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033_0805_b_01L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망울이 거듭 터진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또한 많은 보살마하살 무리가 함께 있었으니 그들의 명호(名號)는 보현(普賢)보살마하살ㆍ보인수(寶印手)보살마하살ㆍ상현(常現)보살마하살ㆍ공덕장엄(功德藏嚴)보살마하살ㆍ복덕음(福德音)보살마하살ㆍ대혜(大慧)보살마하살ㆍ덕엄(德嚴)보살마하살ㆍ금강혜(金剛慧)보살마하살ㆍ금강장(金剛藏)보살마하살ㆍ금강광(金剛光)보살마하살ㆍ금강기장(金剛器仗)보살마하살ㆍ묘금강(妙金剛)보살마하살ㆍ지지(持地)보살마하살ㆍ현일체법(現一切法)보살마하살ㆍ관자재(觀自在)보살마하살ㆍ득대세지(得大勢至)보살마하살ㆍ견뢰혜(堅牢慧)보살마하살ㆍ금강길상(金剛吉祥)보살마하살ㆍ금강수(金剛手)보살마하살ㆍ묘길상(妙吉祥)보살마하살ㆍ멸악취(滅惡趣)보살마하살ㆍ제일체번뇌혜(除一切煩惱慧)보살마하살ㆍ안상보(安詳步)보살마하살ㆍ이취사(離取捨)보살마하살ㆍ전단향(栴檀香)보살마하살ㆍ해혜(海慧)보살마하살ㆍ난승(難勝)보살마하살ㆍ보승(寶勝)보살마하살ㆍ혜행(慧行)보살마하살ㆍ변적(辯積)보살마하살ㆍ묘향(妙香)보살마하살ㆍ자씨(慈氏)보살마하살과 이와 같이 동등한 한량없는 보살마하살들은 모두 불가사의해탈용맹삼마지문(不可思議解脫勇猛三摩地門)에 머물고 있었다.
033_0806_a_01L또한 그들은 불공(不空)의 한량없는 음성(音聲)을 얻었기 때문에 일체의 음성과 제불(諸佛)의 찰토(刹土)가 고요하고 편안함을 관(觀)하였으며 수명(壽命)이 한량없는 대명칭(大名稱)을 얻었다. 삼계에 집착함이 없고 또한 파괴하지도 않으며, 일체지자(一切智者)의 권속이 되어 한량없는 온갖 삼마지(三摩地)와 삼마발저(三摩鉢底)21)를 출생시켜 갖가지 원(願)을 만족하게 하여 모두 다 반야바라밀다에 이르기 때문에 불공(不空)의 신업(身業)ㆍ어업(語業)ㆍ의업(意業)을 얻을 수 있으며, 일체지지(一切智智)와 한량없는 행원(行願)에 머물 수 있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해탈법문(解脫法門)을 훤히 깨달은 이와 같이 여러 대보살(大菩薩)들이 모두 와서 모여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법계는 성품이 없어[無性] 누구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마치 허공과 같아서 온갖 희론(戱論)을 여의었으나 희론을 여읜 것도 아니며, 취(取)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捨]것도 아니며, 성품도 아니고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처소(處所)도 없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법계는 반드시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033_0806_b_01L보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법계는 다시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법계는 본래 분별할 수 없다.”
033_0806_a_23L普賢菩薩言:“世尊!法界復云何分別?”佛言:“善男子!法界本無分別。”
보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법계를 분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범부중생(凡夫衆生)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분별함이 있다는 것[有分別者]은 모든 어리석고 미혹한 중생이 분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분별을 내는 것이다.”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보리는 이와 같이 지극히 깊고 미묘하여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래 네가 말한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리라는 것은 곧 일체법(一切法)이다. 온갖 희론을 여의었으므로 분별함이 없다.”
이때 그 무리 가운데 묘길상동자(妙吉祥童子)가 또한 자리하고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저희들에게 이 보광명총지법문(寶光明總持法門)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저 일체법해변재(一切法海辯才)보살마하살에게 물어 보아라, 그가 너를 위해 말해 줄 것이다.”
그러자 묘길상동자는 여래 앞에서 열 손가락을 합하여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일체지자(一切智者)이시고 일체를 보실 수 있는 분[一切見者]이신데 왜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대보살마하살이 있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
묘길상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고 저희들을 버린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는 유정계(有情界)를 버리지 않는다. 선남자야, 나는 저 보살마하살이 말하는 것이 헤아려 측량하기가 불가사의함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까닭이다.”
033_0806_c_01L그때 묘길상동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대자비가 한량없으시니 저희들을 위해 보광명총지법문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지금 여기 보현보살마하살에게 물어보아라. 반드시 너를 위해 이 법문을 말해 줄 것이다. 선남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보살마하살은 지혜가 한량없다.”
