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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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서문

【註】참된 근본과 지극한 이치는 비밀스럽고 그윽하고 은미하니, 가르침에 의지하여 드러내 펼침으로써 그 극치를 밝혀야 한다.
‘비(秘)’는 비밀스럽다는 뜻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에 버금가는 분이라야만 능히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장(藏)’이란 진리를 간직하여 포섭하는 것이니, 바다처럼 모든 강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여래의 비밀한 법도 또한 그와 같은 까닭에 『반야경』에 이르기를, “모든 중생이 여래이니, 여래장의 체(體)는 유일하고 진실한 본성이다. 미혹하면 범부이고 깨달으면 성인이다”라고 하였고, 『승만경(勝鬘經)』에 이르기를, “속박에 매여 있는 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부르고, 속박에서 벗어나면 대법신(大法身)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비밀장(秘密藏)이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 편히 머물면 큰 일[大事]을 세울 수 있고 신통력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나는 이제 모든 중생들과 나의 제자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다 비밀장에 편안히 머물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 비밀한 법문은 일체에 두루 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이르기를, “유정(有情) 가운데 있을 때는 불성(佛性)이라 부르지만 무정(無情) 가운데 있으면 법성(法性)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들이 온갖 덕[萬德]을 포섭하여 항상하는 몸[常身]을 미묘하게 증험하셨지만, 6취(趣)의 중생들은 미혹하여 일진(一眞) 법문에서 등을 돌리고 오래도록 고통 바다[苦海]에 잠겨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의 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장차 이 허망한 것을 떠나서 따로 진실을 구하겠다고 기약한다. 이처럼 경계에 부딪쳐서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비밀장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전(詮)’이란 가르침[敎], 즉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말하는 것이니, 문자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비밀한 이치를 밝힌다는 뜻이다. 말로 인하여 법을 이해하지만, 뜻을 얻고 나면 말은 잊게 된다. 그러므로 『유마경』에 이르기를, “언설(言說)과 문자가 모두 해탈상(解脫相)이니, 이로 말미암아 이 진여의 극치를 다시 밝히게 된다”고 하였다.
위대하도다. 일진(一眞)의 오묘한 도리는 만법의 현묘한 종지[玄宗]여서, 작은 먼지까지도 놓치지 않고 굳게 지키며 법계에 두루 미치어 널리 감싸는구나. 그윽하고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고요히 숨어서 알기 어렵지만,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를 얻음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셨고 정토의 황왕 아미타 부처님은 이를 얻음으로써 중생에게 임하셨다. 그리하여 그 지극한 도리를 펼치실 때에 말을 붙여 설명하셨다.
‘서(序)’라는 것은 가르침[敎]이다. 신묘한 불도[神道]를 베풀 때에 아름다운 말로 가르침을 드리워 크게 드러내고, 내용을 펼쳐 말하여 현오한 이치를 밝힘으로써 불가사의[不思議]하고 오묘한 경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듣건대 경전의 근원이 되는 비밀의 종지는 粤聞詮源秘旨
【註】진리를 베풀어 밝혀서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할 때에, 아름다운 계책을 말로 나타내는 것이 곧 문장으로 들어가는 오묘한 기세가 된다.
‘전(詮)’이란 능히 풀이하여 밝힐 수 있는 경전[能詮]1)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으로, 소승[半字]과 대승[滿字]2)의 모든 오묘한 경전을 말한다. 방편[權]과 실상[實]의 진실한 교법[眞乘]은 모두 현묘한 언어[玄言]를 빌려서 그 요체를 표현하나, 진실로 언어가 없어지고[眞無說] 생각과 의논이 끊어진 자리에 이르게 된다. 그런 까닭에 『법화경』에 이르기를, “입으로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지도론(智度論)』에 이르기를, “마음의 갈 길이 없어지고 언어의 도가 끊어진다[心行處滅 言語道斷]”고 하였으며, 『대반야경(大般若經)』에 이르기를, “모든 법의 적멸한 모습은 말로 설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모든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매우 깊은 묘법으로, 제일의공(第一義空)3)의 지극한 도이다.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의 방편을 빌려 진실을 드러내시고 가르침을 열어 중생을 길들이시어, 마침내 12분교(分敎)를 건립하신 것을 전(詮)이라고 표현하였다. 『불지론(佛地論)』에 이르기를, “소리와 표현과 구절과 문장[聲名句文]은 4법(法)의 바탕이다”라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한 음성으로 베푸신 설법을 중생들은 그 종류에 따라 각각의 말로 이해한다”고 하였다.
‘원(源)’이란 바탕이며 근원이니,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능엄경(楞嚴經)』에 이르기를, “뿌리[根]와 티끌[塵]의 근원[源]이 같으며, 속박과 해탈이 다른 것이 아니다”고 하였고, 『화엄경』에 이르기를, “모든 불법의 바다, 실상의 밑바닥에 이른다”고 하였다.
‘비(秘)’라는 말은 비밀이라는 뜻이며 지(旨)는 지취(旨趣)이니, 이는 곧 일진법계(一眞法界)라는 뜻이다. 『섭론(攝論)』에 이르기를, “이 법계를 따라 흐르지 않는 것이 없고 이 법계로 되돌아와 설명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비밀의 종지를 원(源)이라고 한다.

기연에 따라 가르침을 세워 언설을 일으킨다고 한다. 隨機立敎以興言
【註】‘수(隨)’는 따라 순응하는 것이며, ‘기(機)’는 알맞은 기연을 말한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나오시어, 본래 다른 사람들도 부처님과 같이 모두 불도를 이루게 하시려는 서원을 세우셨다. 그러나 사람마다 기연에 차별이 있기 때문에 알맞은 방편에 따라 가르침을 세우신 것이다. 『섭론』에 이르기를, “상승(上乘)의 사람과 하승(下乘)의 사람은 교화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두 종류의 교를 세웠다. 첫째는 유종성(有種性)의 교이고, 두 번째는 무종성(無種性)의 교이다”라고 하였고, 또 『선계경(善戒經)』에 이르기를, “3승(乘)의 종성을 세웠다”고 하였다. 『해심밀경(解深密經)』에서는, “첫째는 성문종성(聲聞種性)이고, 두 번째는 연각종성(緣覺種性)이며, 세 번째는 여래종성(如來種性)이다”라고 하였으며, 『법화경』에서는, “성문을 구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4제(諦)의 법을 설하여 이에 대응하고, 벽지불(辟支佛)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12인연법(因緣法)을 설하여 이에 대응하며, 보살을 구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6바라밀법(波羅蜜法)을 설하여 이에 대응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양과 사슴과 소의 3거(車)와 대ㆍ중ㆍ소의 3초(草)의 차별이 있는 까닭을 말씀하셨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이르기를, “3승성(乘性)에서 종성이 결정된 사람이 이 법을 듣고 나면 속히 저절로 무루지(無漏地)에 올라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승만경』에는 이르기를, “비법(非法)을 들은 일이 없는 중생을 인천세계의 선근(善根)으로 성숙하게 한다”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다섯 종성(種性)이 있으니, 첫 번째는 성문성(聲聞性)이고, 두 번째는 연각성(緣覺性)이며, 세 번째는 여래성(如來性)이고, 네 번째는 인천성(人天性)이며, 다섯 번째는 부정성(不定性)이다”라고 하였다. 『유가론(瑜伽論)』 중에도 또한 이러한 말이 있기 때문에 ‘기연에 따른다[隨機]’고 말한 것이다.
‘입교(立敎)’라는 말에 대해서는 『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따르신 까닭에 1승을 설하셨다”고 하였고, 『대비분다리경(大悲芬陀利經)』에 이르기를, “아직 열반의 인(因)을 심지 않은 사람에게 열반의 인을 심게 하셨다”고 하였으며, 또 『열반경』에 이르기를, “법의 소리와 광명이 털구멍을 따라 중생에게 들어오니, 보리(菩提)의 인이 없어도 보리의 인연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는 5종성(種性)을 두루 교화하여 모두 불승(佛乘)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말이니, 실로 성스러운 법도[聖道]를 발휘하여 돈(頓)과 점(漸)의 기틀을 따르게 하고, 진실한 종지를 열어 대승과 소승[半滿]의 가르침을 세움을 말한다.
이는 장차 말이 필요 없는[無說] 경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말을 일으켰다[興言]는 것이다.

법의 바다는 깊고도 깊어서 法海淵深
【註】불법은 넓고도 커서 비유하면 바다와 같으니, 얕은 지혜로는 알기 어렵다. 이것이 이른바 ‘심연[淵深]’이라는 것이다. 『사해경(四海經)』에 이르기를, “부처님 법은 마치 큰 바다와 같이 깊고 넓어서, 끝도 없고 가득 차는 일도 없다”고 하였다. 또한 해운(海雲) 비구는 선재동자에게, “모든 법의 바다에 들어갈 때에, 능히 지혜로써 다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 “큰 바다는 너무나 깊고 깊어서 측량하기 어려우니, 사유할 때에는 큰 바다가 점차로 깊어지고 넓어지듯이 사유(思惟)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연심(淵深)이다.

성과 상이 공으로 돌아가니 이를 설하신 性相歸空而是說
【註】성과 상의 도는 본래 유일한 진리이며 화합하여 모여서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것은 성인이 일으킨 설이다. 『법화경』에는 “이와 같은 상(相), 이와 같은 성(性)이다”라는 말이 있으며, 또 “상을 여의어 상을 멸하면 구극의 열반은 항상 적멸상(寂滅相)이어서, 마침내 공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또한 성(性)이라는 것은 진실한 성품을 말하고, 상(相)이라는 것은 법상(法相)을 말한다. 만약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아직 깨닫지 못하였다면 이 두 가지 뜻에 차별이 있게 되지만, 만약 법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하나의 진리로 맞아 융합한다. 이것을 ‘성과 상이 공으로 돌아간다[性相歸空]’고 표현한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중론(中論)』에 이르기를, “만약 모든 법이 공하지 않다면 도(道)와 과를 증험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서는, “공(空)이라는 뜻[義]이 있기 때문에 일체법이 성립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공이라고 하는 것은 단공(斷空)을 말한 것이 아니고 제일의진공(第一義眞空)을 말한 것이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성품을 깨닫는 것이 참된 공[眞空]이고 성품이 공함을 아는 것이 참된 깨달음[眞覺]이니, 청정하게 있는 그대로[淸淨本然] 법계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설[是說]’이라고 한 것은 『십주론(十住論)』에 이르기를, “설(說)이란 열어 보이고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성과 상은 길은 다르지만 함께 한 이치로 귀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착하거나 막히는[執滯] 것이 없게 하기 위하여 공으로 돌아간다는 말로 방편의 문을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래의 묘각은 자비를 시현하시어 如來妙覺視現慈悲
【註】‘여래(如來)’란 말은 선대의 자취를 본받아 똑같이 행한다는 말이다. 『전법륜경(轉法輪經)』에 이르기를,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여(如)라 이름하였고, 정각(正覺)을 래(來)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제일의제를 바로 깨달은 까닭에 여래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유가론(瑜伽論)』에 이르기를, “여실(如實)한 도를 타고 오셔서 정각을 이루신 까닭에 여래라 부른다”고 하였고, 또 “허망함이 없기 때문에 여래라 부른다”고 하였다.
‘묘각(妙覺)’이라는 말에서 묘(妙)는 미묘함을 말하는 것이고, 각(覺)은 진각(眞覺)을 말하는 것이다. 『인왕경(仁王經)』에 이르기를, “무루계(無漏界)를 만족하고 항상 해탈신을 청정하게 하며 적멸하여 불가사의[不思議]한 것을 일체지(一切智)라 부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곧 묘각의 자리이다.
‘시현(視現)’이라는 말에서 시(視)는 뚜렷하게 보는 것이고, 현(現)은 나타나는 것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여래는 한 인연이나 한 가지 일로 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고, 또 “본래 가진 큰 원력 때문에 자재법을 시현(示現)하셨다”고 하였다.
‘자비(慈悲)’라는 말은, 『현양론(顯揚論)』에서 “자(慈)는 노여움이 없는 것으로 성품을 삼고, 비(悲)는 해치지 않는 것으로 성품을 삼는다. 우리 부처님 여래께서는 3아승기겁 동안 수행을 채워서 진실한 근원을 미묘하게 깨우치셨고, 자비를 시현하시어 일체 중생에게 교화를 드리우셨다. 이는 곧 4대원심(大願心)이 가득 찬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사의 인(印)을 인간 세계에 전하시고 傳祖印於人間
【註】‘전(傳)’은 전수(傳授)라는 말이다. 『범망경(梵網經)』에 이르기를, “천불이 수수(授手)한다” 하였다.
‘조(祖)’는 조사를 말하는데, 문수사리보살이 칠불(七佛)의 조사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불명경(佛名經)』에서 “모든 부처님은 문수보살로 인하여 발심하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인(印)’이라 한 것은 법인(法印)이며 모든 법을 서로 이어 전수한 것을 말한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제법실상인(諸法實相印)을 이미 너희들에게 설하였다”고 하였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저 위의 도솔천에서 이 아래 인간 세계로 내려오신 것을 말한다. 『본유경(本有經)』에 이르기를, “많이 숨을 쉰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인(人)이라고 하는 것이니, 곧 유정의 세간을 인간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대승방편경』에 이르기를, “보살의 본원이 만약 도솔천궁에 거처하면서 보리를 얻고 법륜을 굴리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살은 염부제주의 사람들은 이곳 도솔천 대청당(代聽堂)에 와서 법문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지만 도솔천 사람은 능히 염부제주에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세계에 내려와 태어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청정함을 하늘 세계에서 비추어 보신다. 觀淸淨於天界
【註】‘관(觀)’은 관찰한다는 뜻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미묘한 정토[妙淨土]가 있으니 삼계를 벗어난 곳이다. 십지(十地) 보살이 장차 그 가운데 태어나게 된다”고 하였고, 『불지론(佛地論)』에 이르기를, “오직 청정한 법계로써 그 몸을 삼고 또한 법성으로써 그 국토를 삼는다”고 하였다. 또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해심밀경』 그리고 『대법론(對法論)』에서도 모두 이르기를, “색구극천(色究極天)을 넘어서 미묘한 정토가 있으니, 십지 보살이 장차 그곳에 태어나 열 가지 모습[相]을 나타내며 대보화왕좌(大寶華王座) 위의 보살좌 가운데에서 정각을 이룬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그 자리의 양은 10아승기겁 동안 삼천대천세계의 십지 보살의 자리와 크기가 서로 같다. 이것이 곧 자수용보신불(自受容報身佛)이니, 만약 도솔천에서 호명(護明)보살이 하생하여 인간세계에 태어나 성불을 시현하였다면 이것이 곧 화신불이다”라고 하였다.

모든 망상을 현시하여 開諸妄想
【註】‘개(開)’는 뚜렷이 보여 준다는 뜻이고, ‘제(諸)’는 수없이 많다는 뜻이다. ‘망(妄)’은 허망하여 진실이 아닌 것이며, ‘상(想)’은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으로 진리를 살피지 않는다는 말이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이것은 전세[前]의 진허망상(塵虛妄想)이 그대의 진성(眞性)을 미혹시켰기 때문에, 여래께서 그것을 뚜렷이 보여 주시어[開示] 알아 깨닫게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미혹한 길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시며 破執迷途
【註】『법화경』에 이르기를, “유(有)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신 법왕(法王)이 세간에 출현하시어 중생들의 바람에 따라 갖가지로 설법하셨다”고 하였고, 『대법고경(大法鼓經)』에 이르기를, “세간의 아집(我執)을 타파하기 위하여 무아(無我)를 설하노라”고 하였다.
‘미도(迷途)’라는 말은 바르고 진실한 길을 잃고 헤매며 전도망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능엄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부루나(富樓那)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마치 미혹한 사람이 어떤 마을에서 남쪽을 북쪽이라 여기는 것과 같은데, 이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나온 것이냐?’
부루나가 아뢰었다.
‘이처럼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 때문이라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함을 일으킨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미혹한 사람이 미혹 속에 있을 때에 갑자기 어떤 깨달은 사람이 나타나 가리켜 보여 주며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설사 이 마을에서 미혹되었었다 해도 다시는 미혹을 일으키지 않겠느냐?’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다.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그 성질이 필경에는 빈 것이다. 옛날에는 본래 미혹이 없었는데도 흡사 미혹과 깨달음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일단 미혹을 깨닫고 나면 미혹은 소멸된다. 그러니 깨달음이 미혹함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곧 미혹한 길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여 정도(正道)를 환하게 나타내는 것이니, 성인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오묘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지혜로 3승을 바꾸니 智易三乘
【註】‘지(智)’는 부처님의 참된 지혜[眞智]를 말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무량하여,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깨달아 들어가기도 어렵다”고 하였다. ‘역(易)’이라는 것은 바꾸어서 고친다는 뜻이니, 즉 처음에는 소승으로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시다가 후에 대승을 설하시어 한 가지 실상으로 귀의하게 한다는 말이다.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처음에는 양거(羊車)로 성문승(聲聞乘)을 교화하여 구제하고, 다음에 녹거(鹿車)를 설하여 연각승(緣覺乘)을 교화하여 구제하며, 후에 우거(牛車)로 대승을 교화하여 구제하였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마치 저 장자가 처음에는 3거(車)로 모든 자식들을 유인한 다음, 나중에는 단지 큰 수레를 주고 보물로 장식하여 제일 안온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여래는 한량없는 지혜와 열 가지 지력(智力) 및 4무소외(無所畏)를 갖추고 있어서, 모든 법장(法藏)을 일체중생에게 주시고 대승의 법을 각각의 근기에 따라 감응하게 하신다. 오묘한 지혜로써 점차 이 보배 수레에 타게 하시어 곧바로 도량(道場)에 이르게 하신다”고 하였다.

문은 한 법으로 통하였다. 門通一揆
【註】‘문(門)’이란 대승의 문이니, 대승의 문은 오직 한 길로만 통하여 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보리의 큰마음[大心]을 낸 사람이라야 비로소 그 길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법화경』에 이르기를, “오직 하나의 문이 있으며 또 그 문은 좁고 작다”고 하였다. 바수반두(婆藪盤豆) 보살은 논(論)에서 풀이하기를 “오직 하나의 문(門)이란 바로 부처님의 대승의 문이다. 또 ‘좁고 작다’고 하였는데, 오직 보살만이 갈 수 있고 2승(乘)은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셔서 오직 보살만을 교화하시어, 3승의 종성을 지닌 사람들 모두로 하여금 1승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시방의 불토 가운데 오직 1승의 법만이 존재하고 2승도 없고 또한 3승도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문은 한 법으로 통한다[門通一揆]’는 말이다.
깨달음의 법은 반드시 돈과 점에서 비롯되나니 悟法必玆於頓漸

【註】『법화론』에 이르기를, “깨달음이란 모른다는 뜻이다. 즉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음과 알음알이를 내게 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돈이니 점이니 말하는 것은 『법화론」에 이르기를, “첫째는 돈오(頓悟)이니, 즉 처음 범부로부터 시작하여 곧바로 대보리심이 일어나 성불의 길을 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하셨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아승기겁의 수행을 거치지 않고 법신을 얻는다”고 하였고, 또 “손가락을 튀기는 사이에 무학(無學)4)의 경지를 뛰어넘는다”고 하였다. 둘째는 점오(漸悟)이니, 이는 가령 범부로부터 시작하여 2승(乘)의 과보를 얻고 점차 발심하여 대승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에 점오라 말하는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점점 공덕을 쌓아 대비한 마음이 구족되어 모두가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돈과 점의 의미를 모든 가르침 가운데에서 다 밝히고 있지만, 부처님의 한 법문 가운데에는 본래 돈이나 점이라는 두 모습은 없다. 용녀(龍女)가 단번에 깨달음을 이룬 것은 점(漸) 가운데서 일어난 돈(頓)이며, 선재동자가 점차로 증득한 것은 바로 돈 가운데의 점이었다. 이 두 가지의 차별이 없다는 사실에 통달한 사람은 오직 큰 지혜를 지닌 사람뿐일 것이다.

믿음을 일으킴에는 생각을 버리는 일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起信莫先於意遣
【註】큰 믿음이 일어나 진종(眞宗)에 귀향하는 일은 일념(一念) 가운데서 생각[意]을 없애 버림으로써 이룩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믿음은 도의 으뜸이며 공덕의 모체로서 일체의 선법(善法)을 길러내고 자라나게 한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믿음은 수청주(水淸珠)와 같아서 능히 탁한 물을 맑게 할 수 있다”고 하였고, 『유가론(瑜伽論)』에 이르기를, “5근(根) 가운데서 신근(信根)이 자라나는 까닭에 5력(力) 가운데 신력(信力)은 굴복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사량 분별을 버린다[意遣]는 말에 대하여 구마라집(鳩摩羅什) 법사는 이르기를, “오직 뜻을 세워 말하는 사람만이 도와 합치될 수 있고, 마음을 비운 사람만이 진리와 통할 수 있다. 마음이 명합한[冥] 사람은 진실한 도[眞一]와 더불어 있을 수 있고, 지혜를 버린 사람만이 성인과 같아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써 믿음이 시초가 되어 능히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기를 말없이 내려 무지한 속인들을 교화 인도하시고 玄機默授化導無知之俗
【註】부처님의 현묘한 기연은 말없이 내려지는 것이니, 『법화경』에 이르기를, “오래도록 침묵하는 일이 중요하니, 빨리 말하려고 애쓰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또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5)은 묵연히 이를 허여하셨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묵묵히 내려진다[默授]고 말한 것이다. ‘화(化)’는 시화(示化)를 말한 것이고, ‘도(導)’는 따로 이끈다는 말이다. ‘무지(無知)’라는 말은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진실에서 등을 돌리는 것을 ‘속(俗)’이라 표현하였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그윽하고 은미한 기요(機要)로 말없이 교화하고 이끌어 주시어, 진여의 본성을 알게 하고 대승으로 향하여 나아가게 하신다는 말이다.

