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3_0704_a_01L남해기귀내법전 제4권
033_0704_a_01L南海寄歸內法傳卷第四


의정 지음
이창섭 번역
033_0704_a_02L翻經三藏沙門義淨撰


31. 관목존의(灌沐尊儀)
033_0704_a_03L三十一灌沐尊儀
三十二讚詠之禮
三十三尊敬乖式
三十四西方學儀
三十五長髮有無
三十六亡財僧現
三十七受用僧衣
三十八佛遮燒己
三十九傍人獲罪
四十古德不爲
三十一灌沐尊儀

수행하고 공경하는 근본으로 삼존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 계상(契想)의 원인이 어찌 사제(四諦)를 넘어서겠는가? 그런데도 진리는 그윽하고 깊으며 일은 거친 마음과는 거리가 있다. 성의(聖儀)에 물부어 씻겨 주는 것은 실로 모든 것을 제도하는 일이다. 큰 스승님은 비록 멸도하셨지만 그 형상은 아직 남아있어 마음을 지극히 하면 살아계시는 것과 같으니, 이치로 보아 마땅히 따르고 공경하여야 한다. 혹 향화를 늘 마련하여 청정한 마음이 생길 수 있게 하여도 되고, 또 항상 불상을 씻겨서 혼침한 업을 쓸어버려도 된다. 이렇게 마음을 두드린다면 드러나지 않은 이익을 스스로 거두어들이게 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권장한다면 유작(有作)의 공덕으로 아울러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니, 바라건대 복을 구하는 사람은 뜻을 여기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033_0704_a_14L詳夫修敬之本無越三尊契想之因寧過四諦然而諦理幽邃事隔麤心灌洗聖儀實爲通濟大師雖滅形像尚存翹心如在理應遵敬或可香花每設能生淸淨之心或可灌沐恒足蕩昏沈之業以斯摽念無表之益自收勸獎餘人有作之功兼利冀希福者宜存意焉
033_0704_b_01L다만 서쪽 나라의 모든 절에서는 존의(尊儀)를 씻기는 일은 늘 사시(巳時)에 하게 된다. 이때 일을 감독하는 사람이 곧 건치(健稚)를 울린다일을 감독하는 사람을 범어로 갈마타나(羯磨陀那)라 한다. 타나는 내려준다는 뜻이고, 갈마는 일이란 뜻이다. 내용은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내려준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것을 유나(維那)라 한 것은 잘못이다. 유나의 유(維)는 중국의 음이고 그 뜻은 강유(綱維)를 말한 것이며, 나(那)는 범어의 발음으로 갈마다나란 말에서 갈마타를 생략한 것이다.
033_0704_a_22L但西國諸寺灌沐尊儀每於禺中之授事便鳴健稚授事者梵云羯磨陁那陁那是授磨是事意道以衆雜事指授於人舊云維那者非也維是唐語意道綱維那是梵音略去羯磨陁字
절 마당에는 보개(寶蓋)를 치고 불전 옆에 향병을 나열하며 금ㆍ은ㆍ동ㆍ돌로 만든 불상을 취하여 동ㆍ금ㆍ나무ㆍ돌의 반석에 안치한다. 안에서는 여러 기녀(妓女)들이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마향(磨香)을 바르고 향수로 관욕시키고전단향(栴檀香)ㆍ침수향(沈水香) 등을 취하여 초석 위에서 물로 갈아 흙이 되게 하고 이것을 사용하여 불상의 몸에 바르고 비로소 물을 붓는다 깨끗한 흰 주단으로 문질러 닦는다. 그런 다음에 불전 안에 안치하고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한다. 이것이 곧 절의 대중들의 의식이며 갈마타나가 그것을 맡아 한다.
033_0704_b_04L寺庭張施寶蓋殿側羅列香甁取金銀銅石之像置以銅金木石槃內令諸妓女奏其音樂塗以磨香灌以香水取栴檀沈水香木之輩於礎石上以水磨使成泥用塗像身方持水灌以淨白疊而揩拭之後安置殿中布諸花綵此乃寺衆之令羯磨陁那作矣
승방마다 그 안에서는 나름대로 존의를 목욕시키며 날마다 모두가 마음을 가늠하여 빠지는 날이 없게 한다. 다만 이곳에서는 초목의 꽃을 갖고 와서 모두 봉헌하니 겨울 여름을 논할 것 없이 항상 꽃향기가 자욱하고 저자의 곳곳에는 꽃을 파는 사람도 많다.
033_0704_b_10L然於房房之內自浴尊儀日日皆爲要心無闕但是草木之花咸將奉獻無論冬夏芬馥恒然市肆之閒賣者亦衆
동하(東夏)의 경우에는 연꽃과 석죽(石竹)은 여름과 가을에 여기저기를 물들이고, 금형화(金荊花)와 복사꽃ㆍ살구꽃은 봄날에 만개하며, 목근화(木槿花)와 석류(石榴)는 계절에 따라 바꾸어 가며 피고 주홍빛 앵두꽃과 흰 능금나무 꽃은 시절 따라 꽃망울을 터뜨리니, 동산에 피는 촉규화[蜀葵] 등과 산장(山莊)에 피는 향기로운 풀 등을 반드시 갖고 와서 벌려 놓아야 하며 멀리서 수원(樹園)을 가리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겨울 볕이 들면 잠깐 동안 혹 꽃이 부족한 일이 있으니 이때는 여러 가지 비단을 잘라 좋은 향을 모아서 존상 앞에 설치하니 이는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033_0704_b_13L且如東夏蓮花石竹則夏秋散彩金荊挑杏乃春日敷榮木槿石榴隨時代發朱櫻素奈逐節揚葩園觀蜀葵之流山莊香草之類必須持來布列無宜遙指樹園冬景片時或容闕乏翦諸繒綵坌以名香設在尊前斯實佳也
동상(銅像)에 이르러서는 작고 큰 것을 물을 것 없이 반드시 가는 재나 벽돌가루로 문질러 닦아서 광명이 나게 하고, 맑은 물을 부어서 투명하고 빛나기가 거울같이 하여야 한다. 큰 불상은 보름날과 그믐날에 모든 대중이 함께 하고 작은 불상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늘 씻겨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비록 적더라도 복덕의 이익은 매우 많다.
033_0704_b_19L至於銅像無問小大須細灰甎末揩拭光淸水灌之澄華若鏡大者月半月盡合衆共爲小者隨己所能每須洗斯則所費雖少而福利尤多
033_0704_c_01L불상을 목욕시키는 물은 두 손가락으로 정수리 위에서 퉁기는데 이것을 길상(吉祥)의 물이라 하기 때문에 커다란 복을 구하기를 바란다. 불전에 봉헌하고 남은 꽃은 들어서 향기를 맡아서는 안 된다. 물과 꽃을 버려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되며 깨끗한 곳에 이를 기울여 놓아야 한다.
033_0704_b_23L其浴像之水卽擧以兩指瀝自頂上斯謂吉祥之水冀求勝利奉獻殘花不合持棄水棄花不應履踐可於淨處而傾置之
어찌 흰머리로 죽을 때까지 한번도 존상을 닦아 목욕시키지 않고 붉은 꽃이 들에 두루 피어도 본래 스스로 그것을 봉헌할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끝내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생략한 채 게으르게 되어 멀리서 못과 정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쉬고, 고된 것이 두려워 할 일에 게을러져서 법당을 열고 보경(普敬)하는 일도 그만둔다면 이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이어주는 관계가 끊어지는 일로 마침내 공경을 이룰 말미가 없게 만드는 일이다.
033_0704_c_04L豈容白首終年尊像曾不揩紅花遍野本自無心奉薦而遂省懶遙指池園卽休畏苦惰爲開堂普敬便罷此則師資絕緖遂使致敬無
흙으로 탑을 만들고 또는 니상(泥像)의 본을 떠서 혹 비단이나 종이에 인쇄하여 곳에 따라 공양드린다. 혹 흙을 쌓고 모으고 벽돌로 둘러쌓으면 곧 불탑이 이루어진다. 혹 빈 들판에 놓아 두어 그것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도록 내버려두기도 한다. 서방의 스님과 속인들은 이것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다.
033_0704_c_08L造泥制底及拓摸泥像或印絹紙隨處供養或積爲聚以塼裹之卽成佛塔或置空野任其銷散西方法俗莫不以此爲業
또한 대체로 부처님의 형상과 탑을 만들 때 금ㆍ은ㆍ동ㆍ철ㆍ진흙[泥]ㆍ옻나무[漆]ㆍ벽돌로 만들고 혹 모래와 눈을 모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만들 때 그 안에 두 종류의 사리를 안치한다. 하나는 대사(大師) 몸의 뼈이고, 두 번째는 연기법(緣起法)의 게송이다. 그 게송을 말한다.
033_0704_c_11L又復凡造形像及以制底金銀銅鐵泥漆甎石或聚沙雪當作之時中安二種舍利一謂大師身骨二謂緣起法頌其頌曰

모든 법 인연에서 일어나니
부처님 이 인연 말씀하셨네.
그 법도 인연으로 다한다고
이렇게 큰 스님 말씀하셨네.
033_0704_c_14L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이 두 가지를 안치하면 복이 크고 많아진다. 이로 말미암아 경전 가운데서는 널리 비유를 하면서 그 이익이 불가사의함을 찬탄하고 있다.
033_0704_c_16L要安此二福乃弘多由是經中廣爲譬喩歎其利益不可思議
만약 어떤 사람이 불상 만들기를 귀리[穬麥]처럼 작게 만들고, 탑 만들기를 작은 대추처럼 만들어 그 위에 윤상(輪相)을 설치하되, 장대는 가는 바늘처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남다른 인연은 7해(海)와 비슷하여 다함이 없게 되고, 그 뛰어난 과보는 사생(四生)에 두루하여 다함이 없을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소상한 내용은 다른 경전에 갖추어져 있으니, 여러 법사들께서는 때로 이에 힘쓰기를 바란다.
033_0704_c_18L若人造像如穬麥制底如小棗上置輪相竿若細鍼殊因類七海而無窮勝報遍四生而莫盡其閒委細具在別經幸諸法師等時可務哉
033_0705_a_01L존용을 씻고 공경하는 일은 세세생생에 부처님을 만날 업을 짓는 일이며, 꽃과 향을 마련해 놓는 것은 대대로 부락(富樂)의 인연이 된다. 스스로 업을 지어 다른 사람에게 무량한 복을 얻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일찍이 어떤 곳에서 보니 4월 8일에 혹 스님이나 혹은 속인이 길 가에 불상을 갖고 나와 편의에 따라 물을 부어 씻으면서도 문질러 닦을 줄을 몰랐는데, 이는 바람에 나부끼고 햇볕에 쪼일 뿐이지 그 의식에 일치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033_0704_c_22L洗敬尊容生生値佛之業花香致設代代富樂之因作敎人得福無量曾見有處四月八或道或俗持像路邊灌濯隨宜不知揩拭風飄日暴未稱其儀矣

