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2_0451_a_01L대당서역기 제10권
032_0451_a_01L大唐西域記卷第十 十七國


현장 한역
변기 찬록
이미령 번역
032_0451_a_02L三藏法師玄奘奉 詔譯
大摠持寺 沙門 辯機撰


10. 중인도ㆍ동인도ㆍ남인도17개국
032_0451_a_04L伊爛拏鉢伐多國
瞻波國
羯朱嗢祇羅國
奔那伐彈那國
迦摩縷波國
三摩呾咤國
耽摩栗底國
羯羅拏蘇伐剌那國
烏荼國
恭御陁國
羯𩜁力甑反伽國
憍薩羅國
案達羅國
馱那羯磔迦國
珠利耶國
達羅毘荼國
秣羅矩咤國

1) 이란나발벌다국(伊爛拏鉢伐多國)
이란나발벌다국1)의 둘레는 3천여 리에 달하며 나라의 수도2)는 북쪽으로 긍가하에 임하고 둘레는 2십여 리이다. 곡식이 매우 풍성하게 잘 자라며 꽃과 과일이 넘쳐난다. 기후는 온화하고 화창하며 풍속은 질박하다. 가람은 10여 곳 있으며 승도들은 4천여 명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소승 정량부법3)을 익히고 있다. 천사는 20여 곳 있으며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근래에 이웃나라 왕4)이 이 나라의 군주를 폐하고 수도를 승가 대중들에게 주었다. 이 성 안에 두 곳의 가람을 세웠는데 각각 천 명이 조금 못 되는 승려들이 살고 있고 이들은 모두 소승교인 설일체유부를 익히고 있다.
032_0451_a_12L伊爛拏鉢伐多國周三千餘里國大都城北臨殑伽河周二十餘里稼穡滋植花菓具繁氣序和暢風俗淳質伽藍十餘所僧徒四千餘人多學小乘正量部法天祠二十餘所異道雜近有鄰王廢其國君以大都城持施衆僧於此城中建二伽藍各減千竝學小乘敎說一切有部
032_0451_b_02L수도 옆으로 긍가하가 흐르고 있으며 이란나산(伊爛拏山)5)이 있는데 이 산에서는 연기와 노을을 토해내어 해와 달을 가리고 있다.6) 예나 지금이나 선인들과 성현들의 발자취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은거하고 있다. 지금은 천사(天祠)가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유칙(遺則)을 준수하고 있다. 옛날 여래께서 이곳에 머무시면서 여러 하늘과 인간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널리 설하셨다고 한다. 큰 성의 남쪽에 솔도파가 있는데 여래께서 이곳에서 석 달 동안 법을 설하셨다. 그 옆에는 과거 세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시던 유적지가 있다.
032_0451_a_20L大城側臨殑伽河有伊爛拏山含吐煙霞蔽虧日月古今仙聖繼踵棲神今有天祠尚遵遺則在昔如來亦嘗居此爲諸天人廣說妙法大城南有窣堵波如來於此三月說法其傍則有過去三佛坐及經行遺迹之所
세 부처님께서 산책하시던 곳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이곳은 실루다빈설지구지(室縷多頻設底拘胝)7)당나라 말로는 문이백억(聞二百億)이라고 하며 구역에서는 억이(億耳)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라는 필추가 태어난 곳이다. 옛날 이 성에 막대한 부를 쌓은 권세 있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말년에 뒤를 이을 자식을 얻었는데 그 소식을 알리러 온 자에게 선뜻 2백억의 금전을 하사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아이는 ‘문이백억(聞二百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032_0451_b_04L三佛經行西不遠有窣堵波是室縷多頻設底拘胝唐言聞二百億舊譯曰億耳謬也苾芻生昔此城有長者豪貴巨富晩有繼時有報者輒賜金錢二百億因名其子聞二百億
문이백억은 자라나면서 땅을 밟은 적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발바닥에는 털이 자랐는데, 그 길이가 1척을 넘었고 광택이 나면서 가늘고 부드러웠으며 황금색을 띠었다. 부모들은 이 아이를 몹시 사랑하여 온갖 장난감을 제공해주었다. 그들이 사는 집에서 설산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묵는 정자가 서로 이어져 모퉁이마다 잇닿아 있었고 하인들이 빈번히 다니면서 필요한 온갖 좋은 약들을 서로 전하였다. 그런데 서로 주고받으면서도 일찍이 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을 정도로 그 집안의 부유함은 극도에 달했다.
032_0451_b_09L洎乎成立未曾履地故其足跖毛長尺餘光潤細軟色若黃金珍愛此兒備諸玩好自其居家以至雪山亭傳連隅僮僕交路凡須妙藥遞相告語轉而以授曾不踰時豪富如此
세존께서 그의 선근이 발휘될 때임을 아시고 몰특가라자에게 명하셔서 그곳으로 가셔서 교화하게 하셨다. 그런데 몰특가라자가 그 집 문 아래에 도착하였지만 자유롭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편 부자의 집안은 일천(日天)8)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언제나 이른 아침이면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이때 존자가 신통력으로 태양으로부터 내려와 그들 앞에 우뚝 섰다.
032_0451_b_14L世尊知其善根將發也命沒特伽羅子而往化焉旣至門下由自通長者家祠日天每晨朝時東向以拜是時尊者以神通力從日輪中降立於前
그러자 장자의 아들은 그가 일천(日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향기로운 밥으로 공양 올린 뒤에 돌아갔다. 그 밥의 향기가 왕사성에 두루 퍼지자 빈비사라왕이 그 기이한 향기에 놀라서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다. 왕은 죽림정사의 몰특가라자가 장자의 집에서 가지고 온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장자의 아들에게 이런 기이한 기적이 있음을 알고서 사신을 보내어 불러 들였다.
032_0451_b_18L長者子疑日天也因施香飯而歸其飯香氣遍王舍城時頻毘娑羅王駭其異馥命使歷問乃竹林精舍沒特伽羅子自長者家持來因知長者子有此奇異乃使召焉
032_0451_c_02L장자는 왕의 명을 받고 어떻게 걸어가야 할 지 궁리하였다. 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서 가자니 풍랑의 위험이 있고, 수레에 올라 코끼리를 부리고 가자니 넘어져 수레가 뒤집힐 우려가 있었다. 이에 자기가 사는 집으로부터 왕사성에 이르기까지 배가 다닐 수 있게 도랑을 판 뒤 그 도랑에 겨자씨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위에 배를 띄우고 편안하게 올라탄 뒤 긴 끈을 잡아당겨서 왕사성에 도착하였다. 장자의 아들은 왕사성에 도착한 뒤에 먼저 세존께 절을 올렸다.
032_0451_b_22L者承命思何安步泛舟鼓棹有風波之危乘車馭象懼蹶躓之患於是自其居家至王舍城鑿渠通漕流滿芥御舟安止長緪以引至王舍城禮世尊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빈비사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그대를 불러오도록 한 것은 그대의 발바닥에 난 털을 보려고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 왕이 그대의 발을 볼 때 결가부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왕을 향하여 다리를 펼친다면 국법에 의거해 죽어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032_0451_c_04L世尊告曰頻毘娑羅王命使召汝無過欲見足下毛耳王欲觀者宜結跏坐伸腳向王國法當死
이렇게 장자의 아들이 가르침을 받고서 물러가 궁정으로 들어가서 왕을 배알하였다. 왕이 털을 보고 싶어하자 이내 가부좌하였다. 왕은 그가 예의가 바름을 기특하게 여겨 유달리 총애하였다. 장자의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에 다시 들렀다. 여래께서 이때 그에게 법을 설하시고 가르치고 달래시자 그는 깨달음을 얻어 결국 출가하였다. 출가하고 난 뒤 장자의 아들은 부지런히 수행하고 익혀서 과증(果證)을 얻고자 하여 쉼 없이 다니느라 발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032_0451_c_06L長者子受誨而往引入廷謁王欲視毛跏趺坐王善其有禮特深珍愛亦旣得歸還至佛所如來是時說法誨喩聞而感悟遂卽出家於是精勤修習思求果證經行不捨足遂流血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재가 시절에 북이나 거문고를 연주할 줄 알았더냐?”
032_0451_c_11L世尊告曰汝善男子在家之時知鼓琴耶
그가 답하였다.
“연주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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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다면 이것을 비유로 들겠다. 현을 지나치게 조이면 소리는 가락이 맞지 않을 것이고, 현을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곧 아름다운 화음을 내지 못할 것이다. 조이지도 느슨하게 하지도 않아야 고운 소리가 나는 것처럼 수행도 이와 같다. 조급하게 하면 곧 심신이 지치고, 게을러지게 되면 곧 마음이 느슨해지고 뜻이 풀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이것을 받들어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오래지 않아서 그는 과증(果證)을 얻었다.
032_0451_c_13L若然者以此爲喩絃急則聲不合韻絃緩則調不和雅非急非緩聲乃和夫修行者亦然急則身疲心緩則情舒志逸承佛指敎奉以周如是不夂便獲果證
이 나라의 서쪽 경계, 긍가하의 남쪽으로 가면 작은 외딴 산에 이르게 된다.9) 겹겹이 솟아있는 산봉우리는 몹시 가파르고 험하다. 옛날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석 달 동안 안거하시면서 박구라약차(薄句羅藥叉)에게 항복받으셨다. 산의 동남쪽 바위 아래에는 큰 돌이 있는데 그 위에는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흔적이 남아있다. 돌은 1촌 남짓 들어가 있고 길이는 5척 2촌, 너비는 2척 1촌인데, 그 위에 솔도파를 세웠다.
032_0451_c_17L國西界殑伽河南至小孤山重巘嶜昔佛於此三月安居降薄句羅藥山東南巖下大石上有佛坐迹石寸餘長五尺二寸廣二尺一寸上則建窣堵波焉
032_0452_a_02L이어서 남쪽의 돌 위에는 부처님께서 군치가(捃稚迦)10)조병(澡甁)이라고 한다. 구역에서는 군지(軍持)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를 놓아두신 자국이 남아있다. 깊이는 1촌 남짓인데 여덟 개의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흔적이 남아있는 바위로부터 동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박구라약차의 발자국이 있다. 길이는 1척 5~6촌, 너비는 7~8촌, 깊이는 2촌에서 조금 모자란다. 약차의 발자국 뒤에는 돌로 만들어진 부처님의 좌상이 있다. 높이는 6~7척이다. 이어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부처님께서 거니시던 곳이 있다. 그 산의 정상에는 약차의 본래 기거하던 방이 있다.
032_0451_c_22L次南石上則有佛置捃稚迦卽澡甁也舊曰軍持訛略也深寸餘八出花文佛坐迹東南不遠有薄句羅藥叉腳迹長尺五六寸廣七八寸深減二寸藥叉迹後有石佛坐像六七尺次西不遠有佛經行之處山頂上有藥叉故室
이어서 북쪽에는 부처님의 발자국이 있는데 길이는 1척 8촌, 너비는 6촌 남짓하고, 깊이는 반 촌(半寸)은 됨직하다. 그 발자국 위에 솔도파를 세웠는데 여래께서 옛날 이곳에서 약차에게 항복받으시면서 다시는 사람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셨다. 약차는 부처님의 계를 공손히 받들었으며 그리하여 뒤에는 하늘에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의 서쪽에는 온천이 6~7곳 있는데 그 물이 매우 뜨겁다. 나라의 남쪽 경계인 큰 산림 속에는 수많은 야생 코끼리들이 살고 있는데, 그 몸집이 매우 크다. 이곳에서 긍가하의 남안(南岸)을 따라서 동쪽으로 3백여 리를 가다 보면 첨파국(瞻波國)중인도의 경계에 이른다.
032_0452_a_05L次北有佛足迹長尺有八寸廣餘六寸深可半寸迹上有窣堵波如來昔日降伏藥叉令不殺人食肉敬受佛戒後得生天此西有溫泉六七所其水極熱國南界大山林中多諸野象其形偉大此順殑伽河南岸東行三百餘里瞻波國中印度境

2) 첨파국(瞻波國)
첨파국11)의 둘레는 4천여 리에 달하고 나라의 큰 도성12)은 북쪽으로는 긍가하를 등지고 있는데 둘레는 40여 리에 달한다. 토지는 낮고 습하며 농사는 번성하다. 기후는 온화하고 더우며 풍속은 순박하다. 가람은 수십 곳 있지만 많은 곳이 허물어졌다. 승도들은 2백여 명 남짓한데 소승의 가르침을 익히고 있다. 천사(天祠)는 20여 곳 있으며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도성은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으며 그 높이가 몇 길[丈]이나 된다. 그 터는 높고 적을 막기 위한 망루[却敵] 등도 높고 험하다.
032_0452_a_12L瞻波國周四千餘里國大都城北背殑伽河周四十餘里土地墊濕稼穡滋盛氣序溫暑風俗淳質伽藍數十多有傾毀僧徒二百餘人習小乘天祠二十餘所異道雜居都城壘其高數丈基址崇峻卻敵高險
인류의 조상이 들판에 굴을 파서 살던 까마득한 옛날 그들은 아직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훗날 하늘의 여인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긍가하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멱을 감고 놀다가 영감(靈感)이 있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네 명의 자식을 낳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섬부주를 나누어 주어서 각자 경계를 긋고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도읍을 세우고 구역의 표시를 정하였는데, 이 성이 바로 그 중 한 아들의 수도이며 섬부주에 있는 여러 성(城)들의 기원이다.
032_0452_a_18L昔劫初人物伊始野居穴處未知宮後有天女降迹人中遊殑伽河流自媚感靈有娠生四子焉分贍部各擅區宇建都築邑封畺畫界則一子之國都贍部洲諸城之始也
032_0452_b_02L성의 동쪽으로 140~150리를 가다 보면 긍가하의 남쪽에 강물이 외딴 작은 섬을 감싸고 도는데 섬의 벼랑은 몹시 험하다. 위에는 천사가 있는데 신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벼랑을 뚫어 방을 만들었고 강물을 끌어서 못[沼]을 만들었는데 꽃나무가 만발하고 기이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13) 거대한 바위와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있으며 어질고 지혜로운 이들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돌아갈 생각을 잊어버리게 된다.
032_0452_a_23L城東百四五十里殑伽河南水環孤崖巘崇峻上有天祠神多靈感崖爲室引流成沼花林奇樹巨石危仁智所居觀者忘返
나라의 남쪽 경계에 있는 산림 속에는 수천 마리의 야생 코끼리들과 맹수들이 무리지어 노닐고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4백여 리를 가다 보면 갈주올기라국(羯朱嗢祇羅國)그들의 습속으로는 갈승게라국(羯蠅揭羅國)이라고 하는데 중인도의 경계이다에 도착하게 된다.