묘길상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비단 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체 여래께서 말씀하신 진여실성(眞如實性)을 잘 기억해 간직해 잊지 않고 금일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야, 그대는 지금 잘 말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아, 너는 마땅히 이 보현보살마하살에게 총지법문(總持法門)을 물어라.”
묘길상동자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보현보살마하살의 앞에서 열 손가락을 합해 합장하여 일심으로 공경하고 보현보살마하살에게 말했다. “불자(佛子)시여,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이자법문(二字法門)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보현보살이 말했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질문한 이자(二字)는 무엇입니까?”
033_0807_a_01L묘길상동자가 보현보살에게 말했다. “불자시여, 각(覺)과 각자(覺者) 두 문자는 어떠한 양상[相]입니까?” 보현보살이 말했다. “불자여, 각(覺)은 본래 모습도 없고[無相]성품도 없고[無性]불가사의하여 이와 동등한 것도 없으며 온갖 희론(戱論)을 여의고 온갖 희론을 여읜 것도 아니며 언어로 논의하여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각성(覺性)은 이와 같습니다.”
묘길상이 말했다. “불자시여, 만약 부처님의 법이 희론이 아니라면 어떻게 부처님의 법을 이와 같이 말씀합니까?” 보현보살이 묘길상에게 말했다. “불자시여, 언설을 여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합니다.” 묘길상이 말했다. “불자시여, 어떻게 언설을 여읩니까?” 보현보살이 말했다. “묘길상이시여, 지혜는 언설을 여읩니다.”
묘길상이 말했다. “불자시여, 인식지혜[智]는 어떻게 압니까?” 보현보살이 말했다. “묘길상이시여, 인식지혜는 성품이 없으며[無性]성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非無性].” 묘길상이 말했다. “불자시여, 어찌하여 인식지혜는 성품이 없으며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삼승법(三乘法)을 말합니까?” 보현보살이 말했다. “묘길상이시여, 법계는 물듦[染]을 떠나 있는데 어떻게 설함[說]이 있겠습니까?”
묘길상이 말했다. “어찌하여 일체법 이것은 또한 성품이 없으며, 어찌하여 여래의 성품은 무루(無漏)라고 말합니까?” “5온(蘊)의 성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묘길상이 말했다. “어떻게 보리(菩提)에 희론이 있습니까?” 보현보살이 말했다. “불자시여, 보리에는 희론도 없고 희론을 여읜 것도 아닙니다. 이 보리에 희론이 있다거나 보리는 희론이 아니라거나 하는 것은 언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033_0807_b_01L묘길상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법은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말할 수 있는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다, 그렇다.” 보현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청정한 법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그때 평등적정바라대사라자(平等寂靜婆羅大娑羅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불가사의한 평등보리는 문자의 양상[文字相]을 떠나고 볼 수도 없으며 온갖 색상(色相)을 여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다, 그렇다. 법계의 성품은 온갖 모습[諸相]을 여의고 그것들을 소멸한다.”
그때 묘길상동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공(空)은 어떤 모습입니까? 소리[聲]나 색(色)이 그 상호(相好)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아, 공(空)은 소리나 색을 여의었고 온갖 언설을 여의었으나 언설을 여읜 것도 아니다. 선남자여, 법성(法性)도 이와 같다. 공(空)이 문자를 여의었기 때문에 공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말[言]을 여의었기 때문에 공이라고 말하니 선남자여, 공(空)이란 일체 법들의 자성(自性)이기 때문이다.”
그때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를 관찰하면 대변현불가사의해탈보살(大變現不可思議解脫菩薩)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아라한의 지혜보다는 초발심보살의 지혜가 훨씬 심원(深遠)한데, 하물며 이 보살에 있어서이겠느냐? 왜냐하면 초발심보살은 장차 성불할 수 있으나 아라한은 끝내 성불할 수 없기 때문이다.”
033_0807_c_01L그때 일체법자재왕(一切法自在王)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제가 다 헤아려 알겠습니다. 이 성문은 성문법(聲聞法)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성문은 성문법을 얻지 못한 것도 아니다. 또한 선남자여, 만약 성문이 보살과 대론(對論)한다면 지혜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칠 바가 못 된다.”
묘길상이 말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어떻게 공부하셨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저는 공부한 바가 없습니다.”
