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導師]의 말씀은 만나기 어렵고 듣는 자가 기뻐하기 또한 어렵네. 대인(大人)은 듣기를 즐거워하고 소인(小人)은 듣기를 싫어한다네.
030_0128_a_03L導師說難遇, 聞者喜亦難; 大人所樂聽,
小人所惡聞。
가엾도다, 중생이여! 늙고 죽음의 험난한 길에 떨어지며 야인(野人)1)은 은애(恩愛)의 노예라 두려움에 처해서도 어리석어 두려워할 줄 모르네.
030_0128_a_05L衆生可愍傷, 墜老死嶮路;
野人恩愛奴, 處畏癡不懼。
세계는 비록 크고 작은 것이 있으나 법에는 영원한 것이 없네. 일체의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으니 마치 번개처럼 잠시 나타나네.
030_0128_a_06L世界若大小,
法無有常者; 一切不久留, 暫現如電光。
이 몸은 늙고 죽음에 속하고 갖가지 병들이 돌아갈 곳이네. 얇은 가죽으로 더러운 것을 가리고 어리석음과 미혹으로 속임을 당하네.
030_0128_a_07L是身屬老死, 衆病之所歸; 薄皮覆不淨,
愚惑爲所欺。
그대는 항상 늙음의 도적 때문에 건장한 기색을 삼켜 소멸시키니 꽃다발이 마르고 썩으면 훼손되어 가치가 없는 것과 같네.
030_0128_a_09L汝常爲老賊, 呑滅盛壯色;
如華鬘枯朽, 毀敗無所直。
정생왕(頂生王)2)은 공덕으로 석천왕(釋天王)과 함께 앉으며 과보의 이익과 복덕이 크고 많아서 오늘 모두 편안하게 있네.
030_0128_a_10L頂生王功德,
共釋天王坐; 報利福弘多, 今日悉安在?
이 왕은 천인(天人) 가운데서 최고로 욕락(欲樂)을 갖추었지만 죽을 때는 매우 고통스러워 이것 때문에 마음을 깨달을 수 있네.
030_0128_a_11L此王天人中, 欲樂具爲最; 死時極苦痛,
以此可悟意。
일체의 욕망은 처음엔 부드럽고 즐거우나 뒤에는 모두 커다란 고통이 된다네. 또한 원망도 처음에는 선(善)인 것 같지만 종족을 멸망시키는 화가 뒤에 있네.
030_0128_a_13L諸欲初軟樂, 後皆成大苦;
亦如怨初善, 滅族禍在後。
이 몸은 더러운 그릇이라 아홉 구멍3)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흐르며 또한 나리(那利) 종양처럼 의원의 약으로 치료할 수 없네.
030_0128_a_14L是身爲穢器,
九孔常流惡; 亦如那利瘡, 絕治於醫藥。
골차(骨車:갈빗대)의 힘이 매우 적고 근육과 맥박에 묶여 의식이 오락가락하니 그대는 그것을 미묘한 수레로 삼아 참고 걸쳐서 부끄러워함이 없네.
030_0128_a_15L骨車力甚少, 筋脈纏識轉; 汝以爲妙乘,
忍著無羞恥。
죽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버려져 무덤 사이에 가득 찼으니 살아서는 보호하고 아끼더니 죽으니 모두 버려지네.
030_0128_a_17L死人所聚處, 委棄滿塚閒;
生時所保惜, 死則皆棄捐。
항상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여 한마음으로 관(觀)해서 어지럽히지 말라. 어리석은 뒤바뀜과 검은 어두움을 깨뜨리고 횃불을 잡고 밝게 관하라.
030_0128_a_18L常當念如是,
一心觀莫亂; 破癡倒黑暝, 執炬以明觀。
만약 4념지(念止)4)를 버린다면 마음에 어떤 악도 짓지 않는 것이 없으리니 마치 코끼리를 굴레[鉤] 없이 풀어 놓은 것 같아 끝내 조도(調道)5)를 따르지 않으리라.
030_0128_a_19L若捨四念止, 心無惡不造; 如象逸無鉤,
終不順調道。
오늘은 이 업을 짓고 내일은 저 일을 만들며 즐거움에 집착하여 고통을 관하지 않으니 죽음의 도적이 다가왔는지 깨닫지 못하네.
030_0128_a_21L今日營此業, 明日造彼事,
樂著不觀苦, 不覺死賊至。
바쁘게 자기의 일을 하고 남의 일도 등한히 하지 않으나 죽음의 도적은 때를 기다리지 않으니 죽음이 이르면 벗어날 인연이 없네.
030_0128_a_22L悤悤爲己務,
他事亦不閑; 死賊不待時, 至則無脫緣。
030_0128_b_01L
마치 사슴이 목이 말라 샘에 이르러 물을 마시려고 물가로 갔으나 자비가 없는 사냥꾼이 마시려는 청을 들어주지 않고 마침내 죽이는 것과 같네.
030_0128_b_01L如鹿渴赴泉, 已飮方向水; 獵師無慈惠,
不聽飮竟殺。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부지런하게 여러 가지 사무(事務)를 닦더라도 죽음이 이르면 때를 기다리지 않나니 누가 마땅히 그대를 보호해 줄 것인가?
030_0128_b_03L癡人亦如是, 懃修諸事務;
死至不待時, 誰當爲汝護?
사람의 마음이 부귀를 기다리지만 다섯 가지 욕정6)을 채울 수 없으며, 모든 대국의 임금들도 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030_0128_b_04L人心期富貴,
五欲情未滿; 諸大國王輩, 無得免此患。
선인(仙人)이 주술의 화살을 지니고 있더라도 또한 생사를 면할 수 없으며 무상(無常)한 커다란 코끼리는 개미나 거머리를 땅과 같이 밟네.
030_0128_b_05L仙人持呪箭, 亦不免死生; 無常大象蹈,
蟻蛭與地同。
또한 일체의 사람들이 모든 부처님의 바르고 참된 깨달음에 안치하여 생사의 흐름을 건너더라도 또한 항상 있는 것은 아니네.
030_0128_b_07L且置一切人, 諸佛正眞覺;
越度生死流, 亦復不常在。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야만 하니 그대가 사랑하고 즐기는 것들을 모두 일찍 버리고 여의어서 일심으로 열반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030_0128_b_08L以是故當知,
汝所可愛樂; 悉應早捨離, 一心求涅槃。
뒤에 몸을 버리고 죽을 때 누가 마땅히 ‘나’를 깨달을 것인가? 다시 법보(法寶)를 만나든지 만나지 못하든지
030_0128_b_09L後捨身死時, 誰當證知我; 復得遇法寶,
及以不遇者。
오랫동안 부처님의 태양이 나와 커다란 무명(無明)의 어둠을 깨뜨리고 일체의 광명을 발산하여 도(道)와 도 아닌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리라.
030_0128_b_11L久久佛日出, 破大無明暝;
以放諸光明, 示人道非道。
나는 어느 곳에서 왔고 어느 곳으로부터 태어났으며 또 어느 곳에서 해탈을 얻는가? 이런 의문을 누가 마땅히 밝혀 주리오?
030_0128_b_12L我從何所來?
從何處而生? 何處得解脫? 此疑誰當明?
부처님의 성스러운 일체의 지혜는 아득한 옛날에 세상에 나왔으니 일심(一心)으로 게으르지 말아야 그대의 의심 덩어리를 깨뜨릴 수 있으리라.
030_0128_b_13L佛聖一切智, 久遠乃出世; 一心莫放逸,
能破汝疑結。
그는 참다운 이익을 즐기지 아니하고 폐악(弊惡)한 마음에 집착하길 좋아하니 그대는 중생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실상의 법을 찾아야만 하네.
030_0128_b_15L彼不樂實利, 好著弊惡心;
汝爲衆生長, 當求實法相。
누가 알 수 있으리오 죽을 때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비유컨대 바람 속의 등불처럼 사라질 시절을 알 수 없다네.
030_0128_b_16L誰能知死時,
所趣從何道? 譬如風中燈, 不知滅時節。
도법(道法)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위대한 성인께서 일을 가리켜 설하셨네. 지혜와 지혜의 처소[智處]를 설하셨으니 이 두 가지는 외부에 의지하지 않는다네.
030_0128_b_17L至道法不難, 大聖指事說; 說智及智處,
此二不假外。
그대가 만일 게으르지 않고 일심으로 항상 도를 행한다면 오래지 않아 열반의 제일가는 상락처(常樂處)를 얻으리라.
030_0128_b_19L汝若不放逸, 一心常行道;
不久得涅槃, 第一常樂處。
날카로운 지혜로 착한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마음을 다하여 불법(佛法)을 공경하며 더럽고 깨끗하지 못한 몸을 싫어하여 고통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다네.
030_0128_b_20L利智親善人,
盡心敬佛法; 厭穢不淨身, 離苦得解脫。
한가롭고 조용하게 적멸(寂滅)을 닦기로 마음먹고 결가(結跏)하고 숲 속에 앉아 마음을 점검하되 게을리 하지 않았으므로 마음을 깨닫고 갖가지 인연을 깨닫네.
030_0128_b_21L閑靜修寂志, 結跏坐林閒; 撿心不放逸,
悟意覺諸緣。
만일 유중(有中)7)을 싫어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잠들어 스스로 깨지 않으며 세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할 만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네.
030_0128_b_23L若不厭有中, 安睡不自悟;
不念世非常, 可畏而不懼。
030_0128_c_01L 번뇌가 깊어 끝이 없으며
생사의 바다는 가이없고 고통 바다 건널 배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어찌 잠자는 것을 즐길 수 있으리오.
030_0128_c_01L煩惱深無底,
生死海無邊; 度苦舡未辦, 安得樂睡眠?
그러므로 마땅히 깨달아 잠자는 것으로 마음을 덮지 말라. 네 가지 공양8) 중에서 양(量)을 알아 그침과 만족함을 알아야만 하네.
030_0128_c_02L是以當覺悟, 莫以睡覆心, 於四供養中,
知量知止足。
커다란 두려움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니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라. 일체의 고뇌가 닥칠 때에는 회한(悔恨)이 미칠 곳이 없다네.
030_0128_c_04L大怖俱未免, 當宜懃精進;
一切苦至時, 悔恨無所及。
납의(衲衣)9)가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응하는 대로 음식을 얻을 것이니 맛을 탐냄으로 자신을 훼손하지 말라.
030_0128_c_05L納衣樹下坐,
如所應得食; 勿爲貪味故, 而自致毀敗。
음식이 지나치면 맛[味處]을 알더라도 좋고 나쁨이 모두 다름이 없다네. 사랑하고 좋아하면 근심과 고뇌를 낳으니 그러므로 사랑을 만들지 말라.
030_0128_c_06L食過知味處, 美惡都無異; 愛好生憂苦,
是以莫造愛。
업을 행하는 세계 속에서 좋고 나쁨은 바뀌지 않음이 없으니 일체를 이미 갖추고 받았으므로 마땅히 이것으로 스스로를 억누르라.
