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9_0969_a_01L출요경 제27권
029_0969_a_01L出曜經卷第二十七

요진 양주 사문 축불념 한역
029_0969_a_02L 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31. 낙품(樂品)
029_0969_a_03L樂品第三十一

1
이기면 원한이 사라지고
지면 스스로 야비해지지만
원한이 쉬면 즐거워지면서
이기고 진다는 마음이 없다.
029_0969_a_04L勝則怨滅
負則自鄙
息則快樂
無勝負心

“이기면 원한이 사라지고, 지면 스스로 야비해진다”란 무슨 뜻인가?
원한을 가진 사람은 밤낮으로 그 원수에 대하여 기회를 엿보며, 그 원수에 대하여 큰 원한을 품고 여러 세상을 지내면서도 그 원한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수없이 몸을 바꾸다가 그 원수를 갚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쉬고, 거기서 진 사람은 스스로 야비해진다. 그러므로 “이기면 원한이 사라지고 지면 스스로 야비해지지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원한이 쉬면 즐거워지면서, 이기고 진다는 마음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모든 번뇌가 남김없이 아주 없어져서 다시는 집착하는 생각이 없다면, 이기고 진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이기고 그가 졌다’라든가, ‘그가 이기고 내가 졌다’라는 피차의 마음이 전연 없다.
그러므로 “원한이 쉬면 즐거워지면서, 이기고 진다는 마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9_a_06L勝則怨滅負則自鄙者如彼怨家晝夜伺察彼人於彼有大怨嫌從世至世不捨罪怨如是經歷數百千身報怨乃息負者自鄙是故說曰勝則怨滅者自鄙也息則快樂無勝負心一結使永盡無餘更不復起想著之念亦復無勝負之心我勝彼不如彼勝我不如都無彼此之心是故說曰則快樂無勝負心也

2

만일 누구나 남을 해치고 혼란시켜서
스스로 안락한 세상을 구하려 하면
드디어 많은 원수를 맺게 되어서
끝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
029_0969_a_15L若人嬈亂彼
自求安樂世
遂成其怨憎
終不脫苦患
029_0969_b_02L
“만일 누구나 남을 해치고 혼란시켜서, 스스로 안락한 세상을 구하려 하면”이란 무슨 뜻인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미혹에 사로잡히고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깊은 탓에 남을 해침으로써 스스로의 쾌락과 친척의 경사를 바라지만, 그것은 쓴 종자를 심어서 단 열매를 바라는 것과 같아서 한갓 애만 쓸 뿐이지 세상에는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나 남을 해치고 혼란시켜서, 스스로 안락한 세상을 구하려 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드디어 많은 원수를 맺게 되어서, 끝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무슨 뜻인가?
갑자기 싸우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오히려 용서할 수 있겠지만, 마음속에 독한 음모를 품고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친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나쁜 길에 떨어질 것이니, 그것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혀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드디어 많은 원수를 맺게 되어서, 끝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9_a_17L若人嬈亂彼自求安樂世者世多有人執迷惑意怨讎心深觸嬈於人自望快樂宗族蒙慶如種苦栽冀望甘菓唐喪功夫無益於時是故說曰若人嬈亂彼自求安樂世也遂成其怨憎終不脫苦患者卒鬪殺人猶尚可恕毒陰謀乃不可親如斯之類必趣惡所以然者由其執愚不捨故也故說曰遂成其怨憎終不脫苦患也

3

애욕을 좋아하고 즐기느라고
몽둥이로 온갖 생명을 해치면서
거기서 스스로 안락을 구하지만
후세에는 안락을 얻지 못하리.
029_0969_b_05L善樂於愛欲
以杖加群生
於中自求安
後世不得樂

“애욕을 좋아하고 즐기느라고”란 무슨 뜻인가?
일체 중생은 모두 즐거움을 탐하고 고뇌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들 마음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살생하고 남을 시켜서 살생하며, 스스로 음란하고 남으로 하여금 음란케 하며, 스스로 거짓말과 꾸밈 말을 하고, 남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꾸밈 말을 하게 하며, 스스로 함께 갖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남의 물건을 훔치게 한다. 그러므로 “애욕을 좋아하고 즐기느라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9_b_07L善樂於愛欲 者一切衆生 皆貪樂樂不樂苦惱見苦則群心不願樂己自行殺教人殺生己自婬泆教人婬泆自妄言綺語復教人妄言綺語己自不與取復教他人竊盜他物是故說善樂於愛欲也
“몽둥이로 온갖 생명을 해치면서”란 무슨 뜻인가?
그 소행이 법답지 않아서 함부로 백성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그의 마음 가짐이 해침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몽둥이로 온갖 생명을 해치면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기서 스스로 안락을 구하지만, 후세에는 안락을 얻지 못하리”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 하는 짓이지만, 그는 몸을 버린 뒤에는 또 다른 몸을 받아서 온갖 고뇌를 당한다. 즉 생사에 헤매면서 다섯 갈래의 길에 빠질 것이요, 태어나는 곳마다 죄의 고통이 스스로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서 스스로 안락을 구하지만, 후세에는 안락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9_b_13L以杖加群生者行非法濫抂百姓意之所存以傷爲是故說曰以杖加群生也於中自求安後世不得樂人作惡行皆自爲己捨身受形遭諸苦惱經歷生死沈漂五道所生之處罪苦自隨是故說曰於中自求安後世不得樂也

4

누구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온갖 생명을 몽둥이로 해치지 말라.
거기서 스스로 즐거움을 구하면
후세에도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029_0969_b_19L人欲得歡樂
杖不加群生
於中自求樂
後世亦得樂
029_0969_c_02L
“누구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온갖 생명을 몽둥이로 해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일체 중생은 모두 즐거움을 탐하고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으니, 중생의 고통을 보거든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으로 마치 갓난아기처럼 볼 뿐 조금이라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그들을 때리지 말라. 세상에 사는 중생은 모두 자신의 안락함을 구하는 것이니, 만일 내가 지금 그들을 해치면 후생에 가서 무수한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9_b_21L人欲得歡樂杖不加群生者一切衆生皆貪於樂不樂於苦見彼苦者興慈愍心四等平均視彼如赤子初不起怨捶打衆生處世皆求安身設我今日觸嬈彼者後世之中受對無數故說曰

누구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온갖 생명을 몽둥이로 해치지 말라.
거기서 스스로 즐거움을 구하면
후세에도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029_0969_c_04L人欲得歡樂
杖不加群生
中自求樂
後世亦得樂也

5

법을 즐기고 수행을 즐겨야지
함부로 나쁜 법을 행하지 말라.
법을 잘 행하는 사람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즐거우리라.
029_0969_c_05L樂法樂學行
愼莫行惡法
能善行法者
今世後世樂

대개 세상을 사는 사람은 법을 힘써 행하되 좋은 법을 가려야 한다. 또 악을 버리려 하거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선지식을 찾고 좋은 가르침을 취해서 어디를 가든 법사(法事)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하셨다.
029_0969_c_07L夫人在世務行於法選擇善法去其惡者周旋往來追善知識採取善教所至到處興有法事是故說曰

법을 즐기고 수행을 즐겨야지
함부로 나쁜 법을 행하지 말라.
법을 잘 행하는 사람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즐거우리라.
029_0969_c_10L樂法樂學行
愼莫行惡法
能善行法者
世後世樂也

6

법을 보호하고 법을 행하는 사람은
법을 행함으로써 좋은 과보 얻나니
이는 응당 법률의 가르친 바이니
법을 행하면 나쁜 곳에 안 간다.
029_0969_c_12L護法行法者
行法獲善報
此應法律教
行法不趣惡

“법을 보호하고 법을 행하는 사람은, 법을 행함으로써 좋은 과보 얻나니”란 무슨 뜻인가?
스스로 법을 잘 보호하여 누실(漏失)이 없으면 뒤에 가서 그 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법을 보호하고 법을 행하는 사람은, 법을 행함으로써 좋은 과보 얻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응당 법률의 가르친 바이니, 법을 행하면 나쁜 곳에 안 간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법으로써 스스로 보호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에서 나쁜 재앙을 받지 않고,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모두 그 과보를 받는다. 그는 하늘에서 복을 받다가 다시 인간에 내려와서도 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는 응당 법률의 가르친 바이니, 법을 행하면 나쁜 곳에 안 간다”라고 말씀하신다.
029_0969_c_14L護法行法者行法獲善報者能自擁護法不使漏失後獲其福是故說曰護法行法者行法獲善報也此應法律教行法不趣惡者彼執行人以法自護所生之中不遇惡災從小至大悉受其對天受福盡下生人閒復重受福是故說曰此應法律教行法不趣惡也

7

법을 보호하고 법을 행하는 사람은
일산으로 그 몸을 가린 것과 같다.
이는 응당 법률의 가르친 바이니
법을 행하면 나쁜 곳에 안 간다.
029_0969_c_22L護法行法者
如蓋覆其形
此應法律教
行法不趣惡
029_0970_a_02L
수행하는 사람은 깊은 법의 미묘한 가르침을 보호해서 5음(陰)을 버리는 것이 마치 맹렬한 더위에 좋은 일산을 얻으면 그 더위를 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69_c_24L彼修行人擁護深法微妙之教去諸陰如猛赫熱而獲好蓋得蒙濟度故說曰

법을 보호하고 법을 행하는 사람은
일신으로 그 몸을 가린 것과 같다.
이는 응당 법률의 가르친 바이니
법을 행하면 나쁜 곳에 안 간다.
029_0970_a_04L護法行法者
如蓋覆其形
應法律教
行法不趣惡也

