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9_0977_b_01L출요경 제28권
029_0977_b_01L出曜經卷第二十八

요진 양주 사문 축불념 한역
029_0977_b_02L 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32. 심의품(心意品)
029_0977_b_03L心意品第三十二

1
마음은 경솔하여 수호하기 어렵고
마음이란 또 욕심이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니
항복을 받음으로써 문득 편안해진다.
029_0977_b_04L輕難護持
爲欲所居
降心爲善
以降便安

“마음은 경솔하여 수호하기 어렵고”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항복받아서 더럽고 나쁜 행을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 사유해서 마음을 일으키고 논의해야 한다. 이른바 마음이란 온갖 재앙을 불러 일으켜서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경솔하여 수호하기 어렵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7_b_06L輕難護持者所以如來世尊出現於正欲降伏人心去穢惡行如彼修行之人恒自思惟興心設論所謂心招致衆禍使人入地獄餓鬼畜生之道是故說曰輕難護持也
“마음이란 또 욕심이 사는 곳이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병이 생기는 까닭은 욕심 때문이요, 그 욕심의 근본은 마음에 있다’고 관찰해야 하니, 마치 도둑이 험한 곳을 의지해야 사람을 겁탈해서 도둑질할 수 있지만 험한 곳이 아니면 도둑질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욕심도 그와 같아서 마음을 소굴로 삼아 이리저리 날뛰면서 온갖 재앙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마음이란 또 욕심이 사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니, 항복을 받음으로써 문득 편안해진다”란 무슨 뜻인가?
누구나 그 마음을 항복받으면, 연령이 많건 적건 가는 곳마다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아울러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려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니, 항복을 받음으로써 문득 편안해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7_b_11L爲欲所居者彼脩行人觀病所興皆有因緣究欲之源斯在心意猶若盜賊依嶮劫盜設無嶮者無由生患欲亦如是心爲窠窟展轉流馳以成災患是故說曰爲欲所居也降心爲善以降便安者人能降心不記彼壽所至到處爲人所敬壽終之後漏盡意解得滅盡泥洹是故說曰降心爲善以降便安也

2

마치 저 고기가 깊은 못에서 나와
마른 땅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황황하고 급하면
온갖 악마가 날뛰게 된다.
029_0977_b_20L如魚在旱地
以離於深淵
心識極惶懅
魔衆而奔馳
029_0977_c_02L
“마치 저 고기가 깊은 못에서 나와, 마른 땅에 있는 것처럼”이란 무슨 뜻인가?
물고기가 못을 잃고 마른 땅에서 뒹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번뇌로우면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치 저 고기가 깊은 못에서 나와 마른 땅에 있는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황황하고 급하면, 온갖 악마가 날뛰게 된다”란 무슨 뜻인가?
저 언덕 위의 물고기가 이리저리 뛰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로 날뛰면서 그치지 못하면 온갖 악마가 그 틈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황황하고 급하면, 온갖 악마가 날뛰게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7_b_22L如魚在旱地以離於深淵者猶如彼魚以失于淵宛轉于地心意煩惱不得自在是故說曰如魚在旱地以離於深淵也心識極惶懅魔衆而奔馳猶彼岸上魚跳踉不得自在心亦如是馳趣諸結使不能自止便爲衆邪所得便是故說曰心識極惶懅衆而奔馳

3

마음의 달림은 한 곳만이 아니니
마치 저 밝은 햇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제어하되
갈퀴로 미친 코끼리를 붙잡는 것과 같다.
029_0977_c_09L心走非一處
猶如日光明
智者所能制
如鉤止惡象

“마음의 달림은 한 곳만이 아니니, 마치 저 밝은 햇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란 무슨 뜻인가?
저 처음으로 뜨는 해가 사방을 두루 환히 비추는 것처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ㆍ법[法]으로 두루 돌아다니기 때문에, 스스로 다스려서 날뛰지 못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저 날뛰는 코끼리가 너무 사나워 제어하기 어렵지만, 갈퀴를 가지면 제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7_c_11L心走非一處猶如日光明者如彼日光初出之時悉照四方靡不通達心亦如是奔趣色細滑之法不能自制使不流馳如彼惡象凶暴難御以得鋼鉤然後乃制是故說曰

마음의 달림은 한 곳만이 아니니
마치 저 밝은 햇빛이 비추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제어하되
갈퀴로 미친 코끼리를 붙잡는 것과 같다.
029_0977_c_16L心走非一處
猶如日光明
智者所能制
鉤止惡象也

4

내 지금 이 마음을 논할진대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내 지금 너에게 훈계하노니
부디 그 흠이나 틈을 생기게 하지 말라.
029_0977_c_18L我今論此心
無牢不可見
我今欲訓誨
愼莫生瑕隙
029_0978_a_02L
“내 지금 이 마음을 논할진대,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그 뜻을 오로지 해서 마음을 한곳에 매어 두고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마음을 이렇게 훈계한다.
‘너, 마음 때문에 나는 무수한 겁 동안 생사를 겪으면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몸을 버리고 몸을 받았다. 혹은 세 갈래의 나쁜 길과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는 곳에 살기도 하였고, 혹은 천상과 인간으로 왕래하였다. 나는 지금 사람이 되어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만났으니, 근본적으로 물든 집착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무수한 방편으로 마음을 훈계한 뒤에 다시 ‘너는 지금 몹시 경솔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고 하라. 이렇게 마음과 몸을 관찰하면 모든 애착의 결박이 반드시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7_c_20L我今論此心無牢不可見者彼修行之人專其一意繫心在前以若干方便誨責其心由汝心本無數劫中經歷生死捨身受身不可稱記或在三塗八難之處或在天上人中往來我今爲人遭佛聖法宜可捨本染著之以無數方便誨責心已復更告心汝今輕脆不可恃怙於此見身當盡愛結是故說曰

내 지금 이 마음을 논할진대
그것은 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내 지금 너에게 훈계하노니
부디 그 흠이나 틈을 생기게 하지 말라.
029_0978_a_06L我今論此心
無牢不可見
我今欲訓誨
愼莫生瑕隙也

5

그대의 마음이 함부로 떠돌면서
거리낌없이 방탕하게 놀게 하지 말라.
나는 지금 너를 걷어잡노니
마치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듯 한다.
029_0978_a_07L汝心莫遊行
恣意而遊逸
我今還攝汝
如御暴逸象

“그대의 마음이 함부로 떠돌면서, 거리낌없이 방탕하게 놀게 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마음이 사물이 되면 이리저리 진정하질 못하고서,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집착하니, 마치 원숭이가 과실을 탐내다가 하나를 버리고는 또 하나를 취하면서 그 뜻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제멋대로 갖가지 생각을 내고 온갖 근심을 만들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대의 마음이 함부로 떠돌면서, 거리낌없이 방탕하게 놀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너를 걷어잡노니, 마치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나는 부정관(不淨觀)으로 마음을 거두어서 날뛰지 못하게 하니, 마치 저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려서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듯이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너를 걷어잡노니, 마치 사나운 코끼리를 다스리듯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8_a_09L汝心莫遊行恣意而放逸者心之爲物猶豫不定著色細滑法如猿猴貪著菓蓏捨一取一意不專心亦如是撗生萬端造作衆患不能捨離是故說曰汝心莫遊行恣意而放逸也我今還攝汝如御暴逸象我當以不淨觀攝此心意使不流如御暴象不使放逸是故說曰今還攝汝如御放逸象

6

나고 죽는 것이 한량이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실마리가 없다.
그러므로 집(몸)을 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태를 받는다.
029_0978_a_18L生死無有量
往來無端緖
求於屋舍者
數數受胞胎
029_0978_b_02L
“나고 죽는 것이 한량이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실마리가 없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은 생사에 처해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겁을 거치는데,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나고 죽는 것이 한량이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실마리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집을 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태를 받는다”란 무슨 뜻인가?
그 행의 자취를 없애지 않으면 가고 오기를 쉬지 못하고, 아름다운 몸뚱이에 사로잡히고 모양과 색에 탐착하여 계속해서 그 태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집을 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태를 받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8_a_20L生死無有量往來無端緖者人處生死經歷劫數不可稱記或在地獄餓鬼其中受苦甚難可計是故說生死無有量往來無端緖也求於屋舍者數數受胞胎者不滅行迹往來不息繫於肥白貪著形色數數受是故說曰求於屋舍者數數受胞胎也

7

이 집을 잘 관찰해서
다시는 그 집을 짓지 말지니
들보와 기둥도 다 부러지고
누각도 모두 헐리게 마련이다.
029_0978_b_05L以觀此屋
更不造舍
梁棧已壞
臺閣摧折

