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도를 실천할 것을 받아들인 보살차리(菩薩遮利:菩薩行)1)는 받아들여 실천하면서 점점 높이 올라가 아유월치(阿惟越致)2)에 이른다. 아유월치란 다시 마음이 바뀌거나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보이(菩夷)보살이니, 첫째는 비행(飛行)보살이고, 그 다음은 불(佛)보살이다. 일명 도사(度士)라고도 하고, 도인(道人)이라고도 한다.
보살의 실천은 또한 12문(門)3)을 넘어서고 3악도(惡道)를 끊기 때문에 시방의 부처님 앞에 태어나고 열 번째 천상(天上)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수다원(須陀洹)4)도 역시 12문을 넘어서고 3악도를 끊지만 열 번째 천상에서 태어난다. 보살이나 수다원 모두 12문을 넘어서지만 태어나는 곳이 똑같지 않은 까닭은 수다원이 열여섯 가지 마음[十六意]5)을 행하는 반면 보살은 서른네 가지 마음6)을 실천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이 다른 것이다.
보살이 실천하는 서른네 가지 마음은 4제(諦)가 열여섯 마음이고 열여덟 실천으로 같지 않으니, 합하여 서른네 가지 마음이 된다.
030_0151_c_13L菩薩行三十四意,謂四諦十六意、十八行不共,合爲三十四意。
보살이 서른네 가지 마음을 실천하여 일체를 능히 통제할 수 있고, 아라한은 열여섯 가지 마음을 실천한다. 아라한은 열여섯 가지 마음을 실천하니, 보살의 힘이 더 많기 때문에 모두 다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다원으로부터 아라한까지는 보고 대면(對面)하여 끊는다.
앉아 서른네 가지 마음을 실천하여 이미 온전히 갖추었으면 부처님의 열여섯 가지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에서 열여섯 번째에 이르기까지 각기 자신이 그 부분에 속하며 4선(禪)도 역시 그러하다.
030_0151_c_18L坐行三十四意已足,便佛十六意,從第一上至十六各自所部;四禪亦爾。
030_0152_a_01L보살이 정진하여 20겁을 실천하면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있지만, 세 가지 생각[意]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없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고, 둘째는 벽지불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며, 셋째는 아라한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없다.
반드시 많이 얻으려는 생각을 따르게 되니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려는 생각이 많으면 부처님이 지위를 얻게 되고, 벽지불의 지위를 얻으려는 생각이 많으면 벽지불의 지위를 얻게 되며, 아라한의 지위를 얻으려는 생각이 많으면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된다. 마치 저울에 달아 그 무거운 정도에 따라 얻는 것과 같다.
사람은 집에 거주하면서도 아라한이나 아나함ㆍ사다함ㆍ수다원을 얻을 수 있고, 아유월치 보살을 얻을 수도 있다.
030_0152_a_04L人有居家得阿羅漢、阿那含、斯陁含、須陁洹者、亦有得阿惟越致菩薩者。
집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보살이 방탕하게 생활해서 어떻게 도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금륜왕(金輪王:轉輪王)들도 역시 모두 나라를 버렸기 때문이며, 셋째는 마군(魔軍)이 다가와 보살을 홀리기 때문이고, 넷째는 불도(佛道)를 구하려고 집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 번 도(道)의 마음[意]을 일으키면 그 덕은 10만 겁의 악보다 뛰어나다. 무엇이 도의 마음인가 하면 4제(諦)에 마음을 두는 것이 도의 마음이다. 비유하면 악(惡)은 어둠과 같고 도의 마음은 밝음과 같다. 태양이 떠오르면 천하의 어둠이 소멸되듯이 보살들이 이 말을 들으면 모두 크게 기뻐하고 나무불(南無佛)이라고 말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생각할 때 곧 자신이 산란하게 된다. 이 고통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니 스스로 수용하면 스스로 꾸짖는 것이며 복된 땅[福地]에 재앙과 멸망을 행사하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다시 말하여 오랫동안의 재앙이 선의 근본[善本]을 다하여 없어지게 한다.
이것이 스스로 꾸짖는 사람은 알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의 도(道)를 보고 나서도 다른 사람을 꾸짖을 마음을 내는 것이다. 즉 그 자신은 이러한 까닭으로 두 가지 꾸짖음을 행사하여 지금 현세에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또한 자신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롭도록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항상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얻도록 하고, 현관(縣官)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려고 하며, 아픈 사람들을 치유되도록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보시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되갚는다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1전(錢)짜리 물건을 받았으면 백 배, 천 배로 갚으려 하는 것이 되갚는 것이다.