8

악을 행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가는 곳마다 나쁜 길에 떨어진다.
법이 아닌 행은 스스로 빠지나니
마치 손으로 독사를 잡는 것과 같다.
029_0970_a_05L惡行入地獄
所至墮惡道
非法自陷溺
如手把蛇蚖

“악을 행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가는 곳마다 나쁜 길에 떨어진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은 부모ㆍ형제ㆍ친척이 시킨 것이 아니고 모두 자기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 자신이 지은 죄로 그 재앙을 받을 때에는 아무도 그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외도들의 소견은 이와 다르니, 그들은 ‘자기가 죄를 지었을 때 다른 사람이 그 과보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가는 곳마다 나쁜 길에 떨어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법이 아닌 행은 스스로 빠지나니, 마치 손으로 독사를 잡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독사를 잡되 주술(呪術)로 잡는 이도 있고, 약초로 잡는 이도 있으며, 혹은 스승의 가르친 법으로 독사를 잡고 희롱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주술이 끝난 뒤에는 독사에게 물려 죽어서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세계에 떨어져 쉬지 않고 생사(生死)를 치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이 아닌 행은 스스로 빠지나니, 마치 손으로 독사를 잡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0_a_07L惡行入地獄所至墮惡道者人爲惡非父母兄弟宗親所爲皆由己身爲罪所致作罪自受其殃無能代者外道異學所見不同外道所見己身作罪他人受報是故說曰惡行入地所至墮惡道也非法自陷溺如手把蛇蚖者猶如彼人手把蛇蚖或以呪術而取者或以藥草而取者或被師教而手翫弄惡蛇呪罷之後爲蛇所死入地獄餓鬼畜生經歷生死無有休已是故說曰非法自陷溺如手把蛇蚖也

9

법다운 일과 법답지 않은 일
그 두 가지 과보는 같지 않나니
법답지 않은 것은 지옥에 들고
바른 법을 행하면 하늘에 난다.
029_0970_a_19L不以法非法
二事俱同報
非法入地獄
正法生於天
029_0970_b_02L
“법다운 일과 법답지 않은 일, 그 두 가지 과보는 같지 않나니”란 무슨 뜻인가?
중생들은 선이나 악을 행하면서 그 재앙이나 복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니, 선을 행하는 사람도 그 선의 과보가 있는 줄을 모르고 악을 행하는 사람도 그 악의 과보가 있는 줄을 모른다.
마치 어떤 사람이 독이 섞인 음식을 얻어먹을 때 그 음식에 독이 있는 줄을 모르다가 독기가 확 퍼지면 그 몸이 아픈 것처럼, 악을 행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그 당시에는 입에 달지만 뒤에 가서는 그 재앙을 받고 드디어 목숨을 잃고 좋은 곳에도 가지 못한다.
그러나 눈이 밝은 사람은 그 음식을 살핀 뒤에 ‘이것은 깨끗하여 그 속에 독이 없다’고 알고서 먹기 때문에 나중에도 아무 고통이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0_a_21L不以法非法二事俱同報此衆生類造善惡行不自覺知殃福之報爲善者不知善之有報爲惡者不知惡之有報如彼有人得雜毒之食得而享不知食中有毒毒氣流熾不便其行惡之人亦復如是當時甘口後受其殃遂喪其命不至善處有目之士觀食知之斯是淸淨其中無毒便取食之後無苦患是故說曰

법다운 일과 법답지 않은 일
그 두 가지 과보는 같지 않나니
법답지 않은 것은 지옥에 들고
바른 법을 행하면 하늘에 난다.
029_0970_b_07L不以法非法
二事俱同報
非法入地獄
正法生於天也

10

보시와 싸움이 함께 있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 않나니
보시할 때와 싸움할 때가
동시에 있기 때문이니라.
029_0970_b_09L施與戰同處
此德智不譽
施時亦戰時
此事二俱等

옛날 사위성 안에 두 장자가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최승(最勝)이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은 난항(難降)이었다. 그들은 인색하기가 국내에서 제일이었으니, 재물과 보배가 많아서 일곱 가지 보물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코끼리ㆍ말ㆍ수레와 종과 곡식과 논ㆍ밭 등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대문을 일곱 겹으로 만들고서 그 문지기에게 명령하였다.
“어떤 거지라도 이 대문 안이나 뜰 안으로 들이지 말라.”
그리고 새가 날아와서 곡식을 쪼아먹을까 걱정해서 쇠그물로 마당 위를 덮고, 쥐가 들어와 그릇을 갉을까 걱정해서 집 사방의 벽과 담에 쇠를 녹여서 붙였다.
029_0970_b_11L昔舍衛城內有一長者名曰最勝有長者名曰難降二人慳貪國中第饒財多寶七珍具足象馬車乘奴婢穀食田業不可稱計二人門戶各有七重勅守門者無令乞兒入我門戶中庭之中鐵籠覆上恐有飛鳥啄拾穀食屋舍四壁鑄鐵垣牆鼠穿鑿嚙壞器物也
어느 때 다섯 사람의 큰 성문(聲聞)이 차례로 그들 집에 가서 그들을 교화했는데, 땅에서 솟아올라 설법으로써 보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설법을 듣고도 교화되지 않았다. 그 뒤에 부처님이 몸소 가서 허공에 앉았다 누웠다 하시면서 큰 광명을 놓아 그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연설하셨지만, 그들은 그 설법을 듣고도 아직 마음이 요달하지 못해서 가만히 생각하였다.
‘부처님이 우리집까지 오셨는데 그냥 정사(精舍)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창고에 들어가서 흰 담요 하나를 가져와 보시하리라.’
029_0970_b_19L是時五大聲聞各以次第詣彼教化從地踊出教以法施長者二人聞之各不受化後佛自往坐臥虛空放大光明佛與長者說微妙法長者雖聞心猶不達內自思惟佛來至舍不可虛爾使還精舍宜入藏裏取一白㲲布施如來
029_0970_c_02L그리고는 즉시 일어나서 창고에 들어가 나쁜 것 하나를 집었는데 오히려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두고 또 다른 것을 집었는데 그것은 더 좋은 것이었다. 결국 마음과 뜻이 서로 다투면서 결정을 짓지 못하였다. 바로 그 날 아수륜(阿須倫)과 도리천(忉利天)이 서로 싸웠는데, 어떤 때는 하늘이 이기고 아수륜이 졌으며, 어떤 때는 아수륜이 이기고 하늘들이 지기도 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하늘눈으로 장자의 마음을 관찰하셨는데, 어떤 때는 인색한 마음이 이기고 보시하려는 마음이 졌고, 어떤 때는 보시하려는 마음이 이기고 인색한 마음이 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문득 다음 게송을 말씀하셨다.
029_0970_c_02L卽起入藏選一惡者反更得好捨而更取倍得好者心意共諍不能自決當於其日阿須倫與忉利天共鬪或天得阿須倫不如或阿須倫得勝諸天不如爾時世尊以天眼觀見長者心或時慳心得勝施心不如或時施心得勝慳心不如爾時世尊便說斯偈

보시와 싸움이 함께 있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 않나니
보시할 때와 싸움할 때가
동시에 있기 때문이니라.
029_0970_c_09L施與戰同處
此德智不譽
施時亦戰時
此事二俱等

장자는 멀리서 이 게송을 듣고 속으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부처님의 말씀은 바로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라고 하고는 즉시 좋은 담요를 가지고 나와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그리고 난항 장자는 5백 냥의 금을 내놓아서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그들은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리면서 모두 도의 자취를 보았다.
029_0970_c_11L長者遙聞內懷慚愧如來所說正謂我身卽出好㲲持用爲施難降長者出五百兩金持用惠施心開意解各見道迹也

11
비록 백천 번의 변화가 있더라도
교만과 원한을 모두 없애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주 보시를 행하면
가장 훌륭한 건전한 대장부니라.
029_0970_c_15L人遭百千變
等除憍慢怨
時施淸淨心
健夫最爲勝
029_0971_a_02L
“비록 백천 번의 변화가 있더라도, 교만과 원한을 모두 없애서”란 무슨 뜻인가?
공부하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 재산에 집착하고 갖가지 일에 교란되어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으니, 도를 닦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가정을 떠나야 한다. 교만을 버리고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 비로소 보시를 하면서도 그 과보를 바라지 않을 수 있으니, 제 몸을 낮추어 겸손하는 것은 덕을 닦는 근본이 되며, 남을 업신여기고 제 잘난 체하는 것은 재앙의 근본이 된다. 그래서 ‘한적한 곳이라야 진실한 도를 닦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백천 번의 변화가 있더라도 교만과 원한을 모두 없애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자주 보시를 행하면, 가장 훌륭한 건전한 대장부니라”란 무슨 뜻인가?
보시에는 다섯 때가 있어서 다섯 가지 공덕을 얻으며, 잘난 체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면 뜻이 항상 청정해서 혼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마음으로 자주 보시 행하면, 가장 훌륭한 건전한 대장부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0_c_17L人遭百千變等除憍慢怨者學人在家戀著財業衆事憒亂心不一定人欲脩道當離家業除去憍慢不興想著乃得惠施不望其報謙恭卑下脩德之本輕人貴己殃禍之災是以教人閑靜之處然後乃得脩於道眞是故說曰人遭百千變等除憍慢怨也施淸淨心健夫最爲勝者施有五時獲五功德除去憍慢自大之心意常淸淨不懷穢濁是故說曰時施淸淨心健夫最爲勝也

12

참는 것은 적어도 많은 승리를 얻고
계율은 능히 게으름을 이긴다.
믿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면
후세에는 훌륭한 과보를 받는다.
029_0971_a_05L忍少得勝多
戒勝懈怠多
有信惠施者
後身受善報