030_0128_c_08L行業世界中, 美惡無不更;
一切已具受, 當以是自抑。
만약 축생 가운데 있다면 풀을 씹어서 맛을 갖출 것이며 지옥에서 쇠구슬을 삼키면 타오르는 열이 극심해서 쇠를 물리치네.
030_0128_c_09L若在畜獸中,
唌草爲具味; 地獄呑鐵丸, 燃熱劇逬鐵。
만일 벽려(薛荔:餓鬼道)에 있다면 고름과 토하는 불과 똥과 오줌 눈물과 침 등의 깨끗하지 않은 이것으로 으뜸가는 맛을 삼는다네.
030_0128_c_10L若在薜荔中, 膿吐火糞屎; 涕唾諸不淨,
以此爲上味。
만약 하늘의 궁전에 있으면 7보의 궁전 안에서 하늘의 음식과 소타(蘇陀)10)를 맛보며 천녀들이 마음을 즐겁게 해주네.
030_0128_c_12L若在天宮殿, 七寶宮觀中,
天食蘇陁味, 天女以娛心。
인간에서는 부귀하기를 힘써 일곱 가지 음식으로 갖가지 맛을 갖추지만 일체는 일찍 바뀌게 되는 것 이제 다시 무엇을 사랑하리.
030_0128_c_13L人中務貴處,
七饌備衆味; 一切曾所更, 今復何以愛?
세계 속을 왕래하는 가운데 다시 고락(苦樂)의 일을 싫어한다면 비록 아직 열반을 얻지는 못했더라도 마땅히 부지런히 이 이로움을 구해야만 하네.
030_0128_c_14L往返世界中, 厭更苦樂事; 雖未得涅槃, ,當懃求此利。
선(禪)을 배우는 사람이 처음에 스승의 처소에 이르면, 스승은 마땅히 질문을 해야 한다. “그대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가? 무거운 죄와 악사(惡邪)가 없는가?” 만약 5부(部) 대중이 계가 청정하고 무거운 죄와 악사(惡邪)가 없다고 말한다면, 다음에 도법(道法)을 가르친다. 만일 파계했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거듭 질문해야 한다. “그대는 어떤 계를 깨뜨렸는가?” 만일 무거운 계를 깨뜨렸다고 말한다면, 스승은 말하기를 “사람이 귀와 코를 잘리게 되면 거울에 비추어 볼 필요가 없는 것과 같으니, 너는 돌아가서 정근(精勤)하고 경전을 읽으며 교화에 힘써서 복을 지으면, 후세에 도법(道法)의 인연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금생에는 영원히 포기하라. 예컨대 마른 나무는 물을 주더라도 꽃과 잎사귀와 과실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030_0129_a_01L만약 나머지 계를 깨뜨렸다면, 이때는마땅히 법대로 참회를 시켜야 한다. 만약 이미 청정하고 스승이 천안(天眼)과 타심(他心)의 지혜를 얻었다면, 곧 병에 따라서 도에 나아가는 방법을 설한다. 만약 아직 신통을 얻지 못했다면, 마땅히 상(相)을 관해야 한다. 혹은 다시 질문을 한다. “3독(毒) 중에 무엇에 치우쳐 있는가? 음욕(婬欲)이 많은가, 성냄[瞋恚]이 많은가, 어리석음[愚癡]이 많은가?”
어떻게 상(相)을 관하는가? 음욕의 모습[相]이 많으면 사람 됨됨이가 경솔해서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말도 많고 믿기도 잘하며, 안색이 온화하고 명랑하며, 언어가 쉽고 편하며, 성냄과 원망함이 적고, 또 근심과 걱정도 적다. 많은 기술에 능통하고, 듣기를 좋아하여 아는 것이 많다. 문장과 게송에 애착하고 담론을 잘하며, 인정(人情)을 잘 살피고, 많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마음은 방안에 가 있으며, 얇은 옷 입기를 좋아하고, 여색에 목말라 있으며, 와구(臥具)나 의복 나아가 향과 꽃에 애착한다. 마음은 매우 부드럽고, 남을 가엾어하는 마음이 있다. 말을 아름답게 하고, 복업(福業) 닦는 것을 좋아하며, 뜻은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고, 무리들 속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없다.
사람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고, 부녀자를 신임하며, 욕망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마음에 후회와 변화가 많다. 스스로 장식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림 감상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물건은 매우 아끼며, 요행으로 남의 재물을 얻으려고 한다. 친구 맺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시류를 좇아 머무는 것을 즐겨 집착하며, 깜짝깜짝 놀라거나 무서워하여 의지가 원숭이와 같다. 소견이 천박해서 일을 하되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가벼운 의지로 일을 하고 얻은 것이 마음에 맞으면 기뻐서 운다. 신체가 가늘고 유약하여 추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며, 쉽게 힘들어 하고 쉽게 들떠서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조금만 얻어도 크게 기뻐하고 조금만 잃어도 크게 걱정하며, 스스로 엎드리고 숨는다. 몸은 따뜻해서 땀과 냄새가 나고, 피부는 얇고 터럭은 가늘며, 주름이 많고 매우 창백하다. 손톱을 깎고, 수염을 정돈하며, 이를 희게 하고 다니며, 청결한 옷을 좋아한다.
030_0129_b_01L배움에 오로지 하나에 전념하지 않고, 숲의 정원에서 노닐기를 좋아한다. 정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아서 뜻을 상견(常見)에 집착한다. 근처에 대덕(大德)이 있으면 뜻을 앞세워 질문하고, 남의 말을 인용하길 좋아하며, 얼굴이 두꺼워 욕됨을 견딘다.일을 들으면 재빨리 이해하고, 하는 바의 사업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며, 고난과 재액을 가엾이 여긴다. 스스로 크게 뛰어남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에게 능멸을 받지 않는다. 기쁘게 시혜(施惠)를 행하고, 착한 사람들을 인도하며, 좋은 음식을 얻으면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다. 뜻을 가깝고 세밀한 데에 두지 않고 멀고 큰 데에 둔다. 눈은 색욕에 집착하여 일을 끝맺지 못하고, 멀리까지 헤아리지 못한다.
세상 각지의 풍속을 알아 안색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탐색하여 능란한 언변과 지혜로 친구를 맺으나 견고하지 않다. 머리털이 적게 나고, 잠을 적게 자며, 앉고 눕고 가고 섬에 몸가짐을 잃지 않는다. 소유한 재물로 신속하게 위급함을 구할 수 있으나 얼마 뒤에 후회하고 아까워하며, 뜻을 받아들여 재빨리 얻지만 얼마 있다 다시 잘 잊어버린다. 거동을 아끼니 자신을 바꾸기가 어렵고, 욕심을 여의기 어렵지만 죄를 지어도 가볍고 미미하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가 바로 음욕의 모습이다.
성난 사람의 모습은 근심과 고뇌가 많고, 갑자기 난폭해지며, 분노를 품고, 몸과 입이 거칠고 사나우며, 능히 뭇 고통을 참되 일에 부딪히면 그럴 수가 없다. 근심이 많고 기쁨이 적으니 능히 커다란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싸우고 다투기를 좋아한다. 얼굴 모습은 야위고 초췌하며, 눈썹에 주름이 지고 곁눈질하며, 말하기도 어렵고 기뻐하기도 어려우며 모시기도 어렵고 동의하기도 어렵다. 그의 마음은 종기와 같아서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아도 마땅하다. 의론(義論)이 강하여 항복시킬 수 없다. 금방 움직이기 어려워서 친해지기도 방해하기도 어렵다. 독을 마시고도 토하기 어려우며, 비방을 받으면 잊지 않는다. 다재다능하고 기교가 많으며, 마음이 게으름에 빠지지 않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신속하다. 바라는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으며, 뜻이 깊어 알기가 어렵다.
030_0129_c_01L은혜를 입으면 능히 보답하며, 능히 대중을 모아서는 자신을 꺾고 남을 섬기므로 방해할 수 없다. 능히 일을 마칠 수 있어서 난처하게 할 수 없으며,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바가 적으니, 비유컨대 사자를 굴복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에 나아가되 돌아가지 아니하고, 직접 만들고 곧바로 나아간다. 기억하여 잊지 않고, 충분히 생각하며, 외우고 익혀서 기억한다. 능히 많은 보시를 하되 작은 이익을 회피하지 않는다. 스승이 되면 근기가 날카롭고 욕망을 여의어 홀로 거주하며,음욕이 적고, 마음으로는 항상 뛰어남을 생각하되 단견(斷見)에 빠진다. 눈은 항상 나쁘게 보나 진실하게 말을 하고, 일을 설명하는 것이 분명하다. 가까운 벗이 적고, 일에 굳게 집착하며, 굳게 기억하여 잊지 않는다. 체력이 좋고, 어깨와 가슴이 예쁘고 크며, 이마가 넓고 머릿결이 가지런하다.
심지(心志)가 굳어서 굴복하기 어렵고, 빨리 얻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욕망을 여읠 수 있지만 무거운 죄를 즐겨 짓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가 성냄의 모습이다.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은 의심과 후회가 많고 게을러서 무견(無見)에 떨어진다. 스스로 만족하여 굽히기 어렵고, 교만하여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믿어야 할 것은 믿지 않고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을 믿는다. 공경할 줄 몰라 아무 곳이나 믿고 따르며, 많은 스승에게 가볍고 성급하게 대하며 수치심도 없이 당돌하다. 일을 하는 데는 깊은 사려가 없고, 가르침에 거슬러서 매우 허둥거린다. 친구를 가리지 않고, 자기를 꾸미지도 않으며, 외도(外道)를 섬기기 좋아하고,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어렵게 받아들이고 쉽게 잊으며, 근기가 둔하고 게으르다.
보시행을 비방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법의 다리[法橋]를 파괴하고, 일에 맞닥뜨려 깨닫지 못한다. 성난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지혜와 책략이 없다. 희망사항은 많으나 의심이 많고 믿음이 적다. 좋은 사람을 증오하여 죄와 복의 과보를 깨뜨리고, 구별해 잘 말하지 않아서 잘못을 풀 수가 없다. 가르쳐 깨워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증오와 원망을 여의며, 예절을 알지 못해 즐겨 나쁜 말을 한다. 머리카락과 손톱이 길고 이빨과 옷이 매우 더럽다. 남에게 부림을 당하면서도 두려워해야 할 곳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즐거워해야 할 곳에서 근심하고, 근심해야 할 곳에서 기뻐하며, 슬퍼해야 할 곳에서 도리어 웃고, 웃어야 할 곳에서 도리어 슬퍼한다. 이끌어서 뒤에 따르지만 능히 괴로운 일을 참아낸다. 여러 가지 맛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심을 여의기가 어려우며, 죄를 짓는 것이 깊고 무겁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가 어리석음의 모습이다.
