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0_0258_b_01L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 상권
030_0258_b_01L達摩多羅禪經卷上


동진(東晉) 천축(天竺)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한역
홍승균 번역
030_0258_b_02L 東晉天竺三藏佛陁跋陁羅 譯


무릇 3업(業)은 선(禪)과 지(智)로써 일어남을 그 종지[宗]로 삼는다. 비록 그것이 정밀[精]하고 거침에 따라 달리 나뉜다고 하지만 계적(階籍)은 방식이 있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더라도 그 발길이 어지러워지는 일이 없으며, 세속을 혁신함에 있어서 힘쓰는 공(功)을 기다리지 않고도 고요함이 쌓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를 경유하게 되면 깊숙한 경지에 나아가 은미(隱微)함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이 깊고 넓어서 궁구(窮究)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이치가 망령되거나 어두운 것이 아니므로 종지(宗旨)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다.
030_0258_b_03L夫三業之興以禪智爲宗雖精麤異分而階藉有方是故發軫分逵塗無亂轍革俗成務功不待積靜復所由則幽詣造微淵博難究然理不云昧庶旨統可尋
예를 들어 이를 간략하게 본다면, 선(禪)은 지(智)가 아니므로 적(寂)의 끝을 말할 수가 없고, 또 지는 선이 아니므로 조(照)의 깊이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禪)과 지(智)의 종요(宗要)는 곧 조(照)와 적(寂)을 이르는 것이니, 이것은 곧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는 것으로서 곧 조는 적을 떠나지 않고 적은 조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감응하면 함께 노닐고 호응하면 같이 지향하는데, 그 공(功)이 쓰임에 있어서 현묘하여 서로 더불어서 저 만법(萬法)을 기르는 것으로서 실로 이것은 그 묘물(妙物)인 것이다.
그래서 군동(群動)을 운전하여 일(一)에 이르되 유(有)가 아니고, 저 대상(大像)은 아직 그것이 형상을 이루기 전에 확연하되 무(無)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함이 없고 작위함이 없으나 작위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씻어서 마음의 혼란함을 진정하는 자는 이를 통하여 그 생각함을 연마하고, 깨달아서 그 미묘함에 들어간 자는 이를 통해서 그 신통함을 끝까지 하는 것이다.
030_0258_b_08L試略而言禪非智無以窮其寂智非禪無以深其照然則禪智之要寂之謂其相濟也照不離寂寂不離照感則俱遊應必同趣功玄於在用交養於萬法其妙物也運群動以至一而不有廓大像於未形而不無無思無爲而無不爲是故洗心靜亂者以之硏慮悟徹入微者以之窮神也
그리고 만약 장차 그 문(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 근기가 섭회(攝會)에 있다. 그 이치가 현묘(玄妙)하고 그 헤아림이 광대하여 도(道)가 문장[文]에 숨어 버릴 경우, 이것은 곧 아난(阿難)이 곡진히 받는 저 음조(音詔)로서 적절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를 영부(靈符:마음의 집)에 감추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마음이란 원래 일정한 법도가 없고 그 변화가 다양하며, 그리고 수(數)란 정해진 형상이 없고 그 느낌을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축(天竺)을 교화하여 행함에 있어서 장(匠)이 있음을 봉함(封緘)하여 유심(幽深)한 관문을 열 수가 없으므로 공연히 그 뜰만 엿볼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따라서 본다면 이치는 행(行)하고 장(藏)함이 있고 도(道)는 헛되이 전수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이 참으로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030_0258_b_16L若乃將入其門機在攝會玄數廣道隱於文則是阿難曲承音遇非其人必藏之靈府何者心無常規其變多方數無定像待感而應是故化行天竺緘之有匠幽關莫闢罕闚其庭從此而觀理有行藏道不虛授良有以矣
030_0258_c_01L여래니(如來泥)께서 말씀하셨다.
“오래지 않아 아난(阿難)이 그 공행(共行)을 제자인 말전지(末田地)에게 전할 것이며, 말전지는 이를 사나바사(舍那婆斯)에게 전할 것이다.이들 세 응진(應眞:아라한)은 다들 지극한 원(願)을 타고 그윽한 가운데서 옛날에 계합(契合)하니, 그 공(功)이 말[言] 밖에 있다. 그리하여 저 경(經)이 변론하여 밝히지 않은 것은 반드시 어두운 길처럼 그 장(匠)이 없을 것이며 잔약(孱弱)하여 차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우바굴(優波崛)이 있어서 약하면서도 뛰어나고 현명하여 그 지혜가 세상의 모범을 잇고 그 재주가 벼슬을 받는 것보다도 높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치에 접촉해서 간략함을 따라서 8만의 법장(法藏)을 보존하여 간직함에 오직 요령이 있을 것이니, 5부(部)의 나뉨이 여기서부터 비로소 시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인하여 추론해 보면 형운(形運)을 따라 폐하고 흥하되 스스로 조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용(神用)으로 말하면 걸음이 그윽하여 자취가 없고 오묘한 움직임을 찾기가 어려워서 추솔(麤率)함을 집적거려서 이상(異常)만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030_0258_b_22L如來泥曰未久阿難傳其共行弟子末田地末田地傳舍那婆斯此三應眞咸乘至願冥契于功在言外經所不辯必闇軌無匠孱焉無差其後有優波崛弱而超悟智紹世表才高應寡觸理從簡八萬法藏所存唯要五部之分始自於此因斯而推固知形運以廢興自兆神用則幽步無迹妙動難尋涉麤生可不愼乎可不察乎
그리고 이로부터 사변(事變)에 감응하여 구전(舊典)을 생각하게 되는 자가 있을 것이니, 그런 자들이 저들 5부(部)의 학(學)에 모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대법(大法)이 장차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고 이치가 심오함을 개탄하면서 드디어 각각 선경(禪經)을 술찬(述讚)하여 성대한 사업을 융숭(隆崇)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가르침에 있어서 무수한 방편을 사용해서 적연(寂然)함을 구할 것이지만 그것은 오직 고요하고 고요하기만 해서 그 원리는 역시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가지를 찾아서 그 뿌리를 구하는 자는 많겠지만 그 근본을 통섭(統攝)하여 지말(枝末)을 운용하는 자는 적을 것이다. 그래서 더러는 장차 가다가도 이르지 못하고 더러는 그 방법만을 지키어 변하지 못할 것이다.
030_0258_c_09L自茲已來於事變懷其舊典者五部之學竝有其人咸懼大法將頹理深其慨遂各述讚禪經以隆盛業其爲教也無數方便以求寂然寂乎唯寂其揆一耳而尋條求根者衆統本運末者寡將曁而不至或守方而未變
이런 까닭으로 해서 경(經)을 만원(滿願)의 덕(德)이라고 일컬을 것이며, 모든 일[事]의 바람이라고 높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성지(聖旨)를 탐구하여 본다면 다만 장점만을 온전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 또한 이를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저들 5부의 업(業)이 서로 달라서 각각 그에 따른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러나 사람이란 영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도가 혹 융성하기도 하고 혹 쇠퇴하기도 할 것이며, 그것이 각각 흥하고 패하는 때를 따라 서로가 바뀌어 가며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크다거나 적다거나 하여 붙이는 명목이 고정된 것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또 절(節)에 달하여 변(變)을 잘하면 출처(出處)하는 바가 경계가 없어서 그 이름을 감추어 버리고 자취를 지워버린다면 들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자는 다시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저 부(部)로 나눈 것 또한 그 이름이 아닌 것으로서 이처럼 부로 나눈 것이고, 또한 그 밖에 따로 어떤 종문(宗門)을 벗어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030_0258_c_15L是故經稱滿願之德高普事之風原夫聖旨非徒全其長亦所以救其短若然部殊業存乎其人人不經世道或隆廢興有時則互相昇降小大之目其可定乎又達節善變出處無際名寄迹無聞無示若斯人者復不可以名部分旣非名部之所分亦不出乎其外別有宗明矣
030_0259_a_01L매양 저 큰 가르침(불교)이 동쪽으로 전파됨에 있어서 선(禪)의 수가 더욱더 적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를 개탄하여 왔다. 3업(業)이 통서(統緖)가 없어서 그 도가 거의 패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 구마기바(鳩摩耆婆:구마라집)가 마명(馬鳴)이 지은 것을 선양하여 드디어 이 업(業)이 있게 되었다. 비록 그 도가 아직 무르익지는 못하였지만 무릇 이것이 바로 저 산을 만들고자 지금 한 소쿠리의 흙을 담아다 부은 격이라 하겠으니, 그렇다면 장차 그 때가 올 것이라 이것이 기뻐 그 기취(奇趣)가 감격스럽다 하겠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제승(制勝)의 의론을 버리고 불언(不言)의 변(辯)을 따랐다. 그리하여 드디어 승나(僧那:사홍서원)의 지적(至寂)을 입을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기로 맹세하고 그 덕을 생각하여 이를 잊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저 유훈(遺訓)이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이다.
030_0258_c_23L每慨大教東流禪數尤寡三業無統斯道殆廢頃鳩摩耆婆宣馬鳴所述乃有此業雖其道未融蓋是爲山於一蕢欣時來之有遇感奇趣於若人捨夫制勝之論而順不言之辯遂誓被僧那至寂爲已任懷德未忘故遺訓在茲
그 요지를 말한다면 아직 어떤 상(象)이 나타나기 전에 크게 이루기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미언(微言)을 열어서 본체(本體)를 높인 것이다. 그리하여 색(色)에 미혹하여 덕에 어긋남을 깨달아서 6문(門)을 막아 환란(患亂)을 잠재웠으며, 성냄이 본성을 해친다는 것에 통달하여 나와 남을 동일시해서 이것을 마음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족(異族)이 동기(同氣)로 그 형상을 바꾸고 자취를 만들었으며, 깊이 연기(緣起)에 들어가서 생사의 경계를 보았다. 그리하여 곧 9관(關)을 용진(龍津)에다 열어서 3인(忍)을 뛰어넘어 지위가 올라갔으며, 번뇌의 습기(習氣)가 무생(無生)에 엉기고 육체적인 고통들이 신화(神化)에서 그 종결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아무것도 따라서 생기는 것이 없지만 그러나 무엇이든 생기지 않는 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들이 생기면서도 생기는 것이 없는 것이다.
030_0259_a_06L其爲要也大成於未象開微言而崇體悟惑色之悖德杜六門以寢患達忿競之傷齊彼我以宅心於是異族同氣形造迹入深緣起見生死際爾乃闢九關於龍津超三忍以登位垢習凝於無生形累畢於神化故曰無所從靡所不生於諸所生而無所生
그런데 지금 여기서 번역하는 것은 달마다라(達摩多羅)와 불대선(佛大先)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분들은 서역(西域)의 뛰어난 분들로서 바로 선훈(禪訓)의 종장(宗匠)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경요(經要)를 수집해서 대승을 발하기를 권면하였다. 그러나 홍교(弘敎)가 서로 같지가 않기 때문에 서로들 자세하고 간략한 차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달마다라가 모든 편장(篇章)들을 모아서 이를 같은 도(道)로 만들어서 항하사와 같은 다양한 것들을 한 가지 빛깔로 열어 놓았다.
그런데 그가 본 관점은 곧 일어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소멸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가고 오는 것이 아무리 한정된 경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찍이 진여(眞如)를 벗어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색(色)이 진여를 떠난 적이 없고 진여가 색을 떠난 적이 없으니, 색이 곧 진여이며 진여가 곧 색인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030_0259_a_13L之所譯出自達摩多羅與佛大先其人西域之儁禪訓之宗搜集經要勸發大弘教不同故有詳略之異達摩多羅闔衆篇於同道開一色爲恒沙其爲觀也明起不以生滅不以盡雖往復無際而未始出於如故曰色不離如如不離色色則是如如則是色
030_0259_b_01L그리고 불대선께서 그 근원을 맑게 하여 흐름을 이끌어 놓았으므로 그것이 차츰 흘러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두 가지 도로부터 감로의 문을 열어 놓았으니, 곧 4의(義)를 풀이하여 미망(迷妄)으로부터 돌아오도록 하였으며, 돌아올 길을 열어 주어서 이를 영회(領會)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음계(陰界)를 분별하여 이를 바른 관점으로 이끌어 주었으며, 연기(緣起)에 대하여 이를 시원스럽게 흩어버려서 스스로 우열을 가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근원을 추구하여 그 종말에 돌아옴으로써종극(終極)의 오묘함을 찾도록 하였다. 그러나 종극이란 그것이 다하는 것이 아니니, 또한 다하게 되는 것도 아니어서 이것을 일러 무진(無盡)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래의 무진법문(無盡法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 도(道)가 3승(乘)을 통괄하고 그 지혜가 10지(地)를 통달하지 않고서야 누가 능히 그 현근(玄根)을 법신(法身)에다 통개(洞開)할 수 있고, 그 종일(宗一)을 무상(無相)에다 귀숙(歸宿)시킬 수가 있겠으며, 그리하여 정(靜)이 비추어 주지 않는 곳이 없고 동(動)이 적(寂)을 떠나지 않도록 할 수가 있겠는가?
030_0259_a_20L佛大先以爲澄源引流固宜有漸是以始自二道開甘露門釋四義以反迷歸塗以領會分別陰界導以正觀散緣起使優劣自辯然後令原始反終妙尋其極其極非盡亦非所盡乃曰無盡入于如來無盡法門非夫道冠三乘智通十地孰能洞玄根於法身歸宗一於無相靜無遺照動不離寂者哉庾伽遮羅浮迷譯言修行道地

1. 수행방편도안나반나념퇴분(修行方便道安那般那念退分)
030_0259_b_06L修行方便道安那般那念退分第一

석가모니 세존께 예배를 올리니
타오르던 번뇌가 사라지는구나.
유전(流轉)하여 퇴주(退住)하는 자를
승진(升進)의 도로써 제도하네.
030_0259_b_07L前禮牟尼尊
熾然煩惱滅
流轉退住者
度以升進道

저 미묘한 법을 수행하여
퇴주의 허물에서 벗어나고
모든 악을 멸하여
모든 공덕들을 이루어 내리라.
030_0259_b_09L 修行微妙法
能離退住過
亦滅一切惡
成就諸功德

부처님 세존께서는 법상(法相)을 잘 아시고 여실(如實)한 지혜를 얻어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하시고 뜨거운 불구덩이로부터 벗어나 바라밀의 배를 타고 한량이 없는 고해(苦海)를 건너셨다. 그리고 본원(本願)의 큰 자비의 힘을 행하셨으므로 중생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모든 수행하는 자들을 위해서 일찍이 없던 법을 설하시어 모든 제도 받지 못한 자들을 제도해서 그 안온(安隱)함을 얻도록 하셨다.
이를 일러서 두 가지의 감로문(甘露門)이라고 하는데, 각각 그 두 가지의 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방편도(方便道)이고, 둘째는 승도(勝道)이다. 이것은 청정함을 구족해서 심심(甚深)하고 미묘하여 능히 모든 수행하는 자들로 하여금 3퇴(退)의 법으로부터 벗어나서 주박(住縛)을 멀리 여의고 승진(升進)을 증익하도록 하며, 결정(決定)을 성취해서 생사의 고통을 끝내고 구경 해탈하도록 하는 동시에 중생들의 오랜 어리석음[癡冥]을 제거하여 주는 것이다.
030_0259_b_10L佛世尊善知法相得如實智慧滅煩惱盛火出熾然之宅乘諸波羅蜜船度無量苦海以本願大悲力故不捨衆生爲諸修行說未曾有法度諸未令得安隱謂二甘露門各有二道方便道二曰勝道淸淨具足甚深微妙能令一切諸修行者出三退法遠離住縛增益升進成就決定盡生死苦究竟解脫兼除衆生久遠癡冥
030_0259_c_01L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존자 대가섭(大迦葉)과 존자 아난(阿難)과 존자 말전지(末田地)와 존자 사나바사(舍那婆斯)와 존자 우바굴(優波崛)과 존자 바수밀(婆須蜜)과 존자 승가라차(僧伽羅叉)와 존자 달마다라(達摩多羅) 내지 존자 불야밀다라(不若蜜多羅) 등 모든 법을 간직한 자들이 이와 같은 지혜의 등불을 차례로 전하여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그 들은 바를 따라서 이에 관한 뜻을 설하는 것이다.
030_0259_b_19L佛滅度後尊者大迦葉尊者阿難者末田地尊者舍那婆斯尊者優波尊者婆須蜜尊者僧加羅叉尊者達摩多羅乃至尊者不若蜜多羅持法者以此慧燈次第傳授我今如其所聞而說是義

내가 지금 들은 바대로
수행의 경지를 풀어 설하노니
방편과 승구경(勝究竟)이
수행에서 생기는 것과 같다.
030_0259_c_02L我今如所聞
演說修行地
方便勝究竟
如其修所生

선법(善法)을 수행하는 데에는
먼저 네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하니,
퇴감(退減)과 주(住)와 승진(昇進)과
모든 공덕(功德)을 결정하는 것이다.
030_0259_c_04L修行於善法
先當知四種
退減住升進
決定諸功德

따라서 만약 수행이 퇴감할 때에
주법(住法)이 생기지 않게 한다고 해도
역시 승진은 불가능한 것이니
마땅히 이것을 지금 대강 설하리라.
030_0259_c_05L修行退減時
令住法不生
亦不能升進
是今當略說

우선 평등한 마음을 일으킨 다음
자비로운 마음의 관(觀)을 익히고 행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성냄[瞋恚]의 마음을 그치고
잠시 중지하여 행해지지 않도록 한다.
030_0259_c_06L先當起等意
習行慈心觀
須臾止瞋恚
令暫息不行

번뇌가 잠깐 멈추면
다음에 시라(尸羅:戒)를 깨끗이 하고
시라가 이미 깨끗해지면
삼매(三昧)가 그 가운데에서 일어나리라.
030_0259_c_08L 煩惱暫止息
次當淨尸羅
尸羅旣淸淨
三昧於中起

삼매를 이미 닦아서 일으켰으면
응하고 불응함을 관찰하고
응하고 불응함을 잘 안다면
응하여 짓는 바를 향해 닦아야 한다.
030_0259_c_09L三昧已修起
觀察應不應
善知應不應
修向所應作

이미 응하여 짓는 바를 수행하되
마음을 매어 전념하라.
이미 그곳을 즐길 수 있으면
올바르게 관찰하여 풍상(風相)에 의지하라.
030_0259_c_10L旣向所應作
專念繫心處
已能樂彼處
正觀依風相

올바르게 관찰하여 풍상에 의지할 때에
아직도 마음이 어지러이 치달으면
마음을 그치게 하여 호흡에 드는 것을안반(安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견(見)이고, 둘째는 둔근(鈍根)에 접촉되는 불견(不見)이다.
말을 길들여서 매어둠과 같이 한다.
030_0259_c_12L 正觀依風時
其心猶馳亂
止心在入息安般者二種一見二觸鈍根不見
如繫調御馬

마음을 그치게 하여 쉬게 되었다면
바르게 사유하여
차가움과 따뜻함, 가벼움과 무거움
유연함과 거침, 껄끄러움과 매끄러움 등을 관찰한다.
030_0259_c_13L心旣止入息
思惟正憶念
冷暖與輕重
柔軟麤澀滑

수행하여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서
이를 따라서 잘 조적(調適)해야 한다.
修行諦覺知
隨順善調適

그런데 접촉하여 깨닫지 못하면
이것을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030_0259_c_15L於觸復不了
是說修行退

하나를 세면서 둘이라 하고
둘을 세면서 하나라고 하고
아홉에 이르러서도 혼란이 생긴다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59_c_16L數一以爲二
數二以爲一
至九猶錯亂
是說修行退

만약에 이처럼 수행퇴를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세기 시작하여
열까지 세어서 만족하면
모든 허물의 행을 멀리 여의게 된다.
030_0259_c_17L若於修行退
更數從初起
十數滿足者
遠離諸過行

닦지 않거나 지나치게 닦는다면
다른 수행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이같이 여러 잘못이 생기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59_c_19L不修與過修
或有異修起
有此諸過生
是說修行退

수행함에 만약 수식(數息)을 함께하면
마음에 혹란(惑亂)이 생기기도 한다.
그 혹란이 증장한다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59_c_20L修行若俱數
心據生惑亂
惑亂若增長
是說修行退

