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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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홍명집 제20권
033_0496_a_01L廣弘明集卷第二十


당 석도선 지음
이한정 번역
033_0496_a_02L大唐西明寺沙門釋道宣撰


4. 법의편 ③
033_0496_a_03L法義篇第四之三

20) 상대법송표(上大法頌表:대법송을 올리는 표) 황태자 강(綱)
033_0496_a_04L上大法頌幷表答 梁皇太子綱
上太子玄圃講頌幷啓答 梁晉安王綱
涅槃經疏序 梁武帝
法寶聯璧序 梁湘東王繹
成實論序 梁簡文帝
內典碑銘集林序 梁元帝
禪林妙記集序二首 唐釋玄則奉詔撰
法菀珠林序 司元大夫李儼撰
上大法頌表 皇太子綱
033_0496_b_02L신 강이 아룁니다.
신이 듣자오니, 지극한 이치가 융성하여 덕음(德音)이 울리고, 공을 이룸이 가득하여 칭송하는 소리가 퍼진다고 합니다. 어찌 여기에 비길 바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신령한 참새가 상서로운 나무에 간혹 머무르는 것처럼 일은 구획한 가운데에 담기고 경사로움은 한 가지 사물에서 밝혀집니다. 마치 손이 춤추고 발이 구르는 듯이 하여 그 법식(法式)을 전하여 왔습니다. 하물며 도(道)는 백비(百非)에서 나오고 뜻은 3대(代)보다 높으니, 어찌 붓을 놓고 말을 숨겨 영가(詠歌)를 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는 천상천하에 묘한 깨달음의 이치가 홀로 원만하시고, 삼천대천세계에 무연(無緣)의 자비를 널리 드리우시니, 지혜의 배가 끊어짐이 없고 법(法)의 권세가 끝이 없습니다. 그 몸이 지존(至尊)의 자리에 이르러 지극한 이치를 내리시니, 단비에 젖되 편중되지 않아 마음의 밭은 윤택함을 받습니다. 이에 구위(九圍)가 함께 잠기어 모두 돌아갈 끝을 알아서 만국이 일장춘몽임을 하루아침에 모두 깨달았으니, 이는 부처님 법 가운데 훌륭한 일이면서 나라의 지극한 아름다움입니다.
상고시대(上古時代)를 둘러봐도 이와 같이 성대한 적이 없었으니, 송가를 짓는 것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삼가 「대법송(大法頌)」 한 수를 지어 올리지만, 조비(曹丕)1) 종정(從征)의 부(賦)와 유탄(劉坦)2) 유시(遊侍)의 이야기에 짝하지 못하니, 엎드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삼가 장조(狀詔)를 올리고 빼어난 보배를 모아서 표를 받들고 송을 받들어 이같이 아룁니다.
신 강이 삼가 아룁니다.

황제가 태자의 표주문을 살피고서 아울러 지어 올린 「대법송」의 글과 뜻이 모두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이를 읽으며 즐거워하였다.

- 「대법송(大法頌)」과 서문
황제께서 고요한 법신(法身)으로 본원을 저버리지 않고 위신력을 드러내어 이 땅에 강림하셨다. 용안(龍顔)ㆍ일각(日角)ㆍ삼루(參漏)ㆍ중동(重瞳)ㆍ형표(衡表)ㆍ연주(連珠)ㆍ문위(文爲)ㆍ옥두(玉斗)3)의 특이함을 갖추었다. 납록(納麓)4)으로부터 기틀을 열어 천지의 덕이 이미 펼쳐지고, 제후를 봉하여 그 자취를 열었으니, 일월의 밝음이 예전보다 밝아졌다.
백규(百揆)의 질서는 순임금에 의해서, 구하(九河)의 소통은 우임금에 의해서 균등히 펴졌으니, 오히려 은(殷)나라를 섬기는 예를 넓히면서 또한 재전(在田)5)의 법도를 굴복시켰다. 오묘(五昴)6)가 아침에 날아와서 적문(赤文)의 상서로움을 고하였다. 이레 동안 비가 내려 녹색(綠色)의 부록(符籙)을 받게 되자, 신기(神器)7)가 돌아갈 바가 있게 되어 정운(鼎運)8)이 여기에 모여들었다.
초문(焦門)에서 덕을 잃은 임금을 내치고,9) 유수(鮪水)에서 백모(白旄)로 군진(軍陣)을 일으킨10) 후에 황천(皇天)의 권명(睠命)을 받은 것에 연유해서 사해(四海)가 기쁘게 추대하였는데, 어찌 헛되이 패정(沛庭)에서 치우(蚩尤)를 제사지내고, 왕패(王覇)에서 하빙(河氷)을 의지하는 것을 빌리겠는가?
시절이 황폐해져 차서(次序)가 끊기고, 오래되어 도수(度數)마저 어긋나자, 오석(五石)11)을 골라 이를 보충했다. 지축이 기울어져서 쌓인 얼음이 갈라져 이에 아홉 개의 못[九藪]을 다스려 바로잡았다. 달 속의 두 마리 토끼와 해 안에 산다는 세 발 가진 까마귀는 왕업을 정함으로써 빛나게 되었다. 섭제(攝提)12)는 방위에 어긋나고 맹추(孟陬)13)는 벼리를 잃게 되어 청대(淸臺)14)를 두어 분별하였다. 이미 낡아버린 관면(冠冕)을 다시 덧대고, 부서진 행패(珩珮)를 다시 수선하며, 옥궤(玉几)에 기대어 천경(天鏡)을 쥐고서 선기(璿璣)를 밟은 채로 단정하게 공수하며, 암랑(巖廊)에 머물면서 깊이 침묵하였는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른두 해째이다.
그러므로 천덕(天德)이 위에서 하나가 되고 지수(地數)가 아래에서 둘이 되자, 다시 삼진(參辰)15)을 밝게 하여 해와 달이 바뀌지 않고 두 개의 빛은 합벽(合璧)과 같고 오정(五精)은 연주(連珠)와 같았다. 종사(宗祀)에 연향하여 하늘에 짝하고, 교사(郊祀)에 치성드리며 산택(山澤)에 예를 올렸다. 오사(五祀)를 경건하게 행하니 그 공덕이 백신(百神)에게까지 드리워졌다.
하천(河川)과 오악(五岳)마다 상서로움이 드러나고 바람과 연기마다 길조가 내렸으니 청운은 음률을 구하고16) 황기(黃氣)가 피어오르는지라, 유산(隃瑜)의 위봉(威鳳)17)을 듣고, 대하(大夏)의 정균(貞筠)18)을 만들었다. 양관(陽管)은 봄에 화합하고 자종(雌鍾)은 율(律)에 응하며,19) 상림(上林)20)의 과역(課役)이 공정하여 성기지 않았고 상부(相府)의 점(占)은 어김이 없었다.
약수(若水)21)에서 육영(六英)22)을 연주하고 함지(咸池)를 동정(洞庭)으로 펴서 꿩23)을 잡아 화천(和天)의 음악을 움직이며 화(華)를 세워서 세속을 편하게 하는 음악을 폈다. 협율(協律)로는 조화롭게 차서(次序)를 잇고, 전악(典樂)으로는 조화로운 절도(節度)를 다했으니, 시서(詩書)가 이에 마련되고 상표(緗縹)가 이에 갖추어졌다. 바퀴를 부들로 감싸서[蒲輪]24) 복생(伏生)의 송(誦)을 받고 과두(科斗)로써 노택(魯宅)의 글25)을 천거하며 증율(蒸栗)26)과 살청(殺靑),27) 옥첩(玉牒)과 석기(石記)로 가득 채우고 안을 넓혀 기린(麒麟)을 빛나게 하였다.
대(臺)를 두어 질(秩)을 명하며, 하(河)를 본받고 악(嶽)에 의지하여 직분(職分)을 이룩하고 유사(有司)를 세우며, 구름과 상서로운 불, 그리고 높은 산을 함께 예복에 쭉 이어 그리니 그 색은 문휘(文翬)보다 고왔고 문장은 직조(織鳥)보다 아름다웠다.
간언하는 북을 높이 달아놓고 비천한 사람들의 말조차 버리지 않았다. 폐석(肺石)28)으로 그 원한을 풀어 주면서 비방을 교판(橋板)에 쓰게 하여 초명(草名)이 아첨하는 사람을 가리키면 그 사람들을 바로 조정에서 물리쳤다. 금수처럼 칭하면서 죄를 범하거나 간사한 사람들을 내어 쫓았다. 이로써 용이 날고 봉황이 모이며 하천은 고요하고 바다는 평탄해졌다.
이슬 내리는 것이 마치 꿀물 같았고 샘물 솟는 것이 마치 예천(禮泉) 같았으니, 계수나무 장작을 자르지 않더라도 단증(丹甑)이 저절로 익었으며, 옥역(玉睪)을 끌지 않더라도 은옹(銀甕)이 이로써 가득 찼다. 강물의 빛은 막이 쳐져 있는 듯하였으며 나무의 그림자는 수레 같았다. 향기가 사방에 퍼지고 오색으로 아롱졌으니, 신명(神明)이 비호하고 상서로운 징조가 널렸다. 금린(金鱗)과 철면(鐵面)이 벽노(碧砮)의 보배를 받치고, 바다를 가르고 산을 오르며 백환(白環)의 사신을 보내왔으니, 해를 싣고 북두(北斗)를 실은 채 왕에게로 오지 않는 자가 없었고 태평하고 태몽(太蒙)하여 생각을 굽히지 않음이 없었다.
방숙(方叔)29)과 소호(邵虎)30)와 같은 신하와 균비(均鼙)와 응고(應鼓)와 같은 장수가 용호(龍虎)의 비도(祕韜)를 잡고 주현(朱玄)의 이략(異略)을 거머쥐며, 묘당(廟堂)의 위에서 넉넉함을 받아 그 위엄은 변방의 아래에까지 떨쳤다. 옥문(玉門)을 나서며 직지(直指)하여 금성(金城)을 건너고자 책략을 써서, 요사스러운 잡종들을 소탕하고 도탄(塗炭)에 빠진 중원(中原)을 바로잡았다. 북쪽으로 지맥(地脈)에 임하고 서쪽으로는 천거(天渠)를 넘었으니, 곤이(昆夷)가 환란을 그치고 숙사(夙沙)가 저절로 굴복하였다.
견융(犬戎)의 사슴을 잡고 밀수(密須)31)의 북을 달았으니, 고가(槀街)에는 갓끈을 매는 노족(虜族)이 있고, 약수(渃水)에서 항복받는 우두머리를 보았는데, 사방에서 흙먼지가 일지 않고 육합(六合)이 함께 관통되었으니 황덕(皇德)이 참으로 융성하구나. 마침내 태평의 교화가 끝없이 펼쳐지고 천자(天子)가 안으로 무생(無生)의 지극한 지혜를 포용하며, 바깥으로는 건도(乾道)를 체득한 넓은 자취에 응하니, 장차 권교(權敎)를 고쳐 실도(實道)를 드러내고자 하여 방편의 설법을 내치고 화성(化城)32)의 미혹함을 인도하였다.
이에 단정히 임금의 자리에 앉아 대궐에 거처하면서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눈감은 채 화서(華胥)33)를 꿈꾸고, 고야(姑射)34)를 기뻐하며, 현호(玄扈)35)에서 재궁(齋宮)의 복장을 입은 채, 오로지 분양(汾陽)36)에서 지극한 다스림을 그리면서, 건상(褰裳)보다 구정(九鼎:천자의 지위)을 가볍게 여기고 만승의 천자 보기를 헌신짝을 버리는 듯이 하였다면, 이것은 대체로 지극히 공정한 핵심적인 도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출세간(出世間)에 이른 것은 아니다.
금옥(金玉)을 냇가 골짜기에 숨기고 금슬(琴瑟)을 큰 구덩이 속에 버리며, 비천한 몸과 나물밥과 초가집과 흙 계단, 수레에 붉은 칠을 하되 화려하게 하지 않고 사슴의 털옷을 입되 장식하지 않았으니, 이는 대체로 검박함으로써 만물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출세간(出世間)의 단계는 아니다.
또 그물을 풀어 짐승을 놓아주며, 우물을 파고 썩은 고기를 가리면서 죄인을 불쌍히 여겨 우는[泣辜] 은택을 일으켜 더위에 부채를 부치는 자비를 행하며 남에게 양보하는 것도 마음속으로 모자라듯 하면서, 마치 자신이 구덩이에 빠진 듯이 여기는[納隍] 마음을 자나깨나 잊지 않았으니, 이는 대체로 백성에게 인자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출세간(出世間)의 단계는 아니다.
자부(紫府), 청구(靑丘), 형산(陘山), 장수(漳水)37)에서 하상(河上)38)의 도문(道文)을 돈독히 하고, 기백(岐伯)39)의 장구(章句)를 기뻐하면서, 감천(甘泉)40)에다 태일(太一)의 단(壇)을 열고 숭산(嵩山)에다 봉고(奉高)의 읍(邑)을 두고서, 갈석산(碣石山)에 선문(羨門)의 서(誓)를 새기고41) 불기산(不期山)에 교문(交門)의 노래를 지은 것42)은 대체로 단지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그 일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독실하게 따지더라도 넓혀지지 못하니, 비록 농종(巃嵸)의 선(禪)43)을 얻더라도 끝내 장생(長生)의 어려움에 떨어진다. 모두가 헛되이 3청(淸)44)의 즐거움을 밟더라도 8도(倒)45)의 경계를 떨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지혜의 횃불로 생사(生死)의 무명(無明)을 비추어 5음(陰)의 덩어리를 벗어나 6도(度)의 배를 타고 중덕(衆德)의 바다에 떠서 불생(不生)의 언덕을 밟는 것과 같겠는가?”
마침내 국계(國界)를 장엄하게 하고 도량을 건립하면서, 널리 이로움을 베풀고 불사(佛事)를 천양하며, 저 중생들을 거느리고 함께 인수(仁壽)를 건너, 이같이 얽매인 이들을 인도하여 대승(大乘)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구유(九有)가 그 마음을 기울이고 시방의 풀들이 모두 쏠려 건너가 의지하듯이 하여 모두 귀의하였으니 빛나기가 마치 아침 해가 온갖 꽃을 피우듯이 하였고, 단비가 퍼부어지는 것이 마치 농부가 고우(膏雨)를 기다리듯 하였다. 공덕으로 덮어줌이 이미 원만한데다 지혜의 문을 반드시 갖추었다.
그럼으로써, 『반야경』을 방등(方等)의 제법(諸法)으로 삼아 우뚝 솟되 그 끝을 다하지 못하고, 깊이 파고들되 바닥이 없었다. 온갖 선을 무상(無相)으로 거두고 구해(九垓)를 시작으로 끝이 없었다. 비유하건대 내[川]가 그 흐름을 달리하더라도 큰 바다에 들어가서 맛을 같이 하는 것과 같고, 온갖 꽃이 어지럽게 피었어도 수미산(須彌山)에 이르러 한 가지 빛깔인 것과 같다. 공(空)하고 공(空)하여 집착하지 않고 여여(如如)하게 모두 만나니 합쳐지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었다. 종각(種覺)이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진실로 부처의 어머니에게서 비롯하니, 온갖 경전이 이에 다다르지 못하기에 이를 경전의 왕이라 부른다.
이리하여 한 말씀의 법우(法雨)를 떨치고 5안(眼)을 드러내어 중혼(重昏)을 인도하려고 하여, 해는 소양(昭陽)46)에 있고 별자리는 현호(玄枵)47)에 있으며 협종(夾鍾)48)이 중춘(仲春)에 응하고 갑신(甲申)이 길일에 있으니, 장차 동태사(同泰寺)로 행차하여 크게 법륜(法輪)을 굴렸다.
이 절은 우리 황제가 이룩하신 것으로 대리서(大理署)49)를 개수하여 가람의 자리를 이루었다. 철승(鐵繩)을 변화시켜 금소(金沼)를 만들고 철망(鐵網)을 바꾸어 향성(香城)을 삼았으니, 뜨거운 사막에 신묘한 빛을 비추고 타오르는 불속에서도 시원함을 일으켰다.
천 개의 두공이 높고 우뚝하며 백 개의 두공은 하늘처럼 둥그렇고 붉은 벽과 검은 대들보와 화려한 서까래와 옥으로 만든 디딤돌, 세 개의 계단은 나란히 이어지고 사방에 물이 두루 흐른다. 옥익(玉翼)을 위에 놓아 하늘을 쓰다듬고 은영(銀楹)을 날려 빛을 가렸다. 무지개를 끌어다 구불구불하게 내렸고 처마에 등나무를 둘렸으며 연꽃을 꺾어다 우물에 뒤집어 놓고 모자(冒字)의 형태로 창문을 내었다. 붉디붉은 보탑(寶塔)은 이미 법화(法華)의 자리와 같고, 우뚝한 장표(長表)는 의요(意樂)50)의 나라와 함께 한다.
아래로 백은(白銀)의 도랑을 파고 그 가장자리에 금박의 벽돌이 빛났다. 솟을대문이 훤히 열리고 동마(銅馬)의 장식에 연유하지 않고, 보전(寶殿)이 노을 같이 열렸으나 봉황(鳳凰)의 서상(瑞相)에 의지하지 않았다. 금륜(金輪)이 해와 같이 빛나고 임치(臨淄)51)의 땅 속으로 묘하게 임하니, 층층이 솟구친 누각에 시렁을 얹으며 구불구불 비스듬히 하늘로 솟구친다.
커다란 집은 서리를 머금고 온실(溫室)에는 따뜻한 기운이 훈훈하고, 조각한 누각의 안에는 귀뚜라미가 다니며 울어대니, 출입문 안으로 뱁새가 돌아와 기운차게 울어댄다. 당호(幢號)를 ‘마니(摩尼)’라고 하며 깃대에는 금루(金縷)가 매여 있다. 밑받침의 직경이 10장, 방울의 둘레는 4곡(斛)으로, 칠보의 가지가 엇갈려 늘어졌으니, 여덟 가지 공덕의 맑은 물이 흐르는데, 땅 속의 지초(芝草)는 달빛을 기다리며 하늘 꽃은 바람에 나부낀다. 법고(法鼓)가 밤에 울리니 그 소리 가운데 법을 듣고, 옥 같은 가지가 새벽에 흔들리니 잎사귀마다 소리를 이루어, 덕양(德陽)의 궁전을 묘하게 하며 미앙(未央)의 궁궐을 아름답게 한다.
그러므로 동란(銅欄)은 3장이고 우물 난간을 추가하여 옥루(玉樓)가 열두 곳인데, 멀리 신선을 부끄러워하니, 비유하자면 저와 같은 청량대(淸涼臺)는 난대(蘭臺)의 사찰과 흡사하다. 도리(忉利)52)는 조원(照園)의 동쪽에 있고, 제석(帝釋)은 천성(天城)의 북쪽에 있다. 그러므로 신임계갑(辛壬癸甲)53)하며 새의 울음소리가 무성하니 참으로 이를 무어라 형용할 수 없다. 쟁쟁하게 끊이지 않고 소리내며 큰 소리로 서로 섞이니 막연하여 뭐라 이름할 수도 없다.
마침내 옥과 같은 해는 정기(精氣)를 드날리고 상서로운 구름은 빛깔마저 고와져서 훈풍이 서서히 불어오며 연로(淵露)가 엷게 깔렸다. 뒤로는 위엄 있게 진을 치고 앞으로는 경계하는 열을 두었으니, 장수의 진영(陣營)이 별처럼 연이었고 커다란 종소리가 메아리를 토하였다. 천궁(天宮)의 법가(法駕)를 움직여 천로(天路)의 위신을 떨쳤으니, 백령(百靈)이 부축하고 천승(千乘)이 벽력같이 치달았다. 육규(六虯)54)가 수레를 같이 하고 칠두(七斗:북두칠성)가 휘황함을 드리우며 구름은 드물게 허공을 타고 호위하는 수레를 펼쳐서 빛을 넘어 그림자를 밟으니 태양이 하늘을 덮고 배회하였다. 금빛 덮개와 옥으로 장식된 수레 및 표범 가죽의 옷과 악어 가죽의 북, 밤색 말과 검은 말은 윤기가 흐르고 천마(天馬)는 용맹스럽고, 녹색의 활과 노란 쇠뇌는 코끼리의 무늬와 물고기 무늬가 새겨 있었다. 차비(佽飛)55)가 말의 고삐를 조절하여 교룡 베는 칼56)을 수고로워 하지 않는데, 호분(虎賁)57)이 날개를 숨기고 어찌 시끄럽게 우는 까마귀를 쏘는 것에 의탁하겠는가?
고요하면서도 빛나고 번쩍거리면서도 조용하니, 대통(大通)의 문을 나서서, 천자(天子)가 조련(彫輦)의 존귀함에서 내려와 접족(接足)의 예(禮)를 행하며, 금산(金山)58)에 정배하고 월면(月面)59)에 귀의하였다. 만세의 소리를 듣는 것 같이 육변(六變)의 움직임을 굽어보듯 하였다.
마침내 여래(如來)의 옷을 부여잡고 사자좌에 오르니 분분한 백 가지 사려를 고르게 하며, 삼청(三請)의 은근함을 가엾이 여겨 참다운 지혜의 깊은 줄기를 열고, 피안을 건너는 넓은 가르침을 밝혔다. 2제(諦)로 공(空)과 유(有)의 나루를 드러내고, 2지(智)로 권(權)과 실(實)의 바닥을 쌓아 놓았으니, 대승으로 그 장애됨을 뚫고 도심(道心)으로 돌아갈 기슭을 찾아 인과(因果)로 거두되, 운전하지 않고도 이같이 행하였다. 진도(眞道)와 세속(世俗)은 구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이곳으로 와서 두 가지 법을 쓰지 않고 중도(中道)에 회통하였다.
부처님의 깊은 바다를 다하여 부처님의 법장(法藏)으로 들어가서, 수투(修妬)60)의 묘한 경전을 통달하고 용궁의 비법(祕法)을 연구하며, 사바(娑婆)의 깊은 이치를 선양하고 중성(衆聖)의 미언(微言)을 천양하였으니, 정법(正法)의 물이 이미 적셔지자 삿된 비난이 저절로 수그러졌다. 지혜의 태양이 널리 비추자 삼독의 서리가 사라졌으니 4생(生)에 흑암을 없애고 삼계(三界)에 무명을 거두었다. 우뚝하기가 수미산의 큰 바다에 있듯이 하여 그 훌륭하기가 말하자면 뭇 별이 둥근 달을 에워싸듯 하였다.
이때 천룡팔부(天龍八部)61)가 허공계(虛空界)를 가득 메우고 옷을 깔아 자리를 이루며 꽃을 무릎이 파묻히도록 뿌렸다. 삼천대천세계가 그 예토(穢土)의 바탕을 변화시키고 화택(火宅)에는 괴로움을 없앤다는 기약이 있으며, 악도(惡道)는 휴식을 얻고 니리(泥犁:지옥)는 널리 그쳤다.
수많은 도인(道人)과 득도(得道)한 명승(名僧)들이 즐겁게 설법하였다. 변재(辯才)하듯이 그 지혜가 신자(身子)62)와 같아서 청목(靑目)과 흑치(黑齒)63)를 뛰어넘어, 저와 같은 광슬(廣膝)과 적자(赤髭)64)를 드높였다. 불법을 조금도 빠뜨리지 않고 전한다[瀉甁]는 생각에 부합되고, 물들여진 고운 모포를 적시듯이 하였으니 마치 금을 다시 다듬고 옥을 다시 쪼듯이 하는지라,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듣고 얻지 못한 것을 얻었기에, 귀를 기울이며 낯빛마저 변하여 이로움을 청하되 그치지 않았다.
문무백관이 나란히 줄지어 관자와 신발이 연이었고, 풍초(豊貂)가 휘황하며 화수(華綬)가 빛났으니, 사위성(舍衛城)에서 열렸던 대림(大林:죽림정사)의 강좌 같다고 말하여도 지나치지 않았다. 장차 하나의 불성(佛性)이 자인(子因)을 만나 이로써 함께 나오니, 낱낱의 불국토(佛國土)가 모두 두 가지를 내치고 세 가지를 버렸다. 남풍(南風)을 노래하며 황로(黃老)를 기리고, 벽옹(辟雍)65)에 임하며 공씨(孔氏)의 집에서 강의를 하는 것에 비기더라도 어찌 자잘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3월 갑진(甲辰)에 이르러 법석(法席)이 원만해지자, 여래께서 대광명을 놓으셔서 드물게 있었던 기적을 드러내었다. 웅장하게 빛을 놓으시니 구슬 같은 불길로도 이에 짝하지 못하고, 뚜렷함이 위에서 드리우니 붉은빛과 자줏빛이 다투어 빛을 내며, 영하(榮河)66)가 그 상서로움과 윤택함을 부끄러이 하고, 분음(汾陰)이 그 휘황한 그림자를 누추하게 여겼다. 마침내 입전(入殿)의 자운(紫雲)을 가렸고 홍문(鴻門)67)의 묘기(妙氣)를 빼앗았다.
예전에 『법화경』을 처음 설하시자 백호(白毫)에서 널리 빛을 내셨으며, 『반야경』을 선양하시자 몸이 젖혀지도록 웃으셨다. 왕사성(王舍城)의 서상(瑞相)을 천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어찌 성주(聖主)가 여러 불신(佛身)과 같이하여 이같이 묘한 모양을 내리고 여러 불력(佛力)과 함께하여 마치 부계(符契)와 같이 하지 않는가? 차라리 연묵(淵黙)의 겸허(謙虛)를 거머쥐고 지성을 늠름하게 펼쳤으니, 도모하되 주저하지 않고 미루되 머물지 않으면서, 백성의 심정으로 마음을 삼되 자신(自身)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무거운 짐을 대신 지되 피곤한 줄을 모르고 4생(生)을 섭수하였다.
황태자 신 강(綱)이 동상(東廂)에서 그 음식을 맛보며 몸소 대법(大法)을 이었으니, 서순(西巡)하고 동수(東狩)하며 그 흥성을 노래한다. 시산(柴山)에서 산천에 제사지내며 노래를 읊조려 이같이 지었으니, 하물며 관대를 벗고 감로를 받으며 몸을 굽혀 도(道)를 새기는 것이겠는가?
이에 감히 그 성대한 공덕의 모습을 기술하고자 다음과 같이 송가를 짓는다.