“참는 것은 적어도 많은 승리를 얻고, 계율은 능히 게으름을 이긴다”란 무슨 뜻인가?
많은 중생들은 믿는 마음은 아주 적고 성내는 마음은 불꽃 같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고 인욕하는 일도 아주 적다. 그러므로 인욕을 행할 수 있으면 원수도 이길 수 있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마치 아나율이 한 번 벽지불에게 덕을 보시함으로써 90겁 동안 한 번도 나쁜 곳에 나지 않고, 나중에는 석씨 종족 가운데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도를 공부해 그 도과(道果)를 얻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1_a_07L忍少得勝多戒勝懈怠多者多有衆生信心極少瞋恚隆熾持戒忍辱亦復少少耳以能行忍則勝怨讎持戒之人勝懈怠者猶如阿那律一有施德與辟支佛九十劫中未曾趣惡道生釋種家佛竝父弟出家學道成其道果是故說曰

참는 것은 적어도 많은 승리를 얻고
계율은 능히 게으름을 이긴다
믿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면
후세에는 훌륭한 과보를 받는다.
029_0971_a_14L忍少得勝多
戒勝懈怠多
有信惠施者
後身受善報也

13

유쾌하여라, 큰 복의 과보여.
원하는 바를 모두 완전히 이루나니
제일 좋은 열반을 빨리 얻고는
점점 무위(無爲)의 경지에 들어가누나.
029_0971_a_15L快哉大福報
所願皆全成
速得第一滅
漸入無爲際

“유쾌하여라, 큰 복의 과보여. 원하는 바를 모두 완전히 이루나니”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복을 닦게 되는 것은 모두 그 전생에 행을 많이 닦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좋은 복밭을 만나서 그 종자는 적게 심어도 그 수확은 한량이 없다.
만일 전생에 현성을 희롱하거나 보시하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해서 평등한 뜻이 없으면, 비록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그 형상이 추악하여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니, 이처럼 악을 행하면 악의 과보를 받고 복을 지으면 복의 과보를 받는다. 그러므로 “유쾌하여라, 큰 복의 과보여, 원하는 바를 모두 완전히 이루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1_a_17L快哉大福報所願皆全成者人之修福皆由前身立行所致値良福田種子雖少獲報無量若復前身觸嬈賢聖施心不純無平等意設受人形形狀醜陋爲人所輕作惡受惡作福受福是故說曰快哉大福報所願皆全成
029_0971_b_02L“제일 좋은 열반을 빨리 얻고는, 점점 무위의 경지에 들어가누나”란 무슨 뜻인가?
온갖 번뇌를 모두 없애고 여러 가지 덕을 두루 갖추면, 그 깨끗하기가 광명과 같아서 안팎이 모두 환할 것이다. 그리하여 구하는 것이 최고의 진리라면 그 즉시 얻을 것이요, 허무의 경계에 들어가려고 하면 그 즉시 얻되 아무 장해가 없을 것이다. 또 바깥의 삿된 무리와 나쁜 악마가 와서 그 복을 짓는 사람을 해치려 하여도 그 즉시 스스로 무너져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옛날에 악마의 왕이 머리는 백 개요 몸은 하나로서 그 형상이 아주 무서운 18억의 무리들과 호랑이ㆍ사자ㆍ독사ㆍ도롱용들을 데리고 와서 부처님을 위협할 때에 부처님은 그 복의 힘으로 그 악마 떼를 쳐부수었는데, 마왕이 물러간 뒤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을 읊으신 것 같다.
029_0971_a_24L速得第一滅漸入無爲際者衆結除盡諸德普具淨如光明內外淸徹意欲所求第一義者尋時卽獲欲得永入虛無之處尋時卽得無有疑滯正使外邪弊魔之徒欲來毀壞爲福之人尋時自壞無奈之何猶昔魔王將十八億衆百頭一身形像可畏師子毒蛇惡蚖來恐如來如來福力使魔斷壞魔王退後爾時世尊便說斯偈

유쾌하여라, 큰 복의 과보여.
원하는 바를 모두 완전히 이루나니
제일 좋은 열반을 빨리 얻고는
점점 무위의 경지에 들어가누나.
029_0971_b_10L快哉大福報
所願皆全成
速得第一滅
漸入無爲際

14

만일 누군가 좋은 방편 구하여
현성의 지혜를 베푼다면
괴로움의 뿌리를 뽑을 수 있으리니
반드시 큰 행복을 얻을 줄 알라.
029_0971_b_12L若彼求方便
賢聖智慧施
盡其苦原本
當知獲大幸

“만일 누군가 좋은 방편 구하여, 현성의 지혜를 베푼다면”이란 무슨 뜻인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현성의 법을 배우려 하면 반드시 용맹정진해서 그 뜻이 산란하지 않아야 비로소 현성의 법에 걸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 좋은 방편 구하여, 현성의 지혜를 베푼다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괴로움의 뿌리를 뽑을 수 있으리니, 반드시 큰 행복을 얻을 줄 알라”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괴로움이란 바로 다섯 가지 요소로 된 이 몸이니, 그것을 능히 없앨 수 있는 사람이라야 도와 걸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뿌리를 뽑을 수 있으리니, 반드시 큰 행복을 얻을 줄 알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1_b_14L若彼求方便賢聖智慧施者學人欲習賢聖法者勇猛精進意不分散然後乃應賢聖之法是故說曰若彼求方便賢聖智慧施也盡其苦原本當知獲大幸者所謂苦者五盛陰是能滅此者乃應道教是故說曰盡其苦原本當知獲大幸也

15

법을 사랑하는 사람은 편히 잠자고
그 마음과 뜻이 순결하고 깨끗하나니
그러므로 현성의 말하신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 즐거워한다.
029_0971_b_21L愛法善眠寤
心意潔淸淨
賢聖所說法
智者所娛樂
029_0971_c_02L
공부하는 사람은 수행할 때 깊은 법을 환히 알아야 하고, 글귀의 이치를 밝게 분별해서 그 마음이 맑아서 다시 다른 생각이 없어야 하며, 전일한 마음으로 선정에 들어서 어떤 삿된 무리에게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현성이 말씀하신 교훈을 즐겨 익히면서 버리지 못하나니,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공부할 바요 우치한 사람의 논(論)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1_b_23L學人習行達了深法曉了分別義句所趣心意澹然無餘異想入定一意不爲衆邪之所傾動賢聖所言教而習之不能捨離智者所習非愚所是故說曰

법을 사랑하는 사람은 편히 잠자고
그 마음과 뜻이 순결하고 깨끗하나니
그러므로 현성의 말씀하신 그 법은
지혜로운 사람이 즐거워한다.
029_0971_c_05L愛法善眠寤
心意潔淸
賢聖所說法
智者所娛樂也

16

만일 사람의 마음이 선정을 즐긴다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즐기고
또 4의지(意止)를 즐기고
아울러 7각의(覺意)를 즐기고
그리고 또 네 가지 신통[神足]과
현성의 여덟 가지 길[八正道]을 즐겨라.
029_0971_c_06L若人心樂禪
亦復樂不起
亦樂四意止
幷及七覺意
及彼四神足
賢聖八品道

“만일 사람의 마음이 선정을 즐긴다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즐기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선정을 즐기는 까닭은 남음이 없는 열반 세계에서 멸도(滅度)를 취하여 불생불멸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의 마음이 선정을 즐긴다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즐기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4의지를 즐기고, 아울러 7각의를 즐기고”란 무슨 뜻인가?
번뇌를 없애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의지(意止)라고 하며, 깨닫는 바가 있기 때문에 각의(覺意)라고 한다. 그러므로 “또 4의지를 즐기고, 아울러 7각의를 즐기고”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또 네 가지 신통과, 현성의 여덟 가지 길을 즐겨라”란 무슨 뜻인가?
대개 신통이라는 법도 번뇌를 끊고 현세에서 무위(無爲)를 즐기는 것이요, 현성의 여덟 가지 길도 현세에서 번뇌를 끊고 훌륭한 이익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고 또 네 가지 신통과, 현성의 여덟 가지 길을 즐겨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1_c_08L若人心樂禪亦復樂不起 者彼脩行人所以樂禪者欲於無餘泥洹界而取滅度不起不滅是故說曰若人心樂亦復樂不起也亦樂四意止幷及七覺意者止結不起謂之意止有所覺寤故謂覺意是故說曰亦樂四意止幷及七覺意也及彼四神足賢聖八品道者夫神足法亦斷結使於現法中快樂無爲賢聖八品道於現法中亦斷結使快樂善利是故說曰及彼四神足賢聖八品道也

