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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 제1권 - 031_0476_b_01L歷代三寶紀卷第一帝年上周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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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방(費長房) 지음
오준호 번역 - 031_0476_b_02L開皇十七年翻經學士臣費長房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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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년(帝年) ①
제년(帝年)의 첫 번째를 말해 보자. 인도[身毒國]에서 여래께서 탄생하신 것을 서술하면 이곳 중국[眞丹] 희주(姬周)1) 때에 해당되는데, 연대(年代)가 너무 오래되고 인세(人世)가 서로 차이나서, 지적하여 그것을 말하고자 해도 전후가 대단히 혼미하다. 지금 여기에서 먼저 위로는 60갑자(甲子)를 편술하여 고금을 잇고, 밑으로는 제년(帝年)을 잇달아 서술하여 시대를 통괄하니, 선양(禪讓)하거나 패도를 행한 군주[霸主]들이 눈앞의 거울처럼 선명하고, 세상과 조정[市朝]이 바뀐 것이 손안의 거울처럼 분명하다. 연후에 모든 군왕의 은택을 펴서 어루만지고 멀리 미친 것을 상고해 보면, 그 시기가 불법(佛法)의 교화가 유포되어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구제한 사실과 맞으니, 불교의 이치와 유교의 가르침은 도리가 계합하여 그윽하게 부합된다. 실로 신령함이 오천축에 강림하여 상서로움이 9주(州)에 두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희창(姬昌:周의 文王)의 어머니인 사(姒)가 꿈에 대인(大人)과 감응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창을 낳았다. 창의 얼굴은 용같이 생겼고, 호랑이의 눈썹을 하였으며, 신장이 한 길[丈]이었고, 가슴에는 네 개의 젖이 있었다. 국세가 서융(西戎)에 다다르고, 정치의 교화가 동쪽까지 펼쳐지자, 붉은 봉황이 날아 왔다. 나라의 이름을 바꿔 주(周)라 하였고, 시호는 문왕(文王)이라 하였다. 풍(酆)을 도읍으로 삼아 말라비틀어진 유해들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주니 천하가 귀명하여 복종하였다. 때문에 공자는 “아름답구나, 문왕의 덕이여. 움직이지 않아도 교화하였도다”라고 하였다.
그의 아들인 발(發:武王)에 이르러서는 주(紂)를 정벌하고 도읍을 호경(鎬京)으로 옮겼다. 무왕은 길에서 더위 먹은 사람을 만나면 수레에서 내려 부채를 부쳐 줄 정도로, 만승천자의 지위를 가볍게 여기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손자(孫子)는 “무왕이 살아 있을 때에는 천하가 노래하였고, 죽었을 때에는 사해(四海)가 통곡하였다”고 하였다.
주나라 19대 군주인 장왕(莊王) 10년(B.C. 687), 즉 노(魯)나라 춘추 장공(莊公) 7년 여름 4월 신묘일 밤에는 항성(恒星)이 보이지 않았고, 밤중에 별이 비처럼 쏟아졌는데, 이를 상고하면 바로 이날이 여래께서 왕궁에 탄생하신 때이다. 선현(先賢)과 제덕(諸德)들이 부처님의 탄생 연도를 추정한 것에는 상호간에 멀고 가까움이 있다. 『법현전(法顯傳)』에 의거하여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때를 추정하면, 은나라 때인 무을(武乙) 26년 갑오(甲午)에 해당되는데, 지금이 개황(開皇) 17년 정사(丁巳)이므로 1,681년이 지났다.
사문 법상(法上)이 고구려의 질문에 답한 것에 의거한다면, 전주(前周)의 제5대 군주인 소왕(昭王) 하(瑕) 24년 갑인(甲寅)에 해당되는데, 지금이 정사이므로 1,486년이 지났다.
『목천자별전(穆天子別傳)』을 의거하여 증거로 삼으면, 하(瑕)라고 호칭된 아들 만(滿)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목왕은 부처님께서 가유(迦維)에 탄생하셨다는 소식 듣고, 마침내 서쪽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상정기(像正記)』에 의거하면, 전주(前周) 제17대 군주인 평왕(平王) 의구(宜臼) 48년(B.C. 723) 무오(戊午)에 해당되는데, 지금이 정사이므로 1,323년이 지났다.
후주(後周)의 사문인 석도안(釋道安)이 구마라집의 연기(年紀)와 돌기둥에 새겨진 글자銘를 바탕으로 추정한 것에 의거하면, 전주(前周) 제18대 군주인 환왕(桓王) 임(林) 5년 을축(乙丑)에 해당되는데, 지금이 정사이므로 1,225년이 지났다.
조백휴(趙伯休)가 양나라 대동(大同) 원년(B.C. 535)에 여산에서 홍도(弘度) 율사를 만나서 얻은 부처님 멸도(滅度) 후의 『중성점기(衆聖點記)』에 의거하여 추정하면, 전주(前周) 제29대 군주인 정정왕(貞定王) 양(亮) 2년(B.C. 467) 갑술(甲戌)에 해당되는데, 거의 1,061년이니, 이것이 가장 가까운 것이다.
3장(藏)의 가르침과 『선견율(善見律)』에서 이르는 것에 준거하여 부처님이 무엇 때문에 여인을 득도시키지 않으려 했는가를 살펴보면, 경법(敬法) 때문이었다. 정법(正法)이 천 년 동안인데, 여인을 득도시켜 오백 년이 멸진되었기에 8경(敬)을 제정, 닦게 하여 다시 천 년을 채우도록 하였다. 연후에 상법(像法)이 또한 천 년이고, 말법(末法)은 만 년이다.
5천 년 이내로는 3달지(達智)를 익힘과 함께 4과(果)를 얻고, 6천 년 후로는 익혀도 도를 얻지 못한다. 만 년 이후에는 경전의 문자가 자연히 없어져 다하게 되고, 다만 머리를 깎은 이가 나타나고 가사만이 있을 뿐이다. 정법의 세상에서는 대승의 법미(法味)가 순일하고, 상법의 시대에는 법미가 약간 담박(淡泊)해지며, 말법에 들어갈 경우에는 대승의 가르침이 없어져서 노비가 출가하여 청정한 행을 오염시키고, 악한 왕이 세상을 다스려 승니에게도 세금을 부여한다. 지금의 시기는 이렇지 않으니, 이 때문에 정법과 상법이 교섭된 지가 오래되지 않아 삼보를 받들어 흥성하고 대승이 성대하게 퍼졌다. 어떻게 말법을 접한 것일 수 있겠는가.
지금 여기에서는 『보요경(普曜經)』ㆍ『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등의 경전을 근거로 하고 『노사(魯史:春秋)』와 비교ㆍ대조를 하였으나, 경솔하게 한 귀퉁이만을 든 것일 뿐이다. 삼가 훗날 명철한 이를 기다리니, 성인의 자취를 선양하고 훌륭한 방편에 응탁(應託)하기를 바란다.
부처님께서는 장왕(莊王) 9년 계사(癸巳) 4월 8일에 흰 코끼리의 형상으로 나타나시어 도솔천으로부터 중천축국 가비라성 정반대왕(淨飯大王)의 첫 번째 부인인 마야의 오른쪽 옆구리로 강림하셨다. 이때 모든 하늘이 은밀하게 호위하고 따르며 태장(胎藏)에 비밀스럽게 은거하였으니, 세상의 육안을 갖춘 사람으로서는 아는 이가 드물었다.
