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생각해 보건대 여래(如來)께서는 중생의 호응에 따라 나타나시니 묘한 색신이 삼천 세계에 드러나사고, 정각(正覺)께서는 광명을 감추셨지만 남기신 형상은 팔만 세까지 전해진다. 그런 까닭에 탑(塔)은 영산(靈山)에 솟아 있고 그림자[影]는 석굴(石窟)에 머무른다. 박달나무에 새기고 비단천에 그런 위의(威儀)와 금(金)을 녹여 만들고 옥(玉)에 새긴 형상은 몸을 보전하고 몸을 부순 자취요, 탑을 모으고 탑을 흩어 지게 한 기적(奇蹟)이다. 그런데 그 광명은 겹겹이 어두운 곳을 비추고 그 복덕은 중생[含識]을 돕는다. 꽃다운 명성과 오래도록 찬미함은 삿된 무리들로 하여금 믿음을 맺게 하였으니, 맨 먼저 아육왕(阿育王)이 처음으로 열었고 맨 마지막엔 대당(大唐) 초기 까지 전해졌다. 역대에 번성하게 일어난 때로부터 신화(神化)가 한둘이 아니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바른 법이 머무르기도 하고 바른 법이 멸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였으나, 그 뜻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031_0029_a_02L『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석실(石室)에 그림자[影]를 남기셨으니, 그것은 나건가라국(那乾呵羅國) 독룡지(毒龍池) 곁에 있다. 부처님께서는 용지의 석실굴 속에 앉으시어 용을 위해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려 몸을 솟구쳐 돌 속으로 들어가셨다.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과 같아서 돌 속에 계신데도 바깥으로 내비쳤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나타나지 않는다. 백천(百千) 여러 하늘들이 부처님의 그림자에 공양하자 그 그림자가 또한 나타나 법을 설하였다.”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미륵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도리천(忉利天) 성의 동쪽 조명원(照明園) 안에는 불발탑(佛髮塔)이 있고, 성 남쪽 추삽원(麁澁園) 안에는 부처님의 옷탑[佛衣塔]이 있으며, 성 서쪽 환희원(歡喜園) 안에는 부처님의 발우탑[ 佛鉢塔]이 았고, 성 북쪽 가어원(駕御園) 안에는 부처님의 치아탑[佛牙塔]이 있다.” 또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천제석(天帝釋)이 보살의 머리칼과 옷을 가지고 천상(天上)의 성 동쪽 문 밖에다가 부처님의 불발탑(佛髮塔)과 불의탑(佛衣塔)을 세웠다.” 또 『육왕전(育王傳:阿育王傳)』에서 말하였다. “왕은 신심(信心)이 생겨 도인(道人)에게 말하였다. ‘내가 옛부터 지금까지 살해했던 것은 꼭 이유가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어떤 선업(善業)을 닦아야 이 재앙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오직 탑을 세우고 많은 스님들을 공양하며,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방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는 것뿐입니다.’[그러므로 『비유경(警喩經)』에서 말하기를“왕궁(王宮) 안에서 항상 네 가지 일로 이만이나 되는 사문(沙門)을 공양하면서 마음윌 다하여 예(禮)를 갖추었다고 한 것이니,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한다.] 왕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 탑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도인은 곧 신통력으로써 왼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팔만 사천의 길을 만들어 염부제(閻浮提)의 이곳 저곳을 비주면서 말하였다. ‘이 빛이 비추는 곳마다 모두 탑을 세우십시오.’ 아직까지 여러 탑이 남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 때 왕은 사리탑(舍利塔)을 세우고자 하여 네 부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왕사성(王舍城)에 이르러서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세운 부처님의 탑 안에 사리를 거두고 다시 이 탑을 수리하여 전과 다름이 없게 하였다. 이와 같이 다시 일곱 개의 부처님 탑 속에 들어 었던 사리를 거두어 가지고 중마촌(衆摩村)으로 갔다. 그 때 여러 용왕들은 이 왕을 데리고 용궁으로 들어갔다. 왕은 용이 내놓은 사리를 보고는 공양을 올리니, 용은 곧 그 사리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왕은 팔만 사천의 금ㆍ은ㆍ유리ㆍ파리(頗梨)로 상자를 만들어 부처님의 사리를 담있다. 또 팔만 사천 보배 병을 만들어서 이 상자를 그 병 속에 넣었다. 또 한량없는 백천 개의 번기[幡]ㆍ당기[幢]ㆍ일산[傘蓋]을 만들고, 모든 귀신들을 시켜 각각 사리와 공양 도구들을 가지게 하고는 그 귀신들에게 칙명을 내렸다. ‘염부제에 있는 바닷가 성읍(城邑)과 마을[聚落]에 이르러 일억 정도 되는 집에 세존(世尊)을 위하여 탑을 세워라.’ 그 때 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의 이름은 저차시라(著叉尸羅)였다. 그 나라에는 삼십육억이나 되는 집이 있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서른여섯 개의 상자에 담겨 있는 사리를 우리에게 주면 우리들이 부처님의 탑을 세우겠다.’ 왕은 방편을 써서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어 집 수효에 맞추어 탑을 세우게 하였다. 그 때 파련불(巴連弗) 고을에 상좌(上座)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야사(耶舍)였다. 왕이 그곳에 나아가 상좌에게 말하였다. ‘제가 하루 동안 팔만 사천 개씩 탑을 세워 이 염부제에 두루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자 그 상좌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홀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이후로는 매달 보름날 점심 식사 때마다 이 염부제로 하여금 일시에 모든 부처님의 탑을 세우게 하십시오.’ 이렇게 그 수효대로하여 마침내 하루동안에 팔만사천 개의 탑을 세웠으니, 세간의 인민들에겐 경사를 일으킴이 한량없었다. 모두들 그 탑을 아육왕탑(阿育王塔)이라고 불렀다.” 또 『대아육왕경(大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여덟 나라에서 똑같이 사리를 나누었다. 아사세왕은 그 사리의 수를 나눌 때 팔만 사천 개를 얻었고, 또 따로 부처님의 수염을 얻어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에 재난을 만났는데 그것은 곧 두화(頭和) 용왕이 자신에게 사리를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사세왕이 주지 않자 용왕이 곧 말하였다. ‘나는 여기 사는 용왕인데 내 힘으로 그대의 나라를 부수어 버릴 수도 있다.’ 아사세왕은 두렵고 무서워서 곧 부처님의 수염을 그에게 주었다. 용왕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 수미산(須彌山) 아래 높이 팔만 사천 리쯤 되는 곳에 내려와 서 수정탑(水精塔)을 세웠다. 아사세왕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그 사리를 자금함(紫金函)에 담아 천 년 등불을 만들어 밝히고 다섯 항하강 물 속에 탑을 세워 묻어두었다.
그 뒤에 아육왕이 그 나라를 빼앗있다. 왕이 부인을 맞이했는데 신장(身長)이 여덟 자나 되었고 머리카락 길이도 또한 그러하였으며 수많은 상호를 원만하게 갖추었다. 왕은 관상장이를 시켜 그의 상을 보게 하였다. 관상장이가 말하였다. ‘장차 왕께서는 금색의 아드님을 낳으실 것입니다.’ 왕은 곧 그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고, 그녀는 마침내 아이를 가져 열 달이 갔다. 왕이 볼 일이 있어서 밖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왕후[太后]가 둘째 부인을 질투하여 곧 방편을 써서 다른 여인들과 공모하여 그녀를 없애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출산에 임박한 어미 돼지를 구해놓고 둘째 부인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나이가 젊은 데다가 이번이 초산[始產]이니, 얼굴을 드러내놓고 하늘을 보아서는 안 된다.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둘째 부인은 곧 금색 아들을 낳아 그 광명이 온 궁중을 비추었다. 태후는 몰래 그 아이를 훔쳐 가지고 데라고 가서 죽여버리고 새끼 돼지를 산모 곁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꾸짖어 말하였다. ‘너는 마땅히 대왕을 위하여 금색 왕자를 나을 것이라고 말하더니 무슨 까닭에 돼지 새끼를 낳았느냐?’ 그러면서 곧 윤두(輪頭)를 가지고 그녀를 때리고 후원(後園)에 가두어 두고는 나물만 먹게 하였다. 왕이 돌아와 이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해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왕이 후원으로 나가 그녀를 보고는 옛날을 생각하여 궁중으로 데리고 왔다. 둘째 부인은 점점 왕과 친근하게 되자 그 동안의 상황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왕은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곧 팔만 사천이나 되는 부인을 다 죽여버렸다. 그리고 아육왕은 그 후에 성 밖에다 지옥을 짓고 모든 죄인들을 다스렸다. 야사(耶舍)는 왕이 모든 부인을 죽임으로써 장차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곧 소산(消散)비구를 보내어 왕을 교화하게 하였다. 그러자 왕은 믿음을 내어 깨닫고 나서 그 비구에게 물었다. ‘팔만 사천이나 되는 부인을 죽인 죄를 속죄할 방법이 있습니까?’ 도인(道人)이 대답하였다. ‘그 부인들 각각을 위하여 탑 하나씩 세우고, 그 탑 아래에 사리 하나씩을 넣어 두면 마땅히 그 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곧 아사세왕의 사리를 찾았다. 그러자 나이 일백스무 살이 되는 어떤 나라 재상의 아버지가 오백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본래의 사리를 가지고 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것을 귀신들에게 나누어주며 말하였다. ‘각각 이것을 가지고 소속 부서로 돌아가서 한날 한시에 똑같이 팔만 사천 개의 절에 안치하라.’ 귀신들이 말하였다. ‘중간에 많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서로 말 수가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다만 돌아가서 절을 보호하고 방울만 달아두어라. 그러면 내가 반드시 아수륜(阿修輪:阿修羅)을 시켜 손으로 해를 어루만지게 하고 사천하를 동시에 진동하게 하리라.’ 또 『아난경(阿難經)』에서 말하였다. “일천이백 개의 탑을 조성(造成)하고 천으로 번기와 갖가지 꽃을 만들었으나 미처 번기를 달기도 전에 황공하게도 왕이 죽어버렸다. 탑이 이룩된 지 육일 만에 왕은 자신의 정원으로 승려들을 초청하여 공양하였다. 그 때 우파굴다(優波崛多:優婆毱多) 아라한이 일만 팔천 아라한을 거느리고 왕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존자 굴다는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신체가 유연했다. 그러나 왕의 몸은 추하고 더러웠으며 피부까지 거칠었다. 존자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내가 보시를 행할 때엔 깨끗한 마음에다 좋은 재물이었지만 그러나대왕이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한 것만 못하네.
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하고 이와 같은 과보를 얻었다. 그러니 어떻게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겠는가?’ 왕은 그 후에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등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의 제자들이었던 사람들의 탑이 있는 곳을 몸소 찾아가서 슬픈 감정을 표하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공경을 다하였다. 또 각각의 탑마다 갖가지로 공양하고 다시 큰 탑을 세웠는데, 새로 세운 각각의 탑마다 십만 냥의 귀중한 보배로 공양하였다. 다음에는 박구라(縛俱羅)1)의 탑에 이르러 공양하고 왕이 물었다. ‘이 사람에게 무슨 공덕이 있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는 병이 없는 것이 제일이며, 나아가 남을 위해서 한 구절의 법도 말하지 않고 항상 침묵하여 말이 없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일 전(錢)을 공양하겠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였다. ‘공덕은 이미 동등한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선 일 전만을 공양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설하는 게송을 들으라.’
