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축국(天竺國)에서는 우바새(優婆塞)ㆍ국왕(國王)ㆍ장자(長者) 등이 일체의 모임[會]을 시설하면 항상 빈두로파라타서(賓頭盧頗羅墮誓) 아라한1)을 초청하였다. 빈두로는 이름이고 파라타서는 성(性)이다. 그 사람은 수제(樹提) 장자를 위하여 신족통(神足通)을 나타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를 배제하여[擯] 열반에 들기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칙령을 내려 말법(末法)시대에 사부대중의 복전(福田)이 되도록 하셨다. 그를 초청할 때는 조용한 곳에서 향을 피우고 예배하면서 천축의 마리산(摩梨山)을 향해 지심으로 칭명(稱名)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대덕(大德) 빈두로파라타서이시여, 부처님의 교칙(敎勅)을 받들어 말법시대에 사람들을 위하여 복전이 되셨으니 부디 저의 초청을 받아들이시어 이곳에 오셔서 음식을 드셨으면 합니다.” 만약 새로 집을 지었어도 또한 초청의 말을 해야 한다. “부디 저의 초청을 받아들이시어 이 집의 평상에 자리하셔서 머무르셨으면 합니다.” 만약 널리 대중 스님들을 목욕하도록 초청할 때에도 마땅히 그를 초청하여 말해야 한다. “부디 저의 초청을 받아들이시어 이 집의 평상에 자리하셔서 머무르셨으면 합니다.” 만약 널리 대중스님들을 목욕하도록 초청할 때에도 마땅히 그를 초청하여 말해야 한다. “부디 저의 초청을 받아들이시어 이곳에서 목욕을 하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날이 밝기 전에 향기롭게 끓인 깨끗한 물ㆍ가루비누ㆍ양지(楊枝)ㆍ향유를 갖추어 놓고 물이 차갑거나 뜨겁지 않도록 조절한다. 사람이 목욕하려 할 때처럼 문을 열어 들어오도록 청한 다음 문을 닫는다. 사람이 목욕을 마칠 만큼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대중 스님들이 들어갈 수 있다. 대개 모임을 열어 음식을 먹고 목욕을 할 때는 반드시 일체의 스님들을 초청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해탈을 구하여 의심하거나 이치에 어둡지 않아야 하리니, 신심(信心)이 청정해진 후에야 비로소 초청에 응할 것이다. 얼마 전[近世]에 어떤 장자(長子)가 빈두로 아라한이 부처님의 교칙을 받들어 말법시대 사람들의 복전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여법하게 대회(大會)를 시설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빈두로를 청하고 융단 아래에 두루 꽃을 뿌려 그것을 시험해 보려고 하였다. 대중들이 식사를 마친 후 융단을 걷었을 때 꽃들이 다 시들어 있어 그 장자는 깊이 고뇌하며 자책하였다. 허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없어 다시 정성을 다해 경사(經師)에게 자세히 묻고 거듭 대회를 열었는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꽃들은 다 시들어 있었다. 또다시 집안의 재산을 모두 다하여 대회를 열었으나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깊이 고뇌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고는 다시 백여 명의 법사들을 초청하여 그가 잘못한 것을 묻고 죄과를 참회하며 사죄하기를 구했다. 그는 윗자리에 앉은 한 연로한 사람을 향하여 사방으로 그 허물을 알리고 뉘우쳤다. 윗자리에 앉은 노인이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세 번의 모임에 나를 청하였고 나는 그 초청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대 스스로 노비에게 시켜서 문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내가 늙고 의복은 해지고 떨어져 쫓겨난 뢰제(賴提) 사문이라 여기고 앞에서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청했으므로 억지로라도 들어가려 했으나 그대의 노비가 몽둥이로 내 머리를 때려 상처를 냈으니 오른쪽 이마의 상처가 이것입니다. 두 번째 모임에도 왔으나 다시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억지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또다시 내 머리를 때렸으니 이마 중간에 상처가 이것입니다. 세 번째 대회에도 왔었으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때렸으니 왼쪽 이마의 상처가 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대 자신이 한 짓인데 왜 고뇌하고 한탄합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 사라져버렸다. 장자는 곧 그가 빈두로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이래로 모든 사람들은 복을 베풀 때에는 다시는 감히 문을 막지 않았다. 만약 빈두로가 왔다 갔다면 그가 앉은 자리에는 꽃이 시들지 않는다. 새로 집을 짓거나 평상을 만들어 빈두로를 초청하고 싶을 때라면 향을 끓인 물을 땅에 뿌리고 향을 피우고 기름등을 켠다. 새 평상에 새 요를 깔고 솜을 틀어 그 위에 깔고 흰 명주를 솜 위에 덮는다. 첫날밤은 여법하게 그를 초청하여 방문을 닫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경거망동하거나 몰래 엿보지 말아야 하며 모두들 각기 지극한 마음으로 그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성이 사무쳐 감응하면 이르지 않을 일이 없다. 그가 오면 요 위에 누운 자리가 나타나게 되고, 욕실에도 탕수를 쓴 곳이 나타나게 된다. 대회에 초청받았을 때에는 윗자리에 있기도 하고 중간 자리에 있기도 하며 아랫자리에 있기도 하는데, 그 처소마다 스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 특이한 점을 찾으려 해도 끝내 발견할 수 없을 것이며, 그가 떠난 후 앉아 있던 곳의 꽃이 시들지 않은 것을 미루어 그가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범명(梵名) Piṇṇḍola-bharadvāja, 의역(音譯)하면 빈두로돌라사(賓頭盧突羅闍)이다. 16나한 중 한 분으로 원래 발차국(跋蹉國) 구사미성 재상의 아들로서 구족계를 받고 여러 곳을 다니며 전도하였다.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 마리산에 있으면서 불멸(佛滅)후에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동진(東晋)의 도안(道安)이 처음으로 빈두로를 신앙하였고, 송나라 태초(泰初) 말기(471)에 법현과 법경 등이 처음으로 그의 형상을 그려 공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하여 절마다 봉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