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선과 악의 운수가 마주치는 것은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드러나듯 하여 받는 대연(對緣)이 분명하다. 무릇 세 가지 차별이 있으니, 지금이고 중간이고 나중이다. 아홉 빛깔 사슴으로 깊은 은혜를 베풀어 천비(天妃)의 눈과 귀를 기쁘게 하였는데 외로이 금수(禽獸)의 왕이 되어 사람의 목숨을 온전히 구하되 그 형체로 5대(大)의 혹형을 받았으니, 이것은 지금이다. 군도(群徒)가 깊은 구덩이에 빠져들고 그 아신(我身)에 빠져 윤회에 떠돌면서도 돌이키지 못하여 그 몸이 대를 이은 재앙으로 고달픔에도 왕자가 눈을 잃을 것을 깨닫지 못했으니, 이것은 중간이다. 아란나 범지(阿蘭那梵志)가 무상(無想)에서 화를 입고 어린아이의 노리개처럼 그 처음과 끝에 오래도록 미혹하여 날개 돋은 거친 수달이 되어 허공을 날고 물에 잠기면서 곤혹을 치른 바가 헤아릴 수도 없으니, 이것은 나중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혼령을 내린 것이 반드시 곡절이 있는지라, 애쓰되 미리 하지 않음이 없음은 푸르고 흰 것처럼 분명하다. 3세를 그윽이 비쳐보면 생사의 흐름에 빠져서 길이 심은 업이, 볼 적마다 변하는 것이 굽지 않은 질그릇처럼 번거롭게 그 나아감을 백련(百練)의 가마로 인도하였다. 여래께서 가신 이후로 아육왕(阿育王)이 보위에서 염부제를 다스리되 그 빛의 흐름을 윤택하게 하였으니, 부도와 사찰이 8만 4천이었다. 나한(羅漢)이 세상에 임하여 수억의 중생들을 제도하니, 국주(國主)가 이를 근본으로 스승 삼았기에 비 내리듯 하는 현묘한 교화를 만백성이 우러러 받들어 심식(心識)의 평안함이 천자(天子)에 힘입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왕자 법익(法益)은 지난 과거에 홍업(弘業)을 심어 왕궁에 태어나되 그 용모가 남달랐으나, 나중에 다시 그 대연을 받게 되었어도 연기(緣起)의 만남을 알지 못했다. 진(秦)의 상서령(尙書令) 공(公) 보국장군(輔國將軍) 종정경(宗正卿) 영성문(領城門) 교위사자(校尉使者) 사예교위(司隸校尉) 요민(姚旻)은 남안군(南安郡) 사람이다. 친(親)인 요조(姚詔)의 둘째형으로 자(字)는 경의(景嶷)이다. 유자(儒者)의 사표인지라 뛰어난 공적이 천 년[載]에 나란하며, 그 무훈이 출중하여 야밤의 달빛처럼 홀로 우뚝하고, 말소리가 폐부에 통하여 변재가 드넓고 원대하며, 마음대로 글을 짓되 높이 날아올라 시비가 없었다. 덕이 순수하고 깊은데다 틀을 헤아리기 어려웠으니, 뭇 재[才]들에게는 빼어난 글[逸翰]로 공경 받고 곤봉(昆鋒)들에 용위(龍威)를 떨쳤다. 그러나 미혹이 오래되어 구제받지 못함을 가엾이 여기고 어리석은 무리가 깨닫지 못함을 한탄하였는지라, 선대의 자취를 밝혀서 말대(末代)의 속세에 현종(玄宗)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천축(天竺)의 사문 담마난제(曇摩難提)를 청하여 이 연본(緣本)을 내었다. 진건(秦建) 초엽 6년 신묘년(辛卯年)에 안정성(安定城)에서 2월 18일에 시작하여 2월 25일에 마쳤다. 범본(凡本)의 게송 343수를 한문으로 고쳐 내었으니, 1만 880자이다. 진나라 말로 번역함에 그 이치가 어려움을 생각하여 문구를 버리고 뜻을 취하기도 하였고, 문맥이 막히면 비껴 통하기도 하였으며, 외우는 이에게 풀이 받기도 하였고, 사적(事蹟)을 간략히 하여 인용하기도 하였으니, 기약하는 바는 후대의 학인들이 죄와 복이 헛되지 않음을 살펴보도록 하는 일이다. 설령 조금이라도 그 색(色)을 윤택하게 한다면 모두 조짐에 새겨질 터이기에, 이에 서(敍)한다.
아육왕식괴목인연경(阿育王息壞目因緣經)
부진(符秦) 천축(天竺) 삼장 담마난제(曇摩難提) 한역 박용길 번역
인간이 죽음과 삶에 놓여 뒤얽히며 내려온 지 오래이라 죄를 익힌 식심(識心)이 깊어지면 그를 따라 괴로움과 혼란이 일어나네.
음욕은 병(病)이 되어 반드시 격렬한 파랑을 일으키니 마치 강물이 폭포수로 흘러넘치는 것처럼 상처 입고 손해 봄이 있게 되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잡아 생각으로 헤아림이 분명하며 맑고 의젓하게 자신을 지켜 모든 악의 근원을 훌륭히 다스리네.
스물한 가지 번뇌[結]는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고 물들여 모든 것을 잃게 하고 급기야 제멋대로 행동하게 하네.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내 얘기를 들으라, 아육왕의 아들이 눈을 잃게 된 내력을.
소문은 변방의 여덟 표지판을 지나 온 나라 안에 두루 퍼졌으니 많은 사람들이 너무 뜻밖이라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네.
거룩한 왕 아육(阿育)은 중앙에서 온 세계를 통일하였으니 염부제(閻浮提)를 다스림에 그 명을 따르지 않는 이 없었네.
또한 왕이 자식을 얻었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날 때부터 훌륭한 상호를 갖추어 왕위를 잇기에 충분하였네.
눈빛은 맑고 또렷하여 마치 천제(天帝)의 모습과 같았으니 왕은 이런 남다른 생김새를 보고 그 기쁨이 한량없었네.
서둘러 여러 신하들과 사문(沙門)과 도사(道士)들을 불러 몸소 아이를 품어 보이고선 그 모습을 살피도록 하였네. 아울러 여러 신하들에게 영을 내려 아이의 이름을 짓게 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드높이 칭송하고 그 명성이 온 세계에 두루하게 하라.
여러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왕의 명을 받들어 말하기를, 왕께서 이처럼 귀한 왕자를 얻으시니 세상에 드문 일입니다.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신 덕분에 하늘에서 이런 신인(神人)을 내려주셨으니 이제 그 이름 지으라 하시니 법익이라 부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왕께서 만드신 법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이 법으로 백성을 가르치심에 도리에 어긋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법에 의한 진실한 아들이기에 거룩한 아들이라 부르며 법익이라 부르겠습니다.
눈은 마치 연꽃과 같아 보는 사람마다 기뻐하고 바라볼 때마다 모두 황홀해 하니 마치 하늘의 제석천왕 같습니다. 말씨는 또렷하여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으며 천성은 부드러워 졸렬하거나 난폭하지 않습니다.
이 이름의 덕스러움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으며 이제 다시 호(號)를 붙인다면 천안(天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육왕은 끔찍이 받들고 사랑하면서 수시로 보살피고 돌보아 아무런 허물도 없도록 하였네.
왕은 항상 다른 사람을 보내어 속속들이 사정을 살피게 하였고 왕자에게 별 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식사를 하였네.
몸소 법익을 안고 하루 종일 즐겁게 놀았으니 애틋한 마음과 사랑스러운 감동 뿐 자나 깨나 싫지가 않았네.
법익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떤 복을 지었기에 이런 눈을 얻었느냐? 마치 우담바라꽃 같구나. 혹시 왕궁 안의 정원에 나가거나 나라 안을 여행할 때면 언제나 장수가 지키도록 하여 걱정거리가 없도록 하였네.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천안(天眼)을 보고 나선 모두가 헛된 생각을 일으켜 사랑하고픈 욕망을 품었네.
왕은 타고난 성품이 여색(女色)을 지나치게 좋아하였으니 왕궁 안의 모든 시녀들은 그 모습이 천신의 왕비 같았네.
왕의 부인(婦人)들은 모두 속으론 자태(姿態)를 갖추고 외양은 품위 있고 아름답고 애교 있어 행동거지 어느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네.
왕의 대부인(大夫人)은 이름이 정용(淨容)이었으니 밤낮으로 기회를 보아 천안과 정을 통하고자 하였네.
나는 어느 날에나 이 소원이 이루어져 천안과 더불어 한가롭고 아늑한 곳에서 함께 노닐 수 있을까? 내 뜻대로 이루어만 진다면 하늘의 왕궁도 부럽지 않고 곧바로 죽더라도 세상에 아무런 여한이 없으리.
어느 날 태자는 맑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대부인의 처소로 와서 무릎을 꿇어 절하고 문안을 드렸네.
서둘러 일어나셔서 힘드시더라도 산책 좀 하옵소서. 아울러 달콤한 석류[吉祥之菓]를 올렸네.
부인은 태자를 보고 나서 욕정이 무섭게 타올랐고 문득 말하기를, 너는 예전엔 나와 함께 놀지 않았느냐.
이전엔 나의 소원을 모두 들어 주고 부모 자식간의 정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금도 너와 내가 함께 즐긴다면 역시 좋지 않겠느냐?
천안이 이 말을 듣고 손으로 뿌리치고 나서 혼자 속으로 생각하기를, 괴롭구나, 이러한 말씀을 하시다니. 그 어떤 재앙이 이보다 심할까? 쓰라린 고통이 가슴을 꿰뚫는구나. 길러 주신 은혜가 무겁다고 하지만 어찌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오.
천천히 물러 나와 다시 왔던 길을 따라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는 조용히 자신을 가다듬었네.
한편 정용은 자신의 소원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또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가슴을 치고 탄식하고는 해를 끼칠 생각을 일으켰네.
머리를 쑥대강이처럼 헝클어뜨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분노에 휩싸였으니 마치 나찰귀(羅刹鬼) 같았네.
저 놈이 어찌 나에게 이런 치욕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내 반드시 방법을 찾아 두 눈을 뽑아 버리리라.
그리하여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왕자를 보거나 듣고 싶어 하는 이가 없게 하리니 도대체 어느 남자나 여자가 그 꼴을 보려 하겠는가? 그 때 한 신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야사(耶奢)였고 부왕의 신임이 두터운 까닭에 온 백성이 그 위세에 굴복하였네.
나라의 명절이 시작되어 축하를 드리러 왕궁에 들어가 왕을 뵙고 손을 모아 겸양의 뜻을 표하니 마치 옛날의 훌륭한 예절을 보는 듯하였네.
왕자가 보고서는 손으로 머리를 치고는 말하기를, 상서롭지 못한 응대를 하는구나. 감히 내 앞에 서다니.
속히 네 본자리로 돌아가고 이 자리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 나는 이제 조정에 들어가 거룩하신 왕에게 경하(慶賀)를 올리리라.
야사는 찾아 와서 손을 잡고는 거짓으로 거듭 존경을 표하기를, 원컨대 왕자님께선 끝없는 장수를 누리소서.
조금 전 그 존귀하신 손으로 신의 머리를 치셨으니 부드럽고 연약하신 몸에 흠이라도 나진 않으셨습니까?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말하면서 겉으로는 기쁨을 드러냈지만 속으로는 분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켰으니 마치 뱀이 독을 품은 것과 같았네.
혼자 몰래 생각하기를, 내 반드시 이 원수를 갚으리니 왕자의 오른쪽 팔을 절단 내지 못하면 끝내 세상에 나서지 않으리.
야사는 무릎 꿇어 인사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이 일을 마음에 새겼다가 정용에게 고해 바쳤네.