“이 집을 잘 관찰해서”란 무슨 뜻인가?
이 몸은 위태롭고 나약해서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다 허물어지는 것으로서 마멸법(磨滅法)이니, 설사 저 수미산이나 큰 바다라도 다 부서지고 마르는 것이다. 왜 다시는 집을 짓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모든 병이 생기는 줄을 알기 때문에 그 몸을 받음으로써 다섯 가지 요소의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집을 잘 관찰해서, 다시는 그 집을 짓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들보와 기둥도 다 부러지고, 누각도 모두 헐리게 마련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렇게 논하는 것은 번뇌의 근본을 논하는 것이니, 몸은 허물어지고 4대(大)는 흩어지는 것이므로 만물은 오래 모여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합해서 도를 이룬 사람을 논한다면, 몸을 버리고 정신이 떠나서 말쑥히 허공과 같고, 온몸의 사지와 뼈는 모두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즉 땅의 요소는 땅으로 돌아가고 물의 요소는 물로 돌아가며, 불의 요소는 불로 돌아가고 바람의 요소는 바람으로 돌아가면, 또 그 정신은 열반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시 세상에 와서 몸을 받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들보와 기둥도 부러지고, 누각도 모두 헐리게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8_b_07L以觀此屋者危脆不牢要當壞敗爲磨滅法正使安明巨海盡當融爛不造舍者所以然者以知根源病之所由更不受形造五陰室是故說曰觀此屋更不造舍也梁棧已壞臺閣摧折者所以論此者乃論結使之源身壞四大散萬物不久合此乃論成道之人捨形神逝澹然虛空支節形體各歸其本地還歸地水還歸水火還歸火風還歸風神逝無爲不復懼畏更來受形是故說曰梁棧已壞臺閣摧折也

8

그 마음이 행을 여의면
그 중간도 없어지련만
그 마음이 경솔하기 때문에
단속하기도 수호하기도 어렵다.
029_0978_b_19L心已離行
中閒已滅
心爲輕躁
難持難護
029_0978_c_02L
“그 마음이 행을 여의면”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행은 모든 번뇌의 우두머리이니, 중생들이 생사에 빠져 있는 것도 모두 행을 짓기 때문에 그런 재변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이 세상에 내려와 스스로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행의 근본을 끊어 다시 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행을 여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중간도 없어지련만”이란 무슨 뜻인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이 남음 없이 아주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중간도 없어지련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8_b_21L心已離行者所謂行者衆結之首以群萌沈湮生死者皆由造行致斯災變聖人降世精懃自脩斷諸行本使不復生是故說曰心已離行也閒已滅者三世之法永盡無餘是故說曰中閒已滅也
“그 마음이 경솔하기 때문에”란 무슨 뜻인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내가 지금 마음의 근본을 말하리라. 즉 마음은 조급하고 신속해서 하루 낮 하룻 밤 동안에 9백99억의 생각이 있어서 찰나찰나 다른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짓는 행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경솔하기 때문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단속하기도 수호하기 어렵다”란 무슨 뜻인가?
생각을 내면 곧 선악의 행을 짓는데, 선을 생각하는 마음은 메아리처럼 이내 이르면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악을 생각하는 마음도 소리를 응하는 메아리 같아서 아무도 그것을 붙들지 못한다. 마치 호랑이ㆍ이리ㆍ뱀ㆍ독사 따위의 나쁜 짐승들이 마음을 단속하게 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단속하기도 수호하기도 어렵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8_c_04L心爲輕躁者如佛契經所說我今說心之本輕躁速疾一日一夜有九百九十九億念念念異想造行不同是故說曰心爲輕躁難持難護者發心之頃造善惡行念善之心尋響卽至閒無滯㝵念惡之心如響應聲欲令守護者未之有猶若惡獸之類虎狼蛇蚖蝮蝎之欲使將護其意使不行惡者亦未前聞是故說曰難持難護

9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마치 활장이가 화살을 바루듯 한다
성을 내고는 성냄을 알고
성이 나면 성난 줄 안다.
029_0978_c_13L智者能自正
猶匠搦箭直
有恚則知恚
有恚知有恚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마치 활장이가 화살을 바루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누구나 공부할 때에는 먼저 그 몸을 바루어야 하니, 항상 모든 것이 괴롭고 공이라는 것을 알아서 내 몸이 아니라는 것과 내 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하루 여섯 번 그 행을 돌아보고 스스로 몸을 경계함으로써 삿되거나 비뚤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익숙한 활장이가 화살을 잘 다루어 곧게 하고 마디를 없게 하면 아무 어려움 없이 도둑을 막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있으니, 마치 활장이가 화살을 바루듯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을 내고는 성냄을 알고, 성이 나면 성난 줄 안다”란 무슨 뜻인가?
원수를 미워하면 원수는 자꾸 생기는 것이니, 원한으로 원한을 쉬게 했다는 것은 옛날부터 없는 일이다. 반드시 원한을 쉬고 원한을 없애야 비로소 원한이 없어진 것을 안다. 그러므로 “성을 내고는 성냄을 알고, 성이 나면 성난 줄 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8_c_15L智者能自正猶匠搦箭直者夫人習行先正其形恒知苦非身無我之六思念行以自誡身使不邪曲若巧匠善能治箭端直無節堪任御敵亦無所難是故說曰智者能自正猶匠搦箭直也有恚則知恚有恚知有恚者怨怨自茲爲怨息怨者自古未有要當息怨滅怨然後乃知無怨是故說曰有恚則知恚有恚知有恚也
029_0979_a_02L
10

이 뜻이 스스로 만들었고
부모가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다.
삿됨을 버리고 선정으로 나아가
복을 닦되 돌아서지 말라.
029_0978_c_24L是意自造
非父母爲
除邪就定
爲福勿迴

내 뜻이 온갖 행을 지어서 몸의 재앙을 부르는 것이니, 그 악은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지은 것이요, 부모나 형제ㆍ친척ㆍ종들이 한 일이 아니다. 이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삿됨으로부터 번뇌가 생기는 줄을 알고 그 번뇌를 수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9_a_03L意造衆行爲身招患爲惡斯惡斯由心造亦非父母兄弟宗族僕從奴婢之所爲也明審此者乃知從邪生此塵勞復不守護使心不亂是故說曰

이 뜻이 스스로 만들었고
부모가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다
삿됨을 버리고 선정으로 나아가
복을 닦되 돌아서지 말라.
029_0979_a_07L是意自造
非父母爲
除邪就定
爲福勿迴也

11
지붕을 촘촘히 덮지 않으면
비가 내리면 곧 비가 새고
사람이 그 행을 사유하지 않으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샌다.
029_0979_a_09L蓋屋不密
天雨則漏
人不惟行
漏婬怒癡

세상 사람들이 궁전이나 집을 지을 때 그 지붕을 촘촘히 덮지 않으면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기저기서 비가 샌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그 행을 바로 갖지 않으면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대해서 생각이 새어 나오고, 또 부정관을 사유하지 않으면 세 가지 독의 물이 사납게 넘쳐 나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9_a_11L猶若世人造作宮殿屋舍亦不至密天雨之日無處不漏人不正其行便漏色細滑法亦不思惟不淨之觀漏出三毒暴溢之水是故說曰

지붕을 촘촘히 덮지 않으면
비가 내리면 곧 비가 새고
사람이 그 행을 사유하지 않으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샌다.
029_0979_a_15L蓋屋不密
天雨則漏
人不惟行
漏婬怒癡也

모두 게송으로 말해야 하지만 그 주요한 것만 간략히 말하면, 어리석음도 그러하고, 분노도 그러하고, 간탐과 질투도 그러하고, 교만도 그러하고, 애욕이나 결박도 또한 그렇다.
029_0979_a_17L盡應爲偈略說其要愚癡亦瞋恚亦爾慳嫉亦爾憍慢亦爾結亦爾

12

지붕을 덮되 촘촘히 하면
비가 내려도 새지 않는다.
사람이 스스로 사유해서 행하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없다.
029_0979_a_19L蓋屋不密
天雨則漏
人自惟行
無婬怒癡
029_0979_b_02L
마치 기술이 아주 치밀한 사람이 궁전이나 집을 치밀하게 지으면 비가 내려도 새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잘 수행하여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면 어떤 근심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모두 게송으로 말해야 하지만 주요한 것만 간략히 말하면, 어리석음도 그렇고 분노도 그러하며, 간탐과 질투도 그렇고 교만도 그러하며, 애욕의 결박도 또한 그렇다.
029_0979_a_21L猶如至密之人造作宮殿屋舍緻密天雨不漏人自惟行去婬不漏諸患盡應爲偈略說其要愚癡亦爾瞋恚亦爾慳嫉亦爾憍慢亦爾愛結亦爾

13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악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죄의 고통이 그를 따르기가
수레가 바퀴 자국 내듯 하리라.
029_0979_b_03L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惡
卽言卽行
罪苦自追
車轢于轍

그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는 먼저 권식게(勸食偈)를 외운 뒤에 음식을 먹어야 한다.”
사위성 밖의 어떤 마을에 두 거지가 있었다. 그들은 여러 스님이 있는 곳에 걸식하러 갔는데, 마침 그 때는 스님들이 아직 권식게를 외우기 전이었다. 그 중의 한 거지가 질투심이 치성해서 이내 나쁜 마음을 일으켰다.
‘만일 내가 훗날 자유를 얻어서 국왕이 되면 수레바퀴로 저 도인들의 머리를 깔아 뭉개리라’
권식게를 외운 뒤에 그 거지는 밥을 얻어먹고 또 많은 재물을 얻고서는 길 가에 나와 배가 불러서 졸고 있었다. 마침 수백 대 수레가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 거지 머리를 깔아서 끊어버렸다. 거지는 죽은 뒤에 지옥에 들어가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다.
029_0979_b_05L爾時世尊告諸比丘自今以後先說勸食偈然後乃食舍衛城里有二乞至衆僧中乞食正値聖衆未說勸食之偈其中有一乞兒嫉妒心盛便發惡心設我後得自在爲國王者以車輪轢斷爾許道人頭說偈之後乞兒乞食得貲無央數出在路側飽滿睡眠數百群車路由其中轢斷其死入地獄受苦無量