032_0452_b_04L國南境山林野象猛獸群遊千數自此東行四百餘里至羯朱嗢祇羅國彼俗或謂羯蠅揭羅國印度境

3) 갈주올기라국(羯朱嗢祇羅國)
갈주올기라국14)의 둘레는 2천여 리에 달하며 토지는 습하고 농사는 풍성하다. 기후는 온화하고 풍속도 순박하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숭상하고 학예를 귀하게 여긴다. 가람은 6~7곳 있고 승도는 3백여 명 있으며, 천사(天祠)는 열 곳 있고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최근 수백 년 동안 왕족은 그 후사가 끊어져서 인근 국가에게 복속되어 왔다.15) 따라서 성곽은 허물어져 있고 많은 이들이 촌락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계일왕이 동인도에 유람왔을 때16)에는 이곳에 궁을 지어서 온갖 국가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왕이 도착하면 곧 띠를 엮어서 집을 만들고 왕이 떠나가면 이내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032_0452_b_07L羯朱嗢祇羅國周二千餘里土地泉稼穡豐盛氣序溫風俗順敦尚高崇貴學藝伽藍六七所僧徒三百餘人天祠十所異道雜居自數百年王族絕嗣役屬鄰國所以城郭丘墟多居村邑故戒日王遊東印度於此築宮理諸國務至則葺茅爲宇去則縱火焚燒
나라의 남쪽 경계에는 야생 코끼리들이 많다. 북쪽 경계에는 긍가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주 크고 높은 누각이 있는데 벽돌과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이다. 그 누각의 터는 넓고 높으며 조각 솜씨는 매우 특이하다. 누각의 사방에는 온갖 성상(聖像)이 주조되어 있는데 부처님과 천신(天神)의 형상들이 구별되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긍가하를 건너 6백여 리를 가다 보면 분나벌탄나국(奔那伐彈那國)중인도의 경계에 이른다.
032_0452_b_15L國南境多野象北境去殑伽河不遠有大高臺積壘甎石而以建焉基址廣峙刻雕奇製周其方面鏤衆聖像佛及天形區別而作自此東渡殑伽河行六百餘里至奔那伐彈那國中印度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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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나벌탄나국(奔那伐彈那國)
분나벌탄나국17)의 둘레는 4천여 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18)의 둘레는 30여 리에 달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연못가에 있는 객사[館]와 꽃나무 숲들이 서로 교차되어 있으며 토지는 낮고 습기가 많아서 농사가 잘 된다. 반나사과(般橠娑菓)가 많이 나지만 또한 귀하다. 이 과일의 크기는 동과(冬瓜)19)와 같으며 익으면 황적색이 된다. 그 속을 갈라보면 수십 개의 작은 과일이 들어있는데 크기는 마치 학의 알과도 같다. 또 이것을 깨면 즙이 나오는데 빛깔은 황적색이고 달콤하다. 나뭇가지에 달려 있을 때에는 마치 온갖 과일이 한꺼번에 열매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무 뿌리에 있을 때에는 마치 복령(伏笭)20)이 땅에서 자라고 있는 것과 같다.
032_0452_b_20L奔那伐彈那國周四千餘里國大都城周三十餘里居人殷盛池館花林往往相閒土地卑濕稼穡滋茂般核娑菓旣多且貴其菓大如冬瓜熟則黃赤剖之中有數十小菓大如鶴卵又更破之其汁黃赤其味甘美或在樹枝如衆菓之結實或在樹根若伏苓之在土
기후는 온화하고 맑으며 풍속은 학문을 즐긴다. 가람은 20여 곳이 있고 승도는 3천여 명 있는데 대소승을 함께 닦으며 익히고 있다. 천사는 백 곳 있고 이교도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나형니건(裸形尼乾)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무리를 이루고 있다.
032_0452_c_05L氣序調暢風俗好學伽藍二十餘所僧徒三千餘人大小二乘兼功綜習天祠百所異道雜居露形尼乾寔繁其黨
성의 서쪽으로 20여 리 떨어진 곳에 발시파(跋始婆)승가람21)이 있다. 뜰과 건물은 널찍하고 누각과 대(臺)는 매우 높다. 승도는 7백여 명 남짓 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대승교법을 익히고 있다. 동인도 지역의 석학과 이름 높은 승려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그 옆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여래께서 석 달 동안 이곳에 머무시며 여러 하늘과 인간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신 곳이다. 이따금 재일이 되면 밝은 빛이 비친다. 그 옆에는 곧 네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시던 유적지가 있다.
032_0452_c_08L城西二十餘里有跋始婆僧伽藍宇顯敞臺閣崇高僧徒七百餘人學大乘敎法東印度境碩學名僧多在於此其側不遠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昔者如來三月在此爲諸人說法之處或至齋日時燭光明其側則有四佛坐及經行遺迹之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다시 정사가 있는데 그 속에는 관자재보살상이 있다. 이 보살상은 신령스런 통찰력이 미세한 부분까지도 환히 꿰뚫고 있으며 영묘한 감응이 일어나서 멀고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단식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한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9백여 리를 가다 보면 큰 강을 건너서 가마루파국(伽摩縷波國)동인도의 경계에 도착하게 된다.
032_0452_c_15L去此不遠復有精舍中作觀自在菩薩像神鑑無隱靈應有徵遠近之人絕粒祈請自此東行九百餘里渡大至迦摩縷波國東印度境

5) 가마루파국(伽摩縷波國)
가마루파국22)의 둘레는 만여 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23)의 둘레는 30여리에 달한다. 토지는 낮고 습하며 농사는 시기에 맞추어 파종하며, 반홀사과(般核娑果)ㆍ나라계라과(那羅雞羅菓) 등의 나무들이 많기는 하지만 매우 귀하게 여기고 있다. 하천과 호수와 못이 서로 번갈아 성읍을 에워싸며 흐르고 있다. 기후는 온화하고 화창하며 풍속은 질박하다.
032_0452_c_19L迦摩縷波國周萬餘里國大都城周三十餘里土地泉濕稼穡時播般核娑菓那羅雞羅菓其樹雖多彌復珍貴河流湖陂交帶城邑氣序和暢風俗淳質
032_0453_a_02L사람들의 모습은 왜소하고, 용모는 거무스름하고 누렇다. 그들의 말은 중인도와는 조금 다르며,24) 성품은 매우 포악하지만 학문에 매우 열성적이다. 하늘의 신을 모시고 있으며 부처님의 법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이래 지금까지 일찍이 가람을 세우거나 승려를 불러 모은 일이 없다. 그러므로 불법에 대해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다만 남몰래 속으로 불법을 생각할 뿐이다. 천사(天祠)는 수백 곳이 있으며 이교도들도 수만 명이 살고 있다.
032_0452_c_24L人形卑小容貌釐黑語言少異中印度性甚獷暴志存强學事天神不信佛法故自佛興以迄于尚未建立伽藍招集僧侶其有淨信之徒但竊念而已天祠數百異道數萬
지금의 왕은 본래 나라연천(那羅延天)의 자손으로서 바라문 종족이다. 파색갈라벌마(婆塞羯羅伐摩)25)당나라 말로는 일주(日冑)라고 한다라고 통칭하며, 구마라(拘摩羅)당나라 말로는 동자(童子)라고 한다라고 부른다. 이 땅에 대대로 군림한 이래 지금까지 천세(千世)를 지내왔다. 군왕은 학문을 좋아하였고 백성들도 교화를 받아서 멀리 떨어진 곳에 덕이 높은 학자가 있으면 그의 뜻을 흠모하여 유학하기도 한다. 비록 부처님의 법을 돈독하게 믿지는 않지만 학업이 높은 사문들을 공경하고 있다.
032_0453_a_06L今王本那羅延天之祚胤婆羅門之種也字婆塞羯羅伐摩唐言日胄號拘摩唐言童子自據畺土弈葉君臨逮於今歷千世矣君上好學衆庶從化方高才慕義客遊雖不淳信佛法敬高學沙門
본래 지나국의 사문이 마게타국 나란타승가람에 있었는데 멀리서 부처님의 깊은 법을 공부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간절히 자신의 나라로 와 줄 것을 몇 번이나 청하였지만 지나국의 사문은 그들의 초대를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032_0453_a_12L聞有至那國沙門在摩揭陁那爛陁僧伽藍自遠方來佛深法殷勤往復者再三未從來命
그때 시라발타라(尸羅跋陀羅) 논사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정법을 펼쳐야만 합니다. 그러니 그대는 가십시오. 먼 곳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꺼려서는 안 됩니다. 구마라왕은 대대로 외도들을 섬겨 왔는데 지금 이렇게 사문을 청하니 이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잘못을 고쳐 복과 이익이 널리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지난날 광대한 마음을 일으켜 홀로 이역을 노닐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법을 구하며 널리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는데 어찌 고국의 사람들만을 제도하겠습니까? 득실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영욕에 구애받아서는 안 됩니다. 널리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펼치고 어리석은 뭇 중생들을 이끌고 그들의 무지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중생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몸은 나중의 일로 여겨야 합니다. 명예를 생각하지 말고 법을 펼치십시오.”
032_0453_a_14L時尸羅跋陁羅論師曰欲報佛恩弘正法子其行矣勿憚遠涉拘摩羅王世宗外道今請沙門斯善事也茲改轍福利弘遠子昔起廣大心弘誓願孤遊異域遺身求法普濟含靈豈徒鄕國宜忘得喪勿拘榮辱宣揚聖敎開導群迷先物後身忘名弘法
이렇게 권하자 그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사신과 함께 가서 왕을 만났다. 구마라왕이 말하였다.
“내가 비록 재능이 없으나 언제나 학업이 높은 분들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스님의 훌륭한 명성을 듣고서 이렇게 감히 청하여 모시게 되었습니다.”
032_0453_a_21L於是辭不獲免遂與使偕行而會見拘摩羅王曰雖則不才常慕高學聞名雅尚敢事延請
그러자 그가 답하였다.
“능력도 모자라고 지혜도 얕은 저를 외람되게 이렇게 불러주시어 큰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032_0453_a_24L寡能褊智蒙流聽
032_0453_b_02L구마라왕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법을 사모하고 학업을 사랑하며 자신을 뜬구름처럼 여기면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넘어 이역만리 먼 곳까지 오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 나라의 국왕의 덕화로 말미암은 바이며 학업을 숭상하는 귀국의 기풍 때문입니다. 지금 인도 여러 나라에서는 많은 이들이 마하지나국(摩訶支那國)의 진왕파진악(秦王破陣樂)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음악을 들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만 대덕의 고국에서는 사정이 어떻습니까?”
032_0453_b_02L拘摩羅王曰善哉慕法好學顧身若浮踰越重險遠遊異域斯則王化所由國風尚學今印度諸國多有歌頌摩訶至那國『秦王破陣樂』者聞之夂矣豈大德之鄕國耶
그가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 군왕의 덕을 찬미한 것입니다.”
032_0453_b_06L歌者美我君之德也
구마라왕이 말하였다.
“대덕께서 바로 그 나라 분이시라는 것은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언제나 귀국의 교화와 풍속을 사모하여 동쪽을 바라본 지 오래였습니다만 산천의 길이 험하여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032_0453_b_08L拘摩羅王曰不意大德是此國人常慕風化東望已久山川道無由自致
그가 답하였다.
“우리 대군의 성덕(聖德)이 먼 곳까지 미치고 인화(仁化)가 아득한 곳까지 드리우니 풍속이 다른 이역만리의 사람들조차 천자(天子)의 궁궐에 배알하며 신하임을 칭하는 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032_0453_b_10L大君聖德遠洽仁化遐被殊俗異域拜闕稱臣者衆矣
구마라왕이 말하였다.
“귀국 국왕의 성덕과 교화가 그와 같다면 나는 조공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계일왕이 갈주올기라국에 있는데 장차 큰 모임을 베풀어 복덕과 지혜를 심고자 하고 있습니다. 5인도의 사문과 바라문으로서 학업을 닦은 자라면 누구나 빠짐없이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 사신을 보내어 청하고 있으니 부디 저와 함께 가십시다.”
이에 마침내 가게 되었다.26)
032_0453_b_12L拘摩羅王曰覆載若斯心冀朝貢今戒日王在羯朱嗢祇羅國將設大施崇樹福慧五印度沙門婆羅門有學業者莫不召集遣使來請願與同行於是遂往焉
이 나라의 동쪽으로 산과 언덕이 서로 잇달아 있어 나라의 큰 도시가 없으며 경계는 중국의 서남부 지역 오랑캐 땅과 접해 있는 까닭27)에 그 나라 사람들은 ‘만료(蠻獠)’28)와 비슷하다. 그 지방에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두 달 정도 가야 촉(蜀)의 서남쪽 경계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산천이 매우 험하고 나쁜 기운이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독사와 독초의 해가 극심하며 나라의 동남쪽에는 야생 코끼리들이 떼를 지어 난폭한 짓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에는 코끼리 부대가 유달리 막강하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1,200~1,300리 정도 가면 삼마달타국(三摩呾吒國)동인도의 경계에 도착한다.
032_0453_b_16L國東山阜連接無大國都境接西南故其人類蠻獠矣詳問土俗可兩月行入蜀西南之境然山川險阻氣氛沴毒蛇毒草爲害滋甚國之東南野象群暴故此國中象軍特盛此南行千二三百里至三摩呾咤國東印度境
032_0453_c_02L
6) 삼마달타국(三摩呾吒國)
삼마달타국29)의 둘레는 3천여 리에 달하며 큰 바다에 가깝게 접해 있으며 땅은 낮고 습하다. 나라의 큰 도성30)의 둘레는 20여 리에 달하는데 농사가 매우 번성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다. 기후는 온화하고 풍속은 순박하다. 사람들의 성품은 강건하고 거칠며 외모는 볼품없이 생겼고 피부색은 검다. 학문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닦고 있으며,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함께 믿는다. 가람은 30여 곳 있으며 승도들의 수는 2천여 명에 달하는데, 그들은 모두 상좌부의 학문을 준수하여 익히고 있다. 천사는 백여 곳 있고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그 중에서 나형니건들의 무리가 가장 번성하다.
032_0453_b_23L三摩呾咤國周三千餘里濱近大海地遂卑濕國大都城周二十餘里穡滋植花菓繁茂氣序和風俗順性剛烈形卑色黑好學勤勵邪正兼伽藍三十餘所僧徒二千餘人皆遵習上座部學天祠百所異道雜露形尼乾其徒甚盛
성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무우왕이 세운 것31)이다. 옛날 여래께서 이곳에서 여러 하늘과 인간들을 위하여 7일 동안 깊고 미묘한 법을 설하셨다고 한다.32) 곁에는 네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시던 유적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람이 있는데 그 안에는 청옥(靑玉)으로 만든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 높이는 8척이며 얼굴이 원만하며 신령스러운 감응이 이따금 나타난다. 이곳에서 동북쪽은 바닷가인데 그곳의 산골에는 실리차달라국(室利差呾羅國)33)이 있다.
