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이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마치 능숙한 유모(乳母)가 아이를 기르는 것 같다. 거기에는 네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목욕을 시켜 깨끗하게 하여 주는 것이요, 둘째는 젖을 먹여 배부르게 하여 주는 것이며, 셋째는 편안히 자게 하여 주는 것이요, 넷째는 안고 다니면서 항상 기쁘게 하여 주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로 아이를 길러 성취시켜 주는 것처럼, 보살도 네 가지 일로써 중생들을 기르느니라.
첫째는 바른 법으로 그 마음의 때를 씻어 주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의 음식으로서 배부르게 하여 주는 것이며, 셋째는 때를 따라 선정 삼매에서 일으켜 주는 것이요, 넷째는 네 가지 은혜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여 항상 기쁘게 하여 주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로 모든 중생을 권하고 깨우치고 길러서 지극한 도를 얻게 하느니라.
옛날 남천축에 사하결(私呵絜)이라는 나라가 바닷가에 있었는데, 그 성은 가로 세로로 8만여 리였다. 그때 다른 나라에 아룡(阿龍)이라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난리를 만나 떠돌아 다니다가 이 나라에 와 있었다. 외로운 몸이 돌아갈 곳이 없어 구걸하여 생활하다가 어느 장자의 집에 가서 붙어 있고자 하였다.
장자의 아내가 그를 보고 사정을 물었을 때 할머니는 곤궁한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장자는 가엾이 여겨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우리집에 있으시오. 도와 드리겠소.” 할머니는 기뻐하였다. “내게는 이 은혜를 갚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잔심부름이나 시키면 그 일이 많더라도 꺼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내 거기 머물러 있었으나 그녀는 슬프기도 하였다. ‘옛날에 여러 스님들을 공양할 때에는 마음대로 차렸지만, 지금은 갑자기 곤궁하게 되어 보시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풀지 못하겠구나.’ 그러면서 서러워하였다. 마침 어떤 도인을 만나 문안을 마친 뒤에 물었다. “별고 없으십니까[不審], 스님은 아침 공양을 마치셨습니까?” 도인은 대답하였다. “아침에 성에 들어가 걸식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와 쉬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려 하였으나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여러 도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성 안에 들어가 보아서 만일 공양이 준비되면 곧 돌아와 아뢸 것이요, 되지 않더라도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여러 도인들은 그리 하라 하고 모두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장자 부인에게 아뢰었다. “몇천 냥의 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심부름꾼이 되어 있지마는, 내 몸을 팔아 종신토록 종이 되겠습니다. 증서라도 쓰겠습니다.” 장자 부인은 물었다. “할머니는 지금 우리집에서 입고 먹고 하는데 또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니, 그것을 가지고 무얼하려는 것입니까?” “사사로이 급히 쓸데가 있는데, 말할 수는 없습니다.”
030_0403_a_01L그래서 장자 부인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가져가 쓰시고 때가 되거든 돌려주십시오. 증서는 가져 무엇합니까?” 할머니는 돈을 가지고 그 근처에 본래부터 아는 이를 찾아가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돈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예순 집에서 공양을 만들게 하였다.
잠깐 동안에 준비가 되어 도인들에게 가지고 갔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지마는 지극한 정성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여러 도인들은 그 음식이 뜻밖에 나온 것을 이상히 여겨 물었다. “할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아침에 걸식할 때에는 돌아다니지 않은 마을이 없었는데, 왜 도무지 만나 볼 수 없었습니까?”
할머니는 자기 내력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나는 아무 나라 사람입니다. 집에서는 본래부터 부처님을 받들고 스님들을 공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난리를 만나 집안이 망하고 단신으로 떠돌아 다니면서 여기까지 와서, 이 나라의 어떤 장자 집에 의탁하여 심부름꾼으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 몸으로 목숨만 의지하고 있으니 돈 한 푼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까 도인님들을 보니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얽혔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는 있었지마는 원은 풀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 부인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조금 구해 스님들에게 공양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그리하여 하찮은 내 정성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국왕은 그 놀라운 까닭을 이상히 여기고 신하들을 불러 의논하였다. “그 상서로운 징조를 살펴보라.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되었는가?” 신하들은 사방으로 나가 그 까닭을 살펴보았다. 성문 밖에 도인들이 모여 시주를 서로 칭찬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바로 저 때문입니다. 빨리 청하여 불러오소서.”
