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제석천주(帝釋天主)가 부처님께서 마가타국 비제희산 제석 바위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오계건달바(五髻乾闥婆)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느냐? 내가 들으니 부처님께서 마가타국 비제희산 제석 바위에 계신다 하니, 너와 함께 가서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려고 한다.” 오계건달바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네, 매우 좋습니다, 천주시여.”
034_0563_b_01L그때 제석천주가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산에 저렇게 미묘하고 이상한 빛이 있는 것을 보느냐? 부처님께서 이 산에 계시어서 네 가지 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또 이 산에 있는 전당(殿堂)들은 다 보배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주위에 사는 사람들도 번뇌가 다하고 모두 성자의 도를 증득하였으며, 나아가 큰 힘을 가진 여러 하늘도 늘 여기에 머무른다.”
여보 어지신 일광 아씨여 마땅히 아버님께 청을 들여서 나랑 함께 짝을 지어 같이 삽시다. 이내 맘 알아주오, 어진 아씨여.
034_0563_b_15L汝日光賢女, 當請求父王, 與我爲眷屬,
是知汝賢良。
그대를 연모하는 이내 심정은 열병에 걸린 이가 몸이 달아서 시원한 자리를 생각하는 듯 목마른 저 사람이 물 생각하듯
034_0563_b_17L我所戀慕汝, 譬如熱惱者,
思念於淸涼, 如渴人思水。
병들어 앓는 이가 약 생각하듯 굶주린 젊은이가 밥 생각하듯 커다란 코끼리가 고리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과 같네.
034_0563_b_18L如病者思藥,
如飢者念食, 如大象被鉤, 而不能前詣。
그리고 성현님네 아라한들이 즐거이 열반 법을 구하듯이 내 지금 온갖 소원 바라는 것은 그 뜻도 또한 다시 이와 같구려.
034_0563_b_19L又如阿羅漢, 樂求寂滅法, 今我所求願,
其義亦復然。
탐심과 욕심 번뇌 더욱 더하여 이것이 참다운 것 아니건마는 소원을 바라도 이루지 못해 괴로운 온갖 번뇌 모두 받았네.
034_0563_b_21L貪欲增煩惱, 此無有眞實,
不果所願求, 受種種苦惱。
이내 몸 지은 복과 좋은 업으로 아라한 성현님께 공양하여서 과보를 얻게 되면 모두 다 바쳐 마땅히 그대 함께 같이 하리다.
034_0563_b_22L我所作福業,
供養阿羅漢, 所獲得果報, 當與汝共之。
034_0563_c_01L 내가 일광 아씨 그리워함은 이 마음 단단하여 변치 않으리. 저 모든 하늘 무리 제석천주여
마땅히 나의 소원 이뤄 주소서.
034_0563_b_23L我求日光女, 是意甚堅固, 帝釋諸天主,
當施我所願。
이때에 부처님께서 제석 바위에서 천이통으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곧 신통력으로 멀리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씀하셨다. “참 잘한다. 건달바 왕자여, 네가 악기를 어루만져 줄을 탈적에 나오는 미묘한 소리는 마치 아름답고 묘한 노랫소리와 같고, 노랫소리를 지을 때는 다시 줄에서 나는 소리와 같구나. 이것이 무슨 이유인가 하면, 오랫동안 줄로써 음악을 단련하였으므로 그 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노랫가락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니라. 또 노래 속에 세 가지 소리를 연주하였기 때문이니, 사랑스럽고 즐거운 소리[愛樂音]ㆍ용의 소리ㆍ아라한의 소리이니라.”
그때 오계건달바 왕자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멀리서 들려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옵건대 지난날에 건달바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동모라(凍母囉)였습니다. 그 왕에게 일광(日光)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여 권속을 삼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녀 앞에서 이와 같은 음악을 하여 악기의 줄에서 노랫가락이 연주되고 노랫가락 속에 세 가지 소리를 연주하였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 음악을 연주할 때에 선법회(善法會)에 있던 하늘 무리들이 서로 말하기를 ‘오계건달바 왕자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나 보네. 우리 부처님께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으니,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034_0564_a_01L 그러기에 제가 여러 하늘에게 말하기를 ‘너희들 모든 하늘들이 부처님의 덕을 잘 찬양하는구나’라고 하니, 모든 하늘들이 대답하기를 ‘오계건달바 왕자여, 우리들이 부처님 찬양한 공덕을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대답하기를 ‘그대들이여, 내가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리라’고 하였나이다. 제가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향하여 이런 음악을 아뢰었나이다.”