032_0453_c_07L去城不遠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昔者如來爲諸天人於此七日說深妙法傍有四佛坐及經行遺迹之所去此不遠伽藍中有靑玉佛像其高八尺相好圓備靈應時效從此東北大海濱山谷中有室利差呾羅國
이어서 동남쪽 바닷가에는 가마랑가국(迦摩浪迦國)34)이 있다. 이어서 동쪽에는 타라발저국(墮羅鉢底國)35)이 있고, 이어서 동쪽에는 이상나보라국(伊賞那補羅國)36)이 있고 이어서 동쪽에는 마하첨파국(摩訶瞻波國)37)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당나라에서 말하는 임읍(林邑)이다. 이어서 서남쪽으로 염마나주국(閻摩那洲國)38)이 있는데 이 여섯 나라는 산천이 서로 길을 막고 있어서 그 국경에 들어갈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나라들의 풍속이나 경계에 관해서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 수 있다. 삼마달타국으로부터 서남쪽으로 9백여 리를 가다 보면 탐마율지국(耽摩栗底國)동인도의 경계에 이른다.
032_0453_c_13L次東南大海隅有迦摩浪迦國次東有墮羅鉢底次東有伊賞那補羅國次東有摩訶瞻波國卽此云林邑是也次西南有閻摩那洲國凡此六國山川道阻不入其境然風俗壤界聲聞可知三摩呾咤國西行九百餘里至耽摩栗底國東印度境
032_0454_a_02L
7) 탐마율지국(耽摩栗底國)
탐마율지국39)의 둘레는 1,400~1,500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10여 리이다. 바닷가에 가깝게 닿아있기 때문에 토지는 낮고 습하다. 농사는 때에 맞추어 파종하고 꽃과 과일은 무성하다. 기후는 덥고 풍속은 거칠고 난폭하며 사람들의 성품은 강하고 용맹스럽다.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함께 믿고 있다. 가람은 10여 곳 있고 승가 대중은 천여 명 살고 있다. 천사는 50여 곳 있는데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032_0453_c_20L耽摩栗底國周千四五百里國大都城周十餘里濱近海垂土地卑濕穡時播花菓茂盛氣序溫暑風俗躁人性剛勇邪正兼信伽藍十餘所僧衆千餘人天祠五十餘所異道雜
나라가 바닷가에 임해 있으므로 육지와 바닷길이 서로 교차하고 있고 진기한 보배들이 아주 많이 몰려있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사람들은 대체로 매우 부유하다. 성 옆에는 솔도파가 있는데 이것은 무우왕이 세운 것40)이다. 그 곁에는 곧 과거 네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시던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7백여 리를 가다 보면 갈라나소벌랄나국(羯羅拏蘇伐剌那國)동인도의 경계에 이른다.
032_0454_a_03L國濱海隅水陸交會奇珍異寶聚此國故其國人大抵殷富城側窣堵波無憂王所建也其傍則有過去四佛坐及經行遺迹之所自此西北行七百餘里至羯羅拏蘇伐剌那國東印度境

8) 갈라나소벌랄나국(羯羅拏蘇伐剌那國)
갈라나소벌랄나국41)의 둘레는 4천 400~4천 500여 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20여 리에 달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으며 집들도 모두 부유하다. 토지는 낮고 습하며 농사는 때맞추어 파종한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진귀한 과일들이 풍성하다. 기후는 순조롭고 맑으며 풍속은 온화하다. 학예를 즐기고 숭상하며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함께 믿고 있다. 가람은 10여 곳 있고 승도들은 2천여 명 살고 있는데, 그들은 소승의 정량부법을 익히고 있다. 천사는 50여 곳 있으며 이교도들이 매우 많이 살고 있다. 따로 가람이 세 곳 있는데 유락(乳酪)을 먹지 않으며 제바달다의 가르침을 준수하고 있다.
032_0454_a_08L羯羅拏蘇伐剌那國周四千四五百國大都城周二十餘里居人殷盛家室富饒土地下濕稼穡時播衆花滋茂珍菓繁植氣序調暢風俗淳和好尚學藝邪正兼信伽藍十餘所徒二千餘人習學小乘正量部法祠五十餘所異道寔多別有三伽藍不食乳酪遵提婆達多遺訓也
큰 성 옆에 낙다미지(絡多未知)당나라 말로는 적니(赤泥)라고 한다승가람42)이 있다. 뜨락과 집이 매우 넓고 누각이 높이 솟아있다. 이 나라에서 덕이 높고 학문에 통달해 있으며 총명하고 기민한 사람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자는 모두 다 그 안에 모여 살고 있다. 그리하여 서로 일깨우면서 도덕(道德)을 연마하고 있다.
032_0454_a_16L大城側有絡多未知僧伽藍唐言赤泥宇顯敞臺閣崇峻國中高才達學敏有聞者咸集其中警誡相成琢磨道德
본래 이 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있지 않았다. 당시 남인도의 외도한 사람이 구리조각을 배에 두르고 머리에는 밝은 등불을 이고서 지팡이를 짚고 활보하면서 이 성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 북을 두드리며 논쟁을 벌이기를 원하였다.
032_0454_a_20L此國未信佛法時南印度有一外道腹錮銅鍱首戴明炬杖策高來入此城振擊論鼓求欲談議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머리와 배에 있는 이상한 물건들은 무엇입니까?”
032_0454_a_22L者問曰首腹何異
그가 답하였다.
“나는 학문과 기예에 매우 능하여 혹시라도 그것을 받아들인 배가 꽉 차서 배가 찢어질까 두려웠고 온갖 범부들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서 그것을 비추고자 등불을 가지고 왔소.”
032_0454_a_23L吾學藝多能腹拆裂悲諸愚闇所以持照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록 그에게 도를 물으러 오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직접 지혜가 뛰어나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032_0454_a_24L時經旬人無問者詢訪髦彦莫有異人
032_0454_b_02L왕이 말했다.
“이 나라 안에는 지혜로운 철인이 없단 말인가? 이국에서 온 사람과 논쟁을 벌일 능력이 없으니 이것은 나라에서도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로다. 그러나 은거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부지런히 찾아다녀야만 할 것이다.”
032_0454_b_02L王曰合境之內豈無明哲客難不酬爲國深恥宜更營求訪諸幽隱
이때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큰 숲 속에 기이한 사람이 있는데 스스로를 사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일로 삼고 있으며, 지금 깊숙이 틀어박혀 세속과 떨어져서 생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법을 체득하고 덕에 합치하는 자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032_0454_b_04L或曰大林中有異人其自稱曰沙門强學是務今屛居幽寂夂矣于茲悲夫體法合何能若此者乎
왕이 이 말을 듣고 몸소 그곳으로 가서 청하였다. 그러자 사문이 답하였다.
“나는 남인도 사람입니다. 멀리 유람을 하다가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학업을 이루지도 못하였는데 왕께서 들으신 소문과 다를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감히 논좌에 나오라는 청은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이겠습니다. 만일 논의에서 지지 않는다면 가람을 세우고 승도들을 불러 모아서 부처님의 법을 널리 빛나게 하여 주소서.”
032_0454_b_07L王聞之躬往請焉沙門對曰南印度人也客遊止此學業膚淺恐黜所聞敢承來旨不復固辭論議無負請建伽藍招集僧徒光讚佛法
왕이 말했다.
“잘 알아들었소. 내가 어찌 그대의 덕을 잊을 수 있겠소?”
王曰敬聞不敢忘德
사문은 왕의 초청을 받아들이고서 논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나아갔다. 외도가 이에 자신의 종지를 3만여 단어로 외웠는데, 그 뜻은 심원하고 문장은 간결하였으며 그의 이치는 명상(名相)을 포함하고 있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현상 세계를 총망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문이 그의 말을 딱 한 번 듣고는 두루 그 이치를 꿰뚫고서 조금의 오류도 없이 수백 단어로 논증하면서 분석해내고 변증하고 풀어내었다. 그러면서 그의 종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니, 외도가 말이 막히고 이치는 궁색해지고 말았다. 벙어리처럼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명성이 꺾이자 수치심을 무릅쓰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왕은 깊이 사문의 덕을 존경하여 이 가람을 세웠으니, 이때 이후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게 되었다.
032_0454_b_11L沙門受請往赴論場外道於是誦其宗致三萬餘言其義遠其文約苞含名相網羅視聽沙門一聞究覽辭義無謬以數百言辯而釋之因問宗致外道辭窮理屈杜口不酬旣折其名負恥而退王深敬德建此伽藍自時厥後方弘法敎
가람 옆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여래께서 이곳에 머무시며 7일 동안 법을 설하시어 중생들을 이끄셨다. 그 옆의 정사에는 과거 네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시던 유적지가 있다. 그리고 몇 기의 솔도파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여래께서 설법하시던 곳으로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7백여 리를 가다 보면 오다국(烏茶國)동인도의 경계에 이른다.
032_0454_b_18L伽藍側不遠有窣堵波無憂王所建在昔如來於此七日說法開導側精舍過去四佛坐及經行遺迹之有數窣堵波竝是如來說法之處無憂王之所建也從此西南行七百餘里至烏荼國東印度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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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다국(烏茶國)
오다국43)의 둘레는 7천여 리에 달하고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20여 리에 달한다. 토지는 비옥하며 농사가 매우 번창하다. 온갖 과실이 다른 나라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크며 기이한 풀과 빼어난 꽃들은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기후는 덥고 풍속은 거칠고 난폭하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체구가 건장하고 얼굴색은 거무튀튀하다. 그들의 언어나 관습들은44) 중인도와는 다르다. 학문을 좋아하여 게으름을 부리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을 믿는다.45) 가람의 수는 백여 곳이 있고 승도들은 1만여 명 있는데 그들은 모두 대승법의 가르침을 익히고 있다. 천사는 50곳 있고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솔도파들은 대략 10여 곳 있는데, 이것은 모두 여래께서 법을 설하신 곳으로서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032_0454_b_24L烏荼國周七千餘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土地膏腴穀稼茂盛凡諸菓頗大諸國異草名花難以稱述序溫暑風俗獷烈人貌魁梧容色釐言辭風調異中印度好學不倦信佛法伽藍百餘所僧徒萬餘人皆習學大乘法敎天祠五十所異道雜居諸窣堵波凡十餘所竝是如來說法之處無憂王之所建也
나라의 서남쪽 경계에는 큰 산이 있는데, 그 산 속에 보삽파기리(補澁波祇釐)승가람46)이 있다. 이곳에는 돌로 만들어진 솔도파가 있는데 신령스러운 감응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어떤 때는 재일마다 광명이 비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여러 신자[淨信]들이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모두들 아름다운 꽃으로 만든 일산을 가지고 모여들어 앞다투어 공양을 올린다. 승로반(承露盤) 아래 발우를 엎어놓은 듯한 형상 위에 꽃일산의 자루가 놓여있으며 마치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는 모습과도 같다. 이곳에서 서북쪽 산47)에 있는 가람에는 솔도파가 있는데 여느 솔도파와 다른 점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이 두 기의 솔도파는 신귀(神鬼)들이 세운 것이므로 이와 같은 신령스러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032_0454_c_10L國西南境大山中有補歰波祇釐僧伽藍其石窣堵波極多靈異或至齋時燭光明故諸淨信遠近咸會妙花蓋競修供養承露盤下覆鉢勢以花蓋笴置之便住若磁石之吸鍼也此西北山伽藍中有窣堵波異同前此二窣堵波者神鬼所建奇若斯
나라의 동남쪽 경계는 바닷가에 임해 있는데 그곳에 절리달라성(折利呾羅城)48)당나라 말로는 발행(發行)이라고 한다이 있다. 둘레는 20여 리에 달하며 바다로 무역하러 나간 상인들이나 먼 곳에서 온 여행객들이 왕래하며 머무는 곳이다. 그 성은 견고하고 높으며 온갖 진귀한 보배들이 많이 있다. 성의 밖에는 잇달아 다섯 곳의 가람이 있는데 누대와 전각이 매우 높으며 그곳에 안치된 불보살상의 조각 솜씨는 매우 화려하다.
032_0454_c_18L國東南境臨大海濱有折利呾羅城唐言發行周二十餘里入海商人遠方旅客往來中止之路也其城堅峻多諸奇城外鱗次有五伽藍臺閣崇高像工麗
032_0455_a_02L남쪽 승가라국으로부터 2만여 리 떨어진 곳에 이 성이 위치해 있는데 고요한 밤에 멀리 그 나라를 바라보면 부처님 치아를 안치한 솔도파 위에서 보석 구슬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마치 밝은 등불을 환히 내건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서남쪽의 큰 숲 속으로 1천 2백여 리를 가다 보면 공어타국(恭御陀國)동인도의 경계에 도착하게 된다.
032_0454_c_23L南去僧伽羅國二萬餘里夜遙望見彼國佛牙窣堵波上寶珠光明離然如明炬之懸燭也自此西南大林中行千二百餘里至恭御陁東印度境

10) 공어타국(恭御陀國)
공어타국49)의 둘레는 천여 리에 달하고 나라의 큰 도성50)의 둘레는 20여 리에 달한다. 바닷가에 가깝게 닿아있어서 산과 구릉들이 험하고도 높게 솟아있다.51) 토지는 낮고 습하며, 농사는 때에 맞추어 파종한다. 기후는 무덥고 풍속은 용맹하고 성급하다. 그들의 생김새는 크고 피부색은 검다. 예의는 대체로 갖추고 있고 남을 거의 속이지 않는다. 사용하는 문자는 중인도와 같지만 언어는 상당히 다른 점이 있다.52) 외도들을 숭배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법을 믿지 않는다. 천사는 백여 곳 있으며 이교도들이 만여 명에 달한다.
032_0455_a_04L恭御陁國周千餘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濱近海隅山阜隱軫土地墊稼穡時播氣序溫暑風俗勇烈形偉其貌黑粗有禮義不甚欺詐於文字同中印度語言風調頗有異崇敬外道不信佛法天祠百餘所道萬餘人
나라 안에는 수십 곳의 성이 있는데 모두가 산봉우리에 접해 있거나 해안에 의거하여 지어져 있다. 성은 견고하고 높으며 병사들이 용맹스럽고, 이웃 나라에도 그 용맹을 떨쳐서 지금은 대적할 나라가 없다. 이 나라는 바닷가에 접해 있어서 온갖 진귀한 보배가 많은데 여러 종류의 조개류나 온갖 구슬들은 화폐로 쓰이고 있다. 커다란 푸른빛이 도는 코끼리가 나는데 이 코끼리에 올라타서 먼 곳까지 가기도 한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가다 보면 너른 광야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늘을 찌르고 태양을 가릴 정도로 숲이 깊고 아름드리 나무가 솟아있다. 이곳에서 1,400~1,500리를 가다 보면 갈릉가국(羯餕力甑反伽國)남인도의 경계에 이른다.