17

음식의 절제를 즐길 줄 알고
법복 입기를 즐길 줄 알며
경행(經行)을 즐길 줄 알고
숲 속에 살기를 즐길 줄 알라.
029_0971_c_19L善樂於揣食
善樂攝法服
善樂於經行
樂處於山藪
029_0972_a_02L
“음식의 절제를 즐길 줄 알고, 법복 입기를 즐길 줄 알며”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일체를 끊는 지혜로써 음식이라는 생각을 분별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먹고 싶은 생각이 생기면 먹되 좋거나 나쁜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법복을 바로 입되 과거 성인들의 의복 제도를 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음식의 절제를 즐길 줄 알고, 법복 입기를 즐길 줄 알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1_c_21L善樂於揣食善樂攝法服者如彼行人以獲斷一切之智分別食想意不染著起於食想食若好若醜意無是非法服齊整不違先聖所制服飾是故說曰善樂於揣食善樂攝法服也
“경행을 즐길 줄 알고, 숲 속에 살기를 즐길 줄 알라”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즉 ‘대개 경행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다섯 가지란 첫째는 멀리 갈 수 있고, 둘째는 힘이 생기며, 셋째는 먹은 음식이 잘 소화되고 넷째는 병이 없어지며, 다섯째는 선정을 빨리 얻는다’이다.
또 도를 공부하는 사람은 진여(眞如)인 4제(諦)의 미묘한 법을 얻으니, 설법을 듣고 그것을 깨달으면 곧 깊은 산 속의 사람 없는 곳에 들어가서 선정을 닦고 도를 공부하여 남음 없는 열반의 경계에서 열반에 든다. 그러므로 “경행을 즐길 줄 알고, 숲 속에 살기를 즐길 줄 알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a_03L樂於經行樂處於山藪如佛契經所夫經行之人獲五功德云何爲五一者堪任遠行二者多力三者所可食噉自然消化四者無病五者經行之人速得禪定習道之人得眞如四諦微妙之法聞法意寤卽入深山無人之處禪定習道卽於無餘泥洹界而般泥洹是故說曰善樂於經行善樂於山藪也

18

이미 안락한 곳에 이르면
이 현재의 법에서 함이 없고
온갖 두려움을 뛰어넘으면
세상의 온갖 집착도 뛰어넘는다.
029_0972_a_12L以逮安樂處
現法而無爲以
越諸恐懼
超世諸染著

“이미 안락한 곳에 이르면, 이 현재의 법에서 함이 없고”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은 남음이 있는 열반 세계에서 스스로 즐기다가 차츰 남음이 없는 열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미 안락한 곳에 이르면, 이 현재의 법에서 함이 없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갖 두려움을 뛰어넘으면, 세상의 온갖 집착도 뛰어넘는다”란 무슨 뜻인가?
도의 자취를 봄으로써 온갖 고난을 뛰어넘고 세상의 집착을 뛰어나면, 그 행은 삼계를 지나서 부처의 복밭이 된다. 그러므로 “온갖 두려움 뛰어넘으면, 세상의 온갖 집착도 뛰어넘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a_14L以逮安樂處現法而無爲者如彼修行之人於有餘泥洹界眞法自娛樂漸乃至滅盡泥洹界是故說曰以逮安樂處現法而無爲也以越諸恐懼超世諸染著者以見道迹越諸苦難超世諸染著行過三界爲衆祐福田是故說曰以越諸恐懼超世諸染著也

19

염지(念持)를 즐길 줄 알고
모든 법을 잘 관찰하나니
장하여라, 이 세상 해치지 않고
중생들을 잘 길러 주노라.
029_0972_a_21L善樂於念待
善觀於諸法
善哉世無害
育養衆生類

세상의 애욕을 즐기지 않고
온갖 집착하는 생각을 넘어서서
교만한 마음을 능히 없애면
이것을 첫째가는 즐거움이라 하리.
029_0972_a_23L世無欲愛樂
越諸染著意
能滅己憍慢
此名第一樂
029_0972_b_02L
부처님은 강신(降神)하시어 왕가(王家)에 태어나셨고, 세상의 덧없음과 만물이 허깨비[幻] 같음을 관찰하시고, 세상의 왕위를 버린 채 깊은 산에 들어가 여러 해 동안 도를 닦으며 고행하셨으며, 또한 큰 나무 밑에서 도를 이루신 뒤에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그 나무를 바라보시면서도 눈을 깜짝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린(文鱗) 용왕의 궁전으로 가셔서 이 게송을 읊으셨다.
용왕은 이 게송을 듣고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렸으니, 안목이 열리자 부처님 형상을 보고는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과거의 제 허물을 더럽게 여겼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a_24L如來降神來適王家觀世非常萬物如幻捨世王位深山學道積年苦行坐樹王下成等正覺七日七夜觀樹不眴如來爾時卽從坐起詣文鱗龍王所至彼宮殿而說斯偈龍聞此偈心開意解眼目得開睹如來形愴然揮淚自鄙宿舋是故說曰

염지(念持)를 즐길 줄 알고
모든 법을 잘 관찰하나니
장하여라, 이 세상 해치지 않고
중생들을 잘 길러 주노라.
029_0972_b_08L善樂於念待
善觀於諸法
善哉世無害
育養衆生類

세상의 애욕을 즐기지 않고
온갖 집착하는 생각을 넘어서서
교만한 마음을 능히 없애면
이것을 첫째가는 즐거움이라 하리.
029_0972_b_10L世無愛欲樂
越諸染著意
能滅己憍慢
此名第一樂

20

늙어서도 계율을 가져 즐겁고
믿는 마음을 성취하여 즐겁다.
온갖 이치를 설명하여 즐겁고
어떠한 악도 짓지 않아 즐겁다.
029_0972_b_11L耆老持戒樂
有信成就樂
分別義趣樂
不造衆惡樂

“늙어서도 계율를 가져 즐겁고”란 무슨 뜻인가?
도를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리 늙었더라도 괴로움 속에서 물러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또 젊었다고 해서 세상 영화에 홀려서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도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노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굳세고 치열해야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믿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늙어서도 계율을 가져 즐겁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b_13L耆老持戒樂者夫學道之人年雖耆不辭勞苦中有退心雖復年盛目睹世榮而復懈怠道之在心不問老唯在剛烈乃至於道耳信心以存何往不剋是故說曰耆老持戒樂也
029_0972_c_02L“믿는 마음을 성취하여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에게 믿는 마음만 있다면 네 가지 일로도 흔들기 어려우니, 가령 부처님의 형상으로 화(化)하여 빛나는 모양을 나타내어 와서 나무라더라도 그 마음이 흔들릴 수 없다. 그러므로 “믿는 마음을 성취하여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갖 이치를 설명하여 즐겁고”란 무슨 뜻인가?
사람의 변재는 모두 전생에 쌓은 행 때문이니, 억천만겁을 지내야 비로소 얻는 것이다. 비록 말을 내어 온갖 이치를 분별하더라도 하나하나에 대해 그 차례를 잃지 않고, 한 구절의 이치에서 백천 가지를 설명하더라도 끝내 거친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갖 이치를 설명하여 즐겁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떠한 악도 짓지 않아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누구나 죄악이 없으면 천상이나 인간에 나서 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어떠한 악도 짓지 않아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b_18L有信成就樂者人有信心四事難動正使化作佛形現諸光相欲來詭調不能使心移轉是故說曰有信成就樂者也分別義趣樂者人之辯才皆由宿行億千萬劫乃獲其辯雖出言教分別諸義一一所趣不失次緖從一句義演至百千終不吐出麤獷之言是故說曰分別義趣樂也不造衆惡樂者夫人無惡則生天上人中受福是故說曰不造衆惡樂也

21
이 세상에 부모 있어서 즐겁고
대중들 서로 화합하여 즐겁다.
이 세상에 사문 있어서 즐겁고
뜻이 고요하여 또한 즐겁다.
029_0972_c_05L世有父母樂
衆聚和亦樂
世有沙門樂
靜志樂亦然

“이 세상에 부모 있어서 즐겁고, 대중들 서로 화합하여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부모의 중한 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만일 어떤 효자로 하여금 부모의 은혜를 갚게 하려면, 오른쪽 어깨에는 아버지를 얹고 왼쪽 어깨에는 어머니를 얹은 뒤에 태어나면서부터 자랄 때까지 백천겁 동안 천지를 돌아다녀도 그 부모의 하루의 은혜를 갚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부모는 내 몸을 기르고 내 마음을 열어 주어 광명을 보게 하였고,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리면서 때때로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효자라도 그 은혜의 백천분의 1도 갚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부모 있어서 즐겁고, 대중들 서로 화합하여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c_07L世有父母樂衆聚和亦樂者如佛契經所說父母恩重不可得記若使孝子欲報其恩右肩負父左肩負母生至長周行天地經百千劫亦不能報父母一日之恩何以故皆由父母長養五陰敷張六情使睹光明推燥居濕隨時扶侍是以孝子雖欲報恩百千分未獲其一是故說曰世有父母樂衆聚和亦樂也
“이 세상에 사문 있어서 즐겁고, 뜻이 고요하여 또한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집을 떠나 도를 배우려면 온갖 은혜와 애정을 끊고 집안 살림을 모두 버려야 한다. 또 항상 세 가지 업을 행하되 그 지조를 잃지 않으면 백천 중생들이 모두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때때로 공양하고 그 필요한 것을 공급할 것이다. 집을 떠난 범지는 그 몸을 괴롭히면서 온갖 결박과 집착을 끊고 그 행이 청정하여 악의 근본을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문 있어서 즐겁고, 뜻이 고요하여 또한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c_16L世有沙門樂志樂亦然者出家學道斷諸恩愛離棄家業恒行三業不失其操復爲百千群生所見愛念隨時供養供給所出家梵志懃身苦體求斷縛著行淸淨不造惡本是故說曰世有沙門樂靜志樂亦然也