32. 찬영지례(讚詠之禮)
033_0705_a_03L三十二讚詠之禮

중국 땅에서 예전부터 전해져 오는데 오직 예불이란 명칭만 알고 있을 뿐 많은 사람이 부처님을 칭념하고 공덕을 찬양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이름을 들으면 다만 그 이름만 들었을 뿐 지혜의 높고 낮은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찬탄하는 일은 자세히 그 덕을 말하는 것이기에 공덕의 넓고 깊은 것을 체득하게 된다.
033_0705_a_04L神州之地自古相傳但知禮佛題名多不稱揚讚德何者聞名但聽其名罔識智之高下讚歎具陳其德故乃體德之弘深
곧 서방의 경우에는 탑에 절하거나 보통 예경(禮敬)할 경우에도 늘 해질녘이나 혹 황혼 무렵에 대중들이 절문을 나서서 탑을 세 바퀴 돌고 향화를 갖추어 나란히 쭈그리고 앉는다. 그 가운데 소리에 능한 사람을 시켜 애달프면서도 단아한 소리를 내게 하여 명철하고 웅장하며 낭랑하게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다. 그리하여 혹 10수의 게송을 외우기도 하고 또 혹 20수의 게송을 외우기도 하면서 차례로 다시 절 안으로 들어가 늘 모이는 곳에 이르면 자리를 정하여 앉기를 마친다.
033_0705_a_08L卽如西方制底畔睇及常途禮敬每於晡後或曛黃時大衆出門繞塔三帀香花具設竝悉蹲踞令其能者作哀雅聲明徹雄朗讚大師德或十頌或二十頌次第還入寺中至常集處旣其坐定
한 경사(經師)에게 사자좌(師子座)에 오르게 하여 약간의 경을 독송하게 한다. 그 사자좌는 윗자리 스님의 머리 위에 있으며, 성량과 음의 높낮이도 적당한 정도를 헤아려 높거나 크지 않게 하고 독송하는 경은 흔히 삼계(三啓)로 외운다. 이것은 곧 존자 마명(馬鳴)1)이 모아놓은 것으로 처음에는 10수 가량 되는 게송에서 경전의 뜻을 취하여서 삼존(三尊)을 찬탄하였고 다음 정경(正經)을 진술하였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친히 설법하신 경이다. 독송이 끝나면 다시 10여 수의 게송을 말하고 회향(廻向)ㆍ발원(發願)을 논한다. 이 절차의 단계는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삼계(三啓)라 말하는 것이다.
033_0705_a_13L令一經師昇師子座讀誦少經其師子座在上座量處度宜亦不高大所誦之經多誦三啓乃是尊者馬鳴之所集置可十頌許取經意而讚歎三尊次述正經是佛親說讀誦旣了更陳十餘論迴向發願節段三開故云三啓
경이 끝날 때는 대중들은 모두 소바사다(蘇婆師多)라 말한다. 소(蘇)는 묘하다는 뜻이고, 바사다(婆師多)는 말이란 뜻이다. 내용은 경을 찬탄하고자 이것이 미묘한 말씀이라 한 것이다. 혹 때에 따라서는 사바도(娑婆度)라고도 하는데, 뜻은 거룩하다[善哉]는 말을 지목한 것이다.
033_0705_a_19L經了之時大衆皆云蘇婆師多蘇卽是妙婆師多是語意欲讚經是微妙或云娑婆度義目善哉
033_0705_b_01L그리하여 경사(經師)가 막 자리에서 내려오면 상좌 스님이 먼저 일어나 사자좌에 절한다. 공경을 닦는 일을 끝내면 다음에는 성승(聖僧)의 자리에 예배드리고 다시 본래 있던 곳에 자리잡는다. 다음은 두 번째 상좌 스님이 높은 자리의 스님이 앞 스님의 한 일에 준하여 두 곳에 예배드린 다음 상좌 스님에게 예배드리고 비로소 자기 위치에 자리잡고 앉는다. 세 번째 상좌 스님도 앞의 스님에 준하여 그렇게 하며 그 뒤 대중의 말석에 자리한 스님에게까지 이르러 끝낸다
033_0705_a_22L經師方下座先起禮師子座修敬旣訖次禮聖僧座還居本處第二上座准前禮二處已次禮上座方居自位而坐第三上座准次同然迄乎衆末
만약 그 대중의 집단이 커서 15인을 넘을 경우 나머지 스님들은 모두 일시에 대중을 바라보고 일어서서 예배드리고 사정에 따라 그곳을 떠난다. 이것이 곧 동인도[東聖方]의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 승도들의 모범 법식이었다.
033_0705_b_03L若其衆大三五人餘皆一時望衆起禮隨情而斯法乃是東聖方耽摩立底國僧徒軌式
나란타사(那爛陀寺)와 같은 사찰에 이르러서는 사람과 대중이 매우 번화하여 승도의 수효가 3천 명을 넘어서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모두 모이기가 어렵다. 이 절에는 8원(院)이 있고 승방이 3백 개가 있어 거처하는 곳에서 수시로 예배드리고 독송할 수 있을 따름이다.
033_0705_b_06L至如那爛陁寺人衆殷繁徒數出三千造次難爲詳集寺有八房有三百但可隨時當處自爲禮
그러나 이 절의 법에는 창(唱)에 능한 도사(導師) 한 사람으로 하여금 포시(晡時)2)에 이르러 늘 돌아다니며 예찬하게 하였으며 정인(淨人)과 동자들이 여러 가지의 향과 꽃을 지니고 앞을 인도하여 갔다. 원(院)마다 모두 지나가고 전(殿)마다 모두 예배드리며 때로는 높은 소리로 찬탄하면서 3송(頌)ㆍ5송을 외어 그 메아리가 두루 퍼지게 하고 해가 질 때가 되어야 비로소 모두 다 하였다고 말하게 된다.
033_0705_b_09L然此寺法差一能唱導師每至晡西巡行禮讚淨人童子持雜香花引前而去院院悉過殿殿皆禮每禮拜時高聲讚歎三頌五頌響皆遍徹乎日暮方始言周
이 창도하는 스님은 항상 절집에서 특별한 요리를 공양받게 되고 또한 향대(香臺)와 마주하게 되면 홀로 앉아서 마음 속으로 찬탄하고 혹 범우(梵宇)에 여러 사람이 모이게 되면 대중들은 꿇어 엎드리고 높이 천양(闡揚)한 후에 열 손가락을 땅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며 세 번 절한다.
033_0705_b_13L此唱導師恒受寺家別料供養或復獨對香臺則隻坐而心讚或詳臨梵宇則衆跪而高闡然後十指布地叩頭三禮
이것이 곧 서방에서 이어 온 바탕이 된 예경 의식이다. 그리고 늙고 병든 무리는 뒷자리[小座]에 자리잡는 대로 맡겨둔다. 찬불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이미 있었으나 다만 이를 행하는 방법이 조금 달라 범문(梵文)과 같지 않다. 또한 가령 예불할 때에 이르면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찬탄하여 말할 경우 곧 곧은 소리[直聲]로 길게 찬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경우 혹 10수의 게송을 외우기도 하고 혹 20수의 게송을 외우기도 한다. 이것이 그곳의 법이다.
033_0705_b_16L斯乃西方承籍禮敬之儀而老病之流任居小其讚佛者而舊已有但爲行之稍別不與梵同且如禮佛之時云歎佛相好者卽合直聲長讚或十頌二十頌斯其法也
또한 여래 등의 범패(梵唄)는 원래 이것이 찬불인데 자못 음운이 조금 길어 뜻을 나타내기가 어렵다. 혹 재(齋)에 인연하여 고요한 밤 대중들의 마음이 쓸쓸하고 구슬플 때 능숙한 어떤 사람을 시켜 150수나 4백 수의 게송으로 찬탄하게 하고 아울러 다른 특별한 찬탄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아름다움을 이루게 되는 일이다.
033_0705_b_21L又如來等唄元是讚佛以音韻稍長意義難顯或可因齋靜夜大衆悽然令一能者誦一百五十讚及四百讚幷餘別讚斯成佳也
033_0705_c_01L그런데 서쪽 나라에서 예경하는 것은 크게 찬탄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라 다만 재주있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공경하는 존상 앞에서 칭설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033_0705_c_01L而西國禮敬盛傳讚歎但有才人不於所敬之尊而爲稱說
또한 존자 마지리제타(摩咥哩制吒)3)는 곧 서방 세계의 굉재(宏才)로서 뭇 영준한 사람 가운데서도 빼어난 큰 덕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가 전하여 말하였다.
“예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어떤 인연으로 친히 대중들을 거느리시고 인간세계를 유행하셨는데, 그때 한 마리의 꾀꼬리가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보고 그 근엄함이 금산(金山)과 같기에 곧 숲 속에서 온화하고 고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부처님을 찬영하는 소리와 같았다. 이에 부처님께서 곧 여러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새가 나를 보고 기뻐하여 저도 모르게 슬피 울었다. 이 복된 인연 때문에 내가 죽은 이후 사람의 몸을 얻어 이름을 마질리제탁이라 하게 될 것이며 널리 칭탄하면서 나의 실덕(實德)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마지리(摩咥里)란 어머니란 뜻이며, 제타(制吒)는 아이란 뜻이다.
033_0705_c_03L且如尊者摩咥丁結反里制咤者乃西方宏才碩德秀冠群英之人也傳云昔佛在時因親領徒衆人閒遊行時有鶯鳥見佛相好儼若金山乃於林內發和雅音如似讚詠佛乃顧諸弟子曰此鳥見我歡喜不覺哀鳴緣斯福故我沒代後獲得人身名摩咥里制咤廣爲稱歎讚我實德也摩咥里是母制咤是兒也
그 사람은 처음에는 외도에 귀의해 출가하여 대자재천(大自在天)을 섬기었다. 그를 존경하였기 때문에 갖추어 그를 찬미하여 노래하였다. 후에 이름을 기억하신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어 부처님을 받들고 옷을 물들이고 속가에서 벗어나 널리 찬탄을 일으키면서 지나간 날의 잘못을 후회하고 앞으로는 훌륭한 궤적을 따르기로 하였다. 스스로 큰 스승이신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다만 남아있는 불상만을 만나게 된 것을 슬퍼하여 마침내 왕성한 붓을 뽑아들고 우러러 수기(授記)에 부응하고자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였다. 처음에는 4백 수의 찬양 게송을 지었고 다음에 150수의 찬양 게송을 지어 총체적으로 육도바라밀(六度波羅蜜)을 말하여 부처님 세존께서 지니신 수승한 덕[勝德]을 밝혔다.
033_0705_c_11L其人初依外道出家事大自在天旣是所尊具申讚詠後乃見所記名翻心奉佛染衣出俗廣興讚歎悔前非之已往遵勝轍於將來自悲不遇大師但逢遺像遂抽盛藻仰符授記讚佛功德初造四百讚次造一百五十讚摠陳六度明佛世尊所有勝德
이 게송은 글과 감정이 아름답고 고와서 하늘세계의 꽃봉오리와 함께 꽃다움을 말할 수 있고, 이치가 맑고 높아 땅의 산봉우리와 더불어 가파로움을 다툰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서방에서 찬양의 게송을 짓는 사람이면 모두 이것을 본받아 익히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무착(無著)보살4)ㆍ세친(世親)보살5)도 그의 발꿈치를 우러러 보았다. 그런 까닭에 오천축국 땅에서 처음 출가하거나 또는 이미 5계ㆍ10계를 외우게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이 두 개의 찬양 구를 외우게 하여 대승ㆍ소승을 물을 것 없이 모두가 다같이 이에 따랐다.
033_0705_c_18L斯可謂文情婉麗共天蘤而齊芳理致淸高地嶽而爭峻西方造讚頌者莫不咸同祖習無著世親菩薩悉皆仰趾五天之地初出家者亦旣誦得五戒十戒卽須先敎誦斯二讚無問大乘小乘咸同遵此
033_0706_a_01L여기에는 여섯 가지의 뜻이 있다. 첫 번째는 부처님의 공덕의 심원함을 알 수 있고, 두 번째는 글을 짓는 순서를 체득하게 되며, 세 번째는 설근(舌根)을 청정하게 하고, 네 번째는 가슴에 갈무리한 것이 개통되고, 다섯 번째는 대중 속에 처해도 미혹되지 않게 되고 여섯 번째는 오래 살고 병이 없어진다.
033_0706_a_01L有六意焉一能知佛德之深遠二體制文之次第三令舌根淸四得胸藏開通五則處衆不惶乃長命無病
이 게송을 외우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경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도 이 아름다운 게송이 아직 동하(東夏)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 게송에 해석을 다는 사람도 많다. 또한 이 게송에 창화(唱和)를 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다. 진나(陳那)보살6)은 스스로 화운(和韻)이라 하여 게송의 첫구절마다 각기 한 구절을 더하여 이를 잡찬(雜讚)이라 이름하였는데 그의 게송은 3백 수가 있다.
033_0706_a_04L誦得此已方學餘經然而斯美未傳東夏造釋之家故亦多矣爲和之者誠非一算陳那菩薩親自爲和每於頌初各加其一名爲雜讚頌有三百
또 녹야원(鹿野苑)의 이름난 스님인 석가제바(釋迦提婆)도 진나보살의 게송 앞에 각기 한 수의 게송을 더하여 이를 유잡찬(糅雜讚)이라 이름지었는데 모두 450수가 있다. 다만 이런 것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게송을 모범으로 삼고 있다.
033_0706_a_08L又鹿苑名僧號釋迦提婆復於陳那頌前各加一頌名糅雜讚有四百五十頌但有制作之流皆以爲龜鏡矣
또한 용수보살은 시(詩)로써 글을 대신하여 이를 소힐리리거(蘇頡里離佉)라 이름지었는데 이 말을 번역하면 밀우서(密友書)란 뜻이다. 이 글을 옛 시주인 남방 대국의 임금에게 보내었다. 그의 호는 사다바한나(娑多婆漢那)이고 이름은 시인득가(市寅得迦)이다. 이 글은 문장이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정성스럽게 위로하고 가르치며 중도(中途)를 목표로 하여 친함이 혈육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의 지취(旨趣)는 참으로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033_0706_a_11L又龍樹菩薩以詩代書名爲蘇頡里離佉譯爲密友書寄與舊檀越南方大國王號娑多婆漢那名市寅得迦可謂文藻秀發慰誨勤勤的指中途親逾骨肉就中旨趣寔有多意
먼저 삼존을 공경하고 믿게 하였고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며 계율을 지켜 악을 버리고 사람을 가려서 사귀게 하였다. 모든 재물과 색에 있어서 부정관(不淨觀)을 닦으며 집과 방을 검교(檢校)하고 바르게 무상(無常)을 생각하게 하였다. 널리 아귀ㆍ방생(傍生)을 말하고 크게 인간계 및 천상계와 지옥을 말하며 머리 위에 불이 타고 있어도 털고 제거할 여가가 없음을 말해 주어 연기(緣起)에 마음을 돌려 오로지 해탈을 구하라 하였다.
033_0706_a_16L先令敬信三尊孝養父母持戒捨惡擇人乃交於諸財色修不淨觀撿挍家室正念無常廣述餓鬼傍生盛道人天地獄火燃頭上無睱拂除緣起運心專求解脫
부지런히 3혜(慧)7)를 수행하고 성도(聖道)의 8지(支)8)를 밝히며 4제(諦)9)를 배워 원응(圓凝) 두 가지를 얻는 경지를 증득하게 하였고, 관자재(觀自在)보살이 원친(怨親)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이 되고, 아미타불이 항상 정토에 거처하는 것과 같이 되게 하였다. 이것은 곧 중생들을 교화하는 지혜이며 그 요체는 이에 더할 것이 없다.
033_0706_a_21L勸行三慧明聖道之八支令學四眞證圓凝之兩得如觀自在不簡怨親同阿彌陁恒居淨土斯卽化生之術要無以加
033_0706_b_01L오천축국에서 처음 불교를 배우는 무리들은 모두 먼저 이 서찬(書讚)을 외우며 마음으로 귀의하여 계앙(繫仰)하는 무리들도 종신토록 연미(硏味)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는 마치 중국의 스님들이 관음유교(觀音遺敎)를 외우고, 속인의 무리들이 천자문과 효경(孝經)을 읽는 것과 같아서 공경하고 완미하여 이것을 모범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예를 들면 사득가마라(社得迦摩羅)라 하는 것도 이 부류와 같은 글이다사득가(社得迦)라는 말은 본생(本生)이란 뜻이고, 마라(摩羅)는 꿰뚫는다는 뜻이다. 보살의 예전 생(生)에서 행하기 어려운 일을 모아서 한 곳에 모아둔 것이다.
033_0706_b_01L五天創學之流皆先誦此書讚歸心繫仰之類靡不硏味終身若神州法侶誦『觀音』『遺敎』俗徒讀『千文』『孝經』矣莫不欽翫用爲師範其社得迦摩羅亦同此類社得迦者本生也摩羅者卽貫焉集取菩薩昔生難行之事貫之一處也
이 책을 만약 번역한다면 10여 축(軸)은 될 것이다. 부처의 본생(本生)의 일을 취해서 시를 지어 찬탄하였다. 풍속에 순응하여 곱고 아름다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뻐하고 사랑하게 하여 군생(群生)을 거두어들이게 한 글이다.
033_0706_b_06L若譯可成十餘軸取本生事而爲詩讚欲令順俗姸美讀者歡愛敎攝群生耳
당시 계일왕(戒日王)10)은 극히 문필을 사랑하여 마침내 명령을 내려 말하였다. “여러분들이여, 오직 좋은 시찬(詩讚)만 있거든 내일 아침에 모두 갖고 와서 나에게 보여다오.” 그리하여 모두 모은 것이 5백 협(夾)의 시찬이었는데 이것을 펼쳐보니 많은 것이 사득가마라였기에 비로소 찬송을 읊은 시 가운데서는 이것이 아름다움의 극치임을 알게 되었다.
033_0706_b_08L戒日王極好文筆乃下令曰諸君但有好詩讚者明日旦朝咸將示朕其摠集得五百夾展而閱之多是社得迦摩羅矣方知讚詠之中斯爲美
남해의 여러 섬에는 10여 개의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스님과 속인을 물을 것 없이 모두가 앞에서 말한 시찬과 같은 시를 읊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중국에서는 한 번도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다. 또한 계일왕은 승운(乘雲)보살이 몸으로 용을 대신한 일을 취하여 이것을 모아 노래를 만들었다. 현악기와 관악기를 함께 연주하여 사람들에게 악곡을 만들게 하여 즐기고 춤추게 하여 시속에 유포시켰다.
033_0706_b_13L南海諸島有十餘國無問法俗咸皆諷誦如前詩讚而東夏未曾譯出又戒日王取乘雲菩薩以身代龍之事緝爲歌詠奏諧絃管令人作樂之蹈之流布於代
또한 동인도의 월관대사(月官大士)는 비수안달라(毘輸安呾囉)태자의 노래를 지어 사인(詞人)들이 이에 맞춰 춤추고 읊조려 오천축국에 두루 퍼졌다. 예전에 소달나(蘇達拏)11)태자라 한 것이 이것이다.
033_0706_b_17L又東印度月官大士作毘輸安呾囉太子歌詞人皆舞詠遍五天矣舊云蘇達拏太子者是也
또한 존자 마명(馬鳴)도 역시 가사(歌詞)와 『장엄론(莊嚴論)』을 지었고 아울러 불본행시(佛本行詩)를 지었는데, 이는 대본(大本)으로서 만약 번역한다면 10여 권의 책이 될 것이다.
033_0706_b_20L又尊者馬鳴亦造歌詞及『莊嚴論』幷作『佛本行詩』大本若譯有十餘卷
033_0706_c_01L그 내용은 부처님께서 처음 왕궁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사라쌍수에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의 일대 불법을 모두 모아 시로 만든 것인데, 오천축과 남해에서 이를 풍송(諷誦)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뜻이 분명하고 글자 수가 적으면서 담고 있는 내용은 많아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이 흐뭇하여 고단함을 잊게 한다. 또한 성인의 가르침을 모아 지님으로써 복덕과 이익이 생길 수 있게 하였다.
033_0706_b_22L意述如來始自王宮終乎雙樹一代佛法竝緝爲五天南海無不諷誦意明字少而攝義能多復令讀者心悅忘倦又復纂持聖敎能生福利
그 150수의 시찬과 용수보살의 책은 모두 따로 기록하여 갖고 돌아왔으니 찬송 읊기를 즐기는 사람은 수시로 마땅히 외우고 익혀야 할 것이다.
033_0706_c_03L其一百五十讚及龍樹菩薩書竝別錄寄歸樂讚詠者時當誦習

33. 존경괴식(尊敬乖式)
033_0706_c_05L三十三尊敬乖式

무릇 예경(禮敬)하는 의식은 교의에 분명한 규칙이 있으니 스스로 6시(時)에 생각을 채찍질하고 4체(體)를 부지런히 발돋음하여 한 승방에 단정하게 자리잡고 걸식을 업으로 삼으며 두타행(頭陀行)을 하여 지족(知足)의 도를 닦아야 한다.
033_0706_c_06L夫禮敬之儀敎有明則自可六時策四體翹勤端居一房乞食爲業頭陁之行修知足之道
단지 3의(衣)만을 입고 가득히 채우거나 쌓아두지 않으며 무생(無生)의 세계에 생각이 이르면 번뇌는 완전히 없어진다. 어찌 승단의 의식과 달리하여 따로 궤식(軌式)을 행할 수 있겠는가? 출가한 사람의 옷을 걸치고도 그 무리와 달리하여 저자거리나 집 안에서 여러 속인 무리에게 절하는 것은 율교를 찾아 점검해 보면 완전히 이러한 일을 금지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절해야 할 대상에 두 종류가 있다. 이른바 삼보와 자기보다 법랍이 높은 비구가 그것이다”라고 하셨다.
033_0706_c_09L但著三衣不畜盈長無生致想有累全祛豈得輒異僧儀別行軌式披出家服不同常而在廛肆之中禮諸俗流撿尋律敎全遮此事佛言有二種應禮所謂三寶及大己苾芻
또한 존상을 갖고 와서 큰길 가운데서 성스러운 모습을 먼지로 더럽히면서 그것으로 재물과 이익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 혹 몸을 갈고리로 매달고 눈 등을 찌르며 마디를 끊고 살갗을 뚫으면서 거짓 속임수로 좋은 마음에 기탁한다 하지만 본심은 불로장생을 희구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와 같은 모습은 서쪽 나라에는 전연 없다. 여러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인도하나니 다시는 이런 일을 행하지 말라.
033_0706_c_14L又有齎持尊像在大道中塵坌聖容以求財利或有鉤身刺臉斷節穿肌詐託好心本希活如斯之色西國全無勸導諸人勿復行此

