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보살은 남천축(南天竺) 사람으로 용수(龍樹)의 제자이며 바라문(婆羅門) 종족이다. 널리 알고 깊이 보며 재주와 말솜씨가 뛰어나 천축에 이름을 드날렸고 여러 나라에서 추앙받았다. 마음속을 살펴보아도 부끄러운 것은 없었으나, 끝까지 다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그 나라에 대천신(大天神)이 있었는데, 앉은키가 2장(丈)이고 황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대자재천(大自在天)이라 했다. 그는 사람들이 구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현세에서 그 뜻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제바가 사당을 찾아가 들어가서 뵙고 싶다고 하자, 사당을 주재하는 자가 말하였다. “천상(天像)은 지극히 신령하므로 보려는 사람은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고, 또 사람들이 물러난 뒤에도 백일 동안 시력을 잃게 된다. 그대는 찾아와 구하고 원하는 것만 물으면 되지 왜 굳이 보려고 하는가?” 제바가 말하였다. “만일 천신이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면 내가 볼 수만 있게 해 달라. 그렇지 않다면 왜 내가 보려고 하겠는가?” 그때 사람들은 그의 지조와 기상을 기특하게 여기고 올바르게 밝히는 데 감복하여 사당에 따라 들어간 자가 수천만 명이었다. 제바가 사당에 들어갔는데, 천상이 눈을 부라리며 노엽게 그를 바라보았다. 제바가 천신에게 물었다. “신령스럽긴 하지만 어찌 그리 옹졸한가? 위엄이 있는 신령으로 사람들을 감복케 하고, 지혜와 덕으로 만물을 복종케 해야 하는데, 황금을 빌려 스스로 뽐내고 파리(頗梨)를 굴리며 현혹케 하니 바라던 바가 아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의 눈을 뽑았는데,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심을 품었다. ‘대자재천이 어찌 보잘것없는 바라문에게 곤욕을 치르는가? 이름이 실제보다 지나치고 이치가 그 말에 굴복됨이 없겠는가?’ 제바가 무리들을 깨우쳐 말하였다. “신(神)은 밝고 원대하기 때문에 근사남[近事]으로 나를 시험한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금(金)더미에 올라가고 파리를 뽑아서 그대들에게 신(神)은 바탕[質]을 빌리지 않고 정(精)은 형체에 의탁하지 않는다고 알리려 한 것이다. 내가 신에게 교만하지 않았으므로 욕된 것도 아니다.” 말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그날 밤에 갖추어야 할 공양물을 모두 구했고, 다음날 청명한 아침 천신에게 공경히 제사 지냈다. 제바는 이름이 알려진 데다 지혜로 신과 계합하였으므로, 그의 말소리가 미치는 데마다 메아리처럼 되울리지 않는 곳이 없었고 하룻밤 사이에 공양물과 정갈한 음식이 항시 차려졌다. 대자재천은 키가 4장(丈)인데, 왼쪽 눈이 말라붙어 있고 앉아 있으면서 공양한 음식을 둘러보고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그 덕력(德力)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가상하게 여기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 마음을 얻었고, 사람들은 내 형체를 얻었다. 그대는 마음으로 공양했으며, 사람들은 음식을 바쳤다. 지혜로 나를 공경한 자는 그대이고, 두려워하면서 나를 속인 자는 사람들이다. 그대가 공양한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아름답기는 해도 내게 필요한 것만 없는데 이를 주는 것이 참으로 으뜸가는 보시다.” 제바가 말하였다. “신이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니, 명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신이 말하였다. “내게 모자란 것이 왼쪽 눈인데, 내게 베풀 수 있다면 당장 나가도 좋다.” 제바가 말하였다. “공경히 자재천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왼손으로 제 눈을 뽑아 그에게 주었고, 천신(天神)의 힘 때문에 뽑자마자 새로 생겼으므로 새벽부터 아침까지 이를 찾으면서 수만 번 눈을 뽑았다. 천신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마납(摩納)이여, 참으로 으뜸가는 보시다. 무엇이든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네 뜻대로 되리라.” 제바가 말하였다. “나는 명(明)을 마음에서 받은 것이지 어디 다른 데서 빌린 것이 아닙니다. 한스러운 것이 있다면 많고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내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내 말이 헛되이 내뱉은 것이 되지 않도록 천신은 내 원(願)을 들어주십시오. 청하는 것은 이뿐이며 다른 것은 없습니다.” 천신이 말하였다. “반드시 원하는 대로 되리라.” 그러고는 바로 물러나온 뒤에 용수보살을 찾아가 출가법(出家法)을 받았다.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은 채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니며 교화를 펼쳤다. 