033_0807_c_12L妙吉祥言:“舍利弗!汝應云何學?”舍利弗言:“我無所學。”
묘길상이 말했다. “어떻게 지혜제일을 얻으셨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저는 또한 그 말씀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033_0807_c_14L妙吉祥言:“云何得智慧第一?”舍利弗言:“我亦不任。”
묘길상이 다시 장로 사리불에게 말했다. “당신은 범부도 아니신데 또한 지혜제일도 아니라 하시니 그렇다면 어떤 사람입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선남자여, 저 또한 알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한량없어 마치 큰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 당신을 상대하여 토론하지 않습니다.” 묘길상이 말했다. “장로 사리불이시여,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은 연세도 많으시고 덕을 갖추신 분이신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겸양(謙讓)하십니까?”
033_0808_a_01L사리불이 말했다. “선남자시여, 제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덕도 없고 증득한 바도 없습니다. 또한 선남자시여, 비유하자면 일체의 차별적인 만법(萬法)은 마치 큰 산악과 같아서 금강(金剛)으로 한 번 가격하면 깨뜨려 티끌처럼 부술 수 있습니다. 선남자시여, 당신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한 털구멍에 있는 지혜도 그 분량이 미진수(微塵數)와 같습니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 다 저와 같습니다. 저는 감히 당신에 미치지 못합니다. 선남자시여, 하물며 어찌 저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지금 그 말씀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선남자여, 가령 몸집이 크고 성질이 못된 코끼리가 그 몸이 거대하고 기력이 세다 하더라도 사람이 갈고리[鉤]를 사용하면 능히 조복시킬 수 있는 것처럼 저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선남자시여,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큰 지혜의 힘이 있고 저의 힘은 겁약(怯弱)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시여, 당신들은 큰 용[大龍]과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저의 힘이 인자(仁者)들과 대적이 되겠습니까?”
장로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예컨대 타고난 맹인(盲人)이 다른 지방으로 가려고 도로(道路)를 걷고 있는 동안 결정적으로 저 성읍(城邑)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두루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선남자여, 이 또한 그러하다.” “제가 인자(仁者)들에게 대론(對論)한다는 것은 마치 저 맹인과 같은 것이니 제가 지금 또한 그러합니다. 불도(佛道)는 광대하고 심원하니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여래의 위덕(威德)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잠시만 이근(耳根)을 거쳐도 항상 이 법을 얻게 한다. 사리불아, 하물며 그대는 이미 이 불가사의삼마지(不可思議三摩地)를 얻지 않았는가?”
그때,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실 때, 천상과 인간의 9만 2천 중생이 모두 이 법을 얻었다. 그때 법혜(法慧)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곧 삼매에 들었으니 보살무변상응보광명삼마지(菩薩無邊相應寶光明三摩地)였다. 그때 법혜보살은 곧장 시방의 십천불찰(十千佛刹)의 미진수(微塵數)와 같은 세계에 들어갔다. 낱낱의 방향에는 각각 십천불찰의 미진수와 같은 불세존들이 모두 바로 앞에 나타나셨다.
그때 저 모든 불세존들은 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한 방향에서 그러한 것처럼 시방 모든 곳에서도 그러하였다.” 저 불세존들이 찬탄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법혜야, 그대는 이 보살무변상응삼마지에 들어올 수 있었구나. 또한 선남자여! 그때 낱낱의 방향에는 이렇게 일체 시방의 십천불찰의 미진수와 같은 여래위(如來位)가 계셨는데, 저 이와 같은 일체 여래는 모두 동일한 명호(名號)였으니 모두 세존 비로자나(毗盧遮那)여래셨다. 그분들은 최초의 위덕과 본원력(本願力) 때문에 크고 훌륭한 이로움[大善利]을 얻었고 나아가 대법륜을 굴리셨다.”
부처님의 지혜는 본래 청정하여 널리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중생계(衆生界)를 관찰하고 두루 무애지(無礙智)에 들어가네.
033_0808_b_09L佛智本淸淨, 普周於法界, 及觀衆生界,
徧入無礙智,
동등함이 없는[無等]상응문(相應門)에서 일체의 언어를 잘 이용하여 신속히 일체지(一切智)를 얻어 모든 법을 원만하게 하네.
033_0808_b_11L無等相應門, 善一切言語,
速得一切智, 圓滿於諸法,
3세의 지혜[三世智]가 모두 원만하니 이와 같은 법을 잘 말씀하시네.
033_0808_b_12L三世智皆圓,
善說如是法。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보살의 십주법문(十住法門)을 설하는구나.”
033_0808_b_13L“善男子!汝今以佛威神力故,說此菩薩十住法門。”
그때 저 불세존들께서는 각기 무애지(無礙智)로 법혜보살을 비추시니 다시 이와 같은 삼마지문(三摩地門)을 얻었다. 이른바 무애(無礙)ㆍ무단(無斷)ㆍ불공법(不空法)ㆍ불공지(不空智)ㆍ무루(無漏)ㆍ무제(無際)ㆍ무진(無盡)ㆍ무래(無來)ㆍ무거(無去)ㆍ무변(無邊)ㆍ본성무착(本性無著)이었다. 즉, 이와 같은 종류의 삼마지문을 얻었던 것이다.
