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4_0503_a_01L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1)
034_0503_a_01L大宋新譯三藏聖教序

어제(御製)
034_0503_a_02L御製

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034_0503_a_03L大矣哉我佛之教也化導群迷闡揚宗性廣博宏辯英彦莫能究其旨微妙說庸愚豈可度其源義理幽玄眞空莫測包括萬象譬喩無垠綜法網之紀綱演無際之正教拔四生於苦海譯三藏之祕言天地變化乎陰日月盈虧乎寒暑大則說諸善惡細則比於恒沙含識萬端弗可盡述若窺像法如影隨形離六情以長存歷千劫而可久須彌納藏於芥子來坦蕩於無邊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034_0503_a_14L達磨西來法傳東土宣揚妙理順從指歸彼岸菩提愛河生滅用行於五濁惡趣拯溺於三業途中經垂世以難窮道無私而永泰雪山貝葉若銀臺之耀目歲月煙蘿起香界之自遠巍巍罕測杳杳難名所以道資十聖德被三賢至道起於乾元衆妙生乎太易摠繁形類竅鑿昏明絕彼是非開茲蒙昧
034_0503_b_01L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망울이 거듭 터진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034_0503_a_22L有西域法師天息災等常持四忍早悟三乘貝葉之眞詮續人天之聖教芳猷重運偶昌時潤五聲於文章暢四始於風律堂堂容止穆穆輝華曠劫而昏墊重明玄門昭顯軌範而彌光妙淨界騰音利益有情俱登覺岸成障礙救諸疲羸冥昧慈悲浩汗物柔伏貪很啓滌昏愚演小乘聲聞合其儀論大乘正覺立其性含靈悟而蒙福藏教缺而重興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034_0503_b_10L幻化迷途宅深喩雖設其教不知者多善念生而無量潛臻惡業興而隨緣皆墯調御四衆積行十方澍花雨於金輪恒沙於玉闕有頂之風不可壞無際之水弗能漂澄寂湛然圓明淸淨之智慧性空無染妄想解脫之因緣以離煩惱於心田可以得淸涼於宇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034_0503_b_18L朕慚非博學釋典微閑豈堪序文以示來者如縻螢爝火不足比之於皎日將微蠡量海未能窮盡於深淵者哉
034_0503_b_21L
대정구왕경(大正句王經) 상권
034_0503_b_21L大正句王經卷上


서천(西天) 역경삼장(譯經三藏) 조산대부(朝散大夫) 시광록경(試光祿卿) 명교대사(明敎大師) 신(臣) 법현(法賢)이 어명을 받들어 한역
034_0503_b_22L西天譯經三藏朝散大夫試光祿卿明教 大師臣法賢 奉 詔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34_0503_b_23L如是我聞
034_0503_c_01L어느 때 존자 동자(童子) 가섭(迦葉)은 교살라국(憍薩羅國)에서 차례로 다니다가 시리사대성(尸利沙大城) 북쪽에 있는 시리사숲의 녹야원(鹿野園)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대정구(大正句)라는 왕이 시리사성에 도읍하고 있었는데, 그 왕은 전부터 인과(因果)를 믿지 않아 매양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미래 세상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또한 화생(化生)도 없다.”
언제나 이러한 단견(斷見)을 가지고 있었다.
034_0503_c_01L一時尊者童子迦葉在憍薩羅國遊行次第至於尸利沙大城之北尸利沙林鹿野園中止住是時有王名大正句都尸利沙城其王先來不信因果每作是言無有來世無有人復無化生常起如是斷見
그때 시리사대성에 살던 큰 바라문과 장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사문 동자 가섭은 어떻게 이 성 북쪽에 있는 시리사숲의 녹야원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때 존자 가섭은 그 성안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성의 모든 인민들은 이전부터 ‘가섭은 설법을 잘하고 언제나 갖가지 미묘한 이치를 설명하며, 이미 병이 없어졌고 항상 두타(頭陀)를 행한다. 그는 곧 응공(應供)이고, 그는 큰 아라한이다’라고 들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제 여기 오셨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저 동산으로 가서 뵙고 공양하자”라고 하였다. 이에 성안의 큰 바라문과 장자들은 다 성 북쪽 시리사숲의 녹야원에 나아가, 문안 인사를 하고자 하였다.
034_0503_c_06L爾時尸利沙大城中有大婆羅門及長者主等互相謂曰云何此沙門童子迦葉來至此城之北尸利沙林鹿野園中是時尊者迦葉於彼城中名稱普聞而彼城中一切人民素聞迦葉善說法要常說種種深妙之義得無病常行頭陁是卽應供是大阿羅漢今旣來此我等宜共往詣彼林禮覲供養於是城中大婆羅門及長者等咸出城北往詣尸利沙林鹿野園中欲伸參問
034_0504_a_01L그때 대정구왕(大正句王)은 높은 누각 위에 있다가, 멀리서 성안의 바라문과 장자들이 다 같이 성을 나가, 북쪽에 있는 시리사숲의 녹야원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왕은 그것을 보고 측근의 신하[侍臣]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성안의 바라문과 장자들은 함께 성을 나가 시리사숲의 녹야원으로 가는가?”