바탕과 작용으로 방편을 드리워 어두운 갈림길에 선 중생들의 성품을 안온하게 하셨으니 體用垂方安隱昏衢之性
【註】‘체(體)’라는 것은 법신이니, 본래 나타나지도 없어지지도[出沒] 않는 것이다. ‘용(用)’이라는 것은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의 두 몸을 나투어 보이시며[示現] 목숨을 받아 태어나심을 말한 것이다. 『불지론(佛地論)』에 이르기를, “부처님에게는 두 몸이 있으니, 첫째는 실신(實身)이며 둘째는 생신(生身)이다”라고 하였고, 『법화경』에 이르기를, “나는 다른 나라에서도 또 다른 이름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그 자리[方所]에 따라 기연에 맞게 변화하여 보이셨다는 말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여래의 신통력은 모든 법계에 두루 미치어 일체 중생 앞에 무량한 몸을 나투어 보이신다”고 하였고, 『법화경』에서는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들 중생의 날카롭기도[利] 하고 무디기도[鈍] 하며 정진(精進)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懶怠] 한 여러 가지 근기를 관찰해 보시고, 그들이 견뎌낼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갖가지 무량한 설법을 하시어 모두가 환희하며 곧바로 거룩한 이익을 얻게 하셨다. 그런 까닭에 중생들은 이 법문을 듣고 나서는 현세(現世)에서는 안온하게 생활하게 되었고 후세에서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어두운 갈림길[昏衢]’이라는 것은 『유가론(瑜伽論)』에 이르기를, “체가 번뇌와 소지(所知)라는 두 가지 장애에 미혹되고 가려져서, 중생의 성품은 4생(生)의 윤회에 빠져 몰두하고 있다. 이는 비유하면 마치 긴긴 밤중에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유식론(唯識論)』에 이르기를, “진실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항상 꿈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생사의 윤회를 긴 밤[長夜]이라 말씀하셨으니, 이는 곧 무명(無明)의 성품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지금 이들을 안온하게 하여 깨달음의 성품을 열어 밝히시며 장차 불도로 나아가게 하였으므로, “어두운 갈림길에 선 중생들의 성품을 안온하게 하셨다[安隱昏衢之性]”고 말한 것이다.

하물며 위령으로 제어하심이여 况乎威靈控御
【註】‘위(威)’는 위엄 있고 덕스럽다[威德]는 말이고 ‘영(靈)’은 신령스런 감응[靈感]을 말한다. ‘공(控)’은 끌어당긴다는 말이고 ‘어(御)’는 조절하고 제어한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위덕의 묘도로써 중생[群品]을 인도하시어 모두가 불신을 증험하게 하시고 삼계를 조어하시어 모두 정토를 이루게 하셨으니, 『법화경』에 이르기를, “위신(威神)의 힘은 높고 높기가 이와 같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몇 가지 종류의 법으로 그의 마음을 제어하면 곧 조복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부처님의 조어장부(調御丈夫)로서의 덕을 드러낸 것이다.

상교는 높고 텅 비어서 像敎崇虛
【註】『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기를, 첫째는 정교(正敎)이고, 둘째는 상교(像敎)이며, 셋째는 말법(末法)이라 하였다. ‘숭(崇)’은 높고 큰 모양이고 ‘허(虛)’는 한가운데가 고요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부처님의 상교가 만대에 유통되어 숭고하고 허적(虛寂)한 법을 널리 교화하는 인연이 있게 되리라는 말이다.

담연히 시방세계의 전칙과 헌장이 되니 湛然典憲於十方
【註】‘담(湛)’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니, 교해(敎海)가 담연히 흘러 나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전(典)’은 법전에 규정된 법칙[典則]이고, ‘헌(憲)’은 헌장(憲章)을 말한다. 이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만물의 전칙이 되고 뭇 기연의 헌장이 되어서, 그 명성이 시방세계에 떨쳐서 영원한 법보가 될 것을 말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음성은 시방세계에서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모든 중생들의 종류에 따라 모두에게 마음이 만족하게 하셨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곧 부처님의 성스러운 교화가 매우 광대함을 말하는 것이다.

현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함께 온갖 모임에 모여들었다. 賢愚俱臻於萬彙
【註】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같이 진성(眞性)을 가지고 있다. ‘진(臻)’은 모여드는 것이며, ‘휘(彙)’는 무리를 말한다. 이 말은 무정과 유정이 다 같은 법 가운데에서, 비록 근기는 날카롭고 무딘 것으로 나뉘더라도 불성은 평등하여, 온갖 종류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여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모든 세간에 존재하는 여러 중생들은 모두가 보리의 미묘하고 밝음을 마음에 본래 지니고 있다”고 하였고, 또 “모두가 이 미묘하고 밝은 진여의 마음 가운데 있는 중생들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매우 진실한 법[眞法]이 법계에 두루 미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미묘한 말씀으로 널리 교화를 입히시어 微言廣被
【註】성인의 지혜로 베푸시는 모든 것을 ‘미묘한 말씀[微言]’이라 하고, 시방세계에 유행하며 교화하기 때문에 ‘널리 입힌다[廣被]’고 하였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여래의 일묘음(一妙音)은 시방세계 모든 국토에 두루 들렸는데, 일체중생이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있으나 얻을 수는 없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그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그저 듣기만 하였을 뿐 수행하는 것을 잊었다는 말이다. 삼매[三摩地]의 경지에 들어가는 일은 실로 미묘한 말씀으로 널리 교화를 입히신 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말이다.

탁한 세계를 삼천세계에서 구제하시며 救濁世於三千
【註】바르게 깨달아 대자비로써 일체 중생을 널리 구한다는 말이니,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구제하시는 분이다”라고 하였다. ‘탁세(濁世)’는 곧 5탁(濁)의 더러운 세계를 말하는데,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께서는 5탁의 더러운 세계에 나오셨는데, 5탁이란 이른바 겁탁(劫濁)ㆍ번뇌탁(煩惱濁)ㆍ중생탁(衆生濁)ㆍ견탁(見濁)ㆍ명탁(命濁)을 말한다”고 하였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본래부터 청결하지만 저 진토(塵土)와 사회(沙灰) 따위는 본래 뭉치고 막히는 성질을 가져서, 이 둘의 법도와 성품이 서로 따를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저 진토(塵土)를 가져다가 깨끗한 물에 넣는다면, 흙은 서로 뭉쳐 있던 성질을 잃어버리고 물은 청결함을 잃어서, 가라앉은 모양이 되는 곳을 흐린다[濁]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이르기를, “그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역시 나에게 불가사의한 공덕이 있다면서, ‘석가모니부처님은 능히 매우 어렵고 희유한 일을 할 수 있으시니, 능히 사바세계 국토의 5탁의 더러운 세상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였다. 또한 『십지론(十地論)』에서 이르기를, “무명(無明)의 잡된 지혜가 있으니 탁세(濁世)라 부른다”고 하였다.
‘삼천(三千)’이라는 것은 삼천대천세계로, 석가세존께서 교화하신 사바세계의 경계를 말한 것이다. 삼천이란 소천(小千)ㆍ중천(中千)ㆍ대천(大千)을 말하는데, 천친(天親)보살의 게송에 이르기를, “수미산[蘇彌盧]과 해와 달, 그리고 범천세계의 각각의 1천을 1소천계(小千界)라 부르고, 이 소천에 천 배를 한 것을 1중천계(中千界)라 부르며, 중천세계의 배가 되는 것을 대천세계라고 한다. 다 같이 함께 만들어지고 무너지기 때문에 삼천이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남기신 가르침은 자연이니 遺敎自然
【註】세존의 묘법이 널리 알려져 유익하게 전하여 내려오는 까닭에 ‘남기신 가르침[遺敎]’이라 이름하며, 영겁토록 전하여 두루 좋은 이익[善利]을 짓는 까닭에 ‘자연(自然)’이라 이름한다. 『유교경(遺敎經)』에 이르기를, “아직 제도되지 않았던 자들 또한 모두 제도를 얻는 인연을 지었다”고 하였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ㆍ천ㆍ만ㆍ억의 아승기겁 동안 이 얻기 어려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닦고 익혔다[修習]. 이제 너희들에게 부촉하니 마땅히 이 법을 받아 지니고[受持] 읽고 외면서[讀誦] 널리 베풀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듣고 알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또 “중생들과 더불어 부처님의 지혜, 여래의 지혜, 자연의 지혜를 함께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서른두 가지 모습의 단정하고 엄숙한 상호를 생각한다. 想端嚴於四八

【註】‘상(想)’은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 쏟는 것이니, 『불지경(佛地經)』에 이르기를, “서른두 가지 단엄하고 수승한 상호는 3대겁 동안을 닦아서 얻은 것이다. 얼굴은 보름달과 같고 눈은 연꽃과 같아서, 천상과 인간이 다 공경하고 믿으며 부처님의 수승한 덕이라 찬탄하였다”고 하였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말하기를 “부처님에게는 서른두 가지의 상호[三十二相]가 있으니, 첫 번째는 발바닥이 평평하고 두툼한[平滿] 모습이고, 두 번째는 발바닥 가운데에 천복(千輻)의 수레바퀴가 나타나는 모습이며, 세 번째는 열 손가락이 섬세하고 긴 모습이며, 네 번째는 발뒤꿈치가 원만하게 잘 생긴 모습이다. 이렇게 서른두 번째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있는 모습에까지 이른다”고 하였다.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도 역시 이와 같이 말했으며, 『관불일매경(觀佛一昧經)』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겨드랑이 밑에는 다섯 개의 마니주(摩尼珠)와 같은 구슬이 매달려 있어, 위로 부처님의 겨드랑이를 기둥처럼 받치고 있다”고 하였고, 또 “부처님의 목구멍은 유리통과 같다”고 하였다. 또 『십주론』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팔은 길게 무릎을 지나서 마치 황금빛 꽃이 핀 것 같다[金開敷]”고 하였고, 또 “부처님의 머리카락 색깔은 까만 벌과 같은데, 그 가운데 덕(德)이란 글자와 안(安)자와 회(喜)자가 있다”고 하였다. 또 『승가나찰경(僧伽羅刹經)』에 이르기를, “여래의 치아에는 천륜(千輪)의 모습이 있다”고 하였고,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몸은 일곱 곳이 평평하고 풍만하니, 즉 두 손과 두 어깨와 두 발과 이마가 그러하다”고 하였다. 또 『지지경(地持經)』에 이르기를, “부처님은 안팎으로[表裏] 여덟 곳이 평평하고 풍만하다”고 하였으며, 또한 『대집경(大集經)』에 이르기를, “부처님은 나쁜 일을 중생에게 가하지 않으시는 까닭에 그 감응으로 머리카락이 금정색(金精色)의 모습을 하였다” 하였고, 『지도론』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혓바닥 모습은 빛깔이 산호(珊瑚)와 같았다”고 하였다. 또한 『상호경(相好經)』에 이르기를, “온 인간세계의 복을 다 합쳐도 한 하늘세계의 복만 못하고, 나아가 온 세상 사람의 복을 다 합쳐도 부처님의 한 상호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로써 성인의 복덕과 장엄은 하늘과 인간세계의 스승[天人師]이며 지극하고 지존하여 아무리 상상하고 찬양해도 미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법을 펴서 드날리어 종지를 매우 깊게 천명하니 敷揚正法宗闡甚深

【註】‘부(敷)’는 성인의 뜻을 열어서 펼쳐 놓은 것이고, ‘양(揚)’은 진정한 가르침을 받들어 드높인다는 말이다. ‘정법(正法)’이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법을 말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만약 바른 길을 보게 되면, 중생들이 법왕이 되어서 항상 바른 법륜을 굴릴 수 있도록 발원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종(宗)’이라는 말은 종요(宗要)이며, ‘천(闡)’이란 밝혀 베푸는 것이다. ‘매우 깊다[甚深]’는 것은 부처님의 묘법이 매우 깊고 광대하다는 말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은 매우 깊고 해득하기 어려우며,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 뜻의 취지를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제 정법을 펼쳐 드날림으로써 어긋난 지혜로 알았던 것을 가려내며, 매우 깊은 종지를 천명함으로써 얕은 지혜로 알았던 것을 가려낸다는 말이다.

큰 지혜를 지닌 사람 아니고는 그 근원을 궁구할 길 없고 非大智者無以窮其源
【註】근원의 오묘한 이치는 지극히 그윽하고 깊어서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이 아니고는 그 원천을 다 알 길이 없다. 『지도론』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써만 능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고, 『백연경(百緣經)』에 이르기를, “삼계가 어지럽고 4생(生)이 혼미하나, 마음의 이치를 알고 본원 자리를 통달하였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또한 『법화경』에 이르기를, “무루(無漏)의 불가사의하며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을 나는 지금 이미 구족하였다. 오직 나만이 이 모습을 알며, 시방세계의 부처님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이 경은 오직 큰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만 부촉하니, 나머지 다른 중생들은 들어갈 수 없는 경지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이 궁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달하고 박식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그 요체를 알 수 없다. 非達識者莫能知其要
【註】‘달(達)’은 통달하는 것이고 ‘식(識)’은 박식하다는 뜻이다. 즉 진리에 통달하고 박식하게 섭렵하여 그 대강과 요체[綱要]를 알게 되면, 불법을 걸머지고 맡아 지닐 수 있다는 뜻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여러 부처님께서 도량에 앉아서 얻으신 비밀스럽고 요체가 되는 법을, 이 경을 능히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지 않아 또한 곧 얻게 되리라. 그리하여 대보살로서 부처님의 깊은 뜻에 통달하여, 요체가 되는 도를 밝게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약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특수하고 기이한 것을 포괄하여 包括殊異
【註】‘포(包)’는 싸서 머금어 모든 것을 두루 거두어들인다는 뜻이고, ‘괄(括)’은 모든 법을 한 곳에 묶어 함께 지닌다[摠持]는 뜻이다. ‘수이(殊異)’라는 것은 특수하게 뛰어나고 신령스럽게 기이하다는 뜻이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부처님과 부처님의 모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은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온 것이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특수하고 기이한 것을 포괄하였다[包括殊異]’고 말한 것이다.

깊은 뜻을 멀리 베푸니 奧義遐宣
【註】‘오(奧)’는 심오하다는 것이니,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義)’는 묘한 의리[妙義]이니, 오직 부처님이 증득하신 내용만을 말한다. ‘멀리 베푼다[遐宣]’고 말한 것은 멀리 세간에 유포하여 이익과 즐거움을 널리 행한다는 말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가령 어떤 사람이 큰 바다의 양만한 먹물을 만들고 수미산만큼의 붓을 모아서 이 보안(普眼)6) 법문을 베껴 쓴다고 하더라도, 한 품(品) 가운데의 한 문(門), 한 문 가운데의 한 법, 한 법 가운데의 한 내용[義], 한 내용 가운데의 한 구절도 분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하물며 이 깊은 뜻을 다 알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내가 멸도한 후 5백 년 뒤에 널리 염부제주[閻浮提] 안에 베풀어 유포시켜 단절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멀리 베풀라[遐宣]’고 말한 것이다.

상을 가진 정은 모두 공이며 有相之情皆空
【註】유정은 차별상에 집착하여 공(空)의 법을 증득하기 어렵다. 만약 상을 깨달아 마칠[了] 수 있다면 바로 모든 것이 공이 된다. 그런 까닭에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약 모든 차별상이 실제의 상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하였다. 『기신론』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은 나타난 상을 떠나서도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지도론』에 이르기를, “소승의 4제(諦)인 고집멸도(苦集滅道) 가운데에서 3제(諦)는 상이 있는 것이고 멸제(滅諦)는 상이 없는 것이다. 대승의 4제는 모두가 상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중론(大中論)』에 이르기를, “허망하고 거짓인 것을 함부로 취한다면 이 가운데 무엇이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법문을 설하신 것은 공의 논리를 보여 주고자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은 다 동일한 상이니, 이른바 무상(無相)이 그것이다”고 하였다. 상을 잃는 것이 이와 같이 되면 상에 집착하는 심정도 또한 참된 공[眞空]이 될 것이다.

생이 없는 멸은 모두가 적적하다. 無生之滅皆寂
【註】『무량의경(無量義經)』에 이르기를, “항상 설법하시기를 모든 법은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고[不生不滅] 너도 나도 없으니[無彼無此], 일상(一相)은 무상이라 하셨다”고 하였다. 만약 생겨나는 것이 없다면 멸하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기왕에 생과 멸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면 구극(究極)은 없는 것이다. 이제 생도 없고 멸도 없으니, 이것이 곧 진정한 적멸이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생멸이 멸하게 되면 적멸(寂滅)이 현전(現前)한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모두가 적적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윽이 깊은 도는 멀어서, 이를 구하는 사람은 그 중심을 얻을 수 없고 幽深道遠求之者不可得其中
【註】2승(乘)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까닭에 ‘그윽이 깊다[幽深]’고 하였고, 3겁이 걸려야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도는 멀다[道遠]’고 말하였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불도는 까마득히 멀고 비어 있으므로, 무량겁을 지내면서 부지런히 힘든 수행을 축적하고 모든 바라밀을 갖추어 닦은 후에야 마침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구하는 사람[求之者]이라고 말한 것은, 불도를 구하는 사람이 마음을 먹고[有心] 구하면 부처님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마음을 비우고[無心] 구한다면 부처님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 중심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무릇 법을 구하는 사람은 부처님께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며, 대중에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능엄경』에 이르기를, “가령 어떤 사람이 표시를 하여 이것을 중간이라고 하였을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그렇게 표시한 자체가 혼잡하게 되면 마음도 따라서 복잡하고 어지럽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 중심을 얻는다는 말이다.

보신과 응신은 반드시 통하나, 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報應必通究之者弗可曉其理
【註】‘보(報)’는 보신(報身)이고 ‘응(應)’은 응신(應身)이다. 이 두 부처님은 비록 다르지만 체는 다름이 없다. 『금강론(金剛論)』에 이르기를, “응화(應化)부처님은 참 부처[眞佛]가 아니며 또한 설법자도 아니다. 공덕으로 미루어 근본으로 돌아가면 오직 하나 법신불(法身佛)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통(通)’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구(究)’는 끝까지 궁구(窮究)한다는 말이니, 보신과 응신의 도로는 그 이치를 환하게 통달할 수 없다. 부처님의 진신은 거대한 우주의 허공[太虛空]과 같아서, 마음의 생각을 따라 관찰하고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진정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하였고, 『법화경』에 이르기를,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에 버금가는 분이라야만 모든 법의 실상을 끝까지 궁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덕의를 꿰뚫고 貫穿德義
【註】‘꿰뚫는다[貫穿]’는 것은 거두어 간직한다[攝持]는 뜻이며, ‘덕의(德義)’라는 것은 묘법을 지칭하는 말이다. 『섭론(攝論)』에 이르기를, “‘저 삼장과 이장을 어찌하여 장(藏)이라 이름 지었는가?’라고 물으니, 이에 대답하기를 ‘굳게 잡아 지키기 때문에 포섭이라고 한다’고 대답하였다. 일체를 마땅히 알아야[所應知] 한다는 의미는 마치 줄기가 꽃을 꿰뚫고 날[經]이 씨[緯]를 지니고 있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다. 『불지론』에 이르기를, “능히 꿰뚫고 능히 포섭하는 까닭에 경(經)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덕의를 가려내서 미래의 세계에 모범을 드리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법상을 바꾸어 가며 베풀어 法相互陳
【註】‘법(法)’은 법성을 말하는 것이고 ‘상(相)’은 사상(事相)을 말하는 것이다. 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성(性)에 많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고, 성(性)에 막혀 있는[滯在] 사람은 상에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것을 바꾸어 베풀면 곧 유일 진실[一眞]한 진리가 될 것이다. 징관(澄觀) 법사는 “한마음의 법계[一心法界]는 진여를 머금고 생멸의 두 문[生滅二門]을 서로 바꾸어 가며 교철(交徹)하여도 성상(性相)을 허물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법상을 바꾸어 가며 베푼다[法相互陳]’고 말한 것이다.

털끝에서 해탈을 엿보고 窺解脫於毫釐
【註】‘규(窺)’는 자세히 보는[觀] 것을 말하며, ‘해탈(解脫)’이란 곧 『열반경』에서 밝힌 3덕(德)이니, 마하반야(摩訶般若)와 해탈과 법신을 말한다. 『유식론(唯識論)』에 이르기를, “안락하게 해탈하신 몸, 위대한 성인[牟尼]7)을 법이라고 부른다”고 하였고, 또 『열반경』에 이르기를, “탐ㆍ진ㆍ치의 마음이 영원히 끊어져 사라졌기 때문에 심선해탈(心善解脫)이라 이름 지었고, 모든 법을 알고 장애가 없는 까닭에 혜선해탈(慧善解脫)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털끝[毫釐]이라고 말하는 것은 『중관론(中觀論)』에서 “세간의 실제(實際)가 곧 열반제(涅槃際)이니,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성과 식에서 우열을 비교한다. 較優劣於性識
【註】‘교(較)’는 따져 헤아리고 비교하는 것을 말한다. 한 법이 평등하여 낫고 못함이 없으나, 그 식성(識性)으로 말미암아 증험[證]에 얕고 깊은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이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이 스물다섯 사람의 무학(無學)의 경지에 이른 여러 대보살과 아라한이 각기 설하는 최초로 도를 이룬 방편을 보았는가?’ 모두 대답하였다. ‘닦고 익혀서[修習] 진실을 원만하게 통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저들의 수행에는 사실 우열이 없고 전후의 차별도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성식(性識)’이라는 말에서, 성은 5성(性)을 말하는 것이며, 식은 8식(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 날카롭고 둔한 차이에 따라 방편과 실상을 기꺼이 하기 때문에, 같은 법 중에서도 길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모든 성현은 다 무위(無爲)의 법을 하지만, 근기에 차별이 있다”고 하였다.

무릇 경론을 궁구하고 선양하기 위하여 그 기강을 마련하여 蓋爲參演經論設彼紀綱
【註】‘참연(參演)’은 궁구하여 드러낸다는 뜻이다. 『불지론』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을 경(經)이라 부르고 보살들이 지은 것을 논(論)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그 기강을 마련하였다[設彼紀綱]’는 말은, 중생들에게 교화의 길을 마련할 때에는 법으로 강기를 삼고, 대중들을 조복시킬 때에는 사람으로 강기를 삼는다는 말이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나는 여래이니, 대중 가운데 강기(綱紀)이니라”고 하였다.

