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했다. “천상에는 땅이 없다는데, 정말로 이러하다면 천존의 위신력(威信力)도 거짓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경문(經文)에 의하면 천존이 사람을 제도하고자 경을 설할 때에 7일 7야1) 동안 여러 천상의 일월과 선(璿)ㆍ기(璣)ㆍ옥형(玉衡)2)이 일시에 윤전을 멈췄고, 신풍(神風)도 고요해지고, 산해(山海)가 구름을 감추었기에 하늘에 떠서 가리는 것이 없어 4기(氣)가 맑았다고 하는데, 이는 위신력에서 그리된 것입니다. 성덕이 영감(靈感)하기 때문에 일월이 경(景)에 머물러 운행을 그쳤고, 바람이 구름과 안개를 거두어 맑게 하였으니, 대성(大聖)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하늘이 없다고 했더니, 도리어 하늘이 있다고 알아듣는구나. 땅이 없어도 땅에 서듯이 하고, 일월이 붓끝에 따르고, 풍운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인다는 것도, 사실을 따져 논하자면 그런 일은 없다. 선(璿)ㆍ기(璣)가 돌아가며 금혼(金渾)이 4상(象)에 응하는 것은 3백65도(度)의 4분의 1도이니, 열두 번 교차하고 주야(晝夜)로 백각(百刻)인데, 주위를 돌면서 왕복하는 것을 어찌 잠시라도 멈추겠는가? 춘분과 추분의 2분(分)과 동지와 하지의 2지(至)가 연이어 차고 기울기에 대수(大數)에는 모자람이 없다. 일식이나 월식으로 박야(薄夜)하여 시간이 어긋나거나 운행의 차제가 도수(度數)를 잃으면 사책(史策)에 반드시 이를 써서 천사(天事)를 기록하였다. 일도(日度)가 약간만 길더라도 길조라 하여 오히려 사책(史策)에 써서 후대에 알렸는데, 하물며 하늘이 한 번에 7백 각이나 돌지 않았다면 천지가 생긴 이래로 이와 같이 큰 서응(瑞應)이 없었을 것이니, 이는 사적을 별도로 꾸며낸 것이다. 여러 간첩(簡牒)에 비춰 보더라도 전재되어 기록된 것이 없으니, 분명히 이는 거짓이다. 혹 이 같은 선기ㆍ일월ㆍ풍운ㆍ산해 따위를 논하여, 이는 천상의 하늘이지 인간의 하늘이 아니라고도 말하는데, 도리어 천상 세계에는 일월이 없고 자연의 광명으로 멀거나 가깝거나 서로 비추면서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주야로 삼는 것이 이 땅과는 서로 같지 않다. 송문명 등이 단지 이 땅의 일월과 산해를 보고 천상도 이와 같다고 여겨서 일월ㆍ풍운ㆍ산해 따위의 물건이 있다고 하였으나, 여러 하늘 위에는 원래 이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 거룩한 가르침에 상세히 나와 있음을 몰랐으니, 이는 대략이나마 그 거짓됨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하늘 위에 일월 따위가 없다고 선생께서 말씀하시나, 천존이 경을 설하는 이익은 실로 막대합니다. 경전에서는 천존이 사람을 제도하고자 경전을 설하자, 한 번은 한 나라의 남녀로써 귀머거리였던 이들이 모두 들리게 되었다 하며, 두 번째는 장님의 눈이 밝아지고, 세 번째는 벙어리가 말을 하고, 네 번째에 절름발이가 걸었다 하니, 이렇게 열 번을 채우기까지 임신을 못한 부인(婦人)이 잉태를 하고, 새나 짐승이 새끼를 배고, 이미 태어났거나 태어나지 않았거나 모두 무사히 태어나 자라고, 땅 속에서 숨겨져 있던 금과 옥이 그 형체를 드러내고, 백골이 모두 살아나 다시 사람이 되었다 하니, 이를 빌미하여 신공(神功)이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말했다. “그대도 어떤 사람이 잠자면서 꿈을 꾸다가 꿈속에서 또 꿈을 풀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진대, 과연 지금이 그 꼴이구나. 아무리 말해도 그대가 여전히 고집을 부리니, 어찌 꿈속에서 꿈을 풀이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내가 그대에게 하늘 위와 하늘 아래의 경계가 뛰어나고 열악한 것이 같지 않다고 말했는데, 어찌 장님ㆍ귀머거리ㆍ벙어리ㆍ절름발이의 병이 있겠는가? 또한 묘지나 해골의 더러움도 없다. 비록 죽고 사는 일이 있다 하나, 모두 변화에서 일어나는지라 출산 없이 태어나고 시체 없이 죽는 것이다. 지금 이 경전에서는 천존이 시청천(始靑天)에서 설법하였다고 하면서, 한 나라의 남녀를 거론하는데, 천상에 어찌 나라가 있으며 또 장님ㆍ귀머거리 따위의 병이 있겠는가? 실로 천상에는 이러한 질병이 없다. 이 경문의 근거가 원래 천상에 의탁한 것이 아니라, 선하고 악한 것을 자신의 생각으로 꾸며서 이 같은 위경을 날조하였으므로, 이는 저자 거리에서나 떠드는 헛소리일 뿐이지 근거 있는 고상한 말이라 할 수 없어서, 그 날조된 경위가 또 한 번 드러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거짓 아닌 것이 없다 하시나 도가의 법은 전파되고서 세월이 오래되었기에 가르침의 자취가 한 가지 이치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으로 갈라졌습니다. 삼세의 인과와 육도(六道)의 업연(業緣)과 지옥ㆍ천당의 죄복(罪福)의 보응(報應)은 분명하여 어둡지 않으니, 이 어찌 헛된 말이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이 또한 거짓이다. 천존의 일과 영보의 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되어 증거할 수 없는데, 본시 도가의 종지란 것이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에 불과하고, 그 다음이 장주(莊周)의 책인데 여기에 더하여 열어구(列禦寇)의 글을 보아도, 끝내 삼세에 대한 말이 없다. 또한 인과라는 글도 없는 데다 육도(六道)의 근본조차 밝히지 않았는데, 어찌 업연의 이치를 기술하였겠는가? 지옥과 천당도 언급하는 대목이 없고, 죄와 복의 보응도 연유를 밝힌 것이 없다. 여타의 잡스러운 경전은 모두가 육수정(陸修靜) 등이 불경을 표절하여 망령되게 안치한 것으로, 비록 명목은 있을지라도 지귀(指歸)가 없는 것이다. 내가 다시 다른 예를 들어 논해 보겠다. 도가에서는 천존이 경을 설한 것이 요순 이전의 상황(上皇)의 시대라는데, 그때에는 풍속이 질박하여 술 마시는 습관조차 없었고, 남을 망령되이 속인다는 마음도 없었으니, 바로 이때가 ‘무위(無爲)의 화(化)’이다. 