그때 제석천주가 생각하기를 ‘이제 오계건달바 왕자는 인연이 성숙되어 부처님 앞에 가기도 전에 벌써 공양을 베풀었도다’고 하고 나서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말을 자세히 듣고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 여쭙되 ‘천주 제석이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절을 하고 문안하기를 병이 없으시고 괴로움도 없으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며 드나드시는 데 피로함이 없으시옵니까? 제가 이제 도리천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와 모시고 공양하려 하오며 부처님 뜻을 듣잡고자 하나이다’고 하여라.”
그리고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을 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제석의 분부대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석천주와 도리천 무리들이 저를 시켜서 이곳에 가 부처님 두 발에 절하옵고 병이 없으시고 피로가 없으시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며 드나드심에 피로함이 없으신가 물으며, 그들이 오늘 부처님께 와서 모시고 공양하려 하여 저를 보내어 부처님의 뜻을 듣잡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사실이 있었노라. 그 부인이 너를 대신하여 공경스럽게 문안한 일이 있었노라.”
034_0564_b_13L佛言:“帝釋!此事實爾。而彼夫人曾代於汝致敬問訊。”
부처님께서는 또 이어 말씀하셨다. “천주여, 내가 삼매에 들었을 적에도 또한 너의 말을 들었고,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바로 삼매에서 깨어 나왔노라.”
034_0564_b_15L佛又告言:“天主!我在三昧亦聞汝語,其後非久,卽出三昧。”
그때 제석이 이 말씀을 듣고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일찍이 듣자오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큰 이익을 지으실 적에, 커다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인도하시어 혹 사람의 형상을 숨기시고 하늘의 형상을 나타내신다’ 하더니, 제가 이제야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큰 이익을 지으시어 좋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인도하실 적에 혹 숨기도 하시고 혹은 나타나시기도 하옵니다.
034_0564_c_01L 부처님이시여, 옛적에 석가 족의 딸로서 밀행(密行)이라는 이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깨끗한 계행을 지니며 늘 여인의 몸을 싫어하고 남자의 형상을 바라더니 목숨이 다한 뒤에 도리천에 태어나서 저의 아들이 되었는데 이름을 밀행이라 하였습니다. 큰 위력을 갖추었으니 이것이 대장부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생각하시기를 ‘제석천주가 긴 밤중에 게으름이 없고 중도에 폐지함이 없으며 번뇌와 허물도 없으니 그가 묻는 것은 진정코 몰라서 묻는 것이요, 부질없이 마군(魔軍)의 희롱을 하는 것이 아니니, 묻는 것을 마땅히 대답해 주리라’고 하시고 곧 게송으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워함과 사랑함이 번뇌가 되느니라. 제석천주여, 모든 하늘ㆍ인간ㆍ아수라ㆍ건달바와 다른 온갖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아, 내가 저들에게 먼저 침해한 일이 없고, 또 억울하게 한 일도 없으며 싸우지 않고 다투지도 않았으며, 소송하거나 대립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도리어 이런 일을 하는고?’ 하나니, 온갖 허물을 남에게 원망만 하나니라. 이와 같은 일이 미움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니, 미움과 사랑이 일어나므로 드디어 번뇌가 생기느니라.”
이때 제석천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들은 뒤라 기뻐하여 의심 없이 믿고 그대로 받아 지니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어떤 원인에서 어떻게 모이며 어떻게 생기며 어떻게 인연하옵니까? 또 어떤 원인으로 있게 되오며 어떤 원인으로 없어지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석천주여, 미움과 사랑의 번뇌는 원망하는 것과 친절한 것이 원인이 되고, 원망하고 친절하므로 모음[集]이 되며, 원망과 친절함으로부터 생기고 원망하고 친절함이 인연이 되느니라.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있나니, 만일 원망함과 친절함이 없으면 미움과 사랑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것이 원인이 되며 허망으로 좇아 모이며, 허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허망에 의하여 반연하느니라. 허망한 까닭으로 의혹이 있기 때문에 욕심낼 바가 있고, 욕심으로 인하여 원망함과 친절함이 있게 되고,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미움과 사랑이 있게 되며, 미워하고 사랑하므로 칼을 잡고 서로 겨누며 소송하고 다투며 아첨하고 꾸며대어 말이 진실치 못하나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을 일으키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의 무더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니라.