032_0455_a_11L國境之內數十小城接山據海交城旣堅峻兵又敢勇威雄鄰境遂無强敵國臨海濱多有奇寶螺貝珠璣斯爲貨用出大靑象超乘致遠從此西南入大荒野深林巨木干霄蔽日行千四五百里至羯力甑反伽國南印度境

11) 갈릉가국(羯餕伽國)
갈릉가국53)의 둘레는 5천여 리에 달하고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20여 리에 달한다. 농사는 때맞추어 파종하고 꽃과 열매는 번성하다. 우거진 숲이 잇달아 펼쳐지는데 수백 리에 달한다. 푸른 야생 코끼리가 서식하며, 이웃 나라에서는 이것을 기이하게 여긴다. 기후는 무덥고 풍속은 난폭하다. 사람들의 성격이 몹시 성급하고 거칠지만 신의(信義)를 귀히 여긴다.
032_0455_a_17L羯𩜁伽國周五千餘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稼穡時播花果具繁林藪聯緜動數百里出靑野象鄰國所奇氣序暑熱風俗躁暴性多狷獷志存信義
032_0455_b_02L그들이 하는 말은 빠르지만 음조는 분명하고 곧다.54) 말의 의미와 어법이 중인도와 다르다. 정법을 믿는 이는 적고 외도를 따르는 이는 많다. 가람은 10여 곳 있고 승도는 5백여 명 있는데 그들은 모두 대승 상좌부법을 익히고 있다. 천사는 백여 곳 있고 이교도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니건(尼乾)의 무리들이다.
032_0455_a_22L言語輕捷音調質正辭旨風則頗與中印度異焉少信正法多遵外伽藍十餘所僧徒五百餘人習學大乘上座部法天祠百餘所異道甚多是尼乾之徒也
갈릉가국은 옛날55)에는 백성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히고 수레들이 부딪칠 정도로 왕래가 번잡하였고, 사람들이 소매를 들어올리기만 해도 온통 휘장을 친 것과 같을 정도였다.
032_0455_b_03L羯𩜁伽國在昔之時民俗殷盛肩摩轂擊擧袂成帷
이 나라에 다섯 가지 신통력을 얻은 선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암굴에 살면서 수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사람들이 그를 건드리는 바람에 그는 신통력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악한 주술로써 그 나라 사람들을 잔혹하게 해쳤는데, 늙은이나 젊은이를 가리지 않아 살아남는 자가 없었고 어진 이나 우둔한 이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자취가 끊어지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윽고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옮겨와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나라의 가구 수는 아직도 적다.
032_0455_b_05L有五通仙棲巖養素人或陵觸退失神通以惡呪術殘害國人少長無遺賢愚俱喪人煙斷絕多歷年所頗漸遷居猶未充實故今此國人戶尚少
성의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높이는 백여 척에 달한다.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곁에는 과거 네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셨던 유적지가 있다. 국경의 북쪽 지역에 위치한 거대한 산마루56)에는 돌로 만들어진 솔도파가 있는데 높이는 백여 척에 달한다. 이곳은 사람들의 수명이 무량세에 달하였던 까마득한 옛날에 어떤 독각(獨覺)이 있었는데, 그가 적멸에 들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서북쪽 산림 속으로 1천 8백여 리를 가면 교살라국(憍薩羅國)중인도의 경계에 이르게 된다.
032_0455_b_09L城南不遠有窣堵波高百餘尺無憂王之所建也傍有過去四佛坐及經行遺迹之所國境北垂大山嶺上石窣堵波高百餘尺是劫初時人壽無量歲有獨覺於此入寂滅焉自此西北山林中行千八百餘里至憍薩羅國中印度境

12) 교살라국(憍薩羅國)
교살라국57)의 둘레는 6천여 리에 달하며 산마루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숲과 우거진 덤불이 연이어 펼쳐져 있다.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40여 리에 달한다. 토지는 비옥하고, 토산물이 매우 풍성하다. 마을이 서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줄지어 서있고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롭다. 사람들의 체형은 크고 피부색은 검다.58) 풍속은 강건하고 용맹스러우며 사람들의 성품은 용감하고 거칠다.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함께 믿고 있으며 학문과 기예에 매우 밝다. 왕은 찰제리인데 부처님의 법을 숭배하고 존경하고 있으며 그의 어진 마음씨는 깊고 먼 곳에까지 미친다. 가람은 백여 곳 있으며 승도들은 만 명에서 조금 모자란다. 그들은 모두 대승법의 가르침을 익히고 있다. 천사는 70여 곳 있으며 이교도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032_0455_b_16L憍薩羅國周六千餘里山嶺周境藪連接國大都城周四十餘里土壤膏腴地利滋盛邑里相望人戶殷實其形偉其色黑風俗剛猛人性勇烈邪正兼信學藝高明剎帝利也敬佛法仁慈深遠伽藍百餘所僧徒減萬人竝皆習學大乘法敎天祠七十餘所異道雜居
032_0455_c_02L성의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옛 가람이 있는데 곁에 있는 솔도파는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여래께서 여기에서 위대한 신통력을 보이시고 외도에게 항복받으셨다고 한다. 뒤에 용맹(勇猛)보살이 이 가람에 머물던 시절에 사다파하(娑多婆訶)59)당나라 말로는 인정(引正)이라고 한다라고 불리는 국왕이 있었다. 그는 용맹을 극진히 존경하여 용맹보살이 사는 문에 경비를 세우고 있었다.
032_0455_b_24L城南不遠有故伽藍傍有窣堵波憂王之所建也昔者如來曾於此處現大神通摧伏外道後龍猛菩薩止此伽藍時此國王號娑多婆訶唐言引正敬龍猛周衛門廬
그때 제바보살이 논쟁을 벌이고자 집사자국(執師子國)으로부터 와서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수고스럽지만 내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032_0455_c_06L時提婆菩薩自執師子國來求論義謂門者曰幸爲通
문지기가 용맹보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용맹보살은 예전부터 제바보살의 명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발우에 물을 가득 담아서 제자에게 명하였다.
“너는 이 물을 가지고 가서 제바에게 보여주어라.”
032_0455_c_08L時門者遂爲白龍猛雅知其名滿鉢水命弟子曰汝持是水示彼提
제바가 이 물을 보고 아무 말 없이 바늘을 던져 넣었다. 제자가 발우를 들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돌아오니 용맹이 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032_0455_c_10L提婆見水默而投鍼弟子持鉢疑而返龍猛曰彼何辭乎
제자가 답하였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물 속에 바늘을 던졌을 뿐이었습니다.”
032_0455_c_11L對曰默無所說但投鍼於水而已
용맹이 말하였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로구나. 일의 기미(機微)를 알아차리는 것이 신과도 같고, 극미한 부분까지 살피는 것은 성현에 버금가는 사람이다. 그의 성덕(盛德)이 이와 같다면 어서 빨리 안으로 드시게 해야 한다.”
032_0455_c_12L龍猛曰智矣若人也知幾其神察微亞聖盛德若此宜速命入
그러자 제자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묘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모신다는 말씀입니까?”
032_0455_c_14L對曰何謂也無言妙斯之是歟
그러자 용맹이 말하였다.
“물이라는 것은 그릇에 따라서 네모나기도 하고 둥글어지기도 하며, 그 속에 담긴 사물에 따라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한다. 가득 채워져 있으면 틈이 없고 그 맑은 정도를 헤아릴 수가 없다. 가득 찬 물은 내 학업의 지혜가 지극함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늘을 던져 넣었다는 것은 결국 내 학문의 지극함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이 아니니 속히 그를 안으로 모셔야 한다.”
032_0455_c_15L夫水也者隨器方圓逐物淸濁彌漫無閒澄湛莫測滿而示之比我學之智周也彼乃投鍼窮其極此非常人宜速召進
한편 용맹의 풍모는 늠름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제바는 늘 용맹의 명성을 깊이 사모하여 오래 전부터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는 배우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신묘한 기지를 드러내 보이기는 하였지만 용맹의 위엄에 눌려 대청마루에 올라가서는 정면을 피해서 앉았다. 그리하여 온종일 그윽한 이치에 대해 대화하였는데 언사(言辭)의 이치가 맑고 품격이 높았다.
032_0455_c_18L而龍猛風範懍然肅物言談者皆伏抑首婆素挹風徽久希請益方欲受業騁機神雅懼威嚴昇堂僻坐談玄永辭義淸高
용맹이 말하였다.
“저 후배는 이미 세상에서 뛰어난 인재이고 미묘한 말솜씨는 앞 시대 선배들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나는 늙고 쇠약해졌는데 이제 이렇게 뛰어난 인재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제 실로 병 속의 물을 따르는 일을 맡길 수 있게 되어 가르침의 등불을 끊어지지 않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일을 이제 그대에게 맡기려 하니 부디 좀더 앞자리로 나와 앉아서 그윽하고 깊은 이치를 나눕시다.”
032_0455_c_22L龍猛曰後學冠世妙辯光前我惟衰耄遇斯俊彦誠乃寫甁有寄傳燈不絕法敎弘揚伊人是賴幸能前席雅談玄奧
032_0456_a_02L제바가 이 말을 듣고는 우쭐거리는 마음에 알고 있는 모든 논의를 끄집어내어 먼저 거침없는 변론의 세계에서 노닐고자 말의 실마리를 준비하여 용맹에게 그를 쳐다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바는 용맹의 위엄 있는 얼굴을 본 순간 말을 잃고 입이 닫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면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032_0456_a_02L提婆聞命心獨自負將開義府先遊辯囿提振辭端仰視質義忽睹威顏忘言杜口避坐引責遂請受業
용맹이 말하였다.
“자리로 돌아가시오. 이제 그대에게 지극히 참되고 미묘한 이치이며 법왕이신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전하리다.”
032_0456_a_05L龍猛曰復坐今將授子至眞妙理法王誠敎
제바가 오체투지하고 한마음으로 귀의하며 말하였다.
“이제부터 앞으로는 삼가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032_0456_a_06L提婆五體投一心歸命而今而後敢聞命矣
용맹보살은 약술(藥術)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묘약을 잘 복용하여 양생(養生)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수명은 수백 세가 되었지만 기력과 용모는 쇠약해지지 않았다. 인정왕(引正王)도 묘약을 얻었으므로 그의 수명도 수백 세가 되었다.
032_0456_a_07L龍猛菩薩善閑藥術飡餌養生壽年數百志貌不衰引正王旣得妙藥亦數百
왕의 어린 아들이 자기의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나는 언제 왕위를 이을 수 있겠습니까?”
032_0456_a_10L王有稚子謂其母曰如我何時得嗣王位
그러자 어머니가 말하였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기약할 수 없다. 부왕의 연세가 이미 수백 세에 달하셨지만 자손들 중에는 늙어서 세상을 떠난 자도 매우 많다. 이런 일은 모두가 용맹보살의 복력이 도움으로 얻은 것이요, 약술(藥術)로 인한 것이다. 보살이 죽어야만 왕도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용맹보살이란 이는 지혜가 크고도 넓으며 자비심 또한 매우 깊고 두터워 온갖 중생들에게 널리 베풀되 자신의 몸과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을 게다. 너는 이제 그에게 가서 시험삼아 머리를 달라고 청해보아라. 만일 이 뜻을 이루게 되면 네가 바라던 일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032_0456_a_11L母曰以今觀之未有期父王年壽已數百歲子孫老終者蓋亦多矣斯皆龍猛福力所加藥術所致菩薩寂滅王必殂落夫龍猛菩薩智慧弘遠慈悲深厚周給群有身命若遺汝宜往彼試從乞頭若遂此志當果所願
왕자가 공손히 어머니의 명을 받고 가람에 도착하였다. 문지기가 왕자를 보자 황송해 하며 안으로 들게 하였다. 이때 용맹보살은 바야흐로 지극한 마음으로 경을 외면서 거닐던 중이었는데 문득 왕자를 보고서 멈추어 서서 물었다.
“이 저녁에 무슨 일이 있으셔서 승방으로 친히 찾아오셨습니까? 위험한 일을 당하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려운 일에 쫓기셨기에 이렇듯 황급히 이곳으로 달려오셨군요.”
032_0456_a_17L王子恭承母命來至伽藍門者敬懼故得入焉時龍猛菩薩方讚誦經行忽見王子佇而謂曰今夕何因降迹僧坊若危若懼疾驅而至
032_0456_b_02L왕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야기가 보시행을 하는 사람에게까지 미쳤습니다. 나는 ‘인간은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경전의 말씀이나 격언에도 보신(報身)을 가볍게 던짐으로써 온갖 것을 구하고 바라는 자들에게 베풀라는 말 따위는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나의 어머니께서는 ‘그렇지 않다. 시방의 부처님이시며 3세의 여래께서 옛날 발원하셔서 증과(證果)를 얻고 부지런히 부처의 도를 구할 때 지계(持戒)와 인욕(忍辱)을 닦고 익히셨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몸을 내던져 맹수들에게 먹이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살을 갈라서 비둘기를 구제하기도 하셨다. 월광왕(月光王)은 바라문에게 자신의 머리를 보시하였고 자력왕(慈力王)은 약차에게 자신의 피를 마시게 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으니 선각(先覺)들에게서 이런 예를 찾아보자면 어떤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032_0456_a_21L對曰我承慈母餘論語及行捨之士以爲含生寶命經語格言未有輕捨報身施諸求欲我慈母曰不然十方善逝三世如來在昔發心逮乎證果勤求佛道修習戒忍或投身飤或割肌救鴿月光王施婆羅門頭慈力王飮餓藥叉血諸若此類羌難備擧求之先覺何代無人
지금의 용맹보살은 그 의지가 높고 신실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구하는 바가 있으니 나는 지금 사람의 머리가 필요합니다. 오래 전부터 그것을 구하러 다녔지만 아직 기쁘게 희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난폭한 행동으로 완력을 행사하여 살해하고도 싶었지만 그것은 죄과가 너무나 무겁습니다. 게다가 죄 없는 이를 학대하고 해를 가한다면 더럽혀진 덕은 온 세상에 널리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보살께서는 부처님의 길을 닦고 익히며 아득하게 불과(佛果)를 기약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자비로 모든 중생들을 적시고 지혜는 모든 만물에 미치십니다. 목숨을 마치 부초처럼 가볍게 여기시고, 몸을 썩은 나무처럼 보십니다. 본래의 서원에 어긋나지 마시고 부디 제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소서.”