노자가 경을 설하던 당시에는 이미 주나라가 쇠퇴하는 말엽이었고 제왕의 말세였으니, 위로는 임금이 우매하고 아래로는 신하가 어지럽혔다. 정벌(征伐)이 천자(天子)에 연유하지 않고 예악(禮樂)조차 제후(諸侯)에게서 나왔으며, 대국(大國)은 강한 것을 믿고 소국(小國)을 침범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지고 풍속이 변하여 경박해졌다. 어떤 이유에서 천존은 순박한 시대에 임해서도 지옥ㆍ천당의 죄와 복의 인과와 삼세육도(三世六道)의 응보와 업연을 설했으며, 노자는 경박한 시대를 당해서도 단지 무위무사(無爲無事)하여 태평스럽게 마음 비워 유유자적하며 욕심없이 기회를 기다리는 이치만 설했으니, 어찌 상쾌하다 하겠는가? 이치로서 미루어 보면 이 또한 거짓이니, 어찌 기만이 아니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선대의 천존을 선생께서 거짓이라 말씀하셨으니 후대의 정신(靜信)도 어찌 망령되지 않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이를 상세히 밝히셔서 허망함이 없게 하십시오. 도가의 경전에 의거하면, 악정신(樂靜信)은 숙세에 선재(仙才)를 이루어 일찍이 덕의 근본을 심은 데다, 공(功)이 원만해지고 행(行)이 이루어지자 도를 깨우쳐 천존이 되고서, 가르침의 자취를 크게 펴고자 경론을 널리 연설했다는데, 이것이 어찌 거짓이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상고(上古)라는 것도 원래 없는데, 어찌 원시(元始)라는 것을 거짓으로라도 이룰 수 있겠는가? 하대(下代)란 것도 똑같이 거짓인데, 어찌 천존이 거짓으로 세워진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대가 앞서는 근본에 미혹하더니, 지금은 말단에서 헤매는구나. 근원을 속이면서 유파를 따르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이처럼 송문명 등이 원시천존(元始天尊:도교에서 제일 높은 신)을 세운 것도, 본시 근거 없음을 알 수 있으리라. 불경은 석가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 수도하여 불과(佛果)를 증득한 것을 설한 것인데, 이를 빗대어 거짓으로 악정신이 도를 닦아 천존을 증득하였다고 날조한 것이다. 아울러 경전의 가르침에 인과 따위의 일을 함께 논했다고 설하였으나, 해를 따라 그림자를 숨기면서 되풀이하여 배우더라도 마음만 피로해지고, 숨기려 해도 드러나서 거짓된 자취가 날로 뚜렷해진다. 단지 바깥으로 속가의 학문이 없는 것만이 아니기에, 성(姓)을 얻은 이유조차 모르는 데다 안으로도 식지(識智)조차 없어서 교주를 내세운 것이 허위임을 깨닫지도 못한다. 악씨(樂氏)란 성은 악장(樂正) 자춘(子春)에게서 나왔으나, 자춘은 은(殷)나라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관리였다. 관직에 기인하여 씨(氏)를 부여받은 후에 악씨란 성을 가졌으므로, 그 햇수가 가깝고 먼 것은 고증해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정신(靜信)이 실제로 천존을 성취하였다면, 마땅히 은나라의 말엽에서 주나라 초년에 해당하는데, 『상서(尙書)』와 『주서(周書)』에는 어찌 실리지 않았는가? 『사기(史記)』와 『통기(洞記)』에는 어째서 씌어져 있지 않은가? 또한 정신이 교화한 지역을 살펴보더라도 종당엔 그 장소가 없으니, 동으로는 일굴(日窟)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월취(月竁)를 다하고, 북쪽으로는 현주(玄洲)를 가리키고, 남쪽으로는 단포(丹浦)에 이르렀다 하나, 그 경계가 되는 땅을 조사해 보면, 정신이 머무른 곳이 없다. 차라리 향초(香草)가 길게 자랐다고 말하면 혹 놀라서라도 그 설법을 보고 들으려 하겠으나, 부용꽃이 교목(喬木)에 피었다는 격이니 상도에 벗어난 말은 도리어 혐오하는 마음을 품게 하니, 스스로 함정에 빠져 죽는 것을 어지 알기나 하였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원시법신(元始法身)은 정신에게 보응된 과(果)입니다. 모두 날조인지라 한 가지도 실한 존재가 없다 하시나 저의 어리석음으로는 다른 미혹이 없지 않습니다. 서(書)와 사(史)를 표절하였더라도 모두가 실다운 종지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높으신 뜻을 가벼이 여기시면 엎드려 용서로 빌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그대의 말이 어찌 이리 심한가? 나는 어려서 삼분(三墳:三皇의 책)ㆍ오전(五典:五帝의 책)을 열독하고 장성하여서는 명(名)과 이(理)를 연구하였으므로, 햇수가 지남에 명(命)을 알고 기미(幾微)를 연찬하면서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이 우주 사이를 둘러보면서 말 상대가 없음을 한탄하다가, 시대를 거슬러 살펴보고 지음(知音)이 드문 것이 한스러웠는데, 그대와 담론하여도 회포를 풀지 못하겠다. 만약 헛된 것으로 실다운 것을 이루고 거짓으로 참다움을 변화시킨다면, 이 또한 그 공이 조화하는 공을 꾀하고, 그 힘이 도균(陶鈞)의 힘에 이르는 것이니, 한 번 귀를 씻어냈으면, 그대는 이처럼 말을 가벼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천존이 서ㆍ사에 실리지 않은 것을 빌미로 허망하다 하셨는데 저 역시도 참으로 그런가 합니다. 그러나 영보(靈寶)의 경전은 전(典)ㆍ기(記)에 모두 실려 있으니, 이 어찌 허위이겠습니까? 오(吳)ㆍ초(楚)의 『춘추(春秋)』나 월(越)ㆍ절(絶)의 서(書)에 따르면, 모두 우(禹)가 홍수를 다스리고 목덕산(牧德山)에 이르자, 여기서 신인(神人)을 만났는데, 우에게 ‘그대가 몸을 지치게 하고, 그대가 심려를 고달프게 하면서 홍수를 다스리되 게을리 하지 않는구나’라고 말하자, 우는 저이가 신인임을 알고 거듭 절하면서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신인이 ‘나에게 영보(靈寶)의 5부(符)가 있어 교룡(蛟龍)과 수표(水豹)를 부릴 수 있으니, 그대가 이를 지니면 머지않아서 이룩되리라’고 말하자, 우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청하였기에, 이를 내주면서 우에게 ‘일이 끝나면 영산(靈山)에 감춰서 사람에게 대를 이어 전하지 말라’고 훈계했으므로 우가 이를 써서 그 공을 크게 이룩하였다 합니다. 