030_0130_a_01L만일 음욕이 많은 사람이라면 부정(不淨)의 법문으로 다스리고, 만일 성냄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심(慈心)의 법문으로 다스리며, 만일 어리석음이 많은 사람이라면 인연의 이치를 사유하고 관찰하는 법문으로 다스리고, 만일 생각하여 지각(知覺)이 많은 사람이라면 생각을 쉬는 법문으로 다스리며,만일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염불의 법문으로 다스리니, 모든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병통을 여러 가지 법문으로 다스린다.
음욕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不淨觀)을 익힌다. 다리에서부터 머리털까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으니, 머리카락ㆍ손톱ㆍ이빨ㆍ얇은 가죽ㆍ두꺼운 가죽ㆍ피ㆍ살ㆍ근육ㆍ맥박ㆍ뼈ㆍ골수ㆍ간ㆍ폐ㆍ심장ㆍ비장ㆍ신장ㆍ위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대변ㆍ소변ㆍ콧물ㆍ침ㆍ땀ㆍ눈물ㆍ때ㆍ고름ㆍ뇌ㆍ세포ㆍ쓸개ㆍ물ㆍ미세한 피부ㆍ지방ㆍ뇌막 등 몸속에는 이와 같은 갖가지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또한 부정관이란 퍼런 멍[靑瘀]ㆍ배가 부풀어 올라 터져 썩음ㆍ피가 흘러 떡칠함[塗漫]ㆍ고름 냄새를 맡고 벌레가 몰려와 빨아 먹음ㆍ끝없이 뼈가 으스러지고 타서 그을리는 등을 점차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음욕이 많은 사람은 일곱 가지 애착을 지닌다. 호색에 집착하고, 혹은 단정함에 집착하며, 혹은 풍채에 집착하고, 혹은 음성에 집착하며, 혹은 가늘고 매끄러움에 집착하고, 혹은 중생에게 집착하며, 혹은 모든 것에 집착한다. 만일 호색에 집착한다면 마땅히 퍼런 멍[靑瘀]을 관하는 법을 익혀야 하니, 누렇고 붉은 깨끗하지 않은 색깔 등도 또한 이와 같다. 만일 단정함에 집착한다면 마땅히 배가 부풀어 올라 몸이 흩어짐을 관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만일 풍채에 집착한다면 마땅히 막 죽어 피가 흘러서 뼈를 적심을 관하는 법을 관해야 하며, 만일 음성에 집착한다면 마땅히 목구멍이 막혀 숨이 끊어짐을 관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만일 가늘고 매끄러움에 집착한다면 마땅히 뼈가 드러나고 비쩍 마르는 병을 관하는 법을 익혀야 하며, 만일 중생에게 집착한다면 마땅히 여섯 가지 관법을 익혀야 하고, 만일 모든 것에 집착한다면 일체를 두루 살피는 관법을 익혀야 한다. 혹시라도 갖가지를 지으면 다시 다른 관을 만드니, 이것을 부정관이라고 한다.
묻건대, 만일 몸이 더럽고 냄새나는 썩은 시체와 같다면, 어찌 그것을 따라 집착을 일으키겠는가?
030_0130_a_22L問曰:“若身不淨如臭腐尸者,何從生著?”
030_0130_b_01L만일 청정한 몸에 집착한다면 냄새나고 썩어 문드러진 몸에도 역시 마땅히 집착해야 할 것이다. 만일 냄새나는 몸이나 깨끗한 몸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집착하지 않을 것이니, 두 몸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만일 두 가지가 진실로 깨끗하길 구한다면 모두 얻을 수 없으니, 사람의 마음은 미치고 미혹되서 뒤바뀜으로 덮여 있으므로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한 것이라 헤아린다. 만일 뒤바뀐 마음을 깨뜨린다면 문득 실상법(實相法)의 관법을 얻게 되고, 다시 더럽고 비고 속이며 진실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또한 죽은 시체는 화기도 없고 생명도 없으며 지적인 분별력도 없고 갖가지 근(根)도 있지 않으니, 사람이 이것을 잘 알면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지 않지만, 몸에 따스함이 있고 생명이 있고 지적 분별력이 있으며 갖가지 기능을 완전하게 구비하였다고 여기기 때문에 마음이 뒤바뀌고 미혹되어 집착하게 된다. 다음으로 마음이 색(色:빛깔ㆍ물질)에 집착할 때는 깨끗하다고 말하더라도 애착하는 마음이 그치면 바로 깨끗하지 않음을 안다. 만일 이것이 진실로 청정하다면 마땅히 항상 청정해야만 하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예컨대 강아지가 똥을 먹는 것을 깨끗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매우 더럽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몸은 안팎으로 한 곳도 깨끗한 곳이 없다.
만일 몸의 외부에 집착하여 몸 밖의 얇은 가죽과 온몸에 취하기를 종려나무와 같더라도 이것 역시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 하물며 몸속의 36가지 물건이겠는가? 또한 몸의 인연을 미루어 보더라도 갖가지로 깨끗하지 않다. 깨끗하지 못한 부모의 정혈이 합쳐져 이미 몸을 이뤘으므로 항상 깨끗하지 않은 것을 내보내니, 의복과 침상과 요도 역시 냄새나고 더러운데, 어찌 하물며 죽은 곳이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생사의 안팎 모두가 더러움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관(觀)에는 역시 3품이 있으니, 초습행(初習行)ㆍ이습행(已習行)ㆍ구습행(久習行)11)이다. 만일 초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살가죽이 찢어진다는 생각을 지어서 더러운 것을 없애버리고, 마땅히 붉은 뼈만 남은 사람을 관찰하라. 마음을 묶어놓고 행을 관하되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밖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생각을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생각[想]에서 가죽과 살을 버리고 모두 머리뼈를 관찰하여 생각을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생각을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030_0130_c_01L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몸속의 일촌방장(一寸方丈) 마음에서 가죽과 살을 제거하여뜻을 정수리ㆍ이마ㆍ미간ㆍ코끝ㆍ마음 등 다섯 곳에 매어 둔다. 이와 같이 다섯 곳에 마음을 머물게 하여 뼈를 관찰하되 생각을 바깥으로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생각을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 항상 마음을 관찰하되 마음이 벗어나면 제어하여 붙잡는다.
만일 마음의 고달픔이 지극하면 생각을 소연(所緣:인식의 대상)에 머물게 하되, 바깥을 버리고 지켜 머무른다. 예컨대 원숭이가 기둥에 묶여 있으나 매우 편하게 휴식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소연(所緣)은 기둥과 같고, 생각은 새끼줄이나 자물쇠와 같으며, 마음은 원숭이에 비유할 수 있다. 또한 유모가 항상 어린아이를 살펴서 떨어지지 않게 하듯이, 수행자가 마음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다”라고 해야 한다. 점차 마음을 제어하여 대상에 머물게 해서, 만일 마음이 오래 머물게 되면 이것이 선법(禪法)이다. 만일 선정을 얻게 되면 곧 세 가지 상(相)이 나타나니, 신체가 화열하고 부드러우며 가볍고 편안하여, 백골이 빛을 뿌리는데 마치 하얀 마노와 같다.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는 것을 관정(觀淨)이라 하니, 이때 문득 마음을 색계 가운데에서 얻는데, 이것을 처음 선법을 배워 색계의 마음을 얻는다고 한다. 마음이 선법(禪法)에 상응한 이것이 바로 색계의 법이다. 마음으로는 이 법을 얻었으나 몸은 욕계에 있어서, 4대가 지극히 크고 유연하고 쾌락하며 색깔이 윤택해지고 정결하며 빛이 넘치고 온화하고 기쁨에 들뜨니, 이것을 열락(悅樂)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전의 백골관(白骨觀)은 백골의 모습 속에 광명이 두루 비치는데 맑고 하얀색이다. 세 번째, 마음이 한 곳에 머물면 이것을 정관(淨觀)이라고 하니, 살을 제거하고 뼈를 관하기 때문에 정관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상(相)은 모두 스스로 아는 것이지 다른 이는 보지 못한다. 이상 3품 중에 초습행은 아직 마음을 발하지 않았고, 이습행은 세 번 내지 네 번 몸을 닦았으며, 구습행은 백 년 동안 몸으로 배웠다.
만일 성냄이 치우치게 많으면 마땅히 세 가지 자심(慈心)의 법문을 배워야 하니, 초습행(初習行)과 이습행(已習行)과 구습행(久習行)이 있다.
030_0130_c_22L若瞋恚偏多,當學三種慈心法門:或初習行、或已習行、或久習行。
030_0131_a_01L만일 초습행자라면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인자함으로 친애(親愛)에 미치니, 어떻게 친애함으로 서원(誓願)에 미쳐서 더불어 친애하고 즐거워하는가? 수행자가 만일 갖가지 몸과 마음의 쾌락을 얻어서, 추울 때는 옷을 얻고 뜨거울 때 시원함을 얻으며, 배고프고 목마를 때 음식을 얻고, 빈천할 때 부귀를 얻으며, 수행이 지극할 때 지식(止息)을 얻는 등 이와 같은 온갖 즐거움이 친애를 원한다면, 마음을 묶어서 인자함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달리 모든 연(緣)을 생각한다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인자함으로 적당한 사람에게 미치니, 어떻게 적당한 사람에게 미쳐서 함께 즐거워하는가? 수행자가 만일 갖가지 몸과 마음의 쾌락을 얻는다면 사람에게 적당하기를 원해서 마음을 묶어 인자함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여러 가지 연에 대하여 달리 생각하면 마음을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인자함으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에까지 미치니, 어떻게 그것에 미쳐서 그것과 함께 즐거워하는가? 수행자가 만일 갖가지 몸과 마음의 쾌락을 얻는다면 원망하고 미워하는 이를 얻기를 친애하는 이와 함께함을 얻기를 원하는 것과 같아서, 함께 한마음을 얻으면 마음이 크게 청정해진다. 친애하는 가운데 원망하는 이도 똑같이 친애하여 널리 세계에 미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모두 즐거움을 얻게 하며,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동등하지 않음이 없어서 크게 마음이 청정해진다. 시방의 중생을 바라보되 모두 자신을 보듯이 하고, 마음으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분명하게 보아서 쾌락을 얻으면, 이때 바로 자심삼매(慈心三昧)를 얻는다”라고 해야 한다.
친애하는 가운데 사람이 즐거움을 얻게 하기를 원하니, 원망하고 미워하며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불쌍히 여겨 다시 즐거움을 주기를 원하는가?
030_0131_a_18L問曰:“親愛中人願令得樂,怨憎惡人云何憐愍復願與樂?”