22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즐겁고
설법을 잘 받들어 또한 즐겁다.
대중들이 화합하는 것도 즐거우니
화합하면 언제나 안락이 있다.
029_0972_c_22L諸佛興出樂
說法堪受樂
衆僧和亦樂
和則常有安
029_0973_a_02L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즐겁고”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시는 것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우니, 마치 저 우담발화가 수천만겁을 지내야 피는 것과 같다. 그때 중생들은 그 꽃을 보고 모두 기뻐하면서 저희끼리 말하기를 ‘장차 오래지 않아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실 것이다. 그 상서로움이 이미 나타났는데 어찌 그것이 헛되겠는가? 옛날 경전에도 그것이 기록되어 있으니, 만일 이 꽃이 세상에 나오면 오래지 않아 부처님이 나오신다고 하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들은 서로 경하하면서, 누구나 공양거리를 준비하고는 부처님의 광명 모습을 뵈옵기를 기다린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즐겁고”라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2_c_24L諸佛興出樂者如來出現甚不可遇猶若優曇鉢花數千萬劫時時乃出爾時群生見優鉢花各各歡喜自相謂言如來降世將在不久瑞應以現豈有虛乎古昔經籍自有成文若有此花出現世者如來出世亦復不久諸天世人共相慶賀皆設供養之具遲睹如來光相形容是故說曰諸佛興出樂也
“설법을 잘 받들어 또한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 처음에 도를 얻고는 온갖 상호(相好)를 두루 갖추신 뒤에 49일 동안 고요히 선정에 들어 계시면서 중생들을 위해 설법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범천의 청을 받아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 네 무리의 대중과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답화(揵沓和)ㆍ아수륜(阿須倫)ㆍ전다라(栴陀羅)ㆍ마휴륵(摩休勒)ㆍ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人非人]들을 위해 좋은 법을 연설하시니, 그 중생들은 모두 그 은혜를 입고 구제를 받았다. 그러므로 “설법을 잘 받들어 또한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3_a_10L說法堪受樂者佛初得道衆相具足七七四十九日寂然入定與衆生敷演法味後爲梵天所請便與四部之衆比丘比丘尼優婆塞婆夷諸天揵沓和阿須倫旃陁摩休勒人與非人暢演善法群生蒙恩靡不濟度是故說曰說法堪受樂也
“대중들이 화합하는 것도 즐거우니, 화합하면 언제나 안락이 있다”란 무슨 뜻인가?
대중이란 한 가지 일만이 아니니, 네 가지이기도 하고 여덟 가지이기도 하고 무수하기도 한데, 부처님의 대중이 그 중 제일이다. 부처님의 대중 가운데에는 네 쌍의 여덟 무리가 있고 또 열둘의 현사(賢士)가 있다.
그러므로 만일 중생들이 다투어서 그들을 공양하고 공경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을 것이니, 그들의 복밭에서는 도의 열매를 내되 좋고 맛날 뿐만 아니라 가뭄이나 서릿발을 타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중은 화합하는 것을 제일 귀중히 여긴다. 그러므로 “대중들이 화합하는 것도 즐거우니, 화합하면 언제나 안락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3_a_17L衆僧和亦樂和則常有安者者其事非一或四或八或生無數來衆者爲最第一如來衆中有四䨥八輩十二賢士諸有衆生之徒競來供養修敬聖衆者獲福無量如斯福田出生道果爲良爲美爲無旱霜意所願靡不剋獲聖衆所貴唯和爲是故說曰衆僧和亦樂和則常有安也
029_0973_b_02L
23

계율을 완전히 갖추어서 즐겁고
많이 듣고 널리 알아서 또한 즐겁다.
참 사람을 보게 되어서 즐겁고
해탈행의 자취도 또한 즐겁다.
029_0973_b_02L持戒完具樂
多聞廣知樂
睹見眞人樂
解脫行迹樂

“계율을 완전히 갖추어서 즐겁고”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이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만나서 그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때때로 보살피면, 뒤에 가서는 그 복을 받아서 편안히 무위(無爲)에 처하고 즐겁고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완전히 갖추어서 즐겁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많이 듣고 널리 알아서 또한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또 어떤 중생은 많이 들은 사람을 만나면, 그의 가르침을 받들면서 낱말ㆍ귀절ㆍ뜻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며, 그 뜻과 이치를 철저히 구명하고 통달함으로써 듣는 즉시 깨달아서 거듭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많이 듣고 널리 알아서 또한 즐겁다”라고 말한 것이다.
029_0973_b_04L持戒完具樂者其有衆生遇持戒者承事供養隨時瞻視後獲其報安處無爲快樂自由是故說曰持戒完具樂也多聞廣知樂者復有衆生遭遇多聞之人承受其教一一不失名身味身義理通達尋究暢義聞便卽寤不復重受是故說曰多聞廣知樂
“참 사람을 보게 되어서 즐겁고, 해탈행의 자취도 또한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혹 어떤 중생은 전생에 덕의 근본을 심었기 때문에 어떤 현성이나 아라한을 만나면 생각이 끊어진 선정이나 아주 비고 고요한 선정을 얻고, 또 어떤 중생은 참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보시하면 현재의 몸으로도 그 과보를 얻고 많은 재산을 모아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성취하고 영원히 어떤 번뇌에도 물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 사람을 보게 되어서 즐겁고, 해탈행의 자취도 또한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3_b_12L睹見眞人樂解脫行迹樂者設有衆生宿殖德本遭遇賢聖値彼羅漢得滅盡定及空寂定其有衆生施眞人者現身獲報錢財集聚所願從意無願不果於諸結使永無所染是故說曰睹見眞人樂解脫行迹樂也

24

흐르는 물 시원하고 맑아서 즐겁고
법의 재물이 스스로 모여서 유쾌하다.
지혜를 얻어 슬기로우니 유쾌하고
교만과 삿됨을 소멸해서 유쾌하다.
029_0973_b_17L駃水淸涼樂
法財自集快
得智明慧快
滅慢無邪快
029_0973_c_02L
“흐르는 물 시원하고 맑아서 즐겁고”란 무슨 뜻인가?
흐르는 물이 맑고 고요하고 시원하며 그 소리는 조용하여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맛도 매우 좋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탐하여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흐르는 물 시원하고 맑아서 즐겁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법의 재물이 스스로 모여서 유쾌하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법의 재물이란 법으로 그것을 모았고 사물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고을의 관청이나 도적이나 수재, 화재의 침노를 받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두 바른 법으로 그 재물의 이익을 보호하고 남의 물건을 억울하게 빼앗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의 재물이 스스로 모여서 유쾌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3_b_19L駛水淸涼樂者猶若駛河澄靜淸涼聲響微細不傷害物甘甜極美學者所貪多所成就是故說曰駛水淸涼樂也法財自集快者所謂法財者法合集不抂物理不爲縣官盜賊災變所見侵欺何以故皆由正法獲其財利不抂人物故使其然是故說曰法財自集快也
“지혜를 얻어 슬기로우니 유쾌하고”란 무슨 뜻인가?
저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의 제일가는 지혜를 얻어서 일체의 법을 다 능히 분별하고 광명을 널리 비추어 모든 중생을 깨우쳐 준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어 슬기로우니 유쾌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교만과 삿됨을 소멸해서 유쾌하다”란 무슨 뜻인가?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남을 업신여기니, 무수한 과거로부터 선의 공덕을 부수다가 구경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모두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과 삿됨을 소멸해서 유쾌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029_0973_c_04L得智明慧快者如彼學人得世閒第一智盡能分別一切衆法普放光明有所接寤是故說曰得智明慧快也滅慢無邪快者人懷憍慢必倰蔑人從永劫以來懷善德不究竟皆由興怒是故說曰慢無邪快也

25

여러 현인들을 보게 되어서 즐겁고
그들과 한데 모이는 것도 즐겁다.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지 않고
낡은 것을 마치니 언제나 즐겁다.
029_0973_c_10L得睹諸賢樂
同會亦復樂
不與愚從事
畢故永以樂

“여러 현인들을 보게 되어서 즐겁고, 그들과 한데 모이는 것도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여러 현성들은 도의 과(果)로써 온갖 덕을 모두 갖추었으니, 그것은 다 일찍 수학하여 좋은 행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들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면 나중에 그 즐거움을 받아서 재물이 무수하고 온 집안이 화목하고 친척이 날로 번성해진다. 그러므로 “여러 현인들을 보게 되어서 즐겁고, 그들과 함께 모이는 것도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지 않고, 낡은 것을 마치니 언제나 즐겁다”란 무슨 뜻인가?
선한 사람은 덕을 닦으면서 좋은 벗을 사모하여 구하지만, 나쁜 벗을 보면 곧 멀리 피한다. 왜냐 하면 나쁜 사람은 그 성품에 끝내 좋은 행이 없어서 사람을 어둠 속으로 빠뜨려 큰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지 않고, 낡은 것을 마치니 언제나 즐겁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3_c_12L得睹諸賢樂同會亦復樂者賢聖之人道果以具衆德悉備曩所修學積行乃致其有恭敬承事賢者後受其樂財業無數家人和穆宗族日熾故說曰得睹諸賢樂同會亦復樂也不與愚從事畢故永以樂者善人修德慕求良伴見惡知識終以遠離以然者惡人所稟終無善行墮人在冥不睹大明是故說曰不與愚從事畢故永以樂也

26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게 되면
무수한 날을 괴로이 지내리라.
무지한 사람과 같이 있기 어렵나니
마치 그 원수와 만난 것 같고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있기 쉽나니
친척들과 한데 모인 것 같다.
029_0973_c_22L如與愚從事
經歷無數日
與愚同居難
如與怨憎會
與智同處易
如共親親會
029_0974_a_02L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게 되면, 무수한 날을 괴로이 지내리라”란 무슨 뜻인가?
만일 수행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게 되면 밤낮으로 생사에 떨어져 있으면서 수억만 부처님이 지나가더라도 구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게 되면, 무수한 날을 괴로이 지내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무지한 사람과 같이 있기 어렵나니, 마치 그 원수와 만난 것 같고”란 무슨 뜻인가?
원수와 만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니, 모두 무명으로 말마암아서 좋은 스승을 따르지 못하고 좋은 벗을 사귀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과 같이 있기 어렵나니, 마치 그 원수와 만난 것 같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있기 쉽나니, 친척들과 한데 모인 것 같다”란 무슨 뜻인가?
지혜로운 사람의 배움은 반드시 위로 미치기 때문에 서로 만나면 함께 기뻐한다. 말할 때에는 먼저 웃으며, 온화하고 즐거운 얼굴빛으로 안팎이 모두 맑고 평화로워서 다투는 말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과 같이 있기 쉽나니, 친척들과 한데 모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3_c_24L如與愚從事經歷無數日者若彼行人與愚從事晝夜墮落墜在生死佛過去不蒙濟度是故說曰如與愚從事經歷無數日也與愚同居難與怨憎會者怨憎會苦難皆由無明不逐良師不與善知識從事是故說曰與愚同居難如與怨憎會也智同處易如共親親會者智人所學必當上及相見同歡先笑後語和顏悅色內外淸泰無有諍說是故說曰與智同處易如共親親會也