신하가 말하였다.
“동자 가섭이라는 어떤 사문이 유행하며 교화하다가 여기까지 와서 큰 성 북쪽에 있는 시리사숲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안의 바라문과 장자들이 함께 성을 나가 뵙고 공양하려는 것입니다.”
034_0503_c_17L爾時大正句王在高樓上遙見城中婆羅門長者等同共出城行詣城北往尸利沙林鹿野園中王旣見已問侍臣曰云何城中婆羅門長者同共出城詣尸利沙林鹿野園中侍臣白有一沙門名童子迦葉遊化至此大城之北尸利沙林鹿野園中而爲止住是故城中諸婆羅門及長者等同共出城禮覲供養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신하에게 말하였다.
“너는 가서 저 바라문과 장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너희들은 일단 멈추고 조금만 기다려라. 나도 지금 빨리 가서 너희들과 함께 사문 동자 가섭을 뵐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내 생각에는, 너희 바라문과 장자들이 혹 저 사문 동자 가섭의 사특한 법에 인도되어, 지식에 의거하지 않고 망령되이 〈사람[人]이 있고, 다른 세상[他世]이 있으며, 또 화생(化生)이 있다〉고 말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034_0504_a_03L王聞所奏卽謂侍臣汝可往彼宣告彼衆婆羅門及長者等汝宜且止須臾小待我今速至當與汝等同共往彼禮覲沙門童子迦葉何以故如我意者或恐汝等婆羅門長者爲彼沙門童子迦葉邪法引導不依智識妄稱有人及有他復有化生
그때 그 신하는 왕의 명령을 받고 바라문과 장자들에게 가서 왕의 명령을 알리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정구대왕(正句大王)께서 너희들에게 고하기를, ‘우선 잠시 멈추라. 나는 빨리 가서 너희들과 함께 사문 동자 가섭을 뵐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신하는 왕의 명령을 전한 뒤에, 다시 돌아와 왕에게 말하였다.
“신(臣)은 명령을 받들고 바라문과 장자들에게 가서 성지(聖旨)를 빠짐없이 전하였습니다. 즉 바라문과 장자들을 우선 잠시 멈추게 하고 ‘왕께서 지금 빨리 가서 너희들과 함께 사문 동자 가섭을 뵐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명령을 받고는 멈추고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034_0504_a_10L時彼侍臣受王勅已婆羅門長者處宣示王勅謂彼衆言正句大王宣告汝等且止須臾我當速至與汝同往禮覲沙門童子迦葉人衆受勅不敢前進爾時侍臣傳王命已復還王處而上奏言臣適奉命往婆羅門長者衆處具傳聖旨令婆羅門與長者等且止須臾王今速至當與汝等同禮沙門童子迦葉彼衆奉命已止不進
034_0504_b_01L그때 정구왕은 수레를 장식하고 궁성을 나가, 바라문과 장자들과 함께 시리사숲의 녹야원으로 나갔다. 왕은 마음이 교만하여 수레가 통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동산 안의 존자가 머무르는 곳에 이르렀다. 정구왕은 바라문과 장자들과 함께 존자 동자 가섭을 보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음이 두텁지 못해 그다지 공경하거나 정숙하지 않았다. 왕은 존자와 서로 인사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러자 바라문과 장자들도 왕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정중한 예를 보이지 않고 모두들 왕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034_0504_a_19L時正句王嚴整車駕出於宮城與婆羅門及長者衆同共往詣尸利沙林鹿野之園王心憍慢所乘車駕至不通處方乃下車徒步而進行至園中尊者住處時正句王與婆羅門長者衆等見於尊者童子迦葉初未信重不甚恭肅王與尊者互伸問訊退坐一面時婆羅門長者衆等見王如是亦微鄭重咸共相與圍繞而住
그때 왕이 곧 물었다.
“존자 가섭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내 생각 같아서는 오는 세상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또한 화생도 없소. 내 생각은 이런데 존자는 어떻소?”
가섭이 대답하였다.
“왕께서 만일 그러한 바른 이치를 듣고 싶으시다면, 먼저 정성된 마음으로 확실히 믿으십시오.”
왕은 곧 대답하였다.
“좋소, 이르는 대로 하겠소.”
