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들었노라[朕聞]. 【주】‘짐(朕)’이란 나[我]를 뜻한다. 높고 위대하며 존귀하고 뛰어난 덕을 지닌 오직 한 사람만의 호칭이다. 비록 눈으로 부처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귀로 보배 같은 게송[寶偈]을 전해들은 까닭에 ‘짐은 들었노라’라고 한 것이다. 여래의 묘법은 그 이치가 깊어서[如來妙法理深也] 【주】진여(眞如)의 실다운 도를 이어 받아 정각을 이루신 까닭에 여래(如來)라 하는 것이다. 묘법(妙法)이라 함은 능전(能詮)의 가르침이다. 이치가 깊다[理深]는 밝힌 뜻을 말한 것이다. 능전의 묘법을 드러내고 중도(中道)의 깊고 미묘함을 열었으니, 비유하면 연꽃이 핀 것과 같다. 법이 밝아져서 물듦을 여의는 것이 이치와 열매가 함께 물 밖으로 나오고 교와 행이 함께 꽃피어 펼쳐진 것과 같다. 가볍고 쉽게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不可輕易而銓量]. 【주】묘법은 높고 깊으며 비요(秘要)는 헤아리기 어렵다. 삼라만상은 한 글자에 포함되어 있고, 일천 가지 교훈이 한 마디 말씀 속에 구비되어 있으니, 마치 우담바라 꽃처럼 만나기 어렵고 드문 일이라서 성문(聲聞)의 작은 지혜로는 쉽게 헤아릴 수 없다. 진제는 심오하고 현묘해서 지혜가 광대하니[眞諦奧玄智廣也] 【주】보리(菩提)와 열반은 이(理)와 지(智)의 두 가지 결과이다. ‘진제(眞諦)’라 하는 것은 진실한 이치[理]로서 불성(佛性)이며, ‘지광(智廣)’이라 하는 것은 무루근본지(無漏根本智)를 말한다. ‘오현(奧玄)’이라 한 것은 마음으로 반연하고자 하여도 생각이 단절되고 입으로 이야기하고자 하여도 할 말을 잃는 것이니, 불가사의함을 말한 것이다. 이는 삿된 견해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豈非邪見而測度]. 【주】인지(因地)에서는 보살과 성문조차도 아직 부처님의 깊은 이치를 궁구(窮究)할 수 없거늘, 어찌 이것이 범부와 아흔여섯 가지 사견(邪見)을 지닌 무리들이 추측하여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진실한 자비로써 모든 상(相)을 거두어들이시니[諒慈悲而攝受諸相] 【주】자(慈)는 능히 인천세계에 즐거움을 줄 수 있고, 비(悲)는 능히 삼악도[三途]의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 ‘거두어들인다[攝受]’고 한 것은 구사라장자(瞿師羅長者)에게 삼 척(三尺)의 법문을 설하시어 발심하게 하시고 오백 명의 바라문 교도에게 회신(灰身)을 보여서 믿음을 일으키게 하신 것처럼 그 모든 모습에 따라 중생[含生]들을 거두어들이심을 말한 것이다. 이 어찌 크고 원대하게 유정(有情)을 이끄는 일이 아니겠느냐?[匪宏遠而導達有情] 【주】‘비(匪)’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굉(宏)’이란 크다[大]는 뜻이다. 만약 큰 지혜와 자비가 아니라면 누가 능히 중생을 이끌어 인도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태ㆍ란ㆍ습ㆍ화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제도하여[救度群生胎卵濕化] 【주】세 종류의 화신(化身)을 나타내어 긴긴 밤의 업고(業苦)에서 구제함으로서 두루 사생(四生)과 구류(九類)로 하여금 함께 십선(十善)과 오상(五常)1)을 닦게 하셨다. 큰 이익을 열어서 모든 세계에 시현하셨다[開大利益示現傍通]. 【주】국토를 세 번 변화시키고 팔방을 청정히 장엄해서 요도(要道)를 열어 보여 중생을 크게 교화하신 까닭에 ‘큰 이익을 열고[開大利益]’라고 말한 것이다. 사슴ㆍ말 등의 형상으로 나타나시어 같은 유(類)의 중생들을 제접(提接)하고, 존귀하고 높은 지위에 거처하면서 인천(人天)을 유도하여 교화하신 까닭에 ‘모든 세계에 시현하셨다’라고 말한 것이다. 비유로 설명함이 분명하시어서[喩說分明] 【주】경에 이르기를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비유로써 이해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비유로 설명함이 분명하시고’라고 말한 것이다. 어둡고 탁한 뒤바뀜[顚倒]에서 멀리 벗어나니[遠離於昏濁顚倒] 【주】‘멀리 벗어난다[遠離]’고 함은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둡다[昏]’는 것은 어둡고 구석진 곳에 비유됨을 말하며, ‘탁하다[濁]’는 ‘오탁(五濁)’을 말한 것이다. ‘뒤바뀜[顚倒]’은 세 가지 뒤바뀜이다. 만약 수행으로 뒤바뀜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면 자연히 혼탁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다른 사람과 나라는 집착에서[人我執着] 【주】범부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인집(人執)과 법집(法執)이 있는데, 이 두 집착을 끊지 않고는 성인이 될 실마리가 없는 것이다. 지혜의 보리로 뛰어오를 수 있기에[可超於智慧菩提] 【주】‘뛰어오를 수 있다[可超]’라고 한 것은 증득할 수 있음을 말한다. 만약 보살이 법화회상의 입(入)ㆍ 개(開)ㆍ시(示)ㆍ오(悟)의 문(門)을 만난다면 어떤 지혜인들 일어나지 아니하겠는가? 마침내 보리(菩提)로서 반드시 증명할 것이다. 스스로 회포를 일으켜[發自予懷]. 【주】‘발(發)’이라 한 것은 들어서 밝힘[擧明]을 말한다. ‘자여회(自予懷)’라 한 것은 황제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창생을 구하고자 하는 황제 자신의 마음을 밝게 드러내고자 방편으로 심륜게(心輪偈)를 저술하였다. 이 게송을 지었다[而成斯偈]. 【주】‘이(而)’는 어조사다. ‘성(成)’이라 한 것은 이미 원만하다는 뜻이다. ‘이 게송’이라 한 것은 곧 심륜송(心輪頌)을 말한 것이다. 번뇌장을 허물고[破煩惱障] 【주】중생들은 무시이래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모두 번뇌에 덮여 막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일승의 일곱 가지 비유를 설하여 지혜를 유도해 내게 함으로서 번뇌의 장애를 깨뜨리고 점차로 큰 지혜를 구하게 하셨다. 수행의 문으로 들어가서[入修行門] 【주】‘들어간다[入]’는 것은 갈래로 들어가는[趣入] 것을 말한다. 중생들이 무시(無始) 이래로 온갖 갈래[趣]를 왕복하면서 바른 길을 보지 못하자,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여러 교문(敎門)을 열어 닦아 나가기를 권유해서 그로 하여금 수행문에 들게 하셨다. 가난한 아들을 열심히 일하도록 시킨 것이 이것을 나타낸 비유이다. 피안에 도달하고자 끝없이 정진하고[達彼岸而精進無邊] 【주】‘달(達)’이란 것은 이른다는 뜻이다. 보살이 능히 생사의 차안(此岸)을 벗어나 보리(菩提)의 피안에 도달하기를 구한다면, 자비심을 일으키고 인고의 수고로움을 겪는 일을 무수겁(無數劫)을 거쳐야 비로소 성불을 이루게 된다. 그런 까닭에 ‘피안에 도달하고자 끝없이 정진하고[達彼岸而精進無邊]‘라고 말한 것이다. 고해를 건너서 자재하게 소요하니[渡苦海而逍遙自在] 【주】‘도(渡)’라는 것은 ‘넘어간다[越]’는 뜻이다. ‘고(苦)’라 함은 온갖 고통을 말한 것이다. 온갖 고통이 가없기 때문에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법화경》에 의거해서 사(事)와 이(理)를 닦아 증명한다면, 반드시 능히 고해를 건너가서 비로소 삼계(三界)에서 벗어났다고 칭할 수 있다. 또한 고해에 빠진 상태를 이미 초월했기 때문에 ‘소요자재(逍遙自在)’하는 것이다. 그 작은 선(善)을 도와서[將其小善] 【주】‘장(將)’이란 ‘도운다[助]’는 뜻이다. ‘그 작은 선’이라 한 것은 임금이 힘쓰는 교화가 본래 무위에 있어서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이치에 부합되는 것이니, 지금 ‘작은 선’이라 말한 것은 겸양을 보인 것이다. 두루 중생들에게 베푸노라[善施衆生]. 【주】‘보(普)’라 한 것은 ‘두루[遍]’라는 뜻이다. ‘시(施)’라는 것은 ‘준다[與]’는 뜻이다. ‘중생(衆生)’이라 함은 백성들을 말한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한 번의 비로 기름지게 하니 온갖 풀이 모두 무성(茂盛)하다[一雨所滋 三草並茂]”라고 한 것이 곧 ‘널리 베푼다[普施]’는 뜻이다. 또한 만 길의 산이 높다 해도[且夫萬仞山高] 【주】사보(四寶)의 산봉은 우뚝 높고 칠금(七金)은 아득해서 범상한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고 오직 성인의 지혜라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묘고산(妙高山)의 사보봉은 황금ㆍ백은ㆍ수정ㆍ비취ㆍ유리로 이루어져 있고, 칠금은 곧 향수 바다 안에 일곱 겹으로 둘러 싸여 있다. 겁이 다하면 오히려 잿더미가 되고 마는데[劫盡而尙爲灰燼] 【주】삼재(三災)를 거치면 잠깐 사이에 만 길의 산악도 없어지고, 큰 물결이 넘실넘실 넘치면서 치열한 번뇌의 불길이 치성[炎炎]하게 타오르는데, 이것이 교만(喬蠻)에 이르면 잠간 사이에 잿더미가 된다. 경에 이르기를 “겁화가 훨훨 타오르면 대천세계가 모두 허물어져 수미산과 큰 바다가 남김없이 마멸된다”라고 하였다. 오욕의 업이 무거워서 반연하고 끌려 다니다가 바다가 변해 뽕밭이 된다[五慾業重緣牽而海變桑田]. 【주】육진(六塵)이 이로 말미암아 분분히 휘날리고, 삼업(三業)이 이것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 이는 마음은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경계를 의지해야 비로소 생겨남을 나타낸 것이다. 가령 겁 밖의 지(地) 이전에 거처하게 되면 반드시 경계가 강하고 식(識)이 열등하게 된다. 마치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서 계절이 다른 것과 같고, 골짜기와 언덕이 바뀌고 해와 달[烏兎]은 나는 것과 같아서 세월[光陰]은 화살 같으니, 깊이 교리에 합치해야 하고, 긴밀하게 전제(筌蹄)2)에 계합해야 한다. 오욕(五欲)은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이며, 삼업은 신(身)ㆍ구(口)ㆍ의(意) 등의 세 가지 업이다. 삼승을 깨달은 사람은 애욕의 강물을 그리워하지 아니하고[悟三乘者不變愛河] 【주】상ㆍ중ㆍ하의 근기(根機)를 삼승이라 말한 것이다. 성문(聲聞)은 양의 수레[羊車]에 비유되고 연각(緣覺)은 사슴 수레에 비유되고 보살은 소 수레[牛車]에 비유되는데, 이를 삼승이라 한다. 이미 번뇌의 거친 물살[暴流]을 뛰어넘어 피안을 찾아 도달한 것이다. 사지(四智)를 밝힌 사람은 항상 정토에 거처한다[明四智者常居淨土]. 【주】‘사지(四智)’란 보리의 본칭(本稱)이다. 모든 부처님은 팔식(八識)을 움직여 사지를 성취하였으니, 이른바 대원조지(大圓照智)ㆍ평등성지(平等性智)ㆍ묘관찰지(妙觀察智)ㆍ성소작지(成所作智)이다. 