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_0175_a_02L대개 선업과 악업의 작용은 진실로 세 가지 과보의 좋은 정조이니, 마치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유하면 여섯 갈래 세계의 명백한 정험과 같다. 그 세 가지 과보란 천후(天后)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홉 가지 색(色)의 깊은 은혜를 뒤집고 금왕(禽王)의 온전한 목숨을 외로이 던져 오올(五兀)1)의 절박하고 가혹함을 번갈아 받았으니, 이것은 곧 현보(現報)가 된다. 중생의 무리가 깊은 골짜기에 잠기고 빠져 그 정신을 윤표(輪飄)에 올렸으나 고치지 못했고, 몸은 역대의 재앙으로 고달폈으나 왕자(王子)가 눈 잃음을 깨닫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생보(生報)이다. 외도(外道)들은 재앙을 비상(非想)에 풀어놓아 법을 잃어 처음과 끝에 대하여 영원히 미혹되어 사나운 이리에게 날개를 붙여 날고 잠기며 곤혹스러움을 느낀 것이 헤아리기 어려웠으니, 이것이 후보(後報)가 된다.
삼대(三代) 익상(溺喪)의 흐름이 현묘한 거울로 삼고 내변(來變)하는 배형(坏形)의 누(累)를 깊이 기억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사제(四諦)와 삼명(三明)의 방에서 깨어나게 하고 세 가지 과보와 다섯 가지 괴로움의 어둠 속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善男子)야, 중생들이 짓는 업(業)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현보(現報)요[현재의 몸으로 지극히 선하고 악한 업을 짓고, 곧 그 몸이 받는 것을 바로 현보라고 말한다], 둘째는 생보(生報)며[현재의 몸이 업을 지어 다음 생의 몸이 받는 것을 바로 생보라고 말한다], 셋째는 후보(後報)요[현재의 몸이 업을 짓고 또 다음 생에서는 받지 않고 제이ㆍ제삼의 생이 이미 지난 뒤에 받는 것을 바로 후보라고 말한다], 넷째는 과보가 없는 것이다. [무타등업(無他等業)2)이 바로 이것 이다.] 이 과보가 없는 업에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기는 결정되었으나 과보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요[이것은 삼시(三時)는 결정되어 변하지 않지만 업은 변경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과보가 결정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과보는 결정되었으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것이며[업의 힘은 결정되었기 때문에 과보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시기는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결정되지 않은 것이라 한다], 셋째는 시기와 과보가 다 결정된 것이요[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감지하는 때도 또한 결정된다], 넷째는 시기와 과보가 다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업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와 과보도 또한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중생들이 짓는 업에 구족(具足)과 불구족(不具足)이 있다. 만약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지으면 이것을 짓고 나서 구족하였다고 말하고, 만약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곧 바로 지으면 짓고 나서도 구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 지은 것이 있으나 구족하지 못했다고 한 것은 지은 업은 이미 결정되었으나 과보는 결정되지 않은 것을 말하고, 또 짓고 나면 또한 구족한다고 한 것은 지은 업이 이미 결정되었으면 마땅히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며,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과보는 비록 결정되었으나 시절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요,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한다고 한 것은 시기와 과보가 다 함께 결정되었다는 것이며,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계율을 지키고 견해가 올바르다는 것이다. 또 지은 것이 있은 뒤에도 구족한다고 하는 것은 계율을 훼손하고 견해가 삿 된 것이요, 또 짓고 난 뒤에도 구족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삼시(三時)로 참회 하는 것이며, 또 짓고 나면 또한 구족한다고 하는 것은 삼시로 참회하지 않는 것이다. 악(惡)이 이미 이러한 것처럼 선(善)도 또한 이와 같다.”
031_0175_b_02L『불설행칠행현보경(佛說行七行現報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섬길 만하고 공경할 만한 것으로서 이것은 세간에서 더할나위없는 복밭[福田]이니라. 어떤 것이 그 일곱 종류의 사람인가? 첫째는 사랑[慈]을 실천하는 것이요, 둘째는 불쌍히 여김 [悲]을 실천하는 것이며, 셋째는 기쁨[喜]을 실천하는 것이요, 넷째는 버림[捨]을 실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공(空)을 실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무상(無相)을 실천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무원(無願)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어떤 중생이든지 이 일곱 가지 법을 실천하면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그 과보를 획득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 때문에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洹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은 말씀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이 일곱 가지 일만을 말씀 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랑[慈] 등의 이 일곱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은 그 행(行)이 수다원에서부터 나아가 부처님의 자리까지 수행하는 것과는 그 일이 같지 않다. 비록 수다원 등을 공양하더라도 현재 세상에선 그 과보를 얻지 못하지만, 그러나 이 사람을 공양하는 사람은 현재 세상에서 그 과보를 얻는다. 그러므로 아난아, 부디 열심히 용맹정진하여 저 일곱 가지 법을 힘써 이룩해 야 하느니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건타위국(乾陀衞國)에 어떤 한 백정[屠兒]이 있었는데, 그는 오백 마리의 작은 소를 끌어와서 그 소를 다 형건(形犍 : 去勢)하려고 하였다. 그 때 어떤 내관(內官)이 돈을 주고 그 소를 사서 모두 놓아주었다. 그는 이 인연으로 현재의 몸에 곧 남자의 과보를 원만하게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왕가(王家)로 돌아가 사람을 보내 ‘아무개[某甲]가 밖에 있다’고 통보하여 아뢰게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그는 바로 우리 왕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제 마음대로 쏘다니고 있다. 전에는 일찍이 알려온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그렇게 알려왔는가?’ 그 때 왕이 곧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조금 전에 어떤 백정이 송아지 오백 마리를 끌고 와서 형(刑)으로 다스리려고 하기에 신이 곧 돈을 주고 사서 놓아주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신체를 원만하게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감히 바로 들어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놀라워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깊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었다. 대개 화보(華報)3)로 감득(感得)하는 것도 이와 같거늘 더구나 그 과보야 어찌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소를 잡아 파는 사람이 소를 몰고 길을 가다가 사람은 많은데 양식이 떨어져서 굶주림과 갈증이 너무도 심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쉬면서 의논하였다. ‘이 소들은 끝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저 소들의 혀를 끊어 굶주림과 목마름을 면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는 즉시 소금을 모든 소들의 입 안에 발랐다. 소가 소금의 맛을 탐내어 혀를 내밀어 소금을 핥을 적에 이들은 예리한 칼로 일시에 그 혀를 다 잘라 불에 구워 함께 먹었다. 그것을 다 먹고 나서 모두들 물가에 나아가 양치질하고는 다 양지(楊技)를 씹어 이를 닦은 뒤에 엄지 손가락으로 혀를 닦았다. 그 때 그 악업(惡業)의 힘 때문에 그들의 혀는 썩은 과일과 같아져서 한꺼번에 다 떨어져 나갔다.”[이상은 다 현보(現報)이니, 그 업이 중하기 때문이다.]
031_0176_a_02L『열반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목숨을 버리고 큰 고통을 받을 때에 종친(宗親)들이 둘러싸고 슬프게 울면서 오뇌(懊惱)하면, 그 사람은 두렵고 무서워 의지하여 구제받을 바를 알지 못한다. 비록 다섯 가지 감정은 있지만 깨달아 아는 것이 없으며, 사지는 벌벌 떨려 스스로 가누지 못한다. 신체는 허해지고 차가워져서 따뜻한 기운이 곧 끊어지려고 할 때에는 앞서 닦은 착하거나 악한 과보의 현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해가 넘어가려 할 때에 산 언덕의 그림자가 나타나 자꾸 동쪽으로 옮겨 가고 서쪽으로 갈 이치가 없는 것처럼 중생들의 업과(業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중음이 멸하려 할 때엔 저 중음이 이어 생긴다. 이것은 또 비유하자면 마치 등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고 어둠이 사라지면 등불이 생기는 것과 같느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밀랍으로 만든 도장[蠟印]을 진흙 위에 찍을 때 도장이 진흙과 합해지면 도장은 소멸되고 글자는 이루어지지만, 그 밀랍 도장은 변하지 않고 진흙 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글자가 진흙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다른 곳에서 온 것도 아니다. 그것을 찍은 인연 때문에 이 글자가 생긴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현재에 음(陰)이 사라지면 중음(中陰)의 음이 생겨나지만, 이 현재의 음이 끝내 변하여 중음의 오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중음의 오음도 또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요 다른 데서 온 것도 아니며, 현재의 음을 인(因)하여 중음의 음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납인(蠟印)을 진흙에 찍으면 도장은 부서지고 글자만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름에는 비록 차별이 없으나 시절은 각각 다르니, 그런 까닭에 나는 말하기를 ‘중음의 오음은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요 천안(天眼)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 중음 가운데에는 세 가지 식(食)이 있다. 첫째는 사식(思食)이요, 둘째는 촉식(觸食)이며, 셋째는 의식(意食)이다. 중음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니는 선업의 과보요, 다른 하나는 악업의 과보이다. 선업으로 인하여 착한 각관(覺觀)을 얻고 악업으로 인하여 악한 각관을 얻는다. 부모가 서로 화합하여 교회(交會)할 때에는 그 업의 인연을 따라 생(生)을 받을 곳으로 향하므로 어머니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성을 낸다. 아버지가 정액을 낼 때에는 그것을 제 소유라고 말하고, 그것을 보고 난 뒤엔 마음으로 기뻐하며 환희심을 낸다. 이러한 세 가지 번뇌의 인연으로 중음의 오음은 도장을 진흙에 찍으면 도장은 부서지고 글자만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모든 감각기관이 갖추어진 이도 있고 갖추어지지 않은 이도 있다. 원만히 갖추어진 이는 색(色)을 보면 탐심(貪心)을 내나니, 탐심을 내기 때문에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치기 때문에 탐욕을 내니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말한다. 탐애(貪愛)와 무명, 이 두 가지 인연 때문에 보여지는 경계에 대하여 다 착각하는 것이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행은 순수하지 못하여 혹은 착하기도 하고 더러는 악하기도 하다. 마땅히 사람의 세계에 이르러 부모가 화합하여 그 정액을 잃지 않을 때에는 자식이 와서 마땅히 태어나는 것이다. 그 때 그 어머니의 태는 사방으로 통하여 구애됨이 없고 마음 속에 기쁨을 품고 삿된 생각이 없으면 곧 유연(柔軟)하게 되어 아이 배는 것을 감내하여 담당할 수 있다. 