남천축왕이 여러 나라를 거느리고 다스리며 삿된 도를 믿고 행했기 때문에 승려와 불자들이라곤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 그 도에 교화되었다. 제바는 생각하였다. ‘나무는 뿌리를 치지 않으면 가지가 기울지 않고, 임금이 교화되지 않으면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그 나라에서는 다스릴 때 왕의 집안에서 돈을 내놓고 사람들을 고용해 숙위(宿衛)로 삼는 법이 있었는데, 제바가 이에 응모하여 그 장수가 되었다. 창을 메고 앞으로 내달렸으며, 항오(行伍)을 정돈하고 사병[部曲]을 거느렸다. 위엄을 세우지 않아도 명령대로 행해졌으며 덕을 드러내지 않아도 백성들이 기꺼이 따랐다. 왕이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냐?” 시자(侍者)가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숙위에 응모하였는데, 봉록을 먹지 않았고, 또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을 할 때에는 공손하고 조심성이 있으며 익숙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의 뜻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왕이 그를 불러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가 대답하였다. “저는 모든 것에 지혜로운 사람[一切智人]입니다.” 왕은 크게 놀라면서 그에게 물었다. “모든 것에 지혜로운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한 사람뿐이다. 네가 스스로 이렇게 말하니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그가 대답하였다. “말하는 데 지혜가 있음을 알고자 하신다면, 왕께서는 마땅히 보고 질문하십시오.” 왕이 즉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혜로운 임금으로 대논의사(大論議師)에게 질문하여 능히 굴복시켜도 오히려 명예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이와 같이 못한다면 큰일이다. 만일 그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는 곧 한 번에 굴복함이 된다.’ 미심쩍어 하며 한참 있다가 마지못해 물었다. “천인[天]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바가 말하였다. “천인은 지금 아수라(阿修羅)와 싸우고 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마치 목이 메어 토해 낼 수도 없고 삼키지도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의 말을 비난하려 해도 다시 증명할 길이 없고, 그의 말을 시인하려 하여도 일을 밝힐 수가 없었다. 말을 못하는 사이에 제바가 다시 말하였다. “이는 허망한 논리로 말의 승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잠깐 사이에 증험이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공중에서 창과 방패가 아래로 내려 왔는데, 긴 창과 짧은 병기들이 서로 묶여 떨어졌다. “창과 방패가 비록 전투하는 무기이기는 하지만 너는 어찌 이것이 반드시 천인과 아수라가 싸우는 것인 줄 아느냐?” 제바가 말하였다. “헛된 말을 꾸미는 것은 실제의 일로써 비교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아수라의 손ㆍ발ㆍ손가락 및 귀와 코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왕이 곧 머리를 숙이고 그 법의 교화에 감복하니, 궁전에 있던 1만 바라문 모두가 그 묶었던 머리를 버리고 성취계(成就戒)를 받았다. 이때 제바는 왕의 도읍 가운데 높은 자리를 만들고 삼론(三論)을 세워 말하였다. “모든 성인들 가운데 부처님의 성스러움이 가장 으뜸가며, 모든 법 가운데 부처님 법의 바름이 제일이며, 일체의 세상을 구하는 것 가운데 불승(佛僧)이 제일이다. 팔방(八方)의 모든 논사(論師)들 가운데 이 말을 파괴할 자가 있다면 내가 마땅히 목을 잘라 그에 굴복하여 사례하겠다. 왜냐하면 이치를 세워 밝히지 못한다면 이는 어리석음일 뿐이니, 어리석은 머리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므로 잘라서 굴복하여 사례해도 심히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팔방의 논사들은 이 말을 듣고는 역시 각각 모여 서약하며 말하였다. “우리들도 뜻과 같지 않다면 역시 머리를 자를 것이니, 어리석은 머리는 역시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제바가 말하였다. “내가 닦은 법은 어짐[仁]으로 만물을 살리는 것이다. 약속과 같지 않은 사람은 마땅히 너희 수염과 머리를 깎아 나의 제자로 삼기는 하겠지만 머리를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약속을 세우고 나서 각기 지은 명리(名理)로 무방론(無方論)을 세워 서로 주고받았다. 지혜가 얕고 정진이 짧았던 사람은 한마디 말에 바로 굴복되었고, 지혜가 깊고 정진이 길었던 사람은 길게는 이틀을 버텼는데, 말과 이치가 다하면 즉시 모두 머리를 깎았다. 