34. 서방학법(西方學法)
033_0706_c_18L三十四西方學法

무릇 큰 성인의 한 소리는 삼천세계를 꿰뚫어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셨다. 혹 다섯 갈래의 기연을 따라 칠구(七九)를 밝히시어 널리 중생을 구제하시었다칠구(七九)라 하는 것은 성명(聲明) 가운데 7이 9로 바뀌는 예를 말한 것으로 아래에서 간략히 밝힐 내용과 같다. 때로는 의언(意言)으로 법을 갈무리하여 천제(天帝)가 무설(無說)의 경을 이해하기도 하였다. 혹은 또 말에 의해 궁극의 이치를 이야기하면 지나(支那)에서도 본성(本聲)의 글자를 깨닫게 되었다.
033_0706_c_19L夫大聖一音則貫三千而摠攝或隨機五道乃彰七九而弘濟七九者卽是聲明中七九例也如下略明耳時有意言法藏天帝領無說之經或復順語談詮支那悟本聲之字
033_0707_a_01L인연에 투합하여 지혜가 일어나 각기 빈 마음과 일치하게 하였고, 오직 뜻만을 취하여 번거로운 것을 제거하니 모두가 원적(圓寂)12)에 합치되었다. 승의제(勝義諦)13)의 진리에 이르러서는 표현과 말을 완전히 벗어났으나 문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복속제(覆俗諦)라 하는 것은 예전에는 세속제(世俗諦)라 하였으나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생각건대 이는 세속의 일이 다른 진리를 덮는 것을 말한 것 같다. 물질은 본래 병(甁)이 아닌데도 함부로 병이라 풀이하고, 소리에는 노래하는 가락이 없는데 함부로 노래하는 마음을 만든다. 또한 식(識)의 상(相)이 생길 때 몸은 분별함이 없는데도 무명(無明)에 가려져서 함부로 여러 가지 형상이 일어난다. 자기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경계는 외부에 있다고 하면서 뱀이라 하고 새끼줄이라고 잘못 아니, 바른 지혜는 이에 물 밑에 가라앉아 숨겨지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진실이 덮이는 것을 복속이라 하게 되었다. 이는 곧 복(覆)이 속(俗)인 것에 근거하여 복속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며 혹 다만 진제(眞諦)ㆍ복제(覆諦)라고만 말하여도 된다.
033_0707_a_01L致使投緣發慧各稱虛心准義除煩竝凝圓寂至於勝義諦理迥絕名覆俗道中非無文句覆俗諦者舊云世俗諦不盡也意道俗事覆他眞理色本非甁妄爲甁解聲無歌曲漫作歌心復識相生時體無分別無明所蔽妄起衆形不了自心謂境居外蛇繩竝正智斯淪由此蓋眞名爲覆俗矣此據覆卽是俗名爲覆俗或可但云眞諦覆諦
그렇다면 예전부터 번역한 사람들은 범어의 규범을 이야기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요즘 경을 전하는 사람들도 다만 처음 7(七)만을 말하고 있다. 이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무익하니 논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범문(梵文)을 총체적으로 익혀 번역에 중복되는 수고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 제목과 절(節)ㆍ단(段)으로써 간략히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서술하고자 한다그런데 골륜국(骨崙國)과 속리국(速利國)에서는 아직도 모두 범어의 경전을 읽을 수 있는데 어찌 하물며 천부(天府)인 신주(神州:중국)에서 그 본래의 설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서방에서는 찬탄하여 이르기를, “문수사리보살이 현재 중국의 병주(幷州)에 계셔서 사람들에게 모두 복이 있다”라고 하고 있다. 이치로 보아 마땅히 흠모하고 찬탄할 만한 일이다. 그에 관한 글은 이미 상세히 나타나 있으므로 여기서는 번거롭게 기록하지 않는다.
033_0707_a_07L然則古來譯者梵軌罕談日傳經但云初七非不知也無益不今望摠習梵文無勞翻譯之重爲此聊題節段粗述初基者歟然而骨崙速利尚能摠讀梵經豈況天府神州而不談其本說故西方讚云曼殊室利現在幷人皆有福理應欽讚其文旣廣此不繁錄
무릇 성명(聲明)이라 하는 것은 범어로는 섭타필타(攝拖苾駄)라 하는데 섭타는 소리라는 뜻이고, 필타는 밝힌다[明]는 뜻이다. 이는 곧 오명론(五明論) 가운데 일명(一明)이다.
033_0707_a_12L夫聲明者云攝拖苾馱 停夜反 攝拖是聲苾馱是卽五明論之一明也
오천축국의 속서를 총체적으로 비하갈라나(毘何羯喇拏)라 하며 크게 나누면 다섯 가지가 있어 중국의 오경(五經)과 같다예전에 비가라논(毘伽羅論)이라 한 것은 와전된 것이다.
033_0707_a_14L五天俗書摠名毘何羯喇拏大數有五同神州之五經也舊云毘伽羅論音訛也
첫째는 창학실담장(創學悉談章)인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실지라솔도(悉地羅窣覩)라고 한다. 이것은 소학(小學)을 나타내어 일컫는 것으로 모두가 길상(吉祥)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본래는 49자(字)가 있는데 이것이 함께 서로 승전(乘轉)하여 18장(章)을 이루어 모두 1만 여의 글자가 있으며 합하면 3백여 수의 게송이 된다. 무릇 한 게송을 말할 때 그 안에는 4구(句)가 있으며 1구는 여덟 글자로 모두 32언(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밖에 다시 소송(小頌)ㆍ대송(大頌)이 있으나 갖추어 다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여섯 살 난 동자가 이것을 배워 6일이면 곧 이를 마치게 된다. 이것은 서로 전해진 것으로 이는 대자재천(大自在天)14)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033_0707_a_16L一則創學悉談亦名悉地羅窣睹斯乃小學摽章之稱俱以成就吉祥爲目本有四十九字共相乘轉成一十八章摠有一萬餘字合三百餘頌凡言一頌乃有四句一句八字摠成三十二言更有小頌大頌不可具述六歲童子學之六月方了斯乃相傳是大自在天之所說也
033_0707_b_01L두 번째는 소달라(蘇呾囉)라 하는데 이것이 곧 모든 성명(聲明)의 근본 경전이다. 번역하면 약전(略詮)이란 뜻으로 내용을 밝힌다는 뜻이다. 이 속에는 1천 수의 게송이 있으며 이는 예전의 박학(博學)한 선비인 바니니(波尼儞)가 지은 책이다. 이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얼굴에 세 눈[三目]이 나타났다고 하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바야흐로 이를 믿었다. 이 책은 여덟살 된 동자가 여덟 달 안에 다 암송할 수 있다.
033_0707_b_01L二謂蘇呾囉卽是一切聲明之根本經也譯爲略詮意明略詮要義有一千頌是古博學鴻儒波尼你所造也爲大自在天之所加被面現三目人方信八歲童子八月誦了
세 번째는 타도장(駄覩章)이라 하는데 1천 수의 게송이 있으며 오로지 글자의 근원을 밝힌 책으로 그 공부는 위에서 말한 경과 같다.
033_0707_b_06L三謂馱睹章有一千頌專明字元功如上經
네 번째는 삼기라장(三棄攞章)이라 하는데 이는 황경(荒梗)하다는 뜻이다. 내용을 풀이하면 농사꾼이 처음으로 밭두렁을 개간하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마땅히 삼황장(三荒章)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장은 안슬타타도(頞瑟吒駄覩)라 이름하며 1천 수의 게송이 있고, 두 번째 장은 문도(文荼)라 이름하며 1천 수의 게송이 있다. 세 번째 장은 오나지(鄔拏地)라 이름하며 1천 수의 게송이 있다.
033_0707_b_08L四謂三棄攞章是荒梗之義意比田夫創開疇畎應云三荒章一名頞瑟咤馱睹一千頌二名文荼一千頌三名鄔拏地一千頌
타도(駄覩)라 하는 것은 뜻을 일곱 가지 사례[七例]로 밝힌 것으로 10나성(羅聲)으로 깨우쳐 주고 18개의 음운(音韻)으로 말하는 것이다. 일곱 가지 사례라 하는 것은 모든 소리 위에는 모두 이것이 있다. 그 하나하나의 소리마다 그 가운데서 3절(節)를 나눈다. 즉 일언(一言)ㆍ이언(二言)ㆍ다언(多言)으로 모두 21언을 이룬다. 예를 들면 가령 남자를 부를 때 한 사람일 경우에는 보로쇄(補嚕灑)라 부르고, 두 사람일 경우에는 보로초(補嚕▼(竹/稍))라 부르며, 세 사람일 경우에는 보로사(補嚕沙)라 한다. 이 가운데 소리에 호흡의 무겁고 가벼운 구별이 있다.
033_0707_b_11L馱睹者則意明七例十羅聲述二九之韻言七例者一切聲上皆悉有之一一聲中各分三節謂一言二言多言摠成二十一言也如喚男子一人名補嚕灑兩人名補嚕▼(竹/稍)三人名補嚕沙此中聲有呼噏 重輕之別
일곱 가지 사례 외에 다시 호소성(呼召聲:사람을 부르는 소리)이 있어서 곧 8례(例)를 이루게 된다. 첫 구절이 이미 셋으로 구분되었으니 나머지도 모두 이에 준해야 하는데, 번거로울까 두려워 여기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이것을 소반다성(蘇槃多聲)이라 이름한다모두 스물네 가지의 소리가 있다.
033_0707_b_17L於七例外更有呼召聲便成八例初句旣三餘皆准此恐繁不名蘇盤多聲摠有三八二十四聲
다음 10나성(羅聲)이라 하는 것은 열 종류의 라(羅)자가 있어서 한 소리를 나타낼 때 곧 삼세의 차이를 밝힌다. 18운(韻)이라 하는 것은 상ㆍ중ㆍ하, 존(尊)ㆍ비(卑), 피(彼)ㆍ차(此)의 구별을 밝혀 열여덟 가지 같지 않은 음운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정안차성(丁岸哆聲)이라 부른다.
033_0707_b_19L十羅聲者十種羅字顯一聲時便明三世之異二九韻者明上中下尊卑彼此之別言有十八不同名丁岸哆聲也
033_0707_c_01L문도(文荼)라 하는 것은 글자의 체(體)를 합성한 것으로 잠시 예를 들면 나무의 한 목(目)을 범어로 필력차(苾力叉)라 하는데, 문득 20여 구의 경문을 인용하여 함께 서로 섞어야 비로소 한 가지 일의 이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033_0707_b_22L文荼則合成字體且如樹之一目梵云苾力叉便引二十餘句經文共相雜糅方成一事之號也
오나지(鄔拏地)라 하는 것도 대체로 이 예와 같으나 상세하고 간략한 것이 같지 않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이 삼황장(三荒章)은 열 살 난 동자가 2년을 부지런히 배워야 비로소 그 내용을 해득하게 된다.
033_0707_c_02L鄔拏地則大同斯而以廣略不等爲異此三荒章歲童子三年勤學方解其義
다섯 번째는 필률저소달라(苾栗底蘇呾羅)라 하는데 이는 곧 앞의 소달라의 해석서이다. 상고시대에 지은 해석은 그 종류가 참으로 많다. 그 가운데 묘한 것으로 1만 8천의 게송이 있다. 이 책은 그 경본을 연역하고 여러 가지 뜻을 소상히 담론하여 우주의 법칙을 다하고 천인(天人)의 궤칙(軌則)을 궁구한 책으로 열다섯 살의 동자가 5년을 공부해야 비로소 해득하게 된다.
033_0707_c_04L五謂苾栗底蘇呾羅卽是前蘇呾囉釋也古作釋其類寔多於中妙者有十八千頌演其經本詳談衆義盡寰中之規矩極天人之軌則十五童子五歲方解
신주(神州)의 사람으로 만약 서방 세계에 가서 학문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꼭 이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나머지 다른 학문을 익힐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스스로 힘들게 될 것이다.
033_0707_c_09L神州之人若向西方求學問者要須知此方可習餘如其不然空自勞矣
이러한 여러 책들은 모두 암송하여야 한다. 이것은 상근기를 지닌 사람을 기준한 것으로 중근기나 하근기를 지닌 사람의 경우는 내용으로써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익히자면 밤낮으로 부지런히 발돋음하여 편안하게 잠잘 여가가 없나니, 공자가 책을 매는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진 것과 같이 하여야 하고, 세정(歲精)이 백 번 두루 읽었던 일과 같이 하여야 한다. 소털은 천(千)으로 헤아리지만 기린(麒麟)의 뿔은 오직 하나뿐이다. 공덕을 비교하면 중국의 가장 훌륭한 경전과 비슷하다.
033_0707_c_11L斯等諸書竝須暗誦此據上人爲准中下之流以意可測翹勤晝夜不遑寧寢同孔父之三絕等歲精之百遍牛毛千數麟角唯一比功與神州上明經相似
이 책은 학사인 사야질저(闍耶昳底)가 지은 책이다. 그 사람의 기량은 넓고 깊으며 그의 문채는 수려하게 펼쳐져 한 번 듣게 되면 곧 이해하였으니 어찌 두 번 이야기하는 수고를 빌렸겠는가? 삼존을 공경하고 존중하여 많은 복업을 지었는데 그가 죽은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이다.
033_0707_c_15L此是學士闍耶昳底所造其人乃器量弘深文彩秀發一聞便領詎假再談敬重三尊多營福業沒代于今向三十載矣
이 해석서를 익히고 나서 비로소 서(書)와 표(表)를 모으고 시편을 제작하고 『인명론(因明論)』에 생각을 이루고 『구사론(俱舍論)』에 경건하게 정성을 쏟으며 이문론(理門論)을 찾아보고 비량론(比量論)을 훌륭하게 이루어 본생(本生)을 꿰뚫어 익히면 청명한 재능이 빼어나게 함양되게 된다. 그런 다음에 함장(函丈)이 6년 동안 경전을 전수하는 과정을 거쳐서 많은 사람이 나란타사(那爛陀寺)중천축국(中天竺國)이다에 남아 있는 것이다. 혹 발랍비국(跋臘毘國)서천국(西天國)이다에 사는 사람도 있다.
033_0707_c_18L閑斯釋方學緝綴書表制造詩篇致想『因明』虔誠『俱舍』尋『理門論』比量善成本生貫淸才秀發然後函丈傳授經三二年多在那爛陁寺中天也或居跋臘毘國西天也
033_0708_a_01L이 두 곳은 사정이 중국의 금마(金馬)ㆍ석거(石渠)ㆍ용문(龍門)ㆍ궐리(闕里)와 같아서 영준하고 훌륭한 스님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시시비비를 헤아려 생각하곤 한다. 만약 현명하여 거룩하다고 찬탄되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영준하다고 일컬어지고 비로소 스스로 자신의 칼날을 헤아려 보고 왕정(王庭)에 칼을 던지든지 나라에 계책을 올려 재능을 보여 주어 등용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033_0707_c_23L斯兩處者事等金馬石龍門闕里英彦雲聚商攉是非賢明歎善遐邇稱雋方始自忖鋒鍔投刃王庭獻策呈才希望利用
그리하여 담론하는 곳에 앉아서는 자리를 이중으로 하여 기이함을 나타내고, 비판하는 장소에 오르게 되면 다른 사람의 혀를 묶은 채 부끄럽게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그 메아리는 5산(山)을 진동하고 그 명성은 4역(域)에 흐르게 된다. 그런 다음에 봉읍(封邑)을 받고 영예로운 지위에 책봉되어 높은 문에 흰 색으로 씌어진 자신의 이름을 상 받은 이후에 다른 업을 닦게 되는 것이다.
033_0708_a_03L坐談論之處己則重席表奇登破斥之場他乃結舌稱愧響震五山聲流四域然後受封邑策榮班賞素高門更修餘業矣
이밖에 또 필률저소달라의석(苾栗底蘇呾羅議釋)이 있는데 이를 주니(朱儞)라 부른다. 여기에는 2만 4천의 게송이 있는데, 이는 학사인 발전사라(鉢顚社攞)가 지은 책이다. 이 책은 곧 앞에서 말한 경전을 거듭 밝히면서 살갗을 쪼개서 이치를 분석하고 소상하게 밝힌 후에 해석하여 털 끝 가시와 같이 작은 것도 모두 나누어 분석하였다. 경에 밝은 사람도 이것을 배우자면 3년이 걸려야 비로소 마치게 되며 그 공부는 중국의 춘추(春秋)ㆍ주역(周易)과 비슷하다.
033_0708_a_07L復有苾栗底蘇呾羅議釋名朱你二十四千頌是學士鉢顚社攞所造乃重顯前經擘肌分理詳明後釋扸毫芒明經學此三歲方了功與『春秋』『周易』相似
또 벌치가리론(伐致呵利論)이 있는데 이는 앞의 주니의 뜻을 해석한 것이며 대학사인 벌치가리(伐致呵利)가 지었다. 여기에는 2만 5천 수의 게송이 있다. 이 책에는 크게 인사(人事)ㆍ성명(聲明)의 핵심이 될 일을 이야기하고 있고, 널리 여러 가문의 흥하고 망한 이유를 서술하였으며, 깊이 유식(唯識)15)을 밝히고 훌륭하게 인유(因唯)를 논하고 있다.
033_0708_a_12L次有伐㨖呵利論是前朱你議釋大學士伐㮹呵利所造有二十五千斯則盛談人事聲明之要廣敍諸家興廢之由深明唯識善論因喩
이 학사의 영향을 오천축국에 메아리져 떨쳤고 덕이 8극(極)에 흘렀다. 그는 철저히 삼보를 믿고 진리로서 2공(空)16)을 생각하여 승법(勝法)을 희구하여 출가하였다가 속세가 그리우면 곧 환속하니 이렇게 왕복한 횟수가 일곱 번에 달하였다.
스스로 깊이 인과(因果)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와 같이 부지런히 집착할 수 있겠는가? 그는 스스로 한탄한 시에 말하였다.
033_0708_a_16L學士乃響振五天德流八極徹信三諦想二空希勝法而出家戀纏染而便俗斯之往復數有七焉自非深信因果誰能若此勤著自嗟詩曰

염(染) 때문에 문득 속가로 돌아왔고
탐욕 벗어나려고 다시 승복 입었네.
어찌하여 두 가지 일이
갓난아기처럼 나를 희롱하는가?
033_0708_a_20L染便歸俗
離貪還服緇
如何兩種事
弄我若嬰兒

이 사람은 곧 호법(護法)논사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늘 절 안에 있을 때는 속가로 돌아갈 마음이 있었고 번뇌로 힘들어 하며 확고하게 마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곧 학생들을 시켜 가마를 절 밖으로 향하게 하였다.
033_0708_a_22L卽是護法師之同時人每於寺內有心歸俗被煩惱逼礭爾不移卽令學生輿向寺外
033_0708_b_01L당시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였다.
“무릇 이 복된 땅[福地]은 본래 계행(戒行)이 있는 사람들이 살 곳으로 견준 것인데 나는 이미 안에 사심(邪心)이 있으니 이는 곧 정교를 이지러지게 하는 일이라 시방(十方)의 승지(僧地)에 발붙일 만한 곳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청신도가 되어 흰 옷을 입고 바야흐로 절에 들어가서 정법을 선양하였다. 그가 교화를 버린 이래 이미 40년이 되었다.
033_0708_b_01L時人問其故答曰凡是福地本擬戒行所居我旣內有邪心卽是虧乎正敎十方僧地無處投足爲淸信士身著白衣方入寺中宣揚正法捨化已來經四十年矣
다음으로 『박가론(薄迦論)』이 있는데, 여기에는 7백 수의 게송이 있고 7천 자의 해석이 있다. 이 책도 역시 벌치가리가 지은 책으로 성인의 가르침의 양(量)과 비량(比量)의 뜻을 서술하고 있다.
033_0708_b_06L次有薄迦枳也反頌有七百釋有七亦是伐㨖呵利所造敍聖敎量及比量義
다음으로 필나(蓽拏)가 있는데, 여기에는 3천 수의 게송이 있고 1만 4천 자의 해석이 있다. 게송은 벌치가리가 지은 것이며 해석은 호법(護法)논사가 지은 글이다. 이 책은 하늘과 땅의 깊숙한 비밀을 다하고 인간사회의 진리의 정화(精華)를 다한 책이라 말할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의 학문이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성명(聲明)을 잘 해득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중국의 구경백가(九經百家)와 비슷한 책이다.
033_0708_b_09L次有萆拏頌有三千釋有十四千乃伐㮹呵利所造釋則護法論師所可謂窮天地之奧秘極人理之精華矣若人學至於此方曰善解聲明與九經百家相似
이러한 여러 가지 책들을 스님이나 속인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배우게 된다. 만약 그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다문(多聞)’이란 칭호를 얻지 못하게 된다. 만약 출가한 사람이라면 두루 율(律)을 배우고 자세히 경(經)과 논장(論藏)을 찾아 외도의 이론을 꺾어야 하나니, 마치 중국에서 천하의 패권(霸權)을 놓고 다투는 일과 같다. 좌우에서 힐난하는 내용을 아는 것은 끓는 가마솥의 넘치는 물을 해소하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그 메아리가 남섬부주(南贍部洲) 안에 흐르게 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의 위에서 공경을 받고 부처님을 도와 교화를 드높이며 널리 중생을 인도하게 된다.
033_0708_b_14L斯等諸書法俗悉皆通學如其不學不得多聞之稱出家人則遍學毘奈耶具討經及論挫外道若中原之逐鹿解傍詰同沸鼎之銷凌遂使響流贍部之中受敬人天之上助佛揚化廣導群有
이는 세상에 빛나고 우뚝 솟아나게 태어난 사람으로 그것이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비유를 취한다면 일월과 같고 상황을 표시한다면 용상(龍象)에 비유된다. 이런 사람은 멀리는 용맹(龍猛:龍樹)ㆍ제바(提婆)ㆍ마명(馬鳴)과 같고 중세(中世)에서는 세친(世親)ㆍ무착(無著)ㆍ승현(僧賢)ㆍ청변(淸辯) 등의 스님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가깝게는 진나(陳那)ㆍ호법(護法)ㆍ법칭(法稱)ㆍ계현(戒賢) 및 사자월(師子月)ㆍ안혜(安慧)ㆍ덕혜(德慧)ㆍ혜호(慧護)ㆍ덕광(德光)ㆍ승광(勝光) 등의 스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033_0708_b_19L此則弈代挺生若一若二取喩同乎日月表況譬之龍象斯乃遠則龍猛提婆馬鳴之類中則世親無著僧賢淸辯之徒近則陳那護法法稱戒賢及師子月安慧德慧慧護德光勝光之輩
033_0708_c_01L이러한 대사들은 앞에서 말한 내외의 많은 공덕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고 각기 모두가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스님들이라 참으로 더불어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으며 속류(俗類) 외도 가운데서는 이런 부류는 얻기 어렵다자세한 것은 서방십덕전(西方十德傳)에서 말한 바와 같다.
033_0708_c_01L斯等大師無不具前內外衆德各竝少欲知足誠無與比俗流外道之內實此類而難得廣如西方十德傳中具述
이 가운데서 법칭(法稱)은 거듭 인명(因明)을 밝혔고 덕광(德光)은 다시 율장을 홍법하였으며 덕혜(德慧)는 선정[定門]에서의 명상을 실천하였다. 혜호(慧護)는 널리 옳고 그름을 가려내니 바야흐로 경해(鯨海)에서 이름난 보배가 광채를 나타내고 높고 험준한 향봉(香峯)에서 뛰어난 약재가 기묘함을 보여 준다는 것을 증험하게 되는 것이다.
033_0708_c_04L法稱則重顯因明德光乃再弘律藏德慧乃定門澄想慧護則廣辯正邪方驗鯨海巨深名珍現彩香峯高峻上藥呈奇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불법이 머금고 있는 넓고 큰 진리는 무엇인들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메아리에 응해서 책을 빨리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어찌 열네 개의 발을 번거롭게 여길 필요가 있겠는가? 백 번을 두루 읽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두 권의 책을 한 번 듣고 곧 받아들인 것이다어떤 외도가 6백 수의 게송을 지어 호법(護法)논사를 찾아와 따졌는데 호법논사는 대중을 상대로 한 번 듣고 글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였다.
033_0708_c_07L是知佛法含弘何所不納莫不應響成篇寧煩十四之足無勞百遍兩卷一聞便領有外道造六百頌來難護法師法師對衆一聞文義俱領
또한 오천축의 땅에서는 모두가 바라문족(婆羅門族)을 귀하고 뛰어난 가문으로 삼고 있어 어떤 좌석이 마련되어도 모두 다른 3성(姓)과는 함께 가지 않으며 자기 족속 밖의 잡류(雜類)들과는 짐짓 멀리한다. 그들이 존중하는 전고(典誥)에 사벽타서(四薜陀書)란 책이 있어 10만 수 가량의 게송이 실려 있다. 벽타(薜陀)란 말은 명해(明解)란 뜻이며, 전에 이것을 위타(圍陀)라 한 것은 와전된 것이다. 모두가 이것을 입으로 서로 전수하고 있으며 종이나 나뭇잎에 이를 써서 전하지는 않는다.
033_0708_c_10L又五天之地皆以婆羅門爲貴勝有座席竝不與餘三姓同行自外雜類故宜遠矣所尊典誥有四薜陁書可十萬頌薜陁是明解義先云圍陁者訛也咸悉口相傳授而不書之於紙葉
매번 총명한 바라문족이 이 10만의 게송을 외우는데, 즉 서방의 경우에는 서로 이어가며 총명을 배우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두 번, 세 번 살펴서 지혜가 생기게 하고, 두 번째는 자모(字母)에 정신을 안착시키면 열흘, 한 달 사이에 생각이 샘물처럼 솟아나니 한 번 듣게 되면 곧 내용을 이해하여 두 번 이야기하는 수고를 빌리는 일이 없다. 이는 내가 직접 눈으로 그런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물론 거짓이 아니다.
033_0708_c_16L每有聰明婆羅門誦斯十萬如西方相承有學聰明法一謂覆審生智二則字母安神旬月之閒思若泉涌一聞便領無假再談親睹其人固非虛耳
동인도에 한 대사(大士)가 있어 이름을 일월관(日月官)이라 하였는데 이는 큰 재웅(才雄)을 지닌 보살(菩薩)이었다. 나 의정(義淨)이 인도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은 아직도 생존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독경(毒境)과 독약(毒藥)은 해가 됨에 어느 것이 더 무겁습니까?”라고 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독약과 독경과의 거리는 실로 멉니다. 독약은 먹어야 비로소 해를 끼치지만 독경은 생각만 하여도 문득 불타오릅니다”라고 하였다.
033_0708_c_20L於東印度有一大士名日月官是大才雄菩薩人也淨到之日其人尚存或問之曰毒境與毒藥害誰重應聲答曰毒藥與毒境相去實成遙毒藥飡方害毒境念便燒
033_0709_a_01L또한 등란(騰蘭)17)은 동락(東洛)에 꽃다움을 떨쳤고 진제(眞諦)18)는 뛰어난 메아리를 남명(南溟) 땅에 몰았으며 대덕인 구마라습(鳩摩羅什)19)은 다른 나라 땅에서 덕장(德匠)을 이룩하였고 법사인 현장(玄奘)20)은 자기 나라에서 스승의 공덕을 깊게 하였다.
033_0709_a_01L復騰蘭乃振芳聲於東洛眞諦則駕逸響於南溟大德羅什致德匠於他土師玄奘濬師功於自邦
그리하여 고금의 여러 스님들이 나란히 불일(佛日)을 빛나게 전하며 유(有)와 공(空)을 가지런히 이룩하였다. 즉 삼장을 익힘으로써 그것을 스승으로 삼고 정혜(定慧)21)를 아울러 닦아 칠각지(七覺支)22)를 가리켜 장인(匠人)으로 삼았는데, 그것이 서방에 현존하는 곳으로는 저라도사(羝羅荼寺)에 지월(智月)법사23)가 있고 나란타사(那爛陀寺)에는 보사자(寶師子)대덕이 있다. 또 동방에는 곧 지바갈라밀달라(地婆羯羅蜜呾囉)가 있고 남예(南裔)에는 달타계다계사(呾他揭多揭娑)가 있고 남해의 불서국(佛逝國)에는 석가계율저(釋迦鷄栗底)가 있다지금 현재는 불서국에 있으며 오천축을 지나오면서 널리 배웠다.
033_0709_a_04L然今古諸師竝光傳佛日有空齊致習三藏以爲定慧雙修指七覺而爲匠其西方現在則羝羅荼寺有智月法師那爛陁中則寶師子大德東方卽有地婆羯羅蜜呾囉南裔有呾他揭多揭娑南海佛逝國則有釋迦雞栗底今現在佛誓國歷五天而廣學矣
이들은 모두 앞의 현인(賢人)과 비교해도 빼어난 사람들로 지난날의 철인의 발자취를 뒤쫓아서 인명론을 깨달아 곧 진나(陳那)와 견주려고 하였고, 유가종(瑜伽宗)24)을 음미하여 실로 마음을 무착(無著)과 같이 비웠다. 공(空)을 이야기하면 교묘히 용맹(龍猛)과 부합되었고 유(有)를 논하면 묘하게 승현(僧賢)에 일체를 이루었다.
033_0709_a_11L斯竝比秀前賢追蹤往哲曉因明論則思擬陳那味瑜伽宗實罄懷無著談空則巧符龍猛論有則妙體僧賢
이 여러 법사들은 나 의정(義淨)과 모두 책상을 마주하고 친숙하게 지냈다. 나는 그들의 심오한 말들을 받아먹었는데, 듣지 못했던 것을 새로 알게 된 것이 반가웠고 일찍이 얻어 예전에 해득한 것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게 되니, 등불을 전하는 한 가닥 바람을 생각하면서 실로 아침에 도를 듣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온갖 의문에서 먼지를 말끔히 없애니 저녁에 죽더라도 기꺼이 따르리라. 영취산에서 남은 구슬을 줍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033_0709_a_14L此諸法師淨竝親狎筵几飡受微言慶新知於未聞溫舊解於曾得想傳燈之一望實喜朝聞冀蕩塵於百疑分隨昏滅尚乃拾遺珠於鷲嶺
때로 그 진실을 얻게 되면 용하(龍河)에서 흩어진 보석을 골라내고 자못 그 묘한 것을 만나게 되면 우러러 삼보의 먼 은혜를 입게 되었다. 그리하여 황제의 은택을 멀리에서 입어 마침내 발꿈치를 돌려 동쪽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남해에서 돛을 달아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을 지나 실리불서국(室利佛誓國)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에 머문 지 이미 4년이 지났으나 아직 이곳에서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033_0709_a_18L時得其眞擇散寶於龍河逢其妙仰蒙三寶之遠被皇澤之遐霑遂得旋踵東歸鼓帆南從耽摩立底國已達室利佛誓住已經四年留連未及歸國矣

