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0_0151_c_01L유일잡난경(惟日雜難經)
030_0151_c_01L惟日雜難經一卷


오(吳) 월지(月支) 지겸(支謙) 한역
김철수 번역
030_0151_c_02L吳月支優婆塞支謙譯



처음으로 도를 실천할 것을 받아들인 보살차리(菩薩遮利:菩薩行)1)는 받아들여 실천하면서 점점 높이 올라가 아유월치(阿惟越致)2)에 이른다.
아유월치란 다시 마음이 바뀌거나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보이(菩夷)보살이니, 첫째는 비행(飛行)보살이고, 그 다음은 불(佛)보살이다. 일명 도사(度士)라고도 하고, 도인(道人)이라고도 한다.
030_0151_c_03L初受道遮利菩薩遮利者爲受行轉上至阿惟越致阿惟越致者爲不復轉心次爲菩夷菩薩一爲飛行菩薩次爲作佛菩薩一名度士亦爲道人
보살의 실천은 또한 12문(門)3)을 넘어서고 3악도(惡道)를 끊기 때문에 시방의 부처님 앞에 태어나고 열 번째 천상(天上)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수다원(須陀洹)4)도 역시 12문을 넘어서고 3악도를 끊지만 열 번째 천상에서 태어난다. 보살이나 수다원 모두 12문을 넘어서지만 태어나는 곳이 똑같지 않은 까닭은 수다원이 열여섯 가지 마음[十六意]5)을 행하는 반면 보살은 서른네 가지 마음6)을 실천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이 다른 것이다.
030_0151_c_07L菩薩行亦出十二門斷三惡道故十方佛前生不在第十天上須陁洹亦出十二門斷三惡道生第十天上俱出十二門所以不同處生者須陁洹十六意菩薩行三十四意用是故不同處生
보살이 실천하는 서른네 가지 마음은 4제(諦)가 열여섯 마음이고 열여덟 실천으로 같지 않으니, 합하여 서른네 가지 마음이 된다.
030_0151_c_13L菩薩行三十四意謂四諦十六意八行不共合爲三十四意
보살이 서른네 가지 마음을 실천하여 일체를 능히 통제할 수 있고, 아라한은 열여섯 가지 마음을 실천한다. 아라한은 열여섯 가지 마음을 실천하니, 보살의 힘이 더 많기 때문에 모두 다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다원으로부터 아라한까지는 보고 대면(對面)하여 끊는다.
030_0151_c_15L菩薩行三十四意一切能制阿羅漢行十六意菩薩力多悉以制說須陁洹至阿羅漢見對乃面斷
앉아 서른네 가지 마음을 실천하여 이미 온전히 갖추었으면 부처님의 열여섯 가지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에서 열여섯 번째에 이르기까지 각기 자신이 그 부분에 속하며 4선(禪)도 역시 그러하다.
030_0151_c_18L坐行三十四意已足便佛十六意從第一上至十六各自所部四禪亦爾
030_0152_a_01L보살이 정진하여 20겁을 실천하면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있지만, 세 가지 생각[意]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없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고, 둘째는 벽지불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며, 셋째는 아라한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없다.
030_0151_c_20L菩薩精進行二十劫可得佛用有三意故不得佛何等爲三有佛意有辟支佛意有阿羅漢意用是三意故不得佛
반드시 많이 얻으려는 생각을 따르게 되니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려는 생각이 많으면 부처님이 지위를 얻게 되고, 벽지불의 지위를 얻으려는 생각이 많으면 벽지불의 지위를 얻게 되며, 아라한의 지위를 얻으려는 생각이 많으면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된다. 마치 저울에 달아 그 무거운 정도에 따라 얻는 것과 같다.
030_0152_a_02L要爲隨多得之意在佛多得佛在辟支佛多得辟支佛在阿羅漢多得阿羅漢如秤隨重者得之
사람은 집에 거주하면서도 아라한이나 아나함ㆍ사다함ㆍ수다원을 얻을 수 있고, 아유월치 보살을 얻을 수도 있다.
030_0152_a_04L人有居家得阿羅漢阿那含斯陁含須陁洹者亦有得阿惟越致菩薩者
집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이, 보살이 방탕하게 생활해서 어떻게 도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금륜왕(金輪王:轉輪王)들도 역시 모두 나라를 버렸기 때문이며, 셋째는 마군(魔軍)이 다가와 보살을 홀리기 때문이고, 넷째는 불도(佛道)를 구하려고 집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030_0152_a_06L所以棄家行入山有四因緣一者人言菩薩婬妷何故得道二者金輪王亦皆棄國三者魔當來嬈菩薩四者求佛道不居家
성불의 기별을 이미 받았으면 보살은 새로 받는 것을 끊고 정진을 실천하여 1백 겁이 지나면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정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얻을 수 없으니, 그 기한이 끝이 없다.
030_0152_a_10L已受莂菩薩斷新受故精進行要百劫得佛其不精進者久能得不得無有限
기별을 받은 보살은 죄과에 대해 보상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일으켜 짓지 않는다. 말하자면 기별을 받은 이래로 전세(前世)와 현세에서 계를 받지 않았을 때 지은 죄를 갚았고, 무수한 겁 동안 지은 죄도 또한 모두 그것을 갚았기 때문이다.
030_0152_a_13L受莂菩薩償故不起造新謂從受莂以來償前世亦現世未受戒時所罪無數劫罪亦皆償之
기별을 받은 보살로부터 수다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는 숙세(宿世)의 죄가 있으며 어느 때 그것과 함께하기 때문에 죄와 만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왕생함에 따라 도(道)의 마음[意]이 엷어지기도 한다.
030_0152_a_16L從受莂菩薩下至須陁洹皆有宿罪有時與故罪相逢因隨往生道意便
만약 어떤 사람이 깊은 경전의 뜻을 말해 주면 죄와 복에 관해 이해하고 그 뜻을 제대로 보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니, 사람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침내 보살은 기별을 받아 1백 겁이 지난 뒤에는 부처님의 지위를 얻는다.
030_0152_a_19L若有人說深經意卽解罪福如示如不復生謂人不復作罪故卽畢菩薩受莂百劫便得佛
석가모니부처님의 처소에서 이미 91겁에 이른 사람은 그 동안 정진했기 때문에 90겁을 얻은 셈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다음 날이면 천 리에 이르게 되는데 오늘까지 먼저 9백 리를 온 것과 같다. 그 도리를 헤아려 보면 똑같은 것이다.
030_0152_a_21L釋迦文佛所已九十一劫者用精進故得九十劫譬喩如人明日當發行千里今日先行九百里計其道里同等
030_0152_b_01L 1백 겁에 이른 사람도 91겁수의 아유월치 보살이 모습을 지으면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1백 겁의 인(因)을 갖추었더라도 1백 겁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유월치 보살을 얻지 못하여 그 행상(行相)이 성립되지 않는다.
030_0152_a_24L當百劫人從九十一劫數阿惟越致菩薩作相乃成百劫因具不過百劫得阿惟越致菩薩行相不成
사람이 한 번 도(道)의 마음[意]을 일으키면 그 덕은 10만 겁의 악보다 뛰어나다. 무엇이 도의 마음인가 하면 4제(諦)에 마음을 두는 것이 도의 마음이다. 비유하면 악(惡)은 어둠과 같고 도의 마음은 밝음과 같다. 태양이 떠오르면 천하의 어둠이 소멸되듯이 보살들이 이 말을 들으면 모두 크게 기뻐하고 나무불(南無佛)이라고 말하게 된다.
030_0152_b_03L人起一道意其德勝十萬劫惡何等爲道意念在四諦是爲道意惡譬如道意譬如明如日出天下冥消滅諸菩薩聞是語皆歡喜大言南無佛
한 번 선한 마음을 일으키면 1백 겁의 복을 얻을 수 있지만, 보살이 자신의 몸을 배고픈 호랑이에게 먹이로 제공하여도 1백 겁의 복을 얻을 수는 없다. 91겁에 부처가 되면 고통을 겪지 않고도 9겁을 줄일 수 있다.
030_0152_b_07L起一善意得百劫福菩薩持身餧飢不百劫九十一劫便作佛者用不覺痛苦滅九劫
보살이 마음속에 욕심이 일어나면 자신을 꾸짖고 다른 사람도 꾸짖는데, 이것이 두 가지 꾸짖음[兩咄]이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일 때도 다른 사람을 꾸짖지 않으셨는데 어떤 인연으로 꾸짖어 말씀하시겠는가?
030_0152_b_10L菩薩已起意欲爲自身咄亦咄他人身是爲兩咄佛爲菩薩時不爲他人咄當爲何因緣說爲
다른 사람의 이름을 생각할 때 곧 자신이 산란하게 된다. 이 고통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니 스스로 수용하면 스스로 꾸짖는 것이며 복된 땅[福地]에 재앙과 멸망을 행사하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다시 말하여 오랫동안의 재앙이 선의 근본[善本]을 다하여 없어지게 한다.