034_0504_b_05L爾時大王卽伸問言尊者迦葉當聽我語如我意者無有來世復無有人亦無化生我意如是尊者云何迦葉荅言王若樂聞如是正義先當誠心諦信而住王卽報言唯然受教
그때 가섭은 대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해와 달을 보고,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그 이치가 분명합니다. 모르기는 하나, 대왕께서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가섭이여. 이 해와 달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내가 보고 듣기로는 존자와 같습니다.”
“왕께서 보는 바와 같이, 해와 달이 있다고 한다면 오는 세상도 또한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전과 같은 소견을 고집하지 마십시오.”
가섭은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사문과 바라문, 나아가 응공(應供)ㆍ세간해(世間解) 같은 이도 인(因)과 과(果),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이 결정코 있는 줄을 알고, 지혜로 스스로 통하여 참되게 분명히 압니다. 대왕이여, 전과 같이 단견(斷見)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034_0504_b_10L爾時迦葉告大王言王見日月爲有無耶此世來世於理顯然不委大王當云何見當云何聞王言迦葉若此日月此世來世如我見聞同於尊者迦葉復言如王所見日月爲有來世亦然大王不應執如前見迦葉復言大王如沙門婆羅門乃至應供世間解等須知定有若因若果此世來世以智自通如實了知大王不應如前執於斷見
034_0504_c_01L그때 대왕은 미혹하고 집착해 살피지 못하고 가섭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시오. 내 생각 같아서는 진실로 오는 세상은 없소. 당신 가섭은 다시는 그런 억지말을 마시오.”
가섭은 다시 대왕에게 대답하였다.
“지금 왕의 몸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만일 왕께서 이 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단견으로써 오는 세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또 그 이치를 어떤 비유로 증명하시겠습니까?”
034_0504_b_20L爾時大王迷執未省謂迦葉言汝今云何作如是言如我意者實無來世而汝迦葉勿復强言復次迦葉報大王言卽今王身爲有無耶如王此身以爲有者云何斷見言無來世當以何喩證於此理
대왕이 대답하였다.
“존자 가섭이여, 내게는 지금 그 이치를 증명할 비유가 있소. 지금 이 몸은 있으나 오는 세상은 없소. 가섭이여, 내 친족이 병에 걸려 오래 앓다가 장차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 나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고 이렇게 말하였소.
‘너는 병이 위중해서 분명히 회복이 안 될 것 같다. 혹 운명하게 되면 꼭 부탁할 말이 있다. 나는 전에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만일 사람이 계(戒)를 깨뜨리고 악업을 지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이 진실이라면 너를 비롯한 우리 친족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너를 비롯한 우리 친족은 계를 깨뜨리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네가 악취(惡趣)에 있게 되거든, 사자를 보내든지 혹은 네가 직접 와서 지금 지옥에서 지독한 고초를 받는다고 내게 알려다오. 만일 네가 와서 알리면 내가 꼭 가서 구원하리라.’
그러나 가는 사람만 있었고 아직 온 사람은 없었소. 가섭이여, 나는 이것이 결정코 오는 세상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다고 생각하오.”
034_0504_c_02L大王荅言尊者迦葉我今有喩證於此今身是有來世卽無王言迦葉我親屬或染疾病纏緜旣久將趣命我時往彼問訊告言汝病深重定知不可若是殞歿切有相囑我聞沙門及婆羅門先有是言若人破戒造惡業者命終之後墮於地獄如沙門婆羅門等言若眞實汝等親屬命終之後必墯地獄何以故汝諸親屬破戒造罪以此當知定落惡趣若在惡趣當遣使來或復自來告語於我今在地獄極受苦楚汝若來報我必往救但有去人曾無來者迦葉如我之意以此爲喩定無來世
가섭은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그 비유를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바른 말이 아닙니다. 제가 이제 왕께 묻겠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왕의 법을 범해 순수(巡守)꾼에게 잡힌 것과 같습니다. 순수꾼은 그를 데리고 왕에게 가서 이렇게 아룁니다.
‘이 사람은 이러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히 덮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왕은 그 말을 듣고, 곧 유사(有司)에게 명령합니다.
‘그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어 몸을 꼼짝 못하게 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네거리로 끌고 나가, 이 죄인은 이러한 법을 범하였다고 북을 치면서 알려라. 동ㆍ서ㆍ남ㆍ북의 온 성안 사람들이 다 들어 알게 한 뒤에,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법에 의해 처단하라.’