10년 중춘(仲春) 2월 8일 밤 귀수(鬼宿)의 별들이 합쳐졌을 때 남비원(嵐毗園:룸비니 동산) 바라나무 아래서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으니, 태어나실 때의 상(相)은 이미 다른 곳에서 밝혔다. 그러므로 『보요경(普曜經)』에서는 “널리 큰 광명이 삼천세계를 비추었다”고 하였으니, 곧 『좌전(左傳)』에서 말하는 “항성(恒星)이 보이지 않고 밤이 환했다”는 것이며, 『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에서는 “별들이 어지럽게 날며 하강하여 나타나 태자의 탄생을 기다렸다”고 하였으니, 『좌전』에서 “별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한 것이며, 『본행경(本行經)』에서는 “허공에 구름이 없이도 저절로 비가 내렸다”고 하였는데, 두씨(杜氏)는 “대체로 구름이 없었다”고 풀이하였고, 『좌전』에서는 또한 “비와 더불어 동반하였다”고 하였다.
희주(姬周)의 역법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았으니, 4월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오늘날 2월 신묘 5일로, 『노사(魯史)』가 잘못된 것이다. 사문 도안(道安)은 『이교론(二敎論)』을 저술하였는데, 주나라의 역법을 바탕으로 추산하여 다시 8일을 합하고 태어난 때를 성도(成道)한 해로 삼았으니, 결국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시기를 삼십 년 뒤로 멀어지게 하였다.
부처님은 희왕(僖王) 원년 경자(庚子), 나이 7세에 양수레[羊車]를 타고 학당(學堂)을 찾았고, 4년 계묘 나이 10세에 모든 석가족의 동년배들과 더불어 힘을 겨루었다. 혜왕(惠王) 3년 정미 나이 14세에 부왕에게 알리고 유람을 떠났는데,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가 병든 사람을 보고 돌아왔다. 6년 경술 나이 17세에 구이(求夷) 왕비를 맞이하였다. 8년 임자 나이 19세 4월 8일 한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였다.『십이유경(十二遊經)』에서는 “부처님께서 20세에 출가하셨다”고 하였다. 『증일아함경』 제24권에서는 “내 나이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사람들을 제도하고자 하였다” 하고는, 또한 “스무 살에 외도 가운데 있으면서 배웠다”고 하였다. 『장아함경』에서도 또한 “나이 스물아홉에 출가하였다”고 하였다. 그러한 대체적인 예를 추정한다면, 여래께서 세상에 계셨던 79년 동안 만일 29세에 출가하시고 35세에 성도하셨으니, 중생을 교화할 수 있었던 기간은 오로지 45년 동안이다. 그런데 『선요경(禪要經)』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 몸으로 중생을 교화하신 기간이 49년이셨다”고 하였고, 모든 경전 대부분에서는 19세에 출가하셨다고 하였으니, 지금 여기에서는 이것을 바른 것으로 삼는다. 가령 29세에 출가하시고 35세에 성도하신 경우는 경전 가운데 대체로 그러한 예가 적다. 또한 스무 살에 외도 가운데서 배웠다면 곧 오십 세가 되어야 비로소 성도한 것이니, 이것으로 볼 때 오류임을 알 수 있다.
19년 계해 나이 30세 2월 8일에 밝은 별이 떠오를 때 환하게 깨쳐서 무상도(無上道)를 이루었다.『반니원경(般泥洹經)』 하권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성도한 이래로 햇수가 또한 어느덧 49년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뵙기 어려우니, 1억 4천만 년 후에야 미륵부처님께서 계실 뿐이다”라고 하셨다. 『선요(禪要)』에서는 “여래께서 성도하신지 49년”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일미(一味)이다. 『장아함경』 제5권에서는 “부처님께서 수발(須跋:부처님의 마지막 제자인 수발타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성도한 이래로 이미 50년이다’라고 하셨다”고 하였다. 49년 동안 천상ㆍ인간ㆍ용ㆍ신 등의 세간에 계시면서 설법 교화로 각기 해탈케 하고 4과(果)를 증득하게 하였다. 번뇌의 거센 흐름을 거스른 이들의 수가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고, 3도(塗)를 모면하여 벗어나 천상과 인간에 태어난 이들은 헤아릴 수 없다.
중생에게 감응할 인연이 다하자, 부처님께서는 광왕(匡王) 4년 임자 2월 15일 늦은 밤, 중천축의 구시나성(拘尸那城)에서 반열반에 드셨다. 이로부터 오늘 개황 17년 정사에 이르도록 1,205년이니, 세간의 안목인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열반경』과 『선견율』에서는 모두 “2월 15일”이라고 하였고,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서는 “2월 8일 열반하셨다” 하고는, 또한 “처음 태어남과 성도, 열반에 이르기까지 모두 4월 8일이다”라고 하였다. 선덕(先德)들은 구역(舊譯)에서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이는 2월이다. 어째서인가? 왕사성과 구시나성의 거리가 3천 리이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7일에서야 비로소 화장을 하고 마침내 제자들은 흩어졌는데, 가섭이 왕사성 앞에서 하안거하고 법장(法藏)을 집성하였다. 거느린 대중들이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모두 왕사성으로 와서야 비로소 다시 검토하고 간별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바로 그날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나머지 경전에서는 모두 한밤중에 열반하셨다고 하였는데, 오로지 『선견율』만이 유독 새벽이라고 했다. 경전에서는 멸도의 시기에 대해 풀이하여 표명한 바가 있다. 장차 중생에게 불일(佛日)을 제시하려고 하는데, 필연적으로 밤중에 있어서 초야인 경우에 때가 아직 밝지 않으면 다음 부처님께서 오래되어야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이고, 한밤중에 있는 경우에는 서로간의 거리가 똑같고, 늦은 밤에 있는 경우에는 오래지 않아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다. 미륵부처님은 억 년이나 남았고 또한 다른 겁이 아니기 때문에 한밤중이 맞다고 하겠다.
『아육왕전(阿育王傳)』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116년에 이름이 아수가(阿輸伽)인 염부제 왕이 동천축에서 태어나 화씨성(華氏城)을 다스리며, 부처님의 사리를 거두어 8만 4천의 보탑을 흩어 세워서 염부제를 에워싸 두루 편재하게 하고자 하였다”고 하였다. 『천축전(天竺傳)』에 실린 것을 간략하게 말할 수 있는데, 중국[眞丹國]의 성(城)과 강수(江水)나 한수(漢水)의 좌우와 관(關)과 농(隴)의 서동(西東) 곳곳에 모두 있었다고 하니, 그 시기는 이곳 주나라의 경왕(敬王) 때인 26년 정미에 해당한다. 주나라는 무왕으로부터 난왕(赧王)에 이르기까지 39명의 왕이 있었고 그 기간은 884년이었다. 도읍은 풍(酆)ㆍ호(鎬)ㆍ낙읍(洛邑)으로 주나라가 유지되는 동안 모두 네 곳을 거쳤다.
소양왕(昭襄王) 영(贏)이 즉위한 지 52년에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진(秦)이라고 하였다. 호경(鎬京)을 개칭하여 함양(咸陽)이라 하고는, 바로 그곳을 도읍으로 정했다. 제4대 군주인 시황제 정(正:진시황제의 이름) 26년에 이르러 여섯 나라를 물리쳐 정복하였으며, 27년에 구주(九州)를 폐지하고는 천하를 나누어 36군으로 만들었다. 34년에는 모든 전적(典籍)을 전부 불태워 버렸는데, 오직 의방(醫方)과 약술(藥術)에 관한 서적만이 화를 면하였으니, 나머지는 모두 재가 되어 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주나라 시대의 성스러운 가르침과 신령한 자취, 그리고 아육왕이 조성한 사리탑과 전기가 없어지고 단절되어 계승되는 것을 알 수 없다.