비록 무명(無明)의 어리석음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지혜만이 능히 거울처럼 살필 수 있네. 아무리 저 박구라가 았다고 해도 이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으리.
그 때 그 일 전의 돈이 왕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대신들은 이 희유(稀有)한 일을 보고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그를 찬탄하였다. ‘아아, 존자시여, 참으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십니다. 그러하여 일 전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왕과 대신들은 끊임없이 보리수(菩提樹)라고 하였다. 그는 생각하였다. 〈왕은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생각하선다. 그런데도 왕은 지금 나와 진귀한 보배를 버리시고 보리수 아래로 가시는구나. 내가 방편으로 저 나무를 죽게 하여 왕을 그곳에 가지 못하게 하고 나와 함께 서로 즐기며 살아가게 하리라. 〉 이렇게 생각하고 부인은 곧 사람을 보내 뜨거운 우유를 그 나무에 뿌리게 하였다. 그러자 나무는 잎이 시들더나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혼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부인은 왕이 시름에 잠겨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만약 저 나무가 없으면 내 목숨도 없는 것입니다. 여래께서도 저 나무 밑에서 도를 증득하셨습니다. 저 나무가 이미 죽어가고 있으니 무엇으로 살려야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찬 우유를 나무에 주자 그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나무 아래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천 개의 항아리에 담긴 향나무 달인 물을 보리수에 쏟아 물을 대주자 나무는 보다 싱싱하게 우거졌다. 그 뒤에 왕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손에 향로를 들고 전상(殿上)에 올라 사방을 향해 예를 올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곳에 계시는 어질고 거룩한 여래의 제자들이시여, 저를 가련하게 생각하여 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할 때에 삼십만 비구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그렇게 모인 대중들 가운데 십만 명은 아라한(阿羅漢)이었고 이십만 명은 학인(學人)과 범부들이 있다. 궁중 사람들과 태자와 뭇 신하들이 왕과 함께 지은 공덕은 한량없이 많아 이루 다 기록할 수조차 없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아육왕(阿育王)이 비구에게 물었다. ‘누가 불법 가운데 제일 큰 보시를 행하였습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급고독(給孤獨) 장자가 가장 큰 보시를 행하였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의 보시가 얼마나 됩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억천 금을 보시하였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저 장자(長者)도 오히려 억천 금을 보시하였는데, 나는 지금 왕이 되어가지고서 어찌 억천 금만을 보시하겠는가? 나는 억백천 금을 보시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는 개인의 창고까지 다 비우고 이 염부제의 부인ㆍ채녀(婇女)ㆍ태자ㆍ대신들까지 다 페라고 가서 거룩한 스님들께 모조리 보시하였다. 그리고는 뒤에 사십억 금(金)으로써 그들을 다시 사서 취하였으니 이와 같이 계산한디면 총 구십육억천 금이나 되었다. 이윽고 왕은 중한 병을 얻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항상 억백천 금으로 공덕 짓기를 원했었다. 지금 그 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다만 사억 금이 덜 찼을 뿐이다.’ 왕이 이렇게 말하고는 곧 모든 진귀한 보물들을 챙겨 계두마사(雞頭摩寺)로 보내고 나아가 아미륵(阿摩勒) 열매 반 쪽을 스님들에게 주고는 그 스님들의 발에 예배하고 크고 거룩한 대중들께 문안을 올린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 염부제를 다스렸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던 것은 이제 다하여 자재롭지 못합니다. 오직 이 과일 반 쪽뿐이나, 저를 가없이 여기시어 받아주시고 저로 하여금 복을 열게 해 주십시오.’ 상좌(上座) 야사(耶舍)기 그것을 갈아 석류국[石榴羮]에 넣어 모든 스님들에게 고루 돌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왕이 다시 곁에 있던 신하에게 물었다. ‘누가 이 염부제의 왕이냐?’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 곧 이 염부제의 왕이십니다.’ 그 때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사방을 돌아보며 합장하고 예를 올리고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다시 이 염부제를 삼보께 드립니다.’ 그 때 왕은 이 말을 종이에 써서 봉함한 뒤에 치인(齒印)2)을 찍었다. 이와 같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곧 숨을 거두었다.
그 때 태자와 모든 인민듬은 여러 가지로 공양을 하여 장례를 치르고 왕법(王法)에 의하여 화장[闍維]하였다.” 또 『법익경(法益經)』에서 말하였다. “지금 이 대지(大地)는 삼보에 속해 있는 것인데, 어떻게 태자를 세워서 왕으로 삼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듣고 나서 다시 사억 금을 내어 절에 보내고 그것을 가지고 그 땅을 샀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아육왕은 금전 구십육 억으로 팔만 사천 개나 되는 보배탑을 세우고 다시 갖가지 큰 보시를 하였다.”
031_0031_b_02L[自述] 이상에서 인용한 경론에서 탑을 세워야 하는 이유를 이미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 탑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는 몇 종류나 있는지는 잘 모른다. 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범부인가 하는 것도 모른다. 【답】 범어(梵語)와 한어(漢語)가 같지 않고 번역의 전후에 따라서 이름도 다양하며 글의 잘잘못도 있다. 이른바 탑(塔)을 혹은 탑파(塔婆)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방분(方墳)이라는 뜻이다. 혹은 지제(支提)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번역하면 ‘악을 멸해 없애고 선을 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혹은 두수파(斗藪波)라고도 하나니 이것은 보호하고 찬탄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찬탄하고 옹호한다고 한 말과 같다. 서역 범어(梵語)의 정음(正音)으로는 솔도파(窣堵波)라고 하는데 여기 말로는 묘(廟:사당)라고 한다. 묘라는 것은 모양[貌]이니 이것은 곧 영묘(靈廟)를 말하는 것이다. 탑을 세우는 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사람이 훌륭함을 표현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이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가 평범한 비구라 할지라도 덕망이 있으면 탑을 세을 수 있으니 나머지는 합당하지 못하다. 또한 지제를 세우는 곳으로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그가 태어난 곳이요, 둘째는 도를 증득한 곳이며, 셋째는 법륜(法輪)을 굴린 곳이요, 넷째는 열반(涅槃)한 곳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과 도를 증득하신 이 두 곳에는 결정코 지제가 있다. 태어나신 곳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아수가(阿輸柯)3)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이 나무를 여기 말로 번역하면 무우수(無憂樹)라고 하며, 이곳이 바로 부인께서 태자를 출생하신 곳이다. 그래서 이 나무 밑을 생지제(生處支提)라고 말한다. 여래께서 도를 증득하신 곳은 보리수 밑이니, 그래서 이 나무 밑을 득도지제(得道支提)라고 말한다. 또 여래께서 법륜을 굴리신 곳과 열반하신 곳, 이 두 곳은 결정된 것이 없다. 다섯 비구를 위해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는 녹원(鹿苑)에 계셨는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이십오 심(尋)이다. 일 심은 여덟 자[尺]를 말하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은 신장이 컸기 때문이다. 일 심이 여덟 자라면 도합 이십 장(丈)에 의하여 세 기둥을 세우고 세 바퀴를 두어 부처님께서 옛날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신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이 곳을 전법륜지제(轉法輪支提)라고 말한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곳에는 사리를 안치하고 곧 이 곳을 열반지제(涅槃支提)라고 말한다. 현재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열반사(涅槃寺)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정해진 곳에 해당된다. 만약 사리에 의거하여 곳곳마다 탑을 세운다면 그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네 가지를 모두 솔도파라고 말한다.” 또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과 법륜을 굴리신 곳에 큰 탑을 세우 고, 또 어떤 사람이 작은 돌을 가져다가 탑을 만들었다면 그 복은 앞에서 큰 탑을 만든 것과 동등하니, 모두 존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를 위하여 대범(大梵)이 큰 탑을 세우거나 혹은 작은 탑을 세웠다면, 그 한 일이 같기 때문에 그 복도 다르지 않다.” 또 『아함경(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꼭 탑을 세워야 한다. 첫째는 여래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성문(聲聞)이요, 넷째는 전륜성왕[輪王]이다.” 또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에서 말하였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이들에게는 탑을 세워줄 수 있다. 첫째는 여래요, 둘째는 보살이며, 셋째는 연각(緣覺)이요, 넷째는 아라한이며, 다섯째는 아나함(阿那含)이요, 여섯째는 사다함(斯陀含)이며, 일곱째는 수다원(須陀洹)이요, 여덟째는 전륜성왕이다. 만약 전륜성왕 이하의 사람들이라면 탑을 세워 노반(露槃)4) 하나를 안치할 수 있으나 거기에 예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인의 탑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과(初果:須陀洹)를 얻은 사람은 노반 이 두 개요, 나아가 여래에 이르면 노반이 여덟 개이니 이상은 모두 불탑(佛塔)이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처음으로 승가람(僧伽藍)을 지을 때에는 먼저 좋은 터를 잡고 장차 탑을 세우려는 곳은 남쪽에 두지도 말고 서쪽에 두어서도 안 되며, 반드시 동쪽이나 북쪽에 두어야 한다. 불지(佛地)나 승지(僧地)를 침범하지 않아야 하며, 승방(僧房)은 서쪽이나 남쪽에 지어야 한다. 부처님의 탑은 높이 드러난 곳에 세우고 탑원(塔院) 안에서는 더러운 것을 빨거나 옷을 널어 말리거나 침을 뱉지 않아야 한다. 부처님의 탑 네 면에는 감실 [龕]을 만들고 거기에다 사자와 새ㆍ짐승 등 갖가지 그림을 그릴 것이며, 그 안에는 번기와 일산을 달아야 한다. 부처님의 탑 네 면에는 갖가지 공원을 만들고 꽃과 과일 나무를 심되, 그 공원에서 피는 꽃은 꼭 탑에만 공양해야 한다. 만약 나무를 단월(檀越)이 스스로 심었으면 단월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안에서 피는 꽃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과일은 스님들께서 드십시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단월의 말을 따라야 한다. 만약 꽃이 많으면 화만(華鬘)을 만드는 사람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라. 〈너에게 꽃을 주노니 화만을 만들어 나에게 주되, 남는 것은 적당한 값을 쳐서 나에게 탈라. 만약 돈을 벌었으면 그 돈으로 연등과 향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아울러 탑을 수리하는데 쓰도록 하라. 