이에 어두운 사람은 번뇌의 거친 물살을 뛰어넘기 어렵고, 이를 요달한 사람은 부처님 국토에 반드시 태어난다. 성인의 지혜가 아니면 궁구하기 어려우며 진충(宸衷:황제의 마음)이 아니면 탐구하지 못한다. 부질없는 삶[浮生]이 환몽(幻夢)임을 알고, 세속[塵世]이 거품과 같음을 깨달아[曉浮生於幻夢覺塵世若浮泡] 【주】신속하게 흐르는 세월은 진실로 꿈이나 허깨비와 같으니, 갑작스럽고 부질없는 세상이 어찌 부평초나 물거품과 다르겠는가? 무릇 진상(眞常)을 증득하지 못하면 썩은 몸뚱이를 버리기 어렵다. 진실로 통달하지 않으면 이 글을 깨우치지 못하니, 그런 까닭에《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 “어리석은 이는 이루어진 일에도 어둡고, 지혜 있는 사람은 싹이 트기 이전에 본다”라고 한 것이다. 늘 풍속을 교화할 방법을 행하고[每行化俗之方] 【주】어리석은 백성들의 무리 속을 걸어 다닐 때마다 측은(惻隱)한 마음을 항상 품고서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임하고 덕의 은택을 펼쳐 윤택하게 하니, 이는 비단 임금이 성스럽고 신하가 현명함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아비를 자애롭게 하고 자식을 효순하게 하는 것이다. 진공의 진리를 터득해서 스스로 ‘상념을 물리치고 정식을 잊음’을 즐기길 바랐다[庶招眞空之理得而自樂退想忘情]. 【주】그런 후에 불문[空門]을 생각하게 되고, 마음을 부처님[釋氏]께 두었으며, 이공(二空:人空ㆍ法空)의 진리를 귀히 여기고, 몰래 팔전도(八顚倒)3)의 정을 버리니, 바로 막아놓은 집착이 스스로 제거되고 의심으로 막힌 것이 다 없어졌다. 짐은 기무의 여가에 불경에 마음을 두어[朕機務之餘留心釋典] 【주】천하의 문궤(文軌)는 혼동되어 있다. 그래서 제왕은 만국에 임하매 기무를 넓게 짜고 몸소 스스로 근심하니, 해가 저물어서야 밥을 먹고 밤중에 옷 입으면서 책을 보는 것이 문무의 도와 일치하는 궐 안의 생활이다. 자애롭고 검약한 마음을 굳건히 하고 다시 여래를 사모하면서 진전(眞典)에 뜻을 두었다. 이에 회문의 게송을 지어 현묘한 원천을 정밀하게 구하니[乃搆廻文之偈精求玄妙之源] 【주】투명하게 맑은 정신과 고요한 사려는 그윽하게 진여와 합치한다. 석존[龍]께서 갈무리한 낭함(琅函:서류함)을 찾고 법화[花]를 꿰뚫은 묘지(妙旨)를 탐색하여 끝까지 지극한 이치[至理]를 궁구하고 수많은 말을 개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성인[임금]이 생각을 일으켜 제작한 뜻이다. 일장(一章)에 기인하여 끝내 천 수를 이루었다[起因一章終成千首]. 【주】‘기(起)’는 일어남을 말한다. 처음에 심자(心字)를 모든 편의 머리에 두고 회문(廻文)을 예시해서 이백 수를 완성하였고, 심(心)자가 제한을 받자 관(觀)자로 교체하여 글을 나열해서 팔백 수를 만들었으니, 전체적으로 심(心)자로 심게(心偈)를 이룬 것을 헤아리면 일천 수가 된다. 한 송이 연꽃이 핀 모습을 펼쳐 보였고[舒展狀蓮開一朶] 【주】연이란 푸른 물결 속에서 생겨나는데,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피어나고 뿌리는 깊고 잎은 무성하여 짙은 향기가 물씬 풍긴다. 심게(心偈)는 그 문구가 제왕의 생각에서 나왔고 이치와 뜻[義]은 연꽃에 비유된다. 펼치면 삼승에 통틀어 해당되나, 합치면 함께 다섯 글자로 돌아가니, 천기(天機)의 묘함과 아울러 조화의 공(功)을 극(極)하였다. 이어서 엮으면 달의 광채가 처음으로 둥글게 되는 것과 비슷하니[聯綴似月彩初圓] 【주】게송 천 수를 완성하고 권(卷)을 나누어 두 질로 아름답게 엮으니, 옥이 윤택하고 얼음이 냉랭한 것처럼 어두운 일심을 일깨워서 만법을 알게 했다. 마치 달빛이 은하에 가득한 것 같고 그 광채가 인간 세상에 뿌려진 것과 같아서 모든 생명을 비춤이 아득히 먼 곳까지 미쳤다. 이름짓기를 “연화회문게”라 하였다[立名曰蓮華廻文偈]. 【주】심게(心偈)가 이루어지자 상(象)을 취하여 제목을 붙인 까닭에 ‘연화’란 이름을 붙였다. 묘법의 심오함을 귀하게 드러내고 글자를 돌리고 순환케 해서 찬연한 의미를 나타냈다. 제왕의 능사가 깊지 않음은 참으로 부끄러우나 언사는 종횡으로 바로잡았다[深非帝王之能事一媿辭正以縱橫]. 【주】사방(四方)을 평정해서 천하 사람을 자식처럼 기르고 좋은 세상에 살게 하고 평화롭게 교화하고 다스림이 성인의 능사(能事)이다. 가령 마음을 내려놓고 현묘히 침묵한 채 성정(性情)을 읊조리고 뭇 중생의 환심(幻心)을 교화하면서 모든 부처님이 주창한 도를 본받는다면, 이는 성인의 여가(餘暇)이다. 홀로 심게의 큰 정(情)으로 때때로 지취(旨趣)를 맛보아야만 종횡으로 제작할 수 있지 통상 그냥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사가 바르고 밝은데, 이를 유포하면서 다시 부끄럽다는 말로 유시(諭示)하였다. 분수에 따라 볼 수 있으나 자질이 너무 어리석은지라[隨分可觀甚爲魯質] 【주】‘자질이 어리석다’는 말은 애써 겸양한 말이다. 지어놓은 심게(心偈)는 거의 진리에 가까워서 인도와 수행을 통해 달빛 아래서 사물을 보는 것처럼 불성을 깨달을 수 있다. 아울러 고승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주해를 달아 근원을 궁구하게 하였다[兼詔高僧注解稍究根源]. 【주】연화심송(蓮華心頌)은 신령한 기틀의 비단 같은 문장을 짜내어서 보배 그물처럼 광명이 교차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중도의 종지에 힘써서 제호(醍醐)와 같은 뛰어난 맛을 지니니, 그 뜻은 중생들을 고무하는데 있다. 그리하여 또 구천의 위에서 조서(詔書)가 날아 내려와 신(臣)들에게 주해토록 하였으나, 어찌 만승천자(萬乘天子)의 마음을 소상하게 밝힐 수 있었겠는가? 또한 등지(等智)라 지목되어 크게 알려졌어도 보잘것없는 학문은 도안(道安)ㆍ혜원(慧遠)스님에게 부끄럽고 근본적으로 초인의 영예에는 모자라는 사람이니, 어찌 출중하다는 명성이 가당하겠느냐? 큰 짐을 지고 말을 하지 못하며 근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허물이 매우 많았다. 지금 임금께서 지은 글을 받고 보니 주석을 달 처지가 아니라서 삼장(三藏)의 진문(眞文)을 뒤져서 한 사람의 금게(金偈)를 길이 찬송하였다. 보배 목탁의 금문을 크게 드날리니[大振於寶鐸金文] 【주】보축(寶軸: 진귀한 서적)인 회문은 실로 법당(法幢)의 높은 나무며, 글을 집성한 주석은 이익이 가득 찬 목탁의 영롱한 소리이다. 무릇 그 부촉으로 티끌세상을 벗어남은 소리로 하여금 훌륭한 운율[雅韻]을 머금게 하기 때문이다. 현묘한 말과 묘한 종지를 꿰뚫었고[貫穿於玄言妙旨] 【주】‘관천(貫穿)’이라 함은 섭수하여 지닌[攝持] 이치를 말한 것이다. ‘현언(玄言)’이라 함은 능전(能詮)의 가르침을 말한 것이다. ‘묘지(妙旨)’라 함은 소전(所詮)의 이치이다. 이른바 교가 이(理)를 섭수할 수 있고 이(理)가 기연을 낳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은(慈恩)이 말하기를, “중생들을 섭수하여 모이도록 해서 이 묘리로 꿰뚫고, 또한 저 범용한 중생들을 다루어서 그들로 하여금 고통의 나루터에서 벗어나 끝내 깨달음의 둑에 오르게 한다”고 하셨다. 나루터와 다리를 만들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주고[作津梁而濟沈溺] 【주】회문(廻文)의 지극한 가르침이 미래의 세계에 전해지니 참으로 고해(苦海)의 나루터며 능히 열반으로 가는 교량이 될 수 있다. 세존의 말씀처럼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펼쳐서 중생이란 물고기를 제도하여 피안(彼岸)에 이르게 한다. 항상 지혜의 횃불이 되어 혼미함을 깨뜨림으로서[常爲慧炬以破昏迷] 【주】커다란 두 가지 장애[二障]의 어둠이 지혜의 마음을 덮고 가려서 온갖 갈래에 빠져 헤매면서 오랫동안 불충케 했으니, 이 심게(心偈)를 모두 남겨서 영원히 어둠을 비추게 한다. 신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나의 뜻을 알게 하였다[俾使信心咸知朕意]. 【주】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번뇌를 벗어나는 행을 닦고 나아가 무상과(無上果)의 땅에 태어나 끝내 성불을 이루도록 힘쓰는 것이 황제의 뜻이다. 지금 도상의 조각이 이루어지니 주석 및 게송을 모두 스물다섯 권으로 갖추어 뒤에 열거하였다[今雕成圖像注幷偈頌共二十五卷具列于後].
어제연화심륜회문게송(御製蓮華心輪廻文偈頌) 제1권
1. 심자정회문(心字正廻文)
마음으로 회통, 이해해서 그 요체를 드리우니 心會解垂要 【주】여래의 마음은 명상(名相)을 여의었기에 연꽃을 지적해서 비유로 삼고, 물 밖으로 나온 공덕의 높음은 묘법을 연출하므로 기이하다고 한 것이다. ‘회해(會解)’는 무위의 방편이고, ‘수훈(垂訓)’은 깊은 요체의 이치이다. 이(理)의 참됨은 언전(言詮)을 부러워함이 아니다.理眞詮羡非 【주】부처님의 의취(意趣)와 진리는 언어의 식(識)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천세계가 우러러 보고 부러워하는 것으로서 이타(利他)의 가르침을 행하고, 도(道)가 있는 글을 펴며, 해와 함께 광휘를 뿌리고, 하늘의 운행에 의지해 굴러가므로 비근하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다. 그 깊은 뜻은 위대하니 누구의 가르침인가? 深意大誰敎 【주】여래의 매우 깊은 뜻은 대천세계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는 오상(五常)의 가르침이 사해에 두루한 것에 비유한다. 누가 능히 그것을 혼탁하게 흐릴 수 있겠는가? 인연을 가르쳐서 선도(善道)에 귀의하게 하셨노라. 指因緣善歸 【주】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하신 마음을 갖추어 인연을 가리켜 보임으로서 선도(善道)에 귀의케 하시니, 지혜의 깊고 넓음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회통해서 이해하니, 요긴한 이치의 가르침을 드리우고 會解垂要理 【주】부처님께서는 지극한 가르침[至敎]을 드리우셔서 요긴하게 중생들을 이롭게 하시고, 깊고 깊은 대의(大意)를 펼쳐서 두루 깨닫고 이해하게 하시며, 양 가장자리[二邊]의 그릇된 이치를 드러내서 진상(眞常)에 계합되게 하셨다.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니, 지혜가 깊지 않다면 眞詮羡非深 【주】현명하고 어리석음이 비록 다르지만 모두가 참다운 언전(言詮)을 부러워하니, 지혜가 깊지 않으면 어찌 통달해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뜻의 위대함을 누가 가르치고 지시하겠는가? 意大誰敎指 【주】가르침의 종지는 광대하고 의취(意趣)는 사량하기 어렵다. 오직 홀로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을 뿐 누가 가리켜 보일 수 있겠는가? 인연에 따라 훌륭히 마음에 귀의하네. 因緣善歸心 【주】부처님께서는 인연의 도리를 가리켜서 중생들의 목마르게 우러르는 마음에 응대하셨다. 즉 중생을 십선(十善)의 문에 귀의케 해서 점차 일승의 이치에 계합케 하셨다.