정용도 마주 대하여 말하기를, 경(卿)께서도 나의 말을 들어보시오. 나도 역시 궂은일을 당하였으니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도 없구려.
그가 자행한 치욕을 어찌 용서할 수 있으리오. 몸을 갈가리 베어버린다 해도 끝내 용서할 수 없을 것이오.
야사여, 이는 마치 물 속에서 불이 일어나 산과 들을 태우고 성곽과 마을을 불태우는 것과 같소.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본다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으리니 여러 신하들도 마주 보고 함께 의논하여 이렇게 말할 거요.
오늘 점괘는 어찌하여 물 속에서 불이 일어난다 하였을까? 물은 능히 불을 끌 수 있는데 물에서 불이 생겨나다니.
이제 이 왕자도 비유하자면 그와 같으니 그 왕자를 만났을 때 마치 물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소.
내 마음에 지어왔던 모든 공덕을 한꺼번에 태워버렸으니 전에는 태자가 두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태자가 두렵고 꺼려지는구려.
나는 항상 긴 밤 내내 이런 생각들을 했었소. 내 이제 나이가 들고 쇠약하니 아들의 힘을 빌려야만 하리라.
그런데 오히려 나를 끌어 잡고 욕보이기를 마치 창녀 희롱하듯 하였으니 이 일을 그대에게도 숨긴다면 대체 누구에게 호소해야 옳겠소? 야사가 말하기를, 허물과 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온데 마마를 무너뜨리고 저를 욕보였으니 되갚아 줄 적당한 기회를 궁리해야 합니다.
반드시 계책을 세우고 방법을 찾음이 마땅하오니 두 눈을 뽑아버리지 못한다면 이는 앙갚음이 아닙니다.
그 때 어떤 아라한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선념(善念)이며 천안도 스승으로 받들고 모든 백성들도 존경하였네.
진인(眞人)이 선정에 들어 도력으로 살펴보니 왕자는 나중에 반드시 인연의 업보를 받게 되어 있었네.
자주 깨우쳐 주고 진리를 자세히 설명하여 뭇 생명의 변화를 알게 하고 만물은 공(空)으로 돌아감을 알게 했네.
왕자와 더불어 말하기를 빛깔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느니 없다느니 할 만한 것도 또한 없으며 없다는 것 역시 없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소리는 밖에서 일어난 자극을 귀를 거쳐 안에서 분간하는 것이며 냄새는 제 맘대로 이리저리 떠다니는데 코가 이를 받아 들여 분간합니다.
온갖 맛은 입을 거치면서 혀의 능력을 증가시키며 몸은 부드럽고 섬세한 것을 탐하고 의식은 대상[法]을 인식함에 만족할 줄 모릅니다.
대상이 있으면 역시 실제로 있다고 여기고 대상이 없으면 역시 실제로 없다고 여기나 이와 같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있지 않고 없다는 것마저 없다는 것도 또한 없습니다.
마치 물거품이 모인 것과 같아 반드시 무너져 없어지게 되니 눈도 또한 변함없는 주인이 없어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물 위의 거품 같아 모였다가는 흩어져 사라져 버리니 반드시 깊이 살펴보소서. 어느 것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변화합니다.
눈이란 것도 변하여 생겨났다가 쇠약해지기를 멈추지 않으니 반드시 스스로 노력하여 천안(天眼)을 구하도록 하십시오. 천안이란 것은 부수거나 무너뜨릴 수가 없으며 조금씩 그것에 가까워지면 아무런 근심도 없게 됩니다.
자주 세속의 일을 잊고 설법을 들으러 다니며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여 함께 교분을 나누십시오.
설법을 듣고 생각을 깨치면 마음의 눈이 청정해질 것이며 다시 훌륭한 도반을 의지하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마음을 모아 부처님을 생각하며 법보를 사유하며 거룩한 스님들을 공경하여 받들며 스승과 웃어른들께도 그리해야 합니다.
마음을 쉽사리 움직이지 않으면 곧 크게 성취하여 움직임이 없는 경지에 머무르게 되리니 이런 이는 바로 참된 부처님의 자손입니다.
법익은 이 말을 듣고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가운데 생각하기를, 이 말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어떤 일도 홀로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어찌해서 지금 스승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들어 특별히 눈의 무상함을 깊이 명심하도록 은근히 다짐을 주시는 걸까?
마땅히 가르침을 잘 지켜 빈틈없이 행할 일이니 어찌 감히 경솔히 하여 훌륭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어길 것인가?
당시 그 무렵 염부제 안에 보살이 전생에 수행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곳이 있었네.
그 이름은 석실(石室)로 항상 왕이 잘 다스리더니 우연히 나라가 무너지고 왕 역시 죽기에 이르렀네.
나라 안의 여러 신하들과 늙고 젊은 백성들은 함께 몰려왔네, 아육왕이 계신 곳으로.
절을 하며 우러러 뵙고 두 손을 모아 말하기를, 거룩하신 대왕님이시여, 부디 번성하시고 만수무강하옵소서. 저희 석실국은 무너지고 왕은 자리를 버리고 돌아가셨으니 원컨대 대리인을 보내 주시어 버림받은 백성들을 다스려 주십시오.
술을 지나치게 먹지 않고 여색을 자제하며 인정이 많아 차별 없이 사랑하며 나라를 다스림에는 아첨을 싫어합니다. 만약 이러한 덕이 없다면 신이 어찌 감히 듣기 거북한 말씀을 여쭙겠습니까? 원컨대 제 때에 맞추어 허락하옵소서.
왕은 모름지기 한 가지에 전념해야 하니 어찌 두 가지 걱정을 모두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귀하신 왕자님이지만 석실국을 위하는 일임을 헤아리소서.
지금 제 때에 대책을 세우시지 않는다면 나중에 반드시 근심이 있을 것이니 일을 미리 염려하지 않는다면 그르침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마치 음식을 먹다가 막힌 것 같았으니 목을 넘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토할 수도 없었네.
야사가 속이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들 듯 미처 나중의 일은 살펴보지 못했네.
그 때에 아육왕은 눈물을 떨구며 명하기를, 법익을 보내 그곳을 맡아 다스리게 하라 하였네. 가까운 신하들 수만 명이 저절로 메아리처럼 응했으니 훌륭한 보물들을 왕궁의 정원에 쌓아 놓았네.
아육왕은 몸소 손에 왕관을 들고 법익의 머리에 씌워 주면서 고하여 말하였네.
훌륭하구나. 새로운 왕이여, 길하여 이롭지 않은 일이 없을 것이니 항상 나의 혈육만이 이 자리에 오르도록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춤추고 악기를 타며 화려한 무늬의 깃발을 내걸었으니 그 종류가 수천 가지였네.
온 나라 안에 두루 펄럭이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8유순(由旬) 안에는 백성들로 가득 찼네.
갑옷을 입힌 코끼리와 말이 각각 8만 4천이며, 금은을 섞어 장식한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네. 깃털로 장식한 마차가 8만 4천이요, 보병의 무리 또한 8만 4천이었네.
마치 하늘의 제석천왕처럼 후원을 떠나 출발하였으니 아름다운 여인들과 거느린 무리들을 보라 세상에 무엇이 이보다 더 즐거우리오.
이와 같이 하여 왕자는 그 지역에 이르러 석실성에 들어가니 앞뒤로 따르는 무리가 헤아릴 수 없었네.
왕이 이르는 곳마다 만민(萬民)들이 경축을 외치며 마음껏 즐거워하였으니 마치 도리천 같았네.
성안의 거리와 마을마다 화려한 무늬의 깃발을 내걸었으며 땅바닥에는 향을 우려낸 물을 뿌려 두루 향내음이 나지 않는 곳이 없었네.
그 때 왕 법익이 백성들에게 고하기를, 그대들은 성심껏 나를 존중하여 주는구나. 앞으로 7일 동안은 각자 맡은 일을 쉬도록 하라. 내 마땅히 그대들에게 재물과 보물을 내리리라.
내가 궁중에서 즐기듯이 다섯 가지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놀기를 밤낮으로 싫증나지 않을 때까지 하라.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든 그대들의 바람대로일 것이니 가령 빚을 졌다면 빚을 갚을 재물을 내어 줄 것이다.
가령 재산을 모두 잃고 지위가 떨어져 남의 노비가 되었다면 재물과 비단을 나누어 주어 노역에서 벗어나게 해 주리라.
성안에 사는 모든 백성들은 남자건 여자건 어른이건 아이건 널리 착한 행동을 익히도록 만들어 원한을 품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또한 외곽에 있는 제후국에도 나의 교시를 선양할 것이니 6년 동안은 공물을 받지 않도록 하리라. 가령 홀몸으로 궁핍하거나 더없이 가난하여 곤궁한 자는 역시 내가 재물을 베풀어 궁핍하지 않도록 하리라.
누구든지 능히 스스로 닦아 죽이거나 도둑질 할 마음이 없으면 나는 반드시 그를 존경하기를 마치 왕인 나와 같이 할 것이다.
그 때 왕 법익은 다시 영을 내려 말하기를, 보름마다 사흘씩 재일(齋日)이 있으니 이 같은 날은 만나기가 어려우니라.
남녀가 서로 권하여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여덟 가지 청정한 계와 여래의 재법(齋法)을 받들어 지켜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몸은 억겁(億劫)을 지나야만 받을 수 있으니 8재계(齋戒)를 지킴에 등한히 말고 전도(顚倒)된 법을 멀리하라.
바다에 떠다니는 널빤지 구멍에 눈 먼 거북이 요행히 고개를 내민 것과 같으니 이런 비유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사람 몸 받기 어려움을. 그대들은 이미 사람의 과보를 받았으니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라. 사람이 누리는 5욕락(慾樂)은 환상이고 거짓이며 진실하지 않느니라.
하늘에 나는 복을 지으면 반드시 도리천궁(忉利天宮)의 칠보전당(七寶殿堂)에 태어나 감로(甘露)를 먹게 되리라.
모든 것을 바라는 대로 얻고 하늘의 복을 누릴 것이니 마땅히 보름 동안마다 세 번씩 있는 재일을 받들어 지키라.
그 때 석실국의 왕은 가르쳐 뉘우치도록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온 나라에 풍년이 들고 백성들은 편안하였네.
그곳의 어떤 남녀들은 왕을 만나고 나서 목숨이 다한 뒤에 모두 천상에 태어났네.
한편 대왕 아육은 사신에게 묻기를, 법익의 다스림이 법도에 맞던가, 안 맞던가?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은 한결같이 복종하는가, 안 하는가? 경은 지금 바로 소상히 말하여 궁금함이 없도록 하라.
사신은 기뻐하면서 아육왕 앞에 고하기를, 대왕님이시여 만수무강하시어 만백성의 의지가 되어 주소서.
거룩하신 법익왕은 기력이 강건하며 항상 정법으로 서쪽 지방에 사랑을 베풀어 교화하고 계십니다.
석실성 안은 마치 하늘나라 제석천의 궁전과 같으며 왕은 그 중앙에서 다스리니 마치 하늘나라의 제석천왕과 같습니다.
건타월국은 토양이 기름지고 백성이 번성하며 행동은 진실하여 헛된 거짓이 없습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을 하지 않고 정법을 순순히 따르면서 모든 백성들이 한량없이 경축하고 찬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원컨대 대왕님께서는 만수무강하시어 저희들이 성군(聖君)의 덕을 입어 제각기 편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옵소서.
아육왕이 이 말을 듣고는 그 경사스러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으며 부드럽고 기쁜 얼굴빛으로 야사에게 말하였네.
내가 이제 큰 이익을 얻고 치덕(治德)을 실현하게 되었으니 이는 법익 왕자가 바른 이치로 나라를 다스린 까닭이다.