27

사람 중의 높은 이 만나기 어렵나니
끝내 헛되게 생(生)을 의탁하지 않으리라.
설사 생을 의탁한 곳이 있다 해도
그 집안은 반드시 축복을 받으리라.
029_0974_a_12L人尊甚難遇
終不虛託生
設當託生處
彼家必蒙慶

“사람 중의 높은 이 만나기 어렵나니, 끝내 헛되게 생을 의탁하지 않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억천만겁을 지내어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이른바 사람 중의 높은 이로서 바로 여러 부처님을 말한 것이다. 이른바 생을 받은 곳이라도 그 종족이 청정하고 부모가 바르고 참되며, 재산과 보물이 많아서 일곱 가지 보배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금ㆍ은의 보배와 차거ㆍ마노ㆍ진주ㆍ호박ㆍ코끼리ㆍ말ㆍ수레 따위가 하나도 모자라지 않으며, 그 나라는 상하가 화목하여 서로 순종한다. 그러므로 “사람 중의 높은 이 만나기 어렵나니, 끝내 헛되게 생을 의탁하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설사 생을 의탁한 곳이 있다 해도, 그 집안은 반드시 축복을 받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그 집은 권속들이 번성할 뿐만 아니라 변두리에 있지 않고 나라 중심에 있다. 그러므로 “설사 생을 의탁한 곳이 있다 해도, 그 집안은 반드시 축복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4_a_14L人尊甚難遇終不虛託生者億千萬劫不可遭遇所謂人尊者諸佛世尊所謂生之處其種淸淨父母眞正其家饒財多寶七珍具足珍寶車璖馬瑙眞珠虎珀象馬車乘無所渴乏所生國土上下和穆共相順從是故說曰人尊甚難遇終不虛託生設當託生處彼家必蒙慶者眷屬成就處在中國不在邪僻是故說曰設當託生處彼家必蒙慶也
029_0974_b_02L
28

언제나 늘 편히 잠잔다.
범지는 열반을 얻었기에
탐욕에 물들지 않아서
온갖 곳을 모두 벗어났다네.
029_0974_a_24L一切得善眠
梵志取滅度
不爲欲所染
盡脫於諸處

좋지 못한 번뇌를 끊어 버리고
마음속의 치열한 번뇌를 항복받았으니
영원히 쉬어서 잠잘 수 있고
마음과 의식이 맑게 사무쳤다.
029_0974_b_03L盡斷不祥結
降伏內煩熱
永息得睡眠
心識悉淸徹

옛날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오래지 않아서 처음에 5인, 그 다음에 5인, 강 마을의 13인, 여러 현사(賢士)들 중에서 37인을 구제하시니, 부처님 자신까지 합해서 모두 61인이 되었다.
그때 부처님은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각 사방으로 나가 염부리(閻浮利) 땅의 사람들을 교화하여 구제하라. 나는 혼자 저 강가로 가리라.”
그리하여 부처님은 가섭 3 형제의 스승과 제자 천 명을 제도하고, 다음에는 사리불과 목건련을 제하고, 다음에는 병사(洴沙)왕을 제도하신 뒤에 라열성(羅閱城) 가란타 대숲 동산에 계셨다.
029_0974_b_04L昔佛成道未久初度五人次後五人江村十三人賢士衆中三十七人佛六十一人爾時世尊告諸弟子等各各四面教化度閻浮利地人欲獨往詣江水側度三迦葉師徒千次度舍利弗目揵連次度洴沙王在羅閱城迦蘭陁竹園所
그때에 아나빈(阿那邠) 장자는 조그만 볼일이 있어서 라열성으로 들어가 어떤 장자 집에 가서 머물기를 청하려 하였다. 마침 그는 그 집의 남녀 종들이 모두 일하는 것을 보았는데, 혹은 나무를 쪼개어 불을 피우고, 혹은 불을 피워 날음식을 익히며, 혹은 여러 가지 털 자리를 깔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인 장자는 몸소 높은 자리를 만들고, 거기에다 비단과 번기와 일산을 달고 향기로운 물을 땅에 뿌렸다.
그래서 아나빈 장자는 그 주인에게 물었다.
“당신 댁에서 지금 손님을 대접하는 갖가지 준비를 보니 소소한 차림이 아닙니다. 혹시 이 댁을 지나가는 국왕을 청하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귀댁의 아들을 장가 보내거나 딸을 시집 보내려는 것입니까? 무슨 까닭인지 알고 싶습니다.”
029_0974_b_11L爾時阿那邠低長者有少俗緣來至羅閱城中造大長者欲得寄住正値彼家男女僕從各各作役或破薪然火或吹生熟食或有布置坐具氍毹毾㲪是時長者躬敷高座懸繒幡蓋香汁灑地是時阿那邠低長者問彼長者貴家今日辦具待賓之調亦非小節爲欲請國王過舍爲是貴家男欲娶婦欲嫁乎願聞其意
029_0974_c_02L주인이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 준비하는 갖가지 음식은 하늘이나 세상 사람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왕이나 대신이나 여러 관리들을 위한 것도 아니요, 아들을 장가 보내거나 딸을 시집 보내려는 것도 아니니, 내일 아침에 부처님과 비구들을 집으로 청하여 공양하려는 것입니다.”
아나빈 장자는 부처라는 이름과 비구들이라는 말을 듣자 온몸의 털이 일어서면서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그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서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는 한쪽에 잠깐 물러앉았다가 다시 앞으로 나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생각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기거가 가뿐하시고 다니시기도 편안하시나이까? 객지라고 들었는데 편히 쉬시었나이까?”
그러자 부처님은 그 장자를 위해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029_0974_b_20L其主報曰我今所辦餚饌之具亦非天及世人所能測亦非國王群臣百僚男不娶婦女不出門我所以辦具甘饌飮食者旦請佛及比丘僧在家供養阿那邠低聞佛名號及比丘僧衣毛悚豎悲而且喜尋往佛所頭面禮足在一面斯須退坐前白佛言伏惟天尊興居輕利遊步康彊聞僑在此得善眠爾時世尊與阿那邠低而說斯偈是故說曰

언제나 늘 편히 잠잔다.
범지는 열반을 얻었기에
탐욕에 물들지 않아서
온갖 곳을 모두 벗어났다네.
029_0974_c_07L一切得善眠
梵志取滅度
不爲欲所染
盡脫於諸處

좋지 못한 번뇌를 끊어 버리고
마음속의 치열한 번뇌를 항복받았으니
영원히 쉬어서 잠잘 수 있고
마음과 의식이 맑게 사무쳤다.
029_0974_c_09L盡斷不祥結
降伏內煩熱
永息得睡眠
心識悉淸徹

29

부디 향락에 집착하지 말고
장래의 행실을 잘 단속하되
반드시 세상일 버리기를 염(念)하면서
쾌락한 일을 잘 관찰하라.
029_0974_c_10L愼莫著於樂
當就護來行
當念捨於世
觀於快樂事

“부디 향락에 집착하지 말고, 장래의 행실을 잘 단속하되”란 무슨 뜻인가?
대개 사람이 도를 배우려면 괴롭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하니, 반드시 괴로워한 뒤라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의 선정과 세속의 해탈을 버리고 무루(無漏)의 선정과 무루의 해탈을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디 향락에 집착하지 말고, 장래의 행실을 잘 단속하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반드시 세상일 버리기를 염하면서, 쾌락한 일을 잘 관찰하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조그만 쾌락을 맛보면 다시 더 구하기 때문에 그 뿌리를 자꾸 뻗게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세상일 버리기를 염하면서, 쾌락한 일을 잘 관찰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4_c_12L愼莫著於樂當就護來行者夫人學道不苦不成要當須苦然後乃成世俗禪及俗解脫修無漏禪無漏解是故說曰愼莫著於樂當就護來當念捨於世觀於快樂事者人遇小樂當更求索增其樂本是故說曰當念捨於世觀於快樂事也

30

이 세속의 즐거움이나
저 천상의 즐거움 따위로
애욕을 다했다고 칭하지만
그것은 16분의 1도 못 된다.
029_0974_c_19L如世俗歡樂
及彼天上樂
此名爲愛盡
十六未獲一
029_0975_a_02L
“이 세속의 즐거움이나, 저 천상의 즐거움 따위로”란 무슨 뜻인가?
세속의 즐거움이란 욕계의 즐거움이요, 천상의 즐거움이란 색계의 즐거움이다. 중생들은 긴 밤 동안 다섯 세계에 미혹해서 타고난 참[眞]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세속의 선정이 주는 복의 과보에 탐착하여 다섯 세계를 거듭 윤회하면서도 그것을 ‘도를 얻었기 때문에 다시는 생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세속의 즐거움이나, 저 천상의 즐거움 따위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을 다했다고 칭하지만, 그것은 16분의 1도 못 된다”란 무슨 뜻인가?
어떤 수행하는 사람은 먼저 애욕의 뿌리를 끊어서 가지와 잎마저 버리고도 늘 조심하고 두려워하면서 미연에 악을 방지한다. 그리고는 무루의 즐거움을 얻어서 유희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우니, 여기에 비하면 위의 것은 그 16분의 1도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애욕을 다했다고 칭하지만, 그것은 16분의 1도 못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4_c_21L如世俗歡樂及彼天上樂者世俗樂者欲界之樂及彼天樂者色界之樂衆生之類長夜之中迷惑五趣不知稟眞貪著世俗禪福之報流轉五趣周而復始謂爲得道永滅不起是故說曰如世俗歡樂及彼天上樂也名爲愛盡十六不獲一者其有行人先斷愛根永去枝葉執意懷懼防惡未然後得無漏之樂遊心自然於十六分中未得其一是故說曰此名爲愛盡十六不獲一也

