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수식(數息)을 제일로 삼는가 하면, 호흡으로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니, 세간 사람들은 모두 몸[身]을 탐하여 몸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意]을 지키지 못하며, 또한 몸에 관한 일에 대해 분별하는 것을 어려워해 모두 본래 없음[本無]을 믿지 않아서 마음이 그치지 않는다. 어찌하여 존재하는데도 짐짓 공(空)의 뜻을 말하는가? 전도된 호흡[息]을 익혀 유(有)ㆍ무(無)를 보기 때문에 먼저 호흡을 말하니, 차츰차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앞머리에서 자주 언급한 수식을 이미 얻으면 제일(第一)의 선(禪)을 행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좌선(坐禪)에는 세 가지 정(定)이 있으니, 세 가지 정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신정(身定)이고, 둘째는 구정(口定)이고, 셋째는 의정(意定)이니, 통양(痛痒)1)이 그친 것을 신정이라 하고, 음성(音聲)이 그친 것을 구정이라 하며, 마음 속 생각[意念]이 그친 것을 의정이라고 한다. 생각[念]이 그친다는 것은, 받아들여 행하되 항상 도(道)를 생각하는 것이다. 음성이 그친다는 것은, 네 가지 악(惡)을 끊는 것이다. 통양이 그친다는 것은, 탐욕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그치게 하는 데 마음을 두는 것이다. 신정ㆍ구정ㆍ의정은 마땅히 계(戒)를 세워 몸과 마음을 지켜야 하니, 지킨다는 것은 일체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또한 몸과 마음을 지키는 것을 다스림[治]이라고 하니, 다스린다는 것은 마음을 지켜서 마음으로 삼십칠품경(三十七品經)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식[識]하지 못하는 것은 그칠[止] 수도 없으니, 호흡[息]하는 가운데 인식하지 못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바로 그때 그칠 수 없었던 마음도 사라진다. 이와 같이 마땅히 정진하여 행하고 힘을 다해 지켜서 바르게 앉아 손을 모으고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마음을 지킨다. 안으로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스스로 생멸(生滅)에 떨어지지만, 인식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에는 이미 인식한 마음도 그쳐 개(蓋)2)에 떨어지지 않는다. 개(蓋)는 희론(戱論)과 의심에 의지하고 6근(根)을 받아들이니, 이와 같다면 앞에서 언급한 일은 불가능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식(數息)하는 마음은 호흡[息]과 헤아리는[數] 것과는 서로 관계가 없도록 해야 하니, 어떻게 마음이 다른 마음을 생각해서 서로 작용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미 세 가지 정(定)에 들었다면 계(戒)가 율(律)에 응하여 도법(道法)이 되니, 도(道)를 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법을 탐내 도를 행하니, 이미 좌선하여 도를 행한 다음에는, 이른 밤이나 늦은 밤에 마음을 깨어 있게 하고 음식을 절제한다. 오전 사시(巳時)부터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석양에 이를 때까지를 사수(四守)라고 하는데, 반드시 정진하여 떠나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한밤중ㆍ해가 뜰 때ㆍ한낮ㆍ신시(申時)를 사정(四正)이라고 하는데, 경전을 읽거나 경행(經行)3)을 하면서 탑의 안팎을 선회한다. 스스로 신체의 안을 관찰하여 오장(五臟)을 보고, 밖으로는 머리에서 발까지 다시 발에서 머리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찰하여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면 반드시 모든 것이 냄새나고 부패하여 마디마디가 풀려 떨어져 본래 존재하는 바가 없고, 오거나 가는 것이 또한 멸하고 다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반복하여 생각을 돌이켜 자주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해되지 않으면, 눈으로 죽은 사람을 보고 자세하게 머리부터 발까지를 생각하여, 앉거나 일어나거나 밥을 먹거나 간에 항상 생각하여 마음 가운데 붙여두어서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념(數念)이다. 