보살은 생사(生死)와 만날 수 있지만, 생사의 일이나 생사에 대한 마음이 없다. 아라한은 세간도 끊고 마음[意]도 끊었지만, 보살은 세간은 끊지만 마음은 끊지 않는다. 마음을 끊지 않는 까닭은 마땅히 불도를 얻어 세간 사람들을 건너게 하기 위해서다. 보살은 세간의 일에 대한 논의를 무서워하여 어기지 않기 때문에 세간의 일을 끊는다.
보살은 생사의 마음을 끊지만 생사의 일을 끊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세간에서 행위는 하지만 악을 짓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다섯 가지 정(情)7)을 끊을 뿐이지 마음[意]을 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살의 마음은 생사와 더불어 합하기 때문에 마음을 끊지 않나니, 시방의 사람들을 건너게 하기 위해서다.
보살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마땅히 계를 간직해야 하고,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마땅히 보시를 해야 하며, 호족의 집에서 태어나면 마땅히 인욕할 줄 알아야 하고, 산중에서는 응당 선정(禪定)에 들어야 한다. 보살은 이 때문에 4의지(意止)8)와 7각의(覺意)9)를 닦아 4의지를 얻고 7각의를 얻는다.
보살이 도를 실천함에 있어서는 네 가지를 보고 증험할 수 있다. 첫째는 늙는 것을 보는 것이고, 둘째는 병드는 것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죽음을 보는 것이고, 넷째는 괴로움을 보는 것이다. 그것들이 촉박하고 급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를 실천한다. 사람은 날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찌 임종의 자리에서 죽을 때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그 시기가 이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030_0153_a_01L보살이 이미 불도를 얻으면 4제(諦)를 말하게 된다. 4제를 말하는 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선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안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넷째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으로 인해 커다란 감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4제를 말하는 것이다.
보살은 스스로 헤아려야 한다. 즉 어떤 인연으로 고(苦)에 관한 사념(思念)을 얻고 그로부터 생(生)을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생을 얻고 그로부터 실천[行]을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실천을 얻고 그로부터 어리석음[癡]을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어리석음을 얻고 그로부터 애(愛)를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애를 얻고 그로부터 수(受)를 얻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감수[受]하는 바가 없으면 얻는 바도 없다.
어느 때 하루 동안만 도(道)를 실천하더라도 그 복은 1백 겁이 지나도록 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1백 겁의 세월을 마치 하룻밤 정도로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어느 때 보살이 법도를 실행하여 경전의 뜻이 생사에 있지 않다고 말할 경우에는 1백 겁의 세월을 하룻밤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보살은 복에 머무르기도 하고 복을 싫어하기도 하며 죄에 머무르기도 하고 죄를 지키기도 한다. 죄든 복이든 일단 갖추어지면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보살이 전세(前世)의 숙명(宿命)을 잘 알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죄를 지어 악한 일을 범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기별을 받아 98겁을 마쳤더라도 아직 엷을 수 있다. 왜냐하면 보살이 실천하는 가운데는 4평등심(平等心)으로 시방의 5도(道)10) 중생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해탈하도록 하고, 몸을 던져 배고픈 호랑이와 매의 먹이로 제공하거나 자신을 손상시켜 다른 사람을 살게 하면 마땅히 공덕을 가득하게 이룰 수 있지만 아직 모든 것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했다면 부처의 지위를 얻는 일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보살은 자신의 아내,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끊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데, 그러면 어떤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인연이 있다.
030_0153_b_18L菩薩能持妻子、斷頭與人,乃爲得何等意?有是二因緣:
첫째는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그것들을 제공하여 그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어 탐욕의 죄와 성내는 죄가 더욱 무거워지게 되니, 그 사람이 성낼 것을 염려한 까닭에 자신의 머리와 아내를 그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유하자면 원수를 갚으려면 원수가 죽어야 기쁘듯이 보살은 일체의 악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생긴다는 것과 얼마간의 고통과 꾸지람은 모두 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이미 이와 같이 헤아리므로 몸에 대한 욕심이 없고 몸을 원수처럼 본다. 그러하기 때문에 애착하지 않는다. 셋째는 정진하여 공덕을 가득 채우고 신속히 도(道)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자신의 머리와 눈 및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첫째 눈이 색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눈을 빼낼 수 있는 것이고,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악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끊어 제공하는 것이며, 아내를 주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도를 실천하는 데는 두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견주어 보는[校] 것이고, 둘째는 헤아려 보는[計] 것이다. 견주어 본다는 것은 가볍고 무거운 정도를 측정한다는 뜻이고, 헤아려 본다는 것은 많고 적은 정도를 계산한다는 뜻이다.