14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선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행복은 스스로 그를 따르기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하리라.
029_0979_b_14L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善
卽言卽行
福慶自隨
如影隨形

그 둘째 거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훗날 왕이 되어서 부귀하면, 저 스님들을 모두 공양하여 아무 것도 아쉬움이 없게 하리라. ’
그리하여 그 거지는 마음껏 음식을 얻어먹고는 이내 나와서 나무 밑에 누워 있었는데, 그 정신이 말쑥하여 어지러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당시 그 나라의 왕이 죽자 그 뒤를 이을 만한 왕의 족성이 없어서 백성들과 모든 관리들이 모여서 의논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주인이 없고 또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백성들이 모두 흩어져서 오래지 않아 국가가 망할까 두렵소. 이 때문에 지금 그대들과 의논하는 것이니, 어떤 방법을 써야 나라가 온전하고 백성들이 딴 마음을 먹지 않게 되겠소?”
029_0979_b_16L彼第二乞兒內心自念設我後得富貴爲王者盡當供養爾許聖衆使不渴乏彼乞兒乞充本意尋出臥在樹下睡眠神識澹靜無有亂想彼國喪失國主更無復嗣繼王者群臣百僚雲集共論今國無主復無繼嗣將恐人民散在不久亡國破由是而興君等各各欲何方謀國全在民無異趣
029_0979_c_02L그 중 제일 사리에 밝고 지혜로운 신하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나라의 주인을 잃고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국내를 돌아다니다가, 만일 위엄스런 상이 있고 복록이 풍족한 사람이 있으면 왕위를 이어받게 합시다.”
그래서 곧 사람을 보내어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살펴보게 하였다. 마침 어떤 나무 밑에 누워 잠자는 사람이 있는데, 해가 기울어도 그 나무 그림자가 옮겨지지 않고 일산처럼 그 사람 몸을 덮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자는 즉시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고는 ‘사람 중에서 이보다 더 특출한 사람 있겠는가? 이 사람은 바로 왕위를 이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자는 그를 불러서 깨운 뒤에 수레에 싣고는 앞뒤로 에워싸서 왕궁으로 갔으니,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고 나라는 태평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이치를 관찰하시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29_0979_c_02L中有智臣明達第告諸人民我等失主且無繼嗣可遣使巡行國界若有威相福祿足使紹王位卽遣按行見一樹下有人眠睡日光以轉樹影不移蔭覆人身如蓋在上使者見之卽往觀視中奇異何復是過此人正應紹繼王卽喚使覺扶輿輦載前後圍繞將詣王宮人稱萬歲國界淸泰爾時世尊觀此二義已卽說斯偈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악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죄의 고통이 그를 따르기가
수레가 바퀴 자국 내듯 하리라.
029_0979_c_11L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惡
卽言卽行
罪苦自追
車轢于轍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고 마음이 시킨다.
마음속으로 선을 생각하고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행복이 스스로 그를 따르기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하리라.
029_0979_c_13L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善
卽言卽行
福慶自隨
如影隨形

15

생각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우친 소견을 끊지 못한다.
복의 힘은 악을 잘 막나니
그것을 깨달은 자를 현자라 한다.
029_0979_c_15L念無適止
不絕無邊
福能遏惡
覺者爲賢

“생각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우친 소견을 끊지 못한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이 방탕하여 전일(專一)할 수 없다면, 비록 바른 법을 듣더라도 그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이른바 ‘끊지 못한다’는 것은 계(戒)ㆍ도(盜)ㆍ신(身)ㆍ사(邪) 등의 네 가지 나쁜 소견을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치우친 소견을 끊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복의 힘은 악을 잘 막나니, 그것을 깨달은 자를 현자라 한다”란 무슨 뜻인가?
대개 선을 쌓는 사람은 음욕ㆍ분노ㆍ우치와 교만한 마음을 버리니, 그런 사람은 도를 행하기 쉽고 거기서 생기는 행복이 차츰 도량에 모인다. 그러므로 “복의 힘은 악을 잘 막나니, 그것을 깨달은 자를 현자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79_c_17L念無適止不絕無邊者夫脩行人縱意遊逸不能專一正使聞法不貫心所謂不絕無邊者邪也故說曰念無適止不絕無邊也福能遏惡覺者爲賢者夫積善之人永去癡憍慢之心如斯之人履道則從是福慶漸至道場是故說曰能遏惡覺者爲賢也
029_0980_a_02L
16

깨끗하지 못한 마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성나게 하지 말라.
만일 법을 얻어서 알고 싶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니
029_0980_a_02L不以不淨意
亦及瞋怒人
欲得知法者
三耶三佛說

온갖 교만을 떨쳐 버리고
그 마음 지극히 깨끗해져서
남을 해칠 생각을 버린다면
비로소 바른 법을 얻게 되리라.
029_0980_a_04L諸有除貢高
心意極淸淨
能捨傷害懷
乃得聞正法

여러 부처님은 항상 하늘눈으로 3세(世)의 일을 관찰하시는데, 미래 세상의 무지한 중생들이 스스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면서 삼보를 섬기지 않을 줄 알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족성자들이여, 내 몸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남긴 법은 존재할 것이니, 너희들은 내 교리와 계율을 전해 받아서 후세 사람들에게 퍼뜨려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법을 들으면 모두 구제를 받을 것이다.”
어느 비구는 바라리대국(波羅梨大國) 계두(鷄頭) 동산에서 수천만 명에게 앞뒤로 둘러싸인 채, 높은 법상에 올라앉아서 법을 연설하여 그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모두 구제받아 제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였다.
외국의 옛날 법이나 우리 불법 안의 의식은 절에 들어가서 법을 듣거나 부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모두 모자를 벗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떤 국왕이 본래부터 머리털이 적고 부스럼이 있었는데, 또 신을 신은 채 스스로 부귀를 뽐내면서 고운 모직 천으로 머리를 싸고 절에 들어와 설법을 들으려 하였다.
029_0980_a_05L諸佛世尊恒以天眼觀三世事知將來世愚惑衆生自憍蔑人不事三寶吾身去世遺法存在族姓子汝傳吾經誡演布後人衆生聞者靡不蒙濟有一比丘在波羅梨大國鷄頭園中爲數千萬衆前後圍遶昇于高座敷演法教其聞法者靡不蒙濟隨行所趣各充其願外國舊典內法之宜寺聽法及禮佛者皆當脫帽有國王頭素少髮加復有瘡又且腳著履自恃豪尊以㲲裹頭入內聽經
029_0980_b_02L왕은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비구여, 나를 위해 설법해 주시오.”
비구가 대답하였다.
“어떤 중생도 신을 신은 채로는 설법을 듣지 못한다고 하신 부처님의 분부가 계십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신을 벗고는 다시 비구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빨리 설법하여 내 마음을 즐겁게 하시오. 만일 내 뜻을 어기면 스님 목을 베겠소.”
비구가 말하였다.
“또 부처님 계율에는 ‘머리를 싸맨 사람에게는 설법하지 못한다’고 금하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더욱 화를 내면서 왕의 위엄을 떨치며 비구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지금 나를 욕보이려고 일부러 거절하는 것이오? 정 그렇다면 나는 지금 머리를 드러내고 스님 설법을 듣겠소. 만일 내 의심을 풀어 주지 못하면 스님 몸을 세 동강으로 내겠소.”
그러자 비구는 왕을 향해 다음 게송을 읊었다.
029_0980_a_16L比丘與我說法比丘告曰如來有其有衆生腳著履屣者不與說法王聞懷恚卽脫履屣語比丘曰卿速說法稱悅我情違我本意者當梟汝首比丘告王又復如來禁戒所忌不得與覆頭者說法王聞斯語倍復瞋恚奮赫天威語比丘曰卿欲辱我今故前卻我今正爾露頭聽卿說法若不解吾疑結者當取汝身分爲三爾時比丘尋向彼王而說斯偈

깨끗하지 못한 마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성나게 하지 말라.
만일 법을 얻어서 알고 싶다면
그것은 바로 부처님 말씀이니
029_0980_b_03L不以不淨意
亦及瞋怒人
欲得知法者
三耶三佛說

온갖 교만을 떨쳐 버리고
그 마음 지극히 깨끗해져서
남을 해칠 생각을 버린다면
비로소 바른 법을 얻게 되리라.
029_0980_b_05L諸有除貢高
心意極淸淨
能捨傷害懷
乃得聞正法

왕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얼굴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땅에 던지면서 스스로 귀의하고 참회하였다. 그리고 몸과 입과 뜻의 허물을 소멸시켜 달라고 하고는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비구에게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그 게송은 부처님의 신령스런 입으로 하신 말입니까, 아니면 존자님이 내 마음을 알고 하신 말입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그 게송은 바로 부처님의 신령스런 입으로 하신 말씀이요. 오래 전에 하신 말씀이지 지금 하신 말씀이 아니오.”
왕은 가만히 생각하였다.
‘놀랍다. 큰 성인의 세 가지 밝은 지혜는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구나. 그래서 장래에 우리들이 성내면서 해칠 마음이 있다는 걸 아신 것이니, 이제 거듭거듭 참회하면서 다시는 새로 짓지 않으리라. ’
그러자 비구는 그를 위해 미묘한 법을 차례로 설명하였다. 왕은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눈이 청정해지면서 법을 보고 법을 얻는 데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029_0980_b_06L王聞斯偈慚顏愧影卽起于坐五體投地自歸懺悔求滅身意過長跪叉手白比丘言不審此偈爲是如來神口所說爲是尊人知我心意然後說乎比丘告王此偈乃是如來神口所說此來久矣非適今也王自思惟善哉大聖三達之智靡所不通乃知將來有我之徒有恚害心今重自悔更不造新爾時比丘漸與說甚深之卽於坐上諸塵垢盡得法眼淨法得法無所畏難

