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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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삼장기집 제7권
031_0336_b_01L出三藏記集序卷第七


석승우 지음
박상준 번역
031_0336_b_02L釋僧祐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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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②

도행경서(道行經序) 제1 석도안(釋道安) 지음
도행경후기(道行經後記) 제2 작자 미상
방광경기(放光經記) 제3 작자 미상
합방광광찬약해(合放光光讚略解) 제4 도안법사
수진천자경기(須眞天子經記) 제5 작자 미상
보요경기(普曜經記) 제6 작자 미상
현겁경기(賢劫經記) 제7 작자 미상
반주삼매경기(般舟三昧經記) 제8  작자 미상
수릉엄삼매경주서(首楞三昧經注序) 제9 작자 미상
합수릉엄경기(合首楞嚴經記) 제10 지민도(支敏度) 지음
수릉엄경후기(首楞嚴經後記) 제11 작자 미상
신출수릉엄경서(新出首楞嚴經序) 제12 홍충(弘充)법사
법구경서(法句經序) 제13 작자 미상
아유월치차경기(阿維越致遮經記) 제14 역출된 경의 뒤에 부기(附記) 함
마역경기(魔逆經記) 제15 역출된 경의 뒤에 부기함
혜인삼매급제방등학이경서찬(慧印三昧及濟方等學二經序讚) 제16 왕 승유(王僧孺)
성법인경기(聖法印經記) 제17 역출된 경의 뒤에 부기함
문수사리정률경기(文殊師利淨律經記) 제18 역출된 경의 뒤에 부기함
왕자법익괴목인연경서(王子法益壞目因緣經序) 제19 불념(佛念)법사
합미밀지타린니총지삼본(合微密持陀隣1)總尼持三本) 제20 지공명 (支恭明) 지음
031_0336_b_03L道行經序第一  釋道安作道行經後記第二 未詳作者放光經記第三  未詳作者合放光光讚略解第四 道安法師須眞天子經記第五 未詳作者普曜經記第六  未詳作者賢劫經記第七  未詳作者般舟三昧經記第八 未詳作者首楞嚴三昧經注序第九 未詳作者合首楞嚴經記第十 支敏度作首楞嚴經後記第十一 未詳作者新出首楞嚴經序第十二 弘充法師法句經序第十三 未詳作者阿維越致遮經記第十四 出經後記魔逆經記第十五 出經後記慧印三昧及濟方等學二經序讚第十六  王僧孺撰聖法印經記第十七 出經後記文殊師利淨律經記第十八 出經後記王子法益壞目因緣經序第十九佛念法師合微密持陁以尼摠持三本第二十支恭明作

1. 도행경서(道行經序) 석도안(釋道安) 지음
031_0336_c_03L道行經序第一 釋道安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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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여라, 지혜바라밀[智度]이여. 모든 성인이 이를 의지해서 통달하고 모든 종(宗)이 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지가 만물을 포함하고 태양이 만물을 비추어주는 것처럼 모든 법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지만 자랑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며, 유명(有名)에 매여 있으면서 이미 유명을 벗어나 있으니, 또한 무형(無形)을 병통으로 여기면서도 두 가지를 다 잊어서 현묘하고 아득하여 무심하게 주체가 없으니, 이것이 지혜의 강기(綱紀)이다.
영구한 수명은 하늘[上乾]보다 긴 것이 없지만 상자(殤子:어려서 죽은 아이)와 같이 여기고, 신묘하고 위대한 것은 허공에 솟아 있는 높은 산[陵虛]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지만 물이 막혀 있는 것[涓滯]과 동일하게 여기며, 지극한 덕은 진인(眞人)보다 큰 것이 없지만 썩은 씨앗[朽種]에 비유하고, 고원하고 오묘한 것은 세웅(世雄)보다 큰 것이 없지만 환몽(幻夢)에 비유하니, 이것을 말미암아서 논해 본다면 진실로 모든 성인의 근본[宗]이 된다.
무엇 때문인가? 도(道)를 잡아서 유(有)를 제어하는 것은 높고 낮은 차이가 있으니, 이것은 유위(有爲)의 영역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여에 의거하고 법성에 노닐면서 그윽하게 명칭이 없는 것[無名]이 아니다. 진여에 의거하고 법성에 노닐면서 그윽하게 명칭이 없는 것은 지혜바라밀[智度]의 깊숙한 방[奧室]이고, 세속의 가르침[名敎]과 고원한 사상[遠想]은 지혜바라밀의 임시 숙소[遽廬]이다.
그렇지만 증득했다는 집착을 간직한 사람은 무생(無生)에 계합하지 않음이 없으면서도 눈이 아찔해지고,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차별을 버리는 것[蕩冥]에 대해 분노를 일으키지 않음이 없어서 함부로 비방한다. 도가 움직이면 반드시 근원으로 돌아오는데 근원에 도달함에는 우열의 다름이 없으니, 아찔해지고 비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마땅하지 않겠는가.
요컨대 이 법은 정진바라밀[進度]과 함께 굴러가면서 소요하며 함께 노니는 것이니, 모든 수행과 모든 선정[千行萬定]2)이 이것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여러 가지 수행이 명자[字]를 얻어 지혜로 나아감에 이름에 걸맞도록 수행하고[全名]3)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참구하여 이루는 것이 이 지혜바라밀[此列]을 구하는 것이다.
또 경(經)에서는 나아가 제일의(第一義)에 자문을 구하여 이야기의 실마리로 삼고, 물러나 권도(權道)의 방편을 기술하여 담론의 첫머리로 삼고 있어서 수행이 아무리 미세해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음이 없고 수(數)가 아무리 미세해도 끝까지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언어표현[言]은 번거로운 것 같지만 각각 근본[宗]이 있고 의미는 중복되는 것 같지만 각각 주체가 있다.
자잘한 소견을 가진 사람은 비근한 가르침[邇敎]을 환영하면서 기뻐하고, 광대하고 밝은 소견을 가진 사람은 머나먼 목표를 바라보면서 숨이 막히게 된다.
오르려 하면 더욱 높아져 오를 수 없고, 건너려 하면 더욱 깊어져 측량할 수 없고, 도모하려 하면 생각으로 살필 수 없고, 찾으려 하면 끝까지 헤아릴 수 없어서 아득하고 그윽하기만 하다. 진실로 대업(大業)의 연수(淵藪)라고 할 수 있으니, 오묘하다 하겠구나.
그렇지만 이것을 밝히려고 하는 경우, 문장을 상고해서 이치를 따지려는 사람은 그 취지에 어둡게 되고, 구절을 살펴서 의미를 징험하려는 사람은 그 취지에 미혹하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문장을 상고하면 같고 다름[同異]을 항상 구별해서 표현하게 되고, 구(句)를 찾으면 부딪치는 유(類)마다 항상 뜻을 구별해서 표시하게 되는데, 구별해서 표시하게 되면 최후에 성취하려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뜻을 구별해서 표시하면 처음에 나타내고자 한 의미를 소홀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에 나타내고자 한 것을 따라서 끝맺으려 하거나, 혹은 문장을 잊어버리고 실질을 온전하게 하고자 하면 대지(大智)가 현묘하게 통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마음을 일으킨 것[始發意]으로부터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기까지 한 단계 한 단계 이루어져서[曲成] 확실하게 나타나면 8지(地)에는 오염된 것[染]4)이 없으리니, 이것을 지(智)라고 한다. 그러므로 미혹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3해탈(解脫)로 공(空)을 관조하고, 4비(非)로 유(有)를 밝혀서 제법을 총체적으로 조감하면 이것으로 인하여 그 후에 작용을 성취하여 약과 병을 둘 다 잊으리니, 이것을 관(觀)이라고 한다. 지(智)와 관(觀), 이 두 가지 행을 밝히면 경에 실린 30만언(萬言)이 마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을 것이며 어렵고 급박한 순간에도 이것을 일으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외국(外國)의 고사(高士)가 90장(章)을 가려 뽑아내어 「도행품(道行品)」이라고 하였고, 동한(東漢)의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때 축삭불(竺朔佛)이 경사(京師)로 가지고 와서 한문(漢文)으로 번역하였다. 그렇지만 원본(原本)에 의지하고 뜻을 따라서 범음(梵音)을 한(漢)나라 말에 걸맞게 바꾸었을 뿐이고, 성인의 말씀을 공경하고 순종해서 끝내 수식을 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경(經)이 이미 가려 뽑은 것의 장지(章旨)를 합성한 것이고 음(音)도 다르고 풍속도 다른데다가 역출하는 사람이 입으로 구전(口傳)한 것이니, 진실로 3장(藏)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나하나의 본래 연고(緣故)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도행경(道行經)』에는 수미(首尾)가 숨어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어서 옛날의 현인들이 의론하면서도 때때로 막힘이 있었다. 주사행(朱士行)은 이 점을 부끄럽게 여겨 그 원본을 찾고자 하여 우전국(于闐國)에 이르러 원본을 얻어 창원(倉垣)으로 보내와 그것을 역출하여 「방광품(放光品)」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중복된 것을 피하여 생략하고 깎아내어 문장이 완미하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썼다. 만약 그 문장을 모두 갖추어서 번역했다면 아마도 세 배가 넘었을 것이다. 이 「방광품(放光品)」에서는 무생(無生)이라는 말을 훌륭하게 역출하였고, 공(空)을 논의함이 특별히 교묘하였다. 전역(傳譯)은 이와 같은 것이어서 계승하기 어렵다. 두 사람5)이 역출한 것도 대지(大智)를 환하게 하여 그윽한 이치를 천양하는 데 충분하였으니, 지참(支讖)이 번역한 전본(全本)도 응당 그러했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경에서 가려뽑아 깎아내고 삭제하는 것은 해로움이 반드시 많기 때문이니, 원본에 맡겨 성인(聖人)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극한 훈계이다.
나 도안(道安)은 말학(末學)임을 헤아리지 않고 반야에 마음을 기울여 독송하고[詠]완미하면서 이 가르침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자 하여, 그 역출된 것의 일의 근본과 시종(始終)을 조사해 보니 오히려 절상(折傷)한 것이고, 옥의 티와 같아서 만족함[厭然]에 끝이 없었다. 가령 「방광품(放光品)」이 없었다면 어떤 것을 말미암아서 이 경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선철(先哲)의 은혜를 입은 것이 많음에 길이 감사드린다.
지금 내가 본 것을 모아 구절 아래에 해석을 붙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首尾)가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 나타내고, 경(經)을 역출함에 차이점이 있는 것을 보면 옳고 그름[得否]을 전평(銓評)하였으며, 원본에 의거하여 가려뽑은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감히 늘이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였다. 바라건대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同好]은 그 허물을 고쳐주기 바란다.
031_0336_c_04L大哉智度萬聖資通咸宗以成也含日照無法不周不恃不處累彼有旣外有名亦病無形兩忘玄漠然無主此智之紀也夫永壽莫美乎上乾而齊之殤子神偉莫美於陵虛而同之狷滯至德莫大乎眞人而比之朽種高妙莫大乎世雄而喩之幻由此論之亮爲衆聖宗矣何者道御有卑高有差此有爲之域耳據眞如遊法性冥然無名也據眞如遊法性冥然無名者智度之奧室也名教遠想者智度之蘧廬也然存乎證者莫不契其無生而惶眩存乎迹莫不忿其蕩冥而誕誹道動必反優劣致殊眩誹不其宜乎不其宜乎要斯法也與進度齊軫逍遙俱遊行萬宜莫不以成衆行得字而智進令名諸法參相成者求之此列也其經也進咨第一義以爲語端追述㩲便以爲談首行無細而不歷數無微而不極言似煩而各有宗義似重而各有主瑣見者慶其邇教而悅寤宏哲者望其遠摽而絕息陟者彌高而不能階涉者彌深而不能測謀者慮不能規尋者度不能曁窈冥矣可謂大業淵藪妙矣者哉然凡諭之考文以徵其理者昏其趣者也句以驗其義者迷其旨者也何則文則異同每爲辭尋句則觸類每爲爲辭則喪其平成之致爲旨則忽其始擬之義矣若率初以要其終忘文以全其質者則大智玄通居可知也從始發意逮一切智曲成決著地無深謂之智也故曰遠離也三脫照四非明有統鑑諸法因後成用病雙亡謂之觀也明此二行於三十萬言其如視諸掌乎顚沛造次起無此也佛泥曰後外國高士抄九十章爲道行品桓靈之世朔佛齎詣京師譯爲漢文因本順旨轉音如已敬順聖言了不加飾也然經旣抄撮合成章指音殊俗異譯人口傳自非三達胡能一一得本緣故乎由是道行頗有首尾隱者古賢論之往往有滯仕行恥此尋求其本到于闐乃得送詣倉垣出爲放光品斥重省刪務令婉便若其悉文將過三倍善出無生論空特巧傳譯如是難爲繼矣二家所出足令大智煥爾闡幽支讖全本其亦應然何者抄經刪削所害必多委本從聖乃佛之至戒也安不量未庶幾斯心載詠載玩未墜于地其所出事本終始猶令析傷玷缺然無際假無放光何由解斯經乎永謝先哲所蒙多矣今集所見爲解句下始況現首終隱現尾出經見異銓其得否擧本證抄敢增損也幸我同好飾其瑕謫也

