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_0636_c_01L무명나찰집(無明羅刹集) 상권[혹은 1권, 혹은 2권으로 되어 있으나, 지금 이것은 3권이다.]
030_0636_c_01L無明羅剎集卷上 或爲一卷、或爲二卷,今此三卷
실역인명(失譯人名) 김성구 번역
030_0636_c_02L失譯人名附秦錄
12연(緣)은 생사의 근본이며, 일체 중생의 굴택(窟宅)이며,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이 살고 있는 경계이다. 만일 지혜 있는 이라면 능히 인연의 갖가지 허물을 관찰하여 영원히 생사(生死)의 허물을 끊을 것이니, 마왕의 세계는 하늘의 마군으로서, 이때 큰 근심과 걱정을 낸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무량겁에 6바라밀(波羅蜜)을 닦으시고 모든 선행(善行)을 모으시며, 모든 번뇌와 음마(陰魔)와 사마(死魔)와 번뇌마(煩惱魔)를 끊으리라 굳게 맹세하시고, 영원히 생사를 끊어 삼계(三界)를 뛰어넘어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를 성취하시고, 일체법에 무애지(無礙智)를 얻으셔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크고 밝은 등불이 되셨다.
030_0637_a_01L적멸(寂滅)을 증득하신 것은 삼계의 중생을 위하여 참되고 착한 벗이 되려 함이시니, 능히 법륜을 굴리며 곧 법려(法䗍)1)를 불며, 큰 법고(法鼓)를 치고, 큰 법등(法燈)을 켜며, 큰 법교(法橋)를 놓고 큰 법선(法船)을 띄우며, 큰 돛을 달고 높은 소리로 외쳐서 저 언덕에 이르는 이로 하여금 큰 서원을 다하게 하시며, 일체 외도들을 항복 받고, 일체 인연 있는 이를 제도하여 모두가 믿음을 내게 하시니, 이러한 대인(大人)이 다른 법에는 미증유(未曾有)의 생각을 내지 않고, 인연법에는 매우 깊고 희유한 생각을 내시니,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능히 궁구하시며 깊은 뜻을 아시되,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대선(大仙)인 황두(黃頭)2) 등이 자기의 지혜를 믿고 크게 교만을 낼지라도 오히려 무명(無明)에 가려지며, 유루(有漏)의 지혜로써 모든 경론(經論)을 저술할지라도 또한 사견(邪見)과 뒤바뀐 미혹[倒惑]을 면치 못하며, 비록 풀로 옷을 짓고 단식을 하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백천 가지의 고행을 할지라도 마침내 능히 생사 가운데에서 약간의 해탈도 얻지 못하리라.
만일 능히 12연(緣)을 깊이 안다면 이 인연(因緣)이 삼계 5도(道)에서 모든 업행(業行)을 지어 갖가지의 형상[形]이 되는 것을 보니, 비유컨대 세간에서 음악을 잘 짓는 이가 능히 여덟 가지의 소리인 궁(宮)ㆍ상(商)들을 화합하여서 소리와 음률이 상응하게 하고, 동시에 울리게 함과 같으며, 또 공교로운 화원이 여러 가지 채색을 잘 써서 수승한 형상과 이상한 모양이 빽빽이 나타나게 하는 것처럼, 12인연도 그러하여서 능히 업과(業果)를 어울리게 하고 조작하게 하여 생사에 바퀴 돌기를 끝이 없게 한다.
마치 긴나충(緊那蟲)이 세 때로 변화하되 처음은 흙빛이 되고, 중간에는 붉은 빛이 되고, 뒤에는 검은 빛이 되는 것과 같이, 12인연도 그러하여서 능히 중생을 변화하여 노(老)ㆍ병(病)ㆍ사(死)와 3유(有)와 5취(趣)와 4대(大)의 독사와 5음(陰)의 원적(怨賊)과 6입(入)의 빈 마을[空聚]을 짓게 하며, 또 능히 전륜성왕과 제석[釋]ㆍ범천[梵]ㆍ사천왕과 작은 왕으로 변화되어서 모든 쾌락을 받게 하며, 혹 사람의 몸으로서 부귀와 빈천과 수요(壽夭)가 되게 하며, 혹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형상이 되어서 갖가지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이 받게 한다.