030_0131_b_01L 마땅히 그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은 다시 여러 가지 좋고 청정한 법의 씨앗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니, 내가 이제 어찌 하나의 원망 때문에 그 착함을 다 없앨 것인가? 다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지나간 세상에서 아마도 나와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지금의 성냄 때문에 다시 원망과 미움을 내겠는가? 내 마땅히 그에게 참아야 하니, 이것이 나의 좋은 이익이다. 또한 수행법을 생각하면 인덕(仁德)의 수용력이 크고인자함의 힘이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을 잃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생각하여 말하기를, “만일 원망과 미움이 없다면 무엇을 인하여 참을 수 있겠는가? 인욕은 원망으로 말미암으니, 원망이 곧 나의 좋은 친구이다. 또한 성냄의 과보는 가장 무거우며, 여러 가지 악 가운데 으뜸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없다. 중생에게 성을 내면 그 해독은 제어하기 어렵다. 비록 그를 태우고자 하나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밖으로 진리의 옷[法服]을 걸치고 안으로 인욕행을 익히면, 이것을 사문이라고 말한다. 어찌 나쁜 소리로 제멋대로 얼굴빛을 변하고 마음이 성급해질 수 있는가? 또한 5수음(受陰)이란 것은 뭇 고통의 수풀이며 악을 받아들이는 과녁이니, 고뇌와 미움이 다가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가시로 몸을 찌르는 것과 같이 고통의 가시가 헤아릴 수 없으니, 뭇 원망이 너무 많으면 제거할 수 없으므로 마땅히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여 인내의 가죽신을 신어야만 한다”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아래에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성냄으로 성냄에 보답하면 성냄에 도리어 집착하게 되니 성냄으로 보답하지 않으면 대군(大軍)을 깨뜨릴 수 있다.
030_0131_b_11L以瞋報瞋, 瞋還著之; 瞋恚不報,
能破大軍。
능히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대인(大人)의 법이니 소인은 성을 내어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산과 같다.
030_0131_b_13L能不瞋恚, 是大人法;
小人瞋恚, 難動如山。
성냄은 무거운 독이니 해치고 해롭게 하는 것이 많다. 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를 해롭게 하여 멸망시킨다.
030_0131_b_14L瞋爲重毒,
多所殘害; 不得害彼; 自害乃滅。
성냄은 큰 어둠이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성냄은 티끌과 먼지이니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킨다.
030_0131_b_15L瞋爲大瞑, 有目無睹; 瞋爲塵垢,
染污淨心。
이와 같아서 성냄은 마땅히 서둘러 제거해야 하나니 독사가 방안에 있는데 제거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으리라.
030_0131_b_17L如是瞋恚, 當急除滅;
毒蛇在室, 不除害人。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성냄의 독은 헤아릴 수 없으니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닦아 성냄을 없애야 하네.
030_0131_b_18L如是種種,
瞋毒無量; 當習慈心, 除滅瞋恚。
이것이 자심삼매의 문이다.
030_0131_b_19L是爲慈三昧門。
3.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법문
030_0131_b_20L第三治愚癡法門
만일 어리석음이 치우치게 많으면 마땅히 세 가지 생각하는 법문을 배워야 하니, 초습행ㆍ이습행ㆍ구습행이 있다.
030_0131_b_21L若愚癡偏多,當學三種思惟法門:或初習行、或已習行、或久習行。
030_0131_c_01L만일 초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태어남을 연(緣)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으니, 이와 같이사유하여 바깥으로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하라.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으며,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으며,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을 연하여 애(愛)가 있으며, 애을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을 연하여 유(有)가 있으니, 이와 같이 사유하여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서 말하기를,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으며, 명색을 연하여 6입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이 있으며, 촉을 연하여 수가 있고, 수을 연하여 애가 있으며, 애을 연하여 취가 있고, 취을 연하여 유가 있으며,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老死)가 있으니,12) 이와 같이 사유하여 생각을 벗어나지 않게 한다. 바깥으로 여러 가지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정신작용이 치우치게 많다면, 마땅히 아나반나(阿那般那)14) 삼매의 법문을 익혀야 한다. 세 가지 배우는 사람이 있으니, 초습행ㆍ이습행ㆍ구습행이다. 만일 초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한마음으로 생각하여 들숨과 날숨을 헤아린다. 길든 짧든 하나에서 열까지 헤아린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이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하나로부터 열까지 헤아려서 호흡의 들어가고 나옴에 따라 생각과 호흡을 함께 마음의 한 곳에 멈춘다”라고 해야 한다.
만일 구습행이라면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수(數:헤아림)ㆍ수(隨:따라감)ㆍ지(止:멈추게 함)ㆍ관(觀:비추어 봄)ㆍ전관(轉觀:굴려 봄)ㆍ청정(淸淨:깨끗함)의 아나반나삼매의 여섯 가지 문을 열여섯으로 나누라”라고 해야 한다. 무엇을 수(數)라고 하는가? 한마음으로 들숨을 생각하고, 들숨이 끝나게 되면 하나를 헤아린다. 날숨이 끝남에 이르면 둘을 헤아린다. 만일 끝나지 않았는데 헤아린다면,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둘로부터 아홉에 이르기까지 헤아렸으나 틀렸으면 다시 하나로부터 헤아려 시작하니, 비유컨대 계산하는 사람이 하나와 하나를 둘로 삼고, 둘과 둘을 넷으로 삼으며, 셋과 셋을 아홉으로 삼는 것과 같다.
030_0132_b_01L 무상관(無常觀)을 쉽게 얻기 때문이며, 또한 온갖 정신작용을 끊어버리고 한마음을 얻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생멸하여 무상함은 서로 비슷하여 서로 이어지는 것을 보기 어려우나, 들숨과 날숨이 생멸하여 무상함은 쉽게 알고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이 수를 세는데 묶여 있어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차단한다. 정신작용이란, 탐욕의 정신작용ㆍ성냄의 정신작용ㆍ번뇌의 정신작용ㆍ친척관계의 정신작용ㆍ국토의 정신작용ㆍ불사(不死)의 정신작용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올바른 길[正道]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먼저 마땅히 세 가지 거친 정신작용을 제거해야 하고, 그 다음에 세 가지 세밀한 정신작용을 제거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정신작용을 제거하고 나면 마땅히 일체의 청정한 법을 얻을 수 있으니, 비유컨대 금을 캐는 사람이 먼저 거친 돌과 자갈을 제거한 뒤에 가는 돌과 모래를 제거하면 점차적으로 가는 금과 모래를 얻는 것과 같다.
탐욕이 많은 사람을 보건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괴로움이요 이것을 얻어 지키는 것도 괴로움이며 이것을 잃어버릴까 근심하는 것도 커다란 괴로움이니 마음이 욕망을 얻고자 할 때 만족하지 못하면 괴롭다.
030_0132_b_12L見多欲人求欲苦, 得之守護是亦苦;
失之憂惱亦大苦, 心得欲時無滿苦。
욕망은 항상 변하며 실체가 없고 근심의 씨앗이며 중생들 모두 이것이 있으니, 마땅히 깨달아 버려야 하네. 예컨대 독사가 사람의 방으로 들어왔는데 서둘러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해로움이 반드시 이르는 것과 같네.
030_0132_b_14L欲無常空憂惱因, 衆共有此當覺棄,
譬如毒蛇入人室, 不急除之害必至。
안정되지도 않고 참되지도 않으며 귀중하지도 않은 갖가지의 욕구와 뒤바뀐 즐거움을 여섯 가지 신통을 성취한 아라한처럼 제자들을 가르쳐서 깨우치고자 말하니
030_0132_b_16L不定不實不貴重, 種種欲求顚倒樂;
如六神通阿羅漢, 教誨欲覺弟子言:
그대들이 계율을 깨뜨리지 않으면 계율이 청정하여 여인과 함께 같은 방에서 자지 않겠지만 욕망의 번뇌[欲結]라는 독사가 마음의 방안에 가득하면 얽히고 설킨 애착과 기쁨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030_0132_b_18L汝不破戒戒淸淨, 不共女人同室宿;
欲結毒蛇滿心室, 纏緜愛喜不相離。
이미 몸의 계율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마음은 항상 욕망의 불꽃과 함께 머물고 있으니 그대는 집을 나와 도를 찾는 사람인데 무슨 까닭에 마음대로 방종함이 이와 같은가?
030_0132_b_20L旣知身戒不可毀, 汝心常共欲火宿;
汝是出家求道人, 何緣縱心乃如是?
부모가 너를 낳아 키워 주었으며 일가친척의 은혜와 사랑을 함께 성취하였고 모두 울면서 그대를 그리워하건만 그대는 버리고 되돌아 생각하지 않는구나.
030_0132_b_22L父母生養長育汝, 宗親恩愛共成就;
咸皆涕泣戀惜汝, 汝能捨離不顧念?
030_0132_c_01L
마음은 항상 깨치고자 하는 가운데 있지만 함께 희희낙락하고자 해서 싫증내는 마음이 없고 항상 욕망의 불꽃을 즐기며 함께 한 곳에 있으니 환희와 애욕의 즐거움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구나.
030_0132_c_01L而心常在欲覺中, 共欲嬉戲無厭心;
常樂欲火共一處, 歡喜愛樂不暫離。
이와 같이 갖가지로 욕망의 정신작용을 꾸짖고,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올바른 관으로 욕망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030_0132_c_03L如是種種呵欲覺,如是種種正觀除欲覺。”
어떻게 성냄의 정신작용을 없애는가?
問曰:“云何滅瞋恚覺?”
다음과 같다.
答曰:
태(胎) 속에서 태어나 언제나 괴로우니 이 가운데 중생은 성내거나 고뇌하지 말라. 만일 성냄과 고뇌를 생각하면 자비가 없어지니 자비는 성냄과 고뇌와 서로 비교할 수 없네.
030_0132_c_05L從胎中來生常苦, 是中衆生莫瞋惱;
若念瞋惱慈悲滅, 慈悲瞋惱不相比。
그대가 자비를 생각하면 성냄과 번뇌가 없어지리니 예컨대 밝음과 어두움이 한 곳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네. 만일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성냄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스스로 법의 이로움을 파괴하는 것이네.
030_0132_c_07L汝念慈悲瞋惱滅, 譬如明闇不同處;
若持淨戒念瞋恚, 是人自毀破法利。
예컨대 여러 마리 코끼리가 물에 들어가 목욕하고 나서 다시 진흙을 나누어 몸에 바르는 것과 같네. 일체는 항상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나니 갖가지 채찍으로 백천 가지 고뇌를 매질해야 하네.
030_0132_c_09L譬如諸象入水浴, 復以泥土塗坌身;
一切常有老病死, 種種鞭笞百千苦。
어떻게 착한 사람이 중생을 생각하면서 다시 성냄과 번뇌를 더하겠는가? 만일 화를 내어 그를 해롭게 하고자 한다면 아직 남에게 미치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를 태운다네.
030_0132_c_11L云何善人念衆生, 而復加益以瞋惱?
若起瞋恚欲害彼, 未及前人先自燒。
그러므로 항상 자비를 생각하고 행하며 성냄과 번뇌라는 나쁜 생각을 안에서 일으키지 않아서 사람이 항상 착한 법을 생각하고 행한다면 이 마음은 항상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익히네.
030_0132_c_13L是故常念行慈悲, 瞋惱惡念內不生。
若人常念行善法, 是心常習佛所念。
그러므로 마땅히 착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착한 법을 생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면 금세에도 즐거움을 얻고 내세에도 그러할 것이니 도(道)를 얻어 언제나 즐거운 것이 열반이라네.