또한 시황제 때에 사문 석리방(釋利防) 등 18명의 현자 모두가 경전을 가지고 와서 교화하였는데, 시황제가 따르지 않고 결국 석리방 등을 구금하였다. 밤에 한 길 육 척[丈六]이나 되는 금강역사[金剛]가 와서 감옥을 부수고 그들을 구출하였다. 시황제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였다.
진나라는 네 명의 군주가 다스린 49년 만에 한(漢)에게 멸망당했다. 주나라를 일으킨 무왕 원년(B.C.1111) 기묘로부터 진의 이세(二世)가 패망한 해인 갑오(B.C.207)에 이르기까지 그 기간이 933년이고, 42명의 군주를 거쳤다. 주나라의 열여섯 번째 왕까지 453년은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 전으로 명칭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장왕(莊王) 때 여래께서 탄생하신 해로부터 한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를 헤아려 기록하면, 26명의 군주가 다스린 481년이다. 여기서는 이 시기를 모두 묶어 주(周)ㆍ진(秦)의 세록(世錄)을 만들고, 부처님께서 드리우신 응교(應敎)가 동토에 전해진 것을 밝힐 것이다. - 031_0476_b_03L帝年上者述身毒國如來託生,當此眞丹姬周時也。年代寖遠,人世參差,指而言之,亟迷前後。今先上編甲子紘絡古今,下纘帝年、綱紀、時代,庶禪讓霸主,若鏡目前,遷革市朝,如鑑掌內。然後考諸君王澤被撫運,適時佛法化流,應機濟物,釋經、孔教,理契冥符,可謂靈降五天,瑞通九州者也。姬昌母姒夢大人,感因而生昌,龍顏虎眉,身長一丈,胸有四乳,國濱西戎,政被東漸,赤雀降祉,改稱周,謚曰文王,都酆,收葬枯骸,天下歸服。故夫子曰:‘文王之德美哉!不動而化。到其子發,武王伐紂,徙都鎬京,路逢暍人下車而扇,卑輕萬乘,子愛兆民。’故孫卿子云:‘武王生則天下歌,死則四海哭。’至第十九主莊王他十年,卽魯春秋莊公七年,夏四月辛卯,夜恒星不見,夜中星隕如雨。案此,卽是如來誕生王宮時也先賢諸德推佛生年互有遐邇依法顯傳推佛生時則當殷世武乙二十六年甲午至今開皇十七年丁巳便已一千六百八十一年依沙門法上答高句麗國問則當前周第五主昭王瑕二十四年甲寅至今丁巳則一千四百八十六年引穆天子別傳爲證稱瑕子滿嗣位穆王聞佛生迦維遂西遊而不返依像正記當前周弟十七主平王宜臼四十八年戊午至今丁巳則一千三百二十三年依後周沙門釋道安用羅什年紀及石柱銘推則當前周弟十八主桓王林五年乙丑至今丁巳則一千二百二十五年依趙伯休梁大同元年於廬山遇弘度律師得佛滅度後衆聖點記推則當前周第二十九主貞定王亮二年甲戌至今丁巳殆一千六十一年唯此最近准三藏教及善見律云佛何以不度女人爲敬法故正法千年以度女人減五百年制修八敬還滿千年然後像法亦一千年末法萬年五千年來學三達智幷得四果六千年去學不得道萬年已後經典文字自然滅盡但現剃頭有袈裟耳正法之世大乘味淳至乎像代味少淡泊若入末法則無大乘奴婢出家污染淨行惡王治世課稅僧尼今則未然綠此正像交涉未深三寶載興大乘盛布寧得已接於末法者哉今依普曜本行等經,挍讎魯史,輕擧一隅,敬貽來哲,庶宣聖迹,應託善㩲。佛以莊王九年癸巳四月八日,現白象形,從兜率,降中天竺國迦毘羅城,淨飯大王第一夫人摩耶右脅。是時,諸天影潛衛從,胎藏秘隱,世眼罕知。十年仲春二月八日夜,鬼宿合時,於嵐毘園波羅樹下,右脅而誕,生相旣顯。故普曜云:‘普放大光,照三千界。’卽左傳說:‘恒星不現,夜明也。’瑞應經云:‘沸星下現,侍太子生。’故左傳稱,‘星隕如雨。’本行經說:‘虛空無雲,自然而雨。’杜氏注解:‘蓋時無雲。’左傳又稱:‘與雨偕也。’然姬周曆十一月爲正,言四月者,卽今二月辛夘五日。魯史爲謬,沙門道安著二教論,用姬曆推,還合八日。唯以生時,爲成道歲,遂令佛世遠三十年耳。佛至僖王元年庚子,年七,乘羊車詣學堂,四年癸卯,年十,與諸同齒釋族試力,惠王三年丁未,年十四,啓父王遊,出城東門,見病人廻,六年庚戌,年十七,納妃求夷,八年壬子,年十九,四月八日夜半踰城出家十二遊經云佛二十出家增一阿含第二十四卷云我年二十九出家欲度人故又云年二十在外道中學長阿含亦云年二十九出家推其大例如來在世七十九年若二十九出家三十五成道所可化物唯應四十五年而禪要經云釋迦一身教化衆生四十九年諸經多云十九出家今以此爲正若以二十九出家三十五成道經中蓋少且云二十年在外道中學便是五十年方成道是知爲謬也十九年癸亥,年三十,二月八日,明星出時,朗然覺悟成無上道般泥洹經下卷佛語阿難我成道來年亦自至四十有九佛難可睹一億四千萬歲乃有彌勒耳禪要云如來成道四十九年是爲一味長阿含第五卷云佛語須跋我成佛已來已五十年四十九年處在天、人、龍、神、世閒,說法教化,各令解脫,得證四果,逆有流者,數若恒沙,免離三塗,生天人者,不可稱計,衆生感緣旣盡。佛以匡王四年壬子二月十五日後夜,於中天竺拘尸那城,入般涅槃。自爾已來,至今開皇十七年丁巳一千二百五年世閒眼滅涅槃經及善見律竝言二月十五日菩薩處胎經云二月八日泥洹又云初生得道乃至涅槃皆四月八日先德舊譯悉言應是二月所以然者王舍城去拘夷國城三千里佛滅後七日方闍維弟子乃散迦葉方向王舍城前夏安居集法藏所將大衆若惠若愚俱至於王舍城始復撿蕑不容卽日便至所在而餘經皆云中夜涅槃唯善見律獨言平旦經解滅度時節有所表明將示衆生離於佛日必在夜分若初夜時時方未曉卽表後佛久乃出世若在中夜相去正等後夜之時不久佛出彌勒方有億年又非異劫中夜爲允育王傳云佛泥越後百十六年,閻浮提王,名阿輸伽,出東天竺,治華氏城,收佛舍利,散起八萬四千寶塔,帀閻浮提。’頗欲周遍天竺傳載,可得略言,眞丹國城江漢左右,關隴西東,處處皆有。彼時當此周敬王世二十六年丁未歲也。自武王至𧹞三十九王,八百八十四年,都酆及鎬洛邑,成周凡歷四處,嬴昭襄王立,五十二年,滅周稱秦,改鎬京爲咸陽,仍卽都之。至第四主始皇帝正二十六年,蕩除六國,二十七年,廢罷九州,分天下爲三十六郡,三十四年,所有典籍,悉皆焚燒,唯醫方藥術不在爇限,降此悉灰。緣是周代聖教靈迹,及阿育王造舍利塔,傳記湮絕,靡知所承。又始皇時,有諸沙門釋利防等十八賢者,齎經來化,始皇弗從,遂禁利防等,夜有金剛丈六人,來破獄出之,始皇驚怖,稽首謝焉。四主四十九年,爲漢所滅,起周武王元年己卯訖,秦二世敗歲甲午,其閒九百三十三年,四十二主,周十六王,四百五十三年,佛未出前名而不錄,起自莊王,如來誕世,到乎漢始,方紀歷年,二十六主,四百八十一載,摠結以爲周秦世錄,明佛乘應教被東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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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 장왕(莊王) 15년 재위. 여기에서는 다만 6년(장왕 재위 10년부터 15년까지)만을 부처님의 탄생 이후로 포함시킨다. 