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사리자가 자씨보살에게 말하였다. “이제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사려사담마경』을 말씀하시되, ‘비구들이여, 만일 12연생을 보면 이것을 법을 보았다고 하고, 이 법을 보았으면 이미 곧 부처를 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보살이여, 나는 이 뜻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12연생이며, 어떤 것이 법이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라건대 보살께서는 간략히 해설하여 주십시오.”
034_0218_a_01L그때 자씨보살이 존자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여래 법왕께서 일체지(一切智)를 갖추시고 마땅함을 따라 말씀하신 것은 심히 깊고 미묘하신데, 그대가 지금 내게 물으니 간략히 말하겠습니다. 사리자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일 어떤 비구가 12연생에 대하여 보고 깨달을 수 있으면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곧 부처를 보는 것입니다. 12연생이란 이른바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입(入)이 있고, 6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가 있으니, 이렇게 생겨나면 곧 하나의 큰 괴로움의 온(蘊)이 생깁니다. 사리자여, 저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입이 멸하고, 6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노사우비고뇌가 멸하니, 이렇게 멸하면 하나의 큰 괴로움의 온(蘊)이 멸합니다. 사리자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12연생(緣生)을 설하셨습니다.”
자씨보살이 말하였다. “성스러운 8정도(正道)를 법이라 하니, 이른바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근(正勤)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입니다. 사리자여, 이 8정도의 과보는 열반이니, 이러한 까닭에 세존께서 법이라고 한다고 간략히 말씀하셨습니다.”
자씨보살이 말하였다. “만일 일체의 법을 알면 부처라 하니, 이렇듯 성스러운 혜안(慧眼)을 얻어서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보고 내지 법신(法身)을 증득합니다.
034_0218_a_19L菩薩告言:“若知一切法,名之爲佛。如是得聖慧眼,見菩提分法,乃證法身。
034_0218_b_01L또 어떤 것이 12연생을 보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만일 어떤 사람이 항상 이 12연생을 보고, 무생(無生)ㆍ무멸(無滅)ㆍ무작(無作)ㆍ무위(無爲)ㆍ무취(無取)ㆍ무착(無着)하고, 여실하여 뒤바뀜[顚倒] 없고, 적정(寂靜)하여 두려움이 없으면, 큰 성인의 다함없는 지식(止息)이 모두 다 성품이 없을 것이니, 만일 이렇게 보면 이 사람은 법을 보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항상 무생ㆍ무멸ㆍ무작ㆍ무위ㆍ무취ㆍ무착하고, 여실하여 뒤바뀜이 없으며, 적정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큰 성인의 다함없는 지식을 보면 법의 성품이 없는 것을 볼 것이니, 그 사람은 위없는 법신(法身)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바른 법[正法]과 바른 지혜[正智]와 지식(止息)과 삼매(三昧)를 얻으신 것입니다.”
자씨보살이 말하였다.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므로 12연이라 합니다. 사리자여, 이 법은 인도 아니고 연도 아니며, 또한 인연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또 인연을 따라 있습니다. 지금 그 모양을 대략 말하자면, 여래께서 세상에 계시건 안 계시건 이 인연의 법은 항상 머무르고 평등하며, 여실하고 헛되지 않으니, 뒤바뀜[顚倒]을 여읜 까닭입니다.
또 사리자여, 이러한 연생(緣生)을 나누면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인(因)을 좇는 것이며, 둘째는 연(緣)을 좇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뜻은 다시 안[內]과 밖[外]으로 나눕니다. 바깥 연이 인을 좇아 생기는 것(外緣從因所生)이란, 이른바 종자에서 싹이 나고, 싹에서 모종이 나고, 모종에서 줄기가 나고, 줄기에서 가지가 나고, 가지에서 꽃과 열매가 나니, 만일 종자가 없으면 모종이 생기지 못하며, 내지 꽃과 열매도 없을 것이며, 만일 종자가 있으면 곧 모종과 줄기를 내며, 내지 꽃과 열매가 있습니다. 사리자여, 열매는 내가 능히 싹을 내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싹은 내가 능히 모종과 줄기를 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와 같이 하여 내지 꽃도 내가 능히 열매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매도 또한 내가 꽃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바깥 인연이 인을 좇아 생기는 법을 가히 볼 수 있습니다.