35. 장발유무(長髮有無)
033_0709_a_22L三十五長髮有無
033_0709_b_01L
장발로 구족계를 받는 일은 오천축국에서는 없는 일이며, 율장에도 그런 글은 나타나 있지 않다. 과거의 일을 두루 돌아보아도 원래 이런 일은 없었다. 다만 형상만이 속인과 같아도 죄에서 보호받기는 어렵다. 이미 계율을 지킬 수 없는데 받은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반드시 청정한 마음이 있어야 하며 모름지기 머리를 깎고 옷에 물들이고 생각을 깨끗이 하여 해탈할 마음을 품고 있어야만 5계ㆍ10계를 받들어도 훼손시키지 않고, 원만히 구족된 마음으로 율장을 준수하게 된다.
033_0709_a_23L長髮受具五天所無律藏不見有文侚古元無此事但形同俗相難爲護旣不能持受亦何益必有淨心求剃髮染衣潔念解脫爲懷五戒十戒奉而不虧圓具圓心遵修律藏
유가(瑜伽) 배우기를 마치게 되면 무착(無著)의 팔지(八支)첫 번째 『이십유식론(二十唯識論), 두 번째 『삼십유식론(三十唯識論)』, 세 번째 『섭대승론(攝大乘論)』, 네 번째 『대법론(對法論)』, 다섯 번째 『변중변론(辯中邊論)』, 여섯 번째 『연기론(緣起論)』, 일곱 번째 『대장엄론(大莊嚴論)』, 여덟 번째 『성업론(成業論)』이다. 이 가운데는 비록 세친(世親)보살이 지은 책이 있지만 그 공은 무착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를 몸으로 다하게 된다.
033_0709_b_05L伽畢學體窮無著之八支一『二十唯識論』二『三十唯識論』三『攝大乘論』四『對法論』五『辯中邊論』六『緣起論』七『大莊嚴論』八『成業論』此中雖有世親所造然而功歸無著也
인명론(因明論)의 공부에 몸붙여 진나(陳那)의 8논(論)을 거울같이 투철하게 비추어 보고첫 번째 『관삼세론(觀三世論)』, 두 번째 『관총상론(觀總相論)』, 세 번째 『관경론(觀境論)』, 네 번째 『인문론(因門論)』, 다섯번째 『사인문론(似因門論)』, 여섯 번째 『이문론(理門論)』, 일곱 번째 『취사시설론(取事施設論)』, 여덟 번째 『집량론(集量論)』이다 아비달마(阿毘達磨)25)를 익히면 두루 6족(足)26)을 엿보게 되고 아급마경(阿笈摩經)을 배우면 마침내 4부(部)를 모두 탐구하게 된다.
033_0709_b_08L因明著功鏡徹陳那之八論一『觀三世論』二『觀摠相論』三『觀境論』四『因門論』五『似因門論』六『理門論』『取事施設論』八『集量論』也習阿毘達磨則遍窺六足學阿笈摩經乃全探四部
그런 다음에 사(邪)를 항복받고 외도를 굴복시켜 바른 진리를 확고하게 부양하고 널리 뭇 중생들을 교화하며 널리 인도하여 피로를 잊게 한다. 2공(空)에 명상을 집중하여 투명하게 8정도(八正道)를 가슴에 품고 공경하는 자세로 4선(禪)을 닦고 거룩하게 7편(篇)을 수호한다. 이것으로 죽음을 보낸다면 이것이 최상의 공덕이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비록 가족들과 함께 집에 거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私室)에 물들지 않고 단연히 온 몸으로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희구하며 구걸해 오는 대로 공상(公上)에 공양드리고 거친 옷을 입으며 단지 부끄러운 곳만을 가린다.
033_0709_b_11L然後降邪伏外攉揚正理廣化群物弘誘忘疲想二空澄懷八道敬修四定善護七以此送終斯爲上也如其不爾處居家不染私室端然一體以希出隨乞丐以供公上著麤服而遮羞
8계(八戒)첫 번째 불살생(不殺生), 두 번째 불투도(不偸盜), 세 번째 불음일(不婬佚), 네 번째 불망어(不妄語), 다섯 번째 불음주(不飮酒), 여섯 번째 부작락관화도향(不作樂冠花塗香), 일곱 번째 부좌고광대상(不坐高廣大床), 여덟 번째 불비시식(不非時食)을 지키고 간직하면서 형체가 다할 나이까지 마음을 가늠하여 삼존에 귀의하고 공경한다. 열반을 기약하면서 생각을 펴나간다. 이것이 그 다음가는 좋은 일이다.
033_0709_b_18L守持八戒一不殺生二不偸盜三不婬佚四不妄語五不飮酒六不作樂冠花塗香七不坐高廣大牀八不非時食盡形壽以要歸敬三尊契涅槃而延想斯其次
033_0709_c_01L반드시 그가 현재 울타리 속에 거처하면서 처와 자식을 양육하고 있더라도 공손한 마음으로 윗사람을 공경하고 자애로운 품으로 아랫사람을 염려하며 오계를 받아 간직하고 항상 4재(齋)흑월(黑月) 8일이나 14일 혹은 15일과 백월(白月) 8일이나 15일에는 반드시 8계(戒)를 받아야만 비로소 성수(聖修)라 칭하게 된다. 만약 앞의 7계는 없이 오직 여덟 번째의 계만 지킨다면 복인(福因)을 얻는 것이 적을 것이다. 그 뜻은 나머지 일곱 가지 계율도 지켜야 하며 비단 굶주린 배만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를 짓고 충직하며 동정심이 그 사람에게 남아 있어 자기가 할 일에 부지런히 할 수 있고 죄 없는 일을 행하여 관수(官輸)를 받든다면 이것도 역시 아름다운 일이다여기서 죄가 없다는 것은 교역(交易)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중생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서쪽 나라의 당시 풍속은 장사꾼을 귀하게 여기고 농부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밭 갈고 샘 파면서 중생의 목숨이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양잠(養蠶)과 도살을 상당한 괴로움의 원인으로 삼았다. 1년마다 그 가운데서 손해를 보는 것이 거억(巨億)에 달하였으나 이를 행한 지가 나름대로 오래되어 이것을 잘못이라 하지 않았고 미래의 생(生) 가운데서 무극한 고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업을 하지 않는 것을 무죄라 하였다.
033_0709_b_20L必其現處樊籠養育妻息恭心敬慈懷念下受持五戒恒作四齋黑月八日或十四日或十五日白月八日十五日要須受其八戒方稱聖修若無前七而唯第八獲福固其少焉意在防餘七過不但餓腹而已忠恕在人克勤於己作無罪事以奉官輸斯亦佳也無罪謂是興易由其不損衆生西國時俗皆以商人爲貴不重農夫由其耕墾多傷物命又養蠶屠殺深是苦因每一年中損害巨億行之自夂不以爲非未來生中受苦無極不爲此業名爲無罪也
그러나 속인의 무리는 시끄럽게 몰려다니며 3귀의(歸依)27)도 모르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허둥대고 있으니 어떻게 한 계율이라도 지닐 수 있겠으며, 열반이 적멸임을 알지 못하니 어찌 생사가 윤회라는 것을 깨닫겠는가? 눌러앉아 죄업만 짓게 되니 이것이 가장 하등한 인간들이다.
033_0709_c_04L至如俗徒蠢蠢不識三歸盡壽遑遑寧持一戒解涅槃是寂滅豈悟生死是輪迴爲罪業斯其下也

36. 망재승현(亡財僧現)
033_0709_c_07L三十六亡財僧現

무릇 죽은 비구의 물건을 나누어 갖고자 하는 경우는 율에 자세한 글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대의 필요에 대비해서 다만 간략하게 해설해 나가겠다.
033_0709_c_08L凡有欲分亡苾芻物律具廣文此備時須但略疏出
먼저 죽은 사람의 부채(負債)와 맡겨서 건네줄 사람의 유무와 간병한 사람의 유무를 물어 보고 법에 근거해서 상의하되 이치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그밖에 남은 물건은 이 일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033_0709_c_10L先問負債囑授及看病人依法商量勿令乖理餘殘之物准事應知
올타남(嗢拕南:섭송)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033_0709_c_12L嗢拕南曰

토지와 집과 가게와 이부자리
구리, 무쇠 및 모든 가죽제품
체도(剃刀) 등과 병과 옷
여러 장대와 온갖 가축들
033_0709_c_13L田宅店臥具
銅鐵及諸皮
剃刀等甁衣
諸竿幷雜畜

음식과 여러 가지 약
걸상과 자리와 문권(文券)
삼보ㆍ금은 등은
만들어진 것과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다르다.
033_0709_c_15L飮食及諸藥
牀座幷劵契
三寶金銀等
成未成不同

이와 같은 모든 물건은
나눌 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때에 따라 응해서 간별(簡別)해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일이다.
033_0709_c_16L如是等諸物
可分不可分
隨應簡別知
是世尊所說

여기서 때에 따라 응한다[隨應]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토지ㆍ집ㆍ가게ㆍ와구ㆍ털담요ㆍ여러 가지 동철기(銅鐵器) 등은 모두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 가운데서 철발우와 작은 발우 및 작은 구리공기ㆍ집의 자물쇠ㆍ바늘ㆍ송곳ㆍ면도칼ㆍ작은 칼ㆍ철표(鐵杓)ㆍ화로 및 도끼ㆍ끌 등은 모두 이 여러 개의 부대에 담고, 와기(瓦器)의 경우, 즉 발우와 작은 발우,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구별하는 군지(君持) 및 기름을 저장하는 물건과 아울러 물을 담는 그릇 등 이런 것은 모두 마땅히 나누어야 하나, 나머지 물건은 나누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033_0709_c_17L言隨應者所謂田宅邸店臥具氈褥諸銅鐵器竝不應分於中鐵鉢小鉢及小銅椀戶鑰鍼錐剃刀刀子鐵杓火爐及斧鑿等幷盛此諸袋若瓦器謂鉢小鉢淨觸君持及貯油物幷盛水器此竝應分餘不合分
033_0710_a_01L그 가운데 목기(木器)ㆍ죽기(竹器) 및 가죽으로 된 와물(臥物)ㆍ머리 자르는 도구ㆍ노비ㆍ음식ㆍ곡식ㆍ콩ㆍ토지ㆍ집 등은 모두 사방의 승단에 넣어야 하고, 만약 옮길 수 있는 물건이라면 마땅히 여러 창고에 저장하여 사방의 승단에서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여야 한다. 만약 토지와 집 마을 장원에 있는 집 같이 옮길 수 없는 것은 마땅히 사방의 승단에 소속시켜야 하며, 그래도 만약 남는 옷ㆍ이불 등이 있다면 법의나 속의를 물들였거나 물들이지 않은 것, 가죽ㆍ기름ㆍ병ㆍ신발ㆍ등속을 물을 것 없이 모두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마땅히 나누어야 한다. 예전에 같은 소매 속의 물건은 나누어 갖지 아니하고 흰 옷은 다시 속인에게 넣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마도 내용으로 짐작해서 한 말인 듯하다.
033_0709_c_23L其木器竹器及皮臥物翦髮之具奴婢飮食穀豆及田宅等皆入四方僧若可移轉應貯衆庫令四方僧共用若田宅村園屋宇不可移者應入四方僧有所餘一切衣被無問法衣俗衣若染不染及皮油甁鞋屨之屬竝現前應分先云同䄂不分白衣入重者是以意斟酌也
큰 장대는 섬부광상(贍部光像)을 모신 곳에 깃발을 매달아 놓는 장대로 삼는 것이 좋다섬부광상이란 것은 율장 가운데 나오는 연기설과 같은 것으로 원래 세존께서 대중 속에 거처하시지 않으셨을 때, 대중에게 위엄과 엄숙함이 없어서 세존께서 급고독원(給孤獨園)의 장자28)를 시켜 세존께 청하기를, “원컨대 섬부광상을 만들어 대중의 우두머리에 안치하게 하소서”라고 하여 부처님께서 이것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셨다.
033_0710_a_08L大竿可爲贍部光像處懸幡之竿言贍部光像者卽如律中所出緣起元爲世尊不處衆時衆無威肅致使給園長者請世尊曰願作瞻部光像衆首置之大師許作
작은 것은 석장(錫杖)을 만들어서 떠나는 비구에게 주는 것이 좋다석장(錫杖)이라 하는 것은 범어로는 끽기라(喫棄羅)라 하는데, 이는 곧 소리가 울린다는 뜻이다. 예전 사람이 이것을 석(錫)이라고 번역한 것은 뜻으로 주석이 소리가 울리는 것을 취한 것이다. 장(杖)ㆍ석장은 정황에 맡겨 칭한다. 내가 눈으로 증험한 바에 의하면 서방에서 지니는 석장은 머리 위에 오직 하나의 무쇠고리가 있을 뿐이며 너비는 2, 3촌(寸)이다. 거기에 자관(▼(金*字)管)을 안치하는데 길이가 4, 5지(指) 가량 된다. 그 막대기는 나무를 사용하며 굵고 가는 것은 때에 따라 정하고 높이는 어깨 높이와 같이 하여 아래에는 약 2촌(寸) 가량의 철찬(鐵纂)을 안배하고, 그 고리는 혹 둥글기도 하고 혹 기울어 굽히기도 하여서 각기 중간에서 합쳐서 큰 손가락을 넣을 만하다. 지팡이 다리 위에 혹 여섯 개나 여덟 개의 구멍을 뚫어놓는데 구리ㆍ무쇠로 만든다. 원래 이것을 제작한 뜻은 걸식할 때 소나 개를 방비하기 위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어렵게 떠받들고 받드는 데 노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한 온몸이 모두 무쇠로 되어 있고 머리에 네 개의 다리를 마련하여 지니고 다니는 데 무겁고 걸음이 지체되며 매우 차갑고 거칠거칠하니, 만드는 뜻이 아니다.
033_0710_a_10L細者可作錫杖行與苾芻言錫杖者梵云喫棄卽是鳴聲之義古人譯爲錫者意取錫錫作聲鳴杖錫杖任情稱說目驗西方所持錫杖頭上唯有一股鐵捲可容三二寸安其▼(金*字)管長四五指其竿用木細隨時高與肩齊下安鐵纂可二寸許其鐶或圓或偏屈各合中間可容大指或六或八穿安股上銅鐵任情原斯制意爲乞食時防其牛犬何用辛苦擎奉勞心而復通身摠鐵頭安四股重滯將持非常冷澀非本製也
네 발 지닌 짐승들 가운데서는 만약 그것이 코끼리ㆍ말ㆍ낙타ㆍ당나귀ㆍ노새 등 사람이 타고 다니는 짐승일 경우에는 마땅히 국왕의 거처에 보내야 하나, 소나 양과 같은 것은 사방의 승단에 소속시켜야지 나누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갑옷ㆍ투구와 같은 것들도 역시 국왕의 집으로 보내야 하며, 온갖 무기 등은 두들겨서 바늘ㆍ송곳ㆍ작은 칼 및 석장두(錫杖頭)를 만들어 가서 눈앞에 나타나는 승단에 주는 것이 좋다모두에게 주지 못한다면 큰 스님에게 드린다.
033_0710_a_16L四足之若是象馬駝騾驢乘當與國王家牛羊入四方僧不應分也若甲鎧之亦入國王家雜兵刃等可打作鍼錐刀子及錫扙頭行與現前僧伽縱不普遍從大者行
그물과 같은 것들은 창문에 치는 휘장으로 사용하여야 하며 만약 상과 같이 채색된 물건, 예를 들면 노란색ㆍ주홍색ㆍ파란색ㆍ푸른색ㆍ초록색 등의 물건은 마땅히 불당에 넣어 불상에 공양할 용도에 견주어야 한다.
033_0710_a_21L罟網之屬應用羅窗若上彩色又黃朱碧靑綠等物應入佛堂擬供像用
033_0710_b_01L백토(白土)ㆍ적토(赤土) 및 하청색(下靑色)은 현전(現前)에서 나누어야 한다. 만약 술맛이 시어지려고 한다면 땅에 묻어서 식초가 되기를 기다려 승단의 스님들이 이것을 먹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현재 술이라면 마땅히 기울여서 버려야 하며, 그것을 파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033_0710_a_23L白土赤土及下靑色現前應若酒欲酸可埋於地待成醋已僧應食之若現是酒應可傾棄不合酤
부처님 말씀에, “너희들 모든 비구들이 만약 나에게 귀의하여 출가한 사람이라면 술을 가지고 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스스로 마셔서는 안 되며, 나아가 풀 끝만큼의 한 방울의 술이라도 걸러서 입 안에 넣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다.
033_0710_b_03L佛言汝諸苾芻若有依我出家得將酒與他及以自飮乃至不合茅尖渧酒瀝置口中
만약 술과 술지게미로 면(麵)을 만들거나 술국 따위를 만들어 먹는 사람은 모두 월법죄(越法罪)를 초래한다. 이는 율장에 규제가 이룩된 것이 있으니 의심할 필요는 없다영암도량(靈巖道場)에서는 늘 보리죽장[麮漿]으로 면을 만드는데 이는 술로 면을 만드는 허물을 피하기 위한 것이니, 선인들은 참으로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033_0710_b_05L若將酒及糟起麪幷糟羹之類食者咸招越法之罪有成制不須致疑靈巖道場常以麮漿起麪避其酒過先人誠有意焉
여러 가지 잡약(雜藥) 등이 있을 경우 깨끗한 창고에 안치하여 그것으로 병든 사람에게 공급하게 하여 마음대로 통용하게 한다. 여러 가지 진귀한 보배와 주옥이 있으면 둘로 나누어 한 몫은 법보의 용도에 맞게 넣고, 나머지 한 몫은 승단에 넣어서 법물은 불경을 쓰게 하는 것이 좋고 아울러 사자좌(師子座)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좋으며, 승단에 넣은 것은 현전(現前)에서 나누어야 한다. 만약 보배로 이루어진 상자와 책상 등속이 있다면 마땅히 내다 팔거나 현전에서 나누어야 하며, 나무로 이루어진 것은 사방승단[四方僧伽]29)에 넣어야 한다.
033_0710_b_08L諸有雜藥之屬應安淨庫以供病者隨意通用諸有珍寶珠玉分爲二分一分入法一分入僧法物可書佛經幷料理師子座入僧者現前應分寶等所成牀榻之屬應須出賣現前應分木所成者入四方僧伽
가지고 있는 경전과 장소(章疏)는 모두 나누어서는 안 되며 마땅히 경장(經藏)에 넣어 사방에서 오는 스님들이 함께 읽게 하여야 한다. 만약 일찍 이를 찾아 얻을 수 있을 경우에는 곧 이것을 나누어야 하며 만약 그렇게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문권을 마땅히 창고에 저장하였다가 뒷날 찾아 얻어 사방승의 사용에 충당하여야 한다.
033_0710_b_14L所有經典章疏皆不應分當納經藏四方僧共讀其外書賣之現前應分所有劵契之物若能早索得者卽可分之如不能者劵當貯庫後時索得充四方僧用
033_0710_c_01L또 모든 금ㆍ은 및 이루어졌거나 이룩되지 않은 기물ㆍ패치(貝齒)ㆍ여러 가지 돈과 같은 것은 모두 셋으로 나누어 한 몫은 부처님에게, 두 번째는 달마(達磨)에게, 세 번째는 승단에 배분한다. 부처님 물건으로는 마땅히 불당과 머리카락ㆍ손톱ㆍ발톱을 봉안한 탑의 파괴된 곳을 수리하여야 하고, 법물로는 불경을 베껴 쓰게 하고 사자좌(師子座)를 정리하게 하며, 대중의 물건은 현전에서 나누어야 한다. 6물(物)은 마땅히 간병인에게 주어야 하며, 그밖의 잡동사니 물건은 이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율(大律)에 실린 내용과 같다.
033_0710_b_19L若諸金銀及成未成器貝齒諸錢竝分爲三分一佛陁二達三僧伽佛物應修理佛堂及髮爪窣睹波所有破壞法物寫佛經料理師子座衆物現前應分六物當與看病人自餘雜碎之物准此應知具如大律