034_0504_c_16L迦葉報言大王此喩雖陳未爲正說我今問王譬如有人犯於王法爲巡守者執之將至王所而白王言是人違犯如是之罪不敢隱覆王聞所奏卽勅有司令將罪人反縛兩手牢固其身驅往四衢多人聚處鳴鼓告示今此罪人犯如是法東西南北徧於城內咸使聞知後將出城依法處斷
034_0505_a_01L유사는 명령을 받고, 곧 죄인을 잡아 두 손을 뒤로 묶어 몸을 꼼짝 못하게 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네거리로 끌고 나가 이 죄인은 이러한 법을 범했다고 북을 치면서 외칩니다. 동ㆍ서ㆍ남ㆍ북의 온 성안에, 왕의 명령을 따라 곳곳에 고시하여 백성들이 다 알게 한 뒤에는, 성 밖으로 끌고 나가 법에 의해 처단합니다. 그 죄인이 형장(刑場)으로 나갈 때 감수(監守)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 조금만 놓아 주면 잠깐 집에 가서 친척들에게 하직하고 오리라’고 한다면, 대왕이여, 그 감수는 집에 다녀오도록 잠깐 놓아 주겠습니까?”
034_0505_a_01L有司奉命卽將罪人反縛兩手牢固其身驅往四衢多人聚處鳴鼓告示今此罪人犯如是法東西南北徧於城內准王宣命處處告示仕庶知已驅領出城依法處斷如此罪人臨赴法時告監守言願垂哀愍放我少時暫至家中辭別親屬大王彼監守人還敢暫放令歸家不
왕은 말하였다.
“아니오, 가섭이여. 그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게 빌더도 그 감수는 감히 놓아 주지 않을 것이오. 무슨 까닭인가? 왕 법에 따르면 잠깐의 석방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오.”
존자 가섭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왕의 친척들이 죄업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 지옥에 떨어져, 그 죄업으로 항상 고초를 받는다고 합시다. 그 죄인들이 옥졸(獄卒)에게, 인간 세계로 돌아가 왕에게 가서 이 고통을 구원해 주기를 청하게 잠시 놓아달라고 한다면 대왕이여, 그 옥졸이 과연 기꺼이 놓아 주겠습니까?”
“아니오.”
034_0505_a_09L王言不也迦葉設使此人種種哀切彼監守人亦不敢放何以故王法所錄無容暫赦者迦葉復言大王王諸親屬以罪業命終之後墮地獄中以其罪業常受苦楚是諸罪人告其獄卒乞暫相放還歸人間至於王所求王救苦是地獄卒還肯放不王言不也
가섭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그 이치는 세간에서 잠깐도 놓아 주지 않는 이치와 같습니다. 대왕이여, 그 비유를 가지고 오는 세상과 같다고 하지 마십시오. 단견을 고집하는 것은 바른 이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금세가 있으면 반드시 내세가 있고, 나아가 사문과 바라문ㆍ응공ㆍ세간해도 지혜로써 스스로 통해 그 진실을 밝게 아십니다. 다시 전과 같은 소견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왕은 다시 대답하였다.
“존자 가섭이여, 그 말은 당치 않고, 내 마음에 들지도 않소. 다시는 진실로 후세가 있다고 말하지 마시오.”
034_0505_a_16L葉復言大王義同世間無暫放理勿將此喩同於來世執斷見者非爲正理是故當知有今世者定有來乃至沙門婆羅門應供世間解智自通了知眞實不應更執如前之王復報言尊者迦葉斯言非當我意未允不應更言實有後世
034_0505_b_01L가섭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왕의 뜻이 그러시다면 다시 그것을 증명할 만한 비유가 있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가섭이여, 나는 이제 다시 그것을 증명할 만한 친족의 비유가 있소. 가섭이여, 내 친족이 중병에 걸려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 나는 그 병자에게 이렇게 부탁하였소.
‘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만일 사람이 계를 지키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혹은 3윤(輪)이 청정하게 은혜를 베풀고 남의 훌륭한 점을 보아도 질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천상에 태어난다.〉
034_0505_a_23L復次迦葉報大王言王意如是勿更有喩可爲證耶王言迦葉我今更有親屬之喩可以爲證迦葉如我親屬染於重病將其命斷還當付囑告病人言我聞沙門及婆羅門常作是說若人持戒修諸善法或有惠施三輪淸淨見他殊勝不生嫉意是人命盡生於天界
만일 그 사문이나 바라문의 말이 진실하다면, 너는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네가 언제나 계를 갖추고 착한 법을 닦으며, 3윤이 청정하게 은혜를 베풀며, 남이 훌륭하다 하여 질투를 내지 않는 것을 보았으니, 그 때문에 반드시 천상에 날 줄을 아는 것이다. 만일 천상에 나거든 사자를 보내든지 혹은 직접 와서 지금은 어느 하늘에 태어나 쾌락을 받는다고 내게 알려다오.’
가섭이여, 만일 내 친족들이 진실로 하늘에 났다면 반드시 내게 와서 알렸을 것이오. 어째서 친족들은, 죽는 자만이 있고, 와서 알리는 사람은 없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아시오, 결정코 내세는 없는 것이오.”