030_0152_b_13L他名爲念時卽自亂是苦不可意自受是自咄行殃亡福地爲是故他人復誦說久殃盡善本
이것이 스스로 꾸짖는 사람은 알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의 도(道)를 보고 나서도 다른 사람을 꾸짖을 마음을 내는 것이다. 즉 그 자신은 이러한 까닭으로 두 가지 꾸짖음을 행사하여 지금 현세에서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또한 자신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030_0152_b_15L是爲自咄不見當那見他人道已咄他人爲意卽當身從是因緣爲兩咄今現世不安他人亦自身
이러한 인연으로부터 꾸짖음이 비롯되니 도인(道人)은 이와 같은 것이 독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사(生死)에 유전(流轉)하지 않도록 제어하고, 오랫동안 재앙의 독기가 일어나 선의 근본을 덮지 않도록 한다.
030_0152_b_18L從是因緣咄道人知如是毒起可制人在生死爲久殃毒起爲蓋善本
보살에게는 다섯 가지 법행(法行)이 있다. 첫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며, 셋째는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되갚는 것이다.
030_0152_b_20L菩薩有五法行一者早起二者待時三者不犯人四者常念五者反覆
030_0152_c_01L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정진하면서 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잠시라도 함께할 사람이 이르러 만약 선한 마음으로 왔다면 마땅히 그와 함께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030_0152_b_22L等爲早起謂精進念道何等爲待時謂須有所與者到若善意來便當與之卽行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롭도록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항상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얻도록 하고, 현관(縣官)에 잡혀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려고 하며, 아픈 사람들을 치유되도록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보시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되갚는다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1전(錢)짜리 물건을 받았으면 백 배, 천 배로 갚으려 하는 것이 되갚는 것이다.
030_0152_c_02L何等爲不犯人謂一切能饒何等爲常念謂欲使人得利有縣官欲使解有病者欲使愈貧欲與布何等爲反覆從人受一錢物欲償百倍千倍是爲反覆
보살은 생사(生死)와 만날 수 있지만, 생사의 일이나 생사에 대한 마음이 없다. 아라한은 세간도 끊고 마음[意]도 끊었지만, 보살은 세간은 끊지만 마음은 끊지 않는다. 마음을 끊지 않는 까닭은 마땅히 불도를 얻어 세간 사람들을 건너게 하기 위해서다. 보살은 세간의 일에 대한 논의를 무서워하여 어기지 않기 때문에 세간의 일을 끊는다.
030_0152_c_06L菩薩與生死會無生死事有生死意阿羅漢斷世閒亦斷意菩薩斷世閒不斷意所以不斷意當得佛道度世閒人故菩薩畏世閒事論不犯故斷世閒事
보살은 생사의 마음을 끊지만 생사의 일을 끊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세간에서 행위는 하지만 악을 짓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다섯 가지 정(情)7)을 끊을 뿐이지 마음[意]을 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살의 마음은 생사와 더불어 합하기 때문에 마음을 끊지 않나니, 시방의 사람들을 건너게 하기 위해서다.
030_0152_c_10L菩薩斷生死意不斷生死事謂在世閒所作但不作惡耳菩薩但斷五情不斷意何以故菩薩意與生死合故不斷意欲度十方人故
보살이 보시ㆍ지계ㆍ출가ㆍ지혜ㆍ정진ㆍ인욕ㆍ지성(至誠)ㆍ용(勇)ㆍ염선(念善)ㆍ고망(顧望)의 열 가지 일을 간직하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030_0152_c_14L菩薩所以布施持戒出家智慧精進忍辱至誠念善顧望持是十事得佛智慧
보살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마땅히 계를 간직해야 하고,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마땅히 보시를 해야 하며, 호족의 집에서 태어나면 마땅히 인욕할 줄 알아야 하고, 산중에서는 응당 선정(禪定)에 들어야 한다. 보살은 이 때문에 4의지(意止)8)와 7각의(覺意)9)를 닦아 4의지를 얻고 7각의를 얻는다.
030_0152_c_17L菩薩生貧家當持戒在富家當布施在豪家當忍辱在山中當禪菩薩所以四意止七覺意已得四意止便得七覺意
보살이 도를 실천함에 있어서는 네 가지를 보고 증험할 수 있다. 첫째는 늙는 것을 보는 것이고, 둘째는 병드는 것을 보는 것이며, 셋째는 죽음을 보는 것이고, 넷째는 괴로움을 보는 것이다. 그것들이 촉박하고 급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를 실천한다. 사람은 날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찌 임종의 자리에서 죽을 때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그 시기가 이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030_0152_c_20L菩薩出行道見四證一者見老二者見病三者見死四者見苦見促急故行道人日趣死何故不畏臨死時以故畏期到故
030_0153_a_01L보살이 이미 불도를 얻으면 4제(諦)를 말하게 된다. 4제를 말하는 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선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안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넷째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으로 인해 커다란 감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4제를 말하는 것이다.
030_0153_a_01L菩薩已得佛道便說四諦何以故四諦有四因緣一者用未曾聞故用禪故三者用得眼故四者用得慧故用老憂不得出大獄故說四諦
보살이 경을 말하는 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국왕이 기뻐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고, 넷째는 때[時]가 왔기 때문이다. 때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기뻐하며 향하는 때이다.
030_0153_a_06L菩薩說經有四因緣一者國王喜人所樂三者意受四者何等爲時謂人喜向時
보살은 스스로 헤아려야 한다. 즉 어떤 인연으로 고(苦)에 관한 사념(思念)을 얻고 그로부터 생(生)을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생을 얻고 그로부터 실천[行]을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실천을 얻고 그로부터 어리석음[癡]을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어리석음을 얻고 그로부터 애(愛)를 얻었는지를, 어떤 인연으로 애를 얻고 그로부터 수(受)를 얻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감수[受]하는 바가 없으면 얻는 바도 없다.
030_0153_a_09L菩薩自校計何因緣得思念從生得何緣得生從行得因緣得行從癡得何因緣得癡從愛何因緣得愛從受行不受亦不得
보살은 1백 겁의 세월을 마치 하룻밤과 같이 여긴다. 왜냐하면 세간 사람들은 병의 고통을 하루도 참기 힘들지만 보살은 1백 겁 동안 고통을 감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이는 사람이 하루 동안 병의 고통을 받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030_0153_a_12L菩薩視百劫如一宿何以故世閒人不能忍病一日菩薩耐痛百劫譬如人一日病
어느 때 하루 동안만 도(道)를 실천하더라도 그 복은 1백 겁이 지나도록 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1백 겁의 세월을 마치 하룻밤 정도로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어느 때 보살이 법도를 실행하여 경전의 뜻이 생사에 있지 않다고 말할 경우에는 1백 겁의 세월을 하룻밤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030_0153_a_15L有時行道一日其福百劫未盡故言視百劫如一宿有時菩薩轉行說經意不在生死視百劫如一宿
보살이 불도를 아직 얻지 못한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인연이 없는 일이나 사물을 지으려 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아직 도를 얻지 못한 것이다.
030_0153_a_17L菩薩未得佛道用三事一者不與善人相逢二者欲所作無有因緣亦物三者不校計是非坐是事故未得道
보살은 세 가지 일과 함께하면 불도를 얻지 못한다. 첫째는 세간에서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한 경우이며, 셋째는 산란한 마음이 멸하여 없어지지 않은 경우이다.
030_0153_a_20L菩薩坐三事不得佛道一者在世閒久不覺故二者不得善知識故三者亂意不滅盡故
030_0153_b_01L보살이 세 가지와 함께하면 도를 얻을 수 없다. 첫째는 법을 듣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선지식이 없는 경우이다.
030_0153_a_23L菩薩坐三事不得道一者不聞二者不自意生三者無善知識
보살은 또한 죄에 빠질 수도 있고 죄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마음이 세간을 따르면 죄에 빠지고, 마음을 세간에 두면 어리석게 되지만, 마음을 출세간에 두면 지혜로워진다.
030_0153_b_02L菩薩亦入罪亦出罪意隨世閒爲入意在世閒爲癡出世閒爲慧
보살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첫째는 자신이 편안하게 누워 지내기를 바라니, 말하자면 방탕한 생활을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편안하게 실천하기를 바라니, 즉 질투와 성냄과 어리석음을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두 가지 소원이다.