2. 도행경후기(道行經後記) 작자 미상
031_0337_b_16L道行經後記第二 未詳作者

광화(光和) 2년(179) 10월 8일 하남(河南) 낙양(洛陽)의 맹원사(孟元士)에게 천축(天竺) 보살 축삭불(竺朔佛)이 구술(口述)로 전수해 주었다.
031_0337_b_17L光和二年十月八日河南洛陽孟元士口授天竺菩薩竺朔佛
그 때 말을 전역(傳譯)한 사람은 월지국(月支國) 보살 지참(支讖)이었고, 그 때의 시자(侍者)는 남양(南陽)의 장소안(張少安)과 남해(南海)의 자벽(子碧)이었으며, 여러 방법으로 도운 사람은 손화(孫和)와 주제립(周提立)이었다.
정광(正光) 2년(521) 9월 15일에 낙양성 서쪽 보살사(菩薩寺)에서 사문 불대(佛大)가 필사(筆寫)하였다.
031_0337_b_19L傳言者譯月支菩薩支讖時侍者南陽張少安南海子碧勸助者孫和周提立正光二年九月十五日洛陽城西菩薩寺沙門佛大寫之

3. 방광경기(放光經記) 작자 미상
031_0337_b_23L放光經記第三 二十卷者未詳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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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위(大魏) 영천(穎川)의 주사행(朱士行)은 감로(甘露) 5년(260)에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이 되었는데, 국경을 나서서 서쪽으로 가 우전국에 이르러 『방광경(放光經)』의 정품(正品) 범서(梵書)와 호본(胡本) 90장(章) 60만 여언(言)을 필사하여 얻었다. 태강(太康) 3년(282)에 진(晋)나라의 이름으로는 법요(法饒)라고 하는 제자 불여단(弗如檀)을 파견하여 방광경의 호본(胡本)을 가지고 낙양(洛陽)에 이르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3년을 머물고 다시 허창(許昌)에 이르렀다가 2년 후에 진류군(陣留郡)의 경계인 창원(倉垣)의 수남사(水南寺)에 이르렀다. 원강(元康) 원년(291) 5월 15일에 여러 현자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하여 진서(晋書)로 정사(正寫)하였는데, 그때 호본(胡本)을 잡은 사람은 우전국(于闐國) 사문 무라차(無羅叉)였고, 우바새 축숙란(竺叔蘭)이 진(晋)의 말로 구전(口傳)하였으며, 축태현(祝太玄)과 주현명(周玄明)이함께 필수(筆受)하였다. 정서(正書) 한 것은 90장으로 모두 20만 7천 6백 21언(言)이었다. 그 때 창원(倉垣)의 모든 현자들과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돕고 공양하여 그 해 12월 24일에 이르러 필사를 모두 마쳤다. 경의 의미가 심오하여, 전후로 필사된 것을 참조하여 교정했지만 모든 것을 훌륭하게 할 수는 없었다.
031_0337_b_24L惟昔大魏穎川朱士行以甘露五年出家學道爲沙門出塞西至于闐國寫得正品梵書胡本九十章六十萬餘言以太康三年遣弟子弗如檀晉字法饒送經胡本至洛陽住三年至許昌二年後至陳留界倉垣水南以元康元年五月十五日衆賢者皆集議晉書正寫執胡本者于闐沙門無叉羅優婆塞竺叔蘭口傳太玄周玄明共筆受正書九十章二十萬七千六百二十一言倉垣諸賢者等大小皆勸助供養至其年十二月二十四日寫都訖經義深奧前後寫者參挍不能善悉
태안(太安) 2년(303) 11월 15일에 이르러 사문 축법적(竺法寂)이 창원의 수북사(水北寺)에 이르러 경의 원본[經本]을 구하여 서사(書寫)하였는데, 그때에 유통되던 품[現品] 5부와 호본(胡本)을 취해서 검토하고, 축숙란(竺叔蘭)과 더불어 다시 함께 상고하고 교정하면서 서사하여 영안(永安) 원년(304) 4월 2일에 마치니, 이것은 전후로 필사되고 교정된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차이점을 바로잡은 것이어서 그 전에 필사된 것들도 이것을 취하여 다시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031_0337_c_15L至太安二年十一月十五日沙門竺法寂來至倉垣水北寺求經本寫時撿取現品五部幷胡本與竺叔蘭更共考挍書寫安元年四月二日訖於前後所寫最爲差定其前所寫可更取挍
진(晋)과 호(胡)의 음훈(音訓)은 의미를 나타내어 소통시키기가 어려우니, 모든 개사(開士:보살)와 대학의 문생(門生)으로서 서사(書寫)하고, 공양하고 외우고 읽는 사람들은 바라건대 세 번 생각해서 이것이 미치지 못한 점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031_0337_c_20L胡音暢義難通諸開士大學文生書寫供養諷誦讀者願留三思恕其不逮也

4. 합방광광찬약해서(合放光光讚略解序) 석도안 지음
031_0337_c_22L合放光光讚略解序第四 釋道安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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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경(放光經)』과 『광찬경(光讚經)』은 동본이역(同本異譯)일 뿐이다. 그 원본(原本)은 모두 우전국(于闐國)에서 나온 것을 가져온 것으로, 들어온 해의 차이도 거의 없다.
『광찬경』은 우전국 사문 기다라(祇多羅)가 태강(泰康) 7년(286)에 가져와 호공(護公:竺法護)이 그 해 11월 25일에 역출하였다.
031_0337_c_23L放光光讚同本異譯耳其本俱出于闐國持來其年相去無幾光讚于闐沙門祇多羅以泰康七年齎來公以其年十一月二十五日出之
『방광경(放光經)』은 태강(泰康) 3년(282) 분여단(分如檀)을 스승 주사행(朱士行)이 우전국에서 보내 낙양에 이르렀으니, 원강(元康) 원년(291) 5월에 이르러서야 역출될 수 있었다. 따라서 『광찬경』보다 4년 먼저 들어와 『광찬경』보다 9년 후에 역출된 것이다. 『방광경』은 우전국의 사문 무차라(無叉羅)가 호본(胡本)을 잡고 축숙란(竺叔蘭)이 전역하였는데, 말을 줄이고 일을 요약하며, 중복된 것을 깎아서 삭제하였으므로 일마다 환하게 나타나서 분명하여 보기가 쉽다. 그렇지만 간략한 것을 따르면 반드시 빠뜨리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천축의 말과 의미를 전달함[騰]에 있어서 항상 지나치게 간략한 점이 있다.
031_0338_a_04L放光分如檀以泰康三年于闐爲師送至洛陽到元康元年五月乃得出耳光讚來四年後光讚出九年也放光于闐沙門無叉羅執胡竺叔蘭爲譯少事約▼((口/又)+刂)削復重事事顯炳煥易觀也而從約必有所遺於天竺辭及騰每本蘭焉
031_0338_b_02L『광찬경』은 호공(護公)이 호본(胡本)을 잡고 섭승원(聶承遠)이 필수(筆受)하였는데, 말은 천축의 말을 그대로 따르고, 일을 설명함에 수식을 더하지 않아 전체를 갖추기는 했으나 표현의 질박함이 꾸밈을 억눌러 항상 일의 첫머리에 이르면 문득 불편한 점이 많으니, 모두가 반복해서 서로를 밝히고 있는데도 뜻이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역출한 것을 상고해 보니 일마다 완벽하고 치밀해서 두 경이 서로서로 도와서 이익을 주고 있어, 깨닫는 바가 실로 많다. 안타까운 것은 이 『광찬경』이 91년 동안 양토(涼土:양州)에 매장되어 있다가 거의 소멸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이 나라[晋]에 도달했다는 점이니, 이 경은 거의 없어져서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방광경(放光經)』이 곧 역출되어 번화한 수도에서 크게 유통되어 사문[息心]과 거사(居士)들 사이에 서로서로 전해졌다.
중산(中山)의 지(支)화상이 사람을 창원(倉垣)에 보내 단견(斷絹:비단)에 필사하게 하였다. 그 사람이 이것을 가지고 중산으로 돌아오자, 중산의 왕과 여러 스님들이 성(城) 남쪽 40리에 깃발을 세우고 경(經)을 맞이하였으니, 이 경이 세상에 유통된 경위가 이와 같았으므로 『광찬경』을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옛날에 조(趙)ㆍ위(魏) 지역에서 난리를 피할 때에 『광찬경』의 제1품을 얻고는 이경이 있음을 알고, 찾아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때마침 혜상(慧常)과 진행(進行)과 혜변(慧辯) 등이 천축(天竺)으로 가다가 양주(涼州)에서 필사하였으나, 송달(送達)하기가 곤란(困難)하였다. 진주(秦州)와 옹주(雍州)를 전전하다가진(晋)나라 태원(泰元) 원년(376) 5월 24일에 비로소 양양(襄陽)에 도달하였다. 내가검토하고 깊이 완미하여 이익이 되는 것이 있음을 기쁘게 여겨 문득 그 장점이 되는것을 기록하여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풀이한다.
031_0338_a_11L光讚護公執胡本聶承遠筆受言准天竺事不加飾悉則悉而辭質勝文也每至事首輒多不使諸反覆相明又不顯灼考其所出事事周密耳互相補益所悟實多其寢逸涼土九十一年幾至泯滅達此邦也斯經旣殘不具竝放光尋大行華京息心居士翕然傳焉山支和上遣人於倉垣斷絹寫之還中山中山王及衆僧城南四十里幢幡迎經其行世如是是故光讚人無知者昔在趙魏逬得其第一品有茲經而求之不得至此會慧常慧辯等持如天竺路經涼州寫而困焉展轉秦雍以晉泰元元年五月二十四日乃達襄陽尋之玩之欣有所益輒記其所長爲略解如左
031_0338_c_02L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근본이다. 정(正)은 평등하다[等]는 뜻이고, 불이(不二)의 경지에 깨우쳐 들어간다는 뜻이다. 등(等)이라는 말에 세 가지 의미가 있으니, 법신(法身)의 의미와 여(如)6)의 의미와 진제(眞際)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여(如)로 바탕[始]을 삼고, 법신(法身)으로 종(宗)을 삼고 있다. 여(如)는 그러하다[爾]는 뜻이니, 본(本)과 말(末)이 평등하게 그러하여 그러하지 않게 할 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다가 멸도에 드신 후에도 형상은 없으나 면면하게 이어져 항상 존재하며 유유히 자재(自在)하여 의지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여(如)라고 하는 것이다.
법신(法身)은 유일하다[一]는 뜻이며 항상 청정하다는 뜻이다. 유(有)와 무(無)에 평등하게 청정하여 애초부터 명칭이 없었다. 그러므로 계(戒)에 있어서는 계를 지킴도 없고 범(犯)함도 없으며, 정(定)에 있어서는 정에 들어감도 없고 산란함[亂]도 없으며, 지(智)에 있어서는 지혜로움도 없고 어리석음[愚]도 없다. 이러한 것이 없어져서 모두 잊고, 계(戒)ㆍ범(犯)ㆍ정(定)ㆍ란(亂)ㆍ지(智)ㆍ우(愚)의 여섯 가지를 모두 쉬어 깨끗한 그대로[皎] 검게 물들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다고 말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도[常道]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제(眞際)는 집착할 것이 없다[無所着]는 뜻이다. 안정되어 요동하지 않고, 담연하여 고요하고 가지런하며, 작위(作爲)함도 없고 작위하지 않음도 없다. 만법(萬法)은 작위함이 있으나 이 법은 심원하여 묵묵히 말이 없다. 그러므로 무소유(無所有)가 이법의 진실[眞]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에서 만행(萬行)을 함에 상대적인 양단(兩端)을 모두 폐하여[兩廢] 문장에 부딪칠 때마다 문득 없다고 하니, 무엇 때문인가? 어리석으면 하는 것마다 바라지 않음이 없어서 종일 말하는 것이 모두 물(物)이다. 그러므로 팔만사천의 진구(塵垢:번뇌)의 문(門)이 된다. 지혜로우면 하는 것마다 묘(妙)하지 않음이 없어서 종일 말하는 것이 모두 도(道)이다. 그러므로 팔만사천의 도무극(度無極:바라밀)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대정(大淨)을 잡아서 지키면 만행이 바르게 되고, 바르게 되면 해침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이니, 오묘하고 또 위대한 것이다.
대체로 반야(般若)를 담론함에 있어서 모두 병이 퍼져나가는 범위[疆服]를 미루어서 찾는 것은 자취[轍]7)를 구별하는 것이고, 모든 약의 효능의 범위[封域]를 찾는 것은 자취를 끊는 것이니, 그 자취[轍迹]를 중요하게 여겨서 담론하는 것은 경의 지남(指南)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지남이라는 것은 가령 예를 들어 『방광경(放光經)』 「가호장(假號章)」의 머물지 않음[不住]과 「오통품(五通品)」의 뽐내지 않는 것[不貢高]과 같은 경우이니, 이것이 온갖 장애[百僻]를 건너면서도 본뜻[午]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마땅히 그 자취를 정밀하게 구별해야 하고 그 가리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니,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더불어 지혜를 말할 수 있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모든 5음(陰)에서 살운야(薩云若:一切智)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보살이 왕래하면서 나타낸 법혜(法慧)이니,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도[可道之道]이다. 모든 일상(一相)에서 무상(無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보살이 왕래하면서 나타낸 진혜(眞慧)이니,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도[常道]를 밝힌 것이다.
언어로 설명할 수[可道] 있기 때문에 후장(後章)에서 “어떤 경우에는 세속(世俗)을 말하고, 어떤 경우에는 설해서 끝마쳤다[說已]”고 하였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常道] 경우에는 “혹은 무위(無爲)라고 말하고, 혹은 다시 설한다[復說]”고 하였다. 이두 가지를 동일하게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법륜(法輪)을 굴리는 중요한 덕목[要目]이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상례(常例)이다.
031_0338_b_04L般若波羅蜜者無上正眞道之根也正者等也不二入也等道有三義焉法身知也眞際也故其爲經也以如爲以法身爲宗也如者爾也本末等無能令不爾也佛之興滅緜緜常悠然無寄故曰如也法身者一也常淨也有無均淨未始有名故於戒則無戒無犯在定則無定無亂處智則無智無愚泯爾都忘二三盡息然不緇故曰淨也常道也眞際者所著也泊然不動湛爾玄齊無爲也無不爲也萬法有爲而此法淵默曰無所有者是法之眞也由是其經萬行兩廢觸章輒無也何者癡則無往而非徼終日言盡物也故爲八萬四千塵垢門也慧則無往而非妙終日言盡道也故爲八萬四千度無極也所謂執大淨而萬行正正而不害乎大也凡論般若推諸病之疆服者理徹者也尋 衆藥之封域者斷迹者也高談其徹迹者失其所以指南其所以指南者若假號章之不住五通品之不貢高是其涉百辟而不失午者也宜精理其徹迹又思存其所指則始可與言智已矣何者諸五陰至薩云若則是菩薩來往所現法可道之道也諸一相無相則是菩薩來往所現眞慧明乎常道也道故後章或曰世俗或曰說己也道則或曰無爲或曰復說也此兩者同謂之智而不可相無也斯乃轉法輪之目要般若波羅蜜之常例也