17

마음이 고요히 쉬지 못하고
그리고 법을 알지 못하면
그는 세상 일에 미혹되어서
바른 지혜가 있을 수 없다.
029_0980_b_17L心無住息
亦不知法
迷於世事
無有正智
029_0980_c_02L
“마음이 고요히 쉬지 못하고, 그리고 법을 알지 못하면”이란 무슨 뜻인가?
마음은 빨리 흐르는 물과 같아서 막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물이 그 샘물의 근원에서 솟아나와 밤낮 아래로 흘러갈 때, 그것을 샘물의 근원으로 돌이키려 하여도 그것은 불가능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은 바른 법을 모를 뿐 아니라, 나아가야 할 곳에 나아갈 줄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안다고 할 수 없으니, 마치 귀머거리가 다섯 가지 소리를 듣고 장님이 촛불을 든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요히 쉬지 못하고, 그리고 법을 알지 못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세상 일에 미혹되어서, 바른 지혜가 있을 수 없다”란 무슨 뜻인가?
저 수행하는 사람이 세상의 즐거움에 집착해서 삿되고 뒤바뀐 소견을 믿고, 물과 불과 해와 달과 또 모든 신을 섬기거나 혹은 선조와 부모ㆍ형제에 제사하면서 마음속으로 바른 법의 공덕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 허공에 집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경전에서도 ‘생물을 죽이거나 생물로 제사하는 것은 번갈아 해를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 일에 미혹되어서, 바른 지혜가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0_b_19L心無住息亦不知法者心如馳流難可制還水出泉源晝夜下流欲使還入泉源者斯難獲也如此之人不知正法亦復不知可就知就可捨知捨譬如有人聾聽五音盲執於燭是故說曰心無住息亦不知法也迷於世無有正智者如彼行人貪樂於世信邪倒見或事諸神水火日月祭祀先祖父母兄弟意中望得正法功德如人空中欲安宮宅者甚爲難也經文說殺生祀生交受害也是故說迷於世事無有正智也

18

서른 여섯 가지 빠른 흐름은
모두 다 마음에서 새어 나나니
삿된 소견이 계속해 생기는 것은
탐욕 따위의 번뇌에 의한 것이다.
029_0980_c_08L三十六駛流
幷及心意漏
數數有邪見
依於欲想結

“서른 여섯 가지 빠른 흐름은”이란 서른여섯 가지 그릇된 생각을 말한 것이다. 즉 몸의 사견에 셋이 있으니 삼계에 각각 하나씩이요, 변견(邊見)에도 셋이 있으니 욕계에 하나, 색계에 하나, 무색계에 하나요, 사견에는 열둘이 있으니 욕계에 넷, 색계에 넷, 무색계에 넷이며, 견도(見盜)에 열둘이 있으니, 욕계에 넷, 색계에 넷, 무색계에 넷이며, 계도(戒盜)에는 여섯이 있으니 욕계에 둘, 색계에 둘, 무색계에 둘이다. 이것을 합하면 모두 서른여섯으로서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켜 바른 소견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러므로 “서른여섯 가지 빠른 흐름은, 모두 다 마음에서 새어 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서른여섯 가지 그릇된 생각은 모두 마음에서 생겨서 갖가지로 흘러 넘치다가 드디어 삿된 소견을 이룬다. 그러므로 “모두 다 마음에서 새어 나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0_c_10L三十六駛流者三十六邪身邪有三三界各有一邊見有三欲界一色界一無色界一邪見有十二欲界四色界四無色界四見盜有十二欲界四色界四無色界四戒盜有六欲界二色界二無色界二取而合者合三十使世人迷惑不睹正見是以智人防慮未然是故說曰三十六駛流及心意漏
029_0981_a_02L“삿된 소견이 계속해 생기는 것은, 탐욕 따위의 번뇌에 의한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삿된 소견이란 계상견(計常見)과 단멸견(斷滅見)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두 소견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계상견은 단멸견과 어울리지 않고 단멸견은 계상견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두 사람의 소견은 각기 다른데, 이 사견 때문에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세계를 끌어오고, 탐욕과 분노와 무명의 세 가지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삿된 소견이 계속해 생기는 것은, 탐욕 따위의 번뇌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0_c_19L三十六邪由心而生流溢萬端遂成邪見是故說曰幷及心意漏也數數漏邪見依於欲想結者邪見者乃論計常見斷滅見此二邪見不與相應計常見不與斷滅見相斷滅見不與計常見相應二人所見各各不同緣是邪見牽致地獄畜生復起三想恚想無明想故說曰數數漏邪見依於欲想結也

19

뜻을 버리려거든 뿌리째로 버릴지니
사람은 뜻을 따라 윤회한다.
조금이라도 좋던 이름 없어지면
마치 새들이 빈 숲을 버리듯 한다.
029_0981_a_04L捨意放其根
人隨意迴轉
爲少滅名稱
如鳥捨空林

“뜻을 버리려거든 뿌리째로 버릴지니, 사람은 뜻을 따라 윤회한다”란 무슨 뜻인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소리를 좋아한다. 눈으로 색을 보면 눈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눈의 감관이 되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귀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귀의 감관이 되며, 코로 냄새를 맡으면 코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코의 감관이 되고, 혀로 맛을 알면 혀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혀의 감관이 되며, 몸으로 촉감을 알면 몸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몸의 감관이 되고, 뜻으로 법을 분별하면 뜻의 인식작용을 일으켜 드디어 뜻의 감관이 된다. 그러므로 “뜻을 버리려거든 뿌리째로 버릴지니, 사람은 뜻을 따라 윤회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a_06L捨意放其根人隨意迴轉者世多有人好憙五音若眼見色起于眼識遂成眼根若耳聞聲起于耳識遂成耳若鼻嗅香起于鼻識遂成鼻根若口知味起于口識遂成口根若身知細滑起于身識遂成身根若意知法起于意法遂成意根是故說曰意放其根人隨意迴轉也
“조금이라도 좋던 이름 없어지면, 새들이 빈 숲을 버리듯 한다”란 무슨 뜻인가?
사람들이 허물을 지을 때는 뒷일을 걱정하지 않으니, 날마다 선을 쌓았다가도 잠깐 동안에 잃어버리기 때문에 시주들의 비방을 받는다. 즉 ‘우리는 본래부터 청정한 계율을 갖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어찌 오늘 그럼 흠을 발견할 줄을 알았겠는가’ 하고, 모두 박대하면서 다시는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마치 새들이 무성한 숲 속에서 다섯 가지 과실과 향기로운 꽃을 탐하여 즐기다가 꽃과 과실이 다 없어지면 모두 그 숲을 버리고 떠나는 것처럼, 허물을 범한 사람도 그 비유가 마찬가지라서 복이 다하고 죄가 닥치면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좋던 이름 없어지면, 새들이 빈 숲을 떠나듯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a_14L爲少滅名如鳥捨空林者人之爲過不顧後積日爲善失在斯須爲諸檀越施主所見譏論我等本呼戒具淸淨啚今日乃見瑕隙皆共薄賤不復興猶如群鳥恒宿茂林貪五菓香華氣味華菓適盡各捨而逝犯戒之人其喩如此福盡罪至自當除散是故說曰爲少滅名稱如鳥捨空林

20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탐욕의 자취를 쫓아다니지 말라
그 뜨거운 철환(鐵丸)을 삼키지 말 것이니
울부짖으며 그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029_0981_a_22L在靜自修學
愼勿逐欲迹
莫吞熱鐵丸
㘁哭受其報
029_0981_b_02L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고, 탐욕의 자취를 쫓아다니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항상 마음의 행을 잘 붙잡아서 탐욕에 끄달리지 말라는 것이니, 탐욕은 사람을 미혹시켜 높고 낮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요한 곳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탐욕의 자취를 쫓아다니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뜨거운 철환을 삼키지 말 것이니, 울부짖으며 그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불에 태워지면 그 고통이 골수에 사무치는 것 같고 죽어서도 지옥에 들어가 갖가지 고통을 받으니, 뜨거운 기둥을 안고 뜨거운 철환을 삼키면서 아무리 울부짖으며 과보를 받아도 호소할 곳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뜨거운 철환을 삼키지 말 것이니, 울부짖으며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a_24L在靜自修學愼勿逐欲迹者常當端執意心之行不爲欲意所見鉤連者令人迷惑不別尊卑是故說曰靜自修學愼勿逐欲迹也莫吞熱鐵㘁哭受其報者如火所燒痛徹骨死入地獄酸楚萬端抱熱銅柱吞熱鐵丸㘁哭受報靡知所訴是故說莫吞熱鐵丸㘁哭受其報也