032_0456_b_05L今龍猛菩薩篤斯高志我有所求人頭爲用募累歲未之有捨欲行暴劫殺則罪累尤多虐害無辜穢德彰顯惟菩薩修習聖道遠期佛果慈霑有識惠及無邊輕生若浮賤身如朽不違本願垂允所求
그러자 용맹이 말하였다.
“예. 당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과위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나는 부처님의 ‘능히 보시함[能捨]’을 배우고 있소. 이 몸은 메아리와 같고 이 몸은 물거품과 같아 4생(生)을 떠돌아다니며 6취(趣)를 오가고 있소. 이미 오래 전에 광대한 서원을 약속하였으니 중생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왕자에게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으니 그것을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 나의 목숨이 마치고 나면 그대의 아버지도 세상을 떠날 것이오. 이것을 생각하자니 마음에 걸리오. 누가 능히 그대의 아버지를 구제하리오?”
032_0456_b_11L龍猛曰誠哉是言也求佛聖果我學佛能捨是身如響身如泡流轉四生去來六趣宿契弘不違物欲然王子有一不可者將若何我身旣終汝父亦喪顧斯爲誰能濟之
이렇게 말을 마치고 나서 용맹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목숨을 끊을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마른 풀잎으로 자신의 목을 베어버리니 마치 예리한 칼로 잘라버린 듯 몸뚱이와 머리가 각각 다른 곳에 떨어졌다. 왕자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나가 버렸다. 문지기가 왕에게 이 일의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보고하니 왕은 그 보고를 듣고 비통해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032_0456_b_16L龍猛俳佪顧視求所絕以乾茅葉自刎其頸若利劍斷割身首異處王子見已驚奔而去門者上白具陳始末王聞哀感果亦命終
이 나라의 서남쪽으로 3백여 리를 가다 보면 발라말라기리산(跋邏末羅耆釐山)60)당나라 말로는 흑봉(黑峰)이라고 한다에 도착한다. 이 산은 높이 우뚝 솟았으며 봉우리와 암벽이 험난한데 벼랑과 골짜기가 없으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인정왕이 용맹보살을 위하여 이 산을 깎아내고서 가람을 세웠다.
032_0456_b_19L國西南三百餘里至跋邏末羅耆釐唐言黑蜂岌然特起峯巖陗險旣無崖宛如全石引正王爲龍猛菩薩鑿此山中建立伽藍
032_0456_c_02L이 산으로부터 수십 리에 걸쳐 큰 길을 뚫어 통로를 만들었으며, 그 산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 돌에 굴을 뚫어 터 놓았고, 그 속에는 긴 복도와 걸어 다닐 수 있는 긴 회랑, 높은 대(臺)와 겹겹이 위로 솟은 누각이 있다. 각(閣)은 5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에는 4원(院)이 있다. 여기에는 모두 정사를 세웠으며 각각 금상(金像)을 주조해 놓았는데, 그 크기는 부처님의 몸과 같으며 조각한 솜씨는 정묘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 밖의 장식은 오직 황금과 보석만으로 꾸미고 있다. 산의 높은 봉우리로부터 물을 끌어다 세차게 솟아오르는 샘을 만들었는데, 이 물은 누각의 주위를 감싸고 흐르며 건물을 에워싸고 있다. 승방은 밖으로 작은 구멍을 내어 창으로 삼아서 빛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032_0456_b_23L去山十數里鑿開孔道當其山下仰鑿疏石其中則長廊步簷崇臺重閣閣有五層層有四竝建精舍各鑄金像量等佛身窮工思自餘莊嚴唯飾金寶從山高峯臨注飛泉周流重閣交帶廊廡寮外穴明燭中宇
처음에는 인정왕이 이 가람을 세울 때에 사람들은 이미 지치고 국고도 바닥이 났는데도 아직 공사는 반도 끝내지 못하였으므로 왕은 커다란 근심에 사로잡혔다.
032_0456_c_06L引正王建此伽藍也人力疲竭府庫空虛功猶未半心甚憂慼
이때 용맹보살이 물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그와 같은 근심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032_0456_c_08L龍猛謂曰大王何故若有憂負
왕이 답하였다.
“문득 크게 마음을 일으켜서 훌륭한 복의 바탕을 세워 아득한 장래에 자씨보살께서 세상에 나실 때까지 기다리려고 기약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적이 완성되기도 전에 재물이 이미 바닥이 나고 말았으니 언제나 이런 근심을 품고 앉아서 밤을 지새고 있을 뿐입니다.”
032_0456_c_09L王曰輒運大心敢樹勝福期之永固待至慈氏功績未成財用已竭每懷此恨坐而待旦
그러자 용맹이 말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뛰어난 복과 훌륭한 선을 염원하셨다면 그 이익은 무궁합니다. 널리 원을 일으키셨다면 완성하지 못할 것을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은 궁으로 돌아가셔서 지극한 환락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궁을 나와서 노니시며 산야를 두루 유람하신 뒤에 이곳으로 오셔서 가람을 짓는 일을 상의해보기로 합시다.”
032_0456_c_11L龍猛曰勿憂福勝善其利不窮有興弘願無憂不今日還宮當極歡樂後晨出遊覽山野已而至此平議營建
왕은 용맹이 일러준 말을 받들어 행하였다. 용맹보살이 신묘한 약을 큰 돌에 적시자 돌이 금으로 변하였다. 왕이 노닐다가 금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가마를 돌려 용맹의 처소로 달려가서 말하였다.
“오늘 들에서 노닐다가 귀신에 홀려 산림 속에서 마침 금덩이를 보았습니다.”
032_0456_c_14L王旣受奉以周旋龍猛菩薩以神妙藥諸大石竝變爲金王遊見金心口相迴駕至龍猛所今日畋遊神鬼所惑山林之中時見金聚
용맹이 답하였다.
“귀신에게 홀린 것이 아닙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금을 얻게 된 것입니다. 어서 이것을 가져다가 훌륭한 복업을 완성하십시오.”
032_0456_c_18L龍猛曰鬼惑也至誠所感故有此金宜時取濟成勝業
032_0457_a_02L그리하여 마침내 불사를 모두 마쳤는데 공사를 마치고도 금이 남았다. 이에 5층 속에 각각 4구(軀)의 큰 금불상을 주조하였는데 그러고도 여전히 금덩이는 남아서 쌓여있었다. 왕은 이렇게 남은 금덩이를 일체의 유지비용으로 충당하였고 1천 명의 스님들을 초청하여 그 속에서 예경하고 찬송하였다. 용맹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널리 가르친 법과 모든 보살이 널리 베푼 강론을 모두 모으고 분류하여 그 속에 안장하였다. 그런 까닭에 제1층에는 오직 불상과 경론들만 안치되어 있고 맨 아래의 제5층은 거처하는 정인(淨人)들의 재물과 집기들이 들어있으며 중간의 세 개 층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삼았다.
032_0456_c_20L遂以營建功畢有餘是五層之中各鑄四大金像餘尚盈充諸帑藏招集千僧居中禮誦猛菩薩以釋迦佛所宣敎法及諸菩薩所演述論鳩集部別藏在其中上第一層唯置佛像及諸經論下第五層居止淨人資產什物中閒三層僧徒所舍
옛 선현들의 말에 의하면, 인정왕이 불사를 마친 뒤에 인부들이 먹은 소금의 값을 계산하여 보니 9구지(拘胝)구지는 당나라 말로 억(億)에 해당한다의 금전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 뒤 스님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 왕에게 나아가서 해결해주기를 청하게 되었다.
032_0457_a_04L聞諸先志曰引正王營建已畢計工人所食鹽價用九拘胝拘胝唐言億金錢其後僧徒忿諍就王平議
그때 여러 정인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았다.
“스님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들의 말은 서로 어긋나 대립하고 있다.”
032_0457_a_06L時諸淨人更相謂曰僧徒諍起言議相乖
흉악한 사람들이 그 틈을 노려 가람을 무너뜨리려고 누각을 닫아걸고 승도들을 몰아내었다. 그 뒤로 다시는 승가 대중이 살지 않게 되었다. 멀리에서 산의 암벽을 바라보아도 그곳으로 들어갈 길을 알 수 없다. 이따금 의술에 능한 자를 이끌어 들여 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얼굴을 가리고 출입시키는 까닭에 그 길을 알지 못한다. 이곳으로부터 거대한 숲 속에서 남쪽으로 9백여 리를 가다 보면 안달라국(案達羅國)남인도의 경계에 도착한다.
032_0457_a_08L凶人伺隙毀壞伽藍於是重閣反拒以擯僧徒自爾已來無復僧衆遠矚山巖莫知門徑時引善醫方者入中療疾蒙面入出不識其路從此大林中南行九百餘里至案達羅國南印度境

13) 안달라국(案達羅國)
안달라국61)의 둘레는 3천여 리에 달하고,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20여 리이며 병기라(甁耆羅)62)라고 부른다. 토지는 비옥하며 농사는 풍성하다. 기후는 덥고 풍속은 거칠고 난폭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인도와 다르지만 문자와 문법은 대체로 같다.63) 가람은 20여 곳 있고 승도는 3천여 명 있으며,64) 천사가 30여 곳 있고 이교도들이 매우 많이 산다.
032_0457_a_13L案達羅國周三千餘里國大都城周二十餘里號甁耆羅土地良沃稼穡豐盛氣序溫暑風俗猛暴語言辭調異中印度至於文字軌則大同伽藍二十餘所僧徒三千餘人天祠三十餘所異道寔多
병기라성 옆으로 멀지 않은 곳에 큰 가람이 있다. 겹겹이 쌓아올린 누각과 대를 제작한 솜씨는 조각의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불상의 성스러운 모습의 화려함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가람 앞에는 돌로 만들어진 솔도파가 있는데 높이는 수백 척에 달하며 모두 아절라(阿折羅)당나라 말로는 소행(所行)이라고 한다아라한이 세운 것이다.
032_0457_a_19L甁耆羅城側不遠有大伽藍重閣層製窮剞劂佛像聖容麗極工思藍前有石窣堵波高百尺竝阿折羅唐言所行阿羅漢之所建也
032_0457_b_02L소행아라한의 가람에서 서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께서 옛날 이곳에서 법을 설하시며 위대한 신통을 드러내시어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셨다.65)
032_0457_a_23L所行羅漢伽藍西南不遠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如來在昔於此說現大神通度無量衆
소행아라한의 가람에서 서남쪽으로 20여 리를 가다 보면 외딴 산에 도착한다. 산꼭대기에 돌로 만들어진 솔도파가 있는데 진나(陳那)66)당나라 말로는 수(授)라고 한다보살이 이곳에서 『인명론(因明論)』을 지었다.
032_0457_b_03L所行羅漢伽藍西南行二十餘里孤山山嶺有石窣堵波陳那唐言授薩於此作『因明論』
진나보살은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출가한 사람이다. 그의 지원(智願)은 광대하였고 혜력(慧力)은 깊고 굳었는데, 세상에 의지할 스승이 없음을 가엾이 여겨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인명론은 언어가 깊고 이치가 광대하여 배우는 자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쉽게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깊은 암굴 속에 은거하여 신통스러운 고요한 선정에 잠겨서 이 논서를 짓는데 따르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깊이 생각하고서 문의(文義)의 번거로움과 간결함을 폭넓게 고려하였다.
032_0457_b_06L陳那菩薩者佛去世後承風染衣智願廣大慧力深固愍世無依思弘聖敎以爲因明之論言深理廣學者虛功難以成業乃匿迹幽巖拪神寂定觀述作之利害文義之繁約
이때 절벽과 계곡에는 커다란 소리가 울리고 연기와 구름의 색이 변하면서 산신이 나타나 보살을 수백 척 높이로 받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였다.
“옛날 불세존께서 좋은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시고 자비심으로 『인명론』을 설하셨습니다. 『인명론』은 오묘한 이치를 모두 포괄하고 미묘한 말을 깊이 궁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래께서 적멸에 드신 뒤 대의(大義)는 사라지고 끊겼었는데, 오늘 진나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참으로 광대하며 깊이 부처님의 뜻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에 오늘부터 『인명론』은 거듭 펼쳐질 것입니다.”
032_0457_b_11L是時崖谷震響煙雲變山神捧菩薩高數百尺唱如是言昔佛世尊善㩲導物以慈悲心說『因明論』綜括妙理深究微言如來寂滅大義泯絕今者陳那菩薩福智悠遠深達聖旨因明之論重弘茲日
보살이 곧 눈부신 광명을 발하며 깊고 어두운 곳을 환히 비추었다. 이때 이 나라의 왕이 깊이 존경심을 품고서 이 광명을 바라보다가 보살께서 금강정(金剛定)에 드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보살에게 무생과(無生果)를 증득하시기를 청하였다.
032_0457_b_16L菩薩乃放大光明照燭幽昧時此國王深生尊敬見此光明相疑入金剛定請菩薩證無生果
그러자 진나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선정에 들어 관찰하여 깊은 이치의 경을 풀고자 하였습니다. 마음은 정각(正覺)을 기약하였을 뿐 무생과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032_0457_b_19L陳那曰吾入定觀欲釋深經心期正覺非願無生果
왕이 말하였다.
“무생과는 뭇 성현들께서도 기꺼이 우러러보는 것이며, 삼계의 탐욕을 끊고 3명지(明智)를 통찰하는 일이니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부디 어서 빨리 이것을 증득하소서.”
032_0457_b_21L王曰無生之果衆聖欣仰斷三界洞三明智斯盛事也願疾證之
032_0457_c_02L진나는 이때 왕의 간청을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무학성과(無學聖果)를 막 증득하려고 하였는데, 그 순간 묘길상(妙吉祥)보살이 이 일을 애석하게 여겨 진나보살을 일깨워 주고자 손가락을 튀기며 말하였다.
“애석하구나. 어찌하여 광대한 마음을 버리고 좁고 열등한 뜻을 이루려고 하는가? 어찌하여 저 혼자에게만 좋은 일을 이루려는 뜻을 따르고 두루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을 버리려 하는가? 착한 이익을 이루고자 한다면 마땅히 자씨보살이 저술하신 『유가사지론』을 널리 전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후학들을 일깨우고 인도한다면 그 이익은 참으로 클 것이다.”