5. 수진천자경기(須眞天子經記) 작자 미상
031_0338_c_13L須眞天子經記第五 未詳作者

『수진천자경(須眞天子經)』은 태시(太始) 2년(266) 11월 8일 장안(長安)의 청문(靑門:장안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 안에 있는 백마사(白馬寺)에서 천축(天竺) 보살 담마라찰(曇摩羅察)이 구술로 전수해서 역출하였다. 그 때 말을 전역(傳譯)한 사람은 안문혜(安文惠)와 백원신(帛元信)이었고, 손으로 받아 쓴 사람은 섭승원(聶承遠)ㆍ장현백(張玄泊)ㆍ손휴달(孫休達)이었다. 12월 30일 미시(未時)에 끝마쳤다.
031_0338_c_14L須眞天子經太始二年十一月八日長安靑門內白馬寺中天竺菩薩曇摩羅察口授出之傳言者安文惠帛元信手受者聶承遠張玄泊孫休十二月三十日未時訖

6. 보요경기(普曜經記) 작자 미상
031_0338_c_19L普曜經記第六 未詳作者

『보요경(普曜經)』은 영가(永嘉) 2년(308) 태세수(太歲數)가 무진(戊辰)인 해 5월 본재일(本齋日:布薩日)에 보살 사문 법호(法護)가 천수사(天水寺)에서 손으로 호본(胡本)을 잡고, 입으로는 진(晋)나라 말로 선양한 것이다. 그때 필수(筆受)한 사람은 사문 강수(康殊)와 백법거(帛法巨)였다.
031_0338_c_20L普曜經永嘉二年太歲在戊辰五月本齋菩薩沙門法護在天水寺手執胡本口宣晉言時筆受者沙門康殊帛法巨

7.현겁경기(賢劫經記) 작자 미상
031_0338_c_24L出賢劫經記第七 未詳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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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려대장경에는 출현겁경기(出賢劫經記)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에 따라 출(出)을 생략하였다.『현겁경(賢劫經)』은 영강(永康) 원년(300) 7월 21일에 월지국(月支國)의 보살 축법호(竺法護)가 계빈국(罽賓國) 사문에게서 이 『현겁삼매경(賢劫三昧經)』을 얻어 손으로 초본을 잡고 입으로 선양한 것이다. 그때는 축법우(竺法友)가 낙양에서 찾아와 의탁하던 중이었다. 필수(筆受)한 사람은 조문룡(趙文龍)이었다. 이러한 공덕과 복이 시방의 모든 중생에게 퍼져나가 마침내 두루두루 은혜를 입혀 죄장[罪蓋]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031_0339_a_02L賢劫經永康元年七月二十一日支菩薩竺法護從罽賓沙門得是賢劫三昧手執口宣時竺法友從洛寄來筆者趙文龍使其功德福流十方遂蒙恩離於罪蓋
이 경(經)은 현겁(賢劫)의 천 분의 부처님을 차례로 나타내고, 그 분들께 머리를 조아려 도의 교화를 받고 보살이 된다는 수기[決]를 받아 무생인(無生忍)을 얻고, 일체법(一切法)을 얻으며, 시방(十方)의 중생들도 모두 그러함을 나타내고 있다.
031_0339_a_07L其是經者次見千稽受道化受菩薩決致無生忍一切法十方亦爾

8. 반주삼매경기(般舟三昧經記) 작자 미상
031_0339_a_09L般舟三昧經記第八 未詳作者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은 광화(光和) 2년(179) 10월 8일에 천축(天竺) 보살 축삭불(竺朔佛)이 낙양(洛陽)에서 역출하였다. 그 때 말을 전역(傳譯)한 사람은 월지국(月支國) 보살 지참(支讖)으로서 하남(河南) 낙양(洛陽)의 자(字)가 원사(元士)인 맹복(孟福)에게 전수하였다. 따르면서 모시는 보살로서 자(字)가 소안(少安)인 장련(張蓮)이 필수(筆受)하였다.
031_0339_a_10L般舟三昧經光和二年十月八日竺菩薩竺朔佛於洛陽出菩薩法護時傳言者月支菩薩支讖授與河南洛陽孟福字元士隨侍菩薩張蓮少安筆受
후에 널리 유포시키기 위하여 건안(建安) 13년(208) 불사(佛寺)에서 교정(校定)을 마치니 모든 것이 감추어지게 되어 후에 필사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부처님에게 귀의할 수 있게 되었다.
031_0339_a_15L令後普著在建安十三年於佛寺中挍定悉具足後有寫者得南無佛
또 건안(建安) 3년(198년) 무자세(戊子歲) 8월 8일에 허창사(許昌寺)에서 교정하였다고도 한다.
031_0339_a_17L又言建安三年歲在戊子八月八日於許昌寺挍定

9. 수릉엄삼매경주서(首楞嚴三昧經注序) 작자 미상
031_0339_a_18L首楞嚴三昧經注序第九 未詳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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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는 진(晋)나라 말로는 용맹복정의(勇猛伏定意)라고 한다. 이 말은 10지(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당처(當處)를 잊어버려도 공(功)이 환하게 나타나고 작위하지 않아도 힘쓰는 것이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대체로 용맹복(勇猛伏)8)이라는 명칭은 드물게 고귀한 것[希貴]을 숭상하는 데에서 일컫는 말일 뿐이니, 비록3매(昧)를 이룬 공이 천하에 높다 하더라도 어찌 용맹복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곧장 종지(宗旨)를 잊어버림으로써 명칭이 수립되고, 명칭마저도 버리기 때문에 명칭이 귀해진다. 이러한 명칭으로 삼천세계를 가르치기 위하여 전고(典誥)를 펼치니, 뭇 중생들이 바라보면서도 그 뜻에 미치지 못하고, 연찬(硏鑽)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진실로 특별하게 그 뜻에 이르고 현묘하게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호응할 수 있겠는가. 성록(聖錄)에서 말한 용맹은 진실로 오르기가 어렵다 하겠구나.
정의(定意)는 인(仁)과 지(智) 등의 자취를 훌쩍 뛰어넘고 유(有)와 무(無)를 함께 잊어버려 적정(寂靜)한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비록 다시 적정(寂靜)으로써 감응한다 하더라도 혜택(惠澤)이 창생(蒼生:중생)에게 미치는 것이니, 어찌 인지(仁智)와 소통되는 것이 아니며, 현묘한 종지를 관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적정(寂靜)이라는 것은 분별해서 알 수 있는 것[分]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릉엄경[篇]』에서 “모든 국토에 다 보편하게 퍼져 있으면서도 분별해서 알 수는 없지만 법신(法身)에 있어서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비록 감응에 따라서 유출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법신이 우주에 충만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어찌 작위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변화하는 것[化者]은 변화하지 않는 것[不化]을 근본으로 삼고 작위하는 것[作者]을 주체로 삼음을 말하는 것이다. 주체가 되는 것이 자기 스스로 주체임을 잊었는데 어떻게 형상으로 분별해서 알 수 있겠는가.
만약 지극한 이치[至理]를 분별해서 알 수 있다면, 이는 지극한 것이 아니다. 분별해서 알 수 있다면 모자람[虧]이 있는 것이고, 이루어지는 것이라면[成] 흩어짐[散]이 있는 것이니, 이른바 법신(法身)은 이루어짐과 모자람이 끊어지고 합해짐과 흩어짐[合散]을 버려서, 신령스럽게 조감하는 것은 현풍(玄風:道)과 종적을 함께 하고, 원만한 정신은 태양과 함께 빛나는 것이다. 그 광명은 분별해서 알 수 없어서 만류(萬類)가 각각 다르게 관조하는 것이니, 법신이 전체를 보편하게 제도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분별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수릉엄(首楞嚴)을 말해 보자.
그 심오한 바람[沖風]은 지식을 버리는 것[知喪]을 으뜸으로 삼고, 커다란 단서[洪緖]는 말을 잊음[忘言]에 달려 있으며, 은미한 종지는 7주(住)9)를 극진하게 하고, 밖으로 나타난 자취[外迹]는 세 가지 권도의 방편[三權]을 환하게 나타내며, 현묘하고 현묘하며 가장 깊은 뜻을 통달하고, 여덟 가지 특별한 교화방편[化筌]10)을 환하게 드러냈다. 현묘함을 나타내는 고목(高木)의 이정표를 세우고, 열 가지 기준을 세워 수행의 정도를 살펴보며[伺], 현묘한 종지[妙旨]를 완미하여 습기를 조복(調伏)하고, 습기가 풀어져 없어지고 나면 현묘함을 알게 된다. 자비심을 베푼다는 생각을 버리기 때문에 자비로 윤택하게 하며, 비추어 준다는 생각을 버리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11)
사문(沙門) 지도림(支道林)은 도심(道心)을 전세(前世) 상세(上世)부터 그윽하게 심어놓았기 때문에 신묘한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었다.
그는 뛰어난 지혜로 이치를 환하게 꿰뚫었고, 현상계가 공한[色空] 도리를 현묘하게 깨달았고, 왕세(往世)의 불교 경(經)ㆍ논(論)을 깨우쳐서 3승(乘)의 지위에 이르렀다.
나는 끊임없이 반복하여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疇諮], 법석에 참예하여 한 가지라도 가르침을 들으면, 감히 불민(不敏)한 점을 헤아리지 않고 구(句)의 끝에 기록해 두었다.
바라건대 후래의 현철(賢哲)이 나를 도와 산정(刪定)해 주었으면 한다.안공(安公)의 경록에는 “중평(中平) 2년(185) 12월 8일 지참(支讖)이 역출한 것이다. 경의 첫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생략되어 있고 오직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조정산(靈鳥頂山)에 계셨다’라고만 되어 있다”고 하였다.
031_0339_a_19L首楞嚴三昧者晉曰勇猛伏定意也謂十住之人忘當而功顯不爲而務蓋勇伏之名生於希尚者耳雖功高天下豈係其名哉直以忘宗而稱立遺稱故名貴訓三千數典誥群生瞻之而弗及鑽之而莫喩自非奇致超玄胡可以應乎聖錄所謂勇猛者誠哉難階也定意者謂迹絕仁智無兼忘雖復寂以應感惠澤倉生嘗不通以仁智照以玄宗所以寂者未可得而分也故其篇云悉遍諸國亦無所分而於法身不壞也謂雖從感若流身充宇宙豈有爲之者哉化者以不化爲宗作者以不作爲主爲主其自忘焉像可分哉若至理之可分斯非至極也可分則有虧斯成則有散所謂爲法身者絕成虧遺合靈鑑與玄風齊蹤員神與太陽俱其明不分萬類殊觀法身全濟非亦宜乎故曰不分無所壞也首楞嚴沖風冠乎知喪洪緖在於忘言旨盡於七位外迹顯乎三㩲洞重玄之極奧耀八特之化谷插高木之玄建十准以伺能翫妙旨以調習習釋而知玄遺慈故慈洽棄照而照弘也故有陶化育物紹以經綸自非領玄宗深致奇趣豈云究之哉沙門支道林者道心冥乎上世神悟發於天然儁朗明澈玄映色空啓于往數位敍三乘余時復疇諮豫聞其一以不敏係于句末想望來賢助刪定安公經錄云中平二年十二月八日支讖所出其經首略如是我聞唯稱佛在王舍城靈鳥頂山中