21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
젊은 힘 믿고 정진하지 않으면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고
게을러서 지혜를 얻지 못한다.
029_0981_b_09L應起而不起
恃力不精懃
自陷人形卑
懈怠不解慧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몸이 소위 일어난다는 것은 부처와 좋은 벗을 만나더라도 좋은 공덕을 짓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때를 만나더라도 사람의 행에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이니, 하늘에서 일곱 가지 보물을 비처럼 내려서 이 세계에 두루 차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은 미욱하여 그 보물을 챙기지 못하고, 항상 사람의 몸을 받아도 깊은 사려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라고는 칭해도 아무 이익이 없다.
이것도 마찬가지라서 부처님 세상을 만나서 깊은 법을 펼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에 사로잡혀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b_11L應起而不起者形謂起者佛伴善知然不造善功德生雖遇時無益人天雨七寶遍滿世界愚者意惑不收其寶恒受人形無有遠慮雖名爲人無益於時此亦如是遭遇佛世暢演深法愚人執惑不肯承受是故說應起而不起也
“젊은 힘 믿고 정진하지 않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어떤 수행하는 사람은 기력이 강장하여 교화를 받을 수 있는데도 게을러서 그다지 정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젊은 힘 믿고 정진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고, 게을러서 지혜를 얻지 못한다”란 무슨 뜻인가?
그는 스스로 생사에 빠져서 후생의 재앙을 생각하지 않으니, 부처님 세상을 만나 좋은 벗과 현성을 만나더라도 지혜를 받아들이고 이치를 분별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고., 게을러서 지혜를 얻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b_18L恃力不精懃者有行人氣力强壯堪任受化然復懈怠不大精懃是故說曰恃力不精懃自陷人形卑懈怠不解慧者自陷於生死不顧後世殃雖遭佛世遭善知識與賢聖相遇不肯受慧分別義是故說曰自陷人形卑懈怠不解慧也
029_0981_c_02L
22

어지러운 관(觀)이든 바른 관이든
모두가 뜻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능히 깨달아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마음은 자주자주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
029_0981_c_02L亂觀及正觀
皆由意所生
能覺知心觀
愚心數數亂

“어지러운 관이든 바른 관이든, 모두가 뜻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어지러운 관이란 탐욕의 관ㆍ분노의 관ㆍ무명의 관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그런 관을 떠나 바른 관을 익혀야 한다. 바른 관의 선정은 초월적이고 뛰어났기 때문에 모든 선정 중에서 제일이니, 비록 성인은 아니더라도 번뇌가 다하고 집착이 없으면 이 관정(觀定)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려운 관이든 바른 관이든, 모두가 뜻을 말미암아 뜻에서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c_04L亂觀及正觀皆由意所生者所謂亂觀者欲觀恚觀無明觀行人離此諸觀習於正觀正觀定意超越殊勝衆定中尊自非聖人漏盡無著得此觀是故說曰亂觀及正觀皆由意所生也
“능히 깨달아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마음은 자주자주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란 무슨 뜻인가?
공부하는 사람은 생사를 벗어나는 관, 즉 공ㆍ무상ㆍ무원을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의 때를 씻고, 세상의 여덟 가지 일을 버리며 청정한 마음을 닦고 온갖 상호(相好)를 잘 알아서 그 하나하나가 적멸하면, 그의 가르침은 아주 뛰어나서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네 가진 진리는 진리 그대로이니 밤낮으로 닦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에 사로잡혀서 그 뜻이 자주 어지러워지는 것이 마치 달고 맛난 음료수를 시고 쓰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아무리 성인인들 어찌 그 입을 찢고 먹일 수 있겠는가? 뜻을 집착해서 미혹되면 이처럼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깨달아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마음은 자주자주 난동을 부리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c_10L能覺知心觀愚心數數亂者學之人當習出要之觀無想無願洗除心垢捨世八事修淸淨心解諸相好一一虛寂所說教誡殊勝難四諦如爾晝夜修習愚人執惑數數意亂猶甘美漿愚謂辛苦豈須聖人擘口與之執意迷誤難革如斯是故說曰能覺知心觀愚心數數亂也

23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염(念)하는 사람은 오로지 행하지만
잠깐이라도 그 뜻에 집착이 없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029_0981_c_17L智者如是觀
念者專爲行
咄嗟意無著
唯佛能滅此
029_0982_a_02L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염(念)하는 사람은 오로지 행하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은 세밀한 것까지 연설하고 의심이나 어려움을 풀어 주면서 인정(人情)을 미리 밝히니, 대중 속에 있어도 홀로 뛰어나 짝할 이가 없다.
그래서 자주 그 무리들에게 묻기를, “누가 의혹이 있는가? 나는 큰 지혜의 불로 너희들의 의심덩이를 태워 주리라”고 한다. 그리고 수시로 관찰해서 그 뜻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니, 공부하는 사람의 닦는 바는 이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염(念)하는 사람은 오로지 행하지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1_c_19L智者如是觀念者專爲行者所謂智者演說微吐或暢疑遣難豫明人情處在大衆獨步無侶數問群黨誰有疑惑吾當以大慧之火焚燒汝等猶豫之聚隨時觀察意不錯亂學人所修以此爲業是故說曰智者如是觀念者專爲行也
“잠깐이라도 그 뜻에 집착이 없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선정의 삼매를 얻어서 이 세상의 유루행(有漏行)을 모두 버리고, 또 세속의 선(善)의 근본이나 해탈 선정의 뜻까지도 버려야 하지만,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만이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잠깐이라도 그 뜻에 집착이 없는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a_03L咄嗟意無著唯佛能滅此者彼修行人得定三昧盡捨世俗有漏之行亦復捨於世俗善本解脫定意此者是誰唯佛世尊能捨之是故說曰咄嗟意無著唯佛能滅此

24

이 몸 보기를 빈 병처럼 보고
마음을 안정시키기를 성 쌓듯 하여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
029_0982_a_07L觀身如空甁
安心如立城
以睿與魔戰
守勝勿復失

“이 몸 보기를 빈 병처럼 보고”란 무슨 뜻인가?
저 낡은 병은 안팎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물건을 담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듯이,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몸도 마찬가지라서 항상 괴롭고 허물어져가므로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또 저 낡은 병은 좋은 것도 담을 수 있고 나쁜 것도 담을 수 있지만 마침내는 깨어져 잿더미로 돌아가는 것처럼, 이 위태롭고 가냘픈 몸도 마찬가지라서 좋은 것도 받고 추한 것도 받지만 선을 받으면 갖가지 선의 공덕으로 그 몸을 장식하고, 악을 받으면 선행을 버리고 그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헛되이 무덤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몸 보기를 빈 병처럼 보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a_09L觀身如空甁者猶如朽故之甁內外不牢雖可受盛亦不夂停此四大身亦復如是恒苦敗壞不得久停如彼朽弊亦盛於好亦盛於醜會歸磨滅就彼灰聚此危脆身亦復如是亦受於好亦受於醜所受善者諸善功德瓔珞其身所受惡者捨於善行染污其心命終之後浪在丘塚是故說曰觀身如空甁也
“마음을 안정시키기를 성 쌓듯 하여”란 무슨 뜻인가?
성을 튼튼히 쌓고 성 둘레 못을 깊이 파는 까닭은 오직 도적들이 와서 백성들의 물건을 훔쳐 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라서 갖가지 번뇌에 얽매일까 걱정하는 것이니, 성이 튼튼하면 도적들이 그 틈을 타지 못하듯이, 마음이 바르고 삿되지 않으면 번뇌가 그 틈을 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안정시키기를 성 쌓듯 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a_18L安心如立城者所以立城牢固深塹者但厭患群賊盜竊民物心亦如是厭患諸結使所纏裹城則牢固賊不得便心正不邪結不得便是故說曰安心如立城也
029_0982_b_02L“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이란 무슨 뜻인가?
기량을 갖추되 여섯 가지 기예를 완전히 갖추면 저 자재천자와 싸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이기고 딴생각이 없으며, 항상 뜻을 잡아 현전함으로써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 세상을 보는 것도 그와 같다.
029_0982_a_22L睿與魔戰者伎術以備六藝具足能與彼自在天子共戰是故說曰睿與魔戰也守勝勿復失者以勝婬無復餘想恒繫意在前無他異是故說曰守勝勿復失取要言之觀世亦爾

25

이 몸 보기를 물거품처럼 보고
또 불꽃이나 아지랑이인 줄 알아서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
029_0982_b_05L觀身如聚沫
解知焰野馬
以睿與魔戰
守勝勿復失

마치 물거품이 생기자마자 곧 없어져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몸도 마찬가지라서 모이면 사람이 되고 흩어지면 기운이 된다.
본래 부모로 말미암아 이 네 가지 요소의 몸이 있게 되었지만 그 본말을 미루어 보면 모두 적멸한 것이라 추궁해 보아도 그 앞을 볼 수 없고 찾아보아도 그 뒤를 볼 수 없다. 생기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생기고 생기면서 생기며,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기지마는, 생겨도 그 생기는 것을 볼 수 없고 사라져도 그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범부들은 생각이 뒤바뀌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b_07L猶若聚沫生生便滅不得久停此四大身亦復如是聚則爲人散則爲氣本由父母得有四大推其本末皆虛皆寂推之不見其前尋之不見其後生生而滅生生而生滅滅而滅滅滅而生生不見生滅不見滅凡夫所習顚倒不寤是故說曰

이 몸 보기를 물거품처럼 보고
또 불꽃이나 아지랑이인 줄을 알아서
지혜로 악마와 싸울 때에는
언제나 이기고 패하지 말라.
029_0982_b_14L觀身如聚沫
知焰野馬
以睿與魔戰
守勝勿復失