030_0153_c_10L道行有二事:一、爲校,二、爲計。校爲輕重,計爲多少。
보살이 기별을 받고서 1백 겁 가운데 나머지 1겁 동안만 사문이 되어 수행하면 되는 경우에 99겁 동안에는 백의(白衣)11)가 된다. 보살이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줄 때에는 그들은 때리는 것을 보고도 단지 뼈와 살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제공한다.
보살은 세간에서 3도(道)12)에 분포되어 있더라도 3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인간 세계나 천상 세계로 이끌어지는 일이 많을까? 3도를 얻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3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몸과 입과 생각[意]의 세 가지 짓는 일이 다하여 없어지면 3도도 또한 다한다.
030_0154_a_01L보살이 5도(道)를 떠나면 항상 지혜로움[點]과 복(福)이 있게 되며 사람이 죽을 때는 5도의 갈래로 나아간다. 보살은 다시 지혜의 부분으로 가깝거나 먼 것을 알아 염두에 두고, 보살은 지분을 잘 알아 수다원이나 사다함의 지분에는 머물지만 아나함에는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 부처님의 세계에는 삼천대천천지(三千大千天地)가 있으며 인간은 생사를 거듭하면서 그 천지간을 떠돈다. 머리카락만큼의 겨를도 그 안에 머물지 않는 바가 없고 짓지 않는 바가 없지만, 오로지 아직 아유월치나 사다함이 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 밖의 모든 이들은 더욱 무수히 많다.
보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법시(法施)와 물시(物施)이다. 몸과 입의 식(識)을 지키는 것을 제어라 하고, 생각[意]을 지키는 것을 합취라 한다. 또한 보시에서 인연하여 이해를 얻고 탐욕을 끊을 수 있으며, 제어로부터는 성냄과 산란한 마음을 끊을 수 있고, 합취로부터는 스스로를 지켜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다.
또한 보시로부터는 바른 마음[正意]을 얻을 수 있고, 제어로부터는 바른 말[正語]을 얻을 수 있으며, 합취로부터는 마음이 편안한 것을 실천하는 것을 얻는다. 또한 보시로부터는 보시의 복을 볼 수 있고, 제어로부터는 생각[念]의 복을 말할 수 있으며, 합취로부터는 마음[意]의 복을 말할 수 있다.
보살이 아내와 거주하는 것은 햇수로 25세부터이며 1일생(日生)은 30세부터다. 월력(月曆)으로는 3천 달이 되며, 일력으로는 51세(歲)가 된다.
030_0154_a_18L菩薩與妻子共居,年二十五,一日生三十,一月年三十日,百日年五十一歲。
보살은 단지 악(惡)만을 금하고 집에 거주하는 것[在家]은 금하지 않는다. 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죄를 지어 편안하지 못하지만, 죄를 멀리 피하여 마음에 산란함이 없으면 복이 된다. 비록 집에 있더라도 마치 지옥 속에 있는 것처럼 죄에 대해서 깨닫고 있다면 다시는 쾌락이 있는 처소에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030_0154_b_01L 사람이 도를 구하면서 인욕하지 않고 감내하지 못하면 수다원의 지위를 얻는다. 부처님께서 전세의 보살이셨을 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불도(佛道)는 얻기가 어려워 한 마디 말에도 40겁이 감소하지만 몸을 배고픈 호랑이에게 제공하면 무리의 보살들보다 9겁을 앞서 수대나(須大拏)13)가 되어 기별을 받는다’고 하셨다. 모든 이들이 정진하여 도를 실천하면 모두 다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보살이 아내를 맞이하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숙명업의 복이 똑같기 때문이고, 둘째는 죄를 다 마쳤기 때문이며, 셋째는 마땅히 함께 남녀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고, 넷째는 지혜 있는 사람은 아내를 맞으면 신속하게 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일이 없으면 아내를 맞이할 수 없다.