일이 끝나자 동정(洞庭) 포산(苞山)의 동굴에 숨겨두었는데, 오왕(吳王) 합려(闔閭)의 때에 용위장인(龍威丈人)이 동정의 포산에서 이 5부를 얻고 오왕 합려에게 바치자 오왕이 이를 얻고서 여러 신하들에게 보였으나 모두 알지 못하였다 합니다. 노 나라 공구(孔丘)라는 이가 박식하고 옛 것을 많이 안다는 것을 듣고 사람을 시켜 5부를 가지고 공구에게 묻게 하면서, ‘오왕이 한거(閑居)하다가 붉은 까마귀가 이 책을 물어다 왕의 처소에 놓았으나 그 글을 알지 못하기에 여쭤보고자 멀리서 왔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공구가 이를 보고서 사자에게 ‘내가 듣자 하니,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적에 목덕산에서 신인을 만나 영보의 5부를 받았으나 나중에 동정의 포산에 감춰두었는데, 그대의 임금이 얻은 것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붉은 까마귀의 일은 나도 상세하지 않으나, 예전에 강좌에서 아이들이 노래 부르면서, ≺우가 홍수를 다스리고 5부를 얻어 동정의 포산에 감췄으니 호수의 용위장인이 우(禹)의 서(書)을 훔쳤으되 내 서를 얻는 자는 나라를 잃으리라≻고 말했다’고 전하는데, 과연 뒤이어 오나라가 멸망하였습니다. 이 같은 사적은 분명하게 서ㆍ사에 실려 있는데도 이를 허구라고 이르니, 그 말에 어찌 하자가 없겠습니까?” 선생이 마침내 크게 웃으면서 공자에게 말했다. “그대에게 하한(河漢)의 언사(言詞)를 쏟아내고, 뇌정(雷霆)의 울림을 발하고, 견백(堅白)의 변론으로 일러주더라도, 여전히 저자에서 염색하는 얘기뿐이구나. 이로 보면 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대에게 『영보경』이 거짓인 것을 논하였으나 아직 영보의 부적이 그릇된 것을 말하지 않았으니, 만약 부적을 인용하여 경을 증명하더라도, 이는 불을 가리켜 물이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오(吳)ㆍ초(楚)의 『춘추』는 근대에야 찬술되었고 월(越)ㆍ절(絶)의 서(書)가 편수된 것도 오래지 않으니, 제 아무리 실답다 하더라도 경의 실례(實例)가 되지 못한다. 또한 부적을 영보라 제호하였으니, 이 같은 부적이 영험함을 나타내어 효험을 볼 수 있다면 참으로 귀중하다 하겠다. 이같이 부적의 공을 표창하더라도 그 쓰임새가 경전의 묘종(妙宗)을 적시하지 못한다. 본래가 귀신의 녹(籙)이나 술법(術法)의 일인데, 어찌 장도릉이 부적을 망령되게 노자(老子)가 내렸다거나, 하후(夏后)의 부(符)라 이를 수 있는가? 원래 억지로 노자의 부(符)라 하는 것은 『영보경』의 성립을 바라는 의도이니, 사실에 그 유를 비교한다면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또 『삼분(三墳)』ㆍ『오전(五典)』은 당우(唐虞) 이전의 일이니, 역(易)을 찬술하고 시(詩)를 편수한 것도 공구(孔丘)가 희조(姬朝) 때에 찬술하였는데, 어찌 분(墳)ㆍ전(典)을 모두 속서(俗書)라 이르면서 선니(宣尼)가 지은 것을 증명하겠는가? 이것을 저것으로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또 영보의 일에는 두 가지 이치가 있으니, 만약 절ㆍ월 따위의 서라 하더라도 송문명이 이전에 날조한 것이 들어 있으니, 송문명 등이 부적을 취하고서 영보라고 거짓으로 제목을 붙여 찬술한 것이다. 만약 송문명 이후에 이 같은 두 가지 서가 편수되었다면 모두 거짓이다. 망령되게 5부(符)의 자취를 창작하여 영보의 경 제목을 증거 삼고자 하였으니, 사실로써 전후를 따지면 모두가 거짓이다. 또 오왕이 부적을 얻고서 그 나라를 잃었다면 이것은 요망한 서(書)이지 어찌 자비의 가르침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몸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 것이 영보의 부(符) 때문인데도, 한갓 이를 빛내고 드러내고자 하나 어찌 그 재앙을 은폐할 수 있겠는가? 말을 꾸며 헛되게 숭상하면서 여의주를 얻은 것같이 하여도, 그 근본을 따지고 본원을 찾아보면 물고기 눈알에 불과하니3), 이처럼 말이 그릇되었다 함은 도리어 그대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영보(靈寶)의 가르침이 거짓된 것이 말씀과 같더라도 노자의 서(書)도 어찌 거짓이라 칭하겠습니까? 호인(胡人)으로 화현하여 부처를 이룬 것까지 그 사적이 확연하니, 『윤희전(尹喜傳)』에서 관문(關門)을 나갔다고 말하는 것까지 모두 적혀 있는 데다, 『원시내전(元始內傳)』이나 『화호경(化胡經)』에도 등재되어 모두 그 연유를 기술하고 있으니, 이는 무고(無故)가 아니라 실다운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이 또한 영보에서 날조한 것이다. 노자가 주나라에 봉직하며 주하사(柱下史)로 있다가 나중에 서쪽의 유사(流沙)로 가서 함곡관(函谷關)에 다다르자 관령(關令) 윤희(尹喜)에게 황제(皇帝)의 서(書)를 부연하였으니, 그 글을 다시 넓힌 것이 『도덕경』 2편의 상하 양 권이다. 수신(修身)하여 치국(治國)하고 강한 것을 경계하여 부드러움을 지키고 예봉을 꺾어 분란을 풀어내고 자비를 행하고 물러서서 낮추는 도를 논하여 5천여 마디를 이루었는데, 윤희가 또다시 노자가 희에게 담론한 말의 요지를 적어서 『서승기(西昇記)』를 지었다. 그 가운데 후세 사람이 그 문장을 늘려 부처님의 이치와 한데 섞었으니, 대체적인 요지는 『도덕경』과 거의 같다. 인신(人身)의 심정(心情)과 성품(性品)이 생겨나는 일을 말하고 수양의 이치와 일찍 죽고 오래 사는 연유를 설한 것인데도, 후세 사람이 다시 개작하여 경으로 삼았다. 이 같은 경의 첫 장[首章]에는 노자가 서쪽으로 가면서, ‘도를 배우고자 하니, 축건(竺乾)에 고선생(古先生)이 있어서, 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무위(無爲)에 들어가 그대로 오래 산다’고 하였다. 경전의 말단에는 노자가 윤희에게 ‘고선생이란 내 스승이다. 