만약 돈이 많으면 부처님의 다함이 없는 물건[無盡物] 안에 두어라. 〉 만약 누가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고 하여 그 꽃과 과일을 자신을 장엄하는데 쓰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얻는 죄의 과보가 무거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지제(支提)를 만들 수도 있다. 사리(舍利)가 있는 것을 탑이라고 말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 도를 증득하신 곳, 법륜을 굴리신 곳, 부처님께서 열반[泥洹]하신 곳과 보살의 상(像), 벽지불의 상과 부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의 모든 지제에는 부처님을 안치하고 꽃과 일산 따위를 공양하라. 공양할 때에는 상등품은 부처님의 탑에 공양하고 조금 품질이 낮은 것은 지제에 공양하라. 만약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에는 마땅히 공양거리를 거두어 가까운 곳에 갖다 두라. 〈내가 바로 상좌(上座)한다. 내가 곧 아련야(阿練若)에서 걸식하는 대덕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면 월비니죄(越毘尼罪)5)를 얻는다. 만약 탑이나 승려의 물건을 훔쳐가려고 도둑이 와서 아무리 다급한 경우가 되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물품을 감추어 두지 말라. 부처님의 물품으로는 마땅히 불상(佛像)을 장엄해야 한다. 스님이 좌구(座具)를 펴고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그 도둑으로 하여금 그 모습을 보게 하라. 만약 인자한 마음이 생겨 도둑이 그 이유를 묻더라도 비구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젊은 사람이 나가서 상대하라. 만약 도둑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물건을 감출 수 없으면 꼭 이렇게 말하라. 〈일체의 행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라. 이것을 난법(難法)이라고 말힌다“’
031_0032_b_02L 『소미증유경(小未曾有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천하의 풀과 나무를 다 사람으로 만들고 그 사람들이 네 가지 도과(道果)를 얻게 하거나 벽지불(辟支佛)이 되게 하고 목숨이 다하도록 네 가지 일[四事]로 공양하여 필수품을 구족(具足)하게 하며, 멸도(滅道)한 후에는 일일이 탑을 세우고 향ㆍ꽃ㆍ당기ㆍ번기ㆍ일산을 공양하며, 다시 크게 장엄한 제석의 궁전을 짓고 팔만 사천 보배 기둥과 팔만 사천 보배 창문과 팔만 사천 천정(天井)의 보매 장문과 팔만 사천 누노(樓櫓)6)와 관각(館閣)7)을 사방에 내어 둘러싸게 하여 갖가지 보배로 장식한다고 하자.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위에서와 같은 백천억 개의 크게 장엄한 궁전을 사방 승가에 보시한다면 그 복이 비록 많겠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하신 뒤에 겨자씨만한 사리를 가져다가 크기가 암미륵(菴摩勒)만한 탑을 세우며, 찰간(刹竿)은 바늘만하고 그 위에 시설한 반개(槃蓋)는 대추나무 잎만 하고 만약 부처님의 형상을 보리얄만큼 크게 만든다고 해도 앞의 공덕보다 나아 앞의 공덕이 여기에 백분의 일에도 마치지 못하고 또한 이 공덕이 앞에 공덕보다 천 배ㆍ만 배ㆍ백천 만 배나 우세하여 마칠 수가 없으니, 이루 다 칭량(稱量)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여래의 한량없이 많은 공덕, 즉 계분(戒分)ㆍ정분(定分)ㆍ지혜분(智慧分)ㆍ지견해탈분(知見解脫分)의 한량없이 많은 공덕에는 큰 신통 변화와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 등 한량없이 많은 공덕이 있느니라.’ 또 『무상의경(無上依經)』에서 말하였다. “아난이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제가 오늘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서 걸식하다가 어떤 큰 이층집이 있었는데, 장엄하게 새로 지어져서 안과 밖이 완연하고 은밀한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어떤 청신인(淸信人)이 사방의 스님에게 네 가지 일을 모두 갖추어서 보시하고, 또 여래께서 멸도(滅道)하신 뒤에 겨자씨만한 크기의 부처님 사리를 취하여 탑 속에 안치하되 아마라(阿摩羅)씨만큼 큰 탑을 세우고 바늘만한 찰간(刹竿)을 세우며 대추나무 잎사귀만한 크기의 노반(露槃)을 얹어 놓고 보리알만한 불상을 만든다면 이 두 가지 공덕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세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네 가지 과(果)를 증득한 성인과 벽지불(辟支佛)로 사천하를 가득 채운 것이 감자(甘蔗)숲이나 대나무ㆍ물억새ㆍ삼밭 등과 같은데 어떤 사람이 목숨이 다하도록 네 가지 일을 구족하여 공양하고 또한 그들이 열반에 든 뒤에도 다 큰 탑을 세우고는 연등을 켜고 향을 사르며 의복ㆍ당기ㆍ번기 따위로 공양한다면, 아난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아난이 이뢰었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아난아, 그것은 차치(且置)하고, 다시 제석천(帝釋天)이 살고 있는 궁전 같은 곳에 큰 비각(飛閣)이 있는데, 그 이름은 상승전(常勝殿)이다. 그런데 이 궁전을 갖가지 보배로 장엄한 것이 육만 사천 개가 있다고 하자. 만약 어떤 청신(淸信) 남녀가 이와 같은 상승보전(常勝寶殿)을 만들어 백천 구지(俱胝)만큼 많은 사방의 스님들에게 보시하고, 또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반 열반하신 뒤에 겨자씨만한 사리를 가져다가 아마라씨만큼 큰 탑을 만들고 그 위에 바늘만한 찰간을 올려 놓고 대추나무 잎사귀만한 크기의 노반(露槃)을 얹고 보리알만한 크기의 부처님 형상을 만든다면 이 공덕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우세하여 앞의 공덕은 백 분의 일에도 마치지 못하고 천만억 분, 나아가 아승기(阿僧祇)수 분의 일에도 마치지 못하며 또한 무엇으로 비유해도 이 공덕에 미칠 수 가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여래는 한량없이 많은 공덕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부수어서 티끌만한 가루로 만든 것만큼 많은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를 얻은 이와 벽지불에게 만약 어떤 청산 남녀가 몸이 다하도록 공양하고 그들이 멸도한 뒤에 탑을 세우고 공양한다 하더라도 역사 겨자씨 만한 크기의 사리를 취한 것으로부터 마침내 보리얄만한 크기의 불상을 조성하는데 이르기까지 그런 일들을 하면 이 공덕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뛰어나서 그 공덕이 이 공덕에 비하여 백 분, 천만억 분의 일에도 마치지 못하며, 나아가 어떠한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다. 이와 같이 아난아, 일체의 여래는 옛날 인지(因地)에 계실 때 중생 세계의 자성은 깨끗하나 객진번뇌(客塵煩惱)8)에 더럽혀지고 혼탁해졌음을 아시고 계셨다. 그러나 중생들의 깨끗한 세계에는 들어가지 않고서 능히 일체 중생을 위해 깊고 오묘한 법을 말씀하시어 하열(下劣)한 마음을 생하는 번뇌의 장애를 제거 하셨으나, 그것은 도량이 크셨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내고 큰 스승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반야(般若)를 일으키고 사나(闍那)를 일으키며 큰 자비를 일으키셨다. 이에 따라 법을 세워 보살은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이곳 말로는 불퇴(不退)이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여실(如實)한 지혜에 의지하여 큰 방편을 증득하고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하느니라.’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불ㆍ법ㆍ승에 대하여 하나의 향과 등을 공양하고, 나아가 한 송이의 꽃 이라도 바치면 부동국(不動國)에 태어날 것이다. 부처님과 승가의 물건을 잘 지키고 부처님과 승가의 땅을 바르거나 쓸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불상과 탑을 만들되, 마땅히 기쁜 마음을 내면 이 또한 부동국에 태어날 것이다. 여기는 곧 정토(淨土)이니 항상 장엄하여 삼재(三災)에도 흔들리지 않느니라.’
031_0033_b_02L『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사위성(舍衛城)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셨다. 그 때 그 성 안에 사는 어떤 바라문(婆羅門)들이 성 밖에서 들어오다가 성을 나오시는 부처님의 드넓게 뛰어나고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때 바라문은 기뻐 펄쩍펄쩍 뛰며 부처님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라문은 부처님을 보고 기뻐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한 바퀴 돌았다. 그는 이 공덕 때문에 지금부터 이십오 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서 무궁한 쾌락(快樂)을 누릴 것이다. 그 후 이십오 겁을 지내고 나면 벽지불이 되어 그 이름을 지친나기리(持儭那祇梨)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부처님을 돌거나 부처님의 탑을 돌면 태어 나는 곳이 어디든 간에 그 복이 한량없이 많으리라.’ 또 『제위경(提謂經)』에서 말하였다. “장자 제위(提謂)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며 등불을 켜고 예배하는 것을 바로 공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탑을 돌게 되면 어떤 복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탑을 돌면 다섯 가지 복덕이 있다. 첫째는 뒷세상에 단정하고 좋은 몸을 얻고, 둘째는 좋은 음성(音聲)을 얻으며, 셋째는 하늘에 태어나고, 넷째는 왕후(王侯)의 집에 태어날 수 있으며, 다섯째는 니원(泥洹)의 도를 증득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단정하고 좋은 몸을 얻는가?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기뻐하였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좋은 음성을 얻는가? 탑을 돌면서 경전을 외웠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하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가? 당시 탑을 돌 때에 마음 속으로 계율을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왕후의 집에 태어날 수 있는가? 두면(頭面)으로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렸기 때문이니라. 무슨 인연으로 니원의 도를 증득할 수 있는가? 남은 복이 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탑을 도는데에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발을 들 때에는 반드시 발을 든다고 생각하고, 둘째는 발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발을 내린다고 생각하며, 셋째는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사찰 경내의 땅에 침을 뱉지 않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돈다는 것은 경ㆍ률 가운데에는 규칙이 있어서 오른쪽으로 돌게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왼쪽으로 돌변 신(神)에게 꾸지람을 듣고 나아가 왼쪽으로 맥적탑(麥▼(艹/積)塔 :麥은 물질의 단위로서 매우 작은 치수)을 돌면 속인들에게 꾸지람을 받나니 그러한 무리들이 많다. 요즈음 일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천시(天時)에 순응하여 서북쪽을 향해 돌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해 공경한다. 혹은 백 바퀴ㆍ열 바퀴ㆍ일곱 바퀴를 도는 것은 각각 나타내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항상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삼존(三尊:佛ㆍ法ㆍ僧)을 공양하고, 삼독(三毒:貪ㆍ瞋ㆍ癡)을 그치게 하며, 삼업(三業:身ㆍ口ㆍ意)을 맑게 하고 삼악도(三惡道:地獄ㆍ餓鬼ㆍ畜生)를 소멸하여 없애며, 삼보(三寶)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가 때문이니라.’ 『화엄경(華嚴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일 탑을 돌려고 하면 마땅히 셔원해야 한다. 중생들이 복을 시행(施行)하고 도의 뜻을 끝까지 통하게 해달라고.