그 정액은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으며 꼭 알맞아서 그리 억세지도 않고 또한 부패(腐敗)하는 일도 없으며, 또 검지도 않고 붉지도 않으며, 바람과 추위나 온갖 독(毒)이 뒤섞이지도 않고 또 소변과도 다르다. 마땅히 와서 아이로 태어나게 되면 그 정신이 문득 일어나는데, 가령 이 남자가 여자와 함께 교합하지 않고 오욕으로 더불어 통과하려고 할 때 남자는 공경하는 생각으로 여인을 향하다가 아버지가 정액을 쏟으면 그 정신은 기뻐하며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말한다. 그 때에는 곧 중음을 잃어버리고 오음에 머물러서 곧 태에 들어가 안착한다. 부모의 정액이 합하여 이미 포태(胞胎)에 있게 되면 배나 더 기뻐서 날뛰는데 이것을 색음(色陰)이라고 한다. 환희(歡喜)할 때를 통락음(痛樂陰 : 受陰)이라 하고, 정액을 생각할 때를 상음(想陰)이라고 하며, 본래의 죄와 복으로 인하여 연(緣)을 얻어 태에 들어가는 것을 행음(行陰)이라 하고, 정신이 태 안에 있는 것을 곧 식음(識陰)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화합하는 것을 오음(五陰)이라고 한다. 만약 아이가 태 안에 있을 때 곧 두 감각기관을 갖추는데, 그것은 의근(意根)과 신근(身根)이다. 7일 동안은 그 가운데 머물면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고 이칠일(二七日 : 14일)이 되면 그 태가 점점 변하여 비유하면 엷은 낙(酪)과 같이 되며, 삼칠일(三七日 : 21일)이 되면 흡사 생락(生酪)과 같이 되고, 사칠일(四七日 : 28일)이 되면 정액이 응결되어 익은 낙과 같이 되며, 오칠일(五七日 : 35일)이 되면 태 안의 정액이 마침내 변하여 마치 생소(生酥)와 같이 되고, 육칠일(六七日 : 42일)이 되면 변하여 군살처럼 되며, 칠칠일(七七日 : 49일)이 되면 다시 변하여 저민 살과 같이 되고, 팔칠일(八七日 : 56일)이 되면 그것이 단단해져서 술잔처럼 되며, 구철일(九七日 : 63일)이 되면 변하여 오포(五胞)가 되어 두 팔과 두 넓적다리와 머리ㆍ목이 그 가운데로부터 나온다. 십칠일(十七日 : 70일)이 되면 다시 오포가 생기는데, 그것은 두 손목과 두 발목 그리고 그 머리가 생겨나고, 십일칠일(十一七日 : 77일)이 되면 계속해서 열네 개의 포가 생기는데 다섯 개의 손가락ㆍ다섯 개의 발가락과 눈ㆍ귀ㆍ코ㆍ입이 이 가운데로 부터 나오며, 십이칠일(十二七日 : 84일)이 되면 이 모든 포의 모습이 변하여 점점 성취된다. 십삼칠일(十三七日 : 91일)이 되면 곧 배[腹] 형태가 나타나고, 십사칠일(十四七日 : 98일)이 되면 간(肝)ㆍ폐(肺)ㆍ심장[心]과 비장[脾]ㆍ신장[腎] 등이 생기며, 십오칠일(十五七日 : 105일)이 되면 대장(大腸)이 생기고, 십육칠일(十六七日 : 112일)이 되면 소장(小腸)이 생겨나며, 십칠칠일(十七七日 : 119일)이 되면 곧 위장이 생기고, 십팔칠일(十八七日 : 126일)이 되면 생장(生藏)과 숙장(熟藏) 이 두 곳에 일어나며, 십구칠일(十九七日 : 133일)이 되면 곧 넓적다리와 전장(躔腸)ㆍ뼈ㆍ손가락ㆍ발바닥ㆍ팔ㆍ힘줄 등이 생겨 연결되고, 이십칠일(二十七日 : 140일)이 되면 배꼽ㆍ젖ㆍ턱ㆍ목 등의 형상이 생긴다. 이십일칠일(二十一七日 : 147일)이 되면 붐 뼈의 각 부분이 그 적당한 곳에 붙는데, 두 뼈가 머리에 있으며 서른두 개의 뼈가 입에 붙고 일곱 개의 뼈는 목에 붙으며, 두 개의 뼈는 넓적다리에 붙고 두 개의 뼈는 팔꿈치에 붙으며, 네 개의 뼈는 팔에 붙고 열두 개의 뼈는 가슴에 붙고 열여덟 개의 뼈는 등에 붙으며, 두 개의 뼈는 허리에 붙고 네 개의 뼈는 무릎에 붙으며, 마흔 개의 뼈는 발에 붙는다. 또 일백여덟 개의 작은 뼈가 있어 몸의 살과 합쳐지나니, 열여덟 개의 뼈를 갖추어져 양쪽 갈비에 붙고 두 개의 뼈는 어깨에 붙는다. 이와 같이 몸의 뼈가 무릇 삼백 개가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뼈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갖달린 박과 같다. 이십이칠일(二十二七日 : 154일)이 되면 그 뼈가 차츰 단단해져서 아직 익지 않은 박과 같고, 이십삼칠일(二十三七日 : 161일)이 되면 그 뼈가 점점 단단해져서 비유하면 마치 호도(胡桃)와 같아진다. 이 삼백 개의 뼈는 각각 서로 연결되어 발뼈는 발에 붙고 무릎뼈는 무릎에 붙는 등 이와 같이 어깨뼈ㆍ넓적다리뼈ㆍ허리뼈ㆍ등뼈ㆍ가슴뼈ㆍ옆구리뼈ㆍ어깨뼈ㆍ목뼈ㆍ턱뼈ㆍ팔뼈ㆍ손과 발의 모든 뼈 등은 다 각각 저절로 변하여 서로 연결되어 붙어 있다. 이와 같은 뼈 무더기는 마치 환화(幻化)와 같아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십사칠일(二十四七日 : 168일)이 되면 일백 개의 힘줄이 그 몸에 연결되어 붙고, 이십오칠일(二十五七日 : 175일)이 되면 칠천 개의 맥(脈)이 생기지만 아직 완전하게 갖추어지지는 못하였으며, 이십육칠일(二十六七日 : 182일)이 되면 모든 맥이 다 통하여 원만하게 갖추어 성취되어 마치 연뿌리의 구멍과 같고, 이십칠칠일(二十七七日 : 189일)이 되면 삼백육십세 개의 힘줄이 다 성취되며, 이십팔칠일(二十八七日 : 196일)이 되면 그 피부가 비로소 생긴다. 이십구칠일(二十九七日 : 203일)이 되면 피부와 살이 차츰 두터워지고, 삼십 칠일(三十七日 : 210일)이 되면 겨우 피부의 형상이 있게 되며, 삼십일칠일(三 十一七日 : 217일)이 되면 가죽이 더욱더 두텁고 단단해지고, 삼십이칠일(三十二七日 : 224일)이 되면 가죽[皮]이 바뀌어 겉껍질[革]을 이룬다. 삼십삼칠일(三十三七 : 231일)이 되면 귀ㆍ코ㆍ입술ㆍ손가락과 무릎 마디가 이루어지고, 삼십사칠일(三十四七日 : 238일)이 되면 구십구만 개의 털구멍이 생기기는 하나 아직 완성되지는 못하며, 삼십오칠일(三十五七日 : 245일)이 되면 털구멍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삼십육칠일(三十六七日 : 252일)이 되면 손톱 이 처음으로 이루어지며, 삼십철칠일(三十七七日 : 259일)이 되면 그 어머니의 배 속에서 약간의 바람이 일어나 아이의 눈ㆍ귀ㆍ코ㆍ입을 열게 하고 혹 어떤 바람은 일어나서 아이의 털을 물들이기도 하는데, 혹은 단정하기도 하고 혹은 추하기도 하다. 또 어떤 바람은 일어나서 몸과 얼굴의 빛을 이룩하는데 혹은 희기도 하고 붉기도 하며 검기도 하다. 그 좋고 추한 것은 다 전생의 행업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레 동안 있으면서 바람과 차고 더운 기운을 내고 대ㆍ소변이 통한다.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59일)이 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 본래의 행을 따라 저절로 바람이 일어난다. 전생의 행업이 착한 사람은 향기로운 바람이 있어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며 결함이 없게 하고 그 뼈마디를 바로잡아 그로 하여금 단정하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게 한다. 전생의 행업이 악한 사람은 곧 냄새나는 바람이 일어나서 그 몸을 편안하지 않게 하고 마음과 뜻대로 할 수 없으며 그 뼈마디에 불어닥쳐 뼈를 구부려뜨려 그로 하여금 단정하지 못하게 하고 또 남자 구실도 못하게 하며 사람들마다 기뻐하지 못하게 한다. 이상은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66일)로서 아홉 달에 나흘이 모자라는데, 이 때 그 아이의 신체와 골절은 완전하게 이루어져 완벽한 사람이 된다. 그 어린 아이의 몸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일분(一分)은 아버지에게서 받았고 일분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몸의 모발(毛髮)과 뺨ㆍ눈ㆍ혀ㆍ목구멍ㆍ심장ㆍ간장ㆍ비장ㆍ신장ㆍ창자ㆍ피 등 연한 것은 어머니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그 밖에 손톱ㆍ발톱ㆍ이ㆍ뼈ㆍ골절ㆍ골수ㆍ뇌ㆍ힘줄ㆍ맥박 퉁 단단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는 생장(生藏)의 아래와 숙장(熟藏)의 위에 있다. 만약 그것이 사내 아이일 경우 바깥을 등지고 안을 향해 그 왼쪽 옆구리에 있고, 만약 그것이 여자일 경우는 어머니를 등지고 바깥을 향해 오른쪽 옆구리에 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냄새나는 오로(汚露)의 깨끗하지 못한 곳에 있으면서 모든 뼈마디가 움츠러들어 펼 수 없으며, 가죽주머니인 배 안의 그물에 쌓여 장혈(藏血)이 묻어 더럽고 있는 곳도 비좁은데, 그것은 대ㆍ소변의 더러운 곳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아홉 달째가 되어 그 남은 나흘 동안 그 아이의 전생에 선한 행이 있으면, 첫날과 뒷날에 마음을 내서 생각하기를 ‘나는 공원에 있으며 나는 또한 천상에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 행이 악한 사람은 말하기를 ‘지옥[泥犁] 또는 세간의 감옥에 있다’고 하면서 사흘째가 되면 근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다. 나흘째가 되었을 때 어 머니의 배에서 바람이 일어나 혹은 올라가게도 하고 혹은 내려오게도 하여 그 아이의 몸을 굴려서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가 산문(產)을 향하게 한다. 복이 있는 사람은 그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하여 말한다. ‘나는 욕지(浴池)에 몸을 던져 물 속에서 유희(遊戱)하나니, 이것은 마치 높은 평상에서 꽃향기 나는 곳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그 복이 없는 이는 스스로 생각을 내어 말한다. ‘나는 산으로부터 몸을 던져 나무가 있는 언덕 더러운 구덩이에 떨어지나니, 혹 이것은 마치 지옥의 그물이 쳐진 가시 위나 넓은 벌판 돌 사이의 칼과 창 속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시름하고 근심하며 즐거워하지 않나니, 그 선악의 과보는 이와 같이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작은 아이가 태어나 이미 땅에 떨어지면 바깥 바람에 불리우게 된다. 사람 이 손을 대어 따뜻한 물로 씻어내면 심한 고통에 핍박받는 것이 마치 창병(倉病)을 앓는 것과 같다.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아이는 죽을까 두려워서 곧 어리석은 미혹이 생기게 되고 그런 까닭에 정신을 잃고 헷갈려서 오고 가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 피묻은 땅 오로(惡露)의 냄새나는 곳에 태어나 있게 되면 귀신과 도깨비[鬼魅]가 와서 희롱하고 간질[癇] 같은 삿된 질병에 걸리며, 죽은 송장이 몸에 와 닿고 고도(蠱道)와 전귀(顚鬼)가 각각 틈을 엿보아 침범한다. 또 네 거리 길에 고기 덩어리를 떨구어 땅에서 조각이 생길라치면 까마귀ㆍ솔개ㆍ독수리ㆍ이리 따위가 각각 다가와서 그것을 가지고 다투는 것처럼, 온갖 삿된 요귀(妖鬼)들이 그 아이를 침범할 틈을 엿보려고 주위를 빙빙 돌아다니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러나 만약 전생에 착한 덕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삿된 것들이 그 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가 이미 장대(長大)해지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 몸을 자라게 하며 곡식 기운을 적절하게 얻으면, 그 몸에는 곧 여든 가지 벌레가 생겨나게 된다. 두 가지는 털 밑에 있나니, 하나는 설시(舌蝭)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중시(重蝭)라고 이름한다. 세 가지는 머리에 있으니, 견고(堅固)ㆍ상손(傷損)ㆍ훼해(毁害)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뇌(腦)에 있으며, 두 가지는 뇌의 표면에 있으니, 첫 번째 뇌에 있는 것은 철주(▼(虫+喆)蛛)라 이름하고 두 번째는 모요(秏擾)라 이름하며, 세 번째는 궤란(慣亂)이라 이름한다. 두 가지는 이마[額]에 있으니, 하나는 갑하(甲下)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휴부(杤腐)라 이름한다. 두 가지는 눈에 있으니 하나는 설시(舌蝭)라고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중시(重蝭)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귀[耳]에 있으니, 하나는 식미(識味)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미막(味莫)이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귀뿌리에 있으니, 하나는 적(亦)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부적(復亦)이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코[鼻]에 있으니, 하나는 비(肥)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부비(復肥)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입[口]에 있으니, 하나는 요(搖)라고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동요(動搖)라고 이름한다. 두 가지는 이[齒] 사이에 있으니, 하나는 악폐(惡弊)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흉포(凶暴)라고 이름한다. 세 가지는 이뿌리[齒根]에 있으니, 천식(喘息)ㆍ휴지(休止)ㆍ졸멸(捽滅)이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혀[舌]에 있으니 그 이름은 감미(甘美)요, 한 가지는 혀뿌리[舌根]에 있으니 그 이름이 유연(柔軟)이다. 한 가지는 상단(上斷)에 있나니 그 이름은 왕래(往來)이고, 한 종류는 목구멍에 있으니 그 이름이 삭후(嗽喉)이다. 두 가지는 눈동자에 있으니, 하나는 생(生)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불숙(不熟)이라 이름한다. 두 가지는 어깨[肩]에 있으니, 하나는 수(垂)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부수(復垂)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팔[臂]에 있으니 주립(住立)이라 이름하고, 한 가지는 손[手]에 있으니 주선(周旋)이라 이름한다. 