무명(無名)으로 되돌아가셨으니, 내가 지금 찾아가서 한 줄기 근원이라도 반조(返照)하리라’고 말했다 하니, 이 같은 말을 참작해 보면, 노자가 석가를 알았다는 것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까닭에 관직을 버리고 서쪽으로 간 것이다. ‘무명(無名)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열반의 이치이고, ‘한 줄기 근원을 반조한다는 것’은 불이(不二)를 호칭하는 것이고, ‘일중(一中)의 본(本)’이란 진여(眞如)의 체(體)이다. ‘나의 스승’이란 노자가 석가를 찾아가 예배드리고 도를 배우고자 한 것인데, 이처럼 도를 배우고자 한 까닭에 멀리서도 이를 존중하여 스승이라 부른 것이다. 아울러 노자가 『서승경(西昇經)』의 글에서 부처님은 자기의 스승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호인으로 화현하여 부처가 되었다고 거꾸로 말하는가? 만약 노자가 천축(天竺)으로 가서 호인으로 화현하고자 하였다면 어째서 말을 둘러대어 ‘도를 배우고자 함이니, 축건(竺乾)에 고선생이 있어 무위에 들었다’고 말하였겠는가?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이치도 이리하여 허망한 것이다. 단지 그 글에서 축건이라 이른 것은 건(乾)이란 천(天)이다. 그러므로 역(易)에서 건삼련(乾三連) ≡≡의 두 괘(卦)를 중첩하여 천지를 표상(表象)하기에, 건이란 하늘을 이른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후세 사람이 이를 베껴쓰다가 승축(昇竺)이란 글자를 건(乾) 자 위에 잘못 베꼈기에, 마침내 축건이라 말하게 된 것이다. 또 서번(西蕃)의 총령(葱嶺)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서해에 다다르게 되고, 동ㆍ서ㆍ남ㆍ북에 단지 5천축국(天竺國)만이 있지 축건이라는 나라는 없다. 분명히 후대로 전해지면서 잘못 필사한 것이니, 노자가 호인으로 화현하지 않은 자취 또한 이러함을 알 수 있다. 저 『윤희전』이나 『노자출새기(老子出塞記)』 및 『문시내전(文始內傳)』은 근대의 도사들이 불법이 흥성하자 속인들이 도교를 업신여기는 것을 보고, 투기하는 마음을 품어 이와 같은 문(文)ㆍ서(書)를 날조하여, 노자가 호인으로 화현하여 성불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글을 직접 근거하더라도 경전이 원래 날조된 것임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사기』나 『전한서(前漢書)』의 「서이전(西夷傳)」에 따르면, 여러 번(蕃)의 부락이 각각 달라서 하나의 번 가운데에도 다시 몇 개의 부(部)로 나눠진다. 서번의 국가들은 모두가 성곽에 머물기에 국호를 번(蕃)이라 이름한 것도 그 수효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월지(月支)ㆍ소륵(疏勒)ㆍ쇄엽(碎葉)ㆍ철륵(鐵勒)ㆍ대하(大夏)ㆍ대완(大宛)ㆍ거연(居延)ㆍ휴도(休屠)ㆍ파사(波斯)ㆍ천축(天竺)은 대략 큰 나라만을 세어본 것으로 작은 나라는 아주 많다. 천축에도 동ㆍ서ㆍ남ㆍ북 및 중앙으로 나뉘어 있는 5개국의 국호를 천축이라 하는데, 그 인민들을 바라문(婆羅門)이라 하여, 호(胡)의 경계와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있다. 만약 노자가 몸소 바라문으로 화현하여 성불하였다면, 경전에서 호인으로 화현하였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석가는 원래가 중천축국의 태자로만 있었지, 본시 왕위에 오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경전에서는 ‘부처님은 호나라의 왕이다’ 이르는가? 이 같은 경문을 증험하되 두세 번을 거듭하더라도 모두가 망령된 것이다. 참으로 송문명 등은 불법이 이 땅에 이르자 백성들이 모두 귀의하는 것에 연유하여 호인으로 화현하였다고 경전을 날조하였는데, 이는 부처님이 노자가 화현한 것이라 말하여 귀먹은 속인들을 속여 자신들을 받들게 하려는 것이다. 또 송문명 등은 장강(長江)의 기슭에 태어나 서역 사정을 알지 못했으므로, 서쪽에 호나라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부처님이 호나라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다가, 다시 부처님이 왕족이란 말을 전해 듣자, 부처님은 국왕이라고 말하였다. 소문만 듣고 이같이 경문을 날조하여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일을 말하였으나 나라 이름이나 왕의 시호가 서로 맞아 떨어지지 않으니, 초(楚)ㆍ월(越)을 간담(肝膽)이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경전으로 증험하더라도 그 나라가 날조되었다는 것은 자명하니, 말하지 않아도 헛되다는 것을 가릴 수 있으리라.” 공자가 말했다. “만약 이 같은 경전이 날조된 것이라면, 어떻게 노자가 호나라의 왕과 군신들에게 『열반경(涅槃經)』ㆍ『법화경(法華經)』ㆍ『화엄경(華嚴經)』ㆍ『금광명경(金光明經)』 등을 설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경이 지금도 실제로 소견되는데, 어찌하여 모두 거짓이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것이 원래 허망한데, 경전을 설했다는 것은 그대로 거짓이니, 이것은 의심할 바가 못 된다. 그대는 어째서 숨기려고만 하는가? 『열반경』 등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니, 각각 연기(緣起)가 있어 법상(法相)을 상세히 논증하고, 3세(世)에 대한 인과를 풀이하며, 6도(道)에 대한 죄복을 가르치고, 보응(報應)하는 업을 밝혀서, 진여(眞如)의 이치를 현시한 것이다. 그 이치 가운데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것은 논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노자의 설과 관련이 있겠는가? 송문명 등이 원래 불법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도가 경전의 이치가 이렇다고 말하면서 망령되게 노자가 설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근본 자취를 짚어 본다면 도대체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겠는가? 대체로 저술하는 데는 반드시 그 유래와 단서가 있다. 그러므로 쌍림(雙林)에서 열반을 보이시자, 삼장(三藏)을 열어 종지를 결집한 것이다. 