탑을세 번 돌때에는 마땅히 서원해야 한다. 중생들이 한결같은 뜻을 얻고 네 가지 기쁨이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또 『현자오계경(賢者五戒經)』에서 말하였다. “탑을 세 바퀴 도는 것은 삼존에 대하여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니, 첫째는 부처님이요, 둘째는 법이며, 셋째는 승가이다. 또 삼독(三毒)을 멸하여 없애기를 생각하는 것이니, 첫째는 탐냄이요, 둘째는 성냄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탑을 돌 때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머리를 숙여 땅을 보고, 둘째는 벌레를 밟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좌우를 돌아보지 않아야 하고, 넷째는 탑 앞의 땅에 침을 뱉지 않아야 하며, 다섯 째는 중간에 멈추어 서서 다른 사람과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나라.”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범천왕(梵天王) 등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모든 성문들이 현재와 미래에 삼업(三業)이 서로 호응하고 또 세 가지의 보리(菩提)와 서로 호응하여 유학(有學)이거나 무학(無學)이거나 간에 계율을 원만하게 지키며, 많이 듣고 잘 행하여 모든 중생들을 삼유(三有:三界)의 바다에서 제도하면 모든 시주(施主)들은 나의 성문들을 위하여 탑과 절을 짓고 또한 일체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권속들까지 너희들에게 부촉할 것이니, 그들로 하여금 악한 왕이 그릇된 법으로 괴롭히고 혼란하게 하지 말도록 하라.’ 그 때 범천왕과 제석천왕ㆍ용왕ㆍ야차 등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 바가바(婆伽婆)시여, 이미 있는 일체 여래의 탑사(塔寺)와 아란야(阿蘭若)의 처소와 또 미래 세계에서 집에 있거나 출가한 사람으로서 세존(世尊)의 성문ㆍ제자들을 위하여 탑사를 지은 곳에 우리들은 다 그것을 수호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체의 모든 어려움과 두렵고 무서움을 여의게 하고, 또 음식ㆍ의복ㆍ침구ㆍ탕약 등 일제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공급해 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주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들은 또한 마땅히 보호하고 지키며 양육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칠불경(七佛經)』에서 말하였다. “승가의 가람(伽藍)을 수호하는 신(神)에 열여덟 종류가 있다. 첫째 이름은 미음(美音)이요, 둘째 이름은 범음(梵音)이며, 셋째 이름은 천고(天鼓)요, 넷째 이름은 탄묘(歎妙)이며, 다섯째 이름은 탄미(歎美)요, 여섯째 이름은 마묘(摩妙)이며, 일곱째 이름은 향음(香音)이요, 여덟째 이름은 사자(師子)며, 아홉째 이름은 묘탄(妙歎)이요, 열째 이룹은 범향(梵響)이며, 열한 째 이름은 인음(人音)이요, 열두째 이름은 불노(佛奴)이며, 열셋째 이름은 탄덕(歎德)이요, 열넷째 이름은 광목(廣目)이요, 열다섯째 이름은 묘안(妙眼)이요, 열여섯째 이름은 철청(徹聽)이며, 열일곱째 이름은 철시(徹視)요, 열여덟째 이름은 편시(遍視)이다. 사찰에는 이미 신이 있어 보호해주나니, 절에 살고 였는 사람들도 또한 마땅히 더욱 노력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하라. 현재의 과보를 부르게 될까 두렵다.”
031_0034_a_02L[自述] 서역 사람과 같다. 무릇 그 남녀들이 장차 가람에 갈 때에 절문 밖에 이르러 만나게 된 것을 경하하여 먼저 의복을 여미고 통틀어 한 번만 예배한다. 절문 안에 들어가서는 다시 한 번 절한 연후에 조용히 편안하게 바로 나아가되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승방(僧坊)에 가는 사람에게는 일곱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믿음을 내는 것이요, 둘째는 예배하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듣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을 지극히 해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뜻을 생각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대승(大乘)으로 회향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곱 가지 선행에 머무르면 가장 홀륭하고 최상(最上)이어서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욱가장자경(郁伽長者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야, 집에 기거하는 보살이 불사(佛寺)나 정사(精舍)에 갈 때에는 마땅히 절문 밖에 멈추어 서서 마음을 다져 예를 올리고 그런 연후에 마땅히 정사에 들어가서 스스로 생각하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어느 때에나 이와 같은 절에 살면서 티끌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까?〉’” 또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집에 살고 있는 보살이 만약 불사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들어가려고 할 때에 사찰문 밖에서 온몸을 땅에 던지고 마땅히 이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 〈이곳은 착한 사람이 사는 곳이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행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를 올려야 한다. ) 만약 모든 비구들이 위의를 구족한 것을 보거든 보고 난 뒤에 공경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하며 친근히 하고 문안해야 하느니라.” 또 『자애경(自愛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어떤 국왕은 부처님의 처소에 갈 때 멀리 정사를 보고는 곧 수레에서 내려 일산을 거두고 칼을 풀어 놓고 신을 벗고 두 손을 마주잡고 바르게 나아갔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결어갈 때에는 앞을 바로 보고 돌아설 때에는 몸을 완전히 돌리거나 걸어갈 때에는 먼저 발꿈치를 내리고 다음에 발가락을 내린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가거나 올 때는 편안하고 조용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발을 들고 발을 내려 놓으며 땅을 보고 걸어야 한다. 이것은 산란한 마음을 피하기 위함이고 중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니, 이것을 물러나지 않는 보살상이라고 한다.” 또 『서국사도(西國寺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세 번 예배를 한 뒤에는 부처님의 주변을 세 바퀴 돌 고 패찬(唄讃)9)을 세 번 부른다. 부처님께 예배를 마치고 난 뒤에 비로소 승방(僧房)으로 간다. 방 밖에서 한 번 절한 뒤에 방에 들어가서 먼저 상좌(上座)를 보고 차례로 아래 사람에게까지 각각 세 번 절하며 스님이 많을 때에는 한 번만 절을 한다. 만약 법답지 못한 일을 보더라도 비방하거나 나무라지 말라. 만약 비방하고 꾸짖는 말을 하게 되면 스스로 좋은 이익을 잃을 뿐만 아니라, 절에 들어가는 법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무릇 절에 들어가는 사람은 칼이나 몽둥이와 잡스러운 물건들을 버린 연후에 절에 들어가야 한다. 칼이나 몽둥이들 버리는 것은 삼보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요, 잡스러운 물건을 버리는 것은 삼보에게서 구걸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우선 이 두 가지 허물을 버린 뒤에 비로소 절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 순종해서 행해야 하고 부처님을 거슬러 행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장애가 있어서 왼쪽으로 돌아야 할 경우에는 항상 부처님께서 오른쪽에 계신다고 생각해야 하며, 들고 날 때에는 모두 얼굴을 돌려 부처님을 향해야 하느니라. 삼보에게 예배하는 것은 항상 그 체(體)는 오직 이 하나뿐임을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법을 만족하리 만큼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말하고, 깨달은 도를 법이라고 말하며, 부처님의 도를 배우는 사람을 스님이라고 말히는데, 그렇다면 일체 범부와 성인의 본체는 똑같아서 둘이 없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절에 들어갈 때에는 머리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높히 쳐다보지 말고 땅에 벌레가 있는 것을 보거든 잘못해서 밟아 죽이지 말아야 하고, 마땅히 패찬(唄讃)하여 찬탄하고 승가의 땅에 침을 뱉지 않아야 하며, 만약 풀과 나무와 깨끗하지 못한 것을 보면 곧 반드시 그것을 치워야 하느니라.” 또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승사(僧寺)에 들어간 뒤에는 먼저 부처님의 탑에 예배하고 다음에 성문(聲聞)의 탑에 예배하며 마지막에는 제일 상좌에게 예배하고 나아가 제사 상좌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예배해야 하느니라.”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만일 절에 들어갔을 때 스님이 많으면 다만 스승에게만 따로 예를 올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꺼번에 예를 올리고 가야 한다.” 또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출가한 다섯 부류의 대중들과 죽은 사람의 탑과 여래의 탑에 예배해야 한다.” 또 『오백문사(五百問事)』에서 말하였다. “제자는 스승의 무덤을 예배해야 하나니, 은혜를 갚기 위한 까닭이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탑 가운데에서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는 예를 올리지 않아야 한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탑과 성문의 탑 앞에서는 자타(自他)가 서로 예배해서는 안 된다. 또 『오백문사』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탑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예를 올리면 죄를 얻는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평상 위에서 예매하지 않아야 한다. 요즈음 자주 있는 일로서 여러 절에서나 속가에서 도속(道俗)들이 평상 위에서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이 보인다. 이것은 커다란 교만이다. 비유하면 대왕에게 예배하려고 할 때에 어찌 평상에 있으면서 예배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왕에게도 오히려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데, 더구나 법의 왕을 거기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비니모론(毘尼母論)』에서 말하였다. “가죽신인 부라(富羅)를 신고 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이것(부라)은 가죽신의 총체적 이름이다.].” 『오백문사』에서 말하였다. “만약 깨끗한 가죽신이나 짚신 등을 신었으면 예배할 수 있다.”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사람들에게 예배를 받을 때에는 벙어리 염소처럼 잠자코 있지 말고 마땅히 서로 안부를 묻되 병이 없는지, 고민하는 일이 없이 안락한가의 여부와 오느라고 피곤하지 않은가를 물어야 한다.” [自述] 만약 어떤 사인(士人)이 혹 곤란한 일이 있거든 반드시 절에 가서 자되 스님의 침상에 누워 자면 안 된다. 반드시 사사롭게 쓰지 않아야 하고 잠자리를 빌릴 때에는 법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스님과 같은 침상에 누워 자면 안 된다. 그러므로 『보량경(寶梁經)』에서 말하였다. “스님과 같은 침상을 쓰면 반신불수(半身不遂)로 말라 죽으며 지옥에 떨어져서 큰 고통을 받는다. 스님께서 잠들지 않있을 때에 먼저 자면 안 되며 농담이나 우스개 말과 법답지 않은 말로 위의(威儀)를 잃으면서까지 대중의 마음을 흔들지 말라. 만약 대소변이나 콧물이나 가래침이 나을 때라도 법을 구하기 위하여 묵으면서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다. 잠을 잘 때엔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붙이고 다리들 서로 포개며 마음을 밝은 모습에 두고 마땅히 일찍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여 출가한 이유를 나타내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반듯이 눕는 것은 바로 아수라(阿修羅)가 눕는 방법이요, 땅에 엎드려 눕는 것은 바로 아귀(餓鬼)가 눕는 방법이며, 왼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눕는 것은 바로 탐욕이 많은 사람이 눕는 방법이요,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닿도록 눕는 것은 출가한 사람이 눕는 방법이다. 여러 스님들이 일어나가 전에 일찍 일어나서 위의와 옷을 엄숙하게 하고 승방 앞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사미위의경(沙彌威儀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스승의 방에 들어갈 때에는 꼭 손가락으로 세 번 두드려야 한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스승의 방에 들어갈 때에는 마땅히 다섯 가지 법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밖에서 손가락으로 두드려야 하고, 둘째는 마땅히 모자를 벗어야 하며, 셋째는 예를 올려야 하고, 넷째는 똑바로 서 있다가 앉으라고 하면 비로소 앉아야 하며, 다섯째는 경전 지니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제자는 마땅히 새벽에 일어나서 먼저 오른발을 스승의 방에 들여놓고 나서 머리와 얼굴을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 편안히 주무셨느냐고 문안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하였다. “제자가 스승을 뵐 때에는 마땅히 여섯 곳을 피해야 한다. 첫째는 맞바로 앞에 있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바로 뒤에 있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너무 멸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하고, 넷째는 너무 가깝게 있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높은 곳에 있지 않아야 하고, 여섯째는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서지 않아야 한다. 마땅히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곁에 서서 스승의 작은 말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나니, 어른의 힘을 크게 소모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갈 때에도 위의와 행동이 다 스승에게서 떠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선견론(善見論:善見律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제자가 스승를 따라 다닐 때에는 발로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서는 안 된다.” [自述] 또한 여인이 절에 들어가는 법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다만 남자보다 윗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고, 모양을 내거나 웃으면서 이야기하거나 얼굴에 연지(胭脂)나 분(粉)을 바르고 눈썹을 그려 가식(假飾)하거나 법답지 않게 희롱하거나 서로서로 배척하거나 손으로 사람을 더듬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반드시 마음을 조섭하고 얼굴을 바르게 하여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차례에 의하여 향을 가지고 일심으로 공양하고 참회하고 자책하며 여인으로 태어나 항상 간격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이 오묘한 법에 대하여 닦고 받들어 그 원인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멋대로 하지 말고 남의 의견으로 말미암아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깊이 슬퍼하고 불쌍히 여겨라. 만약 사미(沙彌)를 보더라도 큰 스님과 같이 예우하고 지위가 낮다고 하여 공경하지 않거나 하지 말라. 이것은 곧 큰 스님을 낮추고 속가에 있는 사람을 높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등의 법을 애써 실천해야 한다. 이런 법의 작용이 너무 많으므로 『법원주림(法苑珠林)』일백 권 안에 있는 『사녀편(士女篇)』에 갖추어 수록하였다.