기식(氣息)이 통하여 흐르지 못해서
얼굴과 콧등에 충격이 오면
머리와 이마가 모두 괴롭고
속에서 회오리바람이 일기도 한다.
호흡이 흩어져 정도(正道)를 잃었는데
그래도 이를 고칠 줄을 모른다면
몸에서 심한 번열(煩熱)이 치솟아서
마음이 사뭇 혼란하여진다.
030_0259_c_21L氣息不通流
衝擊於鼻面
頭頂悉苦痛
內或絞風起
息亂失其道
而彼不知治
身體極燒熱
其心生憒亂
030_0260_a_01L
네 종류가 이미 착란을 일으키면
바람에 의지함이 어그러져 다투리라.
030_0260_a_01L四種旣錯亂
依風極違諍

수행하여 수식을 하려고 해도
좋은 방편이 되지는 못한다.
이것을 대치(對治)하는 방법을 모르면
반드시 빠르게 퇴감하게 되리라.
030_0260_a_02L修行欲令息
而不善方便
不知對治法
是必疾退減

들숨을 인연하여 수행하려 해도
도리어 날숨을 인연하게 된다.
날숨을 인연하여 수행하려 해도
도리어 들숨을 인연하게 된다.
030_0260_a_03L修行緣入息
而反緣出息
修行緣出息
而反緣入息

두 가지에 마음이 깨끗해지면
이것이 마땅히 수행의 과보이리라.
030_0260_a_04L於二心俱淨
是應修行果

고요하게 머물러 정의(定意)가 생기면
다시금 새로이 수식을 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잘못들이 있음을
모두 수행퇴라 한다.
030_0260_a_05L寂止定意生
而復更求數
有此諸過謬
是皆修行退

급하게 헐떡이며 수식관을 한다면
이는 곧 생각을 흩어지게 한다.
그리하여 흩어진 생각으로
수행하면 마음에 광증(狂症)을 일으키게 된다.
030_0260_a_06L急喘而安般
則令念錯亂
由是錯亂念
修行心發狂

이처럼 마음이 광증을 일으켜
응하고 불응함을 알지 못하고
두 가지에 분별이 없으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60_a_08L其心發狂故
不知應不應
於二無分別
是說修行退

수행하여 수식[數]이 이뤄지면
호흡이 가는 대로 따라서[隨] 가게 된다.
가는 곳을 따라 곳곳에 머물고
저 머문 곳에서 잘 관찰해야 한다.
030_0260_a_09L修行數已成
息去亦隨去
去已處處住
於彼善觀察

관찰이 이뤄지면 호흡을 되돌리고
되돌리고 나면, 청정(淸淨)이 일어나게 된다.
030_0260_a_10L旣觀令息還
還已起淸淨

이 여섯 가지를 잘 알지 못하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60_a_11L不善知六種
是說修行退

호흡의 길고 짧음을 모두 분별하니
몸이 두루하여 모조리 깨달아 알고
몸을 관찰하는 수행이 차츰 쉬게 되면
일체에 응하여 깨닫게 된다.
030_0260_a_12L長短悉分別
遍身盡覺知
身行漸休息
一切應決了

이것을 잘 알지 못하면
이것을 곧 수행퇴라 한다.신념처(身念處)의 4승(勝)을 마친다.
기쁨을 알고 또한 즐거움을 알아서
방편의 뜻을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
마땅히 다시 심행(心行)을 제어하여
요동함에 이르지 않게 한다.수념처(受念處)의 4승을 마친다.
030_0260_a_13L於此不善知
是令修行退身念處四勝竟知喜亦知樂
勤方便意行
當復制心行
令不至掉亂受念處四勝竟

다음으로 분별하여 마음을 알아
수행하여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또 기쁜 마음을 일으키면
되돌려 다시 섭수하여 정(定)에 들어가야 하니
030_0260_a_16L次分別知心
修行正觀察
又生欣悅心
還復攝令定

이것은 부정(不定)의 마음이 아니고
이미 마음이 정에 들면 해탈하게 된다.심념처(心念處)의 4승을 마친다.
030_0260_a_17L非是不定心
定已心解脫心念處四勝竟

해탈을 잘 수행하는 자는
마음을 퇴몰(退沒)시키지 않으니
만약 퇴감(退減)의 분에 든다면
해탈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리라.
030_0260_a_18L善修解脫者
不令心退沒
若入退減分
則無有解脫

무상(無常)과 단(斷)과
이욕(離欲)과 멸진(滅盡)을 관찰하여
날숨과 들숨이 멸하면
이를 수행승(修行勝)이라 이름한다.이 4상(相)은 법념처(法念處)와 비슷하다.
030_0260_a_19L觀察無常斷
離欲與滅盡
出息入息滅
是名修行勝 此四相似法念處

이와 같은 열여섯 가지의 행이
자재로이 마음을 회전하면
030_0260_a_21L如是十六行
自在心迴轉

각(覺)과 촉(觸)을 얻으리니
견(見)을 얻음도 역시 그러하리라.
覺觸之所獲
見得亦復然

만약 견(見)과 촉(觸)에 대하여
그 분제(分際)를 잘 알지 못한다면
이 과실을 반드시 알아서
지혜를 닦아 후퇴함이 없게 해야 한다.
030_0260_a_22L若於見與觸
不善識分際
是過應當知
無智令修退
030_0260_b_01L
수행하여 위로 증진하면
마땅히 아래에 인연하지 않으니
아래에 인연함도 이와 같아서
위로의 증진에 응하지 않는다.
030_0260_b_01L修行上增進
不應緣於下
緣下亦如是
不應上增進

만약 두 가지의 증진을 보면
마음이 굳게 머물러서 평등하게 관찰하게 된다.
여기 마음이 머물면 스스로 이루어
다시 수행하던 곳으로 돌아오리라.
030_0260_b_02L若見二增進
心住而等觀
任之則自成
還到修行處
方便道安般念退分第一竟

2. 수행승도퇴분(修行勝道退分)
030_0260_b_04L修行勝道退分第二

뛰어난 염(念)을 성취했더라도
게으르면 결국 침몰하리라.
이것이 곧 퇴상(退像)이니
구하는 바를 감내하지 못한다.
030_0260_b_05L勝念已成就
懈怠竟沈沒
是則爲退像
無堪於所求

불염오(不染汚)와 무기(無記)의
모든 번뇌의 퇴전(退轉)을 일으켜
번뇌의 더러움과 열기(熱氣)가 생기니
이로부터 정견(正見)을 잃게 된다.
030_0260_b_07L 不染污無記
起諸惱惱退
垢濁熱炎生
由是失正見

요동하거나 아니면 빗장을 잠가
들뜨고 휘날리고 거칠고 껄끄럽고 미끄러지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퇴감(退減)의 모습을
수행하여 마땅히 분별해야 하리라.
030_0260_b_08L 振掉或關鑰以灼反
浮飄麤澀滑
是五退減相
修行應分別

멀리 보아도 바라는 바가 끊어졌고
보이던 것도 이미 추락을 하여
돌아보면 깊고 험한 것들만 보이니
이런 것이 모두 퇴감의 모양이다.
030_0260_b_09L望遠絕所悕
有見已墜落
還顧睹深嶮
是皆退減相

긴 병에 외우는 것을 그치고 다투니
업(業)이 많아서 멀리 돌아다니는구나.
그때에 해탈의 종자가
바로 다섯 가지 퇴감의 인(因)이다.
030_0260_b_11L 長病誦止諍
多業遠遊行
彼時解脫種
是五退減因

신(信)ㆍ계(戒)ㆍ문(聞)ㆍ사(捨)ㆍ혜(慧)
이것에서 점점 쇠퇴하네.
030_0260_b_12L信戒聞捨慧
於是漸衰退

몸이 무겁고 혼미하고 둔하고
잠에 빠지고 침몰하는
이 다섯 가지가 수행에서의 퇴전의 모양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30_0260_b_13L身重與惛鈍
耽睡及沈沒
是五應當知
修行退轉相

겁나고 두려워서 머뭇거리며
놀랍고 두려워 기쁘지가 않으며
욕망을 여의는 데 게으르면
수행으로 회향하지 못한다.
030_0260_b_15L 恐怯多猶豫
驚畏不欣樂
懈怠離所欲
不迴向修行

익히지 않거나 지나치게 익히는 것
이 두 가지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때에는 해탈의 종자이던 것이
지금은 수행의 퇴전이다.
030_0260_b_16L不習過修習
是二俱爲失
彼時解脫種
於是修行退

상(相)을 여읜 삼매의 즐거움과
이염(爾炎)이 모두 소진하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의 종자가
되돌아와 몸 안에서 일어난다.
030_0260_b_17L三昧離相樂
爾炎皆消盡
麤澀四大種
還從身內起

그리하여 흔들려 정념(正念)을 잃으면
이로부터 마음이 혼란스러워
그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 못하니
이것은 수행으로부터 생긴다.
030_0260_b_19L 掉動失正念
由是意憒亂
其心不恬靜
斯從行者生

모든 상서로운 모양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 관상을 수행한다면
보고자 해도 매우 어려우리라.
030_0260_b_20L 一切諸瑞相
不顯現分明
修行如是觀
欲見爲甚難

모든 근(根)이 모두 내달려
욕망을 따라서 인연함을 향하니
삿된 마음이 널리 유산(流散)하여
모든 경계에 즐겨 달라붙는다.
030_0260_b_21L諸根悉馳縱
隨欲向所緣
邪意普流散
樂著諸境界

형체가 사라지고 마음이 슬프며 참담하니
그 몸이 모조리 불타오른다.
이와 같이 불길이 타오르면
이것을 우퇴(憂退)라고 한다.
030_0260_b_23L形消意愁慘
其身皆燒燃
如是燒然者
是說爲憂退
030_0260_c_01L
그 방편을 정근(精勤)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회한이 생기리라.
응한 바를 따라 성취했음을 듣고
나아가려 해도 열악하여 할 수 없다.
030_0260_c_01L方便不精勤
後則生悔恨
聞所應成就
欲進劣無能

기쁜 승처(勝處)로 나아가지 않고
승처를 보고도 이를 취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지혜가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030_0260_c_02L不趣喜勝處
或見勝不取
皆由無智故
是說修行退

스스로 계율을 벗어나는 것을 생각하여
의심하고 뉘우치고 모든 깨달음에 이르는 데
뜻이 없어 자미(滋味)가 없으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60_c_04L自念有越戒
疑悔及諸覺
意淡無滋味
是說修行退

모든 허물로 정의(定意)가 약하니
삼매가 점점 소멸하고
마음이 흩어져 번뇌에 덮이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60_c_05L諸過定意羸
三昧漸消減
心亂蓋所覆
是說修行退

마음의 거조(擧調)와 순사(順捨)
시(時)ㆍ비시(非時)를 관하지 않고
머물고 일어남과 인연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가 없으므로 수행이 퇴전한다.
030_0260_c_06L心擧調順捨
不觀時非時
不了住起緣
無智故修退

여섯 때[六時]의 행(行)을 알지 못하고
6계(界)도 또한 잘 알지 못하여
6교(巧)의 방편에 또한 어리석으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탐욕과 성냄의 깨달음과
10상(想)의 선교방편과
여러 선지(禪地)로 향하는 것을 얻음과
법심(法心)이 미망을 이해함
이런 모든 것을 차례로 건너야 함을
모르기 때문에 수행이 퇴전한다.
030_0260_c_08L不知六時行
六界亦不善
亦愚六巧便
是說修行退
貪欲瞋恚覺
十想巧方便
得向諸禪地
及法心妄解
一切次第度
無知故修退

처(處)와 비처(非處)와
업보(業報)와 정수(正受)를 관하지 않고
선정(禪定)의 모든 해탈과
정미(淨味)를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고
030_0260_c_11L不觀處非處
業報及正受
禪定諸解脫
淨味愚不了

모든 근(根)이 이르는 곳의 길을
성(性)이 이를 분별하지 않고
마음이 뭇 잡스런 모양들을 따르면
이것이 모두 무지(無知)의 퇴전이다.
030_0260_c_13L諸根到處道
性欲不分別
心隨衆雜相
是悉無知退

고락(苦樂)의 빠른 길에서
그 마음이 취향(趣向)하지 않고
이처럼 그 마음이 미혹하면
필시 퇴전의 곳으로 향하리라.
030_0260_c_14L於苦樂速道
其心不趣向
如是意迷惑
必向退轉處

기(起)와 주(住)와 기연(起緣)과
입(入)과 출(出)과 방편
이 6법(法)을 이루지 못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030_0260_c_15L起住與起緣
入出及方便
六法不成就
是令修行退

법을 알고 또한 의(義)를 알고
때를 알고 또한 양(量)을 알고
자신을 알고 무리들을 알고
그리고 복가라(福伽羅)를 아는 것 등
저 일곱 가지를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030_0260_c_17L知法亦知義
知時亦知量
自知與知衆
及知福伽羅
於七愚不了
是令修行退

갖가지 악한 법을 일어나게 하고
낮고 천한 업(業)을 익혀 행하고
선하지 못한 벗을 가까이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030_0260_c_19L興起諸惡法
習行卑賤業
親近不善友
令是修行退

응할 바를 잘못 설하고
사랑하는 것에만 즐겨 마음이 향한다면
오래지 않아서 수행이 퇴전하리란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30_0260_c_21L錯說違所應
受者心樂向
當知是不久
必於修行退

머무는 장소와 사람과
침상과 침구 등 온갖 도구들
이들은 모두 즐길 것이 못되니
가까이하면 수행을 퇴전시킨다.
030_0260_c_22L所止處及人
牀臥等衆具
斯皆非所樂
近令修行退
030_0261_a_01L
기쁘게 모든 잡스런 모양을 따라
닦는 바의 지혜를 감손(減損)시키면
인연이 있는 곳을 버려서
마음의 진실을 얻지 못한다.
030_0260_c_23L喜隨諸雜相
損減所修慧
棄捨所緣處
心不得眞實

수행할 때 본래의 모양을 버리고
마음이 흩어져 외연(外緣)을 따른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해도
끝내 마음이 즐겁지 않으리라.
030_0261_a_02L修行捨本相
散心隨外緣
雖欲還彼處
意衆不復樂

그리하여 그 기르는 양분(養分)을 잃고
그 마음이 하나로 정해지지 못해서
몸이 다시는 윤택하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 또한 생기지 않으리라.
030_0261_a_03L 遂失長養分
其心不一定
身無復滋潤
悅樂亦不生

의지한 곳이 즐길 수가 없으니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어지럽고
삼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니
그 마음이 영원히 머물지를 못한다.
030_0261_a_04L所依不可樂
身意俱錯亂
三昧不復起
其心永不住

이같이 머물지 못하는 마음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애(愛)와 견(見)과 만(慢)과 선(禪)을 증가시키는
인연에 마음이 맛들여 집착하여
030_0261_a_06L如是不住心
必於修行退
愛見慢增禪
於緣心味著

이처럼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그리하여 마치 몸을 가시로 찌르는 듯하고
혹은 심히 떨리는 듯하고
030_0261_a_07L有此累念生
是說修行退
身如利刺害
或復極振掉

온몸이 모두 번뇌로 왕성해지니
뱀의 독이 전신에 퍼진 듯하리라.
이 같은 세 가지의 과악(過惡)이 있다면
반드시 그 수행이 퇴전하리라.
030_0261_a_08L擧體皆煩壯
如蛇毒充滿
有此三過惡
必於修行退

얻지 못할 것을 얻은 듯 수행하면
다른 일들로 마음이 한가롭지 못하리라.
저 3퇴(退)의 법을 익혀 가까이하면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61_a_10L得未得服行
他務意不閑
習近三退法
是說修行退

업(業)과 번뇌와 과보
이것을 세 가지 장애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해탈장(解脫障)이 있으니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030_0261_a_12L業與煩惱報
說是三障閡
亦有解脫障
是令修行退

방편상(方便想)의 악행(惡行)과
삼마제(三摩提)의 행지(行地)
이런 것을 관찰하지 못하면
이것이 수행을 퇴전케 한다.
030_0261_a_13L方便想惡行
三摩提行地
於彼不觀察
是令修行退

방편상(方便想)의 여러 지위와
삼매행(三昧行)과 그 밖의 것을
들은 대로 따라서 이를 희망한다면
곧 취(趣)를 일으켜 퇴전한다.
030_0261_a_14L方便想諸地
三昧行及餘
所聞隨悕望
則於發趣退

생할 때 멸한다는 생각을 하고
멸할 때 생한다는 생각을 하면
두 생각이 모두 타당성을 잃어서
이것이 곧 수행을 퇴전케 한다.
030_0261_a_16L生時作滅想
滅時作生想
二想俱當失
是則修行退

만일 법에 머무는 가운데
생멸한다는 생각을 하니
이러한 전도(顚倒)를 일으키면
이것을 수행퇴(修行退)라 한다.
030_0261_a_17L若於住法中
而作生滅想
興此諸顚倒
是說修行退

들[入] 때 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나갈 때 든다는 생각을 하니
이 두 생각에 머물러 생각하면
이것을 전도(顚倒)라 말한다.
030_0261_a_18L入時作出想
出時作入想
二俱作住想
是說爲顚倒

번뇌의 결박을 끊어버리고
바른 방편을 수행하면
그에 연유하여 힘을 얻으므로
비슷한 모양의 모든 상이 나온다.
비슷한 모양이 이미 생기면
수행하는 마음이 그를 따라 구르리라.
그리하여 곧장 번뇌가 일어나리니
이것을 수행퇴라 한다.
030_0261_a_20L欲斷煩惱得
修行正方便
由彼得力故
相似諸相生
相似相旣生
修行心隨轉
煩惱卽時起
是說修行退

퇴과(退過)의 세찬 물결들이
수행하는 자를 떠돌아다니게 하니
나의 능력에 따라서
법해(法海)를 조금만 퇴전하게 하리라.
030_0261_a_22L退過諸駛水
漂浪修行者
隨我力所能
少量退法海
030_0261_b_01L
한량이 없는 그 밖의 퇴과(退過)는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없으니
지혜가 밝아 깊은 자들은
마땅히 스스로 널리 일컬어 설하리라.
030_0261_b_01L 無量餘退過
是深非所惻
諸深明智者
自當廣稱說
勝道中退分竟

3. 수행방편도안반념주분(修行方便道安般念住分)
030_0261_b_03L修行方便道安般念住分第三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퇴과(退過)를 설했노라.
이젠 주과(住過)를 설할 테니
수행하는 자는 잘 들으라.
030_0261_b_04L如我力所能
演說退過已
今當說住過
修行者善聽

만약에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에
보는 것이 없고 깨달음도 없어서
방편의 구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초문주(初門住)니라.
030_0261_b_06L若於入出息
無見亦無覺
不解方便求
是則初門住

이미 저 문혜(聞慧)가 생기면
마땅히 사혜(思慧)의 염을 일으켜야 한다.
차례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리석어 주(住)에 속박될 것이다.
030_0261_b_07L聞慧旣已生
應起思慧念
不善解次第
愚癡住所縛

만약 세는[數] 것을 성취했다면
숨이 가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면
이것을 수행주(修行住)라 한다.
030_0261_b_08L若數已成就
息去應隨去
不知隨順法
是說修行住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었다.
누가 안반념(安般念)을 익혔는가?
어떤 비구가 대답하였다.
제가 그 염(念)을 닦아 익혔습니다.
030_0261_b_10L如佛問比丘,
誰習安般念
有一比丘答,
是念我修習

네가 안반념을 닦아 익혔다면
너는 있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 다시 승묘(勝妙)가 있으니
마땅히 석가모니께서 설하신
방편도인 안반을 닦아야 한다.
030_0261_b_11L汝有安般念
不言汝無有
復更有勝妙
牟尼說當修
方便道安般
念住分第三竟

4. 수행승도주분(修行勝道住分)
030_0261_b_13L修行勝道住分第四

뛰어난 도는 바른 관찰로 닦아
상행(相行)의 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승진(升進)의 법을 잘 알지 못하면
이는 곧 주(住)에 속박되는 것이다.
030_0261_b_14L勝道修正觀
相行念已成
不善升進法
是則住所縛