요긴한 이치를 드리워서 참된 종지를 알게 하니 解垂要理眞 【주】육도(六道)에 형상을 드리워서 요문(要門)을 열어 보이시니, 일곱 가지 비유의 참된 종지를 해설해서 잃었던 아들을 달래어 교화하고, 삼중(三重)의 비리(秘理)를 드러내서 위로 선근(善根)에 감응하셨다.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나 깊은 뜻에는 이를 수 없네. 詮羡非深意 【주】‘전(詮)’은 참다운 언전을 말한 것이다. 그 의취가 심원(深遠)해서 근성으로도 미치지 못하고, 근기 낮은 이는 미혹해서 부러워할 수도 없다. 어느 위대한 분이 가르쳐 보이신 인연인가 大誰敎指因 【주】‘대수(大誰)’란 부처님을 말한 것이다. ‘교(敎)’란 묘법(妙法)이다. 부처님은 묘법을 가리켜서 거룩한 인연[善因]을 깨닫게 하셨다. 훌륭한 귀의는 마음과 회통하네. 緣善歸心會 【주】‘연(緣)’은 ‘선(善)’을 말한 것이고, ‘귀(歸)’란 취(趣)이다. 선취(善趣)의 묘지(妙旨)가 진심(眞心)과 계합해 회통하는 것을 말한다.
요긴한 이치와 참된 언전을 드리우시니 垂要理眞詮 【주】가르침은 묘한 이치를 드리우시고 교화는 삼천세계를 대비하셨으니, 반드시 참된 언전을 깨쳐야 점차 십지(十地)보살의 경지에 오른다. 그 뜻은 깊고 위대해서 선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羡非深意大 【주】큰 가르침은 절묘하고 그 뜻은 매우 깊으니, 미혹한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통달한 사람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진리이다. 누가 이 인연 가르치고 지적하였는가? 誰敎指因緣 【주】부처님께서 묘법을 펴시면서 백련을 가리켜 비유하시니, 널리 육도의 인연을 열어 보이시고, 사류(四流)의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훌륭한 귀의는 마음과 회통하여 이해한다네. 善歸心會解 【주】만법을 잘 알면 모두가 마음으로 돌아간다. 일승(一乘)을 회통하여 이해하면 모두가 즐거운 과보에 오르게 된다.
요긴한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니 要理眞詮羡 【주】요긴하고 묘한 이치는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하여 알 수 있고, 참다운 언전의 문은 뭇 현인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한다. 깊은 뜻을 갖춘 대각이 아니던가? 非深意大誰 【주】큰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깊은 종지를 드리우시니, 성지(聖智)를 갖추지 못하면 누가 능히 환하게 알 수 있겠는가? 인연의 훌륭함을 가리켜 보이시니 敎指因緣善 【주】여래께서 가르침을 마련해서 널리 묘한 인(因)을 가리키시니, 좋은 연(緣)을 닦아야 곧 뛰어난 과보를 얻게 된다. 마음에 귀의하여 회해(會解)를 드리우네. 歸心會解垂 【주】육진(六塵)과 등지고 깨달음에 합류하는 그 요체는 마음에 있으니, 묘문(妙門)을 드리워 보여서 정도(正道)로 돌아오게 하셨다.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함은 잘못이니 理眞詮羡非 【주】진리는 응연(凝然)해서 언전의 가르침으로는 미칠 수 없다. 오직 부처님만이 찬탄하고 부러워하면서 세간이 모두 그릇되었음을 요달한다. 깊은 뜻은 위대하니 누구의 가르침인가? 深意大誰敎 【주】가르침은 광대하고 그 의미는 그윽하고 깊으니, 누가 세 짐승이 강물을 건너가는 비유를 이해해서 하나의 참됨[一眞]에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 밝힐 수 있겠는가? 가르치신 인연에 거룩하게 귀의하고 指因緣善歸 【주】부처님의 마음은 광대하시니, 인연을 가리켜 보여서 힘겹게 사는 중생들을 잘 권유하여 함께 묘도(妙道)에 귀의하게 하셨다. 마음으로 회통하고 이해하여 요체를 드리우시다. 心會解垂要 【주】마음은 삼라만상을 머금고 있으니, 드리우신 요체의 미묘한 문을 알게 되면 지혜로 육신통을 운용하여 무위(無爲)의 교화에 회통해 합할 것이다.
참다운 언전은 깊어서 부러워하거나 그르다 할 수 없고 眞詮羡非深 【주】무루(無漏)의 참다운 언전으로 이공(二空)의 도리를 드러내 말씀하시고, 유위(有爲)의 깊은 지혜로 능히 한 성품[一性]의 근원을 궁구하시니, 언설로 그르다고 할 수 없고 마음으로 부러워할 수 없다. 그 뜻이 크니 누구의 가르침인가? 意大誰敎指 【주】‘수(誰)’란 능인(能仁:부처님)을 말한 것이다. 뜻은 깊고 지혜는 원대하여 대천세계에 가르침의 그물을 벌려 인연을 가리켜 보임으로서 고해(苦海)에서 중생들을 제도하셨다. 인연이 아름다우니 마음에 귀의하여 因緣善歸心 【주】마음이 만법을 일으키니, 모름지기 인연에 기탁하여 육도의 문에서 선행하고 일진(一眞)의 이치에 귀의하여야 한다. 요기한 이치를 드리워서 회통해 알게 하시네. 會解垂要理 【주】정각을 얻으신 부처님이 형상을 드리워서 널리 영산(靈山)의 모임을 열고, 법문에서 요긴한 이치를 선포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셨다.
깊은 내용을 헤아려 선망하지 않을 수 없으니 詮羡非深意 【주】참된 언전[眞詮]은 비와 같아 삼초(三草)의 뿌리를 깊이 적시고, 묘리(妙理)는 무언(無言)으로 백비(百非)의 상(像) 밖에 있으니, 현묘하고 미묘하게 통찰한다면 우러러 선망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 위대함 누가 교지한 인연인가? 大誰敎指因 【주】대웅께서 가르침을 마련하여 훌륭한 인연을 자세히 설하셨으니, 오성(五性)4)의 지귀(指歸)를 짓고, 사류(四流)의 배를 젓는 노가 된다. 진실로 상근기가 아니면 누가 능히 요달할 수 있겠는가? 연(緣)과 십선으로 마음의 회통에 돌아가서 緣善歸心會 【주】네 가지 연(緣)과 십선(十善)은 큰 성인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이며, 팔계(八戒)와 삼귀의(三歸依)로 뭇 마음을 회통하여 우러러 믿게 하였다. 요기한 이치와 참됨을 드리워 알게 하였네. 解垂要理眞 【주】지극한 이치는 요긴하고 미묘하고 진리는 응연(凝然)해서 중도(中道)의 현묘한 종지[宗]와 합하면서 양쪽 가장자리의 삿된 집착에서 벗어났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드리우셔서 중생을 교화하셨다.
크신 뜻은 깊지 않은 자도 부러워하니 羡非深意大 【주】뜻이 크다는 것은 육진(六塵)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며, 깊지 않다는 것은 곧 오염되었다는 말이니, 이는 모두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으로 인과를 지극히 자세하게 보인 것이다. 인연이 완숙된 사람이라면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누가 가르치고 지시한 인연인가? 誰敎指因緣 【주】사제(四諦)의 종지를 가르쳐서 소승의 근기에 응하시고, 진리[理]로 일승(一乘)의 묘리를 베푸셨다. 상근기(上根機)를 지닌 사람이 이 교화를 받으니, 이 인연을 여의고 누가 깨달을 수 있겠는가? 훌륭히 귀의한 마음으로 회통하고 이해하여 善歸心會解 【주】부처님의 종지를 이해하면 만법을 환히 알게 되고, 귀의한 마음으로 회통하면 진실한 종지를 증득하여 거룩한 일승(一乘)으로 깨달음의 문에 들어간다. 긴요한 이치의 참다운 언전을 드리운다. 垂要理眞詮 【주】성상(性相)의 현묘한 종지를 여는 것을 ‘참다운 언전’이라 부른다. 생멸의 기연에 응하는 것이 긴요한 이치를 드리우신 것이다.
깊지 않으면 큰 뜻을 누가 알겠는가. 非深意大誰 【주】《법화경》은 먼저 매우 깊은 진리를 제창하여 증상만(增上慢)을 책망했으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고,《유마경》에서는 불이(不二)의 큰 뜻으로 보살을 찬탄하자 보살은 묵연히 알았다. 진실로 보살의 개차법(開遮法)이 아니면 누가 통달하여 증득할 수 있겠는가? 가르침의 인연이 훌륭하여 敎指因緣善 ‘교지(敎旨)’란 법화의 가르침을 지적한 것이고, 인연이란 법화의 대사(大事)이니, 방편과 실제의 문을 훌륭히 열어서 일승의 길로 끌어들였다. 마음에 귀의해서 회통과 이해를 드리우니 歸心會解垂 【주】마음의 불도에 귀의해서 지극히 참됨[至眞]을 회통해 이해한다. 불도는 인과의 종지를 드높여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고, 지극히 참됨[至眞]은 지여(智如)의 체와 깨달음의 증득에 방향이 있음을 드러낸다. 요긴한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네. 要理眞詮羡 【주】‘요긴한 이치[要理]’라는 것은 드러난 이치이고, ‘참다운 언전[眞詮]’이라는 것은 능전(能詮)의 가르침이다. 참다운 언전의 밝은 문장을 부러워하고, 요긴한 이치가 단박에 환해짐을 드러낸 것이다.
깊은 종지의 큰 뜻은 누구의 가르침인가. 深意大誰敎 【주】영산(靈山)의 모임에서 나온 매우 깊은 종지는 사리불(舍利佛)이 받아서 이해하였고, 백로(白路)의 연석(筵席)에 담긴 뜻은 대공(大空:수보리)이 감응한 기연을 내었다. 각기 교화의 문을 열었으니 누가 목마르게 우러러보지 않겠으며, 무위(無爲)의 도로 향하도록 인도하니 모두가 함께 신심을 내었다. 인연을 가리켜서 훌륭히 귀의케 하고 指因緣善歸 【주】양과 사슴의 인연을 밝히신 것은 아직 큰 근본이 되지 못하니, 소 수레[牛車]의 바른 도를 밝히셔서 지귀(指歸)할 곳을 훌륭히 만드시었다. 마음으로 회통하고 이해해서 요체를 드리우니 心會解垂要 【주】불심을 회통해 이해하면 능히 법의 요체를 드리울 수 있으니, 이 묘도에 귀의한 까닭에 보리(菩提)를 증득하는 것이다. 이치의 참다운 언전은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理眞詮羡非 【주】유마거사가 이야기한 공(空)의 진리는 성문(聲聞)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문수보살이 연설한 참다운 언전은 곧 보살이라야 부러워할 수 있는 내용이다.
뜻의 크나큼을 누가 가르치고 지시하였나? 意大誰敎指 【주】우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승의 교의(敎意)는 큰 근기를 지닌 사람을 위한 것이니, 적멸의 이공(二空)을 가리킨 걸 누가 능히 증득할 수 있겠는가? 인연으로 거룩하게 마음에 귀의하여 因緣善歸心 【주】인연이란 큰 가르침을 말한 것이다. 공(空)과 유(有)의 두 가장자리에서 벗어나 그 중도(中道)로 귀착해서 중생을 교화하여 선(善)을 심었으니, 누가 발심하지 않겠는가? 회통해 이해해서 요긴한 이치를 드리우니 會解垂要理 【주】‘드리운다’라고 한 것은 능전의 가르침을 말한다. ‘요긴한 이치[要理]’라 하는 것은 소전의 이치를 말한다. 군생(群生) 가운데 상근기에 응하시어 연꽃의 미묘한 가르침을 설하셨으니, 부처님의 마음을 회통해서 이해하면 각기 선도(善道)를 행하게 될 것이다. 참다운 언전은 깊어서 선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眞詮羡非深 【주】‘진(眞)’이란 진여(眞如)를 말한 것이다. ‘전(詮)’이란 지극한 가르침을 말한 것이다. 교리가 깊고 묘하여 작은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능지(能知)의 보리도(菩提路)의 요원함은 달인이라야 우러러보고 선망하는 것이다.