희왕(僖王) 5년 혜왕(惠王) 25년 양왕(襄王) 33년 경왕(傾王) 6년 광왕(匡王) 6년. 4년(B.C. 609) 2월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다. 정왕(定王) 21년 간왕(簡王) 14년 영왕(靈王) 27년 경왕(景王) 25년 경왕(敬王) 43년. 26년(B.C. 494)에 아육왕이 8만 4천 탑을 세우다. 원왕(元王) 8년 정정왕(貞定王) 28년 효왕(孝王) 15년 위열왕(威烈王) 24년 원안왕(元安王) 26년 이열왕(夷烈王) 7년 현성왕(顯聖王) 48년 순정왕(順靜王) 6년 난왕(赧王) 59년 진(秦) 소양왕(昭襄王) 5년 재위 효문왕(孝文王) 1년 장양왕(莊襄王) 3년 시황제(始皇帝) 37년 이세황제(二世皇帝) 3년 시황제자(始皇帝子) 46일 주(周) 갑오 장왕(莊王) 타(他) 10년(B.C. 687):2월 8일 석가여래께서 신령으로 강림하여 중천축국 가비라성의 정반왕궁에 탁생(託生)하시다. 이때 광명을 방출하시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전체가 크게 밝았다고 하니, 이는 바로 노나라 『춘추좌전』에 “항성(恒星)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밤이 대낮처럼 환했다”고 한 때에 해당된다. 을미 11년 병신 12년 정유 13년 무술 14년 기해 15년 경자 희왕(僖王) 호제(胡齊) 원년(B.C. 681):『보요경(普曜經)』 제3권에 “실달(悉達) 태자가 나이 7세에 양수레 羊車 를 타고 스승을 찾아 학당(學堂)으로 나아갔는데, 스승의 이름은 선우(選友)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때가 바로 이 해다.신축 2년 임인 3년 계묘 4년(B.C. 678):『현재인과경(現在因果經)』에 “실달 태자가 나이 10세에 모든 석가족의 동년배 5백 명과 힘을 겨루었다”고 한 해이다. 갑진 5년 을사 혜왕(惠王) 랑(閬) 원년(B.C. 676):부처님의 나이 12세 때이다. 병오 2년 정미 3년:『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 상권에 “태자의 나이 14세가 되어 부왕에게 알리고 성 밖을 나가 유람하였는데, 성의 동쪽 문에서 병자(病者)를 보고는 돌아왔다”고 한 해이다. 무신 4년 기유 5년 경술 6년:『서응본기경』 상권에 “태자의 나이 17세에 왕이 태자를 위해 태자비를 맞이하였으니, 이름은 구이(求夷)이다”라고 한 해이다. 신해 7년 임자 8년:성(城)을 넘어 출가하였다. 『서응본기경』 상권에서 “태자의 나이 19세인 4월 8일 한밤중에 하늘이 창문에서 손을 모으고 말하기를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명은 말처럼 빨리 지나갑니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은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의 내용과 같으니, 바로 이 해이다. 주 계축 9년 갑인 10년 을묘 11년 병진 12년 정사 13년 무오 14년 기미 15년 경신 16년 신유 17년 임술 18년:『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는 “보살께서 6년 동안 꼬박 고행하고, 이듬해 봄 2월 16일, 마음속으로 ‘모름지기 하늘의 공양을 받으면 깨달음을 증득하리라’ 하고 스스로 생각하시었다. @하늘에서 두 명의 천녀에게 열여섯 번으로 나누어 유미죽을 끓여 바치게 하니, 2월 23일 새벽에 이르도록 이를 걸식하여 드셨다”고 하였다. 계해 19년: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이루시다. 『보요경(普曜經)』 제6권에 “보살께서 샛별이 뜰 때 확연하게 대오하셨다”고 하고, 다시 “19세에 출가하시어 30세에 성도하시니, 뜻을 이루어 성공하시어 크게 밝지 아니함이 없었다”고 한 것이 바로 이 해이다. 『십이유경(十二遊經)』에는 “부처님께서 4월 8일에서 7월 15일까지 나무 밑에 앉아계시면서 1년이라고 여기셨다”고 하였다. 갑자 20년:성도하신 지 2년째에 녹야원에서 아야구린(阿若拘隣) 등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미사색률(彌沙塞律)』 제21권에는 “부처님께서 울비람불(鬱鞞藍弗:우다카 라마푸타)을 위해서 설법하시려고 생각하셨는데, 천자(天子)가 ‘작년에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라고 아뢰었다”고 하였다. 을축 21년:성도하신 지 3년째에 우루빈라가섭 형제 세 명에게 설법하시고, 아울러 그 제자들을 제도하였으니, 모두 합하여 천 명의 비구가 되었다. 병인 22년:성도하신 지 4년째 되던 해에 가야산 정상에서 모든 용과 귀신들을 위해서 설법하시니, 상두산(象頭山)이 바로 이곳이다. 주 정묘 23년:성도하신 지 5년, 바라문인 사리불이 부처님의 제자 마사(馬師:마승) 비구를 보고 “어떤 도를 따르십니까?” 하고 묻자, “저는 부처님의 제자인데,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대로 행하여 초과(初果)를 얻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사리불이 돌아와서 목련(目連)에게 알리고 함께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로 찾아갔다. 사리불은 뛰어난 지혜로 7일이 지난 후에 아라한과를 성취했고, 목련은 15일이 지나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무진 24년:성도하신 지 6년이 되던 해에 수달 장자와 기타 태자가 함께 부처님을 위하여 정사(精舍)를 지었는데, 열두 개의 부도사(浮圖寺)와 일흔두 채의 강당, 3천6백 칸의 방과 5백 채의 누각에 이르는 규모였다. 모든 것은 수달 장자가 지었고, 기타 태자는 오직 문과 누옥(樓屋)만을 세웠다. 기사 25년:성도하신 지 7년째 구야니원(拘耶尼園)에 계시면서 바타화보살(婆陁和菩薩) 등 여덟 명에게 『반주경(般舟經)』을 설하셨다. 