[自述] 만약 남녀들이 닦아야 할 일을 다 행하여 마친 뒤에 절에서 세 번 예배하고 다시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합장하고 범패로 찬양한 연후에 물러가야 하며, 절문 밖에 나아가 다시 한 번 예배해야 한다. 만약 스님을 뵈었을 때엔 대중의 수효가 적으면 각각 세 번썩 예배하고 승려의 수효가 만약 많을 때에는 한꺼번에 세 번 예배하고 하직해야 한다.” 그러므로 『선견론』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 예배할 때에는 세 번 돌고 세 번 절하며 또 사방에 절하라. 열 손 가락을 합하여 합장한 손을 이마에 대고 물러나되 절대로 여래를 보지 말고 다시 한 번 예배하고 그 앞을 돌아서 떠나가라[삼보를 연모하여 거듭 은혜 갚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릇 절에 들어가는 행(行)이 세간을 해탈하는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요, 그것을 위하여 절을 짓는 사람이라면 정토(淨土)을 열 것이고, 승가에 공양하는 이라면 출리(出離)의 궤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더랴운 세속의 비루한 성질을 생각하고 가람(伽藍)의 깨끗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니, 소유하고 있던 것을 보시함에 있어서 법식에 어긋날까 두렵다. 또한 집에 돌아가더라도 조금이나마 희사(喜捨)하고 스스로 속죄하여 스님에게는 법의 보시가 있고 속인에게는 재물의 혜시(惠施)가 있을을 나타내야 하나니, 그 거동이 법에 맞으면 안팎이 모두 이로울 것이다.”
031_0035_c_02L『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에 의거하여 말한다. “새것을 만드는 것은 묵은 것을 수리하는 것만 못하고 복을 짓는 것은 화를 피하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말한 것을 정험할 수 있다. 어떤 마을에 탑사(塔寺)ㆍ고분(故墳)ㆍ가람(伽藍)ㆍ당전(堂殿)이 썩어 무너진 것이 있었다. 사옥(舍屋)이 무너지고 석선(蓆扇:멍석)과 봉호(蓬戶)는 연기나 먼지를 막지 못하며 옹유(瓮牖)와 모자(茅茨)로는 서리와 이슬을 가리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문과 담이 모두 헐어져서 더러운 물질이 섬돌에 가득차고 길에는 사람의 자취가 끊겼다. 그러나 승려들은 떠돌아다니기만 할 뿐 고치지도 않고 단장하지도 않아 그것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허물어져 가니, 그 짓는 죄와 허물이 잠시도 쉬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도 등불과 춧불이란 것은 본래 들어 본 적이 없었고 대낮에도 번기와 꽃은 원래 보질 못했다. 법당에는 범패(梵唄)소리가 끊어졌고 향로에는 다만 재와 먼지만 가득하며, 마침내는 악귀로 하여금 영(靈)처럼 행세하게 하고 선신으로 하여금 호위하는 것을 버리게 했다. 가람이 단단하지 못한 것은 곧 승려들이 게을렀기 때문이요, 부처님 법이 이미 쇠한 것도 또한 속인들이 공경함이 없었기 때문이니, 이런데도 걱정하지 않고서 다시 그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또 『보량계경(寶梁契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현자(賢者)의 얼굴 위에 국왕이 될 무늬가 있었다. 관상장이가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그에게 딸을 시집보냈다. 뒷날 어느 때에 현자는 승사(僧寺)에 들어가서 가람에 의지하여 살았다. 그러다 보니 교만한 마음이 생겼고 그 때문에 국왕이 될 무늬를 잃고 큰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 『살차경(薩遮經)』에서 말하였다. “탑과 절과 여러 불상들이 걸리적거린다 하여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이와 같은 악한 사람은 악한 중생를 속에 포섭되어 있어서 상품(上品)으로 다스려진다.” 또 『십륜경(十輪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절을 부수거나 비구를 살해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칠 때에 사지의 뼈 마디가 지끈지끈 아프고 여러 날 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죽고 나면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져서 여러 가지 고통을 갖추 받는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탑 위를 쓰는[掃]데에는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신을 신고 올라가면 안 되고, 둘째는 부처님을 등지고 탑을 쓸면 안 되며, 셋째는 탑 위의 좋은 흙을 가져다가 밑에다 버려서는 안 되고, 넷째는 불상 위에 있는 묵은 꽃을 내리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마땅히 하루에 한 차례씩 손을 씻고 스스로 깨끗한 수건을 가져다가 불상을 털고 닦아야 하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반드시 먼저 땅에다 물을 뿌리고, 둘째는 반드시 땅을 고르며, 셋째는 반드시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고, 넷째는 거꾸로 쓸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바람부는 반대로 쓸지 않아야 한다.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좋은 흙을 버리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반드시 제 손으로 풀을 뽑아야 하며, 셋째는 반드시 중간 흙을 가져다가 밑에다 옮겨두어야 하고, 넷째는 사방 비질한 곳에 흔적이 남지 않게 해야 하며, 다섯째는 탑 앞의 여섯 걸음 정도까지 깨끗하게 쓸어야 한다.“[사무가 바쁠 때에는 여섯 걸음으로 한정하지만 한가하여 일이 없을 때에는 많이 쓸면 쓸수록 더욱 좋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중생이 깨끗한 마음으로 많은 스님들에게 공양하고 여래의 탑을 쓸면 목숨을 마친 뒤에 의락천(意樂天)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뼈와 살이 없고 또한 더러운 때도 없으며, 향기가 능히 일백 유순(由旬)까지 풍기고 그 몸은 깨끗하기가 마치 맑은 거울과 같을 것이다.” 또 『정법념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복밭[福田]을 아는 불탑이나 또는 승려들의 방사(房捨)가 비바람에 무너진 것을 보고 복덕을 지을 마음으로 바르고 꾸미고 수리하고 보수하며, 또 다른 사람을 시켜 오래된 탑을 수리하게 하면,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에 백신천(白身天)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몸은 곱고 희며, 산호(珊瑚) 숲에 들어가서 여러 천녀(天女)을 스스로 즐길 것이다. 그 업이 다하여 다시 물러나와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몸은 곱고 흴 것이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한 염부제(閻浮提)만한 승방을 쓸더라도 그것은 한 손바닥만한 불탑을 쓰는 것만 못하다.”[『성론(成論:成實論)』에서도 똑같이 말하였다.] 또 『찬집백연경(撰集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땅을 쓸면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첫째는 제 마음의 때를 없애고, 둘째는 남의 때를 없애 주며, 셋째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넷째는 마음을 조복(調伏)받으며, 다섯째는 공덕을 증장(增長)시켜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또 『무구청정녀문경(無垢淸淨女問經)』에서 말하였다. “땅을 쓸면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첫째는 제 마음이 청정해지고 남을 보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셋째는 하늘이 마음 속으로 기뻐하고, 넷째는 단정한 업(業)을 쌓으며, 다섯째는 목숨을 마치면 좋은 세계인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또 『사미위의경(沙彌威儀經)』에서 말하였다. “땅을 쓰는데에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사람을 등지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거슬러 쓸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마땅히 물을 뿌려야 하고, 넷째는 마땅히 깨끗하게 해야 하며, 다섯째는 마땅히 나누어 버리는[分却] 것이다.” 또 『증일경(增一經: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불탑을 쓰는데에 다섯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땅에 물을 뿌려야 하고, 둘째는 기와 조각이나 돌을 제거해야 하며, 셋째는 그 땅을 평평하고 바르게 해야 하고, 넷째는 단정한 마음으로 땅을 쓸어야 하며, 다섯째는 더렵고 추악한 것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땅을 이미 깨끗하게 하고서 능력에 따라 한 가지의 향과 꽃을 땅 위에 흩어 공양하면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꽃을 흩어 깨끗한 광명을 장엄하고 미묘한 꽃으로써 장막을 만들어 장엄하며 갖가지 종류의 꽃을 시방에 두루 흩어 모든 여래께 공양하여라.