소연(所緣)의 경계에 애착을 가지고
업에 나아가면 마음이 게을러진다.
이로부터 속박에 묶여
뛰어난 곳에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030_0261_b_16L愛著所緣境
進業心懈怠
由是縛所縛
不能至勝處

혹은 움직일 수가 없음이 있으니
연함도 아니고 견고함도 아니다.
혹은 강하고 지극히 탄탄하니
또한 금강상(金剛像)과도 같다.
030_0261_b_17L或有不可動
非軟亦非堅
或强極牢密
亦如金剛像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장애가 있으면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한다.
이것은 곧 주에 속박된 모양이니
도에 승진함을 멀리 여의게 한다.
030_0261_b_18L有此五障閡
不進亦不退
是則住縛相
遠離升進道

어지러운 빛이나 검은 암흑이
차마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니
탁한 기름을 태우는 빛과 같아서
보는 눈을 역시 가린다.
030_0261_b_20L亂光及黑闇
忍自身不現
譬燃濁油光
亦如翳目視

광명이 나타나 발하지를 못하니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배반해 버린다.
숨에 고요하게 머물러 즐거움이 분명하면
저들은 끝내 다시 생기지 않는다.
030_0261_b_21L光明不顯發
背捨諸喜樂
寂止息樂分
彼終不復生

마치 견실한 물건이
유연한 모습을 나타냄과 같으니
이따금 수행하는 자들이
상(相)에 머무름 역시 그러하다.
030_0261_b_22L猶如堅實物
而有濡相現
或時修行者
住相亦復然
030_0261_c_01L
상은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지 않으면서
하고자 함에 따라 생각[想]을 일으킨다.
비록 마음을 따르고자 하나
끝내 즐거워하는 바를 따르지 않는다.
030_0261_c_01L相非隨所欲
而起隨欲想
雖欲令隨意
終不從所樂

상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를 강제로 지니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어그러진 생각은
곧 주(住)에 속박된 것이다.
030_0261_c_02L謂相非所留
而欲强制持
如是違反念
則爲住所縛

이와 같은 생각을 이루었다면
강제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하리라.
저들 가고 머무는 모양에 맡겨 둔다면
가장 뛰어난 곳에 능히 이르리라.
030_0261_c_03L是想已成就
當知非所制
住彼去留相
能到最勝處

떠오르는 것을 가라앉히려 하고
떠오르는 것을 낮추려 하고
가는 것을 오게 하려 하고
머물러 있는 것을 머물지 않게 하려 하고
030_0261_c_05L欲令涌作沒
或欲高爲下
於去欲使來
於住不欲住

멸할 때에 멸하지 않게 하려 한다면
하고자 하는 것에 여여하지 못하니
수행을 생멸에 맡긴다면
행하는 바가 항상 전진(轉進)하리라.
030_0261_c_06L滅時欲不滅
終不如所欲
修行住生滅
所行常轉進

모든 법의 모양이 이미 이루어지며
끝내 자상(自相)을 버리지 않는다.
만약 자상을 버리지 않으면
자상이 곧 그 현현(顯現)하리라.
030_0261_c_07L諸法相已成
終不捨自相
若不捨自相
自相則顯現

얇은 껍질로 부정(不淨)을 덮어 가리어
몸의 더러움을 감추려고 하듯이
겉모양과 온갖 도구들과
이락(利樂)을 가지고 몸의 고통을 가린다.
030_0261_c_09L薄皮覆不淨
令不見身穢
威儀及衆具
利樂翳身苦

비슷한 모양이 차례로 생겨나서
빈틈없이 앞뒤로 이어졌다.
항상하지 않은 모양에 가려지고 숨겨져
몸의 변화를 보지 못하게 한다.
030_0261_c_10L相似次第生
前後續無閒
隱蔽非常相
令不見身變

베풀어 짓고 수(受)를 사용함에
나라는 아상(我相)을 섭지(攝持)한다.
능히 본사(本事)를 억념하여서
감춰진 몸이 내가 아님을 관한다.
030_0261_c_11L施作服用受
攝持吾我相
能憶念本事
隱身非我觀

이들 모든 비슷한 모양들을
수행하여 분별하지 않으면
그들에게서 애락(愛樂)을 일으켜서
공덕의 상(相)을 일으킨다.
030_0261_c_13L是諸相似相
修行不分別
於彼起愛樂
而生功德相

마음이 사물에 집착하여 망상이 생기면
승진하기를 다시 즐거워하지 않으니
뛰어난 법에 나아가지 못해
주과(住過)가 날로 증장하리라.
030_0261_c_14L染著妄想生
不復樂升進
不能取勝法
住過日增長

비아(非我)ㆍ상사상(相似相)
이들이 회전(廻轉)하지 않고
이와 같이 회전하지 않으면
수행자의 어리석음과 미혹함이 생긴다.
030_0261_c_15L非我相似相
此等不迴轉
如是不迴轉
行者癡惑生

지혜가 없으니 번뇌에 머물러
그곳에 매달려 집착하니
집착하길 좋아하면 모든 허물이 생긴다.
이런 모양을 지금 설하리라.
030_0261_c_17L無智住所縛
繫著於彼處
樂著生諸過
是相今當說

이염(爾炎)이 차츰 손괴(損壞)하여
나뉘고 서로 혼란하고
파산(破散)하여 화합이 어려우면
이것이 곧 주에 속박된 모습이다.
030_0261_c_18L爾炎漸損壞
分離及交亂
破散叵和合
是則住相縛

몸으로 방편을 하지 않고
스스로 분리(分離)의 생각을 만들고
교란하거나 티끌처럼 부서지면
이것이 주(住)에 속박된 것이다.
030_0261_c_19L於身不巧便
自生分離想
交亂或塵碎
是爲住所縛

상(常)을 지켜 이상(異想)이 없어지고
뭇 색(色)이 차례로 생기지 않는다.
갖가지 중묘(衆妙)의 생각들이
또한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다.
030_0261_c_21L守常無異想
衆色不次生
種種衆妙想
亦不次第起

흘러나가서 머물지 않으니
그 몸이 점차 소멸하리라.
모양이 미혹되어 다시 오가면
수행이 증장하지 못하리라.
030_0261_c_22L流出而不住
其身漸消減
相或來復去
修行不增長
030_0262_a_01L
고요하게 머묾이 이미 생기지 못하면
그 몸이 장양(長養)함이 없어서
마음이 열락(悅樂)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를 말하여 청정하지 못한 사(捨)라 한다.
030_0261_c_23L寂止旣不生
於身無長養
心不起悅樂
是說不淨捨

저 청정하지 못한 사(捨)는
그 소견이 깨끗하지 못하다.
또한 승진을 하지 못하고
그리고 다시 퇴전하지도 않는다.
030_0262_a_02L彼不淸淨捨
所見不鮮白
亦不能升進
亦復不退轉

사문(沙門)의 상(像)을 희롱하듯이
젊을 때에 열락이 생기는 것도
비유하면 옷을 빌려 입은 것과 같고
또한 꿈에 본 것과도 같다.
030_0262_a_03L如戲沙門像
少時生悅樂
譬如借衣服
亦如夢所見

명(命)을 청정하지 않음이라 하고
첨곡(諂曲)과 여악(餘惡)
취락(聚落)의 지식(知識)의 곳에서
스스로 그 공덕을 나타낸다.
030_0262_a_04L爲命不淸淨
諂曲及餘惡
聚落知識所
自顯其功德

모든 과악(過惡)을 가리어 감추어서
죄를 범하여 드러내지 않고
그 밖의 모든 계박(繫縛)이
수행하는 자를 더럽히고 물들인다.
030_0262_a_06L覆藏諸過惡
犯罪不發露
及餘一切縛
垢污修行者

사상(事相)이 있는 것과 방불하니
곧 실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익지 않은 것을 익었다고 하고
멸하지 않은 것을 멸했다고 생각한다.
030_0262_a_07L髣髴有事相
而便起實想
未熟謂爲熟
未滅想已滅

평등하여 만족하지 않은데
승진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이삭을 벤 싹을 쪼개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주(住)에 계박된 것이다.
030_0262_a_08L方便不等滿
而欲求升進
如部含穟苗
是則住所縛

업(業)이 당초부터 방편이 없고
상현(相現)하여 굳게 수지(守持)하고
과진(過進)하여 마음이 자긍(自矜)하니
이러한 것이 주에 계박된 것이다.
030_0262_a_10L業始無方便
相現堅守持
過進心矜擧
如是住所縛

그런데 혹 수행을 하는 자가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일으키면
이런 소견이 마음을 산란케 해서
곧장 계박된다.
030_0262_a_11L或有修行者
而起斷常見
是見令心亂
則爲縛所縛

혹 수행을 하는 자가
몸과 몸을 자세[細微]하게 본다면
그것이 주에 계박되어서
염심(厭心)이 증장하지 않는다.
030_0262_a_12L或有修行者
身身細微觀
彼爲住所縛
厭心不增長

염심이 증진하지 못하면
탐욕을 여읠 수가 없으니
탐욕을 여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겠는가?
030_0262_a_14L厭心不增進
不能離貪欲
若不離貪欲
何從有解脫

해탈을 이루지 못한다면
끝내 번뇌를 다할 수 없고
모든 번뇌를 끊지 못하면
진실한 지혜가 없다.
030_0262_a_15L解脫不成就
終不得漏盡
不斷諸漏者
則無實智慧

저 신념처(身念處)에서
주상(住相)이 이미 분별되었으니
수(受)ㆍ심(心)ㆍ법(法)의 염처도
마땅히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하리라.
030_0262_a_16L於彼身念處
住相已分別
受心法念處
如是應廣說

수행하되 마음이 즐겁지 않고
그 기쁨 또한 생기지 않고
몸에 고요하게 머무는 즐거움이 없으면
그것이 곧 주상(住相)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62_a_18L修行心不悅
彼喜亦不生
身無寂止樂
當知是住相

수행하여 수호할 때의
신(信)ㆍ계(戒)ㆍ문(聞)ㆍ사(捨)ㆍ혜(慧)는
항상 적은 분량을 지키면
이것이 곧 주상(住相)이 된다.
030_0262_a_19L修行所受獲
信戒聞捨慧
常守其少分
是則爲住相

주(住)에 매인 어떤 비구가
아난(阿難)이 있는 곳에 도달한다 해도
그가 머문 바 주상(住相)에 미혹하리니
이를 지금 대강 설하리라.
030_0262_a_20L有住縛比丘
往到阿難所
迷於所住相
是今當略說

무상삼매(無相三昧)를 얻어서
6년을 주(住)에 결박되어
즐겨 설하는 바를 듣고 싶다면
언제나 아난을 따라다녀야 하리.
030_0262_a_22L得無相三昧
六年住所縛
樂欲聞所說
常隨逐阿難

소업(所業)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퇴전(退轉)하지도 못하고
주의 경계에서 머물러만 있다면
해탈의 도리를 얻지 못한다.
030_0262_a_23L不能進所業
亦復不退轉
住於住境界
不得解脫道
030_0262_b_01L
오지도 않고 또 가지도 않고
이미 해탈하여 머무르고
머물러 다시 해탈하고
해탈하여 다시 속박된다.
030_0262_b_01L不來亦不去
解脫已而住
住已復解脫
解脫已還縛

혹시 어떤 수행을 하는 자가
퇴전하지 않는 곳에 머물렀으나
미세한 번뇌가 일어남을
능히 깨달아 알지 못하니
번뇌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뛰어난 곳에 이르지 못한다.
030_0262_b_03L或有修行者
住在不退地
微細煩惱起
而不能覺知
不覺煩惱故
不能到勝處

지위에 대하여 분별이 없으면
또한 그 퇴과(退過)도 없다.
지위의 모든 허물이 일지 않으니
이와 같이 그 주(住)에 머문다.
그러다 혹 주분(住分) 중에서
중묘(衆妙)의 모양을 잃어버린다.
030_0262_b_05L於地無分別
亦無有退過
地諸過不起
如是止於住
或於住分中
而失衆妙相

중묘의 모양이 비록 멸해도
마음은 여전히 그 지위에 따른다.
마음이 그 지위에 따를 때
여분(餘分)의 낙상(樂相)이 생긴다.
030_0262_b_07L衆妙相雖滅
意猶順彼地
意順彼地時
餘分樂相生

이미 적은 낙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하게 머묾에 의지하여 머문다.
그 고요하게 머무는 마음을 인(因)으로 하는 것을
짓는 것이 이미 지어졌다고 말한다.
030_0262_b_08L已有少樂故
心依寂止住
因其寂止心
自謂作已作

고요하게 머묾에 안주함이 구족하지 못하면
구족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무지(無智)가 마음과 눈을 가렸는데도
지혜롭다고 스스로 말하니
030_0262_b_10L安止不具足
不得具足果無智翳心目
而自謂爲智

무지장(無智障)을 수행하여
응용할 바를 깨닫지 못한다.
응용할 바를 깨닫는 자는
능히 구경지(究竟地)에 머물리라.
030_0262_b_11L修行無智障
不覺所應用
覺所應用者
於地能究竟

저들 공지(共地)에 머무는 자는
여러 가지 번뇌에 오염된다.

만약 수행하는 자로 하여금
불공지(不共地)를 이루게 하여
이와 같이 과환(過患)을 알면
끝내 그는 계박되지 않으리라.
030_0262_b_12L彼住共地中
種種垢所污
若使修行者
成就不共地
如是知過患
彼終不爲縛

그러나 번뇌의 과실을 모르고
어리석어 실지(實智)가 없으면
선(禪)으로써 길안(吉安)을 깨달음이
마치 코끼리가 나무에 매인 것 같으리라.
030_0262_b_14L不識煩惱過
愚癡無實智
於禪覺吉安
猶如象繫樹

수행하여 이염(爾炎)을 관하되
그 일어나는 곳을 알지 못하고
그 의지하여 나오는 곳을 따르면
스스로 알지를 못한다.
030_0262_b_16L修行觀爾炎
莫知所起處
從其所依出
而自不能知

솟아오르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으니
모양이 일어남을 보지 못하고
또한 멸하는 곳을 알지 못하면
과(過) 또한 과라 할 것이 없다.
030_0262_b_17L不涌亦不沒
不見相所起
亦不知滅處
過亦無過是

설하는 바 모든 장애는
모두가 견고한 주상(住相)이다.
그로 해서 머문다고 하지 않으니
이것은 명지(明智)의 설이 아니다.
030_0262_b_18L所說諸障㝵
皆是堅住相
謂不由彼住
斯非明智說

지어서 일어나는 모든 과환이
얼마간 인연의 계박이라 해도
능히 모든 대치(對治)를 사용한다면
중묘(衆妙)를 다시 드러내어 설하리라.
030_0262_b_20L興造諸過患
若干因緣縛
能用諸對治
衆妙復顯說

높일 자를 공경하지 않고
또한 교만함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 허물을 덮어 가리고
밝은 자를 향해서 설하지 않는다.
030_0262_b_21L所尊不恭敬
亦不捨憍慢
自隱覆其過
不向明者說

나의 나이가 벌써 쇠하여 늙었으니
이미 사람들이 버리는 바가 되었다.
더러 이양(利養)을 잃기도 해서
나로 하여금 고뇌가 일게 한다.
030_0262_b_22L我年旣衰老
已爲衆所棄
或能失利養
令我生苦惱
030_0262_c_01L
마음이 언제나 두렵고 근심스러우니
깊은 생각을 하며 길이 탄식하노라.
내가 나중에 죽게 될 때에
장차 무슨 계책을 세울 것인가?
030_0262_c_01L心常懷憂畏
深慮長歎息
我後當死時
將欲作何計

허물을 숨기면 마음이 근심스럽고
미혹되면 번뇌에 머물게 되니
스스로를 거슬러 죄를 저질러 몸을 더럽히면
큰 공덕의 바다를 잃는다.
030_0262_c_02L隱過心憂惱
愚惑作所縛
撗自生罪累
失大功德海

현재의 법락(法樂)에 맛을 붙여서
음식을 탐하며 간사해 지혜가 없다.
후세의 과보를 내던져 버리고는
이 같은 과악(過惡)들을 일으킨다.
030_0262_c_03L味著現法樂
貪餐黠無慧
棄捨後世果
興此諸過惡

이러한 모든 주에 속박됨에
그 일어남도 각각 다르다.
수행을 함에 비겁하거나 용렬하지 않으면
능히 응하여 대치할 바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030_0262_c_05L如是諸住縛
所起各各異
修行無怯劣
能治所應治

그러나 비겁하거나 용렬하여 방편이 없이
승진할 길이 없다고 스스로 말한다면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려우리니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코끼리와 같다.
030_0262_c_06L怯劣無方便
自謂無由進
是則甚難拔
如象溺深泥

이처럼 빠져나오기 매우 어려우니
게으른 마음에 속임을 당하게 된다.
긴긴 밤을 진창에 빠져 꼼짝을 못하고
열화가 치받아서 죽음으로 내달으리라.
030_0262_c_07L如是甚難拔
懈怠心所欺
長夜沒住泥
熱迫而趣死

업행과 번뇌와 과보
이것이 세 가지 장애가 되어 가린다.
지혜가 없고 일어날 기세가 없으면
영원히 머묾에 빠져버리게 되리라.
030_0262_c_09L業行煩惱報
爲此三障覆
無智無勢起
永爲住所沒

오랜 세월 어리석음을 쌓아
업행과 모든 번뇌들
이 같은 것들에 얽매이고
미혹하고 어지러워 자재하지 못하다.
030_0262_c_10L久遠積癡冥
業行諸煩惱
繫縛斯等類
迷亂不自在

모든 과악들을 익혀 가까이하면
선한 공덕을 멀리 여의게 되어
그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니
마치 허공을 맴도는 화살과 같다.
030_0262_c_11L習近諸過惡
遠離善功德
令其意悤擾
如箭旋虛空

뱀의 독이 성하여 가득하고
전갈과 악룡(惡龍)이 득실거리며
깊은 바다가 밑바닥이 없고
물도 없는 불구덩이인 이런 곳을
030_0262_c_13L蛇毒盛充滿
蝮蝎惡龍處
巨海深無底
無澤大火聚

소경이 헤맨다고 한다면
눈이 안 보이니 보지를 못하리라.
수행하는 자가 머문 곳에 얽매임도
그 잘못됨이 역시 이와 같다.
030_0262_c_14L盲人近彼遊
闇往而不見
修行住所縛
其過亦如是

주과(住過)가 한량없이 많으니
승진의 덕도 역시 그러하여
바다와 같이 그 끝과 바닥이 없으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030_0262_c_15L住過多無量
升進德亦然
如海無涯底
是深不可量

세간에 지혜의 장애가 없으니
진실의 지혜가 등불이 된다.
등불을 들고 방일하지 않으면
그 밝음이 꺼지는 일이 없으리라.
030_0262_c_17L世閒無知障
眞實慧爲燈
持燈無放逸
彼明終不滅

주분(住分)의 허물은
모든 간힐(奸黠) 없는 자를 속박함을 설하고
지혜를 결정하는 경계는
그 구경(究竟)이 비아분(非我分)이라.
030_0262_c_18L善說住分過
縛諸無黠者
決定知境界
究竟非我分

갖가지 허물에 얽매인 것들이
그 얽매임이 한 모양이 아니니
마땅히 업의 뭇 연(緣)을 안다면
불성(佛性)을 능히 깨달으리라.
030_0262_c_19L種種過所縛
是縛非一相
當知業衆緣
唯佛能覺了

5. 수행방편도승진분(修行方便道升進分)
030_0262_c_21L修行方便道升進分第五

비구여, 안반념(安般念)의
공덕주(功德住)와 승진(升進)은
능히 지혜를 더하게 하니
내가 지금 차례대로 설하리라.
030_0262_c_22L比丘安般念
功德住升進
能令智慧增
我今次第說
030_0263_a_01L
공덕에 이미 머물렀으면
더욱 나아가 공덕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므로 공덕에 머무르는 것과 올라가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수행을 설하리라.
030_0263_a_01L功德住已進
進復功德住
是故說修行
功德住升進