두 가지 는 가슴[胸]에 있으니, 하나는 액갱(額坑)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광보(廣普)라고 이름한다. 한 가지는 섬장[心]에 있으니 반박(班駁)이라 이름하고, 한 가지는 젖[乳]에 있으니 중현(▼(豸+重)現)이라 이름한다. 한 가지는 배꼽[臍]에 있으니 그 이름은 위요(圍繞)이고 두 가지는 옆구리[脇]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월(月)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월면(月面)이다. 두 가지는 척추[脊]에 있으니, 하나는 월행(月行)이라 이름하고 다른 하나는 윌모(月貌)라 이름한다. 한 가지는 등골[背骨] 사이에 있으니 그 이름은 안풍(安豐)이고, 한 가지는 살갗 속에 있으니 그 이름이 호조(虎爪)이다. 두 가지는 살[肉]에 있으니, 하나는 소부(消膚)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은 소수(燒樹)이다. 네 가지는 뼈[骨]에 있으니, 첫째의 이름은 심독(甚毒)이요, 둘째의 이름은 습독(習毒)이며, 셋째의 이름은 세골(細骨)이고, 넷째의 이름은 잡독(雜毒)이다. 다섯 가지는 골수[髓]에 있으니 , 첫째의 이름은 살해(殺害)요, 둘째의 이름은 무살(無殺)이며, 셋째의 이름은 파괴(破壞)요, 넷째의 이름은 잡해(雜骸)이며, 다섯째의 이름은 백골(白骨)이다. 두 종류는 창자[腸]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당랑(螳蜋)이요 다른 하나는 당랑주(螳蜋▼(口+雋))이다. 두 가지는 작은 창자[細腸]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아자(兒子)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장자(腸子)이다. 한 가지는 간(肝)에 있으니 그 이름이 은시(銀喍)요, 한 가지는 생장(生藏)에 있으니 그 이름이 지목(技牧)이며, 한 가지는 숙장(熟藏)에 있으니 그 이름이 태식(太息)이요, 한 가지는 곡도(穀道)에 있으니 그 이름이 중신(重身)이다. 세 가지는 똥 속에 있으니, 첫째의 이름은 근(筋)이요 둘째의 이름은 목결(目結)이며 셋째의 이름은 목편변(目編髮)이다. 두 가지는 오줌 속에 있으니, 하나는 그 이름이 유하(流河)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중류(重流)이다. 다섯 가지는 포(胞)에 있으니, 첫째의 이름은 육성(肉姓)이고 둘째의 이름은 악족(惡族)이 며 셋째의 이름은 와오(臥寤)요 넷째의 이름은 오(寤)이며 다섯째의 이름은 호계(護計)이다. 한 가지는 넓적다리[髀]에 있으니 그 이름은 과지(撾枝)요, 한 가지는 무릎에 있으니 그 이름이 현상(現傷)이며, 한 가지는 장딴지에 있으니 그 이름이 철주(鐵▼(口+雋))요, 한 가지는 발가락에 있으니 그 이름은 소연(燒然)이다. 한 가지는 발 바닥에 있으니 그 이름은 식피(食皮)이다. 이상의 것들이 바로 여든 가지 벌레이다. 이 벌레들은 온 몸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몸을 파먹는다. 사람의 몸은 바람으로 인하여 일백한 가지 병이 생긴다. 추위와 더위가 한 곳에 어울려서 각각 일백한 가지 병이 생기니 모두 합하면 사백네 가지 질명이 사람의 몸 속에 있는데,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불을 내어 도로 스스로를 태우는 것과 같이 병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나무가 몸이 커짐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람을 위협하는 것과 같고 마치 몸 안의 벌레가 요동하여 불안(不安)한 것과 같다. 서른여섯 가지 물(物)을 임시로 사람이라 하고 그 거짓된 것을 덮음으로써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게 만들어서 부질없이 사랑이란 생각을 일으켜 서로 함께 친근히 하고 붙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이 비어 있는 것인 줄 알고 있는데 어찌 가까이 하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질그릇이 끝내는 깨져 버리는 것처럼, 이 몸도 거짓된 것이라서 일찍 죽는 이도 있고 오래 사는 이도 있지만 귀하건 천하건 간에 모두 혼미하여 죽을 때까지도 알지 못한다. 또 비유하면 마치 큰 성의 네 문에 불이 붙어 차례로 타다가 마침내 동문(東門)에 이르러 그 문마저 다 타버려 재가 되고 마는 것처럼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도 그와 같느니라.”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사람이 또 태(胎) 안에서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66) 동안 지내면 이것을 태장(胎藏)이라 하는데 그 때 일체의 지분(支分 : 支節)이 모두 다 원만하게 갖추어지며, 그 이후로 다시 나흘을 지내면 비로소 태에서 나오는데 이것을 지극히 원만하다고 말한다. 혹은 태 안에서 아홉 달을 지내기도 하고 혹은 이보다 더 지내기도 하는데 만약 여덟 달만 지내면 이것은 원만하다 하고 만약 일곱 달이나 여섯 달을 지내면 원만하다고 말하지 않고 혹 결함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태를 받은 미세한 형상은 세상마다 항상 늘어나고 자라지만 덕이 엷고 복이 적은 사람은 온갖 괴로움에 핍박을 당한다.
또 『삼매경(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몸 안의 화계(火界)는 점점 늘어나고 수계(水界)는 점점 작아진다. 그런 까닭에 가라라(伽羅邏)는 조밀하지만 점점 견고해지고 마침내는 살 덩어리가 된다. 중생들은 이 박복함으로 인하여 작은 데서부터 큰 데로 이르는 동안 그런 고통을 받는다.” 또 『선비요경(輝秘要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몸을 셋으로 나누면 배꼽이 중원(中原)이 되고 머리는 전당(殿堂)이 되며 이마는 천문(天門)이 된다.” 또 『처태경(處胎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이 태를 받을 때에 처음 이레 동안은 사대(四大)가 생겨나고 이칠일(二七日 : 14일)에는 더욱더 바람이 불어 겨드랑이로 향하고 나아가 삼십팔칠일(三十八七日 : 266일)이 되면 그 바람을 꽃이라고 말하는데, 그 아이를 산문(產門)으로 향하게 한다.”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바람은 물을 치고[▼(牚*支) ; : 撞也] 물은 땅을 치며 땅은 불을 친다. 강한 것은 남자가 되고 약한 것은 여자가 되며 바람과 물이 서로 부딪치면 사내아이가 되고 땅과 물이 서로 부딪치면 여자 아이가 된다.”
또 『해탈도론(解脫道論)』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몸에 있는 지계(地界)가 부서져서 티끌이 되면 그것은 한 섬 두 되가 된다.” 또 『증일경(增一經 : 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한 사람의 몸 속에 있는 뼈는 삼백스무 개나 되고 털구멍은 구만 구천 개가 있으며, 힘줄과 맥(脈)은 각각 오백 개가 있고 또 몸 속에는 여든 개의 벌레집이 있다.” 또 『오도수생경(五道受生經)』에서 말하였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 먹는 젖은 무려 일백여든 섬[斛]이나 되나니, 그것도 태 안에서 먹은 피는 제외한 것이다. 동쪽의 불우체(弗于逮) 사람들은 일천팔백 섬의 젖을 먹고 서쪽의 구야니(抱耶尼) 사람들은 일만 팔백 섬의 젖을 먹으며, 북쪽의 울단월(鬱單越) 사람들은 이레 동안에 몸을 성취하는데 처음으로 태어나는 날에 일백이나 되는 길머리에 놓아두면 길 가는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손가락을 주어 빨게 한다. 그런 까닭에 젖은 먹지 않는다.”[여기에서 말하는 섬[斛]이니 말[斗]이니 하는 것은 곧 옛날의 작은 말이니, 이 말로 세 말이 지금의 한 말이다. 옛날 사람의 몸은 특별히 커서 지금의 어린아이와는 같지 않았다. 젖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괴상하게 여길까 염려하여 따로 풀이해 둔다.]
031_0179_a_02L『바사론(婆娑論 : 毘婆沙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백정 [屠兒]이 있었다. 일곱 생 동안 백정노릇을 해왔으나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진 일이 없었고 그리하여 연간 세계와 천상을 왔다갔다 하였다. 이것은 일곱 생 이전에 일찍이 벽지불(辟支佛)에게 한 끼의 음식을 보시한 복의 힘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곱 생(生)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일곱 생 동안을 내려오면서 도살의 업을 하였던 죄업 때문에 과거 일곱 생 동안 이미 차례로 그 죄를 받아서 벗어난 길이 없었으니, 그것은 모두 선과 악이 다 그러한 것이다.”[이것은 후보(後報)에 해당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사리불(舍利弗)이 제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여 일체지(一切智)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에 비유하면 마치 어린아이와 같기 때 문이다.” 『아바단나경(阿婆檀那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기환(祇桓) 정사에 머물고 계셨을 때였다. 어느날 저녁 무렵 경행(經行)을 하고 계셨는데 사리불도 부처님을 따라 경행을 하고 있었다. 이 때 매에게 쫓기는 비둘기가 있었다. 그 비둘기는 부처님 곁으로 날아와서 앉았다. 부처님께서 경행하시며 그 비둘기를 지나치실 때 그림자가 비둘기의 위를 덮자 비둘기는 편안해졌고 매에게 쫓기던 무섭고 두려운 마음도 곧 없어졌다. 그리하여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따르던 사리불의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을 때, 그 비둘기는 갑자기 소리를 내면서 처음처럼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과 저의 몸에는 모두 세 가지 독[三毒 : 貪ㆍ瞋ㆍ癡]이 없건만 무슨 까닭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을 때에는 비둘기는 곧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다가 제 그림자가 비둘기의 위를 덮자 비둘기는 갑자기 소리를 내어 예전처럼 두려워 떨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세 가지 독의 습기(習氣)가 다 없어지지 않았으니, 그 때문에 네 그림자가 덮었을 때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지 않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비둘기의 전생 인연을 관찰해 보아라. 몇 생 동안 비둘기의 몸으로 있었느냐?’ 사리불이 즉시 숙명지삼매(宿命智三昧)에 들어가서 이 비둘기에 대해 관찰해 보았다. 그는 비둘기가 된 이후로 팔만 대겁(大劫)이 지나도록 항상 비둘기의 몸이 되었던 것은 볼 수 있었으나 그 이전을 볼 수가 없었다. 사리불이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비둘기가 팔만 대겁 동안 늘 비둘기의 몸이 되었던 것은 알 수 있으나 그 이전은 더 이상 알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그 과거 세상을 다 알 수 없다면 시험 삼아 미래 세계를 관해 보아라. 이 비둘기는 언제쯤이나 그 몸을 해탈할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 즉시 삼매에 들어가서 관해 보니 앞으로 팔만 대겁이 지나도록 역시 비둘기의 몸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 이후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이 비둘기가 언제쯤 그 몸을 해탈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둘기는 모든 성문(聖聞)이나 벽지불(辟支佛)이 알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느니라. 항하(恒河)강 모래알만큼 많은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으로 있다가 그의 죄업이 다하면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뒤에도 다섯 갈래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그 뒤에 사람이 되면 그렇게 오백 생을 지나서야 비로소 이근(利根)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때 어떤 부처님은 무량(無量) 아승기(阿僧祇) 중생을 제도하고 나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뒤에 남기신 법이 세상에 존재할 때에 이 사람은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우바새(優婆塞)가 되어 비구로부터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말을 듣고는 그 때 처음으로 마음에 서원을 내어 〈부디 부처님을 만나게 하여지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 삼 아승기겁을 지내는 동안 여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여 십지(十地)를 원만하게 갖추고 부처가 되었을 때에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그리고 나서 열반(涅槃)에 들 것이니라.’ 그 때 사리불이 부처님을 향하여 참회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새 한 마리에 대해서도 그 본말(本末)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모든 인연에 대한 것이겠습니까? 저는 이제서야 부처님의 지혜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혜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지언정 어려워하지 않겠나이다.’”
