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세존께서 사부대중(四部大衆) 모두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이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을 말씀하시어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셨다.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34_0241_c_04L爾時世尊,爲令四衆各得歡喜,說是般若波羅蜜經使獲利樂。卽說伽陁曰:
세상에 있는 보살들은 세간을 위하여 개장(蓋障)과 번뇌의 더러움을 소멸시켜 없애고 청정하게 믿는 마음을 내어 적정(寂靜)에 머물되, 반드시 반야바라밀[智度]을 행하여 피안(彼岸)으로 가야 하네.
034_0241_c_07L所有菩薩爲世間, 滅除蓋障煩惱垢,
發淨信心住寂靜, 當行智度彼岸行。
모든 강물이 염부제(閻浮提)로 흘러 꽃과 과일과 약초가 모두 윤기를 얻나니 용왕(龍王)이 무열뇌지(無熱惱池)에 머물러 저 용왕의 위력(威力)으로 강물을 흐르게 하는 까닭이네.
034_0241_c_09L諸江河流閻浮提, 華果藥草皆得潤,
龍王主住無熱池, 彼龍威力流江河。
또한 보살[佛子]과 성문(聲聞) 같은 이들은 법을 말하여 방편설(方便說)로써 다른 사람 가르치고 가장 성스러운 행을 즐겨 행하며 과보(果報)를 구하게 하나니 이것은 모든 여래의 훌륭하신 위덕(威德)이네.
034_0241_c_11L亦如佛子聲聞等, 說法教他方便說,
樂最聖行求果報, 此諸如來勝威德。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이 법안(法眼)을 말씀하시는가? 모든 제자들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배워 스스로 깨달아 다른 사람도 가르치는 방편을 삼게 하심이니 이 또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이요,스스로의 힘이 아니네.
034_0241_c_13L云何佛說此法眼, 令諸弟子如佛學,
自證教他及方便, 此亦佛力非自力。
더없이 훌륭한 반야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마음으로 알 것이 아니요,보리(菩提)로도 알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듣고 나서 놀라지 말라. 저 보살행(菩薩行)을 행하면 부처님의 지혜를 알게 되리.
034_0241_c_15L最上般若不可知, 非心可知非菩提。
如是聞已不驚怖, 彼菩薩行知佛智。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모두 없어 터럭이나 티끌만큼도 집착할 것이 없고 머물 곳도 없나니 저 보살이 어떠한 법에도 머물지 않으며 수(受)ㆍ상(想)이 없이 행하면 보리를 증득하리.
034_0241_c_17L色受想行識皆無, 不著纖塵無處所,
彼若不住一切法, 行無受想得菩提。
보살이 출세간의 지혜를 구하려 하면 오온(五蘊)에 실상(實相)이 없음을 비추어 보고 이것을 알고 나서 적정을 구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것이 보살이 지혜행을 행하는 것이네.
034_0241_c_19L菩薩若求出家智, 照見五蘊無實相,
知此不求於寂靜, 彼是菩薩之行智。
다음에 또 어떻게 지혜를 증득하는가? 모든 법이 모두 공(空)함을 비추어 보아야 하나니 집착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고 비추어 볼 때에 스스로 깨닫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보살이 되네.
034_0241_c_21L復次云何智所得? 照見一切法皆空,
不著不驚照見時, 自覺覺他諸菩薩。
034_0242_a_01L
색ㆍ수ㆍ상ㆍ행ㆍ식 등 이러한 오온(五蘊)은 보는 것으로도 행하는 것으로도[見行] 알 수 없나니 보살은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상이 없는 교화[無相化]를 행하고도 구(句)에 집착하지 않네.
034_0242_a_01L色受想行及識蘊, 是蘊見行而不知,
菩薩照見蘊皆空, 行無相化不著句。
색ㆍ수ㆍ상ㆍ행ㆍ식 등이 없다는 견해를 지니지 않고 수행하여야 이를 일컬어, 상이 없는 행[無相行]이라 하며 만약 그러한 견해로 수행하면 더없이 훌륭한 지혜와 상이 없음과 적정한 삼마지를 증득하지 못하리.
034_0242_a_03L無色受想行識等, 不行是名無相行,
若行不得最上智, 無相寂靜三摩地。
보살이 스스로 적정을 행하는 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기별을 주신 까닭이며 몸의 괴로움과 즐거움 등에 전혀 집착하지 않는 것은 인과법(因果法)의 본성(本性)을 알기 때문이네.
034_0242_a_05L若菩薩行自寂靜, 過去諸佛咸授記,
身苦樂等皆不及, 由知因果法本性。
법(法)은 얻을 만한 것이 아님을 알고 행하면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이며 행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나서 행하면 이것이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般若行)을 행하는 것이네.
034_0242_a_07L若行於法不可得, 行如是行乃佛智,
行無所行了知已, 是行最上般若行。
저 존재[所有]가 없다는 것도 증득할 만한 것이 아니거늘 어리석은 이들은 상(相)에 집착하여 있다 없다 말을 하나 있다 없다 하는 두 법이 모두 실제(實際)가 아니니 이를 벗어나 분명하게 아는 것이 바로 보살이네.