예의와 금령(禁令)으로 백성을 이끌며 은혜와 화합으로 인도하니 모든 백성들이 받들어 모시지 않음이 없구나.
이제 마땅히 나라를 나누어 염부제 땅 가운데 절반은 내가 취하고 절반은 아들에게 주리라.
나의 아들 법익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지금과 다름없이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할 것이다. 인더스강[新頭河]의 바깥쪽 사가국(娑伽國)에서부터 건타월성(乾陀越城)과 오특(烏特)의 여러 마을 검부(劍浮)와 안식(安息)과 강거(康居)와 오손(烏孫)과 구자(龜茲)와 우전(于闐)과 중국[秦土]에 이르기까지
이 염부제의 절반을 법익에게 주어서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그 이름을 후세까지 드날리도록 할 것이다.
설산(雪山)의 북쪽에서 바닷가에 이르는 곳까지는 내가 몸소 가르치고 다스려서 끝이 없도록 할 것이다.
야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독화살에 맞은 듯했으니 겉으로는 거짓 웃음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분한 마음을 품었네.
바로 무릎을 꿇고 여쭙기를, 대왕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금 즉시 영을 전하되 감히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몰래 혼자 지난날의 괴로웠던 일을 생각하니 세 가지 독한 마음이 융성하여 목숨도 돌아보지 않게 되었네.
지난날 나의 머리를 쳤으니 그 아픔을 잊기가 어렵구나. 지금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언제 다시 갚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바로 물러나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 은밀히 측근을 보내 정용에게 모든 것을 말하였네.
정용이 이 말을 듣고 야사에게 이르기를, 서둘러 칙서(勅勅書)를 꾸며 왕위를 빼앗고 형벌을 가하도록 하시오.
아무도 밖에서 엿보아 이 사실을 듣거나 보아서는 안 되니 만약 이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 두 사람 모두 죽게 될 것이오. 야사가 말하기를, 칙서를 꾸미기는 쉬우나 오직 왕의 도장을 써서 칙서를 봉해야만 합니다.
정용이 답하여 말하기를, 도장을 쓸 일이 나도 걱정이지만 이제 반드시 함께 노력한다면 해내지 못할까 어찌 근심하리오.
부디 부탁을 받고 갈 만한 사람을 잘 생각하시어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시오.
그 때 야사는 왕명을 사칭하여 칙서를 마음대로 꾸미고 헛된 말을 가득히 늘어놓았네.
석실국을 가볍게 속여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처럼 하였으며 아육왕의 이름으로 석실국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네.
만약 그곳에서 편안히 살기를 바란다면 염부제 땅의 백성들은 속히 나의 명을 따르고 어기지 말라. 이 칙서를 보는 대로 봉인(封印)을 살핀 다음 법익을 붙잡아서 두 눈을 빼도록 하라.
그는 나의 아들이 아니고 나는 그의 아비가 아니며 그가 다스리던 나라도 나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칙서를 몰래 만들어서 정용에게 가서 보여 주며 말하기를, 왕의 도장만 갖추면 아무 것도 의심할 일이 없습니다.
이제 도장을 찍기만 하면 내일 바로 칙서를 보낼 것이니 만약에 조금이라도 더 머뭇거렸다간 발각될 일이 두렵습니다.
그러자 정용은 바로 그날로 왕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변괴가 있었다고 거짓말하였네.
어젯밤에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매우 불길하니 장차 왕의 몸에 질병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미리 조심해서 악몽을 예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니 원컨대 이 달콤한 술을 드시어 제 마음을 기쁘게 하소서.
상서롭지 않은 징조도 능히 항복 받으실 수 있을 것이며 그 존귀함이 왕과 백성에게 미치어 길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왕이 물어 말하기를, 꿈은 사실이 아니니 어찌 내 몸에 질병이 있도록 할 수 있겠소?
정용이 이 말을 듣더니 거듭 슬피 울면서 하늘을 향해 통곡하다가 땅바닥에 몸을 던졌네.
왕이 애틋하게 여기고 생각하기를, 내 마땅히 술을 받으리라 부인이 저러다가 목숨을 잃게 해선 안 되겠다.
이 때에 왕은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를 위해 그것을 마시리라. 어찌 그대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할 수 있겠소. 이것은 하찮은 일이니 내 그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소.
왕은 곧 술을 받아 조금 마시고 나자 얼마 안 있어 취하여 잠들어 마침내 감각도 없게 되었네.
정용이 도장을 몰래 꺼내 칙서에 찍어 봉인하니 그 때 왕의 시종들 가운데 아무도 이것을 본 자가 없었네.
왕은 마침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도장을 꺼내 가는 것을 보고 소스라쳐 일어나 좌우를 둘러보고 말하였네.
이제 막 편안히 잠들어 생각이 아득히 꺼져 가는데 누군가 와서 내 몸을 건드려 정신을 산란하게 하였다.
서둘러 이것을 조사하여 헛됨이 없도록 하리니 여기에는 반드시 음모가 있어서 내 몸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철륜(鐵輪)을 날려 대왕의 빛나는 위엄을 떨치면서 정용에게 말하였네.
누가 너를 시켜 나의 보배 도장을 훔치게 하였느냐? 만약 자백하지 않는다면 바로 죽여 버리리라.
정용이 두려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왕에게 말하기를, 원컨대 대왕께서는 잘 살피어 주옵소서. 저는 진실로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왕은 더 한층 분노하면서 거듭 말하기를, 그대 외에 달리 내 몸을 만진 사람은 없다.
이제 내 앞에서 진심으로 잘못을 자백하지 않는다면 내 마땅히 너의 몸을 두 조각 내리라.
정용이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무릎 꿇고 왕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꿈속의 환상이 괴이하게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너무나 하찮은 가문에 외롭고 가난하고 천박한 제가 어찌 감히 대왕 앞에서 사실을 속이고 헛말을 하겠습니까?
설령 왕의 도장이 필요하다고 해도 어찌 몰래 훔치겠습니까? 성심으로 왕께 고한다면 어찌 얻지 못하겠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가 다시 침대로 가서 잠이 들어 새벽이 될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네.
정용은 급히 영을 내려 간신인 야사로 하여 속히 사신을 보내게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네.
바로 그 무렵 왕자 법익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궁궐에 모여 있었네.
즐겁게 놀면서 마음껏 기뻐하고 있었는데 마침 칙서가 석실성에 도착하였네. 왕은 부왕의 칙서가 밖에 도착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 나아가 맞이하였고 무릎 꿇고 절하여 우러러 받들었네.
옆의 신하에게 주어 봉인을 열도록 한 다음 왕명의 내용을 살펴보니 지극히 엄격하고 절도 있었네.
아육왕을 칭하고는 이 땅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으니 만약 평안히 살고 싶거든 석실성에 사는 자들은
속히 왕자를 잡아서 두 눈을 빼어내되 잠시도 머뭇거려서는 안 되니 그림자 옮겨 가듯이 시행하라.
법익이 그 내용을 듣고는 스스로 땅바닥에 몸을 내던지며 내가 부왕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러한 칙서를 보내시어 나의 두 눈을 뽑아버리려 하시다니 혹시나 누군가 부왕께 모함한 것은 아닐까?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은 이와 같이 절박한 왕명을 듣고는 모두가 놀라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네.
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란 말인가? 이런 변괴를 보게 되다니 대왕이 크게 분노한다면 다시는 왕조를 이을 수 없으리라.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여러 신하들은 더러 이 일을 두고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어찌 감히 법익왕의 눈을 못 쓰게 할 수 있으리오.
법익왕이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이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리오. 대왕의 뜻이라고는 하나 어찌 감히 두 눈을 빼내겠는가?
벼슬아치들은 함께 모여 나라의 경계를 굳게 지키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알려 다 같이 전쟁 준비를 하자.
차라리 백성이 죽고 처자식을 잃더라도 우리의 왕이 그 고통을 당하게 하진 않으리라. 급히 북을 울려서 변방의 장수들을 소집하고 칙서를 불태우고 사신을 잡아 죽이자.
아육왕은 우리의 왕이 아니고 우리도 그의 백성이 아니니 거룩하신 법익왕의 눈을 못 쓰게 하라는 그의 영을 따르지 않으리라.
이 때 법익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대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말라.
부왕의 병사들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고 용맹하고 굳건하기가 세상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대들이 비록 각기 최선을 다한다 해도 일을 이루지도 못하고 나라 전체가 망할 것이다.
나의 목숨은 어찌 지킬 것이고 누구인들 몸이 성할 것이며 나아가 부왕으로 하여금 원한만 깊어지도록 할 것이다. 차라리 육신을 손상하여 분수대로 칙명을 받으리니 어찌 내 한몸 건지자고 온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으리오?
그대들은 다시는 이 일로 논란치 말고 속히 부왕의 명을 받들어 내 눈을 못 쓰게 하라.
무릇 성함이 있으면 쇠함이 있고 모였던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라, 이 몸이 없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으리니 죽음인들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더냐. 이 육신은 고통의 그릇이어서 항상 더러운 것이 질질 흐르고 냄새나는 것이니 하나도 욕심을 낼 것이 없다고.
어서 빨리 성안에 이렇게 알려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여 법익왕에게서 두 눈을 뽑겠느냐?
그 자에겐 이제 천만금에 해당하는 보배 목걸이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금은을 주겠노라.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이 이러한 영을 듣고 성문 앞에 모여 들었으니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었네.
모양은 달라도 같은 곳을 향하여 한결같이 소리를 높여 하늘을 보고 땅을 치며 울면서 각기 호소하여 말하였네.
아, 어떤 고통이 이보다 더할까. 우리의 거룩한 왕을 잃게 되다니 마치 하늘의 왕궁과 같은 이곳이 어찌 무너져야 한단 말인가?
성곽도 왕궁처럼 오래지 않아 폐허가 되고 나라 안의 모든 땅도 황무지가 되겠구나.
우리 모두 함께 이웃 나라에 말을 전하세. 아육왕은 악인의 우두머리라고.
자식을 죽이고 이름을 드날리니 대체 무엇을 귀하게 여긴단 말이오. 자식도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데 백성들이 어떻게 믿고 의지하겠는가? 그 때 성안에 어떤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일찍이 왕자로부터 아주 사소한 일로 미움을 산 적이 있었네.
마침내 그는 바로 나아가서 막중한 일을 자신이 맡겠다며 말하기를, 저는 눈도 빼어 내고 목도 자를 수 있습니다.
좌우에 있던 여러 신하들이 그를 가리키며 여쭙기를, 이 사람이 스스로 밝히기를 자신이 왕의 눈을 못 쓰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깊이 살피시어 부왕의 명을 거절하시고 원하옵건대 왕께서는 이와 같이 심한 고통을 받지 마옵소서.
왕은 그 사람을 보더니 슬픔의 눈물을 흥건히 흘리며 좌우를 둘러보고 신하들에게 고하였네.
내가 이 나라에 머무른 지도 어언 12년 그 동안 허물도 많았으나 모두들 용서하시오. 가령 이제 내 눈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을 보더라도 근심하거나 괴로워 말고 어떤 나쁜 생각도 일으키지 마시오.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 전에 늘 해왔던 법대로 나랏일을 돌보며 정법으로 다스려 마땅한 일을 하도록 힘쓰시오.
생각을 바르게 하여 하늘의 복을 받고자 생각하고 항상 재계(齋戒)를 염두에 두어서 이것을 어기지 마시오.
왕은 보관(寶冠)과 둥글고 네모난 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와 보배로 장식한 신발을 벗어 앞에 선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였네.
그대는 반드시 내가 법의 근본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눈을 하나하나 빼서 손바닥에 놓아 주시오.
그 때 그 악인은 날카로운 칼을 손에 잡고 먼저 한쪽 눈알을 빼어 왕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네. 왕은 몸소 자신의 눈알을 집어 들고 깊이 생각하기를,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전에 스승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이.