034_0566_a_01L 제석천주여, 만일 허망함이 없으면 곧 의혹이 없고, 또 의혹이 없으면 욕심낼 것이 없으며, 욕심낼 것이 없으면 원망함과 친절함이 어찌 있으며, 원망함과 친절함이 성립되지 않으면 미워함과 사랑함이 저절로 없어지리라. 미움과 사랑이 없으므로 칼을 서로 겨누거나 소송하거나 다투고 아첨하며 꾸며대는 마음과 진실치 못한 말을 하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이 다 없어질 것이니라. 이렇게 되면 커다란 고통의 무더기가 저절로 없어지리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허망으로 인하여 곧 의혹 됨이 있었나이다.”
034_0566_a_02L帝釋白佛言:“如是,如是,如佛所說,因疑惑故則有虛妄。”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면 허망한 것은 무슨 법으로 없애오며 비구는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오리까?”
034_0566_a_04L復白佛言:“世尊!虛妄之法以何法滅?乃至苾芻當云何行?”
부처님께서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함을 없애는 데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이 있느니라.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 함은,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생각[正思惟]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위[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노력[正精進]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이니라. 이 여덟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허망함을 없앨 수 있느니라. 만약 모든 비구들이 이 법을 실행하면 이는 곧 허망을 없애는 행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법이란 것은 별해탈법 가운데 여섯 가지 법[六種法]이 있으니, 그 여섯 가지는 눈으로 빛을 보는 것, 귀로 소리를 듣는 것, 코로 냄새를 맡는 것, 혀로 맛을 보는 것, 몸으로 부딪힘[觸]을 아는 것, 뜻으로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것 등이니라.
천주(天主)여, 눈으로 빛을 보는 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가히 볼 것과 가히 보지 못할 것이 그것이니라.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온갖 더러운 법 경계는 가히 보지 않는 것이요, 가히 볼 것이라 함은 온갖 좋은 법의 경계는 가히 관찰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눈으로 빛의 경계를 보는 것처럼 귀로 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뜻으로 법진을 분별하는 것까지도 또한 다 그러하니라.”
034_0566_b_01L“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러한 뜻을 알았나이다.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 함은 눈으로 보는 경계의 좋지 못한 법이니, 만일 그것을 보았다면 더러운 법이 늘어서 좋은 법을 덜어 버리는 것이요, 가히 볼 것이라 함은 눈으로 보는 경계의 모든 좋은 법이니, 만일 그것을 보았다면 좋은 법을 늘리고 더러운 법을 덜게 되는 것이옵니다. 이와 같이 뜻으로 법진을 분별하는 데 이르기까지도 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이러한 법을 듣잡고 바라던 마음이 만족하여 의혹을 끊었습니다.”
또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비구가 허망한 것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몇 가지 법을 끊고 몇 가지 법을 실행해야만 되옵니까?”
034_0566_b_04L又復白言:“世尊!若復苾芻欲滅虛妄者,當斷幾法?當行幾法。”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주여, 만일 비구가 허망한 법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세 가지 법을 끊고 세 가지 법을 실행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의혹이요 둘째는 희망이요 셋째는 뜻 없는 말이니라. 이 세 가지 법에도 할 것이 있고 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하지 못할 것이라 함은 세 가지 좋지 못한 법은 마땅히 끊어 버리고 행하지 말 것이요, 만일 이것을 행하는 이는 좋지 못한 법을 더하고 좋은 법을 덜게 되느니라. 가히 할 것이라 함은 이 세 가지 좋지 못한 법을 부지런히 닦아 끊어 버리면 좋지 못한 법은 줄고 좋은 법은 더 늘어나게 되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 뜻을 알았습니다. 의혹과 희망과 뜻이 없는 말 등의 세 가지 법을 만일 다시 한다면 좋은 법이 줄어들고 좋지 못한 법이 늘어날 것이요, 만일 비구가 이 세 가지 법을 부지런히 닦아 끊어 없애 버리면 좋지 못한 법은 줄어들고 좋은 법이 더할 것이옵니다.”
또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비구로서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행하는 이는 몇 가지 몸이 있사옵니까?”
034_0566_b_17L又復白言:“世尊!若有苾芻,行滅虛妄法者,有幾種身?”
부처님께서는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비구가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실행하는 데는 세 가지 몸이 있느니라. 세 가지 몸이라 함은, 알맞은 몸[適悅身]과 괴로운 몸[苦惱身]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몸[捨身]이니라. 알맞은 몸이란 것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가히 행할 것과 가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가히 행할 것이란 온갖 좋은 법을 말함이요, 가히 행하지 못할 것이란 온갖 좋지 못한 법을 말하는 것이니라. 괴로운 몸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몸도 이와 마찬가지니라.”