030_0403_b_01L신하는 돌아와 왕의 명령을 전하였다. 할머니는 두려워하여 어떤 화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대답하였다. “내 몸은 장자 부인에게 매여 있어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하는 돌아가 왕에게 그 사정을 아뢰었다. 왕은 말하였다. “다같이 오라고 하라.”
이에 장자 부인은 왕의 명령을 듣고 곧 할머니와 함께 왕에게 나아갔다. 왕이 그 사정을 묻자 할머니는 그 동안의 내력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말하였다. “나는 나라의 주인으로 굉장한 부자지만 3존(尊)을 받들어 공경하지 않고 도사를 공양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이처럼 정성이 지극하다.”
왕은 이어 말하였다. “이 할머니는 곧 내 스승이다.” 그리하여 궁전 안으로 맞아 들여 향탕(香湯)에 목욕시키고 스승의 자리에 앉혔다. 궁녀와 채녀(婇女)들이 모두 2만이었다. 그리고 왕이 몸소 계를 받아 우바새가 되자 부인과 채녀들은 모두 우바이가 되었고, 백성들은 모두 도의 마음을 내었다.
옛날 어떤 도인이 산중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산에는 독사가 많았다. 그래서 도인은 어떤 나무를 의지하여 높은 자리를 만들고 요를 펴고 앉아 참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못견디게 졸려 억제할 수가 없었다. 천인(天人)이 공중에서 웃음으로 깨우려 했으나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다.
천인은 곧 방편으로 그를 무섭게 하여 잠자지 못하게 하려고, 밤중이 되어 말하였다. “도인이여, 독사가 온다.” 도인은 매우 두려워 곧 불을 켜고 두루 찾아보았으나 독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인은 쉬지 않고 자꾸 그렇게 되풀이하였다. 이에 도인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천인은 왜 거짓말의 계를 범하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왜 독사가 온다고 말하는가?”
030_0403_c_01L그때 천인은 말하였다. “왜 자기 안의 독사를 보지 못하는가? 몸 속의 네 마리 독사는 없애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시 밖에서 찾는가?” 도인은 그 말을 듣고 곧 스스로 생각하고 몸 안을 두루 관찰하다가, 4대(大)가 5음(陰)과 6쇠(衰)에 잠기어 무수한 겁을 지내면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4제(諦)와 괴로움[苦]과 공(空)과 내 몸이 아닌 것을 깨닫고, 아직 새벽이 되기 전에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리어 6통을 두루 갖추고 아라한이 되었다.
옛날 아육왕은 나라 안에 천 2백 개 절을 세우고, 그 뒤에 병이 나서 매우 위중하였다. 어떤 사문이 왕을 문병하자, 왕은 그를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도인은 말하였다. “왕은 지금까지 지은 공덕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마음을 크게 잡수시고 슬퍼하지 마소서.”
“비록 죽더라도 서러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슬퍼하는 것은 전에 천 2백 개 절을 짓고는 금실 깃발과 일산 천 2백 개를 각각 짜서, 내 손으로 기를 달고 꽃을 흩으려고 절 안의 물건을 모두 준비하였는데, 이 중병을 얻었습니다. 다만 내 원을 이루지 못할까 하여 슬퍼할 뿐입니다.” 도인은 왕에게 말하였다. “좋습니다.”
합장하여 마음을 모아 왕으로 하여금 나라 안의 그 절들을 모두 보게 하였다. 그리고 곧 신통을 나타내자 이내 천 2백 개 탑이 모두 왕의 앞에 있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병이 곧 나았다. 그리하여 금기와 금꽃을 가지고 그 절에 달려고 하자, 절들은 높이를 낮추어 모두 왕의 손에 닿았다. 왕은 본래의 원을 풀고 몸의 병이 나아서, 곧 큰 뜻을 내어 25년을 더 살면서 많은 공덕을 짓고, 물러나지 않는 자리를 얻게 되었다.