030_0637_b_01L세존께서 이에 대하여 스승이 없이 홀로 깨치시고, 지혜의 약과 도끼로 교진여(憍陳如) 등의 무명의 막(瞙)을 도려내시고, 큰 법의 비로써 우루가섭(優樓迦葉) 등의 타오르는 번뇌 불길을 끄시고, 지혜의 인연과 최상이 되는 지혜의 약으로 사리불과 목건련 등의 번뇌의 병을 고쳐 주시고, 지혜의 갈고리로 마하가섭을 부처님의 바른 길로 옭아 들이시고, 법의 사다리로 대석(大石) 바라문을 해탈당(解脫堂)에 나아가게 하신다.
이 지혜의 도끼로써 존자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과 아누루대(阿㝹樓大)와 부루나(富樓那)와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와 난타(難陀)와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 등 모든 나한들의 몸이 있다고 하는 나무3)를 베시고, 이 진실한 지혜로써 능히 범왕이 내는 일체의 지혜로운 생각을 제거하시고, 이 지혜의 힘으로써 능히 천제를 제자로 삼고, 이 법다운 재물로써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과 따라온 8만 4천 명을 모두 배부르게 하되 줄거나 모자라지 않았으며, 이 바른 지혜의 사신으로써 정반왕[淨王]에게 말하여 법왕자가 되게 하였다.
이러한 지혜의 힘으로써 능히 장조범지(長爪梵志)를 꺾으시며, 능히 살차니건(薩遮尼揵)4)의 용맹한 힘을 망가뜨리시고, 능히 암목타(菴木吒) 바라문으로 하여금 큰 공포를 내게 하시고, 능히 시라복(尸羅匐) 바라문의 크게 지혜롭다는 상(想)을 쉬게 하시고, 이 감로수로써 어리석은 무리가 마시면 곧 큰 슬기를 이루게 하시고, 이 주력(呪力)으로써 4대(大)의 독사가 쏘지 못하게 하며, 가만히 칼을 빼어 도적이 따르지 못하게 하신다.
030_0637_c_01L이 법의 눈으로써 6입(入)의 빈 마을을 보시며, 이 법의 군사로써 5개(蓋)의 원수를 무찌르시며, 능히 지혜의 원수(元首)를 보호하여 5욕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며, 이 지혜의 배로써 번뇌의 물결이 치는 큰 바다를 건너 저 언덕에 이르게 하시며, 이 지혜로써 큰 잿물의 바다를 건너되 데거나 타지 않게 하시며, 안과 밖의 모든 입(入)에서 괴로움을 악랄(惡剌)하게 받는 이들로 하여금 능히 찔러도 들어가지 않게 하시며, 능히 광명이 없이 크게 어두운 데서도 미혹하거나 빠지지 않게 하신다.
만일 어떤 중생이 능히 관찰하면 이 사람에게는 비쳐주는 광명이 되시고, 능히 중생계(衆生戒)의 평지에 편안히 서게 하시며, 염처(念處)를 얻어 휴식처를 삼고, 정근(正勤)의 길을 지나 여의(如意)의 당(堂)에 오르며, 5근(根)의 누각에 올라 5력(力)의 방에 들고, 7각(覺)의 향을 맡으며, 8정(正)의 물을 마시고, 남음이 있는 열반[有餘涅槃]의 평상에 앉아서 4선(禪)의 샘이 없는[無漏] 바람을 쐬게 하시니, 능히 이렇게 하는 이는 참으로 중생의 선지식이다.