030_0132_c_15L是故不應念不善, 常念善法歡樂心。
今世得樂後亦然, 得道常樂是涅槃。
만일 마음에 착하지 않은 정신작용이 쌓이게 되면 자기의 이로움도 잃어버리고 아울러 남도 해롭게 하니 이것을 착하지 않음으로 저와 내가 손해를 본다고 하는 것이네. 그에게 청정한 마음이 있더라도 또 다시 없어지니 예컨대 아란야의 도인(道人)이 손을 들고 울면서 도적이 나를 겁탈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네.
030_0133_a_01L 재물을 훔쳐가는 도적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재물을 축적하여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으니, 누가 재물을 훔쳐가는 도적이 있어서 나를 침범할 수 있겠느냐? 나는 선근(善根)과 여러 가지 법보(法寶)를 모아 깨우치고 관하였는데, 도적이 와서 나의 이로움을 파괴하였으니, 재물을 훔쳐가는 도적은 피할 수도 있고 숨길 곳도 많지만, 착함을 빼앗아 가는 도적이 오면 피할 곳이 없다.이와 같이 갖가지로 성냄을 꾸짖고, 이와 같이 갖가지로 바르게 관하여 성냄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만일 계율과 선정과 다문(多聞)을 지키지 않으면 헛되이 물들인 옷[染衣]을 빌려 법신을 파괴하는 것이요 진실로 이 사람은 거지요, 남에게 해악을 입히는 사람이니 어찌 공양을 구하여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
030_0133_a_14L若不持戒禪多聞, 虛假染衣壞法身;
實是乞兒弊惡人, 云何求供養利身?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더움의 백천 가지 괴로움에 중생들은 항상 이 모든 번뇌에 곤고하여 몸과 마음의 고뇌와 재앙이 다함이 없으니 어찌 착한 사람이 모든 번뇌를 더할 것인가?
030_0133_a_16L飢渴寒熱百千苦, 衆生常困此諸惱;
身心苦厄無窮盡, 云何善人加諸惱?
예컨대 병과 종기를 침으로 찌르는 것과 같고 또한 지옥의 죄인이 살펴보아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과 같다. 고뇌와 재앙이 몸을 묶고 뭇 고뇌가 모였으니 어떻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다시 심하게 하리오?
030_0133_a_18L譬如病瘡以鍼刺, 亦如獄囚考未決;
苦厄纏身衆惱集, 云何慈悲更令劇?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번뇌의 정신작용을 질책하였으며,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바르게 관조하여 번뇌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030_0133_a_20L“如是種種呵惱覺,如是種種正觀除惱覺。“
어떻게 친척관계의 정신작용을 제거하는가?
030_0133_a_22L問曰:“云何除親里覺?”
030_0133_b_01L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세계의 삶과 죽음 속에서 자신의 업이 일체의 조건을 이끌어 가니,어느 것이 가까운 것이고, 어느 것이 가깝지 않은 것인가? 다만 어리석기 때문에 함부로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나와 친하다고 헤아리니, 과거 세상에서 친하지 않았던 것이 현세에서는 친한 것이 되었고, 미래 세상에서도 친하지 않았던 것으로 친함을 삼을 것이며, 지금 세상에서 친한 것이 과거 세상에서는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유컨대 새가 저녁에는 한 나무에 모여 있다가 새벽이면 각각 인연 따라 날아가는 것과 같이, 가족과 친척도 이와 같아서 세계 속에 살면서도 각각 스스로 마음을 달리하니, 연(緣)으로 모였기 때문에 가깝고 연이 흩어졌기 때문에 멀어지는 것이다. 결정된 진실은 있을 수 없으며, 인연의 과보 때문에 서로 가까운 것이니, 비유컨대 마른 모래를 손으로 뭉쳐 잡은 것과 같이,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합해진 것이며,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흩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늙어서 마땅히 보답을 받아야 하며, 자식은 품어서 길러주심을 입었기 때문에 마땅히 보답해야 하니, 만일 그 뜻을 따르면 가까운 것이고, 만일 그 뜻을 거스르면 이것은 도적이다.
가까우면서 이롭게 할 수 없으면 도리어 해롭게 하는 것이요, 친하지 않으면서 손해가 없으면 크게 이로운 것이다. 사람은 인연 때문에 애착심을 내며 애착의 인연 때문에 다시 끊으니, 비유컨대 화가가 아낙네의 모습을 그려 놓고 도리어 스스로 애착하는 것과 같이, 이것도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물들고 집착하는[染着] 마음을 내어 바깥에 염착한다. 과거의 세상 속에서 그대는 친척관계였으니, 지금 세상에서 그대는 다시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가? 그대도 과거의 친척을 이롭게 할 수 없으며, 과거의 친척도 그대를 이롭게 할 수 없으니, 둘 다 서로 이롭게 할 수 없다. 공허한 생각으로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만드는 것이지, 세계 속에서는 정해진 것도 없고 끝도 없다.
030_0133_c_01L아라한이 막 출가하여 친척을 그리워하는 제자에게 가르쳐 말하는 것과 같으니, “악한 사람이 음식을 뱉었다가 다시 도로 삼키고자 하는 것과 같이 그대도 마찬가지이니, 그대는 이미 출가하였거늘 무슨 까닭에 다시 애착하려고 하는가?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는 것은 해탈의 모습인데, 그대가 친척에게 집착한다면 해탈할 수 없으며, 도리어 애착 때문에 묶이게 된다. 삼계는 늘 변하기 때문에 흐르고 굴러서 고정되지 않으니, 만일 친하다 하더라도 친한 것이 아니다. 비록 지금은 친척이라도 오래되면 곧 사라지니,이와 같이 시방의 중생은 돌고 돈다. 친척이 정해진 것이 없으니 이것은 나의 친척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무심(無心)하고 분별력도 없으며, 곧바로 보아서 굴리지 않으며, 기(氣)를 닫고 목숨이 끊어져 마치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진 것과 같은데, 이때 친척과 가족들은 편안하게 있다. 처음 태어날 때는 이전 세상에서 친척이 아니었는데도 지금 억지로 화합하여 친척이 되었으며, 죽음에 당했을 때는 다시 친척이 아니니, 이와 같이 사유하여 마땅히 친척에 집착하지 말라. 마치 사람의 어린애가 죽으면 일시에 세 곳에서 부모가 동시에 우는 것과 같으니, 하늘 위의 부모와 처자를 속이고, 사람 가운데서도 또한 속이며, 용(龍) 가운데 부모도 속이게 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바르게 관하여 친척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수행자가 만일 이 국토는 풍요롭고 즐겁고 안온하며 갖가지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항상 국토라는 정신작용의 새끼줄에 끌려 다니게 된다. 장차 잘못된 점을 버리면 마음을 깨닫는 것이 이와 같으니,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토는 갖가지 허물과 죄악으로 타버리고 시절은 변하기 때문이며, 또한 배고픔과 몸의 피로가 지극하기 때문이니, 일체의 국토는 언제나 편안하지 않은 것이며, 또한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이 사이의 육체적 괴로움으로부터 가서 저곳의 육체적 괴로움을 얻으니, 일체의 국토로 가서 괴로움 아닌 것이 없다.
030_0134_a_01L이를테면 어떤 국토가 안락하고 풍족하고 즐겁더라도 번뇌[結惱]가 있어서 마음에 괴로움과 우환이 생기니, 이것은 좋은 국토가 아니다. 능히 잡스럽고 나쁜 국토를 제거할 수 있고, 능히 번뇌를 엷게 할 수 있으며,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면, 이를 좋은 국토라 한다. 일체의 중생들은 두 가지 괴로움이 있으니,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인데, 언제나 고뇌를 지니고 있으며, 이 두 가지 고뇌가 없는 국토는 없다. 또한 어떤 국토는 매우 춥고 어떤 국토는 매우 더우며, 어떤 국토는 배고픔에 허덕이고, 어떤 국토는 질병이 많으며,어떤 국토는 도적이 많고, 어떤 국토는 왕법(王法)으로 다스리지 않으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국토의 악(惡)을 마음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 국토의 정신작용을 제거한다.
마땅히 수행자에게 가르쳐야 하니, 만일 좋은 집에서 태어나거나, 종족의 자식이나 재주와 기술이 있거나 세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태어나는 등의 일체를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일체가 죽을 때는 늙음ㆍ젊음ㆍ귀함ㆍ천함ㆍ재주ㆍ기술ㆍ힘ㆍ세력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몸은 일체의 근심과 번뇌의 갖가지 인연의 근본인데, 스스로 일찍 죽거나 오래 사는 것을 보고서 만일 안온함을 얻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근심과 번뇌의 원인이 이 4대(大)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4대가 물질을 만드나 마치 네 마리의 독사와 같아서 함께 상응하지 않으니, 누가 안온함을 얻을 수 있는가? 나간 숨이 들어올 것을 기대하지만 이것을 믿을 수 없으며, 또한 사람이 잠잘 때 반드시 깨어나기를 기대하지만 이 일은 믿을 수 없다. 태(胎)에 들어 늙음에 이르러 죽는 일은 항상 오는데, 죽을 때를 찾으면서도 항상 죽지 않는다고 말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비유컨대 살인하는 도적이 칼을 뽑고 활시위에 화살을 끼워 항상 사람을 죽이면서도 연민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인간 세상에서 죽음의 힘이 가장 크며, 어느 것도 죽음의 힘보다 강한 것은 없다. 만일 과거의 세상에서 제일 미묘했던 사람도 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면, 현재도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위대한 지혜를 지닌 사람은 없다. 또한 부드러운 말로도 구할 수 없으며, 교묘한 말로 속이더라도 피하거나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지계와 정진도 이 죽음을 벗어나게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목숨은 항상 위태로워서 믿고 의지할 수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항상 나의 목숨은 오래 살 것이라고 믿고 헤아리지 마라. 이 모든 죽음의 도적들은 항상 사람을 이끌어 가니, 다 늙기를 기다린 연후에야 마땅히 죽이지는 않는다.
030_0134_b_01L마치 아라한이 고뇌하는 제자들에게 모든 깨달음을 가르쳐서 말하기를, “그대는 왜 세간을 싫어하여 도(道)에 들어올 줄 모르는가?어떻게 이 깨달음을 지을 것인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문득 죽고, 태어났을 때 죽는 사람이 있으며, 젖먹이때나 젖을 끊었을 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어려서, 어떤 사람은 장년 시절에, 어떤 사람은 늙어서 죽으니, 일체의 시간 속에서 죽음의 법계에 들어간다. 비유컨대 나무의 꽃이 피자마자 곧 떨어지거나, 열매가 있을 때 떨어지기도 하고, 아직 익지 않았을 때 떨어지기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삼가 정진에 힘써서 안온한 도를 찾아야 함을 알아야만 한다. 커다란 힘을 지닌 도적은 함께 살아도 믿을 수 없으니, 이 도적은 호랑이처럼 교묘하게 가리어 몸을 숨긴다. 이와 같이 죽음의 도적은 항상 사람 죽이기를 구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공하여 물거품과 같으니, 어찌 마땅히 때를 기다려서 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가? 어느 누가 그대는 늙어서 반드시 도를 행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가? 비유컨대 험한 언덕의 커다란 나무 위에는 큰 바람이 있고, 아래에는 많은 물이 있어서 그 뿌리의 흙이 무너지는 것과 같으니, 누가 마땅히 이 나무가 오래 살 것이라고 믿을 것인가?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아 어려서는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곡식의 씨앗과 같고, 어머니는 좋은 밭과 같으며, 전생의 인연과 죄와 복은 비나 이슬과 같으며, 중생은 곡식과 같고, 생사는 수확과 같다.