또 『소법멸진경(小法滅盡經)』에서 말하였다. “훗날 겁화(劫火)가 일어날 때에도 일찍이 지어놓은 가람(伽藍)은 그 불에 타지 않고 마침내는 금강계(金剛界)의 토대가 되느니라.” 또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오백 아라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각 전세에 행한 행업과 지은 공덕과 지금 나를 만나 도를 증득한 인연을 말해 보아라.’ 그 때 어떤 아라한이 았었는데 그 이름은 바갈다리(婆竭多梨)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기억해 보니 과거 무앙수겁(無央數劫) 전에 어떤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명호는 정광(定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뒤에 사리(舍利)를 골고루 나누어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습니다. 법이 없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스스로 살아갈 방법이 없어 밸감을 파는 것으로 업을 삼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늪지대에 나가 나 무를 하다가 멀리서 늪 속에 있는 한 탑사(塔寺)를 보았는데, 그 탑은 매우 우 뚝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그는 곧 탑의 주변에 이르러서 불상을 쳐다보고 기뻐하면서 예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오직 여우와 이리, 나는 새와 달라는 짐승들이 머물러 자는 곳으로서 풀과 나무, 가시덤불과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 그 속에 가득하였으며, 인적 이 끊어진 지 아주 오래되어 아무도 공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그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슬퍼는 하되 여래의 신령스런 덕을 깨달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저 무턱대고 기뻐만 하면서 풀과 나무를 베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쓸어 없앴습니다.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나서 기뻐하면서 그 둘레를 여덟 바퀴 돌고 나서 예배하고 떠나갔습니다. 이러한 공덕으로 인연하여 목숨을 마친 뒤에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났습니다. 온갖 보배로 된 궁전은 광명이 번쩍번쩍 빛났고 모든 하늘들 중에서 우뚝 솟은 그 최상의 훌륭함이란 이루 계신하여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 하늘의 수명을 마치고는 또 백 번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으며, 일곱 가지 보배가 저절로 생겨나 사천하의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그 후 다시 목숨을 마치면 항상 국왕이나 큰 족성이나 장자의 집에 태어나 풍부한 재산이 한량없이 많았으며, 얼굴이 단정하고 빼어나며 절묘하기가 짝이 없어서 사람들이 그를 보면 기뻐하여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걸어서 가려고 할 때에는 도로가 저절로 깨끗해지고 허공 중에서 수많은 꽃을 비오듯 내렸습니다.’ 바갈다(婆竭多)가 이어 말하였다. ‘옛날 가난했던 사람은 바로 지금 내몸이었습니다. 옛날 그 탑을 청소함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곳마다 자연 그대로였으며, 일 아승기 구십 겁 동안 악한 세계에는 떨어지지 않았으며, 천상과 인간 세계에서는 부귀하며 존경받고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리하여 자연 쾌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 최후의 몸으로 석가 모니부처님을 만나 부귀를 다 버리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어 삽명(三明)10) 육통(六通)11)과 팔해탈(八解腳)12)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능히 불ㆍ법ㆍ승에 대하여 미미한 선행을 조금이라도 지으면 태어나는 곳마다 받는 과보는 넓고 커서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기타(祇陀)태자는 옛날 비바시(毘婆尸)부처님 때에 남종과 여종 각 한 명씩을 보시하고 사묘(寺廟)를 청소하였다. 이러한 공덕 때문에 세상마다 항상 일곱 가지 보배로 장식한 궁전을 얻을 수 있었고 문호(門戶)의 양쪽에서는 언제나 금과 은이 저절로 생겨나고 남자와 여자가 받든 보배 발우에는 일곱 가지 보배가 가득 차 있어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었다. 밤중에는 항상 저절로 하늘의 군사 오백여 기병(騎兵)이 와서 그의 집을 호위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전륜성왕의 일곱 가지 보배란,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요, 둘째는 백상보(白象寶)며,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요, 넷째는 신주보(神珠寶)며, 다섯째는 옥녀보(王女寶)요, 여섯째는 주장신보(主藏臣寶)며, 일곱째는 주병신보(主兵神寶)이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사위국(舍衛國) 안에 어떤 장자가 있었다. 그는 탑사(塔寺)를 세우고 훗날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에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 그의 부인은 밤낮으로 남편을 사모하였기 때문에 몹시 시름하고 괴로워하였다. 그녀는 남편을 추모하였기 때문에 늘 남편이 세운 절을 청소하고 수리하였다. 남편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곧 부인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그녀에게 안부를 묻고 위로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나를 사모하기 때문에 매우 근심하고 시름하는 것이오?’ 아내가 즉시 대답하였다. ‘당신은 어느 하늘 사람입니까?’ 조금 있다가 대답하였다. ‘내가 바로 당신의 남편이오. 탑사를 지은 공덕의 인연 때문에 전상에 태어났는데, 그대가 나를 추모하며 탑사를 수리하고 고치는 것을 보고서 그대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 것이오.’ 아내가 말하였다. ‘좀 가까이 오십시오.’ 남편이 즉시 대답하였다. ‘사람의 몸에서는 냄새나고 더러워서 가까이 갈 수 없소. 당신이 다시 나의 아내가 되고 싶거든 부처님과 승가에 열심히 공양을 올리고 탑사를 수리하고 청소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하늘에 태어나게 해 달라고 소원하시오. 만약 하늘에 태어나면 내가 꼭 다시 그대를 내 아내로 삼을 것이오.’ 아내는 남편의 말대로 모든 공덕을 지으면서 하늘에 태어나게 해 달라고 발원하였다. 그 뒤에 그녀는 목숨을 마치고 나서 천상에 태어나게 되어 그들은 다시 부부가 되었다. 그들 부부는 서로 인도하여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시자 부부가 함께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였다. 이미 과를 얻고서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다.” 또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에 셔 말하였다. “옛날에 사위성에 어떤 부부가 실고 있었는데 그 부부에겐 자식이 없었다. 그들 부부는 정진하며 삼보를 믿고 공경하였다. 그러다가 아내가 일찍 죽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였기 때문에 도리천에 태어나서 천녀(天女)가 되었는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여 하늘에서도 비교할 만한 이가 드물었다. 천녀는 생각하였다. 〈나는 매우 단정하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에선 누가 나의 남편감으로 적임자일까?〉 그리고는 곧 천안(天眼)으로써 본래의 남편을 보았다. 그랬더니 지금 그 남편은 출가하였고 게다가 늙고 눈까지 어두웠다. 그러나 오로지 믿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탑묘(塔廟)를 소제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가 탑을 소제하므로 그는 틀림없이 하늘에 태어날 것임을 알았다. 천녀는 조금 있다가 내려가서 광명으로 밝게 비추면서 그의 남편 앞에 머물러 있었다. 비구(남편)는 그것을 보고 그 인연을 물었다. 천녀가 대답하였다. ‘나는 곧 당신의 부인으로 지금은 천녀(天女)가 되었습니다. 내가 살펴보았더니 천상에는 나의 남편감으로 적임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정진(精進)하여 항상 탑을 부지런히 소제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하늘에 태어날 것입니다. 만약 하늘에 태어나기만 한다면 한곳에 살면서 다시 나의 남편이 되어주시 기 바랍니다. 이런 까닭에 그 상황[情狀]을 여기에 와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뜻을 아뢰고 나서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의 남편인 비구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그 뒤부터는 더욱더 정진하여 탑묘를 수리하고 보수함으토써 공을 쌓아 점점 세력을 키웠더니, 결국은 네 번째 하늘인 도솔천상(兜率天上)에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천녀는 남편을 생각하고 다시 내려와서 말하였다. ‘당신의 복은 더욱 훌륭하여 마땅히 도솔천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다시는 그대를 남편으로 삼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떠나갔다. 비구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배나 더 정진하여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획득하여 삼명(三明)ㆍ육통(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갖추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비라성(迦毘羅城) 안에 어떤 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한량없이 많은 재물과 보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부인은 한 아이를 낳았는데 단정하고 절묘하여 보는 사람마다 공경하고 우러러 보았다. 그 아이는 점점 자라나서 부처님을 뵙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구십일 겁(劫) 전에 비바시(毘婆尸)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어떤 왕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반두말제(槃頭末帝)였다. 그는 사리를 거두어 네 개의 보배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렸다. 그 뒤 탑이 조금 허물어지자 어떤 동자(童子)가 탑에 들어가서 이 탑의 부서진 곳을 보고 화열한 얼굴과 기뻐하는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함께 그 탑을 바르고 수리하면서 발원한 뒤에 떠나갔다. 그는 이 공덕의 인연으로 구십일 겁 동안 지옥(地獄)ㆍ축생(畜生)ㆍ아귀(餓鬼)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렸으며, 항상 천상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추앙을 받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지금에 이르러 나를 만나 여러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고 출가하여 도를 증득한 것이니라.’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후세에 남긴 몸이 세운 팔만 개의 탑은 보배로 장식한 데다 높이는 백 장(丈)인데 위의 있는 봉황은 영악한 까마귀와 다르며 금 소반은 부처님의 손바닥을 대신하네.
포개진 두공[栱]은 조각(彫角)을 떠받들고 높은 처마는 나무 그물에 결려 있네. 보배의 땅은 못물 아래 모래 같고 바람에 울리는 풍경 쌓이고 쌓인 메아리와 같네.
깎고 깎아 천 가지 변화를 자아내고 단청(丹靑)은 온갖 형상 그려냈네. 연기와 노을은 때때로 나왔다 사라졌다 하고 신선(神仙)들은 잠깐 왔다가 가곤 하네.
새벽 안개는 절반쯤의 층계에서 피어오르고 흩날라는 번기[幡]는 구름 위에 닿았네. 떠 있는 무지개도 감히 쉬지 않거늘 날으는 곤(鵾)새13)인들 어찌 쳐다볼 수 있으리.
복의 땅에 금으로 만든 새끼 [繩]타고 내려오니 하늘의 과보가 어찌 헛된[虛枉]것이겠는가. 원하노니 저 배 꼬리나마 빌려준다면 저쪽 언덕을 그 누가 넓다고 말하리.
031_0038_a_02L생각해 보면 무릇 평범한 정(情)은 금(禁)하기 어렵다. 비유하면 산에 있는 원숭이가 항상 바깥 경계를 따르는 것 같고 또한 미쳐 날뛰는 코끼리와 같다. 세 가지 업이 고동(鼓動)치므로 연(緣)이 얽혀져 번성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정립하여 항상 제어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전에서 말하였다. “마땅히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지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業)이 악과 교류하게 하지 말고 몸의 계율과 마음의 지혜를 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게 하라.” 또 경전에서 밀하였다. “마음을 한 곳에 제어해 두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 심성(心性)이 미혹하고 전도되는 것은 아견(我見)이 먼저이다. 번뇌의 미혹은 조섭하기 어렵고 혼란스런 번뇌[亂使]는 항상 작용하면서 어느 때에나 교만을 부리므로 굴복시키기 어렵다. 스스로 그르다고 여겨 고요함에 처하면 삼독(三毒: 貪ㆍ瞋ㆍ癡)을 꺾어 항복시킬 것이다. 몸은 돌아다니지 않고 입은 잠자코 말하지 않으며, 잠자는 시간은 적고 깨어 있는 시간은 많으며, 항상 좌신하고 음식을 절제하며, 바른 법만을 생각하고 있고 없는 것[有無]이 아님을 알며, 몸을 곧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며, 생각을 매어 앞에 두는 등 이와 같은 따위의 가르침을 이름하여 섭념(攝念)이라고 한다.”
031_0038_b_02L『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열 가지 법을 닦아 행하면 곧 신통(神通)을 이루며 많은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첫째는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念佛]을 말하고, 둘째는 법을 생각하는 것[念法]을 말하며, 셋째는 대중을 생각하는 것 [念衆]을 말하고, 넷째는 계율 생각하는 것[念戒]을 말하며, 다섯째는 베풂을 생각하는 것[念施]을 말하고, 여섯째는 하늘을 생각하는 것[念天]을 말하며, 일곱째는 휴식을 생각하는 것[攝念息]을 말하고, 여덟째는 안반14)을 생각하는 것 [念安般]을 말하며, 아홉째는 몸은 항상 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는 것[念身非常]을 말하고 열째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 [念死]을 말하나니, 마땅히 잘 닦고 행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과 법과 성중(聖衆)을 생각하고 계율과보시, 그리고 하늘을 생각하며, 휴식(休息)과 안반(安般)을 생각하고 뒤에는 몸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까지 말하였네.