034_0566_c_01L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정말 그러하옵니다. 이제 부처님에게서 이 뜻을 알았나이다. 만일 비구가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실행하려 하면, 알맞은 몸ㆍ괴로운 몸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몸, 이 세 가지의 몸에서 온갖 좋은 법을 행할 것이요, 온갖 좋지 못한 법은 다 행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때 제석은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중생이 욕심내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빛깔 모습이 다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까?”
034_0566_c_05L爾時,帝釋復白言:“世尊!所有一切衆生,樂欲、憶念、色相皆悉同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같지 않느니라. 천주여, 중생들이 욕심내는 바가 같지 않으며, 생각하는 바도 같지 않으며, 빛깔과 모습도 다 같지 않느니라. 천주여, 모든 중생들이 비록 각각 자기 세계에 살더라도 또한 각기 그 세계의 차별을 알지 못하느니라. 세계의 차별을 알지 못하므로 캄캄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 도리어 어리석은 법에 집착하고도 진실하다고 여기느니라.
제석은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 뜻을 알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이 욕심내는 바가 같지 않으며 생각하는 바도 같지 않으며 빛깔 모습도 같지 않사옵니다. 중생들이 차별됨을 알지 못하므로 어리석고 어두움을 집착하여 진실하다고 여기나이다.”
034_0567_a_01L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 얻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느니라. 천주여, 만일 사문ㆍ바라문들이 저 애욕의 법을 다하지 못하면 결정코 구경(究竟:이법[理法]의 지극한 경지)의 깨끗한 범행을 얻지 못하느니라. 만일 사문ㆍ바라문들이 애욕의 법을 다하였다면 이내 가장 높은 해탈과 심정(心正) 해탈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구경의 깨끗한 범행을 얻었다고 하리라.”
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께 배워 뜻을 알았나이다. 만일 사문ㆍ바라문이 애욕의 법을 다하지 못하였으면 결정코 구경(究竟)의 깨끗한 범행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만일 사문과 바라문 등이 저 애욕의 법을 다하였다면 결정코 가장 높은 해탈[無上解脫]과 심정 해탈(心正解脫)을 얻으리니, 이런 것을 구경의 깨끗한 범행을 얻은 것이라 이름하는 것이옵니다.”
이때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모든 견해의 병을 여의어 다시 나지 않게 되오리까? 이 모든 견해의 병이 심식(心識)으로부터 생겨났다면 저의 이 심식이란 어떠한 것이옵니까? 또 제가 비록 부처님께 여러 가지 뜻을 여쭈었는데도 어찌하여 성인의 과보를 얻어서 부처님과 같은 정등각(正等覺)을 얻지 못하였습니까? 원하옵나니 저를 위하여 의혹의 근본이 되는 온갖 견해의 병을 끊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주여, 너는 아느냐? 옛적에 사문과 바라문도 이 뜻을 물은 일이 있는 것을 모르느냐?”
034_0567_a_15L佛言:“天主!汝知之不?於往昔時有沙門、婆羅門亦問此義。”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어느 때에 큰 위력이 있는 모든 하늘들이 도리천의 선법회에 모였을 적에 그 모임가운데에 있는 모든 하늘 사람들이 법을 모르면서도 부처가 되려고 하여 이와 같은 뜻으로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어리석고 어두움을 살피시고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하늘들이 저희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음에 불평을 품고 일어나서 각기 제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곳에 가지 못하고 타락하고야 말았습니다.
034_0567_b_01L 그때에 모든 하늘들이 타락한 까닭에 크게 놀라 마음으로 의혹을 일으키고 각기 생각하기를 ‘본래의 세계[本界]에 나타나지 않으니 필연코 타락한 것이로다. 내가 만일 사문과 바라문을 만나면 곧 가서 당신이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이냐고 물어보리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제가 혼자 거닐고 있으려니까 모든 하늘들이 저를 보고 달려와서 묻기를 ‘그대여,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하였습니다.
034_0567_b_04L時,彼諸天或有見我唯獨經行,來詣我所而問我言:‘仁者!汝是何人?’