위대하구나. 그 누가 가르친 인연인가? 大誰敎指因 【주】‘대(大)’는 깨달음[覺]을 말미암은 것이니, 부처님[大覺]께서 출흥(出興)하시어 삼승의 묘법을 가르쳐 펴셨다. ‘수(誰)’는 근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근기의 단박과 점차를 따라 인과의 사제 법문을 가리키셨다. 인연이 거룩하니 마음으로 귀의하여 회통하고 緣善歸心會 【주】‘연(緣)’이라 한 것은 인연을 말한 것이고, ‘회(會)’는 이해를 말미암은 것이다. 인연의 묘설(妙說)에 가탁해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참된 종지[眞宗]를 이해하고, 일승을 선망하여 귀의해서 마음으로 만법을 요달한다. 지혜로 요긴한 이치의 참됨을 드리우고 解垂要理眞 【주】‘해(解)’란 함은 지혜를 말한 것이다. 지해(智解)로 원융하게 관통하니, 참다운 언전과 묘한 이치가 쌍(雙)으로 존재한다. ‘수(垂)’라 한 것은 보여준다[示]는 뜻이다. 요체의 문[要門]을 수시(垂示)하여서 허망한 정[妄情]과 두 가장자리를 함께 버렸다. 뜻이 깊어서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표현하였다. 詮羡非深意 【주】‘전(詮)’은 ‘교(敎)’를 말한 것이다. 무루(無漏)의 언교(言敎)는 광겁(曠劫)을 지나도 듣기 어렵고, 적정(寂靜)의 진여(眞如)는 소승이라도 분증(分證)하니, 그 의의가 심원해서 외도가 능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연의 친하고 성김을 현량(賢良)한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누가 인연을 가르쳤는가? 誰敎指因緣 【주】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연을 가리켜 설했다고 했는가? 오직 부처님께서만 비로소 뚜렷이 보여주실 수 있다. 녹야원(鹿野園)에서 처음으로 제창하셨고,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러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셨다. 하나하나가 이제(利濟: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구제함)의 방편을 여신 것이고, 하나하나가 보리의 길을 밝힌 것이다. 거룩하게 마음에 귀의하여 회통해 이해하고 善歸心會解 【주】착하고 총명한 사람이 마음의 비전(秘典)에 귀의하여 그 글을 읽어 해득하고 그 이치를 궁구하여 회통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할 수 있다. 요긴한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드리워 垂要理眞詮 【주】그 규범을 드리워 뭇 미혹한 중생을 인도한다. 언어의 가르침에는 다양한 방법[門]이 있으니, 진과 속을 함께 운용하여 증득하여 깨친다면 근원이 하나의 진실로 돌아가서 이치와 형상이 함께 밝아질 것이다. 착함을 부러워하고 잘못을 고치니 깊은 뜻이 크도다. 羡非深意大 【주】대선(大善)을 선망해서 닦고 그릇되고 악한 것을 없애야 한다. 그 깊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지혜의 성품[智性]이 엄숙하고 경건하니,《법화경》을 처음 설해서 그 뜻을 요달하면 진여가 적적하고 반야가 통하여 이야기한다.
교리로 가리키니 인연이 거룩하고 敎指因緣善 【주】‘교(敎)’라는 것은 미묘한 발자취이다. 사제의 인연을 가리켜서 소승의 근기에 호응하고, 유일의 참된 요지(要旨)를 드러내어 대승의 근기를 교화한다. 불심을 잘 이해하면 근(根)과 과(果)가 동격이다. 귀의한 마음으로 회통해 이해하여 이치를 드리우다. 歸心會解垂 【주】‘수(垂)’라 한 것은 능전의 가르침이다. 중생을 가르쳐서 그 이익과 제도가 더욱 깊으니, 마음은 해탈의 문에 귀의하고 이해[解]는 용화회상(龍華會上)에 나아간다. 요긴한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니 要理眞詮羡 【주】‘요긴한 이치’라 함은 소전의 묘리를 말한 것이고, 진전(眞詮)이라 함은 능전(能典)의 지교(至敎)를 말한 것이니, 교리의 현묘한 종지를 선망하고 보리의 거룩한 길에 들어간다. 범부는 깊지 않고 부처님은 광대하니 누가 발심하지 않겠는가? 非深意大誰 【주】범부의 지혜는 깊지 않고 부처님의 뜻은 광대하니, 부처님의 지극한 가르침[至敎]을 보고 누가 발심하지 않겠는가? 진망(塵網: 번뇌의 그물)의 미혹한 정을 깨달으면 자연히 안락(安樂)하게 된다.
가르침으로 인연을 닦으니 거룩하게 귀의하고 指因緣善歸 【주】비유로 가리키고 법을 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큰 인연을 닦게 함으로서 의탁할 수 있는 문이 되게 하셨고 오신(五身)의 근본을 잘 짓게 하셨다. 이러한 도에 마음을 견고하게 하면 자연히 귀의하게 된다. 마음으로 회통하고 이해하여 요체를 드리우다. 心會解垂要 【주】마음의 번뇌[心塵]가 멎지 아니하면 회해(會解)가 생기기 어렵다. 요컨대 근기에 맞는 가르침의 연설을 드리우면 저절로 비어서 통하는[虛通] 도에 들게 된다. 이치가 참되어 언전을 버리니 부럽지 않으랴 理眞詮羡非 【주】이치가 참되면 근본을 얻은 것이다.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자 화성(化城:법화경에서 말하는 화성의 비유)을 버리니 속된 깨달음의 그릇됨을 나타내고, 현문(玄門)에 들어가자 뗏목을 버리니 그 위대한 종지를 숭상하는 것이다.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깊은 뜻 누가 크게 교화하심인가? 深意大誰敎 【주】성상(性相)을 깊이 궁구하고 현묘하고 미묘함을 뜻으로 측량해서 크게 교화의 이름을 밝히시니, 누가 수행하는 사람이라 칭하겠는가?
인연이 거룩하니 마음으로 귀의하여 因緣善歸心 【주】선의 근본을 심는 것이 성인이 되는 자량이니, 곧 모든 부처님의 인연이자 뭇 경전들의 밀지(密旨)이다. 사람들이 능히 귀의해 향한다면 스스로 참마음과 합치된다. 회해로 요긴한 이치 드리우고 會解垂要理 【주】‘해(解)’라 함은 지혜[智]를 말한 것이다. 지혜는 진리를 말하니, 성상(性相)의 요긴한 문을 환하게 깨닫는 것이다. ‘드리운다’ 함은 가리키는 것이다. 곧 영산(靈山)에서 방편과 실상의 아름다운 모임을 밝혔음을 곧바로 지적한 말이다.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니 깊지 않은가, 眞詮羡非深 【주】‘참다운 언전[眞詮]’이라 함은 법을 말한 것이며, ‘깊다’ 함은 진리를 말한 것이다. 무구(無垢)해서 진리에 계합하는 설법이 있고 부처님께서는 교화를 보인 이야기를 밝혔으니, 참으로 달인이 아니고는 우러러 부러워할 수 없다. 그 뜻이 큰 것은 누구의 교지인가. 意大誰敎指 【주】성인의 뜻은 광대하고 그 가르침은 많은 방편을 천명하셨다. 어린 아들이 미치고 헷갈린 것을 가엾게 생각해서 화택(火宅)의 환난(患難)을 가르쳐서 이전의 이익과 구제를 알게 했으니,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착함에 의지해서 마음에 귀의하여 회통하고 緣善歸心會 【주】‘연(緣)’은 기대고 의탁하는 것이고, ‘선(善)’은 만 가지 선이다. ‘귀심(歸心)’은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고, ‘회(會)’는 말미암아 증득하는 것이다. 만 가지 선의 공통된 나루에 의지하여 한 근원의 진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중요한 이치의 참됨을 해설해서 드리우고 解垂要理眞 【주】‘해(解)’는 해설을 뜻한다. ‘드리운다’는 교훈을 드리운 것을 말한다. 오승(五乘)의 중요한 이치를 설해서 진제(眞諦)와 속제(俗諦)가 다른 것을 해설하고, 삼성(三性)의 분차(分差)를 훈시하여 오미(悟迷)에 등차가 있음을 밝히셨다. 언어로 밝히고 부러워하니 깊은 뜻이 아니겠는가, 詮羡非深意 【주】‘전(詮)’이란 뚜렷이 밝힌 것을 말한다. ‘선(羨)’은 그리워함[慕]을 말한 것이다. 지극한 진리를 암원(菴園)에서 밝혀서 근기에 따라 요달해 증득케 하고, 참다운 언전을 기수(祇樹:祇園精舍)에서 앙모하여 성품에 맡겨 개통(開通)케 하셨다. 참으로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 깊은 뜻을 깨달을 길이 없다. 이 위대함은 누가 교지한 인연인가? 大誰敎指因 【주】‘대(大)’는 설교의 주인공을 말한 것이다. ‘수(誰)’는 기연에 합당한 대중을 말한 것이다. 십지(十智)의 글을 가르쳐 선포하고 여섯 가지 인연의 근본을 분명히 지적해서 그 곳에 모인 기연의 대중들로 하여금 두루 스스로 증지(證知)하게 하신 것이다.
거룩한 귀의의 마음으로 이해하여 善歸心會解 【주】방편을 잘 열어서 귀의의 마음을 권유하시니, 모여든 삿된 무리들이 정도를 이해하고 통하면서 경전에 근거하여 행을 일으키니, 이것을 ‘수행’이라 하게 되었다. 요긴한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드리우시니 垂要理眞詮 【주】비밀스런 가르침을 드리우고 참다운 언전을 뚜렷이 나타내셨으니, 뱀과 같은 망령된 마음을 단절시켜서 옷 속에 있는 진리의 보배를 획득함을 가리킨 것이다. 부러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깊은 그 뜻이 크도다. 羡非深意大 【주】‘선(羨)’이란 청정한 법이며 ‘비(非)’라는 것은 오염된 마음이다. 청정한 법[淨法]으로 능히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깊이 이익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염법(染法)으로 다시 고해(苦海)에 가라앉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큰 뜻은 바로 이 때문이다. 누가 교지한 인연인가? 誰敎指因緣 【주】성인께서 가르침의 그물을 열어서 자세히 인연을 가리켰는데, 먼저 사제(四諦)의 현묘함을 이야기해서 구륜(俱輪)의 이해를 일으키고, 다음에 육도의 뜻을 선포하여 보살이 품수 받아 따르게 하였다. 이 묘한 문을 여는데, 어느 누가 존중하지 않겠는가?
귀의한 마음으로 회해를 드리우니 歸心會解垂 【주】‘수(垂)’는 발자취를 말한 것이다. 반야신주(般若神珠)는 무언의 이치를 회통해 이해할 수 있고, 백련계보(白蓮髻寶)는 착함이 있는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으니, 일단 해탈의 종지에 귀의하게 되면 반드시 지옥의 고통을 버리게 된다. 요긴한 이치와 참다운 언전을 부러워하고 要理眞詮羡 【주】‘요긴한 이치[要理]’란 이불(理佛)의 성품이고, ‘진전(眞詮)’은 교법을 말한 것이니,《승만경(勝鬘經)》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 법문을 듣고 받아들여서 독송하면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되고, 인과를 통달하게 되면 열반의 청정세계를 부러워하게 된다. 깊은 뜻 크다 함을 누가 아니라 할 것인가? 非深意大誰 【주】시비에 물들지 않음이 상승(上乘)의 이치이니, 이치를 능히 드리워서 실어 나를 수 있다. ‘뜻이 크다’는 것은 그윽이 깊다는 말이다. ‘수(誰)’라고 한 것은 금선(金僊)을 말한 것이다. 이 지극한 성인의 글에 통달하면 반드시 무상(無常)한 경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교지하신 인연 거룩하도다. 敎指因緣善 【주】‘인연’이란 방편문(方便門)을 말한 것이다. 보배가 있는 곳에 돌아가도록 가리킨 것은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한 것이고, 화성(化城)을 만든 것은 권교방편으로 휴식하게 한 것이다.