요약해서 말하면 세상을 보는 것도 그와 같다.
029_0982_b_15L取要言之觀世亦爾

26

마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七覺意]를 생각하고
뜻을 평등하게 가져서 어긋남이 없게 하며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생멸이 없는 진리를 항상 즐겨라.
번뇌가 다해 더러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
029_0982_b_16L心念七覺意
等意不差違
當捨愚惑意
樂於不起忍
盡漏無有穢
於世取滅度
029_0982_c_02L
“마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생각하고, 뜻을 평등하게 가져서 어긋남이 없게 하며”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의 법을 닦아 익힐 때, 밤낮으로 생각하여 마음에서 놓아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 생각하고, 뜻을 평등하게 가져서 어긋남이 없게 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생멸이 없는 진리를 항상 즐겨라”란 무슨 뜻인가?
가령 어떤 중생이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대하지 않으면 그는 도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색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실한 도에 합할 것이요, 생멸이 없는 평등한 법을 즐기면서 생멸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비로소 도의 방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생멸이 없는 진리를 항상 즐겨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b_18L心念七覺意等意不差違者如彼修行之人修習覺意之法晝夜思惟不捨于懷是故說曰心念七覺意等意不差違也當捨愚惑意樂於不起忍若有衆生不起慈心向一切衆生則不至道有所成就要當捨愚惑之意不著色想乃應道眞樂捨不起法無生滅意乃入道室是故說曰念七覺意等意不差違也
“번뇌가 다해 더러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유루를 없애고 무루를 이룰 때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자재를 얻는다. 그런 사람은 무위(無爲)의 경계에 들어가 열반을 얻어서 번뇌가 영원히 사라지고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뇌가 다해 더러움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c_04L盡漏無有於世取滅度者彼修行人盡有漏成無漏心得解脫睿得解脫於現法中而得自在如斯之人入無爲境取般泥洹永寂永滅更不復生是故說盡漏無有穢於世取滅度也

27

스스로 그 뜻을 단속하기를
이우(氂牛)가 그 꼬리 보호하듯이 하고
항상 일체에 보시 행하면
끝내 그 즐거움을 여의지 않으리라.
029_0982_c_09L當自護其意
若氂牛護尾
有施於一切
終不離其樂

“스스로 그 뜻을 단속하기를, 이우가 그 꼬리 보호하듯이 하고”란 무슨 뜻인가?
마음이 도를 행하면 그 지음[造作]에 단서가 없어야 하니, 항상 그 뜻을 거두어 잡아서 실수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마치 이우가 밤낮 그 꼬리를 보호하면서 끊길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차라리 그 목숨을 잃고 그 배우자를 잃을지언정 그 꼬리의 털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공부하는 비구도 그와 같아서 차라리 신명을 잃을지언정 계율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뜻을 보호하기를, 이우가 그 꼬리 보호하듯이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항상 일체에 보시 행하면, 끝내 그 즐거움을 여의지 않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반드시 일체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되 원수까지도 갓난애처럼 보면, 저 아수륜ㆍ가류라ㆍ전다라ㆍ마휴륵ㆍ인비인(人非人)들도 그 틈을 타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복을 받아서 그 쾌락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일체에 보시 행하면, 끝내 그 즐거움을 여의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2_c_11L當自護其意若氂牛護尾者心爲行道造作無端常當攝意使不有失彼氂牛晝夜護尾恐有斷絕寧喪命根失其妻息不使尾毛墜落于地丘學道亦復如是寧喪身命不犯於是故說曰當自護其意若氂牛護尾也有施於一切終不離其樂者當興意愍慈一切視怨家如赤子須倫迦留羅旃陁羅摩休勒人若非人不能得其便自然受福快樂無極是故說曰有施於一切終不離其樂

28

하나의 용이 무리 중에서도 뛰어났으니
용 중에서도 여섯 개 어금니를 가졌다.
그 마음마음마다 스스로 평등하여
혼자서 넓은 들판을 즐기는구나.
029_0982_c_22L一龍出衆龍
龍中六牙者
心心自平等
獨樂於曠野
029_0983_a_02L
옛날 구심(拘深)이라는 비구는 늘 다투기를 좋아하여 기뻐하는 일이 없었고, 또 산이나 들의 한적한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자주 가서 꾸짖고 타일렀는데도 말씀을 듣지 않았고,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였는데도 즐겁게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를 버려 두고 떠나셨는데, 한참 가시다가 어떤 코끼리 한 마리가 혼자 빈 산에 있으면서 시름없이 한가한 것을 보셨다. 그때 코끼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여러 코끼리 속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시달림을 받을 뿐 아니라, 풀을 먹을 때에도 나쁜 풀만 얻어먹었고 물을 마실 때도 탁한 물만 마셨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는 그들의 시달림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유쾌한가?’
그러자 부처님께서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029_0982_c_24L昔拘深比丘好喜鬪訟未曾歡樂樂山野閑靜之處爾時世尊數往呵不受如來言教如來數與說法肯承受便捨而去去彼不遠見有一獨在空山閑靜無爲象自念言在大衆中時爲衆象所撓逐群食草則得弊惡草食飮水得濁今日在此不爲衆象所撓何乃快哉爾時世尊便說斯偈

하나의 용이 무리 중에서도 뛰어났으니
용 중에서도 여섯 개 어금니를 가졌다.
그 마음마음마다 스스로 평등하여
혼자서 넓은 들판을 즐기는구나.
029_0983_a_10L一龍出衆龍
龍中六牙者
心心自平等
獨樂於曠野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마치시고 거기서 떠나셨다.
029_0983_a_12L如來說此偈已便捨而去

29

다만 해칠 마음 없을 뿐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모든 사람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는 이
그에게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029_0983_a_13L不以無害心
盡爲一切人
慈心爲衆生
彼無有怨恨

“다만 해칠 마음 없을 뿐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모든 사람 위하고”란 무슨 뜻인가?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모두 버리고 일체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다만 해칠 마음 없을 뿐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모든 사람 위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들 위하는 이, 그에게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남을 보되 자기 몸과 다르지 않게 보아서,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 마음에 간직하지 않으므로 어떤 원한도 해칠 마음도 없다. 그리하여 일체 중생에 대하여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위하는 이, 그에게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3_a_15L不以無害心盡爲一切人者盡當除棄怨憎恨心慈愍一切衆生之類故說曰不以無害心盡爲一切人也慈心爲衆生彼無有怨恨者視己如彼身而無有異若聞好語醜語不經心懷無有怨恨無復害意向一切衆生戰戰兢兢終不捨離是故說曰心爲衆生彼無有怨恨也

30

자비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도
온갖 선의 근본을 얻을 수 있거늘
전심전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최상의 복이라고 현성은 일컫는다.
029_0983_a_23L慈心愍一人
便獲諸善本
盡當爲一切
賢聖稱福上
029_0983_b_02L
“자비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도”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일체 중생에게 보시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 복이 얼마나 많겠는가?’라고 물으니, 비구들은 ‘자비를 수행하는 사람이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면 그 복은 매우 많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자비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도, 온갖 선의 근본을 얻을 수 있거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전심전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최상의 복이라고 현성은 일컫는다”란 무슨 뜻인가?
한 사람에게 보시하여도 그 복은 헤아리기 어렵거늘 하물며 일체 중생들에 보시함이겠는가? 그 복이 한량없어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여러 억만 배나 되어서 비유로도 견줄 수 없다. 그러므로 “전심전력으로 일체 중생을 위한다면, 최상의 복이라고 현성은 일컫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3_b_02L慈心愍一人者如佛契經所說若有人施一切衆生加以慈心施一人者其福何者爲多比丘報曰行慈之人愍念衆生者其福甚多是故說曰慈心愍一人便獲諸善本也盡當爲一切賢聖稱福上者惠施一人其福難量況施一切衆生之類乎其福無限無量不可稱計巨億萬倍不可以譬喩爲比是故說曰盡當爲一切賢聖稱福上也

31

일체를 두루 사랑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라.
인자한 마음을 닦아 행하면
훗날 지극한 즐거움을 받으리라.
029_0983_b_12L普慈於一切
愍念衆生類
修行於慈心
後受無極樂

“일체를 두루 사랑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자비를 행할 때 그 마음이 평등하라는 것이다.
중생들 무리는 땅의 종자보다 많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 일체 중생을 두루 가엾이 여기면, 후생에 사람의 몸을 받을 때 염증이 나지 않는 즐거움을 받을 것이요, 만일 천상에 나면 자연의 복을 받아서 동쪽을 바라보나 서쪽을 바라보나 시중 드는 미녀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일 인간에 나면 부귀로운 호족과 네 가지 족성의 집에 태어나서 일곱 가지 보배를 모자람 없이 완전히 갖추고, 부모는 바르고 참되어서 비천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3_b_14L普慈於一切愍念衆生類者人之行慈發意平等衆生之類多於地種普慈心愍一切衆生者後受人身受樂無厭若生天上受福自然視東望西玉女營從不可稱計若生人中族富貴生四姓家七寶具足無有減父母眞正不處卑賤是故說曰

일체를 두루 사랑하고
중생들을 가엾이 생각하라.
인자한 마음을 닦아 행하면
훗날 지극한 즐거움을 받으리라.
029_0983_b_21L慈於一切
愍念衆生類
脩行於慈心
後受無極樂也