청정한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능히 선정을 닦으며, 깨달음과 지혜를 늘어나게 하여 능히 악한 갈래를 무너뜨리고, 해탈의 길을 얻어서 4제(諦)의 방소[方]를 관찰하며, 여러 가지의 소견의 잡초를 불 지르고, 신견(身見)의 돌을 깨뜨리며, 계취견(戒取見)의 큰 아수라를 쳐부수고, 마군의 5욕의 덫을 밝게 살펴서 넓은 들 험한 길을 지나가며, 열반성에 들어가서 탐욕의 그물을 파괴하고, 질투하는 비사차귀(毘舍遮鬼)5)를 깨뜨리며, 간탐(慳貪)을 씻어 버리고 악한 아만(我慢)을 토해 내며, 아(我)와 아소(我所)를 버리고, 3독(毒)의 뿌리를 뽑으며, 결(結)과 사(使)의 번뇌를 멸하고, 생사의 윤회를 멸하며, 사랑하는 몸의 새끼줄을 끊고 인연의 쇠사슬을 부수며, 능히 삼계의 무성하고 큰 나무를 꺾으며, 영원히 포태(胞胎)를 떠나서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프고 괴로워하는 큰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리라.
인연을 알고자 하는가. 체성(體性)은 깊고 미묘해 만일에 적은 지혜로써 실상을 말한다면 마치 사람이 머리로 돌산을 깨려 하는 것과 같네.
030_0637_c_20L欲知因緣, 體性幽微, 若以少智,
說其實相, 如人以頭, 欲壞石山。
가장 큰 이 그물이 삼계(三界)를 뒤덮고 사악한 숲은 행자(行者)를 미혹케 하네.
030_0637_c_22L是最大網, 彌綸三界, 此是邪林,
迷惑行者。
030_0638_a_01L 이 악한 그물은 범부라는 사슴을 옭아매니
이 그물에 걸리는 이는 선한 법이 소멸되리라.
030_0638_a_01L此是惡羂, 羂凡夫鹿,
入此羂者, 善法消滅。
마전타라(摩旃陀羅)의 독화살에 맞는 것, 이는 지혜의 송곳이니 인연의 바다를 뚫어야 하리.
030_0638_a_02L摩旃陁羅,
毒箭所射, 此是智攢, 攢因緣海。
누가 인연의 바다를 뚫을까. 석가모니이시니 열반과 감로수와 큰 지혜를 성취하셨네.
030_0638_a_03L誰攢緣海, 釋迦牟尼, 成就大智,
涅槃甘露。
이 12연은 부처님만이 능히 보시고 능히 자기의 미혹을 제거하시며, 남까지도 교화하시니,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절타왕(折吒王)이 울선야성(鬱禪耶城)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보시를 닦고, 인욕을 잘 수행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용맹스럽고 힘이 세어서 군대가 강하고 위세가 4해(海)를 조복하며, 다스리는 일을 분명히 하여 백성을 어루만지기가 어미 소가 송아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았는데, 후에 울선야성 안에 괴질(怪疾)이 돌아서 죽은 이가 반이 넘었고, 성안의 백성은 매우 드물게 되었다.
비록 주문과 약으로 재앙을 물리치려 했으나, 불에다 기름을 부은 것 같아서 곱이나 더욱 심해졌고, 죽은 이가 너무 많아 길에는 사람의 자취가 없어지게 되었다. 여우ㆍ이리ㆍ삵이 마을에 가득했고, 사람의 집에까지 들어왔으며, 새매와 독수리는 해와 달을 가리도록 많이 떠다니니, 온 성안이 슬피 울고 눈물이 길가에 가득하였으며, 성안에는 시체가 쌓여 묘지(墓地)와 같았다.
이때 절타왕이 나라 안의 백성이 죽는 이가 많음을 보고 근심과 걱정하는 마음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포로가 된 것 같았다. 근심하고 초췌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분하여서 죽음을 무릅쓰고, 한밤중 조용할 때에 홀로 계책을 꾸미되 뜻을 확실히 세우고 염병의 귀신을 쫓아내려 하여 아가타약(阿伽陀藥)을 두루 몸에 바르고, 주문의 새끼줄을 몸에 두르고, 여의(如意) 보배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잡고, 홀로 걸어서 전각 아래로 내려와 대궐의 문을 벗어나 성안의 네거리에 있는 신사(神社)와 탑묘 앞에 이르렀다.