옛날 아육왕이 왕위에 오르자 28만 리가 다 거기 속하였고, 육지의 용과 야차들도 모두 신하라고 일컬어 항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오직 용 한 마리가 북쪽 경계의 못에 살았는데 그 못 너비는 3백 리요, 그 용은 부처님의 사리 한 몫을 얻어 밤낮으로 공양하면서, 홀로 아육왕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030_0404_a_01L왕은 네 종류의 군사를 일으켜 그 못으로 갔으나 용은 나와서 응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용이 위신력이 있었기 때문에 왕도 함부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렇게 세 번 갔으나 용을 잡을 수 없어 왕은 생각하였다. ‘위신력을 갖춘 자의 복이 나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 크게 공덕을 짓고 거룩한 세 분[三尊]에게 공양하고 가면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탑과 절을 세우고 쉬지 않고 자주 스님들을 널리 청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공덕을 시험하려고, 금으로 만든 용 한 마리와 왕의 몸 하나를 만들어 저울 양쪽에 얹어 그 경중을 달아 보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공덕을 짓고는 그 상(像)을 같이 달 때 용이 무겁고 왕은 가벼웠다. 뒤에 다시 달자 저울의 무게는 평평하였다. 다시 공덕을 지은 뒤에는 왕의 저울추는 날로 무거워 가고 용의 저울추는 날로 가벼워 갔다.
030_0404_b_01L외도들이 받드는 귀신에 마이수라(摩夷首羅)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머리는 하나에 얼굴은 넷이며 눈과 팔은 모두 여덟 개로서 여러 귀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범지는 곧 그 귀신 몸으로 변하여 다른 추한 귀신 2백여 명을 데리고, 온 나라를 두루 돌고는 천천히 걸어 차츰 왕궁의 앞에 이르렀을 때, 온 나라의 남녀들은 모두 두려워 떨었다.
왕도 나가 맞이하다가 그 무서운 귀신들을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별고 없으십니까[不審], 대신(大神)은 무슨 분부할 일이 있습니까?” 귀신은 말하였다. “나는 사람을 잡아먹고 싶다.”
그때 2만 비구들 중에 가장 어린 사미가 있었다. 나이는 열셋이요, 이름은 단정(端正)이라 하였다. 그는 여러 비구들에게 아뢰었다. “제가 가서 만나겠습니다.” 비구들은 허락하였다. 사미는 밖으로 나가 유나에게 말하였다. “만일 어떤 범지라도 기원동산에 떨어지거든, 곧 그 머리를 깎고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미는 그곳으로 가서 귀신에게 말하였다. “네가 와서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스님들 중에서 가장 어리다. 그래서 차례대로 제일 먼저 왔다. 다른 비구도 차례가 되면 올 것이다.” 사미는 이어 말하였다. “나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그대는 내게 밥을 주어 배를 불린 뒤에 잡아먹으라.” 귀신은 그에게 밥을 주었다.
그때 그 귀신을 따른 범지도 2만이 있었다. 왕이 큰 부엌을 만들어 이들에게도 밥을 주니, 그 사미가 2만 명의 밥을 빼앗아 모두 입 안에 넣고 신통으로 기원동산에 날아갔으나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2만 범지들을 입에 머금고 신통으로 기원동산으로 날아갔다.
030_0404_c_01L그리고 온 나라 백성들도 모두 기뻐하면서 복을 받고 제도되었다. ‘한 어린 사미로도 신력의 감동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대승(大乘)의 바다에야 무엇이 없겠는가?’ 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다. 그 뒤로는 불법이 크게 일어나 지금까지 멸하지 않았다.
옛날 어떤 나라의 왕은 사람의 살을 먹기 좋아하여 찬간지기[廚士]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밤에 다니면서 은밀히 사람을 잡아다 내 찬거리를 대라.” 왕은 이것으로 일상사를 삼았다. 그 뒤에 신하들은 그것을 알고, 곧 그 왕을 배척하여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다시 어질고 현명한 이를 구하여 왕으로 세웠다.
13년 뒤 사람 먹는 왕은 새짐승으로 태어나 또 사람을 잡아먹되 멀고 가까움이 없었다. 그는 산중에서 나무신을 향해 기도하였다. “국왕 5백 명을 잡아 와서 제사할 것이니 나를 다시 국왕이 되게 하여 주소서.” 그는 곧 날아다니면서 4백 99명을 얻고는, 산골로 들어가 돌로 그 골짜기 입구를 막아 두었다.