갖가지 여러 천자와 인왕(人王)의 지혜와 덕은 천왕이 하늘을 도와 모든 아수륜(阿須倫)16)의 군대와 싸워 격파하는 것과 같아서 가지가지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며 지극히 높고 크고 밝지만 도리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지니, 그러므로 목숨이 살아있다고 믿고 ‘내 오늘은 마땅히 이것을 하고, 내일은 마땅히 이것을 하리라’고 말하지 마라.
이와 같이 바르게 관하여 죽지 않는다는 정신작용을 여러 가지로 제거하며, 이와 같이 먼저 거친 정신작용을 제거하고 뒤에 미세한 정신작용을 제거하면, 마음이 청정해져서 살아서 올바른 도를 얻으리니, 일체의 번뇌가 없어지고 이로부터 안온한 곳을 얻는다. 이것을 바로 출가의 열매[果]라고 하니, 마음에 자재함을 얻고, 3업(業)이 가장 청정해져 다시는 태에 들지 않는다. 갖가지 경전을 읽고 많이 들으면 이때 과보를 얻으리니, 이와 같이 과보를 얻으면 헛되지 않아 마왕의 군대를 격파하여 문득 가장 용맹하다는 이름을 얻는다.
030_0134_c_01L세계 안에서 번뇌의 장군이 사라져도 이것을 굳세다고 이름하지 않으니,능히 번뇌의 도적을 격파하여 3독의 불을 없애 시원하게 청정함을 즐기고, 열반의 숲 속에서 안온하게 베개를 높이 베며, 가지가지의 선정ㆍ근(根)ㆍ역(力)ㆍ7각지(覺支)의 청량한 바람이 네 번 일어나고, 중생들이 3독의 바다에 빠진 것을 돌아보며, 공덕의 미묘한 힘이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굳세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이 흩어지면 마땅히 아나반나를 생각하고 여섯 가지 법을 배워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끊어야 하니, 이 때문에 수식(數息)을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나머지 부정(不淨)과 염불(念佛) 등의 네 가지 관법 중에서도 역시 정신작용을 끊을 수 있다면 무슨 까닭에 유독 수식만을 말하는가?
030_0134_c_07L問曰:“若餘不淨、念佛、四等觀中,亦得斷思覺,何以故獨數息?”
나머지 관법은 느슨해서 잃어버리기 어렵기 때문이요, 수식법은 급하여 쉽게 변하기 때문이니, 비유컨대 풀어놓은 소와 같아서 소는 잃어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일은 적으며, 풀어놓은 원숭이는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일이 많은 것과 같다. 이것 또한 그러해서 수식(數息)의 심수(心數)17)는 어렸을 때는 그 생각을 얻을 수 없으니, 어렸을 때 그것을 생각하면 곧 수(數)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정신작용을 차단하고 마땅히 호흡을 헤아린다. 이미 헤아리는 법을 얻었으면, 마땅히 따르는 법[隨法]을 행하여 여러 가지 정신작용을 끊어버린다. 들숨을 마칠 때까지 마땅히 따르되 하나를 헤아리지 마라. 날숨을 마칠 때까지 마땅히 따르되 둘을 헤아리지 마라. 비유컨대 채무를 진 사람을 채권주가 따라가서 끝까지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유하라. 이 들숨은 돌아오는 것이며, 나오면 다시 다름이 있다. 날숨은 돌아오는 것이며, 들어오면 다시 다름이 있다. 이때 들숨의 다름과 날숨의 다름을 아니, 왜냐하면 날숨은 따스하고 들숨은 차다.
030_0135_a_01L 그렇지 않다. 안에서 심장이 움직이기 때문에 숨이 나오는 것인데, 나와서는 곧 없어진다. 코와 입이 바깥을 당기면 곧 숨이 들어오며 들어왔기 때문에 숨은 없어지니,또한 데리고 나오지도 않고 데리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또한 소년ㆍ장년ㆍ노년의 사람들은, 소년은 들숨이 길고 장년은 들고 나는 숨이 같으며, 노인은 날숨이 길다. 그러므로 호흡이 한결같지 않다. 또한 배꼽 가에서 바람이 일어나고, 서로 비슷해지고, 서로 이어져서 숨이 나와 입과 코의 변두리에 이르며, 나오면 곧 없어지니, 비유컨대 풀무 주머니 속의 바람이 열리자마자 없어지는 것과 같다.
만일 입과 코의 인연으로 그것을 당기면 곧 바람이 들어오니, 이것은 새로운 인연의 끝에서 생기는 것이다. 비유컨대 부채는 뭇 인연이 합해졌기 때문에 바람이 있는 것과 같다. 이때 들어오고 나오는 호흡의 인연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아서 생겼다 없어지며 늘 변하는 것임을 알고, 이와 같이 사유한다. 날숨은 입과 코의 인연에 따라 당기며, 들숨의 인연이 있기에 심장이 움직여 살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내가 숨 쉰다고 한다.
숨은 바람이니, 바깥의 바람과 다름이 없으며, 땅ㆍ물ㆍ불ㆍ공(空)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다섯 가지 커다란 인연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식(識)이 생기며, 식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나의 소유가 아니다. 5음(陰)ㆍ12입(入)ㆍ18계(界)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앎이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따르니, 이것 때문에 ‘수(隨)’라고 이름한다.
숨이 나고 드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비유컨대 문을 지키는 사람이 문가에 살면서 사람의 출입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마음을 멈추는 것도 그렇다. 숨이 나올 때는 배꼽ㆍ심장ㆍ가슴ㆍ목구멍으로부터 입과 코에 이르고, 숨이 들어올 때는 입ㆍ코ㆍ목구멍ㆍ가슴ㆍ심장으로부터 배꼽에 이르는 것을 아니, 이와 같이 마음을 한 곳에 묶어 두는 것을 이름하여 멈춘다[止]고 한다.
030_0135_b_01L또한 마음을 지법(止法) 가운데 머물면서 관한다. 들숨 때 5음(陰)의 생성과 소멸이 다르고, 날숨 때 5음의 생성과 소멸이 달라서, 이와 같이 마음이 흩어지면 바로 제거하여 버리고, 한마음으로 사유하여 관을 증장시키는 것을 이름하여 관법(觀法)이라고 한다.
풍문(風門)에 머무는 것을 버리고 거친 관법을 여의니, 거친 관법을 여의어서 호흡의 무상(無常)을 알면, 이것을 전관(轉觀)이라고 한다. 5음의 무상함을 관하고, 또한 들숨과 날숨의 생기고 소멸함과 무상함을 생각한다. 첫머리의 숨을 보건대 온 곳이 없고, 다음으로 뒤의 숨을 관하여도 역시 자취가 없다. 인연이 화합했기 때문에 있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없으니, 이것을 전관법(轉觀法)이라고 한다.
5개(蓋)와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비록 먼저 번뇌와 부정(不淨)을 지관(止觀)하더라도 마음이 복잡하면, 지금의 이 청정한 법에서 마음은 홀로 청정함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앞에서 다른 훈련[異學]과 서로 비슷함을 관하여 도를 행하고 호흡의 출입을 생각하였으니, 지금의 무루도(無漏道)와 서로 비슷하며, 선(善)을 행하는 유루도(有漏道)를 청정하다고 말한다. 또한 처음에는 신념지(身念止)의 부분을 관하고, 점차로 일체의 신념지를 관하며, 다음에 통념지(痛念止)와 심념지(心念止)를 행한다. 이 가운데 청정하지 아니하여 무루도가 멀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법념지(法念止) 중에서 16행(行)을 관하여 들고 나는 숨을 생각하며, 난법(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ㆍ고법인(苦法忍) 나아가 무학진지(無學盡智)를 얻으니, 이것을 청정이라고 한다.
030_0135_c_01L이 열여섯 가지 나뉨 중에서 처음의 들숨 부분이 여섯 가지 안나반나행(安那般那行)이며, 날숨 부분도 역시 그렇다. 한마음으로 호흡의 출입과 길고 짧음을 생각하니, 비유컨대 사람이 산을 달려서 올라갈 때 무거운 것을 지거나 기(氣)가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와 같은 것으로 이 호흡의 짧음에 비유하고, 만일 사람이 극도에 달했을 때라면 숨을 편안하게 하여 기쁨을 얻으며, 또한 이로움을 얻어 지옥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것은 호흡이 긴 것이다. 일체의 호흡은 길던지 짧던지 두 곳을 따르니, 그러므로 숨이길다거나 숨이 짧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서도 역시 안나반나의 여섯 가지 일을 행하여 여러 가지 호흡이 몸에 두루 있음을 생각하며, 또한 호흡의 출입을 생각하여 몸속의 모든 날숨과 들숨을 다 관한다. 들숨에서는 몸속, 나아가 발가락까지 두루 미치고 모든 털구멍까지 두루 미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우쳐 알고, 호흡이 나올 때는 발로부터 머리칼에 이르기까지 모든 털구멍에 두루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달아 안다. 비유컨대 가죽 주머니에 바람이 들어가고 나와서 모두 가득 채우는 것과 같이, 입과 코에 바람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또한 그렇다. 몸을 두루 관하여 바람이 가는 곳을 보니, 마치 연뿌리의 구멍과 같고, 또한 고기 잡는 그물과 같다. 다시 마음으로 오직 입과 코뿐만이 아니라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관하니, 일체의 털구멍과 아홉 구멍 속에서도 역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숨은 모든 몸에 두루하며, 모든 몸의 행을 다스림을 알고, 또한 들어오고 나오는 숨을 생각한다.
처음 숨을 배울 때 만일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오며 몸이 무거우면 모두 없애버리고, 몸이 가볍고 부드러우면 선정을 따라 마음으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게으름과 잠과 마음의 무거움을 제거하며, 마음의 가벼움과 유연함을 얻어 선정을 따라 마음으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신념지(身念止)에 들어가 마치며, 다음으로 통념지(痛念止)를 행한다. 이미 신념지를 얻었으므로 진실로 지금 다시 통념지를 얻어 진실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이미 몸의 실상을 알았으므로 이제 마음과 심수법(心數法)18)의 실상을 알고자 하니, 그러므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즐거움을 받으며,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쁨을 늘어나게 하니, 이것을 즐거움[樂]이라 한다.