양영(兩楹)에 몽전(夢奠)하고서야4) 10철(十哲:10명의 제자)이 그 말을 엮어 논(論)으로 찬술하면서, 주나라의 문화를 치켜세워 명이(明夷)의 이치를 펴게 되었다. 또 사마천이 하옥되고서야 태사(太史)의 서(書)가 바야흐로 지어졌으니. 대체로 이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바가 없다. 육수정 등의 무리가 강좌(江左)에 비루하게 흘러 다니며 사견을 길렀으므로, 그 마음이 이미 삐뚤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저들이 깨달았다는 자취 또한 어찌 헛되지 않겠는가? 『전한서』에 따르면 무제(武帝) 원수(元狩) 연간에 곽거병(霍去病)을 파견하여 흉노(匈奴)를 토벌케 하였으므로, 고란(皐蘭)에 이르러 거연(居延)을 지나서 우두머리를 베는 큰 공을 세웠는데, 곤야왕(昆耶王)이 휴도왕(休屠王)을 죽이고 장차 그 나라 사람 5만여 명을 데리고 투항하면서 금으로 빚은 사람을 바치자, 황제가 신령스럽게 여겨 감천궁(甘泉宮)에 안치하였다. 아울러 서역(西域)을 개척하고자 장건(張騫)을 대하국(大夏國)에 사신으로 보냈고, 돌아오면서 그 옆에 신독국(身毒國)이 있다고 전했는데, 신독은 바로 천축을 이름하는 것이다. 비로소 ‘부도(浮圖)의 가르침’이 있는 것을 처음 들었고, 애제(哀帝) 원수(元壽) 원년(元年)에 박사(博士) 경헌(景憲)이 대월씨(大月氏)의 사신인 이존(伊存)이 구술하는 부도의 경전을 전수받으면서, 불법이 차츰 동쪽으로 전파되었는데, 대체 무슨 연유로 노자가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일을 말하지 않았겠는가? 만약 호인으로 화현한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사(史)ㆍ전(傳)에도 자연히 기록되었을 터이나 실로 이 같은 일이 없으므로 그 경위를 날조하여 망령되게 써서는 안 된다.” 공자가 말했다. “『화호경』을 선생께서 날조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째서 당조(唐朝) 호천관(昊天觀)의 도사 윤문조(尹文操)가 칙명을 받아 노자의 성기(聖紀)를 편수하면서 『화호경』 따위의 경전에서 노자가 몸을 나투어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고 그날로 정반왕(淨飯王)의 궁전에 하강하여 마야(摩耶)부인의 태중으로 들어갔고, 태어나서 부처가 되었다는 대목을 인용하였습니까? 이 같은 설에 근거하면 부처는 바로 노자의 응신(應身)이며, 경을 설했다는 것도 어찌 사실에 어긋나겠습니까?” 선생이 부지불식간에 혀를 차다가 개탄하면서 말했다. “이 같은 말이 한번 나오게 되면, 바로 그대 같은 이들이 이에 현혹되는구나. 단지 노자가 관문을 지나던 날에 스스로 축건에 고선생이 있다고 말하면서 바야흐로 철륵(轍勒)의 금하리(金河裏)에서 옥문관(玉門關)을 지나 사막을 건너고 산천을 지나쳐 백방으로 다니면서도 피곤함을 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를 찾고자 하였으며, 멀리 성덕(聖德)을 기리면서 늦게라도 이를 존중하여 ‘스승’이라 불렀다. 지금 『화호경』에서는 자신이 부처가 되었다 하나,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지라, 도대체 내가 누구를 따라야 하겠는가? 『서승기』의 첫 장을 징험하여 호인으로 화현하였다는 마지막 구절을 비교해 보면, 저 이가 말한 것과 이 이가 설하는 것이 끝내 엇갈리는데, 이는 말을 헛되이 꾸미려다가 착오가 많아진 것이다. 노담(老聃)이 축건으로 가고자 한 것도 저 석가의 성덕에 근거하였으며, 이로써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것이 이미 오래되어, 그 소식이 멀리 동주(東周)에까지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담이 그 이치를 기리고 그 풍도를 그리며 수레를 몰고 서쪽으로 갔는데도, 이것을 저 이의 후신(後身)이 잉태한 것이라 이르니, 이는 참으로 눈에 그대로 드러나는 거짓인지라, 그대가 번거로운 말로 변명하여 날조하더라도 마음만 피곤하고 그 종적이 환히 드러나게 된다. 코끼리를 타고 태중에 들어 그 몸을 변화시켜 부처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어찌하여 노자가 호인으로 화현하였다고 다시 말하는가? 반드시 태중에 들은 것이 헛되지 않아서 화생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노자가 자신이 부처를 이루었는데 누구를 보내 서로 교화하였겠는가? 이는 백양(伯陽)이 태어나 부처님이 되었다 하더라도 저 백양이 호인으로 화현하여 성불했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에 따르면 호인으로 화현하여 태중에 들었다는 것은 양쪽 모두 허망한 일이며, 경전을 설했다는 것도 모두 날조된 것이다. 설사 노자가 실제로 모태로 들어가 생을 받아 부처가 되었다면, 부처님은 노자의 응신(應身)이기에 즉시 도가의 도문(道門)에도 종조(宗祖)가 되시며, 도사(道士)들도 스스로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스님들을 따라야만 한다. 올빼미의 소리를 변조하여 그 명성을 더럽히고, 가면 쓴 이리의 삿된 마음으로 틈을 엿보면서, 5승(乘)의 성스러운 글을 훼손하고, 3장(張)의 비루한 가르침만을 기려서 미혹의 길로 접어들어 발을 적시는구나. 욕해(慾海)에 떠 있는 배를 가라앉히면 다시는 근본을 돌이켜 종지(宗旨)에 귀의하지 못하니, 참으로 이 같은 경전이야말로 으뜸가는 날조라 하겠다.” 공자가 말했다. “이를 다시 날조라 말씀하시더라도, 제가 어떻게 이를 말이 있겠습니까? 단지 도가의 법이 흥기한 것은 수고(邃古:往古)인지라. 교문(敎門)이 넓어서 종지가 깊은 데에 이르렀으며, 그 읊조리는 바가 중현(中玄)이고, 귀의하는 바가 삼보(三寶)이고, 정진대도(正眞大道)가 무상(無上)의 복전(福田)이기에, 닦으면서 행하면 모두 이익을 얻게 됩니다. 난새[鸞:靈鳥의 일종]를 잡고 은한(銀漢)을 오르거나 혹은 백학을 타고 충천(沖天)에 오른거나 기(氣)를 부려서 널리 다니되, 구름 사이를 밟고 날아다니는 이와 같은 것은 사(史)ㆍ전(傳)에 실려 있는데, 저나 선생이나 어찌 이를 그르다 하겠습니까?” 선생이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하였다. “그대가 지금껏 내세운다는 것이 모두 실다운 것을 버리고 헛된 것에 근거하는 것이고, 바른 것을 등지고 거짓된 것만 의지하는 것이구나. 