030_0638_b_01L두루 우물과 다리 밑과 곳곳의 숲속과 저자 안을 보니 여러 귀신이 빛깔과 모양이 같지 않고, 말소리가 같지 않은 것들이 해치는 것[殘害]이 흉악하고, 살해함에 법도가 없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그 앞에 널려 있는데, 해골로 그릇을 삼아 사람의 피를 담고, 손은 뱃속을 뒤지기에 똥과 피로 더러웠으며, 혹은 사람의 창자를 몸에다 감고, 앞을 다투어 죽은 사람을 뜯어 먹느라 다투어 끌고 다녔다. 이러한 악귀들, 이(魑)ㆍ매(魅)ㆍ망(魍)ㆍ양(魎)이 성안에 가득하였는데, 이것을 본 왕은 금시조(金翅鳥)가 용을 잡으려 하는 때와 같이, 곧장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서 무슨 까닭이냐고 꾸짖으며 게송으로 물었다.
무슨 까닭에 사람의 창자를 너의 몸에다 감았으며 손에는 해골 그릇을 들고 피와 골수(骨髓)와 뇌를 담았느냐?
030_0638_b_08L何故以人腸, 交絡汝身體, 手捉髑髏器,
盛滿血髓腦。
악한 염병의 귀신이 되어 항상 사람의 목숨을 끊고 사람의 피와 고기를 먹어 너희들의 배를 부르게 하느냐?
030_0638_b_10L 生爲惡疫病, 常斷人命根,
噉食人血肉, 用自充飽足?
그때에 모든 귀신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030_0638_b_11L諸鬼卽時以偈答曰:
우리들은 야행귀(夜行鬼)이니 본래 사람의 살을 먹는다. 지방(脂肪)과 기름과 그리고 오장은 모두가 맛있게 먹을 것이다.
030_0638_b_12L我是夜行鬼, 法食人髓肉, 肪膏及五藏,
盡皆所甘嗜。
지금 그대 백성의 재앙과 병 모두가 우리들이 일으킨 것이다.
汝民今災患, 實是我所作。
왕은 다시 물었다. “이러한 재앙이 참으로 너희들이 한 짓이냐?”
030_0638_b_14L王復問言:“如是災患實汝作也?”
나찰이 대답하였다. “우리들의 짓임이 틀림없소.”
030_0638_b_15L羅剎答言:“是我所作。”
왕은 다시 귀신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속히 이 일을 버리지 않는가?”
030_0638_b_16L王復語鬼:“汝今何不速捨此事?”
모든 귀신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버릴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030_0638_b_17L諸鬼答言:“我不能捨,所以者何?
가시의 끝은 본래 뾰족하고 불덩이 자체는 본성이 뜨거운 것 나찰의 성품은 본래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이라네.
030_0638_b_18L刺法頭尖, 火體性熱, 羅剎之性,
法食人肉。
왕이 귀신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버리고자 않는가? 너희들은 보지 못하는가? 나의 칼 빛이 푸른 구름과 같고, 우담화와 같고, 또한 독사가 크게 성이 났을 때와 같으니, 나의 팔 기운으로 이 날카로운 칼을 들면 능히 너희들의 이 악한 짓을 버리게 할 수 있으리라.”
나찰이 즉시에 남쪽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키며 대답하였다. “저 나무 밑에 큰 나찰이 있는데, 얼굴에는 눈이 세 개가 있어 두리번거리고 휘두르는 모양이 흉악하며,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면 능히 재앙이 되어 죽게 하니, 질병은 모두 그의 짓이다.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조리 죽게 하니, 그대 대장부여, 먼저 그를 항복시키라. 그가 항복하면 우리들도 따르리라.”
