무슨 뜻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공부할 때에 반드시 도에 알맞게 하되, 법이 아닌 것은 행하지 않으므로 학자들의 귀여움을 받고, 그 얼굴빛은 빛나고 환하여 뭇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더러움 버리고, 비로소 좋은 얼굴빛을 가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2_c_13L有能斷是者永拔其根本者世人多懷奸宄之心雖披法服內行不眞斷此者乃應道門是故說曰有能斷此者永拔其根本智者除諸穢乃名爲善色者智人習法要應爲道非法不行學者所貴顏色怡耀衆人敬仰是故說曰智者除其穢乃名爲善色也

11

조용한 그 얼굴빛 따르지 말고
잠깐 보고도 사람의 마음을 알라.
세상의 많은 사람이 행실을 어기면서
마음대로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029_0962_c_20L不以色從容
蹔睹知人意
世多違行人
遊蕩在世界

저 거짓된 놋쇠 속에
순수한 구리가 있다고 속이는 것처럼
홀로 아무 거리낌없이 돌아다니니
속도 더럽지만 겉도 더럽다.
029_0962_c_22L如彼虛僞鍮
其中純有銅
獨遊無畏忌
內穢外不淨
029_0963_a_02L
“조용한 그 얼굴빛 따르지 말고, 잠깐 보고도 사람의 마음을 알라”란 무슨 뜻인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남과 이야기할 때 조용한 얼굴빛으로 올바른 듯 그럴싸하게 말하지만, 그러나 속마음은 마음과 말이 서로 어긋나는 거짓이기 때문에 비록 사람이라 하지마는 그 성질과 행동이 고르지 못하다.
또 겉으로는 어진 사람인 체하지만 속으론 독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다만 잠깐 보아서는 그 현우(賢愚)를 분별할 수 없다. 마치 밤에 멀리서 불빛을 보고 쫓아가 붙잡다가 손을 데이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라서 겉으로는 좋은 얼굴빛을 가졌지만 속에는 뜨거운 불꽃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조용한 그 얼굴빛 따르지 말고, 잠깐 보고도 사람의 마음을 알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2_c_23L不以色從容蹔睹知人意者世多有人顏色從容與人言談辭義辯美內心虛僞心口相違雖名爲人性行不均外如賢士內懷毒行雖暫相見賢愚不別猶夜睹火遙見光明若當往捉便燒其手此亦如是雖有顏色內懷熾焰是故說曰不以色從容睹知人意也
“세상의 많은 사람 이 행실을 어기면서, 마음대로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란 무슨 뜻인가?
장차 어리석은 사람들은 거짓과 간사함이 더욱 많아져서 마침내 현성을 비방하고 헐뜯으며, 갖가지 간사한 꾀로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호리지만, 남과 이야기할 때에는 그 안색이 바르지 못할 것이다.
또 말은 아름다운 문장 같고 변재는 걸림이 없지마는 대중 속에 있으면서 무도한 일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닦으면서 볼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많은 사람 이 행실을 어기면서, 마음대로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3_a_08L世多違行人遊蕩在世界者當來愚人巧詐滋繁漸漸遂至謗賢毀聖奸宄萬端幻惑世人與人言談顏色不正出言成章辯聰無㝵堪在大衆爲無軌事衆人睹者莫不拭目是故說曰世多違行人遊蕩在世界也
“저 거짓된 놋쇠 속에, 순수한 구리가 있다고 속이는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교묘하고 간사한 사람은 수단과 꾀가 많기 때문에 연기로 구리를 쏘여 그 빛깔을 순금보다 낫게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호리어 많은 재물을 빼앗아 가진다.
그래서 부처님도 비유를 통해서 “저 거짓 놋쇠로 세상의 많은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이다. 간사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달콤한 말과 아름다운 변재로 시주들을 꾀어서 의복ㆍ음식ㆍ침구ㆍ약품 따위의 네 가지 공양이 끊이지 않게 하지만, 그러나 그런 공양을 받더라도 뒤에 가서는 갚아야 한다. 즉 지옥을 그 과보로 받아서 갖가지 고통을 받지만 쌓인 죄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 거짓된 놋쇠 속에, 순수한 구리가 있다고 속이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3_a_14L如彼虛僞鍮其中純有銅者詐之人多諸方略以煙熏銅色勝眞誑惑世人貪取財貨是以如來引此爲喩如彼僞鍮獲世重利奸宄之人亦復如是甘言美辭誘進檀越致供養四事不乏衣被飮食牀褥臥具病瘦醫藥雖獲其供養後當償之受洋銅經歷苦惱罪積未畢是故說如彼虛僞鍮其心純有銅也
029_0963_b_02L“홀로 아무 거리낌이 없이 돌아다니니, 속도 더럽지만 겉도 더럽다”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간사한 사람이 많은 부하를 데리고 세상에 다니지마는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는 것과 같고, 포악한 도적들이 마을을 휩쓴 뒤라야 그들이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홀로 아무 거리낌이 없이 돌아다니니, 속도 더럽지마는 겉도 더럽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3_a_22L獨遊無畏忌內穢外不淨者如彼奸宄之人多將翼從人閒遊處衆人見者莫不興敬如賊暴虐多壞村落然後乃知非是眞人也是故說曰獨遊無畏忌內穢外不淨也

12

음식을 탐하면서 절제할 줄 모르면
때때로 3전(轉)을 행하더라도
우리 안에 기르는 돼지처럼
계속해서 어미 태를 받을 것이다.
029_0963_b_04L貪餮不自節
三轉隨時行
如圈被養豬
數數受胞胎

“음식을 탐하면서 절제할 줄 모르면, 때때로 3전을 행하더라도”란 무슨 뜻인가?
저 우치한 사람은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남의 공양을 받더라도 그저 제 몸만 기르기 때문에 살만 쪄서 몸을 돌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우치한 비구도 거짓으로 앉아서 선정에 들어가 사유하는 척하며, 때때로 시주들의 예배를 받고 많은 공양을 받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도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마치 저 기르는 돼지가 눕고 먹고 움직이지 않지마는 오래지 않아 잡혀 죽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쉬지 않고 몸을 버리고는 또 몸을 받는다.”
그러므로 “음식을 탐하면서 절제할 줄 모르면, 때때로 3전을 행하더라도, 우리 안에 기르는 돼지처럼, 계속해서 어미 태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3_b_06L貪餮不自節三轉隨時行者如彼愚惑之人爲人標首受人供養自養其形身體肥盛不能轉側檀越施主隨時禮覲愚人佯坐入定思惟由是自致得大供養是以世尊假以爲譬如被養豬臥食不動不知久久當受屠割捨身受身無有休已是故說曰貪餮不自節三轉隨時行如圈被養豬數受胞胎也

13

사람이 그 뜻을 잘 단속해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 알아서
그 몸을 지탱하여 나아간다면
목숨을 기르면서 그 도를 지킨다.
029_0963_b_15L人能專其意
於食知止足
趣欲支其形
養壽守其道