내가 그대에게 말하겠는데, 이전에 현혹되었더라도 나중에는 깨달을 줄 알아야 하며, 오늘은 옳더라도 어제는 글렀다는 것을 가려야 하는데, 도리어 반딧불을 받들어 햇빛을 가리려 하고, 절름발이를 채찍질하여 준마와 나란히 하려고 하는구나. 이처럼 논의하는데 어찌하여 자기 힘을 헤아릴 줄 모르는가? 도가의 가르침이라는 게 참으로 도탄(塗炭)이 많은지라, 본래 하나의 기(氣)가 파생하여 만휘(萬彙)를 이룬다 하니, 그대가 수고(邃古)라 일러도 이는 거짓된 말이 아니다. 자고로 2의(儀)가 형상을 분명히 하면 삼재(三才)가 자리잡은 형태(形態)가 한 가지 도에 함께 부여되니, 허박(虛博)하여야만 통할 수가 있다. 이를 가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으므로 사람을 떠나서는 도가 없다. 이를 쓰면 보게 되고 이를 버리면 감춰지니, 이 같은 이치를 깨달아야 도를 얻었다고 말하게 된다. 이 같은 이치를 체득하는 이는 재난을 면하여 생(生)에 순응하여 장수하고, 이 같은 이치를 어기는 이는 반드시 횡액이 펼쳐져 생이 어긋나서 일찍 죽는다. 그러므로 노자가 ‘그 몸을 벗어나야 몸이 보존된다’고 일렀고, 장자는 ‘삶을 죽이는 자에게 죽음은 없다’고 일렀으니, 이것이 ‘삶에 순응하는 것’이다. 노자는 ‘내가 근심하는 이유는 나에게 몸이[有身] 있기 때문이다’라고 일렀고, 장자는 ‘삶을 살려고 하는 자에겐 삶이 없다’고 일렀는데, 이것이 삶을 역행하는 것이다. ‘몸을 벗어난다는 것’이란 자기 몸을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거나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서 소리ㆍ색ㆍ인아(人我)의 재미 따위의 법을 탐하지 않는 것을 말하므로, 모두 함께 이뤄가야만 이 환난을 면하고 마침내 그 수명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죽이는 자에겐 죽음이 없다’는 것이다. ‘몸이 있는 것’이란 자기 몸을 스스로 귀하게 여겨서 남을 업신여기고 물건을 함부로 대하고 소리와 색과 재물과 이익을 탐하여 그 몸을 봉양하되 생으로 생을 두터이 하면 물건마다 걱정거리가 되어 그 몸으로 굴욕을 맛보고 재난이 연이어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살려고 하는 자에겐 삶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행실로써 도를 논한 것이다. 만약 나라로써 논하자면 군주가 사치를 없애고 소리와 색을 막고 궁실을 줄이고 세금을 낮추고 부역을 줄여서 농잠업(農蠶業)을 권면한다면, 위에 있는 임금은 팔을 펴고 한가로워질 것이고 아래 있는 신하는 배를 두드리며 즐거워할 것이다. 상하가 서로 편안하니, 바람과 비도 때맞춰 내리고 일월도 반듯하게 빛나서 조력(祚歷)이 장구하게 된다. 이처럼 그 몸을 바깥에 두어 몸을 보존한 이가 요(堯)와 순(舜)이다. 군주가 사치스럽고 교만하며 궁실을 장식하고 소리와 색에 탐닉하고 부역을 무겁게 하되 그 머리마다 세금을 매겨서 산 사람을 힘들게 하는 데다 법령이 복잡해져서 죄없는 이를 살육하면, 비바람도 때를 어기고 별자리도 도수를 잃으며 위에서는 임금이 우매하고 밑에서는 신하가 어지럽히기에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 종사(宗社)가 무너지게 된다. 이와 같이 ‘몸이 있는 것’을 행한 이가 걸(傑)과 주(紂)이다. 이같이 수행하여 몸에 행하는 것을 신도(身道)라 이름하고, 나라에 행하는 것을 화도(化道)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공안국(孔安國)이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의 설을 삼분(三墳)이라 이르면서 대도(大道)를 말한다 하였고, 소호(少昊)ㆍ전욱(顓頊)ㆍ고신(高辛)ㆍ당우(唐虞)의 설을 오전(五典)이라 이르면서 상도(常道)를 말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도덕경』에서 ‘도를 도라고 할 수 있으면 상도(常道)가 아니다’라고 일렀고, 다시 ‘대도가 황폐해지면 인의(仁義)가 생겨난다’고 일렀으니, 바로 도가의 도를 밝히자면 곧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임금이 도를 체득하여 함이 없으면 바로 그때에 민속이 태평해지고, 사람이 도를 체득하여 무위(無爲)에 이른다면 생을 온전히 하여 수명을 다할 것이다. 수명에도 세 등급이 있어서 상수(上壽)는 1백20살이고, 중수(中壽)는 1백살이고, 하수(下壽)는 80살이다. 불사(不死)라 말하는 것은 이 같은 세 가지 수(壽)를 늘여서 요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가 이르는 ‘중현(重玄)을 읊조린다는 것’도 『도덕경』에서 ‘아득하고 또 아득하니[玄之又玄]’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같이 묘하게 2관(觀)을 밝히더라도 모두 한 가지 마음의 허망함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를 보고 저를 보면 변별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 변별하는 마음을 되짚어 보면 종당에는 합당한 주체가 없는지라, 이 같은 일은 아득하여 알 수가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현(玄)이라 한 것이다. ‘아득하고[玄]’란 심원(深遠)이 명매(冥眛)한 것을 말하고, ‘또 아득하니[又玄]’도 명매(冥眛)의 이치이니, 이 또한 불가득(不可得)이다. 다시 명매가 심원하기 때문에도 ‘또 아득하니’라고 이르는 것이니, 이처럼 노자에게는 지혜로운 마음이나 성스러운 지혜가 없어서, 유현(幽玄)을 비추지도 못하고 미묘(微妙)에 통달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같이 의심내는 것이다. 그대가 말하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도가의 위경에는 삼보의 이치가 없고, 오직 『도덕경』의 글에만 삼보가 있으니, 경에서 ‘나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이를 보배로 지닌다. 