옥첩(玉牒)은 멀고 아득하여
청사(靑史)에 길이 이어지네.
대도(大道)는 오승(五勝)68)을 따르고
기풍은 백왕(百王)보다 뛰어나다.

상구(商丘)69)에서 옥[瑱]으로 명하고
희수(姬水)에서 옥[璜]으로 열며
성인이 나와야 강물이 맑아지고70)
황제를 기대해야 바다가 조용해지네.

하늘을 본받아 땅을 일깨우니
그 공덕은 양나라로 돌려지네.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 낀 채 남면(南面)하니
그 극기(克己) 준엄한 암벽 같구나.

교의(敎義)를 새롭게 만들고
옷을 지어 따뜻하게 덮어 주며
구소(九韶)71)는 울림을 바꾸고
육악(六樂)72)도 다시 퍼졌다.
의봉(儀鳳)은 은은히 울리는데
돌 치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널리 벽수(璧水)를 다스리고
교상(膠庠)73)을 훤히 열어
가볍고 빠른 수레로 인재를 초빙하니
정기(旌旗)가 드높이 휘날린다.

난대(蘭臺)74)가 가득 차서
광내(廣內)에 이것을 보관하였다.
향초와 난의 향기 퍼지고
녹자(綠字)를 문장에 새긴다.

문치(文治)의 공덕을 입으며
무치(武治)의 자취도 빛난다.
제호를 조각하여 가슴에 새기고
도교의 책[紫書]을 말하며 서책을 나누었다.

남가(南街)에서 예물을 청하고
북궐(北闕)에는 왕들이 부복한다.
정기(旌旗)가 휘날리고 서한이 모여드니
자취를 새기고 어지러운 상황을 글로 쓴다.

은거(銀車)로 끌어 따라가고
흑절(黑節)75)로 외국의 사신들을 불러 모으며
문치(文治)가 바다 끝까지 균등하니
교화는 용향(龍鄕)까지 널리 퍼지네.
서쪽으로 월굴(月窟)76)을 넘고
동쪽으로 부상(扶桑)까지 다다른다.

초라한 궁궐이 우임금에 비견되고77)
그물을 풀어주는 일은 탕임금에 견준다네.
구실(衢室)에서 어긋남도 용납하고
명대(明臺)에서는 어진 이들을 끌어들이네.

어진 정치에 게을리 하지 않으며
간언의 북소리 쟁쟁하다네.
만 가지 상서로움이 복을 모으고
백신(百神)이 상서로움 알리는구나.

흑단(黑丹)은 윤택함을 토해내고
붉은 화초 향기를 피우누나.
구슬을 껴안고 그 모습 비추니
별빛조차 광채를 머금었다.

금액(金液)의 연못 아래 학이 노닐고
높다란 오동나무에는 봉황이 깃들며
불곰이 새벽마다 모여 있고
흰 꿩이 아침마다 날아드네.

백우(伯友)78)에게 옥을 보이고
서왕모(西王母)에게 도를 물으며
다닐 적마다 건목(建木)을 지나치고
지날 적마다 성당(盛唐)을 지목하네.

끝끝내 운수가 열리지 않았으니
어찌 세상의 다리라 하겠는가?
나에게 걸림이 없어야
다 함께 언제나 원만하다.

옥란(玉鑾)은 천천히 흔들리는데
금륜(金輪)은 새벽에 장엄하구나.
자주색 규룡은 날개를 드리우고
검푸른 천리마 내쳐 달리니
용맹스런 병사 비켜서고
신룡(神龍)이 갈 길을 열어주네.

옥마는 뒤섞이고
천랑(天狼)79)이 눈부시게 빛나네.
검은 깃발에 햇살 비추이고
취봉(翠鳳)80)에 양기(陽氣)가 서리는구나.

앞에는 드높이 윤기가 어리고
뒤에는 육지로 연결된 다리 놓였네.
바람이 옮겨 가고 천둥이 소멸하니
들고 남이 휘황할지라.

보좌(寶座)가 우뚝하고
좋은 향기 싱그러우며
법을 배우는 학도(學徒)가
구름같이 뜰을 메우네.

자비의 구름이 은택을 드리워
정법의 단비에 시원해지네.
3밀(密)은 끝이 없고
4변(辨)마저 헤아리기 어렵구나.

저 해보(海寶)와 같고
비유컨대 저 산왕(山王) 같을지라.
지혜의 흐름을 누리고
약초 나무 새순이 돋아나네.

태양 같은 부처님 세상에 나오시어
다 같이 미혹의 서리를 없애고
제석천(帝釋天)이 노래 부르니
유계(幽界)의 귀신조차 찬양한다네.
하늘 꽃이 다투어 내리니
천상의 거문고 절로 울리고
산은 고운 빛 물들어
휘황한 빛살이 저문다.

연기 아닌 기운이 서리자
연뿌리는 꽃을 피우고
삼계(三界)에 널리 은택을 내리니
은혜가 팔방(八方)에 고루하다네.

아득하고도 당당하구나.
배가 되어 노를 저으니
이에 신(臣)이 머리를 조아립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033_0496_a_13L臣綱言臣聞至治隆而德音闡成功臻而頌聲作在乎奚斯考甫神雀嘉或止事盛乎區中慶昭乎一物猶且手儛足蹈傳式方來況迺道出百非義高三代而可閣筆韜辭詠歌不作者也伏惟陛下天上天下妙覺之理獨圓三千大千無緣之慈普被慧舟匪隔法力無垠躬紆尊極降宣至理澤雨無偏心田受潤是以九圍共溺竝識歸涯萬國均夢一日俱曉佛法之勝事國家之至美稽之上古未有斯盛雅頌之作不可闕也謹上大法頌一首曹丕從征之賦劉坦遊侍之曾無連類伏兼悚恧不勝喜悅之謹遣扶詔鍾超寶奉表獻頌以聞臣綱云云皇帝問太子省表幷見所製大法頌辭義兼美覽以欣然大法頌幷序 皇太子臣綱上皇帝以湛然法身不捨本誓神力示現降應茲土龍顏日角參漏重瞳表連珠文爲玉斗自納麓開基天地之德已布封唐啓迹日月之照先明百揆之序方舜九河之導均禹尚弘事殷之體且屈在田之則自五昴朝飛告赤文之瑞其雨七日受綠色之神器有歸鼎運斯集焦門厭棄德之君鮪水發白旄之陣然後受皇天之睠命當四海之樂推豈假祀蚩尤於沛庭託河冰於王霸于時鳳鳳芃音裂序蒼蒼舛度乃選五石以補之坤軸傾斜積冰發坼乃緯九藪而正陰兔兩重陽烏三足乃定王業以暉之攝提乖方孟陬失紀乃置淸臺而辨之維冠冕於己頹綴珩珮於旣毀自憑玉几握天鏡履璿璣而端拱居巖廊而淵默於今三十有二載也以天德一於上地數二於下復朗參不易日月兩曜如合璧五精如連禋宗類昊虔丘禮澤敬行五祀被百神川嶽呈祥風煙效祉靑雲千黃氣出翼聽瑜山之威鳳製大夏之貞筠陽管叶春雌鍾應律上林之課匪疏相府之占無謬奏六英於若張咸池於洞庭秉翟動和天之樂建華宣易俗之奏協律有渢渢之序典樂致雍雍之節詩書乃陳緗縹斯備蒲輪受伏生之誦科斗薦魯宅之蒸栗殺靑玉牒石記塡委廣內煥騏驎置台命秩法河依嶽建職樹圖雲祥火高山容與赤黻逶迤麗文翬章姸織鳥諌鼓高懸芻言不肺石通怨書謗橋板草名指佞便僻去朝獸稱觸罪奸回放黜是以龍翔鳳集河溓海夷露下若飴泉浮如桂薪不斧而丹甑自熟玉睪詎牽而銀甕斯滿河光似羃樹釆成車氳四照暉麗五色神明磥硌徵祥布金鱗鐵面貢碧砮之賝航海梯山奉白環之使戴日戴斗靡不來王平太蒙無思不服方叔邵虎之臣鼙應鼓之將秉龍虎之秘韜握朱玄之異略受脤於廟堂之上揚威於關塞之下出玉門而直指度金城而奏蕩雜種之殘妖匡中原之塗炭臨地脈西出天渠昆夷罷患夙沙自獲犬戎之鹿懸密須之鼓槁街有受纓之虜渃水觀受降之酋四表無六合共貫皇德隆矣太平之風浹乎無外矣天子內韜無生之至慧應體乾之弘迹將欲改㩲教示實道遣方便之說導化城之迷乃端扆宸居吁而言曰若夫眇夢華胥怡然姑服齋宮於玄扈想至治於汾陽九鼎於褰裳視萬乘如脫屣斯蓋示至公之要道未臻於出世也至於藏金玉於川岫棄琴瑟乎大壑卑躬菲茨堂土階彤車非巧鹿裘靡飾蓋示物以儉亦未階於出世也解網放禽穿泉掩胔起泣辜之澤行扇暍之慈推溝之念有如不足納隍之心無忘宿寤蓋所以示物以爲仁亦未階乎出世也紫府靑丘鈃山漳水河上之道文悅岐伯之章句甘泉啓太一之壇嵩山置奉高之邑碣石刻羡門之誓不其作交門之歌斯蓋止愛久齡事在諸己篤而爲論彌有未雖獲巃嵷之禪終墮長生之難階三淸之樂不祛八倒之境豈若然智惠之炬照生死之闇出五陰之聚升六度之舟浮衆德之海踐不生之於是莊嚴國界建立道場廣行利開闡佛事驅彼衆生同躋仁壽茲具縛俱入大乘九有傾心十方草如憑津濟咸賴歸依曄乎若朝日之開衆花霈乎若農夫之遇膏雨德之翼已圓智惠之門必備以爲般若經者方等大法峻極靡際深邃不籠萬善乎無相兆九垓而無邊猶枝川派別入大海而同味衆芳雜到須彌而一色空空不著如如俱不合不散無去無來種覺可生允茲佛母群典弗逮是號經王乃欲振一音雨法雨示五眼引重昏昭陽紀玄枵次星夾鍾應乎仲春甲申在乎吉日將幸同泰大轉法輪茲寺者我皇之所建立改大理之署成伽藍之所化鐵繩爲金沼變鐵網爲香城照神光於熱沙起淸涼於炎火千櫨嶻孽百栱穹隆紅壁玄梁華榱玉砌三階齊列四注周流上玉翼而捫天飛銀楹而蔽景虹拖蜿垂承甍繞𣠚蓮抽井倒冒字臨窗彤彤寶塔旣等法華之座峨峨長表更同意樂之國下鑿白銀之塹傍暉金薄之塼高門洞啓不因銅馬之飾寶殿霞開無假鳳凰之瑞金輪燭日妙臨淄之地下層臺累架邁宛委之空飛夏宇凝霜溫室含煖雕樓之內蠖動而響生扉之裏鷦歸而氣激幢號摩尼幡懸金縷盤徑十丈鈴圍四斛舒七寶之交枝流八功之淨水地芝候月天花逆風法鼓夜鳴聲中聞法瓊枝旦動葉裏成音妙德陽之宮麗未央之閫故銅欄三丈追嗤井幹玉樓十二遙恥神仙譬彼淸涼之臺同符蘭臺之忉利照園之東帝釋天城之北以辛壬癸甲緜蠻黮䨴吁乎其不可狀鏘鏘旰旰瑰譎雜錯邈乎其不可名於是璧日揚精景雲麗色薰風徐動淵露微垂後距屯威前茅警迾武皎星連鴻鍾吐響運天宮之法駕啓天路之威神百靈扶持千乘雷動六虯齊軫七斗垂暉雲罕乘空鉤陳翼駕超光躡景日被天迴金蓋玉輿豹服鼉鼓驖驪沃若天馬半漢綠弓黃弩象飾魚文佽飛按節不勞斬蛟之劍虎賁弢羽豈假鳴烏之射湛湛弈弈轔轔弈弈出乎大通之門天子降彫輦之貴接足之禮頂拜金山歸依月面如聞萬歲之聲若觀六變之動於是乃披如來之衣登師子之座均百慮之紛愍三請之慇懃啓眞慧之深宗度彼之弘教二諦現空有之津二智苞㩲實之底大乘豁其靡礙道心究其歸涯因果不攝不運而行眞俗莫求弗動斯到不以二法會乎中道佛淵海入佛法藏極脩妒之妙典龍宮之秘法宣娑婆之奧旨闡衆聖之微言正水旣沾邪難自息慧日普毒霜竝消除黑闇於四生遣無明於三界巍巍乎若彌樓之在巨海穆乎譬衆星之繞圓月于時天龍八部側塞空界積衣成座散花至膝千化穢土之質火宅有離苦之期道蒙休泥犂普息莘莘學侶濟濟名僧皆樂說如辨才智慧如身子乎靑目黑齒高彼廣膝赤髭咸符瀉甁之思竝沾染㲲之施如金復冶玉更雕聞所未聞得未曾得鬱搖動色請益無倦百司具列簪履相趍豐貂焜煌花綬苒蒻謂舍衛之集林之講無以過也將令一一佛性了因而俱出一一佛土咸遣二而除比夫歌南風尚黃老臨辟雍講宅么麽安足而語哉距于三月甲辰法席圓滿如來放大光明現希有事熊熊吐色珠火非儔曈曈上映丹紫競發榮河恥其祥潤汾陰陋其暉影掩入殿之紫雲奪鴻門之妙氣昔法華初唱毫照普臨般若聿宣通身盡王城之瑞千載更逢豈非聖主同諸佛身降茲妙相等諸佛力若符契焉猶秉淵默之謙虛弘懍焉之至誡爲而不宰推而勿居以百姓之心爲非關諸己荷負無倦攝受四生太子臣綱視膳東廂親承大法以爲西巡東狩贊頌以興柴山望祀詠歌斯作況頂開而受露鞠躬而聞道述盛德之形容以爲頌曰玉牒悠夐靑史緜長道沿五勝風殊百王商丘命瑱姬水開潢河澄待聖海謐期皇方天譬地功歸有梁垂拱南面克己巖廊權輿教義製造衣裳九韶革響六樂改張儀鳳婉婉擊石鏘鏘廣脩壁水洞啓膠庠輕軺徵聘旌帛搜揚蘭臺且富廣內斯藏芸香馥簡綠字摛章文功旣被武迹斯彰題雕臆鏤舌紫支黃南街請質北闕來王飛旌集翰勒迹書狼銀車引附黑節招荒文同海截化普龍鄕西踰月窟東漸扶桑卑宮類禹解網如湯衢室納異明臺引良善旌弗卷諌鼓其鏜萬符集祉百神啓祥黑丹吐潤朱草舒芳珠懷鏡像星含憙光液池下鵠高梧集凰赤熊旦擾素雉朝翔觀玉伯友訪道西王遊經建木巡指盛唐終非運出豈曰津梁我有無㝵共向圓常玉鑾徐動金輪曉莊紫虯翼軑綠驥騰驤虎文駐䟆龍驂啓行闌干玉馬照曜天狼玄旄映日翠鳳暿陽前飛格澤後擁陸梁風移霆掃參差焜煌峨峨寶座郁郁名香法徒學侶塵沙堵牆慈雲吐澤法雨垂涼三密不限四辨難量猶茲海寶譬彼山王慧流摠被藥木開芒佛日出世同遣惑霜帝釋歌詠幽祇贊揚空花競下天琴自張山含影色地入豪光非煙繞氣陸藕開房澤普三界恩均八方巍巍堂堂爲舟爲航伊臣稽首萬壽無彊