32

만일 발랄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온갖 선법을 잘 닦으면
안온한 곳을 얻어 가리라.
029_0983_b_23L若以踊躍意
歡喜不懈怠
脩於諸善法
獲致安隱處
029_0983_c_02L
“만일 발랄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게으르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쉬고 뜻을 굳건히 잡아서 근본 서원을 버리지 않으면 그로써 얻는 공덕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깨달은 등정각(等正覺)에게 보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덕으로써 전륜성왕이나 속산왕(粟散王)을 구하지 말 것이요, 또 제석천이나 범천도 구하지 말 것이며, 또는 악마나 악마의 왕이 되길 구하지 말라. 그리하여 그것으로 번뇌가 아주 사라진 열반, 즉 함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생멸이 없는 법을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3_c_02L若以踊躍意歡喜不懈怠者彼修行人息婬執意剛强不捨本願獲功德盡施於無上正眞道等正覺不待此福求轉輪聖王粟散諸王復不求帝釋梵天亦不求作魔若魔彼盡求作滅盡泥洹無爲無作無生滅法是故說曰

만일 발랄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온갖 선법을 잘 닦으면
안온한 곳을 얻어 가리라.
029_0983_c_09L若以踊躍意
歡喜不懈怠
脩於諸善法
獲致安隱處

33

마음을 쉬면 기쁨이 생기고
몸과 입과 뜻이 서로 응하여
평등한 해탈을 얻을 것이다.
비구가 마음을 쉬면 그 뜻이 시원하여
일체의 모든 결박이 없어지고
다시는 번뇌가 없게 되리라.
029_0983_c_10L息則致歡喜
身口意相應
以得等解脫
比丘息意快
一切諸結盡
無復有塵勞

“마음을 쉬면 기쁨이 생기고, 몸과 입과 뜻이 서로 응하여”란 무슨 뜻인가?
사람의 뜻이 쉬면 온갖 병이 모두 없어지고 다시는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짓지 않으니, 보시를 행하거나 계율을 가지거나 선정을 닦거나 재(齋)를 행하거나 모두 함이 없는[無爲] 도를 구하는 것이 된다.
만일 출가해서 복업을 닦아 익히려거든 세속의 변재와 총명을 버리고 네 가지 변재를 익혀서 여덟 가지 해탈을 얻을 것이니, 비구의 익히는 법은 언제나 현성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면 기쁨이 생기고, 몸과 입과 뜻이 서로 응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결박이란 사람의 마음을 결박하는 것이니, 맺히고 맺혀서 서로 얽히는 것이다. 마치 나비의 유충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처럼, 그 번뇌가 사람의 마음을 얽어매서 큰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니, 저 번뇌를 떨어 버려야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결박이 없어지고, 다시는 번뇌가 없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3_c_12L息則致歡喜身口意相應者人意以息衆病都廢不復造於身意行布施持戒攝意受齋皆求無爲之道正使出家脩習福業捨世辯聰習四辯以得八解脫法比丘習法不離賢是故說曰息則致歡喜身口意相應也所謂結者結縛人心結結相纏如蛾自裹纏縛人心不見大明除彼塵勞乃自照見是故說曰一切諸結無復有塵勞也

34

아름다운 다섯 가지 음악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나니
한결같은 바른 마음으로
평등한 법을 향함만 못하여라.
029_0983_c_22L正使五樂音
不能悅人意
不如一正心
向於平等法
029_0984_a_02L
“아름다운 다섯 가지 음악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나니”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선정에 뜻을 두고서 5음(陰)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과 그 취향하는 바를 분별하기 때문에 비록 여러 하늘들이 음악을 울리면서 그의 마음을 흔들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의 마음의 정견(正見)을 말미암아서 뒤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3_c_24L正使五樂音不能悅人意者彼修行人志在禪定分別五陰成敗所趣正使諸天作倡伎樂欲使此人心意動轉此事不然何以故由心正見無顚倒是故說曰

아름다운 다섯 가지 음악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나니
한결같은 바른 마음으로
평등한 법을 향함만 못하여라.
029_0984_a_06L正使五樂音
不能悅人
不如一正心
向於平等法也

35

가장 훌륭한 이는 잠을 잘 자고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
029_0984_a_07L最勝得善眠
亦不計有我
諸有心樂禪
不樂於欲意

“가장 훌륭한 이는 잠을 잘 자고, 나[我]가 있다고 헤아리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나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화에 집착하지 않으니, 차라리 찬 돌 위에 눕거나 흙 속에 뒹굴지언정 집착하는 마음으로 높은 평상이나 좋은 휘장 안에서 자지 않는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는 잠을 잘 자고,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선정에 든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선정에 들어 있을 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많은 우레가 한꺼번에 소리를 내고 큰 뇌성이 한꺼번에 울리더라도 선정에 든 사람을 깨우지 못하니, 왜냐 하면 그 마음이 큰 자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4_a_09L最勝得善眠亦不計有我者如修行人不計吾我染著榮職寧取冷石宛轉土中不以縛著之心臥於高牀幃帳之內是故說曰最勝得善眠亦不計有我也諸有心樂禪不樂於欲意入定之人心不移變當入定時寂無音響千車同響萬雷同震不能令入定之人離於正受所以然者由其心意得普慈故是故說曰諸有心樂不樂於欲意

36

가장 훌륭한 이는 그 뜻이 발랄하고
또한 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
029_0984_a_19L最勝踊躍意
亦不見有我
諸有心樂禪
不樂於欲意

“가장 훌륭한 이는 그 뜻이 발랄하고”란 무슨 뜻인가?
나가 없다고 보는 사람은 안팎에서 나오는 네 가지 요소가 모두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낱낱이 잘 안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이는 그 뜻이 발랄하고, 또한 나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선정을 즐겨야지, 부디 욕심은 즐기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4_a_21L最勝踊躍意者見無我之人分別內外所出四大一一解了虛而不眞故說曰最勝踊躍意亦不見有我有心樂禪不樂於欲意也
029_0984_b_02L
37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면
저 산처럼 흔들리지 않아서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성내지 않는다.
029_0984_b_02L諸結永以盡
如山不可動
於染無所染
於恚不起恚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면, 저 산처럼 흔들리지 않아서”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고 안팎이 청정해서 아무 티가 없다. 그래서 그 뜻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부술 수가 없고 태산과 같아서 흔들 수 없으니, 그 이유는 마음을 굳건히 잡아서 탐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화를 당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몸과 정신이 모두 텅 비어서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4_b_04L諸結永以盡如山不可動者如彼行人諸結永盡內外淸淨無有瑕穢猶金剛不可沮壞亦如泰山不可移何以故由其執心甚牢固也處欲不污在禍不懼形神俱虛無可戀著是故說曰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면
저 산처럼 흔들리지 않아서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누구에게도 성내지 않는다.
029_0984_b_10L諸結永以盡
如山不可動
於染無所染
於恚不起恚也

38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를 알겠는가.
해침이나 물드는 것도 없어서
계율을 두루 완전히 갖추어야 하며
029_0984_b_11L諸有如此心
焉知苦蹤迹
無害無所染
具足於戒律

음식이나 평상과 침구에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고
마음을 닦고 방편을 구할지니
그것이 곧 부처님 교훈이다.
029_0984_b_13L於食自知足
及諸牀臥具
脩意求方便
是謂諸佛教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를 알겠는가”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그 마음을 잘 단련시켜서 온갖 더러운 집착을 버리고, 번뇌를 끊는 데 마음을 두어서 날로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음이라면, 어찌 괴로움의 자취를 알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해침이나 물드는 것도 없어서, 계율을 두루 완전히 갖추어야 하며”란 무슨 뜻인가?
스스로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음으로써 계율에서 말한 것은 하나도 그 차례를 잃지 않는 것이니, 그 결과 스스로 덕을 닦고는 그 덕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해침이나 물드는 것도 없어서, 계율을 두루 완전히 갖추어야 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4_b_14L諸有如此心焉知苦蹤迹者如彼行人練精其心去諸穢著意存斷結日進不怠爾時焉知有苦蹤迹是故說諸有如此心焉知苦蹤迹無害無所染具足於戒律者亦不自害復不害人戒律所說不失次緖旣自修德復以此德轉教人民是故說曰無害無所染具足於戒律
029_0984_c_02L“음식이나 평상과 침구에,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을 알아서 음식을 탐하지 않으니 음식을 먹는 것은 다만 그 목숨을 유지해서 도를 행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수레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무거운 짐을 싣고 가려는 데 있고, 사람이 부스럼에 고약을 붙이는 까닭은 병이 덧나지 않고 있던 병을 고치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음식이나 평상과 침구에,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알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닦고 방편을 구할지니, 그것이 곧 부처님 교훈이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요긴한 뜻[要義]을 취해야 하고, 수행 중에서 가장 급한 것은 증상(增上)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고 방편을 구할지니, 그것이 바로 부처님 교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4_b_22L於食知止足諸牀臥具者如彼行人量食而進亦不貪餮趣支其命行道而已所以取膏而膏車者欲使重載有所致也人瘡痍以膏傅之所以傅者欲使新者不增故者除愈是故說曰於食知止足及諸牀臥具也脩意求方便謂諸佛教者修行之人採取要義中所急者增上心是是故說曰修意求方便是謂諸佛教也