경오 양왕(襄王) 정(鄭) 원년(B.C. 651):성도하신 지 8년째 부처님께서는 유산(柳山)에 계시면서 순진타라왕(純眞陁羅王)의 동생을 위해 설법하시어 도를 이루게 하셨다. 이때 부처님은 37세이셨다. 신미 2년:성도하신 지 9년째 예택(穢澤)에 계시면서 아굴마(阿掘魔)를 위해 설법하셨다. 임신 3년:성도하신 지 10년째 마갈제국으로 돌아가시어 불사왕(弗沙王)을 위해 설법하셨다. 계유 4년:성도하신 지 11년째 공포(恐怖)나무 밑에 계시면서 미륵을 위하여 『본기경(本起經)』을 설하셨으니, 바로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이 이것이다. 갑술 5년:성도하신 지 12년째 고국으로 돌아가 석(釋)씨 문중을 위해 설법하시니, 8만 4천 사람이 수다원과를 얻었다. 『십이유경』은 이러한 설법이다. 『보요경』 제8권에서는 “왕께서 우타(優陁)라는 범지를 보내어 부처님을 영접토록 하였다. 돌아오시니, ‘헤어진 이래로 12년 동안 생각만 하다가 서로 보게 되는군요’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을해 6년 병자 7년 정축 8년 무인 9년:『대집경(大集經)』 제1권에서 “여래께서 도를 이루신 지 16년이 주 지나서 모든 보살들이 대승의 법장(法藏)을 감당하여 맡아 지닐 수 있음을 아시고 욕계와 색계 중간의 대보방(大寶坊) 안에 나아가 『대집경』을 설하셨다”고 했는데, 바로 이 해이다. 기묘 10년 경진 11년 신사 12년 임오 13년 계미 14년 갑신 15년 을유 16년 병술 17년 정해 18년 무자 19년 기축 20년 경인 21년 신묘 22년 임진 23년 계사 24년 갑오 25년 을미 26년 병신 27년 정유 28년 무술 29년 기해 30년 경자 31년 신축 32년 임인 33년 계묘 경왕(傾王) 신(臣) 원년(B.C. 618):이때 부처님의 나이 70세이다. 갑진 2년 주 을사 3년 병오 4년 정미 5년 무신 6년 기유 광왕(匡王) 반(斑) 원년(B.C. 612):부처님의 나이 76세이다. 경술 2년 신해 3년 임자 4년:부처님의 나이 79세로, 광왕 4년 2월 15일 새벽 역사(力士)가 태어난 땅인 중천축의 구시나성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드시다. 계축 5년 갑인 6년 을묘 정왕(定王) 유(瑜) 원년(B.C. 606):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4년째이다. 병진 2년 정사 3년 무오 4년 기미 5년 경신 6년 신유 7년 임술 8년 계해 9년 갑자 10년 을축 11년 병인 12년 정묘 13년 무진 14년 기사 15년 경오 16년 주 신미 17년 임신 18년:여래께서 멸도에 드신 지 20여 년, 장로 가섭이 법장(法藏)을 관장하다가 아난에게 부촉하고 멸도에 들었다. 그 내용은 『상법정기(像法正記)』에 나온다. 계유 19년 갑술 20년 을해 21년 병자 간왕(簡王) 이(夷) 원년(B.C. 585):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5년째이다. 정축 2년 무인 3년 기묘 4년 경진 5년 신사 6년 임오 7년 계미 8년 갑신 9년 을유 10년 병술 11년 정해 12년 무자 13년 기축 14년 경인 영왕(靈王) 설심(泄心) 원년(B.C. 571):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39년째이다. 신묘 2년 임진 3년:가섭이 멸도에 든 이후 20년 동안 아난이 법장을 맡아 지니다가 말전지(末田地)에게 부촉하고 비로소 열반에 들었다. 이 내용도 역시 『상법정기』에 나온다. 계사 4년 갑오 5년 주 을미 6년 병신 7년 정유 8년 무술 9년 기해 10년 경자 11년 신축 12년 임인 13년 계묘 14년 갑진 15년 을사 16년 병오 17년 정미 18년 무신 19년 기유 20년 경술 21년:11월 경자일(庚子日)에 공자가 노나라에서 탄생하다. 이때는 양공(襄公) 22년이다. 신해 22년 임자 23년:말전지가 입멸한 후 사나바수(舍那婆修)가 또한 20년 동안 법장을 맡아 지니다가 우바굴다(優波掘多)에게 부촉하고 나서 멸도에 들었다. 계축 24년 갑인 25년 을묘 26년 병진 27년 정사 경왕(景王) 귀(貴) 원년(B.C. 544):오나라의 왕자인 계례(季禮)가 조정에 와서 주나라의 음악 듣기를 요청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66년째이다. 무오 2년 기미 3년 경신 4년 주 신유 5년:진(晉)나라의 한선자(韓宣子)가 찾아와서 몸소 태사(太史)씨에 대하여 글을 썼다. 임술 6년 계해 7년 갑자 8년 을축 9년 병인 10년:공자가 노자에게 예(禮)에 대해 물었다. 정묘 11년 무진 12년 기사 13년 경오 14년 신미 15년 임신 16년:사나바수가 입멸한 뒤 우바굴다가 또한 20년 동안 법장을 맡아 지니다가 일명 시라난타(尸羅難陁)라고 하는 제다가(提多迦)에게 부촉한 후에 멸도에 들었다. 계유 17년 갑술 18년 을해 19년 병자 20년 정축 21년 무인 22년 기묘 23년 경진 24년 신사 25년 임오 경왕(敬王) 정(正) 원년(B.C. 519):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91년째이다. 계미 2년 갑신 3년 을유 4년 병술 5년 주 정해 6년 무자 7년 기축 8년 경인 9년 신묘 10년 임진 11년:우바굴다가 입멸하고 시라난타가 법장을 맡아 지닌 지 백 년이 경과하였으니, 이 해가 바로 두 번째 백 년의 첫 해이다. 제다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3일 만에 아라한과를 얻었고, 모두 12억 사람을 제도하여 도를 얻게 하였다. 계사 12년 갑오 13년 을미 14년 병신 15년 정유 16년 무술 17년 기해 18년 경자 19년 신축 20년 임인 21년 계묘 22년:공자가 위(衛)나라를 떠났고, 자로가 계씨의 읍재(邑宰)가 되었다. 갑진 23년 을사 24년:공자가 진(陳)나라로 갔다. 