보살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시방 모든 중생들의 어리석음도 무너뜨린다. 아라한은 자신의 어리석음은 무너뜨리지만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무너뜨리지 않는다. 보살은 많은 것을 깨달아 사람들을 많이 가르쳐 도를 실천하게 하니, 이것이 다른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보살도를 실천하려고 하다가 아라한과를 얻는 자는 마음으로는 불도를 생각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생사에서 실천한 것을 모두 마땅히 얻어 마음으로는 아라한에서 돌아 나올 수 없어 다시 아라한을 헤아린다. 그러나 다시 죄를 갚을 필요는 없고, 다시 생사의 몸을 받지도 않으며 곧바로 세간을 구하기 위해 간다. 이러한 마음을 내기 때문에 아라한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죽거나 윤회하지 않거나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이나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보살이나 아라한 모두 37품을 경행(經行)하는데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려면 네 가지 마음[意]을 가지고 항상 실천해야 한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다행히 부처님께서 실천하시는 일을 얻고 부처님을 만나 뵙고 내 몸도 마땅히 부처님께서 닦으신 것처럼 닦아야겠다고 인식할 줄 아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평등하시기 때문에 두 가지 도(道)가 따로 없으며 마음을 따라 실천하여 얻으신다. 탐애를 따르면 5도(道)에서 유전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 등의 괴로움이 함께한다. 마음이 탐애를 따르지 않으면 마치 물을 가지고 불을 끄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탐애를 따르면 땔감을 가지고 불을 돋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르면 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헤아려야 한다.
030_0155_a_01L보살이 아내를 맞아들이는 데는 네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는 아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고, 둘째는 홀로 지내고 아내가 없기 때문에 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셋째는 숙명업의 근본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악지식(惡知識)이 아내를 맞이하라고 권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살이 6년 동안 좌선하여 도를 얻으려는 시점에 이르면 3독이 함께 일어나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으로 하여금 나의 아내를 얻었다거나 나보다 뛰어나다거나 나의 재산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게 하고, 마음이 생기는 즉시 생각이 자라게 된다. 또한 자신이 무수겁 이래로 이 세 가지 악(惡)을 끊어 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멸하면 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6년 동안 좌선하는 가운데 하루를 쌀 한 톨과 참깨 한 알만 먹는데, 여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탐욕을 끊는 것이고, 둘째는 죄를 마치는 것이며, 셋째는 배가 굶주리지 않음을 알려는 것이고, 넷째는 배고프다는 생각을 그쳐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것이다. 배가 고파야 도를 얻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은 그 사람들 자신이 배고파 죽을까 두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보살이 6년 동안 나무 아래서 지낼 때 벌레ㆍ메뚜기ㆍ모기ㆍ등에 등이 괴롭히지 않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본래 무수한 세월 동안 살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평등한 마음을 실천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여러 천상과 귀신들이 옹호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가 머무는 처소도 깨끗하다.
보살이 처음 출가하여 도를 실천하고 배울 때 여러 대인(大人)들이 말하였다. “보살은 지금 태자로서 집에 머물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하셨습니까?” 태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세 가지 괴로움 때문에 출가했습니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하면 늙음과 병듦과 죽음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다음 곧 약간의 문자상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자 스승도 다시 문자상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서 말하였다. “태자께서 아시는 바가 그 정도나 되시는데 무엇 때문에 저로부터 배우려고 하십니까?” 태자가 말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마땅히 스승께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030_0155_c_01L보살은 집을 나서 1백 리를 나아가 몸 위에 걸친 진귀한 보배가 달린 옷을 벗어 차닉(車匿)15)에게 넘겨주고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러자 건장하고 잘 걷는 백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핥았다. 차닉이 말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태자가 답하였다. “천하의 어리석은 사람도 너와 같은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간 사람들은 단지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괴로운데 무엇을 소원할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즐겁겠느냐? 여전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바라는 것은 어느 때나 풀려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토끼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찌 다시 그물 속으로 들어가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겠느냐? 토끼가 그물에서 벗어났다면 끝내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집에 있을 때 오랫동안 이를 생각해 왔고 또한 무수겁 이전 이래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단지 오늘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다.”