030_0153_b_04L菩薩有二願一者願令我臥安隱不念婬妷二者願令我行安隱謂不念嫉瞋恚愚癡是爲二願
보살은 복에 머무르기도 하고 복을 싫어하기도 하며 죄에 머무르기도 하고 죄를 지키기도 한다. 죄든 복이든 일단 갖추어지면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보살이 전세(前世)의 숙명(宿命)을 잘 알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죄를 지어 악한 일을 범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030_0153_b_07L菩薩在福憎福在罪守罪俱有罪福要不可離但當識菩薩不識宿命不得佛何以故不識罪犯惡故
보살은 3악도(惡道)의 실천을 짓지 않아야 한다. 3악도의 죄과를 모두 변상하여 마치고 나면 아유월치를 얻을 수 있고, 보살이 3악도의 죄의 다소(多少)를 헤아릴 수 있는데, 그렇게 1백 겁을 가득 채우면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030_0153_b_10L菩薩不作三惡道行俱償三惡道罪畢乃得阿惟越致菩薩能計三惡罪道多少滿百劫乃得佛
보살이 기별을 받아 98겁을 마쳤더라도 아직 엷을 수 있다. 왜냐하면 보살이 실천하는 가운데는 4평등심(平等心)으로 시방의 5도(道)10) 중생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해탈하도록 하고, 몸을 던져 배고픈 호랑이와 매의 먹이로 제공하거나 자신을 손상시켜 다른 사람을 살게 하면 마땅히 공덕을 가득하게 이룰 수 있지만 아직 모든 것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했다면 부처의 지위를 얻는 일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030_0153_b_13L菩薩已受莂九十八結悉有但薄耳何以故悉在菩薩行中四等心憂念十方五道欲令解脫投餧餓虎肉與自殞活人當滿功成相結未悉除得佛乃斷
보살은 자신의 아내,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끊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데, 그러면 어떤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인연이 있다.
030_0153_b_18L菩薩能持妻子斷頭與人乃爲得何等意有是二因緣
첫째는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그것들을 제공하여 그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어 탐욕의 죄와 성내는 죄가 더욱 무거워지게 되니, 그 사람이 성낼 것을 염려한 까닭에 자신의 머리와 아내를 그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030_0153_b_20L一者自念我不欲令人瞋恚二者與之令其人得定意不與者令其人亂意貪婬有罪瞋恚罪重恐其人瞋恚故持頭妻子與之
030_0153_c_01L보살이 몸뚱이를 배고픈 호랑이에게 제공하고 목을 끊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몸을 버림으로써 보시를 실천하여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헤아리기 때문이다.
030_0153_b_23L菩薩持身餧餓虎斷頭與人有三因一者計身會當棄捐持用布施爲行福
둘째는 비유하자면 원수를 갚으려면 원수가 죽어야 기쁘듯이 보살은 일체의 악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생긴다는 것과 얼마간의 고통과 꾸지람은 모두 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이미 이와 같이 헤아리므로 몸에 대한 욕심이 없고 몸을 원수처럼 본다. 그러하기 때문에 애착하지 않는다. 셋째는 정진하여 공덕을 가득 채우고 신속히 도(道)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030_0153_c_03L二者譬如報怨怨家死歡喜薩知一切惡從身生若干苦咄皆從身得已計如是便不欲見身如怨家以是故不愛三者欲精進滿功德疾道故
보살이 자신의 머리와 눈 및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첫째 눈이 색을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눈을 빼낼 수 있는 것이고,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악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끊어 제공하는 것이며, 아내를 주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030_0153_c_07L菩薩持頭妻子與人一者眼不著色爲脫眼頭與人者謂惡起便止爲斷頭妻與者爲除貪婬瞋恚愚癡
도를 실천하는 데는 두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견주어 보는[校] 것이고, 둘째는 헤아려 보는[計] 것이다. 견주어 본다는 것은 가볍고 무거운 정도를 측정한다는 뜻이고, 헤아려 본다는 것은 많고 적은 정도를 계산한다는 뜻이다.
030_0153_c_10L道行有二事爲校爲計校爲輕計爲多少
보살이 기별을 받고서 1백 겁 가운데 나머지 1겁 동안만 사문이 되어 수행하면 되는 경우에 99겁 동안에는 백의(白衣)11)가 된다.
보살이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줄 때에는 그들은 때리는 것을 보고도 단지 뼈와 살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제공한다.
030_0153_c_12L菩薩受莂百劫嘗一劫作沙門九十九劫作白衣菩薩持妻子與人時見捶之但計骨肉不計是我故與之
보살이 부처의 지위를 구하려면 마땅히 불법(佛法)에 맞게 그것을 실천해야 하며, 서른두 가지 사물을 얻어 법에 맞게 실천하더라도 상(相)을 제거하지 못하면 불도를 얻을 수 없다.
보살이 한 번 가엾은 마음을 내면 선정(禪定)보다 1백 배 뛰어나다.
030_0153_c_15L菩薩求佛當如佛法行之當從三十二物得所行如法不可敗相不得佛菩薩有一悲意勝禪百倍
보살은 세간에서 3도(道)12)에 분포되어 있더라도 3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인간 세계나 천상 세계로 이끌어지는 일이 많을까? 3도를 얻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3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몸과 입과 생각[意]의 세 가지 짓는 일이 다하여 없어지면 3도도 또한 다한다.
030_0153_c_18L菩薩在世閒有三道分但不墮三道何故人中天上牽多三道不而得故不復墮三道意三事盡三道亦
030_0154_a_01L보살이 5도(道)를 떠나면 항상 지혜로움[點]과 복(福)이 있게 되며 사람이 죽을 때는 5도의 갈래로 나아간다. 보살은 다시 지혜의 부분으로 가깝거나 먼 것을 알아 염두에 두고, 보살은 지분을 잘 알아 수다원이나 사다함의 지분에는 머물지만 아나함에는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030_0153_c_22L菩薩離五道常有黠福人死時要有五道分菩薩復黠分卽知念遠近菩薩知分在須陁洹斯陁含分不在阿那含何以故不復還故
한 부처님의 세계에는 삼천대천천지(三千大千天地)가 있으며 인간은 생사를 거듭하면서 그 천지간을 떠돈다. 머리카락만큼의 겨를도 그 안에 머물지 않는 바가 없고 짓지 않는 바가 없지만, 오로지 아직 아유월치나 사다함이 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 밖의 모든 이들은 더욱 무수히 많다.
030_0154_a_02L一佛界有三千大千天地人生死遍其天地閒無有如髮不在其中無所不作獨未作阿惟越致斯陁含耳餘悉更無數
부처님께서는 보살이었을 때 이런 마음을 내 어떤 실천을 한 인연으로 현재의 지극한 복덕을 얻으셨으며, 이와 같이 숙명통의 마음[意]을 얻으셨을까? 그것은 세 가지 실천으로부터 비롯되나니, 보시와 제어(制御)와 합취(合聚)로부터 비롯된다.
030_0154_a_05L佛爲菩薩時有是意生爲何等行因現在得福極如是更得宿命意從是三行布施從制從合聚
보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법시(法施)와 물시(物施)이다. 몸과 입의 식(識)을 지키는 것을 제어라 하고, 생각[意]을 지키는 것을 합취라 한다.
또한 보시에서 인연하여 이해를 얻고 탐욕을 끊을 수 있으며, 제어로부터는 성냄과 산란한 마음을 끊을 수 있고, 합취로부터는 스스로를 지켜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다.
030_0154_a_08L布施有二輩爲法施爲物施守身爲御守意爲合聚亦從布施因緣得解斷貪從制爲斷瞋恚亂意從合聚自守爲斷癡
또한 보시로부터는 바른 마음[正意]을 얻을 수 있고, 제어로부터는 바른 말[正語]을 얻을 수 있으며, 합취로부터는 마음이 편안한 것을 실천하는 것을 얻는다.
또한 보시로부터는 보시의 복을 볼 수 있고, 제어로부터는 생각[念]의 복을 말할 수 있으며, 합취로부터는 마음[意]의 복을 말할 수 있다.
030_0154_a_12L從布施亦得正意從制得正語從合聚得意行安隱從布施見布施福從制說念福從合聚說意福
보살은 보시를 함으로써 5도(道)에서 항상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며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왕이 될 수 있고, 지혜가 있으며 항상 자비로운 마음이 있다. 죄과를 마치고 나면 다시는 짓지 않으니 비록 죄에 놓이더라도 죄를 짓는 일이 없다. 또한 인간도 역시 그러하다.
030_0154_a_14L菩薩所以布施者所在五道常饒樂與凡人有異輒得作王智慧常有慈但畢罪不復更作雖在罪無作罪人閒亦爾
보살이 아내와 거주하는 것은 햇수로 25세부터이며 1일생(日生)은 30세부터다. 월력(月曆)으로는 3천 달이 되며, 일력으로는 51세(歲)가 된다.
030_0154_a_18L菩薩與妻子共居年二十一日生三十一月年三十日百日年五十一歲
보살은 단지 악(惡)만을 금하고 집에 거주하는 것[在家]은 금하지 않는다. 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죄를 지어 편안하지 못하지만, 죄를 멀리 피하여 마음에 산란함이 없으면 복이 된다. 비록 집에 있더라도 마치 지옥 속에 있는 것처럼 죄에 대해서 깨닫고 있다면 다시는 쾌락이 있는 처소에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030_0154_a_20L菩薩但禁惡不禁家亂意者爲罪不安隱遠避去無亂意爲福雖在家譬如在獄中但當覺罪不復便所生在樂處故爲菩薩
030_0154_b_01L 사람이 도를 구하면서 인욕하지 않고 감내하지 못하면 수다원의 지위를 얻는다. 부처님께서 전세의 보살이셨을 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불도(佛道)는 얻기가 어려워 한 마디 말에도 40겁이 감소하지만 몸을 배고픈 호랑이에게 제공하면 무리의 보살들보다 9겁을 앞서 수대나(須大拏)13)가 되어 기별을 받는다’고 하셨다. 모든 이들이 정진하여 도를 실천하면 모두 다 부처님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030_0154_a_23L人求道不忍辱不能耐便得須陁洹佛前世菩薩言佛道難得一語減四十劫身餧餓虎出衆菩薩前九劫爲須大拏受莂一切精進行道一切得佛
부인이 있으면 불도를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보살이 집에 있을 때 아내가 있기 마련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려면 아내를 6년 동안 버려야 불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030_0154_b_04L有婦不得佛道菩薩在家時有妻以故得佛用棄妻子六年故乃得佛道
보살은 아내를 원수처럼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괴로움을 제공하고 사람의 번민을 더욱 늘리며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고 사람에게 죄를 증가시키도록 하기 때문이니, 탐애를 따르면 도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원수처럼 여겨야 하는 것이다.