030_0136_a_01L또한 처음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생기는 것을 기쁘다[喜]고 하고, 뒤에 몸에 기쁨이 두루한 것을 즐거움[樂]이라고 한다. 또한 초선(初禪)과 2선(禪) 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을 기쁨[喜]이라고 하고, 3선(禪) 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을 즐거움을 받는다[受樂]고 한다. 모든 심행(心行)을 받아 또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생각하니, 모든 마음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心生滅法], 마음이 물드는 법[心染法], 마음이 물들지 않는 법[心不染法], 마음이 흩어지는 법[心散法], 마음을 거두는 법[心攝法], 마음이 바른 법[心正法], 마음이 삿된 법[心邪法] 등이와 같은 여러 가지 마음의 모습[心相]을 이름하여 마음의 움직임[心行]이라고 한다. 마음이 기쁠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먼저 기쁨을 느끼는 것은 저절로 생겨서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이니,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에 기쁨을 만든다.
만일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격려하여 기쁘게 한다. 마음을 거두어들일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설령 마음이 안정되지 않더라도 강제로 항복시켜 안정되게 하니,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마음이 안정된 것이 바로 도(道)이며, 마음의 흐트러짐은 도가 아니다. 마음이 해탈했을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 생각한다. 만일 뜻[意]이 이해하지 못했으면 강제로 항복시켜 이해하게 한다. 비유컨대 양(羊)이 도꼬마리[蒼耳]덤불 속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도꼬마리가 몸에 붙으면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떨어버리니, 마음으로 여러 가지 번뇌의 결박을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심념지(心念止)로 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무상(無常)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일체의 존재는 늘 변하는 것이며, 태어나고 없어지며, 공이요 무아라고 관한다. 태어날 때의 일체의 존재는 태어남이 없으며, 없어질 때의 일체의 존재는 없어짐도 없다. 이 가운데는 남자도 여자도 없으며, 사람도 없고,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다. 이것을 무상관(無常觀)을 따른다고 한다.
유위법(有爲法)이 나와 흩어짐[出散]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 무상(無常)함을 생각한다. 이것을 ‘나와서 흩어짐’이라고 이름하니, 모든 유위법은 현세 속에서 나온다. 과거의 인연을 좇아 화합하기 때문에 모이고, 인연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흩어진다. 이와 같이 따라서 관하는 것을 출산관(出散觀)이라고 한다.
욕망과 번뇌를 여읨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마음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데는 이 법이 제일이다. 이것을 이욕관(離欲觀)을 따른다고 한다.
030_0136_a_20L觀離欲結亦念息入出,心離諸結,是法第一,是名隨離欲觀。
다함[盡]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번뇌의 괴로움은 있는 곳에서 다하므로 이곳은 안온하다. 이것을 진관(盡觀)을 따른다고 한다.
030_0136_a_22L觀盡亦念息入出,諸結使苦在在處盡,是處安隱,是名隨盡觀。
030_0136_b_01L버리는 것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오염된 애착[染愛]ㆍ번뇌ㆍ신심(身心)ㆍ5음(陰) 등 모든 유위법을 버리면 이것이 가장 안온한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법의지관(法意止觀)을 따른다고 한다. 이것을 열여섯 가지 나뉨이라고 한다.
만일 초습행의 사람이라면 불상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거나, 혹은 스스로 가게 하여 불상의 상호를 잘 보게 한다. 모습 모습이 명료해지면 한마음으로 지니고 조용한 곳으로 돌아가 마음의 눈[心眼]으로 불상을 관조하여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고, 생각을 묶어 불상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다른 생각을 거두어서 항상 불상에 머물게 한다.
만일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스승은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그대는 마땅히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그대로 말미암아 받는 죄가 헤아릴 수 없으니, 끝없는 생사와 갖가지 고뇌를 다시 받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지옥에 있으면 큰 바다 같은 구리를 삼키거나 마시며, 타오르는 쇠구슬을 먹고, 만일 축생에 있으면 똥과 풀을 먹으며, 만일 아귀에 있으면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만일 사람 속에 있으면 가난하고 고단하며, 만일 하늘 위에 있으면 욕망을 잃어버리고 근심한다. 항상 그대를 따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갖가지 육체적 고뇌[身惱], 정신적 고뇌[心惱] 등 헤아릴 수 없는 고뇌를 받게 하니, 이제 마땅히 그대를 통제하리라. 그대는 마땅히 나를 따르라. 내 이제 그대를 한 곳에 묶어서 내가 마침내 다시는 그대 때문에 곤란해지거나 괴로움의 해독을 받지 않으리라. 그대가 항상 나를 곤란하게 했으니, 내 이제 마땅히 일[事]로써 그대를 곤란하게 하리라.
이와 같은 심상(心想)으로 과거의 부처님을 본다. 처음 신(神)이 내려올 때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32상(相)의 대인(大人)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첫째 발바닥이 평평하다. 둘째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이 있는 바퀴가 있다. 셋째, 손가락이 길고 아름답다. 넷째, 발뒤꿈치가 넓다. 다섯째, 손가락과 발가락에 모두 명주그물이 있다. 여섯째, 다리를 포개면 높고 평평하며 아름답다. 일곱째, 이니연(伊尼延)20)의 무릎과 같다. 여덟째, 평소에는 손이 무릎을 지난다. 아홉째, 음마장(陰馬藏)의 모습이다. 열째, 니구로다(尼俱盧陁)의 몸이다.
열한째, 하나하나의 구멍에 하나하나의 털이 나 있다. 열두째, 털이 위쪽을 향해 나서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열셋째, 몸의 빛깔이 상품의 금보다 더 뛰어나다. 열넷째, 신광(身光)이 네 면의 한 길[丈]을 비춘다. 열다섯째, 피부가 아름답다. 열여섯째, 일곱 곳이 가득 차 있다. 열일곱째, 양쪽 겨드랑이 아래가 평평하고 아름답다. 열여덟째, 윗몸이 사자와 같다. 열아홉째, 몸이 크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반듯하다. 스무째, 어깨가 둥글고 아름답다.
스물한째, 40개의 치아가 있다. 스물두째, 치아가 희고 고르며 빽빽하고 뿌리가 깊다. 스물셋째, 네 개의 어금니가 희고 크다. 스물넷째, 뺨이 사자와 같다. 스물다섯째, 맛 중에서 최상의 맛을 얻는다. 스물여섯째, 혀가 크고 넓고 길면서 얇다. 스물일곱째, 범음(梵音)이 깊고 멀리까지 들린다. 스물여덟째, 가릉빈가의 음성이다. 스물아홉째, 눈이 감청색이다. 서른째, 속눈썹이 우왕(牛王)과 같다. 서른한째, 정수리의 터럭이 육골(肉骨)을 이룬다. 서른두째, 미간에 흰 터럭이 길고 아름다우며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030_0137_a_01L다시 80가지 작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정수리를 볼 수 없다.둘째, 코가 곧고 높으며 아름답고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눈썹이 초승달과 같고 감색 유리 빛이다. 넷째, 귀가 아름답다. 다섯째, 몸이 나라연과 같다. 여섯째, 뼈 사이는 쇠사슬과 같다. 일곱째, 몸이 한꺼번에 도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여덟째, 움직일 때는 발이 땅에 네 마디마다 발자국을 찍어서 나타낸다. 아홉째, 손톱은 붉은 구리 빛깔과 같고 얇으면서도 윤이 난다. 열째, 무릎이 둥글고 아름답다. 열한째, 몸이 청결하다. 열두째, 몸이 유연하다. 열셋째, 몸이 굽지 않았다. 열넷째, 손가락이 길고 둥글며 가늘다. 열다섯째, 지문(指紋)이 그림과 같으며, 여러 가지 색으로 장엄하였다.
열여섯째, 혈맥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 열일곱째, 복사뼈가 깊어서 보이지 않는다. 열여덟째, 몸이 윤기 나고 광택이 있다. 열아홉째, 몸을 스스로 지키고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스무째, 몸이 달을 다 채워서 태어난다.[3월에 수태하여 2월에 태어났다.] 스물한째, 용모와 위의가 충족되어 있다. 스물두째, 머무는 곳이 편안하다.[우왕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스물셋째, 위엄을 일체에게 떨친다. 스물넷째, 일체를 즐겁게 본다. 스물다섯째, 얼굴이 길지 않다. 스물여섯째, 반듯한 용모에 요란스럽지 않은 빛깔이다. 스물일곱째, 입술이 빈바(頻婆)21) 열매의 빛깔과 같다. 스물여덟째, 얼굴이 원만하다. 스물아홉째, 울리는 소리가 깊다. 서른째, 배꼽이 둥글고 깊어 나오지 않았다.
030_0137_b_01L서른한째, 터럭이 곳곳에서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서른두째, 손과 발이 원만하다. 서른셋째, 손과 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옛날에 ‘안팎을 잡는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서른넷째, 손과 발의 문양이 분명하고 곧다. 서른다섯째, 손의 문양이 길다. 서른여섯째, 손의 문양이 끊어지지 않았다. 서른일곱째, 일체의 악한 마음을 머금고 있는 중생들이 보게 되면 모두 온화하고 기쁜 낯빛을 얻는다. 서른여덟째, 얼굴이 넓고 아름답다. 서른아홉째, 얼굴이 달과 같다. 마흔째, 중생들이 보면 두려워하지 않는다.마흔한째, 털구멍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나온다. 마흔두째, 입에서 향기가 나오고 중생들이 만나면 7일간 법을 즐긴다. 마흔셋째, 풍채가 사자와 같다. 마흔넷째, 나가고 머무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마흔다섯째, 법을 행하는 것이 독수리왕과 같다.
마흔여섯째, 머리는 마타라(磨陁羅) 열매와 같다.[이 열매는 둥글지도 길지도 않다.] 마흔일곱째, 소리의 나뉨이 만족스럽다.[소리는 60가지 구분이 있는데 부처님은 이들을 모두 구족한다.] 마흔여덟째, 어금니가 예리하다. 마흔아홉째, [중국어에 해당하는 이름이 없어서 쓰지 못했다.] 쉰째, 혀가 크고도 붉다. 쉰한째, 혀가 얇다. 쉰두째, 털이 순수한 홍색(紅色)이며 색깔이 청결하다. 쉰셋째, 넓고 긴 눈이다. 쉰넷째, 구멍의 문이 차 있다.[아홉 구멍의 문이 서로 구족하여 차 있다.] 쉰다섯째, 손과 발이 붉고 흰 것이 연꽃 색깔과 같다. 쉰여섯째, 배가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았다. 쉰일곱째, 볼록한 모양의 배가 아니다. 쉰여덟째,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쉰아홉째, 몸이 무겁다. 예순째, 몸이 크다.