보살이 태어난 지 이레가 지나자 그 어머니가 임종하게 되는데, 이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보살을 몸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와 살펴보고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생사법(生死法)에 따라 어머니께 예를 드리고 보살이 존중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7일 만에 임종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 어머니의 숙명이 스스로 그렇게 응한 것이고, 넷째는 사람이 공덕을 지으면 하늘에 올라가 태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보살은 아직 불도를 이루지 못했을 때 다섯 가지 꿈을 꾼다. 첫째는 수미산을 베개 삼고, 둘째는 땅을 침상 삼으며, 셋째는 손으로 바닷물을 덮고, 넷째는 천하가 모두 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를 거닐어도 발을 더럽히지 않으며, 다섯째는 마음으로 앞에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면 위로 27천(天)에 이른다.
030_0156_a_01L꿈에 수미산을 베개 삼은 것은 천상천하에서 가장 존귀하여 부처님을 넘어설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땅을 침상 삼은 것은 부처님의 몸이 장대하여 위로 28천에 이른다는 뜻이며, 손으로 바닷물을 덮은 것은 경전의 도리를 말하려 하는 이들 가운데 부처님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똥 위를 거닐어도 발이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천하의 애욕이 부처님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며, 마음으로 앞에 나무를 생각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위로 제27천상에까지 들린다는 뜻이다.
보살이 여인을 수순하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여인에게 정진하도록 권하려는 까닭이고, 둘째는 여인으로 하여금 따라 실천하도록 하려는 까닭이며, 셋째는 과거의 무수한 세월 동안 지은 나머지 죄와 만났기 때문이고, 넷째는 과거 숙세(宿世)의 원(願)이 여인들을 가르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천(天)이 보살을 시험하는 데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부처의 지위를 얻을 것인지 얻지 못할 것인지는 탐하거나 아끼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만약 보살이 그런 마음을 일으키면 말하기를 ‘경(卿)께서는 불도를 얻으실 텐데 어찌하여 반대로 행동하십니까?’라고 하면 보살은 이로부터 더욱 정진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불도를 얻으면 마땅히 상(相)을 초월하기 때문에 가서 그를 시험하는 것이다.
단(檀)이란 보시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고, 바라(波羅)는 생사(生死)를 건너는 것이며, 밀(蜜)은 끝[極]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라한은 단지 일체에게 보시를 실천하지만 시방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단(檀)만 존재한다. 보살은 시방의 인간이나 인간 아닌 모든 이들을 제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바라밀이 존재한다. 여섯 가지 일도 모두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보살이셨을 때 부처님께 음식 대접하기를 원하여 작은 콩 다섯 개를 부처님의 그릇 속에 놓았는데 그 가운데 한 개가 땅에 떨어졌다. 나중에 금륜왕(金輪王)16)이 되어서 80세 동안 사천하(四天下)의 땅을 주관하는 것은 네 개의 콩알로 인해 얻은 복 때문이다. 그릇 안에 들어가지 않은 콩은 다시 천상에 올라가 여덟 개의 달[月]을 낳았다. 이렇기 때문에 단바라밀(檀波羅蜜)이 존재한다.
030_0156_b_01L보살은 법(法)과 재물을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수순하시어 그것을 받는 이가 편안하도록 생각을 쓰시어 마음속에 복을 얻으려는 생각을 내도록 하시고, 또한 배고프고 춥고 빈궁한 사람들을 생각하여 그들에게 보시하여 모두 편안케 하시니, 이것이 도법(道法)의 보시이다. 1전 값어치의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10천만보다 뛰어나다. 또한 조금 뛰어난 많은 사람들에게는 보시하지 않으니, 도(道)의 마음으로 안온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의 생명이 끊어지려고 할 때 마음이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에 있으면 곧 아유월치를 얻게 되고 기별을 받는다. 만약 본래 아라한을 구하면 아나함을 얻게 되어 비상(非常) 등 네 가지에 이르기가 어렵다. 아유월치를 얻는 까닭은 본래 과거세에 정진했기 때문이다.