2. 심자도회문(心字倒廻文)
거룩한 인연으로 귀의하라 가리키시니 歸善緣因指 【주】생사의 허망한 연(緣)을 버리고 보처(補處:미륵불)에 귀의하게 하시고, 인과의 보응을 지적하시어 훌륭하게 근본의 말미암음을 요달케 하셨으니, 슬기롭게 관찰하신 말씀은 길이 천고(千古)에 휘날리리라. 가르친 분 누구인가? 큰 뜻이 깊도다. 敎誰大意深 【주】‘누구[誰]’란 설법한 분이며, ‘가르침[敎]’이란 베푸신 법이다. 법왕께서 일시의 묘설을 베푸시니 그 의의(意義)가 가없고, 가르침의 그물을 오랜 세월[遠劫] 동안 미혹했던 중생[迷情]에게까지 펼치시니, 깊도다, 큰 지혜여. 참된 이치의 언전은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非羡詮眞理 【주】위없는 참 종지[眞宗]는 의왕(醫王)의 묘리이니, 참 종지를 깨달은 사람은 높이 보리(菩提)를 밟고, 요긴한 이치[要理]에 통달한 사람은 길이 고해를 떠난다. 언전 속에 나타난 도의 유현(幽玄)함은 미혹한 중생이 선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긴한 도를 드리우니, 마음을 이해하고 회통하였노라. 要垂解會心 【주】형상을 삼계에 드리워서 뭇 중생에게 요도(要道)의 문을 보여주시니, 참 마음을 완전히 요달해서 부처님께서 열어 보여주신 종지를 이해했다. 좋은 인연을 교지하시니 善緣因指敎 【주】병에 따라 약을 주고 가르침을 마련하여 기연에 투합함이 부처님의 비원(悲願)이시다. ‘좋은 인연’이란 세 가지 근기를 지닌 착한 벗을 뜻하니, 인과를 가리켜서 그들로 하여금 피안(彼岸)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이다. 누가 큰 뜻의 깊음을 그르다고 하겠는가? 誰大意深非 【주】‘누구’라 함은 능인(能仁:부처님)을 말한 것으로서 원을 일으켜 크게 교화한다. 방편을 마련한 이종(二宗)은 그 뜻이 깊지 않고, 거룩한 법을 세워서 하나의 근기를 위함은 그 이치가 얕지 않으니, 함께 과위(果位)로 들어가는 터전이라서 모두 육진(六塵)을 벗어나는 길이다. 진리의 요체를 표현함을 부러워하고 羡詮眞理要 【주】‘전(詮)’은 비유하면 제호(醍醐)와 같다. 불성으로 능전의 가르침의 그물을 두루 보고 소증(所證)의 참 종지를 요달하니, 감로로써 마음을 적시고 제호로써 관정하는 듯하다. 이 요긴한 종지를 통달하면 누군들 선망하지 않겠는가? 지혜를 드리워서 마음을 회통해 귀의하네. 垂解會心歸 【주】‘수(垂)’는 궤범(軌範)이다. ‘해(解)’는 무루(無漏)의 후득지이다. 묘법을 이해하여 널리 중생의 마음에 감응함으로서 팔정도의 문에 귀의케 하여 일진(一眞)의 세계로 회통해 들어가게 하신다.
인연을 지교하신 분은 누구인가. 緣因指敎誰 【주】선(善)을 계승하고 기연이 완숙된 까닭에 화신(化身)으로 가르침을 마련한 것이니, 모든 법은 인연에 기대고 의탁해서 생김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실상이 아님을 알아 무상(無常)을 깨닫게[悟解] 함으로서 번뇌의 네 흐름에서 벗어나 적멸의 유일한 진리[一理]를 증득하게 하셨으니, 누가 이러한 도를 듣고 기꺼이 귀의하려 하지 않겠는가? 큰 뜻이 깊으니 부러워하지 않으랴. 大意深非羡 【주】‘대(大)’라 한 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지극한 법[至法]이다. 그것은 하늘의 도와 같아서 엄숙하지 않으면서도 그 법[政]을 완성하고, 엄정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다스린다. 뜻하는 취지가 심원하여 번뇌와 시비를 끊으니, 이익과 제도가 더욱 많아서 성인과 범부로 하여금 우러러보고 부러워하게 한다. 진리의 요체를 언어로 표현해서 드리우시니 詮眞理要垂 【주】‘언전(詮)’과 명자(名字)는 글에서 언전으로 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니, 이공(二空)의 참된 요체를 설하고 일법(一法)의 말을 여읨을 드러내어서 그 의미는 깊고 미묘하고 이치는 헤아리기 어렵다. 이것을 중생들에게 수시(垂示)하여서 수행하여 증득하게 하신 것이다. 이해와 회통으로 마음이 귀의함이 거룩하도다. 解會心歸善 【주】‘해(解)’는 곧 부처님의 지혜며 ‘회(會)’는 곧 설법하신 곳이다. 뭇 중생은 가르침을 듣고 마음이 적멸의 문에 귀의하고, 지극한 성인은 헤아리기 어려워 몸을 무상한 세계에 기탁하시니, 이 거룩한 길을 보고 누가 기뻐하지 않겠는가? 인연으로 지교하시니, 위대한 분 누구인가? 因指敎誰大 【주】‘수(誰)’란 부처님[大通佛]이시다. 인천 세계의 거룩한 인연으로 행할 바를 지교(指敎)하신 것이다. 큰 광명을 방출하시어 사물을 밝히고 묘법을 베푸시어 중생을 이롭게 함으로서 중생들로 하여금 반야의 배를 타고 열반의 둑에 도달하게 하신 것이다. 뜻이 깊어서 언전을 부러워하지 않고 意深非羡詮 【주】‘심(深)’은 깊은 기연을 말한 것이고 ‘의(意)’란 내용의 뜻을 말한 것이다. 이 언전[詮]을 깨달아 지적한 인연을 밝히니, 모습 있는 것이 실상이 아님을 알게 되어서 진실로 이름 없는 것이 실상임을 부러워하게 된다. 진리의 요체를 드리워 알게 하니 眞理要垂解 【주】부처님께서는 기연에 투합하여 유상(有相)의 세계에 들어가서 신령한 작용이 무수했고, 가르침은 비유로 무언을 나타냈고 이치로 하나의 실상을 궁구하셨다. 방편을 드리워 인연 있는 중생을 구원하셨으니, 널리 복혜(福惠)로 가지런히 수행케 하고, 진상(眞常)의 묘과를 이해해서 증득하게 하셨다. 회상에서 마음이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였네. 會心歸善緣 【주】‘회(會)’란 설법한 곳이고 ‘심(心)’이란 불심이다. 혹 공(空)을 인해서 유(有)를 지적하시기도 하고, 혹 유를 버리고 공을 이야기하시기도 했으니, 이미 악한 인연이 멎으면 선도(善道)로 돌아가게 해서 보소(寶所)에서 느긋하게 노닐게 하여 점차로 미혹의 나루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지교는 누구의 큰 뜻인가. 指敎誰大意 【주】‘지교(指敎)’란 설법한 법문을 말한 것이다. ‘수(誰)’란 능히 설법할 수 있는 부처님을 말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대법(大法)을 베풀어 주신 뜻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니, 그래서 불난 집[火宅]을 실상이 아닌 문이라 가리키면서 사람들에게 버리도록 권유했고, 보소(寶所)가 안락한 땅이 됨을 제시해서 화성(化城)을 지나치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진여는 언전을 부러워하지 않아서 참되다. 深非羡詮眞 【주】‘심(深)’은 진여(眞如)를 뜻한다. ‘비선(非羨)’이란 언전을 뜻한다. 진여는 말을 여의고 전교(詮敎)에 가탁하여 비유를 세우는데, 성심(聖心)은 중생을 이익을 위해 제도의 방편을 드리워서 준수할 수 있다. 이처럼 법을 마련함에 방도가 있으니, 누가 흠모하고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진리의 요체를 드리워서 알게 하니 理要垂解會 【주】‘이(理)’란 도(道)다. ‘요(要)’는 따른다는 뜻이다. 지극한 도는 희이(希夷: 텅 비어서 현묘함)하니 무릇 정신을 길러 성품을 따르는 것이고, 지극히 현묘함은 맑고 넓으니 적합한 지혜를 말미암아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이니, 덕을 드리워 중생을 편안케 하면 자연히 회통하고 이해한다. 마음으로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네. 心歸善緣因 【주】‘마음으로 귀의한다’는 것은 숭상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다. ‘거룩한 인연’이란 기대고 의지한다는 뜻이다. 삼승의 비밀하고 깊은 뜻을 존중하게 된 것이 바로 깊은 인연이니, 육바라밀의 자량(資糧)에 기대면 큰 과보를 얻을 만하다.
대법의 깊은 뜻 누가 가르치는가? 敎誰大意深 【주】‘가르침[敎]’이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수(誰)’란 곧 보살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법은 그 뜻이 깊고 깊으니, 만약 보살의 근기가 아닌 얕은 지식으로는 아무도 깨닫고 이해할 수가 없다. 진리를 가려내니 부러워할 것과 아닌 것이 있다. 非羡詮眞理 【주】‘비(非)’란 사법(邪法)이다. ‘선(羨)’은 정법이다. 무명 사이에서 중생은 육도 속에서 거듭 미혹되지만, 정법의 진전[詮眞]은 삼계의 밖으로 중생[群情]을 인도하니, 그 지극한 이치를 논하자면 정말로 좋은 의지처이다. 요체를 전하시니 마음을 이해해 회통하고 要垂解會心 【주】‘요체[要]’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대면 진량(津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왕이 중천에서 내려오자 뭇 마음이 교화를 향하면서 성스러운 법을 우러르고 모든 나라에 유통되니, 뭇 회상이 모두 훌륭함을 기뻐한다. 좋은 인연에 귀의하라 지시하셨네. 歸善緣因指 【주】마음에 귀의하여 형상을 없애면 유마의 묵언에 합치하는 것이고, 인(因)을 지적하고 연(緣)을 설하면 문수의 지혜로운 변설을 훌륭하게 하는 것이다. 누가 큰 뜻의 깊음을 아니라 하는가? 誰大意深非 【주】‘수(誰)’는 설법의 주인공이다. ‘대(大)’는 곧 공(空)과 유(有)를 포함해서 두 변(邊)에 머물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심(深)’은 그 뜻의 취지가 무궁하여 본말(本末)이 함께 드러난 것이다. 이는 상지(上智)가 궁구(窮究)할 수 있는 일이지 미혹한 중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의 요체를 표현함을 부러워하고 羡詮眞理要 【주】능전의 가르침은 요긴하고 미묘해서 인간과 천상이 함께 따르고, 드러난 이치의 응연함은 범(凡)ㆍ성(聖)이 똑같은 길이다. 진리를 닦아 깨달음에 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제히 기뻐하는 것이고, 근본을 요달하여 번뇌를 벗어나는 것은 현(賢)ㆍ우(愚)가 모두 선망하는 것이다. 회해를 드리워서 마음에 귀의하고 垂解會心歸 【주】법왕께서 불공(不空)의 묘함을 드리워서 만법으로써 마음에 귀의함을 드러내셨고, 중생들은 유일진실한 종지를 해득하여 삼현(三賢:十住ㆍ十行ㆍ十廻向)을 회통해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갔다. 좋은 인연을 가르치셨네. 善緣因指敎 【주】무루(無漏)의 언교는 무명을 고해의 근원이라 지적하였으니, 미혹한 중생을 잘 권유하여 인연을 깨닫는 것이 육진(六塵)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근본이라 하셨다.