21) 상황태자현포강송계(上皇太子玄圃講頌啓:황태자의 현포강송계를 올리는 계)와 답(答)
033_0499_a_19L上皇太子玄圃講頌啓 西中郞將晉安王綱
033_0499_b_02L- 상황태자현포강송계 서중랑장(西中郞將) 진안왕(晋安王) 강(綱)
강(綱)이 삼가 아룁니다.
순임금의 소(韶)가 처음 불릴 때에 신령스러운 자태로 저절로 춤추었고 율(律)이 연주되어 베풀어지자마자 교화된 마음이 다투어 안정되었습니다. 새처럼 가볍고 잎사귀같이 짧더라도 오히려 빛나는 덕음(德音)을 알아차렸으며, 선(善)에 목욕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니 어찌 손뼉치며 기뻐함을 잊겠습니까?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그 바탕은 높고 심원하며 도를 춘금(春禁)81)으로 기르니, 학문의 농장[文圃]에 울타리를 치고 이치의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십니다. 뜻을 용궁(龍宮)으로 쏟고 마음을 보인(寶印)으로 닦으니, 생집(生什)의 재주를 구름처럼 모으고 아울러 응왕(應王)82)의 짝에 명하여 기틀을 찾고 이치를 분석하면서, 기뻐하며 쉬지 않으니, 그 붉은 꽃과 빛나는 달이라도 어찌 이것을 잊어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소장(素藏)의 만절(晩節)과 현영(玄英:겨울)의 첫 기운에 서리 맞은 대나무는 음기를 머금고 바람 맞은 오동나무는 잎사귀가 흩어지니, 온화한 바른 이론이 신묘한 마음에 부합됩니다.
강(綱) 제가 다행스럽게도 태어난 것이 이 같은 태평성대인지라, 발자취를 뒤따르며 입은 은혜를 받들어 든든한 기반을 갖추었으나, 달라붙은 파리는 떼지 못하고 술 취한 코끼리는 묶지 못하는지라, 보배를 잊어버리고 옷에 취하며 구슬을 가라앉히고 그 이마만 두드리다가, 이같이 훌륭한 선법(善法)을 듣고서 어떻게 노래하는 것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현포원강송(玄圃園講頌)」 한 수를 지어 올리니, 문채는 화려함을 부끄러워하고 생각은 조영(彫英)에 미치지 못하면서 헛되이 기뻐하는 마음만을 간직하니, 끝내 청풍(淸風)의 아름다움에 부끄럽습니다.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이와 같이 아뢰니, 부끄러워 얼굴 붉히며 식은땀만 흘러내립니다. 삼가 올립니다.

- 답황현포원강송계령(答玄圃園講頌啓令:현포원강송계에 대한 답령) 양 소명태자
편지에 동봉한 강송(講頌)을 받아 보았는데, 시종일관 볼 만한 것이 참으로 빼어난 가작(佳作)을 이루었다. 말이 그윽하고 글이 빼어나면서도 따뜻하고 우아하니, 어찌 그 마음만을 꾸몄다 하겠는가? 참으로 탁월하기가 일품이다. 몇 번이고 읽어 보니 병도 저절로 나은 듯싶다.
쌍인(雙因)과 8변(辯)에 이르러 법석(法席)의 지극함이 가득하고, 은초(銀草)와 금운(金雲)은 물색(物色)의 아름다움을 얻었으니, 내가 이 같은 뜻에 뿌리박아 참으로 기쁘다. 면회에 늦었으니, 여기서 말을 다하지 못한다.
통(統)이 적는다.

- 현포원강송(玄圃園講頌)과 서문83) 서중랑장 진안왕
생각해 보건대, 보산(寶山)이 지엄하기에 둔한 말의 다리는 세어보지 못하니, 지혜의 바다는 멀리서부터 물결이 이는데 가벼운 쪽배를 어찌 띄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래알을 살펴서 그 오묘함을 어지럽히고, 절구공이를 짝하더라도 그 형체에 미혹하니, 백대 동안 다 같이 암둔하였는데, 천년간 뉘라서 이것을 열겠는가?
황상이 금륜(金輪)에 의탁하고 옥경(玉鏡)에 고루 부합하여 고(苦)의 습(習)을 불쌍히 여겨 자비의 등불을 이어 비췄다. 학수(鶴樹)에 다시 봄이 돌아오고 용천(龍泉)이 다시 밝아졌으니, 현수(玄水)에 상서로움이 어리고 단릉(丹陵)84)에는 번개가 휘황하였다. 도도한 빛은 불을 감싸고 덕은 운명(雲名)을 덮으며 지혜의 광명이 해가 비추는 것과 같고, 인욕의 힘이 명월주(明月珠)처럼 빛난다.
하늘은 이루고 땅은 평탄한데, 저 멀리 엄숙하고 멀리 돈독해서 그 은택(恩澤)의 흐름이 가없는지라 교화를 행하여 바깥을 굴복시키니, 창하(滄河)는 거울처럼 잔잔하고 벽해(碧海)는 바람이 순조로워 이진(二辰)에 상서로운 기운이 어리고 오절(五節)에 길한 연무가 범람한다. 물고기와 새들은 그물을 풀어버리는 은택을 입고 백성들이 인수(仁壽)의 자비에 목욕하니, 이로써 바른 교화가 그윽하게 통하고 법륜이 늘 굴러간다. 공(空)한 경계의 허(虛)를 전하는 것과 유사하니 마치 현하(懸河)가 윤택하게 흐르는 듯하다.
저군(儲君)의 덕은 신묘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몸은 춘경(春瓊)보다 투명하며 음식은 한가한 새벽녘에 먹고 마음은 법건(法犍)85)에서 노닐었다. 음악을 연주하고 글을 쓴 것은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고 청담(淸談)의 논변도 옥이 빛나는 듯하였다. 하계(夏啓)86)로서도 그 덕을 민망하게 여기며, 주송(周頌)으로도 풍화하기에 부끄러움이 있다.
이에 현포원에 마음을 다스린 뛰어난 이들이 깃들어, 진서(陳徐)의 선비들에게 아울러 명하여 하루 종일 담소하며 도를 강의하다가 아침에야 그친다. 손님은 소리 없이 따르고 향기는 기운에 동하는데, 7변(辯)이 폭포같이 흐르고 쌍인(雙因)이 모두 열린다. 정(情)은 피안에서 노닐며 이치를 기원(祈園)에 새기니, 영탑(靈塔)이 솟아오르고 하늘 꽃이 잠깐 사이에 떨어진다. 때가 되어 중추절에 거두어들이고 아름다운 별빛이 새벽까지 빛나니, 그 기운이 금비(金扉)보다 차갑고 서리가 옥관(玉琯)에 어린다.
이 현포원은 그윽하고 울창하여 유독 아름다운 훌륭한 땅이다. 붉은 당실(堂室)과 백옥 같은 디딤돌에다 푸른 물과 은모래가 갖춰져 있으니, 새는 목을 꼬며 옥소리를 내고 나무에는 묘한 잎사귀가 울창하기만 하다. 금액(金液) 같은 물이 흘러내리며 봉래산(蓬萊山)의 모양을 그려내는데, 바람은 월전(月殿)을 낳고 해는 괴연(槐煙)을 비추고 있다.
강(綱)이 특별히 총애하심을 힘입어 미진수겁(微塵數劫)이 다하도록 받들어 모실 것이니, 보배누각에 들어가 가만히 묘한 간책(簡策)을 살피면서, 물오리가 물을 만난 듯이 기뻐할 것이다. 그 신령함을 한층 밝히고자, 이에 감히 다음과 같이 송가(頌歌)을 읊조린다.

[1]
황덕(皇德)의 의표(儀表)가 햇빛처럼 임하시며
제업(帝業)의 도리(道理)가 구름처럼 번창하네.
교화가 융성하여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니
유덕함이 크고도 아름답다.
기(機)는 8해(解)를 태우고
도리가 3분(墳)을 비추니
위대하고 위대한지라
만대토록 이 한 분의 임금이시네.

[2]
해와 달이 밝고도 밝아서
금옥같이 윤택한 꽃을 피운다.
일곱 가지 맑음이 아름다우니
세 가지 어짊이 가상하다.

이 정법의 단비를 드리우니
널리 적셔서 싹을 틔우며
의로움의 물에 물결 일어
문화(文華)가 환히 비추인다.

[3]
꽃향기 가득한 동산에 구름이 성하여
천궁(天宮)은 보배와 짝하고
이치를 따져 공명(空冥)을 논하며
그윽한 기틀로 대도를 깨우친다.

촘촘한 누각이 창공에 드리우니
이층의 전각은 아름답기만 하구나.
햇살은 금빛 구름에 비추이고
바람은 은빛 풀잎에 깃드네.

[4]
어깨를 나란히 하여 뒤따르며
손으로 보배 구슬 거머쥐고
손으로 쳐들어 사방을 비추니
구구(九衢)가 환해진다.

고개 숙여 모자람을 살피니
무리지어 옥구슬을 받드네.
마침내 연석(燕石)과 같고
다시 제우(齊竽)와 같구나.
033_0499_a_20L綱啓竊以舜韶始唱靈儀自儛陳律裁暄風心競萼輕禽短葉尚識音光沐善歡心寧忘撫抃伏惟殿下體高玄蹟養道春禁牢籠文圃漁獵義河注意龍宮硏心寶印雲聚生什之才竝命應王之疋探微析理怡然不倦朱華景月詎此忘罷屬素藏晚節玄英初氣霜竹浮陰風梧散葉從容雅論實會神衷綱輕生多幸屬此休緣跗奉渥得備磐蕃而黏蠅未拔迷象不羈寶沒醉衣珠沈勇頟得聞勝善寧忘歌詠謹上玄圃園講頌一文慚綺發思闕雕英徒懷儛蹈之終愧淸風之藻冒昧呈聞追深𧹞謹啓皇太子令答得書幷所製講頌首尾可觀殊成佳辭典文豔旣溫且雅豈直斐然有可謂卓爾不群覽以迴環良同愈至於雙因八辯彌有法席之致草金雲殊得物色之美吾在原之意甚用欣懌遲面乃悉此不盡言統答玄圃園講頌幷序 西中郞將晉安王上竊以寶山峻極駘足未窺慧海遙波輕舟詎泛故以探沙亂妙類杵迷形百代同昏千年誰啓皇上託應金輪均符玉鏡低矜苦習續照慈燈鶴樹還春龍泉更曉玄水躍祥丹陵瀉電功韜火化意覆雲名智慧之光猶初日照忍辱之力如明月珠天成地平遐肅邇睦澤漏無底化行靡外滄河鏡淥碧海調風停瑞氣於二辰汎祥煙於五節鱗羽被解羅之澤黎元沐仁壽之慈於是正化潛通法輪常轉類空境之傳虛猶懸河之瀉潤儲君德彰妙像體睿春瓊視膳閑晨遊心法揵搦管摛章旣㛹娟錦縟淸談論辯亦參差玉照夏啓恧德周頌慚風乃於玄圃園拪聚息心之英竝命陳徐之士極談永日講道終朝賓從無聲芳香動氣七辯懸流雙因俱啓情遊彼岸理愜祇園靈塔將涌天花乍落于時藏秋仲節麗景姸晨氣冷金扉霜浮玉琯茲園邃密獨華勝地朱堂玉砌碧水銀沙鳥頡頏於瓊音樹葳蕤於妙葉液水穿流蓬山寫狀風生月殿日照槐煙綱叨藉殊寵陪奉塵末預入寶樓竊窺妙鳧興藻抃獨瑩心靈敢作頌曰皇儀就日帝道昌雲化隆垂拱德曼鴻芬機乘八解道照三墳巍巍蕩蕩萬代一君其一重離照景玉潤舒華七淨摽美三善稱嘉降茲法雨普洽生芽漣漪義水照曜文花其二芳園靉靆天宮類寶析論冥空玄機入道密宇浮淸重閣相藻日映金雲風搖銀草其三肩隨接武握寶靈珠皆抽四照竝掞九衢顧惟多缺徒奉瑛瑜終如燕石更似齊竽其四

22) 위량법사제열반경소서(爲亮法師製涅槃經疏序:양법사를 위해 열반 경소의 서를 짓다) 양 무제(武帝)
033_0500_a_10L爲亮法師製涅槃經疏序 梁武帝
033_0500_b_02L말이 아니고서야 말에 의탁할 것이 없으니, 말하더라도 말을 하는 폐단이 없으리라. 말이 폐가 된다면 말을 그쳐야 하는데, 말이 그쳐지면 여러 가지 견해가 다투어 일어난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께서 본원(本願)을 받들고 생을 의탁하시어 자비로운 힘을 나투어 응화(應化)하셨다. 문자를 여의고 가르침을 이룩하되, 심상(心相)을 잊고 도에 통하니 옥돌과 벽옥의 값을 달리하고 경수(涇水)와 위수(渭水)의 흐름을 가르고자 하셨기에, 육사외도(六師外道)를 제압하여 4도(倒)를 바로잡았고, 8사(邪)를 뒤집어 일미(一味)로 돌이키셨다.
세간의 지혜로 견주는 것마다 굴복시키고, 다른 사람의 입을 막아서 구슬 구하는 마음을 인도하며, 코끼리를 보는 눈을 열어서 불난 집에서 불에 타는 이들을 구하고, 험난한 바다에서 물에 빠진 이들을 건지셨다. 그러므로 법의 단비를 내려 말라붙은 씨앗을 다시 무성하게 하셨고, 지혜의 태양을 띄워 오랜 밤중을 밝히셨다.
가섭(迦葉)의 비분강개를 일으키고 진실하고 지극한 말씀을 토하였으니, 비록 다시 2시(施)87)는 앞과 같고 5대(大)88)는 뒤에서 펴더라도 서른네 가지 질문은 엇갈리고 변론은 다르니 방편으로 권장하여 이끄시고자 각각 뜻에 따라 대답하셨다.
경론의 요지를 거론하자면 두 갈래를 넘지 않으니, 불성(佛性)으로 그 본유(本有)의 근원을 여시고, 열반은 지극함으로 돌이키는 줄기를 밝히셨다.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고 기(起)도 아니고 작(作)도 아니니, 그 이치가 만 가지 선행(善行)보다 높고 그 일이 백비(百非)를 끊었다. 공공(空空)으로도 그 진제(眞際)를 헤아릴 수 없고 현현(玄玄)으로도 그 묘문(妙門)을 다할 수 없다. 스스로 그 덕이 평등함에 고루하여 마음이 무생(無生)에 합쳐지지 않고서야, 금장(金牆)의 옥실(玉室)에 어찌 쉽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033_0500_a_11L非言無以寄言言卽無言之累言則可以息言言息則諸見競起以如來乘本願以託生現慈力以應離文字以設教忘心相以通道使珉玉異價涇渭分流制六師而正四倒反八邪而歸一味折世智之角杜異人之口導求珠之心開觀象之救燒灼於火宅拯沈溺於浪海#故法雨降而焦種更榮慧日升而長夜蒙曉發迦葉之悱憤吐眞實之誠言雖復二施等於前五大陳於後三十四問參差異辨方便勸引各隨意答擧要論經不出兩塗佛性開其本有之源涅槃明其歸極之宗非因非果不起不作義高萬善事絕百非空空不能測其眞際玄玄不能窮其妙門自非德均平等心合無生金牆玉室豈易入哉