이제 갑자기 마음으로 깨닫게 되니 그 뜻을 잊을 수가 없구나. 지난날 스승께서 설한 가르침은 그 이치가 진실로 깊었구나.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눈이란 무상한 것이라 하셨으니, 스승의 가르침은 지극하였고 진실로 헛되이 꾸민 말이 아니었구나.
조용하고 은밀하게 관찰하여 무상의 뜻을 깨닫고 보니 이 눈은 오래가지 않아서 반드시 못쓰게 될 것이었구나.
눈이여, 나는 이제 너의 근본을 알지만 미혹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게도 아낄 줄만 알고 이것이 공(空)인 줄은 모르는구나.
생사(生死)의 더럽고 탁한 모습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아서 몸통은 잎으로만 겹겹이 싸여 있고 속에 단단한 알맹이라고는 없다. 여기에서 지혜로운 이는 아무것도 탐할 것은 없다고 관찰하니 어찌 다시 생각을 일으켜 눈이라는 대상에 집착하겠는가?
눈은 나의 것이 아니며 지어내거나 만든 것도 아니며 거기에 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 눈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이는 의혹을 일으켜 눈의 작용에 깊이 집착하니 삶과 죽음의 어두운 바다를 길이길이 돌고 돈다.
눈이여, 이제 너를 돌려줄 터이니 영원히 서로 이별이구나. 어디에서 기원하여 나에게 눈이 주어졌는가?
마치 물 위의 거품이 잠시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헛될 뿐 진실하지 않구나. 육안(肉眼)의 쓰임새여.
이와 같이 법익은 눈의 근원을 자세히 관찰하여 깊고 묘한 뜻을 사유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네. 혼란을 다스려 바로 잡아 마음이 금강(金剛)과 같아졌으니 모든 잡된 생각은 고요히 사라지고 굳건한 의지로 흔들리지 않았네.
그 때 그 악인은 다시 날카로운 칼로 두 번째 눈을 빼내서 왕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네.
본래 어느 곳에서 왔는지 거듭 눈의 근원을 관찰하고는 모든 법은 적멸하여 만물이 귀화(歸化)함을 알았네.
그 자리에서 바로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모든 번뇌를 여의고 저절로 도의 자리에 이르렀네.
하늘과 땅도 감동하여 여섯 가지 모습으로 진동하였고 기쁨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훌륭하구나, 하고 세 번을 외쳤네.
세상의 더러운 눈을 버려 청정한 눈을 얻으니 공덕이 조금 쌓이자 내 스스로 도를 이루었음을 알겠구나. 모든 신하들은 울부짖으며 땅바닥 위에 몸을 던지고는 그 어떤 고통이 이보다 심할까? 우리는 이제 하늘같은 분을 잃었구나.
옛날에 어떤 인연을 지었으며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 이와 같이 눈을 상하여 기왓장이나 돌멩이처럼 버림을 받으신단 말입니까?
거듭 손을 앞에 모으고 각자가 여쭙기를, 원컨대 왕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다시 이 땅을 다스려 주옵소서.
저희들은 함께 부왕이 계신 곳으로 가서 저희들의 뜻을 여쭙고 이 나라를 통치하도록 허락받겠습니다.
그 때 법익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감사하고 위로하기를, 모든 백성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이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육신을 못 쓰게 된 사람이 어찌 그대들의 나라를 평안케 하겠소. 마땅히 스스로 물러나야 하리니 지금 곧 이 나라를 떠나겠소. 부인과 함께 시종 하나를 거느리고 왕의 자리를 홀연히 버리고 걸어서 길을 떠나갔네.
이곳저곳의 마을과 군과 현과 나라의 수도를 두루 흘러 돌고 거친 들판과 험난한 곳을 밟고 다녔네.
한편 태자는 어려서부터 거문고를 잘 탔으니 아름다운 그 소리 맑고 묘하기가 세상에 드물 정도였네.
그 재주에 의지하여 집집마다 밥을 빌며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다니며 스스로 목숨을 연명하였네.
이와 같이 떠돌며 여러 마을과 성곽을 하나하나 지나다가 드디어 부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이르렀네.
그 때 고약한 소문이 온 나라에 떠돌기를, 아육왕이 자식의 두 눈을 못 쓰게 하였다 하네. 크고 작은 마을과 온 나라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면서 우리들은 이제 어디로 도망가야 하리오.
남녀노소가 함께 마주 보고 슬피 울면서 말하기를, 태자가 부왕에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저 악인은 어찌 손이 끊어져 못쓰게 되지도 않고 우리의 거룩한 왕을 데려다가 두 눈을 못 쓰게 하였나.
그러자 왕자 법익이 백성들에게 고하기를, 부왕께서는 잘못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원망하지 말라.
이것은 내 전생의 업으로 지금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은 오래된 것으로 금생만 보아서는 안 되오.
이 때 아육왕은 높은 누각 위에서 정용과 함께 누워 자고 있었네. 왕자 법익은 마구간 안에서 쉬면서 밤새도록 즐거이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며 혼자 즐기고 있었네.
왕이 마침 거문고 소리를 듣고 탄식하면서 언뜻 의심하기를, 여러 음들이 조화롭고 아름답기가 마치 우리 법익을 보는 듯하구나.
누가 거문고를 타기에 소리가 예까지 울려오는가? 혹시 이는 우리 법익이 아닐까?
정용이 답하기를, 저 사람은 왕자가 아니라 눈 없는 사람으로 걸식하며 혼자 살아가는 자입니다.
건타월국은 마치 하늘의 제석천왕이 사는 궁전인 듯하며 왕자가 서쪽 지방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햇빛이 구름을 뚫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왕께서는 일어나셔서 내전으로 드시어 정무에 임하소서. 모든 신하들이 모여서 대왕님을 뵙고자 하나이다. 정용은 이로써 왕으로 하여금 생각을 다른 곳에 두도록 하니 무서운 재앙이 자신의 몸에 미치리라는 두려움이 가라앉지를 않았네.
왕은 다시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더니 문득 소스라쳐 일어나 들려오는 소리를 자세히 살피었네.
좌우를 둘러보며 말하기를,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나의 아들이 이곳에 온 것이다.
왕은 곧 정용을 꾸짖어 물리치더니 여러 말 필요 없이 속히 이 사람을 데려와 나에게 보여 주도록 하라.
신하를 보내어 불러오게 하니 왕이 있는 곳으로 함께 오는데 왕이 멀리서 왕자를 알아보고는 땅바닥 위에 몸을 던졌네.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원망하다가 생각이 일시에 뒤엉켜 버렸으니 창백한 모습으로 비통에 젖어 마치 불에 덴 듯 하였네. 여러 신하들이 물을 뿌린 다음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고는 왕관과 의관을 바로잡아 주니 왕이 물어 말하였네.
누가 내 아들의 눈을 못 쓰게 하여 이토록 괴롭게 한단 말인가? 나의 심장과 간을 도려내는 듯하니 다시 원래의 눈으로 되돌려 놓아라.
전에는 천신의 눈[天眼)같더니 이제 이처럼 끔찍한 재앙을 만나다니 아육왕은 슬픔에 목이 메 숨이 넘어가 잠시 죽은 듯하다가 다시 살아났네.
다시 왕관을 집어 땅바닥에 내던지고 머리를 산발하여 대왕의 위엄을 내던져 버렸네.
보배로 만든 목걸이는 여기저기에 흩어졌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좌우에 외쳤네.
나는 이제 반드시 천하를 멸하리니 늙은이든 젊은이든 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리라. 석실성에 사는 자들은 모조리 씹어 먹고 모든 백성들은 똑같이 눈을 빼내리라.
건타월국을 황무지로 만들 것이니 이들은 내 자식의 청정한 눈을 못쓰게 만든 일에 관련된 자들이다.
또한 반드시 이렇게 해치리니 내가 거하고 있는 이 나라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묻지 않고 모두 눈을 빼내리라.
그리하여 쇠바퀴 살에 던져 넣고 공중에서 빙빙 돌려 염부주 안의 형체를 가진 모든 것을 죽이리라.
부왕은 눈물을 흘리며 왕자에게 묻기를, 누가 너의 눈을 못 쓰게 하여 이 지경이 되었느냐?
내 심장과 간장을 마디마디 잘라 내는 듯하구나. 이 광경을 지켜 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애통해 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네. 왕자가 이윽고 대답하기를, 칙서가 왕궁으로부터 오니 영이 엄정하고 절실하여 놀라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원컨대 부왕께서는 석실성의 사람들을 원망하지 마옵소서. 그 사람들은 어질고 화목하여 아무런 허물도 없습니다.
단지 이 몸이 복이 적어서 이러한 재앙을 자초했을 뿐이니 이 모두가 전생에서 비롯한 선하지 않은 업의 과보입니다.
당시 석실성의 신하들은 칙서를 보고 모두가 분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육왕은 어찌하여 이처럼 어질지 못한 일을 저질렀을까?
염부제 땅은 참으로 무자비하구나. 어떻게 이 왕자를 해치려는 그런 마음을 낸단 말인가?
우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나라 안에 고하여 전쟁에 쓸 장비를 단단히 갖추도록 하자. 차라리 이 나라를 잃고 형벌을 받을지언정 왕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치욕을 받게 할 순 없다.
칙서를 불태우고 사신을 죽인 다음 석실성 안에 급히 북을 울려 알리자.
그는 우리의 왕이 아니고 우리는 그의 신하가 아니니 참으로 왕자의 눈을 감히 못쓰게 할 수는 없다.
제가 그곳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며 말하기를, 부왕의 영을 거역하는 그런 생각을 품지 말라.
어찌 부왕에 대해 반역하는 마음을 내리오. 옛날부터 지금까지 흥하고 쇠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오.
곧바로 존엄하신 명을 수행하여 엄교(嚴敎)를 따라야 할 것이니 머뭇거리고 지체하여 칙서의 명을 거역할 순 없다 하였습니다.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어리석어 참과 거짓을 알지 못하고 한 일이니 원컨대 부왕께서는 용서하는 마음을 베푸시어 분노가 미치지 않도록 하소서.
대왕께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의 말씀을 헤아리소서. 인욕은 큰 힘이 있어 능히 온갖 원망을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즉시 분노를 떨쳐 내고 저들의 허물을 파헤치지 마옵시며, 저의 눈 때문에 살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진 마옵소서.
지옥의 고통을 주고 짓밟아 쓰라린 고초를 주면 그 죄의 과보를 고스란히 받게 되니 이 아들이 바로 그러했음을 되뇌소서.
만일 백성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며 본원(本願)을 헤아리는 분이시라면 어찌 자식의 몸을 빙자하여 백성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온 국토의 남녀와 모든 백성들이 한결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원컨대 이제 관대하게 용서하소서. 바로 그 때 왕자를 가르쳤던 스승은 많은 비구들을 거느리고 성에 들어와 걸식하고 있었네.
손에는 발우를 들고 가사를 바로 여미고 나란히 서서 점차 왕궁 문에 가까이 다가왔네.
아육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흥건히 흘리며 바로 일어나 앞에 나가 맞이하고는 무릎을 꿇어 예를 올리면서 물었네.
지난날 존자(尊者)의 제자였던 법익 왕자가 이제 재앙을 맞아 두 눈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그 슬픔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어 애절함을 이겨내기가 어려우니 원컨대 존자께서는 살피시어 법의 약으로 치료해 주십시오.
그 아라한이 대답하기를, 모든 것이 무상하여 백 번을 변화하니 이것은 옛날의 일에서 유래하였지 현재에 갑자기 닥친 일은 아닙니다. 거느린 비구들을 살펴보고는 곧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왕에게 말하기를, 사람을 불러 법익을 이리 오도록 하십시오.