37. 수용승물(受用僧物)
033_0710_c_02L三十七受用僧物

지금 서방에 있는 모든 절의 비구들의 의복은 흔히 승단의 재산에서 나온 것이 많다. 혹 전원에서 남은 것이나 혹 과일 나무에서 얻은 이익을 해마다 나누어 옷값에 충당하게 하는 것이다.
033_0710_c_03L現今西方所有諸寺苾芻衣服多出常住僧或是田園之餘或是樹果之年年分與以充衣直
“죽은 사람이 갖고 있던 곡식조차도 보내서 승단의 재산으로 삼게 하는데 하물며 대중들의 콩과 곡식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누어 쓸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시주가 본래 마을의 장원을 희사할 때는 원래 목적이 승단의 대중들을 제도하고 공양하려 한 것입니다. 어찌 그들에게 다만 먹을 것만 주고 벌거벗은 채 지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다시 해당되는 일을 상세히 살폈더니 모두가 공로가 있는 집안 사람들조차도 나름대로 옷을 주고 있는데 조주(曺主:무리의 주인공)에게 옷을 주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도리로 보아서는 음식을 공급하고 남는 것을 옷에 충당한다 하여도 법에 손상되는 일은 아닙니다”라고 답하였다.
033_0710_c_06L問曰亡人所有穀食尚遣入僧況復衆家豆粟人何合分用施主本捨村莊元爲濟給僧衆豈容但與其食而令露體住乎又復詳審當事竝有功勞家人尚自與衣曹主何宜不合以其道理供食之餘充衣非損
이것이 곧 서쪽 나라 대중 스님들의 대체적인 의론이다. 그러나 그들의 율전에는 때때로 이 일이 언급되거나 언급되지 않을 뿐이다.
033_0710_c_12L斯乃西國衆僧大途議論然其律典時含出沒耳
또한 서쪽 나라의 여러 절에는 따로 옷을 공급하는 장원(莊園)을 설치하고 있다. 중국의 도량에도 나름대로 옷을 공급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음식을 얻는데 속인과 도인이 공통된 것은 이는 시주의 원래 마음에 근거한 일이라 비록 그 음식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이치로 보아서는 역시 허물이 아니다.
033_0710_c_13L西國諸寺別置供服之莊神州道場自有給衣之所亦得食通道俗此據施主無心設令飡噉理亦非過
모든 이러한 승가에 보시하는 밭이나 집이나 또는 잡물과 대중승단의 의식(衣食)과 통하는 물건들은 참으로 의심하고 염려할 근심이 없는 물건들이다. 만약 무심히 무진한 장애물이 없는 생각을 하였다면 비록 승가에 보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정은 두루 모든 중생에게 통하는 것이므로 다만 이것을 먹고 사용한 사람에게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시주가 먼저 마음으로 기약한 일일 따름이다.
033_0710_c_16L凡是布施僧家田宅乃至雜物竝通衆僧衣食者此則誠無疑慮之患若無心作無盡無障之意者雖施僧家情乃普通一切但食用者咸旡過也竝由施主先心所期耳
다만 중국 땅에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스님의 옷을 얻을 수는 없다. 이것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만 실은 업에 방해가 되고 있다. 설사 공양에 응해서 목숨을 부지한다고 하더라도 이것도 심력(心力)을 고단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033_0710_c_21L但神州之地別人不得僧衣爲此孜孜實成妨業設使應供存命非是不勞心力
033_0711_a_01L만약 상주하면서 음식이 있고 아울러 승복을 입을 수 있다면 곧 단정하게 팔짱끼고 앉아서 절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며, 또한 이는 깊이 일을 덜어주는 결과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누더기 3의(衣)를 걸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식하고 암자는 나무에 의지하면서 정명(正命)이라 스스로 그곳에 자리잡고, 정혜(定慧)를 안에서 무르녹게 하고 계율의 길에 상(想)을 다하며 자비는 외부로 나타내서 마음을 보제(普濟)의 나루터에 내걸며 이것으로 마지막 길을 보낼 수 있다면 이는 최고의 경지이다.
033_0710_c_23L若其常住有食兼著僧衣卽可端拱不出寺門亦是深成省事況乎糞掃三衣巡家乞食蘭若依樹正命自居定慧內融極想木叉之路慈悲外發摽心普濟之津以此送終斯爲上矣
그렇다면 절의 재산으로 되어 있는 물건으로는 이것을 사용하여 옷ㆍ이불ㆍ걸상ㆍ요 따위와 아울러 여러 가지 가구를 만들어 평등하게 나누어 받아쓰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귀속하지 않는다. 손바닥에 얹어놓고 사랑하며 호지(護持)하기를 자기 물건보다 더 사랑하고 큰 것이 오는 일이 있으면 작은 것은 역으로 다른 스님에게 준다. 이것은 곧 성인의 가르침이며 부처님 자신이 명백히 말씀하신 일이다. 법에 맞게 이를 사용한다면 참으로 죄와 허물이 없는 것이며, 족히 몸을 자양할 수 있고 추구하는 비용을 면할 수 있게 된다.
033_0711_a_05L然則常住之物用作衣被牀褥之流幷雜資具平分受用不屬別人掌愛護持事過己物有大者至輟小而與斯乃聖敎佛自明言如法用之誠無罪咎足得資軀免追求之費
절집이 거부(巨富)가 되어 곡식과 보리가 창고에서 썩고 노비가 동네에 가득하고 돈과 재물을 창고에 넣어 놓았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른채 함께 가난 속에 처해 있는 일이 어찌 용납되겠는가?
033_0711_a_10L寧容寺家巨富麥爛倉奴婢滿坊錢財委庫不知受用相共抱貧
옳고 그름의 마땅함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때로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혹 절집에서 대중의 식량을 남겨놓지 않고 승단의 물건을 나누어 개인적으로 먹고 다른 재산을 가로막는 일이 있다면 시방세계의 사명(邪命)이 오직 자기 한 몸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스스로 비법(非法)을 행한 것이니 고통의 과보를 미래에 누가 당하겠는가?
033_0711_a_12L可否之宜智者時鏡有寺家不立衆食僧物分以私飡遮他常住十方邪命但存一已斯乃自行非法苦報誰代當來

38. 소신불합(燒身不合)
033_0711_a_15L三十八燒身不合

여러 출가한 대중 가운데에는 자못 외길을 걷는 초학(初學)의 무리가 있어 마음을 사납고 날카로운 곳에 둔 채, 성인의 경전을 아직 익히지 못해 선인들의 행적에서 믿음을 취하여 곧 손가락을 불사르는 것을 정근(精勤)이라 생각하고 살갗을 태우는 것을 큰 복이라 생각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하여 마음대로 행하니 그 결정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033_0711_a_16L諸出家衆內頗有一途初學之流情存猛利未閑聖典取信先人將燒指作精勤用然肌爲大福隨情卽作在自心
그러나 경전에서 밝힌 것은 일이 통속(通俗)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조차 오히려 공양을 권하고 있거늘 하물며 그 밖의 여러 재물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경전에서는 다만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라고만 말하였을 뿐 출가한 대중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033_0711_a_20L然經中所明事存通俗己身尚勸供養何況諸餘外財是故經中但言若人發心不道出家之衆
033_0711_b_01L생각건대 출가한 사람은 율장에 국한되어 계율 가운데 범한 것이 없어야 비로소 경전의 가르침과 통할 수 있다. 계율을 어겨도 된다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설사 향대에 풀이 무성하더라도 어찌 한 포기인들 손상시키며, 넓은 들판에서 홀로 굶주린다 하더라도 어찌 반 톨의 곡식인들 먹겠는가? 그런데도 보기를 좋아하는 중생들이 있는데 이는 속된 무리들이다.
033_0711_a_22L意者出家之人局乎律藏戒中無犯方得通經於戒有違未見其可縱使香臺草茂豈損一莖曠野獨飢寧飡半粒然衆生喜見斯乃俗流
팔을 불살라 공양드리는 것을 참으로 옳은 일이라 하고 보살이 남녀의 상징을 버릴 수 있다고 하여 마침내 비구들에게도 남녀의 상징을 버리기를 구하고, 대사(大士)가 눈을 희사하고 몸을 희사한다고 해서 곧 걸사(乞士)에게도 몸과 눈으로 보시를 행하게 하여서야 되겠는가? 선인(仙人)이 미리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어찌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 할 짓이겠느냐? 또 자력왕(慈力王)30)이 몸을 희사한 일도 승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다.
033_0711_b_03L燒臂供養其宜矣可以菩薩捨男捨女遂遣苾芻求男女以捨之大士捐目捐身令乞士將身目而行施仙預斷命律者所爲慈力捨身非僧徒應作
요즘에 듣건대 소년의 무리들이 용맹하게 발심하여 몸을 불사르는 것을 정각(正覺)의 경지에 오르는 길이라 생각하고 마침내 서로 뒤를 이어 이를 익혀 가볍게 그들의 몸을 버린다고 한다. 왜냐 하면 십 겁, 백 겁이 지나도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렵고 천 생(生), 만 생 만에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혜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며 칠각지(七覺支)를 듣는 일도 드물고 삼존도 만나지 못하니, 지금 이미 몸을 거룩한 도량에 의탁하고 마음을 묘법에 투입하여 겨우 한 수의 게송만 지니게 되어도 보잘것없는 몸을 버리는 것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033_0711_b_07L聞少年之輩勇猛發心意謂燒身便登正覺遂相踵習輕棄其軀何則十劫百劫難得人身千生萬生雖人罕稀聞七覺不遇三尊今旣託體勝投心妙法纔持一頌棄沙肌而尚
잠시 삶의 무상함을 생각한다면 몸을 받쳐 공양하는 것이 어찌 무거운 일이겠는가? 이치로 보아서 굳게 계품을 닦아 4은(恩)31)의 은혜를 갚고 굳게 선문(禪門)을 생각하여 3유(有)에서 몸을 뽑고 벗어나기를 바라야 한다. 그리하여 작은 허물을 크게 두려워하기를 마치 깊은 바다를 건너갈 때 부낭(浮囊)을 지키듯이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지혜를 실천하기를 마치 엷은 얼음 위에서 준마를 채찍질해 가며 달리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한 후에야 착한 벗의 힘에 기대서 임종 때에도 마음이 놀라지 않고 바른 염원을 품고 발돋움하여 미래의 세계에서 미륵불을 만나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작은 과보(果報)를 바란다면 곧 8성도(聖道)를 구해야 한다. 만약 큰 인연을 배웠다면 3대아승기겁(大阿僧祇劫)의 수행을 여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033_0711_b_13L暫想無常捨塵供而寧重理應堅修戒品酬惠四恩固想定門冀拔三小愆大懼若越深海之護浮囊惠堅防等履薄冰而策奔駿然後憑善友力臨終助不心驚正念翹懷來願見慈氏若希小果卽八聖可求如學大因則三祇斯始
총총히 스스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실로 아직 그런 도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자살하는 죄는 그에 관한 일이 첫 편 다음에 나와 있으며 율장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런 일을 하게 한 글은 보지 못하였다. 멸수(滅受)는 친히 중요한 방법을 설하셨으나 미혹됨을 끊는 것을 어찌 몸을 불태우는 것으로 말미암겠는가?
033_0711_b_19L悤悤自斷軀實亦未聞其理自殺之罪事亞初篇矣撿尋律藏不見遣爲滅愛親說要方斷惑豈由燒已
033_0711_c_01L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가로막고 허락하지 않으셨다. 못[池] 속에서도 생명을 존속시킨 일을 세존께서는 스스로 거룩하다고 칭송하셨다. 무거운 계율을 깨고 자기의 뜻을 따르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가로막고 따르지 않으셨다. 이런 일에 자신의 마음을 쏟는다는 것은 참으로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다.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보살행을 행하고 율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몸을 없애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일은 물론 여기서 말하는 테두리 밖에 있는 일일 따름이다.
033_0711_b_22L房中打勢佛障不聽池內存生尊自稱善破重戒而隨自意金口遮而不從以此歸心非聖敎必有行菩薩行不受律儀亡己濟生固在言外耳

39. 방인획죄(傍人獲罪)
033_0711_c_03L三十九傍人獲罪

무릇 몸을 불사르는 무리들은 각기 마음 속의 정성을 나타낸다. 혹 세 사람이나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기약을 맺고 여러 초학자들을 유혹하여 소상하게 죽음을 권유하면, 앞서서 죽는 사람은 스스로 투란죄(偸蘭罪)32)를 얻게 되고, 마지막에 목숨이 끝난 사람은 결국 바라이죄(波羅夷罪)33)를 부르게 된다. 금계(禁戒)를 지키려 하지 않고 계율을 파괴하여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 마음을 외길로 고수하고 한 번도 가르침을 살피지 않아 혹 옆 사람에게 권해서 죽게 하는 일이 있다면 곧 침혈(針穴)의 말씀을 범하게 되고, 만약 왜 불에 뛰어들지 아니하느냐고 말한다면 곧 절석(折石)의 허물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아, 이 일은 참으로 삼가하여야 할 일이로다.
033_0711_c_04L凡燒身之類各表中誠或三人兩人同心結契誘諸初學詳爲勸死在前亡者自獲偸蘭末後命終定招夷罪不肯持禁而存欲得破戒求死固守專心曾不窺敎儻有傍人勸作卽犯鍼穴之言若道何不授火便招扸石之過嗚呼此事誠可愼哉
속담에 이르기를, “살신(殺身)이 보덕(報德)만 못하고, 멸명(滅名)이 입절(立節)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 준 것은 보살로서 고통을 구제한 일이 되었으니, 몸을 잘라서 집비둘기를 대신한 것을 사문(沙門)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 하여, 이것을 자살과 같은 조목으로 본다면 실로 이것은 그런 정황이 아니다. 그러므로 잠시 삼장(三藏)에 기준하여 간략하게 그 가부를 말해 보기로 한다. 진퇴의 올바름은 지혜 있는 사람이면 소상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033_0711_c_11L俗云殺身不如報德滅名不如立節然而投體餓虎是菩薩之濟苦割身代鴿非沙門之所爲以此同科實非其況聊准三藏略陳可不進退之宜智者詳察
그러나 항하(恒河) 안에서 날마다 몇 사람을 죽이고 가야산(伽耶山) 변두리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혹 굶으면서 먹지 않고 죽는 사람도 있고 혹 나무에 올라가서 투신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한 미혹된 길을 걷는 사람을 세존께서는 외도라 판정하셨다. 이 밖에도 스스로 자기 몸을 형벌하여 성기(性器)를 끊는 사람이 있으니 이는 율전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설사 이것을 갖고 잘못이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죄가 두려워 감히 충고하지 못하고 있으니, 만약 그가 이 일을 연유로 해서 목숨을 잃게 된다면 곧 일생의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될 것이다.
033_0711_c_15L然恒河之內日殺幾人伽耶山邊自殞非一或餓而不食或上樹投身等迷途世尊判爲外道復有自刑斷深乖律典設有將爲非者恐罪不敢相諌若其緣斯致命便誤一生大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도리로 인해서 이를 제지하시고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상인(上人)들은 모두 아는 일이라 스스로 이런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고덕(古德)들이 서로 전한 말은 뒤에 밝히는 내용과 같다.
033_0711_c_21L佛因斯理制而不許上人通識自不肯爲古德相傳述之如後