큰 뜻은 깊어서 그릇됨을 알아 선망하니 大意深非羡 【주】‘대(大)’는 곧 온갖 행[萬行]이며 ‘심(深)’은 하나의 참됨[一眞]이다. 만행은 성불의 인자(因子)가 되고, 일진(一眞)은 곧 성인이 될 수 있는 근본이다. 지혜로 본성[性]의 바다를 궁구하고 생각[意]으로 현묘하고 미묘한 경지를 다하면, 삼계의 고통[苦]과 그릇됨[非]을 알게 되어서 십력의 오묘한 과덕(果德)을 선망하게 된다. 진리의 요체를 표현해서 드리우시고 詮眞理要垂 【주】법신은 헤아리기 어려우나 불법의 요체를 증험함으로써 언전을 드날리고, 진리는 깊고 현오하나 부처님의 수제(垂提: 가르쳐 보임과 끌어들임)에 힘입어 비로소 밝혀졌다. 회해로 마음이 귀의하니 거룩하도다. 解會心歸善 【주】‘해(解)’는 곧 모든 중생들의 정식(情識)이 열리면서 마음으로 거룩한 법을 낳는 것이며, ‘회(會)’는 묘리를 꿰뚫어서 진상(眞常)에 귀의해 계합하는 것이다. 이 인연을 가르치신 분은 누구인가? 緣因指敎誰 【주】삼승의 언교를 펼치시고 공유(空有)의 그릇됨[成非]을 지적해서 이미 향해 나아갈 문을 여셨으니 우러러 존중하지 않을 수 없고, 인연의 긴요함과 미묘함을 기뻐하도록 권유하셨으니 어찌 절실하게 나아가 닦지 않을 수 있겠는가?
뜻이 깊으니 언전을 부러워함이 아니로다. 意深非羡詮 【주】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를 운용하시니 그 뜻이 얕지 않다. 중생들은 표현된 오묘한 종지를 선망하고 세간을 벗어나는 깊은 인연을 자량으로 삼는다. 이미 법비를 계승하여 적시면서 마침내 메마른 뿌리까지 적셔서 함께 피어난다. 진리의 요체를 누가 알겠는가? 眞理要誰解 【주】진실한 가르침의 이치는 깊은 기연이며 현묘한 것이니, 식(識)으로 인식할 수 없고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교화를 요해하고 근기가 성숙한 이에게 부처님께서 이 도를 전하여서 변통해가는 곳을 제시하고 번뇌의 얽힘을 풀어 주셨다. 마음을 회통하여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니 會心歸善緣 【주】불심에 회합하여 중생을 교화한 것이니, 거룩한 일에 귀의해서 남다른 인연을 심게 함을 가리키신 것이다. 법보(法寶)의 어짊을 ‘진(眞)’이라 하는 것이 귀의할 땅이고, 부처님의 묘한 도는 실로 안락의 인연이 된다. 인연을 가르치신 위대한 분은 누구인가. 因指敎誰大 【주】‘지교(指敎)’라는 것은 법문을 듣는 인연을 유인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과 다보불(多寶佛)이 자리를 절반씩 나누어서 공(空)을 이야기하셨고, 문수보살과 유마거사나 미륵불로 묘함을 펼치고 큰 행을 명백히 선포해서 칠종(七宗)으로 나아가게 하였는데, 누가 많은 인연을 갖추어 자세하게 다시 들을 것인가?
깊은 뜻으로 미혹하지 않고 언전의 참됨을 부러워하며 深非羡詮眞 【주】세상에서 으뜸으로 삼는 것은 참된 언전의 깊은 종지로서 미치거나 미혹하지 않으면 우러르고 선망한다. 선정(禪定)의 활이 손에 있으니 탐욕의 원수는 놀라서 돌아가고, 지혜의 횃불이 길이 밝으니 어리석은 어둠을 비추어 부순다. 진리의 요체를 드리워서 이해하고 회통하니 理要垂解會 【주】진리는 말이 끊어지고 요긴한 법은 이해하기 어렵다. 혹 무(無)로부터 유(有)에 들어가기도 하고, 혹 실상을 써서 방편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러한 교화의 문을 드리워서 중생으로 하여금 회통해 증득하도록 한다. 마음으로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세. 心歸善緣因 【주】‘심귀(心歸)’는 거룩한 일을 지향(志向)하는 것이다. 부처님께 의탁한 것이 인연이 되어 문혜(聞惠)가 비로소 일어난다. 묘구(妙句)를 생각해서 선택하면 노여움이 조복되어 생겨나지 않고, 수승한 인연을 닦아 심으면 적연(寂然)의 거주처에 도달하게 된다. 지시하고 가르친 것은 누구의 큰 뜻인가? 指敎誰大意 【주】‘지(指)’는 정의한다는 뜻이며, ‘교(敎)’는 미묘한 언전을 뜻한다. 누가 지혜의 등불을 점화하여 이 큰 뜻을 비추어보는가?
보살이라야 참된 이치를 표현함을 부러워하니 非羡詮眞理 【주】‘비(非)’는 아니라[不]는 뜻이다. 육진[六塵]에서 벗어난 보살[士]이 아니면 정녕코 바다와 같은 경문을 궁구할 수 없으니, 이 능전의 가르침을 부러워하여야 비로소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요체를 드리워서 마음을 이해하고 회통한다. 要垂解會心 【주】‘요(要)’는 요문(要門)의 법을 말한 것이다. ‘수(垂)’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이다. 일체를 두루 이해하는 것을 ‘회(會)’라고 한다. 하늘의 혜택에는 사심(私心)이 없으나 말라비틀어진 부류는 윤택하게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불심이 비록 모든 중생들에게 두루 자비하더라도 무르익지 아니한 기연을 끌어주기는 어렵다. 좋은 인연에 귀의하라 지시하시니 歸善緣因指 【주】뛰어난 과보를 향해서 구하는 것을 ‘귀(歸)’라 하고, 그 성품이 유연하게 아는 것을 ‘선(善)’이라 하니, 부처님을 연(緣)으로 삼아 출세간의 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혹 신통력으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혹 교법으로 진여를 증득하기도 한다. 큰 뜻이 깊으니 누구의 가르침인가? 敎誰大意深 【주】말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을 ‘교(敎)’라 하고, 그 뜻이 그윽하고 심오한 것을 ‘심(深)’이라고 한다. 누가 이 뜻의 내용을 깨달아서 수행으로 상락(常樂)의 보배 산에 올라 진로(塵勞)의 큰 바다를 벗어날 줄 아는가?
진리의 요체를 표현함을 부러워하고 羡詮眞理要 【주】성현을 우러러 사모하는 것을 ‘선(羨)’이라 하고, 진리를 뚜렷하게 밝히는 것을 ‘전(詮)’이라 한다. 정심(精心)으로 부처님을 받들어서 가르침을 받아 인을 심고, 반드시 청정한 근원으로 되돌아가서 견고하지 않은 경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해하고 회통하니 마음이 귀의하네. 垂解會心歸 【주】효도의 가르침을 전한 것은 노(魯)나라의 고담(高談)이고, 회상을 영취산에서 연 것은 석천(釋天)의 대사(大事)였다. 마음을 돌려 해탈하니 장차 육바라밀[六事]로 가지런히 수행하고, 지혜로 탐욕과 어리석음을 멸진시켜 삼과(三科: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가 환상임을 깨닫는다. 거룩한 인연을 가르치시니 善緣因指敎 【주】사람됨이 겸손하고 온화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마음이 가르침[指敎]을 따르는 것을 ‘연(緣)’이라 한다. 부처님의 뜻을 좇아 인연을 숭상하고 지혜의 칼날을 세워 애욕의 그물을 잘라낸다. 큰 뜻의 깊음을 누가 아니라고 하는가. 誰大意深非 【주】불사(佛事)를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을 ‘의(意)’라 하고, 포함하지 않는 물건이 없는 것을 ‘대(大)’라고 한다. 수미산이 높아도 겨자씨 속에 넣는 것이 어렵지 않으며, 바다가 아득히 깊다 해도 한 오라기 털끝으로 삼켜도 넘치지 않으니, 누가 신령스런 교화가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진리를 헤아려서 그 요체를 드리우시니 詮眞理要垂 【주】‘전(詮)’은 양(量)이니 헤아린다는 뜻이다. 의리(義理)의 요체는 진여를 증득함이니, 누가 미묘한 말씀에 근거하여 과연 각화(覺花)의 문자를 건립하였던가? 이해하고 회통하여 마음이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하니 解會心歸善 【주】‘해(解)’라 함은 벗어남[離]을 말한 것이니, 삼독의 번뇌에서 벗어남을 말한 것이다. 원숭이가 부처님께 과일을 헌상하며 불심을 이해하였고, 동자도 모래 탑을 받들어서 왕의 자리를 얻게 되었으니, 거룩한 일에 귀의하여 부처님을 숭상하면 이러한 아름답고 상서로운 감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인연 지교하신 분 누구인가? 緣因指敎誰 【주】부처님께서는 진실한 벗으로 좋은 인연을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이 문을 향하여 마음의 불을 끌 수 있고, 이어서 대행을 닦는다면 반드시 세상 밖의 사람[物外之人]이 될 수 있다. 큰 뜻이 깊으니 부러워하지 않으랴. 大意深非羡 【주】성인의 법은 광대해서 그 의취가 매우 깊고, 이치는 모든 부정[百非]을 단절해서 생사의 경계에서 벗어나니, 그 뜻은 삼라만상을 포함하여 슬기롭게 범부ㆍ성인의 말을 초월한다. 이 항규(恒規)를 부러워하는 사람이면 누가 정진하지 않겠는가?
진리의 요체를 드리워서 알게 하시니 眞理要垂解 【주】성교(聲敎)를 참다운 언전[眞詮]이라 하고, 지혜를 ‘요해(要解)’라 한다. 백억의 형상을 변화하면서도 한 목소리로 묘법을 베푸시니, 그 자세하고 간략함에 따라 깨닫고 증득함에 얕고 깊은 차이가 있다. 이 가르침을 전한 글에 의지하여 미혹된 유정[迷情]의 해로움을 훌륭히 멸진한다. 마음을 회통하여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네. 會心歸善緣 【주】‘회심(會心)’이란 부처님의 뜻에 계합(契合)하는 것을 말한다. 자비의 구름을 일으키고 반야의 비를 뿌려서 사생(四生)의 열뇌를 멈추게 하고 시들고 마는 만물을 소생시키니, 부처님이야말로 거룩한 인연인데 누가 귀향하지 않겠는가? 인연의 가르침은 누구의 대도인가? 因指敎誰大 【주】‘지(指)’는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그 거룩한 인연을 보여주어서 대도(大道)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부처님의 명호만을 듣고 예를 올려도 오히려 세간을 벗어나는 기반이 되므로 입으로 공(空)을 이야기한다면 반드시 번뇌를 벗어나는 보응이 있다. 누가 이해하고 깨달아서 법을 향하여 수행할 줄 아는가? 뜻이 깊으니 언전을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意深非羡詮 【주】‘의심(意深: 뜻이 깊다)’이란 부처님의 종지를 표현하여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굽어보아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우러러보면 더욱 높아서 뿌리와 마디가 얽힌 말을 부러워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미묘함이지, 생의 뜻을 구구절절 아는 것이 근본 종지를 앞서지는 않는다.
진리의 요체를 드리워서 이해하고 회통하게 하시고 理要垂解會 【주】뜻이 진(眞)과 속(俗)에 공통되는 것을 이름하여 ‘해(解)’라고 한다. 마음을 열어 이롭게 하고 구제하는 것을 ‘수(垂)’라고 말한다. 요컨대 상고(上古)의 기풍을 관찰해서 무위(無爲)의 진리와 회합한다. 마음이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니 心歸善緣因 【주】정신을 맑히고 모든 생각을 쉬는 것을 이름하여 ‘심귀(心歸)’라고 하고, 얕음을 버리고 깊음을 따르는 것을 ‘연선(緣善)’이라 부른다. 만약 육진에서 벗어나는 이견(利見)을 쌓게 된다면 도(道)에 들어가는 초인(初因)을 이루게 된다. 가르치신 것은 누구의 큰 뜻인가? 指敎誰大意 【주】뜻이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있음을 ‘대(大)’라고 하며, 많은 설법을 베푸신 것을 지목하여 ‘수(誰)’라고 표현하였다. 이익의 문을 알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깊은 뜻은 언전의 참됨을 부러워함이 아니다. 深非羡詮眞 【주】가르침의 바다가 가이없음을 ‘심(深)’이라고 하고, 종지(宗旨)로 삼아 존중할 만한 것을 ‘선(羨)’이라고 하였으니, 시비에 물들지 아니하고 고락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삼교의 가르친 발자취를 높인 것이니, 다만 참다운 언전을 궁구해야 비로소 뚜렷이 밝혀지는 것이다.