034_0505_b_08L若彼沙門及婆羅門所言誠實汝之命終必生天界何以故觀於汝常具戒品及修善法三輪淸淨而行惠施仍於他勝不生嫉意此當知定生天界若得生天當遣使或復自來用報於我卽今已得生於某天受於快樂迦葉我諸親屬若實生天必來相報云何親屬但見終歿無來報者以此當知定無來世
034_0505_c_01L가섭이 다시 대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제 다시 비유를 말하여, 왕으로 하여금 진실로 내세가 있음을 알게 하겠습니다. 대왕이여, 비유하면, 더러운 뒷간은 가까이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해 그 속에 빠져 더러운 냄새를 견디지 못하다가, 방법을 써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오자 곧 온갖 향을 피우고,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다시 바르는 향을 그 몸에 발랐습니다. 몸이 향기롭고 깨끗해지자, 또 뛰어나고 묘한 가시가(迦尸迦)옷과 보배와 화만(華鬘)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자기 집에 살면서 쾌락을 누렸습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이 과연 전에 빠졌던 그 뒷간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아니오, 가섭이여, 뒷간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곳이오.”
가섭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하늘에 태어난 그 사람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이미 하늘에 났는데 무엇하러 다시 인간 세계에 돌아오려고 생각하겠습니까?
034_0505_b_16L葉告大王言我今亦欲重說譬喩王得見實有來世大王譬如穢坑臭不可近時有一人悞墮其中臭穢難堪方便得出身旣出已卽用諸香煮水沐浴復以塗香以塗其身身旣香又以殊妙迦尸迦衣及珍寶花鬘莊嚴其身住於家中受其快樂大王於意云何如是之人還復樂入前穢坑不王言不也迦葉彼穢惡坑人非所樂迦葉復言大王彼人生天亦復如是旣得生天豈復更思還來人間
또 대왕이여, 인간의 백 년은 도리천(忉利天)의 하루입니다. 대왕의 친족들이 온갖 착한 법을 닦아 이미 천상에 태어나 밤낮으로 쾌락을 누린다면, 무엇하러 다시 돌아와 ‘나는 천상에 태어나 밤낮으로 쾌락을 누린다’고 왕에게 알리려고 생각하겠습니까?’ 대왕이여, 당신께서는 저 하늘 사람과 수명이 같습니까?”
“아니오, 가섭이여.”
“대왕이여, 천상 세계와 인간 세계는 본래부터 다른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처럼, 와서 알리기를 바라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후세가 있다는 것을 믿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왕이여, 저 사문ㆍ바라문ㆍ응공ㆍ세간해까지도, 후세가 진실로 있다고 자기의 지혜로 참되게 분명히 아십니다. 다시 후세가 없다는 소견을 내서는 안 됩니다.”
034_0505_c_04L復次大王人間百年等忉利天是一晝夜大王親屬修諸善法旣生天界晝夜受樂豈復更思還來報王生天界晝夜受樂大王汝與天人壽命長短爲相等不王言不也迦葉葉復言大王天界人界本自懸隔應如愚顒望相報然後方可信有後大王彼沙門婆羅門應供世間解乃至後世須知實有可以自智如實了知不應更作無後世見
034_0506_a_01L왕은 가섭에게 말하였다.
“존자의 말과 같다면 나는 역시 믿을 수 없소.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인간 백 년이 도리천의 하루와 같다면 어떤 사람이 와서 ‘인간의 백 년은 도리천의 하루와 같다’고 당신에게 알리던가요?”
가섭은 다시 말하였다.
“왕의 소견은 비유하면 선천적인 장님과 같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선천적인 장님은 본래부터 청ㆍ황ㆍ적ㆍ백과 가늘고 아름다움과 굵고 나쁨과 길고 짧음의 빛깔과 모양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곧 이렇게 말합니다.
‘본래부터 그런 청ㆍ황ㆍ적ㆍ백과 가늘고 아름다움과 굵고 나쁨과 길고 짧음의 빛깔과 모양은 없다.’
또 ‘나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선천적 장님은 자기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곧 ‘본래부터 청ㆍ황ㆍ적ㆍ백과 나아가 길고 짧음의 빛깔과 모양은 없다’고 고집해 말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빛깔과 모양이 없다’고 고집하는 선천적 장님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034_0505_c_14L王報迦葉如尊者言亦未可信何以故所云人間百年等忉利天爲一晝夜有何人來告語於汝人間百年等忉利天爲一晝夜迦葉復言如王所見喩生盲何以故生盲之人本自不見靑黃赤白細妙麤惡長短色相便作是言本無如是靑黃赤白細妙麤惡長短色相又言我亦不知我亦不見是生盲人以己不見便乃執云本無如是靑黃赤白乃至長短色相大王勿同生盲執無色相
왕은 가섭에게 말하였다.