말씀을 죽백에 써서 나타내고 形言於竹帛之間
【註】이곳에서는 죽간과 비단[竹帛]에 공덕을 기록하고 서쪽 땅에서는 패엽(貝葉)8)으로 가르침을 전하면서, 그 언설을 드러내 표현하여 경전으로 삼았다. 『관정경(觀頂經)』에 이르기를, “능히 이 경을 믿어 수지 독송하며 죽백에 써서 알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였고, 또 『능엄경』에 이르기를, “만약 모든 세계의 국토들마다 모든 중생들이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건에 따라 자작나무 껍질이나 혹은 패엽이나 혹은 흰 종이나 혹은 흰 목면[白疊] 등에 저 미묘한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이 가르침의 기반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논리를 범부와 성인 안에서 이루었다. 致理於凡聖之內
【註】‘치(致)’는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 것이고, ‘이(理)’는 진리를 말한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에 등을 돌리고 번뇌의 세계와 합쳐지는 것을 범부라고 하는데,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이를 사부(士夫)라 표현하였다. 『유가론(瑜伽論)』에 이르기를, 이를 풀이하여 “능히 모든 사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속인을 말한 것이다. 항상 진실한 사람을 성(聖)이라 한다. 『섭론』에 이르기를, “모든 성인들은 이것으로 인연을 삼았다”고 하였으니, 곧 진리는 평등하여 범인과 성인의 근원이 같다는 말을 한 것이다. 『화엄경』 「출현품(出現品)」에서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셨을 때에 두루 모든 중생들도 다 정각을 이루는 것을 보셨고, 내지는 두루 모든 중생들이 열반에 드는 것을 보셨다. 모두가 동일한 성(性)으로써 중생들이 다 성이 없다는 것[無性]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지혜의 태양이 하늘에 비추어 임하니 慧日照臨於碧落
【註】큰 지혜는 태양과 같이 두루 법천(法天)을 비추어, 세계를 밝고 밝게 만들어 모두가 다 진성(眞性)을 깨닫게 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지혜의 태양은 대성존(大聖尊)이시다”라고 하였고, 또 “지혜의 태양이 모든 어둠을 깨고, 능히 재앙과 바람과 불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온갖 죄들은 서리나 이슬과 같아서 지혜의 태양이 능히 녹여 없앨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투어 계시면서 곳곳에 두루 미치시니, 마치 해가 세상에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우리들을 위하여 그 도를 설법하신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밝은 해가 떠오르면 만물이 모두 드러나듯이, 지혜의 태양이 곱고 아득하면 유일한 본성을 반드시 밝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원에는 거룩한 뿌리에서 향기가 치솟았다. 奈苑騰芳於善根
【註】‘내원(奈苑)’이란 바라내국(波羅奈國)에 있는 장원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예전에 바라내국에서 4제(諦)의 법륜을 굴리셨다”고 하였고, 또 『기역경(祇域經)』에 이르기를, “왕의 정원에는 능금나무가 있었는데, 달콤하고 아름다운 그 생김새가 특이하였다. 이 나무는 오직 왕의 정원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었다. 왕이 어느 날 범지(梵志)와 함께 이 능금을 먹었더니 범지가 그 씨앗을 훔쳐 갔다. 그것을 심고 우유를 뿌려 주었더니 후에 큰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에서 한 여인이 나왔는데 단정한 모습이 보통 여자와 달랐다. 그래서 여러 나라의 왕들이 다투어 이 여자를 처로 맞이하려 하였으나 오직 평사왕(萍沙王)만이 이 여자를 얻게 되었고, 곧 기역불(祇域佛)을 낳게 되었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그곳에서 설법하셨던 까닭에 내원(奈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향기가 치솟는다[騰芳]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어 무성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며, 선근(善根)이라는 것은 선법을 닦고 심어서 무성하였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5근(根)이라는 것은 신근(信根)ㆍ진근(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을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법으로 더욱 풍성하게 하면 오묘한 꽃이 피어나 자라서 무루과(無漏果)가 된다”고 하였다. 또 『정명경(淨名經)』에 이르기를, “총지(摠持)의 정원과 무루(無漏)의 법림(法林)에 각의정묘화(覺意淨妙花)와 해탈지혜과(解脫智慧果)를 심는다”고 하였고, 또 『화엄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정견(正見)의 땅에 머물면서 부처님의 공덕의 나무를 심으니, 부처님의 묘법의 꽃이 비같이 쏟아져 내려 나에게 보리의 길을 보여 주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곧 선근(善根)에서 향기가 치솟아 길이 법원(法苑)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지혜의 횃불 빛이 줄지었으니 列智炬之光
【註】『법화경』에 이르기를, “어둠 속에서 횃불을 얻은 것과 같다”고 하였고, 또 “마치 밤중에 어둠 속에서 크고 작은 횃불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은 부처님의 지혜가 드리워져 비추는 것을 마치 횃불에서 나오는 빛이 무명(無明)을 깨뜨려서 바른 길[正道]을 가도록 해주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유정의 실상이 발하기를 바라오며 願發有情之相
【註】‘원(願)’은 큰 서원을 말한 것이고, ‘발(發)’은 개발(開發)되는 것을 말한다. ‘유정의 상[有情之相]’이라는 것은 일체의 유정(有情)은 모두 실상을 구족하고 있으나 무명 때문에 그 실상이 가려져 있는 것인데, 지혜의 빛이 발하면 원래 있던 실상이 드러나 발한다는 말이다. 『반야경』에 이르기를, “모든 유정들에게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으니, 보현보살은 자체가 두루 미치기 때문에 그 진상을 깨닫게 하여 반드시 성불하게 한다.

무거운 어둠의 경계를 깨뜨려서 破重昏之境
【註】중생들은 미혹되고 전도되어 어둠을 따라 어둠으로 들어가니, 비유하면 마치 첩첩의 어둠과도 같은 것이다. 무명의 세계를 끝마치고 부처님의 광명을 깨달아 어둠의 경계에 빛을 비춰 드리우니 환하게 세계가 밝아졌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대지승불(大智勝佛)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 시방에서 각각 5백만억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가운데 그윽하고 어두운 곳, 해와 달의 위력으로는 비출 수 없었던 곳들이 모두 크게 밝아져서, 그 안에 살던 중생들이 각기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거운 어둠의 경계를 깨뜨렸다[破重昏之境]고 말한 것이다.

장애 없는 인연을 닦음을 더욱 경하하소서. 彌慶無礙之因
【註】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으로 말미암아 모든 어둠의 모습이 소멸되고, 모든 법이 더욱 밝혀져 자재무애(自在無礙)한 경지가 이룩되었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장애 없는 과보를 증득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걸림 없는 인연을 닦게 하셨기 때문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신족(神足) 무애는 부처님과 같고, 천안(天眼) 무애는 가장 청정하며, 이근(耳根) 무애는 훌륭히 법문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걸림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도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도(道)라고 한 것은 인연이란 뜻이며, 이 인연을 행한 까닭에 부처의 과보[佛果]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타오르는 등불이 길이 밝혀 주어 覺焰之燈長明
【註】법등(法燈)에서는 깨달음의 불꽃이 일어나니, 그 광명은 찬란하게 길이 밝아 영원히 세상을 비춘다. 『지도론』에 이르기를, “연등불(然燈佛)은 이런 부처님이시다. 처음 현생(現生)하신 때로부터 성불하실 때까지 온몸이 항상 광명에 싸여 마치 등불과 같았기 때문에 그 몸에서 나오는 지혜의 광명을 온 나라 안 사람들이 크게 칭송하였다”고 하였다. 또 『연등공덕경(然燈功德經)』에 이르기를, “연등(然燈)의 공양은 능히 죄를 소멸하고 복을 낳게 할 수 있어서, 발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바다가 기름이 되고 수미산이 심지가 되어 매우 밝은 등불을 태워서 모든 부처님 찰토[佛刹]의 바다에 쉬지 않고 공양하게 한다”고 하였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또 광명을 방출하니 이를 양등(養燈)이라고 한다. 이 광명은 능히 모든 중생들을 깨우쳐, 중생의 본성이 적연(寂然)함을 알게 하고 일체법이 무소유(無所有)임을 알게 하였다”고 하였다. 이로써 세간의 등불은 어둠을 깨고 부처님의 등불은 미혹된 중생을 인도하여, 어두운 거리를 빛나게 비추며 그 밝음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깜깜하고 어두운 방이 항상 밝혀지소서. 幽闇之室恒顯
【註】무명의 삼계는 비유하면 어두운 방과 같아서, 깨달음의 등불로 두루 비추면 광명이 나타나게 된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어두운 방이 밝게 드러나는 것과 같은 뜻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어둠이 밝아진다는 말이다. ‘항상 밝혀진다[恒顯]’는 말은 마음이 열려서 내용을 해득하여 법의 광명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마치 사람이 어둠 속에 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또 “마치 사람에게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치면 온갖 색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곧 ‘항상 밝게 드러난다[常顯]’는 뜻이다.
하늘 문 은관에서 부처님 말씀으로 가르치시어 閶闔銀關敎諭金文

【註】‘창합(閶闔)’은 천상계의 문이며, ‘은관(銀關)’은 은륜왕(銀輪王)이 거처하는 궁실이다. 『법거경(法炬經)』에 이르기를, “윤왕(輪王)의 보전(寶殿)은 대들보가 천 개이고 기둥 위의 두공이 만 개이며 온갖 보배로 이루어져 엄숙하고 화려함이 볼 만하다. 세상에는 희유한 것이니, 이는 복덕의 감응으로 말미암은 결과이다”라고 하였고, 『감통전(感通傳)』에 이르기를, “문수사리 보살은 황금 세계에 거주하고 보현보살은 백은(白銀) 세계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금문으로 가르친다[敎諭金文]’는 말에서, 교는 3승(乘) 12분교(分敎)를 말한 것이며 유(諭)는 보여 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금구(金口)로 선양한 문장을 드러낸 것을 금문(金文)이라고 한다.
연기 자욱한 덩굴 깊고 험한 비밀스런 곳에 깃드소서. 棲息煙蘿深巖秘密

【註】증득한 법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그곳에 깃들어 사는 것이고, 그 적막하고 고요함을 즐겨 하기 때문에 안개 자욱한 덩굴 안에 거처하는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깊은 산에 들어가 불도를 사유하면서, 또 욕망을 여읜 즐겁고 공적하며 한가로운 자리를 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꽃핀 들판과 짙푸른 수풀이 모두 미묘한 경계가 되는 것이다. 깊고 험한 비밀스런 곳[深巖秘密]이라는 말은, 『능엄경』에서 말하는 “지금 세간에 알려진 빈 들판 깊은 산[曠野深山]은 성인의 도량이며 모두가 아라한이 주지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세간과 소승인[麤人]들이 볼 수 없는 곳이다”라고 한 곳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이라 한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여 부축하며 扶持依仗於佛慧
【註】무릇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주고받으시고 성인과 성인이 마음으로 전한 것이기에, 시방세계의 부처님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찬미하였고 모든 보살들이 각기 흠모하고 숭앙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를 얻게 되니, 곧 성군(聖君)이 감응하여 외호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대집경(大集經)』에 이르기를, “국왕이 불법을 보호하면 세 종류의 정기(精氣)가 불어나고 자라나게 된다. 첫 번째는 땅의 정기이니 오곡이 풍요롭게 익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는 중생의 정기이니 이는 사람들의 형상과 모습이 단정해져서 모든 질병이 없어지는 것을 말하며, 세 번째는 선법(善法)의 정기이니 이는 보시[施]ㆍ지계[戒]ㆍ믿음[信] 등이 항상 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무수한 진겁토록 영원히 연궁에서 빛나소서. 塵劫永曜於蓮宮
【註】성인이 지으신 법은 태양과 같이 밝아서, 비록 티끌처럼 많은 겁[塵劫]을 지난다 하더라도 연화궁[蓮宮]을 누르면서 이렇게 오래 존속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힘써 갈아서 삼천대천세계 국토의 모든 땅의 종족들을 모두 다 먹으로 만들어서, 일천 국토를 지나갈 때마다 티끌만한 점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고 하자. 이와 같이 계속 점을 찍어서 티끌로 만든 먹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하면, 국토 안에 점찍은 부분과 찍지 않은 부분이 같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숲이 다시 티끌이 되었을 때,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삼는다. 이것을 진겁(慶劫)이라 한다”고 하였다. ‘연궁(蓮宮)’이라는 것은 『화엄경』에서 설명하기를 “연화장(蓮華藏) 세계에 비로자나불이 출현하시니 연궁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이는 곧 여래의 진실한 가르침[眞敎]이 연궁에서 진겁토록 영원히 빛나는 것을 말한다.

세세생생 다하도록 항상 높고 밝은 하늘에서 비추어 歷世常鑒於高明
【註】세세생생토록 보배가 항상 거울이 되어 비추니, 『법화경』에 이르기를, “세세에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말하였다. ‘높고 밝다[高明]’는 말은 하늘의 모양[象]을 말한 것이다. 『마하연경(擧訶衍經)』에 이르기를, “계율은 진실로 보배 거울과 같아서 능히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비추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높고 환하고 밝으며 위대함을 말한 것이다.

유구토록 천지와 혼연하여 함께 하소서. 攸久混同於天地
【註】무릇 지극한 성인의 도는 그 교화가 크고, 위없는[無上]의 설법은 그 글이 넓다.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면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풍(玄風)과 함께 영원하고 천지와 같이 항상 존재하니, 허공과 혼연하여 적연(寂然)하고 넓디넓으며 크고 웅장하여 뭐라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보현행원경(普賢行願經)』에 이르기를, “허공의 세계가 다하면 나의 원도 다하겠지만, 허공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원도 또한 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제1권


이창섭 번역


본성과 법의 광명을 항상 비추며 性法光常照
【註】광명은 법계를 머금고 본성[性]은 대천세계에 두루 미쳐서, 무수한 국토[刹刹塵塵]의 털끝 같은 미세한 것도 모두 비추어 보니, 근원마다 경계[根根境境]마다 움직이는 생각이 모두 진실하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지혜의 광명과 몸의 광명이 여여하게 이어져 항상 비춘다”고 하였다.

여래께서는 큰 계율과 율의를 간직하셨다. 如來大戒儀
【註】‘여래(如來)’는 부처님의 10호(號) 가운데 하나로, 선불(先佛)의 자취를 따르는 것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지도론』에 이르기를, “여실(如實)한 도로써 정각을 이루셨으니, 인지에서는 삼취정계(三聚淨戒)1)를 지키시고 과위에서는 만덕을 원만히 갖추시어 그 몸을 장엄하셨다”고 하였다.

수행하신 공덕의 업으로 修行功德業
【註】『화엄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아승기겁 동안 온갖 행을 닦으셨으니, 과보로 140종류의 부처님만이 지니시는 공덕[不共功德]과 무루정업(無漏淨業)을 무궁하게 수용(受用)하셨다”고 하였다.

섭수하신 지혜와 마음을 지키셨다. 攝受智心持
【註】『화엄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이치는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하여 이익되게 하신다. 심지법문(心地法門)과 지인삼매(智印三昧)로 수지하여 진리를 궁구하고 망집을 멸하니 어느 법인들 갖추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상과 멸로 천 겁을 공연히 보냈으나 相滅空千劫

【註】‘상(相)’은 유위법(有爲法)을 말한 것이고, ‘멸(滅)’은 무위(無爲)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찰나 간에 성불하지만 이에 어두우면 천 겁을 헛되이 보내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180겁을 헛되게 보내어 부처님은 없었다”고 하였다.

진여와 순수함으로 시비를 끊었네. 眞純絶是非
【註】『인왕경(仁王經)』에 이르기를, “진실한 이치 가운데 세속제(世俗諦)는 없고 원만히 이루어진 바탕에는 승의제(勝義諦)가 있다. 하물며 4구(句)를 여의어 백비(百非)가 끊어지고, 3단(端)을 초월하여 7변(辯)을 넘어선 사람에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착한 마음에서 한 생각을 일으키니 善心興一念
【註】『능엄경』에 이르기를, “내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너는 ‘아니다’라는 마음에 집착하고 있다. 오직 너는 마음의 미세한 곳을 헤아려 만약 전진(前塵)2)을 분별하는 성품에서 벗어난다면, 곧 그것이 진실한 너의 마음이다. 그런 까닭에 일념의 마음은 생멸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품이 고요하신 법왕의 기틀이로다. 性靜法王機
【註】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각을 그치면 법은 본래 생겨나지 않고 자취를 감추고 소리를 숨기면 법은 또한 멸하지도 않아서, 부처님의 진성(眞性)에 들어가 무상(無上)의 기연과 방편을 끌어당긴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범부의 행(行)이 아닌 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다”라고 하였다.

마음은 가장자리 없는 경계에 사무치고 心達無邊境
【註】마음이 만약 명료(明了)하다면 만법이 생겨나지 않고, 대천세계에 두루 미친다면 확연하여 성인도 없다. 끝없는 경지를 깨달아도 영겁이 다하도록 이름을 붙이기 어려우니, 오직 부처님의 진심만이 담연(湛然)히 항상 적멸하시다. 『화엄론(華嚴論)』에 이르기를, “끝이 없는 국토의 경계에는 자(自)와 타(他)가 털끝만큼도 서로 간격이 없다”고 하였다.

허공은 미세함 속의 유로 들어간다. 虛空入有微
【註】적막하고 팅 빈 경지 안에서는 마음의 인연에 장애를 받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멀리 스쳐가는 그림자 가운데서 미세한 곳을 잡아 유(有)로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백법론(百法論)』에 이르기를, “이른바 법처가 잡고 있는 색이라는 말이다[法處所攝色]”3)라고 하였다.

이제 과거의 부처님을 만나니 見今過去佛
【註】삼세는 공(空)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은 상주하시지만, 억지로 과거와 현재라 이름을 짓고 교묘하게 과거와 미래를 세웠을 따름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항상 영취산 및 다른 모든 머무시던 곳에 계신다”고 하였다.

성과 상이 적멸하여 공으로 돌아간다. 性相寂空歸
【註】실상의 진리가 원만히 이룩되면 성과 상이 혼융하며, 고요하게 응결되어 한 길[一道]이 청정하다. 『명왕경(明王經)』에 이르기를, “수많은 괴로움에서 멀리 벗어나 원적(圖寂)한 세계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비유의 법은 여여하고 항상하여 譬喩法如常
【註】가슴 속에 의심을 품고 이치에 집착하니, 법으로 비유하여야 비로소 진여를 밝혀 보일 수 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비유를 통하여 이해하게 된다”고 하였다.

구하는 사람 대부분 마음으로 스스로 깨닫는다. 求多心自了
【註】실달다(悉達多) 태자는 반 수(首)의 게송을 구하기 위하여 온몸을 버리고, 두루 여러 부처님을 섬겨서 바야흐로 큰 과보를 원만하게 이룩하였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논리의 취치를 환하게 달통하고 또 설법도 아주 잘했다”고 하였다.

세존께서 상승의 법문을 베푸시니 世尊演上乘
【註】6신통[六通]이 원만한 것을 세존이라 말하니,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다 존중하기 때문이다. 『정명경(淨名經)』에 이르기를, “보살들을 위하여 6바라밀을 설하심으로써 각각의 근기에 응하셨다”고 하였다.

사부대중이 우러러보며 에워싸는구나. 四衆瞻圍繞
【註】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사부대중이라 말한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존안을 우러러보며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물러나 한편에 머물렀다”라고 하였다.

인식의 작용으로 여러 성인 자리에 오르려는 자들은 識用攀諸聖
【註】상승의 오묘한 이치는 기어오를 길이 없으나, 돈오(頓悟) 열반에 이르면 스스로 정역(淨域)을 뛰어넘게 된다. 성인에서 성인으로 자취가 이어지고 법에서 법으로 등불을 전하며 영겁에 들어가도록 넘쳐흐르는 흐름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어찌 인식의 작용으로 등지(登地)4)한 성인이 번갈아 계단과 사다리를 올라가 이룩한 것이겠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지혜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한마음에 어지러움이 제거된다”고 하였다.

경전의 인연이 근본되는 바탕을 말한다고 한다. 經緣道本基
【註】‘경(經)’은 대승의 지극한 가르침을 말한 것이고, ‘연(緣)’은 설명하여 표현한 인연을 말한다. 이는 입도(入道)한 처음 단계를 드러내고 성과(聖果)를 증득한 유래와 조짐을 밝힌 말이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무주(無住)의 근본을 따라 모든 법이 건립된다”고 하였다.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스스로를 속박하니 愚癡貪自縛
【註】지혜로운 마음이 밝고 환하면 몸을 얽어매는 인연이 없어진다. 집착하면 돌이키기 어렵고, 돌아보며 머무르면 스스로 막힌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내가 지금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하였다.

복과 업은 각기 서로를 따르는구나. 福業各相隨
【註】‘복’은 인천세계에 감응하는 것을 말하며, ‘업’은 선악과 통하는 말이다. 이것은 바람이 메아리를 따르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지은 인연 따라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움직임은 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아서 情狀如萌發
【註】밖으로 3업(業)이 일어나고 안으로 한 조각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마치 싹이 땅 속에서 돋아나고 뿌리와 꼭지가 가지와 잎에서 굳어지는 것과 같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밖으로 몸과 말의 업이 일어나서 안에서 마음이 생각하는 것을 표시한다. 이는 비유하면 개울 속에 잠겼던 물고기가 물결이 요동치면 저절로 표면에 나타나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다.

정순하고 엄정한 상호를 중생이 의지하고 우러르네. 精嚴好仰依
【註】‘정(精)’은 정밀하고 순수하다[精純]는 것이고 ‘엄(嚴)’은 단엄하고 깨끗하다[嚴淨]는 것이다. 더구나 부처님의 모든 근과 상호는 그 하나하나가 끝이 없고 무한한 선근(善根)이 인연하여 생긴 까닭에, 중생들이 의지하고 우러러보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의 종자에 인연하여 因緣菩薩種
【註】‘보살’은 큰마음을 가진 중생[大心衆生]이니, 자비와 지혜로 인(因)을 삼고 권교 방편[權巧]으로 연(緣)을 삼는다. 색(色)과 심(心) 두 가지 법이 중생과는 달라서 의지하는 바가 서로 같지 않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숙세에 덕의 근본을 심었다”고 하였다.

깨달음을 따르고 상을 거스르는 것이 다르다. 順悟逆相違
【註】현명한 사람[賢者]은 아랫사람[下士]의 비난을 초래하고, 지혜로운 사람[智者]은 어리석은 사람의 질투를 받는다. 대체로 굽은 것과 곧은 것[曲直]은 서로 받아들이지 않고, 옥과 돌[玉石]은 함께 태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따를 만한 것은 바로 보리(菩提)이다”라고 하였다.