030_0154_b_06L菩薩計妻子是怨家何以故與人苦益人惱亂人意增人罪以隨貪愛便不見道以是故爲怨家
아내를 원수처럼 보면 마음이 탐애를 따르지 않는다. 마음이 일어나면 깨닫게 되니 이것이 깨닫는 마음[覺意]이다. 모든 재물이나 스스로의 몸도 또한 마찬가지다. 천상천하에 온갖 불[火]이 존재하는 까닭은 불씨가 있기 때문이다.
030_0154_b_09L見妻子當如見怨家意莫隨貪愛意起卽覺是爲覺意所有財物自身亦爾天上天下十方一切有火何以故有火已
보살이 아내를 맞이하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숙명업의 복이 똑같기 때문이고, 둘째는 죄를 다 마쳤기 때문이며, 셋째는 마땅히 함께 남녀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고, 넷째는 지혜 있는 사람은 아내를 맞으면 신속하게 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일이 없으면 아내를 맞이할 수 없다.
030_0154_b_12L菩薩娶婦有四因緣一者宿命同福二者畢罪三者應當共生男女黠人娶婦疾得道無是四事亦不娶婦
보살도를 실천하여 시방 천하 사람들의 3독(毒)14)을 끊어 주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도를 실천하여 단지 자신의 3독만 끊으려 하는 경우에는 아라한을 얻게 된다.
030_0154_b_16L爲菩薩道念欲斷十方天下人三毒是故得佛道或有行道但欲自斷三故得阿羅漢
보살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시방 모든 중생들의 어리석음도 무너뜨린다. 아라한은 자신의 어리석음은 무너뜨리지만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무너뜨리지 않는다. 보살은 많은 것을 깨달아 사람들을 많이 가르쳐 도를 실천하게 하니, 이것이 다른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030_0154_b_19L菩薩自壞癡亦復壞十方人癡阿羅漢自壞癡不壞餘人菩薩多覺多教人令得行道是爲壞人癡
시방 천하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이며, 단지 자신만을 걱정하고 시방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라한의 도이다.
030_0154_b_22L憂念十方天下人是爲行菩薩道但自憂身不念十方人是爲阿羅漢道
030_0154_c_01L보살은 악을 무너뜨리고 아라한은 악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보살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전과 계율을 가르쳐 도법(道法)을 따르도록 하니 이것이 악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아라한은 자신만을 지키기 때문에 악을 무너뜨리는 것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030_0154_c_01L菩薩壞惡阿羅漢不壞惡薩教人經戒令隨道法是爲壞惡漢自守故言不壞惡
보살은 자신의 괴로움[苦]을 끊을 뿐만 아니라 시방 사람들의 괴로움을 끊기 때문에 불도를 얻게 되며, 아라한은 자신의 괴로움만 끊을 뿐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은 끊지 않기 때문에 아라한을 얻는다.
030_0154_c_03L菩薩自斷苦復斷十方人苦是爲得佛道羅漢自斷苦而不斷人苦故得羅漢
보살도를 실천하려고 하다가 아라한과를 얻는 자는 마음으로는 불도를 생각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생사에서 실천한 것을 모두 마땅히 얻어 마음으로는 아라한에서 돌아 나올 수 없어 다시 아라한을 헤아린다. 그러나 다시 죄를 갚을 필요는 없고, 다시 생사의 몸을 받지도 않으며 곧바로 세간을 구하기 위해 간다. 이러한 마음을 내기 때문에 아라한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죽거나 윤회하지 않거나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이나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030_0154_c_05L行菩薩道所以轉得羅漢者意念佛道生死不可數所作悉當得之意計是難轉阿羅漢復計阿羅漢不復償不復生死直取度世去用是故轉向阿羅漢無是意無死轉不避苦當得佛道
보살이나 아라한 모두 37품을 경행(經行)하는데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려면 네 가지 마음[意]을 가지고 항상 실천해야 한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다행히 부처님께서 실천하시는 일을 얻고 부처님을 만나 뵙고 내 몸도 마땅히 부처님께서 닦으신 것처럼 닦아야겠다고 인식할 줄 아는 것이다.
030_0154_c_11L菩薩阿羅漢皆從三十七品經行以得佛者持有四意菩薩所常行等爲四一者幸得佛業値佛識我身要當如佛治
둘째는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간직하여 시방의 중생[人非人]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힘을 다하여 일찍이 벗어나지 못한 마음을 끝내 바꾸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본래 머릿속에서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려 했던 마음을 끝내 바꾸지 않는 것이다.
030_0154_c_15L二者常持悲意向十方從悲意盡力未曾離當脫十方人非三者本上頭願佛意不轉
넷째는 세간에서 도를 구하기를 바라고 계를 지키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혜를 늘리면서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네 가지의 마음이 없는 경우에는 아라한을 얻게 된다.
030_0154_c_17L四者在世閒求道護戒教人增慧待期是四意故得佛無是四意故得阿羅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평등하시기 때문에 두 가지 도(道)가 따로 없으며 마음을 따라 실천하여 얻으신다. 탐애를 따르면 5도(道)에서 유전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 등의 괴로움이 함께한다. 마음이 탐애를 따르지 않으면 마치 물을 가지고 불을 끄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탐애를 따르면 땔감을 가지고 불을 돋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르면 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헤아려야 한다.
030_0154_c_20L佛等意故無有兩道隨意行得耳隨愛便爲在五道不得脫便有老爲苦共合意不隨貪愛爲持水滅火已隨貪愛爲持薪增火當諦計隨諦得道
030_0155_a_01L보살이 아내를 맞아들이는 데는 네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는 아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고, 둘째는 홀로 지내고 아내가 없기 때문에 도를 배우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셋째는 숙명업의 근본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악지식(惡知識)이 아내를 맞이하라고 권장하기 때문이다.
030_0155_a_01L菩薩娶婦有四因緣一者恐人言不能得婦故學道二者恐人言孤獨無妻子故學道三者宿命本根未盡惡知識勸令娶婦故
보살은 5음(陰:蘊) 등을 단절하기도 하고 단절하지 않기도 한다. 무엇을 단절하는가 하면 5성음(盛陰)과 12인연(因緣)이다. 단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살이 인연을 경행(經行)하면서 도를 따르는 것이 단절하지 않는 것이다. 보살이 죄업을 다 마치면 결국 도를 얻는다.
030_0155_a_05L菩薩亦斷五陰亦不斷何等爲斷謂斷五盛陰十二因緣不斷者菩薩在經行因緣隨是爲不斷菩薩畢罪畢得道
보살에게는 네 가지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취하지 않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범하지 않으며, 셋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고, 넷째는 질투하지 않는 것이다.
030_0155_a_08L菩薩有四無所畏一者不取人錢不犯他人婦女三者不兩舌四者不嫉妒
보살은 3악도를 끊기 때문에 그곳에서 지내더라도 그 안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보살일 때 아직 3독을 일으키지 않았고 부처일 때는 3독이 존재하지 않지만 인연을 얻으면 3독이 존재하게 된다.
030_0155_a_11L菩薩斷三惡道尚在但不墮中耳薩未起三毒佛時無有三毒得因緣乃有三毒
예컨대 보살이 6년 동안 좌선하여 도를 얻으려는 시점에 이르면 3독이 함께 일어나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으로 하여금 나의 아내를 얻었다거나 나보다 뛰어나다거나 나의 재산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게 하고, 마음이 생기는 즉시 생각이 자라게 된다. 또한 자신이 무수겁 이래로 이 세 가지 악(惡)을 끊어 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멸하면 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030_0155_a_14L菩薩坐禪六年臨當得道三毒俱起癡使意念調達得我婦耶爲勝我耶當復得我財產意適卽時息念我從無數劫以來斷是三惡何以故復念使滅卽得道
보살은 6년 동안 좌선하는 가운데 하루를 쌀 한 톨과 참깨 한 알만 먹는데, 여기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탐욕을 끊는 것이고, 둘째는 죄를 마치는 것이며, 셋째는 배가 굶주리지 않음을 알려는 것이고, 넷째는 배고프다는 생각을 그쳐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것이다. 배가 고파야 도를 얻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은 그 사람들 자신이 배고파 죽을까 두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030_0155_a_18L菩薩坐禪六年日食一米一麻有四因緣一者斷貪二者畢罪三者見不四者止飢意了不食謂人餓得道恐人自餓死
030_0155_b_01L보살은 6년 동안 앉아서 도를 실천하는 가운데 날마다 쌀 한 톨과 참깨 한 알만 먹고 물속으로 들어가 목욕하거나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거나 허공의 나뭇가지를 낮춘 다음 그것을 잡고 매달려 서 있기도 한다.