23) 양간문제법보연벽서(梁簡文帝法寶聯壁序) 양 원제(元帝)
033_0500_b_06L梁簡文帝法寶聯璧序 湘東王繹
033_0500_c_02L생각해 보건대, 천문(天文)을 살피는 것은 해와 달이 올곧고 아름답기 때문이며, 인문(人文)을 살피는 것은 조화가 밝게 빛나기 때문인데, 하물며 백옥(白玉) 같은 백호상(白毫相)이 밝게 비추어 하늘과 사람의 바깥을 뛰어넘고, 금첩(金牒)은 공해(空解)하여 문장의 바깥에서 생겨나는 것이겠는가? 비록 경지(境智)가 아득하여 언어가 여기서 끊어졌더라도, 이에 노래를 지어 간략하게 말할 수는 있으리라.
참으로 『서경』에서는 「탕고(湯誥)」를 언급하고89) 『열자』 「황제」편에서 꿈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였다. 예전에 왕기(王畿)를 박(亳)읍에 두었으나 지금은 제업(帝業)을 떨치어 공덕이 천하에 베풀어졌다. 내가 나온 유래가 어찌 요허(姚墟)ㆍ석유(石紐)ㆍ초성(譙城)ㆍ온현(溫縣)90)과 함께하며 어룡(御龍)91)이 하나라에 살고 당두(唐杜)가 주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그치겠는가?
황제가 옷을 늘어뜨리고 병풍을 등진 채로, 방위를 분별하고 위치를 바로 하여 천하의 수레와 서적이 함께 모이며, 남쪽으로는 교지(交趾)92)에 이르러 풍운이 적셔지고, 서쪽으로 유사(流砂)까지 실제로 전쟁이 그쳤다. 사람을 살리는 검(劍)을 잡고 음악이 펼쳐지고 다스림이 안정되어 포희(庖羲)의 거문고93)를 줄이고 16특승(特勝)94)을 서로 겸하여 은밀한 것을 알고 드러난 것을 알았다. 장차 28군상(群像)95)을 칭하여 비호(貔虎)와 같게 하였으니, 어찌 취옥(翠屋)에서의 노닒을 포용하여 이루고 석실의 만남을 널리 이룰 것을 기다리겠는가? 그러므로 그 마음을 종(宗)으로 삼는 자는 상(相)을 잊고 귀의하며 의지하는 자는 항상 즐거워한다.
예전에 전륜왕(轉輪王)이 법을 지키자, 남궁(南宮)에 금빛 용의 서상(瑞相)이 나타났고, 범천(梵天)이 도를 청하자 동조(東朝)에 보개(寶蓋)의 상서로움이 들었다. 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하여 황대(皇代)에 홀로 드높았다.
예전에는 나가서 벼슬하고 들어와 집안을 지키며, 가을과 겨울철에는 문무를 추고 피리를 불었다[羽籥].96) 참으로 주나라 때는 어린 사람들을 찬미하여 단정한 선비의 자질을 갖추도록 하였다. 한나라 때에는 말학(末學)을 채우기 위해 의론을 잘 관통시키는 선비를 취하여 의지하였다. 대전(大傳)에서는 이것을 맹후(孟侯)라고 논했고, 소대(小戴)97)에서는 이것을 사업(司業)이라고 말했다. 산천(山川)의 진귀함은 교사(郊祀)의 봉영(奉迎)을 기다려야 알 수 있고, 천막에 가려진 뒷말은 개간하는 밭에 의지하여 징험을 구하였다. 지금을 예전의 일과 견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내가 부군(副君)으로서 업을 행한 것이 선니(宣尼:공자)를 넘어서니, 도는 서죽(筮竹)을 열어 만드는 것보다 높고, 소리는 희발(姬發)98)을 넘어서는데, 어찌 변란(卞蘭)의 송(頌)을 빌렸겠는가? 형산(衡山)과 화산(華山)의 가파름에 비하겠고 발해(渤澥)의 물결과도 같다. 충성을 드러내고 효도를 다하며 행을 닦고 도를 말하며 널리 베풀어 어짊을 숭상하면서, 움직임을 적게 하여 성취에 힘쓰니, 지혜로 춤추는 닭을 살펴보고 효(爻)로는 봉의(封蟻)를 나눈다.
처음 벼슬길에 오르매 시험을 보아 공을 밝혔으니, 그 덕이 삼보에 보태지고 위세가 구류(九流)에 행해졌다. 군사를 감독하여 호랑이처럼 용맹스럽게 자리잡고 큰 칼을 부리며 선면(蟬冕)99)을 쓴 채 위로는 경(卿)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고통 받는 이들을 구제하니 만물이 평등하게 고루 퍼지는 은혜를 우러르게 되었다. 기수(沂水)와 대산(岱山)과 공산(邛山)과 민산(岷山)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후래(後來)의 정치를 사모하였고, 진창(陳蒼)에 반구(反裘)100)의 교화를 남겼다. 바다까지 묵책(墨幘)의 소리가 높았기에, 그 위세가 황지국(黃支國)에까지 이르렀고, 그 교화가 적곡(赤谷)101)에까지 행해졌다. 남쪽으로는 순옥(舜玉)까지 통하고 북쪽으로는 요류(堯柳)102)까지 평정하며, 조선(朝鮮)은 바다를 건너오고 야랑(夜郞)103)은 변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 연후에 도를 체득하여 세상에 떨치고 비처럼 골고루 은혜를 베풀었다. 한(漢)은 무신(戊申)을 사용하고 진(晋)은 경오(庚午)를 섬겼는데, 이처럼 앞서 빛났던 것보다 더욱 휘황하여 홀로 원정(元貞)하기만 하였다. 은혜가 봄바람 같고 겨울철의 햇빛 같아서, 도를 행하는 것으로 가마를 삼았고 어진 이를 채근하는 것으로 천리마를 삼았으며, 뜻을 위편(韋編)에 두었고 마음을 상질(緗帙)에 남겼다.
허상(許商)104)의 산술(算術), 왕위(王圍)의 사보(射譜). 남귀(南龜)105)의 이설(異說), 동치(東馳)의 잡부(雜賦), 선량(善良)한 사람을 관리로 임명할 때의 바둑[奕棊], 선문(羨門)106)의 식법(式法) 등과 잠(箴)이 금검(琴劍)107)에서 흥하였고, 명(銘)이 반우(盤盂)108)에서 비롯된 이 모든 것들이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듯 하지 않음이 없었다.
경수(涇水)를 찾고 위수(渭水)를 가려서 다시 봉염(鳳豔)으로써 풍비(風飛)하고 난문(鸞文)으로써 표수(飈竪)하였다. 가는 것은 무륜(無倫)에 들어가고 큰 것은 원기(元氣)를 머금으니, 그 운은 율려(律呂)를 조율하고 문채는 현황(玄黃)을 울렸는데, 어떻게 빼어난 선비를 취하고자 치주(稚主)에게 묻겠는가?
녹야원(鹿野園)의 깊은 이치와 용궁(龍宮)의 그윽한 말씀에 이르러, 멀리 학도(學徒)에게 명하여 친히 강석에 올라 글마다 헌장(憲章)을 이루고 말마다 법식(法式)을 이루었다. 오고간 왕찬(王粲)109)의 일은 위저(魏儲:魏文帝)보다 뛰어나고 주고받은 채모(蔡謨)110)의 도는 진량(晉兩)보다 높았다. 마치 매달린 종이 울리듯 하였고 구준(衢罇)111)의 잔을 기다리듯이 하였다.
가까이 있는 이는 그 자취를 따랐고 멀리 있는 이는 명성을 들었다. 이런 쇠와 같이 견고한 비법(祕法)으로써 보명(寶冥:華胥國)에 대하여 밤마다 꿈꾸게 하였으며, 멸함도 없이, 생각함도 없이 화서(華胥)는 밤에 감응하였다. 스스로 지혜의 다리를 만들고 지혜의 칼을 밝히고 계향(戒香)을 피우며 정수(定水)에 목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空)을 쌓아 갑자기 현겁(賢劫)을 불러 흐리게 하며 마침내 서루(黍累)112)를 드러내고 줄기를 돌이켜 구슬을 온축하여 전하겠는가? 게다가 대진(大秦)의 전적이 팔체(八體)에 부합하지 않고 강거(康居)의 전자(篆字)도 육효(六爻)와 달라서, 2승(乘)이 처음 열어 내는 것은 마치 말이 토끼에게 전하는 것과 같았다.
한 몸으로 함께 귀의하는 것은 코뿔소를 버리고 코끼리를 숭상하는 것이었다. 그 잎사귀를 윤택하고 무성하게 해서, 생각마다 그 쌓여짐을 평탄하게 하였다. 근본은 아득할지라도 끝내는 상인(相因)을 바로 하여 거짓된 공적을 말하더라도 그림자만은 거두지 않았다. 이렇게 나중의 마음에 나아가서도 도리어 자취를 처음의 욕망의 불꽃으로 되돌려 멋대로 하고 근본을 함께하면서도 전도되었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고, 아울러 집장(集藏)에 모이며 맑은 구슬은 가난한 여자에게서 빛나니 성품과 형상은 늘 공하였다. 『반야경(般若經)』에는 5시(時)의 말씀이 없으니 번뇌를 낳지 않는다. 열반이야말로 만 가지 덕의 근본이니, 그 화려한 꽃을 헤아려서 가리키는 요점을 뽑아내지 않음이 없었다.
저쪽의 대린(玳鱗)을 따고 이쪽의 취우(翠羽)를 거두며, 수수(隋水)에서 윤이 나는 구슬을 취하고 곤산(琨山)에서 옥을 취하여 매번 학관(鶴關)에 이르러 새벽을 열고 황기(黃綺)의 짝이 아침에 모이며 어등(魚燈)이 밤마다 빛나고 진오(陳吳)의 무리가 밤늦게까지 모신 것은 모두가 신묘한 법도를 우러르고 총명한 가르침을 몸소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에 좋은 이름을 내리셔서 ‘연벽(聯璧)’이라 하였으니, 참으로 ‘연’자는 구슬을 꿰인 것과 견줄 만하고 ‘벽’자는 해가 뜨는 것에 비길 만하였다.
지금의 세차(歲次)는 섭제(攝提)113)이고 성기(星期)가 감덕(監德)에 있으니 백 가지 법의 밝은 문호가 여기서 모두 갖춰졌다. 천금(千金)도 이롭다 하지 않으며, 유독 이 같은 경전만을 드높이니, 모두 220권으로 제목을 『법보연벽(法寶聯璧)』이라 하였다. 마치 옥배(玉杯)에 이슬 맺힌 것이 겸가(蒹葭)가 서린 듯하며, 금대(金臺)에 문설주를 박은 것이 운몽(雲夢)을 삼키듯 하였다.
역(繹) 나는 서하(西河)에서 때를 기다리며 남국(南國)에서 관(官)을 통솔할 때부터 열 번이나 봉관(鳳琯)을 돌며 겨우 한 번 용광(龍光)을 받들었다. 저술함에 힘들이지 않고 다만 복상(卜商)의 서문114)을 찬양하여 예전의 성대함을 돌아보면 그 글은 공안국(孔安國)의 저작에 비해 실로 부끄럽기만 하다.
삼가 그 작위(爵位)만을 뽑아 적었는데, 바로 열거해 보면 아래와 같다.
사지절평서장군(使持節平西將軍) 형주자사(荊州刺史) 상동왕(湘東王) 역(繹). 27세. 자(字)는 세성(世誠).
시중(侍中) 국자좨주(國子祭酒) 남난릉후(南蘭陵侯) 소자현(蕭子顯). 48세. 자는 경창(景暢).
산기상시(散騎常侍) 어사중승(御史中丞) 팽성후(彭城侯) 유개(劉漑). 58세. 자는 무관(茂灌).
산기상시(散騎常侍) 보병교위(步兵校尉) 동관시(東官侍) 남낭야왕(南瑯瑘王) 순(循). 42세. 자는 언원(彦遠).
오군태수(吳郡太守) 전중서자(前中庶子) 남낭야왕 규(規). 43세. 자는 위명(威明).
도관상서(都官尙書) 영우군장군(領右軍將軍) 팽성후(彭城侯) 유유(劉孺). 55세. 자는 효치(孝穉).
태부경(太府卿) 보병교위(步兵校尉) 하남후(河南侯) 저구(褚球). 63세. 자는 중보(仲寶).
중군장사(中軍長史) 전중서자(前中庶子) 진군후(陳郡侯) 사교(謝僑). 45세. 자는 국미(國美).
중서자(中庶子) 팽성후 유준(劉遵). 47세. 자는 효릉(孝陵).
중서자(中庶子) 남낭야왕 치(穉). 45세. 자는 유통(孺通).
선성왕우전복(宣城王友前僕) 동해후(東海侯) 서개(徐喈). 42세. 자는 언옹(彦邕).
전(前) 어사중승(御史中丞) 하남후(河南侯) 저운(褚雲). 60세. 자는 사양(士洋).
북중랑장사(北中郞長史) 남난릉태수(南蘭陵太守) 진군후(陳郡侯) 원군정(袁君正). 46세. 자는 세충(世忠).
중산대부(中散大夫) 금화궁가령(金華宮家令) 오군후(吳郡侯) 육양(陸襄). 54세. 자는 사경(師卿).
중산대부(中散大夫) 낭야왕(瑯瑘王) 자(藉). 55세. 자는 문해(文海).
신안태수(新安太守) 전가령(前家令) 동해후(東海侯) 서리(徐摛). 64세. 자는 사궤(士繢).
전상서좌승(前尙書左丞) 패국후(沛國侯) 유현(劉顯). 53세. 자는 사방(嗣芳).
중서시랑(中書侍郞) 남난릉후(南蘭陵侯) 소기(蕭幾). 44세. 자는 덕현(德玄).
운휘장사(雲麾長史) 심양태수(潯陽太守) 전복경조(前僕京兆) 위릉(韋稜). 55세. 자는 위직(威直).
전(前) 국자박사(國子博士) 범양후(范陽侯) 장관(張綰). 43세. 자는 효경(孝卿).
경거장사(輕車長史) 남난릉후(南蘭陵侯) 소자범(蕭子範). 49세. 자는 경측(景則).
서자(庶子) 오군후(吳郡侯) 육조(陵罩). 48세. 자는 동원(洞元).
서자(庶子) 남난릉후(南蘭陵侯) 소진(蕭瑱). 40세. 자는 문용(文容).
비서승(秘書丞) 전중사인(前中舍因) 남낭야왕(南瑯琊王) 허(許). 25세. 자는 유인(幼仁).
선성왕문학(宣城王文學) 남낭야왕. 훈(訓). 25세. 자는 회범(懷範).
세마권겸태주경(洗馬權兼太舟卿) 팽성후(彭城侯) 유효의(劉孝儀). 49세. 자는 자의(子儀).
세마(洗馬) 진군후(陳郡侯) 사희(謝禧). 26세. 자는 휴도(休度).
중군록(中軍錄) 전세마(前洗馬) 팽성후(彭城侯) 유온(劉蘊). 32세. 자는 회분(懷芬).
전(前) 세마(洗馬) 오군후(吳郡侯) 장효총(張孝總). 42세. 자는 효총(孝總).
남서주치중(南徐州治中) 남난릉후(南蘭陵侯) 소자개(蕭子開). 44세. 자는 경발(景發).
평서중록사참군(平西中錄事參軍) 전서통사사인(典書通事舍人) 남군후(南郡侯) 유견오(庾肩吾). 48세. 자는 자신(子愼).
북중기실참군(北中記室參軍) 영천후(穎川侯) 유중용(庾仲容). 57세. 자는 중용(仲容).
선혜기실참군(宣惠記室參軍) 남난릉후(南蘭陵侯) 소방(蕭滂). 32세. 자는 희박(希博).
사인(舍人) 남난릉후(南蘭陵侯) 소청(蕭淸). 27세. 자는 원전(元專).
선혜주부(宣惠主簿) 전사인(前舍人) 진군후(陳郡侯) 사하(謝嘏). 25세. 자는 무범(茂範).
상서도관랑(尙書都官郎) 진군후(陳郡侯) 은권(殷勸). 30세. 자는 홍선(弘善).
안북외병참군(安北外兵參軍) 팽성후(彭城侯) 유효위(劉孝威). 39세. 자 는 효위(孝威).
전(前) 상서전중랑(尙書殿中郞) 남난릉후(南蘭陵侯) 소개(蕭愷). 29세. 자는 원재(元才).
033_0500_b_07L竊以觀乎天文日月所以貞麗觀乎人文藻火所以昭發況復玉毫朗照出天人之表金牒空解生文章之外雖境智冥焉言語斯絕詠哥作焉略談矣粤乃書稱湯誥篇陳夢說則王畿居亳今則帝業惟楊功施天我之自出豈與姚墟石紐譙城溫縣御龍居夏唐杜入周而已哉皇帝垂衣負扆辨方正位車書之所會同曁交趾風雲之所沾被西漸流砂實止戈秉宜生之劍樂彰治定減庖羲之瑟相兼二八知微知章將稱四七如貔如虎寧俟容成翠屋之遊成石室之會故以宗心者忘相歸憑者常樂昔轉輪護法南宮有金龍之梵天請道東朝聞寶蓋之祥盡善盡美獨高皇代古者所以出師入保冬羽秋籥實以周頌幼沖用資端士漢盈末學取憑通議大傅之論孟侯小戴之談司業山川珍異俟郊迎而可知帷幄後言籍墾田而求驗以今方昔事則不然我副君業邁宣尼高啓筮之作聲超姬發寧假卞蘭之譬衡華之峻極如浡澥之波瀾忠立孝行脩言道博施尚仁動微成智察舞鷄爻分封蟻爰初登仕明試以功德加三輔威行九泒董師虎據操鈹蟬冕津鄕濟沇物仰平分之恩沂岱邛岷民思后來之政陳蒼留反裘之化淮海高墨幘之聲威漸黃支化行赤谷南通舜玉北平堯柳朝鮮航海夜郞款塞然後體道方震雨施雲行漢用戊申晉惟庚午增暉前曜獨擅元貞恩若春風惠如冬日履道爲輿策賢成駟降意韋編留神緗帙許商筭術王圍射譜南龜異說東貤雜賦任良弈棋羡門式法箴興琴劍銘自盤盂無不若指諸掌尋涇辯渭重以鳳豔風飛鸞文焱豎纖者入無倫大者含元氣韻調律呂藻振玄黃豈俟取贊彦先詢問稚圭至於鹿園深義龍宮奧說遠命學徒親登講肆詞爲憲章言成揩式往復王粲事軼魏儲酬答蔡謨道高晉兩似懸鍾之應響猶衢罇之待酌率爾者踵逖聽者風聲是使金堅秘法寶冥夕夢無懷不滅華胥夜感自非建慧明智劍熏戒香沐定水何以空積忽微歷賢劫而終現黍累迴斡蘊珠藏而方傳加以大秦之籍非符八體康居之篆有異六爻二乘始闢譬馬傳兔一體同歸棄犀崇象潤葉滋多見思平積本有凝邈了正相因雖談假續不攝單影卽此後心還蹤初焰俱宗出倒蓮花起乎淤泥竝會集藏明珠曜於貧女性相常空般若無五時之說不生煩惱涅槃爲萬德之宗無不酌其菁華撮其指要採彼玳鱗拾茲翠羽潤珠隨水扺玉琨山每至鵠關旦啓黃綺之儔朝集魚燈夕朗陳吳之徒晩侍皆仰稟神規躬承睿爰錫嘉名謂之聯璧聯含珠而可璧與日而方昇以今歲次攝提星在監德百法明門於茲摠備千金不刊獨高斯典合二百二十卷號曰法寶聯璧雖玉杯繁露若倚蒹葭金壺鑿楹似呑雲夢繹自伏櫪西河攝官南國十迴鳳琯一奉龍光筆削未勤徒榮卜商之序稽古盛則文慚安國之製謹抄纂爵位陳諸左云使持節平西將軍荊州刺史湘東王繹年二十七字世誠侍中國子祭酒南蘭陵蕭子顯年四十八字景暢散騎常侍御史中丞彭城劉漑年五十八字茂灌散騎常侍步兵挍尉東宮侍南琅瑘王循年四十二字彦遠吳郡太守前中庶子南琅瑘王規四十三字威明都官尚書領右軍將軍彭城劉孺五十字孝太府卿步兵挍尉河南褚球年六十字仲寶中軍長史前中庶子陳郡謝僑年四十五字國美中庶子彭城劉遵年四十七 字孝陵中庶子南琅瑘王稚年四十五字孺通宣城王友前僕東海徐喈年四十二字彦邕前御史中丞河南褚澐年六十字士洋北中郞長史南蘭陵太守陳郡袁君年四十六字世忠中散大夫金華宮家令吳郡陸襄五十四字師卿中散大夫琅瑘王籍年五十五字文海新安太守前家令東海徐摛年六十字士繢前尚書左丞沛國劉顯年五十三字嗣芳中書侍郞南蘭陵蕭幾年四十四字德玄雲麾長史尋陽太守前僕京兆韋稜年五十五字威直前國子博士范陽張綰年四十三字孝卿輕車長史南蘭陵蕭子範年四十字景則庶子吳郡陸罩年四十八字洞元庶子南蘭陵蕭瑱年四十字文容秘書丞前中舍人南琅瑘王許年二十字幼仁宣城王文學南琅瑘王訓年二十五字懷範洗馬權兼太舟卿彭城劉孝儀年四十九字子儀洗馬陳郡謝禧年二十六字休度中軍錄前洗馬彭城劉蘊年三十二字懷芬前洗馬吳郡張孝摠年四十二字孝摠南徐州治中南蘭陵蕭子開年四十字景發平西中錄事參軍典書通事舍人南郡庾肩吾年四十八字子愼安北中記室參軍穎川庾仲容年五十七字仲容宣惠記室參軍南蘭陵蕭滂年三十字希博舍人南蘭陵蕭淸年二十七字元專宣惠主簿前舍人陳郡謝嘏年二十字茂範尚書都官郞陳郡殷勸年三十字弘善安北外兵參軍彭城劉孝威年三十字孝威前尚書殿中郞南蘭陵蕭愷年二十字元才