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 마시며 생각이 멸할 때, 이미 깨달았고, 호흡이 멸하여 없어질 때는 소유(所有)가 없으니, 헤아려 사유해 보면 인간과 사물은 반드시 다하여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며, 마음이 그쳐 이미 선정에 들면 문득 공(空)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경에서 ‘첫째는 근력(勤力)이고, 둘째는 수념(數念)이며, 셋째는 사유(思惟)이다’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어떤 때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해야 하니, 자신의 몸을 관찰한다는 것은 헤아려 본다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한다는 것은 스스로 몸을 관찰하는 일에 마음을 두어 마땅히 다른 사람의 몸이 죽어 부패하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자기 몸을 관찰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할 수 있으니, 스스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의 몸을 관찰하되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하되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때는 자기의 몸을 관찰할 수 없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몸도 관찰할 수 없으니, 자기 몸을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은 자기의 몸이 살이 찌고 하얗고 아름답다고 보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은 또한 다른 사람의 몸도 살이 찌고 하얗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눈썹이 매끄러우며 붉은 솜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살이 찐 모습을 보면 마땅히 부어서 부풀어 오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흰 모습을 보면 죽은 사람의 뼈라고 생각해야 하며, 매끄러운 눈썹을 보면 죽은 사람이 썩으려 할 때 색이 점차 흑청색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붉은 솜과 같은 모습을 보면 피를 생각해야 하니, 모든 것은 반드시 다 썩어 문드러질 터인데 어찌 탐할 수 있겠는가? 마음[意]으로 자신의 몸을 관찰해 보면 서른두 가지 물건이 있으니, 그것들을 헤아려 보면 모발ㆍ손발톱ㆍ치아ㆍ뼈ㆍ가죽ㆍ살ㆍ오장(五臟) 등 열한 가지는 지대(地大)에 속하고, 눈물ㆍ침ㆍ피고름ㆍ지방ㆍ골수ㆍ땀ㆍ소변 등 일곱 가지는 수대(水大)에 속하며, 따뜻하고 뜨거움을 주관하는 것과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 등의 두 가지는 화대(火大)에 속하고, 풍대(風大)에는 열두 가지가 있다. 이 서른두 가지 물건은 모두 지ㆍ수ㆍ화ㆍ풍으로부터 나온다. 지(地)란 무엇인가? 사람은 곡식의 정기(精氣)로부터 나니, 곡식은 지(地)이고, 마음[意]은 종자이며, 정기는 수(水)이다. 비가 내려 합쳐지면 몸을 낳기 때문에 옷과 음식을 구하는 것이 바로 정기를 기르고 주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본래 근본이 없기 때문에 멸하여 없어져 무상(無常)하니, 도를 얻으면 문득 몸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몸은 오래가지 못하고 반드시 죽어 썩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사람의 종자가 되므로 마음을 한결같이 지켜야 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혼백[魂神]도 보살피지 못하여 단지 육신[四柯]만을 기르며, 색(色)이나 맛[味]에 속아 몸을 나[我]라고 헤아리고 악(惡)이 모두 몸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밥과 음식에 대해 맛을 탐하면 곧바로 괴로움[苦]에 떨어지고, 생사를 왕래하여 벗어나지 못하며, 졸지에 악(惡)을 만나 혼신이 허공으로 떠나가 선악(善惡)의 세계[道]로 나아간다. 