10. 합수릉엄경기(合首楞嚴經記) 지민도(支愍度) 지음
[호문(胡文)은 같으며 진(晋)나라 말로는 용복정의(勇伏定意) 라고 한다. 세 가지 경전을 사부(謝敷)가 합주(合注)하였으며 합계 4권이다.]
031_0339_c_06L合首楞嚴經記第十胡文同晉音勇伏定意支慜度三經謝敷合注共四卷

이 경(經)에 본래 있는 경기(經記)에는 “지참(支讖)이 역출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참은 월지국(月支國) 사람으로 한(漢)나라 환제(桓帝)ㆍ영제(靈帝) 때에 중국에 들어왔다. 그는 박학하고 깊고 신묘하였으며 재능과 사려가 미세한 것까지 헤아릴 수 있었다.
그가 역출한 경은 종류가 많고 심오하며 현묘하였는데 실질에 맞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숭상하며 문장을 수식하지 않았다. 지금의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과 『아사세경(阿闍貰經)』ㆍ『둔진경(屯眞經)』ㆍ『반주경(般舟經)』은 모두 지참이 역출한 것이다.
또 지월(支越)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자(字)를 공명(恭明)이라 하며, 이 사람도 월지국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가 한(漢)나라 영제(靈帝)때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 왔다. 지월은 한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아마도 지참을 만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또 지량(支亮)이라는 사람이 있어 자(字)를 기명(紀明)이라고 하였는데, 지참에게 의지해서 수학하였다. 그러므로 지월(支越)은 지량(支亮)에게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지월은 재주와 학문이 심오하고 투철하였으며, 내전(內典)과 외전(外典)을 모두 통달하였다. 말세[季世]에 꾸미는 것을 숭상하고, 때로 간략한 것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그가 역출한 경의 상당수가 문자의 화려함을 따랐다. 그러나 그의 문장 표현과 이치의 분석은 화려하게 꾸몄으면서도 의미를 환하게 나타내었으니, 진실로 심오하게 깨달아 들어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漢)나라 말기에 난리가 들끓자 남쪽으로 건너가 오(吳)나라로 망명하였다. 황무(黃武, 222~228) 연간으로부터 건흥(建興, 252~253) 연간에 이르기까지 역출한 모든 경이 수십 권으로, 각각 별전(別傳)과 기록이 있어서 이 경을 역출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 보이지 않으므로 다른 본이 또 있는 듯하다.
031_0339_c_07L此經本有記云支讖所譯出讖月支人也漢桓靈之世來在中國其博學淵妙才思測微凡所出經類多深玄貴尚實中不存文飾今之小品阿闍屯眞般舟悉讖所出也又有支越字恭明亦月支人也其父亦漢靈帝之世來獻中國越在漢生似不及見讖也又支亮字紀明資學於讖故越得受業於亮焉越才學深徹內外備以季世尚文時好簡略故其出經頗從文麗然其屬辭析理文而不越約而義顯眞可謂深入者也以漢末沸亂南度奔吳從黃武至建興中出諸經凡數十卷自有別傳記錄云出此經今不見復有異本也
031_0340_a_02L그런데 이 『수릉엄경(首楞嚴經)』은 각각 같지 않은 점이 조금 있다. 문사(文辭)에 풍부함과 간략함이 있고, 문장에 진음(晋音)과 호음(胡音)이 있으나, 서로 비교해서 검토해 보면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르게 역출한 것으로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마도 지월(支越)이 지참(支讖)의 번역에서 문사가 질박하고 호음(胡音)이 많은 것을 꺼려서 견해가 다른 것은 깎아내어 교정하고 견해가 같은 것은 그대로 쓰고 고치지 않은 것일 것이다. 두 사람에게 각각 기록이 있다. 이 한 가지 본(本)은 모든 본 가운데에서 문사(文辭)가 가장 간략하고 편리하며, 또 호음(胡音)이 적어서 세간에 보편하게 유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월이 교정한 것이다.
대진(大晋) 초에 이르러 사문 지법호(支法護)와 재가인 축숙란(竺叔蘭)이 이 경을 다시 번역하였다. 의미를 추구해 보면 서로서로가 밝혀 주는 점이 있으나, 3부(部)를 열어서 검토하는 것은 수고로운 일이어서 겸하기가 어려우니, 배우는 사람들이 곧바로 대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지금 지월이 산정한 것을 어머니로 삼고, 지법호(支法護)가 역출한 것을 아들로 삼아 거기에 축숙란이 번역한 것을 이어서 기록하였다. 문장이 없는 경우에는 그 때마다 그 자리에 그러한 내용을 기록하여 구별하였다. 혹은 문장과 의미가 모두 같은 경우가 있고, 혹은 의미는 같지만 문장에 소소한 증감(增減)이 있어서 중복해서 쓰기에 부족한 경우에는 혼합하여 같은 것으로 삼았다. 비록 큰 취지를 파악함에는 이익이 없지만 부(部)ㆍ장(章)ㆍ구(句)를 나눔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용복정기(勇伏定記)』에는 “원강(元康) 원년(291년) 4월 9일, 돈황보살(燉煌菩薩) 지법호(支法護)가 손으로 호경(胡經)을 잡고, 입으로 『수릉엄삼매경(首楞嚴三昧經)』을 송출하였으며, 섭승원(聶承遠)이 필수(筆受)하였다”고 하였다.
바라건대 사부대중[四輩]이 [세 가지 본(本)을] 총괄해서 모아 봉행하고 선양하면서 뜻의 같고 다름을 살펴보게 하고자 한다.
031_0339_c_22L然此首楞嚴自有小不同辭有豐約文有較而尋之要不足以爲異人別出也恐是越嫌讖所譯者辭質多胡異者刪而定之其所同者述而不二家各有記錄耳此一本於諸本辭最省便又少胡音偏行於世越所定者也至大晉之初有沙門支法護白衣竺叔蘭竝更譯此經求之於義互相發明披尋三部勞而難兼欲令學者卽得其對今以越所定者爲母護所出爲子蘭所譯者繫之所無者輒於其位記而別之或有文義皆同或有義同而文有小小增減不足重書者亦混以爲同雖無益於大趣分部章句差見可耳勇伏定記曰元康元年四月九日煌菩薩支法護手執胡經口出首楞嚴三昧聶承遠筆受願令四輩攬綜奉宣觀異同意

11. 수릉엄경후기(首楞嚴經後記) 작자 미상
031_0340_a_18L首楞嚴後記第十一 未詳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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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咸安)11) 3년(373) 계유세(癸酉歲)에 양주(涼州) 자사(刺史) 장천석(張天錫)이 양주에 있을 때에 이 『수릉엄경』을 역출하였다. 그때 월지국(月支國) 우바새 지시륜(支施崙)이 손으로 호본(胡本)을 잡았다. 지시륜은 여러 경전에 종합적으로 박통(博通)하였는데, 특히 『방등삼매경(方等三昧經)』에 뛰어났으며, 그가 지향하는 학업은 대승 교학이었다. 그는 『수릉엄경(首楞嚴經)』ㆍ『수뢰경(須賴經)』ㆍ『상금광수경(上金光首經)』ㆍ『여환삼매경(如幻三昧經)』을 역출하였다. 그 때 양주(涼州)에 있었는데, 양주에 있는 정청당(正聽堂) 담로헌(湛露軒) 아래 모였다. 그 당시에 번역한 사람은 구자왕(龜慈王)12)의 세자인 백연(帛延)으로 진음(晋音)과 호음(胡音)에 뛰어났다. 백연은 여러 전적을 해박하게 이해하였으며 내전(內典)과 외전(外典)을 겸해서 종합적으로 수학하였다. 필수(筆受)한 사람은 상시(常侍)인 서해(西海)의 조소(趙潚)와 회수(會水)의 장관 마혁(馬奕)과 내시(內侍) 내공정(來恭政)이었다. 이 세 사람은 모두가 뛰어난 덕을 갖추고 있었으며 도덕(道德)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사문 석혜상(釋慧常)과 석진행(釋進行)도 있었다. 양주(涼州) 자사(刺史)가 스스로 말을 이어 문장을 표현하였는데 문사(文辭)와 종지(宗旨)가 원본에 걸맞도록 하고, 문장에 수식을 더하지 않았다. 문장을 수식하면 범속함에 가깝고, 질박하면 도에 가까우니, 문장의 수식과 질박함을 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인이라야 가능하다.
031_0340_a_19L咸和三年歲在癸酉涼州刺史張天在州出此首楞嚴經于時有月支優婆塞支施崙手執胡本博綜衆於方等三昧特善其志業大乘學出首楞嚴須賴上金光首如幻三時在涼州州內正聽堂湛露軒下時譯者歸慈王世子帛延善晉胡延博解群籍內外兼綜受者常侍西海趙潚會水令馬弈內侍來恭此三人皆是儁德有心道德在坐沙門釋慧常釋進行涼州自屬辭旨如本不加文飾飾近俗質近道文兼唯聖有之耳