수행은 코끝에
마음을 묶어 굳게 머물러 있게 하고
생각을 오로지 전념하여 분명하게 하며
올바르게 관하여 풍상(風相)에 의지한다.
030_0263_a_02L修行於鼻端
繫心令堅住
專念諦思惟
正觀依風相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매어 굳게 머물게 하여
생각을 이어 나가서 잊지 않는다면
이것이 공덕에 머무는 첫 단계이다.
030_0263_a_03L入息與出息
繫心隨憶念
憶念若不忘
是初功德住

이런 공덕에 머문 다음에
다시 방편을 일으켜
공덕을 더 얻으려고 할 때에
거기 머무르면 더욱 올라감이 있게 된다.
030_0263_a_05L彼功德住已
復起方便求
更求功德時
住則生升進

더욱 진전이 있을 때에는
또한 공덕에 머무르는 것이 생긴다.
이것에 머무르면 곧 더욱 진전이 있게 되고
이미 나아가면 다시 공덕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030_0263_a_06L升進等起時
亦生功德住
是名住已進
進已功德住

안반(安般)의 모양인
공덕과 모든 허물
호흡의 가벼움과 무거움, 차가움과 더움
부드러움과 거침, 껄끄러움과 매끄러움을 잘 알아야 한다.
030_0263_a_07L善解安般相
功德及諸過
息輕重冷暖
軟麤與澀滑

들숨과 날숨을 섭수하여
이것을 모든 근(根)에 받아들여
그 소연(所緣)의 경계에서도
이것을 섭수하여 고요하게 머물게 된다.
030_0263_a_09L 阿那攝般那
是攝持諸根
於彼所緣境
攝之令寂止

수식법[數法]으로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되돌려 섭수하는 뜻도 또한 그러하다.
바람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을
아나(阿那)라고 한다.
030_0263_a_10L 外散心數法
攝還義亦然
持風來入內
是故說阿那

마음이 소연을 따라 구르면
그치게 하여 다시는 구르지 않게 하고
마음이 소연을 따라 일어나면
이를 다시 제어하여 멸하게 한다.
030_0263_a_11L心轉於所緣
止令不復轉
心於所緣起
亦復制令滅

수행하여 관(觀)이 증진하면
이를 제어하여 지(止)에 따르게 한다.
수행하여 만약 지가 증진하면
이를 일으켜 관(觀)에 따르게 한다.
030_0263_a_13L 修行觀若增
制之令從止
修行若止增
起之令從觀

견(見)이 증하면 촉(觸)으로 하고
촉이 증하면 견으로 한다.
득증(得證)과 지증(智證)
이 두 증이 함께 서로 섭지(攝持)한다.
030_0263_a_14L見增則以觸
觸增則以見
得證與智證
二增俱相攝

수행하는 데 고요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머물러 섭수하면
몸에서 청량함이 일어나서
모든 열뇌(熱惱)를 멸하여 없앤다.
030_0263_a_15L修行緣不寂
意寂止攝來
身中淸涼起
滅除諸熱惱

요동하여 고요하지 않은 마음을
붙잡아서 고요하게 머물게 한다.
방편에 힘써 회전하면
그 몸이 모두 충만하게 된다.
030_0263_a_17L掉踊不靜心
攝之令寂止
勤方便廻轉
其身悉充滿

4대종(大種)을 장양(長養)함은
호흡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 종류가 다시 증익하면
수행하는 사람은 4대에 집착한다.
030_0263_a_18L 長養四大種
當知從息起
是種復增益
行者報四大

들숨[阿那]의 힘은 능히
고요히 머물게 하며 선법(善法)을 일으키고
내가 소유한 큰 악도
없애 나가게 한다.
030_0263_a_19L阿那力能起
寂止善法分
我所大惡刺
亦能拔令出

호흡이 짧아지면 차츰 멸하여
수행자는 마음이 안정된다.
그러므로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를 말하여 아나(阿那)라 하셨다.
030_0263_a_21L息短而漸滅
修行心安靜
是故佛世尊
說名爲阿那

다시 반나(般那)의 모습
이것을 지금 대강 설명한다면
030_0263_a_22L 復次般那相
是今當略說

털구멍의 모든 구멍과
호흡의 길을 먼저 깨끗이 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반나라고 하니
바야흐로 들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일어난다.
030_0263_a_23L毛孔諸竅處
先淨治息道
前出名般那
始由入風起
030_0263_b_01L
날숨을 수행할 때에
모든 근(根)이 소연을 따르고
마음과 심법(心法)이 그에 따르는 것을
또한 반나라고 한다.
030_0263_b_01L修行出息時
諸根隨所緣
心心法俱順
是亦說般那

날숨이 사라지고 나면
드디어 근본지(根本地)에 들어간다.
정수(正受)를 그치면
이것이 사(捨)를 거쳐 숨을 내쉰다.
030_0263_b_03L出息歸於滅
乃入根本地
正受及命終
斯由捨出息

수행하여 날숨이 멸하면
다음으로 들숨[阿那]이 생긴다.
멸진하여 삼마제(三摩提)에 드니
제4선(禪)이 또한 그러하다.
030_0263_b_04L修行出息滅
次第阿那生
滅盡三摩提
第四禪亦然

날숨[般那]이 이미 멸하고 나면
다음으로 들숨이 생긴다.
들숨을 쉴 때 희망하는 것을
아세바사(阿世婆娑)라고 말한다.
030_0263_b_05L般那旣已滅
次第阿那生
阿那時悕望
說阿世婆娑

내가 죽은 자를 살펴보니
분명 이와 같은 모습이 없다.
그런데 호흡이 다시 생긴 자는
살펴보니 이러한 모습이 있다.
독기 서린 진창의 화사(火蛇)의 모습과
그 경계가 비슷하다.
030_0263_b_07L我觀彼死者
定無有是相
彼息更生者
觀有如是相
毒淤埿火蛇
此相似境界

날숨으로 능히 마음을 섭수하여
소연을 따르지 않게 함이
마치 코끼리를 제어하는 갈고리와 같은 것을
파세바사(波世婆娑)라고 한다.날숨은 섭심(攝心)의 뜻이 있다.
030_0263_b_09L出息能攝意
不令隨所緣
猶如制象鉤
名波世婆娑出息有攝心義

전도된 생각을 제거하여 버리고
진실한 생각을 성취하여
자재(自在)와 향상함을 여의고
오직 공행(空行)의 모임[聚]만을 행하라.
030_0263_b_10L捨除顚倒想
成就眞實想
離自在及常
唯爲空行聚

본래 온 곳이 없고
가도 이를 곳이 없고
가고 오는 것이 없으니
잠시도 머물 수가 없다.
030_0263_b_12L本無所從來
去亦無所至
去來不可得
亦不須臾住

지혜로운 자가 이것을 분명히 본다면
모든 짓고 아는 것을 여읜다.
날숨은 만드는 것이 없다고
본다면 전도(顚倒)에 떨어지리라.
030_0263_b_13L慧智明見此
離諸知作者
出息無作者
見則墮顚倒

날숨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니
그것은 볼 수가 없다.
목숨이 끊어지면 모든 호흡이 멈추듯
과거란 것 역시 그러하다.
030_0263_b_14L出息已過去
彼則不可見
命斷諸息滅
過去亦復然

안반의 모든 공덕들과
날숨과 들숨과
온갖 사물 그리고 문자의 뜻을
내가 이미 대강 설하여 마쳤노라.
030_0263_b_16L安般諸功德
出息與入息
衆物及字義
我已略說竟

이런 것들은 고설(故說)을 보탠 것이니
일찍이 서로 분리해 써서는 안 되리라.
만약 깨닫는 생각이 흩어지면
마땅히 안반념(安般念)을 익혀라.
030_0263_b_17L是種增故說
未曾相離用
若爲覺想亂
當習安般念

이미 수식(數息)에 응하게 되면
곧 내부의 탐착을 제거한다.
만약 수식에 순응해 따른다면
곧 따르지 않는 것을 여의게 된다.
030_0263_b_19L已能應於數
則除內貪著
於數若隨順
是則離不順

뜻이 흩어짐이 없는 경지에서
능히 흩어진 모든 생각을 포섭하라.
먼저 수를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열에 이른다.
030_0263_b_20L志在無亂境
能攝諸亂相
先數從一起
如是乃至十

수행하여 이 수에 따르면
곧 공덕에 머묾을 얻으리라.
그리하여 공덕에 머묾을 얻고 나면
곧 더욱 나아가게 되기를 구한다.
일체 산란함을 없애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더욱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수문(數門)을 마친다.
030_0263_b_22L修行順此數
便得功德住
已得功德住
則能求升進
滅一切亂覺
佛說增上故數門竟
030_0263_c_01L
수는 능히 일체를 멸한다.
깨닫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멸한다고 말씀하셨다.
일체가 사(死)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나아가기 때문이다.
030_0263_c_01L數能滅一切
覺佛但言滅
一切不死者
以增上故也

안과 밖으로 들고 나는 호흡이
가는 대로 마음의 그림자가 따라
결정(決定)을 하여 잘 관찰해서
따르면 이것이 열반에 나아가는 것이다.
030_0263_c_02L內外出入息
去則心影隨
決定善觀察
順是趣涅槃

날숨과 들숨을 수행하여
그것이 일어나는 곳을 따라 이르러날숨과 들숨이 일어나는 곳은 다 같이 배꼽에 있다.
이와 같이 승진할 줄을 안다면
바깥의 탐착을 능히 여읜다.수문(隨門)을 마친다.
030_0263_c_04L修行出入息
隨到所起處出入息所起處同在齊
如是知升進
能離外貪著隨門竟

극풍(極風)의 처소에 편안히 머무르면상하 극처(極處)의 풍제(風際)이다.
삼마제(三摩提) 등이 일어난다.
삼매가 이미 일어나면
곧 공덕에 머묾을 얻는다.지문(止門)을 마친다.
030_0263_c_05L安止極風處 極上下風際
三摩提等起
三昧旣已起
便得功德住止門竟

수행하여 정(正)에 머물면
여러 풍(風)을 관찰하여
먼저 본처(本處)를 관하라.
이른바 풍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030_0263_c_07L修行正住已
種種觀察風
先觀於本處
謂風所從起

이곳은 나(那)라고 하는데
하나가 되는가, 둘이 되는가?
서늘함과 따뜻함을 모두 관찰하면
여덟 가지가 앞에 설한 것과 같다.
030_0263_c_08L此處爲云那
爲一爲二耶
冷暖悉觀察
八種如前說

제대(諸大)를 모두 관찰하면
오직 일종(一種)만 있을 것인가?
볼 때엔 모든 것이 갖추어 있으니
하나로써 증상(增上)하여 설하리라.
030_0263_c_10L 爲摠觀諸大
唯在一種耶
觀時悉俱有
以一增上說

수행하여 풍대(風大)를 관하면
조색(造色)이 그것으로부터 생긴다.
오직 마음과 심법(心法)과
조색에 따라 일어난다.
조색이 아니고서야
다시 종대(種大)가 있을 것인가?
030_0263_c_11L修行觀風大
造色從彼生
唯心與心法
依彼造色起
非彼造色已
而復有種大

모든 유(有)의 들숨과 날숨의
이 바람을 의종(依種)이라 한다.
그리고 보풍(報風)과 장양(長養)
이를 세 종류의 바람이라 한다.
030_0263_c_13L諸有入出息
是風名依種
報風及長養
是爲三種風

혹은 말하기를 들숨이 앞에 있고
날숨이 뒤에 있다고 하고
혹은 말하기를 날숨이 앞에 있고
들숨이 뒤에 있다고 한다.
모두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한다.
030_0263_c_15L或說入在前
出者在於後
或說出在前
入者在於後
皆有因緣故
彼作如是說

그 진실된 의미를
지혜로운 자는 곧 결정한다.
如其眞實義
慧者乃決定

배꼽 있는 곳에서 일어나서
털구멍의 길을 깨끗이 다스린다.이것은 보풍(報風)이 털구멍을 열기 때문에 출(出)이라고 이름하는 것이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풍의 뜻에 연유하기 때문에
그들이 날숨이 앞에 있다고 말한다.
030_0263_c_17L於臍處所起
淨治毛孔道此報風開毛孔故名出非出外
由此風義故
彼說出在前

털구멍이 이미 열려 깨끗하면
들숨이 이미 앞에 있게 되니
마치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에
들숨에 들기 때문에 일어남과 같다.
030_0263_c_19L毛孔已開淨
入者則在前
如人初生時
阿那入故起

호흡의 바람[息風]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래서 파나(波那)라고 말한다.이것이 진실의 뜻이다.
호흡의 바람의 모든 종대(種大)는
끊어버려도 고(苦)가 생기지 않는다.
030_0263_c_20L息風最先出
是故說波那 此是眞實義
息風諸種大
割截不生苦

저것이 수(受)가 아님을 알아야 하리라.
수라고 한다면 그러하지 않으니
030_0263_c_22L當知彼非受
謂受則不然

저 수행하는 자들은
모든 단핍(斷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들숨과 날숨은
몸으로 다시 받지 않으면
030_0263_c_23L以彼修行者
不患諸斷逼
是故出入息
於身復非受
030_0264_a_01L
만약 식명(識命)을 끊을 때에는
호흡이 곧 회전하지 않는다.
이것이 곧 중생의 수식이니
반드시 명근(命根)을 연유해 일어난다.
030_0264_a_01L 識命若斷時
息則不廻轉
是則衆生數
必由命根起

호흡이란 곧 신행(身行)이니
세존께서 설하신 바이다.
또한 근본의(根本依)라 이름하니
중생이 말미암아 구르는 것이다.
030_0264_a_02L息則是身行
世尊之所說
亦名根本依
衆生所由轉

그러나 이 호흡이 멸하여 없어지면
목숨이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
능히 그 명근(命根)을 간직하기 때문에
중생의 수식이라고 한다.
030_0264_a_04L是息旣已滅
命則無所依
以能持命根
故說衆生數

아나(阿那)와 반나(般那)의 염(念)은
바람을 인연하여 경계를 삼는다.
비록 말하여 바른 사유라고 해도
그러나 진실한 행은 아니다.
030_0264_a_05L阿那般那念
緣風爲境界
雖曰正思惟
而非眞實行

모든 수행하는 바의 관은
모두 바람을 인연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관함에 차별이 있으니
이것을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030_0264_a_06L一切所修觀
彼悉緣風起
於觀有差別
次第今當說

아나와 반나의 염에는
분별하여 세 종류가 있다.
이른바 들음(聞慧)을 따라 일어나는 것과
사혜(思慧)와 수혜(修慧)이다.
030_0264_a_08L阿那般那念
分別有三種
所謂從聞起
思慧與修慧

이 안반념으로 해서
비구의 문혜(聞慧)가 생기니
모든 때에 받아들이는
명자(名字)를 경계라 한다.
030_0264_a_09L於是安般念
比丘聞慧生
一切時悉受
名字爲境界

들고 나는 호흡을 경계로 하여
정념(正念)하면 사혜(思慧)가 생긴다.
그것이 이름에 인연할 때
때로는 다시 뜻에 인연한다.
030_0264_a_10L境界出入息
正念思慧生
當知彼緣名
時或復緣義

아나와 반나의 염이
일어나는 곳에서 선혜(禪慧)를 닦으면
모든 것을 버림은 관(觀)이라 하니
오직 모든 법의(法義)만을 인연한다.
030_0264_a_12L阿那般那念
所起修禪慧
悉已捨名觀
唯緣諸法義

마땅히 경계가 가까워
갖가지 다름이 있지 않고
서로 이어지는 인연도 또한 없으니
이를 등지(等智)의 행(行)이라 함을 알아야 한다.
030_0264_a_13L當知近境界
無有種種異
亦非相續緣
說是等智行

이것을 일러 안반념은
어리석음이 없는 지혜의 성품이라 한다.
또한 사성(捨性)이라 이름하는
이것은 곧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이니
030_0264_a_14L謂是安般念
無癡智慧性
亦名爲捨性
是則佛所說

마땅히 이 지혜의 성품은
근(根)을 버림과 함께 생기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當知是慧性
捨根共俱生

그런데 만약 이 성품을 버려
나머지가 더불어 일어나게 된다면
030_0264_a_16L若使是捨性
則與餘共起

욕색(欲色) 두 가지의 번뇌를 갖게 되는데
몸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무색(無色)이 된다.
030_0264_a_17L欲色二有繫
無色無身依

그 같은 최후의 선(禪)이 아니고
몸이 밀(密)하여 호흡이 없기 때문이다.
非彼最後禪
身密無息故

혹은 근본지(根本地)라 하는 것
또한 이들 권속(眷屬)이다.
030_0264_a_18L或謂根本地
亦復是眷屬

오직 권속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근본지가 아니다.
030_0264_a_19L說言唯眷屬
非是根本地

저 성품을 버려
근본지에 있게 하고자 하면
아나와 반나의 염은
마땅히 8지(地)에 있어야 한다.
030_0264_a_20L欲使彼捨性
在於根本地
阿那般那念
應當在八地

오직 권속이라는 말은
이와 같이 근을 버림을 말하는 것이다.
저 안반념을 알면
오직 5지(地)에 있게 된다.
030_0264_a_21L所言唯眷屬
如是說捨根
知彼安般念
唯在於五地

이와 같은 정(定)은 5지에 있게 되고
이곳을 의지하여 회전하게 된다.
욕(欲)과 중간(中間)과 미지(未至)와
그리고 그 뒤의 두 권속이 된다.
030_0264_a_22L此定在五地
依是處廻轉
欲中間未至
及後二眷屬
030_0264_b_01L
가장 상정(上頂)인 4선(禪)에는
거기에 비록 근을 버림이 있더라도
그 몸을 버림은 있지 않으니
털구멍의 길로 청정하게 다스린다.
030_0264_b_01L最上頂四禪
彼雖有捨根
無有於彼身
淨治毛孔道

제4와 권속은
그 중에서 두 종류를 설하니
보생(報生)과 장양(長養)으로
오직 바람에 의지함에 있지 않다.
030_0264_b_02L第四及眷屬
彼中說二種
報生與長養
唯無有依風

날숨과 들숨은
이 바람을 의지한다.
몸이 지극히 후밀(厚密)하기 때문에
의지함이 없음을 두 종류라 말한다.
030_0264_b_03L出息與入息
是風名爲依
以身極厚密
無依說二種

부처님께서는 날숨과 들숨을
제4선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바늘[刺]이라고 설하시고
또 인후(咽喉)가 있는 곳이라고
설하신 바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라.
이것은 저것의 방편이기 때문에
또한 선(禪)의 뜻을 섭수한다.
030_0264_b_05L佛說出入息
四禪正受刺
亦言咽喉處
明知有所說
是彼方便故
亦以禪義攝

날숨과 들숨
그곳에는 정(定)이 없다.
수행하여 날숨을 관하면
위로 제4선에 이른다.
030_0264_b_07L出息與入息
彼處定無有
修行觀出息
上際第四禪

바람의 경계를 지극히 하고 나서
그것을 바르게 억념(憶念)하라.
어째서 나의 이와 같은 마음이
구경(究竟)의 인연이 아니라 하는가?
030_0264_b_08L已極風境界
於彼正憶念
云何我是心
於緣究竟未

혹은 다시 그 위에서
조금 나아가 거듭 관찰하라.
혹은 곧 그곳에서 머물러
나머지 방편을 짓지 말라.
030_0264_b_09L或復更於上
少進重觀察
或卽於彼住
不作餘方便

이와 같이 관(觀)하여 수행하면
곧 의혹을 제거할 수 있다.
修行如是觀
則能除疑惑

수행하여 풍제(風際)를 지극히 하고
이곳을 잘 관찰하라.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곧 의관(疑觀)을 제거한다고 함을 알라.관문(觀門)을 마친다.
030_0264_b_11L修行極風際
是處善觀察
當知如是心
則名除疑觀觀門竟

위를 관찰하고 난 뒤에
바람에 의지하여 다시 그치어 머문다.
응하는 바를 관찰하여
다시 나머지 닦을 바를 일으킨다.
030_0264_b_13L於上觀察已
依風還止住
觀察所應已
復起餘所修

만약 저 풍을 관찰하는 마음을
돌이켜 흔들림 없이 잘 결정하면
이것을 말하여 수행을 하는 자가
교묘한 방편을 회전한다고 한다.
030_0264_b_14L若彼觀風心
於還善決定
是說修行者
廻轉巧方便