몸은 죽어서 땅에 묻히면 밤낮으로 썩어 없어지니 또한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요, 단지 마음으로 행을 짓기 때문에 몸이 이루어졌으므로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만물도 또한 그러하여 모두 다 반드시 지나가 버리니, 이것이 무상[非常]함이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잘 헤아리지 못하고 생각이 많아 모든 것을 하나로 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괴로움이 된다. 몸은 죽으면 버려지게 되고 만물도 또한 그러하며, 이 몸이 멸하여 없어지면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면 다시 괴로워서 곧바로 선악행을 지어 그 종자를 재배하여 어디로 나아갈지 알지 못하니 이것이 비신(非身)이다. 도인(道人)은 도를 행하여 마땅히 선악의 종자를 끊지만 보통 사람들은 네 가지 무상[非常]함을 알지 못하여 끝내 도를 얻지 못한다. 그러다가 스스로 몸에 대해 헤아리고, 죽은 사람들이 부패하는 모습을 살펴보고는, 사람과 사물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을 지키고 그쳐서 행을 얻으면 기뻐하고, 그런 행을 얻은 후에는 마음이 편안해져 다섯 가지를 여의지 않으니, 그 마음이 하나인 것이 바로 도(道)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몸을 생각할 때 머리카락과 뇌를 관(觀)한다. 머리카락에 대해 생각해 보면, 본래 존재하지 않으니, 지어져 이루어진 것들은 모두 반드시 부패하여 떨어진다. 뇌는 마치 엉긴 쌀죽과 같고, 모두 냄새나고 부패한다. 눈에는 단지 물이 저장되어 있어서 그 즙액이 눈 구멍이로부터 흘러나오며, 귀는 단지 살로 되어 있어 더러운 물질이 흘러나오며, 코와 입에서는 콧물과 침이 흘러 나와 버려져서 사라져 없어진다. 혀ㆍ인후(咽喉)ㆍ폐ㆍ간ㆍ심장이 있고, 심장 안에는 나쁜 피가 있다. 간ㆍ담ㆍ횡경막ㆍ비장은 위(胃)에 붙어 있고, 신장은 척추에 붙어 있으며, 위 안에는 아직 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있으며, 대장에는 똥이 있고 소장과 방광에는 오줌이 있어 밖으로 배출되면 배가 조금 꺼진다. 몸이 죽어 기(氣)가 다하면 부어서 부풀어 올랐다가 무너져 문드러지고, 장과 위에서는 똥과 오줌이 흘러 사방으로 튀니 악취가 심하다. 하체에는 엉덩이 살과 양쪽 정강이와 양 발이 있는데, 그 곳의 근육과 살이 조금씩 없어지고, 힘줄과 핏줄이 무너져 부패하며, 뼈는 맞물려 있던 것들이 마디마디가 풀어져 떨어진다. 정강이뼈는 완연한 흰색이고, 넓적다리뼈는 마치 수레의 바퀴살과 같으며, 엉덩이뼈와 척추뼈는 서로 이어져 있고, 척추와 갈비뼈도 서로 이어져 있으며, 어깨뼈와 팔꿈치ㆍ팔ㆍ손은 서로 이어져 있는데, 피부와 가죽이 썩으면 마디마디가 풀어 떨어진다. 목뼈와 두개골은 서로 이어져 있는데, 살과 피가 다 없어지고 마멸되면 단지 뼈만 남는다. 기(氣)가 빠져나간 뒤 보충해 주지 않으면 죽게 되니, 그러면 사람의 몸은 곧게 쭉 뻗어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 기운이 떠나면 몸이 차가워지고, 불의 기운이 떠나면 누런 물이 아홉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오며, 물 기운이 떠나면 죽어 다시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땅 기운이 떠나면 사나흘이 지나 몸의 색이 파랗게 변한다. 피고름이 입ㆍ코ㆍ귀ㆍ눈으로부터 나오니 붉은 색을 띄며, 근육과 살이 썩어 없어지면 뼈는 흰색을 띄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검은 색으로 변했다가 마침내 잿빛 흙이 된다. 성곽 밖을 살펴보면 죽은 사람에게서 냄새가 나고 죽은 사람의 뼈가 이와 같으며, 자신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것은 반드시 멸하여 없어지리니, 이것이 바로 공(空)이다. 날숨[出息]이 다할 때 문득 공(空)을 알게 되고, 공을 알게 되면 곧바로 몸이 공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왜 그런가 하면 명(命)이 가까워지면 호흡[息]이 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은 먼저 사유(思惟)가 멸하는 것을 관(觀)해야 하니, 생각[念]이 자신의 마음을 기다리면 마음을 지킬 수 있다. 마음이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도인(道人)이며, 바깥에 머무르면 한갓 만물(萬物)이 된다. 