병오 25년 정미 26년:『아육왕전(阿育王傳)』에서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지 116년 후에 동천축에 출현하시어 화씨성을 다스리며 염부제를 통일하고 철륜왕(鐵輪王)이 되어 불법을 융성하게 일으키고 8만 4천 보탑을 세웠다”고 한 것이 바로 이 해에 해당된다. 무신 27년 기유 28년 경술 29년 주 신해 30년 임자 31년 계축 32년 갑인 33년 을묘 34년 병진 35년:공자가 진(陳)에서 위(衛)로 갔다. 정사 36년:공자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6경(經)을 정(定)하였다. 이때가 68세였다. 이 해는 노나라 애공 11년이다. 무오 37년 기미 38년 경신 39년:노나라 애공 14년 2월 기린을 포획하였는데, 공자가 이로부터 붓을 놓고 다시는 집필을 하지 않았다. 신유 40년 임술 41년:공자가 죽었다. 그때 나이 73세였다.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는 기린을 잡은 경신년에 공자가 절필하여 마쳤으니, 거의 240년 동안의 기록이다. 제자들도 또한 절필한 지 2년 후에 돌아가셨다고 진술하였다. 계해 42년 갑자 43년 을축 원왕(元王) 인(仁) 원년(B.C. 476):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134년째이다. 병인 2년 정묘 3년 무진 4년 기사 5년 경오 6년 신미 7년 임신 8년 계유 정정왕(貞定王) 양(亮) 원년(B.C. 468):좌구명(左丘明)이 『춘추좌씨전』을 기록하였다. 이 해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142년째이다. 주 갑술 2년 을해 3년 병자 4년 정축 5년 무인 6년 기묘 7년 경진 8년 신사 9년 임오 10년 계미 11년 갑신 12년 을유 13년 병술 14년 정해 15년 무자 16년 기축 17년 경인 18년 신묘 19년 임진 20년 계사 21년 갑오 22년 을미 23년 병신 24년 정유 25년 무술 26년 기해 27년 경자 28년 신축 효왕(孝王) 외(隗) 원년(B.C. 440):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170년이다. 주 임인 2년 계묘 3년 갑진 4년 을사 5년 병오 6년 정미 7년 무신 8년 기유 9년 경술 10년 신해 11년 임자 12년 계축 13년 갑인 14년 을묘 15년 병진 위열왕(威烈王) 오(午) 원년(B.C. 425):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185년째이다. 정사 2년 무오 3년 기미 4년 경신 5년 신유 6년 임술 7년 계해 8년 갑자 9년 을축 10년 병인 11년 정묘 12년 무진 13년 기사 14년 주 경오 15년 신미 16년 임신 17년 계유 18년 갑술 19년 을해 20년 병자 21년 정축 22년:구정(九鼎)이 진동하다. 무인 23년 기묘 24년:다른 본에는 31년이라고 되어 있다. 경진 원안왕(元安王) 교(驕) 원년(B.C. 401):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10년째이다. 신사 2년 임오 3년 계미 4년 갑신 5년 을유 6년 병술 7년 정해 8년 무자 9년 기축 10년 경인 11년 신묘 12년 임진 13년 계사 14년 갑오 15년 을미 16년 병신 17년 정유 18년 주 무술 19년 기해 20년 경자 21년 신축 22년 임인 23년 계묘 24년 갑진 25년 을사 26년 병오 이열왕(夷烈王) 희(喜) 원년(B.C. 375):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36년째이다. 정미 2년 무신 3년 기유 4년 경술 5년 신해 6년 임자 7년 계축 현성왕(顯聖王) 편(扁) 원년(B.C. 368):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43년째이다. 갑인 2년 을묘 3년 병진 4년 정사 5년 무오 6년 기미 7년 경신 8년 신유 9년 임술 10년 계해 11년 갑자 12년 주 을축 13년 병인 14년 정묘 15년 무진 16년 기사 17년 경오 18년 신미 19년 임신 20년 계유 21년 갑술 22년 을해 23년 병자 24년 정축 25년 무인 26년 기묘 27년 경진 28년 신사 29년 임오 30년 계미 31년 갑신 32년 을유 33년 병술 34년 정해 35년 무자 36년 기축 37년 경인 38년 신묘 39년 임진 40년 계사 41년 주 갑오 42년 을미 43년 병신 44년 정유 45년 무술 46년 기해 47년 경자 48년 신축 순정왕(順靜王) 정(定) 원년(B.C. 320):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91년째이다. 임인 2년 계묘 3년 갑진 4년 을사 5년 병오 6년 정미 난왕(赧王) 탄(誕) 원년(B.C. 314):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97년째이다. 무신 2년 기유 3년 경술 4년 신해 5년 임자 6년 주 진(秦) 계축 7년 소양왕(昭襄王) 등극 갑인 8년 을묘 9년 병진 10년 정사 11년 무오 12년 기미 13년 주 진 경신 14년 신유 15년 임술 16년 계해 17년 갑자 18년 을축 19년:『살바다부기(薩婆多部記)』에서 말하기를, “마명보살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3백 년 되는 해에 동천축의 바라문 종성으로 태어나 출가하여 모든 외도들을 논파하고, 『대장엄론(大莊嚴論)』 수백 게송을 지어서 불교를 성대하게 흥성시켰다”고 하였다. 별전(別傳)에 실린 것을 계산해보면 이 해에 해당된다. 병인 20년 정묘 21년 무진 22년 기사 23년 경오 24년 신미 25년 임신 26년 계유 27년 갑술 28년 을해 29년 병자 30년 정축 31년 무인 32년 기묘 33년 경진 34년 신사 35년 임오 36년 주 진 계미 37년 갑신 38년 을유 39년 병술 40년 정해 41년 무자 42년 기축 43년 경인 44년 신묘 45년 임진 46년 계사 47년 갑오 48년 을미 49년 병신 50년 정유 51년 무술 52년 기해 53년 경자 54년 신축 55년 임인 56년 계묘 57년 갑진 58년 을사 59년 주나라 멸망 병오 소양왕(昭襄王) 늑(勒) 원년(B.C. 255):주나라의 난왕을 폐하여 서민으로 만들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356년째이다. 