부왕이 몸소 안으로 들어가 손을 잡고 인도해 나오니 지켜보던 몇 만이나 되는 사람들 모두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 없었네.
왕자는 존자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강물과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슬픔과 분노로 목이 맨 채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말하였네.
옛날에 스승님께서는 제게 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눈이란 무상하며 또한 견고하지 않다.
이 뜻을 사유하길 깊고 그윽이 하여야 하니 육신의 눈은 더럽고 탁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마치 물거품과 같으며 햇빛에 빛나는 이슬과 같으며 물 위에 뜬 거품과 같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고 태양의 움직임과 같다. 속 빈 파초 둥치와 같으며 봄날 아지랑이와 같아 허깨비처럼 진실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이라면 버려야 할 것이요, 어찌 욕심을 낼 것인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육왕은 존자의 앞에 무릎 꿇고 말하기를, 원컨대 지극한 도리를 설해 주시어 다시 한번 진리를 볼 수 있게 하소서.
이 슬픔과 분노를 모두 씻어 내어 맑고 고요하게 하시고 헤매고 떠도는 무리들로 하여금 진리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존귀한 가르침을 사유하여 평안히 무위(無爲)에 머물러서 장차 돌아오는 세상에서는 전생의 업의 근원을 알도록 해 주십시오.
아라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왕자에게로 가서 하얀 빛깔의 보자기를 집어 법익의 머리에 씌웠네.
왕자의 친어머니인 월광(月光) 부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꿇어앉았네. 몸소 향로를 들고는 온 사방 여러 나라의 방향과 경계를 향하여 온갖 이름난 향을 살라 올렸네.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과 존귀하고 힘센 귀신들의 왕이시여, 빠짐없이 이곳으로 모이셔서 지성으로 서원하는 것을 증명하옵소서.
우리 법익 왕자의 두 눈을 되찾게 하고자 하니 모든 신들께서는 증명하시어, 이 지극한 정성에 감응하옵소서.
여덟 부류의 귀신들이 즉시 메아리처럼 응하여 사방에서 모여드니 허공에 빈틈이 없었네.
다시 왕자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진심으로 원을 세워 부처님과 법과 존경하는 스승님께 귀의하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과 이제 여기에 온 모든 이들에게도 스스로 목숨을 다해 귀의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켜라. 모든 현인들께서는 저의 진실한 서원을 들으시고 두 눈을 바꾸어 집착함이 없는 청정한 눈을 얻게 하소서.
저는 득도 이후로 끝내 먼저 밥을 먹지 않았고 반드시 다른 사람을 앞서 제도하고 그 다음에 밥을 먹었습니다.
기억하건대 저는 옛날에 모든 부처님들을 받들어 섬겼으니 식(式)부처님과 유위(維衛)부처님과 비사(毘舍)부처님이십니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고운 무늬의 비단으로 만든 꽃 일산(日傘)과 춤과 음악으로 공양을 드렸습니다.
또한 등불을 밝혀 존귀한 광명을 이어가도록 했으니 이러한 덕을 인연으로 하여 다시 눈을 돌려주십시오.
옛날에 식(式)부처님께도 이런 서원을 발하였으니 눈 없는 모든 이들을 내 마땅히 치료하리라. 두 눈을 되찾게 하여 전과 다름이 없도록 하리라. 만일 저의 서원이 이루어졌다면 눈이 다시 청정해지도록 하옵소서.
살펴보니 왕자는 또한 과거의 5백 생 동안 나의 자식이었으니 이는 사실이고 헛된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이번의 육신을 끝으로 다시는 인간의 육신을 받지 않을 것이니 원컨대 왕자로 하여금 저와 다름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아육왕에게 고하기를, 왕께서는 기억하십시오. 옛날에 왕께서는 한 줌의 흙을 여래께 공양하였습니다.
이것이 복전이 되어 염부제를 얻어 홀로 철륜(鐵輪)으로 누비어도 당할 무리들이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지성으로 서원을 발하시어, 그 복이 왕자에게 미쳐서 눈을 얻도록 하소서. 이 때 존자는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열여덟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자유자재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였네.
왕이 그것을 보더니 두 손을 모은 채 무릎 꿇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땅바닥에 엎드려 말하였네.
목숨을 다하여 귀의하오니 우리의 존귀하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많은 복을 제게 주시어 염부제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곧 여래께서는 제게 특별히 수기하시기를, 내가 떠나고 100년 뒤에 어떤 왕이 나오리라.
그는 염부제 땅 곳곳마다 가득히 8만 4천의 여래를 모신 탑을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신령스러운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제 그대로 이루어져 온 나라 안에 걸쳐 널리 복된 불사를 일으키고 염부제를 다스려 홀로 자유롭게 누비게 되었으니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다면 청정한 눈을 얻게 하옵소서.
지난날 부처님 전에 복의 씨앗을 뿌리고 나라 안의 여러 수행자와 도인들과 3보를 존경하여 받들었으며
가난하고 배고픈 모든 나형 외도(裸形外道)들에게 보시를 베풀었으니 이러한 복업을 왕자에게 베풀어 주옵소서.
이 때에 왕은 옛날에 나라 안의 여러 마을을 두루 살피다가 뭇 산을 지나 철위산(鐵圍山) 밖에 당도했던 일을 떠올렸네.
밑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데 우레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메아리가 애절하였으니 아주 슬프고 괴로운 소리였네.
왕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는데 그러다가 염라대왕을 보니 신하와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 죄의 원인과 범행 내용을 심문한 다음 신속히 결단을 내려 죄에 따라 다스리되 더도 덜도 아닌 공평한 마음이었네.
열여덟 지옥에는 뜨거운 불꽃이 용솟음치고 열여섯 칸의 방이 하나의 가마솥을 둘러싸고 있었네.
칼의 산과 검(劍)의 숲과 불의 수레와 화로 안의 숯불에 죄인들이 울부짖으니 쓰라린 고통이 만 가지나 되네.
왕이 좌우에게 묻기를, 이는 어떤 사람인가? 신하들이 답하기를, 죽은 이들의 왕입니다.
이 왕은 선악을 판별하고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조사하며 허물을 찾아내고 현명한 자인지 어리석은 자인지를 가려냅니다.
이 때 아육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고하기를, 죽음의 왕도 오히려 지옥을 만들고 다스리는구나. 나는 지금 살아 있는 백성의 왕이니 어찌 또한 지옥을 다스리지 못하겠느냐?
다시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이 사람과 같이 극악 흉포하여 지옥을 다스릴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여러 신하들이 답하기를, 다른 선택은 없고 오직 5역(逆) 죄인만이 지옥을 만들 수 있을 뿐입니다.
노랑머리에 붉은 눈 말려 올라간 눈썹에 볼록 솟은 뺨 위로 불거진 이마에 납작코만이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기를, 이와 같은 생김새의 악인을 두루 수소문하여 속히 와서 알리도록 하라.
신하들은 즉시 온 나라 안의 마을로 급히 달려 나갔고 어떤 연못가에서 그물을 짜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네. 옆에는 날아가는 새를 향해 활을 준비해 놓고 앞에는 새떼를 잡으려고 독을 바른 먹이를 뿌려 놓았네.
발밑에는 낚시를 드리워 연못의 고기를 낚으려 하고 뒤에는 올가미를 놓아 가만히 노루와 사슴을 노리고 있었네.
입으로는 새소리를 내어 날짐승과 들짐승을 유인하고 있었으니 모든 신하들이 그 사람을 보고는 자신들이 찾는 사람과 같음을 알았네.
신하들은 돌아와 그 상황을 왕에게 사실대로 알렸으니 악인을 찾으러 다니던 정성이 이와 같았네.
왕은 말하기를, 훌륭하구나. 과연 내가 원하던 사람이니 이 사람을 데려와 반드시 지옥의 일을 맡기리라.
왕은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나는 그대를 만나서 진귀한 보배를 많이 주고자 하니 내 뜻에 따라 주기를 바란다. 악인이 대답하기를,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며 아는 것도 없는데 왕께서는 저를 어디에 쓰고자 하십니까?
사신이 다시 대답하기를, 그대는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그대의 육신을 얻어 지옥의 일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다.
악인이 기뻐하면서 즉시 집으로 돌아가 사정을 상세하게 부모에게 말씀드렸네.
부모들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서로 아들을 끌어안고 가도록 놓아주지 않았네.
아들은 화가 잔뜩 나서 바로 날카로운 칼을 빼어 들고 부모를 베어 죽인 다음 이들을 버리고 길을 떠났네.
왕이 있는 곳으로 와서 무릎 꿇고 절하여 문안을 올리고는 읍하는 자세로 공손히 물러나 한쪽 편에 섰네. 왕이 악인에게 묻기를, 그대에게는 부모가 있어 보살펴 모실 사람이 없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었느냐?
악인이 스스로 말하기를, 부모가 완강히 가로막기에 칼로 베어 죽인 다음 버려두고 왔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참으로 고약하구나. 이야말로 진짜 5역 죄인이니 부모까지 죽였는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기겠느냐?
즉시 이 사람에게 맡기어 지옥성을 만들었으니 물이 끓는 솥과 검의 숲이 있고 쇳물을 부어 높이 담을 둘러 쳤네.
이 사람을 시켜 지옥의 주인으로 삼고 여러 신하들을 세워 각기 그 직책을 주었네.
염라대왕이 그러하듯 옥졸들에게 영을 내리기를, 지옥에 들어온 자는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라. 귀하고 천한 이나 부자거나 존경받는 이나 일단 그 죄를 다스리는 데에는 어느 누구라도 잘잘못을 참견하지 못하게 하라.
설령 나 자신이 이곳에 들어왔다 해도 역시 내보내 달라는 말을 듣지 말고 무거운 법을 적용하도록 하라.
성의 둘러싼 주변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과일 나무를 심고 정원의 경치를 잘 다듬도록 하니 마치 하늘의 궁전과 같은 모양이었네.
그 때 마침 나는 혼자 걸으며 두타행(頭陀行)을 하고 걸식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다가 이 지옥 성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네.
향기로운 꽃들과 무성한 나무들을 밖에서 보고 이곳을 부자로서 훌륭하고 존귀한 사람이 사는 집으로 생각하였네.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 걸식을 하려는데 정작 죄인을 다스리는 장면을 보고는 소스라쳐 놀라 되돌아 나오려 하였네. 옥졸이 앞에서 잡고는 보내달라는 말은 안 듣고 물이 끓고 있는 솥으로 데려가 다섯 가지 고통을 주려고 하였네.
내가 다시 빌면서 말하기를, 관용을 조금만 베푸시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만 기다려 준다면 은혜를 입음이 한량없을 것입니다.
도를 배운 지도 얼마 안 되고 또한 부처님 말씀을 널리 암송하지도 못했으니 원컨대 시방의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일을 허락해 주십시오.
악인은 말없이 허락하고 해가 중천에 뜰 때를 기약하였는데 그렇게 말하고 얼마 안 있어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잡혀왔네.
음란한 죄를 범한 일로 잡혀와 죄상을 밝힌 다음 절구통 안에 넣고 절구공이로 짓찧었네.
잠깐 사이에 가루로 변했으니 그 때 나는 이것을 보고 오직 부처님 말씀만을 생각하였네. 몸은 물거품과 같다 하셨으니 참으로 진실하구나, 그 말씀이여. 태를 가르고 몸을 받았으면 반드시 이처럼 되는 일이 있구나.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성인을 만나더라도 누가 이 고통을 면할 것인가? 나는 이제 반드시 예사롭지 않은 그 뜻을 헤아리리라.
아홉 가지 번뇌를 분별해 보니 이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고 또한 금방 변하는 것으로 흰 비둘기 빛깔의 뼈가 되리라.