033_0808_c_01L그때 저 불세존들께서는 각기 오른손을 펴 법혜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셨다. 저 불세존들께서 보살의 이마를 만지시고 나자 곧 법혜보살은 삼마지(三摩地)로부터 일어나 여러 보살들에게 말했다. “불자들이시여, 보살의 족류(族類)는 광대하고 한량없어 법계와 허공계에 두루합니다. 불자들이시여, 보살마하살은 과거의 여래족(如來族) 가운데서도 태어났었고 현재의 여래족 가운데에도 태어나며 미래의 여래족 가운데서도 태어날 것입니다.”
“불자시여, 보살의 십주법행(十住法行)이란 무엇인가 하면 이른바 첫 번째는 발심주(發心住)이고, 두 번째는 치지주(治地住)이며, 세 번째는 상응주(相應住)이고, 네 번째는 생귀주(生貴住)이며, 다섯 번째는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이고, 여섯 번째는 정심주(正心住)이며, 일곱 번째는 불퇴주(不退住)이고, 여덟 번째는 동진주(童眞住)이며, 아홉 번째는 왕자주(王子住)이고, 열 번째는 관정주(灌頂住)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이것이 보살의 십주법행입니다. 이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3세 불세존들께서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 말씀하고 계시며 앞으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저 보살의 발심주(發心住)란 무엇인가? 이 보살이 모든 불세존들의 색상(色相)이 우뚝하시고 빼어나시며 묘하시고 광대하고 비할 데가 없고, 설법하심이 광대하고 중생을 교화하심이 광대합니다. 이와 같이 광대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또한 광대한 법을 듣기 때문에 일찍이 없었던 것을 얻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고뇌에 차 있는 중생들을 보기 때문에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여래의 일체지(一切智)와 일체상지(一切相智)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초발심주(初發心住)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초발심보살은 마땅히 10주력(住力)을 배우나니 저 초발심보살은 일체시(一切時)에 모든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 올리는 까닭이며, 저 보살은 칭찬(稱讚)에 안주하는 까닭이며 세간에서 최상제일(最上第一)인 세주(世主)가 되는 까닭이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최상의 지혜를 구하는 까닭이며, 적정상응삼마지(寂靜相應三摩地)를 구하기 위한 까닭이며, 윤회를 멀리 여의는 까닭이며, 정법륜(正法輪)을 굴리는 까닭이며, 일체의 고뇌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여 제도하는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법에 대해 마음을 내기[發心]때문입니다. 법을 듣고 받아들여 친근히 하며 온갖 산란함을 떠나 상속하여 끊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초발심주(初發心住)라고 이름합니다.
불자들이시여, 다시 보살의 치지주(治地住)란 무엇인가? 불자들이시여, 이 치지주보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먼저 열 가지 마음[十種心]을 냅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신심(信心)ㆍ염심(念心)ㆍ정진심(精進心)ㆍ혜심(慧心)ㆍ원심(願心)ㆍ계심(戒心)ㆍ호법심(護法心)ㆍ사심(捨心)ㆍ정심(定心)ㆍ회향심(廻向心)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치지주보살은 다시 이와 같은 열 가지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033_0809_b_01L불자들이시여, 이 치지주보살은 항상 다문(多聞)할 것을 생각하고, 상속함이 끊임이 없으며,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받들어 모시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며, 공양을 바치고 받들어 친근히 하고 일체시(一切時)에 능히 깨달아 알아차리는 까닭이며, 겸손하고 공경하는 어투로 말하는 까닭이며, 견고한 무외지(無畏智)를 구하는 까닭이며, 보리지(菩提智)를 내어 나아가는 까닭이며, 뜻으로는 적정용맹지(寂靜勇猛智)를 구하는 까닭이며, 뜻으로는 묘법(妙法)을 구하고 온갖 허망 되고 거짓된 것들을 여의는 까닭으로 마음이 미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성실한 마음을 내어 일체의 불법(佛法)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방소(方所)에 따라 성스러운 법이 있는 곳에 몸소 그곳으로 찾아가 법을 들고 받아들여 친근히 하며 온갖 산란함을 떠나 상속하여 끊임이 없게 하고 아직까지 잠시도 버리지 않습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치지주(治地住)라고 이름합니다.