39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모습을 관찰해서
생각이 대대(對待)하는 뜻을 낱낱이 분별하여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으면
기쁨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
029_0984_c_08L行人觀心相
分別念待意
以得入禪定
便獲喜安樂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모습을 관찰해서”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근원을 알아서 마음이 생기는 즉시 없애서 더 자라나지 않게 하고, 생각의 나아가고 물러남을 알아서 그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먼 과거부터 수행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의 모습을 관찰해서, 생각이 대대(對待)하는 뜻을 낱낱이 분별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으면, 기쁨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정(定)에 든 사람을 왜 정에 들었다고 하는가? 정(定)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선(禪)이 제일 우두머리가 된다. 마치 국왕이 사방을 통솔할 때 세상 재물은 많아도 도의 재물은 없는 것처럼, 정을 닦는 사람은 도의 재물은 많지마는 세상 재물은 없다.
이른바 도의 재물이란 서른일곱 가지 도로써 선정과 모든 선의 근본이다. 즐거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깨끗한 즐거움과 깨끗하지 못한 즐거움이다. 깨끗하지 못한 즐거움이란 음식과 의복과 장식품으로서, 향ㆍ꽃ㆍ연지ㆍ분ㆍ비단ㆍ당기ㆍ일산 따위요, 깨끗한 즐거움이란 선정에 바로 들어서 고요한 무위로서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히 선정에 들 수 있으면, 기쁨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4_c_10L行人觀心相者如彼行人知心根源適生卽滅不使滋長知念待之進退分別善惡永劫以來所脩行事是故說曰行人觀心相分別念待意也得入禪定便獲喜安樂者入定之人何以故說入定之人定有三義禪最爲首猶如國王統領四方正可富於世財無有道財禪定之人當富道財無有世財所謂道財者三十七品禪定三昧諸善之本樂有二義或有淨或有不淨樂不淨樂者飮食衣被服飾之具香華脂粉繒綵幡蓋斯謂不淨樂也有淨樂者入禪正受澹然無爲無他異想是謂有淨之樂也是故說曰以得入禪定便獲喜安樂也
029_0985_a_02L
40

그 뜻을 단속하여 스스로 장엄하고
번뇌를 미워하고 자신을 돌보라.
걱정스런 일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의 바탕을 살핀다.
029_0985_a_02L護意自莊嚴
嫉彼而營己
遭憂不患苦
智者審諦住

“그 뜻을 단속하여 스스로 장엄하고, 번뇌를 미워하고 자신을 돌보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번뇌를 단속하여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에 묶이지 않고, 온갖 생각을 그 사이에 섞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 서른일곱 가지 도의 꽃으로 스스로 장엄한다. 그러므로 “그 뜻을 단속하여 스스로 장엄하고, 번뇌를 미워하고 자신을 돌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걱정스런 일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의 바탕을 살핀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 들어가고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에 살기 때문에 아무데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걱정스런 일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의 바탕을 살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5_a_04L護意自莊嚴嫉彼而營己者彼脩行恒護結使縛著色細滑之不使衆想雜錯其閒復以三十七品七覺意花而自莊嚴是故說曰意自莊嚴嫉彼而營己也遭憂不患智者審諦住者彼修行人以得入無畏之處智者神審諦而不移動故說曰遭憂不患苦智者審諦住也

41

누구나 그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삿된 소견의 해침을 받고
또 남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죽음 길로 나아간다.
029_0985_a_12L人不守護心
爲邪見所害
兼懷調戲意
斯等就死徑
029_0985_b_02L“누구나 그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삿된 소견의 해침을 받고”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을 단속한다. 어떤 중생이 삿된 도를 닦아 익히면 지옥이나 아귀ㆍ축생의 길로 나아가고. 삿된 소견을 가지지 않으면 천상이나 인간에 나는 동시에 여덟 가지 어려움의 변방에 나지 않고 나라의 중앙에 난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삿된 소견의 해침을 받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남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도에 어두운 것은 모두 번뇌에 덮이기 때문이요, 또 지혜의 광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 가지 덮개에 덮이고 두터운 구름에 가리면, 지혜의 광명을 보려 하여도 그렇게 될 수 없으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또 남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런 사람은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5_a_14L人不守護心爲邪見所害者行人不守護色細滑法其有衆生修習邪徑便當趣於地獄餓鬼畜生之不習邪見者生天上人中處在中國不在邊地八不閑處是故說曰不守護心爲邪見所害也兼懷調戲斯等就死徑者行人所以迷於道皆由陰蓋所覆不得闚看智慧光加復調戲五蓋所覆重雲所翳得見慧明者此則不然命終之後必趣死徑是故說曰兼懷調戲意斯等就死徑也

42

그러므로 부디 마음을 단속하여
평등하게 청정한 행을 닦으라.
바른 소견이 항상 현전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분별하리라.
029_0985_b_03L是故當護心
等修淸淨行
正見恒在前
分別起滅法

“그러므로 부디 마음을 단속하여, 평등하게 청정한 행을 닦으라”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단속하고 위의가 있는 법을 행함으로써 법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하며, 다녀야 할 때 다닐 줄 알고 앉아야 할 때 앉을 줄 알아서 나아가고 머물고 가고 오는 데 그 위의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부디 마음을 단속하여, 평등하게 청정한 행을 닦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른 소견이 항상 현전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분별하리라”란 무슨 뜻인가?
사람이 덕을 닦을 때에는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마치 집에 있는 재산을 그 주인이 잘 아는 것처럼, 도를 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여덟 가지 곧은 길을 따라 네 가지 흐름[流]을 억제하고, 지혜의 등불을 잡아 3독의 어두운 방을 비춤으로써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유를 분별하고 한결같은 선정으로 돌아가면, 거기서 도를 얻기가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항상 현전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을 분별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5_b_05L是故當護心等修淸淨行者彼修行人恒常擁護心意行威儀法捨於非可行知行可坐知坐進止行來不失其儀是故說曰是故當護心等修淸淨行也正見恒在前分別起滅法人之修德深自知己如家有財主自能別行道之人亦復如是涉八直之正路御四駛之穢濁執智慧之庭照三毒冥室分別起滅之所由之一定而無礙於中取道有何難乎是故說曰正見恒在前分別起滅法也

43

비구여, 부디 잠을 없애고
괴로움을 다해서 다시 짓지 말라.
마음을 항복받아 약(藥)을 복용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029_0985_b_16L比丘除睡眠
盡苦更不造
降心服於藥
護心勿復調
029_0985_c_02L
“비구여, 부디 잠을 없애고, 괴로움을 다해서 다시 짓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행을 관찰하는 비구는 수면과 5음(陰)의 병을 없앰으로써 온갖 괴로움을 다하여 다시는 새로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여, 부디 잠을 없애고, 괴로움을 다해서 다시 짓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항복받아 약을 복용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항상 마음을 단속하여 원하는 바를 반드시 초극하면, 능히 성스러운 무루행을 닦을 수 있으니, 이는 마음을 항복받고 더러움을 버리는 데서 온다. 행이 방일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야 하니, 행이란 깊고 요긴한 업(業)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복받아 약을 복용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5_b_18L比丘除睡眠盡苦更不造者觀行比丘除去睡眠陰蓋之患盡諸苦際更不造新是故說曰比丘除睡眠盡苦更不造也降心服於藥護心勿復調者常當擁護心所願必剋則能及聖無漏行斯由降心去穢所致也行不放逸不嬈於人復是行者深要之業是故說曰降心服於藥護心勿復調也

44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을 범하면
그들은 다 지옥의 고통을 받지만
마음을 항복시키면 약을 복용하니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029_0985_c_03L衆生心所誤
盡受地獄苦
降心則致樂
護心勿復調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을 범하면, 그들은 다 지옥의 고통을 받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잘못은 그 마음이 만든 것으로서 지옥의 뿌리를 심어 무수한 억천만겁 동안 치고 베고 쪼개고 찢고 하는 고통을 한량없이 받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5_c_05L衆生心所誤盡受地獄苦者迷誤爲心所使種地獄根栽經歷無數億千萬劫屠割剝裂受苦無量是故說曰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을 범하면
그들은 다 지옥의 고통을 받지만
마음을 항복시키면 약을 복용하니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029_0985_c_08L衆生心所誤
盡受地獄苦
降心則致
護心勿復調也

45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마음은 모든 묘(妙)의 문이 되나니
그것을 단속해 잃지 않으면
그는 곧 열반의 문에 들리라.
029_0985_c_10L護心勿復調
心爲衆妙門
護而不漏失
便在泥洹門

마음이 바르면 도가 존재하고 마음이 삿되면 높고 낮음이 있으니, 중생들은 미련하여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 타락하여 도에 이르지 못한다. 미혹한 사람은 마음이 어두워서 도는 공(空)에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마음은 도의 근본으로서 허무하고 적막하여 법의 극존(極尊)이요, 온갖 행의 궁극이다.
그리하여 3유(有)를 영원히 여의어서 삼계에 있지 않고, 모든 고뇌를 떠났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는 다시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029_0985_c_12L心正則道存邪者有高下衆生愚惑不別眞僞是以墜墮不至于道惑者意迷謂道在空乃不自覺心爲道本虛無寂寞法之極尊衆行究竟永離三有不處三界度衆苦惱畢壽不生是故說曰

마음을 단속하여 다시 다스리지 말라.
마음은 온갖 묘의 문이 되나니
그것을 단속해 잃지 않으면
그는 곧 열반의 문에 들리라.
029_0985_c_18L護心勿復調
心爲衆妙門
護而不漏失
便在泥洹門也
出曜經卷第二十八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