031_0179_c_02L『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범지(梵志)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는데 그것은 피할 수도 없고 또한 벗어날 수도 없느니라. 어떤 것들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장차 소모되어 점점 줄어드는 법이요, 둘째는 장차 잃고 버리게 되는 법이며, 셋째는 장차 병들거나 야위게 되는 법이요, 넷째는 장차 늙고 썩어지는 법이며, 다섯째는 장차 죽어가는 법이니라. 이 다섯 가지 법이 있는 한 아무리 줄어들거나 소모되지 않게 하려고 애써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니라.’” 또 『볼설사불가득경(佛說四不可得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와 모든 보살들과 함께 이른 아침에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舍衞城)에 들어가서 분위(分衞 : 乞食)하실 때 사부 대중들이 다 따르고 있었고 온갖 하늘ㆍ용신(龍神)들도 각각 향과 꽃을 싸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위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도안(道眼)으로 보니 같은 산업(產業)으로 살아가는 형제 네 사람이 산업을 버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산 속에 들어가 살면서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 모두 다 선인(仙人)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들은 숙명[宿對]이 다가오면 목숨이 끝나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모두 그렇게 마치는 것을 피하고자 하여 각각의 생각을 말하였다. ‘우리들의 신족(神足)으로는 날아서 마음껏 다녀도 이르는 곳마다 걸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비상(非常 : 無常)에 잡혀 신명(身命)을 잃을 위기에 닥쳐 있다. 우리는 마땅히 방편을 써서라도 환란(患難)을 면하게 해야지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때 한 사람은 곧바로 공중으로 높이 솟아올라 스스로 제 몸을 감추고 이렇게 말하였다. ‘무상(無常)의 적이라 한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또 한 사람은 곧 시장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복잡한 곳에 섞여 있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넓고 크기가 한량없는 이런 곳에서 목숨을 피하고 있으니 무상의 적이라 한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 한 사람을 잡아가겠지 굳이 나를 찾아 내겠는가?’ 또 한 사람은 곧 물러나서 큰 바다에 들어가서 삼백삼십육만 리쯤 되는, 아래로는 밑바닥까지 이르지 않고 위로는 물 밖에 이르지 않는 그런 곳 중간쯤에 있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무상의 적이라 한들 어찌 나를 찾을 수 있으리.’ 한 사람은 곧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그 산을 둘로 쪼개 그 안에 들어간 뒤에 도로 합해지게 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무상의 적이라 한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그 때 네 사람은 각각 목숨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마침내는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 허공에 숨어 있던 사람은 곧바로 땅에 떨어지되 마치 잘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으며, 산 속에 숨어 있던 사람은 그 산 속에서 죽어 결국은 새와 짐승의 밥이 되었고, 큰 바다 속에 들어간 이는 곧 그 때 일찍 죽어 고기와 자라의 먹이가 되었으며, 시장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마쳤다. 이에 세존께서 이와 같은 일들을 보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네 사람은 어둡고 어리석어 숙명의 적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세 가지 독을 제거하지 못하고 다함이 없는 지혜인 삼달(三達)에 이르지 못하였다. 옛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누가 이 환란을 면할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비록 몸을 감추어 허공에 숨고 큰 바닷 속에 잘 살고 있으며 가령 온갖 산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그 몸을 감추려고 하는 등
죽지 않는 곳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일찍이 안정(安定)을 얻을 수가 없었나니 그런 까닭에 정진(精進)하고 배워야 하리. 이 몸이 없어져야 비로소 편안하게 되리.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일이 있으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일이니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나이가 어려서 얼굴색이 곱고 빛나며 머리털은 검고 이는 희며 형체와 모습에 광택(光澤)이 있고 기력이 단단하고 강한 것이며, 행보(行步)와 온갖 동작, 그리고 출입(出入)이 자재로운 것이요, 수레에 오르거나 말을 타고 다니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숭배하여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갑자기 늙어지면 머리는 희어지고 이도 빠지며 얼굴은 주름살이 생기고 피부도 늘어나며, 몸은 무거워서 지팡이를 의지해야 하고 기운이 적어져서 신음하며 항상 젊은 채로 늙어지지 않으려고 해도 끝끝내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둘째는 신체는 강건(强健)하고 골수는 강하고 튼튼하며 걸음걸이는 짝할 만한 사람이 없고 음식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며,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여 세상에 비할 데 없다고 말하며, 활을 당기고 화살을 손으로 뽑으며 온갖 무기를 잡고서 위협하고 해칠 때는 곡직(曲直)을 살펴보지 않고 꾸짖고 나무라는 말이 입 안에 가득하고 호걸스럽고 강하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헤아리되 〈나는 쇠퇴하거나 소모되지 않는다〉고 하다가 갑자기 질병에 걸리면 평상에 엎드린 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으며, 몸이 아프기는 마치 매를 맞은 것 같고 귀ㆍ코ㆍ입ㆍ눈으로 는 소리ㆍ냄새ㆍ좋은 맛ㆍ섬세하고 매끄러운 감촉을 느끼지 못하며, 앉고 서는 데 남의 힘을 빌려야 하고 더러운 물이 저절로 흘러 나오니, 몸이 그 위에 누워 온갖 걱정을 하는 것이란 비유하기조차 어렵다. 설사 이런 일들을 면하여 항상 편안하게 병이 없기를 바라지만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셋째는 오래 살기를 구하여 끝없이 많은 세상을 살고 싶어하지만 병을 얻어 죽느니라. 목숨은 이미 너무도 짧건만 만세(萬歲)를 염려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수명은 짧고 근심만 많느니라. 덧없는 것임을 살피지 못하고 다섯 가지 하고 싶은 욕망을 제 마음대로 하며, 마음과 뜻을 방일(放逸)하게 하여 살생ㆍ도둑질ㆍ음행ㆍ이간질하는 말ㆍ악한 말ㆍ거짓말ㆍ꾸며대는 말ㆍ탐냄ㆍ질투ㆍ삿된 견해를 저지른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스승과 친구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존장(尊長)을 업신여기고 반역(反逆)과 무도(無道)한 짓으로 호걸스럽고 부유하기를 희망하여 오래도록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거룩한 도를 헐뜯고 비방하는 등 간사하기 비할 데 없으며, 천기(天氣)를 들이마시고 혼자 걸으며 세상의 영화만을 사모하고 하늘과 땅의 안팎이 생긴 까닭을 알지 못하며, 네 가지 요소[四大]가 인연에 의하여 합해져 이룩된 몸이 마치 요술장이[幻師]와 같음을 분별하지 못한다. 예전과 오늘이 생긴 세상을 깨닫지 못하고 창도(倡導)4)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났는지 죽으면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은 하늘과 땅에 두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말한다. 비상(非常 : 無常)이 앞에 이르면 바람에 불리는 구름과 같나니,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목숨을 홀연히 마침으로써 자재(自在)할 수 없다. 비록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마침내 얻은 수가 없는 것이니라. 넷째는 부모ㆍ형제와 집안 친척ㆍ친구ㆍ선지식ㆍ은애(恩愛)ㆍ영락(榮樂)ㆍ재물(財物)ㆍ부귀(富貴)ㆍ관작(官爵)ㆍ봉록(俸祿) 따위로 수레를 타고 유람하며, 처첩(妻妾)과 자식들에게 스스로 교만하고 방자하게 굴며,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며 아랑(兒郞)과 하인[業使]들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림자만 보고도 달려와 아첨할 때면 뭇 사람들을 경멸(輕蔑)하고 자신과 짝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헤아리며, 종과 손님과 집에서 부리는 말을 꾸짖되 짐승과 축생처럼 대하며, 출입이 자재(自在)하여 시기와 법도가 없고 앞뒤를 살피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권속들과 부리는 하인의 무리를 향상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혹 전생에 지은 업이 갑자기 이르게 되면 끓는 물에 녹는 눈과 같이 되느니라. 그러면 마음엔 곧 두려움이 생겨 환란에서 구제해 주기를 바라지만 어찌 원하는 대로 될 수 있겠는가? 아아, 목숨이 한 번 끊어지면 혼신(塊神)만 혼자 떠날 뿐, 부모ㆍ형제ㆍ처자ㆍ친족ㆍ친구ㆍ스승ㆍ은애하는 권속들이 다 스스로 혼자만 머물러 있고 관작ㆍ재물ㆍ종복들은 각기 흩어져서 별처럼 달아나나니, 죽지 않기를 구하고자 하나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지(天地)가 성립된 이래로 이 괴로운 네 가지 어려운 환란을 면할 수 없나니, 이 네 가지 고통 때문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느니라.’
031_0180_c_02L『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정법(不定法)을 잘 안다는 것은 모든 법이 미처 생기기 전에는 분별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느니라.” 『불분별업경(佛分別業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몸으로 착한 업(業)을 실행하고 입으로 착한 업을 실행하며 뜻으로 착한 업을 행하지만,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또 어떤 사람은 몸으로 악한 업을 실행하고 입으로는 악한 업을 실행하며 뜻으로 악한 업을 실행하지만,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천상(天上)에 태어난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까닭에 그러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선세(先世 : 전생)에 지었던 죄와 복의 인연이 이미 무루익어 있고 현재 세계의 죄와 복의 인연은 아직 무루익지 못했거나 혹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임박하여 바른 소견과 삿된 소견과 착하고 악한 마음이 일어나서 목숨을 마치려는 마음에 드리울 때 그 마음의 힘이 크기 때문이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출현한다. 어떤 것이 그 네 종류의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우며, 혹 어떤 사람은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엔 괴로우며, 혹 어떤 사람은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로우며, 혹 어떤 사람은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겁다. 어떤 사람이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운 사람인가? 즉 어떤 사람은 비천(卑賤)한 집안에 태어나 의복과 음식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삿된 소견이 없어서 옛날에 보시했던 공덕의 과보로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게 된다. 그렇지만 보시의 덕을 짓지 않았기에 항상 빈천(貧賤)함을 만나 옷과 음식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참회하여 과거에 지었던 일들을 고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분(餘分)을 고루 남에게 나누어 준다. 그가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재물이 많고 보배가 넉넉하여 부족한 것이 전혀 없나니, 이런 사람을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에는 괴로운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호족(豪族)의 집안에 태어나서 옷과 음식이 충분하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항상 삿된 견해를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일으켜 그 견해와 함께 서로 호응하여 나중에는 지옥 중에 태어나게 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가난하고 궁색한 집안에 태어나 의복과 음식이 충분치 못하니, 이러한 사람을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엔 괴롭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로운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먼저는 빈천(貧賤)한 집안에 태어나 의복과 음식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삿된 소견을 품고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와 서로 호응하여 나중엔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지극히 빈천하여 의복과 음식이 충분하지 못하나니, 이러한 사람을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롭다고 말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거운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먼저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서 재물도 많고 보배도 넉넉하다. 그런데도 삼존(三尊)을 공경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항상 보시를 실천하여 나중에 사람이나 천상에 태어나 항상 부귀를 누려 재보가 넉넉하게 되나니, 이런 사람을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겁다고 말하느니라.’ 그 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중생은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우며, 혹 어떤 중생은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엔 괴로우며, 혹 어떤 중생은 먼저도 괴롭고 나중도 괴로우며, 혹 어떤 중생은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역시 즐겁다. 만약 사람의 수명이 백 살을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정녕 십십(十十 : 百歲)을 다 산다고 할 경우 혹 어떤 사람은 백 살을 사는 동안 온갖 공덕을 짓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백 살 동안 온갖 악한 법을 짓기도 한다. 그들은 또 다른 때에 혹 겨울 동안은 즐거움을 누리다가 여름 동안엔 괴롭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젊을 때엔 복을 짓고 어른이 되었을 때엔 죄를 짓기도 한다. 그리하여 뒷 세상에 태어나면 젊을 때엔 복을 받다가 어른이 되었을 때엔 죄를 받는다. 또 젊을 때엔 죄를 짓고 어른이 되어서는 복을 지으면 다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젊을 때엔 죄를 받고 어른이 되었을 때엔 즐거움을 누린다. 혹 젊을5) 때에도 죄를 짓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적에도 죄를 지으면, 그 사 람은 니중에 태어날 때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롭다. 또 어떤 이가 젊을 때에도 복을 짓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또한 복을 지으면, 그 사람은 나중에 태어날 때에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또한 즐겁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출현하느니라. 어떤 것이 그 네 종류인가? 혹 어떤 사람은 몸은 즐겁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은 이도 있고, 혹 어떤 사람은 마음은 즐겁지만 몸은 즐겁지 않은 이도 있으며, 혹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이 다 즐거운 이도 있고, 혹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이 다 즐겁지 않은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이 몸은 즐겁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은 사람인가? 그는 복을 지은 범부(凡夫)로서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 네 가지 일의 공양에 모자람이 없지만, 다만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은 면하지 못하나니, 이것을 몸은 즐거우나 마음은 즐겁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어떤 사람을 마음은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못하다고 하는가? 이른바 아라한(阿羅漢)으로서 공덕을 짓지 않았으므로 네 가지 공양을 하는 가운데 스스로 이 공양물을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다만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만은 면하나니, 이것을 마음은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이 다 즐겁지 못한 사람인가 ? 이른바 범부(凡夫)로서 공덕을 짓지 않았으므로 네 가지 사물을 공양하지도 못하고 따라서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도 면하지 못하나니, 이것을 몸과 마음이 다 즐겁지 못하다고 말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이 다 즐거운 사람인가? 이른바 공덕을 지은 아라한으로서 네 가지 일의 공양이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또한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도 면하나니, 이것을 몸과 마음이 다 즐겁다고 말하느느니라.’”