032_0457_b_22L那是時心悅王請方欲證受無學聖時妙吉祥菩薩知而惜焉欲相警乃彈指悟之而告曰惜哉如何捨廣大心爲狹劣志從獨善之懷棄兼濟之願欲爲善利當廣傳說慈氏菩薩所製『瑜伽師地論』導誘後學爲利甚大
진나보살이 공손히 그 일깨움을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하여 깊이 생각을 기울여 연구하여 인명론을 크게 펼쳤다. 그는 또한 학업을 하는 자들이 그 문장의 미묘함과 언사의 간결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그 대의를 들고 그 미묘한 언사를 종합하여 『인명론(因明論)』을 지어 후학들을 인도하였다. 이날 이후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은 널리 펼쳐지게 되었으며, 이 같은 학업을 이룬 문인(門人)들 가운데에는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있다. 이곳에서 숲 속을 거쳐 남쪽으로 천여 리를 가다 보면 타나갈책가국(馱那羯磔迦國)또한 대안달라국(大安達邏國)이라고도 불리며 남인도의 경계이다에 도착한다.
032_0457_c_06L陳那菩薩敬受指誨奉以周旋於是覃思沈硏廣因明論猶恐學者懼其文微辭約也乃擧其大義綜其微言作『因門論』以導後進自茲已後宣暢瑜伽盛業門人有知當世從此林野中南行千餘里至馱那羯磔迦亦謂大安達邏國南印度境

14) 타나갈책가국(馱那羯磔迦國)
타나갈책가국67)의 둘레는 6천여 리이며 나라의 큰 도성68)의 둘레는 40여 리에 달한다. 토지는 비옥하며 농사는 번성하다. 황야가 많으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적다. 기후는 무덥고 사람들의 생김새는 검다. 성품은 난폭하지만 학예를 좋아한다. 가람은 줄지어 세워져 있지만 황폐화된 정도가 심하다. 현존하는 가람은 20여 곳이며 승도들은 천여 명인데, 그들은 모두 대중부(大衆部)의 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다.69) 천사는 백여 곳 있으며 이교도들은 매우 많다.
032_0457_c_12L馱那羯磔迦國周六千餘里國大都城周四十餘里土地膏腴稼穡殷盛荒野多邑居少氣序溫暑人貌釐黑性猛烈好學藝伽藍鱗次荒蕪已甚存者二十餘所僧徒千餘人竝多習學大衆部法天祠百餘所異道寔多
성의 동쪽으로는 산에 의거하여 불파세라(弗婆勢羅)70)당나라 말로는 동산(東山)이라고 한다 승가람이 있다. 또한 성의 서쪽으로는 산에 의거하여 아벌라세라(阿伐羅勢羅)71)당나라 말로는 서산(西山)이라고 한다승가람이 있다. 이 나라의 선왕(先王)이 부처님을 위하여 세운 것이다. 하천을 따라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절벽을 깎아서 누각을 높이 세워놓았다. 긴 회랑과 복도가 암석을 베개 삼고 있으며 산봉우리가 가까이 있다. 이곳은 영묘한 신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성현들이 노닐고 쉬는 곳이다.
032_0457_c_18L城東據山有弗婆勢羅唐言東山僧伽藍城西據山有阿伐羅勢羅唐言西山僧伽此國先王爲佛建焉奠川通徑崖峙閣長廊步簷枕巖接岫靈神警衛聖賢遊息
032_0458_a_02L부처님께서 적멸에 드신 이래 천 년 동안 해마다 천 명의 범부와 승려가 함께 안거에 들어갔으며 안거를 해제하는 날, 모두가 아라한을 증득하였다. 그리하여 신통력으로 허공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천 년 뒤에는 범부와 성현이 함께 기거하였으며 마지막 백여 년 이래로 다시는 승려들의 왕래가 없어졌다. 그러자 산신도 모습을 바꾸어서 승냥이나 이리로 나타나기도 하고 원숭이로 나타나서 오가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며, 그 뒤 이곳은 사람의 자취가 끊겨 황폐해졌고 승가 대중도 살지 않아 쓸쓸한 곳으로 변하였다.
032_0457_c_23L自佛寂滅千年之內每歲有千凡夫僧同入安居其解安居日皆證羅漢以神通力凌虛而去千年之後聖同居自百餘年無復僧侶而山神易形或作豺狼或爲猿驚恐行人以故空荒閴無僧衆
성의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큰 산이 있다. 아소락궁(阿素洛宮)에서 살고 있던 파비폐가(婆毘吠伽)당나라 말로는 청변(淸辯)이라고 한다 논사72)가 자씨보살이 성불하는 모습을 보기를 기다렸던 곳이다. 논사는 아량이 넓고 덕이 지극하고 깊었던 분이다. 겉으로는 상키야[僧佉] 학파의 복장을 하였지만 속으로는 용맹(勇猛)의 학문을 널리 펼쳤다. 마게타국의 호법보살이 부처님 법을 널리 펼치며 그에게서 불도를 배우는 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는 소식을 듣고서 호법보살을 만나 담론을 나누고자 생각하였다.
032_0458_a_05L南不遠有大山巖婆毘吠伽唐言淸辯師住阿素洛宮待見慈氏菩薩成佛之處論師雅量弘遠至德深邃外示僧佉之服內弘龍猛之學聞摩揭陁國護法菩薩宣揚法敎學徒數千懷談議
지팡이를 짚고 그곳으로 가서 파타리성에 도착하였는데, 호법보살이 보리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논사는 곧 문지기에게 명하였다.
“너는 보리수 아래에 계신 호법보살에게 어서 가서 ‘보살께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널리 펼치시며 어리석은 대중들을 인도하시니 보살의 덕을 마음으로부터 우러른 지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상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이렇게 배알하고자 합니다. 보리수란 것은 맹세컨대 텅 비어서 볼 수가 없으며, 본다면 마땅히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라는 나의 말을 전하여라.”
032_0458_a_11L杖錫而往至波咤釐城知護法菩薩在菩提樹論師乃命門人曰汝行詣菩提樹護法菩薩所如我辭菩薩宣揚遺敎導誘迷徒仰德虛爲日已夂然以宿願未果遂乖禮菩提樹者誓不空見見當有證天人師
그러자 이 말을 전해들은 호법보살은 심부름 온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인간 세상은 환영과 같고 목숨은 뜬구름과도 같다. 온종일 구하려고 애쓸 뿐 그대와 환담할 시간은 없다.”
032_0458_a_17L護法菩薩謂其使曰人世如身命若浮渴日勤誠未遑談議
그리하여 심부름꾼이 몇 차례 오가기만 하였을 뿐 끝내 만나지 못하였다. 논사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생각하며 말하였다.
“자씨보살이 성불하지 않고서 누가 나의 의심을 해결해 주겠는가?”
032_0458_a_18L信往復竟不會見論師旣還本土而思曰非慈氏成佛誰決我疑
이에 관자재보살상 앞에서 『수심다라니(隨心陀羅尼)』73)를 외웠는데, 곡기를 끊고 물만 마시면서 3년 동안 기도하였다. 어느 날 관자재보살이 미묘한 모습을 나타내어서 논사에게 말하였다.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032_0458_a_20L於觀自在菩薩像前誦『隨心陁羅尼』絕粒飮水時歷三歲觀自在菩薩乃現妙色身謂論師曰何所志乎
논사가 대답하였다.
“부디 이 몸을 그대로 지닌 채 자씨보살을 만나고 싶습니다.”
032_0458_a_23L對曰願留此身待見慈氏
032_0458_b_02L관자재보살이 말하였다.
“인간의 목숨이란 위태로운 것이며 세상은 떠도는 환영과도 같은 것이다. 뛰어난 선업을 닦아서 도솔천[覩史多天]에 태어나기를 바라거라. 그곳에서 만나는 것이 이곳에서 만나는 것보다 더 빠를 것이다.”
032_0458_a_24L觀自在菩薩曰人命危脆世閒浮幻宜修勝善願生睹史多天於斯禮覲尚速待見
논사가 말하였다.
“저의 뜻은 흔들리지 않으며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032_0458_b_03L論師曰不可奪心不可貳
보살이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타나갈책가국으로 가라. 그곳 도성의 남산 바위에 집금강신(執金剛神)이 사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지성으로 집금강다라니(執金剛陀羅尼)74)를 외운다면 그대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032_0458_b_04L菩薩曰若然者往馱那羯磔迦國城南山巖執金剛神所至誠誦持『執金剛陁羅尼』者遂此願
논사가 그곳으로 가서 다라니를 외웠다. 3년이 지나자 신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그대는 어떤 소원을 품고 있기에 이토록 쉼 없이 정진하는가?”
032_0458_b_07L論師於是往而誦焉三歲之神乃謂曰伊何所願若此勤勵
논사가 말하였다.
“저의 소원은 이 몸을 그대로 지닌 채 자씨보살을 만나뵙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관자재보살께서 저에게 일러주신 대로 와서 청하니,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실 분이 바로 앞에 나타나신 신이 아니십니까?”
032_0458_b_08L師曰願留此身待見慈氏觀自在菩薩指遣來請成我願者其在神乎
그러자 신은 비방을 일러주며 말하였다.
“이 암석 안에 아소락궁이 있는데 법도에 맞게 그곳에서 기도하면 석벽은 열리게 되어있다. 그 문이 열리면 그곳으로 들어가라. 그리하여 자씨보살을 만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032_0458_b_10L乃授秘方而謂之曰此巖石內有阿素洛宮如法行請石壁當開開卽入可以待見
논사가 말하였다.
“깊은 곳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부처님께서 나타나신 줄을 알겠습니까?”
032_0458_b_13L論師曰幽居無睹詎知佛興
집금강신이 말하였다.
“자씨보살이 나타나시면 내가 알려 줄 것이다.”
執金剛曰慈氏出世我當相報
그리하여 논사는 집금강신의 명을 받고 더욱 부지런히 다라니를 암송하였다. 다시 3년이 지나자 처음에는 아무런 기이한 징조도 없다가 겨자씨를 들고 주문을 외면서 석벽을 두드리자 활짝 열렸다.
이때 수많은 대중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돌아가기를 잊을 정도였다. 논사가 그 문에 걸터앉아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래도록 자씨보살을 뵙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여 왔소. 성현들과 신령들이 나를 지켜 주시어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었소. 이곳으로 들어가서 부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함께 보지 않으시겠소?”
032_0458_b_14L論師受命專精誦持復歷三歲初無異想呪芥子以擊石巖壁豁而洞開是時百千萬衆觀睹忘返論師跨其戶而告衆曰吾久祈請待見慈氏靈警祐大願斯遂宜可入此同見佛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라서 감히 그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것은 독사가 사는 굴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였다. 거듭 사람들에게 일러주니 겨우 여섯 사람만이 따라서 들어왔다. 논사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석벽이 다시 본래대로 닫혔다. 대중들은 이 광경을 본 뒤에야 모두가 안타깝게 여기면서 앞서 자신들이 독사의 굴이라고 한 말을 후회하였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천여 리를 가다 보면 주리야국(珠利耶國)남인도의 경계에 도착한다.
032_0458_b_20L聞者怖駭莫敢履戶謂是毒蛇之恐喪身命再三告語唯有六人從論師顧謝時衆從容而入入之旣石壁還合衆皆怨嗟恨前言之過自此西南行千餘里至珠利耶國南印度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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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주리야국(珠利耶國)
주리야국75)의 둘레는 2천 400~2천 500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의 둘레는 10여 리이다. 토지는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며 수풀과 늪지는 황량하다. 사람들이 기거하는 집도 매우 적고 도적 떼가 활개를 치고 다닌다. 기후는 무덥고 풍속은 간사하고 흉악하다. 사람들의 성품은 포악하고 난폭하며 외도들을 믿고 있다. 가람은 허물어졌고 승도들은 거의 살지 않으며, 천사는 수십 곳이 있는데 대부분은 나형외도들이다.
032_0458_c_02L珠利耶國周二千四五百里國大都城周十餘里土野空曠藪澤荒蕪戶寡少群盜公行氣序溫暑風俗奸人性獷烈崇信外道伽藍頹毀有僧徒天祠數十所多露形外道也
성의 동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는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여래께서 옛날 이곳에서 신통력을 나타내시며 깊고 미묘한 법을 설하셔서 외도에게서 항복받고 하늘과 인간을 제도하셨다.
032_0458_c_07L城東南不遠有窣堵波無憂王之所建也如來在昔曾於此處現大神通說深妙法摧伏外道度諸天人
성의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옛 가람이 있는데, 제바보살이 아라한과 함께 논의를 하던 곳이다. 본래 제바보살은 이 가람에 살고 있는 올달라(嗢呾羅)당나라 말로는 상(上)이라고 한다아라한이 6신통을 얻고 8해탈을 온전히 갖추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그를 찾아와 그의 풍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가람에 도착한 뒤에 아라한의 숙소에 투숙하였다.
032_0458_c_10L城西不遠有故伽藍提婆菩薩與羅漢論議之處提婆菩薩聞此伽藍有嗢呾羅唐言上阿羅漢得六神通八解脫遂來遠尋觀其風範旣至伽投羅漢宿
아라한은 욕망을 줄여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오직 걸상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바가 방에 들어왔어도 앉힐 자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낙엽을 모아서 그것을 가리키며 앉게 하였다. 아라한이 선정에 들고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선정에서 나왔다. 제바는 이때 의문점들을 제시하며 해결해줄 것을 청하였다. 아라한은 그의 의문점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제바는 아라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질문을 거듭하였는데, 일곱 번째 질문이 끝나자 아라한은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몰래 신통력으로 도사다천에 올라가서 자씨보살에게 질문을 하니, 자씨보살이 풀이하여 주면서 말하였다.
“저 제바보살은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한 사람으로서 현겁 중에 깨달음의 자리[佛位]를 이을 것이다. 그대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니 깊이 경배하며 절을 올리는 것이 좋으리라.”
032_0458_c_15L羅漢少欲知足唯置一提婆旣至無以爲席乃聚落葉令就坐羅漢入定夜分方出提婆於是陳疑請決羅漢隨難爲釋提婆尋聲重質第七轉已杜口不酬竊運神通力往睹史多天請問慈氏慈氏爲釋因而告曰彼提婆者曠劫修行賢劫之當紹佛位非爾所知宜深禮敬
이에 아라한은 손가락을 튀길 정도의 짧은 시간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다시 오묘한 뜻을 펼치고 미묘한 언사를 해석하였다. 그러자 제바가 말하였다.
“이것은 자씨보살의 지혜를 빌어 풀이한 것입니다. 어찌 그대가 그토록 자세하게 궁구할 수 있겠습니까?”
032_0458_c_22L彈指頃還復本座乃復抑揚妙義扸微言提婆謂曰此慈氏菩薩聖智之釋也豈仁者所能詳究哉
032_0459_a_02L아라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여래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며 깊은 존경을 표하였다.
032_0459_a_02L羅漢曰如來旨於是避席禮謝深加敬歎
이곳에서 남쪽 숲 속으로 들어가서 1,500~1,600리를 가다 보면 달라비다국(達羅毘茶國)남인도의 경계에 도착한다.