31
그 무거운 짐 잘 버렸거든
다시는 그런 짐을 만들지 말라.
그 짐은 세상의 고통이거니
그걸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029_0975_a_09L能捨於重擔
更不造重擔
重擔世之苦
能捨最快樂

“그 무거운 짐을 잘 버렸거든, 다시는 그런 짐을 만들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가령 어떤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험난한 곳을 지나는데, 그 짐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그리 급한 재물도 아니며, 또 금ㆍ은 등의 보배와 차거ㆍ마노ㆍ진주ㆍ호박 따위도 아니어서 세속의 필요한 재물이 아니다. 곁의 사람이 그에게 충고하기를 ‘지금 그대가 진 것을 보니 진짜 보물도 아닌데, 왜 그것을 버리고 다른 진짜를 구하지 않는가?’라고 하면, 그는 그것을 버리고 다른 진짜를 구한다.
지금 중생들도 마찬가지이니, 다섯 가지 요소로 된 몸을 지고 욕계에 처해서 생사의 유전을 벗어나지 못할 때 성인은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지금 지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로 된 몸은 더럽고 냄새나는 것인데 무엇하러 지고 있는가? 빨리 그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구하라.”
그러면 중생들은 방편을 써서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의 몸을 받는다. 색계의 몸을 받았을 때, 성인은 다시 가서 그 몸을 버리고 번뇌가 없는 지혜의 5분법성(分法性)으로 나가라고 교화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5_a_11L能捨於重擔更不造重擔等者如人負重擔經過嶮難處所負旣不要世俗不急貨亦非金珍寶車璖馬瑙眞珠琥珀乃是世俗不要之貨傍人諌語觀君所負非是眞寶何不捨之更求眞者其人卽捨更求眞者觀此衆生亦復如是負五陰身遊處欲界宛轉生死不能得出聖人告曰汝今所負五陰之形穢漏臭處荷負是爲宜可速捨更求輕者爾時衆生卽設方便捨欲界形受色界身已受色界之形聖人復往就彼教化使令捨身就無漏智五分法性是故說曰

‘그 무거운 짐을 잘 버리렸거든
다시는 그런 짐을 만들지 말라.
그 짐은 세상의 고통이거니
그걸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029_0975_a_24L能捨於重
更不造重擔
重擔世之苦
能捨最快樂也
029_0975_b_02L
32

온갖 애욕을 모두 끊어 버리고
일체의 행을 없애 버려서
다섯 가지 요소의 근본을 없애면
다시는 삼계의 몸을 받지 않는다.
029_0975_b_02L盡斷諸愛欲
及滅一切行
幷滅五陰本
更不受三有

저 수행하는 사람이 번뇌가 없는 슬기로운 관찰로 욕계의 애착과 색계와 무색계의 애착을 없애고, 몸과 입과 뜻의 행에서도 몸의 세 가지와 입의 네 가지와 뜻의 세 가지 행을 남김없이 아주 없애서 다섯 가지 요소가 생기는 유래를 잘 알면 다시는 삼계의 행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5_b_04L如彼行人以無漏慧觀滅欲愛色愛無色愛身行口行意行除身三口四意三永盡無餘解知五陰興起本末更不復著三有之行是故說曰

온갖 애욕을 모두 끊어 버리고
일체의 행을 없애 버려서
다섯 가지 요소의 근본을 없애면
다시는 삼계의 몸을 받지 않는다.
029_0975_b_08L盡斷諸愛欲
及滅一切行
幷滅五陰本
不受三有也

33

의(義)를 일으키면 즐거움이 있어서
벗들도 그 복의 즐거움을 누리듯
저 적멸(寂滅)의 고요한 즐거움도
자꾸 번져서 남에게 미치나니
괴로움이 즐거움의 근본이 된다.
029_0975_b_10L義興則有樂
朋友食福樂
彼滅寂然樂
展轉普及人
苦爲樂爲本

“의(義)를 일으키면 즐거움이 있어서”란 무슨 뜻인가?
마치 어떤 상인과 같다. 즉 상인이 그 몸을 괴롭히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값진 보물을 캐어 가지고 무사히 돌아오면 친척들이 축하하고 남녀노소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 벗과 동생들까지도 다 그 은혜를 입는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내서 보시하되 일체에 두루 미치면, 다시는 온갖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으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그 친척들의 즐거움도 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5_b_12L義興則有樂朋友食福樂等者猶若商賈之人勞形苦體冒涉危嶮採致重寶安隱還家宗族慶賀男女大小靡不歡喜朋友同伴悉皆蒙恩若使開意惠施普及一切無復衆苦以樂爲本宗族娛樂不能捨離是故說曰

의(義)를 일으키면 즐거움이 있어서
벗들도 그 복의 즐거움을 누리듯
저 적멸의 고요한 즐거움도
자꾸 번져서 남에게 미치나니
괴로움이 즐거움의 근본이 된다.
029_0975_b_18L義興則有樂
朋友食福樂
彼滅寂然樂
展轉普及人
苦爲樂爲本也

34

마치 저 화로의 뜨거운 불꽃
그것이 왕성히 타오르다가
차츰 사라져 식어 버리면
뜨거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처럼.
029_0975_b_20L猶彼火爐
赫焰熾然
漸漸還滅
不知所湊

그와 같이 바르게 관찰한 사람은
애욕의 수렁을 벗어나지만
어디로 가는 곳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즐거움을 얻으리라.
029_0975_b_22L如是等見人
免於愛欲泥
去亦無處所
以獲無動樂
029_0975_c_02L
“마치 저 화로의 뜨거운 불꽃, 그것이 왕성히 타오르다가”란 무슨 뜻인가?
저 야금장이가 철환(鐵丸)을 불에 달굴 때 그 불길이 매우 뜨거워서 아무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처럼, 마찬가지로 성인도 중생들을 바라볼 때 그들은 음욕ㆍ분노ㆍ우치의 불로 스스로의 몸을 태우면서도 그것을 깨달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치 저 화로의 뜨거운 불꽃, 그것이 왕성히 타오르다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차츰 사라져 식어 버리면, 뜨거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그 뜨거운 철환이 차츰 식으면, 그 뜨거움이 간 곳도 모르고 또 차가움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차츰 사라져 식어 버리면, 뜨거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5_b_24L猶彼火爐赫焰熾然者猶若彼匠火燒鐵丸極自熾然甚難可近是以聖人觀衆生類婬癡火而自燒炙不自覺知是故說曰猶彼火爐赫焰熾然也漸漸還滅不知所湊者如彼熱鐵丸漸漸至冷不知熱之所湊亦復不知冷之所在是故說曰漸漸還滅不知所湊也
“그와 같이 바르게 관찰한 사람은, 애욕의 수렁을 벗어나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평등한 해탈을 얻고는 아무 장애가 없기 때문에 애욕의 수렁을 면하여 생사의 언덕을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바르게 관찰한 사람은, 애욕의 수렁을 벗어나지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디로 가는 곳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즐거움을 얻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그런 사람은 그 정신이 신령과 합하고 의식이 허공과 한몸이 되기 때문에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과 상ㆍ하의 어디인지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와도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하고 가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마치 뜨거운 철환이 차츰 식어갈 때, 그 뜨거움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 차가움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어디로 가는 곳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즐거움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5_c_09L如是等見人免於愛欲泥者彼脩行人得等解脫無復罣㝵免於愛欲之深泥便得離於生死之是故說曰如是等見人免於愛欲泥也去亦無處所以獲無動樂者是之類神與冥合識與空體亦復不知東西南北四維上下來亦不知所從來去亦不知所從去猶如熱鐵丸漸漸欲冷不知熱之所湊亦復不知冷之所在是故說曰去亦無處所獲無動樂也

35

그 마음 속에 분노를 없애고
자꾸 변하면서 멈추지 말라.
그리고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이
고요히 세상의 존재를 관찰하라.
029_0975_c_19L中閒無有恚
有變易不停
除憂無有愁
寂然觀世有
029_0976_a_02L
“그 마음속에 분노를 없애고”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분노는 사람의 마음을 더럽혀 도에 이르지 못하게 하니, 오직 마음에 때가 없는 사람이라야 능히 그 성내는 마음을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마음속에 분노를 없애고”라고 말한 것이다.
“자꾸 변하면서 멈추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이 세상에는 많은 행(行)이 있지마는 그 행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어서 모두가 같지 않으니, 혹은 전생의 운수가 이르러서 번뇌를 만들지 않고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죄를 범하여 번뇌를 일으키기도 한다.
029_0975_c_21L中閒無有恚者所謂恚者染污人心不至于道唯有無垢之人乃能免此恚怒之心是故說曰中閒無有恚也有變易不停者世多有行行有輕重擧操不同或有冥契運至不造結使有知而故犯以興塵勞
그러므로 성인은 후생을 경계하여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미래의 재앙을 막게 하려는 것이니,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그 교훈을 즐기고 보배로이 여겨서 마음에서 놓지 않다가 문득 현성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성스러운 법은 숭배해야 하고 더러운 법은 가까이해서는 안 될 줄을 안다. 그러므로 “자꾸 변하면서 멈추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이”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근심과 걱정의 뿌리를 아주 뽑아 버리면, 즐거움의 뿌리와 서로 상응해서 고요히 이 세상의 변화를 허깨비나 아지랑이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고 아무 근심과 걱정 없이, 고요히 세상의 존재를 관찰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6_a_04L是以聖人布誡後生欲令執行之人改旣往之失絕將來之禍貪學之人翫之寶之墜于心便能進適賢聖之室然後方知聖法之可崇穢法之叵近是故說有變易不停也除憂無有愁者如彼脩行人永拔愁憂之本與樂根共相寂然觀世變如彼幻野馬也是故說曰除憂無有愁寂然觀世有也