031_0181_c_02L『미륵보살소문경론(彌勒菩薩所問經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문】 어떤 것이 보시의 과보인가? 【답】 간략하게 말하면 보시에는 한 종류의 과보만 있나니, 이른바 수용(受用)의 과보이다. 수용의 과보에 또 두 가지 과보가 있으니, 이른바 현재에 수용하는 과보와 미래(未來)에 수용하는 과보이다. 또 세 종류의 과보가 있으니, 곧 이 두 가지에 다시 반야(般若)들 보탠 것이다. 또 네 종류의 과보가 있다. 어떤 것을 그 네 가지 과보라고 하는가? 첫째는 과보는 있으나 수용(受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수용은 있으나 과보는 없는 것이며, 셋째는 과보도 있고 또 수용도 있는 것이요, 넷째는 과보도 없고 또한 수용도 없는 것이다. 첫째의 과보는 있으나 수용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고 제 손으로 보시하지 않으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보시는 비록 한량 없는 갖가지 과보는 얻겠지만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위천주(舍衞天主)가 비록 한량없이 많은 갖가지 귀중한 보배를 얻었으면서도 수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째의 수용은 있으되 과보는 없다는 것은 이른바 스스로는 보시하지 않으나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비록 수용은 얻었으나 스스로의 과보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천자(天子)의 물건처럼 일체 사문ㆍ바라문(婆羅門) 등이 비록 의복과 음식을 얻어서 수용은 하면서도 스스로 과보는 없는 것과 같으며, 또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네 종류의 군대처럼 비록 의복과 음식은 얻었으나 과보를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셋째의 과보도 있고 또한 수용도 있다는 것은 이른바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고 경솔하지 않은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수제가(樹提伽) 장자 등과 같은 것이다. 넷째의 과보도 없고 또한 수용도 없다는 것은 이른바 보시를 한 뒤에 그 인(因)이 다 사라지거나, 혹은 세상에 출현하여 성인의 도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그것은 마치 번뇌를 영원히 여윈 성인과 같은 것이다. 또 다섯 가지의 과보가 있으니, 이른바 목숨ㆍ색(色)ㆍ힘ㆍ즐거움ㆍ변재 등을 얻는 것이다. 음식으로 인하여 목숨을 부지하나니, 그런 까닭에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곧 목숨을 보시하는 것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뒤에 긴 수명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색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하며, 즐거움을 보시하고 변재를 보시하는 것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또 다섯 가지 훌륭한 과보가 있으니 이른바 부모ㆍ병든 사람ㆍ법사(法師)ㆍ보살 등에게 보시하면 훌륭한 과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은혜로 양육하여 신명(身命)을 낳아 길러 주셨으니, 그런 까닭에 부모에게 보시하면 훌륭한 과보를 얻고 또 병든 사람은 고독(孤獨)하므로 불쌍히 여겨야 하나니,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자비(慈悲)한 마음을 내어 병든 사람에게 보시하면 훌륭한 과보를 얻는다. 또 법을 설하는 사람은 능히 법신(法身)을 낳고 법신을 증장(增長)시키며 선하고 악함과 평정(平正)하고 평정하지 않음과 전도(顚倒)되고 전도되지 않은 것을 보여주고 인도[示導]6)한다. 그런 까닭에 이 사람에게 보시하면 훌륭한 과보를 얻는다. 또 여러 보살들은 모든 중생들을 다 섭취(攝取)하여 이익되게 하며 자비한 마음을 내어 삼보(三寶)를 거두어 취해서 그 종자[因]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 이러한 이치가 있기 때문에 보살에게 보시하는 사람은 훌륭한 과보를 얻는다. 보살이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생겨난 용맹한 비원(悲願)의 힘이 크기 때문에 그 마음이 좁고 하열한 다른 복과는 같지 않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마땅히 네 가지 범천(梵天)의 복에 대하여 말하리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만약 믿음이 있는 어떤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 일찍부터 투파(偸婆 : 搭)가 없었던 곳에 탑을 세우는 것이요, 둘째는 오래되어 낡은 사찰을 수리하는 것이며, 셋째는 거룩한 대중들을 화합(和合)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다살아갈(多薩阿竭)께서 처음으로 법륜(法輪)을 굴리실 때에 모든 하늘들과 세간 사람들이 법륜 굴리기를 권유하고 요청하는 것이니, 이것을 네 가지 범천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범천의 복은 얼마나 많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염부리(閻浮里 : 閻浮提) 땅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공덕을 다 합한 것과 한 전륜왕의 공되이 같고, 염부지(閻浮地) 사람들과 한 전륜왕의 공덕을 합한 것은 구야니(瞿耶尼) 한 사람의 공덕과 같으며, 염부리지(閻浮里地)와 구야니 두 곳을 합한 복은 또 저 불우체(弗于逮)의 한 사람의 복보다 못하고, 이 세 곳 사람의 복을 합한 것도 울단왈(鬱單曰)의 한 사람의 복만도 못하며, 이 네 천하 사람의 복은 또 사천왕(四天子)의 복만 못하고, 나아가 사천하 사람의 복과 여섯 욕계의 복을 합쳐도 한 범천(梵天)왕의 복만 못하느니라. 만약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그 복을 구하고자 하면, 이것이 그 복의 양(量)이니라.’”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일곱 종류의 사람[人]7)을 수지(受持)한 사람이라면 그는 제석천(帝釋天)의 처소에 태어날 수 있느니라.’” 그리고는 곧 게송을 설하셨다.
부모님께 공양하고 또한 집안의 존장(尊長)에게도 공양하며 부드럽고 온화하고 공손한 말로 거친 말과 이간질하는 말을 버려라.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조복(調代)받고 항상 진실한 말만을 하라.
저 서른여섯 하늘들은 이 법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다 각각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저들은 장차 이 하늘에 태어나리라 라고.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복의 업은 마치 익은 과일과 같아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지계거(持戒車)를 타게 되면
나중에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되리라.
결정코 알아야 한다. 만일 등불이 꺼지면 저 무위(無爲)에 이를 수 있으리라. 일체 것은 다 행(行)으로 얻어지는 것이니 하늘에 구한들 무엇하리오.
031_0182_c_02L대개 형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소리가 있으면 메아리가 응해 온다. 형체가 있는데도 그림자는 없다거나 소리가 이어지는데 메아리가 없는 것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선과 악이 서로 보답하는 것은 이치의 길이 그러한 것이다. 부디 바라노니 깊이 믿어야 하고 시기하여 꾸지람을 초래하지 말라. 가볍고 무거운 고통의 과보를 다음에 자세히 갖추어 기록하리라. 만약 몸으로 살생을 행하여 혹 가죽을 벗기고 살을 썰며 조개를 굽거나 삶으며, 매를 날리고 사냥개를 풀어 놓으며 활로 산 짐승들을 사냥하면, 그는 죽어 도열(屠裂)지옥과 근할(釿割)지옥 가운데 떨어지게 된다. 또 중생(衆生)을 삶거나 지지거나 태우거나 구우면, 그는 곧 확탕(鑊湯)지옥이나 노탄(鑪炭)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살생 때문에 지옥 중에서 해[年]가 다 가고 지극히 많은 겁(劫) 동안 극심한 괴로움을 갖추어 받고 받을 고통이 이미 다 끝나면 다시 축생(畜生)의 세계에 떨어져 온갖 소ㆍ말ㆍ돼지ㆍ양ㆍ나귀ㆍ노새ㆍ낙타ㆍ닭ㆍ개ㆍ물고기ㆍ새 따위가 되고, 또 큰 자라8)와 대합 따위가 되어 사람들에게 잡혀 먹히고, 소라나 조개 종류들도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리어 제 몸의 살을 사람들의 음식상 위에 올려 놓고 공양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짐승과 새 따위로 산에 있으면서 한량없는 세월을 나고 죽고 하면서 만약 조그만 선(善)도 없으면 거기에서 영영 면할 기약이 없다. 혹 한 조각만한 복이 있어 어쩌다 사람의 몸이 되더라도 혹은 태(胎) 안에 있을 적에 떨어지거나 출생하자마자 곧 죽으며, 혹은 열 살이나 스무 살을 살면서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깜깜한 데에서부터 다시 깜깜한 곳으로 들어가 남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명 짧은 것이 다 살생(殺生)으로 연유된 것 이니라. 또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하였다. “살생을 한 죄는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그가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게 된다. 하나는 수명이 짧은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병(病)이 많은 것이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악행에는 각각 모두 다섯 가지 과보들 갖추고 있다. 첫째, 살생하면 무엇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받는가?