보살이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와 살모사 한 마리가 각자 서로에게 무엇이 괴로움[苦]인지 질문하였다. 까마귀가 말했다. “배고픔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 어떻게 그것이 괴로움인지를 아는가 하면 배가 고프면 걸어 다닐 수도 없고, 어떤 일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사람도 배고픔에 처하면 굶어 죽으니 그래서 배고픔이 괴로움인 줄 알 수 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대들이 각기 한 가지 일을 말하였으니 나도 그대들을 위하여 한 가지 일을 말해 주겠다. 그 예를 따라 말하자면 오직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다. 몸이 있으면 괴롭지 않은 일이 없으니, 이를 비유하자면 보살이 108가지 애행(愛行) 안에 있는 것과 같다.”
030_0156_c_01L경법을 말씀하실 때 예를 받지 못하면 보살은 한 게(偈)를 5백만(百萬)에 구입한다. 구입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차례대로 구입하는 것이고, 둘째는 반복하여 구입하는 것이며, 셋째는 베풀어 준 것을 보상하고 구입하는 것이다. 보살은 은혜를 생각하기 때문에 베풀어 준 것을 보상하고 받는 것 또한 죄가 없다.
보살은 법을 실천할 때 마땅히 시방의 모든 사람들이 안정된 마음으로 일심(一心)의 상태에 들도록 소원하면서 주문을 외우며 말한다. 자신의 마음이 선정에 들지 못하면 주문을 외워 소원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생사(生死)에 머물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선정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선정의 상태에 있게 할 수 없다.
담마(曇摩)는 법(法)이라는 뜻이고, 아게(阿偈)는 당래(當來)라는 뜻이며, 살(薩)은 상(常)이라는 뜻이고, 파륜(波輪)은 눈물이 흘러나온다는 뜻이며, 아무타(阿蕪陀)는 명(命)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030_0156_c_08L曇摩爲法,阿曷爲當來,薩爲常,波輪爲淚出,阿蕪陁爲命不可數。
살파륜보살(薩波輪菩薩)이 항상 눈물을 흘리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경전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인연을 좇아 도인(道人)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시방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스스로 시방세계를 넘어서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를 간직하는 까닭은 장수할 수 있고 도를 실천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계를 간직하지 않으면 오래 살 수도 없고 도를 실천하여 얻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수명이 열 살 정도일 때 목숨이 다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를 간직해야 한다.
사음(邪淫)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유하자면 동쪽을 향해 바라보면 서쪽은 보이지 않듯이 마음을 음란함에 두면 도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음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취하게 되면 험한 말과 거짓말을 하게 되고 허망하게도 법에 맞지 않는 일을 짓게 된다. 설령 사람이 어떤 일을 잘 하더라도 언제나 스스로 마음을 어지럽게 하니, 이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보살은 답하기를 ‘저에게 근심이 있으면 부모님께도 걱정이 되며 제가 도를 얻어 근심이 없어지면 부모님 역시 근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030_0157_a_12L菩薩報言:‘我有憂故,父母有憂;我得道便無憂,父母亦無憂。
비유하자면 친척과 권속에게 근심이 있으면 자신도 또한 그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는데 한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자신도 역시 근심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 근심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는 부모님도 근심하지만 자식이 도를 얻으면 부모님도 곧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030_0157_b_01L문수사리보살이 대답하였다. “본바탕의 요체(要體)가 깊은 것을 깊다고 말하느니라.” 유마라달달이 다시 물었다. “근본 바탕이 없으면 요체가 없는데 이와 같다면 문수사리시여, 지혜로운 것[點]입니까,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다시 대답했다. “이 일은 무엇을 이르는 말이며,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이냐?”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지혜로움 가운데 제일가는 지혜로움을 그대는 가지고 있구나. 만약 지혜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은 텅 비어 허망하고, 허망하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미 없다면 생기지도 않고, 생기지 않는다면 함께할 수도 없으니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문수사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지혜로움이 없었던 화수밀(和須蜜)이라는 보살은 한 아라한경(阿羅漢經)도 어려워하여 아라한경이 이해가 안 가자 한마음[一心]으로 마음[意]을 내어 미륵보살에게 물었느니라. 질문을 받자 미륵보살은 화수밀에게 답하여 말했느니라. ‘그대가 질문한 것을 차례대로 해설해 주겠다.’
화수밀은 곧 깨닫게 되어 아라한을 힐책하게 되었느니라. ‘그대들도 한마음으로 미륵보살에게 질문하겠는가?’ 아라한은 실로 그렇게 했느니라. 한마음으로 묻는 인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알기 때문이고, 둘째는 몸을 변화하는 것에 관해 묻는 것이며, 셋째는 전세(前世)에 실천하고 들은 바가 있으면 곧 이해하기 때문이다.