032_0459_a_03L從此南入林野中行千五六百里達羅毘荼國南印度境

16) 달라비다국(達羅毗茶國)
달라비다국76)의 둘레는 6천여 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을 건지보라(建志補羅)77)라 부르는데 둘레는 30여 리에 달한다. 토지는 비옥하고 농사는 풍성하다. 꽃과 과일과 보석이 많이 난다. 기후는 무덥고 풍속은 용감하고 억세다. 믿음이 돈독하고 박식한 것을 숭상한다. 그런데 언어와 문자는 중인도와 조금 다르다. 가람은 백여 곳 있고 승도들은 만여 명 있는데, 그들은 모두 상좌부의 가르침을 준수하고 배우고 있다. 천사는 80여 곳 있으며 나형외도들이 많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이 나라에 자주 노니시면서 법을 설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셨다. 그러므로 무우왕은 성스러운 유적지에 모두 솔도파를 세웠다.78)
032_0459_a_05L達羅毘荼國周六千餘里國大都城號逮志補羅周三十餘里土地沃壤稼穡豐盛多花菓出寶物氣序溫暑風俗勇烈深篤信義高尚博識而語文字少異中印度伽藍百餘所徒萬餘人皆遵學上座部法天祠八十餘所多露形外道也如來在世遊此國說法度人故無憂王於諸聖迹皆建窣堵波
건지보라성은 달마파라(達磨波羅)당나라 말로는 호법(護法)이라고 한다보살이 태어난 성이다. 보살은 이 나라 대신의 맏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량이 넓었으며 자라서는 그 기개가 넓고도 깊었다. 약관의 나이에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잔치가 있던 날 밤에 마음이 몹시 우울해지고 슬퍼지자 불상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032_0459_a_14L逮志補羅城者卽達磨波羅唐言護法菩薩本生之城菩薩國大臣之長子也幼懷雅量長而弘年方弱冠王姬下降禮筵之夕心慘悽對佛像前殷懃祈請
지극한 정성에 감응한 바가 있었던지 신이 그를 업고 먼 곳으로 자취를 감추더니 수백 리 떨어진 산 속의 가람에 도착해 불당 안에 들어가 앉아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문을 열고서 소년이던 보살을 발견하였다. 도둑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보살이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대중들이 모두 경이로워 하면서 마침내 출가의 뜻을 받아들였다. 왕이 이에 명을 내려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그를 찾아보게 하였는데, 이윽고 보살이 신에게 의지하여 세속을 멀리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왕은 이 사실을 알고서 더욱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 일었다. 보살은 출가한 뒤 더욱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의 풍모에 대해서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032_0459_a_18L至誠所神負遠遁去此數百里至山伽藍坐佛堂中有僧開戶見此少年疑其盜也更詰問之菩薩具懷指告因請出家衆咸驚異遂允其志王乃宣命推求遐邇乃知菩薩神負遠塵王之知也增深敬異自染衣已篤學精勤令問風範語在前記
032_0459_b_02L성의 남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가람이 있는데, 이 나라에 사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빠짐없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다. 솔도파가 있는데 높이는 백여 척에 달한다. 무우왕이 세운 것으로 여래께서 옛날 이곳에서 법을 설하셔서 외도에게 항복받고 널리 인간과 하늘을 제도하셨다고 한다. 그 옆에는 과거 네 분의 부처님께서 앉거나 거니시던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3천여 리를 가면 말라구타국(秣羅矩吒國)또는 지말라국(枳秣羅國)이라고 하며 남인도의 경계이다에 도착한다.
032_0459_b_02L城南不遠有大伽藍國中聰睿同類萃止有窣堵波高百餘尺無憂王所建也如來在昔於此說法摧伏外道廣度人其側則有過去四佛坐及經行遺迹之所自此南行三千餘里至秣羅矩咤國亦謂枳秣羅國南印度境

17) 말라구타국(秣羅矩吒國)
말라구타국79)의 둘레는 5천여 리에 달하며 나라의 큰 도성80)의 둘레는 40여 리이다. 논과 밭은 소금기가 있어서 땅이 비옥하지 않다. 바닷가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품81)들이 이 나라에 많이 있다. 기후는 무덥고 사람들은 대부분 검다. 성격은 강건하고 억세며, 삿된 가르침과 바른 가르침을 함께 믿고 있다. 학예를 숭상하지 않으며 오직 이익을 쫓을 뿐이다. 가람의 옛 터는 매우 많지만 남아있는 곳은 아주 적고 승도도 적다. 천사는 수백 곳 있으며82) 외도들은 매우 많은데 대부분 나형외도의 무리이다.
032_0459_b_08L秣羅矩咤國周五千餘里國大都城周四十餘里土田舄鹵地利不滋渚諸珍多聚此國氣序炎熱人多釐志性剛烈邪正兼崇不尚遊藝善逐利伽藍故基寔多餘址存者旣僧徒亦寡天祠數百外道甚衆露形之徒也
성의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옛 가람이 있는데 뜰과 건물은 황폐해졌고 그 터만 남아있다. 무우왕의 동생인 대제(大帝)가 세운 것이다. 그 동쪽에 솔도파가 있는데, 기단은 이미 허물어졌고 발우를 엎어놓은 듯한 형상은 아직 남아있으며 이것은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옛날 여래께서 이곳에서 법을 설하시며 신통력을 나타내셔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셨는데,83) 이로써 부처님의 유적지를 나타내기 위해 기념해 세운 것이다. 세월은 이미 오래 지났지만 기도하면 이따금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
032_0459_b_15L城東不遠有故伽藍庭宇荒蕪址尚在無憂王弟大帝之所建也東有窣堵波崇基已陷覆鉢猶存憂王之所建立在昔如來於此說法現大神通度無量衆用彰聖迹故此摽建歲久彌神祈願或遂
032_0459_c_02L나라의 남쪽 바다에 면해서는 말랄야산(秣剌耶山)84)이 있다. 벼랑은 높고 산봉우리는 험하며 동굴 같은 계곡에 깊은 개울이 있다. 이 산 속에는 백단향수(白檀香樹)와 전단니파수(栴檀儞婆樹)가 있다. 나무는 백단(白檀)과 비슷해서 구별할 수가 없다. 다만 한여름에 높은 곳에 올라 멀리서 바라보면 큰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나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그 나무의 성질이 차기 때문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본 뒤에 활을 쏘아 표식을 해두고 겨울이 되어 뱀이 겨울잠을 자는 사이에 벌채하러 간다.
032_0459_b_21L國南濱海有秣剌耶山崇崖峻嶺谷深㵎其中則有白檀香樹栴檀你婆樹類白檀不可以別唯於盛夏高遠瞻其有大蛇縈者於是知之其木性涼冷故蛇盤也旣望見已箭爲記冬蟄之後方乃採伐
갈포라향수(羯布羅香樹)는 소나무와 같은 몸통에 잎이 다르고 꽃과 열매도 다르다. 처음에 잘라내면 습기가 베어 나올 뿐 향기가 풍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무가 마르고 난 뒤에 나이테를 따라 자르면 그 속에 향기가 스며있는데 모양은 운모(雲母)와 같고 빛깔은 얼음이나 눈과도 같이 희다. 이것이 용뇌향(龍腦香)이라 불리는 것이다.
032_0459_c_04L羯布羅香樹松身異葉花菓斯別初採旣濕尚未有香木乾之後循理而析其中有香狀若雲母色如冰雪此所謂龍腦香也
말랄야산의 동쪽에 포달락가산(布呾洛迦山)85)이 있다. 산길은 위험하고 암곡은 가파른데 산꼭대기에 연못이 있다. 그 물은 거울처럼 맑은데 이 물이 흘러내려 큰 강을 이룬다. 두루두루 흘러내리며 산을 감싸고 20겹[匝]으로 돌아서 남해로 들어간다. 연못 옆에는 돌로 만들어진 천궁(天宮)이 있는데 관자재보살이 오가며 머무는 곳이다. 보살을 뵙기를 원하는 자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물을 건너고 산을 오른다. 그 험난함을 무릅쓰고 도달하는 자는 또한 매우 적다. 그리고 산 아래에 사는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뵙기를 청한다면 어떤 때는 자재천의 형상으로 또는 어떤 때는 숯을 바른 외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 사람을 위로하며 그 소원을 들어준다.
032_0459_c_08L秣剌耶山東有布呾落迦山山徑危巖谷攲傾山頂有池其水澄鏡出大河周流繞山二十帀入南海側有石天宮觀自在菩薩往來遊舍其有願見菩薩者不顧身命厲水登忘其艱險能達之者蓋亦寡矣山下居人祈心請見或作自在天形或爲塗灰外道慰喩其人果遂其願
이 산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해안에 성(城)이 있는데 이곳은 남해(南海) 승가라국(僧伽羅國)으로 가는 길이다. 그 지방에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바다로 들어가 동남쪽으로 3천여 리 남짓 가면 승가라국당나라 말로는 집사자(執師子)라고 하는데 인도의 경계는 아니다에 도착한다고 한다.
032_0459_c_16L從此山東北海畔有城是往南海僧伽羅國路聞諸土俗曰從此入海南可三千餘里至僧伽羅國唐言執師子印度之境
大唐西域記卷第十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이 한자에 대응하는 원어(原語)로서는 Hiraṇya-parvata(金山)라고 하는 설과, irāṇa-parvata(沙山)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2. 2)이 수도는 여러 서적에서 모두 지금의 몽기르(Monghyr)에 해당한다고 적고 있다. 예전에는 Modāgiri, Mudgala-giri라고 부르던 곳이다.
  3. 3)『자은전』 3권에는 ‘설일체유부’라고 되어 있다. 물론 둘 다 상좌부에 속하기는 하지만 설일체유부는 화지부(化地部)에 속하고 정량부는 독자부(犢子部)에 속하여 교의를 달리하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지 가려내기 어렵다. 현장의 소전(所傳)에 의한 인도 부파의 분포를 보자면 대략 설일체유부는 서북 인도로부터 서역에 걸쳐 번영하였고 정량부는 중인도로부터 서부ㆍ남부 인도에서 번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
  4. 4)불교를 보호한 이 이웃나라의 왕은 아마 희증왕(喜增王, Harṣa)일 것으로 추측된다.
  5. 5)‘큰 성의 옆’이라는 말만 있기 때문에 정확한 방위나 거리를 알 수 없다. 현재의 몽기르시 동쪽 3마일에 위치한 Pirpahar라 불리는 언덕이 있는데 경치도 좋고 온천도 있어서 유명하다. 어쩌면 이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6. 6)이것을 화산활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설과 빼어난 경치이면서도 화산을 설명한 것이라고 보는 설이 있다. 근래에는 1934년 1월, 화산활동에 의한 것으로 추측되는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이 도시도 커다란 손해를 입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는 앞의 설을 따라도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7. 7)범어로는 śrotra-viṃśati-koṭī이며 보통 불전에서는 śroṇa-koṭi-viṃsá로 등장하고 있으며 수루나이십억(首樓那二十億)ㆍ실로나이십구지(室路拏二十俱底)ㆍ이십억이(二十億耳)ㆍ억이(億耳) 등으로 옮기고 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정진제일(精進第一)로 일컬어지고 있다.
  8. 8)범어로는 Sūrya이며 소리야(蘇利耶)ㆍ소리야(蘇利也)ㆍ소리야(素利也) 등으로 음사하며 일천자(日天子)ㆍ일신(日神)으로 번역한다. 태양을 의인화한 신으로 금색 마차에 올라 일곱 명의 아들(七子, 즉 七曜)을 거느리고 하늘을 주행한다고 한다. 바미얀의 35미터에 달하는 부처님의 머리 위에 그린 벽화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 9)이 산은 Waddel에 의하면 지금의 몽기르시 서남쪽 20마일 지점, 갠지스강가로부터 남쪽으로 7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는 Uren산이라고 하며, 그곳에는 불상ㆍ비문ㆍ불족석(佛足石) 등이 발굴된 유적지가 있다.
  10. 10)범어로는 kuṇḍikā이며 수병(水甁)ㆍ조병(藻甁)ㆍ정병(淨甁)ㆍ조관(澡罐) 등으로 번역하며 비구의 열여덟 가지 물품 가운데 하나로써 보통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보살 등의 도상(圖像)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11. 11)범어로는 campā이며 첨복(瞻蔔)ㆍ첨파(瞻婆)ㆍ천복(闡蔔)ㆍ전파(栴波)ㆍ점파(占波) 등으로 음사하며, 무승(無勝)이라 번역한다. 첨파강(지금의 Chāndan)과 갠지스강에 접해 있다. 부처님 시절에는 인도 16대국 가운데 하나였던 앙가(鴦伽, Anga)국으로서 번영하였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점파(占波:챰파)는 이 지역에서 이주한 자들이 그 출신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2. 12)12)몽기르의 동남동쪽, 지금의 바갈푸르Bhāgalpur와 가까운 곳에 Campanagara와 Campapura라고 하는 두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 이 수도의 유적지이다. 부처님 시절에는 인도의 6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통상무역의 주요도시로서 번영하였던 곳이다.
  13. 13)첨파국 왕비 Gaggarā가 팠다고 하는 Gaggarāpokkharaṇi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머물면서 여러 가지 경전을 설하셨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장아함경』 권15)
  14. 14)범어로는 kacughira이며 위치는 앞에서 등장한 첨파국인 바가르푸르로부터 동남동쪽으로 약 80마일 떨어진, 갠지스강이 크게 남쪽으로 굽어진 곳의 서안(西岸)인 Rajmahal(본래는 Kānkojl이라고 불렀다)로 여겨진다. 부처님께서 한때 이곳에서 머무셨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15. 15)현장이 방문할 당시는 희증왕(喜增王)의 통치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6. 16)당시는 이곳이 중인도의 동쪽 끝이며, 여기서 더 동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변방 국가로 여겨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시던 시절에는 이곳에서도 식량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17. 17)범어로는 punna-vardhana이며 지금의 동파키스탄의 Rajshahi, Bogra 부근에 해당한다.
  18. 18)이 수도의 옛 터는 지금의 Bogra거리에서 8마일 북쪽에 위치해 있는 Mahasthan으로 추정되고 있다.
  19. 19)박과에 딸린 1년생 만초(蔓草)로 수박과 비슷하다.
  20. 20)소나무의 뿌리에 기생하는 담자균류(擔子菌類)에 속하는 버섯의 한 가지이다. 둥글게 생긴 것으로 겉은 흑갈색, 내육(內肉)은 백색, 또는 담홍색이다. 수종(水腫)이나 임질 등에 이뇨제로 쓰인다.
  21. 21)원음은 vāśibhā로 추정된다. 이 사원 터는 현재 Mahāsthān의 서북쪽으로 4마일, Bihar와 Vasu-Bihar 두 마을에 걸쳐서 남아있으며 굽타 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22. 22)범어로는 kāma-rūpa이며 위치는 앗삼(Assam)의 서부에 해당한다.