생각이 안에 있으면 사유[思]가 되니, 의식[識]이 멸하려 할 때 생각이 머물러서 마땅히 ‘사물은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반드시 무너지므로 모두가 내 것[我所]이 아니고, 나[我]도 또한 사물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의념(意念)은 죽을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선함[善]을 간직하고 일심(一心)을 간직하며, 경전을 간직하니, 왜냐하면 많은 것을 지을 수 있고 즐거움이 많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물건을 가지고 가지만 그 나머지 일체는 모두 내 것[我所]이 아니니, 마음은 마땅히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은애(恩愛)로 모여도 마땅히 헤어지고 각자 썩어 없어지니, 생각하여 단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혔거나 죄에 떨어지게 했다면, 반드시 다시 몸을 청정하게 지켜야만 니원도(泥洹道)에 나아갈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일심(一心)에서부터 아홉 가지 도(道)에 이르기까지 네 가지 색[四色]은 다 반드시 소멸한다고 생각하셨으니, 이른바 사람이 죽어 나흘이나 닷새 정도가 지나면 냄새가 나고 썩기 시작해 색이 파랗게 변하고, 닷새나 엿새 정도가 지나면 피고름이 입ㆍ코ㆍ귀ㆍ눈으로부터 붉게 흘러나오며, 이후로는 근육과 살이 썩고 장과 위에서 벌레가 생겨 다시 파먹고 피부가죽이 부패하여 사라지며, 뼈와 해골이 하얗게 드러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검은 색으로 변했다가 잿빛 흙이 되어 버린다. 지ㆍ수ㆍ화ㆍ풍은 공하여 모든 것이 내 것[我所]이 아님이 분명하니, 그대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을 지나오면서 사람으로 태어나 처자나 노비가 되기도 하고, 또한 축생으로 태어나 소ㆍ말ㆍ벌레ㆍ코끼리 등이 되어 힘든 고통을 겪고 무거운 짐을 나르기도 하며 또한 사람들에 의해 도살되어 껍질이 벗겨지고 얇게 저며지며 구워지기도 했다가, 지금은 사람으로 태어나 다시 다른 사람들을 처자나 노비로 삼고, 또한 축생을 취해 도살하여 껍질을 벗기고 얇게 저미며 굽고 자르는 등의 일을 거리낌 없이 하다가 몸이 죽으면 모두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그런데 도를 행한다는 그대가 어찌 죽은 사람의 모습을 관찰해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가 끊어지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몸이 곧게 쭉 뻗으면서 곧 냄새 나고 무너져서 싫어할만하니, 자세히 생각해 보면 문득 두려워서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 일심(一心)은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면, 일심은 인간과 천상으로 하여금 니원도(泥洹道)를 얻게 하니, 부처님께서는 아홉 가지 도[九道]가 다 공(空)하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다시 일심으로 나아가셨다. 도를 행하는 사람이 급하게 생각을 멸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니, 이윽고 구심국(拘深國)에 이르러 구심(拘深)에서 걸어 다니면 모두 그곳에서 보겠지만,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意]의 탐욕스러운 생각은 무상(無常)하여 무너지며, 음욕(婬欲)은 마땅히 생각으로 다스려야 하고, 분노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이며, 마음속 어리석은 생각은 일체 행의 근본으로서 무상하다. 무위(無爲)하게 되면 안은(安隱)할 텐데, 사람들은 무상함을 알지 못하여 끝내 탐욕을 버리지 못하며, 또한 벽려도(薜荔道)4)를 떠나지 못한다. 세간의 모든 것은 꿈과 같을 뿐이니, 꿈에서 밥과 음식을 보고 좋아하지만 깨면 곧바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세간의 모든 것도 이와 같다. 태어나면 죽고 마침 이루어지면 곧바로 무너져 반드시 모두 공(空)으로 돌아가니, 무엇을 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처자나 재산도 또한 그러하니,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면서 금전의 이익을 얻을 때나 집에 모여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나는 새가 모여 있는 것과 같이 또한 모두 무상하여 하루아침에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설사 근심ㆍ공포ㆍ온갖 고통이 있어 마음이 생사 가운데서 날마다 죄를 쌓더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단속하여 욕심을 적게 하고 옷 한 벌과 한 그릇 밥을 구하며, 선정[定]의 마음[意]을 행함에 의지하여 한 곳에 멈추기를 구하지 않고 항상 돌이켜 몸을 지켜 청정함으로 욕심을 끊고 생각이 공(空)하기를 구한다.” 