40. 고덕불위(古德不爲)
033_0711_c_22L四十古德不爲
033_0712_a_01L
잠시 나 의정(義淨)의 경우를 들면 친교사(親敎師)는 선우법사(善遇法師)이시고 궤범사(軌範師)는 혜지선사(慧智禪師)이시다. 나이 일곱 살이 넘어서 다행히 그 분들을 친히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스승께서는 나란히 태산(泰山) 금여곡(金輿谷)의 성인이신 낭선사(朗禪師:僧朗)가 지은 신통사(神通寺)의 대덕이시며 속가의 인연은 덕주(德州)와 패주(貝州)의 두 고을에 있다.
033_0711_c_23L且如淨親敎師則善遇法師也軌範師則慧智禪師也年過七歲幸得親侍斯二師者竝太山金輿谷聖人朗禪師所造神通寺之大德也緣在乎德貝二州矣
두 분 대덕은 생각하시기를 ‘산중에 살면서 홀로 착한 것은 중생을 이롭게 할 길이 희박하다’라고 하시고 함께 평림(平林)을 찾아가시어 맑은 계곡을 내려다 보며 그곳을 베개 삼고 토굴사(土窟寺)에 고요히 머무시면서 선을 닦으셨다. 이곳은 곧 제주성(齊州城)의 서쪽 40리가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음식을 준비하여 구애됨이 없이 공양하시고 받아들인 시주의 보시는 모두 희사(喜捨)를 하시니, 사홍서원(四弘誓願)34)은 하늘과 땅과 함께 끝이 없으며 4섭법(攝法)35)으로 널리 중생을 구제하심이 먼지나 모래처럼 다함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이다. 공경히 사우(寺宇)를 수리하시어 크게 복업을 일으키셨다.
033_0712_a_05L二德以爲山居獨善寡利生之路乃共詣平林俯枕淸㵎於土窟寺式修淨居卽齊州城西四十里許營無盡藏食供養無碍所受檀施咸隨喜捨可謂四弘誓願共乾巛而罔極四攝廣濟等塵沙而不窮敬修寺宇盛興福業
간략하게 법사의 일곱 가지 공덕을 말하겠다.
033_0712_a_11L略敍法師之七德焉
첫 번째는 법사의 박문(博聞)이다. 법사께서는 바로 삼장을 훔쳐보시고 한편으로 제자백가에 눈을 돌려 두 학문을 모두 겸하셨다. 6예(藝)를 통달하고 갖추시어 천문ㆍ지리ㆍ음양ㆍ역산(曆算)의 기이한 학문에 이르기까지도 오직 그것을 거쳐갈 마음만 있게 되면 묘하게 그것이 신부(神府)를 꿰뚫었다. 그리하여 양양한 지혜의 바다 속으로 마침내 쏟아져 흘러내리며 마르고 다하는 일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문학의 동산에는 오랫동안 꽃피어 시들지 않고 지은 문장과 일체경음(一切經音)과 아울러 여러 자서(字書)들이 자못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늘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약 몰랐다면 이것은 글자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033_0712_a_12L一法師之博聞也乃正窺三藏傍睇百家兩學俱兼六藝通備天文地理之術陰陽曆筭之奇但有經心則妙貫神府洋洋慧海竟瀉流而罔竭粲文囿鎭敷榮而弗萎所制文藻及一切經音幷諸字書頗傳於世每自言曰我若不識則非是字
두 번째는 법사의 다능(多能)하심이다. 전자(篆字)ㆍ주자(籒字)에 능하시고 종장(鍾張)36)의 서체를 잘 쓰셨으며, 음악을 듣고 감상하면 종자기(鍾子期)가 산수(山水)로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증명하는 것과 같으셨고, 도끼를 놀리면 장석(匠石)37)이 작은 흙덩어리를 제거하듯 솜씨가 있었으니, 명철(明哲)한 사람은 정해진 그릇이 없다[哲人不器]란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033_0712_a_19L二法師之多能也巧篆籒善鍾張聽絲桐若子期之驗山水運斤斧等匠石之去飛哲人不器斯之謂也
033_0712_b_01L세 번째는 법사의 총명과 지혜다. 『열반경』을 읽으시면 하루에 곧 두루 다 읽으셨고, 처음 이 경전을 외우실 때 네 달 만에 전부를 마치셨다. 유종(幽宗)을 연미(硏味)하시고 현묘한 지혜를 탐미하셨으며 어린 동자를 가르치시면 이들을 유인하시는데 반자(半字)로 하시어 참으로 검(劒)을 어루만진다는 의혹이 없었고 큰 기틀을 지닌 사람에게 전수할 때는 이를 완벽한 그릇에 쏟아부어 실로 보배를 받쳐 드는 이익이 있었다.
033_0712_a_22L三法師之聰慧也讀『涅槃經』一日便初誦斯典四月部終硏味幽宗探玄旨敎小童則誘之以半字誠無按劍之疑授大機則瀉之於完器有捧珍之益
예전 수(隋)나라의 말년에 도가 쇠퇴하여 미약해지자 법사는 곧 굳은 결심을 하시고 양부(楊府)로 옮기셨으나, 여러 스님들은 설법을 듣고도 모두 우둔한 사람이라 말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의 외모가 질박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법사로 하여금 『열반경』을 읽게 하고 두 제자를 시켜 구마다 암송하시는 것을 지켜보게 하였다. 법사께서는 당시에 강개(慷慨)한 목소리로 음성과 뜻을 격양하여 새벽부터 해가 솟아오를 때까지 세 질(帙)을 이미 끝내시니 당시 사람들 가운데 경찬(慶讚)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가 쉬기를 요청하며 드문 일이라고 감탄하고 찬탄하였다. 이 일은 대중들이 다함께 아는 사실이며 내가 개인적으로 찬양하는 말이 아니다.
033_0712_b_04L昔因隨季道銷法師乃梗遷揚府諸僧見說咸云魯漢體多貢卦遂令法師讀『涅槃經』遣二小師將箸隨句法師于時慷慨喉吻激揚音旨旦至日角三帙已終時人莫不慶讚請休嗟歎希有此乃衆所共知非私讚也
네 번째는 법사의 도량이다. 시장에서 교역하는 일이 있기만 하면 찾는 대로 이에 응수하여 높고 낮음을 논하지 아니하고 한 번도 값을 깎지 않으셨다. 설사 값을 계산하면 되돌려 받을 돈이 있을 경우에도 다시 그 돈을 받지 않으셨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법사의 아량이 무리 가운데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하였다.
033_0712_b_10L四法師之度量也但有市易隨索隨酬無論高下曾不減價有計直到還亦不更受時人以爲雅量超群也
다섯 번째는 법사의 인애(仁愛)하심이다. 의리를 중히 여기시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시어 보살행을 따르셨다. 어떤 사람이 와서 따라 빌면 모두 그 말을 거역하지 않으시고 하루에 삼문(三文)을 보시하는 것이 평상시의 소원이었다. 또 일찍이 몹시 추운 겨울에 객승(客僧)인 도안(道安)이 눈길을 무릅쓰고 먼 길을 걸어오는 바람에 발이 부르터서 갈라졌고, 마을에서 며칠 쉬는 동안에 곪아 고름이 흐르자 마을 사람들이 수레에 실어보내 절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033_0712_b_13L五法師之仁愛也重義輕財遵菩薩行有人從乞咸不逆言施三文是所常願又曾於隆冬之月客僧道安冒雪遠行腨足皆破停村數日潰爛膿流村人車載送至寺所
이에 법사는 새로 가사 한 벌을 만들어 겨우 몸에 둘렀는데 문을 나서자 갑자기 그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가사로 그 피고름을 덮어 주니 옆에 있던 사람이 이를 제지하면서 말하였다.
“헌 물건을 찾아 덮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새 옷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033_0712_b_17L法師新造一帔纔始擐體出門忽見不覺以帔掩其膿血傍人止之曰覓故物莫污新者
법사가 말씀하셨다.
“서로 매우 심한 고통을 구제하는데 어찌 다른 것을 찾을 여가가 있겠는가?”
033_0712_b_20L法師曰交濟嚴苦何暇求餘
당시 사람들은 이를 보고 깊이 찬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이 일은 아주 중대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러나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은 본래부터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033_0712_b_21L時人見聞莫不深讚雖復事非過大而能者固亦尟矣
033_0712_c_01L여섯 번째는 법사의 제자들을 다독거려 격려함이다. 팔부(八部) 『반야경(般若經)』38)을 각각 모두 백 번을 두루 읽으셨고, 아울러 『일체경(一切經)』 39)을 다루기를 여러 번 처음부터 끝까지를 마치셨다. 정방업(淨方業)을 닦으실 때는 밤낮으로 발돋음하여 근면하셨으며, 불승(佛僧)의 땅을 맑게 하여 생(生)을 희구하였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셨다. 대부분 맨 발로 길을 걸어으시어 혹 중생이 손상될 것을 두려워하셨으며, 생각을 돌리어 마음을 드러냄에 한 번도 게으른 적이 없으셨다.
033_0712_b_22L六法師之策勵也讀八部『般若』各竝百遍幷轉一切經屢訖終始修淨方業日夜翹瑩佛僧地希生不動大分塗跣恐損衆生運想標心曾無懈替
향대를 쓸고 물 뿌려 안양정토(安養淨土)40)에서 구품(九品)의 연꽃이 핀 것과 비슷하게 만드셨고, 경실(經室)을 장엄하게 하여 마치 취령(鷲嶺)의 하늘에서 네 종류의 꽃비가 내린 것과 같이 만드셔서 그것을 본 사람은 공덕을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몸소 권태로운 것을 잊으시고 목숨이 다할 때를 기한으로 삼으셨다.
033_0712_c_03L掃灑香臺類安養之蓮開九品莊嚴經室若鷲嶺之天雨四花其有見者無不讚歎功德躬自忘倦畢命爲期
또한 전독(轉讀)하는 여가에는 아미타불을 염불하시어 4위의(威儀)41)에 빠진 것이 없었고 1촌(寸)의 해 그림자가 지나가는 짧은 시간에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다. 작은 콩알을 헤아리기를 만 2년 가량 하셨으며 널리 제도하신 실마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033_0712_c_06L又轉讀之餘念阿彌陁佛四儀無闕寸影非空計小豆粒可盈兩載弘濟之端固非一品
일곱 번째는 법사의 명(命)을 아신 일이다. 법사께서 곧 세상을 마치시기에 앞서 한 해에 갖고 계시던 문장ㆍ잡서ㆍ역사 등의 문서를 쌓아 큰 더미를 만들었다. 이것을 쪼개서 종이찰흙을 만들어 절에 금강역사(金剛力士)의 상 2구(軀)를 조성하여 용도에 충당하려 하자 문인들이 나아가 간(諫)하였다.
“어른께서 반드시 종이가 필요하시다면 저희들이 기꺼이 공지(空紙)로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033_0712_c_09L七法師之知命也法師將終一年內所有文章雜書史等積爲大聚裂作紙泥寺造金剛兩軀以充其門人進而諌曰尊必須紙敢以空紙換之
이에 법사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글에 탐착하여 오랫동안 나를 그르쳐 왔는데 어찌 오늘에 와서 다른 사람을 그르칠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짐독(鴆毒:짐새의 독)을 먹게 하는 것과 같고 지름길이라 하여 험한 길을 가르쳐 주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옳지 못하다. 정업(正業)을 폐지하고 방공(傍功)을 익히게 되는 것으로 성인께서 상품(上品)의 스님으로 인정하신 사람이라도 여기에 탐착하면 큰 허물을 이루게 된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 문도들이 거룩하다고 칭송하면서 물러갔다.
033_0712_c_13L師曰耽著斯文久來誤我於今日而誤他哉譬乎令飡鴆毒徑嶮途其未可也廢正業習傍功開上品耽成大過己所不欲勿施他門徒稱善而退
그의 설문(說文)과 자서(字書) 등은 다행히 극진한 하사(下賜)를 받게 되었다. 이어 법사는 교훈을 드리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대략 경사(經史)를 읽어 보았으니 문자는 대충 알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훌륭한 경전에 마음을 두고 흠모하여야 하며 이 누(累)에 집착하지 말아라.”
033_0712_c_17L其說文及字書之幸蒙曲賜乃垂誨曰汝略披經史文字薄識宜可欽情勝典勿著斯累
그리고 곧 세상을 떠나시려 할 때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나는 수삼 일 사이에 결국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마칠 때는 반드시 빗자루를 가슴에 안고 죽을 것이다. 나의 유해는 곧 넓은 못에 버려라.”
033_0712_c_19L將欲終時先告門人曰吾三數日定當去矣然於終際必抱掃帚而亡之餘骸當遺廣澤
그 후 이른 아침에 맑은 계곡물이 굽어보이는 쓸쓸한 백양(白楊)나무 아래 초록색 가지 옆에서 서성거리다가 외롭게 홀로 앉아 빗자루를 손에 잡고 세상을 마치셨다.
033_0712_c_22L後於晨朝俯臨淸蕭條白楊之下彷徨綠篠之側然獨坐執篲而終
033_0713_a_01L문인인 혜력(慧力)선사가 날이 밝자 나아가 알현하였는데 조용하여 소리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곧 손으로 만져보니 오직 뜨거운 기운이 머리로 치밀어 오르는 것만 보았을 뿐 손발은 모두 차가웠다. 이에 마침내 곧 크게 통곡하니 사방 먼 곳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033_0713_a_01L門人慧力禪師侵明就謁怪聲寂爾乃將手親附但見熱氣衝頭足手俱冷遂便大哭四遠咸集
이때 법려(法侶)들의 슬픈 울음소리는 금하(金河)42)의 흐르는 피가 땅에 뿌려지는 것과 같았고, 일반인들의 울부짖고 통곡하는 모습은 옥령(玉嶺)에서 명주(明珠)가 부서지는 것과 같았으며, 모두가 도수(道樹)43)가 일찍 시든 것을 가슴 아파하였고 법주(法舟)가 갑자기 침몰한 것을 한탄하였다. 그리하여 절의 서쪽 뜰에 묻었는데 그때 춘추는 63세였다. 죽은 후에 몸에 연유한 자구(資具)라고는 오직 3의(衣)와 낡은 신발 두 켤레와 편의에 따른 와구(臥具)뿐이었다.
033_0713_a_04L于時法侶悲啼若金河之流血灑地俗徒號慟等玉嶺之摧碎明珠傷道樹之早凋歎法舟之遽沒窆於寺之西園春秋六十三矣身亡之後身資具但有三衣及故鞋履二兩幷隨宜臥具而已
법사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날 나 의정은 단지 열두 살이었다. 대상(大象)이 떠나고 나니 의지하여 투신할 곳이 없어졌고 마침내 외서(外書)를 버리고 마음으로 내전(內典)을 흠모하게 되었으며, 열네 살 때 스님의 대열에 참여하는 은택에 젖게 되었으며, 열여덟 살 때 서천으로 향하려 하다가 서른일곱 살 때에 비로소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나 의정이 돌아오던 날 법사의 묘에 나아가 하직하는 예배를 올렸다. 이때 이미 서리 내린 숲이 둘러쳐져 있었고 해묵은 풀들이 묘역을 메우고 있었다. 신도(神道)가 비록 소원하다고는 하나 살아계실 때와 같은 공경을 펴면서 주위를 두루 발돋움하여 바라보면서 먼 길을 다녀온 마음을 술회하고 유령(幽靈)에 복리를 기원하며 인자한 스승의 두터운 덕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033_0713_a_09L法師亡日淨年十二大象旣去無所依投遂棄外書欽情內典十四得霑緇侶十八擬向西天至三十七方遂所願淨來日就墓辭于時已霜林半拱宿草塡塋神道雖疏展如在之敬周環企望述遠涉之心冀福利於幽靈報慈顏之厚德矣
한편 혜지(慧智)선사께서는 뜻을 오로지 율의에 두고 마음을 선정(禪定)의 물결로 맑게 하여 주야로 6시(時)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사부대중을 인도하면서 피로를 잊으셨으니 어지러운 곳에 처해도 시끄럽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 있으면서 더욱 고요한 분이라 말할 수 있다. 도속들이 모두 마음을 맡겨도 극진하게 친한 것은 아니었다.
033_0713_a_15L禪師則專意律儀澄心定瀲晝夜勤六時而不倦旦夕引四輩而忘疲謂處亂非諠鬧而逾靜道俗咸委曲親也
60여 년 동안 『법화경』44)을 매일 한 차례 두루 외웠으니 헤아려보면 2만여 번을 두루 외운 셈이 된다. 비록 수(隋)나라 말년에 나라 안이 폐허가 되어 운명의 물결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지만 그러나 이 기약한 마음에는 한 번도 그것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육근청정(六根淸淨)45)과 사대평화(四大平和)의 경지를 얻어 60년 동안 조금도 다른 병이 없었다.
033_0713_a_19L誦『法華經』六十餘載每日一計二萬餘遍縱經隋季版蕩逐命波遷然此契心曾無有癈現得六根淸善四大平和六十年中了無他疾
늘 계곡물을 굽어보며 경을 외우면 문득 신령한 날짐승들이 모여들어 앉았으며, 법당 구석에서 전독하면 그것에 감응되어 새벽에 우는 닭들이 모여들어 그것을 들었다.
033_0713_a_22L每俯㵎誦經便有靈禽萃止堂隅轉則感鳴鷄就聽
033_0713_b_01L인연과 정을 잘 알았고 음율에 몸담았으며 더욱이 초서(草書)ㆍ예서(隸書)에 밝았으며 그 창도한 업적은 끝이 없다. 비록 외전(外典)에 마음을 두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타고난 자유자재로운 재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가 지은 육도송(六度頌)과 발원문(發願文)은 나란히 토굴사(土窟寺)의 등대에 쓰여 있다.
033_0713_b_01L善緣情體音律精草隸唱導無盡雖不存心外典天縱其然所造六度頌及發願文竝書於土窟寺燈臺矣
이어 선사께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깨끗하고 청정하게 법화경을 베껴 쓰니 극히 명수(名手)의 솜씨를 다하여 그 최상의 보시를 다하였다. 향기를 머금고 기운을 토해내어 몸을 깨끗이 하면 홀연히 경 위에 사리가 감응되었다. 그리하여 경이 이룩되자 곧 금자로 서첩을 만들어 은고리와 함께 합채(合彩)하여 보배함에 담으니, 옥축(玉軸)과 더불어 함께 빛이 났다. 황제가 태산에 행차하자 자세한 사정을 알고 내전에 들어가 공양하기를 청하였다.
033_0713_b_04L乃虔心潔淨寫『法華經』極銓名手盡其上施含香吐氣淸淨洗浴忽於經上爰感舍利經成乃怗以金字共銀鉤而合彩盛之寶函玉軸而交映駕幸太山天皇知委請將入內供養
이 두 스승께서는 곧 선대의 성인이신 낭(朗)선사의 뒤로 그 발자욱을 이어온 분들이다. 낭선사는 이진(二秦)시대에 현생하시어 오부대중에게 명성을 드높이신 분이며 분신(分身)으로 공양을 받았다. 몸이 공양하는 사람의 문에 이르러 일에 따라 기회를 이끌었으니, 일은 기회와 마음의 바라는 바에 맞았다. 오직 교화만을 위하여 물외(物外)에 초연한 까닭에 까닭에 신통(神通)이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 그 분의 신비한 공덕은 생각하기 어려웠으며 자세한 것은 따로 전기에 실려 있는 것과 같다.
033_0713_b_09L斯二師者卽是繼踵先聖朗禪師之後也朗禪師乃現生二秦之時揚聲五衆之表分身受供身流供者之門隨事導機事愜機情之願但爲化超物外故以神通而命寺焉神德難思廣如別傳所載
이때에 즈음하여 군왕은 머리를 조아리고 관료와 서민들은 마음을 경건히 하였다. 처음 절을 짓고자 할 때 처음으로 산에 들어가니 북쪽 시냇물에서 호랑이가 절규하는 것을 보았고 산에서 나오려 하자 다시 남쪽 골짜기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우물은 아무리 퍼도 줄지 않았고 천연의 창고에는 쌀을 퍼내도 뒤따라 평평해졌다. 이러한 신비한 자취는 비록 오래되어 인멸(湮滅)되기는 하였으나 그 여풍은 아직도 다하지 않았다.
033_0713_b_15L當是時也君王稽首僚庶虔心初欲造寺創入則見虎叫北川將出復聞馬鳴南谷天井汲水而不減天倉去米而隨平雖神迹久湮而餘風未殄
그 후 친교사와 궤범사의 두 분 스승과 그밖에 주지하는 대덕ㆍ명덕 선사들은 모두가 훌륭하게 율법의 뜻을 잘 익혔고 경전의 마음을 오묘하게 체득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스님들이었다. 손가락을 불사르고 살갗을 태우는 일은 일찍이 이곳 가르침에서는 없었다. 문도들을 훈계하는 스승은 이런 행위를 제지하여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는 모두 내가 친히 들은 일로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 아니다.
033_0713_b_19L及親敎二師幷餘住持大德明德禪師等竝可謂善閑律妙體經心燒指焚肌曾無此敎徒訓匠制不許爲竝是親承固非傳說
033_0713_c_01L또한 자상하게 지난날의 명철하신 분들을 보고 옆에서 전대의 규칙을 들어보니 백마사(白馬寺)46)말고삐를 멈춘 처음부터 청상(靑象)에 안장을 건 뒤로 마등(摩騰)47)ㆍ법란(法蘭)48)이 빛남을 열어 신주(神州)의 해와 달이 되어 승회(僧會)ㆍ법현(法顯)49) 스님은 법칙을 드리워서 천부(天府)의 진량(津梁)50)이 되었으며, 도안(道安)51)과 혜원(慧遠)52) 스님은 양자강의 남쪽에 범처럼 버티고 있었으며 혜휴(慧休)와 법려(法勵)53) 스님은 황하의 북쪽에 명성을 드날려 법도들이 뒤를 이어 지혜의 물결이 아직도 맑고 속사(俗士)들이 칭찬하여 방진(芳塵)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손가락을 불사르게 시켰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고 또한 몸을 태우게 한 일은 보지 못하였다. 규칙의 거울이 눈 앞에 있으니, 지혜 있는 사람은 모두 소상하게 알 것이다.
033_0713_b_23L又復詳觀往哲側聽前規自白馬停轡之初靑象挂鞍之後騰蘭啓曜作神州之日月會顯垂則爲天府之津安遠則虎踞於江漢之南休勵乃鷹揚於河濟之北法徒紹繼慧瀲猶俗士讚稱芳塵靡歇曾未聞遣行燒指亦不見令使焚身規鏡目前者詳悉
또한 선사께서는 늘 한가한 밤에는 어린 나를 가련히 여기시어 간곡히 진유(進誘)의 말씀을 하셨으며, 혹 노란 나뭇잎을 금이라고 하며 달래주시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근심을 덜어주셨다. 혹 비유의 말로 까마귀의 효도하는 이야기를 하여서 보양하는 덕을 품게 되기를 바라며, “너는 힘써 삼보를 계승하고 융성시켜 끊어지지 않게 하여야 하며, 마음을 백가(百家)에 방종케 하여 헛되게 일생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033_0713_c_08L又禪師每於閑夜見悲齠丱曲申進誘或調言於黃葉令蠲憶母之憂或喩說於烏禽希懷報養之德汝可務紹隆三寶令使不絕莫縱心於百氏而虛棄一生
이윽고 내 나이가 열 살이 되었으나 다만 그 말씀만 받아들였을 뿐 아직 그 깊은 뜻을 익히지는 못하여 오경(五更)이 될 때마다 선실에 나아가 진실로 청하였다. 이때 선사께서는 반드시 자비로우신 손으로 약한 어깨를 쓰다듬어 주셨으며 실로 자애한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기르는 것과 같았다. 혹 맛있는 반찬을 먹게 되면 흔히 맛보기를 그만두시고 남겨 주셨으며 오직 취하고 구하는 것이 있기만 하면 청하는 것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033_0713_c_12L旣而童年十歲領其言而未閑深旨每至五更就室參請禪師必將慈手賜撫弱肩實如慈母之育赤子或飡甘膳多輟味見但有取求無違所請
선우(善遇)법사는 그 은혜가 엄한 아버지의 격려를 받는 것과 같았으며, 혜지선사는 그 자애하심이 어머니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과 같았으니, 천성의 후덕함이 참으로 여기에 더할 것이 없었다.
033_0713_c_16L法師乃恩勵父嚴禪師則慈申母愛天性之重誠無以加
그리하여 구족계에 나아갈 나이가 되자 도리어 선사를 화상(和尙)54)스님으로 삼게 되었고 계를 받고 나서는 홀연히 맑은 밤 행도하는 때에 향을 사르며 눈물을 떨구면서 가르침의 말씀을 하셨다.
“큰 성인께서는 오래전에 이미 열반에 드셔서 법과 가르침이 와전되고 바꾸어져서 사람들은 받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만 많고 지니고 지키는 사람은 적다. 너는 오직 굳은 마음으로 금계를 존중하고 초편(初篇)의 죄를 범하지 말아라. 그 나머지 죄와 허물이 있는 것은 설령 그것을 범하였다고 하더라도 내가 곧 너를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 벌을 받겠다. 손가락을 불태우고 몸을 불사르는 일은 하여서는 안 된다.”
033_0713_c_18L及至年滿進具還以禪師爲和上旣受戒已忽於淸夜行道之際燒香垂涕而申誨曰大聖久已涅槃法敎訛替人多樂受少有持者汝但堅心重禁莫犯初篇餘有罪愆設令犯者吾當代汝入地獄受之燒指燒身不應爲也
033_0714_a_01L나아가 뜻을 받들던 날 다행히 자비를 입어 성계(聖戒)를 내려주셨기에 힘에 따라 뜻을 다하여 감히 허물고 어기는 것이 있게 되면 비록 작은 죄라 할지라도 큰 두려움을 가슴에 품게 되는 것이 있었다. 이에 5년 동안을 율전을 정밀하게 탐구하고 율사들의 글과 해설을 갈고 닦아 제법 깊은 뜻을 논의하게 되었다. 선율사(宣律師)의 초술(鈔述)은 남몰래 중도(中道)의 뜻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범(持犯 : 계율을 지키는 것과 파괴하는 것)의 한계를 알게 되니 스님은 곧 한 차례 두루 강론을 하게 하시고 비로소 대경(大經)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033_0714_a_01L進奉旨日幸蒙慈悲賜以聖戒隨力竭志敢有虧違雖於小罪有懷大懼於是五稔之閒精求律典礪律師之文疏頗議幽深宣律師之鈔述竊談中旨旣識持犯師乃令講一遍方聽大經
그 후 걸식으로 하루 한 끼의 밥만 먹으면서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면서 비록 산사(山寺)가 마을에서 멀었지만 한 번도 수행을 그만둔 일은 없었다. 늘 대사(大師)의 자훈(慈訓)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디서 나오는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로소 보살의 은혜는 고통받는 부류를 구제하려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큰 불더미 속에 몸을 던졌고 장자(長者)는 불쌍한 아들을 슬퍼하여 좁고 막힌 작은 문을 엿보았다는 것이 본래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험하게 되었다.
033_0714_a_06L乞食一飡長坐不臥雖山寺村遙亦未曾有廢每想大師慈訓不覺流淚何從方驗菩薩之恩濟苦類投炎熾之大火長者之悲念窮子窺迮隘之小門固非是謬
늘 친히 발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멀리 길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밑에는 또 나의 시중을 들 사람이 있으니 공부를 폐하면서까지 공연히 이곳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알려 주셨다. 이에 곧 석장을 짚고 동위(東魏)땅으로 가서 자못 대법(對法)55)과 『섭론(攝論)』에 마음을 전념하고 다시 책 보따리를 등에 업고 서경(西京)으로 가서 비로소 『구사론(俱舍論)』56)과 『유식론(唯識論)』을 읽고 생각하였다.
033_0714_a_10L每親承足下不行遠聽便賜告曰我目下且有餘人給侍勿廢聽讀而空住於此乃扙錫東魏頗沈心於『對法』『攝論』笈西京方閱想於『俱舍』『唯識』
수도에서 돌아오던 날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와 친히 큰스님에게 요청하였다.
“존자께서는 이미 연로(年老)하신데도 제 마음은 먼 곳을 유행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 듣지 못한 것을 추람(追覽)하고 큰 이익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마는 아직 감히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033_0714_a_14L來日從京重歸故里親請大師曰尊旣年老情希遠遊追覽未聞冀有弘益未敢自決
스승께서는 곧 가르침을 남기시어 말씀하셨다.
“너는 큰 인연을 위하여야 한다. 때는 두 번 오는 것이 아니다. 의리에 가로막혀서 어찌 사사로운 그리움을 품어서야 되겠는가? 내가 혹 세상에 남아 있게 된다면 너의 전등을 보게 될 것이다. 곧 가는 것이 좋겠구나. 남아서 뒤를 돌보는 것을 일삼지 말아라. 성인의 발자취를 보고 예배드린다면 나도 진정 따라 기쁘겠구나. 불법을 계승하고 융성시키는 일은 중한 일이니, 너는 틈이 생기게 하여서는 안 된다.”
033_0714_a_17L師乃流誨曰爾爲大緣時不可激於義理豈懷私戀吾脫存也見爾傳燈宜卽可行勿事留顧觀禮聖蹤我實隨喜紹隆事重爾無閒然
033_0714_b_01L자비하신 허락을 받고 나니 윗분의 명을 어기기 어려워서 마침내 함형(咸亨) 2년(671) 11월에 배를 타고 광주(廣州)로 가서 남해에 돛대를 올려 인연이 있는 여러 나라를 지나 서쪽 나라에서 석장(錫杖)을 흔들면서 함형 4년 2월 8일에 이르러 비로소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에 도달하였는데 이곳은 동인도의 바다의 입구였다. 그곳에 머물다가 5월에 이르러서야 도반을 따라 서쪽으로 가서 나란타사(那爛陀寺)와 금강좌(金剛座)에 이르렀고 마침내 두루 성인의 발자취를 순례하고는 불서국(佛誓國)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선지식이라야 범행(梵行)57)이 완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진실된 가르침이 어찌 어긋나는 말씀이겠는가?
033_0714_a_20L奉慈聽難違上命遂以咸亨二年十一月附舶廣州擧帆南海緣歷諸國振錫西天至咸亨四年二月八日方達耽摩立底國卽東印度之海口也停至五月逐伴西征至那爛陁及金剛座遂乃周禮聖蹤旋之佛誓耳
대사께서는 중생에 응하시어 우뚝 뛰어나게 태어나시어 한 시대의 모범이 되셨고 친히 스스로 손잡고 권장하시어서 성인(成人)에 이르게 하셨으니 이는 마치 바다에서 뗏목만을 의지해가다가 좋은 시력을 가진 안내자를 만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곧 인생의 나루터에서 다행스럽게 두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다.
033_0714_b_03L謂大善知識能全梵行調御誠敎豈爽歟大師乃應物挺生爲代摸範親自提獎以至成人若海査之遇將一目卽生津之幸會二師也
무릇 이것으로 볼 때 작은 선(善) 작은 혜택을 입은 일조차도 그 아름다움을 거문고와 노래로 전파하는 것인데 하물며 큰 지혜와 큰 은혜를 입고도 글로 전하여 찬양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033_0714_b_07L夫以小善小惠尚播美於絃歌況大智大恩而不傳於文讚云爾