모양을 가진 이 육신은 이전에 죽은 사람들의 뼈가 모인 것으로 갖가지 모양으로 변화한 것이 한 번만이 아니니 마치 허깨비 같고 요술 같구나.
그 즉시 깊은 뜻을 깨달아 번뇌를 여의고 속박을 벗어나 기쁜 마음이 안에 가득하고 밖으로 기운이 흘러 넘쳤네.
통쾌하구나, 복의 과보를 얻어 삶과 죽음을 벗어났으니 마음속 생각은 고요하며 뜻은 금강(金剛)과 같도다. 하늘과 땅이 불꽃 속에서 한몸으로 뒤엉켜 녹아내리고 온 하늘에 불꽃이 가득하다 한들 어찌 나를 불태울 수 있으랴?
옥졸이 다시 재촉하여 물이 끓는 솥 안으로 들어갈 때 나는 한껏 웃으며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었네.
옥졸은 화를 내면서 사람 넷을 보내 각기 사지를 붙잡고 솥 안에 거꾸로 집어넣었네.
뜨겁던 물은 식고 불은 꺼져서 아주 시원하게 변했으며 볼기를 치던 옥졸들도 모두 가만히 쉬었네.
그 즉시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을 요술로 만들어 그 연꽃 가운데에 결가부좌하고 앉았네.
앉고 눕고 솟았다 사라졌다 하는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리며 혹은 허공을 날거나 땅 속 일곱 길 깊은 곳을 오가기도 하였네. 옥졸이 보고 놀라 아육왕에게 고하기를, 옥 안에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입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잠시 납시어 니리성(泥犁城)에 오셔서 불길하고 해괴하며 매우 이상한 이 일을 직접 보옵소서.
왕이 악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저번에 약속하기를 설령 내가 그곳에 들어가더라도 역시 나올 수가 없다고 하였다.
전륜왕은 두 가지로 말하지 않거늘 이제 어찌 내가 다시 이 문으로 들어가겠느냐?
악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들어오셔도 고통이 없도록 오늘 하루만 허락하고 이후로는 다시 제한하겠습니다.
왕이 즉시 따라 들어가 솥 안에 있는 사람을 보니 연꽃 위에 앉아 결가부좌를 하고 있네. 왕이 멀리서 묻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냐? 내가 답하기를, 나는 비구입니다.
왕이 다시 묻기를, 너는 지금 옥 안에 있으니 마땅히 죄인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어찌 비구라고 하느냐?
그 때 내가 말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오. 성인께서 주신 은혜를 입고 그대는 남천하(南天下)의 왕이 되었소.
영겁의 세월에 걸쳐 공을 쌓아 비로소 그 과보를 얻게 되었거늘 이제 다시 성인을 비방하여 죄인이라 부르다니.
왕이 다시 도인에게 묻기를, 너는 어떤 까닭으로 전륜왕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감히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르느냐?
이 때 내가 고하기를, 그대는 어린아이였을 때 한 줌의 흙을 여래께 받들어 올렸소. 이 일로 부처님으로부터 축원을 받았고 다시 가섭사(迦葉寺)에 가서 물과 진흙을 섞어 절의 남쪽 벽을 보수하였소.
부처님께서 수기하시길, 너는 뒤에 반드시 남쪽 염부제의 전륜왕이 될 것이며 이름을 아육이라 할 것이다.
너는 하루만에 8만 4천의, 여래의 유골을 모신 탑을 일으켜 세우리라.
왕이 만든 이 지옥성도 부처님의 탑이란 말이오? 이는 오히려 화를 자초하여 다시 한량없는 죄를 짓는 일이오.
정신이 뒤바뀌고 무지한 마음에 휩싸이며 어리석은 중에도 가장 어리석다 할지라도 지금 왕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오.
어떤 사람은 미혹에 집착하여 죽을 때까지 이를 고치지 않으니 이제 그대를 어리석다고 이른 것이 어찌 잘못된 말이겠소? 왕은 즉시 잘못을 깨닫고 오체투지의 예로 서둘러 스스로 참회한 다음 즉시 나를 받들어 공경하였네.
곧바로 지옥성을 부수고 선(善)의 근본을 일으켜 세워 생하거나 멸함이 없는 열반의 가르침을 구하였네.
전생에 심은 한 움큼 흙의 공덕으로 이제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부처님 복전(福田)에서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겠습니다.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3보를 받들어 모시도록 할 것이니 이러한 복을 살피어 법익이 눈을 얻도록 해 주십시오.
왕과 존자가 지성으로 서원을 발하자 바로 앉은 자리에서 법익의 눈이 완전히 갖춰졌네.
하늘의 모든 신들과 아수라와 온갖 귀신의 왕들이 한결같이 훌륭하다고 찬탄하였고 전에 없던 일이라며 감탄하였네.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감응에 곧 앞으로 나아가 얼굴을 덮은 천을 벗겨내고 법익의 두 눈을 살펴보았네.
왕과 부인이 멀리서 법익을 바라보니 생김새가 훌륭하여 세상에 드문 모습이네.
이 때 하늘과 땅도 여섯 가지 모양으로 진동하고 산과 강과 바위들도 높이 솟았다 가라앉았다 하였네.
마음속에 차오르는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왕은 스스로 무릎 꿇고 존자에게 말씀드렸네.
존자께서는 마치 살아 계신 부처님처럼 사람들에게 눈을 베풀어 주시니 그 복의 위신력에 힘입어 저의 자식에게 다시 청정한 눈이 생겼습니다.
왕은 이와 같이 놀라운 조화를 보고 말을 다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람은 반드시 하늘의 신이 나를 속이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였네. 자신의 보배관을 벗어 법익에게 주고는 전륜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염부제를 다스리게 하였네.
왕자가 그 앞에 무릎 꿇고 부왕에게 말하기를, 저는 감히 존위(尊位)를 이을 만한 위엄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부왕이 고하기를, 그대의 행적을 살피건대 그대는 바로 하늘의 신이니 모든 점이 다 그러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다.
그대가 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니 그대는 마땅히 왕위를 받으라. 내 마땅히 신하로서 그대를 보좌하리라.
속히 나의 말을 따라 이 보관을 받을 것이며 어려울 것이라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는 생각을 내도록 하라.
존자도 다시 말하기를, 왕자께서는 마땅히 이 천관(天冠)을 받아 위용을 갖추시고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십시오. 왕자께서는 전생에 본래 왕으로서 6만 년을 지내셨으니 이제 이 6년은 보잘 것 없이 작은 숫자입니다.
아육왕이 궁금해 하면서 존자에게 묻기를, 원컨대 전생의 인연을 설해 주시어 저의 어리석은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왕자는 전생에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높고 존귀하게 되었고 또 나의 아들로 태어나서는 청정하고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또한 중간에 눈을 상하게 되었다가 이제 다시 완전한 눈을 얻게 되었으니 대체 어떤 인연을 지었기에 존자를 만나게 되었습니까?
존자의 인도를 따라 법의 눈을 뜨고 지금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모든 번뇌의 티끌을 멸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도를 이루어 영원히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원컨대 전생에 행했던 그대로를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가 왕에게 고하기를,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듣고 전생의 인연을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91겁(劫) 전의 과거 세상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그 명호는 유위(維衛)여래입니다.
그 때 왕자께서는 저의 아들이었는데 산수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저는 7일마다 그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고 왕자는 여래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곧 형상으로써 여래의 뛰어남을 널리 알렸으니 여래께서도 훌륭하다고 칭찬하시면서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곧 왕자는 그 부처님께 믿는 마음을 내어 서원하기를, 다시 태어날 때에는 3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항상 모습이 단정하고 눈이 총명하며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고 비천한 곳에는 태어나지 않게 하소서.
여자로 태어날 때는 항상 사랑스럽고 존경스럽게 보이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땅바닥에 엎드려 내게 절을 올리도록 하소서.
그 뒤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식(式)여래인데 모든 비구들을 데리고 청명성(淸明城)에 오셨을 때 저는 장자(長者)였고 왕자는 저의 아들로서 함께 공양을 올리고 식(式)여래를 받들어 모셨습니다.
그 다음의 부처님 이름은 수섭(隨葉)여래인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 때도 역시 나의 아들인 왕자가 소원하여 등불을 들고 7일 낮 7일 밤 동안 광명이 꺼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왕자는 이 복의 도움에 힘입어 길이 고뇌를 여의고 태어나는 곳마다 청정한 천안(天眼)을 얻었습니다.
현겁(賢劫) 중에 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명호는 구손나(拘孫那)이시고 제도해 준 이들은 한량이 없었습니다.
32상(相)을 갖추고 몸빛은 순수한 금색이며 도수(道樹: 보리수) 아래에 앉아 마군의 원성을 항복받으셨습니다.
66년 동안 한 달에 6일, 일 년에 3달씩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켜 처음부터 아무런 실수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한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구나함존(拘那含尊)이시고 세상을 밝게 비춰 주시니 마치 가득 차오른 달과 같았습니다.
그 때 나는 역시 장자의 몸이었고 왕자는 나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아라한의 경지를 얻은 어떤 비구가 차례대로 걸식을 하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작은며느리가 입을 옷과 음식과 누워 자는 침상과 약품을 그 비구에게 공양하였습니다.
왕자는 성이 나서 가만히 아내에게 말하기를, 어찌해서 너는 지금 저 사람과 내통하느냐?
내 반드시 저 비구의 눈을 못 쓰게 할 것이다. 웬 거지같은 놈이 남의 마누라를 넘보다니.
그 다음에 어떤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가섭(迦葉)이며, 여러 가지 훌륭한 모습을 갖추고 이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나는 그 때도 역시 큰 부자로서 많은 은혜를 널리 베풀어 그 이름이 사방에서 널리 칭송되었습니다. 다시 왕자를 아들의 인연으로 만났는데 날 때부터 두 눈이 없었으니 이는 전생의 업에 의한 괴로운 과보로 이러한 재앙을 당한 것입니다.
법익 왕자는 부처님의 형상을 그려 모신 인연으로 지금 그 과보를 얻어 날 때부터 왕의 핏줄을 받고 비할 바 없이 뛰어난 용모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또한 꿰뚫어 보는 눈을 갖추어 여느 사람들 가운데 홀로 우뚝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이 즐거워지고 그 위의에 굴복하지 않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전생에 보살[眞人] 아라한을 비방하였고 자신의 아내와 관계 지워 그의 눈을 못 쓰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전생의 이러한 악행으로 이제 두 눈을 못 쓰게 되었던 것이니 선이든 악이든 그 과보는 끝내 썩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당시 나는 가섭부처님과 여러 비구들을 초청하여 7일 동안 공양을 올리고 아울러 다른 물건들도 보시하였습니다.
아들도 역시 7일 낮 7일 밤 동안 여래와 다른 거룩한 스님들을 받들어 모셨습니다.
양손에 등불을 든 채 모양을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매일 세 번씩 참회하고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습니다.
제가 본래 지은 몸과 입과 생각의 업[行]은 이제 모두 그 허물을 고치고 부지런히 금계(禁戒)를 닦겠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다시 이와 같이 거룩하신 부처님을 뵙게 된다면 원컨대 비천한 저로 하여금 다시 받들어 모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 만남에서 고통을 다하고 아버지와 함께 아라한이 되도록 하소서.
일찍이 유위 여래 앞에 7일 동안 등불을 켜고 복을 구하고자 발원하여 천안을 얻었으며, 이제 비록 육신의 눈마저 못쓰게 되었으나 이 인연으로 즉시 천안의 과보를 얻게 된 것입니다.
가섭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한 시기를 만나 발원하기를, 원컨대 다시 태어날 때는 청정한 눈을 얻게 하소서.
또다시 때때로 굳건한 서원을 세우기를, 아버지와 제가 함께 동시에 도를 이루게 하소서.