가없는 겁을 헤아리고자 한다면 欲量無邊劫
【註】일(日)ㆍ월(月)ㆍ세(歲)ㆍ수(數)를 때[時]라 하고,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을 겁(劫)이라 말한다. 밝은 지혜가 아니면 헤아릴 수 없으니 지혜로운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측량하겠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나는 과거 세계의 무량무변한 겁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마치 업의 힘처럼 어리석다. 其如業力癡
【註】‘업(業)’은 사(思)의 다른 이름이고, ‘어리석음[癡]’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멋대로 하면 깨달음과 등져서 번뇌와 합쳐지고, 잘 제어하면 범부의 경지를 뛰어넘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선악의 업도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믿음 가운데서 능히 미묘한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으니 信中能妙解
【註】‘신(信)’은 5근(根)의 한 법이며, ‘해(解)’는 심소(心所)의 별명이다. ‘묘(妙)’는 미세하게 무(無)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고, ‘능(能)’은 높이 만물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빛나는 태양이 얼어붙은 못물을 녹이는 것과 같다. 赫日爍冰池
【註】빛나는 태양이 떠올라 이 얼음을 녹이니, 틀어박혀 겨울잠을 자던 큰 작용이 우러러 열리고 막혀 있던 온 공력이 진동하여 드러난다. 또한 꾀와 지혜는 해와 같고 그 어리석음은 이 못과 같아서, 지혜의 광명이 나오자마자 어둠의 집착은 저절로 밝혀진다.

비유하면 본성은 본래부터 밝으니 喩性本來明
【註】그 성품은 본래 밝으나 여전히 비유를 취하였으니, 아직 마음이 깨닫지 못했을까 염려해서 다시 말로 설명하는[言詮] 절차를 빌린 것이다. 그리하여 밝혀지지 않는 일이 없고 깨닫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되었다. 『원각경』에 이르기를, “구름이 달려가니 달이 움직이고 배가 나아가니 강둑이 옮겨가네”라고 하였다.

천심을 법도로 삼는 것이 도이다. 法天心是道
【註】상성(上聖)은 공(空)을 종지로 삼으니, 법이 공해져야 성인의 도를 증득한다. 오직 마음으로 도를 깨달으나, 도를 깨닫는 것은 마음이 아니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천인(天人)이 득도하는 것이 증(證)이 된다”고 하였다.

통달할 때에는 인연이 있음을 깨달아 達時悟有緣
【註】4지(智)의 보리(菩提)와 2공(空)의 진리를 통달한 사람은 한량이 없으나,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인연이 있어야만 한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상에 통달하면 걸림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모든 성인이 회포를 열었다. 諸聖開懷抱
【註】모든 큰 성인은 가슴을 비우고 중생들을 접한다. 그 공덕은 이롭지 않은 것이 없고 그 법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함께 깨달음의 길에 오르기를 바란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방편의 문을 열어 진실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

복을 구하는 것은 도리어 꿈과 같으니 求福還如夢
【註】도에 통달한 사람이 어찌 세속의 복을 구하겠는가? 그것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니 유(有)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며, 화살을 허공에 쏘아봤자 그 힘이 다하면 도로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모든 유위(有爲)의 법은 꿈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였다.

본성에 통해야 하며 지혜로는 알지 못한다. 性通慧不知
【註】본성이 묘유(妙有)와 합치되면 물들고 익힌 것을 모두 잊게 된다. 반야는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으니,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상에서 깨달음은 차이가 없다. 『인왕경』에 이르기를, “혜(慧)는 선해탈(善解脫)이다”라고 하였다.

시신(是身)과 비신(非身)의 법상에서 是非身法相
【註】5온(蘊) 12처(處)를 ‘신(身)’이라 하고, 길을 지키는 것[軌持]을 ‘법(法)’이라 한다. 얽힘을 벗어난 것을 ‘시(是)’라 하고, 물들어 있는 것을 ‘비(非)’라 하였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번뇌 속에 있을 때는 여래장(如來藏)이라 부르고, 번뇌에서 벗어났을 때는 대법신(大去身)이라 부른다” 하였다.

남다르게 뛰어난 일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殊勝若何爲
【註】청정한 인연은 본래 저절로 수승한 것이어서, 보기에도 끝이 없지만 다방면으로 응용되기도 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특수하게 묘하고 좋아서 마치 하늘의 수왕(樹王)5)과 같다”고 하였다.

원컨대 즐겁게 더불어 정진하려 하였으나 願樂與精進
【註】원컨대 즐겁게 부처님의 정법을 들으며,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보리에 오를 수 있기를 원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또한 보살들이 용맹정진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두 길 모두가 허망한 것이 되었다. 二途俱妄爲
【註】진(眞)과 가(假)의 두 길이 허망한 것이 아니니, 거두어 한 본성으로 귀결시키면 사무치게 탁 트인 진공(眞空)으로 돌아온다. 『금강송(金剛頌)』에 이르기를, “두 가장자리가 순수하다 내세우지 말고 중도에 안주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기연이 없으니 누가 가려내겠는가? 無機誰辯別
【註】득도에 기연(機緣)이 없으면 견해를 청정히 하여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이를 가려낼 사람이 적으니 분별할 사람은 누구인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내가 설법한 바와 같은 것은 오직 그대만이 증험하여 알[證知] 수 있다”고 하였다.

달을 건져 올리려다 바다 가운데서 헤매게 되었다. 撈月海中迷
【註】마음이 미혹하면 함부로 집착하게 되고 눈에 병이 생기면 헛된 것을 보게 된다. 진실이 원만하게 이룩된 곳에서는 진실이 두루 미치는 것을 밝혀서 무(無) 가운데서 유(有)를 말하기를 꾀하게 된다. 『금강송』에 이르기를, “원숭이는 물속에서 달을 찾고, 미치광이는 바늘 꾸러미를 줍는다”고 하였다.

마음을 안정시켜 망상을 없앨 것이니 安心袪妄想
【註】시끄럽고 떠들썩한 진세(塵世)의 경계에서 묵묵히 말없는 자비의 소리로, 망상을 씻어 없애니 진실한 마음에 스스로 안온해진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그 마음이 바다 같이 안온하다”고 하였다.

빠른 세월을 어찌 따라갈 수 있는가? 烏兎豈能隨
【註】틈 사이를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빠른 세월은 잡기 어려워, 뜬구름 같은 인생은 저절로 멀어만 간다. 세월을 뒤쫓을 생각도 없이 편안히 앉아 세상만사를 잊으니, 5욕(欲)이 생기지 않는데 4시(時)가 어찌 변하겠는가? 『방광반야경』에 이르기를, “법은 움직이거나 회전하는 일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한결같은 착한 성품으로 중도를 얻었으니 一善性中得
【註】일념(一念)의 마음에 잠기고 세 종류의 성품[性]에 통하여, 물 위의 털처럼 안주하니 선이 곧 중도를 얻게 되었다. 이는 성불의 인연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요체이다. 「보문품(普門品)」에서는 “마음의 염원을 헛되게 보내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탐욕의 인연을 떠나서 의심하지 말지어다. 貪緣去莫疑
【註】탐욕은 애착의 근원이 되고 연(緣)은 인(因)의 근본이 된다. 이를 버리고 구애받지 않으면 이를 떠난다 해도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유마경』에 이르기를, “선미(禪味)에 탐착하는 것은 보살의 속박이다”라고 하였다.

원만한 과보의 이익이 모두 통하여 圓果利皆通
【註】장애물이 다 없어지고 번뇌의 찌꺼기[習]도 제거되어 불신(佛身)의 청정함이 나타나니, 인연과 과보가 원만하여 성덕(聖德)이 두루 융숭하게 드러났다. 그리하여 모두가 신통력을 눈으로 보고 함께 이익을 얻게 되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만약 독송하면 이익이 통하게 된다”고 하였다.

마음은 방촌에 완전히 닫아 버렸네. 心關方寸了
【註】그 속에 먹은 마음이 있으면 늘 외부의 경관에 관여하게 되며, 완전히 마음을 숨겨버리면 시비를 통달하여 버리게 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환하게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질이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것임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맑고 시원한 세상을 만나서 머무니 淸凉逢世住
【註】유일하고 진실한 법[一眞]에 어둡지 않으면 삼계가 밝고 시원하여, 세간의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집착과 번뇌를 제거하고 큰 이익을 얻어 길이 속세의 수고로움을 씻어내게 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나의 이 땅은 안온하여 천인(天人)이 항상 충만하다”고 하였다.

어느 곳에 번뇌가 있겠는가? 甚處有煩惱
【註】거짓 인연이 멈추자마자 번뇌는 저절로 없어지고, 진여의 본성이 뚜렷이 밝혀져 몸의 기관이 청정해진다. 『능가경(楞伽經)』에 이르기를, “번뇌가 이미 다하니 습(習)도 또한 제거되었다”고 하였다.

즐겁고 거룩하게 보리를 증득하여 樂善證菩提
【註】6진의 인연을 천하게 여기고 나아가 선법을 구하여, 공덕을 쌓고 행과 마음을 수련하니, 드디어 보리를 증득하고 도과(道果)를 이룩하여 부처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실오라기만한 하자(瑕疵)도 반드시 제거하고 한 조각의 선(善)도 버리지 않게 되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뜻과 생각이 온화하고 즐겁고 바르면 보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진공을 눈 깜짝할 사이에 보았을 때에, 眞空瞥見時
【註】근기가 영리한 보살은 잠깐 사이에 진리를 보고, 곧바로 성인에게로 나아가 일념(一念)에서 진공을 깨닫는다. 오랜 시간을 경과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니, 어찌 오랜 세월 동안 머물러 있겠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찰나 사이에 보리심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눈에 집착하지 않았으니 不爲眼所着
【註】마음이 만약 편안하지 않으면 외부의 경계에 탐착하게 되지만, 마음이 얽매인 곳이 없으면 오로지 안의 인연으로 향하게 된다. 푸르고 누런 것[靑黃]을 엿보지 않으니, 어찌 길고 짧은 것을 돌아보겠는가? 『원각경』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마치 병든 눈으로 공중의 꽃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누가 미치고 미혹한 것을 쫓아가려 하겠는가? 誰肯逐狂迷
【註】자기 스스로 바른 길을 훤히 알고 있는데 누가 미혹된 길을 쫓아가려 하겠는가? 지남(指南)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다행히 궤도(軌道)를 지킬 수 있었다. 『백법론(百法論)』 소(疏)에서는 “미혹되지 않는 심왕(心王)이며 미혹되지 않는 심소(心所)로다”라고 하였다.

계율을 스스로 지키고 보존하여도 戒律自持秉
【註】온갖 법에 들어가는 문이 계나 율은 아니며, 범부와 성인의 갈림길은 오직 깨달음과 헷갈림의 차이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것을 지킴으로써 묘도(妙道)를 이룩하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또 불자의 지계(持戒)의 청결함이 청정한 명주(明珠)와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끝나는 날이 없다. 人心無了期
【註】아직 진여의 길을 겪어 오지 않은 사람은 색진(色塵)이 엄청나게 많지만, 능히 깨달음의 바다를 엿볼 수 있으면 욕망의 물결은 가라앉아 잠겨 버린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과를 가지고 비교하지 말 것이니 莫將因果比
【註】참된 성품은 응연(凝然)하고 지극한 이치는 담적(湛寂)하니, 어찌 인연 과보와 같겠는가? 운용함에 따라 흐름이 옮겨진다. 『금강송』에 이르기를 “인과가 허깨비임을 아는 것이 자재롭게 소요(逍遙)하는 사람이라네”라고 하였다.

청정함은 불가사의하도다. 淸淨不思議
【註】청정한 진리에는 묘법이 뚜렷이 나타나니, 이것은 불가사의하여 측량하기 어렵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보(果報)가 또한 불가사의하다”고 하였다.

정해진 성품은 어느 세계로 돌아가는가? 定性歸何趣
성품이 비록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법은 또한 인연을 따르니, 참된 성품이 눈앞에 나타나면 망령된 인연은 모두 사라진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내가 모두를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겠다”고 하였다.

진실한 이치의 종지로 하는 일은 미혹되지 않는다. 眞宗事不迷
【註】네 가지 지혜[四智]로 보리를 얻은 것을 반야라 부르고, 두 가지 무상과[二無上果]인 까닭에 진종(眞宗)이라 한다. 사리(事理)에 헷갈리지 않으니 취지와 비유가 깊고 타당하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은 본래부터 항상 적멸한 모습이다”고 하였다.

법신은 얻는 것이 없으나 法身無所得
【註】보신이나 화신과 다른 것을 법신이라 칭한다. 지혜로 진리를 증득하였을 때는 전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만약 인연된 시절에 있을 때에는 지혜로 전혀 얻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어리석음과 지혜에는 높고 낮은 차이가 있다. 愚智有高低
【註】선악에 몽매한 까닭에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나, 그 과보의 인연을 깨달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 지목한다. 근기에는 날카롭고 무딘 차별이 있고, 견해에는 높고 낮은 차이가 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큰 뿌리에는 큰 줄기가 생기고 작은 가지에는 작은 잎이 달린다”고 하였다.

보름달은 부처님 얼굴과 같아서 滿月似金容
【註】부처님의 얼굴은 둥글고 밝아서 오로지 보름달과 같고, 부처님의 몸은 견고하여 자못 황금과 비슷하다. 상호(相好)는 위엄과 광명이 있고 용의(容儀)는 환하게 빛났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얼굴은 보름달 같고 눈은 연꽃 같다”고 하였다.

인연이 상호를 따른다. 因緣隨相好
【註】세존께서는 3아승기겁 동안 노여움 없는[無瞋] 행을 지켜, 과보 가운데서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감응하시어 그 몸을 장엄하셨다. 『지도론』에 이르기를, “자재로와서 치성(熾成)과 단엄함이 있었다”고 하였다.

다만 나와 남을 차별하는 마음이 없어야 但無人我心
【註】탐욕과 노여움을 끊지 않으면 인상[人]과 아상[我]의 집착을 제거하기 어렵다. 만약 허망하게 집착하는 일이 없다면 문득 원만하게 이루어진 도를 증득하게 된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아직 나[我]조차도 얻지 못하였는데, 내가 아닌 것[非我]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진여의 도를 비추어 보게 된다. 觀見眞如道
【註】모습은 오직 눈으로만 보지만 이치는 또한 지혜로 비추어 본다. 하물며 진여는 형체가 없고 실제는 몸체가 아님에 있어서랴. 『유식론』에 이르기를, “오직 모든 성자(聖者)만이 스스로 안에서 증득하는 것[內所證]이다”라고 하였다.

완전히 풀이를 했어도 여전히 옛날 그대로이니 釋了還依舊
【註】뜻은 오묘하고 말은 현오(玄奧)하니 반드시 해석을 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글이 웅장하고 내용도 해박하니 완전히 알기는 어렵다. 삭제하고 보충하면서 때마다 새롭게 하였지만 지극한 이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문자를 섞지 않고서 해탈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경전의 말과 이치는 이지러지지 않는다. 經言理不虧
【註】말로 표현한 능전(能詮)의 글을 경(經)이라 하고, 경전에 표현된 소전(所詮)의 내용을 이(理)라 한다. 두 가장자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하나의 본성이 스스로 밝혀진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뜻이 환한 경전[了義經]에 근거하여야 하며, 뜻을 모르는 경전[不了義經]에 근거하지 않아야 한다” 하였다.

천 번 뚫고 만 번 뚫어서 千穿與萬鑿
【註】논을 쓰고 경을 해석하며 소(疏)를 짓고 뜻을 해석하는 일은, 다 바른 논리를 이루어 미묘한 말씀을 찬양하는 것이다. 비록 천착(穿鑿)하는 공부로 나타나지만 응연(凝然)한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과보가 원만해지는 때를 구하여 취하도록 하여라. 求取果圓時
【註】양식을 대고 실행을 더해서 공업(功業)이 원만해질 때면, 금강과 다름없이 견고하여 근본 습기[種習]를 다 버리게 된다. 상(相)을 취하는 마음이 제거되고 나면 또 명예를 구하는 마음도 깨진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두 가지 상을 취하는 마음[二取]6)에서 벗어난 까닭에 이때에 유식(唯識)에 안주하게 된다”고 하였다.

모든 법을 구하고자 마음을 먹었으면 意欲求諸法
【註】비록 3신(身)을 우러러본다 하여도 그것이 모든 법을 구하는 방법은 아니니, 참된 마음을 문득 깨달아야만[頓悟] 오묘한 법을 원만하게 통달하게 된다. 『법화경』에서는 “만약 어떤 사람이 복이 있어서 일찍이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뜻을 세워 불법을 구하였다면……”이라고 하였다.

진심이 막히지 않고 사무쳐야 한다. 眞心不阻達
【註】불성을 지닌 중생에게는 본래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없어, 중생을 교화하는 도풍(道風)에 걸림돌이 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진경(塵境)에는 미혹한 것이 많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일을 처리함[理事]에 걸림이 없다”고 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모름지기 진실하여야 하며 到頭須是實
【註】유구한 세월 동안 진실을 증험하여 이르는 곳마다 실상에 귀의하니, 지인(至人)은 무위(無僞)하고 보살[大士]은 본래 순박하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참된 말이란 진실한 말이다”고 하였다.

색과 상에는 스스로 의심을 내어야 한다. 色相自生疑
【註】형상을 보면 선한 마음이 생겨야 하며 색을 바라보고 의심해야 한다. 허깨비의 조화는 진실하지 않으니 허망함을 분별하여야 한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약 색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이라 여래를 만날 수 없다”고 하였다.

경전의 가르침에서 진리에 통하지 못하면 經敎不通理
【註】경(經)은 부처님의 말씀이며 교(敎)는 법의 종지이다. 만약 진정한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리에 통달하겠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을 믿지 못하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인연을 의심하여 홀로 시비하게 된다. 疑緣獨是非
【註】의심은 분별과 통하니 진실한 견해가 있으면 곧 제거된다. 연(緣)이란 인연을 말하니 화합하면 바로 사라진다. 『지도론』에 이르기를, “무상(無常)한 색을 버려야 영구불변한 색[常色]을 얻는다”고 하였다.

대단한 솜씨와 대단한 말재주를 大巧與大辯
【註】지혜로운 여인의 기틀은 미묘하여 상수(上手)와 하수가 온전하게 드러난다. 칼끝을 드러내지 않아도 저절로 법계를 뛰어넘는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말재주가 막힘이 없다”고 하였다.

끝내 함부로 베풀어서는 안 된다. 終不妄施爲
【註】부처님께서 방편의 문을 열어 중생들을 제도하시니, 허망한 인연을 씻어버리면 반드시 진정한 깨달음의 길에 오르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여러 가지 설법이 모두가 일불승(一佛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공덕행은 사방 하늘에 두루 미쳐서 功行四周天
【註】부처님의 공덕행은 천하에 두루 펼쳐져 있다. 비록 법에는 과거와 미래가 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모습은 상주(常住)한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혹 해가 되고 달이 되며, 범천왕(梵天王) 세계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위엄스런 광명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威光無不到
【註】공덕이 법계에 원만하여 중생들에게 복리(福利)를 주시니, 막힌 곳이 있으면 반드시 통하게 하고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밝히지 못하는 곳이 없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깊이 죄와 복의 모습에 통달하여 두루 시방세계를 비추어 본다”고 하였다.

적멸한 마음은 본래가 공이라 寂心本是空
【註】정신을 한 곳에 모으고 생각을 멈추면 비로소 고요하고 평안한[寂靜]한마음이 밝혀지며, 고제(苦諦)를 싫어하고 집제(集諦)를 끊으면 비밀한 가운데 진공(眞空)의 성품과 합치한다. 『정명경』에 이르기를, “적멸이 보리이니 모든 상(相)이 멸하였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참되고 바르게 사악한 도를 항복시킨다. 眞正降邪道
【註】거짓에서 등을 돌리는 것을 ‘진(眞)’이라 하고 잘못된 것을 버리는 것을 ‘정(正)’이라 하니, 스스로 중도와 합치하여 두 가장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사악함을 뽑아내고 열반을 설한다”고 하였다.

법을 논하여 늘 항상 옳으니 論法尋常是
【註】『인왕경』에 이르기를, “보살마하살은 법을 논함에 분별이 없고 피차의 차별상이 없으며, 자타의 차별상이 없는 곳에 머문다. 항상 교화의 이익을 행하지만, 교화의 이익이라는 상(相)이 없다”고 하였다.

진공은 기대고 의지하기에 좋다. 眞空好仗依
【註】‘진공’은 곧 법신이며, 모든 법의 근거가 된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근본 여래장(如來藏)은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 뿌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의 성(性)도 아니다”고 하였다.

여래의 인연의 땅처럼 두텁고 如來因地厚
【註】『인왕경』에 이르기를, “처음 인욕(忍辱)을 수습할 때부터 금강정(金剛定)에 이르기까지 열셋의 관문(觀門)을 수행하여 지혜가 두터워지면, 모두가 법사가 되어 의지하고 건립하게 된다”고 하였다.

청정하여 본래 기연이 없다. 淸淨本無機
【註】『승만경』에 이르기를,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대법신(犬法身)이라 부른다. 법신을 밝힘으로써 모든 장애의 인연에서 벗어나니 이를 청정(淸淨)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또 “말도 없고 설도 없고 근본도 없고 기연도 없어 모두가 적멸해진다”고 하였다.

과거와 미래에 무엇을 얻겠는가? 去來何所得
【註】『진제론(眞諦論)』에 이르기를, “상이 없는 진여는 절묘하고 영구불변하는 경계이니, 들은 사람이 그 들은 것을 받아들일 길이 없고 지혜로운 사람이 그 지혜를 운용할 길이 없다. 이는 곧 과거도 미래도 없고 얻는 것[所得]도 없는 경지이다”라고 하였다.

과보로 증득한 것은 들쑥날쑥하지 않다. 果證不參差
【註】10선(善)을 닦은 과보는 결정코 철륜왕(鐵輪王)의 자리에 감응하게 되어 위계가 들쑥날쑥하지 않다. 『인왕경』에 이르기를, “상품의 10선은 철륜왕이다”라고 하였다.

큰 나무는 뿌리가 깊으니 大樹深根帶
【註】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을 모두 큰 나무에 비유하며, 불퇴전(不退轉)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뿌리가 깊다”고 표현한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신통력에 안주하여 물러서지 않는 수레바퀴를 굴리며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큰 나무[大樹]라 부른다”고 하였다.