그때 국왕은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욕지(浴池)에 놀러 나갔다. 막 궁문을 나섰을 때 어떤 도인을 만났는데, 그는 게송을 읊고는 보시를 청하였다. 왕은 궁중에 돌아가서 금과 은을 주리라고 허락하였다. 왕이 욕지에 들어가 목욕하려 할 때에 사람을 먹는 왕은 공중에서 날아와 왕을 안고 산중으로 돌아갔다.
국왕은 그것을 보았으나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고 얼굴빛도 태연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먹는 왕은 물었다. “나는 본래 사람 5백 명을 잡아 하늘에 제사하려 하였는데 이미 4백 99명을 잡았고 이제 또 너 한 사람을 잡았으니 수가 이미 찼다. 그래서 너를 죽여 하늘에 제사하려 하는데, 너는 그런 줄을 알면서 어찌 두려워하지 않는가?”
030_0405_a_01L국왕은 대답하였다. “사람은 나면 죽음이 있고, 물질은 이루어지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면 이별이 있고, 모이면 헤어지는 것이니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내가 아침에 궁문을 나오다가 길에서 도사를 만났는데 그는 나를 위해 게송을 읊었다. 그래서 나는 보시하겠다 승낙하고 아직 그것을 주지 못하였다. 그것이 한이 될 뿐이다. 지금 왕이 넓은 자비로 너그러이 동정하시어 며칠 동안만 말미를 주면, 그에게 보시하고 돌아와 약속을 어기지 않으리라.”
그는 승낙하면서 말하였다. “너에게 이레 동안의 기한을 준다. 만일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가서 잡아오기도 어렵지 않다.”
030_0405_a_04L卽聽令去,而告之曰:“與汝七日期,若不還者,吾往取汝亦無難也!”
왕이 궁중으로 돌아가자 안팎은 모두 기뻐하였다. 왕은 곧 창고를 열어 사방에 보시하고 태자를 세워 왕으로 삼은 뒤에 백성들을 위로하고는 하직하고 떠났다. 사람을 먹는 왕은 멀리서 이 국왕이 오는 것을 보고 ‘저이는 기이한 사람이 아닌가? 죽음에서 살아났는데 다시 돌아온다’ 생각하고 물었다. “목숨은 사람들이 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인데 그대는 목숨을 버리면서 신의를 지키니, 세상에 있기 어려운 일이다. 알 수 없구나.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 그 뜻을 말해 보라.”
“내가 자비로 보시하고 지성으로 맹세를 지키는 것은 장차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얻어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부처를 구한다. 그 이치는 어떠한가?” 국왕은 그를 위해 5계(戒)와 10선(善)과 4등(等)과 6도(度)를 설명하였다. 그는 마음이 환히 열리어 5계를 받고 청신사(淸信士)가 되고는, 4백 99인을 놓아 주어 각기 제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 여러 왕들은 이 왕의 뒤를 따라 이 나라에 이르렀다. 그 맹세를 지킴으로써 그들의 목숨을 건진 일에 감격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드디어 그 나라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나라 왕은 그들을 위하여 훌륭한 집을 지어 나무와 금과 돌에 갖가지 그림과 무늬를 새기고 그리니 그 빛나는 장엄은 국왕의 그것을 본떴고 음식과 의복과 수레도 왕과 다름이 없었다.
030_0405_b_01L부처님은 도를 얻으신 뒤에 스스로 그 내력을 말씀하셨다. “신의를 지킨 왕은 바로 내 몸이요, 사람을 잡아먹던 왕이 바로 앙굴마(殃崛摩)며, 왕사성에 돌아와 설법하여 제도한 한량없는 사람들은 다 전생에 왕이 되었을 때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니라.”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일체 대중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복을 받고 제도된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어느 때 왕이 놀러 나가다가 도중에 큰 나무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나무에는 꽃이 무성하고 좋았다. 왕은 꽃을 꺾어 두 부인의 몸을 꾸미려고, 코로 나무를 감아 흔들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그 꽃은 큰 부인의 몸에만 떨어지고 작은 부인은 바람맞이에 있었으나 꽃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왕이 치우쳐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은근히 독한 마음을 품었다.
설산에는 도사가 많았다. 그때 작은 부인은 아름다운 과실을 따다가 백 명의 벽지불에게 공양한 뒤에 산 위의 험준한 곳에 가서 스스로 맹세하였다. ‘지금까지 벽지불에게 보시한 복의 갚음으로 인간에 나거든 부자이고 큰 세력이 있으며, 또 전생에 이 코끼리의 왕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스스로 알리라.’ 그녀는 곧 몸을 산 밑으로 던져 죽었다.