화수밀보살은 스승을 받들어 모시고 4아함경(阿含經)을 세 번 외우고 꽃을 가지고 스승의 위에 뿌리며 스승께 말했느니라. ‘저는 이미 4아함경을 다 외웠습니다.’ 스승은 잊고 다시 기억하지 못했느니라. 화수밀은 다시 스스로 생각했느니라. ‘내가 이 4아함경을 합하여 그 요체를 간추려 하나의 경권(經卷)을 지으면 네 무리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030_0157_c_01L여러 도인들이 경전을 듣고 모두 환희하여 많은 사람들이 듣고 물으려 왔지만 좌선을 얻지는 못했느니라. 여러 도인들이 말했느니라. ‘우리가 경을 듣는 것은 단지 좌선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도 모두 도를 실천하고 있으니 다시 경전을 들을 필요가 없다. 마땅히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화수밀은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손을 불 속에 집어넣어 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나서 ‘이래도 정진하지 않았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느니라. 큰 돌 위에 앉아 도를 실천하는 경우에는 마땅히 부드러운 자리에 앉아야 하느니라. 화수밀은 말했느니라. ‘나는 돌을 취하여 돌 한 덩어리가 튀어 올라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아라한을 얻을 것이다.’
이미 튀어 올랐던 돌은 꿈적하지도 않아 천인(天因)들이 그 돌을 위로부터 끌어내리려 해도 땅바닥에 떨어지게 할 수 없었느니라. 그러자 화수밀보살이 다음과 같이 말했느니라. ‘당신들이 보살도를 구하고 계시니 저는 당신들로 하여금 해탈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20겁이 지난 뒤 당신들은 불도를 얻으시어 선량한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사문이 말했느니라. ‘악인들이 나라 안에 책이 보급되어 서로 말해 주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화수밀은 사람들을 파견하여 책을 구하게 하였고, 책이 돌아오자 책에 대해 말해 주었느니라. 문수보살이 말하였느니라. ‘이 훌륭한 사람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교화하자면 마음속으로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내려고 하지 않고 단지 악인들이 죄에 떨어질까 염려하고 있다.’
또한 시방의 사람들을 넘어서려면 도의 마음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불국토의 여래와 같이 정각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내가 말한 바는 마땅히 일체 시방의 보살들을 위한 것이니라. 또한 중정(中正)한 마음이 없으면 허망함에 이르러 진리[諦]를 넘어서지 못하니, 불도를 얻는 것도 그러하느니라.
보살은 네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깨끗함을 얻게 되고 그것도 신속히 얻을 수 있나니,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意]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불국(佛國)에 있을 경우에는 깨끗해지느니라. 이와 같으면 네 가지가 깨끗해지고 그것도 신속히 깨끗함을 얻을 수 있느니라.
보살은 또한 네 가지를 간직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사람들을 향해 깊은 인욕을 신속히 얻어 간직하고, 둘째는 사람들을 향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모습을 신속히 얻어 간직하며, 셋째는 사람들을 향해 복을 실천하는 것을 잘 알아 신속히 간직하고, 넷째는 사람들을 위하여 신속히 간직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사람들을 향해 네 가지를 간직하여 신속히 훌륭한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니라.”
담마아게(曇摩阿偈)보살의 성은 모두 7보로 구성되어 있다. 담마아게보살이 거주하는 성은 둘레가 1만 6천 리에 이르며, 땅은 모두 7보로 되어 있다.
030_0158_a_10L曇摩阿偈菩薩,城皆七寶。曇摩阿偈菩薩所居城周帀萬六千里,地皆七寶。
북방에는 여러 많은 보살들 가운데 살화루(薩和樓)라는 보살이 있는데, 그 덕은 담마아게보살 다음이다. 부처님께는 열여덟 가지 불공법(不共法)이 있으니, 처음 더할 나위 없이 원만 평등한 깨달음[無上等覺]을 얻은 때로부터 세간 사람들을 건너게 할 때까지 무유여니원(無有餘泥洹)을 끝까지 들을 수 있다.
030_0158_b_01L아홉 번째, 여래의 실천은 생각[念]이 멈추지 않는다. 열 번째, 여래의 실천은 결정적이어서 버릴 것이 없다. 열한 번째, 여래의 실천은 지혜는 어느 누구도 그 분과 동등하지 않다. 열두 번째, 여래의 실천은 세간 사람들을 건너 해탈케 하며 남김없이 관찰한다.