첫 번째의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정신을 오로지하여 부처님을 생각하되 여래의 형상은 공덕을 구족(具足)하였고 몸과 지혜가 가이없으며, 돌아다님과 가고 옴을 다 갖추어 아는 것이다. 하나의 법을 닦고 행하면 저절로 열반을 성취할 것이다. 부처님 생각하기들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하리니, 이것을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의 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정신을 오로지하여 법을 생각하되, 모든 욕애(欲愛)를 제거하여 번뇌[塵勞]가 없고 갈애(渴愛)하는 마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며, 욕심과 욕심 없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결박과 모든 덮음[蓋]의 병을 여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여러 가지 향기와 같아서 어떤 흠이나 어지러운 생각도 없으면 곧 신통을 성취하여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법 생각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하리니, 이것을 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의 대중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선을 오로지하여 여래의 성중(聖衆)을 생각하되, 질박하고 정직함을 성취하여 삿됨과 왜곡이 없으며, 위아래가 화목한 것이다 여래의 성중인 사쌍(四雙)과 팔배(八輩)15)를 마땅히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승려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할 것이니, 이것을 승려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 번째의 계율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계율이란 여러 가지 악(惡)을 멈추게 하기 때문에 계율은 능히 도를 이루어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며, 계날의 영락(瓔珞)을 몸에 차고 있으면 온갖 좋은 것을 나타나게 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길상병(吉祥甁)과 같아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성취하고 곧바로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면 저절로 열반을 이룩할 것이다. 계율 생각하는 것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하리니, 이것을 계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섯 번째의 베풂[施]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신을 오로지하여 베풀기를 갱각하되 이미 베풀어준 이상 영원히 후회하는 마음이 없고 보답받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 유쾌하게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꾸짖거나 헐뜯고 칼이나 몽둥이를 쓰더라도 마땅히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내가 베풀어 준 사람에게는 보시할 뜻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온갖 어지려운 생각들을 버리면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베풀어줄 생각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하리니, 이것을 베풂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의 하늘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신을 오로지하여 신업(身業)과 구업(口業)과 의업(意業)을 깨끗이 하고 더러운 행위를 짓지 않으며 계율을 지켜 몸을 완성하면 몸에서 광명을 놓아 비추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저 하늘 몸을 성취하는 것은 선업(善業)의 과보 때문이요, 저 하늘의 몸을 성취하는 모든 행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을 제거해 버리면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하늘을 생각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하리니, 이것을 바로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곱 번째의 휴식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마음과 뜻의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지성(志性)이 자상하고 또한 갑작스러움과 사나움이 없으며, 항상 전일(專一)한 마음으로 마음이 한가롭게 있는 것을 좋아하고 늘 방편을 구하여 삼매의 선정에 들어가며, 항상 탐하지 않기를 생각하여 흘륭한 광명이 맨 꼭대기까지 사무칠 것이다.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들을 제거해 버리면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휴식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하리니, 이것을 바로 휴식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덟 번째의 안반(安般)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신을 오로지하여 안반을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숨이 길 때에는 〈나는 지금 숨이 길다〉고 관(觀)하여 알고, 만약 다시 숨이 짧으면 그 또한 마땅히 〈나는 지금 숨이 짧다〉고 관하여 알며, 만약 숨이 지극히 차거나 지극히 뜨거워도 또한 마땅히 〈나는 지금 숨이 차고 뜨겁구나〉 하고 관하여 알고, 드나드는 숨의 길고 짧음을 분별하고 헤아려야 한다.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버리면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이 안반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할 것이니, 이것을 안반을 생각한다고 말하느니라. 아홉 번째의 몸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신을 오로지하여 몸을 생각하는 것이다. 발모(髮毛)ㆍ손톱ㆍ발톱ㆍ이ㆍ피부ㆍ살ㆍ근육ㆍ뼈ㆍ담ㆍ간ㆍ폐ㆍ심장ㆍ비장ㆍ신장ㆍ대장ㆍ소장의 곡직(曲直)과 방광(旁光)ㆍ똥ㆍ오줌ㆍ백엽(百葉)ㆍ창탕(滄蕩)ㆍ비포(脾泡)ㆍ눈물ㆍ침ㆍ가래ㆍ고름ㆍ피ㆍ지방ㆍ해골ㆍ뇌 등 그 어느 것이 이 몸인가? 이 몸은 흙이라는 요소, 물이라는 요소, 불이라는 요소, 바람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모두가 바로 부모님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서 온 것이며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이 육근(六根)은 여기에서 죽으면 장차 어느 곳에 태어날 것인가? 이렇게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버리면 저절로 열반을 이룩할 것이요, 몸을 생각히는 것을 여의지 않으면 곧 공덕을 획득할 것이니, 이것을 몸을 생각한다고 말하느니라. 열 번째의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선을 오로지하여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며 여러 갈래 세계로 오고 가면서 목숨은 자꾸 가서 멈추어 있지 않는 것이다. 모든 감관은 흩어지고 무너져서 마치 부패(腐敗)한 나무와 같다. 명근(命根)은 단절되고 종족은 나뉘어 헤어지며, 형제도 없고 메아리도 없으며 또한 아무 모양도 없다. 여러 가지 산란한 생각들을 없애버리면 저절로 열반을 이룰 것이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여의지 않 으면 곧 공덕을 획득할 것이니, 이것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송을 말한다.
부처님과 법과 그리고 거룩한 승가[聖衆] 나아가 몸과 죽음까지도 생각하였네. 비록 위의 것과 이름은 같으나 그 뜻은 각각 다르니라.
031_0039_a_02L또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에서 말하였다. “첫 번째,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몸은 금강(金剛)으로서 어떤 번뇌도 없다. 만약 다닐 때에는 발이 땅에서 네 치쯤 떨어지고 천 개의 수레바퀴 같은 모습의 무늬 자국이 땅에 나타나며, 발 밑에 모든 벌레들은 이레 동안 안온하거니와 만약 그것이 목숨을 마치더라도 모두 천상에 태어난다. 옛날 어떤 한 악한 비구는 본래 외도(外道)였으나 부처님을 비방한 것을 거짓으로 사과하고는 여래의 뒤를 좇아서 가다가 스스로 날벌레 한 마리를 죽여 부처님의 발자국에 놔두고 부처님께서 밟아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죽었던 그 벌레는 부처님의 발자국을 만나고는 잠시 후에 다시 살아날 수가 있었다. 만약 성읍(城邑)에 들어가셨을 때 그 문지방을 밟으면 천지가 크게 진동하고 온갖 종류의 음악 소리는 악기를 치지 않아도 저절도 울리며, 귀머거리ㆍ장님ㆍ벙어리 등의 모든 병이 저절로 나으며 부처님의 상호를 본 사람은 그 행을 따라 해탈하는 등 공덕으로 구제되는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온갖 행을 다 보았으나 운재(運載:실어서 운반함)가 제일이다. 이른바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그 뜻은 이와 같다. 두 번째, 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법이란 곧 번뇌[漏]의 주인이다. 법은 모든 부처님을 출현시키고 법은 또 부처님의 도를 생겨나게 한다. 【문】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법을 생각하라는 말을 먼저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라는 말을 나중에 하지 않있습니까? 【답】 법이 아무리 미묘하다 해도 그것을 능히 아는 이가 없으니, 그것은 마치 복장(伏藏)은 어느 곳에나 없는 곳이 없건만 반드시 누군가 그것이 있는 곳을 전부 보여주어야만 비로소 스스로의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법도 이와 같아서 이치가 아무리 현묘(玄妙)하다 하더라도 여래가 아니면 드러낼 수 없나니, 그런 까닭에 부처님 생각하는 것을 먼저 말하고 법 생각하는 것을 뒤에 말하였다. 세 번째, 승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사쌍(四雙)ㆍ팔배(八輩) 등 열두 현사(賢士)함으로써 이들이 곧 중생들의 좋은 복밭이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떤 박복한 비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범달마(梵達摩)였다. [율명(律名)은 나순(羅旬)이니 비구를 비유한 것이다.) 그는 일천 이백오십 명의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 대중 스님들로 하여금 밥을 얻어 먹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탓인지 아무도 몰랐다. 부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두 패로 나누어 결식하러 보냈는데, 한 패는 밥을 얻고 한 패는 밥을 얻지 못했다. 얻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다시 두 패로 나누어 보냈는데 반은 얻고 반은 얻지 못하였다. 이렇게 점점 진행되다 마침내 마지막에는 두 사람을 보냈는데, 한 사람은 음식을 얻고 한 사람은 음식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복이 없으면 아무리 발우가 앞에 이르러도 음식이 저절로 소멸하여 변화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처님께서 그의 액난을 불쌍히 여겨 손수 음식을 주시어 그의 발우에 있게 하였는데 복력(福力)으로 만든 음식이라서 변화하여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의 현재의 몸으로 복을 얻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두 멸진(滅盡)비구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 함으로써 그는 즉시에 복을 얻게 되었다. 그 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이 이 박복한 범마달을 불쌍하게 여겨 부처님께서 음식을 주셨다는 말을 듣고는 나도 지금 마찬가지로 그를 위해 복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곧 쌀을 보내기로 했다. 그 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서 쌀 한 톨을 물고 갔다. 그러자 사람들을 시켜 까마귀를 꾸짖었다. ‘왕이 범마달을 위해 복을 베풀었는데 너는 어째서 그것을 가져갔느냐?’ 까마귀는 곧 쌀을 물고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 이유는 이 비구가 승려가 된 복의 힘을 입어 새짐승조차도 침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좋은 복전은 이미 자신을 제도하고 다른 사람도 구제하여 삼승(三乘)의 도에 이른다는 것을 증험하여 알 수 있다. 승가 대중을 생각하는 법의 그 뜻은 이와 같다. 네 번째, 계율을 생각한다는 것은 오계(五戒)ㆍ십계(十戒)ㆍ이백오십계(二五十戒)로부터 오백계(五百戒)에 이르기까지 모두 몸과 입을 금지하고 제어하여 온갖 삿되고 그릇된 것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다. 육정(六情)을 제어하여 모든 욕념(欲念)을 끊고 안팎이 다 깨끗해져야 마침내 계의 성품에 호응하는 것이다. 옛날에 어떤 두 비구가 있었다. 그들은 함께 부처님의 처소로 가다가 가는 도중에 넓은 못[澤]에 이르러 물과 미음이 갑자기 다 떨어졌다. 그 때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 온갖 벌레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한 비구는 금지한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라 여겨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이 물을 마시면 매우 많은 살생을 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계율을 완전하게 지키다가 목숨을 마치리라. 〉 그 때 그는 목숨을 마치고 곧 천상에 태어났다. 한 비구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 물을 마시고 목숨을 보전해야만 부처님의 처소에 갈 수 있다. 죽은 뒤에 장차 어떤 세계에 태어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는 곧 벌레가 우글거리는 물을 마셔 매우 많은 벌레를 살해하였다. 그는 비록 부처님을 뵈을 수는 있었지만 나의 법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부처님을 향하여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 도반이 목숨을 마쳤습니다.’ 부처님께서 위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 하늘을 아느냐? 이 사람이 곧 너의 도반이니 계율을 보전한 공덕으로 곧 천상에 태어났다. 지금 그대는 비록 여기에 와서 나를 보았다 해도 나와는 거리가 매우 멀고, 저 사람은 비록 목숨을 잃었다 해도 항상 내 곁에 있다. 그대는 지금 나를 보지마는 그것은 곧 내 육신의 형체를 보는 것이니, 어떻게 참다운 계율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는 곧 너의 큰 스승이니, 만약 계율을 잘 지켜 계속하여 실천하면 그것은 곧 여래의 법신(法身)이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개 계율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속계(俗戒)요, 둘째는 도계(道戒)며, 셋째는 정계(定戒)이다. 오계(五戒)ㆍ팔계(八戒)ㆍ십계(十戒)ㆍ구족계(具足戒) 등을 속계라 하고, 무루(無漏)의 사제(四諦)를 도계라고 하며, 삼매에 대한 선(禪)의 생각을 정계라고 한다. 지혜[慧]로써 계율을 제어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무루가 되게 하면 곧 도계(道戒)에 합해진다. 성문(聲聞)집안의 계율은 무릎 아래에 있는 꽃[膝華]과 같아서 움직이면 흩어져버리고, 보살[大士]이 계를 지남은 머리 위에 꽂은 꽃과 같아서 다니거나 멈추거나 간에 동요하지 않는다. 소승(小乘)은 몸을 단속하지만 움직이면 위의가 어긋나고 보살의 원심(願心)은 바깥의 법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대승과 소승의 궤법이 서로 다른 것은 형상과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록 안과 밖이 다르다 해도 모두 열반에 이를 수 있으니 그러므로 계율을 생각함이라고 말한다.” 또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또 도에 가까워지고자 하면 마땅히 네 가지 기쁨이 있어야 하나니, 그것을 잘 생각하고 행하라. 첫째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쁨을 여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쁨을 여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승가 대중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쁨을 여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계율을 생각하고 마음에 기쁨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기쁨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것들을 구족(具足)하게 하면 스스로 분명하게 깨달을 것이다. 부디 바른 법도를 생각하여 몸의 요점을 알기 바라면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길을 끊어 없앨 수 있을 것이요, 비록 천상과 인간 세상을 왕래하더라도 일곱 생(生)를 지나지 않고스스로 고제(苦際)를 끊을 것이다.”[염시(念施)와 염천(念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마땅히 생각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마땅히 부처님의 경계(經戒)를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를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마땅히 부처님의 은혜는 너무도 커서 갚기 어려운 것임을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땅히 부처님의 정진과 나아가 열반까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마땅히 비구 승가를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마땅히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땅히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마땅히 동문수학하는 친구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땅히 일체 사람들을 모두 해탈시켜 모든 고통을 여의게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큰 바닷가의 모래를 이루 다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전후에 지은 선악(善惡)의 재앙과 복에 대해서도 이루 다 헤아려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목숨이 마칠 때 악을 지었으면 나쁜 곳을 만나게 되고 선을 지었으면 좋은 곳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재앙과 복은 모두 마리 마련된 곳이 있고, 또한 부모ㆍ형제ㆍ처자 등 권속들까지도 미리 다 마련되어 있어서 도를 증득하면 그것이 모두 정지되지만, 만약 도를 증득하지 못하면 곧 이런 것들이 다 끊어지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스스로의 몸이 덧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느나라.’ 그러자 어떤 비구 한 사람이 곧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저는 항상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기간은 기껏해야 오십 년 정도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러자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삼십 년은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십 년은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또 다른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일 년은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한 달은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하루는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한 시간은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또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숨 한 번 쉬는 동안은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쉰 숨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것이 곧 뒷세상이니라. 사람의 목숨은 너무도 빨라서 호흡 사이에 달려 있느니라.’ 또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설법하는 비구는 또한 마땅히 항상 생각해야 한다. 즉, 이 몸은 괴롭고 공(空)한 것이며, 덧없는 것이요 나[我]란 것도 없는 것이며,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관찰하여 그 생각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 왜냐 하면 열두 가지 생각을 꼭 얻어야 성인의 법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그 열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기 자신을 성취시키겠노라고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 성취시킬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사람의 몸 얻기를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넷째는 종성가(種姓家)에 태어나기를 생각하며, 다섯째는 불법 가운데 신심을 얻기를 생각하고, 여섯째는 태어나는 곳에 그 공(功)을 더하지 않고 깨닫는 법을 얻기를 생각하는 것이니라. 일곱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모든 감관이 완전하게 갖추어지기를 생각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불ㆍ세존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여 만날 수 있기를 생각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바른 법 연설하기를 생각하는 것이요, 열째는 설한 법이 항상 오래도록 머물러 있기를 생각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법을 오래도록 닦아 행하기를 생각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항상 모든 중생들을 가없이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생각한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이 열두 가지 생각을 원만하게 갖추면 성인의 법을 얻을 수 있느니라.”