그 식신(識神)은 인간에 태어나 어떤 장자의 딸이 되어 지혜가 밝고 많이 알며 단정하기 짝할 데 없었다. 그녀가 자라자 그 나라 왕은 그녀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었다. 부인은 생각하였다. ‘이제야말로 묵은 원수를 갚게 되었다.’ 누른 치자를 얼굴에 바르고는 병을 핑계삼아 자리에 누웠다.
030_0405_c_01L왕은 들어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였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머리에 여섯 개 어금니가 있는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그 어금니를 가지고 비녀를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만일 왕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내 병은 날로 위독해질 것입니다.” 왕은 평소부터 그녀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감히 그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곧 나라 안의 사냥꾼 수백 명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들은 혹 산중에서 여섯 개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를 보았느냐?” 모두 말하였다. “본 일이 없습니다.”
왕은 딱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부인을 불렀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모두 그런 사정으로 말하였다. 부인은 말하였다. “요새 이 근처에 참으로 그런 코끼리가 없다면, 너희들 중에 누가 괴로움을 잘 견디고 담이 큰 사람이 없는가?” 어떤 사람이 꿇어앉아 말하였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에 부인은 그에게 만 냥 금과 쇠갈고리와 도끼와 끌과 또 법의(法衣) 한 벌을 주면서 말하였다. “네가 지름길로 설산(雪山)에 가면 길에 큰 나무가 있고 그 좌우에는 몸 길이가 수백 발이 되는 큰 구렁이가 있어서 가까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에는 도끼와 끌로 그 나무를 뚫고 그 구멍으로 빠져 나가 앞으로 더 나아가면 큰 물을 볼 것이요, 거기에는 나무가 물 위에 늘어져 있을 것이니, 쇠갈고리를 나무에 걸고 기어 올라가 가지를 따라 나아가면 큰 코끼리가 사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늘 있을 만한 곳을 살펴서 그 밑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위를 얇게 덮고는, 그 속에 들어가 코끼리가 올 때를 엿보아서 활로 쏘아라. 그리고 사문처럼 가사를 입으면 코끼리는 거룩한 세 분을 받들기 때문에 결코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사냥꾼은 그 명령을 받고 곧 떠나, 7년 7개월 7일 만에 그 코끼리가 사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조금 있자니 코끼리왕이 돌아왔다. 사냥꾼은 독이 묻은 화살로 코끼리를 쏘았다. 그 화살이 멀리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코끼리는 코로 그 근처를 뒤지다가, 구덩이 속의 그 사람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매우 두려워하여 스스로 고백하였다. “나는 품팔이꾼입니다.”
030_0406_a_01L코끼리왕은, 그것이 부인이 시킨 짓인 줄 알고 스스로 그 어금니를 빼어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너는 빨리 돌아가라. 다른 코끼리들이 보면 곧 너를 해칠 것이요, 설령 뿌리치고 가더라도 그대의 자취를 찾아 뒤쫓을 것이다.” 코끼리왕은 위신력으로써 그를 보호하여 그는 이레만에 그 지경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와 코끼리 어금니를 부인에게 올렸다. 부인은 그것을 받아 몇 번이고 보고는 기뻐하기도 하고 뉘우치기도 하다가 얼마 뒤에 피를 토하고 거의 죽게 되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하늘과 용과 귀신과 네 무리의 제자들이 큰 법회(法會)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떤 큰 비구니가 멀리서 부처님을 자세히 바라보고는 곧 큰소리로 웃다가 조금 뒤에는 다시 소리를 높여 울었기 때문에 모두 괴상히 생각하였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어떻게 저 비구니는 아라한이 되었으며, 무슨 이유로 슬픔과 기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합니까? 그 사정을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흰 코끼리는 바로 내 몸이요, 그 부인은 지금의 구이(瞿夷)이며, 그 작은 부인은 지금의 비구니이니, 그는 신통을 얻었기 때문에 전생 일을 아는 것이다. 그가 슬퍼하는 것은 그 마음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요, 기뻐서 웃는 것은 착한 사람을 해쳤다가 다시 도를 얻었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은 곧 허리띠를 끌러 땅에 놓고 목련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이 띠를 땅에서 떼어야 내 몸을 들 수 있을 것이오.” 목련은 그 띠를 들어 보았다. 그러나 땅은 움직일 수 있으나 띠는 들 수 없었다. 목련은 신통으로 부처님께 돌아왔다. 사리불은 먼저 와서 부처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목련은 신통의 힘이 지혜의 힘보다 못한 것을 알았다.