옛날 부처님은 바사닉왕을 위해 위의 게송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바사닉왕은 일찍이 덕의 뿌리를 심었기 때문에 복의 메아리가 스스로 응하여 뒷동산에서 저절로 사탕수수가 나서 단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동산에서 저절로 한 포기의 메벼가 나서 수백 이삭을 드리웠는데 아무리 베어도 다하지 않았다. 왕은 그 복을 받고는 만족할 줄 모르고 자꾸 먹었기 때문에 몸이 매우 비대해지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몹시 괴로워하며 몸을 돌리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몸을 굽히고 합장한 뒤에 한쪽에 앉았는데, 그때 부처님은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029_0963_b_17L昔佛與波斯匿王而說此偈波斯匿王宿殖德本福響自應於後園中然生苷蔗之樹流出甘漿晝夜不絕於彼園中自然生一株粳米垂穗數百取之無盡王受其福食之無厭體肥重喘息苦極不能轉側往佛低身揖讓在一面坐爾時世尊便說此偈
029_0963_c_02L
사람이 그 뜻을 잘 단속하여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 알아서
그 몸을 지탱하여 나아간다면
목숨을 기르면서 그 도를 지킨다.
029_0963_c_02L人能專其意
於食知止足
趣欲支其形
養壽守其道

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하직하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왕은 곧 요리사에게 명령하였다.
“만일 네가 음식을 받들어 내 앞에 놓을 때는 먼저 이 게송을 읊은 뒤에 나로 하여금 먹게 하라.”
그래서 항상 이 말을 법으로 삼으니, 왕은 차츰 음식의 분량을 줄여서 몸이 가뿐해지고 가고 오는 행동거지에 아무 고통이 없었다.
029_0963_c_04L王聞斯語歡喜踊躍不能自勝卽從坐起辭佛還宮卽勅廚宰作食之人設汝擎食在吾前者先說斯偈爾乃得食自是以始常以爲法王轉減食身體輕便進止行來無所患苦

14

청정함을 살펴서 스스로 닦더라도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지 못해서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면
그런 것은 무지한 범부의 행이다.
도리어 욕심만 자꾸 늘게 하나니
집이 부서져 물이 새는 것과 같다.
029_0963_c_09L觀淨而自脩
諸根不具足
於食無厭足
斯等凡品行
轉增於欲意
如屋壞穿漏

“청정함을 살펴서 스스로 닦더라도,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지 못해서”란 무슨 뜻인가?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그 뜻이 굳지 못해서 마음속으로 머리털과 손톱ㆍ발톱과 이빨을 사유하면서도 청정함에 집착하여 탐욕을 내는데, 이는 도리어 욕망의 생각을 낸 것이기 때문에 분노와 우치가 더욱 자라나고, 모든 감관을 거두어 잡지 않으므로 안정을 얻지 못해서 마음대로 방탕하다가 드디어 도의 등불을 잃고 만다. 마치 왕성한 불에 기름을 쏟는 것과 같거늘, 이 이치를 분명히 안다면 어찌 그것이 불을 끄는 방법이 되겠는가?
대개 음욕과 분노와 우치의 불을 끄고 다시 일지 않게 하려면 마땅히 ‘이 몸은 더럽다’는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청정함을 살펴서 스스로 닦더라도,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지 못해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3_c_11L觀淨而自脩諸根不具足者初履行人意不堅固內自思念髮毛爪齒著淸淨興著欲想增益瞋恚愚癡滋不攝諸情根門不定放逸自恣遂失道明由火赫熾復益酥油深明此豈是滅火之兆乎夫欲息婬永不生者當興惡露不淨之想故說曰觀淨而自脩諸根不具足也
029_0964_a_02L“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면, 그런 것은 무지한 범부의 행이다”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이 자꾸 구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구한 것을 포대에 쌓아 두고 아까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부의 몸을 받는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면, 그런 것은 무지한 범부의 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도리어 욕심만 자꾸 늘게 하나니, 집이 부서져 물이 새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무지를 고집하면서 선한 일을 닦지 않으면, 욕심이 불꽃처럼 일어나서 스스로 고칠 수 없고, 다시 생사의 고난을 겪어야 한다.
마치 지붕을 덮되 견고하게 덮지 않으면, 비가 올 때 물이 새서 깨끗한 옷을 더럽히는 것과 같으니,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그 뜻이 견고하지 못하면 거기서 음욕과 분노와 우치가 새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도리어 욕심만 자꾸 늘게 하나니, 집이 부서져 물이 새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3_c_19L於食無厭足斯等凡品行者彼修行人乞求無厭得而藏囊慳心不捨後命終受凡品行是故說曰於食無厭足斯等凡品行也轉增於欲意屋壞穿漏者行人執愚不脩善根意熾盛不自改更當復經歷生死之猶若蓋屋覆治不牢天雨則漏澆灒衣服淨者使污人情如是意不堅漏婬怒癡是故說曰轉增於欲意如屋壞穿漏

15

이 몸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보아서
모든 감관이 훼손되거나 새지 않으며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을 알고
신심을 잡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욕심대로 방일하지 않으면
바람에 끄떡 않는 태산 같으리.
029_0964_a_06L當觀不淨行
諸根無缺漏
於食知止足
有信執精進
不恣於欲意
如風吹泰山

“이 몸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보아서, 모든 감관이 훼손되거나 새지 않으며”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잠깐도 쉬지 않고 그 뜻을 제어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몸에서 새어 나오는 더러운 물질들을 관찰하여 낱낱이 분별하고, ‘이 몸 속에 있는 서른여섯 가지 더러운 물질을 분별하여 머리에서 발 끝까지 청정하지 못해서 하나도 탐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모든 감관을 잘 거두어 잡아 새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몸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보아서, 모든 감관이 훼손되거나 새지 않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을 알고, 신심을 잡고 부지런히 노력하며”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뜻을 굳게 잡으면 변함이 없는 믿음을 얻고, 많이 먹으면 멍청하여 선정에 들지 못하며, 신심이 불꽃처럼 왕성하면 능히 정진할 수 있다. 그래서 무리에서 뛰어나고 홀로 높아서 이내 도를 깨달으니, 그러므로 “음식에 대해 만족할 줄을 알고, 신심을 잡고 부지런히 노력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a_08L當觀不淨行諸根不缺漏者行人御意不暇食息觀察此身漏出不淨一一分別料簡身中三十六物穢污不從頭至足無一可貪收攝諸根不使漏失是故說曰當觀不淨行諸根無缺漏也於食知止足有信執精進行人執意得無漏信多食瞪瞢不容入定信心勇熾堪行精進超群獨邁尋受其證是故說曰於食知止足有信執精進也
029_0964_b_02L“욕심대로 방일하지 않으면, 바람에 끄떡 않는 태산 같으리”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생각이 어지럽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하니, 욕심은 화의 근본이 되어서 온갖 재앙과 걱정을 만들고, 몸과 마음을 흐리멍텅하게 하여 지혜의 등불을 받지 못하게 하며, 죽으면 몸을 태우는 고통을 그 과보로 받게 한다.
이런 이치를 잘 생각하면 모두가 괴로움과 걱정뿐이므로 그 뜻을 잘 제어해서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즉 밖으로는 여섯 가지 경계를 제어하고 안으로는 여섯 가지 감관을 거두어 잡아서 안팎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그리하여 마치 태산이 우뚝 서서 회오리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금강과 같아서 부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심대로 방일하지 않으면, 바람에 끄떡 않는 태산 같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a_18L不恣於欲意如風吹泰山者行人用意衆想不亂欲爲禍根主生災患見身神慌不受慧明則對至燒身之痛料別此理悉爲苦制意不興色細滑之法御六塵內攝六情內外淸淨不漏欲猶若泰山安峙堅固不爲飄風之所吹動心如金剛不可沮壞是故說不恣於欲意如風吹泰山也