12. 신출수릉엄경서(新出首楞嚴經序) 석홍충(釋弘充) 지음
031_0340_b_09L新出首楞嚴經序第十二 釋弘充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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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는 신묘한 도(道)로 나아가는 용진(龍津)이며 성스러운 덕의연부(淵府)이다. 신묘한 물건은 희미(希微)해서 현상계[器像]의 표현 수단으로는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윽하고 현묘하며 아득하고 깊으니, 어떻게 망정(妄情)의 언어로 의론(議論)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9위(位)의 으뜸이 되어 허공에 오르고 만행(萬行)의 결과로써 원만하게 성취하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헤아려 현명함을 궁구하며 바람[殆庶]을 끊어 마음을 고요하게 통제한다. 이로써 10지(地)를 영대(靈臺)로 삼고, 법운지(法雲地)를 빗장[扃鐍]으로 삼으면 형상이 없고[罔象] 상대적인 개념이 끊어진 절대경지[環中]가 신령스러운 모습[神圖]으로 저절로 밖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비록 잔잔하고 맑은 하나이지만 감응하는 것은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정(定)은 응축되어 정지한 듯 고요하지만 중생(衆生)에 감응하여 이르러 간다. 그러므로 종본(宗本)을 밝히면 3달(達)이 함께 고요해지고, 훌륭하게 구제하는 것[善救]을 논하면 6도(度)가 모두 행해지며[彌綸], 위엄의 효과를 논변하면 강마(强魔)가 겁을 내어 사라지고,13) 수많은 변화를 말하면 백억 개의 별처럼 수효가 많아지리라. 이에 용상(龍上)이라고 불리게 되어도 자신의 종적을 감추고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3승(乘) 모두에게 가르침의 법[像]을 알려주어 유(有)와 무(無)의 상대적인 개념을 멸진(滅盡)하게 한다.
이 모두는 선정(禪定)에 참입(參入)한 그윽한 공효(功效)이고, 불도(佛道)를 이룬 힘이 현상[事]으로 나타난 것이고, 방편으로 제도하는 추기(樞機)이면서 강령이고, 용복(勇伏)의 큰 요점이다.
나집(羅什)법사는 어려서부터 하는 말마다 도(道)에 부합하였고, 생각마다 법문(法文)을 통달하였다. 옛날에 관서지방[關右]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이 경을 역출(譯出)하였는데, 구름처럼 유포된 이래 다투듯 퍼져 나갔다. 중국이 중흥하고 국운이 열려 세간의 도[世道]가 다시 창성하자 [이 경을] 선양함이 갈수록 번성해져서 날로 달로 더욱 성대하게 되었다.
태재(太宰) 강하왕(江夏王)은 여러 전적을 두루 섭렵하여 토론하는 것이 깊고 명민하였는데, 항상 이 『수릉엄경』을 열람하면서 특별히 깊고 원대한 정(情)을 가졌다. 나 석홍충(釋弘充)은 견문(見聞)이 대롱[管]처럼 좁고 우매하지만 일찍이 현묘한 법석[玄肆]에 참석했고, 선대 종장(宗匠)의 법석에 참예해서 만나보아 음운의 규칙[音軌]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유가의 서적[儒緯]을 참청(參聽)하여 이 경의 문의(文意)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황송(皇宋)의 대명(大明) 2년(458) 태세(太歲)가 엄무(奄茂:戌)이던 해에 법언정사(法言精舍)에서 간략하게나마 주해(注解)를 하였다. 익히지 않은 것을 전하는 허물을 면하기 바라며, 감히 여시아문(如是我門)의 의미를 흠모하는 바이다. 반드시 잘못된 점[紕繆]이 있을 것이니, 현명한 군자(君子)께서 바로잡아 주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031_0340_b_10L首楞嚴三昧者蓋神道之龍津聖德之淵府也妙物希微非器像所表玄冥湛豈情言所議冠九位以虛昇果萬行而圓就量種智以窮賢絕殆庶而靜統用能靈臺十地扃鐍法雲网象環中神圖自外然心雖澄一無不周定必凝泊在感斯至故明宗則三達同寂論善救則六度彌綸辯威效則强魔慴縛語衆變則百億星繁至乃微號龍上晦迹塵光像告諸乘有盡無滅斯皆參定之冥功能之顯事㩲濟之樞綱勇伏之宏要羅什法師弱齡言道思通法門紆步關右譯出此經自雲布以來辰而衍中興啓運世道載昌宣轉之盛日月彌懋太宰江夏王該綜群討論淵敏每覽茲卷特深遠情以管昧嘗廁玄肆預遭先匠啓訓音參聽儒緯髣髴文意以皇宋大明二年歲次奄茂於法言精舍略爲注庶勉不習之傳敢慕我聞之義必紕繆以俟君子

13. 법구경서(法句經序) 작자 미상
031_0340_c_09L法句經序第十三 未詳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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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발게(曇鉢偈)는 모든 경의 요의(要義)이다. 담(曇)이라는 말은 법(法)을 말하고 발(鉢)은 구(句)를 말한다. 그리고 『법구경(法句經)』은 따로 여러 부(部)가 있는데, 9백 게(偈) 혹은 7백 게 및 5백 게로 된 경우도 있다. 게(偈)는 글의 말미에서 내용을 매듭짓는 것[結語]으로 시(詩) 혹은 송(頌)과 같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어떤 일[事]을 보시고 지은 것인데, 한 번에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각각 본말(本末)이 있어서 여러 경전에 산재해 있다.
일체지(一切智)이신 부처님의 본성은 대자대비하시니 천하의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세간에 출흥(出興)하여 도의 의미[道義]를 활짝 열어서 나타내어 사람들을 해탈시키려 하신 것이다. 모두 12부(部)의 경으로 그 요점을 총괄하고, 따로 4부(部)의 아함(阿含)이 있으니, 부처님께서 세간을 떠나신 후에 아난이 전한 것이다. 권(卷)의 대소(大小)에 관계없이 모두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와 같이 들었다[聞如是]’고 말하고, 그 말씀을 자세히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후에 5부(部)의 사문이 각각 경(經) 중에서 4구 게와 6구 게를 가려 뽑아 모아서 그 의미를 차례로 비교해서 조목을 나누어 품(品)을 만든 것인데, 12부의 경에서 채록하지[斟酌] 않는 것이 없지만 적당한 명칭이 없기 때문에 법구(法句)라고 하였다.
대체로 모든 경전은 법(法)을 설명하는 말이니, 법구(法句) 또한 법언(法言)이라는 말과 같다.
최근에 갈씨(葛氏)가 7백 게를 전하였는데, 게의 의미가 지극히 심오하여 번역하는 사람이 역출하면서 상당 부분을 뒤섞어 만연하게 되어 의미가 모호하였다. 부처님은 만나기도 어렵고 그 문장을 듣기도 어려우며, 또 모든 부처님께서 출흥(出興)하신 것도 모두 천축이었다. 천축의 언어는 한(漢)나라와 소리가 다른데, 그 글[書]을 천서(天書)라 하고 그 말을 천어(天語)라고 하며, 사물에 대한 명칭이 같지 않아 충실하게 옮기기가 쉽지 않다.
옛날에 남조(藍調)ㆍ안후(安侯) 세고(世高)ㆍ도위(都尉) 안현(安玄)ㆍ엄불조(嚴弗調)가 호어(胡語)를 한(漢)나라 말로 번역하였는데, 그 핵심[體]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니, 이 때문에 계승하기 어려웠다.
후에 전해진 것은 비록 치밀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 실질적인 것을 숭상하고 귀하게 여겨 대강이나마 큰 취지[大趣]를 나타내었다.
처음 것은 유기난(維祇難)이 역출하였는데, 유기난은 천축에서 황무(黃武) 3년(224)에 무창(武昌)으로 왔다. 나는 그로부터 이 5백게본(百偈本)을 받고 그의 도반[同道] 축장염(竺將炎)에게 번역을 청하였다. 축장염은 천축의 말은 잘하였지만 아직 한나라 말은 완전하게 깨치지 못하여 그가 전역한 말은 혹 호어(胡語)에는 들어맞지만 혹 의미에 맞는 음으로 나타내어 질박한 직역에 가까웠다.
031_0340_c_10L曇鉢偈者衆經之要義曇之言法者句也而法句經別有數部有九百或七百偈及五百偈偈者結語詩頌也是佛見事而作非一時言有本末布在衆經佛一切智厥性大愍傷天下出興于世開現道義以解人凡十二部經摠括其要別有四部阿鋡至去世後阿難所傳卷無大小皆稱聞如是處佛所究暢其說是後五部沙門各自鈔采經中四句六句之偈比次其義條別爲品於十二部經靡不斟酌無所適名故曰法夫諸經爲法言法句者猶法言也近世葛氏傳七百偈偈義致深譯人出之頗使其渾漫惟佛難値其文難又諸佛興皆在天竺天竺言語漢異音云其書爲天書語爲天語物不同傳實不易唯昔藍調安侯世高都尉弗調譯胡爲漢審得其體以難繼後之傳者雖不能密猶尚貴其實粗得大趣始者維祇難出自天以黃武三年來適武昌僕從受此五百偈本請其同道竺將炎爲譯炎雖善天竺語未備曉漢其所傳言或得胡語或以義出音近於質直
031_0341_b_02L나는 처음에 그의 말이 우아하지 못한 점을 싫어하였는데, 유기난(維祇難)이 “부처님의 말씀은 그 의미[義]를 따르고 수식하지 않아야 하며, 그 법(法)을 취하고 장엄하지 않아야 하니, 경을 전역하는 사람은 마땅히 쉽게 알도록 하고, 그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훌륭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노씨(老氏:老子)는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못하며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다’고 하였고, 중니(仲尼)도 또한 ‘글은 말을 극진하게 전하지 못하고 말은 의미를 극진하게 전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성인이 말씀한 뜻을 밝히는 것은 심오하고 깊어서 한이 없으므로 지금은 호어(胡語)의 의미를 전해서 실제로 경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나 자신의 힘을 다해서 전역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받아서 적고 본지(本指)에 따르고 문장에 수식을 더하지 않았으며, 전역한 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빼고 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빠진 부분도 있고 역출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러나 이 경은 비록 문사는 질박하지만 뜻은 깊으며 문장은 요약되어 있지만 의미는 넓고, 일은 모든 경전을 거두어들였고, 문장[章]에는 근본이 있으며 문구[句]에는 의미가 갖추어져 설해져 있다.
천축에서는 불도의 수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법구(法句)를 배우지 않으면 차례를 뛰어넘는 사람[越敍]이라고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처음 나아가는 사람의 홍점(鴻漸)이고 깊이 들어간 사람의 오장(奧藏)이어서 몽매한 이의 미혹을 분별하여 일깨워 주고 사람을 인도하여[誘人] 스스로 설 수 있게[自立] 해주는 것이니, 배우는 노력은 미미하나 포함하고 있는 뜻은 광대하니, 실로 오묘하고 요점이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옛날에 이것을 전역할 때에는 역출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때마침 장염(將炎)이 찾아와 그에게 다시 자문을 구하여 이 게(偈) 등을 얻고, 또 13품(品)을 얻어 과거의 것을 모두 교정하니 증가된 것이 있다. 그 품목(品目)에 차례를 정하니, 합해서 1부(部) 39편(篇)에 모든 게(偈)가 752장(章)이 되었다. 바라건대 더욱 보충해서 가르침을 듣는 것을 함께 넓혀갔으면 하는 바이다.