이와 같이 매일매일 왕가(王家)에서 하루에 열 수레의 옷과 발우를 보내 마쳤는데, 석 달 동안 백여 만 명을 제도하였다. 삿된 도를 행하는 한 제자가 있었는데, 흉악하고 고집이 세고 지혜가 없었다. 그는 그의 스승이 굴복함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겉으로는 비록 대중을 따랐으나 마음속으로는 원한과 분노를 품고 칼을 물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너는 입으로 나를 굴복시켜 이겼지만 나는 마땅히 칼로써 너를 굴복시켜 이기겠다. 너는 공(空)의 칼로 나를 곤혹스럽게 하였지만 나는 실제의 칼로써 너를 곤혹스럽게 하겠다.’ 이 맹세를 하고는 예리한 칼을 품고 기회를 엿보았다. 각 지방의 논사(論師)와 영웅호걸들이 모두 다 나가 떨어졌으므로 이때 제바는 한림(閑林)에 나아가 『백론(百論)』 20품(品)을 지었고, 또 『사백론(四百論)』을 지어 삿된 견해를 논파하였다. 그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여러 나무 아래로 흩어져 좌선사유(坐禪思惟)하고 있었는데, 제바는 선정에서 깨어나 경행(經行)하고 있었다. 바라문의 제자가 그 곁에 칼을 차고 와서는 추궁하여 말하였다. “너는 입으로 나의 스승을 논파했지만 나는 칼로써 너의 배를 파괴하리니 어떠한가?” 그리고 즉시 칼로 제바의 배를 찌르니 오장(五臟)은 땅에 떨어졌으나 목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사이에 제바는 이 어리석은 도적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말하였다. “나에게는 삼의(三衣)와 발우가 내 앉은 곳에 있으니 너는 급히 그것을 가지고 산 위로 올라가고 삼가 평탄한 길로 내려가지 말라. 나의 모든 제자들 가운데 아직 법인(法忍)을 얻지 못한 자는 반드시 너를 잡으려 할 것이다. 혹 그들을 부딪혀 잡히게 되면 너를 관가로 보낼 것이고, 왕은 바로 너를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너는 아직 법의 이로움을 얻지 못했으니, 몸을 아끼는 마음은 무겁고 명예를 아낌은 그 다음이다. 몸과 명예는 근심이 쌓이게 되며, 많은 틈이 생기니 몸과 명예는 이 큰 근심의 근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듣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에 빠져 아끼지 않을 것은 아끼고 마땅히 아껴야 할 것은 아끼지 않으니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나는 부처님께서 남기신 법을 받았으므로 너에게 복수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미친 마음에 속이고 분노의 독에 불타 죄의 과보가 그치지 않는데도 울부짖으며 그것을 받음이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실제 스스로 주체가 없으며, 그것을 하는 사람은 실제 스스로 사람이 없다. 사람도 없고 주체도 없는데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실제 구하여도 실제 얻지 못할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미친 마음에 현혹되고 뒤바뀜에 둘러싸여 얻는 것을 보면 마음에 집착하여 나도 있고 남도 있으며, 괴로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어 괴로움과 즐거움이 오면 단지 접촉에 의지하여 집착한다. 집착을 이해하면 의지함이 없고, 의지함이 없으면 괴로움이 없고,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으리니, 괴로움과 즐거움이 이미 없다면 쉬는 데 가까운 것이다.” 이 말을 설하고 나자 제자 가운데 먼저 온 자가 실성(失聲)하여 크게 불렀다. 제자[門人]들이 각각 숲속에서 나와 모였는데, 아직 법인(法忍)을 얻지 못한 사람은 놀랍고 두려워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말하였다. “원통하고 가혹하다. 누가 우리의 스승을 이와 같이 하였는가?” 혹은 미친 듯이 달려가 길목을 차단하고 함께 서로 부별로 나누어 울부짖으며 추격하였는데, 부르는 소리가 깊은 골짜기를 시끄럽게 하였다. 제바가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 말하였다. “모든 법의 실체를 누가 원망하며 누가 가혹하게 하며 누가 자르고 누가 꺾겠는가? 모든 법의 실체는 실제로 받는 자도 없고 또한 해칠 자도 없는데, 누구와 친하고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해치고 누구를 해롭게 하겠는가? 너희들은 어리석음의 독(毒)에 속아 허망하게 집착을 내어 크게 울부짖으며 착하지 못한 업을 심는구나. 저 사람이 해친 것은 모든 업보를 해친 것이지 나를 해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그것을 생각하여 삼가 미침[狂]으로 미침을 쫓지 말고 슬픔으로써 슬픔을 비통해 하지 말라.” 이때 몸을 놓았는데 옷 벗듯 아낌없이 껍질을 벗고 마침내 떠나갔다. 처음에 눈을 뽑아 천인에게 주었기 때문에 눈 한쪽이 없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나제바(迦那提婆)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