“내 생각 같아서는, 만일 저 천상 세계가 진실로 있다면 나도 곧 있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본래부터 진실로 없는데, 어떻게 나로 하여금 진실로 있다고 말하라 하시오?”
다시 가섭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오. 무슨 까닭인가? 내 소견이 본래 바른데, 어째서 나를 저 선천적 장님과 같다고 비유하시오. 가섭이여, 당신이 아까 말한 하늘에 태어난다는 따위의 일을 나는 진실로 믿지 않소.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고, 칼이 몸을 찌르는 것과 같으며, 산 위에서 몸을 떨어뜨려 목숨을 스스로 해치는 것과 같을 것이오. 이러한 모든 악을 나는 다 멀리 떠났소.”
034_0506_a_02L王言迦葉如我意者而彼天界若實有者我卽言有旣實本無云何令我說云實有復言迦葉汝非善人何以故我見本正云何喩我同彼生盲迦葉汝前所說生天等我實不信若信此言如食毒藥如刃臨身如上山墜身自害其命如是諸惡我皆遠離
가섭은 다시 대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옛날의 어떤 바라문을 기억합니다. 그는 큰 부자요, 또 나이가 많았습니다. 외아들이 있어 나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는데, 그 어머니가 죽자, 그 바라문은 홀아비로 지낼 수 없어 다시 장가들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아내는 아기를 배었으나, 아이를 낳기 전에 그 바라문은 이내 죽었습니다. 그때 그 아들이 계모에게 말하였다.
‘우리집 재물과 금ㆍ은ㆍ보배와 일체 수용(受用)하는 기구까지도 다 내 것입니다. 내 재물을 갈라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034_0506_a_09L復次迦葉報大王言我念往昔有婆羅門家中巨富又乃耆年唯有一子年纔十六母卽喪亡彼婆羅門不能鰥獨遂再婚娶未久之間妻乃有妊妻未生產其婆羅門尋亦命終於是其子白繼母言家中財物金銀珍寶乃至一切受用之具悉屬於我更無別人分我財物
계모는 이 말을 듣고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배고 있는 이 아기는 네 아버지가 남긴 몸이니, 그 애가 자라나기를 기다렸다가, 너와 똑같이 나누리라.’
그때 그 아들은 다시 그 일을 주장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이는 아직 나이 어리고 또 성질이 미련하여, 비록 깊은 말을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 재물이 욕심나고 아까워 빨리 몸을 풀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달이 차기 전에 속히 해산하려 하다가 도리어 배었던 아기를 죽였습니다. 대왕이여, 그 여인은 탐욕과 질투 때문에 도리어 배었던 아기를 죽인 것처럼, 대왕께서는 지금 그 어리석음 때문에 단견을 가지는 것입니다.”
034_0506_a_17L時彼繼母聞子語已卽告子言我今所懷汝父遺體待其長育與汝均分其子時復再言其事母起思念此子年幼情性癡騃雖與深言未能分曉又以貪惜欲疾㝃身多設方便求於速產日月未滿返損其大王彼之女人以貪嫉故返損其大王今者以愚癡故起於斷見
034_0506_b_01L왕은 다시 말하였다.
“가섭 존자여, 아까와 같이 말하지 마시오. 계를 지키며 착함을 닦고 보시를 행하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나서 수명이 길고 언제나 쾌락 속에 산다고 하지만, 나는 진실로 믿지 않소. 내가 만일 가섭의 말을 믿는다면, 그것은 독약을 먹고 칼을 받들며, 높은 산에서 떨어져 스스로 그 목숨을 해치는 것이오. 가섭이여, 왜 그런 말을 고집하는 것이오. 내 생각 같아서는 확실히 사람도 없고, 후세도 없으며, 또한 화생도 없소.”
034_0506_b_01L復報言迦葉尊者莫如前言持戒修善及行惠施命終之後得生天上壽命長遠常處快樂我實不信我今若信迦葉之語是食毒藥是受刀劍墜高山自害其命云何迦葉堅作是如我之意定無有人無有後世亦無化生
가섭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그것을 증명할 만한 다른 비유는 또 없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가섭이여, 나는 다시 비유를 들어 이 일을 증명하리니, 사람도 없고, 후세도 없으며, 또한 화생도 없는 줄 아시오. 가섭이여, 내 친족이 혹 중병에 걸렸을 때 나는 곧 가서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를 위문하고 말하기를, ‘돌아와서 내게 그 괴로움을 말하라’ 하였소.
그러나 목숨을 마치고 내게 와서 괴로움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소. 이로써 결정코 후세도 없고, 또한 화생도 없는 줄 알았소.”
034_0506_b_08L復次迦葉告大王言莫復有喩證於斯事王言迦葉我復有喩證於斯事知無有人無有後世亦無化生迦葉如我親屬或染重病我卽往彼安慰問訊命未斷者還與我語說其苦惱及命終已無有與我說苦惱者以此可知定無後世亦無化生
가섭은 말하였다.