그것은 살생을 하여 중생들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의 온갖 고통이 다 밀려와서 그 몸을 끊어버린다. 둘째, 살생하면 무엇 때문에 축생(畜生)으로 태어나는가? 살생을 함으로써 자비와 측은하게 여기는 행(行)이 없어져 인륜(人倫)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지옥의 죄가 끝나면 축생의 옴을 받는 것이다. 셋째, 살생하면 무엇 때문에 또 아귀(餓鬼)가 되는가? 그는 살생을 함으로써 반드시 간탐하는 마음을 반연하나니, 탐내고 집착하는 재미로 인하여 다시 아귀가 된다. 넷째, 살생하면 무엇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도 수명이 짧은가? 그것은 살생을 함으로써 생물의 목숨을 해치기 때문에 그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다. 다섯째, 살생을 하면 무엇 때문에 온갖 질병이 많은가? 살생을 함으로써 적절한 것을 어겨 온갖 근심이 다투어 모이기 때문에 질병이 많다. 그러므로 살생이 곧 큰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을 꼭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어느 때 어떤 귀신이 목련(目連)에게 말하였다. ‘나는 항상 양쪽 어깨에 눈이 있고 가슴에는 입과 코가 있으며, 늘 머리는 없으니 무슨 인연 때문입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너는 전생 어느 때에 늘 괴회(魁膾 : 死刑執行人)의 제자가 되어 사람을 죽일 때에 너는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가지고 노끈으로 상투를 묶어 그 끈을 잡아당겼다. 이런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은 죄보(罪報)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악한 행의 화보(花報)일 뿐이요, 지옥의 고통스러운 과보는 뒷세상에 있게 될 것이니라.’ 또 어떤 귀신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내 몸은 항상 덩어리 살과 같아서 손ㆍ다리ㆍ눈ㆍ귀ㆍ코 따위가 없고 언제나 벌레나 새에게 먹히는 등, 죄의 괴로움을 견디기 매우 어렵습니다. 무슨 인연 때문에 그러합니까?’ 대답하였다. ‘너는 전생 어느 때에 늘 다른 사람에게 약을 주어 다른 사람의 아이를 태 속에서 떨어지게 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죄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화보(花報)일 뿐이요, 지옥의 고통스러운 과보는 뒷세상의 몸에 있게 될 것이다. 또 그 살생의 인연으로 탐해(貪害)가 불어나고 많으며 탐해가 불어나고 많기 때문에 곧 의리와 겸양이 없고 겁탈과 도둑질을 행할 것이다. 금생의 몸이 도둑질로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였기 때문에 죽으면 곧 철굴지옥(鐵窟地獄)에 떨어져서 오랜 겁(劫) 동안 온갖 고뇌를 받게 될 것이다. 그 고통이 이미 끝나고 나면 축생(畜生) 가운데로 떨어져서 몸에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발길에 채이고 매를 맞으면서 쉴 여가 없이 일을 해야 하고 먹는 것은 오직 물과 풀뿐이니, 처지가 이런 가운데에 있으면서 한량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할 것이다. 또 본래의 인연(因緣)으로 만약 조그만 선(善)을 만나면 하열(下劣)한 사람으로 태어나 항상 남의 종과 노예가 되어 구박을 받고 부림을 당하면서 자재로운 몸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하고서도 빚을 다 갚지 못하여 바른 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이로 인연하여 고통 받으면서 그 윤회(輪廻)하기를 그지없이 하리라. 이런 고통은 다 도둑질을 한 데서 연유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지금의 몸이 광명(光明)을 은폐(隱蔽)하고 광명으로써 삼보(三寶)를 공양하지 않고 도리어 삼보의 광명을 취하여 그것으로 스스로를 비추는 데 사용하면, 그는 죽어서 곧 흑이(黑耳)ㆍ흑승(黑繩)ㆍ흑암(黑暗) 등의 지옥에 떨어져 오랜 겁 동안 온갖 고뇌(苦惱)를 받을 것이다. 이런 고통 받기를 이미 마치고 나면 개미[蟣]나 이[虱] 등으로 태어나 광명을 견디지 못하며 그런 가운데 있으면서 한량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할 것이다.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작은 선(善)의 과보를 만나더라도 하열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어 형용(形容)이 검고 때가 끼어 깨끗하지 못하며, 냄새나고 더럽고 추잡하여 사람들이 싫어하여 멀리 피해갈 것이며, 두 눈이 다 멀어 천지(天地)를 다 보지 못할 것이니, 광명을 은폐하는 것도 또한 도둑질에서 연유한 까닭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하였다. “겁탈하고 도둑질하는 죄도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하고 만약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두 가지 과보(果報)를 받는다. 한 가지는 가난하고 궁색함이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재산을 공유(共有)하여 자재롭게 쓰지 못하는 것이다.” 겁탈과 도둑질은 무엇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가? 그것은 겁탈과 도둑질을 하여 남의 재물을 박탈(剝奪)하거나 훔쳐서 중생들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니, 그 몸이 죽으면 한빙지옥(寒氷地獄)에 들어가 온갖 괴로움을 갖추어 받게 될 것이다. 또 겁탈과 도둑질은 무엇 때문에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이 되는가? 그는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생의 보(報)를 받아 몸에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그 살로 사람들에게 공양하여 그 전생의 빚을 갚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또 아귀(餓鬼)의 세계에 떨어지는가? 간탐(慳貪)한 인연으로 겁탈과 도둑질을 행하나니, 이 때문에 축생의 죄가 끝나면 다시 아귀가 되느니라. 무슨 까닭에 사람이 되면 가난하고 궁색하게 되는가? 저 겁탈로 인하여 그들로 하여금 물질이 궁핍해지게 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재산을 공유하여 자재롭게 사용하지 못하는가? 저 겁탈로 인하여 도둑질하고 빼앗은 물건을 관청에서 몰수하였기 때문에 혹 재산과 돈이 있더라도 오가(五家)에서 공유(共有)하여 자재롭게 쓸 수 없나니, 겁탈과 도둑질은 두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어느 때 어떤 귀신이 목련(目連)에게 말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저는 배가 너무 커서 마치 항아리만한데 인후(咽喉)와 손ㆍ발은 가늘기가 마치 바늘과 같아서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무 슨 인연으로 이런 고통을 받습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너는 전생 어느 때에 마을의 주인이 되어 호걸스럽고 귀한 신분을 스스로 믿고 술을 마시고 종횡(縱橫)하여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속여 그들의 음식을 빼앗아 중생들을 배고프고 피곤하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죄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화보(花報)일 뿐이요, 지옥에서 받을 고통의 과보는 뒷세상에 있게 될 것이다.’ 또 어떤 귀신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항상 두 개의 뜨거운 쇠바퀴가 나의 두 겨드랑이 밑에서 구르기 때문에 신체가 타들어 갑니다. 무슨 인연 때문에 그렇습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너는 전생 어느 때에 여러 스님들과 함께 먹을 만들다가 두 번이나 그 떡을 몰래 훔쳐 양쪽 겨드랑이 밑에 넣었었다.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은 죄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다만 화보일 뿐이요, 지옥에서 받을 고통의 과보는 뒷세상에 있게 될 것이다. 또 도둑질을 한 인연 때문에 마음이 곧고 바르지 못해 제멋대로 음란하고 방탕하게 된다. 금생의 몸이 음일하므로 현재 세상에서 흉하고 위태로워 항상 스스로 놀라고 두려워하게 된다. 혹은 남편이나 주변 사람에게 들켜 당장에 재앙을 받아 칼이나 몽둥이를 몸에 가하여 머리와 발이 분리되기도 하고 마침내는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서는 쇠평상에 눕기도 하고 혹은 구리 기둥을 끌어안으면 옥졸(獄卒)이 불을 붙여 그의 몸을 태운다. 이러한 지옥의 죄가 끝나면 마땅히 축생의 몸을 받나니, 곧 닭ㆍ오리ㆍ새ㆍ참새ㆍ개ㆍ돼지ㆍ나비 따위가 되어 한량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오랜 겁 동안 온갖 고통을 다 받는다. 고통 받기를 이미 마치고 나면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조그만 선(善)의 과보를 받아도 하열한 사람이 되고 가정[閨門]이 음란하여 아내와 첩이 부정(不貞)하고, 혹은 총애하는 사람을 남에게 빼앗기기도 하며, 항상 무섭고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위험은 많고 편안함은 적게 될 것이다. 위험한 고통이 다 삿된 음행으로 연(緣)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지경』에서 말하였다. “삿된 음행의 죄도 중생들을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인간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나니, 하나는 아내가 정결(貞潔)하지 않은 것이요, 다른 하나는 뜻을 따르는 권속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삿된 음행을 하면 무엇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가? 그 삿된 음행 때문에 분수에 맞지 않는[非分] 짓을 범하고 다른 사람을 침노하여 고통이 되게 하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목숨을 마친 뒤에는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 무슨 까닭에 삿된 음행을 하면 지옥에서 나온 뒤에 축생으로 태어나는가? 그 삿된 음행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따르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지옥에서 나 오면 축생의 몸을 받는다. 무슨 까닭에 삿된 음행을 하면 다시 아귀가 되는가? 저 음란하고 방탕함은 다 사랑하는 일에 간탐했기 때문이니, 다시 아귀가 된 다. 무슨 까닭에 삿된 음행을 하면 아내가 정결하지 못한가? 남의 아내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가 얻은 아내가 항상 정숙하고 바르지 못하다. 무슨 까닭에 삿된 음행을 하면 뜻을 따르는 권속을 얻지 못하는가? 그는 삿된 음행으로써 남의 총애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 권속들이 뜻을 따르지 않으며, 그 때문에 다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도 빼앗기게 된다. 삿된 음행은 세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잡보장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어떤 귀신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나는 어떤 물건이 저절로 내 머리에 뒤집어 씌어 있고 또한 항상 사람들이 와서 나를 죽일까 두려우니, 마음이 늘 무서움과 걱정 때문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인연 때문에 그러합니까?’ 대답하였다. ‘너는 전생 어느 때에 음행으로 남의 여자를 범하면서 늘 남이 볼까 두려워하기도 하였고, 혹은 그 남편에게 발각되어 붙잡혀서 묶이고 맞아 죽을까 두려워하기도 했고, 혹은 관법(官法)에 연루되어 도시(都市)에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항상 공포에 떨곤 하였다. 공포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죄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악한 행위에 대한 화보일 뿐이요, 지옥에서 받을 고통의 과보는 뒷세상에 있게 될 것이다. 또 그 삿된 음행 때문에 네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으니, 지금 네 몸이 만약 거짓말로 중생들을 고뇌하게 만들면 죽어서는 마땅히 제곡지옥(啼哭地獄)에 떨어져서 오랜 겁 동안 온갖 고뇌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받는 고통이 이미 다하면 아귀의 세계에 떨어져 거기에서 고뇌를 받으면서 한량없이 죽고 나고 하기를 되풀이하다가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작은 선을 만나더라도 하열한 사람의 몸을 받아 온갖 질병이 많고 야위거나 허약하여 극심한 고초를 당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고통스런 아픔을 겪을지라도 사람들은 사랑하거나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고통은 다 거짓말을 연유하여 생겨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거짓말로 인한 죄도 또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나니, 하나는 많은 비방을 당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그 거짓말로 연(緣)하여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여 괴로움이 생기게 한다. 그런 까닭에 그 몸이 죽어서는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 무슨 까닭에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서 나온 뒤에 축생이 되는가? 속이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남의 성실한 믿음을 어기게 된다. 그런 까닭에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된다. 무슨 까닭에 거짓말을 하면 다시 아귀가 되는가? 그 거짓말은 다 속이는 일에 간탐했기 때문이니, 속이는 일에 간탐한 까닭에 또한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사람이 되어서는 남의 비방을 많이 받는가? 그 거짓말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거짓말을 하면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가? 그 거짓말로 남을 유인하여 속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네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그 거짓말로 연(緣)하여 곧 이간질하는 말을 이룬다. 금생의 몸으로 말을 한 것이 자애로움이 없어서 남을 참소하고 비방하며 헐뜯고 욕설을 하여 악한 말이 잡란(雜亂)하면 그는 죽어서 곧 발설(拔舌) 지옥ㆍ양동(烊銅)지옥ㆍ이경(犁耕)지옥 등에 떨어져서 오랜 겁 동안 온갖 고뇌를 받다가, 그 고통을 다 받아 마치고 나면 곧 축생 세계에 떨어져서 똥과 더러운 것을 먹는데 마치 꿩이나 사다새[鶘]와 같이 혀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있으면서 한량없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할 것이다.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작은 선을 만나서 사람이 되더라도 또한 하열하여 설근(舌根)을 갖추지 못하고 입 안에서 악한 냄새가 나며 벙어리가 되거나 말을 더듬거리며 이가 고르지도 못하고 희지도 못하며 자력(滋歷)이 성글고 적어서 혹 착한 말을 해도 사람들의 신용을 얻지 못한다. 참소하고 어지러운 것이 다 이간질하는 말을 연(緣)하여 생겨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이간질하는 말을 한 죄도 또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나니, 하나는 폐악(幣惡)한 권속을 만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화합하지 못한 권속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그 이간질하는 말은 남의 친애(親愛)를 갈라지게 한다. 친애하는 이가 서로 갈라지게 하였기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면 지옥에서 나온 뒤에 축생이 되는가? 그 이간질하는 말로 싸움을 붙여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마치 야간(野干)과 같으므로 축생의 몸을 받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면 또 아귀가 되는가? 그 이간질하는 말로써 또한 간탐과 질투를 반연하게 한다. 간탐과 질투한 죄 때문에 다시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면 사람이 되어도 폐악한 권속을 만나게 되는가? 이간질하는 말로 남의 친구들로 하여금 다 악한 마음이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면 화목하지 못한 권속을 얻게 되는가? 이간질하는 말로써 사람들의 친하고 좋아하는 사이를 갈라놓아 그들로 하여금 화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간질하는 말은 다섯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또 이간질하는 말을 반연하여 말이 곧 추악(麁惡)해진다. 현재의 몸이 악한 말을 반연하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해치며 서로 간에 침략하고 정벌하여 모 중생들을 살해하나니, 그는 죽고 나면 곧 도병(刀兵)지옥에 떨어져서 오랜 겁 동안 온갖 고통을 받다가 그 받던 고통이 이미 끝나고 나면 축생 세계에 떨어져서 다리를 뽑히고 오줌통을 팔며 어깨뼈를 실어보내고 비장(脾藏)을 잃게 된다. 오랜 겁 동안 온갖 고통을 받다가 그렇게 받던 고통이 이미 끝나면 이런 세계에서 한량없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한다.