16

저 한적한 곳은 매우 즐길 만한데도
사람들은 그곳을 즐기지 않네.
욕심이 없는 사람이 살 곳이지
욕심이 있는 사람이 살 곳 아니네.
029_0964_b_03L空閑甚可樂
然人不樂彼
無欲常居之
非欲之所處

“저 한적한 곳은 매우 즐길 만한데도”란 무슨 뜻인가?
성인이 이런 것을 말하는 까닭은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리 그 법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한적한 곳에 있으면 그 뜻이 전일하여 잠깐도 쉬지 않고 사유하기 때문에 시절을 옮기지 않고 의념(意念)이 메아리처럼 응하는 것이 마치 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저 한적한 곳은 매우 즐길 만한데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즐기지 않네”란 무슨 뜻인가?
그런 무리들은 모두 범부이기 때문에 애욕에 집착하여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여색에 집착하여 실제로 좋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그 여자가 죽고 나면 비로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곳을 즐기지 않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b_05L空閑甚可樂者所以聖人論此語者欲使行人速獲其法閑靜之中意得專一思惟挍計不移時節意念嚮應如人呼聲是故說曰空閑甚可樂也然人不樂彼者如此之徒皆是凡夫著愛欲不能捨離意著女色以爲實一旦亡沒乃知非眞是故說曰人不樂彼也
“욕심이 없는 사람이 살 곳이지”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성인이란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없어서 온갖 결박과 집착을 활연히 다해 버렸기 때문에 깨끗하기가 순금과 같아서 조그만 티끌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마을에 있으면 두루 다니면서 교화를 하는데, 때가 되면 발우를 들고 가서 복으로써 중생을 구제하되 그 보시가 많건 적건 그 시주를 축원해 준다. 그 시주가 성문(聲聞)을 만날 때에는 그 설법을 들어서 마음에 사무치도록 하고, 가령 벽지불을 만나면 허공에 발우를 날리면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릴 때도 그 몸은 비록 대중 속에 있지마는 그 마음은 광야에 있다. 그러므로 “욕심 없는 사람의 살 곳이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b_13L無欲常居之者所以言聖人者無婬諸結縛著豁然除淨如天金亦無微翳若在人村周遊教化到時持鉢福度衆生隨施多少呪願施主檀越施主値聞聲者聞道教貫徹心懷設値辟支佛者鉢空虛作十八變形雖在衆心存曠是故說曰無欲常居之也
029_0964_c_02L“욕심이 있는 사람이 살 곳 아니네”란 무슨 뜻인가?
탐욕에 집착하는 사람은 항상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법관이 빨리 판결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한 해가 다가도록 나오려고 하나 끝내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음탕한 사람도 그와 같아서 우치한 마음에 얽매이고 애욕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무루(無漏)의 거룩한 지혜의 약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서 구제를 받으려 해도 좀체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 있는 사람이 살 곳 아니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b_20L非欲之所處者著欲之人心意有在猶人墮罪閉在牢獄官不決斷遂經年歲欲求出良難得矣婬泆之人亦復如癡心所裹閉在欲獄不遭無漏聖睿之藥欲得免濟甚復難剋也是故說曰非欲之所處也

17

한가하고 고요한 마을이든
높은 언덕이나 평탄한 땅이든
아라한이 한번 지나간 곳에는
누구나 다 그 도움받는다.
029_0964_c_03L在村閑靜
高岸平地
應眞所過
莫不蒙祐

아라한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좋은 영향이 있다. 그 토지의 신이나 사천왕들이 항상 와서 옹호하기 때문에 그가 있는 곳에는 어떤 재앙도 받지 않으니, 이처럼 선이 능히 악을 억눌러서 어떤 손해도 생기지 않는 것은 그 안에 사는 현성의 위신의 힘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c_05L眞人所居必有善應地主四王常來擁護所居之方不被災患福能抑惡衆害不生由聖居中威神所致是故說曰

한가하고 고요한 마을이든
높은 언덕이나 평탄한 땅이든
아라한이 한번 지난 곳에는
누구나 다 그 도움받는다.
029_0964_c_09L在村閑靜
高岸平地
應眞所過
莫不蒙祐也

18

옮기기도 어렵고 흔들기도 어렵기가
마치 저 무거운 설산(雪山)과 같건만
현인(賢人)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나니
마치 밤에 어둔 방에서 활 쏘는 것 같다.
029_0964_c_10L難移難可動
如彼重雪山
非賢則不現
猶夜射冥室

현성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계획한 것이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이루게 된다. 마치 여러 산들이 좋은 약을 다투어 낼 때, 마음대로 그약을 캐어서 그 해독을 분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온갖 덕을 두루 갖추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옮기기도 어렵고 흔들기도 어렵기가, 마치 저 무거운 설산과 같건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현인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나니, 마치 밤에 어둔 방에서 활 쏘는 것 같다”란 무슨 뜻인가?
선지식이 아니면 선지식을 가까이할 수 없다는 것이니, 악한 일을 들어도 그 근본을 드러내지 못하고 선한 일을 들어도 그 덕을 찬탄할 줄 모르니, 그것은 마치 어두운 방 속에서 가만히 활을 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현인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나니, 마치 밤에 어둔 방에서 활 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c_12L賢聖之人心不可移動意欲所規必剋不難猶若衆山競出好藥隨意取之分別毒害是故智者說衆德具足是故說曰難移難可動如彼重雪山非賢則不現猶夜射冥室者不以善知識不親近善知識聞惡不出其聞善不歎其德猶若冥室之中闇射其矢是故說曰非賢則不現猶夜射冥室也