인연이 아니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非緣豈可知
【註】묘성(妙性)은 원명(圓明)하여 모든 명상(名相)을 떠난 것이다. 이미 환식(幻識)으로 인연할 바가 아니니 어찌 망령된 지혜로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유마경』에 이르기를,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식(識)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견해에 안주하면 윤회는 정해져 있으니 住見輪廻定
【註】‘주(住)’는 의지하여 머무는 것[依止]을 말하고, ‘견(見)’은 여러 가지 견해를 말하는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사견(邪見)의 빽빽한 숲에 들어가 이 모든 견해에 의지하여 62견(見)을 갖추게 되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정코 윤회의 고통스런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뽕밭이 망망한 바다로 변하리라. 桑田變海涯
【註】모든 중생들은 윤회로 났다가 죽으며, 진정한 깨달음을 알지 못하니 도무지 도달할 기약이 없다. 바다가 뽕밭으로 변해도 신령한 근원은 마르지 않는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깨달으면 한 찰나지만, 깨닫지 못하면 진사겁(塵沙劫)이다”라고 하였다.

나이는 겪는 세월을 따라 줄어들지만 年從經劫減
【註】『유가론』에 이르기를, “겁초(劫初)에는 사람의 수명이 8만 4천 세였다. 1백 년에 1년씩 줄어들어 사람의 수명이 열 살에 이르게 되면, 다시 1백 년마다 1년씩 불어나서 다시 8만 4천 세에 이르게 된다. 한 번 줄었다가 한 번 불어나는 것이 1중겁(中劫)이 된다”고 하였다.

과보는 모두 서로 따라다닌다. 果報盡相隨
【註】선한 일을 하면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 인연에 기어오르고 과보를 쫓아다니면, 끝내 다할 날이 없게 된다. 여러 경전에서는 “뛰어난 인연은 선도(善道)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덕이 넓어 군생에 두루 미치고 德廣徧群生
【註】부처님께서는 온갖 덕을 갖추시어 중생들을 모두 가피하시며, 깊고 넓은 사홍서원[四願]으로 3승(乘)의 사람들을 위한다. 기연에 응하여 설법하시어 각기 깨달음을 얻게 하신다. 『인왕경』에 이르기를, “억항토(億恒土)에서 군생들을 교화하신다”고 하였다.

자비와 절조를 가슴에 품었네. 慈悲懷節操
【註】자비심을 일으켜 운용하여 중생들을 고통 속에서 뽑아 구제하여 주며, 청정한 절조를 지니고 인욕의 도량을 연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항상 부드럽고 화합하여 능히 참을 수 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하여 게으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과거와 미래에 구애받지 않으니 不拘前後際
【註】오직 부처님의 진심이 법계에 혼융하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제(際)에 찾아 구하여도 전혀 얻을 수 없다. 무상(無相)하고 무위(無爲)하여 응연(凝然)히 허적(虛寂)하다. 『진제론』에 이르기를, “진여의 바탕은 항상 존재하니 성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집착이 없어서 또한 찾기도 어렵다. 無着亦難討
【註】『진제론』에 이르기를, “말이 비록 이치에 통한다 하더라도 진리란 본래 집착이 없는 것이다. 이치와 말이 단절된 경지이니 또한 찾을 수도 없다”고 하였다.

자비한 마음 여여하여 흔들리지 않으나 慈心如不動
【註】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로 두루 중생들에게 베풀고 설법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면 마음이 광대해질 수 있다. 『인왕경』에 이르기를, “제일의(第一義)에서 항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음은 나름대로 동서로 움직인다. 方寸自東西
【註】망령된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반드시 차질이 생겨 달라지는 것이 있게 된다. 만약 진여의 법이 한결같이 여여하면 모든 인연이 다 사라진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각[覺知]으로 분별하면 심성은 텅 비어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자성의 근본은 항상 청정하니 性種常淸淨
【註】법계는 청정하고 자성의 씨앗은 응연하니, 바탕에 차이가 없어 3천(三天)에 나타난다. 『인왕경』에 이르기를, “습기의 종자[習種]를 동륜(銅輪)의 한 천하와 은륜(銀輪)의 삼천(三天)에 실은 것이 성종(性種)의 성품이다”라고 하였다.

미친 말처럼 날뛰는 마음을 울리지 말 것이다. 無令意馬嘶
【註】『유가론』에 이르기를, “의마(意馬)7)는 8식(識) 가운데 여섯 번째 식(識)으로, 유루(有漏)의 의식(意識)이니, 한 번 생각하는 사이에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초지인 환희지(歡喜地) 이상에서는 바뀌어 무루(無漏)의 묘관찰지(妙觀察智)가 되니 의마가 울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군생의 무리에게 자비와 지혜를 베풀 때에 悲智群生類
【註】『유식론』에 이르기를, “비(悲)는 유정(有情)들이 일으키는 슬픈 마음을 말하며, 지(智)는 깨달은 뒤에 얻어 일어난 지혜를 말한다. 이 슬퍼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무리를 고해(苦海)에서 뽑아 올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 지혜로 말미암아 중생들을 맞이하여 열반의 낙을 증득하게 한다”고 하였다.

끝내 식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 終無識法爲
【註】자성은 장애하는 바탕을 가진 것이 아니니 도와 함께 할 때 인위적으로 작용함이 없어서, 식(識)마다 더욱 차이가 나고 법마다 저절로 모이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우리들은 지금 다시는 스스로 심행(心行)의 교만과 노여워하는 모든 악한 마음 등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업의 수레바퀴는 항상 스스로 돌고 도니 業輪常自轉
【註】『유가론』에 이르기를, ‘업은 인(因)이며 수레바퀴는 과(果)이다. 모든 세계를 돌고 돌면서 수레바퀴처럼 왕복한다. 업이 불러들여 과보가 정해지는 것을 항상 저절로 굴러간다고 표현하였다”고 하였다.

6도의 어디에 깃들겠는가? 六道甚棲遟
【註】『법화경현찬(法華經玄贊)』에 이르기를, “6취(趣)를 왕래하면서 밟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도(道)라고 표현하였다. 모든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여 정법을 듣지 못하고, 생사에 매여 고생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디에서 지내려는가?”라고 하였다.

성품의 바다에서 진리는 끝이 없어서 性海理無邊
【註】『문수발원경(文殊發願經)』에 이르기를, “청정한 여러 성품의 바다[性海]는 부처님 국토의 바다[佛刹海]를 장엄하게 유지하고, 중생의 바다[重生海]를 건너 벗어나 끝이 없는[無邊] 진리를 끝까지 다 궁구한다”고 하였고, 『지해경(智海經)』에서는 “중생의 바다의 국토[衆海刹]는 가없이 넓다”고 하였다.

상법이 변천하는 슬픔을 견뎌내며, 堪傷像法遷
【註】『법주경(法住經)』에 이르기를, “정법은 5백 년 계속되고 상법은 1천 년 계속되며 말법은 1만 년 계속된다”고 하였다. 속제(俗諦)에 변천이 있는 것이 곧 가슴 아픈 일을 견디는 일이다.

여래의 자비와 인내의 힘으로 如來慈忍力
【註】『보은경(報恩經)』에 이르기를, “조달(調達)이 5백 마리의 술 취한 코끼리를 세존에게 덤비게 하였는데, 세존께서 다섯 손가락으로 5백 마리의 사자로 변화시켜 그 술 취한 코끼리들을 굴복시켰다. 조달은 울면서 예를 올렸고, 세존께서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이 부처님의 자비와 인내의 힘이다.

손을 들어 푸른 하늘을 향하였다. 擧手向靑天
【註】『본행경(本行經)』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변화한 몸으로 태어나[化生] 나타나시어, 사방으로 각기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4상(相)을 벗어났음을 표시하셨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켜 3도(塗)의 중생을 구제하실 뜻을 표시하시고, 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켜 삼계를 벗어날 것을 표시하시어, 인천세계에 이익과 즐거움을 주셨다”고 하였다.

이익은 삼계에 미치어 利益及三界
【註】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법계까지 포함하며, 구하지 않고 증(證)하지 않으면 결정코 윤회를 벗어나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지금 이 삼계는 모두가 나의 소유이며 그 가운데의 중생들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해의 광명이 부처님의 도를 밝힌다. 日光明佛道
【註】법일(法日)이 하늘에 둥실 떠서 영원히 어둠을 사라지게 했고, 지혜의 빛이 중생들을 비추니 어리석고 더러운 것이 스스로 제거되었다. 불도는 현미하여 범부의 어리석음으로 헤아리지 못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지혜의 광명은 해가 비추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가없는 세계를 두루 비추어 普照無邊方
【註】지혜의 횃불이 환하게 뻗어나가고 법의 광명이 두루 비추니, 슬프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여 끝없이 두루 다하였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광명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을 무변방(無邊方)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모든 번뇌를 타파할 수 있었다. 能破諸煩惱
【註】모든 번뇌장을 4지(智)로 끊을 수 있으면 습기(習氣)는 저절로 끊어져 물러나 법성에 도달한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끊어졌다가 이어짐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생기니, 진여를 증득하면 해탈한다”고 하였다.

끝없는 논리를 서로 인용하다가 相引無邊義
【註】부처님께서는 모습을 나타내시어 미혹된 유정들을 지도하고 이끌어 주신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중생들을 인도하고 지혜의 근원을 궁구하여 무량무변한 이치에 통달하셨다”고 하였다.

도리어 미혹되어 인연을 돌아보지 못하나, 還迷不省緣
【註】도리어 6취(趣)를 옮겨 다니며 4생(生)에 빠져서, 선악을 돌아보지 못하고 두 길의 경계를 좇으며, 이에 반연하여 전도망상을 하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미혹되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깨달은 후에는 부처님 뜻을 따라 받아들이니 悟來隨旨受
【註】깨달으면 찰나 사이이지만, 미혹되면 영겁을 지나야 된다. 만약 본원(本源)을 관찰하고 환하게 증험할 수 있다면, 앞이 탁 트여 걸림돌이 없게 된다. 『기신론』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돈오(頓悟)하여 동서로 내달리는 마음이 사실은 움직이지 아니함을 환하게 깨닫게 되면, 곧 법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실은 본래 여여한 그대로였다. 眞實本如然
【註】실제로 진여에는 본래 오염과 청정의 인연이 없다. 지극한 이치는 말이 끊어진 경계여서, 이 응연(凝然)한 법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마음의 경계에서 인연과 인식을 구하고 心境求緣識
【註】『기신론』에 이르기를, “삼계는 허망한 거짓이니, 오직 마음이 짓는 것이다. 만약 마음을 떠난다면, 6진의 경계도 없어진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인연을 만나면 바로 생겨나니, 모두 구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인식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미루어서 멀리 다시 옮겨간다. 推之遠更遷
【註】『인왕경소(仁王經疏)』의 서문에서는 “이를 무(無)에서 추구하면 경계와 지혜가 함께 적멸하고, 이를 유(有)에서 옮기면 다른 생각이 다시 불어난다. 망상을 버리고 진실로 돌아가면 함께 실상의 진리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수행과 증득을 따지는 것이 아니니 非論修與證
【註】『인왕경』에 이르기를, “만약 보살이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떠나지도 않으면서, 이와 같이 닦으면서 수행한다는 상[修相]도 내지 않는다면, 이를 이름하여 수(修)라 한다”고 하였다. 또 “보리의 법은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증득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본성에 도달하면 스스로 두루 둥글어진다. 達性自周圓
【註】‘달성(達性)’이란 법을 완전히 깨치는 것을 말한다. 『기신론』에 이르기를, “이 마음은 본래 자성(自性)이 청정하다. 한 가지 법에 통달하여 깨닫게 되면 모두가 곧 두루 원만해진다”고 하였다.

식은 미세하여 항하사 세계에 두루 미치고 識細恒沙界
【註】『기신론』에 이르기를, “식(識)에는 거칠고 미세한 차이가 있다. 범부의 식은 거친 중에서도 거칠고, 보살은 거친 것 가운데 미세하다. 미세한 가운데서도 미세한 것은 여러 부처님들의 경계이니, 그 경계에서는 진성(眞性)과 지성(智性)이 항하사 세계에 두루 가득하다”고 하였다.

경전은 웅대하여 대천세계에 가득하다. 經雄滿大千
【註】『화엄경』에 이르기를, “한 권의 경전에 들어있는 분량은 대천세계를 가득 채우니, 하나의 미세한 티끌[微塵] 속에도 지혜는 있다”고 하였다. 사람이 이 미진을 타파하고 경전을 취할 수 있다면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광명이 세속에 임하니 光明臨世俗
【註】『유가론』에 이르기를, “대원감지(大圓鑑智)8)는 미혹된 사람들을 밝게 비추어 준다. 그리하여 세속의 어둡고 몽매한 것들을 모두 깨닫게 하여 준다”고 하였다. 또 『법화경』에서는 “광명이 세간을 비추니, 중생들의 어둠을 멸할 수 있다”고 하였다.

비유의 설법은 끝이 없도다. 譬喩說無邊
【註】『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모든 비유는, 중생들이 주변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자리가 없음을 인식하도록 가르쳐, 하루 열두 때 내내 상락(常樂)의 과보와 친근해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익의 은혜가 저 생민들에게 베풀어지니 益彼惠生民
【註】부처님의 은덕은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여, 항상 자비를 운용하여 묘하고 거룩한 진리를 알게 하신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보살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성인의 길에 오르는 것은 근심하지 말라. 勿憂登聖道
【註】『영락경(瓔珞經)』에서는 “지난 옛날 모든 부처님들은 마흔두 계위[四十二位]에 따라 현인과 성인의 단계를 만들었는데, 이른바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ㆍ10지(地)와 등각(等覺)ㆍ묘각(妙覺)의 두 자리를 말한다”고 하였다. 이 단계에 따라 수행한다면 성인의 길에 오르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한 톨의 삼씨와 아울러 한 톨의 보리라도 一麻兼一麥
【註】『본행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인연의 땅에서 6년 동안 고행하실 때, 하루에 한 톨의 삼씨와 한 톨의 보리쌀만 먹었었다”고 하였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 톨의 삼씨와 보리쌀을 취하여 그를 구제하여도 진실로 은혜로운 보시가 된다”고 하였다.

자비를 베풀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다. 慈惠恩施好
【註】자비심을 일으켜 혜택을 베푸는 것이 세 가지 선근(善根)이 된다. 『기신론』에 이르기를, “재물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에 따라 베풀어 주고, 위태롭고 핍박받는 사람은 방편을 써서 구하여 보호하며, 법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아는 정도에 따라 법을 강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감정은 허망하여 모두 바른 것이 아니지만 情妄皆非正
【註】『기신론』에 이르기를, “망령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곧 무명(無明)에 훈습(熏習)되어 진여의 법을 깨닫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생각[念]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망상의 경계가 나타나게 된다. 망상에 훈습되는 까닭에 갖가지 업을 짓고 모든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을 바르지 않다고 표현한 것이다.

붉은 연꽃은 진흙탕에서도 선명하다. 紅蓮淤水鮮
【註】『유마경』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높은 언덕과 육지에는 연꽃이 자라지 못하지만, 낮고 축축한 진흙탕에서는 꽃을 피울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연꽃은 진흙땅에서 피어나도 오염되는 일은 본래 없으며, 꽃이 피면 선명하고 고와서 저절로 짙은 향기를 지니게 된다.

유정은 다 상을 갖고 있으나 有情俱是相
【註】유정들의 행동과 작용은 모두가 상이다. 만약 마음속에서 상을 제거할 수 있다면 완전히 실상(實相)을 밝히게 된다. 이 실상은 상이면서 상이 아니니, 이는 진공(眞空)이 나타난 것이다. 『무량의경(無量義經)』에 이르기를, “상이 아니며 상이 되지 않는 것을 모두 실상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위력은 평등하고 끝이 없다. 威力等無邊
【註】부처님은 열 가지 힘[十力]을 갖추었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보살의 수행에 다섯 종류의 본성이 있어서 세력이 생겨날 수 있고, 자비와 교화의 이익을 이어받아 위엄과 평등이 끝이 없다”고 하였다.

욕망이 핍박하는 모든 번뇌는 欲逼諸煩惱
【註】『유가론』에 이르기를, “현재 모든 욕망과 번뇌의 핍박이 있듯이 미래에도 그렇게 수많은 고통이 있을 것이다. 삼계에는 모두 이 128가지 번뇌가 오래도록 서로 뒤를 따르며 일어난다고 말하는데, 이는 버리고 떠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믿음에 인연하여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非因信所牽
【註】『기신론』에 이르기를,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한 사람은 업의 과보를 믿기에 10선(善)을 일으킬 수 있으며, 생사의 괴로운 욕심[苦欲]을 싫어하고 무상보리를 구하게 된다”고 하였다. 신심이 성취되어 마침내 바른 선정(禪定)에 들어가게 되면 사도(邪道)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아직 한 법의 진리에 통하지 못했다면 未通一法理
【註】한 법의 진리란 곧 진여를 말한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한 법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이는 곧 아직 생멸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말이다. 마음이 만약 생멸을 벗어나게 되면 그 마음은 모든 법계에 통하게 된다”고 하였다.

어디에서 두루 쫓을 수 있겠는가? 甚處得周旋
【註】『섭론(攝論)』에 이르기를, “범부와 2승(乘)은 법의 진리를 알 수 없고, 보살은 부분적으로 법의 진리를 얻는다.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법마다 평등하고 진리마다 두루 쫓을 수 있다”고 하였다.

구하면 찰나 간에 얻게 되는 求卽刹那得
【註】한 생각 청정한 마음에서 모든 인연이 완전히 멎으니, 찰나 간에 법을 얻어서 의지하고 구하는 것이 없게 된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부처를 구하기에 집착하지 말고, 법을 구하기에 집착하지 말라”라고 하였고, 『섭론』에서도 “찰나 간에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하였다.

총명한 지혜는 자연 그대로이다. 聰明智自然
【註】지혜의 횃불이 밝게 타오르면 색(色)과 공(空)이 저절로 드러나니, 마음과 경계가 훤히 한 곳에 모이고 깨달음과 적멸함이 통달하여 환해진다[通明]. 오묘한 작용으로 시절에 응하며 총명하고 달통하여 걸림이 없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총명한 지혜가 밝게 사무치면 있는 그대로의 지혜를 성취하게 된다”고 하였다.

미세한 가운데 현묘한 성인의 徵中玄妙聖
【註】교법의 현묘하고 미세함을 지성(至聖)께서 설하여 베푸시어, 기연 따라 중생들을 교화하시고 묘각(妙覺)으로 자비를 베푸셨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성인은 법을 주도하는 왕이시니, 법이 심원하고 매우 미묘하다”고 하였다.

성품의 바다는 한량없고 끝이 없다. 性海量無邊
【註】법성(法性)의 바탕은 바다와 같이 담담하고 광대하게 혼융하여 그 가운데 지혜의 근본을 머금고, 지극히 응허(凝虛)하여 곧 끝이 없는 세계에 도달한다. 『불지경(佛地經)』에 이르기를, “무량한 식상(識相)은 모두 끝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故知不可說
【註】『인왕경』에 이르기를, “보살의 머무는 경지를 말하라 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며, 부처님의 국토를 말하라 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법문에서 얻는 진리가 모두 삼매이니, 부처님과 같이 행하는 곳에서 삼계의 근원을 알게 되리라”라고 하였다.

생로병사를 탐내는 중생들을 자비로 서원한다. 悲願貪生老
【註】『기신론』에 이르기를, “보살에게는 세 종류의 자비로운 서원[悲願]이 있다. 첫째는 직심(直心)이며, 둘째는 심심(深心)이며, 셋째는 대비심(大悲心)이다. 모든 중생들이 생로병사를 탐내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마침내 큰 원을 일으켜 두루 뽑아 구원하는 손길을 드리운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네 개의 대문을 열고 從此四門開
【註】『본행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예전에 왕궁의 태자로 있으실 때에 몰래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제도할 마음을 일으켜, 드디어 4대문을 열고 차례로 친히 돌아다니며 관찰하셨는데, 생로병사와 사문(沙門)의 모습을 보고는 갑절이나 기쁘고 싫어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로부터 성벽을 넘어 나와 영취산에 은거하면서 절도 있게 모든 행을 닦았다”고 하였다.

보리로 큰 도를 이루셨다. 菩提成大道
【註】『본행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이시며 큰 도를 원만하게 이루셨다. 45년을 근기에 따라 법을 베푸시면서, 천신이건 사람이건 모두가 오묘한 즐거움을 얻게 하셨다”고 하였다.

원컨대 나의 무위의 법이 願我無爲法
【註】『백법론』에 이르기를, “무위의 법에 여섯 종류가 있다. 첫째가 허공무위(虛空無爲)인데, 이들은 다 같이 서원이 지의(志義)와 가지런하여 내가 자재함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강경』의 게송에서는 “똑같이 다 8자재(自在)라고 부르지만 오직 내가 최고의 영장(靈長)이다”고 하였다.

종횡으로 대천세계에 두루하소서. 縱橫徧大千
【註】‘종횡(縱橫)’은 통달하였다는 말이다. 한 음성으로 베푸신 법이 두루 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을 가리킨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었다”고 하였다.

광명이 밝은 해와 같아서 光明如皎日
【註】4지(智)의 광명이 항하사처럼 수많은 세계를 탁 트이게 밝게 하니, 어두운 장애물을 밝은 해가 제거하는 것과도 같다. 『약사경(藥師經)』에 이르기를, “시방세계에 안주하니 해가 세상을 비추는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혜안이 인천세계를 비추게 하소서. 慧眼照人天
【註】지혜의 광명이 처음 일어나니 허공에 밝게 빛나고, 어두운 거리를 끝까지 비추니 탁 트인 신령한 경계가 되었다. 『금강경』의 게송에서는 “혜안이 곧바로 공(空)과 인연한다”고 하였다. 또 『화엄경』에서는 “모든 인천세계를 다 볼 수 있으니, 통달하여 장애물이 없었다”고 하였다.

안락의 공덕이 뛰어나면 安樂功殊勝
【註】공덕이 아승기겁에 가득하여 법이 뛰어난 과보를 받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무위무루(無爲無漏)를 이루셨다. 거룩하게 영구불변의 해탈을 얻으시니 맑고 청정하며 편안하였다. 『유식송』에 이르기를, “이것이 곧 무루의 세계이며 불가사의한 선으로 영구불변의 안락과 해탈의 몸이니, 위대한 성자께서 법이라고 이름하셨다”고 하였다.