첫 번째는 인자함이고, 두 번째는 검소함[儉]이고, 세 번째는 천하와 그 앞을 다투지 않는 것이다’고 이르렀는데, 여기서 인자함이란 자비로 가엽게 여기는 이치이고, 검소함이란 앙보하여 탐하지 않는 이치이고, 천하와 앞을 다투지 않는 것이란 겸양하여 남을 존중하는 행이다. 만약 이 같은 세 가지에 의지하여 행하면 진실로 유익한 행실로, 이는 세속에서의 인서겸양(仁恕廉讓)의 도이고 겸광제물(謙光濟物)의 덕인데, 이 같은 보배에 귀의하는 이는 참으로 사람 가운데 선인(善人)이라 하겠으나, 종당에는 인과와 업보의 이치가 없다. 도가가 아침마다 이같이 삼보를 예배하는데, 과연 어떤 공덕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또 정진대도(正眞大道)라 이르는 것도, 여기서 정(正)이란 편중되지 않는다는 이치이고, 진(眞)이란 거짓되지 않은 모양이고, 대(大)란 크고 넓은 것의 이름이고, 도(道)란 허통(虛通)의 이치이다. 이같이 행하는 것을 도라 이름하며 올바르면서 편중되지 않고 참되면서 거짓되지 않기에 장대하여 넓다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 증험해 보면 모두 헛된 구호이다. 도란 이치를 통하는 것으로 본래 헤아리는 성품이 없으나, 사람이 행하는 바에 따라 편중되기도 하고 바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는 왼쪽이라거나 오른쪽이라고도 말하기에, 확정된 정이 없는 것이 분명해진다. 참되고 거짓된 모양은 사람의 눈에나 있는 것이지, 이치 가운데에서 어떤 때는 참되고 어떤 때는 거짓이라면 이것은 진이 아니다. 넓고 좁은 모양도 마음에 달려 있으므로, 마음을 떠나서 도가 없다면 또한 대(大)도 없다. 그러므로 도대(道大)ㆍ천대(天大)ㆍ지대(地大)ㆍ왕대(王大)라 하는 것이다, 이 역(域) 중에 4대(大)가 있으니 왕이 그 하나에 머문다고 이른다. 여기서 역(域)이란 경계의 역이다. 소위 사람이 거주하는 경계인데, 도는 정해진 바탕이 없어서 사람에 따라 그 행이 드러나기에 사람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天)ㆍ지(地)ㆍ인(人) 삼재(三才)가 함께 그 대소를 가지런히 하여 생사의 역(域)에서 윤회하며, 단지 세제(世諦) 가운데 떠돌면서 망령되게 정진(正眞)이라 구호하고, 헛되게 대도(大道)라 이름하는데, 그 유명무실한 것이 어찌 거짓이 아니겠는가? 또 무상복전(無上福田)이라 이르는 것도, 대체로 도는 쓰고 버리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람에 연유하는 것으로, 주재(主宰)가 주선(周旋)하더라도 사람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데, 어떻게 무상(無上)의 능(能)이 있겠는가? 또 복전이란 이름도 도가의 서책에는 실리지 않고 그 일이 석가의 전적에서 나온 것을 훔쳐다가 거짓되게 안치하였으므로 도가에서 이에 따라 행을 닦더라도 생사를 여의지 못한다. ‘학을 타고 충천에 오른다는 것’도 5천자[千字]에는 원래 이 같은 말이 없고, ‘난새를 잡고 은한(銀漢)에 오른다는 것’은 7편(篇)에서도 일찍이 말조차 꺼낸 적이 없다. 이것은 『신선전 (神仙傳)』 가운데서 출전된 것인데, 어찌 노장의 이치와 관련 있겠는가? 단지 신선은 약초의 힘에 연유하되 단액(丹液)의 공을 겸하여 보충하는 것으로 이는 수행을 익히는 것이 아닌데 어찌 도에 관계되겠는가? 또 『신선전』에는 거짓된 것도 많이 섭렵되어 있으니, 한조(漢朝)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은 죄를 짓고 하옥되어 자살하였는데도, 『신선전』에서는 8공(公)의 술법을 얻어 백일승천(白日昇天)하였다고 말한다. 또 진조(晉朝)에 혜숙야(嵇叔夜)가 종회(鍾會)에게 무고당해 거리에서 참수당했는데도, 『신선전』에서는 신선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서』와 『진서(晉書)』가 모두 「열전(列傳)」에서 신선의 부류를 거론하는데, 이 같은 유(類)는 근거로 삼기가 충분치 않다. 또 그대가 말하는 ‘기를 부려서 널리 다닌다는 것’도 『장자』의 「소요편(逍遙篇)」에서 오래 사는 것을 흠모하는 마음을 깨뜨리고 신선의 술법을 배척하고자 한 것이다. 비록 열자(列子)가 바람을 부린다고 하였으나, 바람이 없으면 그대로 멈춰서 기다릴 수조자도 없는데, 하물며 신룡(神龍)이나 봉황(鳳凰)이겠는가? 스스로 천지에 올바른 것을 타지 않고 6기(氣)를 다스린다고 변호하면서 바야흐로 기다림이 없으니, 이것은 장주(莊周)가 우화(寓話)에 가탁하여 헛된 것을 바라는 마음을 막고자 설한 것이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구름 사이를 밟는다는 것[步]’이란 영보(靈寶)의 옥경산(玉京山)이 거짓이듯이, 경에서 이르는 보허(步虛)라는 것도 헛된 말이다. 날아가되 구름 사이를 밟고, 허(虛)를 타고 현기(玄紀)를 걷는다는 이와 같은 것은 장도릉과 육수정 등이 꾸며내어 말한 것이다. 천존이 현도(玄都)의 옥경산에서 설법을 마치고 여러 천상의 진인들이 천존을 에워싸고 구름 노을을 밟고 위로 올라가 찬양하며 떠났다고 이르면서, 이를 가리켜 보허(步虛)라 말하나 이 또한 거짓된 경전임을 앞서 이미 논파했는데, 어떻게 날조된 것을 끌어다가 다시 거짓을 증거하겠는가?” 공자가 다시 말했다. “이것이 헛되다는 그 명(命)만은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실다운 경전에 근거하여 증명할 터이니, 선생께서 이를 허락해 주십시오.” 선생이 말했다. “어찌 허락하지 않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서승경(西昇經)』이 노자가 설하는 것과 같지 않고, 영보천존이 허구더라도, 이는 불경의 사적과 대체로 맞아 떨어집니다. 경전에서 노자가 도를 배워 성인을 이루고자 온갖 고행을 쌓았다고 이르고, 또 움직이되 겁(劫)을 되풀이하여 지나쳤으니 스스로 고생스럽게 닦았다고 이르는데, 이 또한 겁수(劫數)의 일을 모두 논하는 것이니, 어떻게 이것을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서승기(西昇記)』가 진실로 노자가 설한 것이더라도 후세 사람이 부처님의 일을 보태어 그 글과 섞어 놓은 것이다. 노자 『도덕경』 2편에 따르면 원래 겁수라는 이치가 없는데, 어떠한 이유로 『서승기』의 내용에는 겁수란 이름이 있는가? 또 이 땅의 서ㆍ사에는 겁이라는 일조차 없었다. 