24) 장엄민법사성실론의소서(莊嚴旻法師成實論義疏序) 양 황태자 강
033_0502_a_22L莊嚴旻法師成實論義疏序梁皇太子綱
033_0502_b_02L만사(萬事)는 문리(文理)를 겸하였고 이치는 기상(氣象)에 통한다. 그곳에 건너가는 자도 오히려 미혹되고 그것을 구하는 자도 혹 넘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양자(揚子)115)에게 현경(玄經)116)을 질문하자, 도리어 익히지 않았다고 말하였으며, 문후(文侯)에게 상고(上古)의 음악을 연주해주었으나, 오히려 잠을 잤다고 한다.
청대(淸臺)에서 역(曆)을 따져 보더라도 수왕(壽王)117)이라도 부과(賦課)가 치밀하지 못하였다. 기(氣)는 두우(斗牛)118)에서 나타나더라도 남창(南昌)의 땅이 혹 편안하기도 하였다. 하물며 지혜의 문이 깊고도 그윽하여 들어가는 이가 참으로 드물며, 법의 바다가 파란만장하여 띄우는 것조차 쉽지 않음에 있어서랴.
하수(河水)와 위수(渭水)가 섞이고 사악한 것과 더러운 것이 어지럽게 됨으로써 3독의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고통의 나무가 자라나서 선전(善田)의 싹을 틔우지 못하니, 마음 꽃의 다채로움이 어떻게 피어나는가? 무상(無常)의 누각이 서로 일어나고 어두운 방 안에 불이 밝지 않다. 따라서 꿀을 먹을 때에 찌꺼기를 걸러 내고 모두 기이한 논의를 귀하게 여기며 오래도록 가시 위에 누워 앞 다투어 사종(邪宗)을 일으킨다. 부처님의 해는 텅 비고 둥글어 바른 흐름이 진구(塵垢)를 쓸어버리게 됨으로써 양손에 네 개의 발우를 들고서 녹야원(鹿野園)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몸을 쌍림(雙林) 가운데에 눕히고 상유(象喩)119)의 말씀에서 마치셨다.
함생(含生)은 동등하지 않으며 열리고 막힌 이치는 근기(根氣)로 인하여 감수(感受)가 서로 같지 않기에, 깊고 얕은 말이 혹 다르기도 하였다. 곳곳마다 말씀을 펴시면서 본래 근기의 연(緣)에 응하시되 각각의 군품(群品)에 따라 달리하지 않으셨다.
금관(金棺)이 닫히자, 전단(栴檀)의 재를 돌이킬 수 없었으니, 유지(乳池)가 또한 마르며 백첩(白㲲)의 재가 이로써 다했다. 가섭(迦葉)이 정(定)에 들어 환희를 얻어 지혜가 멸하자, 말지(末地)의 보응(報應)도 이미 끝나고 우바(優波)120)의 몸도 또한 시들었다. 이로써 5부(部)121)로 나뉘어 흐르고 8건(乾)122)이 집견(執見)을 내었다. 근원을 찾는 것이 이미 어긋났으니, 집착을 취하여 더욱더 구별하였다.
네 가지 모양[四相]123)은 무상(無常)의 칼이고, 세 가지 쌓임[三聚]124)은 고가(苦家)의 바탕이다. 계속 익혀서 끊이지 않기에 ‘집제(集諦)’라고 말한다. 무위(無爲)가 몸에 있어 굳게 구할 수 있다. 등지(等智)로 단절할 수 있다면 나한은 오히려 물러서는데 어떻게 다만 천리나 떨어져 있더라도 이치는 터럭끝에서 일어나니 삼시(三豕)의 서(書)125)로 진사(晋史)에 잘못 전해지고, 북쪽으로 수레 채를 향하고서 남쪽의 영(郢)으로 치달아126) 나무 끝에서 연꽃을 뽑았으니, 비유하자면 복자(服子)가 병(兵)에 대해 논하여 그 이익과 해로움은 알지 못하고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연주하여[膠柱鳴瑟]127) 마르고 습한 변화가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8백여 년 뒤에 중천축국(中天竺國)의 어떤 바라문의 아들을 하리발마(訶梨跋摩)라 이름했는데, 양나라 말로는 사자개(師子鎧)라 하였다. 네 가지 종류의 위다(圍陀)를 집에서 익히고 3품(品)의 지혜를 갖추어 도(道)에 들어갈수록 더욱더 형통하였다. 달마(達摩) 사문에게 사사하면서는 같은 것을 일삼지만 열어주는 것은 이전과 반대였다. 마침내 미언(微言)이 이미 끊어진 것을 탄식하였고, 풍화가 쇠퇴하여 떨치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였다.
말로 맞서서 논리를 세우되 주색(朱色)과 자색(紫色)을 우선하여 가리고,128) 뜻을 일으켜 말로 토하되, 반드시 경수(涇水)와 위수(渭水)129)는 자기로부터 말미암았다. 마침내 이치를 모으고 포괄하여 이단(異端)을 저울질하였으니, 헛되고 어긋난 것을 잘라내고 바르고 실다운 것을 찾아 모아 102품을 지은 것이 바로 이 논서(論書)이다.
성실(成實)의 ‘성(成)’은 글에 근거한다는 것이고, 성실의 ‘실(實)’은 이치를 밝히는 데 있으니, ‘성’을 말하여 무너짐에 마주하고 ‘실’을 말하여 허무(虛無)를 형용하여, 비담(毘曇)과 외도(外道)의 두 갈래 길을 모두 폐하고 여래(如來)가 주로 논한 두 가지 이치를 겸하여 일으키고자 하였다. 이처럼 용수(龍樹)와 마명(馬鳴)이 단지 대교(大敎)를 수단으로 삼고, 가전연(迦旃延)130)과 법승(法勝)131)은 소승(小乘)을 얽어매었으나, 이를 겸하여 총괄하더라도 이 같은 이론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화씨족(花氏族)의 왕이 이에 정대(頂戴)하고, 누거(樓佉)132) 외도가 혀가 굳어 말을 하지 못하였으니, 백 갈래의 흐름이 출처(出處)를 달리하였으나 다 함께 한 곳의 바다로 돌아갔다.
만 가지 이치로 구분하던 것이 ‘성실’에서 모두 거두어졌는데, 어찌 다만 배나 두드리며 열반하여 그 깃발의 자취를 어지럽히겠는가? 닭이 진제(眞諦)를 알린다 하더라도, 정리(精理)가 어두워 색채를 가렸으니, 많은 햇수를 지나도록 영재(英才)가 적었다.
아! 우리 대양국(大梁國)에 이르러서야 황도(皇圖)가 치성하여 운(運)이 열렸는데, 황제가 하늘을 머금고 땅을 감싸 안는 덕과 봄철에 낳고 여름에 기르는 어짊에다, 서원(誓願)을 근본으로 하여 이 땅을 거느려 교화하자, 늘 거룩한 법륜이 항상 구르니 삼보(三寶)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에 감로가 펼쳐져도 사부대중이 싫어하지 않았다.
장엄사(莊嚴寺)의 민(旻)법사는 난새와 봉황의 우의(羽儀)인지라 광경(光景)을 짊어지고, 뜻에 깊이 형통하고 마음으로 미래를 알았으나, 그 자취를 범부와 같이 하였기에,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는 4인(忍)133)을 끌어안고 행으로는 3공(空)134)에 합쳤으니, 지혜가 문수와 비견되고, 현묘하기는 선길(善吉)135)과 같으며, 총지(總持)는 아난(阿難)136)의 덕과 균등하고, 설법은 부루나(富樓那)137)의 공이 있었다.
우리 황제에게 아양을 떨며 나를 정법으로 일으키고 이러한 논을 크게 펼쳐서 크게 경사(京師)에 성행케 하였다. 책상자를 짊어지고 다투어 달려오며 글을 써서 멀리서 찾아왔으니, 관군(冠軍)의 세력을 수고롭게 하는 것 없이 위용(衛容)을 기울였다.138) 참으로 화음(華陰)의 덕(德)139)이 있었기에, 사람마다 귀의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풍모가 사위국과 같아서 사수(泗洙:공자를 의미함)를 뛰어넘으니, 서관(西關:노자를 의미함)이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며 남궁(南宮:장자를 의미함)이 다투려 하지 않았다.
상궁사(湘宮寺)의 지천(智蒨) 스님은 그 필찰(筆札)의 공이 법태(法汰)가 안석(安石)에게 보답한 것과 다르지 않으며, 청변(淸辯)의 묘함이 어찌 다만 도림(道林)이 자유(子猷)를 끊은 것이겠는가?
대체로 10권을 1부로 엮어 편집했으니, 법사가 점차로 병이 깊어져 깊이 부촉하였는데, 어찌 다만 전생(田生)이 죽어 시수(施讐)의 손에서 누울 뿐이겠는가?140) 마공(馬公)의 학문이 바야흐로 정씨(鄭氏)에 연유해서 그 이치를 개진하였다고 일컬어진다.141)
033_0502_a_23L夫事秉文辭理通氣象涉之者尚迷求之者或躓是以問玄經於揚子云不習奏古樂於文侯猶稱則睡挍淸臺壽王之課不密氣現斗牛昌之地或爽況乎慧門深邃入之者固希法海波瀾汎之者未易自使河渭混淆魔塵紛糾皎皎毒霜童童苦善田之苗不吐意華之采詎發常之樓互起闇室之火無暉是以飡蜜挫糟俱珍異論持牛臥棘競起邪自佛日團空正流蕩垢手擎四鉢始乎鹿園之教身臥雙林終於象喩之說含生弗等開塞之義因機感受不同淺深之言或異處處散說本應根緣有不次第各隨群品金棺已掩栴檀之炭無追乳池且涸白疊之灰斯盡迦葉入定歡喜智滅末地之報已終優波之身且謝於是五部撗流八乾起執尋源旣舛取著尤別四相乃無常之刀三聚爲苦家之質習續不斷稱爲集諦無爲有體分然可求等智能斷羅漢猶退豈啻千里之舛義起豪釐三豕之書謬符晉史北轅趍郢木末搴蕖譬乎服子論兵利害不識膠柱鳴瑟燥濕無變自佛滅之後八百餘年中天竺國婆羅門子訶梨跋摩梁云師子鎧四種圍陁在家必習三品慧藏入道彌通師事達摩沙門事均反啓於是歎微言之已傷頹風之不振抗言動論以朱紫爲先發意吐談必涇渭由己於是摽撮領會商攉異端刪夷浮詭搜聚貞造百有二品以爲斯論成則據文實則明理擧成對壞稱實形虛欲令毘曇外道二途皆廢如來論主兩理兼興若夫龍樹馬鳴止筌大教旃延法勝縈縛小乘兼而摠之無踰此說故花氏之王於茲頂戴樓佉外道結舌無辭百流異出同歸一海萬義區分摠乎成實豈止鼓腹涅槃旗靡轍鷄鳴眞諦喪精掩色多歷年所寡英才粤我大梁炎圖啓運皇帝含天苞地之德春生夏長之仁以本誓願率化斯土梵輪常轉三寶現前露聿宣四部無厭有莊嚴旻法師儀鸞鳳負揭光景深以通志神以知其迹同凡其源莫測故以心苞四行合三空慧比文殊玄如善吉持均阿難之德樂說有富樓之功媚我皇起予正法宣弘此論大盛乎京師負笈爭趍懷鈆來遠無勞冠軍之勢自傾衛容固有華陰之德人歸成市擬儀舍衛超邁泗洙西關自恥南宮不競湘宮寺智蒨筆扎之功殊法汰之報安石淸辯之妙何止道林之折子猷凡如十卷勒成一部師大漸深相付囑豈直田生之亡獨施讎之手馬公之學方由鄭氏而東其義云

25) 내전비명집서(內典碑銘集序) 양 원제(元帝)
033_0503_a_13L內典碑銘集序 梁元帝
033_0503_b_02L법성(法性)은 공적하고 심행(心行)은 처소를 끊었다. 감득(感得)에 바로 형통하며 방소(方所)에 따라 인도한다. 그러므로 작원(鵲園:죽림정사)에서 선법(善法)으로 유인하고 마원(馬苑:白馬寺)에서 널리 폈으며, 백림(白林:사라수림)에서 물러나 청수(靑樹)가 나열되었다. 이리하여 금첩(金牒)을 펴서 은신(銀身)에 의탁하였으니, 상교(象敎)가 동쪽으로 유포되어 남국(南國)으로 교화가 행해졌다.
오나라 군주142)가 지성으로 이레 밤을 기도하자 광명이 비쳤으며, 진나라 왕이 성상(聖像)을 그려 오제(五帝)를 헤아려 더욱 새롭게 하였다. 차도(次道)ㆍ효백(孝伯)ㆍ가빈(嘉賓)ㆍ현도(玄度)143)의 이 몇 사람들은 일대의 명사이다. 혹 가람을 수리하기도 하였고, 혹 마음을 돌이켜 변론하기도 하며, 명송(銘頌)을 칭하여 공(公)을 드높였다.
그 글들을 살펴보면 진실하면서도 폭넓고 간략하며 온화하고 윤택하다. 내가 이 같은 말만 듣고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반고(班固)와 같은 석학이 깊은 학문을 일찍이 찬송한 것과 비슷하고, 육기(陸機)144)가 깊게 찾아낸 것이 비명(碑銘)의 부(賦)로 들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오직 백개(伯喈:蔡邕)는 명문(銘文)을 지었고 임종(林宗:郭泰)은 부끄러움이 없었다. 덕조(德祖)145)가 능히 읊조리고 원상(元常)146)이 글을 잘 썼음에도 그 한 시대에만 성대하였고 뒤를 잇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반야(般若)가 깊고 그윽하며 진여(眞如)가 묘하고 고요함에 있어서랴!
마주하는 말마다 누(累)가 되어 그 경계가 참답지 못하니, 금석(金石)에다 무엇을 새긴다 하겠으며 명송(銘頌)으로 누구를 기린다 하겠는가? 그러나 탑을 세우며 공덕을 새기거나 사방에 절을 세우면서 혹 그 유래를 적거나 서원(誓願)을 적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검은 돌에다 이를 새겨 썩지 않게 후대에 전하려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지극히 한 응공(應供)이 있었으니 이를 ‘상문(桑門)’이라 말한다. 혹 ‘지낭(智囊)’이라고 부르고 혹 ‘인수(印手)’라고도 호칭하는데, 높은 법좌에서 이름을 드날려 사윤(師尹)의 자리로 참여하였다. 도림(道林)에게 중시받아 비룡의 자리를 같이하며, 아미(峨眉:慧持法師)와 노부(盧阜:慧遠)와 같은 현인과 업중(鄴中:佛圖澄)과 완등(宛鄧:釋道安)과 같은 철인(哲人)들에 대해서는 역사책마다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기에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문(碑文)을 세워서 이들을 기리는 바이다.
세대가 빨리 바뀜에 논하는 글의 이치는 하나 둘이 아니며, 시절의 일이 옮겨지매 속사(屬司)의 문체가 달라지기도 하였다. 단지 번잡하면 그 미약함을 한탄하고, 간략하면 그 간소함을 싫어하고, 화려하게 꾸미면 바탕을 잃어버리고, 실다움을 따르자면 글의 맛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인용한 일이 비록 넓더라도 그 뜻은 한 가지이니, 혹 새로운 생각에 의탁할지라도 간략함에 의지할 바가 아니다. 혹 처음과 끝으로 서첩(書帖)에 순서를 정하여 일은 마치 과역(課役)을 강요하듯 하거나, 간혹 앞과 뒤로 널리 섭렵하기만 하여 체제가 정밀하지 못하기도 하다. 능히 빼어나면서 화려하지 않게 하고, 질박하면서 조잡하지 않게 하며, 넓으면서도 번거롭지 않게 하고, 간략하면서도 경솔하지 않게 하며, 문채가 드러나면서도 질박함이 있게 하고 간략하면서도 윤택하게 하자면, 일마다 마음에 따라 돌이켜야 하고, 이치는 말에 따라 깊어져야 하므로 이에 청화(菁華)에 틈새가 없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내가 어려서부터 옛사람의 글귀나 본떠 짓는 것[彫蟲]을 좋아하여 장성하면서 더욱 독실히 하였는데, 마음을 석전(釋典)에 두고 눈을 사림(詞林)에 맡기며 항상 여러 가지 것을 수집하여 저술할 생각을 하였다. 비유하자면 제법(諸法)의 바다에 파도가 그칠 새 없는 것과 같으며, 수미산이 한 가지 빛깔로 돌이켜지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높고 비천한 것을 가리지 않았으니, 비록 상세하지 않더라도 모두 따르기에 넉넉하다.
이름을 『내전비명집림(內典碑銘集林)』이라 지었는데, 도합 30권이다. 장차 오는 세상의 군자들이 혹 이것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033_0503_a_14L夫法性空寂心行處斷感而遂通方引接故鵲園善誘馬菀弘宣白林將謝靑樹已列是宣金牒方寄銀身自象教東流化行南國吳主至誠七霄而光曜晉王畫像經五帝而彌次道孝伯嘉賓玄度斯數子者亦一代名人或修理止於伽藍或歸心盡於談論銘頌所稱興公而已夫披文相質博約溫潤吾聞斯語未見其班固碩學尚云贊頌相似陸機鉤猶聞碑賦如一惟伯喈作銘林宗無愧德祖能誦元常善書一時之盛莫得係踵況般若淵玄眞如妙密言成累係境非眞金石何書銘頌誰然建塔紀功招提立寺或興造有或誓願所記故鐫之玄石傳諸不亦有息心應供是曰桑門或謂智或稱印手高座擅名預師尹之席道林見重陪飛龍之座峨眉廬阜之鄴中宛鄧之哲昭哉史冊可得而故碑文興之斯焉尚矣夫世代亟論文之理非一時事推移屬詞之體或異但繁則傷弱率則恨省存華則失體從實則無味或引事雖博意猶同或新意雖奇無所倚約或首尾倫怗事似牽課或前後博涉體製不工能使豔而不華質而不野博而不繁省而不率文而有質約而能潤事隨意轉理逐言深所謂菁華無以閒也余幼好彫蟲長而彌篤遊心釋寓目詞林頃嘗搜聚有懷著述諸法海無讓波瀾亦等須彌歸同一故不擇高卑惟能是與儻未詳悉隨而足之名爲內典碑銘集林合三十卷庶將來君子或裨觀見焉敍佛緣起