034_0242_a_09L彼無所有不可得, 愚癡著相謂有無,
有無二法皆非實, 出此了知乃菩薩。
보살이 만약 모든 것이 허깨비[幼化]임을 알고 색ㆍ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 적정행(寂靜行)을 행하여 갖가지 상을 벗어나면 이것을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이라 이름하네.
034_0242_a_11L菩薩若知諸幻化, 色受想行識亦然,
寂靜行離種種相, 此名最上般若行。
좋은 도반은 방편(方便)을 써서 『불모경(佛母經)』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하며 이해하고 깨닫게 하지만 나쁜 도반은 똑같이 행하여 다른 이를 교화하더라도 배기(坏器)에 물을 담은 것과 같이 견고하지 않네.
034_0242_a_13L善友方便令知覺, 使聞佛母不驚怖,
惡友同行及化他, 坏器盛水非堅牢。
어찌하여 보살이라 일컫는가? 어떠한 즐거운 행에도 전혀 집착하지 않고 부처의 깨달음을 구하되 집착이 없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보살이라 일컫네.
034_0242_a_15L云何得名爲菩薩? 一切樂行皆無著,
求佛菩提無所著, 是故得名爲菩薩。
어찌하여 마하살이라 일컫는가? 제일의(第一義)를 얻고도 중생 속에 머물며 중생계(衆生界)의 모든 사견(邪見)을 끊어 없애나니 이런 까닭으로 마하살이라 일컫네.
034_0242_a_17L云何得名摩訶薩? 得第一義衆生中,
斷衆生界諸邪見, 是故得名摩訶薩。
큰 베풂과 큰 지혜와 큰 위덕으로 더없이 훌륭한 불승(佛乘)에 이르고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중생을 제도하니 이런 까닭으로 마하살이라 일컫네.
034_0242_a_19L大施大慧大威德, 佛乘最上而得乘,
發菩提心度衆生, 是故得名摩訶薩。
구지(俱胝) 수효만큼의 허깨비와 같은 네 발 달린 짐승들이 많은 사람이 모인 앞에서 모두 머리가 잘린다 해도 모든 세계(世界)가 모두 허깨비임을 보살은 이미 알아 두려움이 없네.
034_0242_a_21L幻化四足俱胝數, 多人衆前悉截首,
一切世界皆幻化, 菩薩知已得無怖。
034_0242_b_01L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묶여 있어도 실제(實際)가 아닌 줄 알아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보리를 행하고도 마음에 집착이 없으면 이것을 더없이 훌륭한 보살이라 일컫네.
034_0242_a_23L色受想行識纏縛, 知不實已不求解,
行菩提心無所著, 此名最上諸菩薩。
어찌하여 보살이라 일컫는가? 대승(大乘)의 수레[乘]를 타고 중생 제도를 행함에 대승의 체상(體相)이 허공과 같아 보살이 이에 의해 편안한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네.
034_0242_b_02L云何得名爲菩薩? 乘大乘行度衆生,
大乘體相如虛空, 菩薩由得安隱樂。
대승의 수레는 얻을 만한 것이 아니나 열반의 수레를 타고 모든 곳을 가나니 가고 나면 마치 불이 꺼진 듯 보이지 않아 이런 까닭으로 일컬어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네.
034_0242_b_04L大乘之乘不可得, 乘涅盤往諸方所,
行已不見如火滅, 是故名爲入涅盤。
보살이 행하는 것은 얻을 만한 것이 아니지만 처음과 나중과 현재의 세 때가 항상 청정하고 청정하여 두려움이 없고 희론(戱論)도 없나니 이것이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般若行)을 행하는 것이네.
034_0242_b_06L菩薩所行不可得, 初後現在三淸淨,
淸淨無畏無戲論, 是行最上般若行。
큰 지혜를 이룬 보살은 행할 때마다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중생을 위하나 그렇게 하고도 중생상(衆生相)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을 행하는 것이네.
034_0242_b_08L大智菩薩行行時, 發大慈悲爲衆生,
爲已不起衆生相, 是行最上般若行。
보살이 중생을 위한다는 생각을 내어 모든 고행을 닦으면서 괴롭다는 상[苦相]이 있으면 이것은 아상(我相)과 중생상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이 아니네.
034_0242_b_10L菩薩起念爲衆生, 修諸苦行有苦相,
是有我相衆生相, 此非最上般若行。
자신과 모든 중생이 평등함을 알고 모든 법까지도 또한 그러함을 알면 생겨나고 없어짐이 둘이 아니어서 분별도 없나니 이것이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을 행하는 것이네.
034_0242_b_12L知自及諸衆生等, 乃至諸法亦復然,
生滅無二無分別, 是行最上般若行。
나아가 세계(世界)라고 말하는 것까지도 일체의 생겨나고 없어짐을 벗어난 법이라고 일컬으면 더없이 훌륭하고 비할 것 없는 감로지(甘露智)이니 이런 까닭으로 반야(般若)라 일컫네.