14. 아유월치차경기(阿維越致遮經記)14) 역출된 경의 뒤에 부기함[진(晋)나라 말로는 『불퇴전법륜경(不退轉法輪經)』이라고 하는데 4권임]

태강(太康) 5년(284) 10월 14일 보살 사문 법호(法護)가 돈황(燉煌)에서 구자국(龜玆國)의 부사(副使) 미자후(美子侯)로부터 이 『불퇴전법륜경(不退轉法輪經)』의 범서(梵書)를 얻어 입으로 진(晋)나라 말로 풀고 사문(沙門) 법승(法乘)이 필수하여 유포시켜 일체 중생이 모두 다 듣고 알도록 하였다.
031_0341_a_12L初嫌其辭不雅維祇難曰佛言依其不用飾取其法不以嚴其傳經者當令易曉勿失厥義是則爲善座中咸曰老氏稱美言不信信言不美尼亦云書不盡言言不盡意明聖人深邃無極今傳胡義實宜經達是以自竭受譯人口因循本旨不加文飾譯所不解則闕不傳故有脫失多不出者然此雖辭朴而旨深文約而義事鉤衆經章有本故句有義說其在天竺始進業者不學法句謂之越敍此乃始進者之鴻漸深入者之奧藏也可以啓矇辯惑誘人自立之功微而所苞者廣實可謂妙要者昔傳此時有所不出會將炎來從諮問受此偈等重得十三品幷挍往故有所增定第其品目合爲一部三十九篇大凡偈七百五十二章有補益共廣聞焉阿維越遮致經記第十四晉言不退轉法輪經四卷出經後記太康五年十月十四日菩薩沙門法於燉煌從龜茲副使美子侯得此梵書不退轉法輪經口敷晉言授沙門法乘使流布一切咸悉聞知

15. 마역경기(魔逆經記) 역출된 경의 뒤에 부기함
031_0341_b_13L魔逆經記第十五 出經後記

태강(太康) 10년(289) 12월 2일 월지국(月支國) 보살 법호(法護)가 손으로 범서(梵書)를 잡고 입으로 진나라 말로 선양하였으며, 섭도진(聶道眞)이 필수(筆受)하여 낙양성(洛陽城) 서쪽의 백마사(白馬寺)에서 처음으로 역출하였다. 절현원(折顯元)이 필사해서 공덕을 유포하여 일체 중생이 공덕을 입어 도탈(度脫)하도록 하였다.
031_0341_b_14L太康十年十二月二日月支菩薩法手執梵書口宣晉言聶道眞筆於洛陽城西白馬寺中始出折顯元寫使功德流布一切蒙福度脫

16. 혜인삼매급제방등학이경서찬(慧印三昧及濟方等學二經序讚) 왕승유(王僧孺) 지음
031_0341_b_18L慧印三昧及濟方等學二經序讚第十六王僧孺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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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획(畫)이 서로 의지함에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듯이 바뀜이 없고 두 글자[二字]를 한 번 토함에 하늘과 땅이 뒤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비록 글이 말을 극진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말은 글이 아니면 나타낼 수 없고, 말은 뜻을 극진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뜻은 말이 아니면 나타낼 수 없다,
이 때문에 잘 듣고 잘 생각하여 이 이익과 기쁨[利喜]을 이어받고,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이것을 공경스럽게 수지(受持)하는 것이다.
가령 읽거나 외우거나, 이미 설한 것이나 지금 설한 것이 한마디의 말[一音]과 하나의 게[一偈]에 이르기까지 피안에 이르는 배와 교량[舟梁] 아님이 없고, 한 번 찬탄하고 한 번 칭찬하는 것이 그대로 법칙[輪軌]이 된다. 하물며 저 5력(力)15)의 방정함과 원만함으로 4섭법(攝法)을 행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방편문(方便門)을 열어주고 진실상(眞實相)을 제시하며, 방등(方等)의 미묘한 설법을 유포시키고 깨달음[菩提]의 지극한 인(因)을 얻는 경우임에랴.
이 보배로운 연못[寶池]에 목욕하고 법의 횃불[法炬]에 쪼이면 향기로운 구름이 서로 따르고[靡靡] 지혜의 이슬이 흘러넘칠 것이니, 이 모두가 가야(伽耶)의 묘성(妙城)에서 나온 것이고 사라(娑羅)의 보배나무에서 일어난 것이다.
건안전하(建安殿下)는 광명을 내포하고[含章],16) 타고난 성품에 바탕을 두어 덕을 기르고 체(體)를 완성하였으니, 그 자애로운 음성[憓聲]은 추수(秋水)보다도 넘쳐흐르고, 아름다운 의로움[美義]은 겨울날의 태양보다 빛났으며, 사적(事績)은 조구(祖丘)와 토포(兎圃:兎園, 정원의 이름)보다 높았고, 이름은 전(前)의 의(意)와 후(後)의 창(蒼)보다 뛰어났다. 자기의 것을 덮어내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였으며, 자신[我]을 잊어버리고 중생을 구제하고[濟物], 모든 것을 통달하고[傍通] 겸해서 천하에 선을 행하여[兼善天下] 걸림도 없고 사사로움이 없었으니, 마치 텅 빈 골짜기가 반드시 메아리로 응하는 것과 같고 큰 종[洪鍾]이 자신을 비워 다른 것을 흡수하는 것과 같았으며, 법을 바로잡고 도(道)를 넓히며, 선(善)을 행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여기에 더해서 현재에 드러난 묘과(妙果)의 인[顯因]을 영겁(永劫) 동안 왔기 때문에 묘과(妙果)를 이 생(生)에서 받았다. 훌륭한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에 뜻을 두고 의지하는 바에 마음을 써서 공(空)과 유(有)를 오묘하게 통달하고 권(權)과 실(實)을 심오하게 분별하였다.
그런데 옥체(玉體)가 편안하지 못하여 가을 늦더위에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그러나 인(仁)을 행하면서도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의 임금은 나날이 그 병세가 치유됨을 나타냈고, 덕(德)을 베풀면서도 말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漢)나라의 재상은 그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었다. 계수나무 잎과 거북의 뇌도 진실로 풍한(風寒)을 쉽게 소멸시킬 수 있고 여지(荔枝)의 꽃과 봉황의 골수로도 급하게 뛰는맥(脈)을 진정시킬 수가 있다. 하물며 전하께서는 지혜로운 몸을 점점 이루어가고 ,선근(善根)을 숙세(宿世)에 심어 놓았으니 장(腸)과 위(胃)를 씻어내는 수고를 들일필요도 없고, 안색(顔色)을 살피고 음성을 관찰할 필요도 없었다.
광주(廣州) 남해군(南海郡) 백성 중에 하규(何規)라는 사람이 있었다. 태세(太歲)가협흡(協洽:未)이고, 달[月]이 황종(黃鍾)17)에 있던 천람(天監) 14년(515) 10월 23일, 예장군(豫章郡) 호익산(胡翼山)에서 약초를 캐고 있었다. 다행히 이 사람은 방출(放出)된 사람도 축출당한 신하도 아니라 신선을 찾고 은자(隱者)를 부르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산봉우리를 십 리쯤 오르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오는 것 같았다. 구부러진 산길을 따라 가려는데 그 앞에 맑은 시냇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물은 마치 연못[止水] 같더니, 곧 깨끗한 물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곧바로 옷자락을 허리춤까지 걷어 올리고 바지를 추켜잡고 건너가려고 하였다. 아직 채 건너지 않았을 때 홀연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냇물 서쪽 편에 한 사람의 장자(長者)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하규(何規)에게 건너지 말라고 말하여, 하규는 그 때 즉시 멈추고 그대로 있었다. 그 사람은 얼굴이 검푸른 색[正靑]이고, 맨발에 신발을 신지 않았으며, 나이는 팔구십 쯤 되어 보였다. 얼굴은 주름투성이었고, 턱수염의 길이는 5~6촌 쯤 되었으며, 콧수염의 길이는 턱수염의 반 정도였다. 귀가 눈썹보다 올라가 있었고, 눈썹이 모두 늘어져 눈을 덮고 있는데 눈썹의 긴 털은 길이가 2~3촌이었으며 바람결을 따라 나부끼고 있었다. 입술색은 매우 붉었고, 말소리는 울리는 듯하면서 맑았다. 손톱은 갈색[正黃色]이었고, 손가락에 나 있는 털도 길이가 2~3촌이었다. 위에는 붉은 베로 지은 배자[帔子:저고리 위에 입는 소매 없는 옷]를 걸치고 있었고, 아래에는 붉은 베로 만든 니원승(泥洹僧:치마처럼 넓은 하의)을 입고 있었다.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다가 멀리서 하규에게 던져 주었다. 하규는 받들어 지니고 그를 바라보면서 삼배의 예를 올렸다. 그가 하규에게 말하였다.
031_0341_b_19L夫六畫相因懸日月而無改二字一更天地而靡渝雖書不盡言言非書不闡言不盡意意非言不稱是以諦聽善思承茲利喜俯首屈足恭此受持若讀若誦已說今說一音一偈莫匪舟梁一讚一稱動成輪軌況夫五九方圓四攝無怠開方便門示眞實相流方等之妙說得菩提之至因沐此寶池照茲法炬香雲靡靡慧露傍流出伽耶之妙城發娑羅之寶樹建安殿下含章基性育德成體憓聲溢於秋水義美光於冬日事高祖丘兔圃名出前意後蒼損己利人忘我濟物傍通兼善無礙無私若空谷之必應如洪鍾之虛受匡法弘道以善爲樂重以植顯因於永劫襲妙果於茲生託意紹隆用心依止妙達空有深辯㩲實而玉體不安有虧涼暑仁莫顯楚君日見其瘳施德靡言相方饗其樂桂葉龜腦固風寒之易荔葩鸞骨更騰飛之可孱況復慧身方漸善根宿樹無勞湔腸澣胃待望色察聲有廣州南海郡民何規以歲次協洽月旅黃鍾天監之十四年十月二十三日採藥於豫章胡翼幸非放子逐臣乃類尋仙招隱登峯十所里屑若有來將循曲陌先限淸或如止水乍有潔流方從揭厲就褰攬未濟之間忽不自覺見㵎之西隅有一長者語規勿渡規於時卽其人面色正靑徒跣捨屨年可八九十面已皺斂鬚長五六寸髭半於鬚耳過於眉眉皆下被眉之長毛長二三寸隨風相靡脣色甚赤語響而淸手爪正黃指毛亦長二三寸著赭布下有赭布泥洹僧手捉書一卷投與規規卽捧持望禮三拜語規
031_0342_b_02L“이 경을 건안왕(建安王)에게 드리도록 하라.”
그리고는 겸해서 왕의 성자(姓字)를 말하였다.
“왕께서 이 경을 받으시면 마땅히 삼칠일 동안 숙재(宿齋)18)를 올려야 한다. 만약 재(齋)를 올리는 법을 알지 못하면 하림사(下林寺)의 부공(副公)에게 묻도록 하라. 부(副)법사는 계행을 엄하게 지키고, 마음이 편안하여[恬憺] 무위(無爲)에 머물며 기욕(嗜慾)를 버렸고, 권력자[有力者]와 비천한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야채와 콩잎으로 스스로 자족하며, 고요히 선정에 드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니라.”
이 장자(長者)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떠나갔는데 열 걸음쯤 가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가규(何規)가 책을 펴서 공손하게 살펴보니, 제명이 『혜인삼매경(慧印三昧經)』이었다. 경의 종지[經旨]는 지극한 법신(法身)은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는다는 것이니, 이치는 모든 부정[百非]을 초월하였고, 의미는 이름과 형상[名相]을 뛰어넘었으며 고요함[寂]은 법상(法相)과 같고, 신묘함은 진여와 같았다. 이것은 지혜가 이치와 명합(冥合)하면 마치 영원불변한 인장[恒印]을 지닌 듯하며, 마음이 빛나서 고요하게 응축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3매(昧)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그 뒤에는 또 『제제방등학경(濟諸方等學經)』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또 “천축(天竺)의 승가(僧迦)라고 하는 살화비(薩和鞞)가 해호왕(海虎王)에게 준다”라고 써 있었다. 경의 종지는 지극한 궁극의 가르침[至敎]을 유통시킬 때에 궤법(軌法)에 체(體)가있는 것을 말하고 보살[大士]은 이것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을 삼을 것을 엄하게 교시한 것이니, 모든 중생[蒼民]을 제도하려면 마땅히 방등(方等)의 가르침을 홍포해야 됨을 말한 것이다. 방등은 대승경(大乘經)의 총칭[通名]으로 구경(究竟)에 이르는 광대한 취지[弘旨]이다.
그 경전[軸]에는 “돈황의 보살 사문 지법호(支法護)가 역출하고 축법수(竺法首)가 필수(筆受)하였다. 모두 한 권으로 필사하여 유통시킨다”고 써 있었다. 축(軸)은 순수한 칠(漆)을 사용했고 필적[書]은 매우 굳세고 간결했으며[緊潔], 붓을 운용하는 서법[點製]도 볼 만한 것이었다.
의취(義趣)를 궁구하고 찾음에 있어서 혹은 숨겨 놓기도 하고 혹은 환하게 나타내기도 하였다. 첫머리에 “나열산(羅閱山:王舍城 영축산)에 있었다”고 칭하고, 또 “다린니행(陀隣尼行:다라니행)과 일체법(一切法)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無來無去] 머물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다[非住非止]”고 서술[著]하였다.
이것은 축악(鷲嶽:영축산)과 학림(鶴林:사라수)의 별기(別記)이고 보전(寶殿:重閣講堂)과 고원(孤園:給孤獨園)의 후술(後述)이니, 옥검(玉檢)과 다르지 않고 보함(寶函)과 차이가 없으며, 이치는 형상과 소리가 없는 희미(希微)의 세계를 뛰어넘었고 언사가 심오하여 깊은 것을 낚아 올리고 먼 것을 이르러 오게[鉤致]19)하였다. 이것은 부처님의 정설(正說)이고 이단(異端)이 아니다. 왕준(王遵)이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손에 얻은 것과 안청(安淸:안세고)이 160품의 경을 역출한것이라 할지라도 이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대왕(大王)은 목욕하고 수지(受持)하여 받들고, 무릎 옆에 가까이 두고 깊이 연구하고 익혔으며, 많은 양을 서사(書寫)하고 광대하게 서술하여 현묘한 종지(宗旨)를 천양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의왕(醫王)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약수(藥樹)이다. 이에 눈[眼]을 깜박거릴 겨를도 없고, 입을 쓰게[苦]하는 노고를 들이지도 않고 6술(術)을 버리고 10무(巫)를 물리치게 되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은 흙다리[圯] 위에서 편서(編書)20)를 주었고, 어떤 사람은 계곡 안에서 췌술(揣術)21)을 받았다. 우언(寓言)이 있는 경우도 혹은 꿈을 빌리기도 하는데, 어떤 선인(善因)도 없이 감응이 이와 같이 환하게 일어나 나타났으니 지극하다 할 것이다. 재능이 열등한 사람이 명(命)을 받아서 감히 더럽고 비천한 몸으로 어리석음을 이끌고 훌륭한 도[上道]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 사(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벼락 치는 소리, 지진의 울림과 같은 가르침을
죽간(竹簡)에 기록하고 청실로 묶었으니[靑編]
언어가 아니면 어떻게 가르치리오.
자취가 없으면 전할 수 없다네.
이것은 미묘한 상(象)을 의지하고
실로 그윽한 통발에 기탁한 것이며
지혜의 등촉으로 비추어주고
보선(寶船)으로 건네주는 것이네.
간절하고도 지극하여라
감응이 이에 원만하였네.
짙은 구름[靉靆]이 덮이고
광대한 물결이 스며드는데
불에 타는 사람을 구해 주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며
번뇌가 덮은 것을 제거해 주고
번뇌가 얽어맨 것을 녹여 주니
빛나고 빛나 응(應)ㆍ한(韓)을 비추어 주고
꽃답고 꽃다워 하(河)ㆍ초(楚)를 밝혀 주었네.
소나무 홀로 서 있고 계수나무 울창하니
봉황이 깃들고 붕새가 날아오르네.
들판을 비추고 조정(朝庭)을 빛나게 하며
산을 윤택하게 하고 물가를 마르게 하니
수원(水源)에서 흘러나온 물이 이에 영원해지고
한 삼태기 부은 흙이 쌓여 (산이 되었네).
울창하고 무성하여 줄기가 되고
가지가 뻗어 올라 하늘에 다다르니
진실한 마음[誠]을 범표(梵表)22)에 기탁하고
훌륭한 마음을 선하(禪河)에 의탁하였네.
부처님[能仁] 발에 머리를 대어 경례를 올리니,
마음은 묘각으로 곧장 향하네.
이로써 막히고 물든 번뇌를 버리니
이것이 진구(塵垢)의 혼탁함을 버리는 것이라네.
어찌 진실하지 않은 세계[非眞]라 하여 향하지 않으며,
속되지 않은 세계[非俗]라 하여 등지겠는가.
한번 감각과 인식작용인 수(受)ㆍ상(想)을 잊어버리면
감관의 대상인 미(味)ㆍ촉(觸)도 버리게[捐] 된다네.
덕(德)이 있으면 보답하지 않음이 없고,
감응하면 반드시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니
저 신묘한 비결[訣]을 토해내어
나에게 현묘한 요점을 보여주시네.
미혹을 버리고 번뇌가 그치면
영화로움과 젊음이 남아
북두성이 항상 빛나는 것과 같아지고
동쪽의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같아진다네.