“저는 기억합니다. 옛날에 한 부락이 있었는데, 그 부락 사람들은 고둥 모양을 알지 못하였고, 또한 아직 고둥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다른 데서 와서 그 부락에 머물렀습니다. 그 사람은 항상 고둥 하나를 가지고 그것으로 업을 삼아, 날마다 고둥을 가지고 성상(聖像)에 가서 고둥을 울려 공양하고, 공양을 마친 뒤에는 다시 사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 부락의 모든 사람들은 느닷없는 고둥 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우리들이 들어보지 못한 소리다.’
034_0506_b_15L迦葉告言我念往昔有一聚落其中人民不識螺相亦復未曾聞其螺聲忽有一人從外而來到彼聚落而便止住是人常持一螺以爲功業每日執螺詣於聖像鳴螺供養供養已訖復還住處時聚落中一切人民忽聞螺聲咸悉驚怪互相謂曰此是何聲我等衆人本所不聞
034_0506_c_01L대왕이여, 그때 그 부락의 모든 사람들은 고둥 있는 곳으로 가서 고둥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바른 대로 대답하라. 만일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를 깨뜨려 버리리니, 고둥아, 우리 뜻을 알았으면 빨리 그 까닭을 말하라.’
대왕이여, 그 사람들은 그 고둥 모양과 고둥 소리를 일찍이 보지도 못하였고 듣지도 못하여, 그 고둥으로 하여금 물음에 대답하도록 하려 하였으나 고둥은 정(情)이 없었으니, 어떻게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슨 까닭인가? 대왕께서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목숨을 마친 사람과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사람이 이미 목숨이 다했는데 어떻게 다시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사람도 없고, 후세도 없으며, 또한 화생도 없다’는 그런 소견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034_0506_b_23L大王時聚落中一切人衆共往螺處問彼螺言爾從何來可依實荅若不言實我當破汝螺知我意速說其由大王彼人民衆於其螺相及與螺聲本所不見本所不聞使其螺共爲問荅螺旣無情豈能言何以故亦如大王與命終人欲共言論人旣命盡豈能再言大王不應執如是見謂無有人及無後世亦無化生
가섭은 다시 말하였다.
“천안(天眼)을 가진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깨끗한 천안으로 사람이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고, 좋거나 나쁘고, 단정하거나 추한 몸을 받는 것과, 혹은 하늘에 나고, 혹은 나쁜 곳에 떨어지는 것을 모두 봅니다. 대왕이여, 이러한 일이 다 그 증거가 될 만한 것이니, 다시는 후세도 없고 화생도 없다고 말씀하셔서는 안 됩니다.”
왕은 말하였다.
“가섭이여, 비록 그런 비유를 들었지만 내 뜻에는 차지 않소. 내 소견 같아서는 결정코 사람도 없고, 화생도 없으며, 후세도 또한 없소.”
034_0506_c_09L迦葉復言有沙門婆羅門具天眼者以淨天眼悉見於人死此生彼受身好惡端正醜陋或得生天或墮惡趣大王如是等事皆可爲證不應更言無有後世亦無化生王言迦葉雖說此喩我意未允如我之見定無有人亦無化生及無後世
034_0507_a_01L가섭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다시 어떤 비유로, 사람도 없고 후세도 없으며 화생도 또한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존자여, 비유하면 관리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 또는 녹을 먹는 사람이 스스로 법 조목을 어겨 뒤에 고발(告發)을 당하였을 때에, 왕은 드디어 사실을 알고 법사(法司)에게 명령하여, 죄를 저지른 사람을 잡아 법대로 처리하라고 하였소. 왕은 다시 명령하기를,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의 두 손을 묶어 법정에 끌고 가서 심하게 다스리되, 밧줄로 묶어 그 무게를 저울에 단 뒤에, 껍질을 벗기고 살을 베어 다른 곳에 달아 두면, 그 사람은 아직 목숨이 있어 그 고통을 느끼다가, 만일 목숨이 끊어지면 아무 소리도 없어지오. 또 그 죄인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기 전에는 몸이 부드럽고 연하다가 목숨이 끊어진 뒤에는 그 몸이 빳빳해지며, 가볍고 무거운 데 있어서도 살았을 때와 죽은 때가 같지 않소.
존자여, 나는 이로써 결정코 후세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다시 화생도 없다는 것을 아오.”