그때 그 자리의 어떤 비구가 귀에 수만꽃[須曼花]을 꽂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은 모두 이상히 여겼다. “비구 법에는 꽃 장식을 하지 않는데 저 비구는 꽃을 꽂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그때 천제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 비구는 왜 꽃을 꽂았습니까?”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 귀의 꽃을 버려라.”
030_0406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유위불이 세상에 나오신 지 91겁 되던 때에 그 부처님은 큰 법회를 열었다. 그때 어떤 취객(醉客)이 그 모임에서 설법을 듣고 기뻐하여, 귀에 걸었던 꽃을 떼어 부처님 위에 흩고는 예배하고 떠났다.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91겁 동안 천상과 인간에서 복을 받고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았다. 알고 싶은가? 그 때의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저 비구이다. 꽃 하나를 흩은 복으로 지금 도를 얻었고 또 그 꽃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천제는 아뢰었다. “과거의 그 취객은 계도 받지 않고 육바라밀도 행하지 않았지마는, 한 번 꽃을 흩은 복은 91겁을 지난 지금에도 다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 일을 많이 한 사람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제여, 알아야 한다. 부처님[薩芸若]께서 일체의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모두 이와 같으니라.” 그 모임의 대중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내었다.
옛날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도를 얻어 천하를 교화하시니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사위국의 왕만은 부처님을 믿지 않았다. 부처님의 절과 왕의 동산은 벽을 사이하여 가까이 있으면서 모두 강에 다다라 있었다. 그 절에는 3백여 명의 사미가 있어서 늘 거룩한 세 분을 모셨다.
그때 파사닉왕은 그 부인과 함께 누각 위에 앉아 있다가 멀리서 사미들이 유희하는 것을 바라보고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구담을 믿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구담 무리들은 스스로 청정하여 번뇌가 없다고 일컫지마는, 지금 저들의 장난치고 노는 것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서 어떻게 참되다고 하겠는가?”
030_0407_a_01L부인은 대답하였다. “비유하면 바다 가운데에는 용과 뱀이 있는 것처럼 대승의 법도 그와 같아서, 도를 얻은 이도 있고 도를 얻지 못한 이도 있어서 통틀어 말할 것이 아닙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기 전에 사미들은 모두 가사를 입고 물병을 들고 바로 절을 향해 가면서 그 자리에서 신통으로 3백 개 병을 허공에 던지고 각기 날아서 절로 들어갔다.
부인은 그것을 가리키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님의 마음이 흡족하지 않으면 지금 저 신통을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왕은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곧 누각에서 내려와 여러 신하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는 귀의하고 뉘우쳤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왕과 부인과 모든 대중들은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었다.
030_0407_b_01L부처님은 곧 신통으로 3면에 큰 시내를 만들어 어디로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오직 부처님 앞에만 길이 있게 하였다. 종자는 말하였다. “구담 쪽으로만 길이 통했습니다.” 할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장자는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곧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부처님은 다시 신통으로 부채 안팎이 환히 트이게 하였다. 장자는 눈을 들자 부처님과 마주 보게 되었다. 장자는 갑자기 깨닫고 곧 수레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였다.
두 사람이 나와 막 붙으려 할 때에 부처님께서는 신통으로 그를 들어 땅에서 여나믄 발 떨어진 허공에 두었다. 그가 밑으로 내려다 볼 때 땅에는 다만 불이 붙는 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교만하고 분해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다만 죽음이 두려워 공중에서 말하였다. “아래 있는 역사님께 귀의합니다.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030_0407_c_01L부처님께서는 그를 땅에 내려 놓고 부처 몸을 나타내셨다. 그는 곧 부처님임을 알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였다. “부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으면 감히 교만하여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컨대 용서하시어 무거운 재앙을 면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깊은 법을 말씀하셨다. 그는 곧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어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얻었다. 부처님의 방편[權道]으로써 제도하심이 이와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