6년 동안 나라를 정법으로 다스리고 그 기한을 마치면 문득 번뇌를 다하도록 하소서.
왕이 이 말을 듣고 선한 마음이 생겨나 즉시 앞에 무릎을 꿇고 땅 위에 엎드려 말하였네.
존자께서는 이제 청정하시어 모든 번뇌의 때에 집착함이 없고 현명하고 거룩한 법에 따라 열반에 평안히 머무르고 계시는군요. 그 후 새로운 왕 법익이 염부제를 다스리니 도적도 없고 백성을 얕보고 빼앗는 자도 없었네.
질병도 없고 도를 그르치는 행위도 없으며 널리 자비심이 행해져 서로가 화목한 얼굴로 바라보았네.
그 때 법익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고하기를, 그대들이 효성스럽고 양순하여 간사한 마음을 품지 않고
죽이고 도적질하는 마음을 일으켜 좋지 않은 과보를 당하지 않으며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 술을 입에 대지 않고 항상 불법을 따라 바른 가르침을 어기지 않으면 문득 도의 자취를 이룰 것이다.
그 때 법익왕이 나라를 잘 다스린 지 6년이 지나자 무릎 꿇고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부왕에게 말하였네.
저는 부왕의 명을 받고 감히 어기지 않았으니 이제 출가하여 청정한 행을 닦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왕이 즉시 출가하여 배우도록 허락하니 법익은 부모의 발에 예를 올린 다음 물러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네.
존자에게로 가서 스스로 말하여 여쭙기를, 원컨대 스승님께서는 허락하시어 제가 도(道)의 길에 있도록 해 주십시오.
존자가 온화한 얼굴로 고하여 말하기를, 잘 왔구나, 보살[眞子]이여. 부지런히 청정한 행을 닦으라.
그대는 금생(今生)의 몸으로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으리니 게으른 생각을 품어 다시 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머리털과 수염을 깎고 생각을 하나로 모으니 널리 땅이 진동하고 하늘에서 온갖 꽃이 비처럼 내렸네. 바로 이어서 구족계를 받으니 보살의 법 가운데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네.
존자는 점차 가르쳐 나아가면서 바른 도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눈이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니 반드시 깊이 사유하라.
이 5음(陰)을 관찰하기를, 있다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짓는 자도 지은 바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고 관찰하라.
그것은 모두 공(空)한 것임을 알아야 하니 어리석은 자는 머리털과 몸뚱이와 손톱과 이빨 등에 깊이 집착한다.
피와 골수와 창자와 위장 등은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 육신은 청정하지 않고 또한 견고하지도 않다.
너는 유위법(有爲法)을 마땅히 깊이 사유하라. 이 5음의 형상은 허깨비처럼 나타나 헛되고 거짓되다. 이로 인하여 흐름이 막혀서 해탈을 얻지 못하는데 이제 너는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하여 해탈의 성(城)에 이르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것에 어찌 헛됨이 있으리오. 길이 무위(無爲)를 즐기어 그 마음을 맑고 깨끗하며 고요하게 하라.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과거의 어떤 부처님께서도 중생 깨우치기를 어려워 하셨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 평안하고 아늑한 곳에 이르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기약하라.
이와 같이 존자가 법익을 가르쳤으니 법익은 밤낮없이 수행하며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네.
이 5음을 관찰하기를 마치 몸에 붙은 불을 끄듯이 부지런히 하였으니 즉시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 다시는 물러서지 않았네. 존자가 거듭 고하기를,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은 도와 무관한 일이나 세속의 번잡한 일은 하지 말라.
원래 천인(天人)들조차도 삶과 죽음을 유랑하며 윤회의 강을 떠다니다가 다섯 곳의 세상 가운데로 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결국 이곳에도 태어나게 되는데 이 모두는 인연에 의한 것이니 인연에 따른 사람의 종류를 이제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걸어 다니다가 잘 넘어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홀린 듯이 바라보며 항상 히죽거리고 잘 기억하지 못하며 움직임이 경망스럽고 넓은 들판을 떠돌아다닌다면 이 사람은 바로 활(活)지옥에서 온 것이다.
몸의 마디마디가 타는 듯이 아프고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며 흉악한 꿈에 놀라 깬다면 흑승(黑繩)지옥에서 온 것이다.
거친 머릿결에 사나운 눈 뻐드렁니에다 성도 잘 내며 쉰 목소리에 성질이 사납고 급하면 합회(合會)지옥에서 온 것이다.
말소리가 높고 크며 부끄러운 줄 모르며 싸우면서 소리 지르기를 즐기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며 누워 자면서 신음 소리를 내고 꿈꾸면서 자주 놀라 소리를 지르면 반드시 알기를, 이 사람은 제곡(啼哭)지옥에서 온 것이다.
항상 슬피 울기를 좋아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며 가족들과 싸우기를 즐기고 친소(親疎)가 없으며
말하다가 갑자기 성을 내며 자고 나서 먹지 않으면 이 사람은 본래 대제곡(大啼哭)지옥에서 온 것이다.
키는 크고 다리는 가늘며 힘줄이 빈약하고 말할 때 목이 메어 소리가 마치 옹기 깨지는 듯하며
정신이 불안정하고 마음이 효성스럽고 양순하지 않으면 반드시 알기를, 이 사람은 아비(阿鼻)지옥에서 온 것이다.
신체가 거칠고 추하며 추위 견디기를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더운 것과 물기 없는 것을 좋아하며 인색하고 탐욕스럽고 질투가 많으며 사람을 보면 은혜를 베풀고는 스스로 후회하고 번뇌하면 이 사람은 열(熱)지옥에서 온 것이다.
불을 보면 무서워 놀라면서도 평소 따뜻하고 뜨거운 것을 좋아하며 발걸음이 가볍고 빠르며 일을 피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며
일을 해놓고는 후회하다가 다시 일을 시도한다면 이 사람은 대열(大熱)지옥에서 온 것이다.
잠을 적게 자고 성을 잘 내며 받은 것을 잘 잃으며 무엇을 만들어도 작고 좁게 만들며 마음이 넓고 크지 않으며
큰 것을 보면 무서워하고 작은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이 사람은 우발(優鉢)지옥에서 온 것이다.
붉은 눈에 추한 모습이며 항상 소송하기를 좋아하며 성현을 비방하고 도를 얻은 이들을 헐뜯으며 밤낮으로 사람들을 엿보기를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나 않나 하고 살핀다면 반드시 알기를, 이 사람은 발두(鉢頭)지옥에서 온 것이다.
눈이 도끼눈이며 부모에게 불효하며 태어나 단명하면 구모(拘牟)지옥에서 온 것이다.
칼을 가지고 다니기를 좋아하며 억지를 부려 사람들과 싸우다가는 반드시 사람에게 살해당하니 빈지(邠持)지옥에서 온 것이다.
날 때부터 몸에 부스럼이 있으며 입에서 냄새가 나서 사람들과 친하지 못하면 광(曠)지옥에서 온 것이다.
모습은 장대하나 걸음은 유약하며 머리카락이 성글고 피부가 엷으며 항상 병으로 아파하며
사람을 보면 성을 내며 음식을 탐하여 싫어하지 않으면 반드시 알기를, 이 사람은 염(炎)지옥에서 온 것이다.
몸은 희고 눈은 푸르며 말을 하면 곧 입가에 거품이 일고 말에 매듭이 없으며 마른 흙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며
깊은 진흙 구렁을 보고 그 위에 벌렁 누우면 이 사람은 회(灰)지옥에서 온 것이다.. 눈이 노랗고 머리가 울퉁불퉁하여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며 일에 닥쳐 당황하고 두려워하면 검수(劍樹)지옥에서 온 것이다.
손에 항상 칼을 들며 싸움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기뻐하며 칼날에 다치게 되면 도(刀)지옥에서 온 것이다.
몸빛이 검고 온전치 않으며 어두운 방에 있기를 좋아하며 욕을 잘하면 열회(熱灰)지옥에서 온 것이다.
힘이 없고 기가 약하여 자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어야 할지 한번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며 설사 가축을 죽이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그 곁을 떠나지 않으면 반드시 알기를, 이 사람은 박(剝)지옥에서 온 것이다.
수시로 성을 내고 바로 잘못을 알아 후회하며 그때그때 사죄해 놓고는 하룻밤도 지나지 않으며
마치 죄인에게 벌을 가하듯이 자신을 몹시 책망하면 이 사람은 국(鞠)지옥에서 온 것이다.
누추한 곳에서 자기를 좋아하고 거칠고 상한 음식을 즐겨 먹으며 누추한 옷을 입으면 시(屎)지옥에서 온 것이다.
얼굴 생김새가 추악하며 말투가 거칠고 사나우며 사람을 헐뜯어 싸우기를 좋아하면 선향(善香)지옥에서 온 것이다.
이와 같으니 반드시 그 용모와 어느 지옥에서 왔는지를 살펴서 마치 겁화(劫火)를 피하듯 잘 알고 멀리하라.
다음은 축생에서 와서 그 받은 모양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말하리니 마음을 모아 잘 살펴서 그러한 인연을 짓지 않도록 하라.
말씨가 느리고 성을 내지 않으며 어른을 겸손히 공경하면 코끼리 중에서 온 것이다.
몸이 크고 지저분하며 추위와 배고픔을 잘 견디며 화를 내어 풀리기 힘들면 낙타 중에서 온 것이다.
먼 길을 잘 다니고 잘 먹으며 험난한 곳을 피하지 않으며 일을 잘 기억하고 진실을 가려내면 말 중에서 온 것이다. 온순하고 너그러우며 더위와 추위를 참고 걸으며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소 중에서 온 것이다.
큰 소리를 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여기저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으면 당나귀 중에서 온 것이다.
긴 송곳니에 두려움이 없고 항상 육식을 즐기며 많은 일거리를 어려워하지 않으면 사자 중에서 온 것이다.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며 넓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처자를 돌보지 않으면 호랑이 중에서 온 것이다.
털이 길고 눈은 작으며 성을 잘 안 내며 한곳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새 중에서 온 것이다.
그 성격에 반복하는 일이 없고 벌레를 죽이기 좋아하며 무덤 가에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 여우 중에서 온 것이다. 목소리가 작고 용맹하며 음욕이 없으며 처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리 중에서 온 것이다.
훌륭한 직책을 좋아하지 않고 가만히 살펴 범법자를 잡으며 잠을 적게 자고 성을 잘 내면 개 중에서 온 것이다.
키가 작고 털이 길며 많이 먹고 많이 자며 깨끗한 곳을 싫어하면 돼지 중에서 온 것이다.
털이 노랗고 포악하며 혼자 산에서 놀기를 좋아하고 꽃과 과일을 즐겨 먹으면 원숭이 중에서 온 것이다.
잘 잊고 뻔뻔스러우며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해보아 알면서도 다시 반복하면 까마귀 중에서 온 것이다.
정이 많고 색욕이 많으며 도리를 다하지 않으며 생각을 오래 담아 두지 않으면 비둘기 중에서 온 것이다. 행실이 어긋나고 사나우며 강하게 항변해도 그 욕됨을 참아내며 부모에게 불효하면 가마우지[鸕鳩] 중에서 온 것이다.
바른 법도 알지 못하고 바르지 않은 법도 알지 못하며 밤낮으로 어리석고 미혹하면 양 중에서 온 것이다.
음란함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즐기며 세력이 큰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으면 앵무새 중에서 온 것이다.
행동이 졸렬하고 포악하며 많은 사람들 속에 있기를 좋아하며 말이 많고 번잡스러우면 구관조 중에서 온 것이다.
발걸음이 느리고 생각에 규범이 있으며 생명 있는 것을 많이 해치면 학(鶴) 중에서 온 것이다.