031_0040_c_02L불과(佛果)는 아주 멀고 멀어서 거기에 오르는데에는 계단이 있고, 법운(法雲)은 지극히 높고 높아서 거기에 이르는데에는 절차가 있다. 그런 까닭에 큰 정성을 내면 곧 현묘한 덕은 미래 세상을 버추고 처음으로 큰 서원을 세우면 곧 미묘한 소원은 허공 세계에 두루하게 된다. 한 생각이라도 뜻을 일으키면 곧 진겁(塵劫)의 상서로운 꽃이요, 반 시각이라도 정생을 다하여 실천하면 곧 대천(大千)세계의 감로(甘露)이다. 대개 이것은 대승의 뿌리이고 터전이며 종지(種智)의 나루요 거리[衢]인 젓이다. 또 『지지론(地持倫)』에서 말하였다. “보살의 발원에는 대략 말하면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는 발심원(發心願)이요, 둘째는 생원(生願)이며, 셋째는 경계원(境界願)이요, 넷째는 평등원(平等願)이며, 다섯째는 대원(大願)이다. 저 보살은 처음에 최상의 보리심(菩提心)을 내었으니 이것을 발심원이라고 말하고, 미래 세상의 중생을 위하여 좋은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나니 이것을 생원이라고 말하며, 모든 법과 한량없이 많은 등류의 여러 가지 선근(善根)을 바르게 관찰하고 경계(經戒)생각하기를 원하나니 이것을 경계원이라고 말하고, 미래 세상의 일체 보살들이 일을 잘 섭수하기를 원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평등원이라고 말하며, 대원이라고 하는 것은 곧 평등원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은 또 열 가지 큰 서원을 말한다. 첫째, 온갖 종류로써 한량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원한다. 둘째,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니기를 원한다. 셋째,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 통달하기를 원한다. 넷째,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 마침내 반열반(般涅槃)에 들기를 원한다. 다섯째, 보살의 일체 바른 행 수행하기를 원한다. 여섯째, 일체 중생을 성숙(成熟)시키기를 원한다. 일곱째, 일체 세계에서 다 나타나 변화하기를 원한다. 여덟째, 일체 보살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편을 가지고 대승(大乘)으로 제도하기를 원한다. 아홉째, 온갖 바른 행(行)과 방편에 걸리는 것이 없기를 원한다. 열째, 최상의 경지인 정각(正覺) 성취하기를 원한다. 이 보살은 초지(初地)에 머물러 있으면서 방펀과 깨끗한 믿음을 현재에 수행하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도 열 가지 큰 서원을 세운다. 첫째, 깨끗한 마음으로 항상 모든 부처님 공양하기를 원한다. 둘째,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 수호(守護)하기를 원한다. 셋째, 모든 부처님께 일찍이 없었던 법 굴리기를 권청(勸請)한다. 넷째, 보살의 바른 행(行)을 따르고 수행한다.
다섯째, 일체 가세간[器界]을 다 완전하게 성숙시키기를 원한다. 여섯째, 일체 세계에 다 변화된 몸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일곱째, 스스로 부처님의 세계를 깨끗하게 하기를 원한다. 여덟째, 일체 보살의 동일한 방편을 가지고 대승으로써 교화하기를 원한다. 아홉째,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되 모든 것이 헛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열째, 일체 세계에서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하여 모든 부처님의 일 짓기를 원한다.” 게송을 말한다.
목장(牧杖)엔 믿음이 제일 급하고 조현(調絃)엔 사치하지 않는 게 가장 귀하다네. 등원심(騰猨 :心)을 어떻게 제어할거나. 일마심(逸馬:心)란 본래 염추게 하기 어려운 것을.
마음이 치달려 소리와 색(色)만 익히고 관개(冠蓋)는 호화로움을 서로 다투네. 이미 왕손(王孫)의 집에 들어왔건만 도로 계륜(季倫)의 집으로 가려고 하네.
고요한 마음은 업장의 번뇌를 맑게 하고 생각을 덜면 몸의 티끌 제거하네. 바라노니 이 칠각지(七覺支)를 의지하고 때로 작용하되 세 가지 삿됨을 변하기 원하노라.
1)박구라(縛俱羅)ㆍ바구려(波鳩蠡)ㆍ박구로(薄拘盧)라고도 쓰며, 선용(善容) 또는 위형(偉形)이라고 한역한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얼굴과 몸매가 매우 단정하여 한 번도 병을 앓은 적이 없고 향상 여러 사람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기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에 계모의 손에 다섯 번이나 죽을 뻔 했으나 다행히 면하고 일백육십 살을 살아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장수(長壽) 제일이라고 한다.
2)봉함한 자리에 아래 위가 엇물리게 찍는 도장을 말한다.
3)무우수(無憂樹)를 말한다. 또는 필리차수(畢利叉樹)와 같다고도 한다. 석가세존께서 이 나무 밑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4)노반(露盤盤) 또는 승로반(承露)이라고 한다. 탑 위에 설치한 상륜(相輪:九輪)의 맨 아래층에 있는 네 모진 반(盤)을 말한다.
5)비니(毘尼)에 어긋나는 죄. 부처님의 계율을 어긴 죄. 후세에는 전용하여 가벼운 죄를 지칭하게 되었다.
6)적을 망보는 지붕이 없는 전망대이다.
7)망루(望樓).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하여 만든 높은 건물. 적군의 동정을 살피기 위한 높은 누대.
8)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미세하고 그 수효가 많으므로 진(塵)이라고 한다.
9)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
10)아라한의 지혜에 갖추어져 있는 자재(自在)하고 미묘한 작용. 지혜가 분명히 대상 경계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고 한다. 육통(六通) 중 숙명통ㆍ천안통ㆍ누진통에 해당하는 숙명명(宿命明)ㆍ천안명(天眼明)ㆍ누진명(漏盡明)을 말한다. 첫째 숙명명은 구족하여 말하면 숙주수념지작증명(宿住隨念智作證明)』며 자기와 남의 전생에 생활했던 상태를 아는 것, 둘째 천안명은 갖추어 말하면 천안지작증명(天眼智作證明)이며 자신이나 다른 이의 다음 세상에 생활 상태를 아는 것, 셋째 누진명은 갖추어 말하면 누진지작증명(漏盡智作證明)이라 하며 지금 세상의 고통을 알아 번뇌를 끊는 지혜이다.
11)여섯 가지 신통력. 첫째 천안통(天眼通):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 둘째 천이통(天耳通):보통 귀로는 듣지 못할 음성을 듣는 신통. 셋째 타심통(他心通):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재하게 아는 신통, 넷째 숙명통(宿命通):전생의 일을 자재하게 아는 신통, 다섯째 신족통(神足通):부사의하게 경계를 변하여 나타내기도 하고 마음대로 날아 다니기도 하는 신통, 여섯째 누진통(漏盡通):자재하게 번뇌를 끊는 힘. 즉 여섯 가지 대상 물질로 인하여 몸의 바른 정기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밖으로 새어나가는 일이 완전히 끊어 진 신통을 말한다.
12)여덟 가지의 관념. 이 관념에 의하여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를 등지고 그것을 탐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버림으로 배사(背捨)라 하고, 또 이것으로 말미암아 삼계의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를 증득하므로 해탈(解脫)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팔배사(八背捨)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세부 항목은 불교사전을 참조할 것.
13)고대 전설 속에 나오는 부리가 붉고 목이 긴 학과 같이 생간 새.
14)다섯 가지 정심관(停心觀)의 하나. 범어로는 Ana-apāna로서 안나반나(安那般那)의 준말이다. 수식관(數息觀)이라고 한역하며 안나는 내쉬는 숨이고, 반나는 들이쉬는 숨이다.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헤아려 마음의 흔들림을 막는 방법으로 선관 (禪觀)의 첫문.
15)제자들의 수행 정진에 관해서 『아함경(阿含經)』에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수행 계위가 설해져 있다. 즉, 예류 (預流, sotāpatti, srotāpatti), 일래 (一來, Sakadāgāmin, sukrdāgāmin), 불환不還, anāgāmin), 아라한(阿羅漢, arahant, arhat)의 네 가지이며, 이것에 각각 ‘향(向:修道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과(果:修道에 들어간 단계)’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합하여 사향사과, 또는 사쌍팔배 (四雙八輩)라고 한다. 성도(聖道)에 있어서 번뇌를 단멸하는 정도에 따라 그 단계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사쌍팔배의 계위도 중요하지만 『중아함경 (中阿含經)』『복전경 (福田經)』에는 열여덟 가지 유학(有學)과 아홉가지 무학(武學)이 설해져 있다. 이것들은 사쌍팔배에 대하여 더욱 자세하게 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