034_0242_b_14L乃至所說世界等, 名離一切生滅法,
最上無比甘露智, 是故得名爲般若。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할 것을 행하고 방편을 분명하게 알아 버리는 것이 없으며 이 법의 본성이 실제가 아님을 알면 이것이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을 행하는 것이네.
034_0242_b_16L菩薩如是所行行, 了知方便無所求,
知此法本性非實, 是行最上般若行。
색(色)에 머물지 않고 수(受)도 없으며 또한 상(想)에 머물지 않고 행(行)도 없으며 다시 식(識)에 머물지 않고 정법(正法)에 머물면 이것을 더없이 훌륭한 반야행이라 일컫네.
034_0242_b_18L若不住色亦無受, 亦不住想亦無行,
復不住識住正法, 是名最上般若行。
2. 제석품(帝釋品)
034_0242_b_20L佛母寶德藏般若伽陁帝釋品第二
환희지(歡喜地)는 보시바라밀을 포함한다.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34_0242_b_21L歡喜地攝布施波羅蜜伽陁
항상함[常]이나 항상함이 없음[無常], 괴로움이나 즐거움, 나[我]라거나 내가 없다[無我]는 생각 등이 모두 공하여 유위(有爲)에도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않고 상이 없는 행에 머물러야 하나니 부처님 또한 그러하시네.
034_0242_b_22L常與無常苦樂等, 我及無我悉皆空,
不住有爲及無爲, 住無相行佛亦然。
034_0242_c_01L
만약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등을 구하고 불과(佛果)까지도 또한 그러하면 이 법인(法忍)에 머물지 않고는 얻을 수 없나니 마치 큰 강을 건널 때에 저쪽 언덕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네.
034_0242_c_01L若求聲聞緣覺等, 乃至佛果亦復然,
不住此忍不可得, 如渡大河不見岸。
만약 이 법을 듣고 저 선정(禪定)을 얻어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고 열반을 증득(證得)하여 모든 것을 자기의 몸과 같이 보면 이것이 큰 지혜를 지닌 것이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네.
034_0242_c_03L若聞此法彼定得, 成等正覺證涅盤,
見於一切如自身, 是大智者如來說。
불자(佛子)는 반드시 네 가지 보특가라(補特伽羅)에 머물러야 하나니 이것은 큰 지혜행을 행하는 것이니라. 첫째는 참되고 여실한 선법(善法)이요, 둘째는 물러나지 않는 마음이요, 셋째는 번뇌의 더러움을 벗어나서 번뇌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는 이에게 마땅히 공양하는 것이요, 넷째는 좋은 도반과 어울리는 것이니라.
마치 번개가 사라지듯 속히 천궁(天宮)을 떠나 세간으로 와서 방해하는 일을 하기도 하며 혹 모습을 나타내 보여서 즐거움과 욕망의 말을 할 때 혹시 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면 도리어 성내고 원한을 가지며
034_0244_c_22L速離天宮如電滅, 來於世間作魔事。
或有示現樂欲說, 或不聽受返瞋恨,
034_0245_a_01L
이름과 성(姓)도 또한 가문[氏族]도 말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방해하는 일들을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하네.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이들은 방편이 없고 뿌리가 없으니 어찌 가지와 잎 등이 생기겠는가?
034_0245_a_01L不說名姓及氏族, 如是魔事咸應知。
愚癡無智無方便, 無根寧有枝葉等,
『반야경』을 듣고 나서 다른 경을 구하는 것은 마치 온전한 코끼리를 버리고 도리어 다리만을 찾는 것과 같나니 어떤 사람이 온갖 맛있는 음식을 얻은 뒤에도 혹 쌀로 지은 밥을 얻으면 그것을 가장 맛있게 여기는 것과 같네.
034_0245_a_03L聞般若已別求經, 如棄全象返求足。
如人先得百味食, 或得稻飯爲上味,
보살이 먼저 반야를 얻은 후에 반야를 버리고 아라한과를 즐겨 구하거나 혹 이양(利養)을 즐겨 구하거나 족성(族姓)에 집착하여 가문의 자취에 머물러 있으면
034_0245_a_05L菩薩先得般若已, 棄捨樂求羅漢果。
或爲樂求於利養, 心著族姓留種迹,
저 정법(正法)을 버리고 법답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은 마군이 삿된 길로 이끌어 들인 것이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더없이 훌륭한 법을 들으면 반드시 그 법사(法師)를 깊이 믿고 존중하여야 하나니
034_0245_a_07L捨彼正法行非法, 是魔引入於邪道。
若人聞此最上法, 當於法師深信重,
법사는 마군을 알아서 몸이 쾌적하고 즐거운 것이나 쾌적하고 즐겁지 않은 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네. 또 셀 수 없이 많은 갖가지의 마귀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비구들을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하여 이 『반야경』을 지송(持誦)하려 할 때에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를 얻을 수 없도록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