나 승우(僧祐)는 어려서부터 경(經)과 율(律)을 연구하여 제부(諸部)의 깊은 의취[奧義]를 은근히 엿보았다. 다만 일체 만물이 변화하며 바뀜에 따라 만사(萬事)가 잘못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금(古今)의 같고 다른 점[同異]은 부딪치는 부류마다 모두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어(魚)가 잘못되어 로(魯)가 되고, 도(陶)가 잘못되어 음(陰)이 되기도 한다.
조사해보았더니, 진(晋)나라 말기 이래로 관중(關中)의 모든 현인들이 편찬한 경록(經錄)에서 “『혜인삼매경(慧印三昧經)』은 지겸(支謙)이 역출한 것이고, 『제방등대승학경(濟方等大乘學經)』은 법호(法護)가 역출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성법인경(聖法印經)』 후기(後記)에는 “진(晋)나라 원강(元康) 4년(294)에 보살 사문 지법호(支法護)가 주천(酒泉)에서 이 경을 송출하고 제자 축법수(竺法首)가 필수(筆受)하였다”고 하였다.
031_0342_a_10L以此經與建安王兼言王之姓字此經若至宜作三七日病齋若不曉齋法可問下林寺副公副法師者戒行精恬憺無爲遺嗜欲等豪賤蔬藿自禪寂無怠此長者言畢便去行十餘步間忽不復睹規開卷敬視名爲慧印三昧經經旨以至極法身無相爲體理出百非義喩名相寂同法相妙等眞如言其慧冥此理有若恒印心照凝寂故以三昧爲名後又有濟諸方等學經此下又題云天竺薩和鞞曰僧迦與海虎王經旨以流通至教軌法有體所以誡示大土化物方法言若濟諸蒼民宜弘方等之教方等大乘之通名究竟之弘旨其軸題燉煌菩薩沙門支法護所出竺法首筆受共爲一卷寫以流通軸用淳書甚緊潔點製可觀究尋義趣或微或顯稱在羅閱山箸陁鄰尼行無來無去非住非止斯蓋鷲嶽鶴林之別記寶殿孤園之後述不殊玉撿靡異寶函理出希微辭深鉤致是惟正說曾匪異端雖王遵之得四十二安淸之出百六十品無以或異大王沐浴持奉擎跪鑽習多寫廣述闡揚玄旨孰匪醫王卽斯藥樹不待眠眴無勞苦口捨茲六術屛此十巫昔或授編書於圯上受揣術於谷裏有寓言且或假夢未有因應炳發若此其至焉受命下才式旌上道敢因滓賤率此顓蒙其辭曰雷音震響錄簡靑編匪言曷教非迹靡傳是資妙象實寄幽筌照之慧燭濟以寶舩懇哉至矣在應斯圓覆其靉靆浸此熙漣救焚拯溺去蓋銷纏灼灼應韓英英河楚松孤桂鬱鸞棲鵬擧照野光朝潤山枯渚濫源茲永覆匱已多鬱爲蕃幹擢此天柯寄誠梵表託好禪阿接足能仁心直妙覺用遺滯染是祛塵濁靡向非眞何背非俗一忘受想將損味觸無德不詶有感必召吐彼神決示我玄要旣蠲旣已留華及少等以北恒均之東耀祐少尋經律竊闚諸部之奧但一切變易萬事遷訛所以古今同異觸類皆有故魚謬爲魯陶誤成陰案晉末以來關中諸賢經錄云慧印三昧經支謙所出濟方等大乘學經法護所聖法印經後記云晉元康四年薩沙門支法護於酒泉出此經弟子竺法首筆受
그런데 하규(何規)가 얻은 경본(經本)에는 이 두 경이 같은 권[同卷]으로 되어 있다.
『방등경』 첫 머리에 “법호가 역출하였다”라 하고, 『삼매경』 말미[亂]에 “지겸이 역출했다”고 쓴 것은 실로 옮겨 적어 묶으면서[編寫] 그렇게 된 것이지 외람되게 속이려 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 번 살펴서 열람하면 혹시 의혹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부족하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을 기록해서 말미에 군더더기로 남겨 둔다. 그러므로 별기(別記)를 쓴 것이다.
031_0342_c_15L而何規所得經本二經同卷題方等於法護亂三昧於支謙實由編寫成然非爲誣濫而一往觀容生疑惑聊記所憶存之末塵出別記

17. 성법인경기(聖法印經記) 역출된 경 끝에 부기함
031_0342_c_19L聖法印經記第十七天竺名阿遮曇摩文啚出經後記
[천축(天竺)에서는 「아차담마문도(阿遮曇摩文圖)」라고 함]

원강(元康) 4년(294) 12월 25일, 월지국(月支國) 보살 사문 법호(法護)가 주천(酒泉)에서 이 경을 풀어서 송출하고 제자 축법수(竺法首)가 필수(筆受)하여 이 심오한 법이 시방세계에 두루 유통되고 대승의 가르침이 항상 머물도록 하였다.
031_0342_c_20L元康四年十二月二十五日月支菩薩沙門曇法護於酒泉演出此經弟子竺法首筆受令此深法普流十方大乘常住

18. 문수사리정율경기(文殊師利淨律經記) 역출된 경 끝에 부기함
031_0342_c_24L文殊師利淨律經記第十八
031_0343_a_02L
경의 후기(後記)에 “사문 축법호(竺法護)가 경사(京師)에서 서국(西國)의 적지(寂志)를 만나 이 경을 송출(誦出)23)하였다. 이 경 뒤에 여러 품(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잊어버렸다. 곧바로 호(胡)의 음(音)을 선현(宣現)하는 사람이 진(晋)나라 말로 바꾸었고, 다시 그 원본을 얻어 보충하여 갖추어지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태강(太康) 10년(289) 4월 8일 백마사(白馬寺)에서 섭도진(聶道眞)이 대면(對面)해서필수(筆受)하였고, 여러 가지로 도운 사람은 유원모(劉元謀)ㆍ부공신(傅公信)ㆍ후언장(侯彦長) 등이었다.
031_0343_a_02L經後記云沙門曇法護於京師遇西國寂志從出此經經後尚有數品其人忘失輒宣現者轉之爲晉更得其本補令具足太康十年四月八日白馬寺中聶道眞對筆受勸助劉元謀傅公信侯彦長等