19

어진 사람도 수천 명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숲처럼 있으니
뜻과 이치가 지극히 깊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잘 분별한다.
029_0964_c_21L賢者有千數
智睿在叢林
義理極深邃
智者所分別
029_0965_a_02L
“어진 사람도 수천 명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숲처럼 있으니”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어진 사람은 무엇이나 분별하는 것이 있으니, 한 글귀의 뜻을 들으면 무수한 변재의 법으로 연설한다. 이처럼 깊이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은 다 관찰을 단련하였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어진 사람도 수천 명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숲처럼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뜻과 이치가 지극히 깊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잘 분별한다”란 무슨 뜻인가?
모든 법을 분별하여 그 차례를 잃지 않는 것이니, 의리(義理)를 깊이 파고 그 법을 끝까지 밝히되, 그것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과 어디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서 그 이치를 낱낱이 분별하여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뜻과 이치가 지극히 깊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잘 분별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4_c_23L賢者有千數智睿在叢林者所謂賢者有所分別聞一句義暢演無數辯才之法思惟分別皆由觀練是故說賢者有千數睿智在叢林也義理極深邃智者所分別者分別諸法不失次第義理深邃究暢其法知所從生知所從滅分別義理一一不失故說曰義理極深邃智者所分別

20

저 중생들 아무리 많더라도
쏘지 않으면 맞지 않는다.
지금 이 이치를 관찰하건대
계율 없는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하네.
029_0965_a_08L多有衆生類
非射而不値
今觀此義理
無戒人所恥

“저 중생들 아무리 많더라도, 쏘지 않으면 맞지 않는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맞는 자는 법이 아닌 것을 닦는 사람이니 이 때문에 “저 중생들 아무리 많더라도 쏘지 않으면 맞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이 이치를 관찰하건대, 계율 없는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하네”란 무슨 뜻인가?
근기가 날카롭고 빠른 사람은 항상되고 항상되지 않은 것과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관찰한다. 그리하여 계율을 갖춘 사람은 그 깨끗한 것을 찬탄하지만, 계율을 범한 사람은 그 교훈을 듣고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도리어 비방하며, 자기의 성명이나 출생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를 낮추면서 그를 칭찬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좋은 화살을 가려서 그 공을 이루려 하듯이 해야 하니, 그 이유는 악한 사람은 그 행을 고치게 하고 선을 닦는 사람은 바른 법을 숭상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이치를 관찰하건대, 계율 없는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5_a_10L多有衆生類非射而不値者所謂値所脩非法之人是也是故說曰有衆生類非射而不値也今觀此義無戒人所恥者利根捷疾觀是常非常有淨無淨戒德具者歎說其淨犯戒之人聞彼教訓謂爲誹謗不說眞誠自不稱名姓號之本亦不自卑歎譽彼者猶若善射之人分別善者而效其矢所以然者欲使惡者改修其行修善者敦崇正法是故說曰觀此義理無戒人所恥也

21
유(有)를 관찰하면 두려움을 알아야 하니
그 유도 변하면 무(無)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를 즐기지 말고
반드시 여읠 것을 생각해야 한다.
029_0965_a_21L觀有知恐怖
變易知有無
是故不樂有
當念遠離有
029_0965_b_02L
“유를 관찰하면 두려움을 알아야 하니, 그 유도 변하면 무가 되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유란 두려운 것이요 믿을 것이 못 되는데도 그 유를 여실히 여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를 관찰하면 두려움을 알아야 하니, 그 유도 변하면 무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를 즐기지 말고, 반드시 여읠 것을 생각해야 한다”란 무슨 뜻인가?
대개 사람은 누구나 괴로움의 근본을 좋아하지 않고 그 근본 업이 지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유를 즐기지 말고, 반드시 여읠 것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5_a_23L觀有知恐怖變易知有無者有者恐怖不可恃怙如實而不去離是故說觀有知恐怖變易知有無也是故不樂有當念遠離有者夫人不樂衆苦之本亦不思惟本業所造是故說是故不樂有當念遠離有也

22

믿음도 없고 은혜도 모르니
담 구멍을 뚫는 도둑과 같다.
바라는 그 마음 끊어 버리면
그야말로 용사라 할 수 있으리.
029_0965_b_06L無信無反復
穿牆而盜竊
斷彼悕望意
是名爲勇士

“믿음도 없고 은혜도 모르니”란 무슨 뜻인가?
어떤 부처님의 제자는 독실히 믿는 마음이 없으니, 그 이유는 부처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고 비구를 믿지 않으며, 또한 고ㆍ집ㆍ멸ㆍ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멸이란 번뇌가 아주 사라진 열반인데도 그는 그것을 믿지도 않고 공경하거나 받들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도 없고 은혜도 모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담 구멍을 뚫는 도둑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한다는 사람들은 번뇌가 가득한 삼계의 담을 뚫고 그 안에서 수도하는 값으로 복과 경사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담 구멍을 뚫는 도둑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라는 그 마음 끊어 버리면, 그야말로 용사라 할 수 있으리”란 무슨 뜻인가?
이익을 얻으려는 생각을 끊고 다시는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그는 사람 중의 대사[士]로서 그보다 나을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라는 그 마음 끊어 버리면, 그야말로 용사라 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5_b_08L無信無反復者如有諸佛弟子無有篤信之意何以故彼人不信佛不信法不信比丘僧亦復不信苦盡者爲滅盡泥洹是彼人不信亦不恭奉是故說曰無信無反復也穿牆而盜竊者彼執行人穿壞有漏三界之牆於中貿易望其福慶是故說曰穿牆而盜竊也斷彼悕望意是名爲勇士者斷其利養之想無有悕望中之士無有過者是故說曰斷彼悕望意是名爲勇士也

23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과
왕의 집안과 두 가지를 버리고
그 경계를 두루 없애면
더러움 없는 범지가 된다.
029_0965_b_19L除其父母緣
王家及二種
遍滅其境土
無垢爲梵志
029_0965_c_02L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과”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이 이것을 말씀하신 까닭은 사랑하는 마음을 남김없이 없애서 다시는 생기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과”라고 말한 것이다.
“왕의 집안과 두 가지를 버리고”란 무슨 뜻인가?
왕을 말한 것은 교만을 나타낸 것이요, 두 가지란 첫째는 계율이고, 둘째는 삿된 소견이니, 교만을 버리고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의 집안과 두 가지를 버리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경계를 두루 없애면, 더러움 없는 범지가 된다”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이 이것을 말씀하신 이유는 교만을 남김없이 아주 없애서 깨끗한 행을 닦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그 경계를 두루 없애면, 더러움 없는 범지가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5_b_21L除其父母緣者如來所以說是者其愛心永盡無餘更不復生是故說除其父母緣也王家及二種者以論王現其憍慢二種者一者戒律二者邪見除此憍慢更不復興是故說曰王家及二種也遍滅其境土垢爲梵志者如來所以說此者欲現己慢永盡無餘脩其淨行是故說曰遍滅其境土無垢爲梵志也

24

사람이 만일 의지하는 데 없고
먹는 것이 귀중함을 알면
공(空)과 무상(無相)과 또 무원(無願)을
사유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다.
029_0965_c_07L若人無所依
知彼所貴食
空及無相願
思惟以爲行