034_0218_c_01L또 사리자여, 바깥 인연이 연을 좇아 생기는 것은 이른바 6계(界)가 합하고 모인 때문이니, 즉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시계(時界)입니다. 지계는 능히 편안히 서게 하고, 수계는 능히 적셔서 윤택하게 하고, 화계는 능히 따사롭게 하고, 풍계는 능히 움직이게 하고, 공계는 능히 걸림이 없게 하고, 시계는 능히 성취하게 합니다. 이러한 6계의 각각 연이 화합하면 종자가 싹과 모종과 꽃과 열매를 낼 수 있어서 구족하지 못함이 없고, 이러한 6계가 하나라도 화합하지 못하면 종자는 나지 못할 것이며, 내지 꽃과 열매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6계들은 제각기 나[我]가 없어서, 지계는 내가 능히 편안히 서게 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수계는 내가 능히 윤택하게 한다고 말하지 못하며, 화계도 내가 능히 따사롭게 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풍계도 내가 능히 움직이게 한다고 말하지 못하며, 공계도 능히 내가 걸림이 없게 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시계도 내가 능히 성취하게 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 종자도 내가 능히 싹을 낸다고 말하지 않으며, 싹도 내가 모든 인연을 좇아 생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 싹들이 생긴 것은 스스로가 지은 것도 아니고,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합하여 있게 된 것도 아니며, 자재천이 변화한 것도 아니고, 또한 시간이 변화한 것도 아니며, 또한 연생(緣生)도 아니고, 또 하나의 일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또 인이 없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지ㆍ수ㆍ화ㆍ풍ㆍ공ㆍ시분(時分)과 종자와 꽃과 열매는 그들을 좇아 생겨나서 상즉(相卽)하지 않고, 상리(相離)하지 않으며, 다함이 없고 멸함도 없습니다.
이 바깥 연이 생하는 것[外緣生]에 다시 다섯 가지 뜻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이른바 항상하지 않으며[不常], 단절 되지 않으며[不斷], 멸하나 다하지 않으며[滅不盡], 적은 인으로 많은 과를 얻으며[少因多果], 서로서로 반연이 되는 것[互為所緣]입니다. 어찌하여 항상 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종자와 싹이 이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단절 되지 않는다고 하는가? 종자에서 싹이 나고, 싹은 가지와 잎을 내는 까닭입니다. 어떤 것이 비록 멸하나 다하지 않는 것인가? 멸한다 함은 종자가 부서져 멸한 듯한 것이며, 다하지 않았다 함은 전(傳)하여 심으면 싹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적은 인으로 많은 과를 얻는 것인가? 하나의 씨가 인이 되어 열매가 번성하여 몇 곱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서로 인이 되는 것인가? 종자로 인하여 싹이 있고 내지 꽃과 열매가 있는 것이 둥근 고리와 같아, 다시 종자가 되는 까닭입니다.
034_0219_a_01L다음은 어떤 것이 안의 12연인가? 이 12연에 다시 두 뜻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뜻인가 하면, 첫째는 인(因)을 좇는 것이며, 둘째는 연(緣)을 좇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인을 좇아 되는 것인가? 무명을 원인으로 하여 곧 행을 내고, 내지 노사우비고뇌를 내는 것이니, 만일 무명이 없으면 행도 성립되지 못하고, 노사우비고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무명은 자신이 능히 행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은 또한 자신이 무명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내지 생도 자신이 능히 노사우비고뇌를 내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노사 등도 자신이 생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에서 생기는 모양입니다.