아름답도다. 부모님이시여.
광겁(曠劫)의 예전부터 서로 지켜서
여기 나 이갈이 하는 어릴 때
손잡고 데려가 밝은 스승께 나아가게 하셨네.
033_0714_b_09L令哉父母
曠劫相持
粤我齠齔
攜就明師

동자 나이 아직 어려서
사랑을 버리니 슬픔이 솟아났으나
배우고 때로 익혀
공덕을 잠규(箴規)에 의지하였네.
033_0714_b_11L童年尚小
輟愛抽悲
學而時習
扙德箴規

운명을 해와 달에 벗하니
그 덕 천지에 비유되고
나의 지혜의 칼날 갈아주시고
나의 법의 살갗 자라나게 하셨네.
033_0714_b_12L儔明兩曜
比德雙儀
礪我慧鍔
長我法肌

손잡고 길러 주시며
친히 타이르시며 피로 잊으셨고
한밤중에도 잠자기 그만두시고
해 저물어도 굶주림 멈추셨다네.
033_0714_b_13L提攜鞠育
親誨忘疲
中宵廢寢
日旰停飢

상덕(上德)은 덕이 아니오라
멀어서 알지 못하고
광채를 높은 산마루에 묻어서
덕을 끝까지 가장자리에 감추셨네.
033_0714_b_15L上德不德
遠而莫知
埋光岱嶺
蘊德齊涯

양양(洋洋)하도다. 지혜의 바다.
울울하도다. 선(禪)의 가지여.
그 문장 찬란하게 빛나고
그 선(禪)의 광채(光彩) 밝고 밝도다.
033_0714_b_16L洋洋慧海
鬱鬱禪枝
文藻粲粲
定彩曦曦

갈아도 번쩍거리지 아니하고
누렇거나 검어지지 아니하였고
좌천(坐遷)으로 남다름을 보이셨고
닭이 법문 듣는 일로 기이함을 나타내셨네.
033_0714_b_17L磨而不磷
涅而不緇
坐遷表異
雞聽彰奇

어린 나이라
하나는 남아 있고 하나는 버렸지만
가지고 있는 복업은
모두 훈자(熏資)에 써서
은혜를 사별(死別)한 뒤에 갚고
덕은 살아서 헤어질 때 보답하오리.
033_0714_b_19L年在弱歲
一留一遺
所有福業
竝用熏資
酬恩死別
報德生離

원하옵건대 있는 곳마다 만나서 경사를 늘려 나가고
대대로 훈계를 받들어 교체 이루어
같은 산에 의리를 쌓고
못물처럼 청정한 선정(禪定)에 맡겨
033_0714_b_21L願在在遭會而延慶
代代奉訓以成褫
積義利乎同嶽
委淨定也如池
033_0714_c_01L
용화수(龍華樹)의 첫 모임을 바라며
미륵불의 현오한 물결 법문을 듣고
사생(四生)에 두루 생각을 돌려
삼대의 긴긴 아승기(阿僧祇) 세월을 채우소서.
033_0714_b_23L冀龍花之初會
聽慈氏之玄漪
遍四生而運想
滿三大之長祇

혹 듣는 사람들이 허망한 것에 근거한 말이라 생각할까 두려워 잠시 법사께서 지은 시를 해설하겠다.
033_0714_c_02L恐聞者以爲憑虛聊疏法師之所製
대사께서는 일찍이 2월 15일에 스님과 속인이 함께 남산의 낭(朗)스님의 성적(聖迹)이 있는 곳을 찾아가 천창(天倉)ㆍ천정(天井)의 이적(異蹟)을 보시고 영감(靈龕)ㆍ영묘(靈廟)의 기적에 예배드렸는데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크게 공양을 일으켰다. 이때 제왕(齊王) 이하 문학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 자리에 모였으며 모두가 필해(筆海)를 가슴에 품고 나란히 문봉(文峯)을 마음대로 좌우하는 사람들로 각기 재능을 다투고 함께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하여 낭스님의 묘상(廟像)을 시로써 읊고자 하여 함께 법사를 추대하여 먼저 짓게 하였다.
033_0714_c_03L大師曾因二月十五日法俗咸詣南山朗公聖迹之所觀天倉天井之異禮靈龕靈廟之奇不遠千里盛興供于時齊王下文學悉萃於此俱懷筆海竝擅文峯各競囊錐咸矜匱玉欲詠朗公之廟像共推法師以爲先
법사께서는 곧 사양하지 않으시고 그 소임을 맡았다. 이에 강물과 못물이 먼저 넘쳐서 문한을 벽에 베껴 쓰는데 조금도 붓 끝을 멈추는 일이 없어 달리듯 써내려 가서 한 편의 시를 이루고 조금도 가점(加點)하는 일이 없었다. 그 시에서 말하였다.
033_0714_c_10L師乃不讓當仁江池先溢援翰寫壁曾不停毫走筆成篇了無加點詩曰

상대의 성인 빼어나게 빛나
그 영유(英猷) 깊은 바다에 펼쳤네.
빈 골짜기에 스스로 깃들어
영예로운 명(命) 헛되게 기다리게 하였네.
033_0714_c_11L上聖光茂烈
英猷暢溟海
空谷自棲
榮命虛相待

만고에 산천은 텅 비어 있으나
천 년을 흘러 사람의 시대는 바뀌었네.
진실로 무생(無生)을 환하게 안다면
다만 단청만 남아 있음을 보는구나.
033_0714_c_13L萬古山川曠
千年人代改
眞識了無生
徒見丹靑在

이에 여러 문사들은 법사가 지은 시를 보고 나서 모두가 속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혹 소나무 가지에 붓을 걸어놓기도 하고 혹 암곡(岩谷)에 벼루를 던지기도 하면서 말하였다.
“서시(西施)가 모습을 나타내니 모모(嫫母:醜女)가 어떻게 얼굴을 드러내겠는가?”
그리하여 재주 있는 선비가 숲의 나무처럼 많았지만 마침내 한 사람의 화운(和韻)하는 사람도 없었다.
033_0714_c_14L諸文士旣睹法師之製俱懷內恧之心閣筆於松枝或投硯於巖曲僉曰西施顯貌嫫母何顏才子如林竟無一和耳
이 밖의 문장은 모두 별집과 같다.
所餘文章具如別集
의정(義淨)은 공경하게 대주(大周)의 모든 대덕스님들께 아뢰나이다. 이 가운데는 혹 일찍이 빈자리에서 법문을 듣고 받은 사람도 있고, 혹 법문의 뜻을 묻고 논의한 사람도 있고, 혹 약관의 나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도 있고, 혹 중년에 와서 회포를 통한 사람도 있으나 모두 큰 사람에게는 경례(敬禮)하고 작은 사람에게는 “천만(千萬)에”라고 하면서 나열한 40조의 글은 가늠이 될 일을 요약해서 논한 것이오.
033_0714_c_18L義淨敬白大周諸大德或曾聽受虛或諮論法義或相知弱冠或通懷中年咸悉大者和南小者千萬所列四十條論要略事
033_0715_a_01L무릇 여기에 기록된 것은 모두가 서방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현행되고 있고 성인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이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오. 무릇 목숨이란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아서 아침에 저녁 일을 꾀할 수 없으니 혹 얼굴을 마주 보며 말하기가 어려울까 두려워 이렇게 먼저 베풀게 된 것이니, 여가가 있을 때 찾아오셔서 원대한 의견을 밝혀 주시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소. 이는 살바다(薩婆多:설일체유부)에 근거한 것이며 다른 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오.
033_0714_c_22L凡此所錄竝是西方師資現行著在聖言非是私意命等逝川朝不謀夕恐難面敍致此先陳有暇時尋幸昭遠意斯依薩婆非餘部矣
거듭 말씀하겠소.
033_0715_a_03L重曰

공경하게 영칙(令則)을 말함은
큰 계획을 되살리려 함이네.
모두 성인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니
어찌 정으로 구한 것이라 하겠는가?

얼굴 보며 뵙기 어려울까 두려워
이렇게 먼저 갚아 보내오리다.
원컨대 수레바퀴 자락에 묶어두어
버리지 아니하고

보잘것없는 이 사람 거두어 주신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백 대 뒤에 발자취 뒤따라
천추에 아름다움을 전파하리라.