  23. 23)통설(通說)로서, Purāṇa에서도 보이는 Prāgjyotisapura, 즉 지금의 고하티(Gauhati)가 주도(主都)이며 브라마푸트라강을 앞서서 건넌다는 ‘큰 강’이라고 보고 있다.
  24. 24)앗삼 계곡에서 쓰이는 인도, 유럽어는 Assamese라 불리며, 이 지대에는 인도문화에 물들지 않은 티벳, 미얀마어족(語族)도 있다. 서쪽은 벵갈어에 접하고 있다. 어느 것이든 동부 방언에 속한다.
  25. 25)범어로는 bhāskara-varman이며 일주(日冑)라고 번역한다.
  26. 26)이것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자은전』 5권에 실려있다.
  27. 27)미얀마의 북부로부터 중국의 사천(四川)ㆍ운남(雲南)ㆍ귀주(貴州)성에 걸친 지대이며, 서장족(西藏族)ㆍ태족(泰族)ㆍ묘족(苗族)이 살고 있다.
  28. 28)만(蠻)은 만자(蠻子)ㆍ만가(蠻家)로도 불렸던 옛 명칭이며, 또한 라라(儸儸, Lo-lo)라고도 불렸다. 지금도 이족(彛族)으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귀주(貴州)ㆍ운남(雲南)ㆍ사천성(四川省)으로부터 미얀마ㆍ타이에 걸친 지역에 사는 산지족(山地族)이다. 료(獠)도 같은 지역에 사는 미개민족으로 인종ㆍ언어ㆍ문화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알 수 없다.
  29. 29)범어로는 samataṭa이며 국명의 의미는 해빈국(海濱國), 평지국(平地國)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굽타왕조에 속하는 동방의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지금의 동파키스탄, 갠지스강 하구의 사각주 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 나라에 대해서는 의정(義淨)의 『서역구법고승전(西域求法高僧傳)』 하권의 승철(僧哲)에 관한 항목에도 나타난다.
  30. 30)예전의 Karmānta, 즉 Comilla의 서쪽 12마일 지점에 위치해 있는 Bād-Kāmta로 추정되고 있다.
  31. 31)아육왕 솔도파에 대한 가장 동쪽에 위치한 기사(記事)이다.
  32. 32)부처님께서는 본래 이 지방에 온 적이 없는데, 이와 같은 전설은 불교 전래 이후 덧붙여진 이야기들이다.
  33. 33)범어로는 śri-kṣatra이며 미얀마사(史)에서는 불력(佛曆) 제60년(B.C. 484)에 Mahāsambhava왕이 Thare Khettara(즉 sri-ksatra)라고 하는 도시를 만들어서 Prome 왕조를 창시하였다고 한다. 이 유적은 지금도 현재의 Irāwādi강 가의 Prome 거리 동쪽 수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다.
  34. 34)범어로는 kāma-laṅka이며 지금의 Pegu와 이라와디강 하구의 델타 지대에 해당한다.
  35. 35)범어로는 dvārapati이며 『남해기귀내법전』에서는 두화발저(杜和鉢底), 『구당서(舊唐書)』에는 타화라(墮和羅), 『신당서(新唐書)』에는 독화라(獨和羅)라고 음사되어 있다. 샴의 구도(舊都) Ayuthya 또는 Ayudhya의 범명(梵名)이라고 한다.
  36. 36)범어로는 īśānapura이며 『당서(唐書)』 「진랍국(眞臘國)」 항목에 “그 왕 크샤트리야인 이금나(伊金那)가 정관(貞觀) 초에 부납(扶南)을 병합하여 그 땅을 가졌다”고 하는 Īśānavarman왕이 의거하는 곳이다. 진랍은 캄보디아다. 그리고 수도는 지금의 Sambor Prei Kuk인 것으로 보이며, 이 지역에서 7세기 초엽의 진납왕 비명이 나왔다.
  37. 37)범어로는 mahā campā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남 해안에 위치해 있다.
  38. 38)범어로는 yamana이며 지금의 Java에 해당하는 곳이 아닐까 추측된다.
  39. 39)범어로는 tāmra-liptī이며 갠지스강 하구에서 여러 흐름의 서쪽 끝인 Hooghly강의 서안(西岸)에 있는 탐루크(Tamlūk)로 추정되고 있다. 이 도시는 마하바라타에도 보이며, Ptolemy의 지리서에는 Tamalites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지역은 중국이나 이집트 등과의 통상 관계에도 등장하는 곳이었다.
  40. 40)이 지역에 아육왕이 불솔도파를 세웠다고 하는 옛 기록도 없고 더욱이 유적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아육왕과 세일론과의 교섭에 이 지역이 종종 통과지점으로서 등장하는 점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아육왕솔도파가 있었다고 하는 현장의 기사는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41. 41)범어로는 karṇasuvarṇa이며 금이국(金耳國)이란 뜻이다. 설상가왕(設賞迦王)이 지내던 지역이다. 갠지스강 서안(西岸) Murshidabad현의 Rāṅgāmāṭi로 추정되고 있다.
  42. 42)범어로는 rakta-mṛttikā이며 적니사(赤泥寺)라는 뜻으로 이 지역의 흙이 붉은 데에서 온 이름일 것이다.
  43. 43)범어로는 uḍra, oḍra이며 지금의 Orissa 북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44. 44)서부 오릿사의 주민 중에는 지금도 드라비다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현장의 기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45. 45)당나라 덕종(德宗)의 정원(貞元) 11년(795), 오다국의 길상자재작청정사자왕(吉祥自在作淸淨師子王)은 자신이 베껴 쓴 범본 『화엄경』을 바치고 동(同) 14년에 반야(般若 Prajña)가 이것을 한역해서 다시 40권으로 만들었다. 대승불교가 번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6. 46)범어로는 puṣpa-giri이며 ‘꽃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 거대한 산은 부바네스와르(Bhubaneswar)시의 서쪽 약 4마일 떨어진 지점의 Khurdā에 있는 Khandagiri로 추정된다.
  47. 47)이것을 우다야기리(Udayagiri)로 추정한다. 이 두 산의 동굴은 옛날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 전후에 걸쳐 자이나교에 속해 있었다.
  48. 48)범어로는 caritra이며 ‘간다’라는 뜻이다. ‘발행(發行)’, ‘출발’의 뜻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푸리(Puri)시에 해당한다는 설과 지금의 마하나디Mahānadī강 연안, 카탓그시의 하류 15마일 지점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49. 49)범어로는 koṅgoda이며 지금의 오릿사의 간쟘(Ganjām)현으로 추정하고 있다. 설상가왕에게 예속되어 있다가 희증왕에게 정복되었다.
  50. 50)칠카(Chilka)호수의 동남쪽 끝에 가까운 지금의 간쟘시 부근인 Jaugaḍa로 추정된다.
  51. 51)이 지역은 동쪽으로 벵갈만에 임해 있고 서쪽은 Eastern Ghats 산맥에 막혀 있는 길고 좁은 해안을 끼고 생긴 토지이며 구릉이 많다.
  52. 52)문자가 동인도와 같다고 하는 현장의 기술은 7세기까지 아직 정치와 불교가 이 지방에서 같은 문화권 안에서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 차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현재는 드라비다어에 속하는 Kui(Khand)어를 쓰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53. 53)범어로는 kaliṅga이며 가릉가(迦陵伽)ㆍ갈령갈(葛令葛) 등으로 음사한다. 보통은 북쪽으로는 마하나다강으로부터 남쪽으로는 고다바리(Godāvari)강 사이를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간쟘으로부터 남쪽을 가리킨다. 이 지대는 지리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으며 고대로부터 독자적인 풍습을 형성하고 있었다.
  54. 54)이 지역은 현재는 Telugu어권에 속한다.
  55. 55)‘옛날’이라는 것이 어느 시대를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 지방이 중인도와 일찍부터 교섭 교류했다고 보는 이유는 팔리 불전에 그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262년 무렵에 아육왕이 이 나라를 정복하여 15만 명의 포로, 10만 명의 전사자를 제외하고도 그 몇 배가 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이다.
  56. 56)거대한 산은 Mahendragiri일 것으로 추정된다.
  57. 57)범어로는 kosala이며 보통 불전 등에서 교살라(憍薩羅)라고 말하는 나라는 사위성, 즉 본서에서 실라벌실지성을 도읍으로 하는 실라벌실지국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라와는 다르다. 중인도에 속하는 내륙지방에 위치해 있다.
  58. 58)언어는 중인도의 언어를 쓰고 있는데 물론 인도 아리야어를 쓰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부 Hindi 방언에 속하는 어권(語圈)으로 분류하고 있다.
  59. 59)범어로는 sātavāhana이며 이 성(姓)은 안드라Āndhra 왕조의 성으로서 마우리야 왕조가 쇠퇴한 후에 그 세력이 급속히 늘어나 2세기에는 그 영역을 데칸고원 전체로 넓혔지만 225년에 멸망하였다.
  60. 60)범어로는 bhrāmara-giri이며 이 산과 가람에 대해서는 『법현전』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61. 61)범어로는 āndhra이며 현재는 하이데라바드(Hyderabad)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을 안드라(Andhra)라고 부르는데, 옛날에는 고다바리강과 크리슈나강 사이를 가리켰다. 주로 드라비다인이 살고 있다.
  62. 62)범어로는 veṅgī이며 지금의 엘로르(Ellore)의 서북쪽 6마일 떨어진 지점에 Pedda vegi와 Cinna vegi 두 마을의 부근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Mahendra산, 남쪽으로는 Manneru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이다.
  63. 63)지금은 드라비디어게인 Telugu어에 속하고, 남방인도계인 고대 카나라 문자와 거의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 현장의 기록으로 보아 7세기에 여전히 이 지역도 중인도와 문화적 공통권에 있었으며 불교 문화의 세력이 멸절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64. 64)이 지역은 옛날에는 마게타국에 버금가는 강국이었으며, 아육왕도 이를 중시하여 대천(大天, Mahādeva)을 포교차 파견한 곳이다. 대중부가 성행하였으며 용수 이후 대승불교가 보급되었다.
  65. 65)이것도 물론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며,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지방을 다녀가셨던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66. 66)범어로는 datta이다. 인명학(因明學)의 대논사이며 용수나 무착ㆍ세친의 고인명(古因明)에 대한 신인명학(新因明學)의 조사로 여겨진다. 또한 문장력이 매우 뛰어나서 희곡 Kundamālā는 이 스님의 창작이라고 한다. 5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에 걸친 인물이다.
  67. 67)범어로는 dhānya-kaṭaka이며 크리슈나강 하구에 가까운 연안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68. 68)크리슈나강 남안(南岸)의 아마라바티 대솔도파의 서쪽 1마일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Dhāraṇikoṭṭa 부근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69. 69)이 지역은 아육왕 시절에 대천(大天)이 포교한 이래, 자유로운 사상인 대중부가 보급되어 자연히 대승사상이 된 경향이 있다.
  70. 70)범어로는 pūrva-śaila이며 동산(東山)으로 번역한다. 아마라바티의 서남쪽에 있는 유명한 대솔도파의 소재지로 추정된다.
  71. 71)범어로는 avara-śaila이며 서산(西山)이라는 뜻이다. 아마라바티의 서쪽 1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는 Dhāraṇi-koṭṭa로 추정된다. 이 동서의 두 사원의 중간에 수도(首都)가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72. 72)범어로는 bhāviveka이며 청변(淸辯)ㆍ명변(明辯)ㆍ분별명(分別明)으로 번역한다. 남인도 왕족 출신으로, 중인도에서 대승의 경전들과 용수의 논의를 듣고서 다시 남인도에 가서 교법을 널리 펼쳤으며, 『중론(中論)』에 대한 석(釋)을 짓고 천 명의 문인(門人)들을 두었다고 한다. 한역경장 중에는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 2권,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 15권이 전하고 있다.
  73. 73)범명은 Mahākāruṇikacitta-dhāraṇi이며 천수천안관세음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觀世音大悲心陀羅尼)를 줄인 말이다.
  74. 74)한역 중에 있는 『금강장다라니경(金剛藏陀羅尼經)』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75. 75)범어로는 coḍa, coḷa 등이다. 아육왕 마애조칙에도 Coḍa 종족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른바 Coḷa국(Śoramaṇḍalam)은 지금의 Pennel강으로부터 Vellar강에 이르는 해안 지방이며, 그 수도는 남방의 Uraiyūr였는데, 현장 당시에는 남방의 팔라바 왕조에게 예속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아마도 현재의 넬로르(Nellore)를 중심으로 하는 Pennel강 지역인 것으로 생각된다.
  76. 76)범어로는 dravida이며 달라비다(達羅鼻茶)ㆍ달라비타(達羅比吒)로도 음사한다. 드라비다라는 말은 민족명이나 언어명에도 사용된다. 언어명으로서는 남인도에 널리 퍼져있는 대어족(大語族)의 총칭이며, 여기에는 Temil, Kanarese, Telugu, Malayālam 그리고 나아가 Kodaga 등의 언어가 포함된다. 민족명으로서는 옛날 5세기의 『마하밤사[大史]』에는 Dāmiḷa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Tamil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이며, 또한 Dramiḍa라는 말도 보인다.
  77. 77)범어는 kāñci-pura이며 지금의 Palar강에 면한 Conjeeveram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큰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78. 78)석가모니부처님은 이 나라를 다녀가지 않았으며 아육왕 솔도파도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79. 79)범어로는 malakuṭa이며 현장이 직접 방문한 나라가 아니라 전해들은 나라이다.
  80. 80)현재의 마두라(Madura)로 추정된다.
  81. 81)인도 대륙의 남단과 세일론 사이에 끼여 있는 만나로(Mannar)만에서 나는 진주는 예로부터 매우 귀중하게 여겨졌으며, 그 중 가장 우수한 것을 여의보주(如意寶珠)라고 불렀고 둘도 없는 진귀한 보배로 여겼다.
  82. 82)이 지방은 오늘날에도 힌두교의 대사원이 대단히 많다.
  83. 83)역시 부처님이 이 나라를 다녀간 적은 없으며 불교가 전래된 뒤의 전설로 보인다.
  84. 84)범어로는 malaya이며 서해안에 연한 Eastern Ghats 산맥의 남부, 지금의 Cardamon 산맥으로 추정된다.
  85. 85)범어로는 potalaka이며 보타락가(補陀落迦)ㆍ보타라(普陀落)라고도 하며 광명산(光明山)ㆍ해도산(海島山)ㆍ소화수산(小花樹山) 등으로 번역한다. 전설상의 산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이것을 인도 대륙 남단에 위치한 Pāpanāsam산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