요체를 드리우니 이해하고 회통하는 마음이요 要垂解會心 【주】‘요(要)’라고 한 것은 요문(要門)의 가르침이고, ‘해(解)’라고 한 것은 해혜(解惠)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자비로써 교화하여 인도하시니, 사람은 부처님의 덕을 우러러 마음을 기울인다. 법식(法式)을 모아서 단(壇)을 행하면, 저절로 지혜가 생겨서 미혹을 끊게 된다.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라 지시하시니 歸善緣因指 【주】불도는 평등하여 귀의할 수 있으나, 번뇌는 물들어서 선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궤도(軌道)를 지시하여서 연(緣)으로 삼게 하시고, 남다른 인(因)을 마련하여 과위로 나아가게 하셨다.
법화[花]는 누구의 가르침인가? 큰 뜻이 깊도다. 敎誰大意深 【주】법화[花]의 절묘함을 꿰뚫은 것을 ‘교(敎)’라 하였고, 어떤 기연인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수(誰)’라 하였고, 부처님 뜻의 깊고 원대함을 ‘대(大)’라고 표현하였다. 배 안에 불덩어리를 저장하고 있으니 설사 겁의 무너짐으로도 태우지 못하고, 입 속으로 바람을 빨아 당기고 있으니 산이 흔들린다 해도 움직이지 아니한다. 그릇됨을 알아서 진리의 가르침을 부러워한다. 非羡詮眞理 【주】범부로 있으면서 잘못을 알게 되면 부처님을 향해 선망할 수 있으니, 글의 표현을 빌려서 미묘함을 얻고 행고(行苦)를 싫어해서 진실을 구한다. 그래서 본래의 지혜가 만약 생기게 되면 곧 진리를 증득할 수 있게 된다.
해회를 드리우시니 마음이 귀의하고 垂解會心歸 【주】부처님께서 진실을 증득한 지혜를 드리우시자 중생들이 깨닫고 이해하는 마음이 열려서 본원(本源)에 계합하여 대도에 귀의하게 된 것이다. 거룩한 인연을 가르치시니 善緣因指敎 【주】중생들을 이롭게 해서 구제하신 것을 ‘선(善)’이라 일컬었고, 기대어 의탁할 만한 것을 이름하여 ‘연(緣)’이라 하였다. 부처님이 설법하신 인연을 지적하고 중생[物類]들의 의지하는 대략을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한다. 큰 뜻이 깊은 것을 누가 아니라 하는가? 誰大意深非 【주】‘대(大)’라는 것은 바로 방편과 실상을 총괄적으로 포함한 것이고, ‘심(深)’이라는 것은 인간과 천상이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뜻의 종지가 높고 원대하니 누구든 능히 믿을 수 있으리라. 진리의 요체를 표현함을 부러워하네. 羡詮眞理要 【주】무루(無漏)의 참된 언전을 부러워하니 몸을 버려 법을 위하고, 상승의 긴요한 이치를 맛보았으니 불에 뛰어들어 경을 꺼낸다. 요컨대 삼겁의 인을 반드시 행해야 비로소 열반의 과보를 증득한다.
이해하고 회통해서 마음이 거룩함에 귀의하노라. 解會心歸善 【주】견해가 고금에 통하는 것을 ‘해(解)’라고 부르고, 정이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꿰뚫은 것을 ‘귀(歸)’라고 한다. 질박한 마음을 회통해서 갖추어야 증명의 도를 잘 통달한다. 인연을 가르치신 분은 누구인가. 緣因指敎誰 【주】그 지극한 가르침에 반연해서 모두 교화하려는 마음을 품었고, 그 성스러운 생각[聖思]을 가리켜서 각기 기풍에 따르는 도를 일으켰다. 장차 유교가 나란히 빛나게 되었으니 누가 의지하여 따르지 않겠는가? 큰 뜻이 깊으니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大意深非羡 【주】적수(赤水:니련선하)에서 현주(玄珠)를 얻어 깊이 도의 근원을 궁구하였고, 취봉(鷲峰)에서 의보(意寶)를 얻어 크게 불리(佛理)를 밝혔으니, 진실로 탁월하게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것을 부러워하겠는가? 진리를 표현해서 그 요체를 드리우시다. 詮眞理要垂 【주】공(空)을 이야기하고 유(有)를 말하는 것을 ‘전(詮)’이라 하였고, 실제[實]를 취하고 화려함[華]을 버리는 것을 ‘이(理)’라고 이름하니, 진리의 요체를 크게 펼쳐서 미혹한 무리들에게 드리우신 것이다.
마음을 회통하여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니 會心歸善緣 【주】중생들의 인연이 무르익자 부처님께서 즉시 오셔서 자비의 등불을 밝게 켜서 지옥의 칠흑 같은 어둠을 깨고, 지혜의 칼을 갈아서 번뇌라는 이름의 원수와 대적하셨다. 이미 귀의하고 우러러 흠모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반드시 진여를 증득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인연을 가르친 이 누구인가? 위대하도다. 因指敎誰大 【주】‘인(因)’은 색심의 씨앗을 말한 것이다. 이 교법을 가리키시니 누가 의지하고 귀의하지 않겠는가? 크게 살타(薩埵:보살)의 마음을 일으켜서 비상한 경지로 높이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 뜻이 깊으니 어리석은 무리가 아니라면 가르침을 선망하니 意深非羡詮 【주】뜻이 어리석음과 번뇌를 벗어난 것을 ‘심(深)’이라 하였고, 성품과 모습[性相]을 언어로 표현한 것을 ‘교(敎)’라 하였다. 그런 까닭에 법에 어리석은 무리가 아니라면 기꺼이 유현(幽玄)한 종지를 선망한다. 진리의 요체를 드리워서 이해하게 하셨네. 眞理要垂解 【주】확실히 진리에 통하면 요문(要門)을 타고 화하니, 이는 비밀한 가르침을 표현한 것으로 모든 중생이 깨달아 알게 된다. 마음이 거룩한 인연에 귀의하니 心歸善緣因 【주】세 번 받아들인 운동의 인연은 모두 마음에 있었고, 구지(九地)를 왕래한 선악은 모두 부처님께 돌아갔다. 가르침은 누구의 큰 뜻인가? 指敎誰大意 【주】선정의 배움[定學]을 가르쳐서 닦게 하신 것이 부처님의 큰 뜻이다. 누가 총명하게 법을 깨닫고 행을 지켜서 유루(有漏)의 번뇌를 끊고 무생(無生)의 지극한 이치[至理]에 계합하였는지 아는가? 깊이 진리를 표현함은 부러워할 바가 아니다. 深非羡詮眞 【주】‘진(眞)’이란 지혜의 배움[惠學]을 말하며, ‘전(詮)’이란 깊은 이치를 표시한 말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정에 의거해 지혜를 일으켜서 중생을 구제하고 미혹함을 인도하니, 상방(上方)에서 향기로운 음식을 취하고 동토(東土)에서 사자의 누대와 접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의 요체로 해회를 드리우셨네. 理要垂解會 【주】‘이(理)’는 계율의 배움[戒學]을 말한 것이고, ‘회(會)’는 처소[處]를 말한 것이다. 요컨대 악을 막아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부처님을 향해 마음을 둘 줄 아니, 전하신 가르침에 귀의하게 되면 일찍이 진여를 접하는 땅에 도달하게 된다.
3. 침자정회문(侵字正廻文) ①
번뇌를 관(觀)해서 운무가 퍼지듯 효심을 운행하고 侵觀靄運孝 【주】번뇌의 괴로움을 요달하는 것을 ‘관(觀)’이라 하고, 모든 행보다 먼저 도달하는 것을 ‘효(孝)’라 한다. 장애로 덮인 번뇌를 지혜의 칼을 운용하여 베어 없애고, 두루 중생들을 모두 풍성히 안락하게 한다. 노여움을 다스려 건전한 옛날에 일치케 하고 齊嗔協健古 【주】탐욕과 노여움의 악법을 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일치해서 수행하면, 계의 향기가 담복(薝蔔)의 숲에 생겨나서 금고(今古)에 가지런히 통하고, 지혜의 바다가 전단(栴檀)나무를 적셔서 굳게 미혹과 깨달음을 꿰뚫는다. 도를 찾고 인을 넓힘은 교훈을 비추는데 있으니 尋寬在訓照 【주】현명한 도와 법의 덕을 찾는 것은 모름지기 인을 넓히는 데 있고, 성스러운 인[聖因]을 파헤쳐서 쌓고 펼치는 것은 반드시 교훈의 비춤을 통해서이다. 헷갈리면 업과 염원의 괴로움을 따르게 된다. 迷循業願苦 【주】업고에 얽매이니 삿된 집착에 덮이게 되고, 미혹한 마음에 따르게 되면 개차(開遮)를 살핀다. 모름지기 바른 말에 의탁해야 깨달음으로 서원하고, 불도에 의지해야 영원히 지귀(指歸)하게 된다.
관(觀)으로 구름 같이 운용해서 효가 가지런해지고 觀靄運孝齊 【주】어리석음을 살피고 지혜를 운용하는 것을 ‘관(觀)’이라 하고, 몸의 빛깔이 온화하고 맑은 것을 ‘효(孝)’라고 한다. 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큰 지혜를 운용하고 밝고 밝은 불심을 가지런히 해서 격려하고 수행하기를 권하면, 반드시 성스러운 도에 들어간다. 성내는 마음을 건전하게 해서 옛 이치를 찾으며 嗔協健古尋 【주】번뇌의 독이 마음을 흔드는 것을 ‘진(嗔)’이라 하고, 기연이 민첩하고 날카롭게 나타나는 것을 ‘건(健)’이라 표현한다. 태고의 순박함을 찾고 지금 오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행한다면 어찌 큰 이득이 없겠는가? 너그러움은 가르침에 있으면서 미혹함을 비추고 寬在訓照迷 【주】덕을 쌓고 인(仁)을 두텁게 하는 것을 ‘관(寬)’이라 하고, 겸손하고 공손하게 예(禮)를 지키는 것을 ‘훈(訓)’이라 한다. 이미 이익을 주고 구제하는 길에 있으니, 모름지기 사물을 비추어보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미혹한 무리로 하여금 전부 해탈케 해야 한다. 고통이 침범하니 업을 따르기 원하네. 循業願苦侵 【주】삼계(三界)에 출몰하는 것을 ‘순(循)’이라 하고, 육바라밀을 함께 닦는 것을 ‘업(業)’이라 한다. 사홍서원을 일으켜 고해를 건널 수 있는 배를 만들고, 일음(一音)으로 법을 펴서 삿된 산[邪山]의 침범을 깨뜨린다.
효순함을 풍성하게 운용하여 성내는 마음 다스리고 靄運孝齊嗔 【주】자비의 구름이 두루 모여드는 것을 ‘애(靄)’라 하고, 진여를 문득 증득하는 것을 ‘제(齊)’라 한다. 지혜를 운용하여 점차 불문에 들어가려면 먼저 노여움과 욕심을 제거해야 하고, 뜻을 세워 충정(忠政)을 높이 헤아리려면 모름지기 효심을 간직해야 한다. 화목과 건전함으로 옛날의 너그러움을 찾고 協健古尋寬 【주】상ㆍ하가 회목한 것을 ‘협(協)’이라고 하고, 지금을 궁구하고 옛 것을 살펴보는 것을 ‘심(尋)’이라 한다. 너그럽고 건전한 큰마음을 쌓고, 보리(菩提)의 뛰어난 행을 닦아야 한다. 미혹함을 따르는 우리를 교훈으로 비추어보니 在訓照迷循 【주】밝게 물정(物情)을 살피는 것을 ‘조(照)’라 하고,. 앞의 경계에 어두운 것을 ‘미(迷)’라 한다. 부처님께서 훈육하는 공덕을 일으켜 생사를 순환하는 무리를 구제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만법이 모두 마음에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업의 염원과 고통의 침범을 관하네. 業願苦侵觀 【주】깊이 실제에 들어가는 것을 ‘침(侵)’이라 하고, 성인과 꼭 부합되는 것을 ‘원(願)’이라 표현하였다. 업보의 고통이 핍박하는 것을 관찰하매 몹시 안타깝고 가엾게 여겨서 이익의 자비를 드리우시니, 문득 그것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
효심을 운용해서 성내는 마음을 다스려 어우러지게 하고 運孝齊嗔協 【주】덕으로 운용하고, 마음으로 효도하고, 현명함으로 가지런히 하고, 수순함으로 화합하니, 이 네 가지 행실을 밝게 빛나게 해서 임금의 진심(嗔心)을 삼가게 하고, 육통(六通)을 높이 운용해서 성인의 글의 권선(勸善)을 드러낸다. 건전함으로 고불의 마음 찾으니, 너그러움에 있게 되네. 健古尋寬在 【주】용기 있고 건전한 지혜를 갖추면 고불(古佛)의 마음을 찾을 수 있고, 자재한 공덕을 넓히고 높이면 반드시 원만한 경지에 도달한다. 미혹으로 업을 따름을 교훈으로 비추어주고 訓照迷循業 【주】부처님께서는 고금을 뛰어넘어 훈육하고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비추며, 중생은 윤회를 따라 미혹 속에 빠져 업연에 얽혀 있다. 그래서 확실히 권고하여 중생이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교화하여 번뇌와 장애를 영원히 없애게 하였다. 고통의 침범을 관찰해서 자비의 구름 드리우기 원하네. 願苦侵觀靄 【주】부처님께서는 비원을 일으켜서 온갖 고통에 침범당하고 있는 중생을 비추어 보시고는 법의 천명과 자비의 구름으로 감싸시니 모든 사람이 때를 같이하여 해탈하게 하셨다.