030_0155_a_22L菩薩坐行道六年日食一米一麻水浴躄地而不起天因按樹枝令低卽攀之而起
보살이 6년 동안 나무 아래서 지낼 때 벌레ㆍ메뚜기ㆍ모기ㆍ등에 등이 괴롭히지 않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본래 무수한 세월 동안 살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평등한 마음을 실천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여러 천상과 귀신들이 옹호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가 머무는 처소도 깨끗하다.
030_0155_b_02L菩薩坐樹下六年蝱不嬈者有四因緣一者本從無數世不殺生二者行等心三者諸天神護四者道力强亦爲處淨
보살에게는 네 가지 그치지 않는 일이 있다. 첫째는 보시를 그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경전 듣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깨끗함을 그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공덕 짓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030_0155_b_05L菩薩有四不戢一者布施不戢二者聞經不戢三者淸淨不戢四者作功德不戢
보살이 처음 출가하여 도를 실천하고 배울 때 여러 대인(大人)들이 말하였다.
“보살은 지금 태자로서 집에 머물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하셨습니까?”
태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세 가지 괴로움 때문에 출가했습니다. 무엇이 그 세 가지인가 하면 늙음과 병듦과 죽음입니다.”
030_0155_b_08L菩薩始出家行學道諸大人謂菩薩今太子居家何故去太子報言我用三苦故去耳何等爲三苦謂老
대인들이 다시 말했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의 일은 세상에 항상 있는 일인데 어찌하여 출가했습니까?”
태자가 말하였다.
“한 가지 병만 얻어도 마음이 즐겁지 않은데 그것들을 어찌 세상에 항상 있게 둘 수 있겠습니까?”
030_0155_b_11L大人復言死事常耳何爲去子言得一病常不喜當那何常
보살은 태어나 땅바닥에 내려 일곱 걸음을 걷고 머물러 서서 오른손을 들고서 말하였다.
“나는 천상천하의 스승이다.”
그런 다음 멈추어 서서 다시는 걷지 않았다.
030_0155_b_13L菩薩生墮地行七步止住擧右手言我爲天上天下師止不復行
보살이 태자일 때 서책을 배우러 스승의 집에 이르자 스승이 물었다.
“무엇을 배우고 싶습니까?”
태자가 말하였다.
“저는 예순 가지의 책을 배우고 싶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예순 가지의 책이란 어떤 것들을 말합니까?”
030_0155_b_15L菩薩爲太子時行學書到師舍師問欲學何等太子言我欲學六十種師問言六十種書皆何等
태자는 곧 차례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저는 단지 한 가지 책만 알 뿐 다른 책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스승께서 아시는 대로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030_0155_b_18L太子便爲師次第說師言我但知一種書能悉知餘書太子言如師所知教我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다음 곧 약간의 문자상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자 스승도 다시 문자상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서 말하였다.
“태자께서 아시는 바가 그 정도나 되시는데 무엇 때문에 저로부터 배우려고 하십니까?”
태자가 말하였다.
“비록 그렇더라도 마땅히 스승께는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030_0155_b_20L已受師教便言是少兩字師更從受兩字師言太子所知乃爾何爲從我太子言雖爾當有師法
030_0155_c_01L보살은 집을 나서 1백 리를 나아가 몸 위에 걸친 진귀한 보배가 달린 옷을 벗어 차닉(車匿)15)에게 넘겨주고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러자 건장하고 잘 걷는 백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핥았다. 차닉이 말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030_0155_b_23L菩薩始出家行百里解身上衣被付車匿持歸白馬健陟淚出舐足車匿言莫使有如是人願者
태자가 답하였다.
“천하의 어리석은 사람도 너와 같은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간 사람들은 단지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괴로운데 무엇을 소원할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즐겁겠느냐? 여전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바라는 것은 어느 때나 풀려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030_0155_c_03L太子報言天下癡無有如汝輩者何以故世閒但有老憂苦當願何等如囚在獄中誰有樂者當尚未離是而復更願當何時脫
비유하자면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토끼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찌 다시 그물 속으로 들어가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겠느냐? 토끼가 그물에서 벗어났다면 끝내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집에 있을 때 오랫동안 이를 생각해 왔고 또한 무수겁 이전 이래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단지 오늘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다.”
030_0155_c_07L譬如獵客網中㝹得脫寧復念還入網中不念得脫如㝹脫終不還歸我在家時念是日久從無數劫以來有是意非獨今日所致也
보살이 태어난 지 이레가 지나자 그 어머니가 임종하게 되는데, 이에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보살을 몸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와 살펴보고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생사법(生死法)에 따라 어머니께 예를 드리고 보살이 존중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7일 만에 임종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 어머니의 숙명이 스스로 그렇게 응한 것이고, 넷째는 사람이 공덕을 지으면 하늘에 올라가 태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030_0155_c_11L菩薩生已七日其母終者有四因緣一者用懷菩薩故天來占視與飯食二者如生死法當禮母以菩薩尊故母七日終三者其母宿命自應爾譬如人有功當封便上天生
보살은 아직 불도를 이루지 못했을 때 다섯 가지 꿈을 꾼다. 첫째는 수미산을 베개 삼고, 둘째는 땅을 침상 삼으며, 셋째는 손으로 바닷물을 덮고, 넷째는 천하가 모두 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를 거닐어도 발을 더럽히지 않으며, 다섯째는 마음으로 앞에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면 위로 27천(天)에 이른다.
030_0155_c_16L菩薩未得佛道時有五夢一者以須彌山作枕二者以地爲牀三者以手蓋海四者天下皆有屎行其上不污足五者心前生一樹上至二十七天
030_0156_a_01L꿈에 수미산을 베개 삼은 것은 천상천하에서 가장 존귀하여 부처님을 넘어설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땅을 침상 삼은 것은 부처님의 몸이 장대하여 위로 28천에 이른다는 뜻이며, 손으로 바닷물을 덮은 것은 경전의 도리를 말하려 하는 이들 가운데 부처님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뜻이고, 똥 위를 거닐어도 발이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천하의 애욕이 부처님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며, 마음으로 앞에 나무를 생각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위로 제27천상에까지 들린다는 뜻이다.
030_0155_c_20L夢枕須彌者天上天下尊無過佛者以地爲牀者佛身長能上至二十八天手蓋海水者諸欲說經道無有勝佛行屎上不污足者天下愛欲無能污佛心者心前生樹者佛語上聞第二十七天上
보살이 여인을 수순하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여인에게 정진하도록 권하려는 까닭이고, 둘째는 여인으로 하여금 따라 실천하도록 하려는 까닭이며, 셋째는 과거의 무수한 세월 동안 지은 나머지 죄와 만났기 때문이고, 넷째는 과거 숙세(宿世)의 원(願)이 여인들을 가르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030_0156_a_03L菩薩隨女人有四因緣一者勸女人精進二者亦欲使女人隨行三者過去無數世餘罪相逢故四者宿命願欲教女人
천(天)이 보살을 시험하는 데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부처의 지위를 얻을 것인지 얻지 못할 것인지는 탐하거나 아끼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만약 보살이 그런 마음을 일으키면 말하기를 ‘경(卿)께서는 불도를 얻으실 텐데 어찌하여 반대로 행동하십니까?’라고 하면 보살은 이로부터 더욱 정진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불도를 얻으면 마땅히 상(相)을 초월하기 때문에 가서 그를 시험하는 것이다.
030_0156_a_07L諸天試菩薩有三因緣一者當得佛不得有所貪惜二者設菩薩起意便謂言卿當得佛道何故反爾菩薩從是增精進三者得佛當相度故往試之
보살은 6바라밀을 실천하고 아라한도 또한 이 여섯 가지 일을 실천하지만 상(相)을 성취하지 못하는 까닭은, 아라한은 단지 단(檀)만 있을 뿐 바라밀이 없기 때문이다.
030_0156_a_11L菩薩行六波羅蜜阿羅漢亦行是六所以相不成者阿羅漢但有檀有波羅蜜
단(檀)이란 보시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고, 바라(波羅)는 생사(生死)를 건너는 것이며, 밀(蜜)은 끝[極]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라한은 단지 일체에게 보시를 실천하지만 시방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단(檀)만 존재한다. 보살은 시방의 인간이나 인간 아닌 모든 이들을 제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바라밀이 존재한다. 여섯 가지 일도 모두 그러하다.