마치 사람이 마을에 놀러 갔다가
하던 것을 마치고 나면 돌아가듯이
이와 같이 관(觀)을 수행하면
희락(喜樂)이 드디어 증장하리라.
030_0264_b_15L如人遊聚落
所作訖已歸
修行如是觀
喜樂遂增長

숨을 들이쉰다는 생각을 버리고
날숨의 연(緣)에 편안히 처(處)하라.
그리고 다시 숨을 내쉰다는 생각을 버리고
들숨의 연에 편안히 처하라.
030_0264_b_17L已捨入息念
安處出息緣
亦捨出息念
安處入息緣

수(數)에 대하여 구경에 이르고 나서
호흡이 가면 또한 이를 따라가라.
030_0264_b_18L於數已究竟
息去亦隨去

이와 같은 모든 종류를
또한 회전이라 이름한다.
如是一切種
亦名爲廻轉

응하는 바의 상을 관찰하는데
모양 모양이 회전하고
갖가지 일을 관함도
차례로 회전함 역시 그러하다.
030_0264_b_19L觀察所應相
相相而廻轉
種種衆事觀
次第轉亦然

회전을 잘하는 자에게도
이 회전의 뜻을 설해야 한다.
마땅히 이 회전이
지혜를 수행하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64_b_21L善於廻轉者
說此廻轉義
當知是廻轉
修行智慧處

저 방편이 일어나는 것에 따라
뛰어난 도가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문혜(聞慧)를 염하여 제도하면
차례로 사혜(思慧)가 생긴다.
030_0264_b_22L從彼方便起
勝道現在前
聞慧念已度
次第思慧生
030_0264_c_01L
그리하여 욕계의 행을 버린 다음
수혜(修慧)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회전이라 이름하니
세존께서 설하신 바이다.
030_0264_b_23L已捨欲界行
然後入修慧
是悉名廻轉
世尊之所說

저들 이르지 못한 곳으로부터
차례로 초선(初禪)에 들어가
제3선에 이르게 되니
그 회전 역시 이와 같다.
030_0264_c_02L從彼未至地
次第入初禪
乃至第三禪
其轉亦如是

그리고 제4선의 권속
만일 그곳에 저 바람이 있다면
이 또한 회전에 응하여
그 근본지에 들어간다.
030_0264_c_03L第四禪眷屬
若彼有風者
是亦應廻轉
入於根本地

그것에 따라 교묘한 방편을 일으켜
차례로 일어나는 연에 머문다.
들고 남과 우파(優波)
이 여섯이 모두 회전한다.
030_0264_c_04L從彼起巧便
次第住起緣
入出與優波
此六悉廻轉

공방편지(共方便地)를 버리면
공지(共地)가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공방편지를 버리면
불공(不共)이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불공방편(不共方便)을 버리면
불공이 현재 눈앞에 나타난다.
030_0264_c_06L捨共方便地
共地現在前
捨共方便地
不共現在前
捨不共方便
不共現在前

상방편지(相方便地)를 인연해서
구경지(究竟地)로 전전(展轉)한다.
이것을 상회전(上廻轉)이라 하니
밝은 지혜로 일컬어 설하는 바이다.성인과 범부가 함께 가진 법을 이름하여 공지(共地)라 하며, 연(緣)을 따라 연에 이르는 것을 이름하여 제상(諸相)을 회전한다고 하는 바, 모든 방편에 대해 여러 지(地)가 차례로 회전함 또한 이와 같다.
030_0264_c_08L緣相方便地
展轉究竟地
是名上廻轉
明智所稱說聖人凡夫共有法名爲共地從緣至名爲轉諸相諸方便諸地次第轉亦如是也

내가 지혜의 방편으로
이미 회전의 뜻으로 말하였으니
무구한 청정의 염(念)을
마땅히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030_0264_c_10L如我智方便
已說廻轉義
無垢淸淨念
今當次第說

수행하여
잠시 동안 억눌러 번뇌를 그치게 한다면
이것을 곧 청정이라 하니
부정(不淨)이 응하는 것이 아니다.
030_0264_c_12L如令彼修行
須臾抑止蓋
是則爲淸淨
不淨非所應

만약에 이미 수식(數息)을 성취하면
내부의 탐착을 능히 버린다.
이러한 뜻은 마땅히
지혜로운 자의 관이 청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30_0264_c_13L若已成就數
能捨內貪著
此義應當知
慧者觀淸淨

순응해 따르는 것이 성취되면
능히 외부의 탐착을 버린다.
이와 같이 바르게 사유하면
지혜로운 자의 염(念)이 청정해진다.
030_0264_c_14L隨順已成就
能捨外貪著
如是正思惟
智者念淸淨

비구의 마음에 이미 머물면
혼란함에 어지럽혀지지 않는데
이처럼 움직이지 않고 관찰하여
수행하면 지혜가 청정하리라.
030_0264_c_16L比丘心已住
不爲亂所亂
如是不動念
修行智淸淨

그런데 만약 이미 풍제(風際)에서
관찰하여 의혹을 여의고
다시는 호흡을 구하지 않으면
이것이 곧 청정함이다.
030_0264_c_17L若已於風際
觀察離疑惑
不復更求息
是則爲淸淨

염지(念地)를 이미 모두 마치고
의지했던 모든 과악(過惡)들을
하지 않으면 청정한 것이다.
이것을 잠깐 사이에
030_0264_c_18L念地悉已竟
所依諸過惡
不爲則淸淨
是說須臾頃

아나와 반나의 염(念)의
방편도(方便道)를 섭수한 것이라고 한다.
공덕에 머묾과 승진(升進)
이 뜻을 내가 이미 설했노라.
030_0264_c_20L阿那般那念
方便道所攝
功德住升進
是義我已說
方便升進第五竟

6. 수행승도승진분(修行勝道升進分)
030_0264_c_22L修行勝道升進分第六
030_0265_a_01L
공덕에 머묾과 승진
그리고 나머지 방편이란
수행의 일체지(一切地)인
공지(共地)와 불공지(不共地)를 섭수하는 것이다.
030_0264_c_23L功德住升進
及餘方便攝
修行一切地
共地不共地

공덕에 머묾과 승진
그것은 뛰어난 도에 의지해 일어난다.
갖가지 상행(相行)의 뜻에 대해
지금 설할 테니 잘 들으라.
030_0265_a_02L功德住升進
彼依勝道起
種種相行義
今當說善聽

제체(梯揥)가 이미 일어나면심주처(心住處)의 이름이다.
마음의 애락을 수행하라.
이와 같은 애락의 마음이
선교방편의 공덕주(功德住)가 된다.
지혜로운 자는 방편을 잘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열심히 수행한다.
이와 같이 그 공덕주는
곧 선교방편이다.
030_0265_a_03L挮揥旣已起心住處名
修行心愛樂
如是愛樂心
巧便功德住
慧者善方便
起意勤修行
如其功德住
是則巧方便

장차 미묘한 경계에 들어갈 때에
유주(流注)의 생각에 따르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마음을 섭수해 머물고
받아들여 지님과 같이
030_0265_a_06L將入微妙境
勿隨流注想
慧者攝心住
如應善受持

마땅히 머무는 바의 미묘한 공덕을
청정하게 하여 번뇌의 탁함을 없애고
구족하여 감소함이 없고
청정하여 안온함에 머물게 된다.
030_0265_a_07L所住妙功德
澄淨無垢濁
具足無減少
淸淨安隱住

순일하여 두루 선명하게
정(定)에 집중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느낌에 연유하여 있으니
때가 지나면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
030_0265_a_08L淳一普鮮明
凝定而不動
是緣由感有
時過復歸無

색상(色相)이 차례로 일어나면
갖가지로 여러 모양이 생기니
수행하여 바르게 사유하면
몸과 마음에 희락(喜樂)이 생긴다.
030_0265_a_10L色相次第起
種種衆相生
修行正思惟
身心生喜樂

이 공덕주에서
구족하여 지관(止觀)을 섭수하면
이미 능히 몸의 즐거움을 일으키고
마음 또한 바르게 안온해진다.
030_0265_a_11L於是功德住
具足攝止觀
旣能起身樂
心亦正安隱

자지(自地)와 타지(他地)의
공덕에 머묾과 승진
이것을 지금 대강 설하노라.
수행을 널리 분별하여
030_0265_a_12L自地亦他地
功德住升進
是今當略說
修行應分別

수행의 삼마제와
선교방편으로 수순하여 집중하면
지혜로운 자는 혜안을 여니
이를 공덕이라 한다.
030_0265_a_14L修行三摩提
巧便隨順念
智者開慧眼
說名爲功德

마음이 만족한 곳에 안립함을
공덕에 머묾이라 하고
성도(聖道)의 대치(對治)를 수행함을
공덕에 오르는 것이라 한다.
030_0265_a_15L心足處安立
說名功德住
聖道修對治
說名功德進

대치의 모든 성행(聖行)의
공덕에 머묾과 승진은
경지에 따라 과악(過惡)의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능히 모두 제거한다.
030_0265_a_16L對治諸聖行
功德住升進
隨地過惡心
所起悉能除

수행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공덕의 이익이 증광(增廣)한다.
신(信)ㆍ계(戒)ㆍ문(聞)ㆍ사(捨)ㆍ혜(慧)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근(根)이 없음과
욕(慾)과 정진(精進)과 참괴(摲傀)와
제(除)와 희(喜)와 방일(放逸)하지 않음과
열락(悅樂)과 염(念)과 정(定)과 사(捨)와
정지(正智)와 여타의 선법(善法)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자지(自地)의 모든 번뇌를 여읜다.
030_0265_a_18L修行勤精進
功德利增廣
信戒聞捨慧
無貪恚癡根
欲精進慚愧
除喜不放逸
悅樂念定捨
正智餘善法
如是一切種
自地離諸垢

그 공덕에 머물러 서면
곧 지위를 따라 대치한다.
이것이 정진의 힘에 연유하여
선을 도와서 마음을 장양(長養)한다.
030_0265_a_21L其功德住立
卽隨地對治
是由精進力
助善長養心

어찌 저 지위의 가운데에
종수(種數)를 섭수하지 않으리오.
공덕에 머묾과 승진의
자지(自地)를 자세히 설했노라.
030_0265_a_22L何於彼地中
種數不攝受
功德住升進
自地以廣說
030_0265_b_01L
자지(自地)의 선근의 힘으로
타지(他地)에 공덕이 생긴다.
가장 뛰어난 의리를 수행함에 대해
이 모양을 지금 대강 설하리라.
030_0265_b_01L自地善根力
他地功德生
修行最勝義
此相今略說

자지가 이미 증상하면
나머지 뛰어난 청정한 법이 생긴다.
마땅히 이 공덕은
타지로서 승진하고
030_0265_b_02L自地旣增上
餘勝淨法生
當知是功德
他地而升進

한량이 없는 방편을 행하며
모든 도탈의 법[度法]을 알아야 하며
갖가지의 대치의 모양으로 하여
타지의 공덕이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030_0265_b_03L無量行方便
一切諸度法
種種對治相
他地功德起

이를 저 초념처(初念處)에서
3념(念)을 겸하여 수행한다고 한다.

난래(煖來)와 정(頂)과 인(忍)과
세간의 제일법(第一法)과
030_0265_b_05L謂於初念處
三念兼已修
煖來及頂忍
世間第一法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와
무학도(無學道)를 또한 수행하라.
모든 선(禪)과 신통(神通)과
무량과 무색정(無色定)과
030_0265_b_06L見道思惟道
無學道亦修
諸禪與神通
無量無色定

바른 법의 도품분(道品分)과
구경(究竟)의 누진(漏盡) 지혜와
배사(背捨)와 일체입(一切入)과
묘원(妙願)의 지혜와 청정(淸淨)과
030_0265_b_07L正法道品分
究竟漏盡智
背捨一切入
妙願智淸淨

신념(身念)의 선근력(善根力)이
이와 같은 제법(諸法)을 일으킨다.
미묘한 공덕의 모양은
모두 순서에 따라서 생기고
030_0265_b_09L身念善根力
乃起是諸法
微妙功德相
一切隨順生

만약에 계심처(繫心處)에 머물면
이것이 곧 자지(自地)의 모양이다.
그 모양이 일어남이 몸에 있으니
또한 나타나고 또한 촉(觸)한다.
030_0265_b_10L若住繫心處
是則自地相
其相起在身
亦現亦復觸

때로는 과(果)에 가깝다고 설하고
때로는 가깝지 않다고 설한다.
혹은 다시 과를 함께하기도 하고
혹은 공(空)으로서 함께하지 않기도 한다.
030_0265_b_11L有時說近果
有時說非近
或復有與果
或空無所與

이른바 과에 가깝다고 하는 것은
이 모양의 주변에 머무는 것이다.
만약 저 과에 가깝지 않다면
이 모양이 먼 것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65_b_13L所謂近果者
是相近邊住
若彼果不近
當知是相遠

만약에 드러나서 닿게 한다면
이것이 곧 과와 함께한 모습이 된다.
비록 드러나도 불촉(不觸)한다면
공상(空相)이어서 공덕이 없다.
030_0265_b_14L若使現而觸
是卽與果相
雖現而不觸
空相無功德

비유하자면 마치 무과수(無果樹)가
꽃이 화려해도 열매가 없음과 같다.
030_0265_b_15L譬猶無果樹
華繁而無實

마치 사람이 몹시 춥거나 목마를 때에
먼 곳에 불이나 물이 보인다고 해도
끝내 그곳에 닿을 수가 없으니
그저 보기만 하는 모양이 역시 그러한 것과 같다.
030_0265_b_16L如人冷渴逼
遠見有水火
彼終不起觸
但見相亦然

공하므로 공덕이 없으니
몸에 쾌락이 없다.
희열(喜悅)이 끝까지 증장하여
식락(息樂)과 적지(寂止)와
몸과 마음에 이와 같은 즐거움을 받는다.
이를 말하여 과(果)와 함께한 모습이라 한다.
030_0265_b_17L空無功德故
於身無快樂
喜悅極增長
息樂及寂止
身心受斯樂
是說與果相

공덕과 그리고 나머지 법의
자지(自地)와 타지(他地)와의
승진상(升進相)에 회전을 하니
4종(種)이 모두 역시 그러하다.
030_0265_b_19L功德及餘法
自地與他地
升進相廻轉
四種俱亦然

모든 승진의 모양들과
수용하고 묘한 갖가지 인(印)과
연화(蓮花)와 뭇 보배 나무와
화려한 모든 그릇과 의복들이란
광염(光炎)이 지극히 찬란하니
한량없는 장엄 도구들이다.
030_0265_b_21L一切升進相
殊妙種種印
蓮花衆寶樹
靡麗諸器服
光炎極顯炤
無量莊嚴具

지혜로운 자는 뛰어난 도의
공덕에 머묾과 승진을 설한다.
일어나는 모든 묘상(妙相)들을
내 지금 이를 갖추어서 설하리라.
030_0265_b_23L慧說爲勝道
功德住升進
所起諸妙相
我今當具說
030_0265_c_01L
수행하는 자들은 잘 들으라.
이 위의 만다라(曼茶邏)에서
순일하게 온갖 상(相)을 일으키고
유광(流光)이 참연(參然)히 내려오고
청정하기가 마치 파리(頗梨) 보배와 같으니
그 빛이 4체(體)에 충만하다.
몸을 지극히 유연하게 하고
다시 몸으로부터 나와
030_0265_c_01L修行者諦聽
於上曼荼邏
淳一起衆相
流光參然下
淸淨如頗梨
其光充四體
令身極柔軟
又復從身出

점점 아래로 흘러내려서
그 선근의 힘을 따라
멀고 가까움에 일정한 모양이 없고
030_0265_c_04L漸漸稍流下
隨其善根力
遠近無定相

그것이 저 만다라(曼荼邏)를 이루어
형세가 다하면 본처(本處)로 돌아온다.
彼成曼荼邏
勢極還本處

근본 종성(種性) 가운데에
그 모양이 세 단계로 일어나니
030_0265_c_05L根本種性中
其相三階起

공덕주(功德住)의 다섯 모양과
공덕진(功德進)의 다섯 모양인데
030_0265_c_06L功德住五相
功德進五相

불괴(不壞) 공덕이 둘이요
반괴(半壞) 공덕이 둘이요
진괴(盡壞) 공덕이 하나이다.
030_0265_c_07L不壞功德二
半壞功德二
盡壞功德一

다시 계심처(繫心處)에 돌아와서
본래의 종성(種性)에 머물러
復還繫心處
住本種性已

시방에 두루 유산(流散)해서10상(相)이 생긴다.
그 공덕이 10상(相)의 위에10상이 각각 10상을 낳는다.
다시 각각 1상(相)이 나타난다.
그리고 또 유산(流散)의 곁에서
모든 심묘상(深妙相)을 일으키고
저 심묘(深妙)한 경계에서
다시 심묘상을 일으킨다.
030_0265_c_08L流散遍十方十相生
功德十相上十相各生十相
各復一相現
又於流散邊
生諸深妙相
於彼深妙際
復生深妙相

위아래로 여러 윤상(輪相)이
다시 이같이 나타나니
030_0265_c_11L上下輪諸相
亦復如是現

저 3계(階)의 처소에서
갖가지 모양들이 생긴다.
자상(自相)은 이미 각각 멸하여
오직 저 총상(摠相)에만 머문다.
030_0265_c_12L於彼三階處
種種雜相生
自相各已滅
唯彼棇相住

모든 잡상(雜相)들은 이미 없어서
적정(寂靜)의 행(行)에 회전한다.
이들 세 가지 만다라는
경계가 나뉘어도 옮기지 않고
030_0265_c_13L諸雜旣已無
寂靜行廻轉
此三曼荼邏
境分猶不移

근본의 공덕주에 순응하니
자체(自體)가 앞의 말과 같다.
順本功德住
自體如前說

들숨의 삼마제가
하방(下方)에 두루 충만하고
날숨의 삼마제가
상방(上方)에 두루 충만하여
030_0265_c_15L入息三摩提
遍充滿下方
出息三摩提
遍充滿上方

두 가지가 함께 시방에 가득하니
묘한 심심(甚深)을 바르게 받는다.
이와 같이 마음에 따르면
이를 일러 법자재(法自在)라 한다.
030_0265_c_17L二俱滿十方
正受妙甚深
如是隨意者
是謂法自在

청정한 계심처(繫心處)를
법이 없으니 구하지 않는다.
이미 생긴 것을 장양하여
모든 공덕을 성취하니
하늘의 만다수(曼陀樹)처럼
만다지(曼陀池)에서 나서 자란다.
030_0265_c_18L淸淨繫心處
無法而不求
旣生有長養
成就諸功德
如天曼陁樹
曼陁池生長

공덕에 머묾과 승진과
갖가지의 묘상(妙相)들
이 뜻을 내가 이미 설했으니
이를 수행하여 잘 지켜 가져라.
030_0265_c_20L功德住升進
種種衆妙相
是義我已說
修行善守持
勝道升進第六竟


7. 수행방편도안반념결정분(修行方便道安般念決定分)
030_0265_c_22L修行方便道安般念決定分第七
030_0266_a_01L
승진의 법이 섭지[攝]하는
여러 공덕들을 이미 설했으니
수행의 결정분(決定分)에 대해
이제 이를 차례로 설하리라.
030_0265_c_23L已說升進法
所攝諸功德
修行決定分
是今次第說

날숨의 염(念)을 잘하면
들숨 또한 그러하다.
善於出息念
入息俱亦然

출입을 자세히 사유하고
분별하여 갖춤에 명료하면
이것이 곧 결정분이니
세존께서 설하신 것이다.
030_0266_a_02L出入諦思惟
分別具明了
此則決定分
世尊之所說

일체의 선근(善根)은
각각 그 자상(自相)을 다하고
가장 뛰어난 무상(無上)의 지혜를
그 이름을 말하여 결정(決定)이라 한다.
030_0266_a_04L一切諸善根
各各盡自相
最勝無上智
說名爲決定