034_0506_c_15L復次迦葉告大王言若如是者復有何喩可證無人亦無後世及無化生王言尊者譬如官吏執法理人及其臨莅自違條制後被彈奏王遂具知乃勅法司將犯罪人依法斷理王復令彼犯罪人可縛雙手將赴法處而苦治之以繩繫縛秤秤輕重割皮削肉懸置異處是人命在知其痛苦命已斷自無聲息又彼罪人命末斷時身卽柔軟命旣斷已其身殭硬於輕重死活不同尊者我以此知定無來世亦無有人復無化生
가섭은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유하면 철환(鐵丸)에도 또한 가볍고 무거움과 부드럽고 단단함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쇠도 뜨거울 때에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그 쇠가 식은 뒤에는 무겁고 또 단단합니다. 대왕이여, 정이 있는 것이나 정이 없는 것이나 다 4대(大)를 받아 생겨난 것입니다. 그 4대가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부드럽고 단단함과 차고 뜨거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니, 이 이치를 가지고 후세와 화생 따위에 견주지 마십시오. 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진실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혹 천안을 가지고,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과 나아가, 단정하고 추함과 혹은 천상에 나고 혹은 나쁜 곳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진실로 후세와 화생 따위가 있다는 것을 다 증득해 압니다.”
왕은 말하였다.
“존자여, 당신의 말은 진실하다고 할 수 없소. 내 뜻에는 진실로 사람도 없고 후세도 없으며, 화생도 또한 없소.”
034_0507_a_04L迦葉復大王於意云何譬如鐵丸亦有輕重軟硬之異其鐵熱時體輕而軟鐵冷後體重而硬大王有情無情皆稟四大以彼四大有其合散是有軟硬冷熱之異勿將此理比於後世及化生等大王須知實有彼沙門婆羅門或具天眼者見於衆生死此生彼至端正醜陋或生天上或墯惡趣可證知實有來世及化生等王言如汝所言未爲誠信我之意者實無有人無有後世亦無化生
大正句王經卷上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 : 이 서문은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982)에 천식재(天息災)가 『성불모경(聖佛母經)』을, 법천(法天)이 『길상지세경(吉祥持世經)』을, 시호(施護)가 『여래장엄경(如來莊嚴經)』을 각각 번역하여 올리자 송나라 태종(太宗)이 이를 치하해 지은 것이다.
  2. 2)상법(像法) : 부처님의 열반 뒤에 정법(正法)ㆍ상법(像法)ㆍ말법(末法)으로 나누어진 교법의 세 시기 중의 하나이다. 열반 후 500년부터 1000년까지의 시기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따르지만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는 시기를 말한다.
  3. 3)육정(六情) : 육근(六根) 또는 육근이 발생시키는 정식(情識)을 말한다.
  4. 4)설산은 인도, 패엽은 불교경전을 뜻한다.
  5. 5)연라(煙蘿) : 연하등라(煙霞藤蘿)의 준말로, 안개와 노을이 자욱하고 등나무 여라덩굴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이다. 깊은 산이나 은둔처를 의미한다.
  6. 6)향계(香界) : 향기 자욱한 세계라는 뜻으로,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7. 7)십성(十聖) : 10지(地)의 보살을 말한다.
  8. 8)삼현(三賢) : 10주(住)・10행(行)・10회향(回向)의 위(位)에 있는 보살을 말한다.
  9. 9)건원(乾元) : 하늘의 도(道)이며, 천덕(天德)의 시초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이를 힘입어 비롯되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하도다.[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하였다.
  10. 10)태역(太易) : 기(氣)가 분화되기 이전 최초의 상태이다.
  11. 11)천식재(天息災) 등 : 역경원에서 번역을 주도했던 천식재(天息災)와 법천(法天)과 시호(施護)를 말한다.
  12. 12)사인(四忍) : 무생법인(無生法忍)・무멸인(無滅忍)・인연인(因緣忍)・무주인(無住忍)을 말한다. 인(忍)은 인가(忍可)・안인(安忍)의 뜻으로, 진실을 수긍하고 안주(安住)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13. 13)오성(五聲) : 오음(五音)이라고도 한다.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가지 음조를 말한다.
  14. 14)풍율(風律) : 시나 음악의 운율을 말한다.
  15. 15)사시(四始) : 사성(四聲)이라고도 한다.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이니, 사성으로 음운(音韻)의 고저(高低)와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을 구분한다.
  16. 16)화택(火宅) : 삼계(三界)가 탐욕 등의 번뇌로 어지러운 것을 불타는 집에 비유한 것이 『법화경』 「비유품」에 나온다.
  17. 17)천식재(天息災)가 『분별선악업보경(分別善惡報應經)』을 번역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8. 18)금륜왕[金輪] : 4종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제왕을 말한다.
  19. 19)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 : 비람풍(毘嵐風)을 말한다. 우주가 파괴되는 시기에 이 바람이 불어 인간세계로부터 위로 색구경천까지 차례로 파괴한다고 한다. 유정천은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가장 마지막에 파괴된다.
  20. 20)석전(釋典) : 석가의 가르침을 담은 전적, 즉 불교서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