030_0639_a_01L왕이 그 말을 듣고 어둠 속에서 칼을 빼 들고 바로 나아가 남문에 이르러서 대고 나찰을 보니, 턱을 들고 비스듬히 누워 발을 고이고 앉아 있었다. 몸에는 세 개의 머리가 있었는데, 갑주를 쓰고 세 가닥의 창을 잡고 있었으며, 그 빛깔은 푸르고 검어서 매우 두려웠다.
“나찰아, 너는 나의 백성에게는 크게 약해지도록 하는 재환(災患)을 주면서 거짓으로 나를 칭찬하니, 하는 짓이 극히 괘씸하구나.”
030_0639_a_08L王言:“羅剎!汝爲我民作大衰患,詐稱讚我,所作極惡。”
나찰이 말하였다. “왕이 만일 나의 말을 믿는다면 나의 말을 들으시오. 세간의 재앙이건 재앙이 아니건 나의 하는 짓이 아니오. 이 성문 밖에 귀신이 있으니, 이름이 마하사열(摩訶舍涅)이며, 밤에 다니는 무리에서는 가장 자재하며 머리가 넷, 얼굴이 넷으로써 우리들의 임금이오. 만일 능히 그를 항복 받으면 큰 명예와 칭찬을 얻을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빨리 달려 성 밖을 나와 그 나찰을 보니, 해골로써 머리 장식을 만들어 네 개의 머리 위에 달았고, 큰 코끼리의 젖은 가죽으로 의복을 지었으며, 또 뱀들을 허리에다 휘둘러 감았으며, 갖가지의 독사로써 영락(瓔珞)을 삼고, 톱날 같은 어금니가 쌍으로 나와서 사람의 배를 꿰어 매다는 데 쓰이며, 그 몸은 크고 웅장한데 피를 발랐고, 손발과 모든 마디가 마치 붉은 전단과 같았다.
030_0639_b_01L또 해골에다 피와 고름을 담아서 앞에다 놓고 마시고 씹고 먹으면서 배부르고 만족해하였다. 손에는 날카로운 창을 들었고, 죽은 시체를 자기의 주변에 둘러놓았다. 왕이 이것을 보고는 위의와 용모가 엄숙해지고, 영웅 같은 마음이 떨쳐 움직였다. 비유컨대 폭풍이 큰 나무에 불어 닥치는 것과 같으며, 또는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보고 싸우려 하는 때와 같이, 위맹을 분발하여 꾸짖으며 말하였다. “꾸짖으며 밤에 다니는 지배자여, 어쩌면 이다지도 나를 속이는가? 독한 기운과 악한 기운을 풀어 놓아서 나의 백성을 상해하고, 주문과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마치 기름[蘇]을 불 위에 부은 것 같으니, 너는 이제 죽을 때가 왔다.”
나찰이 대답하였다. “지주(地主)여, 너무 급히 성내지 말고 나의 말을 들어주오. 재앙과 근심을 준다 하니, 먼저 나의 허물을 묻고 다음에 죄를 주오. 백성의 재환(災患)은 내가 지은바가 아니니, 나는 미약해서 자재하지 못하고 남의 심부름을 하였소. 이 앞길에 부녀귀(婦女鬼)가 있는데, 그에게 시달려서 한 것이니 제지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오.”
왕이 그때에 갑자기 이 말을 듣고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간치 못하여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이내 귀신임을 알 수 있었다. 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잠깐 멈추시오. 그대는 한 나라의 백성을 모두 잡아먹고 지금에는 나까지 먹으려 하는가? 비유컨대 폭류가 모든 것을 흘러가게 하지만 큰 돌과 무거운 산은 뜨지 않는 것과 같소.”
왕은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타일렀다. “그대는 요술 같은 미혹을 버리고 본래의 형상으로 회복하라. 그대는 크게 몹쓸 짓을 하였으니, 지금 나에게 붙들린 것이 까닭 없는 액운이 아니오.”