저 모든 수행하는 자들은
이 결정분에 안주해야 하며
날숨과 들숨 때에
무상(無常)한 모양을 바르게 관찰하라.
030_0266_a_05L彼諸修行者
安住決定分
出息入息時
正觀無常相

호흡법이 차례로 일어나고
전전(展轉)하여 다시 서로 인연이 되며
나아가 뭇 인연이 합하여
일어나는 때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030_0266_a_07L息法次第生
展轉更相因
乃至衆緣合
起時不蹔停

화합의 법은
그 성질이 신속히 쇠하여 멸함을 알아야 한다.
법은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성(性)은 약하므로 무상하다.
030_0266_a_08L當知和合法
是性速朽滅
法從因緣起
性羸故無常

모든 인연의 힘으로
이 법이 생기게 된다.
허망하여 견고함이 없으니
신속히 일어났다가 신속히 멸한다.
030_0266_a_09L一切衆緣力
是法乃得生
虛妄無堅固
速起而速滅

비상(非常)의 독(毒)에 해침을 받아
그 성(性)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 같은 관법을 수행한다면
이것이 곧 결정념이다.
030_0266_a_11L非常毒所毒
其性不久住
修行如是觀
此則決定念

저 운행하는 하늘에 비유컨대
호흡의 변화가 그보다 더욱 빠르다.
무상상(無常想)을 결정하고
수행하여 열반으로 나아간다.
030_0266_a_12L譬如運行天
息變疾於彼
決定無常想
修行趣涅槃

날숨이 아직 멸하지 않으므로
들숨이 생기지 않고
들숨이 아직 멸하지 않으므로
날숨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수행의 결정분이다.
030_0266_a_13L非出息未滅
而有入息生
非入息未滅
而有出息生
如是諦觀察
修行決定分

거칠고 껄끄럽고 날카로운 가시가 생기고
갖가지로 괴롭고 핍박하는 모양은
이른바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때에 줄어들고 끊어진다.
030_0266_a_15L麤澀利刺生
種種苦逼相
謂息出與入
一切時迫切

호흡에서 능히 깨달아 알아라.
모든 괴로움의 모양이 구족함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진리의 사유를
이름하여 결정이라 한다.
030_0266_a_17L於息能覺了
具足衆苦相
如是諦思惟
說名爲決定

자상(自相)은 견고함이 없고
적멸하고 공하고 무아로서
인연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인연 따라 일어나므로 멸하는 것이다.
030_0266_a_18L自相無堅固
寂滅空無我
因緣力所起
從緣起故滅

아상(我相)이 있음을 여의면
항상 머물러서 변역(變易)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전도의 행(行)을
일체 모두 멀리 여의고
오직 진실하게 관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결정이라 한다.
030_0266_a_19L捨利有我相
常住不變易
如是顚倒行
一切悉遠離
唯作眞實觀
是名爲決定

내가 없음으로써 견고함이 없고
또한 자재함이 없는 것이다.
저 들고 나는 호흡에는
일찍이 각지상(覺知相)이 없다.
내가 없음을 자세히 아는 것을
결정이라 한다.
030_0266_a_21L非我無牢固
亦無有自在
非彼出入息
曾有覺知相
諦知無我故
是說爲決定
030_0266_b_01L
이 지혜의 모양이
성행(聖行)의 이름에 비슷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곧 방편인 것이니
저 진실의 행이 아니다.
030_0266_a_23L當知是智相
相似聖行名
此則爲方便
非彼眞實行

비구여, 안반념(安般念)은
잡된 생각들로 깨달음이
이미 어지럽혀져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마땅히 수(數)를 따라 일으킨다.
혹은 들숨을 따라 수를 헤아리고
혹은 날숨을 따라 수를 헤아린다.
생각의 어지러움과 각관(覺觀)의 상(想)은
이로 인해 구경(究竟)하여 여읜다.
030_0266_b_02L比丘安般念
雜想覺所亂
旣亂心不悅
應當從數起
或從入息數
或從出思數
思亂覺觀想
由是究竟離

지혜로운 자는 들숨에 있어서
마음을 묶어 수식을 행할 때에
한 번 들어오는 것을 세어서 하나로 하고
나가는 숨을 섞어서 헤아리지 말며
전념하여 수를 흩어지지 않게 한다.
이같이 하여 열에 이르고
030_0266_b_04L慧者於入息
繫心行數時
一入數爲一
不雜數出息
專念不亂數
如是乃至十

그 열에 날숨을 버리면
이로부터 결정을 얻는다.
이것이 곧 구족된
근본수(根本數)를 성취한 것이다.
030_0266_b_06L捨彼十出息
從此得決定
此則說具足
成就根本數

다시 나머지 수법(數法)이 있으므로
방편을 일으켜 수행한다.
更有餘數法
修行方便起

만일 근본수법을
결정할 수 없으면
숨을 촉급하게 하여 깨닫기 쉽게 하고
방편으로 마음을 생하게 한다.
030_0266_b_08L若於根本數
不能起決定
促息使易覺
方便令心生

마땅히 두 번의 나가는 숨을 버리고
하나의 들어오는 숨을 세어야 한다.
마음이 안정된 것이 흩어지지 않으면
둘의 수를 센다.
030_0266_b_10L當捨二出息
然後數入一
定意心不亂
第二數成就

만약에 두 번의 방편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열의 나가는 숨을 넘은 뒤에
들어오는 숨의 하나를 헤아린다.
030_0266_b_11L若於二方便
猶不起決定
乃至越十出
然後數入一

바르게 생각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으며
차례로 구족하게 되는 것을
수행자의
열 가지 수(數)의 성취라고 한다.
030_0266_b_12L正念心不亂
次第至具足
是說修行者
十種數成就

위와 같은 열 가지의 법은
곧 수의 구경이다.
더 이상은 다시 버려야 한다.
수를 더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030_0266_b_14L如上十種法
是則數究竟
於上更復捨
增數非修行

이와 같이 수를 수행하면
이것이 곧 수법(數法)을 이룬 것이다.
이룬 뒤에는 마땅히 이를 버리고
다시 나머지 방편에 나아가야 한다.
030_0266_b_15L修行如是數
是則數法成
成已應當捨
復進餘方便

이처럼 수법을 수행하여
만약 다시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마땅히 다시 앞에서 설한 것처럼
처음의 수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한다.
030_0266_b_16L修行於數法
若復不成就
應更如前說
還從初數起

방편을 써서 수법을 이루면
곧 결정분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수법을 성취하면
지혜로운 자의 마음이 수순하는
030_0266_b_18L方便成數法
便得決定分
數法已成就
慧者心隨順

앞에서 설한 여섯 가지는
수행의 바른 방편을 설한 것과 같다.
이 같은 여섯 가지를 수행하면
신속히 염리상(厭離想)이 일어나
생사에 집착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힘써 근심과 번뇌를 끊고
030_0266_b_19L六種如前說
修行正方便
修行於六種
疾生厭離想
不樂著生死
勤憂斷煩惱

수행하여 마음속에
일체 유위법(有爲法)을 멀리 여의어라.
욕망을 여읨이
청정(淸淨)한 결정분(決定分)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66_b_21L修行心遠離
一切有爲法
當知是離欲
淸淨決定分

혹은 긺이 앞에 있다고 말하고
혹은 짧음이 앞에 있다고 말한다.
그 결정의 뜻에 대하여
지금 이를 차례로 설하리라.
030_0266_b_22L或說長在前
或說短在前
如其決定義
今當次第說
030_0266_c_01L
날숨이 일어날 때를 일러
짧음이 앞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응하는 바가 아니라고 하고
형세가 차츰 증진하기 때문에
030_0266_c_01L謂出息始起
說言短在前
是說非所應
勢漸增進故

호흡이 감으로써 점점 멀어지고
나아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소진하는 이것이 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짧은 것은 그러하지 않다.
030_0266_c_02L息去漸久遠
乃至未還間
當知盡是長
謂短則不然

날숨이 차츰 증장하더라도
구경처에 이르지 못하면
이 가운데서 관찰하는 바를
이름하여 긴 가운데 짧음이라 한다.
030_0266_c_03L出息漸增長
未到究竟處
是中所觀察
說名長中短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편을 정진하여
전념하여 바르게 사유하고
증장하여 구경에 이르는 것을
이름하여 긴 가운데 긺이라 한다.
030_0266_c_05L一心勤方便
專念正思惟
增長至究竟
說名長中長

이미 관함에 바람이 회전하고
나머지 구상(求想)을 버린
다음에 결정을 얻으면
이것이 곧 짧은 가운데 긺이다.
030_0266_c_06L觀已風廻轉
捨離餘求想
然後得決定
此則短中長

들숨이 극도로 짧을 때에는
돌아와 일어난 곳에 이르는데
그 관찰하는 바를
이름하여 짧은 가운데 짧음이라 한다.
030_0266_c_07L入息極短時
還到所起處
於是所觀察
說名短中短

이와 같이 바르게 사유하고
수행하여 매우 명료하면
이미 결정분을 얻게 된다.
다시 나머지 방편에 나아가
030_0266_c_09L如是正思惟
修行善明了
已得決定分
復進餘方便

몸 가득 널리 출입하는
신행(身行)의 호흡을 깨달아 알라.
이와 같은 각(覺)을 수행하면
이것을 곧 결정분이라 한다.
030_0266_c_10L滿身遍覺知
出入身行息
修行如是覺
則爲決定分

비유컨대 마치 세차게 타는 불길의
그 광염(光炎)이 길고 먼 것과 같다.
섶이 다하면 불도 꺼지나니
불꽃이 다시 차츰 짧아진다.
그러나 다시 섶을 다 지핀다면
불꽃이 두루 널리 비추고
세력이 다하면 드디어 꺼지나니
저 네 종류의 바람도 역시 그러하여
030_0266_c_11L譬如火熾然
光炎則長遠
薪盡火將滅
光炎還漸短
若更增益薪
光炎普周遍
勢盡乃歸滅
四種風亦然

혹은 길고 짧음의 내외에서
교호(交互)하여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혹은 둘을 함께 장단(長短)으로 말하니
이와 같이 갖가지로 설명한다.
030_0266_c_14L或說於長短
內外互立名
或二俱長短
如是種種說

마치 저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올릴 때
두레박이 내려갈수록 점점 멀어지다가
다시 이를 끌어올려
끝에 이르면 그것이 짧아지는 것과 같다.
030_0266_c_15L如彼汲深井
甁下轉就遠
旣攝令還上
訖至復之短

마치 허공에 활을 쏨에 있어서
날아가는 화살이 거침없이
점점 높이 올라가지만
힘이 다하면 다시 내려오는 것과 같다.
030_0266_c_17L譬如仰射空
矢發疾無閡
其去漸高遠
勢極還自下

수행하여 바르게 사유하고
풍상(風相)에 의지하여 관찰하면
처음에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니
장단의 뜻도 역시 그러하다.
030_0266_c_18L修行正思惟
觀察依風相
初遠然後近
長短義亦然

마치 저 끌고 돌아가는 바퀴가
굽혔다 폈다 하며 서로 왕래할 때
멀리 갔을 때는 길다고 하고
가까이 돌아오면 짧다고 하는 것과 같다.
호흡의 바람이 번갈아 들고 나니
길고 짧음이 역시 그러하다.
030_0266_c_19L猶如牽旋輪
屈伸互往來
往遠名爲長
來近則爲短
息風迭出入
長短亦復然

비유컨대 저 진제(眞諦)를 관찰해 보면
먼저는 고(苦)인데 나중엔 집(集)인 것과 같다.
호흡의 관함 또한 이와 같아서
먼저는 길고 다음엔 짧다.
030_0266_c_21L譬彼眞諦觀
先苦而後集
觀息亦如是
先長然後短

만약 초선의 호흡이 짧고
제2선의 호흡이 길다고 하더라도
정수(正受)의 뜻에 거스른다는
이러한 말은 그러하지 않다.
030_0266_c_23L若初禪息短
第二禪息長
以違正受義
是說則不然
030_0267_a_01L
그와 같은 초선 중에서
호흡의 바람의 세력이 지극히 멀고
제2선의 호흡이 짧아서
정수가 차츰 차별된다.
몸에 가득 두루 각지(覺知)를 함은
곧 제3선에 의지한 것이다.
최후에 몸으로 하는 호흡은
털구멍을 떠나게 된다.
030_0267_a_01L於彼初禪中
息風勢極遠
第二禪息短
正受漸差別
滿身遍覺知
則依第三禪
最後身行息
以離毛孔故

이것은 모든 삼매가
공덕의 상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수행하여 거기에 안주하면
깨닫는 생각이 흩어지지 않게 된다.
030_0267_a_04L此說諸三昧
隨順功德相
修行安住彼
不爲覺想亂

그런데 왜 초선을 하는 중에
긴 것만 말하고 짧음은 없는가?
모든 의지하는 것을 버리지 않으니
이러한 까닭에 호흡이 길다.
030_0267_a_05L何故初禪中
唯說長無短
不捨諸所依
由是故息長

그것은 깨닫는 생각의 힘으로써
호흡을 하여 가고 길어진다.
두 번째는 모든 의지하는 바를 버리므로
세력이 약하기에 호흡이 짧다.
030_0267_a_06L彼以覺想力
能令息去長
第二捨諸依
勢羸故息短

깊고 깊은 수다라(修多羅)에서
부처님께서는 산정(山頂)의 샘은
흐르는 세력이 멀리 미치지 않으니
여타의 곳으로부터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하셨다.
030_0267_a_08L甚深修多羅
佛說山頂泉
涓流勢不遠
餘處無來故

그와 같은 산정의 비유처럼
두 번째의 의지하는 바도 역시 그러하여
단지 그곳을 좇아 일어나니
이것이 끝내 멀지 않다.
030_0267_a_09L如彼山頂喩
第二依亦然
唯從其處起
是終不能遠

건장한 사나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도 산을 오르며
있는 힘을 다해 기운을 쓰니
그 호흡의 바람이 급하게 회전한다.
그러다가 편안한 곳에 이르면
그 호흡이 고르게 되니
이러한 비유는 저 호흡이
먼저는 짧고 나중은 길다는 말이다.
030_0267_a_10L彼說健士夫
負重而上山
竭力令氣奔
息風急廻轉
旣到安隱處
其息乃調適
是喩說彼息
前短而後長

저 건장한 사나이가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도
신력(身力)의 방편을 쓰면
그로 해서 호흡을 길게 한다.
030_0267_a_13L所說健士夫
負重而上山
以身力方便
是乃令息長

그러나 만약 방편이 나빠서
자기 힘으로 짐을 지지 못하면
힘이 없는 방편이기에
호흡이 약하므로 멀리 가지 못한다.
030_0267_a_14L如彼劣方便
不自力負重
以無力方便
息微故不遠

비유컨대 남자가 활을 쏠 때
화살을 멀리 가게 함과 같아서
힘이 약해 방편이 없으면
세력이 약해서 가까이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030_0267_a_16L譬如壯夫射
能令箭極遠
劣力無方便
勢弱去則近

이러한 비유는
장단의 뜻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67_a_17L此喩應當知
是說長短義

세미(細微)한 깨달음을 수행하여
모든 진리에 이와 같이
16분(分)을 명료히 하면
모두 이름하여 결정(決定)이라 한다.
030_0267_a_18L修行細微覺
一切諦明了
如是十六分
悉名爲決定

방편 승진(升進)의 이와 같은
공덕에 머묾을 분별하여
안반념을 결정함도
역시 마땅히 이와 같이 설했노라.
030_0267_a_20L如方便升進
分別功德住
決定安般念
亦應如是說

그런데 저들 설하지 않은 것의
나머지 모든 공덕에 머묾을
마땅히 내가 설하리라.
그 결정분에 대한 것처럼
030_0267_a_21L如彼所未說
諸餘功德住
是故我當說
如其決定分

바람이 일어나는 바
근본의 청정함을 지극히 관찰하고
미묘한 모양을 수행하면
곧 이곳에서
030_0267_a_22L觀察風所起
根本極淸淨
修行微妙相
則於是處現
030_0267_b_01L
저 구경처에
마니 보배의 삼매를 나타낸다.
이 공덕으로부터
방편과 근본이 생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030_0267_b_01L於彼究竟處
摩尼寶三昧
當知此功德
方便根本生

미묘한 방편의
근본 결정분을 이미 설했노라.
나머지 깊은 정수(正受)의 모양은
모두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030_0267_b_02L已說妙方便
根本決定分
餘深正受相
一切如前說
方便決定分竟

8. 수행방편승도결정분(修行方便勝道決定分)
030_0267_b_04L修行方便勝道決定分第八

이미 방편도를
섭수한 결정분을 설했으니
승도(勝道)의 결정상(決定相)에 대하여
이제 이를 내가 설하리라.
030_0267_b_05L已說方便道
所攝決定分
勝道決定相
是今我當說

수행하여 잘 결정해서
계심처(繫心處)가 견고해지면이염(爾炎)을 이른다.
신수(身受)와 심법(心法)
이것에서 바르게 관찰한다.
030_0267_b_07L修行善決定
繫心處堅固謂爾炎也
身受與心法
於是正觀察

여섯 가지 인(因)이 있어서
이것이 과(果)를 성취한다고 한다.
성(成)과 괴(壞)가 각각 세 종류이니성숙(成熟)의 숙도 역시 괴(壞)이다.
수행의 결정상이다.
030_0267_b_08L說有六種因
是能成就果
成壞各三種成熟熟亦壞也
修行決定相

이 같은 여섯 가지의 인(因)에서
방편으로 잘 관찰하면
능히 다음 차례에
모든 번뇌를 신속히 끊을 수 있다.
030_0267_b_10L於是六種因
方便善觀察
是則能次第
疾得諸漏盡

그리고 다시 나머지 인이 있으니
갖가지 허물고 이루는 일이
이와 같이 많아서 한량이 없으니
내가 지금 이를 대강 설하리라.
030_0267_b_11L復更有餘因
種種成壞事
如是多無量
我今當略說

어떤 것들이 수행이 되는가?
물의 종류의 허물어진 모양은
이레 동안이면 죽은 시체가
헐어 변한 모양으로 드러나게 된다.
030_0267_b_12L何等爲修行
水種所壞相
謂七日死屍
毀變相已現

저들 모든 죽은 시체들은
검고 푸르게 썩어서 문드러진다.
이미 썩어서 피고름이 흐르니
고약한 즙이 흘러서 퍼진다.
허물어져 흐르고 문드러지고
온갖 지독한 냄새가 풍긴다.
030_0267_b_14L彼彼諸死屍
靑黑瘀爛壞
已壞膿血流
惡汁相澆漫
潰漏若分離
雜惡極臭穢

이것이 모두 물이 허물어진 것이니
내신(內身)이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저 오랜 겁 동안의 성패(成敗)는
물의 큰 힘에 연유한다.
030_0267_b_16L是悉水所壞
內身俱亦然
乃至劫成敗
斯由水大力

물결이 크게 끓어 솟구치면
대지가 모두 침수되어 무너진다.
저 3선(禪)의 경계로부터
물이 두루 휘돌아서 내려오고
마구 쏟아짐이 극히 표탕(漂蕩)하여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소진한다.
030_0267_b_17L水輪極沸涌
大地皆瀸壞
從彼三禪際
周帀水來下
洪注極漂蕩
有物皆消盡

모든 정식(情識)의 종류들과
백곡(百穀)과 총림(叢林)들과
흙이나 흙에서 나는 것들이
모조리 물에 의해 허물어진다.
030_0267_b_19L一切情識類
百穀及叢林
土地地所生
悉爲水所壞

중생들이 물로 해서 허물어짐은
이것이 모두 숙업(宿業)에 의함이다.
이상과 같은 수재(水災)의 모양이
무구(無垢)3한 결정설(決定說)이다.
030_0267_b_20L衆生水所壞
是皆依宿業
如上水災相
無垢決定說

이와 같은 모든 종류들이
모두가 삼매지(三昧地)의
수행의 과(果)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이 결정코 그러함을 마땅히 알라.
030_0267_b_22L此諸一切種
皆從三昧地
修行果所起
當知是決定