골짜기 메아리 소리는 어디에서 들리는가? 谷聲聽那邊
【註】오묘한 불법이 유포되는 것은 골짜기에 메아리 소리가 울리는 것과 같으니, 부처님의 진실한 지혜를 궁구하는 것은 눈으로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들은 소리와 메아리는 같았다”고 하였다.

구하지 않아도 도리어 스스로 나타나니 不求還自見
【註】진견(眞見)을 구하지 않으면 누가 무생(無生)을 깨닫겠는가? 근본 근원에 도달한다면 문득 실제를 밝히게 될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오직 홀로 자신만이 명료(明了)하고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치 법왕 앞에 마주한 것과 같구나. 似對法王前
【註】우리 부처님께서 세상에 일어나시자 이름이 시방세계에 떨쳤고, 오직 법이 눈앞에 나타나자 모든 부처님들이 인가(印可)하셨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생사를 타파하려고[破有]9) 법왕이 세간에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도를 즐기는 마음은 편안하고 태평하여 樂道心安泰
【註】탄연(坦然)히 도를 즐기니 움직이고 쉬는 데 항상 편안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은 채 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게 되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안온하고 쾌락하여 그 마음이 태연하였다”고 하였다.

산을 안은 듯 눈앞에 있네. 如山擁在前
【註】‘산’은 아만(我慢)을 비유한 말이니, 장애물을 껴안고 있던 종전의 경계를 가리킨다. 지혜를 지닌 사람이 나의 오만한 산을 제거해 주어, 성인의 길로 통달하게 된 것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무거운 장애의 산을 부수니 부처님의 무애(無礙)의 경지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법운은 항상 적멸한 뜻을 품고 法雲常寂意
【註】자성(自性)은 자비의 구름에 비유되고 지혜는 법비[法雨]와 같다. 적멸하고 고요하며 지극히 담담하여 두루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자비의 뜻이 오묘하고 큰 구름과 같아서 감로(甘露)의 법비로 적셔 준다”고 하였다.

해와 달은 스스로 항상 둥글다. 日月自恒圓
【註】불일(佛日)은 융성하여 유명(幽明)의 세계를 두루 비추고, 성월(性月)은 교교하게 밝아 차고 기우는 것이 스스로 여여하다. 『법화경』 「소(疏)」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마치 해가 뜨면 먼저 높은 언덕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또 『유가론』에서는 “보살의 자비심이 해가 되고 달이 된다”고 하였다.

뚜렷한 가르침 염부제주 끝까지 닿았어도 顯敎極閻浮
【註】법이 인도 땅[印土]에 행해지니 가르침이 염부제주에 베풀어져서, 모든 유정(有情)들을 가르쳐 각자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였다. 이 일은 많은 경전에 기록되어 있으니, 어찌 일일이 다 지적하여 밝힐 수 있겠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이 경전은 염부제주 사람들의 병에 좋은 약이 된다”라고 하였다.

어두운 거리에는 깨닫지 못한 사람이 많구나. 昏衢多不了
【註】중생들은 어둡고 몽매하여 진실한 길에 도달하지 못한다. 열반을 증득할 수 있으면 이보다 더 밝게 뜻을 밝힐 것은 없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미혹이 그의 마음을 덮어 일찍이 깨어나 깨달은 일이 없다”고 하였다.

어둠과 밝음은 측량하기 어려워서 幽明難測量
【註】부처님의 지혜와 통명함(通明)은 그윽이 깊어서 아무도 헤아려 알 수 없다. 상성(上聖)은 스스로 명료하게 알 수 있으나 2승은 생각이 끊어져 헤아리기 어렵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생각을 다하여 함께 헤아려 보아도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중생들은 스스로 괴로워하는구나. 衆生自懊惱
【註】허망하게 반연하는 중생들의 경계에서는 번뇌를 깨우치지 못하여 진공을 깨닫기 어렵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중생들은 늘 고뇌하며 눈멀어 어두운데 인도하는 스승이 없으니, 고통을 끝내는 길을 모르고 해탈을 구할 줄을 모른다”고 하였다.

스님과 비구니에게 계율을 설하니 戒說僧尼律
【註】가르침을 베풀어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각기 기연에 따라 이익을 얻게 한다. 승려가 법을 받드니 이에 계율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에 의지하여 행함으로써 나아가 증(證)에 도달하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범망경』에 이르기를, “대승의 계율에 근거하여 보리를 닦고 증득한다”고 하였다.

몸을 버리고 속가의 인연 떠나네. 捨身離俗緣
【註】몸을 버리고 부처님께 투신하여 영원히 속가의 인연을 떠나며, 무상심(無上心)을 일으켜 부처님의 진실한 경계를 구하는 것이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몸을 버리고 부처님을 향하면 속가의 인연을 떠날 수 있다”고 하였다.

진여의 경지를 구하지 않는다면 非求眞境界
【註】오묘한 이치를 구하지 않는다면 근본 근원을 볼 수 없으니, 대각심(大覺心)을 일으켜 진공의 경계를 증득해야 한다. 『보적경(寶積經)』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한결같이 여여한[一如] 경지를 보겠는가?”고 하였다.

1법과 2공이 앞에 나타나겠는가? 一法二空前
【註】유일하고 진실한[一眞] 법의 진리는 본래부터 스스로 담연(湛然)하니, 2공(空)이 눈앞에 나타나면 미혹의 장애는 본래 적멸해진다. 『백법론소』에 이르기를, “두 가지 장애가 되는 염법(染法)을 완전히 끊으면, 문득 유일하고 진실한 진리를 증득하게 된다”고 하였다.

선정과 관은 무엇을 위한 일인가? 定觀爲何事
【註】‘정(定)’은 선정(禪定)이니 열반을 증득하기를 구하는 것이고, ‘관(觀)’은 관찰함으로써 불사를 밝히는 것을 말한다. 지혜로 가려내서 악을 끊고 선을 닦아, 모든 거짓이 다 사라지면 보리를 증득하게 된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정혜(定慧)의 힘으로 장엄한다”고 하였다.

일찍이 도리는 치우친 적이 없다네. 未曾道理偏
【註】선정에 의지하여 지혜가 일어나니, 도리가 어찌 한편으로 치우치겠는가? 정(正)에 집착하고 사(邪)에 집착함은 망령된 마음이 집착하는 것이니, 진정한 도리를 밝히면 스스로의 견해가 분명해진다. 『반야경』에 이르기를, “정혜(定慧)로 함께 비추어 보면 실상이 치우친 곳이 없다”고 하였다.

영취산에 부처님 계신 것을 알게 되었으니 靈山知有佛
【註】영취산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곳이다. 부처님께서는 큰 지혜를 갖추어 모든 실제(實際)를 증득하였으며, 3승을 모아 1승으로 귀결하시며 환하게 진리의 근원을 깨달으셨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항상 영취산 및 그 밖의 여러 머무시던 곳[住處]에 계시다”고 하였다.

성과 식은 본래부터 그러하였다. 性識來如然
【註】청정한 지성(智性)은 근본적으로 실오라기만한 먼지까지도 끊는다. 대개 망상 때문에 미혹에 속박되는 것이니, 진공을 깨닫고 나면 여기서 벗어나게 된다. 『백법론』에 이르기를, “진성(眞性)이 있는 사람은 결정코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허망함이 없으며 釋敎無虛妄
【註】부처님께서 유포하신 진실한 가르침은 널리 인천세계를 이롭게 하였고, 법으로 베푸신 대승은 오묘한 이치에 통탈하게 한다. 삿되고 망령된 마음을 멎게 하고 법으로 무생(無生)을 밝혔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참된 말씀을 하시는 분이며 사실을 말씀하시는 분이시다”라고 하였다.

높고 밝고 큰 법의 하늘이다. 高明大法天
【註】법의 하늘이 높이 덮고 있고 지혜의 태양이 광명을 비추니, 보리는 선(善)의 싹을 개발하여 중생들이 항상 이로움과 즐거움을 입게 되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큰 법의 뜻을 베푸셨다”고 하였다.

중생도 능히 견성할 수 있으니 衆生能見性
【註】모든 중생들이 다 부처님의 지혜를 지니고 있으니, 자성(自性)을 볼 수 있고 진리의 근원에 통달할 수 있다. 나와 남을 이익되게 하며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지속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견성한 중생은 번뇌가 멸한다”고 하였다.

나라도 또한 베풀 수 없겠는가? 我亦不能宣
【註】지혜로 진성(眞性)을 증험하고 진리를 말로 펼치는 길을 끊으니, 중생들이 깨달은 마음은 실로 헤아릴 길이 없다. 『무명론(無名論)』에 이르기를, “4변(辯)10)은 그 바탕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하였다.

포섭과 인식이 모든 삿된 도에 미치니 攝認及諸邪
【註】마음을 거두어 선으로 향하게 하면 사악한 망념이 생기지 않으나, 진리의 근원에 미혹되어 마음이 어두워지면 번뇌가 바꾸어 가며 일어난다. 2공(空)을 증득한 관(觀)에서 깨달음의 마음이 일어난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모든 간사한 번뇌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생겨난다”고 하였다.

여래는 비로소 편안히 앉으셨다. 如來方宴坐
【註】모든 부처님의 선정과 관(觀)으로 삿되고 망령된 마음은 적적해져, 말없이 진리의 근원을 깨닫고 응연(凝然)히 연좌(宴坐)하셨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삼계에 몸을 나타내지 않으신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편안히 앉으셨다는 뜻이다.

진실한 마음의 큰 도는 비어 있으니 眞心大道空
【註】진실한 지혜를 환히 알게 되면 만법이 모두 공이 되고, 통달한 진리가 매우 깊으면 본원의 자성을 보게 된다. 거두어 큰 도에 귀의하니 중생과 내가 온전히 진실하다. 『조론(肇論)』에 이르기를, “비록 지금은 유(有)로 나타났으나 본질은 항상 스스로 공이다”라고 하였다.

남과 나의 차별을 피하라 경계하셨다. 誡忌於人我
【註】모든 부처님께서 마련하신 가르침은 미혹한 중생들을 훈계하고 인도하여 나와 다른 사람의 몸[當體]이 실상이 아님을 깨닫게 하신다. 2공(空)을 증득하게 되면 유일하고 진실한 본질이 밝혀진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나의 법은 본래 공이니 실상 스스로의 몸이 없다”고 하였다.

생각으로 부처와 법을 구하려 하나 意求佛與法
【註】불법은 깊고 묘하여 생각으로 구할 수 없으니, 만약 진정한 근원을 깨닫게 되면 자연히 초증(超證)하리라. 부질없이 묘리를 찾아 깊은 법문에 들어서려는가? 『법화경』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대승의 법을 설하는가?”라고 하였다.

5온의 이치는 텅 비어 현묘하구나. 五蘊理空玄
【註】‘5온(蘊)’의 환화(幻化)를 부처님께서는 공(空)이라 말씀하셨으며, 인연 따라 생긴 것에는 진실한 내용이 없다고 하셨다. 『반야경』에 이르기를, “이때에 5온이 모두 비었음을 비추어 보았다”고 하였다.

만법이 모두 한 곳으로 돌아가는데 萬法皆歸一
【註】모든 법은 끝이 없으나 진리는 모두 근본으로 귀결되어, 1적멸(寂滅)11)과 4위의(威儀)12)로 중생을 이롭게 하지만 가르침을 베푸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백법론』에 이르기를, “무량한 법이라는 것은 하나의 법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그 하나의 법이란 것이 이른바 진여이다”고 하였다.

지혜의 알음알이가 원만한 마음을 가로막는다. 慧解障心圓
【註】유루(有漏)의 알음알이는 보리의 장애물이며, 무루(無漏)의 마음은 번뇌를 끊고 증(證)에 들어가게 한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미혹되고 망령된 견해는 항상 원만한 마음의 장애가 된다”고 하였다.

경을 베푸시는 법왕 앞에서 經演法王前
【註】‘경(經)’은 3승을 말한 것이니 성인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지름길이다. 이는 큰 법왕께서 교화를 베푸신 가르침이며, 저 중생들을 열반의 자리에 도달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보적경』에 이르기를, “법왕께서 네 종류의 중생들에게 교화를 베푸셨다”고 하였다.

분명한 게송 구절을 전해 들었네. 分明句偈傳
【註】지극한 도리는 말로 전달할 수 없으나 전(詮)을 빌려 깨닫게 할 수 있다. 분명한 게송의 구절을 베풀어 전함으로써 두루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고 믿음이 생겨나 받아들이게 한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4구게(句偈) 등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법문을 베푸신다”고 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찍이 환하게 통달하여 當時曾了達
【註】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인지(因地)에서 연등(然燈)부처님을 만나서, 기별의 말씀을 얻어 분명하게 요달(了達)하셨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너는 다음 세상에서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믿고 받아들여 제도하신 금선이시네. 信受度金僊
【註】부처님께서 내려 주신 기별을 받자 믿고 받아들여 헛되지 않게 하였으니, 결정하신 말씀대로 과연 해내어 지금 마침내 성취하게 되었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과거 겁 가운데서 수기(授記)를 얻었다”고 하였다.

나지 않는 진리를 논하고 증명하면서 論證無生理
【註】십지(十地) 보살은 지(地)마다 그 문 가운데서 각각 일 푼만큼의 나지 않는 진리를 증득하니, 부처님의 자리가 원만하여 증득한 것이 눈앞에 나타난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만분청정자(滿分淸淨者)13)에서 만증(滿證)은 부처님을 가리키고 분증(分證)은 보살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닦고 지키며 저 끝을 생각하네. 修持想那邊
【註】청정행을 닦고 지키며 마음의 인연을 생각하여도 진공은 나타나지 않는다. 큰 지혜를 증득했을 때는 그쪽의 경계가 아니니, 친히 인연하고 친히 증득하여 이지(理智)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상통하게 되어야 한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친히 인연한 것은 이지가 모두 실상이다”라고 하였다.

다 그만두고 가서 머물면서 不如休去住
【註】상에 집착하여 진여를 닦는 것은 부질없이 공행(功行)을 베푸는 일이니, 말을 잊고 종지를 깨달으면 빨리 진여에 머물게 된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어디서 왔는지 온 곳도 없고 어디로 갔는지 간 곳도 없다”고 하였다.
고요히 앉아서 인천세계를 교화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靜坐化人天

【註】묵묵히 고요하게 앉아 있으면 부처님께서 선정에 안주하신 것과 비슷하니, 법계의 진여는 즐거운 과보이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적연히 고요하게 앉아서 중생들의 마음을 교화한다”고 하였다.

과보로 받은 모든 인연은 受報諸因緣
【註】인천세계의 과보가 다르며 선악이 같지 않으니, 각기 인연을 좇아 마음에 따라 과보를 받게 된다. 만약 마음과 경계가 둘 다 적멸하면 묘법은 항상 여여하리라. 『보적경』에 이르기를, “과보로 받는 인연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진다”고 하였다.

성인께서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聖言不可捨
【註】성인의 지극한 말씀은 함부로 버릴 수 없으니, 설명[詮]에 근거하여 종지를 깨달으면 묘용(妙用)이 흔연하리라. 『유식론』에 이르기를, “성인의 말씀은 결정적이어서 고치거나 옮길 수 없다”고 하였다.

나의 마음은 항상 담연하니 我心常湛然
【註】성인의 마음은 청정하여 담연하기가 허공과 같다. 부처님의 진리가 매우 깊은 것을 아니 진경(塵境)에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청정한 마음은 맑아서 동요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누가 진정한 반야를 맞이할까? 誰當眞般若
【註】진정 지혜로운 성품이 있으면 통달하는 이치도 매우 깊어서, 진실하고 상주하는 법[眞常]14)을 깨달아 해득하며 나아가 불과(佛果)를 구하게 된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반야의 지혜가 일어나면 진실의 문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지극하고 끝이 없는 망상을 제거하려니 去妄極無邊
【註】중생들의 번뇌는 지극히 넓어서 끝이 없다. 혹시라도 큰 지혜가 발생한다면 허망한 생각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백법론』에 이르기를, “영원히 속박이 다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업의 힘이 끌어당기는 것 같구나. 如其業力牽
【註】‘업의 힘[業力]’이 더해지면 부자유를 끌어당기니, 숙세의 습기가 몸에 배면 어떻게 선(善)을 닦을 줄 알겠는가? 바쁘고 바쁜 삼계에서 힘들고 힘들게 4생(生)을 윤회하게 될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삼계는 편안한 곳이 없어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하였다.

중생이 자성을 얻을 수 있다면 衆生能得性
【註】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시려는 원을 가지시어 오로지 견성(見性)한 사람을 구하셨다. 환하게 진리를 깨달으면 유심(唯心)의 경계가 나타난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이런 성품을 갖춘 사람은 최상승(最上乘)이다”라고 하였다.

문득 고통과 속박을 멸하게 된다. 頓滅苦纏綿
【註】모든 중생들은 제8식 가운데에 이 대승 보리의 종성(種性)이 존재하기 때문에, 면면하게 감겨오는 번뇌가 점점 경미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범부의 경지를 뛰어넘어 자연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대법론(對法論)』에 이르기를, 대승의 성품[性]이 있으면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과보에 안주하여 사람들의 원에 따르니 住果隨人願
【註】모든 부처님께서는 과위(果位)에 안주하여 중생의 마음에 따라 몸의 형상을 드러내고 방편으로 맞이하며 기연 따라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설법하여 수행하게 하셨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나는 과보에 머물면서 중생들의 마음에 따라 몸을 나타내 설법한다”고 하였다.

마치 복전을 심는 것과 같다. 還如植福田
【註】인천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으려면 6바라밀의 인연을 행하여야 하는데, 원(願)을 행하여 가지런히 닦으면 반드시 큰 과보를 증득하게 되리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7보(寶)를 간직하였다가 보시한다”고 하였다.

거룩한 뿌리에 자주 물을 주어서 善根頻灌漑
【註】비록 보리(菩提)의 씨앗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물을 주어야 비로소 싹이 나듯이, 법을 듣고 수행하여야 도의 싹이 불어나고 자라나게 된다. 『유식론』에 이르기를, “자주자주 물을 주어야 비로소 싹이 돋아난다”고 하였다.