1)범어로는 caryā 또는 carita이며, 그 뜻은 첫째 동작 또는 행위의 의미이며, 둘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 또는 행법(行法)을 가리킨다.
2)아비발치(阿鞞跋致). 범어로는 avinivartanīya이며, 불퇴(不退)ㆍ무퇴(無退)ㆍ불퇴전(不退轉)ㆍ불퇴위(不退位)라 번역한다. 반드시 성불이 결정되었다는 동시에 보살위에서 타락하지 않을 위치를 말한다. 소승 유부종에서는 예류과(豫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주(初住)ㆍ초지(初地)ㆍ8지(地)를 불퇴라 한다.
3)12문선(門禪)이라고도 한다. 초선(初禪)ㆍ2선(禪)ㆍ3선(禪)ㆍ4선(禪) 등 4선정(禪定)과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 등 4무량(無量)과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등 4공정(空定)을 합하여 이루어진다.
4)성문 4과(果)의 하나. 예류과(預流果)의 범명(梵名). 무루도(無漏道)에 처음 참례하여 들어간 지위이다.
5)무루의 지혜로 4제(諦)를 관찰하여 얻는 열여섯 가지 지혜로 16심(心)이라고도 한다.
7)중생의 다섯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 등의 5근(根)은 정식(情識)을 능히 생하므로 5정(情)이라고 한다.
8)4념주(念住) 또는 4념처(念處)라고도 한다.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으로 첫째, 몸[身]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과 둘째, 감수함[受]은 괴로움이라는 것과 셋째, 마음[心]은 무상(無常)하다는 것과 넷째, 법은 무아(無我)라는 것을 관찰하여 차례대로 정(淨)ㆍ낙(樂)ㆍ상(想)ㆍ아(我)라는 네 가지 전도(顚倒)를 대치하는 관법을 말한다.
9)7각지(覺支) 또는 7보리분(菩提分)이라고도 한다. 첫째 염각지(念覺支)는 마음속에 명백하게 항상 선정(禪定)과 지혜를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 택법각지(擇法覺支)란 지혜에 의지하여 진실된 법을 선택하고 허위의 법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 정진각지(精進覺支)란 정법(正法)에 열심히 매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고, 넷째 희각지(喜覺支)란 정법을 얻어 기뻐하는 것이며, 다섯째 경안각지(經安覺支)란 마음이 경쾌하고 편안함을 가리키고, 여섯째 정각지(定覺支)란 선정에 들어 마음이 산란하지 않음이며, 일곱째 사각지(捨覺支)란 마음이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집착이 없어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10)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세계를 말한다.
11)재가인(在家人)을 뜻하는 대용어(代用語)이다.
12)지옥ㆍ아귀ㆍ축생의 세계로서 즉 3악도를 뜻한다.
13)범어로는 Sudāna이며, 석존(釋尊)이 인위(因位)에서 태자로서 보살행을 닦을 때의 이름이다.
14)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세 가지 번뇌. 독이라 한 것은 『대승의장』에 “3독이 모두 삼계의 온갖 번뇌를 포섭하고, 온갖 번뇌가 중생을 해치는 것이 마치 독사나 독룡(毒龍)과 같다” 하고, 『법계차제』에는 “독은 짐독(䲴毒)으로 뜻을 삼고, 내지 출세의 선심(善心)을 무너뜨리는 까닭이다”라고 한다.
15)천탁가(闡鐸迦)라고도 음역. 실달태자가 성을 넘어서 고행의 첫 길을 떠날 때에 백마 건척을 끌던 마부 이름이다. 뒤에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는데, 말버릇이 나쁜 성미는 고치지 못하여 악구 차닉ㆍ악성 차닉이라 불린다. 부처님이 입멸하실 때에 아난에게 분부하여 묵빈법(黙擯法)으로 대치(對治)하라고 한 것은 이 차닉을 말한 것이다. 나중에는 드디어 과를 증득하였다.
16)4륜왕(輪王), 즉 금륜왕ㆍ은륜왕ㆍ동륜왕ㆍ철륜왕 가운데 하나이며 사람의 수명이 8만 4천 세일 때 세상에 출현하여 4주(洲)를 통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