030_0156_a_14L檀者謂與布施波羅爲度生死蜜爲無有極阿羅漢但一切布不願度十方故但有檀菩薩欲度十方人非人故爲有波羅蜜六事皆
부처님께서 보살이셨을 때 부처님께 음식 대접하기를 원하여 작은 콩 다섯 개를 부처님의 그릇 속에 놓았는데 그 가운데 한 개가 땅에 떨어졌다. 나중에 금륜왕(金輪王)16)이 되어서 80세 동안 사천하(四天下)의 땅을 주관하는 것은 네 개의 콩알로 인해 얻은 복 때문이다. 그릇 안에 들어가지 않은 콩은 다시 천상에 올라가 여덟 개의 달[月]을 낳았다. 이렇기 때문에 단바라밀(檀波羅蜜)이 존재한다.
030_0156_a_18L佛爲菩薩時願欲飯佛以小豆五枚著佛應器中其一枚墮地後得作金輪王八十世所主四天下地者得四豆福故其豆不入器中復得上天生八月以是故有檀波羅蜜
030_0156_b_01L보살은 법(法)과 재물을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수순하시어 그것을 받는 이가 편안하도록 생각을 쓰시어 마음속에 복을 얻으려는 생각을 내도록 하시고, 또한 배고프고 춥고 빈궁한 사람들을 생각하여 그들에게 보시하여 모두 편안케 하시니, 이것이 도법(道法)의 보시이다. 1전 값어치의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10천만보다 뛰어나다. 또한 조금 뛰어난 많은 사람들에게는 보시하지 않으니, 도(道)의 마음으로 안온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030_0156_a_22L菩薩布施法物與人佛意隨物行念令受者安隱若意生念欲得福便念飢寒貧窮者當用與皆令安隱是爲道法布施與一錢物勝十千萬復不施與少勝多者用有道意令安隱故
만약 사람의 생명이 끊어지려고 할 때 마음이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에 있으면 곧 아유월치를 얻게 되고 기별을 받는다. 만약 본래 아라한을 구하면 아나함을 얻게 되어 비상(非常) 등 네 가지에 이르기가 어렵다. 아유월치를 얻는 까닭은 본래 과거세에 정진했기 때문이다.
030_0156_b_04L若人命欲絕時意在非常非身便得阿惟越致爲受莂若本求阿羅漢得阿那含四非常意難致所以得者有本世精進行故
보살이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와 살모사 한 마리가 각자 서로에게 무엇이 괴로움[苦]인지 질문하였다.
까마귀가 말했다.
“배고픔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 어떻게 그것이 괴로움인지를 아는가 하면 배가 고프면 걸어 다닐 수도 없고, 어떤 일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사람도 배고픔에 처하면 굶어 죽으니 그래서 배고픔이 괴로움인 줄 알 수 있다.”
030_0156_b_08L菩薩在樹下坐禪有一烏一鴿一虺自相問何等爲苦烏言飢最爲苦何以知爲苦不能行亦不能有所作人坐飢餓死以是知飢爲苦
비둘기가 말했다.
“유독 색(色)이 괴로움이다. 어떻게 색이 괴로움인지를 아는가 하면 사람의 마음이 색을 생각하는 것은 끝이 없어 인간은 모두 색(色)에 얽혀 죽으니 그래서 색이 괴로움인 줄 알 수 있다.”
030_0156_b_12L鴿言獨色爲苦何以故知色爲苦人意念色無有終極皆坐色死以是知色爲苦
살모사가 말했다.
“오직 성냄[瞋恚]이 괴로움이다. 어떻게 성냄이 괴로움인지 알 수 있는가 하면 사람은 성냄을 피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이려 하지 않는가. 때문에 성냄이 괴로움인 줄 알 수 있다.”
030_0156_b_14L虺言獨瞋恚爲苦何以故知瞋恚爲苦人瞋恚無所避欲自殺亦欲殺人故知瞋恚爲苦
보살이 말하였다.
“그대들이 각기 한 가지 일을 말하였으니 나도 그대들을 위하여 한 가지 일을 말해 주겠다. 그 예를 따라 말하자면 오직 태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다. 몸이 있으면 괴롭지 않은 일이 없으니, 이를 비유하자면 보살이 108가지 애행(愛行) 안에 있는 것과 같다.”
030_0156_b_17L菩薩言我曹各說一事當復爲汝說一事因言獨不生無有苦耳身無有不苦者是譬在菩薩百八愛行中
보살이 아직 불도를 얻지 못했을 때 다섯 스승이 있었다. 첫째는 니건(尼建)이고, 둘째는 막건(莫乾)이며, 셋째는 아이(阿夷)이고, 넷째는 나건(羅乾)이며, 다섯째는 나화건(羅和乾)이다.
030_0156_b_20L菩薩未得佛道時有五師爲尼健爲莫乾爲阿夷爲羅乾羅和乾
030_0156_c_01L경법을 말씀하실 때 예를 받지 못하면 보살은 한 게(偈)를 5백만(百萬)에 구입한다. 구입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차례대로 구입하는 것이고, 둘째는 반복하여 구입하는 것이며, 셋째는 베풀어 준 것을 보상하고 구입하는 것이다. 보살은 은혜를 생각하기 때문에 베풀어 준 것을 보상하고 받는 것 또한 죄가 없다.
030_0156_b_23L說經法不得受禮菩薩買一偈五百萬者買有三輩爲第買爲反覆爲償賜買菩薩念恩故償賜者亦無罪
보살은 법을 실천할 때 마땅히 시방의 모든 사람들이 안정된 마음으로 일심(一心)의 상태에 들도록 소원하면서 주문을 외우며 말한다. 자신의 마음이 선정에 들지 못하면 주문을 외워 소원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생사(生死)에 머물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선정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선정의 상태에 있게 할 수 없다.
030_0156_c_04L菩薩所行法當呪願十方人民復言當定意一心者自意不定亦不而呪何以故用意在生死故自意不定亦不能意定人意
담마(曇摩)는 법(法)이라는 뜻이고, 아게(阿偈)는 당래(當來)라는 뜻이며, 살(薩)은 상(常)이라는 뜻이고, 파륜(波輪)은 눈물이 흘러나온다는 뜻이며, 아무타(阿蕪陀)는 명(命)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030_0156_c_08L曇摩爲法阿曷爲當來薩爲常波輪爲淚出阿蕪陁爲命不可數
살파륜보살(薩波輪菩薩)이 항상 눈물을 흘리는 데는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경전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인연을 좇아 도인(道人)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시방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스스로 시방세계를 넘어서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030_0156_c_10L薩波輪菩薩常悲淚出有四因緣不能解經意二者從因緣得道人亦不知三者念十方人四者自念過度十方
어느 때 불도를 얻을 것인가? 보살이 말하기를 ‘지혜[點慧]를 간직하여 마음이 일어나고 멸함을 알 때이다’라고 한다.
030_0156_c_14L當何時得佛菩薩語言持黠慧持意知起滅
도(道)는 무위를 실천하는 것이지만 다만 마음[意]을 지키기 위하여 37품을 경력하며 실천한다. 다시 보시와 지계 등을 실천하는 것은 보살이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다. 신속히 생사를 끊어 버리면 복이 충분하게 차지 못한다.
030_0156_c_15L道行無爲但當守意行三十七品經所以復布施持戒者菩薩哀人故斷生死亦福未滿
보시를 하는 까닭은 후세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면 재산이 없어 악한 인연에 떨어지게 되고, 부유한 집에 태어나면 마음이 편안하여 간교하고 사악한 인연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시를 하는 것이다.
030_0156_c_18L所以布施後世不欲墮貧家墮貧家無所有便墮惡因墮富家者意安隱不隨奸惡以是故布施
계를 간직하는 까닭은 장수할 수 있고 도를 실천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계를 간직하지 않으면 오래 살 수도 없고 도를 실천하여 얻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수명이 열 살 정도일 때 목숨이 다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를 간직해야 한다.
030_0156_c_21L所以持戒者長壽乃得行道不長不得行道何以故或壽十歲有所知便壽盡以是故持戒
030_0157_a_01L살생을 하지 않으면 장수할 수 있다. 훔치지 않는 까닭은 그 재물의 주인이 그 사실을 알면 마땅히 두드려 구타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이런 악한 마음이 재앙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훔치지 않는다.
030_0156_c_23L不殺便得長壽所以不盜者時念其主覺知當撾打有是惡意當復得其殃以是故不盜
거짓말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불도는 진실하니 거짓말하는 것은 불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고, 뒤에 여러 사람들이 불신하게 되며 지금 보이는 것이 악한 것이 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030_0157_a_03L所以不兩舌者何佛道至誠兩舌爲不隨道後爲衆人所不信今可見是爲惡以是故不兩舌
사음(邪淫)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유하자면 동쪽을 향해 바라보면 서쪽은 보이지 않듯이 마음을 음란함에 두면 도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음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취하게 되면 험한 말과 거짓말을 하게 되고 허망하게도 법에 맞지 않는 일을 짓게 된다. 설령 사람이 어떤 일을 잘 하더라도 언제나 스스로 마음을 어지럽게 하니, 이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030_0157_a_05L所以不婬者何譬如東向視不見西意在不隨道以是故不婬所以不飮酒者何醉便惡口兩舌妄作非法設人善能尚自亂意以是故不飮酒
보살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사문이 된다. 부모가 말씀하시기를 ‘너는 생각이 전도되어 있다. 보살도는 마땅히 시방의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고 해탈시키려 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오히려 부모를 근심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한다.