030_0639_b_19L王捉其手而語之言:“捨汝幻惑,復汝本形。汝作大惡,今我報汝非抂撗也。”
나찰이 즉시에 합장하고 예배하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 지성으로 왕에게 귀의합니다.”
030_0639_b_21L羅剎卽時合掌作禮而言:“我今誠心歸命於王。”
그때 왕에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에 사방을 두루 살피니, 나찰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두루 살피십니까?”
030_0639_b_22L王時卽更聞有異聲,顧望四方,羅剎問言:“何以顧望?”
왕이 다시 물었다. “이것이 무슨 묘한 소리인가?”
030_0639_b_23L王復問言:“是何妙聲?”
030_0639_c_01L나찰의 계집이 대답하였다. “내가 마침 노래 소리를 내는 곳으로 인도해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거문고 퉁기는 소리를 내는 것이 나의 근본입니다. 일체의 재난은 저 계집이 하는 것이니, 저 계집을 무릎 꿇게 하시고 나도 여기서 쉬게 하여 주십시오.”
왕은 즉시에 이 나찰이 다른 것의 사주를 받는 것임을 알고, 다시 노래하는 계집을 붙잡고 말하였다. “네 이름은 무엇인가?”
030_0639_c_03L王時卽便知此羅剎爲他所使,復捉歌女而問之言:“汝名爲誰?”
나찰이 대답하였다. “나의 이름은 삼수발(三垂髮)이나, 나에게는 또 다른 왕이 있으니, 이름은 사아(四牙)입니다.”
030_0639_c_05L羅剎答言:“我名三垂髮。”復作是言:“我更有王名曰四牙。”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그 계집을 놓고, 사아 나찰을 구하여 이내 붙드니, 사아 나찰은 왕에게 말하였다. “나의 허물도 아닙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여섯 명의 나찰이 있는데 첫째는 운노(雲盧)라 하고, 둘째는 산악(山岳)이라 하고, 셋째는 옹복(甕腹)이라 하고, 넷째는 금강주(金剛主)라 하고, 다섯째는 견독(見毒)이라 하고, 여섯째는 척견(擲罥)이라 하니, 이 여섯 나찰 동자가 나의 주인입니다.”
030_0640_a_01L왕은 또 앞으로 나아가 세 나찰을 보니, 그 나찰들은 멀리서 왕이 오는 것을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왕은 소리쳤다. “거기 서라. 나의 이 날카로운 칼은 아직도 써 본 일이 없다. 나는 국민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먼 길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나를 피해 도망가는가?”
나찰들은 왕이 안위하는 말을 듣고 이내 돌아와서 합장하고 말하였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사태가 난 무덤들이 있소. 그 안에는 모든 악한 금수(禽獸)가 집을 지었으니, 여우ㆍ이리ㆍ삵ㆍ늑대ㆍ족제비ㆍ곰ㆍ호랑이ㆍ새매ㆍ독수리ㆍ올빼미ㆍ부엉새 따위가 서로서로 잡아먹고, 크고 흉한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쏘다니며 가득합니다.”
나찰이 대답하였다. “거기에는 나찰이 있으니, 형상과 모양이 추악하고 크며, 헌데와 종기가 불어터져 목마른 듯이 웃으면 허물이 벗어지고 빛깔은 검은 구름과 같으며, 두 눈방울을 굴리면 광채가 번개와 같고, 날카로운 이빨을 겹겹으로 드러내고, 입술을 악물고 진노하며, 갖가지 귀신으로 권속을 삼으니, 모든 악귀가 따르지 않는 이가 없고, 세간의 모든 그릇된 법은 모두 그가 짓는 것이니, 흉악하고 치성하여 조복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그 힘 많은 귀신을 항복 받으면 왕의 위덕이 천하에 퍼질 것이며, 우리들도 굽혀 따르겠습니다.”