저는 답하기를 ‘나는 제석천주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하늘들이 마음이 괴로우므로 말하기를 ‘천주여, 어찌하여 우리들이 고뇌 받는 줄을 모르시오. 우리들이 부처님께 마땅히 법을 물어야 할 것인데도 묻지 않고, 귀의해야 할 것을 귀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불평을 품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갔는데 본 곳에 나타나지 않은걸 보니 필연코 타락한 모양입니다. 이러므로 걱정하고 있는 중이니 바라건대 우리들을 좀 구원하여 주시오.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옛적에 하늘이 아수라와 싸워서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에 하늘 사람의 쾌락과 아수라의 쾌락을 나 혼자 받아 기쁘도다. 이러한 기쁨의 이로움을 얻기 위하여서는 한 평생을 마땅히 싸우고 칼과 군사로 서로 해치게 되나니, 이런 것을 말하여 기쁨의 이로움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분별의 이로움이라 함은 한평생 싸움이 없고 다툼이 없으며 칼과 군사를 서로 겨눔이 없나니, 이것이 분별의 이로움이 된다고 봅니다.”
제석이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께 바른 법을 듣잡고 더욱 믿음이 깊어지고 행원(行願)을 일으키되 ‘원컨대 제가 목숨이 다하고 인간의 부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재물과 곡식이며 보배며 연(輦)이며 수레와 완구(玩具)를 많이 쌓아 두고 권속이 왕성하며 여러 가지가 구족하여 늘 모자람이 없을 것이니,
원컨대 제가 마땅히 이러한 훌륭한 집의 지혜로운 이에게 태어나서 신체가 원만하고 형상이 미묘하며 맛좋은 음식을 먹고 존귀하고 자재하여 수명이 길며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부처님께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비구가 되어서 항상 범행을 지니되 결함 되거나 범하는 일이 없으며,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의 과(果)를 증득하며 마침내 고통의 변제(邊際)가 다함을 얻어지이다’ 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들으매 색구경천이 있다 하오니, 원하옵건대 제가 인간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그 하늘에 태어나지이다.”
034_0567_c_22L世尊!我復聞有色究竟天,願我終於人間復生彼天。”
034_0568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주여, 참으로 착하다. 천주여, 그대가 원하는 바와 같으리로다.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그런 수승한 과보가 있게 되었는가?”
034_0568_a_01L佛言:“天主!善哉,善哉。天主!如汝所願。何因何緣有此殊勝所證之果?”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별다른 원인이 없고 다만 부처님에게 바른 법을 듣잡고 깊이 믿음을 일으키어 원력을 세웠으므로 이러한 과보를 얻게 되었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바른 법을 듣잡고 법의 힘으로써 그 지혜를 더하고 또 수명을 길게 하였나이다.”
이때에 제석천주가 이러한 원력을 내었으므로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또 8만 하늘 사람들도 법의 눈이 깨끗하여졌었다.
034_0568_a_06L是時帝釋發是願已,遠塵離垢得法眼淨。復有八萬天人,亦復獲得法眼淸淨。
그때에 제석천주가 법을 듣고 법을 보고 깨달아 법에 머무는 것이 견고하고 온갖 의혹을 끊었다. 이렇게 법을 증득하고는 곧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해탈을 얻었나이다, 제가 해탈을 얻었나이다.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의 계를 지니겠나이다.”
이때 제석천주가 부처님 앞에서 오계건달바 왕자를 돌아다보며 말하였다. “네가 이제 나에게 좋은 이익을 많이 끼치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도다. 네가 전에 묘한 음악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므로 우리들이 법을 듣고 좋은 결과를 얻었도다. 내가 천궁에 돌아가서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제석이 많은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께 바른 법을 물었네. 부처님께서 미묘한 음성으로 의혹을 모두 끊어 주셨네.
034_0568_b_12L帝釋爲多利, 向佛問正法, 佛以微妙音,
爲除斷疑惑。
그때 대범천왕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바른 법을 말씀하실 적에 제석천왕이 번뇌의 때를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하여졌으며 8만 하늘 사람들도 또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도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그대로 받고 예배하고는 몸을 숨겨 하늘세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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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이 많은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께 바른 법을 물었네. 부처님께서 미묘한 음성으로 의혹을 모두 끊어주시었네.
034_0568_c_01L帝釋爲多利, 向佛問正法, 佛以微妙音,
爲除斷疑惑。
또 나에게 말하기를 ‘제석천주가 정법을 들을 때에 법의 눈이 깨끗해졌으며, 8만 하늘 사람들도 또한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고 하였나니,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를 ‘그러하니라’라고 하였노라. 그때에 범왕이 나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받고 내 발에 절을 하고는 몸을 숨기어 하늘세계로 돌아갔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