기름지고 번성하게 하여 두루 원만함을 쌓는다. 滋潤積周圓
【註】법을 들어 윤택해지면 더욱더 거룩한 마음이 되고, 4지(智)가 두루 원만해져서 3아승기겁의 과보가 건립된다. 『대반야경』에 이르기를, “광대한 마음을 닦으면 부처님의 원만함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035_0821_a_01L御製秘藏詮序眞元至理秘密幽微藉教闡宣以明極致秘者秘密之義法華經云唯佛與佛乃能知之藏者藏攝眞聖海納百川之義如來秘法亦復如然故般若經云一切衆生卽如來藏體卽一眞本性迷卽凡夫悟卽聖人朦鬘經云在纏名如來藏出纏號大法身涅槃經云名秘密藏者安住於此能建大事神通作用故又云我當令一切衆生及以我子四部之衆悉皆安住秘密藏中然此秘密法門通猵一切大智度論云在有情中名爲佛性在無情中名爲法性是故十方諸佛包攝萬德妙證常身六趣衆生迷背一眞久淪苦海罔能了心卽佛身將期離妄求眞觸境不知故名秘藏也詮者教也卽文字般若用文字之教顯秘密之理因言解法得意忘言維摩經云言說文字皆解脫相由是闡斯眞極也大矣哉一眞妙道萬法玄宗攝持而靡離纖塵包慱而普周法界幽深回測秘密難知諸佛得之以化淨方皇王得之以臨寶位演其至道託以言詮序者殺神道之設教垂嘉言而孔彰申義明玄入不思議之妙境也粤聞詮源秘旨宣明眞理化道含靈爲發語之嘉猷乃入文之妙勢也詮者能詮之教謂半滿妙典權實眞乘咸藉玄言以詮其要以至眞無說絕思議故法華經云非口所宣非心所測智度論云心行處滅言語道斷大般若經云諸法寂滅相不可以言宣此蓋諸佛斫證甚深妙法第一義空至極之道也我佛乃假言以顯實啓教以調生遂立十二分教名爲詮也佛地論云以聲名句文四法爲體維摩經云如來一音演說法衆生隨類各得解言源者本源卽無上正眞之處楞嚴經云根塵同源縛脫無二華嚴經云到 切佛法海實相源底言秘者秘密旨爲旨趣卽一眞法界也攝論云無不從此法界流無不還歸此法界詮斯秘旨是曰爲源隨機立教以興隨者隨順機者機宜我佛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本立誓願要他同巳皆成佛道但機緣有差隨宜立教攝論云上乘下乘人法異故乃立二種一有種性二無種性又善戒經云立三乘性解深密經云一聲聞種性二緣覺種性三如來種性法華經云爲求聲聞者說應四諦法爲求辟支佛者說應十二因緣法爲求菩薩者說應六波羅蜜法又說三車三草有差別故大般若經云於三乘忙決定者聞此法巳速於自乘自無漏地而得解脫朦鬘經云無聞非法衆生以人天善根而成熟之又云有五種性一聲聞性二緣覺性三如來性四人天性五不定性喩伽論中亦同此說故云隨機也言立教者法華經云佛從緣起是故說一乘九悲芬陁利經云未種涅槃因者令種涅槃因又涅槃經云法聲光明從毛孔入衆生雖無菩提之因而爲作菩提因緣此蓋普化五種性咸歸一佛乘實謂發揮聖道隨頓漸之機啓迪眞宗立半滿之教將顯無說所以興言法海淵深佛法廣大喩之如海淺智難知所謂淵深四海經云佛法喩如大海深廣無有涯際無有盈滿又海雲比丘告善財童子言入一切法海能以智慧咸入悟故又云思惟大海甚深難測思惟大海漸次深廣卽淵深也性相歸空而是說性相之道本唯一眞融會歸空聖所興說法華經云如是相如是性又云離相滅相究極涅槃常寂滅相終歸於空又性者眞性相者法相若執心未悟則二義差別若了法非眞則一理混融是名性相歸空也大中論云若諸法不空卽無道無果可證大品般若經云以有空義故一切法得成此言空者非謂斷空卽第一義眞空也楞嚴經云性覺眞空性空眞覺淸淨本然周徧法界言是說者十住論云說者開示解釋義性相殊途同歸一理令諸學者無所執滯故有歸空之說爲方便之門也如來妙覺視現慈悲如來者謂倣同先迹號轉法輪經云第一義諦名如正覺名來謂正覺第一義諦故名如來瑜伽論云乘如實道來成正覺故名如來又云言無虛妾故名如來言妙覺者妙謂微妙覺謂眞覺仁王經云滿足無漏界常淨解脫身寂滅不思議名爲一切智卽妙覺位也言視者顯視現者出現華嚴經云如來非以一緣非以一事而得經現叉云以本大願力示現自在法言慈悲者顯揚論云慈以無嗔爲性悲以不害爲性謂我佛如來三祇行滿妙覺眞源視現慈悲垂化一切卽四大願心巳滿矣傳祖印於人間傳謂傳授梵網經云千佛授手祖謂祖師卽文殊師利菩薩爲七佛祖師也佛名經云一切諸佛皆因文殊而發心故印者法印印可諸法相承傅授法華經云諸法實相印巳爲汝等說言人間者謂佛上辭兜率下降人間本有經云多息義故名人卽有情世間乃名人間又大乘方便經云菩薩如其本願處兜率天宮能得菩提轉於法輪非謂不能菩薩恩惟閻浮提人不能至此兜率大聽受法教兜率天人能下閻浮是故下生人間也觀淸淨於天界觀者觀察華嚴經云有妙淨土出過三界十地菩薩當生其中佛地論云唯以淸淨法界而爲其體亦以法性而爲其土又瑜伽論解深密經對法論皆云超色究極天有妙淨土十地菩薩當生其中有十相現大寶華王座上菩薩坐中而成正覺又云其座量等十阿僧祇三千大千世界十地菩薩坐中大小相稱卽自受用報身佛也若示生兜率爲護明菩薩下生成佛者卽化身佛也開諸妄想開者顯示義諸者衆多義妄謂虛妄非眞實也想謂亂想不審諦也楞嚴經云此是前塵虛妄想相惑汝眞性故如來開示令其知覺也破執迷途法華經云破有法王出現於世隨衆生欲種種說法大法鼓經云爲破世間我說於無我言迷途者於正眞之道生迷倒故楞嚴經云佛告富樓那譬如迷人於一聚樂惑南爲北此迷爲復因迷而有因悟所出富樓那言如是迷人亦不因迷又不因悟何以故迷本無根云何因迷悟非生迷云何因悟佛言彼之迷人在迷時倏有悟人指示令悟富樓那於意云何此人縱迷於此聚樂更生迷不不也世尊富樓那十方如來亦復如是此迷無本性畢極空昔本無迷似有迷覺覺迷迷滅覺不生迷斯乃破執迷途顯於正道聖人出興于世妙在茲乎智易三乘智者佛眞智也法華經云諸佛智慧甚深無量其智慧門難解難入易者改易謂初以小乘化導群品後說大乘令歸一實法華經說初以羊車化求聲聞乘者次以鹿車化求緣覺乘者後以牛車化求大乘者乃云如波長者初以三車誘引諸子然後伹與大車寶物莊較安隱第一又云如來有無量智慧力無所畏諸法之藏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隨其機感應以妙智漸令乘此寶乘直至道場也通一揆門者大乘門也謂大乘之門唯通一道發大心者方能出故法華經云唯有一門而復狹小婆藪盤豆菩薩論解云唯有一門卽佛大乘門也而復狹小者唯菩薩能行不容二乘故謂佛出世但教化菩薩使三乘性者咸歸一乘也又云十方佛土中唯有一乘法無二亦無三是謂門通一揆也悟法必茲於頓漸法華論云悟者不知義謂令不知者生悟解故言頓漸者法華論云一者頓悟謂初從凡夫直發大心求成佛道楞嚴經云不歷僧祇獲法身又云彈指超無學二者漸悟謂若從凡夫得二乘果漸次發心向大乘故法華經云漸漸積功德具足大悲心皆巳成佛道然頓漸之義諸教具明佛一法中本無二相龍女頓成卽漸中之頓上善財漸證卽頓中之漸也通達此無二者其唯大智者馬起信莫先於意遣發起大信歸向眞宣一念之中以意消遣華嚴經云信爲道元功德母長養一切諸善法又云信爲水淸珠能淸於濁水瑜伽論說五根之中信爲生長故五力之中信爲難屈伏故言意遣者羅什法師云惟志言者可以道合虛懷者可以理通冥心者可與眞一遺智者可與聖同是知由信爲初克臻佛境也玄機默授化導無知之俗佛之玄機默而授與法華經云久默斯要不務速說又云大通智朦佛默然許之故云默授也化者示化導謂別導言無知者謂不覺知也背眞名俗故佛以玄微機惡默授化導令知眞性趣向大乘體用垂方安隱昏衢之性體者法身本無出沒用者報化二身示現受生佛地論云佛有二身一者實身二者生身法機經云我於餘國更有異名卽隨其方所應機示化華嚴經云如來神通力法界悉周偏一切衆生前示現無盡身言安樂者卽利他行也法華經云如來于時觀是衆生諸根利鈍精進懈怠隨其所堪而爲說法種種無量皆令歡喜快得善利是諸衆生間是法巳現世安隱後生善處言昏衢者瑜伽論云體卽煩惱所知二障迷覆衆生之性汨沒罒生譬如長夜迷於衢路唯識論云未得眞覺常處夢中故佛說爲生死長夜卽顯無明之性今令安隱開明覺性俾趣佛道故云安隱昏衢之性況乎威靈控御威者威德靈者靈感控謂引控御謂調御佛以威德之妙道控引群品咸證佛身調御三界皆成淨士法華經云威神之力巍巍如是維摩經云以若干種法制御其心乃可調伏卽顯佛調御丈夫之德像教崇虛智度論說一者正教二者像教三者末法崇者高大之貌虛者中寂之稱謂佛像教流通萬代崇高虛寂普化有緣也湛然典憲於十方湛謂澄湛喩教海湛然流出諸教典謂典則憲謂憲章謂如來聖教典則萬物憲章群機聲振十方永爲法寶也華嚴經云如來說法音十方莫不聞隨諸衆生類悉令心滿足此卽弗之聖化甚廣大也賢愚俱臻於萬賢者愚者同有眞性臻者至也彙者類也謂無情有情同一法中雖根分利鈍而佛性平等至于萬類無不皆眞楞嚴經云一切世間諸所有物皆卽菩提妙明元心又云咸是妙明眞心中物顯甚眞法普周法界也微言廣被聖智所演皆曰微言流化十方故云廣被華嚴經云如來一妙音周聞十方國一切衆生聞其聲不可得此卽從聞思修入三摩地實由微言廣被之力也救濁世於三千正覺大慈普救一切法華經云諸佛救世者言濁世者卽五濁惡世法華經云諸佛出於五濁惡世所謂劫濁煩惱濁衆生濁見濁命濁楞嚴經云譬如淸水淸潔本然彼塵土沙灰之倫本質留礙二體法爾性不相循有世間人取彼土塵投於淸水土失留礙水亡淸潔容貌汨然名之爲濁無量壽經云彼諸佛等亦稱說我不可思議功德而作是言釋迦牟尼佛能爲甚難希有之事能於娑婆國土五濁惡世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又十地論云有無明雜智名爲濁世言三千者卽三千大千世界釋迦世尊所化娑婆之境也言三千者卽小千中千大千也天親菩薩頌云蘇彌盧日月梵世各一千名一小千界此小千千倍名一中千界中千倍大千俱同一成壝故云三千也遺教自然世尊妙法流益將來故名遺教傳通永劫普作善利故名自然遺教經云其未度者亦皆巳作得度因緣法華經云我於無量百千萬億阿僧祇劫修習是難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今以付汝等當受持讀誦廣宣此法令一切衆生普得聞知又云能與衆生佛之智慧如來智慧自然智慧想端嚴於四八想者專注在心佛地經云四八端嚴殊朦相企耶三大劫修來面如滿月目如蓮天上人間咸恭信卽歎佛朦德也大般若經說佛有三十二相一者足下平滿相二者千輻輪相三者十指纖長相四者足跟滿好相乃至三十二頂有內髻相六莊嚴論亦同此說觀佛一時經云佛腋下相中懸生五珠如摩尼珠上柱佛腋又云佛咽喉如琉璃筒十住論云佛臂過睞如金開敷又云佛髮色如曇蜂中有德字安字喜字僧伽羅利經云如來齒上有千輪相中阿含經云佛身七處平滿謂兩手兩肩兩足及頸也地持經云佛表裏八處平滿大集經云佛不以惡事加衆生故感髮色金精相智度論云佛之舌相色如珊瑚又相好經云盡人中褔不及一天乃至云盡世間福不及如來一相是知聖人福德嚴備爲天人師至極至尊想讚不及也敷揚正法宗闡甚深敷者開敷聖旨揚者奉揚眞教正法者卽佛所說無上正眞之法也華嚴經云若見於正當願衆生得爲法王恒轉正法言宗者宗要闡者闡宣甚深者卽佛之妙法甚深廣大也法華經云佛所得法甚深難解所有言說竟趣難知今以敷揚正法簡邪智所解也宗闡甚深簡淺智所知也非大智者無以窮其其源妙理至極幽深非大智之人無以窮甚源也智度論云佛法大海信爲能入百緣經云三界擾擾四生昏昏識心達本源故號爲沙門又法華經云無漏不思議甚深微妙法我今巳具得唯我知是相十方佛亦然卽大智者方知也華嚴經說此經唯付有大心者不入一切餘衆生手故非小智者之所窮也非達識者莫能知其要達謂通達識謂博識卽通達眞理博識妙義知其綱要可以荷檐住持也法華經云諸佛坐道場所得秘要法能持是經者不久亦當得以諸大菩薩達佛深旨明悟要道若非斯人莫能知也包括殊異包者包含普攝一切括者括掠總持諸法殊異者殊朦靈異金剛經云一切諸佛及諸佛司耨多羅三藐三菩提法皆從此經出故曰包括殊異也奧義遐宣奧者深奧非測量故義謂妙義唯佛所證言遐宣者則遠布世間廣行利樂華嚴經云假使有人以大海量墨湏彌聚筆書寫此普眼法門一品中一門一門中一法一法中一義一義中一句不得少分何況能盡是奧義也法華經云我滅度後後五百歲中廣宣流布於閻浮提內無令斷絕故云遐宣也相之情皆空有情執相難證空法若能了相卽皆空故金剛經云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起信論云諸佛如來離於見相無所不見心眞實故智度論云小乘四諦中苦集滅道三諦是有相滅諦是無相大乘中四諦皆是無相大中論云虛誑妄取者是中何所有佛說如是法欲以示空義大般若經云諸法皆同一相所謂無相失如是則滯相之情亦眞空矣無生之滅皆寂無量義經云常說諸法不生不滅無彼無此一相無相謂若有無生卽有無滅旣生滅尚在未爲究極今無生無滅卽是眞寂楞嚴經云生滅旣寂滅現前故云皆寂也幽深道遠求之者不可得其中非之乘所測夕幽深唯三劫能至名道遠法華經云佛道懸曠經無量劫勤苦積行具修諸度然後乃成言求之者謂求佛道者以有心求卽佛非有也以無心求卽佛非無也故不得其中維摩經云夫求法者不著佛求不著法求不著衆求又楞嚴經云如人以表表爲中時東看卽西南觀成北表體旣混心應雜亂是一得其中也報應必通究之者弗可曉其理報卽報身應卽應身二佛雖殊而體無異金剛論云應化非眞佛亦非說法者推功歸本唯一法身乃名通也究者窮究謂報應之道不可明達其理以佛眞身同太虛空非由心慮而能察量金光明經云佛眞法身猶如虛空法華經云唯佛與佛乃能究盡諸法實相則餘莫能知也貫穿德義貫穿者攝持義德義者妙法之稱也攝論云彼三及二云何名藏荅云由攝故謂攝一切所應知義如線貫花如經持緯佛地論云能貫能攝故名爲經詮其德義垂範將來法相互陳法者法性相者事相以執相者謂性有名種滯性者謂相有殊途今此互陳卽一眞矣澄觀法師云一心法界含眞如生滅二門互相交徹不壞性相故云法相互陳也窺解脫於毫釐窺者觀也言解脫者卽涅槃經所明三德謂摩訶般若解脫法身唯識論云安樂解脫身大牟尼名法又涅槃經云貪嗔癡心永斷滅故名心善解脫知一切法無障礙故名慧善解脫言毫釐者中觀論云世間之實際卽是涅槃際無毫釐差故較優劣於性識較者商較也一法平等無有優劣由其識性詮有淺深楞嚴經云於時如來告文殊師利法一子言汝今觀此二十五無學諸太菩薩及阿羅漢各說最初成道方便皆言修習眞實圓通彼等修行實無優劣前後差別言性諳者性謂五性識謂八識隨其利鈍樂其權實故於一法而不同途金剛經云一切聖賢皆以無爲法而有差別爲參演經論設彼紀綱參演者究暢之義佛地論說佛所說名經菩薩所造名論也言設彼紀綱者設化有情以法爲網紀調伏大衆以人爲網紀楞嚴經云我是如來衆中綱紀形言於竹帛之閒此方以竹帛書功西土以貝葉傳教形顯其言以爲典也灌頂經云能信是經受持讀誦書著竹帛又楞嚴經云若諸世界隨所國土所有衆生隨國所生皮貝葉紙素白疊傳彼微言以爲教體也致理於凡聖之內致由至也理則眞理背覺合塵曰凡大般若經名士夫瑜伽論釋云能作一切士夫用故卽俗恒眞曰聖攝論云一切聖人以此爲因卽眞理平等凡聖同源也華嚴經出現品云如來成正覺時普見一切衆生成正覺乃至普見一切衆生入涅槃皆同一性以了衆生皆無性故慧日照臨於碧大慧如日普照法天世界朗然咸悟眞性法華經云慧日大聖尊又云慧日破諸闇能伏災風火華嚴經云衆罪如霜露慧日能消除又云如來現在世處處悉周徧如日出世閒爲我說其道是知皎日昇天萬物皆現慧日麗漠一性必明者也柰苑騰芳於善根柰苑者卽波羅柰國中苑也法華經云昔於彼羅柰轉四諦法輪又祇域經云王園有柰樹其而且美形狀殊異唯王園有餘處無之王因與梵志食被竊其子種之以乳漑灌後生大樹樹生一女端正異常時諸國王競欲娶之唯萍沙王得之乃生祇域佛曾於彼說法故名柰苑言騰芳者榮盛之貌言善根者謂修種善法有資茂故瑜伽論云五根者謂信進念定慧由斯五法滋榮生長妙花成無漏果淨名經云總持之園苑無漏法林樹覺意淨妙花解脫智慧果又華嚴經云住佛正見地長佛功德樹雨佛妙法花示我菩提道卽善根騰芳永光法苑列智炬之光法華經云如闇得炬又云如夜闇中然大火炬喩佛智垂照如炬發光破其無明令行正願發有情之相願者大願發謂開發言有情之相者謂一切有情皆尖具相由無明之所蔽放智光而顯發故實相般若經云一切有情皆有佛性普賢菩薩自體徧故令悟其眞相必成佛也破重昏之境衆生迷倒從冥入冥譬若重昏了無明覺佛光垂照昏境洞然法華經云佛告諸比丘大智勝佛得司耨多羅三藐三菩提時十方各五百萬億佛世界六種震動其國中間幽暝之處日月威光所不能照而皆大明其中衆生各復相見是故破重昏之境也彌慶無礙之因由佛智光滅諸闇相彌彰諸法自在無礙是則諸佛證無礙之果令衆生修無礙之因華嚴經云神足無礙由如佛天眼無礙最淸淨耳根無礙善聽法此無礙者所行道道者因義謂行此目故得佛果也覺焰之燈長明法燈之上發覺焰光爛然長明永照於世智度論云然燈佛者謂此佛從初現生乃至成佛擧身常光明如然燈故身智光普周稱大又然燈功德經云然燈供養能滅罪生福令發願言當以大海爲油湏彌爲炷然大明憕徧佛剎海供養無休華嚴經云又於光明名養燈此光能覺一切衆令知衆生性寂然一切諸法無所有是知世燈破闇佛燈導迷照耀昏衢明終不盡也幽闇之室恒顯無明三界喩如闇室覺燈普照所以光顯楞嚴經云意如幽室見謂昏明也言恒顯者心開意解證法光明金剛經云如人入闇則無所見又云如人有目日光明照見種種色卽常顯也閶闔銀闕教諭金文閶闔天門也銀闕則銀輪王所居之宮室也法炬經云輪王寶殿千梁萬拱衆寶所成嚴麗可觀世所希有由福所感也感通傅云文殊師利菩薩居黃金世界普賢菩薩居白銀世界言教諭金文者教卽三乘十二分教也諭者示諭顯佛金口所宣之文名爲金文也棲息煙蘿深巖秘密證法自在所以捷息樂其寂靜乃處煙蘿法華經云入於深山思惟佛道又見離欲樂處空閑斯則華野狂緣竝爲妙境也言深巖秘密者楞嚴經云如今世間曠野深山聖道場地皆阿羅漢所住持故世間麤人所不能見故名秘密也扶持依仗於佛慧夫佛佛授手聖聖傳心十方如來互相讚美一切菩薩名起釣崇法華經云得佛無上慧乃感聖君而爲外護大集經云國王護佛法增長三種精氣一者地精氣謂五穀熟二者衆生精氣謂形貌端正無諸疾疫三者普法精氣謂施戒信等常興隆故塵劫永曜於蓮宮聖人之作如日之明雖塵之爲多鎭蓮宮而斯久法華經云如人以力磨三千大千土盡此諸地種皆悉以爲墨過於千國土乃下一塵點如是展轉點盡此諸塵量如是諸國土點與不點等復盡林爲塵一塵爲一劫是名塵劫也言蓮宮者華嚴經說蓮華藏世界毘盧遮那佛出現其中名蓮宮也比乃如來眞教耀於蓮宮永於塵劫也歷世常鑑於高明歷代寶之常爲鑑照法華經云世世不絕言高明者天之象也摩訶衍經云戒如眞實鑑能照盡無遣斯則言佛教高顯明大也攸夂混同於天地夫至聖之道其化大焉無上之詮其文廣矣恭惟我佛之教共玄風而永久等天地而常在混虛空而寂然蕩蕩巍巍無得而名者也普賢行願經云虛空界盡我願乃盡以虛空無盡故我願亦無盡也御製秘藏詮卷第一總一千首共二十卷幷註佛賦二首附歌行一首附性法光常照光含法界性徧大千剎剎塵塵纖毫盡照根根境境動念全眞瑜伽論云智光身光如次常照如來大戒儀如來卽十號中倣同先迹號智度論云乘如實道來成正覺因中持三聚淨戒果位具圓萬德莊嚴其身行功德業華嚴經云佛於僧祇劫中歷修萬行果中獲一百四十種不共功德無漏淨業受用無窮攝受智心持華嚴論云佛理廣大攝益多方受之心地法門持之智印三昧窮眞盡妄何法不該者矣相滅空千劫相卽有爲法滅者無爲理悟之則剎那昧之則千劫法華經云一百八十劫空過無有佛眞純絕是非仁王經云眞實理中無世俗諦圓成體上有朦義諦矧離四句而絕百非越三端而過七辯善心興一楞嚴絰云我非勅汝執爲非心但汝於心微細揣摩若離前塵有分別性卽眞汝心故一念心不可生滅性靜法王機冥心息慮法本不生匿迹韜聲法亦不滅入如來之眞性控無上之機 權淨名經云非凡夫行是菩薩行心達無邊境心若明了萬法不生周徧大千廓然無聖了無邊境窮劫難名唯佛眞心湛然常寂華嚴論云無邊剎境 