“사람이 만일 의지하는 데 없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아무 번뇌도 없고, 또 물건을 쌓아 두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의지하는 데 없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먹는 것이 귀중함을 알면”이란 무슨 뜻인가?
세상 사람은 음식에 의하여 그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식(摶食)이 생긴 그 유래를 알아야 하고, 촉식(觸食)은 온갖 생각을 일으키되 날 소가죽과 같고, 사식(思食)은 불더미 같으며, 식식(識食)은 칼이나 창과 같은 줄을 알아야 한다.
즉 단식을 먹는 사람은 그 음식의 유래를 관찰하되 손으로 집거나 발우에 둘 때마다 ‘이 음식은 어디서 생겼고 또 어디로 사라지는가’를 되풀이 생각함으로써 이 몸은 더러운 것이라서 탐하거나 즐길 것이 못 된다고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 귀중함을 알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과 무상과 또 무원을, 사유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다”란 무슨 뜻인가?
저 중생들이 이 세 가지 해탈문에 들어가면, 항상 도를 사유하고 염(念)해서 마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과 무상과 또 무원을, 사유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5_c_09L若人無所依者脩行之人無衆結使亦不藏貯是故說曰若人無所依也知彼所貴食者世人依食以存其命知其摶食所出本末更樂食者興意想著如彼生牛之皮意想食者如彼火聚識想食者猶如劍戟如彼摶食之人觀食本末或自手執或在鉢中思惟翻覆食所從生爲從何滅觀諸惡露不可貪樂是故說曰知彼所貴食也空及無相願思惟以爲行者彼衆生入三解脫門思惟念道不去心首是故說曰空及無相願思惟以爲行也

25

저 허공을 나는 새가
발자취가 없는 것처럼
저 수행하는 사람도
취향하는 곳이 없다고 말하리라.
029_0965_c_22L鳥飛虛空
而無足迹
如彼行人
說言無趣
029_0966_a_02L
“저 허공을 나는 새가, 발자취가 없는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허공을 나는 새는 모두 봉황이라 하는데, 그 허공에는 발자취를 볼 수 없고 가고 오며 돌아다녀도 일정한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저 허공을 나는 새가, 발자취가 없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저 수행하는 사람도, 취향하는 곳이 없다고 말하리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이런 뜻과 이치를 관찰하면 동서남북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 수행하는 사람도, 취향하는 곳이 없다고 말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5_c_24L鳥飛虛空而無足迹者虛空飛鳥悉名鳳凰虛空之中不見足迹周旋往來都無處所是故說曰鳥飛虛空而無足迹也如彼行人說言無趣者彼修行人觀此義理都不知東西南北所趣之方是故說曰如彼行人說言無趣也

26

유(有)의 근본을 잘 끊는 사람은
그렇게 되기 전에 의지하지 않고
공(空)과 그리고 무상(無相)의 행을
사유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다.
029_0966_a_08L諸能斷有本
不依於未然
空及無相行
思惟以爲行

모든 수행하는 사람은 유의 근본을 끊어야 한다. 이른바 ‘유’란 욕계의 존재와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이니, 그것을 남김없이 아주 없애서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의 근본을 잘 끊는 사람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의지하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아직 변하지 않는 일과 흥망성쇠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기 전에 의지하지 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과 그리고 무상의 행을, 사유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다”란 무슨 뜻인가?
세 가지 해탈과 열반의 문에 집착하여 스스로 즐기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과 그리고 무상의 생을, 사유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a_10L諸有行人斷有根本所論有者欲有色有無色有永盡無餘更不復興故說曰諸能斷有本也不依於未然不知未變之事興衰之變是故說不依於未然也空及無相行思惟以爲行者著三解脫滅盡之門以自娛樂不能捨離是故說曰空及無相思惟以爲行也

27

이상하여라, 어떤 중생은
그 바른 길 따르지 않으므로
구제받으려 해도 구제받지 못하고
죽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
029_0966_a_18L希有衆生
不順其徑
有度不度
爲死甚難
029_0966_b_02L
“이상하여라, 어떤 중생은, 그 바른 길 따르지 않으므로”란 무슨 뜻인가?
가령 어떤 중생은 중앙의 나라에 나는 일이 드물고, 또 어떤 중생은 현성을 만나는 일이 적다. 그러므로 “이상하여라, 어떤 중생은, 그 바른 길 따르지 않으므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구제받으려 해도 구제받지 못하고”란 무슨 뜻인가?
많은 중생들이 있지만 이 세상을 건너려 하는 사람은 적으니, 그 결과 생사 뿌리의 있고 없음과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다 그 성질과 행실이 더럽고 흐리어서 트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제받으려 해도 구제받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죽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살기를 탐하기 때문에 다만 눈앞만 볼 뿐 죽은 뒤의 갖가지 괴로움을 받는 것을 알지 못하며, 또 세상을 건너갈 업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죽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a_20L希有衆生不順其徑者希有衆生生於中國者復有衆生遇賢聖者亦復少耳是故說曰希有衆生不順其徑有度不度者多有衆生求度世者亦復少耳不知生死根栽有無是非斯由鄙濁不達性行是故說曰有度不度也爲死甚難者人之貪生但見目前不知趣死衆苦之患亦不思惟度世之業是故說曰爲死甚難也

28

사람들 모두 평등하게 말하고
법을 법답게 서로 관찰한다면
온갖 번뇌를 모두 끊어 버려서
다시는 치열한 괴로움이 없으리라.
029_0966_b_06L諸有平等說
法法共相觀
盡斷諸結使
無復有熱惱

“사람들 모두 평등하게 말하고, 법을 법답게 서로 관찰한다면”이란 무슨 뜻인가?
대개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옳고 그름을 잘 관찰하고 법을 법답게 완전히 이루어서 거기에 높고 낮음을 없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 모두 평등하게 말하고, 법을 법답게 서로 관찰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갖 번뇌를 모두 끊어 버려서, 다시는 치열한 괴로움이 없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사유하고 헤아린 끝에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리고 집착하는 생각을 아주 버려서 다시는 치열한 괴로움의 병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를 모두 끊어 버려서, 다시는 치열한 괴로움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b_08L諸有平等說法法共相觀者夫人處世觀察是非法法成就無有高下故說曰諸有平等說法法共相觀也盡斷諸結使無復有熱惱者如彼行人思惟挍計斷諸結使去諸想著復熱惱之患是故說曰盡斷諸結使無復有熱惱

29

그 가는 길이 다시는 걱정 없고
종일토록 해탈을 얻은 사람은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서
다시는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
029_0966_b_15L行路無復憂
終日得解脫
一切結使盡
無復有衆惱

“그 가는 길이 다시는 걱정 없고, 종일토록 해탈을 얻은 사람은”이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덕을 닦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온갖 괴로움을 끝내고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는 길이 다시는 걱정 없고 종일토록 해탈을 얻은 사람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서, 다시는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이 그 뜻을 굳건히 잡고 번뇌를 남김없이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서, 다시는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b_17L行路無復憂終日得解脫者履行之人脩德自然畢衆苦惱不興塵垢故說曰行路無復憂終日得解脫也一切結使盡無復有衆惱者如彼行人執意牢固結使永盡無餘是故說一切結使盡無復有衆惱也