19. 왕자법익괴목인연경서(王子法益壞目因緣經序)
031_0343_a_08L王子法益壞目因緣經序第十九
031_0343_b_02L 축불념 지음

선악의 인과가 운행하여 합치하는 것은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지은 업에 따라 받는 분명한 과보에 차이가 있으니, 현세(現世)에 받는 업보와 중세(中世)에 받는 업보와 후세(後世)에 받는 업보이다.
9색(色)의 깊은 은혜를 베풀어 천비(天妃)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외로운 새가 왕에게 몸을 던져 목숨을 보전했지만, 몸은 5월(刖)24)이라는 지극히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니, 이것은 현세(現世)에 받은 업보이다.
여러 무리들이 깊은 골짜기에 빠져서도 마음은 부침(浮沈)을 거듭하며[淪漂] 바꾸지 않으며, 몸은 여러 세(世)를 지나면서 쌓은 재앙으로 쓰라린 고통을 겪으면서도 왕자가 눈을 잃은 인연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중세(中世)에 받은 업보이다.
아란(阿蘭)이 무상천(無想天)의 재앙에 걸려서 순환[始終]에 대한 끝없는 미혹[永惑]을 지니며, 마침내 날개 달린 광포한 이리가 되어 새나 물고기[飛沈]에게 괴로움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이것은 후세(後世)에 받은 업보이다. 이 때문에 성인께서 신령스러움을 내려주신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어떠한 업무에도 참여하지 않음이 없으니, 그것은 청정하고 밝아서 분명한 것이다.
3세(世)에 걸쳐서 약상(弱喪:어려서부터 타향을 떠도는 사람)의 무리들을 현묘하게 조감하고, 내세에 그 몸을 상하는 허물이 있을 것임을 자상하게 말해 주어[記] 그러한 미혹을 안전히 단련하는 방에 취향해서 들어가도록 인도[引]25)하는 것이다.
여래께서 떠나신 후에 아육왕(阿育王)이 왕위에 올라 염부제를 다스림에 광명을 6합(合)에 드리웠으며, 신성한 사원에는 여래의 도상(圖像)을 장식했다. 팔만사천의 나한이 세상을 다스려 수억의 중생을 구제하고 국왕은 존경받는 스승이 되니 현묘한 교화가 흘러 넘쳤다. 이에 만민(萬民)이 우러러 모시기를 그치지 않았고 천지(天地)의 신들은 왕에게 공경을 올리고 의지하는 것을 더욱 깊게 하였다.
그러나 왕자 법익(法益)은 숙세에 커다란 선업을 심었기 때문에 왕궁에 태어나 용모가 특별히 뛰어났는데도 다시 이와 같은 과보를 받았으니, 인연이 화합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모두 알아야 한다.
진(秦)나라의 상서령(尙書令) 보국장군(輔國將軍) 종정경(宗正卿) 영성문교위사(領城門校尉使)이며 사예교위(司隸校尉)인 요민(姚旻)은 남안군(南安郡) 사람으로 요소(姚韶)의 둘째 친형(親兄)이며 자(字)를 경의(景㠜)라고 한다.
학문[文]은 유가(儒家)의 사표(師表)가 되어 공적이 천재(千載:千年)에 빛났고, 무술[武]은 무리 중에 발군이어서 환하게 홀로 빛났으며, 모든 언어를 그윽하게[冥]26) 통달하여 변설과 임기응변[辯機]이 자유자재하였고, 성품은 순수하고 정(情)을 따르면서도 자재롭게 높이 비상하는 듯하니 짝할 사람이 없었다.
품고 있는 덕(德)은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지니고 있는 범절[範]은 흉내내기 어려웠고, 뛰어난 문재[逸翰]는 뭇 인재들 중에 혁혁하였으며, 용과 같은 위엄은 보검의 칼날[昆鋒]보다도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영원한 미혹에 빠져서 구제받지 못하는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선대의 뛰어난 유적(遺迹)을 이어받아 말세의 세속에 현묘한 종지를 세우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천축 사문 담마난제(曇摩難提)를 초청하여 이 인연의 근본을 설한 경전을 역출하였다.
진(秦)나라 건초(建初) 6년(391) 태세가 신묘(辛卯)이던 해에 안정성(安定城)에서 2월 18일에 시작하여 25일에 이르러 끝마쳤다. 호본(胡本)은 343수로(首盧:偈)였는데 한문으로 전역하여 필사하니 일만 팔천 언(言)이 되었다.
031_0343_a_09L 竺佛念造原夫善惡之運契猶形影之相顧對明驗凡三差焉現世中世後世播九色之深恩以悅天妃之耳目孤禽投王而全命形受五兀之切酷斯現報也群徒潛淪於幽壑神陟淪漂而不改身酸歷世之殃舋不曉王子之喪目斯中報也阿蘭從禍於無相佩永惑於始終爲著翅之暴狸飛沈受困而難計斯後報也故聖人降靈必有所由非務不豫淸白明矣玄鑑三世弱喪之流深記來世坏形之累承入百練之室自如來逝後阿育登綱維閻浮光被六合圖形神寺八萬四千羅漢御世汜濟億數國主師玄化滂沛萬民仰戴而不已神祇欽賴而愈深然王子法益宿殖洪業生在王宮容貌殊特復受斯對靡知緣趣會秦尚書令輔國將軍宗正卿領城門挍尉使者司隸挍尉姚旻者南安郡人也親姚韶之次兄字景嶷文爲儒表則烈勳於千載武爲邈群則皎然而獨摽凡音通實則辯機而曠遠執素縱情則翺翔而無倫德也純懿範也難摸赫逸翰於群才振龍威於昆鋒然愍永惑之叵救傷愚黨之不寤欲紹先勝之遺迹豎玄宗於末俗故請天竺沙門曇摩難提出斯緣本秦建初六年歲在辛卯於安定二月十八日出至二十五日乃訖胡本三百四十三首盧也傳爲漢文一萬八千言
나 축불념(竺佛念)도 호음(胡音)을 번역하고 있는데 진정한 의미를 표현하는 일은 실로 어렵다. 혹은 원문을 떠나서 의역하기도 하고, 혹은 정면으로 나아가는 것이 막히면 겉으로 소통시키기도 하고, 혹은 독송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점을 취하기도 하고, 혹은 고사를 생략하고 뜻을 완곡하게 갖추어 놓기도 한다.
바라건대 뒤에 배우는 인재들이 죄와 복의 인과가 썩어 없어지지 않음을 조감해서 살펴보게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毫氂]이라도 윤색(潤色)한 곳이 있다면 그 조짐이 싹트는 단계에 모두 새겨 놓아 경계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서문을 쓰는 바이다.
031_0343_b_17L佛念譯音情義實難離文而就義或正滯而傍通或取解於誦人或事略而曲備冀將來之學令鑑罪福之不朽設有毫釐潤色盡銘之於萌兆故序之焉

20. 합미밀지경기(合微密持經記) 지공명(支恭明) 지음
031_0343_b_21L合微密持經記第二十 支恭明作
031_0343_c_02L
『미밀지(微密持)』와 『다린니(陀隣尼)』27)와 『총지(總持)』의 세 가지를 합한 본상본(上本)은 『다린니』이고 하본(下本)은『총지』와 『미밀지』이다.
『불설무량문미밀지경(佛說無量門微密持經)』『불설아난다목가니가리다린니경(佛說呵難陀目佉尼阿離陀隣尼經)』, 또는 『성도항마득일체지(成道降魔得一切智)』라고도 한다.두 가지 본에 다 이와 같은 이름이 있는데, 모두 따로 역출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 『별섬서대담비기(別剡西臺曇斐記)』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이 경(經)에는 모두 네 가지 본(本)이 있다. 세 가지 본에는 각각 두 가지 이름이 있고, 나머지 한 가지 본에 세 가지의 이름이 있는데, 모두 다음에 열거하는 것과 같다. 그 가운데에는 문(文)과 구(句)가 서로 차이나기도 하고, 어떤 본에는 한음(漢音)으로 되어 있는 차이가 있다. 혹은 의미에 부합되는 말을 골라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각각 어긋나는 경우가 있는데, 의미에 의거하고 문장을 따랐기 때문에 모두가 원본의뜻에 동일하게 합치한다. 서로 다른 곳은 경의 끝부분에 열거된 득법(得法)의 이익[利]과 3승(乘)의 단계에 오른 사람의 수(數)와 또 땅이 흔들린다거나[動地] 꽃이 비오듯 쏟아진다거나[雨華] 제천(諸天)이 음악을 연주하고 공양(供養)을 올리는 것 등은 대부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아서 의미가 상세하지 않은 점이 있다.
첫째 본[一本]은 첫 번째 이름이 무량문미밀지지(無量門微密之持)이고, 두 번째 이름이 성도항마득일체지(成道降魔得一切智)이다. 이 첫째 본은 그 이름이 세상에 유포되어 있으며, 보통 구본(舊本)이라고 한다.
둘째 본은 첫 번째 이름이 아난다목가니가리다라니(阿難陀目佉尼呵離陀羅尼)이고, 두 번째 이름이 질사인민득일체지(疾使人民得一切智)이다.
셋째 본은 첫 번째 이름이 무단저문총지지행(無端底門摠持之行)이고, 두 번째 이름이 보살항각제마견고어일체지(菩薩降却諸魔堅固於一切智)이다.
넷째 본은 첫번 째 이름이 출생무량문지(出生無量門持)이고, 두 번째 이름이 일생보처도행(一生補處道行)이고, 세 번째 이름이 성도항마득일체지(成道降魔得一切智)이다. 이 본에는 득법의 이익[法利]과 땅이 흔들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등의 사항을 갖추고 있다.
네 가지 본은 모두 각각 맨 앞에 있는 한 가지 이름을 경의 첫머리에 표시해 놓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이름은 경의 제목으로 쓰지 않는다.
끝 부분에 사리불(舍利弗)이 경의 이름을 청해서 묻고, 부처님께 말씀하신 경의 이름이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모두 갖추어져 있다.”
031_0343_b_22L合微密持陁以尼摠持三本上本是地以尼下本是摠持微密持也佛說無量門微密持經佛說阿難陁目佉尼阿離陁鄰尼經一名成道降魔得一切智二本後皆有此名竝不列出耳又別剡西臺曇斐記云此經凡有四本三本竝各二名一本三名備如後列其中 文句參差或胡或漢音殊或隨義制語各有左右義順文皆可符同所爲異處後列得利三乘階級人數及動地雨華天伎樂供養多不悉備意所未詳一本一名無量門微密之持二名成道降魔得一切智此一本名行於世爲常舊本一本一名阿難陁目佉尼呵離陁羅二名疾使人民得一切智一本一名無端底門摠持之行二名菩薩降卻諸魔堅固於一切智一本一名出生無量門持二名一生補處道行三名成道降魔得一切智此本備明法利及動地伎樂事四本皆各摽前一名於經首第二三名不以題經也後舍利弗請名說名皆備如前列出三藏記集序卷第七癸卯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이(以)로 되어 있으나 송(宋)ㆍ원(元)ㆍ명(明)본의 린(隣)을 따랐다.
  2. 2)고려대장경에는 의(宜)로 되어 있으나, 송(宋)ㆍ원(元)ㆍ명(明)본의 정(定)을 따랐다.
  3. 3)고려대장경에는 령(令)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전(全)을 따랐다.
  4. 4)고려대장경에는 심(深)으로 되어 있으나, 송(宋)ㆍ원(元)ㆍ명(明)본의 염(染)을 따랐다.
  5. 5)무차라(無叉羅)와 축숙란(竺叔蘭)을 말한다.
  6. 6)고려대장경에는 지(知)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여(如)를 따랐다.
  7. 7)고려대장경에는 철(徹)로 되어 있으나 원ㆍ명본의 철(轍)을 따랐다.
  8. 8)원(元)ㆍ명(明)본에 따라 맹(猛)을 보입하였다.
  9. 9)고려대장경에는 위(位)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에 따라 주(住)로 하였다.
  10. 10)고려대장경에는 곡(谷)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전(筌)을 따랐다. 그러므로 만물을 길러서 도야하고 교화하며[陶化育物] 경과 논의 가르침을 이어받는 것이니, 진실로 현묘한 종지를 깨달아 통솔하고, 특별한 종취를 깊이 통달한 사람이아니라면 어떻게 끝까지 궁구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1. 11)고려대장경에는 함화(咸和)로 되어 있으나, 함화 3년(328년)은 무자세(戊子歲)이다. 『개원석교록』에 함안으로 되어 있으므로 바로잡는다.
  12. 12)고려대장경에는 귀(歸)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구(龜)를 따랐다.
  13. 13)고려대장경에는 박(縛)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륜(淪)을 따랐다.
  14. 14)고려대장경에는 차치(遮致)로 되어있으나 송ㆍ원ㆍ명본에 따라 치차(致遮)로 하였다.
  15. 15)고려대장경에는 구(九)로 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의 력(力)을 따랐다.
  16. 16)『역(易)』 곤괘(坤卦) 육삼(六三)에 “광명을 내포하여 마음이 곧고 바를 수 있다[含章可貞]”라고 하였다.
  17. 17)월령(月令)에서는 11월이라고 하였는데 다음 문장에 나오는 달수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18. 18)고려대장경에는 병(病)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숙(宿)을 따랐다.
  19. 19)『역(易)』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 구심치원(鉤深致遠)이라고 하였다.
  20. 20)황석공에게서 받은 태공(太公)의 병법서(兵法書).
  21. 21)소진이 스승인 귀곡자에게 받은 책으로 익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
  22. 22)세속을 초월한 바깥 세계.
  23. 23)고려대장경에는 종(從)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송(誦)을 따랐다.
  24. 24)고려대장경에는 올(兀)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월(刖)을 따랐다.
  25. 25)고려대장경에는 승(承)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인(引)을 따랐다.
  26. 26)고려대장경에는 실(實)로 되어 있으나 본경 서문의 명(冥)을 따랐다.
  27. 27)고려대장경에는 지이(地以)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본의 타린(陀隣)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