묻건대, 도를 행하고 마음[意]을 지키는 근본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지가 이루어진 후에 인간은 십오천(十五天)으로부터 내려와 목숨이 요절하는 일이 없었으며, 나고 죽는 5도(道)5)는 6쇠(衰)6)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의 심성은 본래 선량하여 탐애(貪愛)ㆍ통양(痛痒)7)ㆍ사상(思想)8)ㆍ생사(生死)9)ㆍ식(識)이 없지만, 귀ㆍ눈ㆍ코ㆍ입에 의해 속아서, 눈은 빛으로 색을 보고, 귀로 음성을 들으며, 코로 향기를 맡고, 입으로 맛을 감지하며, 몸으로 춥고 더우며 거칠거나 세밀함을 느낀다. 마음으로 열 가지 일[十事]을 지어 5음(陰)을 이루고, 마음[意]은 식[識]이 합해져 6쇠(衰)가 되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선악행(善惡行)의 씨앗을 심으며, 그로부터 문득 노ㆍ병ㆍ사ㆍ생의 5도(道)가 존재한다. 도를 구하여 생사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켜 마음을 그치게 하고, 눈이 색을 그치게 하며, 귀가 소리를 그치게 하고, 코가 향기를 그치게 하며, 입이 맛을 그치게 하고, 몸도 이와 마찬가지로 6쇠(衰)를 끊는다. 관법(觀法)을 행하여 마음속으로 좌선할 생각을 품고 의식(意識)을 멸하여 도를 얻으면 5음(陰)이 다 멸하여 본래 없음[本無]을 알게 되며, 문득 공(空)을 생각하고 공을 사유하여 니원(泥洹)의 길로 나아간다. 왜 마음을 지키느냐고 묻는다면, 마음은 식(識)의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니, 악한 6쇠(衰)의 화를 입으면 행(行)이 5도(道)의 근본을 이루는 씨앗을 심는다. 도인(道人)은 꼼꼼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지켜서 네 가지 마음 속 욕구[意欲]를 멈추게 하여 그릇된 생각[念]ㆍ사상(思想)ㆍ의식[識]의 치달림이 없다. 어찌하여 도인은 생각ㆍ사상ㆍ의식을 멸하려고 하는가? 일체의 행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몸의 열 가지 일[事]을 끊어야만 하니, 몸ㆍ입ㆍ생각 세 가지는 5음(陰)과 6쇠(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나아가 세 가지 선정[定]이란, 바로 입으로 인식하는 바는 구정(口定), 몸으로 인식하는 바가 없는 신정(身定), 생각[意]으로 다시 생각[念]함이 없는 의정(意定)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道)에는 네 가지 요체(要體)가 있어 계(界)가 유지되고 열리고 봉(封)해졌다가 마침내 벗어날 수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괴로움[苦]을 인식하여 다시는 만물을 향하지 않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삼악도(三惡道)의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 둘째는 몸이 몸이 아님을 알아 문득 몸이 무너지면 다시는 애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는 문을 얻을 수 있고, 제6천(第六天)이 열린다. 셋째는 항상하지 않음[非常]을 알아 다시는 이에 향하지 않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18천(天)을 열고 벗어날 수 있다. 넷째는 공(空)을 알고 공을 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8천(天)을 열고 벗어날 수 있으니, 공이 멸하면 마침내 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道)를 행하여 깨닫는 이는 벗어날 수 있으니, 이른바 깨달음은 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ㆍ비상(非常)을 깨닫는 것이요, 벗어난다는 것은 이른바 네 가지 중요한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제일선(第一禪)을 얻어 7천(天)에 오르면 몸의 그림자가 없으니, 왜냐하면 도를 행하여 몸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