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조그만 선을 만나 사람의 몸이 되더라도 하열하여 사지(四支)를 온전히 갖추지 못하고 거세를 당하거나 발꿈치를 베이거나 묵형(墨刑)을 당하거나 코를 베이는 등 형체가 훼손을 당하며, 귀신도 그를 지켜주지 않고 사람들에게는 업신여김과 버림을 받게 된다. 중생을 잔악하게 해하는 것은 다 악한 말로 연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악한 말을 하는 죄도 또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게 되나니, 하나는 항상 나쁜 음성을 듣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가 하는 말에 대하여 항상 다투고 송사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악한 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그것은 악한 말로써 다 사람들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니,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괴로워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목숨을 마치고 나면 지옥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무슨 까닭에 악한 말을 하면 지옥에서 나온 뒤에도 축생이 되는가? 그 악한 말로써 다른 사람을 축생이라고 꾸짖었기 때문에 지옥에서 나와도 축생이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악한 말을 하면 또 아귀가 되는가? 그 간탐과 인색함을 반연하여 간섭하고 부딪치면 악한 말로 꾸짖는다. 그런 까닭에 축생의 괴로움을 마치고 나면 다시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악한 말을 하면 사람이 되더라도 항상 악한 음성을 듣는가? 그가 하는 말이 추악하고 비루하여 항상 악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악한 말을 하면 그 말에 향상 다툼과 송사가 있는가? 그 악한 말은 항상 온갖 덕을 거스르고 어기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듣고 나면 늘 다툼과 송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악한 말은 여섯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 악한 말을 반연하여 그 말이 곧 깨끗한 비단결과 같지만 전혀 의롭거나 이익이 없다. 의롭거나 이익이 없기 때문에 금생의 몸이 곧 교만함을 내게 된다. 그는 죽고 나면 마땅히 속박(束縛)지옥에 떨어져서 오랜 겁 동안 온갖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받던 고통이 이미 다하면 축생의 세계에 떨어져서 오직 물풀[水草]만을 생각하면서 부모가 길러준 은혜는 모르고 그런 가운데 있으면서 한량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게 된다.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작은 선을 만나 사람의 몸이 되더라도 하열하여 충효(忠孝)와 인의(仁義)를 알지 못하고 삼보를 뵙지 못하며 혹 나라 복판에 살더라도 그 몸이 작고 더러우며 절름발이나 곱사등이가 되어 남들에게 능멸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만이란 다 이치가 없고 조롱하고 희롱하며 절도가 없음을 반연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의리가 없는 말의 죄도 또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나니, 하나는 그가 한 말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가 하는 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치가 없는 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말이 이미 이치가 없으면 일이 저들을 해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는 목숨을 마치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무슨 까닭에 이치가 없는 말을 하면 지옥에서 나와도 축생이 되는가? 말이 이치가 없음을 반연하여 인륜(人倫)의 이치와 어그러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게 된다. 무슨 까닭에 이치가 없는 말을 하면 또한 아귀가 되는가? 말에 이치가 없기 때문에 간탐과 미혹[慳惑]의 장애를 받는다. 간탐과 미혹의 장애를 받기 때문에 다시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치가 없는 말을 하면 그 죄가 사람으로 출생하더라도 그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가? 말에 이치가 없기 때문에 받들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치가 없는 말을 하면 그가 하는 말들이 분명하고 또렷하지 못한가? 말에 이미 이치가 없으면 다 깜깜하고 어둠을 반연한다. 깜깜하고 어둠을 반연하기 때문에 밝고 또렷하지 못한 것이다. 이치가 없는 말은 일곱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또 이치가 없는 말을 반연하기 때문에 겸양(謙讓)이 없고, 그로 하여금 탐욕 을 내어 싫어함이 없게 한다. 금생의 몸이 아끼고 탐내어 보시하지 않으면 죽어서 곧 비시(沸屎)지옥에 떨어져 오랜 겁 동안 온갖 고뇌를 받다가 그 고뇌를 받는 것이 다 끝나면 다시 축생이나 아귀의 세계에 떨어져 의복과 음식이 없어 사람을 의지하고 우러러 더러운 똥을 먹지만 그 마저 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속에 있으면서 한량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다가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조그만 선보(善報)를 만나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더라도 하열하여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벌거벗은 채로 항상 없어서 빈곤하고 궁핍하게 지낸다. 사람들도 주지 않거니와 구해도 얻을 수 없고 비록 가느다란 털만큼 얻는다 해도 곧 박탈당하며 고통을 지키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어 몸과 목숨을 잃게 된다. 보시하지 않는 것은 다 탐욕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탐욕의 죄 역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약 인간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얻나니, 하나는 욕심이 많은 것이요, 다른 하나는 만족함이 없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탐욕을 지니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그 탐욕으로 인하여 몸과 입을 움직여 중생들을 괴롭힌다. 그런 까닭에 몸이 죽으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무슨 까닭에 탐욕을 지니면 지옥에서 나와서도 축생이 되는가? 이 탐욕으로 인하여 인륜을 흔들어 놓고 어그러지게 한다. 그런 까닭에 지옥 에서 나오더라도 곧바로 축생이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탐욕을 지니면 다시 아귀가 되는가? 이 탐욕으로 인하여 얻으면 반드시 탐하고 아까워한다. 탐하고 아까워하기 때문에 다시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탐욕을 지니면 또 욕심이 많아지는가? 이 탐욕으로 인하여 하고 싶은 것이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탐욕을 지니면 만족해 할 줄 모르는가? 이 탐욕으로 인하여 탐하고 구하여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다. 탐욕은 여덟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 탐욕으로 인하여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곧 분노가 생겨 진에(瞋恚)를 일으키게 된다. 금생의 봄이 만약 성냄이 많으면 죽어서 곧 니라(泥犁)지옥에 떨어져 오랜 겁을 지내는 동안 숱한 고통을 다 받게 된다. 그 고통을 이미 다 받고 나면 또 축생의 세계에 떨어져서 독사(毒蛇)ㆍ도롱농[蚖]ㆍ살모사[蝮]ㆍ호랑이ㆍ표범ㆍ승냥이ㆍ이리 따위가 된다. 그런 가운데 있으면서 한량없이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다가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조그만 선보(善報)를 받아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더라도 하열한 사람이 되어 다시 성냄이 많으며, 얼굴 모습이 추악(醜惡)하여 남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는데 비단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이 만나기조차 기뻐하지 않는다. 분노[忿恚]는 다 성냄의 고뇌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성냄의 죄는 역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다. 만 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나니, 하나는 항상 남들이 그의 장점과 단점을 찾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항상 온갖 사람들에게 괴롭힘과 해침을 받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성냄의 번뇌를 가지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이 성냄의 번뇌로 인하여 중생들을 해치고 괴롭게 하기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받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성냄의 번뇌를 가지면 지옥에서 나오더라도 다시 축생이 되는가? 이 성냄의 번뇌로 인하여 인자한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까닭에 지옥에서 나오더라도 다시 축생의 몸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성냄의 번뇌를 가지면 다시 아귀가 되는가? 이 성냄의 번뇌로 인하여 간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죄를 범하기 때문에 또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성냄의 번뇌를 가지면 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장점과 단점을 찾는가? 이 성냄의 번뇌로 인하여 남을 포용하고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들이 그의 장점과 단점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성냄의 번뇌를 가지면 항상 뭇 사람들이 괴롭히고 해치려고 하는가? 이 성냄의 번뇌로 인하여 남을 괴롭히고 해치기 때문에 남들도 역시 괴롭히고 해치는 것이다. 성냄의 번뇌는 아홉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또 성냄의 번뇌로 인하여 사벽(邪僻)을 품고 바른 도를 믿지 않게 된다. 금생의 몸이 삿된 견해가 있어서 남들이 법을 듣거나 경전 외우는 것을 막고 스스로도 그것을 채택하기에 힘쓰지 않으면, 죽어서 곧 농치(聾癡)지옥에 떨어져서 오랜 겁이 지나는 동안 온갖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고통 받기를 이미 마치고 나면 다시 축생의 세계에 떨어져 삼보(三寶)와 사제(四諦)에 대한 설명을 들을지라도 그것이 선한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살해하고 매질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악한 것인 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있는 동안 한량없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다가 본래의 인연 때문에 만약 작은 선보를 만나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더라도 다시 하열하여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귀머거리나 봉사가 되어 보고 듣지 못함이 저 석벽(石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니, 좋은 말씀과 훌륭한 말씀이 다 끊어져 끝내 깨달아 알지 못할 것이다. 법을 들음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가 삿된 견해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지론』에서 말하였다. “삿된 견해의 죄도 역시 중생들로 하여금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한 다. 만약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얻나니, 하나는 삿된 견해가 있는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마음이 아첨하고 삐뚤어지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삿된 견해를 가지면 지옥에 떨어지는가? 삿된 견해로 인하여 사도(邪道)와 유신론(唯神論)으로만 향하고 불ㆍ법ㆍ승을 속되게 비방하여 삼보를 숭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삼보를 숭상하고 믿지 않는지라 사람의 바른 길을 끊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만나게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목숨을 마치면 아비(阿鼻)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삿된 견해를 가지면 또 축생이 되는가? 삿된 견해로 인하여 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고, 그런 까닭에 지옥에서 나오더라도 축생의 과보를 다시 받게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삿된 견해를 가지면 다시 아귀가 되는가? 이 삿된 견해를 가짐으로 인하여 아끼는 마음에 굳게 집착하여 어긋나고 편벽됨을 버리지 않는다. 아끼고 집착함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에 다시 아귀가 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삿된 견해를 가지면 삿된 견해를 가진 집안에 태어나는가? 이 삿된 견해로 인하여 편벽된 습기(習氣)가 마음을 얽어매고, 그런 까닭에 사람이 되면 삿된 견해를 가진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삿된 견해를 가지면 그의 마음이 아첨하고 비뚤어지는가? 이 삿된 견해를 가짐으로 인하여 중심을 바로 잡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변 항상 아첨하고 비뚤어지게 된다. 삿된 견해를 가지는 것이 열 번째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의 미세한 온갖 악한 죄업(罪業)은 한량없고 그지없어 다 지옥에 들어가서 온갖 고통을 갖추어 받는데, 그것을 이루다 헤아려 알 수 없지만 우선 대략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만약 그 악을 돌이켜 선을 행하면 그는 곧 내 스승이 되리라. 또 『팔사경(八師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범지(梵志)를 위하여 팔사(八師)의 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 흉악하고 난폭한 것을 말한다. 생물의 목숨을 잔악하게 해침으로 인하여 혹은 원수의 집안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혹은 왕법(王法)에 걸려 주살법(誅殺法)으로 다스려져서 가문의 친족들까지 멸망을 당한다.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 태워지고 지저지며 고문을 당하는 등 온갖 혹독한 고통이 번갈아 닥치지만 죽음을 갈구해도 그럴 수조차 없게 된다. 그 죄를 다 마치면 비로소 지옥에서 나오지만 혹은 아귀(餓鬼)가 되기도 하고 혹 축생이 되기도 하여 살을 베이고 껍질을 벗기우며 죽어서도 다시 칼날을 받는다. 혼신(魂神)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서로 번갈아가며 해친다. 나는 살생하는 이의 그 죄가 이와 같음을 보고 감히 다시는 살생하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나의 첫 번째 스승이니라.’ 이어서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흉악한 사람의 마음은 어질지 못해서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상하게 하고 해친다. 살생은 마땅히 과거 생에서 여러 겁 동안 원수를 맺고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 죄를 받아 수명이 짧아서 죽게 되든지 놀라고 슬퍼하며 포악한 환란을 당한다.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자한 마음으로 마군의 관속(官屬)을 항복받는다.
‘둘째, 몰래 훔치는 것을 말한다. 남의 재물을 억지로 겁탈함으로써 혹은 재물의 주인에게 칼이나 몽둥이로 형벌을 가하면 그 때를 당하여 온 가족이 와해(瓦解)되기도 하고 혹은 왕법에 결려 포박당하여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면 다섯 가지 독(毒)이 모두 닥치고 도시에서 사형을 당하며 가문의 친족까지 모두 멸망을 당한다. 죽고 나면 지옥에 들어가서 손으로 불을 받들고 녹인 구리물을 입 안에 부을 때엔 죽기를 희망하나 그것조차도 이룰 수 없다. 그 죄를 다 마치고 비로소 지옥에서 나오더라도 당장 아귀가 되어 마음 속으로 물을 마시려 하면 그 물은 고름으로 변하고 먹는 음식물은 모조리 숯으로 변화한다. 몸은 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동 온갖 고뇌가 저절로 따라다닌다. 때로는 축생이 되어 죽으면 곧 다시 칼날을 받아 그 살로 사람에게 공양함으로써 그 묵은 빚을 갚는다. 나는 도둑질한 이의 그 죄가 이와 같음을 보고 감히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나의 두 번째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둑질이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요, 남의 재물이나 보배를 겁탈하는 것이니, 잃어버린 물건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분노하고 성내고 시름하여 몹시 고뇌한다.