30

지음 없음은 지음 있음이 없는 것이니
짓는 사람은 치열한 번뇌를 받으리라.
짓지도 않고 지음 없음도 아니라면
먼저는 걱정했으나 뒤에도 그러할까.
029_0966_b_23L無造無有造
造者受煩熱
非造非無造
前憂後亦然
029_0966_c_02L
“지음 없음은 지음 있음이 없는 것이니, 짓는 사람은 치열한 번뇌를 받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먼저 죄를 짓고는 그것이 법이 아닌 줄을 절실히 깨달으면 사람들에게 그것을 드러내고 참회를 구하면서 숨기지 않으니, 그렇게 하면 그는 다시 몸을 받아 나더라도 고뇌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음 없음은 지음 있음이 없는 것이니, 짓는 사람은 치열한 번뇌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짓지도 않고 지음 없음도 아니라면, 먼저는 걱정했으나 뒤에도 그러할까”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가도 이내 회개하면, 그는 목숨을 마치는 날에는 정신이 어지럽지 않고 선한 신장들이 호휘하기 때문에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짓지도 않고 지음 없음도 아니라면, 먼저는 걱정했으나 뒤에도 그러할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c_02L無造無有造造者受煩熱者人前爲罪深知非法向人布現求改懺悔不自隱藏若更生受形不受苦惱是故說曰無造無有造造者受煩熱也造非無造前憂後亦然者人前爲過尋時改悔壽終之日神不錯亂善神衛護不至惡道是故說曰非造非無前憂後亦然也

31
이미 지으려면 좋은 행을 지어라.
그렇게 하면 걱정이 없으리라.
그리고 짓되 즐거이 지으면
천상에 나서 즐거움 받으리라.
029_0966_c_10L造者爲善妙
以作不懷憂
造而樂而造
生天受歡樂

“이미 지으려면 좋은 행을 지어라. 그렇게 하면 걱정이 없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선행을 닦는 사람은 여러 가지 덕을 두루 갖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난다. 그러므로 “이미 지으려면 좋은 행을 지어라. 그렇게 하면 걱정이 없으리라. 그리고 짓되 즐거이 지으면, 천상에 나서 즐거움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c_12L造者爲善妙以作不懷憂者人脩善行衆德具足衆人所敬莫不宗奉終之後生善處天上是故說曰造者爲善妙以作不懷憂造而樂而造天受歡樂也

32

또 그가 변론할 줄 모르면
어떻게 현성의 차별을 알랴.
그러나 그가 변론할 줄 안다면
그 말에는 때[垢]의 자취가 없다.
029_0966_c_17L亦復不知論
賢聖不差別
若復知論議
所說無垢迹
029_0967_a_02L
“또 그가 변론할 줄 모르면, 어떻게 현성의 차별을 알랴”란 무슨 뜻인가?
만일 저 수행하는 사람이 변론할 줄을 몰라서 글귀의 이치도 분별하지 못하고, 또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도 위의와 예절에 대해 알지 못하면, 현인과 어리석은 자를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 그가 변론할 줄 모르면, 어떻게 현성의 차별을 알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변론할 줄 안다면, 그 말에는 때의 자취가 없다”란 무슨 뜻인가?
때가 끼지 않은 변론은 모든 집착하는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도 즐겁고 또 남의 한량없는 칭찬도 받는다. 그리하여 그 설법을 듣는 사람은 모두 그 법맛[法味]에 배를 불리고는 저의 아귀나 축생이나 지옥과 같은 나쁜 길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나 그가 변론할 줄 안다면, 그 말에는 때의 자취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6_c_19L亦復不知論賢聖不差別者如彼行人不解議論不別句義若在大衆不知威儀禮節賢愚不別是故說曰復不知論賢聖不差別也若復知論所說無垢迹者無垢之論去諸想內懷歡喜稱慶無量所聞法味充飽一切不趣惡道餓鬼畜生地獄之是故說曰若復知論議所說無垢迹也

33

법에 알맞는 변론을 설해서
마땅히 선인(仙人)의 깃대를 세워야 한다.
법의 깃대를 바로 선인이라 하고
선인을 바로 법의 깃대라 한다.
029_0967_a_05L說應法議說
當豎仙人幢
法幢爲仙人
仙人爲法幢

“법에 알맞는 변론을 설해서”란 무슨 뜻인가?
불꽃처럼 왕성한 법맛을 남을 위해 연설하되, 표현과 내용을 완전히 갖추어서 이리저리 가르친다는 것이다. 선인이란 바로 부처님을 말한다. 이름의 몸과 글귀의 몸을 설명할 때 낱낱이 분별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바른 법을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a_07L說應法議說昌熾法味與人演布句具足展轉相教仙人者諸佛世尊說名身句身一一分別無有錯謬欲使正法久存於世是故說曰

법에 알맞는 변론을 설해서
마땅히 선인의 깃대를 세워야 한다.
법의 깃대를 바로 선인이라 하고
선인을 바로 법의 깃대라 한다.
029_0967_a_11L說應法議說
當豎仙人幢
法幢爲仙人
人爲法幢也

34

혹은 조용히 꾸짖기도 하고
혹은 대중 속에서 꾸짖기도 하며
혹은 소리내지 않고 꾸짖나니
세상에는 꾸짖지 않는 일이 없다.
029_0967_a_13L或有寂然罵
或有在衆罵
或有未聲罵
世無有不罵

“혹은 조용히 꾸짖기도 하고”란 무슨 뜻인가?
마음속이 치열해서 쉬지 않고 저주하되 저 사람이 수재나 화재를 당하거나 도둑을 맞았으면 하는데, 속으로만 생각하고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혹은 조용히 꾸짖기도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혹은 대중 속에서 꾸짖기도 하며”란 무슨 뜻인가?
높은 소리로 크게 꾸짖되 높고 낮은 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대중 속에서 꾸짖기도 하며”라고 말한 것이다.
“혹은 소리내지 않고 꾸짖나니”란 무슨 뜻인가?
일부러 대중 속에 있으면서도 큰소리를 치지 않고 직접 꾸짖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소리내지 않고 꾸짖나니, 세상에는 꾸짖지 않은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a_15L或有寂然罵者心內熾然呪咀不息欲使彼人遭水火盜賊內心思惟不彰露在外是故說曰或有寂然罵也或有在衆罵高聲大喚不避尊卑故說曰或有在衆罵也或有米聲罵權在衆中亦不高聲對面相罵是故說曰或有未聲罵世無有不罵