불자들이시여, 보살의 상응주(相應住)란 무엇인가? 불자들이시여, 이 상응주보살에게는 열 가지 관찰하는 바[十所觀]가 있어 일체법을 구합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일체의 무상법(無上法)을 구하는 까닭이며, 일체의 근심과 괴로움을 떠나는 까닭이며, 법에 자성이 없음을 관찰하는 까닭이며, 공하여 체상(體相)이 없는 까닭이며, 일체법은 항상함이 없는 까닭이며, 일체법은 헤아릴 수 없는 까닭이며, 온갖 의혹을 여읜 까닭이며, 일체법은 고쳐 변화시킬 수 없는 까닭이며,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까닭이며, 취하는 것도 버리는 것도 아닌 까닭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상응주보살은 다시 일체의 중생계가 평등하고 법계가 평등하며 세계가 평등하고 지계(地界)가 평등하며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허공계(虛空界)ㆍ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등의 이와 같은 모든 계(界)가 다 평등하다고 관(觀)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체법의 자성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법[勝法]을 구하기 위하여 시방(十方)을 찾아다니며 모든 부처님 앞에서 친근하고 법을 들어 받아들이고 온갖 산란함을 떠나 염념(念念)이 상속하여 간단(間斷)함이 없게 합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상응주라고 이름합니다.
033_0809_c_01L다시 보살의 생귀주(生貴住)란 무엇인가? 열 가지 원만하고 청정한 업을 낳고 성스러운 언설(言說)을 얻어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 보살이 말하는 법이 있으면 중생은 반드시 높이고 받아들임을 말하며, 점점 증장(增長)하고, 견고하여 퇴전(退轉)하지 않고, 온갖 법에 훤히 통하고, 온갖 세간법이 무너져 멸함[壞滅]이 없음을 관하는 까닭이며, 일체의 업성(業性)이 망상(妄想)을 여의었다는 것을 관하는 까닭이며, 모든 과보는 취하거나 버림이 없다는 것을 관하는 까닭이며, 윤회는 가거나 오는 양상[去來相]이 없다는 것을 관하는 까닭이며, 열반은 담연적정(湛然寂靜)하다는 것을 관하는 까닭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생귀주보살은 이 열 가지 원만하고 청정한 업을 얻고 성스러운 언설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불자들이시여, 생귀주보살은 과거의 불법(佛法)이 평등함을 관하고 항시 억념(憶念)하여 상속함이 끊이지 않게 하는 까닭이며, 미래의 불법이 평등함을 관하여 장차 배우기를 원하는 까닭이며, 현재의 불법이 평등함을 관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 까닭이니, 모든 불법이 이와 같이 평등함을 관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과거제(過去際)ㆍ미래제(未來際)ㆍ현재제(現在際)를 만나고 이 3제(際)에서 모두 만나게[値遇]됩니다. 이와 같이 닦아 익혀 일체 불법을 기억하고 간직해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해 공경합니다. 다시 과거의 불법을 관하여 평등하고 증장(增長)하는 것을 배우는 까닭이며, 미래의 불법 또한 이와 같이 평등하고 증장하는 것을 배우는 까닭이며, 현재의 불법을 관하여 또한 이와 같이 평등하고 증장하는 것을 배우는 까닭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생귀주보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여 일체의 불법에 취향(趣向)하여 널리 모두 평등하고 증장하는 것을 닦아 익히는 까닭이니, 왜냐하면 3세는 평등하고 가장 뛰어나고 진실하여 허망하고 거짓 없음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저 타방(他方)에도 이와 같은 법이 있으니 직접 찾아가 부지런히 구하고 정진(精進)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염념(念念)이 상속하여 간단(間斷)함이 없습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생귀주라고 이름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방편구족주보살에게는 열 가지 일[十種事]이 있어 선업(善業)을 닦으면 모두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이익되고 즐겁게 하기 때문이니, 즉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無上)의 도심(道心)에서 퇴전하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을 사랑하여 버리지 않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불가사의한 해탈도(解脫道)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이 업의 때[業垢]를 세척하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을 거두어들여 조복시키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기쁘고 싫증이 나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며, 온갖 방편으로써 일체 중생을 인도하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구경열반(究竟涅槃)의 적멸(寂滅)로 즐겁게 하려는 까닭입니다.