26) 선림묘기집서(禪林妙記集序) 서명사(西明寺) 석현칙(釋玄則)
033_0503_c_04L禪林妙記前集序 京師西明寺釋玄則
033_0504_a_02L- 선림묘기 전집서(前集序)
일체 제불(諸佛)에게는 모두 3신(身)이 있다. 첫 번째는 법신(法身)으로 원심소증(圓心所證)이라 하고, 두 번째는 보신(報身)으로 만선소감(萬善所感)이라 말하며, 세 번째는 화신(化身)으로 수연소현(隨緣所現)이라 한다.
지금의 석가모니불은 법신이 오래도록 증득되고 보신이 오래도록 이루어진 것이기에, 지금 출현하신 것은 화신일 뿐이다. 말하자면 과거에 석가불께서 보리심을 내어 그 명호(名號)가 같기를 서원하였기에, 지금 성불하고서도 명호를 ‘석가’라 하는 것이다. 3무수겁(無數劫) 동안 보살행(菩薩行)을 닦으면서 하나하나의 겁수(劫數) 가운데 무량불(無量佛)을 섬기다가, 도중에 정광여래(定光如來)를 계속해 만나고는 머리카락을 진흙바닥에 펴고 금빛 꽃을 받들어 올리면서 수기(授記)를 받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 그러나 일체의 부처님께서 장차 성불하려는 때에는 반드시 100겁을 거치면서 상호(相好)의 업을 닦아야 한다.
석가가 발심한 것이 미륵보다 나중이나 불사여래(弗沙如來)를 만나 이레 동안 우러르며 날마다 새롭게 게송으로 찬송하였는데, 이로써 구 겁을 뛰어넘어 먼저 도를 이루게 되었다. 성불하려는 때에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났으니, 이때 보명보살(普明菩薩)이라 이름하였다. 저곳에서의 천수(天壽)를 다하고 염부제로 하강하여 흰 코끼리를 타고 모태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셨다.
그 모친인 마야(摩耶)부인이 흰 코끼리를 품은 꿈을 꾸었다. 범선(梵仙)이 점을 치며 “만약 해와 달의 꿈을 꿨다면 국왕이 태어나고, 만약 흰 코끼리를 꿈꾸었다면 성자(聖子)가 태어나리라”고 예언하였다. 모친이 이후로 고요하고 편안하게 조리하면서 말을 부드럽게 하여 날마다 다르게 하였으니, 보살이 처음 태어나매 대지가 진동하고 그 몸이 자금색(紫金色)인 데다 32상(相)과 80종호(種好)와 1심(尋) 크기의 둥근 광명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보를 걸으면서 마범(魔梵)을 항복시키고자 성실(誠實)의 말씀을 하시며 “천상 천하에 내가 제일 존귀하다”고 하셨다. 품에 안고 천사(天祠)로 들어가니 천상(天像)이 모두 일어섰는데, 아사다(阿私陀) 선인이 합장하며 감탄하기를, “상호가 분명하니 반드시 법왕(法王)이 되리라. 내가 죽게 될 터이니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됨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이 분이 바로 정반국왕(淨飯國王)의 태자이시다. 자(字)가 실달다(悉達多)인데, 조부의 이름은 사자협(師子頰)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정반(淨飯)이며, 어머니는 마야(摩耶)라 부른다. 대대로 전륜왕(轉輪王)이 되었는데 성이 구담씨(瞿曇氏)이다. 다시 능통했던 일로 인하여 따로 성을 석가라고 하였다.
맑은 깨우침이 자연스럽고 예술이 천부적이어서 비록 5욕(欲)에 머물더라도 욕망(欲望)의 진구(塵垢)를 받지 않았다. 나라의 사대문(四大門)을 다니면서 늙고 병들고 죽은 자와 어떤 사문을 보고서 궁중으로 되돌아와 깊은 염리심(厭離心)을 내셨다. 홀연히 한밤중에 천신(天神)이 부축하고 경계하며 보마(寶馬)에 올라타고 성을 넘어 출가하셨다. 6년간 고행한 끝에 그것이 도가 아님을 깨닫고 바로 정관(正觀)에 의지하여 보리(菩提)를 얻으셨다.
이때 소를 치는 여인이 우유를 끓여 죽을 만드는데 갑자기 높이 끓어오르자 소치는 여인이 놀라워하면서 보살에게 바쳤다. 보살이 이를 잡숫고 기력이 충만해져 강에 들어가 목욕하고 기슭으로 오르는 때에, 나무가 저절로 가지를 드리워 보살을 위쪽으로 인도하였다. 보살이 여기서 길상초(吉祥草)를 따다가 보리 수 밑에 앉으시자, 악마가 이를 보고 노여워하는 마음을 내면서, “이 사람은 내 세계를 텅 비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관속 18억만 명을 이끌고 여러 가지 고구(苦具)를 가져다가 보살을 겁주면서 급히 일어나 오욕(五欲)의 즐거움을 받도록 재촉하였다.
다시 묘의천녀(妙意天女) 세 사람을 보내어 보살을 유혹하였는데, 이때에 성의자정(聖意慈定)에 들어가 연민하는 마음을 내자, 마군(魔軍)이 자연히 흩어져 물러가 버렸고 세 사람의 묘의천녀는 영귀(癭鬼)로 변하였다. 마군이 항복하자 2월 8일에 명상(明相)이 출현하는 때에 정각(正覺)을 이루셨다. 이미 성불하고서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고는, 저들이 소법(小法)을 즐겨서 대법(大法)을 감당하지 못함을 알고, 바로 바라나국(波羅奈國)으로 가서 교진여(憍陳如) 등의 다섯 사람을 제도하여 4제(諦)의 법륜을 굴리셨는데, 이것이 삼보(三寶)가 출현하는 시초였다.
그 후에 설법하여 제도한 사람의 숫자, 크게 모인 보살회(菩薩會), 깊고 깊은 무상(無相)의 말씀과 신통을 시현하는 그 힘이 모두 경문(經文)에 갖춰져 있다. 다시 한때 도리천(忉利天)으로 올라가 90일 동안 안거하면서 모친에게 설법하였다. 이때 우전국왕(優闐國王)과 바사닉왕이 부처님의 덕을 사모하여 전단나무를 새기고 모포에 부처님의 모습을 그려서 완성하였다.
이후로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시자 이룩한 성상(聖像)들이 모두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부처님께서 그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며 “네가 미래세에 불사(佛事)를 잘 이룩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불상이 일어난 것이 바로 이때부터이다.
교화의 인연이 끝나갈 무렵에 그 무리들이 권태로워 하자, 부처님께서 바로 대중에게 “앞으로 3개월 후에 내가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후사를 기록하시니 경전에 그대로 갖춰져 있다.
그러나 여래의 실다운 몸은 언제나 있으면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화경』에서는, “영취산과 여타의 여러 주처(住處)에 언제나 계신다”고 말한다. 지금 태어나시고 멸하는 것은 부처님의 화신으로서, 그들을 제도하고자 그 부류와 같이 화현하였으니, 이것이 생을 받은 이유이며 다시 유위(有爲)가 반드시 옮겨짐을 알게 하였으니, 이것이 죽음을 보이신 이유이다. 다시 중생의 근기가 성숙한 것이 탄생을 보이신 이유이고, 중생의 감득이 다한 것이 멸하심을 보이신 이유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사람과 하늘이 공양하면서 여러 가지 보탑을 이룩하였는데, 다시 대가섭이 1천 명의 아라한을 소집하여 법장(法藏)을 결집하였다. 아난이 전해지지 않던 구전(口傳)을 공개하여 결집시키고 남김없이 외워내는 것이 마치 병속의 물을 다른 그릇에 조금도 새지 않고 따르듯 하였다. 백 년 후에 철륜왕(鐵輪王)이 있었으니 자(字)가 아수가(阿輸柯)이다. 그는 또한 아육(阿育)이라 이름하였는데 귀신을 부려서 하루 만에 천상과 인간 세계에 8만 4천 개의 사리보탑(舍利寶塔)을 이룩하였다. 이때 부처님의 유물인 옷과 발우와 석장 등과 여러 사리가 신비롭게 변한 것은 참으로 하나 둘이 아니었다.
한나라 명제(明帝)가 꿈에서 감응하여 금구(金軀)에다 일패(日佩)를 두른 장륙(丈六)의 모습을 본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석가의 본래 모습과 같다. 또 오나라 군주 손권(孫權)이 사리를 불태우고 철퇴로 내리쳤어도 변하거나 부서지지 않았고, 또한 석상(石像)이 강물에 뜨고 서용(瑞容)이 바다에 떠밀려 온 일과 반야의 그윽한 힘과 관음의 촘촘한 영험은 모두 별기(別記)에 갖췄으나, 그 지적이 너무 많아서 특별히 기록하지 않는다.

- 선림묘기후집서(禪林妙記後集序) 경사(京師) 서명사 석현칙
듣자니 상전[象]에서 포괘(庖卦)를 분석하여 신명(神明)의 덕을 기렸으며, 가르침으로 기주(箕疇)147)를 알리고, 이륜(彛倫)의 순서를 실어서 조화롭게 하였다. 이 이래로 이를 계승하는 이가 더욱 많았으니, 아름다운 다스림에 화합하여 나날이 빛나지 않음이 없어서 금규(金閨)를 높여 값을 올렸다. 하물며 진승(眞乘)의 상지(上智)는 만유(萬有)를 건넘으로써 말을 흥하게 하였고 비밀스럽게 숨겨둔 원음(圓音)이 백령(百靈)을 경계하여 그 이치를 펼침에 있어서랴.
미혹함을 밝히는 것이 수려한 별빛과 균등하였고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감로와 견주어진다. 스스로 육영(六瓔)148)으로 천자의 지위에 올라 사륜(四輪)의 덕을 휘날리지 못하면서, 어찌 지극한 진리를 살피겠으며 묘한 근본에 대한 기틀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도가 무성한 이는 그 가르침을 크게 닦고, 업이 창성한 이는 그 글이 빛남을 알 수 있다.
삼가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 순리에 따라서 지극한 표준을 고르게 하고 성경(聖敬)으로 가르침을 모으며 10선(善)으로 어짊을 드날리시어 교화는 반취(蟠竁)의 겉을 부드럽게 하고 4등(等)으로 세속을 조율하여 그 기풍이 서수(胥燧)의 이전보다 높았다. 또한 현범(玄範)을 높여서 사(詞)를 다듬었으며, 상원(常源)에 무늬 놓아 귀감으로 삼고 썩은 동아줄에 단비를 내리면서 생각이 급고독원(給孤獨園)에 머물렀다. 마침내 만물을 다듬는 틈틈이 예지(睿旨)로써 친히 하거나 멀리하였고 정명(正名)의 끝에 아름다운 주제를 지속적으로 베풀어 주었다. 스님들은 용시(鎔施)의 은혜를 짊어지고 소륭(紹隆)의 은택을 입었다. 이에 처음 정중하게 부르시니 가슴에 두려움만 쌓인다.
삼가 성지(聖旨)는 사라지기 어렵고 현진(玄津)은 건너기 어려운데, 텅 비어 마치 구멍으로 엿보듯 생각하는지라, 혼돈(混沌)이 열려지지 않음을 한탄한다. 진실로 문 앞에서 부르짖음에 의지하여 시절의 상(象)에 얻는 것과 같은 것이 없으니 나대(蘭臺)의 태사(太史) 겸 좌시극(左侍極) 응산현(應山縣) 개국후(開國侯) 모씨(某氏)가 살펴봄을 권하면서도 피곤함도 마다하지 않고 열람하면서도 쉬지 않았다. 이에 서로 더불어 서림(恕林)의 영악(英萼)을 뽑고149) 기산(耆山)의 신우(迅羽)를 쏘아버리며150) 팔부의 법장(法藏)의 뛰어난 보배를 찾아서 3점(點)151)의 영액(靈液)을 당겨서 1부라고 이루고 이를 정리하여 총 10권을 완성하였다.
그 정미한 이치를 비교하여 일마다 말이 끊어졌고 가르침의 바다는 이미 법문(法門)이 아득하여 더욱 넓기만 하였다. 비록 긴요하고도 오묘한 이치가 이미 전수(前修)에 다 갖추어져 있더라도 두루 널리 채집한 글들은 「별록」으로 충당하였다. 실로 형산(荊山)에 오르는 이는 연성(連城)에 대하여 옥을 바치려는 것을 생각하며,152) 초빈(楚濱)에 노니는 자는 포궤(苞匭)에 대하여 공납하기를 바라는데, 하물며 용궁(龍宮)의 으뜸가는 보배가 정전(情田)에 현란하게 비추고 녹원(鹿苑)에 남겨진 향기가 자엽(字葉)에 서리는 것이겠는가?
비록 생각이 올곧다면 누가 받들어 올리는 것을 잊겠는가? 게다가 보배를 이룬 뒤에는 어루만짐이 있고 규칙을 밝히는 데는 이어짐이 있다. 잠시 이루시고 돌아가셨으나, 그 밝은 법도는 속사(屬事)로 남아 있다. 바야흐로 그와 같은 글을 열면 임옥(琳玉)과 낭옥(瑯玉)이 마침내 빛나며, 이를 가리고자 하면 난초와 국화가 저절로 나뉜다. 인도함이 있어 여기로 오는 것은 동영(東瀛)의 옥회(沃澮)에 비유되고, 각자 귀의하여 응하는 바는 남약(南籥)의 궁징(宮徵)153)에 짝한다. 이에 이치로 서로 귀속시켜 대체로 10장(章)을 이루었다. 장절(章節)마다 상하로 나뉘어 20권을 이루었으니, 경심(經尋)이 1,500여 축(軸)이고 뜻에 의해 360여 조(條)를 나누었다. 10장(章)을 세우고 4례(例)를 이뤘는데, 처음 두 번째는 진도와 세속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은 염오(染汚)와 청정(淸淨)의 연유를 아울러 밝히는 것이다. 중간의 4장은 수증(修證)의 갈래를 평탄히 하는 것이고, 뒤의 2장은 인도하는 규범을 내리는 것이다. 서로 그 차례에 따라 서술하되, 각각 여러 가지 항목에 예속시켰으니, 대체로 큰 이치가 찬란해지고 지극한 말이 실추되지 않았다.
일천 문호가 눈부시게 널찍하니 늘어서고 화려하게 백 갈래 길이 겸하여 쌓이니 새벽별이 구슬을 엮은 것과 같아서 진실로 질서 있게 하지 않았으나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듯하며 봄의 울창한 수풀은 비단으로 누빈 듯하여, 참으로 다듬은 것은 아니지만 울창하게 펼쳐져 있는 듯하였다. 그윽하게 살펴 깊이 부합하기 때문에 오묘한 이치를 그윽하게 돌이키면서도 문란하지 않으니 오히려 의지할 만하다.
그러나 깃털 하나로도 봉황의 빛깔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록을 많이 하지 않았다. 쌍비(雙飛)로도 부주(鳧洲)를 다할 수 없으므로 여타의 아름다움을 다 하기 어렵다. 이미 금구(金口)의 가르침으로 제한하였기에 참으로 옥설(玉屑)154)의 비평이 없다. 그 사이 아주 자잘한 것을 제거하고 빼고 취할 것을 헤아려서, 혹 천리에 오류를 남길까 두려워 매번 세 번씩이나 더 살폈다.
마침내 용삭(龍朔) 3년(663) 5월 17일 첫머리에 윤언(綸言)을 받들어 지금 인덕(麟德) 원년(664) 5월 4일에 전후의 2부의 책을 완비하였으니, 앞의 것은 간략하면서도 유창하고 뒤의 것은 넓으면서도 잡스러움이 없었다. 가히 석망(釋網)의 넓은 강령을 떨치고 법문(法門)의 요체(要諦)를 총괄하여 식심(息心)의 훌륭한 자취를 열고 다문(多聞)의 영유(靈囿)를 갖추었다 할 수 있다.
삼가 바라건대, 제호(醍醐)155)의 빼어난 맛으로 신충(宸衷)을 영원히 비옥케 하며, 반야의 명주(明珠)로 예악(睿握)을 길이 밝혀서, 이 글이 실추되지 않고 참다운 종지가 해와 달과 더불어 함께 매달리고, 이 복이 끝이 없어 보배로운 연조(年祚)가 궁양(穹壤:천지)과 함께 같아지리라. 진실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선림묘기후집(禪林妙記後集)』의 총목 총10장
1장 진성(眞性), 2장 가연(假緣), 3장 유염(流染), 4장 즉정(卽淨), 5장 관문(觀門), 6장 행법(行法), 7장 승위(乘位), 8장 극과(極果), 9장 교력(敎力), 10장 화공(化功).
위의 하나하나의 장은 여러 법취(法聚)를 묶은 것이다.
033_0503_c_05L一切諸佛皆有三身一者法身謂圓心所證二者報身謂萬善所感三者化身謂隨緣所現今釋迦牟尼佛者法身久證報身久成今之出現蓋化身耳謂於過去釋迦佛所發菩提心願同其號故今成佛亦號釋迦三無數劫脩菩薩行一一劫中事無量佛中閒續遇錠光如來以髮布泥金花奉上尋蒙授記得無生忍然一切佛將成佛時必經百劫脩相好業其釋迦發心在彌勒後當以逢遇弗沙如七日翹仰新新偈讚遂超九劫前成道將欲成時生兜率天號普明菩薩盡彼天壽下閻浮提現乘白象入母右脅其母摩耶夢懷白象梵仙占曰若夢日月當生國王若夢白象必生聖子母從此後調靜安泰慈辯日異菩薩初生大地振動身紫金色三十二相八十種好圓光一尋生已四方各行七步爲降魔梵發誠實語天上天下唯我獨尊抱入天祠天像悉起阿私陁仙合掌歎曰相好明了必爲法王自恨當死不得見佛斯則淨飯國王之太子也字悉達多祖號師子頰父名淨飯母曰摩耶代爲輪姓瞿曇氏復因能事別姓釋迦悟自然藝術天備雖居五欲不受欲遊國四門見老死及一沙門入宮中深生厭離忽於夜半天神扶遂騰寶馬踰城出家苦行六年其非道便依正觀以取菩提時有牧牛女人煮乳作糜其沸高踊牧女驚以奉菩薩菩薩食之氣力充實河洗浴將登岸時樹自低枝引菩薩菩薩從此受吉祥草坐菩提樹魔見已生瞋惱心云此人者欲空我卽率官屬十八億萬持諸苦具來怖菩薩促令急起受五欲樂又遣妙意天女三人來惑菩薩爾時入勝意慈定生憐愍心魔軍自然墮落退散三妙天女化爲癭鬼降魔軍已於二月八日明相出時而成正覺旣成佛觀衆生根知其樂小未堪大法趣波羅奈國度憍陳如等五人轉四諦法輪此則三寶出現之始也其後說法度人之數大集菩薩之會甚深無相之談神通示現之力經文具之又於一時昇忉利天九旬安居母說法時優闐國王及波斯匿王慕佛德刻檀畫㲲以寫佛形於後佛從忉利天下其所造像皆起避席摩其頂曰汝於未來善爲佛事佛像之興始於此矣化緣將畢時徒厭怠佛便告衆卻後三月吾當涅槃復記後事如經具說然如來實身常在不故法華云常在靈鷲山及餘諸住今生滅者是佛化身爲欲汲引現同其類所以受生復欲令知有爲必所以示滅又衆生根熟所以現生衆生感盡所以現滅佛涅槃後人天供養起諸寶塔又大迦葉召千羅漢結集法藏阿難從鎖鬚入誦出佛經一無遺漏如缾瀉水置之異器一百年外有鐵輪王字阿輸柯亦名阿育役御神鬼於一日中天上人閒造八萬四千舍利寶塔其佛遺物衣鉢杖等及諸舍利神變非一逮漢明感夢金軀日佩丈六之容一如釋迦本狀又吳主孫權燒搥舍利無所變壞及浮江石像汎海瑞容般若冥力觀密驗別記具之事多不錄禪林妙記後集序 京師西明寺釋玄則竊聞象分庖卦克贊神明之德訓啓箕疇載穆彝倫之敍自茲以降述者尤莫不叶璿政而增輝仞金閨而聳矧乎眞乘上智津萬有以興言藏圓音警百靈而暢旨燭迷均於麗淸神比於甘露自非六瓔踐位輪飛德豈能探賾至眞硏機妙本知茂於道者其教孔修昌於業者文伊煥伏惟皇帝陛下徇齊纂極聖敬凝旒十善揚仁化柔蟠竁之表四等調俗風高胥燧之前猶且峻玄範而摛詞藻常源而衍鑑霈垂污留思給園遂以匠物之餘親迂睿正名之末特繕嘉題僧等荷鎔施之恩緘紹隆之澤爰初肅召載惕中伏以聖旨難晞玄津罕涉空思側管嗟混沌之未開寔賴叫閽時象罔其如得蘭臺太史兼左侍極應山縣開國侯獎鑑弗疲閱覽無滯乃相與搴恕林之英萼繳耆山之迅羽搜八藏之殊詮控三點之靈液用成一部勒爲十卷較其精詣事絕稱言然以教海旣沖法門猶廣雖要妙之旨已具前而博贍之文終資別錄竊以登荊山者思有獻於連城遊楚濱者願納貢於苞匭況龍宮逸寶照爛於情田鹿菀遺芳芬葩於字葉茍懷貞藹忘薦奉加以成貸有循明規在屬四披簡則琳琅畢炫擬之區別則蘭菊自分有導斯來譬東瀛之汱澮歸所應類南籥之宮徵以義相屬凡逮十章章分上下成二十卷經尋一千五百餘軸義列三百六十餘條建十章輒成四例初二立眞俗之境次雙明染淨之由中四坦脩證之塗後兩垂汲引之範相次爲敍各隸多俾大義粲然至言罔墜曖千門之列敞侈百隧之兼儲同夫曉宿編誠不倫而磊落春叢綴錦諒非工而彬布寔由玄覽深契故使奧旨冥歸伊其不紊抑有憑矣然則一毛可以知鳳彩故所錄未多雙飛不足罄鳧故餘美難極旣限金口之誨良無玉屑之譏其間掎削豪芒斟酌去取恐貽謬於千里每加審於三復粤以龍朔三年五月十七日首奉綸言今麟德元年五月四日前後二部汗靑畢具前則簡而能暢後則博而無庶可以振釋網之宏綱摠法門之要鍵開息心之勝躅備多聞之靈囿伏願醍醐上味永沃宸衷般若明珠輝睿握斯文不墜眞宗與日月俱懸茲福無疆寶祚將穹壤齊固云爾禪林妙記後集摠目凡十章一眞性二假緣三流染 四卽淨五觀門六行法七乘位 八極果九教力十化功右一一章管多法聚