수행하여 마음을 잘 묶어서
삼마제에 안주하고
소연(所緣)에서 능히 밝게
그 종상(種相)을 보는 것이다.
030_0267_b_23L修行善繫心
安住三摩提
是能於所緣
明見彼種相
030_0267_c_01L
이 땅이 익을 때에 익으리.그 뜻이 또한 괴(壞)를 말하는 것인데, 이 땅이 번뇌를 허물어뜨릴 때에 괴상(壞相)을 보는 것이다.
경계의 바다에 충만하리라.
030_0267_c_01L此地熟時熟亦義言壞此地能壞煩惱時見壞相
充滿境界海

수행하여 보는 바의 허물어짐은
수대(水大)의 결정상(決定相)이다.
저 화대(火大)의 소괴상(所壞相)을
지금 설할 테니 잘 들으라.
030_0267_c_02L修行所見壞
水大決定相
火大所壞相
今當說善聽

식류(識流)와 식류 아닌 것들이
또한 위에 설한 것과 같다.
識類非識類
斯亦如上說

불이 일어나 타기 시작하고부터
모든 것들이 다 소진한다.
나아가 겁 동안의 성패(成敗)는
세계가 모조리 재가 되어 멸하고
030_0267_c_04L及自現火然
一切皆消盡
乃至劫成敗
世界悉灰滅

저 불기둥이 치솟는 곳에서
이글거리는 큰 불꽃이 일어난다.
또한 2선(禪)의 경계로부터
가득 차게 모두 불을 비처럼 내리고
030_0267_c_06L於彼火輪處
熾炎大火起
亦從二禪際
彌滿悉雨火

성한 불길이 두루 널리 변만해서
세계가 모두 퀭하니 뚫린다.
저 삼매의 경지에서
바른 관찰의 사유가 일어나고
030_0267_c_07L盛火普周遍
世界俱洞然
於彼三昧地
正觀思惟起

수행하여 이런 변화를 보는 것이
불이 무너지는 결정의 모양이다.
저 풍대(風大)의 소괴상(所壞相)을
지금 차례로 설하리라.
이와 같은 여러 종류가
모두가 다 풍대의 허물어진 모습이라.
030_0267_c_08L修行見此變
火壞決定相
風大所壞相
今當次第說
如上諸種類
悉爲風所壞

대지와 수미산이
분산하여 분진(粉塵)처럼
모두 소진하고 마멸(磨滅)하니
이것이 모두 바람의 큰 힘이다.
030_0267_c_11L大地及須彌
分散若粉塵
一切盡磨滅
是皆風大力

위의 저곳은 제4선이요
아래는 지극한 풍륜(風輪)의 세계이다.
재풍(災風)이 저곳에서 일어나서
그곳이 모두 무너져 흩어진다.
030_0267_c_12L上際第四禪
下極風輪界
災風從彼起
其中皆散壞

모든 것이 바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진실로
이와 같이 바르게 사유하여
바람이 무너뜨린 결정상을 보리라.
030_0267_c_13L一切風所壞
智者見眞實
如是正思惟
風壞決定相

저들이 어떻게 수행을 한다 하는가?
언제나 깊은 근심과 싫어함[憂厭]을 일으켜
앞에서 저 고법(苦法)을 보고는
이를 따라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
030_0267_c_15L云何彼修行
常起深憂厭
於前見苦法
隨憶念不忘

여덟 곳의 괴로운 큰 지옥이
각각 16분(分)을 증장하고
그것들 뭇 괴로움의 종류들의
가없고 한량없는 지옥이 있다.
중생들이 그곳에 태어나고
행함을 따라 온갖 고통을 받는다.
030_0267_c_16L八苦大地獄
各增十六分
彼彼衆苦類
無量邊地獄
衆生生彼處
隨行受衆苦

나는 이 악도(惡道)에서
아직 못 여의고 끌려오기도 했다.
마치 여덟 곳의 큰 지옥과 같아
누가 이를 다 일컬어 말하리오.
그 속의 한량이 없는 고통
그 끝을 얻기 어렵다.
030_0267_c_18L我於此惡道
未離或牽來
如八大地獄
誰能盡稱說
其中無量苦
難可得邊際

가령 사람의 머리가 백 개가 있어
머리마다 백 개의 혀가 있다고 해도
지옥의 고통을 말하고자 한다면
겁이 다해도 다 말하지 못하리라.
030_0267_c_20L設人有百頭
頭各有百舌
欲說地獄苦
窮劫不能盡

어리석음과 간힐(奸黠)의 지경(地經)을
오직 부처님만이 이를 잘 분별하신다.
나는 모조리 구경할 수 있지만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자가 없다.
030_0267_c_21L如愚黠地經
唯佛善分別
我悉能究竟
無有能測者

고독(苦毒)의 바다를 윤회하면서
무량한 겁을 오고 가고 하였으니
전도(顚倒)되어 선행(善行)하지 않으면
이러한 큰 고통의 과보에 이르게 된다.
030_0267_c_23L輪廻苦毒海
往返無量劫
顚倒不善行
致此大苦果
030_0268_a_01L
자기 숙명(宿命)을 스스로 본다면
이런 고통은 다들 일찍 겪었다.
수행하여 본래의 고통을 기억한다면
열반을 따름을 곧 얻으리라.
030_0268_a_01L自見宿命時
是痛曾悉經
修行憶本苦
便得順涅槃

어두운 마음은
축생의 부정한 업을 증상시키니
어리석음의 불애(不愛)의 과보와
갖가지 괴로움의 과보의 몸을 받는다.
030_0268_a_02L闇冥心增上
畜生不淨業
受癡不愛果
種種苦報身

9만 9천 종류의
그 형태가 각각 서로 달라
九萬九千種
形類各別異

공중을 다니는 것과 수륙(水陸)의 성질들이 있으며
기어 다니고 꿈틀거리는 무리들이
각각 그 업을 따라 삶을 받았으니
이러한 극적인 곳을 구른다.
일체의 저 축생들은
돌아가며[展轉] 서로 잔인하게 먹으니
030_0268_a_04L空行水陸性
蚑行蠕動類
隨業各受生
宛轉此劇處
一切諸畜生
展轉相殘食

내가 본래 어리석었으므로
일찍이 이런 괴로움을 모두 받는 것이다.
이것을 돌아보니 두려워져서
마음은 염환(厭患)을 수행하여
030_0268_a_06L我以愚癡故
悉增受此苦
顧此而懷懼
心與厭患俱

깊이 근심하고 싫어하면
곧 고결정(苦決定)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면
방편으로 염리(厭離)를 일으킨다.
030_0268_a_08L修行深憂厭
則於苦決定
修行已如是
方便生厭離

다시 또 스스로
아귀의 무량한 고통을 기억해 보면
바늘구멍처럼 목구멍은 가는데
거대한 몸은 옥초산(沃焦山) 같다.
이와 같이 무수한 겁 동안을
주리고 목마르고 너무 괴로워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를 보고
마시려고 하니 불덩이로 변한다.
030_0268_a_09L又復自憶念
餓鬼無量苦
咽細如鍼孔
巨身如沃燋
於此無數劫
飢渴極熱惱
見天降甘雨
欲飮成炭火

저 4대(大)의 바다는
깊고 넓어서 끝도 바닥도 없는 것 같으나
마시려면 없어지고 마니
주리고 목마름을 그칠 수가 없다.
030_0268_a_12L如彼四大海
深廣無崖底
飮之令悉盡
不能止飢渴

발가벗은 몸에 장발을 늘어뜨린 모습이
타다 남은 다라수(多羅樹) 모양이니
이런 곳에서 한없이 오래 살면서
이 같은 갖가지 고통들을 받는다.
030_0268_a_13L裸形被長髮
狀燒多羅樹
於中甚久長
受此種種苦

업풍(業風)이 사방으로 몰아치면서
몸을 휘날려 부러뜨려 버리니
마치 저 광풍이 일어나서
마른 나무를 부러뜨림 같아라.
030_0268_a_14L業風飄東西
吹身令碎折
亦如狂飆起
摧破久枯樹

내가 간탐(慳貪)의 행을 쌓아서
혜시(惠施)의 업을 익히지 않았으므로
아귀에 태어나서
이 같은 온갖 고통들을 받는 것이다.
030_0268_a_16L我積慳貪行
不習惠施業
故生餓鬼處
受此諸苦痛

삼매의 경지에서
수행하여 사유가 일어나니
갖가지로 구별해 관찰하여
곧 방일하지 않으면
030_0268_a_17L三昧境界地
修行思惟起
種種別觀察
便得不放逸

비록 번뇌는 끊지 못해도
이 같은 고통들의 핍박과 초독(楚毒)을 보아
매우 근심스럽고 두려워
생사의 고통을 지극히 싫어하게 된다.
030_0268_a_18L雖未斷煩惱
見此衆苦迫
楚毒深憂懼
極厭生死苦

이미 싫어하면 능히 욕망을 여의니
손바닥의 보배를 보는 것 같다.
탐욕을 이미 여의면
신속히 저 해탈을 얻게 되리라.
030_0268_a_20L旣厭能離欲
如觀掌中寶
貪欲旣已離
便速得解脫

비유컨대 마치 향기로운 음식
그 속에 고독(蠱毒)이 있음과 같으니
갖가지 종류의 생사의 맛의
각종 괴로움이 역시 그러하다.
030_0268_a_21L譬如香美食
其中有蠱毒
種種生死味
雜苦亦如是

마치 상자에 뱀을 담아
이것을 짊어지고 갈 때
만약 그것을 깨달아 벗어던지면
뱀에게 물리지 않음과 같다.
030_0268_a_22L亦如篋盛蛇
有人負自隨
若能覺棄捨
不爲毒所中
030_0268_b_01L
우리 몸이 또한 이것과 같아서
4대(大)가 곧 독사이니
지혜로운 자는 이를 떼어버려
그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리라.
030_0268_b_01L身亦復如是
四大爲毒蛇
智者能捨離
不爲彼所害

아둔한 자가 횃불을 잡는데
급히 잡다보면 자기 몸을 데이니
밝은 사람은 버릴 때를 알아서
불에 데는 일이 결코 없는 것과 같다.
030_0268_b_02L如愚執火炬
急持卽自燒
明人知時捨
不爲火所焚

죽고 사는 일에 즐겨 집착하는 자는
재염(災炎)이 항상 치열하리라.
그러나 만일 깨달아 버린다면
불에 데는 일은 있지 않으리라.
030_0268_b_03L樂著生死者
災炎常熾然
若能覺捨離
不爲火所焚

비유컨대 모든 두려운 곳들도
역시 저 불타는 집과 같으니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곳보다도
생사의 두려움이 더 무서워라.
030_0268_b_05L譬諸恐怖處
亦如被燒舍
蚖蛇毒%(口*赦)聚
生死畏過是

비유컨대 마치 신기루와 같고
그리고 빈 그릇과도 같다.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니
진실된 성품 역시 그러하다.
030_0268_b_06L譬猶空聚落
又如彼虛器
諸法空無我
眞實性亦然

이 같은 세 가지 악도(惡道)에서는
이처럼 고통이 한량이 없다.
하늘에 비록 희락(喜樂)이 있지만
이것 또한 커다란 고통이다.
030_0268_b_07L此三惡道中
如是苦無量
雖天有喜樂
是亦爲大苦

비유컨대 타오르는 불길과 같이
탐애의 불길도 이와 같으니
오랫동안 천상에 있으면
항상 욕화(欲火)의 불길에 탄다.
030_0268_b_09L譬彼盛火然
貪愛熾如是
久處在天上
常爲欲火焚

도리천(忉利天)에 있을 때에
선법(善法)에 편히 처해 앉아서
천녀(天女)가 공손히 시중을 들어 공양하고
지극한 쾌락이 한량없었음을 기억한다.
030_0268_b_10L自憶忉利天
安處善法坐
天女侍供養
無量極快樂

사방의 동산에 늘어선 보배 나무에
꽃과 열매가 미묘하고 장엄하다.
뜻에 따라서 다섯 곳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일찍이 모조리 받았노라.
030_0268_b_11L四園列寶樹
花果妙莊嚴
隨意五所欲
一切曾悉受

그때 백룡(白龍)과 코끼리를 타고
여러 욕지(浴池)들을 두루 노닐고
숲 속의 개울에서 마음껏 놀았는데
돌아보니 아직도 석양이로구나.
030_0268_b_13L時乘白龍象
遊觀諸浴池
縱意林流間
廻顧彌日夕

먹는 것은 모두 감로(甘露)의 맛이요
마시는 것들은 감만다(甘曼陀)로구나.
충실(充實)하여 의혹과 근심이 없으니
받는 즐거움이 저 큰 바다와 같아라.
030_0268_b_14L食必須陁味
飮則甘曼陁
充實無疑患
受樂如大海

또 내승당(內勝堂)에 거처하며
천녀가 아름다운 음악을 울리니
지극히 어여쁘고 아름다워
그 고운 자태가 눈이 부시어라.
6만 가지 목소리가 아름다우니
연하고 고운 소리를 항상 들어
눈과 귀가 조용할 때가 없으니
나의 마음을 취하여 어둡게 한다.
030_0268_b_15L又處內勝堂
天女進音樂
妖豔極姿態
光色曜心目
妙音六萬種
常聞美軟聲
耳目隨彼轉
令我心醉冥

여러 하늘들이 노래를 부르니
소리가 악기들과 어우러진다.
벌렁 드러누워 음악을 들으니
자나 깨나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
모든 근에 감겨드는 5욕(欲)이
마치 불바퀴가 휘도는 것 같으며
030_0268_b_18L諸天發微歌
聲與弦管諧
偃臥聽音樂
寤寐皆喜悅
諸根廻五欲
猶如旋火輪

수미산왕(須彌山王)의 정상에서
편히 처하면 유쾌하여 자재롭다.
101가지 각종의 여러 보배들이
사이사이 뒤섞이어 땅을 장엄하고
여러 하늘들과 함께 노닥거리며
지나온 세월이 매우 장구(長久)하다.
030_0268_b_20L須彌山王頂
安處快自在
百一衆雜寶
間錯莊嚴地
諸天共娛樂
經歷甚久長

저 다섯 경계에 접촉하니
다섯 가지 정근(情根)을 발동(發動)해
모든 것이 모조리 기특(奇特)하니
모든 것들이 쾌락의 인(因)이다.
030_0268_b_22L觸彼五境界
發動五情根
一切悉奇特
皆是快樂因
030_0268_c_01L
모든 하늘은 한 그릇의 식사를 해도
복에 따라서 차별이 있다.
이와 같은 이색(異色)을 볼 때에
마음에는 근심과 고뇌가 생긴다.
030_0268_b_23L諸天共器食
隨福有差別
見此異色時
心則生憂惱

이와 같이 슬프고 참혹하니
오히려 지옥의 고통과 같다.
如是極愁慘
猶如地獄苦

이와 같은 부정한 음식을 먹으며
머리를 숙이니 마음이 부끄럽다.
회책(悔責)하노니 본래의 숙업(宿業)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이다.
030_0268_c_02L食此不淨飯
低頭內慚恥
悔責本宿業
令我致此苦

여러 하늘들과 아수라가
스스로 지키며 저 이익을 탐하고
이로부터 다툼과 분노를 일으켜
죽음을 크게 두려워한다.
030_0268_c_04L諸天阿修羅
自守貪彼利
由是興諍怒
畏死大恐懼

혹은 하늘에게 부림을 당하고
혹은 또 지극히 가난하니
내 비록 하늘에 태어났지만
악도(惡道)의 고통과 다름이 없다.
030_0268_c_06L或爲天給使
或復極貧寠
我雖生天上
無異惡道苦

저 항상 즐거운 곳에
쇠하고 죽는 열 가지 모습이 있다.
이런 모양과 목숨이 다하는
이때가 가장 큰 고통이다.
030_0268_c_07L於彼恒樂處
衰死二五相
是相及命終
爾時最大苦

바야흐로 마음껏 즐기려고 할 때
홀연히 그만 다섯 가지 쇠함이 오니
이 같은 모양을 보았을 때에
근심과 공포로 편안하지 못하다.
030_0268_c_08L方欲恣所樂
五衰忽然至
若見是相時
愁怖不自安

천안(天眼)이 마침내 곧 깜박거리고
목욕을 하고 나면 물이 몸에 묻으며
모든 것들이 미묘한 경계에서도
그 마음이 즐겁고 기쁘지가 않으며
030_0268_c_10L天眼卒便瞬
浴已水著身
一切妙境界
其心不喜樂

천 가지 음악과
자연의 가릉빈가(加陵頻伽)새의 소리도
지금은 적적하여 소리가 없으면
마땅히 이레 만에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030_0268_c_11L千種樂自然
加陵頻伽音
今則寂無聲
當知七日死

옥녀(玉女)들이 다들 버리고 떠났으니
그 밖의 천(天)이 함께 종사하고
보고 나면 열뇌(熱惱)가 생겨서
목숨이 끝나고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030_0268_c_12L玉女悉捨去
餘天共從事
見已生熱惱
命終入地獄

그런데 현성(賢聖)한 사람은
무상한 변화를 깨달아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한다.
030_0268_c_14L唯有賢聖人
了達無常變
解脫生死苦

범부(凡夫)는 타오를 때
겨드랑이 밑에서 땀이 배어나
의복이 마침내 때가 묻는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니
이것이 정업(淨業)이 다함이다.
화관(華冠)으로 곱게 장엄했는데
지금은 홀연히 병들고 풀이 죽었으며
몸은 본래 윤택하여 빛이 났으나
하루아침에 시들어서 쭈그러져 버렸다.
언제나 사랑하여 즐겁던 자리가
지금은 나빠져서 즐겁지 않아라.
이 다섯 가지 나쁜 조짐이 나타나면
마땅히 죽을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하리라.
030_0268_c_15L凡夫爲燒然
腋下流汗出
衣服卒垢膩
見已大恐怖
是則淨業盡
華冠常鮮嚴
而今忽萎熟
身體本光澤
一朝頓枯悴
常所愛樂坐
今惡不復樂
是五惡瑞現
當知死時至

그런데 저 진리를 본 자만이
이와 같은 나쁜 모양이 없어라.
내 지금 비구들에게 설하리니
여기서 염환(厭患)이 증장하리라.범본(梵本)에는 이 게송 하나가 없다.
030_0268_c_19L唯有見諦者
無此諸惡相
我今說比丘
於是增厭患梵本中無此一偈

여러 하늘과 하늘의 곳이
쇠하고 변하여 오래 가지 못하노니
밝은 지혜로 수행하는 자는
이 같은 무상한 변화를 보아야 한다.
030_0268_c_21L諸天及天處
衰變不久住
明智修行者
見斯無常變

4보(寶)의 수미왕(須彌王)을
진금산(眞金山)이 둘러싸 있으나
수행하여 혜안이 청정해지면
이것이 모두 녹아 흐르게 됨을 보리라.
030_0268_c_22L四寶須彌王
眞金山圍遶
修行慧眼淨
見此悉融消
030_0269_a_01L
그리고 여러 대철위산(大鐵圍山)이
사천하(四天下)를 둘러싸고 있으나
녹아 허물어지는 비상(非常)의 모양을
수행하는 자는 명료하게 보리라.
030_0268_c_23L又諸大鐵圍
周帀四天下
消壞非常相
行者見明了

수행을 하여 천상에서
이와 같이 관찰하고
다시 인도(人道)에서
생각하여 바르게 관찰하라.
030_0269_a_02L修行於天上
如是觀察己
復於人道中
思惟正憶念

혹 때로 저 왕법(王法)을 범하여
손발을 더러 잘리기도 했으며
고문 받는 고통이 지극히 괴로운 것을
나는 이를 모두 경험했노라.
030_0269_a_03L或時犯王法
斬截身手足
拷掠極楚毒
我悉遍經歷

친척을 길이 이별하니
그립고 슬퍼서 눈물이 흐른다.
가령 한 곳에 집착을 한다면
4대해(大海)를 초과하리라.
030_0269_a_04L親戚永別離
悲戀爲墮淚
設集著一處
過於四大海

내가 본래 온 곳을 생각해 보니
사람 속에서 생을 받았는데
그 백골들을 모두 쌓아보면
수미산처럼 높고 넓으리라.
3악도를 흘러 돌면서
그 초독(楚毒)을 초월할 수 없으니
030_0269_a_06L計我從本來
人中所受生
白骨悉積聚
高廣喩須彌
流廻三惡道
楚毒無過者