034_0219_b_01L어떤 것이 연을 좇아 생기는 것인가? 이른바 6계(界)를 연하여 화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6계인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ㆍ식(識)의 계이니, 이 6계가 화합할 때를 연생(緣生)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지계인가? 몸이 굳고 실다운 것이 지계(地界)입니다. 만약 몸이 부풀어 젖어 있다면 수계(水界)이며, 만약 몸이 따뜻하면 화계(火界)라 하고, 만약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면 풍계(風界)라 하고, 만약 몸이 장애가 없다면 공계(空界)이며, 안식(眼識) 내지 제8식(第八識)은 식계(識界)이니, 이렇듯 6계의 연이 화합하는 까닭에 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저 지계는 자신이 능히 굳고 실답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수계도 자신이 능히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화계도 자신이 능히 따뜻하게 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풍계도 또한 자신이 능히 호흡이 들어오고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도 또한 자신이 능히 성취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몸 또한 자신이 여러 가지 연(緣)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 여러 가지 연이 아니면 몸은 성립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 지계는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명[壽]도 없고,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며,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습니다. 만일 다시 이러한 6계에 대하여 하나라는 생각[一想]ㆍ범부라는 생각[凡夫想]ㆍ항상하다는 생각[常想]ㆍ실답다는 생각[實想]ㆍ영구하다는 생각[久想我想]ㆍ즐겁다는 생각[樂想]ㆍ아라는 생각[我想]ㆍ인이라는 생각[人想]ㆍ중생이라는 생각[眾生想]ㆍ수명이라는 생각[壽命想]ㆍ움직인다는 생각[蠕動想]을 지으면, 지혜가 없는 까닭에 이와 같은 가지가지 생각을 일으키니, 그러므로 무명이라 합니다. 무명을 말미암아 탐욕심ㆍ진에심이 나니, 무명이 행을 반연하여 내는 것이며, 행도 또한 그러하여 거짓된 이름에 집착하고 모든 망상을 내니 식이라 하며, 식은 명색을 내고, 명색은 6입을 내고, 6입은 촉을 내고, 촉 때문에 수를 내고, 수 때문에 애를 내고, 애 때문에 취를 내고, 취 때문에 유를 내고, 유가 있는 까닭에 뒤에 온(蘊)을 낼 수 있으니 생(生)이라 하고, 태어나서는 쇠퇴하고 변하는 것이 노이며, 온(蘊)이 부서져 멸하는 것을 사라고 하니, 어리석은 까닭에 우비고뇌를 발생합니다. 또 여러 가지 괴로움이 모여서 몸과 마음을 핍박하게 하여 큰 흑암(黑闇)에 처해 있는 것이 무명이며, 조작하는 것이 행이며, 분별하는 것이 식이며, 안정하게 성립하는 것이 명색이며, 여섯 가지 근(根)의 문이 6입이며, 진(塵:境)에 대하는 것이 촉이며, 고락(苦樂)을 얻는 것이 수이며, 주리고 목마름이 애이며, 추구(追求)하는 것이 취이며, 다시 태어날 업이 유이며, 뒤의 온[後蘊]이 태어난 것이 생이며, 온이 익어진 것이 노이며, 그가 부서진 것이 사이며, 두려운 것을 생각함이 우이며, 애처롭고 간절한 것이 비이며, 여러 가지의 괴로움이 고이며, 수고롭게 요동함이 뇌입니다. 또 진실을 뒤집어 허망하게 하고, 삿된 소견을 바른 소견이라 하여, 이렇듯 지혜가 없으므로 무명이라 합니다.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복행(福行)과 비복행(非福行)과 무상행(無相行)입니다. 복행을 지으면 복행지(福行智)를 얻고, 비복행을 지으면 비복행지(非福行智)를 얻고, 무상행을 지으면 무상행지(無相行智)를 얻습니다. 이렇듯 노사우비고뇌에 이르니, 이들 12연은 각각 인(因)이 있고 과(果)가 있어서 상(常)도 아니고 단(斷)도 아니며, 유위(有爲)도 아니고 유위를 떠나지도 않았으며, 심법(心法)이 아니며, 다한 법도 아니고 멸하는 법도 아니어서 본래부터 제대로 있으며, 나는 곳마다 끊임이 없는 것이 마치 강물이 흘러서 끊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자씨보살이 다시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저 12연은 다시 네 가지 인연으로 자라니, 이른바 무명(無明)ㆍ애(愛)ㆍ업(業)ㆍ식(識) 등입니다. 식의 종자는 자성(自性)으로써 인을 삼고, 업으로써 땅을 삼고, 무명과 애의 번뇌가 덮여서 식의 종자가 생깁니다. 업은 식에게 땅이 되어 주고, 애는 식에게 윤택하게 하여 주고, 무명은 덮어 주어서 식이 성취하게 하지만 업은 내가 능히 식의 종자에게 땅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지 못하며, 애는 또한 내가 능히 식의 종자에게 윤택하게 하여 준다고 생각지 못하며, 무명은 내가 능히 식의 종자를 덮어 주었으니, 그러므로 식의 종자가 성취하였다고 생각하지 못하며, 식도 자신이 여러 가지 인연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 업은 식의 땅이 되고, 애는 윤택하게 하며, 무명이 덮어 주어 종자가 생겨나서 어머니의 태속에 처한 것이 명색의 싹입니다. 그 명색의 싹은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고, 남이 지은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합하여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자재천(自在天)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시간이 변화해서 생긴 것이 아니며, 본래의 처소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인연이 없는 곳에서 생긴 것도 아니니, 이 법은 실제로 부모와 여러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색의 싹은 본래부터 주재가 없으며, 또한 취하고 버림이 없으며, 자성의 인연은 허공 같고 허깨비와 같습니다.