27) 법원주림서(法苑珠林序)
033_0505_b_21L法菀珠林序
033_0505_c_02L중대사원대부(中臺司元大夫) 농서(隴西) 이엄(李儼) 지음
육효(六爻)가 일어나 팔괘(八卦)가 나열된 이래로 비로소 서계(書契)가 있었고 훈전(訓典)이 빛났다. 봉전(鳳篆)과 용도(龍圖)와 금간(金簡)과 옥자(玉字)와 백가(百家)는 자취를 달리하며 만 권이 자잘하게 나뉘었다. 비록 이치는 정미함을 궁구하며 말은 사물의 규범을 다하더라도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단속하는 것이 인간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초에 근원을 두고 종극을 구하는 것으로 어찌 세속의 바깥을 갖추겠는가?
장사(藏史)의 설(說)156)과 원리(園吏)의 말157)도 있으니, 보경(寶經)이라도 허망하고 금적(錦籍)158)조차도 괴이쩍은 것이, 마치 얼음에 새겨서 이룬 것이 없는 것과 같고 글이 텅 비어 실답지 않은 것과 유사하다. 『연화경』을 관통하는 묘한 이치와 패엽(貝葉)에 쓴 경전은 2승(乘)의 넓음과 8장(藏)의 깊은 신비를 갖추어 깊고 얕음을 다투고 그 우열을 비교하더라도 조그마한 개미를 높은 숭산(嵩山)과 화산(華山)에 견주려는 것과 같으며, 우잠(牛涔)의 미약함으로 양쯔강과 한수(漢水)의 넓음과 다투려는 것이다.
현료(顯了)의 이치와 은밀(隱密)의 도리, 해탈의 문과 총지(摠持)의 뜰은 전제(前際)와 후제(後際)가 나란히 진여(眞如)에 계합하니, 초심(初心)이나 말심(末心)이나 모두 정각으로 되돌아온다. 혼미한 중생을 욕망의 바다에서 인도하면 정리(情理)의 먼지가 마음의 때와 함께 똑같이 없어지고 곤궁한 이들을 자비의 안방으로 인도하면 의보(衣寶)와 계주(髻珠)가 함께 이르고 교화는 항하사의 경계에 넘쳐나며 그 공덕은 미진(微塵)의 겁에 가피내린다.
참으로 크면서도 지극하구나. 이루 다 기릴 수가 없다. 비를 내려 주나라에 징조를 보이고159) 일패(日佩)로 한나라에 감통하자,160) 채음(蔡愔)이 서쪽으로 가고 축란(竺蘭)이 동쪽으로 넘어왔다. 금구(金口)의 말씀과 보대(寶臺)의 이치가 서책에 가득하고 고문자로 채워져 중토(中土)를 덮었다. 권축(卷軸)이 번다하고 조류(條流)가 깊고 넓기에, 실상(實相)의 진원(眞源)은 결국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웠다.
우리 황제의 대당국(大唐國)이 만물을 이루어 성상(聖像)이 군림하자, 현묘한 가르침이 넓혀지고 석가의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책으로 찍어내어 광채를 전하고 구우(區宇)를 비추어 윤택케 하며, 범향(梵響)의 메아리와 읊조리는 소리가 도성에 울렸다. 널리 베풀어 성대히 하는 것은 가리켜 비유하더라도 지극히 하기 어렵다.
서명(西明)의 대덕(大德) 도세(道世) 법사는 자(字)가 현운(玄惲)으로 석문(釋門)의 영수이다. 어려서는 총명하여 모래를 모아 탑을 만들고 오색 빛깔의 옷을 입을 때에 낙식(落飾)161)하였다. 그 자비가 은근하여 개미와 같은 미물에게조차 널리 자비를 베풀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수(具受)의 단(壇)을 이루어 계품(戒品)이 원만하게 밝혀졌다. 마치 삼킨 구슬과 같이 동등하게 보호를 받고 율의(律儀)가 정밀하게 밝혀져 비쳐지는 거울에 따라서 함께 똑같이 기뻐하였다. 대승(大乘)을 사모하여 실상을 분명히 밝혔다.
뛰어나고 박식하였기에 서명사로 모시게 되었다. 이어서 5부(部)를 보는 틈틈이 3장(藏)을 두루 살펴보았다. 고금에 대를 이어 여러 사람들이 제작한 것이, 비록 그 취향이 단아하고 글이 아름답다 하나, 모두 전하여 기록하기에 족하지 못하다.
문유(文囿)의 청화(菁華)를 따다가 대의(大義)의 첨복(瞻蔔:香樹)을 냄새 맡으며, 그 부류에 따라 편집하면서 『법원주림(法苑珠林)』이라 하였는데, 모두 100편으로 정리하여 총 10질을 이루었다. 뜻이 풍부하고 글이 간략한 것은 우씨(虞氏)의 『박요(博要)』에 근거하였으며, 자취를 펴서 도를 비춘 것은 양나라 승우(僧祐)의 『홍명집(弘明集)』을 엿본 것이다. 그 말로써 아름답게 하여 그 호를 이와 같이 빛내면서, 지극한 자취를 드날려서 남김없이 하였으니, 묘한 문호를 포괄하되 극진히 하였다.
마침내 대당 인덕 3년(666) 섭제격(攝提格), 율은 고세(沽洗) 5월 10일162)에야 편집을 마쳤다. 자못 그 그윽한 말을 모아서 권(卷)를 살펴볼 때마다 마음의 구슬을 얻게 될 것이고, 정도(正道)를 따르는 이는 글을 펼칠 적마다 감로를 마실 것이다. 이것을 풀어나감으로써 미묘함을 알게 되고 이것을 보게 됨으로써 오묘함을 보게 될 것이니, 둥근 태양과 더불어 다 함께 비추고 선궁(璇穹)과 더불어 장구하리라.
033_0505_b_22L朝議大夫行中臺司元大夫隴西李儼字仲思撰自夫六爻爰起八卦成列肇有書契昭乎訓典鳳篆龍圖金簡玉字百家異轍萬卷分區雖理究精微言殫物而紀情括性未出於寰中原始要詎該於俗外亦有藏史之說園吏之談寶經浮誕錦籍紆怪同鏤冰而無成若書空而匪實與夫貫華妙旨寫葉玄詞二乘之宏博八藏之沈秘競以淺深較其優劣亦猶蟻垤之小比峻於嵩華牛涔之微爭長於江漢夫其顯了之義隱密之規解脫之門摠持之菀前際後際竝契眞如初心末心咸歸正覺導迷生於慾海情塵共心垢同消引窮子於慈室衣寶與髻珠雙至化溢恒沙之境功被微塵之劫大哉至矣不可得而稱焉洎偕雨徵周佩日通漢蔡愔西涉竺蘭東金口之詞寶臺之旨盈縑積籒被乎中域而卷軸繁夥條流深曠實相眞源卒難詳覽曁我皇唐造物聖上君臨玄教聿宣緇徒允合傳輝寫液照潤區宇梵響誦音喝咽都甸宣之盛指喩難極屬有西明大德道世法師者字玄惲釋門之領䄂也嶷聚砂落飾綵衣之歲慈殷接蟻成具受之壇戒品圓明與呑珠而等律義精曉隨照鏡而同欣愛慕大乘洞明實相爰以英博召居西明以五部餘閑三藏遍覽以爲古今緜制作多人雖雅趣佳詞無足於博所以搴文囿之菁華嗅大義之瞻以類編錄號曰法菀珠林摠一百勒成十帙義豐文約紐虞氏之博迹宣道鏡晞祐上之弘明其言以其道斯著擧至賾而無遺包妙門而必盡粤以 大唐麟德三年歲在攝提律惟沽洗三月十日纂集斯畢庶使緝玄詞者探卷而得意珠軌正道者披文而飮甘露繹之以知微之而睹隩與環景而齊照將琁穹而共久
廣弘明集卷第二十
癸卯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삼국시대 위나라 문제(文帝)이다. 조조의 맏아들로 조조가 죽은 뒤에 위왕이 되어 후한의 헌제를 폐하고 제위에 올랐다. 시부(詩賦) 40여 편과 전론(典論)이 전한다.
  2. 2)양(梁)나라 사람으로 관은 신흥태수(新興太守)를 지냈고 무공(武功)에 의해 여포현남(茘浦縣男)에 봉해졌다.
  3. 3)용안은 한고조, 일각은 노자, 삼루는 우임금의 귀, 동종은 순의 귀를 말한다. 모두 성인의 특이한 모습을 나타낸다.
  4. 4)모든 정사를 총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5. 5)『주역』 「건괘(乾卦)」에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라고 하였다. 즉 재전(在田)이란 성현영웅들이 나타나서 이름을 떨치던 때를 말한다.
  6. 6)묘는 28수의 하나로 서방의 별이다.
  7. 7)옥새나 보정(寶鼎) 등의 제위(帝位)를 상속하는 보배를 말한다.
  8. 8)제운(帝運)을 말한다. 우임금이 구정(九鼎)을 주조하게 되면서부터 이것을 삼대의 보기(寶器)라고 하게 되었다.
  9. 9)초성은 협주성(陜州城)에 있고, 동북으로 초수(焦水)가 있다. 덕을 버린 군주란 제나라 군주를 말한다.
  10. 10)주나라 무왕(武王)이 왼쪽에 황월(黃鉞)을 쥐고, 오른쪽에는 백모(白旄)를 잡고 지휘하였다.
  11. 11)오색의 돌이다. 여와(女媧)가 오색돌을 이용하여 하늘을 기우고 사극(四極)을 세웠다고 한다.
  12. 12)28수 중 항수(亢宿)에 속한 별 이름으로 대각성 좌우에 각각 세 개의 별이 있는데 그 왼쪽의 세 별을 좌섭제, 오른쪽의 세 별을 우섭제라고 한다.
  13. 13)정월의 이칭이다.
  14. 14)천문을 살펴보는 고대(高臺)이다.
  15. 15)삼진(三辰), 삼광(三光)이라고 하며 해와 달, 별을 말한다.
  16. 16)원문에는 ‘청운천려(靑雲千呂)’라고 되어 있는데 ‘천(千)’은 ‘간(干)’의 오기인 듯하다.
  17. 17)유산은 완유산(阮隃山)이다. 황제의 신하 영륜(伶倫)은 이 산 아래에 가서 12개의 대롱을 만들어 봉황의 울음을 듣고 12율을 지었다.
  18. 18)균은 대나무 이름이다. 앞의 주의 영륜은 대하(大夏)의 서쪽에서부터 완유의 북쪽으로 가서 대나무를 계곡에서 취하였다.
  19. 19)율은 12율로 양의 여섯이 율(律), 음의 여섯이 려(呂)이다. 율은 양으로써 자종(雌鍾)에 응한다.
  20. 20)한나라 무제의 상림원에 비유한 것으로 양나라 조정을 일컫는 말이다.
  21. 21)지금의 아룡강(雅龍江)으로 황제의 아들 창의(昌意)가 내려와서 약수에서 살았다고 한다.
  22. 22)고신씨(高辛氏)의 악명(樂名)이다.
  23. 23)꿩의 깃털은 악무(樂舞)에 사용하였다.
  24. 24)바퀴를 부들로 감싸서 덜컹거리지 않게 한 수레이다. 고대에 노인의 수레에 사용하거나 또는 현자를 모셔올 때 사용하여 현자를 공경하는 뜻을 나타내었다.
  25. 25)노택이란 노나라 공자의 고택을 말한다. 노나라 공왕 때에 공자의 고택을 무너뜨리자 그 벽 안에서 고문 경전이 나왔다.
  26. 26)밤을 찐 것과 같은 색을 말한다. 황색 비단의 서질(書帙)을 말한다.
  27. 27)문서의 뜻이다. 살청은 죽간을 만드는 과정의 하나이다. 대나무를 불에 쬐어 수분을 없애고 청색 표피를 제거하여 글을 쓰기 쉽게 하고 좀을 방지하였다.
  28. 28)허파처럼 생긴 붉은 돌이다. 조정의 문 밖에 두고 불평이 있는 백성이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하게 하였다.
  29. 29)주나라 선왕(宣王)의 현신이다.
  30. 30)소호(召虎)라고 쓴다. 역시 주나라 선왕 때 사람이다.
  31. 31)은나라 때 길성(姞姓)의 나라로 주나라 문왕에게 멸망당했다.
  32. 32)법화(法華) 7유(喩)의 하나로 소승열반에 비유한 것이다. 여러 사람이 보배가 있는 목적지를 찾아가다가 그 길이 험하여 매우 피곤해 하니, 대상(隊商)의 지도자가 한 계교를 내었다. 신통력으로 임시로 큰 성을 나타내게 하여 여기가 보배가 있는 곳이라 하니, 사람들은 대단히 기뻐하여 이 성에서 잠시 쉬었다. 길잡이는 여러 사람의 피로가 회복됨을 보고는 화성을 없애버리고 다시 진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게 하였다고 한다. 이 화성을 방편교의 깨달음에, 보배 있는 곳을 진실교의 깨달음에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33. 33)안락하고 평화로운 곳, 황제가 꿈속에서 화서국의 태평성대를 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34. 34)막고야산(藐姑射山)을 말한다. 『장자』「소요유」에 나오는 신인(神人)이 사는 곳으로 예로부터 정신적 이상향으로 일컬어져 왔다.
  35. 35)섬서성 낙남현의 서쪽, 낙수의 남쪽의 산 이름인데 천자의 거처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선궁(仙宮)의 의미로 쓰였다.
  36. 36)앞의 막고야산은 분수(汾水)의 양(陽), 분수의 북쪽에 있었다.
  37. 37)모두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것 같다.
  38. 38)한나라의 선인(仙人), 하상공(河上公)을 말한다.
  39. 39)황제(黃帝)의 명의(名醫)였다.
  40. 40)본래는 진나라의 이궁(離宮)이었는데 한나라 무제 때 증축한 궁전이었다. 운양궁(雲陽宮), 임광궁(林光宮)이라고도 한다.
  41. 41)진시황이 선인(仙人) 선문자고(羨門子高)의 덕을 갈석에 새겼다.
  42. 42)『한서』「무제기」에 의하면 태시(太始) 4년 여름 4월에, 무제가 부기산으로 가서 교문궁에서 신인을 제사지내고 교문의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43. 43)농종은 산의 높고 험준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의 선이란 봉선(封禪)을 말하는 것으로 산천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44. 44)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은 선인의 부(府)이다.
  45. 45)8전도(顚倒)라고도 한다. 범부와 소승 등이 미혹한 고집으로 바른 이치를 뒤바뀌게 하는 여덟 종류의 그릇된 견해이다. 유위생멸(有爲生滅)하는 법을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하다고 고집하는 범부의 4도(倒)와 무위열반의 법을 무상(無常)ㆍ무락(無樂)ㆍ무아(無我)ㆍ무정(無淨)이라 고집하는 2승(乘)의 4도를 합친 것이다.
  46. 46)십간 중에 ‘계(癸)’를 고갑자로 이르는 말이다.
  47. 47)북방에 있는 별의 이름이다. 12차의 하나이다. 허(虛)ㆍ위(危)ㆍ여숙(女宿)을 포함한다.
  48. 48)12율의 하나로 음률에 속하며 음력 2월의 이칭이다.
  49. 49)형벌의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수나라 때 처음 설치하여 청나라 때까지 이어졌다.
  50. 50)범어로 āśaya, 아세야(阿世耶)라고 음역한다. 휴식처, 주처(住處), 사의(思意), 의향(意向) 등의 의미가 있다. 무슨 일인가를 하려고 하는 생각을 말한다.
  51. 51)전국시대 제나라 선왕의 도시로 매우 부유한 곳이었다.
  52. 52)도리천은 삼십삼천, 수미산의 정상, 염부제 위에 있어 제석천이 여기에 산다.
  53. 53)오로지 나라만을 위하고 개인의 이익을 돌보지 아니하는 정신을 비유한 것이다. 십간(十干)은 순환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54. 54)육규는 육용(六龍)으로 여섯 용을 타고 천하를 다스린다. 육용은 육효(六爻)이다. 천자의 거가(車駕)는 여섯 말이 이끈다.
  55. 55)한나라 무제 때 무관의 이름이다. 주살 쏘는 일을 맡았다.
  56. 56)『수경주(水經注)』에 의하면 담대자우(澹臺子羽)가 천금이나 되는 옥을 가지고 황하를 건넜다. 그때 파도가 일면서 두 마리 교룡이 배를 둘러싸며 말하기를, “나는 의(義)로써 구할 수 있으나 위협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우가 칼을 잡고는 교룡을 베니 교룡이 죽고 파도가 잠잠해졌다.
  57. 57)임금의 호위 및 궁궐의 호위를 맡았던 벼슬 이름이다.
  58. 58)불신(佛身)을 말한다. 부처는 몸의 색이 금산과 같거나 또는 광명이 빛나 금산 같다고 한다.
  59. 59)월면불(月面佛)을 말한다. 이 부처의 수명은 1일 1야이다.
  60. 60)수투로(修妬路)라고도 한다. 수다라(修多羅)의 다른 음이다.
  61. 61)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神將)이란 뜻으로 팔부신장 가운데 천룡이 상도(上道)가 되므로 이렇게 이름하였다. 마치 유가에서 시서육경(詩書六經)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팔부는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迦)이다.
  62. 62)사리불의 역명(譯名)이다. 불제자 중 지혜의 제일이다.
  63. 63)천축승(天竺僧)의 뜻이다.
  64. 64)광승과 적자는 모두 외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65. 65)주나라의 대학이다.
  66. 66)하후 소강(少康)이 도읍했던 곳이다. 전국시대 때는 위(魏)나라의 분음땅이었다. 한나라 때 분음현(汾陰縣)을 두었고 하동군을 속하게 하였다.
  67. 67)한나라 고조와 초나라 항우가 만났던 곳이다.
  68. 68)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의 오덕을 말한다.
  69. 69)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부근이다. 은나라 때의 도성이었던 호(毫)가 이곳이다.