정미 2년 무신 3년 진 기유 4년 경술 5년 신해 효문왕(孝文王) 주(柱) 원년(B.C. 250):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361년째이다. 임자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 원년(B.C. 249):효문왕의 아들로 3년을 다스렸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362년째이다. 계축 2년 갑인 3년 을묘 시황제(始皇帝) 정(政) 원년(B.C. 246):장양왕의 아들로 37년 동안 다스렸다. 여불위(呂不韋)를 재상으로 삼았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365년째이다. 병진 2년 정사 3년 무오 4년 기미 5년 경신 6년 신유 7년 임술 8년:노독(嫪毒)을 장신후(長信侯)로 삼았다. 계해 9년:신관(辛冠)이 노독을 주살하고, 그 가족을 촉(蜀)으로 귀양 보냈다. 갑자 10년:여불위가 재상에서 면직되다. 태후는 남궁(南宮)으로 내쫓기다. 이사(李斯)를 재상으로 임명하다. 을축 11년:여불위를 하남으로 귀양 보내다. 병인 12년 정묘 13년 무진 14년 기사 15년 경오 16년 신미 17년:이 해에 한(韓)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영천군(穎川郡)으로 삼다. 진 임신 18년 계유 19년 갑술 20년 을해 21년 병자 22년:이 해에 위(魏)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양군(梁郡)으로 배속시키다. 정축 23년 무인 24년:이 해에 초(楚)나라를 멸망시키고 강동(江東)을 평정하여 회계군으로 두다. 기묘 25년:이 해에 연(燕)나라를 멸망시키고 조(趙)나라도 멸망시키다. 경진 26년:이 해에 제(齊)나라를 멸망시키니, 여섯 나라를 모두 제압하여 한 나라로 통일하고 마침내 스스로 황제가 되다. 정월 초하루를 고쳐서 건해(建亥:동지가 낀 월의 전월)를 세수(歲首:한 해의 시작)로 삼다. 신사 27년:하천을 이름하여 덕수(德水)라 하고, 백성을 이름하여 검수(黔首)라 하다. 천하를 36군(郡)으로 나누고 문자와 수레바퀴의 폭을 통일하였다. 임오 28년:동쪽으로 순력하여 태산에 올라 제사를 올리고 비석을 새겨 공적을 기록하다. 큰 비바람을 만나다. 서씨(徐氏:徐市)를 바다로 보내어 삼신산(三神山)을 찾도록 파견하다. 천 명의 사람을 사수(泗水)에 잠수시켜 주정(周鼎:주나라의 九鼎)을 찾도록 하였으나 얻지 못하다. 계미 29년 갑신 30년:섣달을 고쳐 가평(嘉平)이라 하였다. 일찍이 밤에 미복으로 행차하다 난지(蘭池)에 이르러 도적을 만났다. 매우 위태롭게 되었으나, 진시황을 수행하는 무사들이 달려들어 도적들을 물리쳐서 화를 면했다. 을유 31년 병술 32년:몽염(蒙恬)으로 하여금 20만 명을 이끌고 북쪽의 오랑캐를 쳐서 하남의 땅을 취하고 만리장성을 쌓게 하다. 정해 33년:방하(傍河)로부터 음산(陰山)에 이르도록 44현을 설치하였다. 방하를 요새로 만들었는데, 임조(臨洮)로부터 시작하여 요수(遼水)에까지 이르렀다. 무자 34년:부정을 저지른 옥리(獄吏)들을 귀양 보내 장성을 축조하는 일을 하게 하였다. 이사(李斯)가 모든 전적(典籍)을 불사르고 유사(儒士)들을 산 채로 파묻을 것을 상주하다. 진 기축 35년 경인 36년 신묘 37년 임진 2세 황제 호해(胡亥) 원년(B.C. 209):시황제의 아들로서, 3년 동안 다스렸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402년째이다. 계사 2년 갑오 3년:시황제의 손자인 영(嬰)이 즉위하였는데, 46일 만에 한나라에 멸망되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404년이 되다. - 031_0477_c_14L周莊王十五年今止取六年入紀佛生僖王五年。惠王二十五年。襄王三十三年。傾王六年。匡王六年四年二月佛入涅槃定王二十一年。簡王一十四年。靈王二十七年。景王二十五年。敬王四十三年二十六年阿育王起八萬四千寶塔元王 八年貞定王 二十八年孝王 一十五年威烈王 二十四年元安王 二十六年夷烈王 七年顯聖王 四十八年順靜王 六年𧹞王 五十九年秦昭襄王 五年孝文王 一年莊襄王 三年始皇帝 三十七年二世皇帝 三年 始皇帝子 四十六日周甲午莊王他十年二月八日釋迦如來降神託生中天竺國迦毘羅城淨飯王宮是時放光普照三千大千世界皆悉大明卽魯春秋左傳云恒星不現夜明時是也乙未十一丙申十二丁酉十三戊戌十四己亥十五庚子僖王胡齊元普曜經第三卷云悉達太子年七歲乘羊車詣學堂就師師名選友卽此年辛丑二壬寅三癸卯四現在因果經云悉達太子年十歲時與諸釋種同年齒者凡五百人共捔氣力卽此年也甲辰五乙巳惠王閬元佛年十二丙午二丁未三瑞應本起經上卷云太子年至十四啓父王出遊到城東門見病人廻卽此歲也戊申四己酉五庚戌六瑞應本起經上卷云太子年十七王爲納妃名求夷卽此年也辛亥七壬子八踰城出家瑞應本起經上卷云太子年至十九四月八日夜半天於窗中叉手白言時可去矣卽命馬行與過去現在因果經同卽此年癸丑九甲寅十乙夘十一丙辰十二丁巳十三戊午十四己未十五庚申十六辛酉十七壬戌十八佛本行集經云菩薩六年苦行旣滿至春二月十六日內心自惟須得上食乃證菩提天化二女令煮十六分乳糜施至二月二十三日晨朝乞食而食癸亥十九佛初成道普曜經第六云菩薩明星出時霍然大悟又云十九出家三十成道功成志就莫不大明卽此年十二遊經云佛從四月八日至七月十五日坐樹下以爲一年甲子二十第二年於鹿野菀中爲阿若拘鄰等說法彌沙塞律第二十一云佛念欲爲鬱鞞藍弗說法天子白言:昨已命終。