그 나찰을 보니 형용과 모양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았으며, 그 좌우에 두루두루 냄새가 가득하고, 곳곳마다 해골의 노적이며, 머리털과 손톱이 싸인 것이 산더미와 같고, 떨어진 헌 옷이 찢어진 채로 땅 위에 흩어졌으며, 질병과 독과 깨진 기왓장이 쌓여 있어서 다닐 수가 없었다. 혹은 보니 종기가 터지고 헌데에 벌레가 뭉그러졌으며, 흉한 소리와 괴이한 싸움이 그 안에 가득하여 도병겁(刀兵劫)과 같아서 매우 두려웠다.
030_0640_b_01L또 여러 귀신이 있되 모두 피와 살을 먹어 제멋대로 배부르고 살쪘으니, 모두 흉하고 험상하고 잔악하고 해로운 무리였다. 눈은 번개 빛과 같고, 머리에서는 불길이 솟으며 코는 커서 우뚝하고 두 개의 어금니는 바늘처럼 나왔으며, 귀는 키[箕]와 같아, 형상이 추악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는데, 호랑이 껍질 옷을 입고는 해골에다 기름을 담아 오른손에 받쳐 들고 타는 불에다 붓고 있었다.
왕은 이것을 보고 곧 근심을 품고 소리쳤다. “나쁜 것이로다. 어찌하여 자기의 힘만 믿고 포악함이 이러한가. 내가 그대를 꺾지 못하면 나는 망하리라. 만일 주문과 약을 쓰면 그 힘으로 귀신은 모두 달아날 것이니, 나는 그때에 빨리 달려가서 왼손으로 나찰의 머리털을 움켜쥐리라. 나는 국민의 재난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필코 이 나찰의 임금을 멸망시키리라.”
그리고는 즉시에 그의 머리털을 움켜쥐니, 나찰이 자기의 힘만 믿고 헤헤 웃으며 말하였다. “누가 폭포처럼 흐르는 물을 끊으려 하는가? 누가 호랑이 입안의 이빨을 세려고 여기에 와서 사납고 악한 독사를 건드리는가? 일체 세간에 용맹한 장부가 몇 천억ㆍ만일지라도 모두 내가 무찌를 수 있는데 어찌하여 감히 나의 터럭을 끌어당기는가? 이것은 차치하고 말 할 것이 없으나 일체 세간의 힘이 세고 용맹한 이들이 아무도 나를 대적할 이가 없으되, 오직 절타(折吒)만은 예외라 하겠는데, 이는 어떤 꼬마이기에 감히 나의 머리털을 잡는가?”
2)가비라선(加毗羅仙)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옛적에 가비라성에 살았기 때문에 가비라선이라고 하며, 겁비라(劫毗羅)ㆍ가비리(迦毗梨)라고도 한다. 황두(黃頭)ㆍ황발(黃髮)ㆍ금두(金頭)의 뜻이 있다. 확실한 전기(傳記)는 전하지 않으나 석가(釋迦)보다 1세기쯤 전의 인물로 추정되며, 수론외도(數論外道)를 편 수론철학의 시조로서 이원론적(二元論的) 사상을 설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3)몸이 있다고 하는 나무라는 것은 유신견(有身見)을 말한다.
4)대살차니건자(大薩遮尼揵子)를 말한다. 니건(尼揵)은 고행외도의 통명(通名)으로 이계(離繫)라 번역한다. 살차(薩遮)는 이름으로 유(有) 또는 제(諦)라 번역한다. 대유이계(大有離繫) 외도의 아들로 불도에 들어와서 크게 도를 깨달았다.
5)범어로는 Piśāca이다. 비사사(毘舍闍) 혹은 필자자(畢舍闍)라고도 쓴다. 전광귀(癲狂鬼), 식혈육귀(食血肉鬼)라고 번역한다. 용신(龍神)과 함께 광목천(廣目天)을 따라 서방을 수호하는 귀신의 하나다. 또는 동방천왕(東方天王)이 영솔하는 귀신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