35

한 번 비방하고 한 번 칭찬하는 것
다만 그 이름만 이롭게 할 뿐이니
그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알 수도 없는 것이다.
029_0967_a_22L一毀一譽
但利其名
非有非無
亦不可知
029_0967_b_02L
“한 번 비방하고 한 번 칭찬하는 것, 다만 그 이름만 이롭게 할 뿐이니”란 무슨 뜻인가?
온갖 선의 공덕은 그 몸을 기르는데, 혹 공양을 얻었더라도 그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혹 비방을 받았더라도 그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선한 마음은 끊어진 것이 아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징조가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며, 현재는 머무르지 않아서 반드시 표전(漂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a_24L一毀一譽但利其名諸善功德育養其身設得供養不以爲歡若彼毀辱不以爲慼過去已滅善心不絕當來未至未有生兆現在不住當復漂轉是故說曰

한 번 비방하고 한 번 칭찬하는 것
다만 그 이름만 이롭게 할 뿐이니
그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알 수도 없는 것이다.
029_0967_b_06L一毀一譽
但利其名
非有非無
亦不可知也

36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받나니
고운 것에든 추한 것에든
지혜로운 사람은 결함이 없다.
그의 지혜와 선정과 해탈은
마치 저 자마금(紫磨金)처럼
안팎이 모두 청정하게 사무쳤다.
029_0967_b_07L睿人所譽
若好若醜
智人無缺
睿定解脫
如紫磨金
內外淨徹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받나니, 고운 것에서든 추한 것에서든”이란 무슨 뜻인가?
깨달은 소견과 넓은 소견으로 하나의 뜻[一義]을 연설하더라도 아무도 그를 미치지 못하니 모두 그의 구제를 받아서 괴로움에서 떠나게 된다.
마치 부처님이 다니실 때 땅에서 네 치쯤 떨어진 허공을 밟고 다니시지만, 땅에는 발자국의 무늬가 저절로 환히 나타나서 벌레들이나 형상이 있는 무리들이 모두 그 광명을 입고 구제를 받아 이레 동안 아무 고통 없이 아주 편안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해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그는 마치 자마금처럼 안팎이 청정하여 아무런 티가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b_09L睿人所譽若好若醜覺見廣見敷演一義而不可及皆蒙得度濟神離苦猶如如來行則履虛離地四寸地上印文炳然自現其中虫蠡有形之類蒙光得度七日安隱永無衆苦無能傷害猶如紫磨純金內外淸淨無有瑕滓是故說曰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 받나니
고운 것에든 추한 것에든
지혜로운 사람은 결함이 없다.
그의 지혜와 선정과 해탈은
마치 저 자마금처럼
안팎이 모두 청정하게 사무쳤다.
029_0967_b_16L睿人所譽
若好若醜
智人無缺
睿定解脫
如紫磨金
內外淸徹也

37

마치 저 안명산(安明山)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비방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029_0967_b_18L猶若安明山
不爲風所動
睿人亦如是
不爲毀譽動
029_0967_c_02L
마치 저 안명산이 굳세게 우뚝 서서 끝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도 세상에 사시지만 세상의 여덟 가지 법을 버렸기 때문에 비방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으신다. 많이 널리 두루 보아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어떤 범지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와 비방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땅처럼 지녀서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 처소에 가서 온갖 욕설과 비방을 했지만, 그 뒤에는 다시 온갖 칭찬과 기리는 말로 부처님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부처님 마음은 굳건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치 저 안명산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비방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b_20L如彼安明山峙立安固終不爲風所如來處世去世八法不爲毀譽所有一梵志多聞廣見無事不苞佛出世不爲毀譽所動持心如地不記好醜往至佛所以百種罵毀呰如來後復以百種語讚譽如來如來心意鏗然不動是故說曰猶若安明山爲風所動睿人亦如是不爲毀譽動也

38

만일 어떤 나무가 뿌리 없으면
가지도 없겠거늘 하물며 잎이 있으랴.
그리하여 건전한 자는 결박을 풀었거니
누가 능히 그 덕을 비방하랴.
029_0967_c_05L如樹無有根
無枝況有葉
健者以解縛
誰能毀其德

“만일 어떤 나무가 뿌리 없으면, 가지도 없겠거늘 하물며 잎이 있으랴”란 무슨 뜻인가?
무명의 뿌리는 온갖 근심의 근원이요, 애욕은 가지와 잎을 내어 삿된 소견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나무가 뿌리 없으면, 가지도 없겠거늘 하물며 잎이 있으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건전한 자는 결박을 풀었거니, 누가 능히 그 덕을 비방하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건전한 자란 모든 부처님을 가리킨 것이니, 부처님은 모든 결박과 집착을 벗어나서 다시는 태의 몸을 받지 않고 또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건전한 자는 결박을 풀었거니, 누가 능히 그 덕을 비방하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c_07L如樹無有根無枝況有葉者無明根本衆患之源愛生枝葉以興邪見故說曰如樹無有根無枝況有葉也健者以解縛誰能毀其德者所謂健者謂佛世尊脫諸縛著更不受胞胎之形亦復不從今世至後世是故說健者以解縛誰能毀其德也

39

번뇌 없으면 집착도 없는데도
몸의 구덩이에 괴로움의 종자를 심네.
가장 뛰어난 이는 애욕이 없으므로
천상이나 인간에서 아는 이 없다.
029_0967_c_14L無垢無有住
身塹種苦子
最勝無有愛
天世人不知

“번뇌 없으면 집착도 없는데도”란 무슨 뜻인가?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아주 없앤 것이니, 번뇌가 있으면 집착이 있고 번뇌가 없으면 집착이 없으며, 또 몸의 구덩이도 없고 괴로움의 종자도 없다. 그러므로 “번뇌 없으면 집착도 없는데도, 몸의 구덩이에 괴로움의 종자를 심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가장 뛰어난 이는 애욕이 없으므로, 천상이나 인간에서 아는 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이 고요한 선정에 들어서 삼매를 바로 받을 때에는 몸을 없애고 스스로 숨어 계시기 때문에 여러 하늘과 성인들은 부처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싶어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뛰어난 이는 애욕이 없으므로, 천상이나 인간에서 아는 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7_c_16L無垢無有住者去諸結使永盡無餘結則有住無結則無住亦無身塹亦無苦子是故說曰無垢無有住身塹種苦子也最勝無有愛天世人不知如來坐禪寂然入定三昧正受滅形自隱諸天聖人欲得知如來者此事不然是故說曰最勝無有愛天世人不知也
029_0968_a_02L
40

애욕은 우거진 숲에 그물을 친 것 같으니
애욕이 없다면 다른 것이 또 있으랴.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그 자취가 없거니 누가 잡으랴.
029_0967_c_24L猶如網叢林
無愛況有餘
佛有無量行
無迹誰迹將