사람과 하늘이 받는 고통
또한 한량이 없이 많다.
이것을 자세히 분별해 말하려면
겁이 다해도 다하지를 못하지만
030_0269_a_08L人天所受苦
是亦多無量
欲廣分別說
窮劫不能盡

저 삼매의 경계에서
태어난 과보를
잘 관찰하여 명료(明了)하면
수행을 하여 깊이 근심을 가라앉히리라.
030_0269_a_09L三昧境界地
思惟所生果
觀察善明了
修行深憂厭

내가 비록 가업(家業)은 버렸으나
능히 도과(道果)를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는 집을 나왔다고 하지만
생사의 지옥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030_0269_a_10L我雖捨家業
不能成道果
自謂爲出家
未出生死獄

내가 비록 은애(恩愛)를 버리고
소생(所生)을 버렸다고 이름해도
치애업(癡愛業)의 부모를
여의어 면할 수는 없다.
030_0269_a_12L我雖棄恩愛
名曰捨所生
而不能免離
癡愛業父母

사람의 자식만 되었을 뿐이지
불법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성인(聖人)의 법의(法衣)를 입었으나
안으로 어리석음과 미혹함을 여의지 못했다.
030_0269_a_13L徒自爲人子
不從佛法生
外假聖法衣
力不離癡惑

저 5욕(欲)의 이익을 버리고
출가(出家)의 업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저 불법 가운데서
적은 공덕도 얻지 못했으며
030_0269_a_14L捨彼五欲利
依止出家業
而於佛法中
不獲少功德

비록 안의 탐착은 버렸다고 해도
저 출요(出要)는 얻지 못한 것이다.
4념(念)을 아직 이루지 못했으니
어디로부터 심락(心樂)을 얻을까?
030_0269_a_16L雖捨內貪著
而不得出要
四念未成就
何從得心樂

머리를 깎고 형호(形好)를 헐었으나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욕미(欲味)의 기쁨만 그냥 잃었을 뿐
선열(禪悅)의 즐거움은 얻지 못했으니
030_0269_a_17L剃髮毀形好
而不捨憍慢
空失欲味歡
不得禪悅樂

5무간업(無間業)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비유컨대 마치 배나 다리도 없이
깊은 물을 건너려는 것과 같아
030_0269_a_18L於五無間業
未能定不起
譬如無舟梁
而欲越深水

결정취(決定聚)에 들지 못하고
다시 하늘에 태어나는 업도 없다.
무명(無明)이 심안(心眼)을 가리었으니
영원히 생사의 심연(深淵)에 빠진다.
030_0269_a_20L未入決定聚
復無生天業
無明覆心眼
永沒生死淵

마땅히 업의 힘쓸 바에 정진을 해야
과(果)를 짓지 못하는 일이 없으리라.
짓는 자는 끝내 잃지 않으리니
수행을 하여 잘 생각해야 하리라.
030_0269_a_21L應勤業所務
無有無作果
作者終不喪
修行宜善思

언제나 사람들의 신시(信施)를 받아서
저 몸속으로 침투하리라.
나에게 공덕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스스로 돌아보건대 비어서 실(實)이 없구나.
030_0269_a_22L常受人信施
侵彼肌體分
謂我有功德
自顧空無實
030_0269_b_01L
이 기른 이양(利養)의 마음으로 해서
나의 선한 공덕을 가려버린다.
뼈를 깎는 고통을 깊이 생각하면
당장에 곧 염리(厭離)가 일어난다.
030_0269_b_01L由此利養心
翳我善功德
深思剋骨苦
卽時興厭離

모든 악취(惡趣)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도(顚倒)된 소견에 속박되어
평등의 길인 석가모니의
1승(乘)의 도를 향하지 못한다.
030_0269_b_02L未脫諸惡趣
顚倒見所縛
不向平等路
牟尼一乘道

얻기 어려운 세계에 태어나니
모든 근(根)이 다 구족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때를 만나
또 그 바른 법을 얻어 들을 수 있으나
괴로움의 그릇[苦器]을 버리지 못했으며
탐욕의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칼을 뽑아서 다섯 악적(惡賊)을
또한 꺾어 멸하지 못했다.
030_0269_b_03L得生難得趣
諸根悉具足
値佛興于世
又得聞正法
而不捨苦器
未渡貪欲海
拔刀五惡賊
是亦未摧滅

이와 같이 바르게 볼 때에
그 수행이 해탈을 향하게 되며
이러한 우염상(憂厭相)을 지으면
곧 저 결정(決定)을 일으킨다.
030_0269_b_06L如是正觀時
修行向解脫
作是憂厭相
則便生決定

몸은 부정(不淨)의 그릇이니
36물(物)이 가득하다.
비유컨대 마치 저 대지가
온갖 것들을 생육(生育)함과 같다.
030_0269_b_07L身爲不淨器
三十六充滿
譬如大地種
生育衆雜類

몸은 숨겨지고 가려진 덩어리이며
또한 언제나 조욕(澡浴)과
취말(聚沫)과 촬마법(撮摩法)을 빌리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멸한다.
030_0269_b_09L身爲隱覆聚
亦常假澡浴
聚沫撮摩法
不久必當滅

비유컨대 독사의 상자와 같이
4대(大)의 상자 역시 그러하다.
8만 가지 생물이 사는 집이라
언제나 서로 다투며 잡아먹는다.
030_0269_b_10L譬如毒蛇篋
四大篋亦然
八萬虫中舍
常共競侵食

이 몸이 곧 재앙의 집이니
404가지의 질병과 번민과
갖가지 고통과 부정(不淨)
온갖 것이 안에 가득하다.
030_0269_b_11L是身爲災宅
四百四病惱
種種苦不淨
一切內充滿

비유컨대 마치 낡은 빈 집 같고
또한 무덤들의 언덕 같아서
굽지 않은 토기처럼 견고하지 못하니
몸도 말하자면 역시 이와 같다.
030_0269_b_13L譬如故空舍
亦如丘塚間
坏器無堅固
說身亦復然

한량없는 뭇 악의 모임[惡聚]은
허망하여 진실이 아닌데
전도되어 탐착을 일으키니
긴긴 밤을 초독(楚毒)으로 지새운다.
030_0269_b_14L無量衆惡聚
虛妄非眞實
顚倒起貪著
長夜嬰楚毒

그리고 또 임신을 하게 되면
출산의 고통을 수없이 받으니
진실의 법을 보지를 못하면
생사의 바퀴만이 항상 돌아간다.
030_0269_b_15L將復處胞胎
數數受生苦
不見眞實法
生死輪常轉

처음에는 가라라(迦羅邏)를 받고
다음에는 포육단(泡肉段)이 생기고
점점 자라서 지절(肢節)을 이루니
다섯 가지 임신의 고통이다.
030_0269_b_17L始受加羅邏
次生泡肉段
漸厚成肢節
五種胞胎苦

날이 없는 지옥[無日獄]에 유폐되어서
생숙장(生熟藏)이 핍박을 받는다.
행측(行廁)에서 길러져 자라고
부정고(不淨苦)에 취하여 혼미해서
030_0269_b_18L幽閉無日獄
生熟藏所迫
長養於行廁
臭悶不淨苦

태(胎)에서 나와 삶의 고통을 받아
늙고 병이 들어 죽음으로 굴러간다.
모든 음(陰)이 일어나고
3상(相)에 박절(迫切)된다.
030_0269_b_19L出胎受生苦
輪轉老病死
一切諸陰起
三相所迫切

색(色)은 거품[聚沫]과 같고
수(受)는 물 위의 거품 같고
상(想)은 봄철의 아지랑이와 같으며
뭇 행(行)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고
식(識)의 종자는 마치 허깨비와 같음을 보니
허망하여 진실함이 없다.
030_0269_b_21L觀色如聚沫
受如水上泡
想如春時炎
衆行如芭蕉
識種猶如幻
虛妄無眞實
030_0269_c_01L
핍박이 바로 고상(苦相)이고
인연이 바로 집상(集相)이며
적정(寂靜)이 멸진상(滅盡相)이고
출요(出要)가 곧 도상(道相)이다.
030_0269_b_23L逼迫是苦相
因緣是集相
寂靜滅盡相
出要是道相

이 4성제(聖諦)를
수행하여 차차 관찰하고
16행(行)을 사유하면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하리라.
030_0269_c_02L於此四聖諦
修行漸觀察
思惟十六行
解脫生死苦

간략하게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 대해 설했으니,
결정의(決定義)를 분명하게 알고
수행하여 바르게 관찰하라.
030_0269_c_03L略說一切法
自相及共相
明知決定義
修行正觀察

수행하여 지혜의 등불을 태워서
네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하면
능히 악취분(惡趣分)을 끊어
모든 수태(受胎)의 고통을 여의고
다시 즐거움을 몸에 받아서
세상의 고뇌에 얽매이지 않는다.
030_0269_c_04L修行然慧燈
正觀四眞諦
能斷惡趣分
離諸受胎苦
不復樂受身
嬰世之苦惱

이양(利養)의 행을 없애 버리고
홀로 지내면서 멀리 여읨[遠離]을 닦는다.
030_0269_c_06L捨除利養行
獨處修遠離

이미 능히 염리(厭離)를 닦으면
하늘에 태어나는 즐거움에 맛들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더구나 인간에 탐착하여
온갖 고통들을 차마 받을 것인가?
030_0269_c_07L已能修厭離
不味生天樂
況復著人閒
忍受諸苦痛

종(種)이 독사와 같음을 관하고
5음(陰)을 다섯 원적(怨賊)으로 하고
탐욕의 환란이
긴긴 밤에 은밀히 침해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030_0269_c_08L觀種如毒蛇
陰爲五怨賊
自覺貪欲患
長夜密侵害

6근(根)이 마치 공취(空聚)와 같으니
진적(塵賊)이 다투어 와서 모인 것이다.
이런 것이 안팎으로 들어오지만
진실관(眞實觀)을 수행하면
030_0269_c_10L六根如空聚
塵賊競來集
於此內外入
修行眞實觀

견애(見愛)는 대하(大河)와 같고
열반이 마치 피안과 같다.
수행하여 혜안(慧眼)이 청정해지면
법이 공하여 무아(無我)임을 관하게 된다.
030_0269_c_11L見愛如大河
涅槃如彼岸
修行慧眼淨
觀法空無我

이와 같이 진실을 알면
3유(有)에 처함이 즐겁지 않다.
030_0269_c_12L如是知眞實
不樂處三有

모든 법을 분명히 보는 자에게
3성(成)의 상(相)을 대략 설했노라.
앞에서 3괴(壞)를 설하였지만
방편과 부지런히 닦아 익힘의
상행(相行)의 뜻을
이제 차례로 다시 설하리라.
030_0269_c_13L明見諸法者
略說三成相
及前說三壞
方便勤修習
次第相行義
是今當更說

하나의 색(色)을 갖가지로 관찰하면
하나하나가 네 종류의 인(因)이다.
결정코 인과를 알고
신념처(身念處)를 구경(究竟)하라.
030_0269_c_15L一色種種觀
一一四種因
決定知因果
究竟身念處

받음과 마음이 서로 응해서
볼 때는 오직 그 자체이다.
인연의 과보가 한량이 없으니
그 모양은 같은 종류의 성품이다.
수행하여 사유가 일어남은
모두가 소의(所依)에 의해 나타난다.
030_0269_c_16L受與心相應
觀時惟自體
因緣果無量
其相同種性
修行思惟起
悉依所依現

마음은 마치 훈련되지 않은 말과 같아서
허깨비와 같고 원숭이와 같다.
한량없는 인연의 모양이
모두 소의에 나타난다.
030_0269_c_18L心猶不調馬
如幻如猿猴
無量因緣相
一切現所依

두 음(陰)은 공하여 무아이다.
다음에 상(想)과 색(色)을 합하여 관해야 한다.
상(想)과 수(受)와 식(識)과 합하고
행의 둘도 역시 그러하다.
030_0269_c_20L二陰空無我
次合觀想色
想合受與識
行二亦如是

차례로 상과 색과 수와 그리고
상과 색과 식도 역시 그러하다.
상과 수와 식을 분별하니
행의 셋도 상(想)의 설함과 같다.
030_0269_c_21L次第想色受
想色識亦然
分別想受識
行三同想說

사(四)와 오(五)가 점차 화합하여
사유해서 자상(自相)을 허물고
통틀어 5성음(盛陰)을 인연하니
칠처삼종관(七處三種觀)과
030_0269_c_22L四五漸和合
思惟壞自相
摠緣五盛陰
七處三種觀
030_0270_a_01L
열락(悅樂)의 넓은 경계가
다시 멸하여 생멸을 관한다.
일념(一念)으로 진실을 보아서
법념처(法念處)를 구족하라.
030_0270_a_01L悅樂廣境界
還滅觀生滅
一念見眞實
具足法念處

음종(陰種)의 모양을 바르게 관찰하면
변화[化]와 꿈과 물에 비친 달과 같다.
정혜(定慧)가 굴러서 증광(增廣)하면
거기서 난법(煖法)이 생긴다.
030_0270_a_02L正觀陰種相
如化夢水月
定慧轉增廣
彼則煖法生

그 마음이 지극히 적정하여
5음의 모양을 통틀어 본다.
즉 자신의 욕망의 불길을 끄고
삼계(三界)의 불길이 치솟음을 보아
030_0270_a_03L其心極寂靜
摠見五陰相
自身欲火燒
三界盡熾然

모든 모양의 3삼매(三昧)에서
바르게 해탈의 문으로 향하라.
처음에 4성제의
진실의 16행(行)을 관하여
030_0270_a_05L諸相三三昧
正向解脫門
初觀四聖諦
眞實十六行

난법을 성취하고 나서
진실한 관(觀)을 증진하여
부처님의 몸의 상호(相好)와
여러 공덕이 한량없음을 보라.
제일의 적멸법(寂滅法)은
청정하여 번뇌를 여의고
030_0270_a_06L成就煖法已
增進眞實觀
見佛身相好
無量諸功德
第一寂滅法
淸淨離煩惱

성중(聖衆)의 공덕의 바다는
깊고 깊어 바닥이 없다.
갖가지 미묘한 모양과
몸과 경계를 드러내니
030_0270_a_08L聖衆功德海
甚深無崖底
種種微妙相
現身及境界

보고 나면 마음이 즐겁다.
정법(頂法)에서 상(相)을 구족하고
030_0270_a_09L見已心歡喜
頂法具足相

증진하여 법인(法忍)이 생긴다.
5취(趣)에 경계를 나타내고
030_0270_a_10L增進生法忍
五趣現境界

악도(惡道)의 불길이 멸하여
청량한 곳에 놀면서 쉰다.
중간에 머물며 생사를 겪어도
최상은 오직 일심(一心)이다.
030_0270_a_11L惡道熾然滅
遊息淸涼處
中住經生死
最上唯一心

먼저 한량없는 고통을 보고
다음에 괴로움의 종자[苦種]가 생김을 본다.
괴로움의 종자가 바뀌어 더욱 광대하여
차츰 고집(苦集)의 멸(滅)을 본다.
멸하고 난 다음에
8성(聖)의 평등의 길을 관한다.
030_0270_a_12L先觀無量苦
次見苦種生
種轉增廣大
漸見苦集滅
滅已然後觀
八聖平等道

변하고 멸함은 무상(無常)의 모양이요
거칢[麤澁]과 핍박은 고통이다.
공적(空寂)하여 중생이 없고
자재하지 않는 것이 무아이다.
030_0270_a_14L變滅無常相
麤澀逼迫苦
空寂無衆生
不自在無我

괴로움의 종자는 이 인(因)이 자라나
뭇 연과 합하여 집(集)이 된다.
종(種)이 생기므로 기(起)라 말하고
과(果)를 일으킴을 연(緣)이라 한다.
030_0270_a_15L苦種是因緣
衆緣合爲集
種生故說起
興果名爲緣

고와 집이 다하므로 멸하니
멸하여 고요함을 적지(寂止)라 설한다.

청정은 3유(有)를 여의니
각(覺)을 설해 묘출(妙出)이라 한다.
030_0270_a_17L苦集盡故滅
滅靜說寂止
淸淨離三有
覺說爲妙出

지름길이 곧 도상(道相)이며
평직(平直)을 정의(正義)라 설한다.
나아감[進向]을 일러 취(趣)라 하고
타고 나가기[乘出] 때문에 승(乘)이라 설한다.
030_0270_a_18L徑路是道相
平直說正義
進向謂之趣
乘出故說乘

4제(諦) 16행(行)을
구족하면 진실한 기쁨이다.
인법(忍法)은 점차
세간의 제일법(第一法)을 만들고
030_0270_a_19L四諦十六行
具足眞實觀
忍法次第生
世間第一法

성행(聖行)의 정수지(正受地)에
이 세 결정(決定)을 얻어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는
차례로 점차 구경(究竟)에 이른다.
030_0270_a_21L聖行正受地
得是三決定
見道思惟道
次第漸究竟

모든 미묘한 모양은
각각 지대(地大)를 따라 일어나고
진실의 지혜를 성취하여
모든 공덕을 구족한다.
030_0270_a_22L一切微妙相
各各隨地起
成就實智慧
具足諸功德
030_0270_b_01L
앞에서 말한
수행의 결정분(決定分)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밝은 지혜를 가진 자들은
마땅히 바른 방편을 지어야 한다.
믿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항상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030_0270_a_23L當知上所說
修行決定分
諸有明智者
應作正方便
信勤勿懈怠
常起欲慚愧

모든 범행(梵行)을 닦는 자들을
항상 사랑하여 공경해야 한다.
스스로를 지켜서 청정한 계율을 닦아
위의(威儀)로써 진리에 편안히 있게 한다.
030_0270_b_02L於諸梵行者
常當愛恭敬
自守修淨戒
威儀令安諦

설령 이양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욕망을 줄여 만족할 줄 알면
만족이 쉬워서 기르기도 쉬우니
몸에 알맞은 식사를 헤아릴 줄을 안다.
또한 수레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아서
그 맛을 탐하지 않는다.
030_0270_b_03L假使得利養
少欲知止足
易滿亦易養
適身知量食
亦如人膏車
不爲貪味故

모든 존재하는 생은
모조리 근심[過患]임을 깨달아
사유하여 잘 관찰하라.
3유(有)는 타는 불길과 같다.
030_0270_b_05L曉了一切有
所生悉過患
思惟善觀察
三有如火然

마치 저 중병 든 사람이
의원의 치료를 믿고 받아들임 같으니
선지식이 말하는 것을 듣고
관찰하여 자세히 사유하고
030_0270_b_06L如彼重病人
信受醫方療
聞善知識說
觀察諦思惟

언제나 청정한 마음으로
몸을 단속하여 방일하지 말라.
조용히 침묵하여 말을 적게 하고
연좌(宴座)하여 실의(實義)를 생각해라.
030_0270_b_08L常以淸淨心
繫身莫放逸
寂嘿少言說
宴坐思實義

들판 언덕배기 수풀 사이에서
한가히 지내면서 멀리 여읨[遠離]을 닦아라.
아무 일이 없이 산과 바위를 즐기며
동굴 속의 노지(露地)에 앉아
나무 그늘에서 풀잎을 깔고는
이와 같이 청정하게 머물러라.
수행하여 안으로 사유하고
열심히 익혀 쉬거나 게으름 없이
030_0270_b_09L丘壙林樹間
閑居修遠離
無事樂山巖
窟中露地坐
樹下敷草葉
如是淸淨住
修行內思惟
勤習無休懈

오로지 정밀히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물러나 머무는[退住] 허물을 멀리 여의어라.
반드시 승진(升進)을 한다면
결정코 공덕분(功德分)을 얻으리라.
부지런히 방편을 수행하면
모든 선근(善根)을 구족하리라.
030_0270_b_12L專精求己利
遠離退住過
必能得升進
決定功德分
修行勤方便
具足諸善根

내가 적은 지혜의 힘을 가지고
여러 법성(法性)을 대강 설했노라.
그 구경(究竟)의 뜻으로 말하면
10력(力) 지혜의 경계이다.
030_0270_b_14L我以少慧力
略說諸法性
如其究竟義
十力智境界
達摩多羅禪經卷上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