죽어서는 여섯 가지 가축의 폼을 받아 그 묵은 빚을 갚아야 하나니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라를 버리고 재물과 보물까지 보시한다.
‘셋째, 삿된 음행을 말한다. 곧 남의 부녀자를 범함으로써 혹은 그녀의 남편이나 주변 가까운 사람에게 들켜 당장 화를 당하되 칼이나 몽둥이가 그의 몸에 가해져서 머리와 발이 분리되고 그 화(禍)가 가문의 친족에게까지 미치기도 하고, 혹은 왕법(王法 : 國法)에 걸려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으로 다스려지나니, 그 몸이 스스로 허물을 초래한 것이다. 죽어서는 지옥에 틀어가 쇠평상에 눕거나 혹은 구리 기둥을 끌어 안으면 지옥귀신[獄鬼 : 獄卒]이 거기에 불을 붙여 그의 몸을 태운다. 그 지옥의 죄가 끝나면 다음에는 축생의 몸을 받을 것이요, 만약 뒤에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합문(闔門 : 閨門, 즉 가정)이 음란(婬亂)하여 부처님을 멀리하고 불법을 어기며 어진 대중을 친근히 하지 않고 항상 공포(恐怖)에 떨며, 위험은 많고 편안함은 적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보기 때문에 감히 다시는 삿된 음행을 하지 않나니, 이것이 곧 나의 세 번째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삿된 음행은 깨끗하지 않은 행동이니 거기에 미혹(迷惑)되면 바른 도를 잃게 된다. 몸이 녹아 없어지고 혼백(魂魄)조차 놀라며 목숨을 잃게 되어 일찍이 단명하리라.
그 죄를 받아 미련하고 어리석고 거칠며 죽은 뒤엔 다시 악한 세계에 떨어지리니 그런 까닭에 나는 아내와 아들까지 보시하고 뜻을 세워 산 속에 살기를 좋아한다네.
‘넷째, 이간질하는 말, 악한 말, 거짓말,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곧 죄 없는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삼존(三尊 : 三寶)을 비방함으로써 말 때문에 매질을 초래하고 역시 멸문(滅門)까지 당하게 한다. 죽고 난 뒤에 지옥에 들어가면 그 지옥 귀신들이 그의 혀를 뽑아 소가 끄는 쟁기로 갈며, 뜨거운 구리 쇳물을 입에 부을 때는 죽기를 바라나 그럴 수조차 없다. 지옥의 죄를 다 받고 그곳에서 나오면 마땅히 축생이 되어 항상 가시 있는 풀을 먹게 될 것이며, 만약 그 후에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그의 말을 남이 믿지 않고 입 속에선 늘 냄새가 나며 남의 비방과 꾸짖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누우면 악몽(惡夢)을 꾸고 입이 있어도 불경(佛經)의 지극한 맛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기 때문에 감히 악한 말을 하지 않나니, 이것이 곧 나의 네 번째 스승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을 속인 사람에게 네 가지 허물이 있나니 헐뜯거나 아첨하여 어진 이를 해치고 사람의 몸 받아도 어리석고 귀머거리나 장님이 되며 말을 더듬고 입 안에서 냄새가 난다.
미친 사람 취급하고 그 말을 믿지 않으며 죽어서는 발설지옥[拔舌囹]에 떨어진다. 나는 네 가지 깨끗한 말[口]을 닦아 스스로 여덟 가지 음성을 이루었노라.
‘다섯째,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을 말한다. 술은 독한 기운이 있어 임금이 마시 면 온갖 악을 이루어 왕도(王道)의 인자한 은택을 헐어 없애고, 신하가 마시면 임금을 업신여겨 충성과 공경이 없어지며, 아버지가 마시면 예의를 잃어버리고 어머니가 마시면 사랑을 잃게 되며, 자식이 마시면 흉악하고 사나워져 효도를 잃게 된다. 남편이 마시면 믿음을 잃고 아내가 마시면 음란하고 사치하며, 구족(九族)은 재산을 다투어 소모시키는 등 나라를 망치고 제 몸을 위태롭게 하나니, 이것은 다 술 때문이 아닌 게 없다.
술이 도를 어지럽히는 데 서른다섯 가지가 있으니, 나는 그것을 보았기 때문 에 술을 끊고 마시지 않는다. 이것이 곧 나의 다섯 번째 스승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을 말씀하셨다.
술에 취한 사람은 효도하지 않고 원수와 재앙이 안으로부터 생겨난다. 맑고 고상한 선비를 미혹하게 하고 덕을 어지럽히며 정숙(貞淑)을 무너지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며 깨끗한 지혜로 팔난(八難)을 건너고 스스로 원만한 도를 깨달았네.
‘여섯째, 늙어지는 것을 말한다. 늙음의 고통이란 머리털이 희어지고 이가 빠지며 눈도 침침해지고 귀로는 밝게 듣지 못한다. 왕성한 시기는 가고 쇠퇴 하는 때가 이르면 피부는 늘어지고 얼굴엔 주름살이 생기며 온갖 마디마다 통증이 일어나고 걸음걸이조차 지극히 괴롭다. 앉거나 일어날 때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고 근심 걱정에 마음만 괴롭다. 식신(識神)은 점점 사라지고 금방 했던 일도 곧 잊어버리며, 죽을 날이 닥쳐오니 그것을 말하면서 눈물만 흘린다. 나는 무상(無常)한 재변(災變)이 이러함을 보기 때문에 도를 구하여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나니, 이것이 곧 나의 여섯 번째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해보니 세상은 무상(無常)하여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늙게 된다. 왕성하던 때가 가변 날로 쇠약해지고 야위어져서 몸은 마르고 머리털은 희어진다.
근심과 피로에 온갖 병이 생기고 앉고 일어설 때 고통과 번뇌에 시름한다. 나는 이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라까지 버리고 도를 구해 수행한다.
‘일곱째, 병들고 수척해지는 것을 말한다. 곧 살이 없어지고 뼈만 앙상하며 온갖 뼈마디마다 모두 아파서 마치 매를 맞은 것같다. 사대(四大 : 地ㆍ水ㆍ火ㆍ風)가 가고 올 때 손과 발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기력은 허해지고 다 떨어져 나가 앉았다 일어설 때 남을 의지해야 한다. 입은 마르고 입술은 타며 힘줄은 끊기고 콧속은 터지며 눈으로는 물질을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깨끗지 못한 것들이 흘러나오면 몸은 그 위에 누워 마음으로 고뇌를 품으며, 말을 하면 곧 슬프고 애통한 말만 한다. 지금 세간의 사람들을 보면 나이는 젊고 기력은 왕성하여 화려한 얼굴이 빛나지만 복이 다하고 죄가 닥치면 덧없게도 온갖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이런 근심을 보기 때문에 도를 구하고 수행하며 다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나니, 이것이 곧 일곱 번째 나의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노쇠할 때에는 온갖 질병이 한꺼번에 생기나니 물은 스러지고 불만 일어나며 칼의 바람이 그 형체를 쪼갠다.
뼈ㆍ몸ㆍ힘줄ㆍ혈맥이 서로 분리되면 큰 목숨도 반드시 무너지고 마나니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도를 구하여 태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여덟째, 사람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사백네 가지 질병이 동시에 생기면 사 대(四大 : 몸)가 각기 흩어지려 하고 혼백과 정신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 바람이 가버리면 숨이 끊어지고 불이 꺼지면 몸이 싸늘해지는데, 바람이 먼저 가고 불은 그 다음에 사라진다. 영혼이 떠나버리면 신체는 곧 굳어져 뻣뻣해지고 다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한 열흘 동안에 살은 허물어지고 피가 흐르며 퉁퉁 부어올랐다가 문드러져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어느 것 하나도 취할 것이 없게 되고 몸 속에 있던 벌레들이 도리어 그 살을 먹어버린다. 힘줄과 혈맥이 문드러져 없어지고 뼈마디가 각기 흩어지며, 촉루(觸髏)와 비경(脾經)이 각각 제가 있던 자리를 달리하면 새와 짐승들이 다투어 와서 먹어치운다. 하늘ㆍ용ㆍ귀신ㆍ제왕ㆍ인민과 빈부(貧富)ㆍ귀천(貴賤)할 것 없이 이 근심을 보면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재변을 보기 때문에 도를 구하여 실천하면서 이런 짓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덟 번째 나의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오직 생각해보니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삼계의 큰 근심거리라네. 복이 다하여 목숨 마치면 황천(黃泉)에 버려지게 되느니라.
몸은 썩어서 도로 흙으로 돌아가고 혼백은 인연 따라가나니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도를 배워 니원(泥洹)을 구한다네.
그 때 범지(梵志)가 마음이 곧 열려 마침내 도적(道跡 : 須陀洹)을 증득하였다. 그런 뒤에 꿇어앉아 계를 받고 청신사(淸信士)가 되어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부모를 효도로 받들고 술에 취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그러므로 서(書)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음성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을 썩게 한다. 큰 성냄은 음(陰)을 상하게 하고 지나치게 기뻐하는 것은 양(陽)을 무너뜨린다. 고운 색깔은 성품을 찍어버리는 도끼요, 좋은 맛은 몸을 썩게 하는 독(毒)이다. 이 이치를 잘 깨달으면 그가 곧 큰 스승이니라.”
게송을 설한다.
마음과 경계가 서로 작용하여 업(業)이 맺혀지고 번뇌에 얽매이니 칠식(七識)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팔식(八識)이 그 원인을 이룬다.
삼계(三界)에서 그 과보를 받고 ‘여섯 갈래 세계에 끝없이 옮겨 다닌다. 처소를 따라 그 업(業)을 일으켜 어느 곳에 가든지 구속을 받는다.
오읍(五陰) 때문에 몹시도 고달파하고 구뇌(九惱) 때문에 항상 머뭇거린다. 스스로 자비한 성인이 아니면 무슨 지혜로 정신을 상쾌하게 하리오.
모든 중생들 널리 구제할 수 있는 현묘한 나루터를 이제야 깨쳤으니 그것을 펴면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그것을 거두면 은혜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1)『법원주림(法苑珠林)』제69권 「수보(受報)편」에 같은 내용이 있는데 거기에는 ‘오올(五兀)’이 ‘오고(五苦)’로 되어 있다. ‘올(兀)’은 형벌이나 고통의 의미인 듯하다.
2)무타등업은 상게서(上揭書)에는 ‘무기등업(無記等業)’으로 되어 있다.
3)원인이 되는 행엽(行業)에 대하여 받을 결과인 과보보다 먼저 받는 보(報). 이것은 식물이 열매를 맺기 전에 꽃이 피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선한 업인(業因)으로 말미암아 내세에 선한 세계에 태어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먼저 부귀와 장수(長壽) 등의 보를 받거나 또는 악한 업인으로 말미암아 내세에 악한 세계에 떨어질 사람이 이 세상에서 병들고 형벌을 받는 등의 과보를 받는 따위를 말한다.
4)송(宋)ㆍ원(元) 명(明)ㆍ궁(宮)본에는 ‘창(倡)’자가 ‘창(唱)’자로 되어 있다.
5)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장(長 : 어른)’자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맞지 않으므로 송ㆍ원ㆍ명 세 본에 따라 ‘소(少 : 젊음)’자로 번역하였다.
6)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영달(永達)’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의미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송ㆍ원ㆍ명 세 본에 따라 ‘시도(示導)’로 하였다.
7)『법원주림(法苑珠林)』 「선보부(善報部)」에는 ‘일곱 종류의 사람[人]’이라는 구절이 ‘일곱 종류의 법(法)’으로 나와 있는데 『법원주림』의 내용이 더 적절할 것이다.
8)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오(遨) 자로 되어 있으나 문맥이 맞지 않으므로 “송ㆍ원ㆍ명ㆍ궁본에 따라 ‘오(鰲 : 자라)’자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