033_0810_b_01L불자들이시여, 다시 보살의 정심주(正心住)란 무엇인가? 불자들이시여, 이 정심주보살에게는 열 가지 법이 있어 마땅히 듣기를 좋아하고 마음을 불법(佛法) 가운데 부지런히 구하여 정심주를 얻습니다. 불자들이시여,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부처님은 유색(有色)이다 무색(無色)이다’ 말하지만 불법 가운데 정심주를 얻는 것이고, ‘법(法)은 유색이다 무색이다’ 말하지만 불법 가운데 정심주를 얻는 것이며, ‘보살이 행하는 행이 유색이다’를 얻는 것이고, 나아가 이곳이 중생계(衆生界)이다 대생중생계(大生衆生界)다, 번뇌가 있는 중생계이다 번뇌가 없는 중생계이다, 교화하기가 쉬운 중생계이다, 교화하기가 어려운 중생계이다라고 하거나 또는 대법계(大法界)이다, 출생법계(出生法界)이다, 유색법계(有色法界)이다 무색법계(無色法界)이다라고 말하지만 불자들이시여, 정심주보살은 이렇듯 불법 가운데서 이 법을 듣기 때문에 이 보살은 정심주를 얻습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정심주보살은 또한 이 열 가지 법[十種法]을 듣기 때문에 이치[理]에 들어가 부지런히 구하고 나아가 일체 무상법(無上法)을 듣고 또한 모두 닦아 배웁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무상(無相)ㆍ무성(無性)ㆍ무실(無實)ㆍ무염(無染)ㆍ원리(遠離)ㆍ무착(無著)ㆍ무자성(無自性)ㆍ여환(如幻)ㆍ여몽(如夢)ㆍ이제의혹(離諸疑惑)입니다. 이와 같은 일체법을 듣고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 익힙니다. 왜냐하면 이 정심주보살은 진실법문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고 저 타방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법을 듣고 직접 찾아가 부지런히 구하고 닦아 익혀 마음이 산란되지 않고 염념(念念)이 상속하여 간단(間斷)함이 없게 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를 보살의 정심주라고 이름합니다.
033_0810_c_01L불자들이시여, 다시 보살의 불퇴주(不退住)란 무엇인가? 불자들이시여, 이 불퇴주보살은 열 가지 무착법(無著法)을 듣고도 불법(佛法) 중에서 마음이 퇴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계신 것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도 아닌 것에 관해 듣고도 이 보살이 불법 중에서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까닭이며,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관해 듣고도 불법 중에서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까닭이며, 보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살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관해 듣고도 불법 중에서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까닭이며, 보살을 취(取)하는 것도 아니고 보살을 취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과 보살행을 여의는 것도 아니고 보살행을 여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과 보살은 출생(出生)하는 것도 아니고 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관해 듣고도 불법 중에서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까닭이며, 과거의 제불(諸佛)은 가지도 않았고[非去]가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非不去]과 미래의 제불이 오는 것도 아니고[非來]오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非不來]과 그리고 현재의 제불이 머무는 것도 아니고[非住]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非不住]에 관해 듣고 이와 같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지혜는 평등하여 일상(一相)이고 무상(無相)이라는 것과, 온갖 걸림이나 장애를 떠나는 것을 다한 것도 아니고[非盡],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非不盡]등에 관해 이 보살이 이와 같은 법을 듣고도 불법 중에서 퇴전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이와 같으므로 보살의 불퇴주라고 이름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불퇴주보살은 다시 열 가지 법[十種法]을 듣고 닦아 익힙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일다중생(一多衆生)이 일체법을 듣고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 까닭이며, 이 승의제(勝義諦)가 일다(一多)이며 연기(緣起)가 승의제(勝義諦)가 되는 까닭으로 즉성즉무성(卽性卽無性)이며 즉상즉무상(卽相卽無相)이며 즉유색즉무색(卽有色卽無色)이어서 온갖 양상[相好]을 떠나 마음이 결정적으로 정성스럽게 닦아 익힙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인과(因果)를 들으면 무애(無礙)한 진실법을 훤히 꿰뚫어 통달하여 성숙되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저 타방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몸소 찾아가 부지런히 구하고 닦아 익혀 마음이 산란되지 않고 염념이 상속하여 간단(間斷)함이 없게 합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불퇴주라고 이름합니다.
033_0811_a_01L불자들이시여, 보살의 동진주(童眞住)란 무엇인가? 불자들이시여, 이 동진주보살은 열 가지 법[十種法]을 얻습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신업청정(身業淸淨)을 얻는 것이고, 구업청정(口業淸淨)을 얻는 것이며, 의업청정(意業淸淨)을 얻는 것이고, 일체 중생들이 일으키는 마음과 생각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며, 저 중생들이 무릇 보시하는 바를 모두 훤하게 아는 것이고, 중생들의 이와 같은 해탈을 아는 것이며, 갖가지 중생계와 갖가지 법계와 갖가지 세계 및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ㆍ허공계ㆍ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이 온갖 계(界)를 모두 훤히 알아 신통력으로 생각을 따라 신속하게 도착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와 같은 것을 보살의 동진주라고 이름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동진주보살은 다시 열 가지 법을 듣고 닦아 익힙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한 불찰의 지혜[一佛刹智]를 듣고, 일체의 불찰을 진동시키며, 일체의 불찰을 관찰하고, 일체의 불찰을 찾아다니며, 일체의 불찰을 돌아다니고[遊行], 아승기(阿僧祇) 세계를 찾아가 방문하여, 아승기의 의취(義趣)를 질문하고, 갖가지 자성(自性)의 차별을 멀리 여의며, 한 생각의 마음[一念心]을 내어 두루 아승기 불찰에 관해 청문(聽聞)하고 닦아 익히는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진실한 법을 들은 까닭이며, 성숙되어 제일의(第一義)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고 나아가 저 타방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몸소 찾아가 부지런히 구하고 닦아 익혀 마음이 산란되지 않고 염념(念念)이 상속하여 간단(間斷)함이 없습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동진주라고 이름합니다.