030_0157_a_09L菩薩辭親行作沙門父母言汝所爲顚倒菩薩道當爲十方人求願令解今反近令父母得憂是爲何等
보살은 답하기를 ‘저에게 근심이 있으면 부모님께도 걱정이 되며 제가 도를 얻어 근심이 없어지면 부모님 역시 근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030_0157_a_12L薩報言我有憂故父母有憂我得道便無憂父母亦無憂
비유하자면 친척과 권속에게 근심이 있으면 자신도 또한 그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는데 한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자신도 역시 근심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 근심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는 부모님도 근심하지만 자식이 도를 얻으면 부모님도 곧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030_0157_a_14L譬如親屬有憂身亦憂之復譬如兩人俱行一人有身亦復憂子憂不解故令父母憂子以得道父母便脫於憂
이윽고 유마라달달(維摩羅達達) 여인이 문수사리보살에게 아뢰었다.
“문수사리시여, 만약 제일 깊은 실천[行]을 따르면 보살은 이미 기별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인연으로부터 아주 깊게 단절한 것이니 어떤 사람도 인연을 따르는 실천을 하는 이가 없습니다.
030_0157_a_17L便維摩羅達達女子告文殊尸利菩薩若文殊尸利第一深隨行爲菩薩已是爲從因緣深深絕無有人隨因緣行
이와 같은 인연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마음으로도 관찰할 수 없으며, 인식[識]할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습니다. 인연이 만약 아주 깊게 단절되었다면 마땅히 존재하는 바도 없고 감촉할 바도 없을 것입니다.”
030_0157_a_21L如是因緣亦不來亦不去亦不眼中可觀亦不可意觀亦不可識不可行因緣若深深絕當爲無所有無所屬
030_0157_b_01L문수사리보살이 대답하였다.
“본바탕의 요체(要體)가 깊은 것을 깊다고 말하느니라.”
유마라달달이 다시 물었다.
“근본 바탕이 없으면 요체가 없는데 이와 같다면 문수사리시여, 지혜로운 것[點]입니까,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다시 대답했다.
“이 일은 무엇을 이르는 말이며,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이냐?”
030_0157_b_01L文殊斯利菩薩便報本要爲深是爲深維摩羅達達復報言以無有本爲無有要如是爲文殊斯利不黠文殊斯利復報言是事云那當說何等
유마라달달이 대답하였다.
“말한 바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문수사리가 답하여 말했다.
“여래의 각행(覺行)은 생사(生死)를 볼 수가 없느니라.”
030_0157_b_05L維摩羅達達復報言有說已過去文殊斯利復報言如來覺行不可生死見
문수사리는 말을 그치고 더 이상 그 여자 보살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유마라달달은 일명 출구(出垢)라고도 한다.
그녀가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030_0157_b_07L文殊斯利便止不復語女菩薩維摩羅達達――一名爲出垢――問舍利曰爲悲哀我故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지혜로움 가운데 제일가는 지혜로움을 그대는 가지고 있구나. 만약 지혜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은 텅 비어 허망하고, 허망하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미 없다면 생기지도 않고, 생기지 않는다면 함께할 수도 없으니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030_0157_b_09L舍利曰第一卿所黠爲有若有者當爲空爲妄爲妄諸若無有已無有不生已不生爲不共會若有是
문수사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지혜로움이 없었던 화수밀(和須蜜)이라는 보살은 한 아라한경(阿羅漢經)도 어려워하여 아라한경이 이해가 안 가자 한마음[一心]으로 마음[意]을 내어 미륵보살에게 물었느니라. 질문을 받자 미륵보살은 화수밀에게 답하여 말했느니라.
‘그대가 질문한 것을 차례대로 해설해 주겠다.’
030_0157_b_12L舍利曰無有黠菩薩字和須蜜難一阿羅漢經阿羅漢不而解便一心生意上問彌勒便報和須蜜言卿所問事次第爲解之
화수밀은 곧 깨닫게 되어 아라한을 힐책하게 되었느니라.
‘그대들도 한마음으로 미륵보살에게 질문하겠는가?’
아라한은 실로 그렇게 했느니라.
한마음으로 묻는 인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알기 때문이고, 둘째는 몸을 변화하는 것에 관해 묻는 것이며, 셋째는 전세(前世)에 실천하고 들은 바가 있으면 곧 이해하기 때문이다.
030_0157_b_16L和須蜜覺知便詰阿羅漢卿適一心上問彌勒耶阿羅漢實然一心上問有三因緣一者意意相知二者化身問三者先世所行聞卽便解
화수밀보살은 스승을 받들어 모시고 4아함경(阿含經)을 세 번 외우고 꽃을 가지고 스승의 위에 뿌리며 스승께 말했느니라.
‘저는 이미 4아함경을 다 외웠습니다.’
스승은 잊고 다시 기억하지 못했느니라.
화수밀은 다시 스스로 생각했느니라.
‘내가 이 4아함경을 합하여 그 요체를 간추려 하나의 경권(經卷)을 지으면 네 무리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030_0157_b_19L須蜜菩薩事師三諷經四阿含持花散師上語師言我已諷四阿含師忘不能復識和須蜜復自思惟我欲合會是四阿含中要語作一卷可於四輩弟子說之
030_0157_c_01L여러 도인들이 경전을 듣고 모두 환희하여 많은 사람들이 듣고 물으려 왔지만 좌선을 얻지는 못했느니라.
여러 도인들이 말했느니라.
‘우리가 경을 듣는 것은 단지 좌선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도 모두 도를 실천하고 있으니 다시 경전을 들을 필요가 없다. 마땅히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030_0157_c_01L諸道人聞經皆歡喜大來聽問不而得坐禪諸道人言我所聽經者但用坐行故令我悉以行道不應復聞經但當舍去
화수밀은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손을 불 속에 집어넣어 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나서 ‘이래도 정진하지 않았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느니라. 큰 돌 위에 앉아 도를 실천하는 경우에는 마땅히 부드러운 자리에 앉아야 하느니라.
화수밀은 말했느니라.
‘나는 돌을 취하여 돌 한 덩어리가 튀어 올라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아라한을 얻을 것이다.’
030_0157_c_04L和須蜜知其心所念因以手著火中不燒是不精進耶便於大石上坐有行道當於濡坐和須蜜言我取石跳一未墮地便得阿羅漢
이미 튀어 올랐던 돌은 꿈적하지도 않아 천인(天因)들이 그 돌을 위로부터 끌어내리려 해도 땅바닥에 떨어지게 할 수 없었느니라. 그러자 화수밀보살이 다음과 같이 말했느니라.
‘당신들이 보살도를 구하고 계시니 저는 당신들로 하여금 해탈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20겁이 지난 뒤 당신들은 불도를 얻으시어 선량한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030_0157_c_08L已跳石便不肯起天因於上牽其石不得令墮卿求菩薩道我曹悉當從卿得脫後二十劫卿當得佛道莫壞善意
그 가운데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사문이 말했느니라.
‘악인들이 나라 안에 책이 보급되어 서로 말해 주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화수밀은 사람들을 파견하여 책을 구하게 하였고, 책이 돌아오자 책에 대해 말해 주었느니라.
문수보살이 말하였느니라.
‘이 훌륭한 사람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교화하자면 마음속으로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내려고 하지 않고 단지 악인들이 죄에 떨어질까 염려하고 있다.’
030_0157_c_11L有未得道沙門言是惡人不當令在國中轉書相告和須蜜遣人求書反言此好人而教化開人意不欲自貢高但畏惡人墮罪
또한 시방의 사람들을 넘어서려면 도의 마음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불국토의 여래와 같이 정각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내가 말한 바는 마땅히 일체 시방의 보살들을 위한 것이니라. 또한 중정(中正)한 마음이 없으면 허망함에 이르러 진리[諦]를 넘어서지 못하니, 불도를 얻는 것도 그러하느니라.
030_0157_c_15L復欲過度十方人道意如恒邊沙譬喩佛國如來無有著正覺我所說當爲一切十方菩薩亦不中意爲妄到得無有過諦佛得亦所
보살은 네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깨끗함을 얻게 되고 그것도 신속히 얻을 수 있나니,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意]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불국(佛國)에 있을 경우에는 깨끗해지느니라. 이와 같으면 네 가지가 깨끗해지고 그것도 신속히 깨끗함을 얻을 수 있느니라.
030_0157_c_19L菩薩行四種從得淨當爲疾得何等爲四種第一爲人淨第二爲法第三爲可淨第四爲意淨在佛國故淨如是爲四淨爲疾淨得亦所
030_0158_a_01L보살은 네 가지 다가법(多可法)을 마땅히 신속히 얻어야 한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몸을 사랑하고, 입을 사랑하며, 마음을 사랑하고, 그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네 가지 다애법(多愛法)이니, 신속히 얻어야 하느니라.