乙丑二十一第三年爲優樓頻螺迦葉兄弟三人說法幷度其弟子合滿千比丘也丙寅二十二第四年於伽耶山頂上爲諸龍鬼說法卽象頭山是也丁卯二十三第五年中舍利弗作婆羅門見佛弟子馬師比丘問云何道答吾佛弟子廣爲其說得初果還報目連同至佛所舍利弗上智經七日便得阿羅漢目連經十五日乃得戊辰二十四第六年須達長者與太子祇陁共爲佛作精舍十二浮圖寺七十二講堂三千六百閒房五百樓閣竝須達作祇陁唯起門樓屋也己巳二十五第七年在拘耶尼園爲婆陁和菩薩等八人說般舟經也庚午襄王鄭元第八年佛在柳山中爲純眞陁羅王弟說法得道也佛年三十七辛未二第九年在穢澤爲阿掘魔說法也壬申三第十年還摩竭提國爲弗沙王說法也癸酉四第十一年在恐怖樹下爲彌勒說本起經卽修行本起等經是甲戌五第十二年還本生國爲釋種說法八萬四千人得須陁洹道十二遊經作如是說普曜經第八云王遣梵志名優陁令迎佛還辭稱闊別已來十二年思想見也乙亥六丙子七丁丑八戊寅九大集經第一云如來成道始十六年知諸菩薩堪能任持大乘法藏卽於欲色二界中間大寶坊內說大集經卽此年也己卯十庚辰十一辛巳十二壬午十三癸未十四甲申十五乙酉十六丙戌十七丁亥十八戊子十九己丑二十庚寅二十一辛夘二十二壬辰二十三癸巳二十四甲午二十五乙未二十六丙申二十七丁酉二十八戊戌二十九己亥三十庚子三十一辛丑三十二壬寅三十三癸卯傾王臣元 佛年七十甲辰二乙巳三丙午四丁未五戊申六己酉匡王斑元 佛年七十六庚戌二辛亥三壬子四佛年七十九以匡王四年二月十五日後夜於中天竺拘尸那城力士生地娑羅樹間入涅槃癸丑五甲寅六乙卯定王瑜元 佛入涅槃來四年丙辰二丁巳三戊午四己未五庚申六辛酉七壬戌八癸亥九甲子十乙丑十一丙寅十二丁卯十三戊辰十四己巳十五庚午十六辛未十七壬申十八如來滅後二十餘年長老迦葉住持法藏付囑阿難然後入滅出像法正記癸酉十九甲戌二十乙亥二十一丙子簡王夷元佛入涅槃來二十五年丁丑二戊寅三己卯四庚辰五辛巳六壬午七癸未八甲申九乙酉十丙戌十一丁亥十二戊子十三己丑十四庚寅靈王泄心元佛入涅槃來三十九年辛卯二壬辰三迦葉滅後二十年阿難住持法藏然後付囑末田地方始入滅亦出像法正記癸巳四甲午五乙未六丙申七丁酉八戊戌九己亥十庚子十一辛丑十二壬寅十三癸夘十四甲辰十五乙巳十六丙午十七丁未十八戊申十九己酉二十庚戌二十一十一月庚子孔子生於魯是襄公二十二年辛亥二十二壬子二十三末田地滅後舍那婆修住持法藏亦二十年付優波掘多然後入滅癸丑二十四甲寅二十五乙卯二十六丙辰二十七丁巳景王貴元吳王子季札來朝請觀周樂佛入涅槃來六十六年戊午二己未三庚申四辛酉五晉韓宣子來躬觀書於太史氏壬戌六癸亥七甲子八乙丑九丙寅十孔子問禮於老聃丁夘十一戊辰十二己巳十三庚午十四辛未十五壬申十六舍那婆修滅後優波掘多住持法藏亦二十年付提多迦一名尸羅難陁然後入滅癸酉十七甲戌十八乙亥十九丙子二十丁丑二十一戊寅二十二己卯二十三庚辰二十四辛巳二十五壬午敬王正元佛入涅槃來 九十一年癸未二甲申三乙酉四丙戌五丁亥六戊子七己丑八庚寅九辛卯十壬辰十一優波掘多滅後尸羅難陁住持法藏經一百年此卽第二百年初而提多迦聰明智慧三日得阿羅漢道凡度十二億人得道癸巳十二甲午十三乙未十四丙申十五丁酉十六戊戌十七己亥十八庚子十九辛丑二十壬寅二十一癸卯二十二孔子出衛子 路爲季氏宰甲辰二十三乙巳二十四 孔子適陳丙午二十五丁未二十六阿育王傳云佛滅度後百十六年出東天竺治華氏城統閻浮提爲鐵輪王興隆佛法起立八萬 四千寶塔當此歲也戊申二十七己酉二十八庚戌二十九辛亥三十壬子三十一癸丑三十二甲寅三十三乙卯三十四丙辰三十五孔子自 陳之衛丁巳三十六召孔子還定六經時年六十八是魯哀公十一年戊午三十七己未三十八庚申三十九魯哀公十四年二月 獲麟孔子自此絕筆辛酉四十壬戌四十一孔子卒時年七十三歲魯史春秋經孔子絕筆止於獲麟庚申之歲凡二百四十二年弟子又申後二年至卒時癸亥四十二甲子四十三乙丑元王仁元佛涅槃來一 百三十四年丙寅二丁卯三戊辰四己巳五庚午六辛未七壬申八癸酉貞定王亮元左丘明春秋傳記此年佛入涅槃來一百四十二年甲戌二乙亥三丙子四丁丑五戊寅六己卯七庚辰八辛巳九壬午十癸未十一甲申十二乙酉十三丙戌十四丁亥十五戊子十六己丑十七庚寅十八辛卯十九壬辰二十癸巳二十一甲午二十二乙未二十三丙申二十四丁酉二十五戊戌二十六己亥二十七庚子二十八辛丑孝王隗元佛入涅槃來 一百七十年壬寅二癸卯三甲辰四乙巳五丙午六丁未七戊申八己酉九庚戌十辛亥十一壬子十二癸丑十三甲寅十四乙卯十五丙辰威烈王午元佛入涅槃來一百八十五年丁巳二戊午三己未四庚申五辛酉六壬戌七癸亥八甲子九乙丑十丙寅十一丁卯十二戊辰十三己巳十四庚午十五辛未十六壬申十七癸酉十八甲戌十九乙亥二十丙子二十一丁丑二十二 九鼎震戊寅二十三己卯二十四一本午有 三十一年庚辰元安王驕元佛入涅槃來 二百一十年辛巳二壬午三癸未四甲申五乙酉六丙戌七丁亥八戊子九己丑十庚寅十一辛卯十二壬辰十三癸巳十四甲午十五乙未十六丙申十七丁酉十八戊戌十九己亥二十庚子二十一辛丑二十二壬寅二十三癸卯二十四甲辰二十五乙巳二十六丙午夷烈王喜元佛入涅槃來二 百三十六年丁未二戊申三己酉四庚戌五辛亥六壬子七癸丑顯聖王扁元佛入涅槃來二百四十三年甲寅二乙卯三丙辰四丁巳五戊午六己未七庚申八辛酉九壬戌十癸亥十一甲子十二乙丑十三丙寅十四丁卯十五戊辰十六己巳十七庚午十八辛未十九壬申二十癸酉二十一甲戌二十二乙亥二十三丙子二十四丁丑二十五戊寅二十六己卯二十七庚辰二十八辛巳二十九壬午三十癸未三十一甲申三十二乙酉三十三丙戌三十四丁亥三十五戊子三十六己丑三十七庚寅三十八辛卯三十九壬辰四十癸巳四十一甲午四十二乙未四十三丙申四十四丁酉四十五戊戌四十六己亥四十七庚子四十八辛丑順靜王定元佛入涅槃來二百九十一年壬寅二癸卯三甲辰四乙巳五丙午六丁未𧹞王誕元佛入涅槃來二百九十七年戊申二己酉三庚戌四辛亥五壬子六癸丑七 秦昭襄王立甲寅八乙卯九丙辰十丁巳十一戊午十二己未十三庚申十四辛酉十五壬戌十六癸亥十七甲子十八乙丑十九薩婆多記云馬鳴菩薩佛滅後三百餘年生東天竺婆羅門種出家破諸外道造大莊嚴論數百偈盛弘佛教有別傳載計當此時丙寅二十丁卯二十一戊辰二十二己巳二十三庚午二十四辛未二十五壬申二十六癸酉二十七甲戌二十八乙亥二十九丙子三十丁丑三十一戊寅三十二己卯三十三庚辰三十四辛巳三十五壬午三十六癸未三十七甲申三十八乙酉三十九丙戌四十丁亥四十一戊子四十二己丑四十三庚寅四十四辛卯四十五壬辰四十六癸巳四十七甲午四十八乙未四十九丙申五十丁酉五十一戊戌五十二己亥五十三庚子五十四辛丑五十五壬寅五十六癸夘五十七甲辰五十八乙巳五十九秦丙午昭襄王勒元廢周𧹞王爲庶人佛入涅槃來三百五十六年丁未二戊申三己酉四庚戌五辛亥孝文王柱元佛入涅槃來至此 三百六十一年壬子莊襄王子楚元孝文子治三年佛入涅槃來三百六十二年癸丑二甲寅三乙卯始皇帝政元莊襄子治三十七年呂不韋爲相佛入涅槃來至此三百六十五年丙辰二丁巳三戊午四己未五庚申六辛酉七壬戌八封嫪毒爲長信侯癸亥九辛冠誅嫪毒 徙其家於蜀甲子十呂不韋免相徙太后 於南宮后任李斯乙丑十一徙呂不韋於河南丙寅十二丁卯十三戊辰十四己巳十五庚午十六辛未十七是歲滅韓以其地爲穎川郡壬申十八癸酉十九甲戌二十乙亥二十一丙子二十二其歲滅魏以其地置梁郡丁丑二十三戊寅二十四是歲滅楚定江東置會稽郡己卯二十五是歲滅燕又滅趙庚辰二十六是歲滅齊六國幷呑爲一國乃自立爲皇帝改正朔以建亥爲歲首辛巳二十七名河爲德水名民曰黔首分天下爲三十六郡同一文軌壬午二十八東巡登泰山封禪刻石紀功遭大風雨遣徐氏入海求三神山使千人沒泗水求周鼎不得癸未二十九甲申三十 改臘曰嘉平嘗夜微行至蘭池遇見盜甚窘迫武子擊殺乃獲免乙酉三十一丙戌三十二使蒙恬將二十萬人北擊胡取河南地築長城丁亥三十三傍河以來至陰山爲四十四縣以河爲塞起臨洮訖遼水戊子三十四謫治獄吏不直助以築長城李斯奏焚諸典籍坑儒士己丑三十五庚寅三十六辛卯三十七壬辰二世皇帝胡亥元始皇帝子佛入涅槃來至此四百二年治三年癸巳二甲午三始皇帝孫子嬰立四十六日爲漢滅佛入涅槃至此四百四年開皇三寶錄卷第一帝紀上周秦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 1)즉 주(周)나라를 말한다. 주나라 왕의 성씨가 희(姬)이기 때문에 이를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