도가에서 설하는 것이 세속과 대체로 같아서 모두들 천지가 갈라지기 이전에 혼돈하여 형체가 없었으나, 2의(儀)가 열리고 난 후에 물상(物象)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원래 겁괴(劫壞)와 성겁(成劫)의 이치는 없다. 또 불법이 동하(東夏)를 교차하기 전에 이 땅에는 오직 겁살(劫殺)하고 겁적(劫賊)하는 일만이 있었지 겁수(劫數)의 겁(劫)을 이름하는 글은 없었다. 이 『서승기』에서 논하는 겁이란, 불경이 이곳에 다다른 이후에 도사 따위가 불경의 겁을 표절하여 『서승기』의 글에 보태서 불가(佛家)의 겁을 섞어 넣어 혼돈(混沌)의 설을 대신코자 한 것이다. 『도덕경』에 따르면, 도에서 1이 생기고 1에서 2가 생기고, 2에서 3이 생기고 3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이른다. 이같이 노자의 설은 천지가 개벽하는 최초가 만물이 형태를 이루는 시작임을 말하며, 도(道)에서 원기(元氣)가 생기고 원기에서 천지가 생기고 천지에서 사람과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처럼 1에서 2가 생기고 2에서 3이 생기고 3에서 만물이 생긴다는 것이, 세속의 서책에서 말하는 것과 그 대강이 비슷하다. 노자가 만약 겁초(劫初)의 인(因)을 알았다면, 어째서 겁괴 이전에 겁이 생겼다고 말하지 않고 도에서 1이 생겼다고 말하였는가? 저것으로 이를 증명해보면 이것은 불가의 겁을 섞어 넣은 것이 분명해서 속일 수 없다. 영보(靈寶)의 위경(僞經)에 이르러서도 또한 겁사(劫事)를 논하는데, 이것도 육수정 등이 불경을 훔쳐다 베끼고서 그 수(數)를 보탠 것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서승기』에서 겁을 논하는 것을, 당신은 후세 사람이 그 설을 늘린 것이라 말하는데, 죄복의 인과와 선(善)을 닦아 재난을 물리치는, 그와 같은 일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도를 행하고자 재(齋)를 이룩하고 위의를 정숙히 하는 데는 삼록(三籙)이 있으니, 삼원(三元)의 대헌(大獻)에게 기도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명진(明眞)의 도탄(塗炭)과 영보(靈寶)의 자연(自然)이 있으니, 과의(科儀)가 엄밀하여 부처의 가르침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거짓이라 하여도 어찌 그 사이를 떼놓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이 말했다. “도가의 인과(因果)를 노자는 설명하지 않았고, 그와 같은 설이 위경인 영보의 부(部)에 있는데, 그러한 일은 도가의 전적의 자취가 아니라 바로 불경이다. 육수정과 송문명이 몰래 표절하였다가 예전에는 그와 같은 일을 논하지 않았는데도 재차 나열하였으니, 삼록의 명진(明眞)이나 삼원의 도탄(塗炭)이나 자연의 재법(齋法)도 영보의 글에서나 나오는 것이지 원래 노장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는 송문명과 육수정 등이 조직한 것으로, 이 같은 일은 모두가 헛되게 꾸민 것이다. 그 정상의 자취는 앞서 드러냈으니, 번거롭게 풀이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대가 여전히 현혹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그 쌓인 의혹을 깨뜨려야만 하겠다. 날조된 영보의 재의(齋儀)에 따르면, 삼록(三籙)이란, 첫 번째가 옥록(玉籙)이고, 두 번째가 금록(金籙)이고, 세 번째는 황록(黃籙)이라 이른다. 옥록은 천자가 닦는 것이고, 금록은 왕공(王公)이 닦는 것이고, 황록은 서민이 닦는 것으로, 혹 해와 달의 정령(精靈)에게 절하기도 하고, 성진(星辰)의 기상(氣象)에 절하기도 하고, 혹 5악(嶽)의 선궁(仙宮)에 절하기도 하고, 혹 4독(瀆:揚子江ㆍ黃河ㆍ濟水ㆍ淮水)의 수부(水府)에 절하기도 하되 머리로 땅을 치며 애절하게 복을 빌면서 차림새를 넉넉히 하였더라도, 그 마음은 재물의 이익에만 가 있는 것이고, 널리 불을 켜놓는 것도 그 마음이 기름과 양초에 가 있는 것이다. 망령된 행동으로 속이는 것이 지금에 이르렀으니, 대체로 무당이 삿되게 기도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나겠는가? 삿된 짓을 행하면서 복을 비니, 귀신이라도 어찌 이와 같은 자연의 도탄에 응하겠는가? 모두가 이 같은 부류이다. 3원(元)이란 상원(上元)ㆍ중원(中元)ㆍ하원(下元)이다. 정월 15일을 상원이라 하고, 7월 15일을 중원이라 하고, 10월 15일을 하원이라 하는데, 풀이에는 상원일은 천관(天官)이 심판하는 날이고, 중원일은 지관(地官)이 심판하는 날이고, 하원일은 수관(水官)이 심판하는 날이라 한다. 이처럼 천관ㆍ지관ㆍ수관의 3관이 심판하는 날에 이 천관ㆍ지관ㆍ수관의 3관이 공덕과 허물을 계산한다는 일도 육수정 등이 헛되게 꾸며 왜곡되게 새운 것이지 원래 그와 같은 것이 없었다. 설사 이것이 실다운 일이라 하더라도 본래 명도(冥道)의 귀신이 라는 일은 귀도(鬼道)에 섭수되는 것인데, 도사가 어떻게 이를 참견할 수 있겠는가? 또 이같이 3일에 3관이 인간이 행한 죄업과 복업의 일을 계산하므로 반드시 재를 지내 참회하여 그 죄를 소멸시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더더구나 거짓이다. 노자와 장자의 글을 검토해보면, 원래 이 같은 일은 없는데, 이는 영보의 위경에서나 출전되는 것이다. 또 명계(冥界)에서는 사찰(司察)하는 이치가 속세의 법보다 엄하다. 세제법(世諦法) 가운데에서 범부가 죄를 짓되 미처 발각되지 않고 자수하면 용서가 되지만 일이 이미 드러났다면 비록 자수하더라도 천벌을 면치 못하는데, 만야 3관이 심판하지 않는 날 이전에 삼원의 예를 미리 세워서 참회한다면 혹 용서받아 죄를 면할 수도 있겠으나, 심판하는 날에 죄상이 이미 드러났는데 죄가 발각되고서 참회한다면, 이는 그 자리를 면하고자 꾀를 내어 엎드리는 것이기에 반드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법이 성기더라도 죄를 면치 못하는데, 명도의 법이 저같이 세밀하니, 어떻게 사면받겠는가? 거짓되게 재를 지내고 참회문을 읽더라도 종당에는 죄를 면한다는 이치가 없다. 허망하게 행하면서도 비루한 중생이 이를 깨닫지 못하니, 설사 엄급(嚴急)의 과(科)를 진설하더라도 참으로 죄를 씻는 데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