030_0157_c_22L薩四多可法當爲疾得何等爲四愛口愛意愛止是爲四多愛法爲疾得
보살은 또한 네 가지를 간직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사람들을 향해 깊은 인욕을 신속히 얻어 간직하고, 둘째는 사람들을 향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모습을 신속히 얻어 간직하며, 셋째는 사람들을 향해 복을 실천하는 것을 잘 알아 신속히 간직하고, 넷째는 사람들을 위하여 신속히 간직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사람들을 향해 네 가지를 간직하여 신속히 훌륭한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니라.”
030_0158_a_02L亦爲四持――向人爲疾得深忍辱向人爲疾得所人知善相持向人行福知持向人爲疾得是爲四持向人疾得使善弟子
문수사리가 말했다.
“부처님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질문하여 그것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 보살이 맑고 깨끗한 실천을 하는 것이니, 그 지혜가 다르지 않다.”
030_0158_a_05L舍利曰如佛意中爲問所欲所念爲菩薩淨行無有異慧
남방에는 보살들이 있는데 그들이 거주하는 성은 둘레가 1만 6천 리이고, 그 안에서 가장 존중받는 보살의 이름은 문수사리다. 여러 대중들을 교화한 다음 부처님의 지위를 얻으니 불가승수(不可勝數)보다 그 덕은 열 배이다.
030_0158_a_07L南方有諸菩薩城周帀萬六千里有最尊菩薩字文殊斯利教授諸已得佛不可勝數其德十倍
담마아게(曇摩阿偈)보살의 성은 모두 7보로 구성되어 있다. 담마아게보살이 거주하는 성은 둘레가 1만 6천 리에 이르며, 땅은 모두 7보로 되어 있다.
030_0158_a_10L曇摩阿偈菩薩城皆七寶曇摩阿偈菩薩所居城周帀萬六千地皆七寶
북방에는 여러 많은 보살들 가운데 살화루(薩和樓)라는 보살이 있는데, 그 덕은 담마아게보살 다음이다.
부처님께는 열여덟 가지 불공법(不共法)이 있으니, 처음 더할 나위 없이 원만 평등한 깨달음[無上等覺]을 얻은 때로부터 세간 사람들을 건너게 할 때까지 무유여니원(無有餘泥洹)을 끝까지 들을 수 있다.
030_0158_a_13L在北方諸菩薩中有一菩字薩和樓其德次曇摩阿偈菩薩佛有十八不共者從初得無上等覺至得度世無有餘泥洹聞至竟
첫 번째, 여래의 실천은 잃는 일이 없다.
두 번째, 여래의 실천은 새는 일이 없다.
세 번째, 여래의 실천은 마음이 마음을 망각하지 않는다.
네 번째, 여래의 실천은 선정(禪定)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030_0158_a_16L第一如來行無有失第二如來行無有漏第三如來行意不忘意第四如來行不離定意
다섯 번째, 여래의 실천은 바뀌지[轉] 않는다.
여섯 번째, 여래의 실천은 다함이 없는 장애를 관찰하신다.
일곱 번째, 여래의 실천은 마음속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성취한다.
여덟 번째, 여래의 실천은 정진함이 감소하지 않는다.
030_0158_a_20L第五如來行不轉第六如來行無盡礙觀第七如來行欲意悉成第八如來行精進無有減
030_0158_b_01L아홉 번째, 여래의 실천은 생각[念]이 멈추지 않는다.
열 번째, 여래의 실천은 결정적이어서 버릴 것이 없다.
열한 번째, 여래의 실천은 지혜는 어느 누구도 그 분과 동등하지 않다.
열두 번째, 여래의 실천은 세간 사람들을 건너 해탈케 하며 남김없이 관찰한다.
030_0158_b_01L第九如來行念不中止第十如來行定無有捐第十一如來行慧無有等第十二如來行度世解脫觀無有餘
열세 번째, 여래의 실천은 과거의 법이 한량없는 것을 안다.
열네 번째, 여래의 실천은 미래가 끝이 없는 것을 안다.
열다섯 번째, 여래의 실천은 현재에 그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열여섯 번째, 여래의 실천은 지혜가 두루 모여서 작용하는 것을 모두 안다.
030_0158_b_05L第十三如來行知過去法無有量第十四如來行知當來無有極第十五如來行知現在無有過第十六如來行有遍慧身所轉悉知
열일곱 번째, 여래의 실천은 명민한 지혜가 있고, 말하는 바가 지혜로운 인식을 떠나지 않는다.
열여덟 번째, 여래의 실천은 산란함이 있더라도 지혜의 마음으로 그것을 떠나 깨닫는다.
이상이 열여덟 가지 불공법이다.
030_0158_b_09L第十七如來行有利慧所說不離識第十八如來行有散慧意離覺是爲十八不共
惟日雜難經一卷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1)범어로는 caryā 또는 carita이며, 그 뜻은 첫째 동작 또는 행위의 의미이며, 둘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 또는 행법(行法)을 가리킨다.
  2. 2)아비발치(阿鞞跋致). 범어로는 avinivartanīya이며, 불퇴(不退)ㆍ무퇴(無退)ㆍ불퇴전(不退轉)ㆍ불퇴위(不退位)라 번역한다. 반드시 성불이 결정되었다는 동시에 보살위에서 타락하지 않을 위치를 말한다. 소승 유부종에서는 예류과(豫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주(初住)ㆍ초지(初地)ㆍ8지(地)를 불퇴라 한다.
  3. 3)12문선(門禪)이라고도 한다. 초선(初禪)ㆍ2선(禪)ㆍ3선(禪)ㆍ4선(禪) 등 4선정(禪定)과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 등 4무량(無量)과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등 4공정(空定)을 합하여 이루어진다.
  4. 4)성문 4과(果)의 하나. 예류과(預流果)의 범명(梵名). 무루도(無漏道)에 처음 참례하여 들어간 지위이다.
  5. 5)무루의 지혜로 4제(諦)를 관찰하여 얻는 열여섯 가지 지혜로 16심(心)이라고도 한다.
  6. 6)서른네 가지 찰나의 마음으로 번뇌를 끊어 없애 불도를 성취한다. 서른네 가지란 8인(忍)ㆍ8지(智)ㆍ9무애(無礙)ㆍ9해탈(解脫)이다.
  7. 7)중생의 다섯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 등의 5근(根)은 정식(情識)을 능히 생하므로 5정(情)이라고 한다.
  8. 8)4념주(念住) 또는 4념처(念處)라고도 한다.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으로 첫째, 몸[身]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과 둘째, 감수함[受]은 괴로움이라는 것과 셋째, 마음[心]은 무상(無常)하다는 것과 넷째, 법은 무아(無我)라는 것을 관찰하여 차례대로 정(淨)ㆍ낙(樂)ㆍ상(想)ㆍ아(我)라는 네 가지 전도(顚倒)를 대치하는 관법을 말한다.
  9. 9)7각지(覺支) 또는 7보리분(菩提分)이라고도 한다. 첫째 염각지(念覺支)는 마음속에 명백하게 항상 선정(禪定)과 지혜를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 택법각지(擇法覺支)란 지혜에 의지하여 진실된 법을 선택하고 허위의 법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 정진각지(精進覺支)란 정법(正法)에 열심히 매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고, 넷째 희각지(喜覺支)란 정법을 얻어 기뻐하는 것이며, 다섯째 경안각지(經安覺支)란 마음이 경쾌하고 편안함을 가리키고, 여섯째 정각지(定覺支)란 선정에 들어 마음이 산란하지 않음이며, 일곱째 사각지(捨覺支)란 마음이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집착이 없어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10. 10)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세계를 말한다.
  11. 11)재가인(在家人)을 뜻하는 대용어(代用語)이다.
  12. 12)지옥ㆍ아귀ㆍ축생의 세계로서 즉 3악도를 뜻한다.
  13. 13)범어로는 Sudāna이며, 석존(釋尊)이 인위(因位)에서 태자로서 보살행을 닦을 때의 이름이다.
  14. 14)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세 가지 번뇌. 독이라 한 것은 『대승의장』에 “3독이 모두 삼계의 온갖 번뇌를 포섭하고, 온갖 번뇌가 중생을 해치는 것이 마치 독사나 독룡(毒龍)과 같다” 하고, 『법계차제』에는 “독은 짐독(䲴毒)으로 뜻을 삼고, 내지 출세의 선심(善心)을 무너뜨리는 까닭이다”라고 한다.
  15. 15)천탁가(闡鐸迦)라고도 음역. 실달태자가 성을 넘어서 고행의 첫 길을 떠날 때에 백마 건척을 끌던 마부 이름이다. 뒤에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는데, 말버릇이 나쁜 성미는 고치지 못하여 악구 차닉ㆍ악성 차닉이라 불린다. 부처님이 입멸하실 때에 아난에게 분부하여 묵빈법(黙擯法)으로 대치(對治)하라고 한 것은 이 차닉을 말한 것이다. 나중에는 드디어 과를 증득하였다.
  16. 16)4륜왕(輪王), 즉 금륜왕ㆍ은륜왕ㆍ동륜왕ㆍ철륜왕 가운데 하나이며 사람의 수명이 8만 4천 세일 때 세상에 출현하여 4주(洲)를 통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