“애욕은 우거진 숲에 그물을 친 것 같으니”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해 애욕의 뿌리와 그 가지와 잎의 뻗어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리니 잘 명심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자세한 것은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중생들은 생사에 헤매면서 다섯 갈래의 길로 헤어져 다닌다.”
그러므로 “애욕은 우거진 숲에 그물을 친 것 같으니”라고 말한 것이다.
“애욕이 없다면 다른 것이 또 있으랴”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은 도를 이루어 다시는 애욕이 없기 때문에 다섯 갈래의 길을 아주 끊고 삼계에 처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애욕이 없다면 다른 것이 또 있으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8_a_03L猶如網叢林者佛告比丘今當與汝說愛根本枝葉滋蔓善思念之廣說如契經流轉生死分著五道是故說曰猶若網叢林無愛況有餘者如來成道永無有愛永斷五道不處三界不受四生是故說曰無愛況有餘也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그 자취가 없거니 누가 잡으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부처님은 일체를 깨달으셨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 없고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다. 즉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통ㆍ5근(根)ㆍ5력 (力)ㆍ7각도(覺道) 등을 닦고는 그것을 널리 펴 연설하시되 다함이 없으니, 높기는 위가 없어서 능히 헤아릴 수 없고 깊기는 밑이 없어서 또한 측량할 수 없다.
번뇌가 있으면 자취가 있고 번뇌가 없으면 자취가 없다. 대개 사람이 발이 있기 때문에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상ㆍ하로 돌아다니는데, 번뇌의 자취가 있으면 장차 삼계에 들어가 다섯 갈래의 길을 헤매면서 생사를 떠나지 못할 것이요, 번뇌의 자취가 없으면 삼계의 여덟 가지 어려운 곳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그 자취가 없거니 누가 잡으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8_a_09L佛有無量行無迹誰迹將者所謂佛者寤一切諸法無事不知無事不達四意止四意斷四神足布演說無有窮極高而無上無能量深邃無下深不可測有結則有迹無結則無迹夫人有足便得遊行東西南北四維上下結有迹者將入三界遊馳五道不離生死結無迹者不至三界八難之處是故說曰佛有無量行無迹誰迹將也

41
만일 이 세상에 나지 않으려거든
나더라도 다시 유(有)를 받지 않도록 하라.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그 자취가 없거니 누가 잡으랴.
029_0968_a_19L若有不欲生
以生不受有
佛有無量行
無迹誰迹將

“만일 이 세상에 나지 않으려거든, 나더라도 다시 유(有)를 받지 않도록 하라”란 무슨 뜻인가?
한 몸을 버리고는 또 한 몸을 받아서 생사를 거치는데 억천만의 몸이 나고 죽은 것이 한량이 없어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도를 이루어서 옛몸을 마쳤기 때문에 다시는 몸을 받아서 갖가지 고뇌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8_a_21L若有不欲生以生不受有者捨身受形經歷生死億千萬身生死無量不可稱計今得成道畢故身更不受形受諸苦惱是故說曰
029_0968_b_02L
만일 이 세상에 나지 않으려거든
나더라도 다시 유(有)를 받지 않도록 하라.
부처님은 한량없는 행이 있지만
그 자취가 없거니 누가 잡으랴.
029_0968_b_02L若有不欲生
以生不受有
佛有無量行
無迹誰迹將也

42

만일 그 상념들을 없애려거든
안팎의 모든 인(因)을 없애 버려라.
그 인(因)에는 색(色)의 상념보다 더한 것이 없나니
네 가지를 버리면 몸을 받지 않으리.
029_0968_b_04L若欲滅其想
內外無諸因
亦無過色想
四應不受生

“만일 그 상념들을 없애려거든, 안팎의 모든 인을 없애 버려라”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상념이란 욕계의 상념ㆍ색계의 상념ㆍ무색계의 상념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그것을 아주 없애서 다시는 나지 않게 하고, 또 삼계의 번뇌를 짓지 않으므로 안팎이 모두 청정하여 아무런 티끌이나 때도 없다. 그러므로 “만일 그 상념들을 없애려거든, 안팎의 모든 인을 없애 버려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8_b_06L若欲滅其想內外無諸因者所謂想欲想色想無色想行人永滅亦不使生亦復不造三界結使內外淸淨不造塵垢是故說曰若欲滅其想外無諸因也
“그 인(因)에는 색(色)의 상념보다 더한 것이 없나니, 네 가지를 버리면 몸을 받지 않으리”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과거의 색 과거에 지은 색과 미래의 색, 미래에 지을 색, 현재의 색과 현재에 짓는 색을 관찰해서 낱낱이 분별한다. 네 가지에 색(色)이 없는 것은 마치 전륜성왕이 네 천하를 통치하면서 그 몸에는 대인(大人)의 모양과 여러 가지 상호를 구족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은 그를 보되 자기와 다르지 않게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색이 좋다 해도 좋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그 색이 추하다고 해서 나쁘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며, 또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거나 ‘남이 옳고 내가 그르다’고 보지 말고, 또 옳고 그름에 있어서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보지 않아서 좋다 나쁘다는 생각이 전연 없어서 네 가지를 아주 끊고 다시는 좇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인(因)에는 색(色)의 상념보다 더한 것이 없나니, 네 가지를 버리면 몸을 받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8_b_11L亦無過色想四應不受生者如彼行人觀過去色過去造色未來色未來造色現在色現在造色一一分別四無有色如彼轉輪聖王統四天下身有大人之相衆好具足行人觀彼如己無異不以色好而興好想不以色醜而興惡想不見我是彼非彼是我非我亦復不見是非是非非都無好醜之想永斷四應不與從事是故說曰亦無過色想四應不受生也

43

앞의 것도 버리고 뒤의 것도 버리고
중간 것도 버려서 유(有)를 뛰어넘고
일체를 모두 다 버린 뒤에는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을 것이다.
029_0968_b_21L捨前捨後
捨閒越有
一切盡捨
不受生老
029_0968_c_02L
“앞의 것도 버리고 뒤의 것도 버리고, 중간 것도 버려서 유(有)를 뛰어넘고”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앞의 것이란 과거의 음(陰)ㆍ계(界)ㆍ입(入)으로 생기는 번뇌의 결박이니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요, 뒤의 것이란 미래의 음ㆍ계ㆍ입으로 생기는 번뇌의 결박이니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며, ‘중간 것도 버려서 유(有)를 뛰어넘고’란 현재의 음ㆍ계ㆍ입으로 생기는 번뇌의 결박을 버린다는 것이다.
“일체를 모두 다 버린 뒤에는”이란 무슨 뜻인가?
이 현재의 몸으로 허무의 도(道)를 얻음으로써 삼천대천세계의 왕이 되고 시방을 모두 관장하니, 뜻대로 자유롭고 할일을 완전히 마쳐서 다시는 태의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것도 버리고 뒤의 것도 버리고, 중간 것도 버려서 유(有)를 뛰어넘고, 일체를 모두 다 버린 뒤에는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8_b_23L捨前捨後捨閒越有所謂前者過去陰持入結使縛著捨後者捨未來陰持入結使縛著捨閒越有者現在陰持入結使縛著捨一切者現身中得虛無道王三千典十方意自從所作已辦更不復受胎如實知之是故說曰捨前捨後捨閒越有一切盡捨不受生老也
出曜經卷第二十六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