36

즐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없는 것은
올바른 법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요
만일 사람들이 손실을 당한다면
저마다 색(色)을 탐하기 때문이다.
029_0976_a_12L有樂無有惱
正法而多聞
設見有所損
人人貪於色

“즐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없는 것은, 올바른 법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요”란 무슨 뜻인가?
저 선정에 든 사람은 밤낮으로 적멸해서 그 선정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므로 공(空)ㆍ무상(無想)ㆍ무원(無願)으로써 유관(遊觀)하니, 그 때는 혹시 그 몸에 어떤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그 정신은 적멸한 무위로서 아무 손실이 없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 중생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기를 자기 몸과 다름이 없이 한다. 그러므로 “즐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없는 것은, 올바른 법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손실을 당한다면 저마다 색을 탐하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공부하는 사람은 그 근본 원인을 관찰해서 음욕과 분노와 우치의 병이 온갖 화의 근본임을 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욕심과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서 서로 더럽히다가 마침내 큰병을 만들어 생ㆍ노ㆍ병ㆍ사와 우수고뇌 등의 온갖 병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들이 손실을 당한다면, 저마다 색을 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6_a_14L有樂無有惱正法而多聞者如彼入定人晝夜禪寂不離定意無相以爲遊觀當時雖復身遭苦行神寂無爲無所傷損如彼行人無瞋怒心慈愍群萌與己無異是故說曰有樂無有惱正法而多聞也設見有所損人人貪於色者如彼學者觀彼根原癡病衆禍之首皆起欲怒心意共相染污以成大患便不能脫生愁憂苦惱衆患之原是故說曰設見有所損人人貪於色
029_0976_b_02L
37

번뇌가 없으면 세상에 오래 살고
대법(大法)은 그 번뇌의 원인을 알고 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번뇌의 흠을 밝혀야 하니
저마다 마음이 속박되고 집착되는 것은
역시 색(色)의 뿌리에서 속박되는 것이다.
029_0976_b_02L無結世善壽
大法知結原
人當明結瑕
人人心縛著
亦縛於色本

번뇌가 없는 사람은 음욕과 분노와 우치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는 세속의 온갖 번뇌의 근본을 즐기지 않고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환히 알고 그런 병을 모두 끊어 버리며, 이미 스스로 그 병을 버리고는 남을 다스려서 그 병을 없애고, 또 어떤 색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이익과 손해와 비방과 칭찬에도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6_b_04L無結之人婬癡盡不復樂俗衆結之本怨讎恚心亦復不興明人所鑑能斷斯病旣自去病復治他人使無有病亦復不念著於衆色利衰毀譽其心不動是故說曰

번뇌가 없으면 세상에 오래 살고
대법은 그 번뇌의 원인을 알고 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번뇌의 흠을 밝혀야 하니
저마다 마음이 속박되고 집착되는 것은
역시 색의 뿌리에서 속박되는 것이다.
029_0976_b_09L無結世善壽
法知結原
人當明結瑕
人人貪縛著
亦縛於色本

38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멋대로 즐기니
거기서 승부는 저절로 일어나지만
끝내는 아무 소득이 없다.
029_0976_b_11L一切受辱苦
一切任己樂
勝負自然興
竟不有所獲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멋대로 즐기니”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곤경과 액난을 당할 때에는 그 뜻을 펴지 못하고 남의 안색을 살피면서 나무람을 받을까 걱정하며, 또 방탕한 사람은 욕구에 따르는데, 그 생각대로 되는 것이 마치 메아리가 소리를 응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멋대로 즐기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기서 승부는 저절로 일어나지만, 끝내는 아무 소득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세상에 살 때는 그 귀천이 일정하지 않으니, 전륜성왕이 되었다가 갑자기 속산왕(粟散王)이 되기도 하고, 귀했다 천했다 높았다 낮았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직 현성의 도만은 존귀하고 비천함, 높고 낮음이 없다. 그러므로 “거기서 승부가 저절로 일어나지만, 끝내는 아무 소득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6_b_13L一切受辱苦一切任己樂者人遭困厄意不得舒瞻人顏色恒恐失意恣之人隨意所欲如念卽至如響應是故說曰一切受辱苦一切任己樂也勝負自然興竟不有所獲者人處世貴賤無常或爲轉輪聖王便爲粟散諸王一尊一卑或高或下唯有賢聖之道無有尊卑高下是故說曰勝負自然興竟不有所獲也

39

안락과 수명을 얻으려거든
남의 업신여김을 참아야 한다.
참음이란 사람에 대해 참는 것이니
참지 못하면 온갖 몸을 받으리.
029_0976_b_22L諸欲得樂壽
能忍彼輕報
忍者忍於人
不忍處諸有
029_0976_c_02L
요약해서 간단히 그 뜻을 말하면, 해침이 없는데 해침을 생(生)하고, 괴롭힘이 없는데 괴롭힘을 생하며, 성냄이 없는데 성냄을 생하며, 원망함이 없는데 원망을 생하니,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029_0976_b_24L取要言之略說其義無害而生害惱而生惱無恚而生恚無怨而生怨如上無異

안락과 수명을 얻으려거든
의혹이 있을 때 의혹을 없애라.
의혹이란 사람에 대한 의혹이지만
내게는 그런 의혹이 없다.
029_0976_c_04L諸欲得樂壽
於惑而無惑
惑者惑於人
我斯無有惑

안락과 수명을 얻으려거든
끝내 번뇌의 집착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광음천(光音天)처럼
반드시 염식(念食)을 먹어야 하니
언제나 염(念)을 음식 삼으면
몸과 마음이 기댈 데가 없으리라.
029_0976_c_06L諸欲得樂壽
終己無結著
當食於念食
如彼光音天
恒以念爲食
意身無所猗

40

마을이나 들에서 고락(苦樂)을 당하여도
저것이나 이것에 불타지 말라.
비록 접촉을 즐기는 자취를 만나더라도
그 자취를 없애면 어찌 촉감이 있겠는가.
029_0976_c_08L村野見苦樂
彼此無所燒
雖値更樂迹
無迹焉有更

“마을이나 들에서 고락을 당하여도, 저것이나 이것에 불타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수도하는 사람은 성 곁의 마을을 의지해 살거나 혹은 넓은 들판의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산다. 때로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여러 사람들의 고통을 만나고 때로는 어떤 즐거운 일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때 기쁘다고 여기거나 즐겁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니, 열두 가지의 병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것’이란 여섯 가지 바깥 경계요. ‘이것’이란 이 몸의 여섯 가지 감관이다. 그러므로 “마을이나 들에서 고락을 당하여도, 저것이나 이것에 불타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록 접촉을 즐기는 자취를 만나더라도, 그 자취를 없애면 어찌 촉감이 있겠는가”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세상에 살면 그 마음이 항상 방탕해서 먼저는 접촉하다가 나중에는 즐기면서 드디어 죄의 뿌리를 뻗게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지옥의 촉감이 생기지만 그 접촉이 없으면 그 자취가 있을 수 없고 또 지옥의 촉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접촉을 즐기는 자취를 만나더라도, 그 자취를 없애면 어찌 촉감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6_c_10L村野見苦樂彼此無所燒者人之脩道或在城傍依村而住或在曠野無人之處或時遇苦衆人痛心復遭樂不以爲歡不興更樂起十二種病彼者彼六塵此者此六情是故說曰村野見苦樂彼此無所燒也雖値更樂迹無迹焉有更者人之處世心恒放逸先更後樂遂增罪根或時生彼地獄更樂無更則無迹亦復無有地獄更樂是故說曰雖値更樂迹無迹焉有更也

41

저 여러 어진 사람들
더러운 탐욕에 집착하지 않고
설령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만나도
해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029_0976_c_21L所在有賢人
不著欲垢穢
正使遭苦樂
不興於害心
029_0977_a_02L
“저 여러 어진 사람들, 더러운 탐욕에 집착하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성인들은 세상에 살면서도 대체로 숨어살기 때문에 욕망의 상념을 집착하지 않고 욕망의 더러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른바 어진 사람이란 바로 아나함이나 아라한을 말한다. 그러므로 “저 여러 어진 사람들, 더러운 탐욕에 집착하지 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설령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만나도, 해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란 무슨 뜻인가?
비록 어떤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을 당하더라도 생각의 집착을 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만나도, 해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6_c_23L所在有賢人不著欲穢垢者聖人處世多自隱遁不著欲想不興欲垢謂賢人阿那含阿羅漢是故說曰在有賢人不著欲穢也正使遭苦不興於害意者雖遭苦樂不興想是故說曰正使遭苦樂不興於害意也
出曜經卷第二十七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