성내는 마음을 효순함으로 다스려서 건전한 마음과 조화롭게 하고 孝齊嗔協健 【주】천지가 나누어진 이래로 효도가 첫머리에서 가지런히 밝혀졌고, 진여를 증험하는 불지(佛智)가 언전을 고양함으로써 건전함과 조화를 이루었으니, 이러한 이익의 문을 천명해서 성냄의 독[嗔毒]을 다스렸다. 옛것을 찾으니 너그러움은 훈육에 있어서 古尋寬在訓 【주】빛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고(古)’라 하였고, 여래의 지혜를 증득하는 것을 ‘관(寬)’이라 칭하였다. 발심은 경책하고 훈계하는 말에 있으며, 성도(成道)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길에 거처한다. 업과 염원에 따라 미혹한 중생을 비추어 보니 照迷循業願 【주】큰 지혜가 열리길 염원하며 미혹한 중생을 비추어 보시니, 근기와 식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업연을 따라 교화하고 제도하였다. 고통이 침범하여 관지(觀智)의 운무를 운용하였다. 苦侵觀靄運 【주】중생들은 미혹과 고통에 침범을 당하여 삼계를 구름처럼 떠돈다. 모든 부처님은 관지(觀智)를 운용하여 영원히 육진의 경계를 벗어나도록 구원하고 각기 법주(法舟)에 태워 속히 부처님의 길에 오르게 하셨다.
성내는 마음을 다스려서 건전하게 옛사람과 조화하고 齊嗔協健古 【주】왕도(王道)에 조화하고 찬동하는 것을 ‘협(協)’이라 표현하였고, 자타를 모두 제도하는 것을 ‘제(齊)’라 하였다. 정진의 용맹한 마음을 일으켜서 탐욕과 노여움의 불길을 끊어 없애고, 고전(古典)을 따르면서 법에 근거하여 수행하게 하신 것이다. 너그러움을 찾아보니 훈육의 비춤에 있었노라. 尋寬在訓照 【주】지전(至典)을 찾아 살펴서 널리 그 근원을 궁구하면, 삼교의 지시한 자취가 다만 말로 가르치고 있음을 알고, 오승(五乘)의 현묘함도 오직 경문에만 있음을 요달한다. 미혹으로 업원의 괴로운 길을 따르니 迷循業願苦 【주】오랜 세월 삼계에 순환하는 것은 미혹한 마음 때문이고, 사생에 떨어져 윤회하는 것은 모두 업고를 반연한 것이니, 부처님께서는 큰 원을 지니시고 이 중생들을 제도하시었다. 침범으로 관이 구름처럼 일어나면서 효순함을 운용하네. 侵觀靄運孝 【주】정미(精微)한 마음이 있어야 효심이 생기게 되고, 지혜의 증명이 있어야 관(觀)이 일어난다. 자비의 구름이 높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고단한 중생을 움직이게 하고, 법의 비[法雨]가 두루 침투해서 이 만물을 적셔주는 것이다.
성냄을 건전함과 조화시키면서 옛것을 찾고 嗔協健古尋 【주】자세히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심(尋)’이라 하고, 총명과 지혜가 탁월한 것을 ‘건(健)’이라 한다. 우러러보매 법수(法水)가 내려와 적시면서 중생[情田]의 성내는 불을 멸진시키니, 모두가 상고(上古)를 말한 것이 완전히 불심과 합치한다. 너그러움은 훈육으로 미혹을 비추는데 있으며 寬在訓照迷 【주】도가 만상(萬象)을 머금고 있음을 ‘대(大)’라 말하고, 교(敎)가 백억 세계에 유통됨을 ‘관(寬)’이라 한다. 지혜를 높이 들어 미혹함을 비추는 것은 그 뜻이 중생을 훈육하여 구제하는 데 있다. 업원을 따르면 고뇌가 침노하고 循業願苦侵 【주】돌고 돌면서 안정하지 못한 채 업의 고통에 침노당하고 있는 중생들을 가여워하면서 교화를 드날리는 문을 열어 널리 현묘하고 미묘한 법을 베풀기를 염원하였다. 운무를 관하니 효도를 운용함이 가지런하네. 觀靄運孝齊 【주】자비와 지혜가 일제히 움직이고, 충성과 효도가 아울러 행해지면, 자비의 구름이 뭉게뭉게 퍼지면서 법의 비가 부슬부슬 왕성하게 내린다. 그리하면 모두가 불도를 보게 될 것이니 누가 나아가 닦지 않겠는가?
건전함과 조화를 이루니 옛길을 찾음이 넉넉하고 協健古尋寬 【주】옛길을 드높여 걸어나는 것을 ‘건(健)’이라 하고, 중생이 법장(法藏)을 머금고 있는 것을 ‘관(寬)’이라 하였다. 고요히 참다운 언전을 열람하면서 지혜의 마음이 점차 밝아지기를 바라고, 심오한 지취를 세심히 찾아서 대각이 지시한 자취에 맞춘다. 미혹을 따르는 것을 훈육으로 비추어 준다. 在訓照迷循 【주】상교(像敎: 불법의 가르침)가 유통되면 궤식(軌式)은 항상 존재한다. 미혹에 빠진 중생을 훈시하여 어두운 마음을 비추어 열어 허망하고 험한 길을 따르지 않게 했다. 업원의 고뇌가 관(觀)을 침노하니 業願苦侵觀 【주】부처님의 원은 바다와 같고 교화의 바탕은 구름과 같다. 다섯 가지 고[五苦]에 시달리는 중생들이 아직 백업(白業)5)을 숭상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 종지의 묘전(妙典)을 제창하시어 흑산(黑山)을 놀라 뒤집어지게 하였다. 삿된 무리들이 없어진 이래로 침범이 있으면 반드시 진여를 증득하는 방편이 있다. 운무가 피어나듯 효행을 운용하여 노여움 다스리네. 靄運孝齊嗔 【주】운무가 피어나듯 신통력을 운용하여 크게 효행을 숭상하시고, 광명을 놓아 설법하여서 옛 부처님과 더불어 도가 가지런해지셨고, 탐심을 그치고 진심(嗔心)을 여의어서 현재와 미래의 진실한 법제를 만드셨다.
굳게 옛 부처님의 뜻을 찾아보면 너그러움 존재한다. 健古尋寬在 【주】용감하고 날카롭게 법을 구하는 것을 ‘건(健)’이라 하니, 옛날과 지금으로 시대는 달라도 부처님 뜻의 바탕은 같다. 약동함이 마음에 있으면 올바로 너그럽고 인자한 마음과 합치되고, 선을 찾는 것이 밝고 밝으면 반드시 적멸의 문에 오르게 된다. 훈육의 비춤이 미혹되니 업에 따르고 訓照迷循業 【주】훈육의 비춤이 헷갈리고 잘못되면서 그로 인해 업에 매이게 되자, 명문(名文)을 세워 이익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삼고 광명을 밝혀 생사에서 벗어나는 길을 만들었다. 염원과 고통이 침범하자 운무를 관(觀)하고 願苦侵觀靄 【주】행고(行苦)가 서로 침범하니 겁석(劫石)이 없어져도 멎지 않고, 운무와 같은 염원은 깊고 넓어서 지혜와 관(觀)으로 비추어도 멈추지 않는다. 효심을 운용해서 노여움을 다스려 어우러지게 한다. 運孝齊嗔協 【주】성정의 중추를 움직여서 노여움과 탐욕을 제거하고, 마음은 효행을 종지로 삼고 뜻[志]은 일에 친근하도록 동화하는 것은 비단 현인ㆍ성인이 모두 따르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고금의 사람들이 나란히 읊조린 것이다.
옛글을 찾아보면 너그러움을 가르치고 있으니 古尋寬在訓 【주】옛글을 스승삼아 진리를 찾아보면 너그러움과 인자함으로 선(善)을 권장하였고, 모든 부처님의 행적을 잠잠히 생각해 보면 온갖 식별의 허망한 인연을 제거하게 된다. 후생들에게 훈계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 길은 먼저 남다른 일을 닦는 데 있다. 미혹으로 업원을 따르는 사람들을 비추어보고 照迷循業願 【주】높이 지혜의 태양을 매달아 놓는 것을 ‘조(照)’라고 하고, 부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을 ‘미(迷)’라고 한다. 깊은 기연을 살피고 널리 교화의 행을 열어서 업고를 제거시켜서 진량(津梁: 나루터)이 되기를 원하셨다. 고통이 침범하면 관의 운무를 움직여서 苦侵觀靄運 【주】죽음과 삶에 핍박당하는 것을 ‘고(苦)’라고 하고, 선과 악이 서로 삼키는 것을 ‘침(侵)’이라 하였다. 운무의 선정과 신통을 운용하여 관(觀)의 지혜를 닦게 하고, 밝디 밝은 법인(法印)을 매달아서 지귀(指歸)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효심으로 노여움 다스리니 건전함에 일치하네. 孝齊嗔協健 【주】지혜로운 마음으로 용감하게 전진하는 것을 ‘건(健)’이라 하고, 탐욕과 노여움을 함께 끊는 것을 ‘제(齊)’라 하였다. 대각(大覺)의 현묘한 기풍에 어우러지고 효제(孝悌)의 거룩한 길을 행하셨다.
2)전(筌)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이고 제(蹄)는 토끼를 잡는 그물이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을 뜻한다.
3)팔전도는 다음과 같다: 1)상전도(常顚倒)는 세간의 무상(無常)한 법에 대해 상견(常見)을 일으키는 것. 2)낙전도(樂顚倒)는 오욕(五欲)의 즐거움이 고통을 부르는 원인인데도 이를 모르고 허망하게 쾌락에 집착하는 것. 3)아전도(我顚倒)는 사대(四大)가 임시로 모여서 이루어진 몸에는 본래 ‘나’가 없는데 이를 모르고 몸 가운데 주재자로서의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 4)정전도(淨顚倒)는 자기 몸이든 남의 몸이든 다섯 가지 부정(不淨)이 있는데, 이를 모르고 허망하게 청정하다고 집착하는 것. 5)무상전도(無常顚倒)는 여래의 상주법신(常住法身)에 대해 생멸하고 변화하는 상(相)이 있다고 허망하게 계교하는 것. 6)무락전도(無樂顚倒)는 열반청정(涅槃淸淨)의 즐거움에 대해 즐거움이 없다고 계교하는 것. 7)무아전도(無我顚倒)는 불성(佛性)의 진아(眞我) 속에서 허망하게 무아(無我)라고 계교하는 것. 8)무정전도(無淨顚倒)는 여래의 몸은 잡식(雜食)의 몸도 아니고 번뇌의 몸도 아니고 혈육의 몸도 아니고 근골로 얽힌 몸도 아닌데도 부정(不淨)하다고 계교하는 것이다.
4)희(喜), 노(怒), 애(哀), 락(樂), 원(怨) 등 인간의 다섯 가지 성정을 가리킨다. 혹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성품을 가리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