예순한째, 몸이 길다. 예순두째, 손과 발이 원만하고 청결하다. 예순셋째, 사방에 커다란 빛이 두루하고 광명이 스스로 비춘다. 예순넷째, 중생을 평등하게 본다. 예순다섯째, 교화에 집착하지 않고 제자를 탐내지 않는다. 예순여섯째, 뭇 소리가 가득함을 따라서 줄어들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다. 예순일곱째, 뭇 음성에 따라서 법을 설한다. 예순여덟째, 말씀을 하시되 걸림이 없다. 예순아홉째, 차례로 서로 이어서 설법한다. 일흔째, 일체 중생들 눈으로는 그 모습을 자세하게 보아서 다 알 수가 없다.
030_0137_c_01L일흔한째, 보아도 싫증나거나 만족함이 없다. 일흔두째, 머리카락이 길고 아름답다. 일흔셋째, 머리카락이 아름답다. 일흔넷째, 머리카락이 헝클어지지 않는다. 일흔다섯째, 머리카락이 부서지지 않는다. 일흔여섯째, 머리카락이 유연하다.일흔일곱째, 머리카락이 푸르고 비유리(毘琉璃) 색깔이다. 일흔여덟째, 머리카락을 위에서 묶었다. 일흔아홉째, 머리카락이 드물지 않다. 여든째, 가슴에 덕(德)이란 글자가 있고, 손과 발엔 길(吉)이란 글자가 있다.
광명이 무량한 세계를 꿰뚫어 비추고, 처음 태어나자 일곱 걸음을 걷고 입을 열어 핵심적인 말씀을 연설하셨다. 출가하여 고행에 힘쓰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시키며, 후야(後夜)의 새벽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셨고, 빛나는 모양이 분명해서 멀리 시방을 비추되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며, 여러 하늘들이 허공에서 현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공양하며 꽃을 뿌리고 향을 비처럼 내리니 일체 중생들이 모두 공경하여 헤아릴 수가 없으며, 홀로 삼계를 걸으시되 되돌아보고 몸을 굴리심이 마치 코끼리 왕이 도는 것과 같으며, 도(道)의 나무를 보시고 처음 법의 바퀴를 굴리시니 천인(天人)이 깨달음을 얻어 도로써 스스로 깨달아 열반에 이르게 된다.
부처님의 몸은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으니, 마음을 기울여 염불하여 생각이 벗어나지 않게 하며, 바깥으로 여러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 이와 같이 어지럽지 않으면, 이때 문득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나아가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볼 수 있으니, 심상(心想) 때문에 모두 그것을 볼 수 있다. 이미 부처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설법의 말씀을 들었으나, 혹 스스로 묻기를 청한다면, 부처님께서 설법하시어 여러 가지 의심의 그물을 풀어 주시리라.
이미 부처님의 생각을 얻었다면 마땅히 다시 부처님의 공덕과 법신을 생각하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지혜이시고, 절벽이나 밑바닥이 없는 지혜이시며, 헤아릴 수 없는 덕이시고,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다타’는 진(秦)나라 말로는 여(如)이고 ‘아가도’는 해(解)라고 한다. 또 실어(實語)라고도 하며, 또 모든 성인께서 편안한 길로 오신다는 말이며,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오시다는 뜻이다. 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뒤에는 중(中)의 의미가 있게 되었다.]이시며, 아리하(阿犁呵)[‘아리’는 진나라 말로는 적(賊)이며, ‘하’는 살(殺)이라는 뜻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인욕으로 갑옷을 삼고, 정진으로 굳고 단단함을 삼으며, 선정으로 활을 삼고, 지혜로 화살을 삼아 교만 등의 적을 죽이시기 때문에 살적(殺賊)이라고 한 것이다.]이시니라.
030_0138_a_01L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삼먁’은 진나라 말로 진실(眞實)이라는 말이고 ‘삼불타’는 일체를 다 깨달았다는 뜻이니, 괴로움의 원인을 깨달아 열반의 원인을 익혀 바른 견해를 말하고 네 가지 진실을 알아 전전하지 않는다. 다 깨달아 남음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게 일체를 깨달았다고 말한다.]이시며, 비가차라나(鞞伽遮羅那)[‘비가’는 진나라 말로는 명(明)이고 ‘차라나’는 선행(善行)이라는 뜻이다. 3명(明)을 밝히고 청정한 행을 실천하여 그로 인해 홀로 스승 없이 대각(大覺)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명선행(明善行)이라고 말한다.]이시고, 삼반나(三般那)[진나라 말로는 만성(滿成)이다.]이시고, 숙가타(宿伽陀)[진나라 말로는잘 이해한다(善解)는 뜻이며, 또한 잘 스스로 얻음(善自得)이라고도 한다. 또는 잘 말하여 근심이 없음(善說無患)이라고도 한다.]이시니라.
노가비(路伽憊)[‘노가’는 진나라 말로 지(智)라 하니, 지라는 것은 세상의 인(因)을 알고 진도(盡道)를 다 알기 때문에 세지(世智)라고 말하는 것이며, 세지는 또한 세상을 안다는 뜻이다.]이시고, 아누다라(阿耨多羅)[진나라 말로는 무상선법(無上善法)이라고 한다. 성인의 지혜로 일체을 다 나타내어 인도하고 큰 덕이 한량없어서 범마중성(梵魔衆聖)도 미칠 수 없거든 더구나 일반 중생으로서야 어떻게 부처님의 높은 덕에 미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상(無上)이라고 말한 것이다.]이시니라.
부루사담먁(富樓沙曇藐)[‘부루사’는 진나라 말로 대장부(大丈夫)라 하고, ‘담먁’은 가(可)라고 하니, 가화장부(可化丈夫) 또는 조어사(調御史)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시고 큰 지혜를 지니셨기 때문에 어떤 때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절(苦切)한 말씀이 있으시기도 하며, 혹은 친히 가르치기도 하시니, 이렇게 길들이고 가르쳐서 중생들로 하여금 도를 잃지 않게 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가화장부조어사법(可化丈夫調御師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이시고, 사다디파마누사남(舍多提婆魔㝹舍喃)[진나라 말로는 천인사(天人師)라고 한다. 모든 사람의 번뇌를 다 해탈시켜 주어서 항상 최상의 법에서 물러남이 없게 하신다는 뜻이다.]이시니라.
불바가바(佛婆伽婆)[과거ㆍ미래ㆍ현재의 행(行)과 불행(不行)을 아시고 진(盡)과 부진(不盡)을 실천하시어 일체 법을 보리수 아래에서 분명히 깨달으셨으므로 ‘불’이라고 한다. ‘바가바’는 큰 명성이 있다는 말이요, 또한 ‘바’는 여근(女根) 또는 토(吐)라고도 하니, 여근을 영원히 버렸기 때문에 여근토(女根吐)라고 한다.]이시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때 다시 두 부처님의 신령한 덕과 셋, 넷, 다섯 분의 부처님 나아가 헤아려 다할 수 없는 허공계가 모두 이와 같음을 생각한다. 다시 돌이켜 한 분의 부처님을 보되, 능히 한 분의 부처님을 보고서 시방의 부처님을 만들며, 시방의 부처님을 보고서 한 분의 부처님을 만들 수 있으니, 능히 하나의 색깔로 금ㆍ은ㆍ수정ㆍ비유리(毘琉璃) 색깔을 만들게 하여 사람들 마음의 즐거움에 따라 모두 그것을 보게 할 수 있다.
만일 마음이 흐트러지면 생각에 다섯 가지 티끌22)이 있는 것이다. 만일 여섯 가지 정신작용에 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서 그 마음을 극복하고 격려하여 강제로 굴복시켜야 하니, 이와 같은 사유로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고 부처님의 법을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하길 여러 가지 밝은 것 중에 해가 으뜸이며, 여러 가지 지혜 중에서는 부처님이 최고라고 하니, 왜 그런가 하면 부처님께서는 대비를 일으켜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하시기 때문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로써 중생을 구제하신다. 그런데 어찌 방심하여 염불에 전념하지 않고 무거운 은혜를 저버리려 하는가?
030_0138_b_01L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의 길[人道]과 하늘의 길[天道]과 열반의 길[涅槃道]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향과 꽃으로 공양하거나 골육(骨肉)과 혈수(血髓)로 탑을 세워 공양한다 하더라도아직 수행인이 법으로 공양하여 열반에 이르지 못했다면, 오히려 부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되리라. 설령 부처님과 공(空)과 무소유(無所有)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응당 마음을 삼가고 전념하여 잊지 않는 것으로써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인데, 어찌 하물며 전념하지 않으면서 염불하여 여러 삼매와 지혜를 얻고 성불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수행자는 항상 전심전력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하며, 이미 부처님을 뵈었으면 청하여 의심되는 것을 해결해야 하니, 이 염불삼매는 등분(等分)과 나머지 무거운 죄를 없애버린다.
6)색ㆍ성ㆍ향ㆍ미ㆍ촉의 5경(境)에 집착하는 것, 혹은 재물욕ㆍ색욕ㆍ식욕ㆍ명예욕ㆍ수면욕을 지칭하기도 한다.
7)윤회의 한가운데를 의미한다. 유(有)는 존재를 의미하며, 존재는 윤회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용법이다.
8)음식ㆍ의복ㆍ와구ㆍ의약을 4사(事) 공양이라 말한다. 비구들은 이것을 정당하게 취득해야만 한다.
9)수행자를 지칭하는 말로서, 원래는 분소의를 말하는데 출가 수행자는 분소의를 입는 것이 원칙이므로 후에는 수행자 자신을 낮추어 납의라고도 한다.
10)우유의 일종이며, 매우 맛있는 음료이다.
11)초습행은 처음 관행을 익히는 초보자의 상태, 이습행은 초보자의 상태를 넘어 제법 관행을 익혀온 상태, 구습행은 오랫동안 관행을 익혀온 상태를 지칭한다.
12)이것을 12연기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고찰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에 의해 성립되어 있는 상호의존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상ㆍ고ㆍ무아’라고 보는 것과 범부인 인간의 질곡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유전문)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소멸하고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가(환멸문) 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13)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와 같은 뜻이다.
14)Anapana의 음사. 안반(安般)이라고도 하며, 호흡(息)이란 의미이다. ‘아나’는 들숨, ‘파나’는 날숨을 말하며, 이 두 의미가 합성된 말이다.
15)관찰하는 마음의 미세한 작용, 또는 세밀하게 마음을 고찰하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16)아수라와 같은 말이다.
17)심소(心所)의 구역(舊譯). 일반적으로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경우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다.
18)마음과 심수(心數)란 심왕과 심소유법, 즉 마음의 당체와 마음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객관적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19)등분이란 성실견(性實見)ㆍ착아견(着我見)ㆍ단(斷)ㆍ상(常)의 네 가지 견해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성실견이란 본질적인 궁극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며, 착아견은 나에게 집착하는 견해이고, 단견은 일종의 염세주의로서 이 세상은 단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상견은 이 세상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다.
20)녹왕(鹿王)으로 번역한다. 부처님의 무릎이 이 사슴처럼 길고 짧은 정도가 적당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