진실로 바라노니 영취산이 소실봉(小室峯)과
가지런하게 되고
왕사성(王舍城)이 신주와
나란히 있게 되소서.
033_0715_a_04L敬陳令則恢乎大猷咸依聖敎豈曰情求恐難面謁寄此先酬幸願擊轅不棄芻蕘見收追蹤百代播美千秋實望齊鷲峯於少室竝王舍於神州
南海寄歸內法傳卷第四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 Aśvaghoṣa라 음역한다. 중인도 마갈타국 사람으로 불멸 후 6백년 경에 출세한 대승의 논사(論師)이다. 본래 외도의 집에서 태어나 논의를 잘하며 불법을 헐뜯었다. 협존자(脇尊者)가 북쪽에서 와서 토론을 하여 설복하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부터 마갈타국을 중심으로 중인도에서 전도하였다. 그 당시 가니색가왕이 중인도를 정복했는데 배상금 대신 마명을 데리고 북인도로 돌아갔다. 마명은 북쪽의 월지국에 들어가 임금의 보호를 받고 대승불교를 전하였으므로 옛적부터 그를 대승불교의 시조라 한다. 저서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권,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5권 등이 있다.
  2. 2)신시(申時). 곧,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의 사이를 말한다.
  3. 3)비구의 이름으로 모아(母兒)라 번역한다. 중인도 사람으로 다라나타의 인도불교사에 의하면 Canaragupta왕의 아들로 부모를 존중하고 마골 또는 바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처음에 자재천(自在天)을 섬기다 꿈속에서 성다라모(聖多羅母)를 보고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4. 4)범어로 Asaṅga이다. 불멸 후 1천년 경의 사람으로 북인도 부루사부라성의 바라문 출신이다. 처음 소승화지부(小乘化地部)에 들어가 출가하였다. 뒤에 중인도 아유차국의 강당에서 네 달 동안 밤마다 미륵보살의 설법을 듣는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등 5부의 대론(大論)은 이때에 미륵보살이 설한 것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무착은 아유차ㆍ교상미에서 법상대승(法相大乘)의 교리를 선양하고 또 여러 가지 많은 논소를 지어 여러 대승경을 해석하였다. 75세에 왕사성에서 죽었다.
  5. 5)범어로 Vasubandhu이다. 북인도 건타라국 부루사부라성 사람으로 4~5세기 경의 학승이다. 무착의 동생이자 사자각의 형이다. 처음에 형과 함께 소승의 설일체유부에 출가하여 많은 저술을 통해 대승을 비방하다가 마침내 무착의 권유에 의해 대승에 들어가 아유차에서 그 선전에 노력하였다. 아유차 국왕 초일(超日)ㆍ신일(新日)은 차례로 이를 회호하여 크게 교세를 확장하게 된다. 80세를 일기로 아유차국에서 죽었다.
  6. 6)범어로 Diṅnāga라 음역한다. 남인도 사람으로 『인명론(因明論)』을 대성하였다.
  7. 7)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를 말한다. ①문혜:보고 듣고서 얻는 지혜. ②사혜:고찰하여 얻는 지혜. ③수혜:고찰을 마치고 입정(入定)한 뒤에 수득(修得)하는 지혜.
  8. 8)팔지어(八支語). 부처님의 여덟 종류의 말씀으로 ①상수어(上首語:열반에 나아가는 것) ②미묘어(微妙語) ③현료어(顯了語) ④이해어(易解語) ⑤요문어(樂聞語:미묘하고 분명하므로 중생들이 듣기를 바라는 것) ⑥ 무의어(無依語:애착하는 일이 없고, 구하는 바가 없는 것) ⑦불역어(不逆語) ⑧무변어(無邊語)를 말한다.
  9. 9)범어로 Catvāri-āryasatyāni이며 사성제라고도 한다.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네 가지이다. 제는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상(眞相)이라는 뜻이다. ①고제(苦諦):현실의 인생은 고(苦)라고 보는 것. ②집제(集諦):고(苦)의 근거이유.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을 말한다. 위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 ③멸제(滅諦):깨달을 목표. 곧 열반. ④도제(道諦):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 위의 2제는 오(悟)의 인과.
  10. 10)중인도 갈야국사국(羯若鞠闍國)의 임금으로 불교를 보호하고 문학을 장려, 현장(玄奘)을 우대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계일왕 제1세는 550년경 사람, 다음 광증왕(光增王)은 580년경에 재위, 다음 그의 아들 왕증왕(王增王)이 즉위하였으나, 동인도 금이국(金耳國)의 설상가왕(設賞迦王)에게 피살되었으므로 그 아우 가증왕(嘉增王)을 계일왕 제2세라 한다. 왕은 겨우 6년 동안에 전 인도를 정복할 만한 무력을 장악하였고 신심이 있는 불교도로서 5년마다 무차대회를 거행하니 바라문도 존경하였다. 그는 또 문학을 장려하여 손수 불교 희곡 Nāgānanda를 짓고, 또 Ratnāvalī의 저작이 있었다고 한다. 이가 곧 계일왕이다. 계일이라고 이름한 왕이 인도에 몇 사람 있었으나, 그중 6백년 경에 임금이 되었던 마랍파국(摩臘婆國)의 계일왕은 가장 유명하였다.
  11. 11)수대나(須大拏)ㆍ수달나(須達拏)ㆍ수제리나(須提梨拏)ㆍ소타사나(蘇陀沙拏)라고도 한다. 번역하여 선아(善牙)ㆍ선시(善施)ㆍ호애(好愛)라고 한다. 석존 전세의 섭파국 태자 때 이름이다.
  12. 12)원만한 적정(寂靜). 번뇌 잡염의 세계를 벋어나 청정한 열반계에 돌아가는 것을 이른다.
  13. 13)세속체(世俗體)의 반대말로 진제(眞諦)ㆍ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한다. 승의라 함은 수승한 지혜의 대경, 체는 진리라고 하니,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함인데, 진실한 것, 허망치 않은 것, 그대로의 진상 등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하나, 여기서는 성교(聖敎)가 나타내려 하며, 또는 증오의 실체인 진리를 말한다.
  14. 14)범어로 Maheśvara 또는 마혜수라(摩醯首羅), 마혜습벌라(摩醯濕伐羅)라고 한다. 눈은 셋, 팔은 여덟으로 흰 소를 타고, 흰 불자(拂子)를 든 큰 위덕을 가진 신의 이름이다. 외도들은 이 신을 세계의 본체라 하며, 또는 창조의 신이라 하여 이 신이 기뻐하면 중생이 편안하고, 성내면 중생이 괴로우며, 온갖 물건이 죽어 없어지면 모두 이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신을 비차사(毘遮舍)라 부르기도 하고 초선천(初禪天)의 임금이라 하며, 혹은 이사나(伊舍那)라 하여 제6천주(天主)라고도 한다.
  15. 15)삼라만상은 심식 밖에 실존(實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심식뿐이라는 것이다.
  16. 16)아공(我空)과 법공(法空). 아공이란 것은 중생은 5온(蘊)이 화합한 것이므로 아(我)라고 할 실체가 없다는 것이며, 법공이란 것은 5온의 자성(自性)도 공(空)하다는 것이다.
  17. 17)불교를 처음으로 중국에 전한 마등(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을 말한다.
  18. 18)499~569년. 인도 스님으로 양무제가 고승과 대승 경전을 구하자 이에 응하여 546년 중국 땅에 들어갔다. 중국 섭론종(攝論宗)의 개조로 중국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명(馬鳴)의 대승기신론 1권을 비롯 경ㆍ논ㆍ기문ㆍ전기 등 64부 278권을 번역했다.
  19. 19)343~413년. 인도 스님. 왕족 출신으로 7세에 출가, 어머니를 따라 각처를 돌아다녔다. 반두달라에게 소승교를, 수리야소마에게 대승교를 배웠다. 383년 전진의 왕 부견의 초청으로 중국에 들어와 『성실론(成實論)』ㆍ『십송률(十誦律)』ㆍ『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ㆍ『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ㆍ『아미타경(阿彌陀經)』등 74부 380권을 번역하면서, 다방면에 힘썼으나 그 중에서도 삼론(三論) 중관(中觀)의 불교를 선전하였으므로 그를 삼론종의 조사로 한다.
  20. 20)중국 당나라 때 스님이다. 12세에 낙양 정토사에서 중이 되고, 혜경(慧景)ㆍ도기(道基)ㆍ보천(寶遷)ㆍ법상(法常)ㆍ승변(僧辨)ㆍ도심(道心) 등에게서 『열반경』ㆍ『섭론』ㆍ『발지론』ㆍ『비담론』ㆍ『구사론』ㆍ『성실론』 등을 배웠다. 그러나 이들의 말이 서로 모순되므로 서역의 스님에게 직접 물어 그 의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629년 29세에 인도로 가서 여러 고승 대덕들을 찾아 불교와 아울러 학문 예술을 연구하고 645년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가 17년 동안 보고 들은 나라가 130여 국이다. 그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 12권은 역사가들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21. 21)정(定)은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고, 혜(慧)는 현상인 사(事)와 본체인 이(理)를 관조하는 것이다.
  22. 22)범어로 Sapta-sambodhyaṅgāni로 음역.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도행에는 37종이 있는데 그 중의 제6번째이다. 칠보리분(七菩提分)ㆍ칠각지(七覺支)ㆍ칠각의(七覺意)ㆍ칠각(七覺)이라고도 한다. 불도를 수행하는데 지혜로서 참되고 거짓되고 선하고 악한 것을 살펴서 골라내고 알아차리는데는 7종이 있다. ①택법각분(擇法覺分):지혜로 모든 법을 살펴 선한 것을 골라냄. ②정진각분(精進覺分):쓸데없는 고행은 그만두고 바른 도에 전력하는 것. ③희각분(喜覺分):참된 법을 얻어 기뻐하는 것. ④제각분(除覺分):그릇된 견해나 번뇌를 끊어버릴 때 참, 거짓을 알 수 있어 선근을 기르는 것. ⑤사각분(捨覺分):바깥경계에 집착하던 마음을 여읠 적에 거짓되고 참되지 못한 것을 추억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 ⑥정각분(定覺分):정이 들어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음. ⑦염각분(念覺分):불도를 수행함에 있어 잘 생각하여 정(定)ㆍ혜(慧)가 고르게 하는 것. 만일 마음이 혼침하면 택법각분ㆍ정진각분ㆍ희각분으로 마음을 일깨우고 마음이 들떠서 흔들리면 제각분ㆍ사각분ㆍ정각분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23. 23)인도 스님으로 6세기 중엽에 활동하였다. 나란타사 호법(護法)의 제자로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해석하였다.
  24. 24)밀교의 총칭으로 진언종(眞言宗)이라고도 한다. 716년 선무외(善無畏) 삼장이 『밀종론』을 번역하면서부터 중국의 진언종이 비롯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의 혜통(惠通)이 당나라에 가서 선무외 삼장에게서 인결(印訣)을 얻어가지고 664년에 돌아온 것이 진언종의 처음이다.
  25. 25)범어로 Abhidharma이다. 불교의 경전을 경ㆍ율ㆍ논으로 나눈 가운데 논부의 총칭이다. 곧 부처님의 설법을 경, 경을 조직적으로 설명한 것을 논이라고 한다.
  26. 26)6족론(足論)을 이르는 말. 소승유부종(小乘有部宗)에서 근본소의의 논장으로 삼는 6부의 논으로 『아비달마집이문족론』ㆍ『아비달마법온족론』ㆍ『아비달마시설족론』 ㆍ『아비달마식신족론』ㆍ『아비달마품류족론』ㆍ『아비달마계신족론』이 그것이다. 논마다 족(足)자가 있으므로 6족론이라 하였다.
  27. 27)불문에 처음 귀의할 때 하는 의식으로 불ㆍ법ㆍ승에 귀의함을 말한다.
  28. 28)중인도의 교살라국 사위성의 장자로 자비심이 많아 고독한 이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이렇게 일컬어졌다.
  29. 29)사방(四方)의 어느 곳에서 온 수행승이라도 받아들이는 교단을 말한다.
  30. 30)과거 세상에 자력왕이 10선(善)을 행하여, 귀신은 먹을 것이 없었고, 사람은 모두 계율을 지녔다. 그때 다섯 야차(夜叉)가 왕에게 와서 몸을 보시하여 줄 것을 요청하자, 왕은 야차들에게 몸을 내어 주면서 발원하기를 “만일 내가 성불한다면 너희들에게 법식(法食)을 얻게 하고 먼저 제도하리라” 하였다. 자력왕은 지금의 석가모니불이며 다섯 야차는 다섯 비구라 한다.
  31. 31)네 가지 은혜로 부모ㆍ국왕ㆍ중생ㆍ삼보의 은혜를 가리키기도 하고 부모ㆍ사장(師長)ㆍ국왕ㆍ시주의 은혜를 말하기도 한다.
  32. 32)투란차(偸蘭遮)라고도 하는데 방사죄(方使罪)ㆍ미수죄(未遂罪)를 말한다. 말뜻은 추악한 죄란 뜻으로 6취죄(取罪)의 하나이다. 바라이죄(波羅夷罪)나 승잔죄(僧殘罪)에 이를 수 있는 죄를 말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까이하면서 머리카락으로 머리카락을 서로 닿게 하거나, 손톱으로 손톱을 서로 닿게 하면 투란차를 범한 것이고, 손으로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닿게 하면 승잔죄가 된다. 이것은 중한 죄를 지을 방편으로서, 선근을 끊고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 죄를 말한다.
  33. 33)pārājika의 음역이다. 계율중에서 죄가 가장 중한 것은 교단 추방의 형벌이다. 수행승에게는 네 가지의 바라이가 있다. ①부녀자와 간음을 행하는 것. ②도둑질하는 것. ③사람을 죽이는 것. ④아직 수행을 완성하지 않았는데 ‘나는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망발하고 다니는 것[大妄語]. 수행니(修行尼)는 그 위에 네 가지를 더하여 여덟 가지의 바라이가 있다. 이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범하면 교단에서 추방된다.
  34. 34)온갖 보살에게 공통한 네 가지 서원. 보살은 이 원으로 마음을 요제(要制)하여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 한다. ①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고통세계의 중생들은 그 수가 한이 없다 해도 다 제도하려는 소원. ②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번뇌가 한이 없다 해도 다 끊으려는 소원. ③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법문이 한량없이 많지만 다 배우려는 소원. ④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위 없는 불과(佛果)를 이루려는 소원.
  35. 35)고통 세계의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이 중생을 불도에 이끌어 들이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이다. ①보시섭(布施攝):상대편이 좋아하는 재물이나 법을 보시하여 친절한 정의(情誼)를 감동케 하여 이끌어 들임. ②애어섭(愛語攝):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하여 친해서 이끌어 들임. ③이행섭(利行攝):동작ㆍ언어ㆍ의념(意念)에 선행(善行)으로 중생을 이익케 하여 이끌어 들임. ④동사섭(同事攝):상대편의 근성(根性)을 따라 변신(變身)하여 친하며, 행동을 같이 하여 이끌어 들임.
  36. 36)위(魏)의 종요(鍾繇)와 한(漢)의 장지(張芝)로 모두 글씨가 뛰어났다.
  37. 37)고대 조각(彫刻)의 대가(大家)로 명목수(名木手)였다. 장석운근(匠石運斤)이라고 하여 장석이 도끼를 휘둘러 물건을 만드는데 조금의 착오도 없었다는 데서 기예(技藝)가 오묘한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38. 38)『반야경』은 반야바라밀의 깊은 이치를 설한 경전의 총칭이다. 구역에는 『반야바라밀경』이라 하고 신역에는 『반야바라밀다경』이라고 하였다. 이 경 중에 『인왕반야경』의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현장이 번역 집대성한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 경의 내용은 반야로 관조할 이(理)인 만유는 우리가 실물처럼 보는 것과 같은 존재가 아니고 다 공하여 모양이 없는 것임을 말한다. 8부 『반야경』은 『대품(大品)반야경』ㆍ『소품(小品)반야경』ㆍ『방광(放光)반야경』ㆍ『광찬(光讚)반야경』ㆍ『도행(道行)반야경』ㆍ『금강(金剛)반야경』ㆍ『승천왕(勝天王)반야경』ㆍ『문수문(文殊問)반야경』의 여덟 종류를 말한다.
  39. 39)불교의 기본적 전적의 집성으로 수나라 이후의 호칭이다. 석존 일대의 말씀을 섭장(攝藏)한다는 의미로 일대장경이라 하고, 또 대장경ㆍ장경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석존께서 설하신 경전, 인도의 여러 논사의 논서에서 이룬 것인데, 차제에 후인의 저술을 더해 내용도 분량도 같이 증가했다.
  40. 40)아미타불의 국토, 극락정토를 말한다
  41. 41)권2 주 56) 참고.
  42. 42)황금을 낳는 강으로 석존이 구시나가라(또는 시나가라)에서 입멸하기 전에 건넜던 강을 Hisraṇyavatī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땅을 흐르는 강을 말한다.
  43. 43)부처님이 깨달음을 연 나무로 보리수를 말한다. 미륵보살의 경우는 용화수를 말한다. 즉 깨달음을 여는 것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44. 44)『묘법연화경』의 약칭이다. 이 경은 모든 불교 경전 중 가장 넓은 지역과 많은 민족들에 의해서 수지(受持) 애호된 대승경전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에서 한역된 후 수나라의 천태대사 지의(智顗)에 의해 이 경에 담겨져 있는 깊은 뜻과 사상이 교학적ㆍ사상적으로 조직ㆍ정리됨으로써 천태사상이 발전을 보게 되어 화엄사상과 함께 중국불교학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45. 45)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6근이 대경(對境)을 대하는 집착을 끊고 8백의 안공덕, 1천2백의 이공덕, 8백의 비공덕, 1천2백의 설공덕, 8백의 신공덕, 1천2백의 의공덕을 얻어 6근을 장엄, 청정케 하며, 6근이 서로 다른 근의 작용을 갖추어 걸림없는 묘용(妙用)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46. 46)중국 낙양에 있었던 절이다. 67년(후한 명제 영평 10년)에 가섭마등ㆍ축법란이 불상ㆍ경전을 흰 말에 싣고 낙양에 오자 명제가 크게 신봉하여 낙양성 서옹문 밖에 정사(精舍)를 지어 거주케 하고 백마사라 이름하였다. 이것이 중국 사원의 시초이다. 그 후부터 백마사라는 절이 여러 곳에 세워졌다.
  47. 47)가섭마등(迦葉摩騰)을 말한다. 중인도 사람으로 67년(후한 명제 영평 10년)에 축법란과 함께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불교를 전했다.
  48. 48)축법란(竺法蘭)을 말한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역경이다. 가섭마등이 죽은 뒤에는 특히 역경에 주력하였다. 『소불본행경(所佛本行經)』 등 5부 13권을 번역하였다. 나이 60세로 낙양에서 입적하였다.
  49. 49)중인도 나란타사의 승려로 이름은 법천(法天)이다. 973년 중국에 와서 하동부 개원사(開元寺)의 범학승(梵學僧) 법통(法通)과 함께 『성무량수경칠불찬』을 번역하니, 황제가 궁궐로 청하여 위문하고 자포(紫袍)를 하사하였다. 981년 용흥사에서 『무량수결정광명왕경』 1권을 번역하고 982년 태평흥국사 역경원이 낙성됨에 천식재(天息災) 등과 함께 불리워 전교대사(傳敎大師)의 호를 받았다. 7월에 『길상지세경』 1권을 번역하고, 985년 역경한 공으로 조봉대부 시홍려경(朝奉大夫試鴻臚卿)이 되고 임금의 명으로 법현이라 이름을 고쳤다. 시호는 현각법사(玄覺法師)이고 번역한 경론은 120여부와 170여 권이 있다.
  50. 50)부처가 사람을 제도하는 일을 말한다.
  51. 51)중국의 상산(常山) 부류(扶柳) 사람이다. 유학이 허락되어 불도징(佛圖澄)을 스승으로 섬기고 법제(法濟)ㆍ지담(支曇) 등에게 배웠다. 대법(大法)을 널리 펼치기 위하여 문인들을 양주ㆍ촉ㆍ나부산 등지에 보내고, 또 혜원(慧遠) 등 4백인을 거느리고 양양(襄陽)에서 전도하였다. 진왕(秦王) 부견(符堅)은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군대로 양양을 포위하고 장안으로 초청하여 오중사(五重寺)에서 경전을 번역ㆍ강론케 하였다. 중국 초기의 불교는 주로 인도와 서역에서 온 승려에 의하여 개척되었는데, 도안 때부터 중국인에 의하여 중국 불교가 일어났다. 진(秦)나라 건원 21년, 72세로 입적하였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인수보살(印手菩薩)이라 부른다.
  52. 52)중국 동진 때 승려로 여산 백련사의 개조(開祖)이다. 안문(雁門) 누번(樓煩) 사람으로 특히 노장학에 정통하였고 21세에 향산정 도안(道安)을 찾아가서 수행 정진하였다. 30년 동안 여산에 있으면서 법정(法淨)ㆍ법령(法領) 등을 멀리 서역에 보내어 범본을 구하고 계빈국 승려 승가바제(僧伽婆提)에게 청하여 『십송률(十誦律)』을 완전히 번역하는 등, 불교학계에 크게 공헌하였다. 당나라 선종이 변각대사(辯覺大師)라 시호하고, 송나라 태종은 원오대사(圓悟大師)라 시호하였다.
  53. 53)상부종(相部宗)의 개조(開祖)이다. 나면서부터 이가 났고, 늙을 때까지 갈지 않았다고 한다. 영유(靈裕)에게 출가하였다. 정흥에게 『사분율』을 배웠으며, 나이와 함께 공업이 널리 떨쳐졌다. 항주의 연공(淵公)을 따라 2년 동안 불법의 대의(大義)를 듣고, 강남에 있으면서 『십송률』을 배우고, 업(業)에 돌아와 개도(開導)하였다.
  54. 54)원래 바라문교에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스승을 upā-dhyāya라 불렀던 것을 불교가 받아들인 것이다. 제자를 둘 자격이 있는 자, 제자에게 구족계를 내려주는 스승 등을 말한다.
  55. 55)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며 논(論)이라고도 한다. 대(對)는 대관(對觀)ㆍ대향(對向)의 뜻이다. 법은 열반 혹은 4제(諦)를 가리키며 법에 대한 법의 연구란 뜻이다. 4제의 도리를 대관(對觀)하고 열반에 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56. 56)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의 준말이다. 진제(眞諦)의 번역본은 22권, 현장(玄奘)의 번역본은 30권인데, 대개의 경우 후자를 읽는다. 내용은 계품(界品)ㆍ근품(根品)ㆍ세간품(世間品)ㆍ업품(業品)ㆍ수면품(隨眠品)ㆍ현성품(賢聖品)ㆍ지품(智品)ㆍ정품(定品)ㆍ파계품(破戒品)의 9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의 8품은 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법을 밝히고, 뒤의 1품은 무아(無我)의 도리를 밝히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책은 보수적인 카슈미라 유부(有部)에 대립하는 진보적인 간다라 유부에 속하며, 그 선구로서 법구(法救)의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 등이 지적되고 있다. 논설 중에는 가끔 경량부(經量部)의 설에 따라 유부를 비판하고 있어 세친 자신이 일가견을 이루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나라에 많은 주석서가 있는데, 특히 중국의 보광(寶光)ㆍ법보(法寶)ㆍ원휘(圓暉) 등의 주석이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57. 57)범어로 Brahmacara이다. 범은 청정ㆍ적정의 뜻으로 맑고 깨끗한 행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