033_0811_b_01L불자들이시여, 보살의 법왕자주(法王子住)란 무엇인가? 이 법왕자주보살에게는 열 가지 법이 있으니 모든 것을 잘 헤아려 압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일체 중생이 태어나는 곳을 알고, 일체 중생의 번뇌를 알며, 일체 중생이 미련을 두는 것[戀著]을 알고, 일체 중생이 있는 곳[方所]을 알며, 모든 부처님의 깊고 오묘한 법을 알고, 제불(諸佛)의 방편이 진실한 성품임을 알며, 세계의 갖가지 차별법을 알고, 과거ㆍ미래ㆍ현재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지혜를 알며, 일체 세간의 광대하되 견고하지 못한[不堅牢]법을 알고, 진실한 성품[眞性]이 여여(如如)하고 담연적정(湛然寂靜)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법왕자주라고 이름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법왕자주보살에게는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어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합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일체 왕성(王城)의 갖가지 작용을 잘 배우는 까닭이며, 일체 왕성의 예악(禮樂)을 잘 배우는 까닭이며, 일체 왕성에서 안주(安住)함을 잘 배우는 까닭이며, 일체 왕성에 잘 들어가는 까닭이며, 일체 왕성을 자재하게 두루 유력(遊力)하는 까닭이며, 법왕의 관정(灌頂)에 머무는 까닭이며, 법왕의 관찰에 머무는 까닭이며, 법왕의 자재력을 얻는 까닭이며, 법왕위(法王位)를 이어받는 까닭이며, 법왕의 변설(辯說)에 머묾을 얻는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무애(無礙)한 진실법을 닦아 익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저 타방에게 말하는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몸소 찾아가 부지런히 닦아 익혀 마음이 산란되지 않고 염념(念念)이 상속하여 간단(間斷)함이 없게 합니다. 불자들이시여, 이를 보살의 법왕자주라고 이름합니다.
033_0811_c_01L불자들이시여, 다시 보살의 관정주(灌頂住)란 무엇인가? 이 보살은 열 가지 신통력을 얻습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아승기 세계로 하여금 갖가지로 요동하게 할 수 있고, 갖가지 아승기 세계를 비추어 볼 수 있으며, 갖가지 아승기 세계를 관찰할 수 있고, 갖가지 아승기 세계에서 동시에 일심(一心)으로 닦아 익힐 수 있으며, 아승기 세계에서 갖가지 선업(善業)을 성취할 수 있고, 아승기 세계에서 갖가지 중생의 차별심을 동시에 잘 알 수 있으며, 아승기 세계에서 낱낱 중생의 갖가지 심행(心行)을 능히 일시에 인식[行]할 수 있고, 아승기 세계 낱낱 중생의 근기(根器)를 훤히 이해할 수 있으며, 아승기 세계의 갖가지 중생을 교화할 수 있고, 아승기 세계 일체 중생의 심소작용(心所作用)을 두루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선남자여, 이 관정주보살은 몰래 다니며 은밀하게 보시를 행하고 불사(佛事)를 하므로 어떤 사람도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신업(身業)을 알 수 없고, 구업(口業)을 알 수 없으며, 의업(意業)을 알 수 없고, 변화화현(變化化現)됨을 알 수 없으며, 갖가지 변화를 관찰함을 알 수 없고, 과거에 행한 행을 관(觀)함을 알 수 없으며, 찰나인 경각에 행한 행을 모두 알 수 없고, 지혜를 관하는 것을 알 수 없으며, 마음속 의도[心意]를 알 수 없고, 일체의 인식지혜가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시여, 이 관정주지(灌頂住地)보살의 신통은 법왕자위보살까지도 끝내 그의 경지를 알 수 없습니다.