  70. 70)우(禹)의 치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71. 71)순임금의 음악이다.
  72. 72)운문(雲門)ㆍ대함(大咸)ㆍ대소(大韶)ㆍ대하(大夏)ㆍ대호(大濩)ㆍ대무(大武)로 황제 이하 삼대의 음악을 말한다.
  73. 73)주나라의 학교 이름이다.
  74. 74)한나라 제실(帝室)의 문고이다. 후대에는 사관(史官)을 지칭하게 되었다.
  75. 75)앞의 은거의 하얀색에 대비하여 흑(黑)을 덧붙인 듯하다. 혹은 흑치국 등과 같이 외국의 황복(荒服)의 땅에서 파견되어 온 사람들이 차는 부절이란 뜻이기도 하다.
  76. 76)서방의 월지국(月氏國)을 말한다.
  77. 77)우임금은 밖에서 13년을 거처하며 집 문을 넘어서 들어가지 않았고 음식도 아주 초라하게 먹었다.
  78. 78)요임금 때의 도사(道士)인 백성자고(伯成子高)를 말한다.
  79. 79)별이름이다. 지구에 최고로 가까운 항성으로 겨울과 봄 사이에 남방에 나타난다.
  80. 80)봉황의 형상으로 만든, 취우로 장식한 천자의 수레이다.
  81. 81)인술(仁術)에 해당된다. 맹춘에는 만물이 비로소 생동하기 때문에 나무를 벤다거나 금수를 죽이는 것 등을 금한다. 천도를 변하는 일이 없고, 지리를 없애는 것이 없다.
  82. 82)앞의 생집(生什)은 생경의 평범한 사람이란 뜻이다. 응왕(應王)은 생집에 대해서 고재(高才)이다.
  83. 83)판본에 따라서는 ‘현포원강송계(玄圃園講頌啓)’를 위의 ‘상황태자현포강송계’와 ‘답현포원강송계령(答玄圃園講頌啓令)’ 사이에 두었다. 그것이 더 맞는 듯하다.
  84. 84)요임금이 태어난 곳이다.
  85. 85)건(犍)은 거세한 소를 말한다. 법건이란 거세한 소를 본받는다는 의미로 성적인 욕망을 없앤다는 의미인 듯하다.
  86. 86)하나라 우(禹)의 아들인 계(啓)이다. 우가 죽은 후 제후가 그에게 귀의하여 받들어 즉위하였다. 현명하여 우의 업을 계승하고 유호씨(有扈氏)를 멸하며, 덕교를 사해에 펼쳤다.
  87. 87)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말한다. 3시(施) 가운데 무외시(無畏施)를 제외한 칭호이다.
  88. 88)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의 5대종(大種)을 말한다. 대종(大種)이라 함은 널리 일체 만법에 걸쳐 있어 그것들을 생성하고 그것들의 의지처가 되어 본원이 되는 것이란 뜻이다.
  89. 89)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이기고 돌아와서 박 땅에 이르러 도읍을 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90. 90)후진(後秦)은 요씨(姚氏), 후조(後趙)는 석씨(石氏), 초(譙)는 옛날의 국명 또는 현명(縣名), 온(溫)은 현명이다.
  91. 91)원선자(苑宣子)의 조상은 우순(虞舜) 이전에는 도당씨(陶唐氏), 하나라에서는 어룡씨(御龍氏), 은나라에서는 시위씨(豕韋氏), 주나라에서는 당두씨(唐杜氏)이다.
  92. 92)교지(交阯)라고도 쓴다. 지금의 안남지방이다.
  93. 93)복희가 거문고를 만든 것은 몸을 수양하고 성(性)을 다스리며 사벽(邪僻)을 막고 마음의 음란함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금(琴)은 금(禁:금하다)의 의미이다.
  94. 94)호흡을 세어 마음의 산란을 더는 정신통일법으로 16종의 특히 훌륭한 관법이라는 뜻이다.
  95. 95)비사문(毘沙門) 등의 사천왕에게 각각 28부의 귀신 무리가 있다.
  96. 96)『예기』「문왕세자」에 의하면 “봄과 여름에는 간과(干戈)를 배우고, 가을과 겨울에는 우약(羽籥)을 배운다”고 하였다. 우약은 꿩의 깃털과 피리를 말하는데 문무(文舞)를 출 때 갖추던 것이다.
  97. 97)『예기』를 ‘소대기(小戴記)’라고도 한다. 한나라 말에 마융이 소대기에 「월령(月令)」, 「명당위(明堂位)」, 「악기(樂記)」를 더하여 지금의 예기가 되었다.
  98. 98)희(姬)는 주나라의 성(姓), 주나라 무왕의 이름은 발(發)이다.
  99. 99)선관(蟬冠)이라고도 한다. 담비 꼬리와 매미 날개로 꾸민 관이다. 한나라 때에 시종관이 쓴 것에 연유하여 고관의 통칭으로도 쓰인다.
  100. 100)반구부신(反裘負薪)을 말한다. 갖옷의 털이 닳을까 아끼다가 도리어 그 가죽이 닳아 없어짐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서, 어리석은 사람, 경중과 본말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101. 101)오손국(烏孫國)에 적곡성이 있다.
  102. 102)장안에 요류성이 있었다.
  103. 103)남이(南夷)에 있었던 나라 이름이다.
  104. 104)주감(周堪)에게 상서(尙書)를 수업받고, 구경(九卿)에까지 이르렀다. 그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많아서 허씨학(許氏學)이라고 불렸다. 저서에 『오행론(五行論)』이 있다.
  105. 105)『주례』에 귀인(歸人)이 담당하던 여섯 거북 가운데 하나이다. 남쪽의 것을 다른 말로 렵(獵)이라고도 불렀다.
  106. 106)진시황 때의 선인(仙人)으로 이름이 자고(子高)였다.
  107. 107)잠과 금검은 모두 병을 방지한다는 뜻에서 통한다. 잠(箴)은 침(針), 금(琴)은 금(禁)의 의미로 음사(淫邪)를 금하고 인심을 바르게 한다는 의미이며 검(劍)은 검(檢)의 의미로 비상(非常)을 방검(防檢)한다는 뜻이다.
  108. 108)책명으로 황제(黃帝)의 역사이다. 공갑(孔甲)이 지었다고 한다. 26편 혹은 29편이다.
  109. 109)삼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박물다식(博物多識)하여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후한 헌제(獻帝) 때 채옹(蔡邕)이 그를 뛰어나게 여겨 그의 서적과 문서를 모두 그에게 주었다. 위나라에서 벼슬하여 시중이 되었다. 건안칠자(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10. 110)동진(東晋) 사람으로 박학하여 예의조묘(禮儀祖廟)의 제도는 모두 그에게 물었다. 소준(蘇峻)을 평토(平討)한 공으로 제양남(濟陽男)에 봉해졌다. 관은 강제(康帝) 때 시중(侍中), 사도(司徒)가 되었다.
  111. 111)누구나 마실 수 있게 거리에 마련해 놓은 술그릇이란 뜻으로 널리 인망을 얻거나 인정을 베푸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112. 112)극히 가벼운 무게의 단위로 기장 10개의 무게가 1루이다. 또는 매우 작은 것에 대한 비유로도 쓰인다.
  113. 113)십이지 중의 ‘인(寅)’을 고갑자로 이르는 말이다.
  114. 114)복상은 공자 제자 자하(子夏)를 말한다. 공자가 죽고서 자하는 서하(西夏)에 거처하면서 교수하였다. 「시서(詩序)」와 「역전(易傳」이 있다.
  115. 115)한나라의 양웅(揚雄)으로 자는 자운(子雲)이다.
  116. 116)양웅(揚雄)이 지은 『태현경(太玄經)』을 말한다. 『역』을 본받아 지었다. 현(玄)은 천지 만물의 기원이며, 태(太)는 그 공덕을 형용한 것이다.
  117. 117)한나라 무제 때의 오구수왕(吾丘壽王)으로 자(字)는 자공(子贛)이다. 동중서(董仲舒)를 쫓아가 춘추학을 배우고 광록대부 시중이 되었다. 승상 공손홍(公孫弘)과 논란하여 그를 굴복시켰다.
  118. 118)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이다.
  119. 119)『열반경』에 나오는 말로 코끼리를 불성에다 비유하고 맹인을 무명의 중생에 비유하여 맹인들이 코끼리의 몸을 만져 보고 여러 가지 해석을 하는 것이다.
  120. 120)범어로 Upagupta이며 우바국다(優婆毱多)라고도 한다. 불법을 전해 받은 제4조로 아쇼카왕의 스승이다. 마돌라국(摩突羅國)에서 출생하였다. 아육왕을 위하여 우타산으로부터 화씨성에 이르러 설법하고, 왕에게 권하여 부처님의 유적 8만 4천 탑을 세웠다.
  121. 121)소승 5부이다. 부처가 멸한 후 백 년 뒤에 우바급다에게 제자가 5명 있었는데 율에 대해서 5부의 파별(派別)을 만들었다.
  122. 122)아비담(阿毘曇)의 여덟 종류의 건도(犍度)이다.
  123. 123)유부(有部)의 설로 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의 네 가지를 말한다. 합쳐서 4상(相)ㆍ4유위상(有爲相)이라 한다.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무상한 존재로서 미래의 위(位)로부터 인연의 힘으로 현재의 위(位)에 생겨나지만 그 태어난 다음 순간에는 멸하여 과거의 위로 사라져 가버린다.
  124. 124)불교에서 사람의 성질을 셋으로 나눈 것이다. 정정취(正定聚)는 항상 진정하여 결국에 성불할 종류, 사정취(邪定聚)란 성불할 만한 소질이 없어 더욱 타락하여 가는 종류, 부정취(不定聚)란 연이 있으면 성불할 수 있고, 연이 없으면 미혹할 종류로 나뉜다.
  125. 125)삼시란 기해(己亥)를 삼시(三豕)로 잘못 읽는 것을 말한다.
  126. 126)북원적초(北轅適楚), 북철남원(北轍南轅), 북행지초(北行至楚)라고도 한다. 목적과 행위가 상반됨을 비유한 것이다.
  127. 127)비파나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으면 음조(音調)를 바꾸지 못하므로 한 가지 소리밖에 나지 않듯이 고지식하여 조금도 융통성이 없이 꽉 막힌 소견을 비유하는 말이다.
  128. 128)주색과 자색을 가린다는 말은 사(邪)와 정(正)을 구별한다는 의미이다.
  129. 129)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다고 여긴데서, 사물의 진위ㆍ시비 및 인품의 우열ㆍ청탁의 비유로 쓰인다.
  130. 130)범어로 Kātyāyana이다. 남인도 사람으로 석존 10대 제자 가운데 논의(論議) 제일이다.
  131. 131)범어로 Dharmaśrī이며 인도 사람으로서 2세기경의 학승이었다. 유부(有部)의 교의를 넓혀서 『아비담심론』 4권을 지었다.
  132. 132)우루가(優樓迦)라고 하며, 범어로는 Ulūka이다. 인도 6파 철학의 하나인 승론파의 시조이다. 출생한 때는 석존 이전이다.
  133. 133)보살이 진리에 잘 머물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만유의 제법이 자성(自性)은 공공적적(空空寂寂)하여 본래 무생(無生)이라고 인가하는 것을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하며, 무생(無生)과 더불어 무멸(無滅)이라고 인가하는 것을 무멸인(無滅忍)이라고 하며, 만유는 모두가 인연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본래 자성이 없다고 인가하는 것을 인연인(因緣忍)이라고 하며, 만유의 모든 법은 본래 무주(無住)라고 인가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고, 잡념이 섞이지 않는 것을 무주인(無住忍)이라고 한다.
  134. 134)인공(人空)ㆍ법공(法空)ㆍ구공(俱空)의 삼공이다.
  135. 135)수보리의 역명(譯名)이다. 온갖 법이 공(空)한 이치를 처음 깨달은 석존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136. 136)아난타(阿難陀)이다. 석존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유명하다.
  137. 137)부루나(富樓那)이다. 석존 제자 중 설법제일(說法第一)로 유명하다.
  138. 138)한나라 무제 때 장군 곽거병(霍去病)은 흉노를 공격하여 관군후(冠軍侯)에 봉해졌었다. 흉노를 정벌한 위청(衛靑)과 함께 ‘위곽’으로 병칭되어진다. 여기에서는 곽거병이 자신의 군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위청의 진용(陣容)을 이용하였다는 말이다. 여기서 용(容)이란 몸을 허용하여 화살을 막는다는 방(防)의 의미이다.
  139. 139)덕을 미륵의 화림국에 비유한 것이다.
  140. 140)시수는 한나라의 학자였다. 전왕손(田王孫)에게서 『역』을 배웠다. 맹사선(孟士善)과 구하(丘賀)와 문인이었다. 구하는 소부(少府)가 되었다. 시수는 어린 나이부터 스승을 따라서 수십 년이 지난 뒤에는 구하가 미칠 수 없게 되었다. 시수는 박사에 제수되었고 후에 장우(長禹)에게 전하고 우는 팽선(彭宣)에게 전하여 전씨의 전함을 얻게 되었다.
  141. 141)동한 마융(馬融)은 안제(安帝) 때 교서랑이 되었고 환제(桓帝) 때 남군태수가 되었다. 여러 학생들을 가르쳐 항상 천(千)으로 그 수를 헤아릴 정도였다. 정현(鄭玄)은 그의 무리가 되어 배운 지 10여 년이 되어 당고(黨錮)의 화가 있어 두문불출하였다. 그의 저서가 백여만언(百余萬言)이라고 할 정도였다.
  142. 142)오나라 임금 손권이 적오(赤烏) 4년(249) 강승회(康僧會)에 의해 사리를 얻어 건업에 건초사를 세운 일을 말한다.
  143. 143)차도는 하충(何充), 효백은 왕공(王恭), 가빈은 치초(郗超), 현도는 허순(許詢)을 말한다. 이들은 모두 진(晋)나라에서 불교를 섬겼던 사람들이다.
  144. 144)진(晋)나라 사람으로 자(字)는 사형(士衡)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났다. 오(吳)나라의 멸망을 안타까워하여 『변망론(辨亡論)』을 저술하였고, 『육평원집(陸平原集)』이 있다.
  145. 145)후한의 양수(楊修)이다. 자가 덕조였다. 위나라 조조를 섬겼다.
  146. 146)위나라의 종요(鍾繇)이다. 자가 원상이었다. 무제의 태부였다.
  147. 147)홍범구주를 말한다. 고대에 전해진 것을 기자(箕子)가 서술하여 기주라고 하게 되었다.
  148. 148)천자의 육새(六璽)를 말한다. 이것을 사용하여 내외의 정치를 행하였다.
  149. 149)서(恕)란 공자가 일이관지(一以貫之)한 도이다. 따라서 유자 가운데 탁월한 이를 뽑는다는 의미이다.
  150. 150)기도굴산의 취봉을 말한다. 부처님이 설법한 땅이다. 따라서 석문의 뛰어난 자를 뽑는다는 의미이다.
  151. 151)법신(法身), 반야, 해탈을 말한다.
  152. 152)변화(卞和)는 옥[璧]을 이 산에서 얻었다. 후에 조나라에서 이 옥을 얻게 되었는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조나라 왕에게 편지를 보내 50개의 성과 이 옥을 바꾸자고 청한 것에 의해 연성(連城)의 벽(璧)이라고 하게 되었다.
  153. 153)순임금의 음악을 남풍(南風)이라고 한다. 남려(南呂)는 음조의 12율의 하나로 8월에 해당한다. 약은 악기로 피리[笛]의 일종이다. 궁징은 5음의 두 번째이다.
  154. 154)화려하기만 하고 내용이 없는 글을 말한다.
  155. 155)우유를 정제하는 다섯 가지 과정 가운데 마지막 과정을 거친 제일 정밀한 것으로 불성(佛性)을 이것으로 비유하여 제호라고 한다.
  156. 156)노자의 설을 가리킨다. 노자는 주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였다.
  157. 157)장자의 설을 가리킨다. 장자는 몽(蒙)의 칠원(漆園)의 관리였다.
  158. 158)앞의 보경과 금적 모두 도교의 경전을 말하는 것이다.
  159. 159)석가 탄생의 징조를 보인 것을 말한다.
  160. 160)한나라 명제가 꿈에서 금인(金人)을 본 것을 가리킨다.
  161. 161)장식을 떼어낸다는 뜻으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낙발(落髮)이라고도 한다.
  162. 162)고세는 계춘, 즉 3월에 해당되는데, 5월에 완성되었다고 하였으니 잘못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