034_0220_a_01L또 안식(眼識)이 나는 데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눈[眼]과 색(色)과 광명[明]과 허공[空]과 의지(意志)입니다. 이 다섯 가지 인연으로 안식을 내되, 눈은 의지할 곳이며, 색은 나타낼 곳이며, 광명으로써 비치고, 허공을 인하여 걸림이 없게 되면 의지가 모든 행위와 작용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안식이 생기니, 만일 눈ㆍ색ㆍ광명ㆍ허공ㆍ의지 등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안식은 생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은 내가 안식의 머무를 곳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색도 내가 식의 집착할 바[所著]1)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광명도 내가 능히 식으로 하여금 비추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허공도 내가 능히 식으로 하여금 장애가 없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의지도 또한 내가 능히 식으로 하여금 행위와 작용을 일으키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식도 또한 내가 능히 모든 인연을 의지하여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식은 실제로 여러 가지 연이 화합하여 생긴 것이며, 이렇듯 모든 근이 차례대로 그 식을 내는 것이 모두 이러합니다.
또 어떠한 법이 금세로부터 후세에 이를 것이 없지만 다만 업과(業果)의 인연과 망상으로써 난 것이니, 마치 거울에 낯을 비출 때 얼굴이 거울 속에 나타나지만, 얼굴이 거울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며, 망상의 인연으로 나타난 것과 같습니다. 또 둥근 달이 중천에 높이 떠 땅과의 거리는 4만 2천 유순인데 그림자가 모든 물에 비치니, 달이 저곳에서 없어져서 이 물속에 생긴 것이 아니며, 또한 망상의 인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또 불을 구할 적에 나무를 얻으면 불이 타고, 나무가 다하면 곧 꺼지는 것과 같습니다.
034_0220_b_01L또 사리자여, 어떤 중생이 이 세상에서 뒷세상에 이르는 이가 없으며, 또 뒷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이르는 이가 없습니다. 다만 업이 맺어진 식의 종자가 곳곳에 생겨나서 어머니의 뱃속에 의탁하여 명색의 싹을 냅니다. 이 인연법은 본래 주재자가 없고, 아도 없고,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어서 허공과 같으며, 요술의 변화와 같아 실다운 법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악의 업보는 반드시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12연을 다시 다섯 가지로써 말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항상하지 않는 것[無常], 단절 되지 않는 것, 멸하지 않는 것, 적은 인으로 많은 과를 얻는 것, 서로 비슷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항상 하지 않는 것인가? 이른바 이 온[此蘊]이 멸하고 저 온[彼蘊]이 생기니, 멸한 것이 생긴 것이 아니며, 생긴 것은 멸한 것이 아니니, 생긴 것과 멸한 것이 다른 까닭에 항상 하지 않는다 합니다. 어떤 것이 단절 되지 않는 것인가? 이른바 천칭[秤:저울}이 오르고 내리는 것과 같아서, 여기에서 멸하면 저곳에서 생기는 까닭에 단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멸하지 않는 것인가? 이른바 중생계에서 지은 인(因)은 업(業)이 모두 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적은 인으로 많은 결과를 얻는 것인가? 이른바 무릇 짓는 인은 마치 밭에서 일을 하는 이가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부지런히 힘쓰면 수확하는 결과가 더욱 크고 많은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것이 서로 비슷한 것인가? 이른바 업을 지은 인과 다른 과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034_0220_c_01L만일 어떤 이가 능히 12연을 관찰하는 이는 바른 관찰[正觀]ㆍ바른 지혜[正智慧]라 부릅니다. 어떤 것이 바른 관찰이고 바른 지혜인가? 이른바 과거ㆍ미래ㆍ현재에 태어나는 바를 관찰하되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을 짓지 말고, 와도 온 곳이 없고, 가도 이르는 곳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 세간의 사람들이 이 법이 생기지 않고 멸하지 않고, 동작이 없고, 행위가 없고,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고, 뒤바뀜[顚倒]도 없다고 관찰하면, 고요하여 성품이 없음[無性]에 머무르게 됩니다. 만일 능히 이렇게 법을 보면 고요하여 병고가 없고 종기가 없음을 알아 순식간에 아견(我見)이 제거됨이 마치 다라나무[多羅樹]의 머리를 끊으면 다시 나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니, 생멸이 없는 법을 보는 것입니다. 사리자여, 이 사람은 법인(法忍)을 얻어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을 구족하게 하여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수기를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