불자들이시여, 관정위보살은 또한 불세존의 10주(住)를 듣습니다.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삼세지(三世智)ㆍ불지(佛智)ㆍ법지(法智)ㆍ법계분별지(法界分別智)ㆍ법계중변지(法界中邊智)ㆍ일체세계량등법계지(一切世界量等法界智)ㆍ조찰일체세계지(照察一切世界智)ㆍ원만일체중생지(圓滿一切衆生智)ㆍ일체법지(一切法智)ㆍ무변불지(無邊佛智)를 듣습니다. 이 보살은 일체의 제불지(諸佛智)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일체의 실제리지(實際理智)를 듣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시여, 그러므로 이를 보살의 관정주라고 이름합니다.”
1)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 : 이 서문은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982)에 천식재(天息災)가 『성불모경(聖佛母經)』을, 법천(法天)이 『길상지세경(吉祥持世經)』을, 시호(施護)가 『여래장엄경(如來莊嚴經)』을 각각 번역하여 올리자 송나라 태종(太宗)이 이를 치하해 지은 것이다.
2)상법(像法) : 부처님의 열반 뒤에 정법(正法)ㆍ상법(像法)ㆍ말법(末法)으로 나누어진 교법의 세 시기 중의 하나이다. 열반 후 500년부터 1000년까지의 시기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따르지만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는 시기를 말한다.
3)육정(六情) : 육근(六根) 또는 육근이 발생시키는 정식(情識)을 말한다.
4)설산은 인도, 패엽은 불교경전을 뜻한다.
5)연라(煙蘿) : 연하등라(煙霞藤蘿)의 준말로, 안개와 노을이 자욱하고 등나무 여라덩굴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이다. 깊은 산이나 은둔처를 의미한다.
6)향계(香界) : 향기 자욱한 세계라는 뜻으로,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7)십성(十聖) : 10지(地)의 보살을 말한다.
8)삼현(三賢) : 10주(住)・10행(行)・10회향(回向)의 위(位)에 있는 보살을 말한다.
9)건원(乾元) : 하늘의 도(道)이며, 천덕(天德)의 시초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이를 힘입어 비롯되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하도다.[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하였다.
10)태역(太易) : 기(氣)가 분화되기 이전 최초의 상태이다.
11)천식재(天息災) 등 : 역경원에서 번역을 주도했던 천식재(天息災)와 법천(法天)과 시호(施護)를 말한다.
12)사인(四忍) : 무생법인(無生法忍)・무멸인(無滅忍)・인연인(因緣忍)・무주인(無住忍)을 말한다. 인(忍)은 인가(忍可)・안인(安忍)의 뜻으로, 진실을 수긍하고 안주(安住)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13)오성(五聲) : 오음(五音)이라고도 한다.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가지 음조를 말한다.
14)풍율(風律) : 시나 음악의 운율을 말한다.
15)사시(四始) : 사성(四聲)이라고도 한다.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이니, 사성으로 음운(音韻)의 고저(高低)와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을 구분한다.
16)화택(火宅) : 삼계(三界)가 탐욕 등의 번뇌로 어지러운 것을 불타는 집에 비유한 것이 『법화경』 「비유품」에 나온다.
17)천식재(天息災)가 『분별선악업보경(分別善惡報應經)』을 번역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8)금륜왕[金輪] : 4종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제왕을 말한다.
19)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 : 비람풍(毘嵐風)을 말한다. 우주가 파괴되는 시기에 이 바람이 불어 인간세계로부터 위로 색구경천까지 차례로 파괴한다고 한다. 유정천은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가장 마지막에 파괴된다.
20)석전(釋典) : 석가의 가르침을 담은 전적, 즉 불교서적을 말한다.
21)법어 samāpatti의 음역(音譯)이며 삼마발제(三摩跋提)와 삼마아(三摩蛾)로도 음역된다. 의역하여 등지(等至)ㆍ정수(正受)ㆍ정정현전(正定現前)이라고 하며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등을 멀리 여의고 심신(心身)이 평등하고 안화(安和)한 경계에 도달한 상태를 말한다. 삼마지(三摩地)와 삼마발저(三摩鉢底)의 차이에 관해서 『대비바사론』 126권에서는 몇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즉, 삼마지가 한 사물[一物]을 체(體)로 삼는데 비해 삼마발저는 5온(蘊)을 체로 삼고, 삼마지가 일찰나라면 삼마발저는 계속되는 것[相續]이며, 온갖 삼마지는 삼마발저라고 말할 수 있으나 삼마발저가 삼마지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무상등지(無想等至)와 멸진등지(滅盡等至)가 그에 속하고, 삼마지[等持]일 수는 있으나 삼마발저[等至]는 아닌 것이 있으니 부정심상응등지(不定心相應等持)가 이에 속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