몸이 작고 음란함을 좋아하며 생각이 차분하지 않고 이성을 보는 대로 마음이 흔들리면 참새 중에서 온 것이다. 눈이 붉고 이빨이 짧으며 말을 하면 곧 거품을 내고 눕기만 하면 몸을 휘감으면 살모사 중에서 온 것이다.
말하자마자 성부터 내어 상대의 뜻을 알아보지 않으며 입에서 뜨거운 기운[火毒]이 나오면 전갈 중에서 온 것이다.
혼자 있는 곳에서 욕심껏 먹으며 목소리가 사납게 울리고 밤에 잘 자지 않으면 고양이 중에서 온 것이다.
벽을 뚫어 도둑질하며 재물을 탐하고 두려움이 많으며 또한 사람들 사이에 멀고 가까움이 없으면 쥐 중에서 온 것이다.
이와 같으니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축생에서 왔는지 잘 살피라. 다음은 아귀(餓鬼)를 설하리니 마음을 모아 잘 들으라.
키가 크고 두려움이 많으며 머리카락이 몸을 감고 옷이 지저분하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입술이 마르고 코가 삐뚤며 몸빛이 노랗고 목구멍이 좁으며 다니면서 잘 넘어지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음란하고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남이 이익을 보면 샘을 내고 베풀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움직일 때마다 싸우고 소송하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지성스러움을 믿지 않으며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힘도 약하고 지혜가 적으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목소리가 일그러지고 울림이 없으며 갑자기 성을 내며 빨리 먹고 뜨거운 것을 좋아하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항상 재물이 궁핍하고 빈털터리에 누추하며 지혜로운 이에게 비웃음을 사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가족들이 부처님을 섬기지 않으며 설법 듣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영원히 하늘에 이르는 길이 끊어지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아내와 자식과 형제자매를 중히 여기지 않으며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으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나면서부터 맨 몸뚱이의 고아로서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으며 끝내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가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생각이 편협하고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행동이 지저분하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움직여도 얻는 것이 없으며 일을 해도 그르치기만 하기에 사람들에게 쫓겨나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일을 도모하다가 자주 실패하며 그럼에도 원인을 살피지 않고 사람들의 조언을 듣지 않으면 아귀 중에서 온 것이다. 깨끗한 곳을 좋아하지 않고 변소 안에 살기를 좋아하며 얼굴 모양이 지저분하면 풍신(風神) 중에서 온 것이다.
몸이 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항상 욕심껏 고기를 먹고 신사(神祠)에서 혼자 즐기면 열차(閱叉:야차) 중에서 온 것이다.
성내어 같이 싸우기를 좋아하며 물건을 보면 욕심을 내고 두려워 피하는 일이 없으면 열차 중에서 온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털이 곤두서고 마치 무엇을 잃은 듯이 바로 앞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면 나찰(羅刹) 중에서 온 것이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피부가 엷으며 안색이 즐겁고 흥겨운 표정이며 음악을 듣고 환희하면 건답화(乾畓和:건달바) 중에서 온 것이다.
아름답고 경쾌한 것을 생각하며 향을 스스로 바르고 온갖 기술을 갖추면 건답화 중에서 온 것이다. 항상 춤과 노래를 즐기고 남녀의 시중을 받으며 먼저 말하고 나중에 웃으면 견타(甄陀:긴나라) 중에서 온 것이다.
성격이 부드러우며 때가 되어 깨닫고 번뇌의 속박을 끊으면 진다라(眞陀羅:긴나라) 중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아귀의 모습이고 야차와 나찰에서 온 모습이며, 다음은 마땅히 사람에서 다시 태어난 것을 설하리라.
가서 태어날 곳을 알며 집착하여 속지 않고 할 일을 깨달으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모든 속임수와 거짓을 알아채고 일찍부터 그러한 일을 하지 않으며 평등하게 행하여 나아가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듣자마자 알아차려 잊지 않고 간사하고 거짓된 말을 믿지 않으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탐욕과 음심과 인색함과 질투는 마음을 잡아 어렵게 버리며 곳곳의 풍속을 모두 알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뜻을 믿고 은혜를 베풀며 법과 법 아닌 것을 알아 마음이 조금도 치우치지 않으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도 닦을 시기를 놓치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거룩하고 현명한 이들을 공경하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계를 지키고 많이 들은 사문(沙門)을 보면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섬기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모든 부처님과 바른 법과 스님들을 공양하여 섬기며 수시로 법문을 들으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설법을 들으면 능히 알고 나쁜 소리를 들으면 따라 하지 않으며 속히 열반[泥洹]을 얻으면 인간 중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서 다시 태어난 그 모습을 간략히 설한 것이며, 이제는 천신(天神)에서」 태어난 모습을 설하리라.
둥근 눈에 네모난 얼굴 몸은 노랗고 머리카락은 금빛이며 온갖 기술을 다 갖추었으면 아수륜(阿須倫:아수라) 중에서 온 것이다.
바로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의심하여 나무라는 일이 없으며 원수를 보고 갑자기 공격하면 아수륜 중에서 온 것이다.
수미산을 의지하는 천신에 다섯 부류가 있으며, 전생에 지은 인연에 따라 각기 그 모습이 다르다.
허리가 가늘고 다리가 굵으며 항상 웃음을 머금고 기뻐하며 지혜로운 이를 반드시 보살피면 곡천(曲天) 중에서 온 것이다.
생각이 미묘한 것을 좋아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은 적으며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면 시천(尸天)에서 온 것이다. 키가 크고 몸빛이 희며 얼굴빛이 단정하며 불빛을 좋아하지 않으면 파천(婆天)에서 온 것이다.
항상 기쁘고 즐거워하며 욕을 먹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면 낙천(樂天)에서 온 것이다.
사유하여 고통을 참아내며 뜻을 분별하기 좋아하고 부모에게 효성스러우면 비사천(毘沙天)에서 온 것이다.
집에서 자기를 좋아하지 않고 숲 속에 다니기를 좋아하며 항상 여자를 그리워하면 삼십삼천에서 온 것이다.
비록 재물도 적고 비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마음으로 청정함을 즐기면 삼십삼천에서 온 것이다.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행하다가 저질러 놓은 일을 감당 못하여 희망이 끊어지고 소원과 어긋나게 되면 염천(炎天)에서 온 것이다. 다른 여자와 음행하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의 처는 지키지 않으며 귀신의 부림을 받으면 타화천(他化天)에서 온 것이다.
부모를 받들어 섬기며 항상 법을 따르고 의당함을 본받으며 자신을 반성하고 남을 받아들이면 도술천(兜術天: 도솔천)에서 온 것이다.
도 아닌 것에서 도를 구하나 조심하는 마음이 없으며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범천(梵天)에서 온 것이다.
뜻이 완고하고 성격이 소박하며 항상 욕심껏 잠만 자고 법을 알지 못하면 무상천(無想天)에서 온 것이다.
다섯 갈래길[五趣]의 중생들은 그 근본이 각각이어서 성격과 행동이 같지 않고 마음 씀씀이가 매우 다르다.
그 때 아육왕은 오히려 마음에 성이 차올라 여러 신하들에게 고하기를, 나의 영(令)을 반드시 잘 들으라. 그대들은 이 날카로운 검과 신묘한 철륜(鐵輪)이 보일 것이니 만약에 나의 칙서를 위조한 주동자를 당장에 잡아오지 않으면
염부제의 백성들을 반드시 다 죽이고 이 염부제 땅을 빈 들판과 같이 질펀한 흙더미로 만들겠다.
여러 신하들이 무릎 꿇고 절하면서 왕에게 말하기를, 원컨대 너그러이 참으시옵소서. 지금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사방으로 나아가 묻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며 옷을 바꾸어 입고 모양을 고치고는 얼굴을 숨기고 은밀히 조사하였네.
누가 칙서를 위조하고 사신을 보낸 자는 누구이며 석실성을 왕래한 그 사람은 누구인가?
감추어 두었던 사실을 마음에서 끌어내 모두 소리 높여 드러내 말하기를, 부인인 정용과 야사의 소행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모여들어 왕에게 다시 말하기를, 저희들이 드리는 칙서와 도장 사건의 진상을 들으소서.
바로 그 도적들은 대왕님의 바로 곁에 있었던 부인 정용과 대신 야사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천자(天子)의 위용을 떨치어 대노하면서 즉시 좌우에 명하여 두 사람을 속히 잡아 오라 하였네.
왕 앞에 잡아 오자 사실을 다그쳐 묻기를, 너희들이 정말로 왕자의 눈을 못 쓰게 하였느냐?
두 사람은 두려워 떨면서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으니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지도 않고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았네.
왕은 한껏 성이 차올라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명하기를, 이자들을 당장에 데려다가 쇠감옥에 가두어 놓고 둘레에 불을 놓아 태워 죽이도록 하라고 하자 즉시 두 사람의 손을 뒤로 묶어 감옥으로 데려갔네.
타오르는 불로 태워 죽이니 두 사람은 죽어 지옥에 가서 반드시 몇 겁을 두고 거듭 고난을 겪으리.
그들이 왕자의 눈을 해친 까닭은 무엇인가? 지난날 왕자는 바라내(波羅奈)국에 태어났었는데 재물이 한량없이 많았었네.
언젠가 한 늙은 여인이 궁핍하여 얼어 터진 맨몸으로 한 아이를 데리고 그 집 문 앞에서 구걸을 하였네.
왕자가 나가서 보고는 갑자기 성을 내면서 손으로 흙을 집어 그들의 두 눈에 뿌렸네.
모자는 분노를 품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나 너를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두 눈을 빼어내 기와 조각이나 돌처럼 내던져 버리리라 하였으니 이처럼 선과 악의 결과는 썩지 않고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한다네.
그 때의 늙은 여인은 지금의 부인이고 함께 왔던 아이는 지금의 야사라네.
일찍이 아라한을 비방하고 궁핍한 여인을 욕보인 여러 인연이 갑자기 밀어닥치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이 때에 존자는 여러 백성들에게 훌륭한 맛을 가진 불법의 미묘한 가르침을 널리 설하였네.
반드시 깊이 사유해야 하니 눈이라는 요소는 본래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오되 그 시작이 없고 가되 그 끝이 없으며 자취를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무엇이 눈인가? 눈이라는 대상에 집착하여 그것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지니 이 역시 오래 가지 않고 반드시 허물어져 못 쓰게 된다.
빛깔[色]은 마치 거품 덩어리와 같고 일체의 대상[法]은 갈라지고 흩어져 버리니 소리[聲]와 냄새[香]와 맛[味]이란 것도 전혀 진실하지 않다.
고맙고 사랑스런 이는 헤어지면 괴롭고 원한 맺고 미운 이는 만나면 괴로우니 반드시 모두 버리고 자비를 닦으라.
이 때에 월광(月光) 부인과 시녀들을 비롯한 60여 명의 여인들은 설법을 듣고 진리를 알게 되었네.
처음으로 도의 자취를 보고 법안(法眼)이 청정해져 일곱 번 나고 일곱 번 죽고 나면 고통의 근원을 다하게 되었네.
다시 십의 천 배나 되는 용맹한 보살들도 빈래도(頻來道)를 얻고 수행의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네. 3천 명의 부인들은 모든 번뇌의 때를 벗고 다함께 도과(道果)를 얻어 열반[無爲]에 평안히 머무르게 되었네.
다시 백의 천 배나 되는 모든 부자와 존귀한 사람들은 스스로 3보(寶)에 귀의하고 법익 왕자를 스승으로 모셨네.
선념(善念) 존자는 모든 비구들을 이끌고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네.
정사(精舍)에 도착하여 설법을 모두 마친 다음 허공으로 날아올라 열여덟 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 앉고 눕기를 마음대로 하다가 각기 육신의 수명을 버리고 열반의 세계에 들어갔으니 다시는 나고 늙는 일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