自他不隔於毫端虛空入有微寥廓之內不礙心緣況迥略影中可以從微入有百法論云所謂法處所攝色見今過去佛三世不空諸佛常住强名過見巧立去來法華經云常在靈鷲山及餘諸住處性相寂空歸圓成實理性相混融湛寂凝然一道淸淨明王經云遠離衆苦歸圓寂譬喩法如常疑帶於懷封執於理喩之以法始顯眞如法華經云諸有智者以譬喩得解求多心自了悉達多太子爲求半偈以捨全身歷事諸佛方圓大果法華經云了達諸義趣又能善說法世尊演上乘六通圓滿謂之世尊世出世間咸尊重故淨名經云爲菩薩說六波羅蜜以應其根矣四衆瞻圍繞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謂之四衆淨名經云瞻仰尊顏目不暫捨繞佛三帀卻住一面識用攀諸聖上乘妙理無以攀躋頓悟涅槃自超淨域聖聖繼迹法法傅燈入劫泛流豈能識用登地之聖牙陟階梯法華經云親近智者一心除亂緣道本基經卽大乘至教緣爲詮表因緣彰入道之初基顯證聖之由漸淨名經云從無住本立一切法愚癡貪自縛慧心明朗則羈絆無因固執難迴稽留自滯法華經云我令脫苦縛福業各相隨福卽感於人天業卽通其善惡似風逐響如影隨形古往今來造因受果情狀如萌發外發三業內運片心若萌芽出於地中如根蔕固於枝葉瑜伽論云外發身語業表內心所思譬如潛泉魚鼓波而自表精嚴好仰精謂精純嚴謂嚴淨況佛諸根相好一一無邊無限善根所因生故可以爲群生依因緣菩薩種菩薩謂大心衆生以悲智爲因權巧爲緣有異色心二法所藉不同法華經云宿植德本順悟逆相違賢者招下士之所嗤智者棳愚人之所嫉蓋曲直無以相入玉石不可俱焚維摩經云順是菩提欲量無邊劫日月歲數謂之時成住瑰空謂之劫非明智以莫量匪慧心而安測法華經云我念過去世無量無邊劫其如業力癡業卽思之別號癡則煩惱異呼縱之則背覺合塵馭之則超凡入聖淨名經云善惡之業亦不壞信中能妙解信卽五根之一法解卽心所之別名妙乃細入於無中能卽高出於品彙赫日爍冰池遲日纔昇迨冰斯泮仰啓蟄之大用彰震滯之全功亦猶智類踆烏愚同凘沼慧光纔出幽執自明喩性本來明其性本明仍湏取喩恐心未悟更假言詮則事無不彰理無不曉圓覺經云雲駛月運舟行岸移法天心是道上聖宗空法空證聖唯心悟道道悟非心維摩經云天人得道此爲證達時悟有緣四智菩提二空眞理達之者無限悟之者有緣淨名經云達諸法相無無罣礙諸聖開懷抱諸大聖人虛懷接物功無不利法無不周庶使含生咸登覺道法華經云開方便門示眞實相求福還如夢達道之人豈求世福如夢如幻非有非空如箭射空勢盡還墮金剛經云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性通慧不知性含妙有染習皆忘般若無知無所不知眞俗諦上了義無差仁王經云慧善解脫是非身法相蘊處日身軌持名法出纏爲是在染成非瑜伽論云在纏名如來藏出纏號大法 身殊朦若何爲淸淨之因本自殊朦覽之無際應用多方法華經云殊特妙好如天樹王願樂與精進願樂欲聞如來正法不怠精進俾豋菩提法華經云又見菩薩勇猛精進二途俱妄爲眞假二途非虛與妄攝歸一性廓徹眞空金剛頌云二邊純莫立中道不湏安無機誰辯別 得道無機見諦息慮辯之者少別之者誰法華經云如我所說法唯汝能證知撈月海中情迷妄執眼病虛觀圓成實處以明眞徧計無中而說有金剛頌云猿猴探水月莨菪拾苞鍼安心袪妄想喧囂塵境寂默悲聲妄想潛袪眞心自隱法華經亡其心安如海烏兔豈能隨隙影難流浮生自逸無情情追逐宴坐忘機五欲不生四時寧變放光般若經云法無動轉無去來故一善性中得沈一念心通三種性隱於毫木善乃得中是成佛之因爲利生之要普門品云心念不空過貪緣去莫疑貪隱愛源緣爲因本捨之不礙去之何疑摩經云貪著禪味是菩薩縛圓果利皆通障盡習除表佛身之淸淨因圓果滿彰聖德之周隆皆睹神通咸蒙利益法華經云若讀誦通利心關方寸了其有內心或關外景全憑方卞了達是非華嚴經云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應觀法界性一切由心造淸涼逢世住一眞不昧三界淸涼爲世衆生去諸執惱獲大利益永滌塵勞法華經云我此土安隱天人常充滿甚處有煩惱妄緣纔息煩惱自祛貞性顯然身器淸淨楞伽經云煩惱巳盡習亦除樂善證菩提鄙棄塵緣趣求善法積功累德鍊行修心遂證菩提乃成道果表佛纖瑕必去片善無遺法華經云志意和雅能至菩提眞空瞥見時利根菩薩見諦理於片時直往聖人悟眞空於一念不勞經劫何在長年法華經云於剎那頃發菩提心不爲眼所著必若不寧貪著外境情無所繫一向內緣靑黃靡窺長短奚顧圓覺經云譬如病目見空中花誰肯逐狂自諳正道誰肯逐迷不假指南幸可守轍百法疏云不迷心王不迷心所戒律自持秉萬法之門非戒與律凡聖之路唯悟與迷還用秉持以成妙道法華經云又見佛子持戒淸潔如淨明珠人心無了期未歷眞途色塵浩浩能窺覺海欲浪沈沈法華經云求名利無厭莫將因果比眞性凝然至理湛寂豈同因果隨運遷流金剛頌云果因知是幻逍遙自在人淨不思議淸淨之理妙法顯然不可思議難以測度金剛經云果報亦不可思義定性歸何趣性雖未定法且隨緣眞性旣前妄緣俱泯金剛經云我皆令無餘涅槃眞宗事不迷四智菩提得名般若二無上果故曰眞宗事理不迷旨喩深當法華經云諸法從本來常自寂滅相法身無所得異於報化稱曰法身智證理時都無所得唯識論云若時於所緣智都無所得智有高低瞢於善惡故日愚人曉彼果因目之智者根有利鈍見有高低法華經云大根大莖小枝小葉滿月似金容佛面圓明一如滿月佛身堅回頗類黃金相好威光容儀炟赫華嚴經云面如滿月目如蓮因緣隨相好世尊於三祇劫內持無瞋行果中感三十二相八十種好莊嚴其身智度論云自在熾盛與端嚴但無人我心未斷貪瞋難除人我若無妄執便證圓成淨名經云我尚不可得非我何可 提觀見眞如道相唯眼見理亦智觀矧眞如無形實際非體唯識論云唯諸聖者自內所證釋了還依舊旨妙言玄湏憑解釋文雄義博難可了知刪補時新至理依舊淨名經云無雜文字說解脫乎經言理不虧能詮之文曰經所詮之義曰理二邊不著一性自彰維摩經云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千穿與萬鑿造論解經製疏釋義同成正理共讚微言雖形穿鑿之功不變凝然之性求取果圓時資糧加行功業將圓無間金剛種習方盡旣除取相又破求名唯識論云離二取相故爾時住唯識意欲求諸法雖仰三身不求諸法眞心頓悟妙法圓通法華經云若人有福曾供養佛志求朦法眞心不阻違佛性衆生本無眞僞道風不礙塵境多迷大般若經云理事無礙也到頭湏是實攸夂驗眞到頭歸實至人無僞大士本淳金剛經云是眞語者實語者色相自生疑睹相生善視色興疑幻化不眞虛妄分別金剛經云若以色見我以音聲求我是人行邪道不能見如來經教不通理經乃佛語教謂法宗若不開悟眞心曷以通達妙理法華經云不得諸法不知不見疑緣獨是非疑通分別眞見卽除緣謂因緣和合方泯智度論云捨無常色獲得常色大巧與大辯智文機妙巧柮全眞不露鋒鋩自透法界淨名經云辯才無滯終不妄施爲佛開方便濟物度生巳滌妄緣必躋眞覺法華經云如來種種說法皆爲一佛乘故功行四周天佛之功行歷天不周雖法有去來而眞相常住淨名經云或作日月天梵王世界主威光無不到功圓法界福利群生有凝皆通無幽不燭法華經云深達罪福相徧照於十方寂心本是空凝神息慮始彰寂靜之心厭苦斷集密叶眞空之性淨名經云寂滅是菩提滅諸相故眞正降邪道背僞曰眞捨邪稱正自合中道不滯二邊法華經云拔祁說涅槃論法尋常是仁王經云菩薩 摩訶薩論法住無分別無彼世相無自他相常行化利無化利相眞空好仗依眞空卽法身與一切法爲依楞嚴經云本如藏妙眞如性非於根出不於空生彼非因緣非自然性如來因地厚仁王經云從初習忍至金剛定十三觀門修行智慧深厚皆爲法師依㭙建立淸淨本無機勝鬘經云出纏號大法身以顯法身離諸障深是名淸淨又云無言無說無本無機俱爲寂滅矣去來何所得眞諦論云無相之眞妙絕常境聽者無以容其聽智者無以運其智卽無去來無所得矣果證不參差修十善果報定感鐵輪王位不參差矣仁王經云上品十善鐵輪王大樹深根蔕初地巳上菩薩總喩大樹證不退故名深根蔕法華經云安住神通轉不退輪度諸衆生是名大樹緣豈可知妙性圓明離諸名相旣非幻識所緣豈以妄智能知維摩經云不可以智知不可以識識住見輪廻定住者依止見諸見多法華經云入邪見稠林依此諸見具六十二爲因定受輪迴苦果桑田變海涯諸有情類輪迴出沒不悟眞覺了無達期海變桑田靈源不竭瑜伽論云悟則一剎那不悟恒沙劫年從經劫減瑜伽論云劫初人壽八萬四千歲從百年減一年減至人壽十歲從百年增一年復至八萬四千歲一減一增爲一中劫矣果報盡相隨作善善報作惡惡報攀因逐果了無盡期諸經云勝因生善道惡業墮泥犂德廣徧群生佛具萬德悉被群生四願探廣爲三乘人應機說法各得解悟仁王經云於億恒土化群生慈悲懷節操興慈運悲救生拔苦持淸淨節操開忍辱道場法華經云常柔和能忍慈悲於一切不生懈怠心拘前後際唯佛眞心混融法界三際徵求了無所得無相無爲疑然虛寂眞諦論云眞體常存非聖所造無著亦難討眞諦論云言雖通理理本無著理與言絕亦不能討矣慈心如不動慈悲喜捨普施含生說法利人心能廣大仁王經云於第一義常不動方寸自東西妄心不定必有差殊若眞法一如萬緣都泯楞嚴經云覺知分別心性空無在者性種常淸淨法界淸淨性種凝然一體無差三天示現仁王經云習種銅輪一天下銀輪三天性種無令意馬嘶瑜伽論云意馬是八識中第六有漏意識一念之項無不徧處從歡喜地巳去轉成無漏妙觀察智意馬忘嘶悲智群生類唯識論云悲謂有情起悲智謂後得起智由是悲故拔群生類出離諸苦由是智故接群生類證涅槃樂終無識法爲性非質礙與道無爲識識轉差法法自會法華經云我等今者不復自隨心行憍慢瞋恚諸惡之心等業輪常自轉瑜伽論業爲因輪是果循諸有往復如輪業招報定名常自轉六道甚棲遲玄贊云六趣往來遊履名道不遇諸佛不聞正法爲生死所因寔甚棲遲矣性海理無邊文殊發願經云淸淨諸性海嚴持佛剎海度脫衆生海窮盡無邊理智海經宣衆海剎廣無邊堪傷像法遷法住經云正法五百年像法一千年末法一萬年俗諦有遷卽堪傷店如來慈忍力報恩經云調達以五百醉象令突世尊佛以五指化五百師子伏其醉象調達泣禮如來佛爲說法是佛之慈忍力也擧手向靑天本行經云佛示化生四方各行七步表離四相一手指地表救三塗一手指天表出過三界利樂人天利益及三界利益群生包含法界不求不證定出輪迴法華經云今此三界皆是我有其中衆生悉是吾子日光明佛道法日麗天永袪昏闇智光照物癡垢自除佛道玄微凡愚莫測法華經云智慧光明如日之照普照無邊方慧炬舒輝法光普照利樂悲苦徧極無邊法華經云光明照十方名爲無邊方能破諸煩惱諸煩惱障四智能斷習氣自絕退達法性唯識論云由斷續生煩惱證眞解脫相引無邊義如來現相指引迷情法華經云引導衆生智究窮源通達無量無邊之義還迷不省緣還遷六趣沈溺四生不省善惡兩途逐境攀緣顚倒法華經云迷惑不教悟來隨旨受悟則剎那迷則經劫若能觀察了證本源廓然無礙起信論云如人覺了頓悟東西心實不動卽入法門眞實本如然眞如實際本無染淨因緣至理絕言顯是疑然法性法華經云諸法從本來常自寂滅相心境求緣識起信論云三界虛僞唯心所造若離心故無六塵境一切諸有遇緣卽生皆以意求俱從識起矣推之遠更遷 仁王經疏序云推之於無境智都寂遷之於有異念更增棄妄歸眞共臻實理非論修與仁王經云若菩薩不著文字不離文字能如是修不見修相是名爲修又云菩提之法非修非證達性自周圓 達性曉了隊法也起信論云是心本來自性淸淨達悟一法悉乃周圓識細恒沙界 起信論云識有麤細凡夫識麤中麤菩薩麤中細若細中細諸佛境界眞性智性徧滿恒沙經雄滿大千華嚴經云有經一卷量滿大千世界在一微塵內有智慧人能破此微塵取經利益一切衆生光明臨世俗瑜伽論云大圓鑑智朗曜群迷世俗冥瞢悉令開悟又法華經云光明照世間能滅衆生闇譬喩說無邊涅縏經云如來說諸譬喩爲執邊故教令有情識其無邊十二時中親常樂果矣益彼惠生民佛之恩德利諸衆生常運慈悲令知妙善維摩經云菩薩利他不求自利勿憂登聖道 瓔珞經云往昔諸佛依四十二位賢聖階降所謂十住十行十迴向十地等妙二位依此修行勿憂不登聖道矣一麻兼一麥 本行經說佛因地六年苦行日食一麻一麥又梵網經云有求食者取一麻麥濟之眞爲惠施慈惠恩施好興慈施惠爲三善根起信論云有求財者隨力施與見危逼者方便救護有求法者隨其所解而爲講法情妄皆非正起信論云以有妄心卽熏習無明不了眞如法故不覺念起現妄境界熏習妄故造種種業受一切若名爲非正紅蓮淤水鮮淨名經云譬如高原陸地不生蓮華畀濕淤泥能生華故蓮開淤水染污本無華坼鮮姸馨香自有有情俱是相 有情動用俱是相心若得相除頓顯實相相而非相是顯眞空無量義經云非相不相皆名實相威力等無邊佛具十力瑜伽論云菩薩修行有五種性能生勢力承慈化利威等無邊欲逼諸煩惱瑜伽論云現在有無量諸欲惱逼迫未來衆苦亦然三界共說此一百二十八煩惱長時隨逐難捨離故非因信所牽起信論云信成就發心者信業果報能起十善厭生死苦欲求無上菩提信心成就乃至人正定不爲邪所牽引未通一法理一法理者卽是眞如瑜伽論云不達一法界卽未離生滅心若離生滅心則通諸法界甚處得周旋攝論云凡夫二乘不能知法理菩薩分得法理唯佛與佛法法平等理理周旋矣求卽剎那得 一念淨心諸緣頓息剎那得法無所依求維摩經云不著佛求不著法求攝論亦云剎那成正覺聰明智自然智炬明然色空自顯心境洞會覺寂通明妙用應時聰達無礙法華經云聰慧明達成就自然智微中玄妙聖教法玄微至聖宣說隨機化物妙覺慈悲法華經云聖主法之王深遠甚微妙性海量無邊法性之體如海湛然浩浩混融中含慧本凝虛至極卽達無邊佛地經云無量識相盡無邊際故知不可說仁王經云若菩薩住不可說佛剎說不可說法門得理盡三昧同佛行處知三界原悲願貪生老起信論云菩蔭有三種悲願一直心二深心三大悲心見諸有情貪受生老遂發大願普垂救拔從此四門本行經云佛昔王宮爲太子潛興利濟遂開四門次第遊觀見老病死及沙門相倍懷忻厭從此踰城棲止雪山節修諸行菩提成大道本行經云佛於菩提樹下現登正覺大道圓成四十五年隨根演法若天若人皆獲妙樂願我無爲法百法論云無爲法有六種一虛空無爲等是願齊志義我自在名金剛經頌云齊名八自在獨我最靈長縱橫徧大千縱橫者通達稱一音演法普徧大千法華經云徧覆三千大千世界光明如皎日四智光明廓淸沙界昏昧障闇皎日能除藥師經云安住十方如日照世慧眼照人天慧光初發朗耀虛空照極昏衢廓然靈境金剛經頌云慧眼直緣空又華嚴經云悉得見人天通達無障礙安樂功殊勝功滿僧祇法殊果報成等正覺無爲無漏善常解脫澄淨晏然唯識頌云此卽無漏界不思議善常安樂解脫身大牟尼名法谷聲聽那邊妙法流布如谷答響窮佛眞智似眼聞聲淨名經云所聞聲與響等求還自見不求眞見誰了無生若達本原頓明實際法華經云唯獨自明了餘人所不見似對法王前我佛興世名振十方唯法現前諸佛印可法華經云破有法王出現世間樂道心安泰坥該樂道動息恒安瞑心瞑目勤修正行法華經云安隱快樂其心泰然如山擁在前山喩我慢擁障前境有智慧人去我慢山通達聖道華嚴經云摧重障山見佛無礙法雲常寂意性喩慈雲慧同法雨寂靜湛絕普利含生法華經云慈意妙大雲澍甘露法雨日月自恒圓佛日融融幽明普照性月皎白虧盈自如法華經疏云譬如日出先照高原又瑜伽論云菩薩慈悲作日月顯教極閻浮法行印土教演閻浮諭諸有情各獲利樂事該衆典指顯何極法華經云此經閻浮提人病之良藥昏衢多不了衆生闇昧不達眞途能證涅槃無過了義瑜伽論云迷覆其心曾無惺覺幽明難測量佛智通明幽深莫測上聖自能明了二乘絕思難量法華經云盡思共度量不能測佛智衆生自懊惱虛妄攀緣衆生境界不曉㥧惱難了眞空法華經云衆生常苦惱盲暝無導師不識苦盡道不知求解脫戒說僧尼律演教利生各隨機益僧尼奉法戒律是興依之而行趣期證達梵網經云依大乘戒修證菩提捨身離俗緣捨身投佛永離俗緣發無上心永佛眞境瑜伽論云捨身向佛得離俗緣非求眞境界非求妙理莫見本源起大覺心證眞空境寶積經云不求佛理何見一如一法二空一眞法理本自湛然二空現前惑障本寂百法疏云頓斷二障染法頓證一眞之理定觀爲何事定者禪定求證涅槃觀者觀察以明佛事慧能捒擇斷惡修善諸妄旣盡超證菩提法華經云定慧力莊嚴未曾道理偏依定起慧道理何偏執正執邪妄心所著證眞道理自見分明般若經云定慧同觀實無偏處靈山知有佛靈鷲山中眞說法所佛具大智證諸實際會三歸一了悟眞源法華經云常在靈鷲山及餘諸住處性識本如然淸淨智性本絕纖塵蓋妄想之纏迷了眞空而出離百法論云有眞性者定得成佛釋教無虛妄佛流眞教廣利人天法演大乘令達妙道邪妄心息法證無生金剛經云如來是眞語者實語者高明大法天法天高覆慧日流光菩提則開發善芽衆生乃常蒙利樂法華經云演大法義衆生能見性一切衆生皆有佛慧能見自性洞達眞源利益自他盡未來際華嚴經云衆生見者煩惱滅我亦不能宣智證眞性理絕言宣衆生悟心實無可度無名論云四辯不能譚其體攝認及諸邪攝心向善邪妄不生迷昧眞源煩惱交互證二空觀發悟解心大般若經二諸邪煩惱不覺自生如來方宴坐諸佛定觀邪妄心寂眞源默悟宴坐凝然維摩經云不於三界現身意是爲宴坐眞心大道眞智若了萬法皆空達理甚深見本源性攝歸大道物我全眞肇論云雖今現有而性常自空誡忌於人我諸佛設教誡誘群迷令悟我人當體不實二空旣證一眞斯明唯識論云我法本空實無自體意求佛與法佛法深妙不必意求若悟眞源自然超證徒尋妙理深入法門法華經云誰人爲我說大乘法五蘊理空玄五蘊幻化佛說是空從因緣生無眞實義般若經云時照見五蘊皆空萬法皆歸一萬去無邊理本皆歸一寂四儀利物教道施設千差百法論云無量法者從一法生其一法者所爲眞如慧解障心圓有漏慧解障礙菩提無漏之心斷惑入證瑜伽論云迷妄之見恒礙心圓經演法王前經者三乘聖人修行徑路是大法王演化之教令彼衆生達涅槃所寶積經云法王演化四類衆生分明句偈傳至道無言假詮悟旨分明句偈傳演敷揚普益有情令生信受金剛經云四句偈等爲人演說當時曾了達釋迦因地邂逅然燈得授記言分明了達金剛經云汝於來世當得作佛信受度金僊蒙佛授記信受不虛果決之言今乃成就大般若經云過去劫中曾得授記論證無生理十地菩薩地地門中各證一分無生之理佛位圓滿證得現前唯識論云滿分淸淨者滿證指佛分證指菩薩修持想那邊修持淨行想心緣而不見眞空大智證時不是那邊之境親緣親證理智冥通唯識論云親所緣緣理智俱實不如休去住執相修眞徒施功行忘言悟旨翛然住眞金剛經云無所從來亦無所去靜坐化人天默然靜坐似佛安禪法界眞如便是樂果涅槃經云寂然靜坐化衆生心受報諸因緣人天果異善惡不同各逐因緣隨心受報若乃心境豺寂妙法常如寶積經云受報因緣唯心所造聖言不可捨聖人至言不可妄捨依詮悟旨妙用忻然唯識論云聖言爲定不可改移我心常湛然聖心淸淨湛若虛空知佛理之甚深居塵境而不動楞嚴經云淨心澄湛無所動搖當眞般若有眞智性達理甚深悟解眞常趣求佛果瑜伽論云起般若智趣眞實門去妄極無邊衆生煩惱廣極無邊其或大智發生虛妄何有百法論云永盡纏縛故如其業力牽業力增上牽不自由種習所薰寧知修善忙忙三界役役四生法華經云三界無安由如火宅衆生能得性佛有度生之願專求見性之人了悟眞常唯心境現唯識論云具此性者是最上乘頓減苦纏緜一切衆生第八識中有此大乘菩提種性纏緜煩惱漸漸輕微不覺超凡自然入聖對法論云有大乘性盡得成佛住果隨人願諸佛居果位隨衆生心應現身形方便引接隨機利物說法令修大般若經云我住於果隨衆生心現身說法還如植福田要受人天之果湏行六度之因願行齊修大果必證金剛經云七寶持用布施善根頻灌漑雖有菩提種子湏假灌漑方生聞法薰修道芽增長唯識論云頻頻灌漑方生有芽滋潤積周圓聞法滋潤彌益勝心四智周圓三祇果立大般若經云修廣大心得佛圓滿御製秘藏詮卷第一丁未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전(詮)이란 경전의 문구를 설명하고 해석한다는 뜻이니, 경전의 뜻과 이치를 능히 풀이하여 드러낼 수 있다고 능전(能詮)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서 해석되어 드러내지는 뜻과 이치는 소전(所詮)이라고 부른다.
  2. 2)법을 설하는 것을 표현할 때에, 세법(世法)을 말하는 것을 반(半)이라 하고, 출세법(出世法)을 말하는 것을 만(滿)이라 한다. 또 출세법(出世法) 중에서 말할 때에는 소승(小乘)을 반(半)이라 하고, 대승(大乘)을 만(滿)이라 한다. 따라서 반자(半字)는 소승이고, 만자(滿字)는 대승이 되는 것이다. 반자는 원래 범어의 자모(字母)를 가리키고, 만자는 그 자모를 집합하여 구성한 문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3. 3)범어 paramārtha-śūnyatā를 번역한 것으로, 승의공(勝義空)ㆍ진실공(眞實空)이라고도 한다. 열반과 제법의 실상은 제일의무상법(第一義無上法)이어서 비상비멸(非常非滅)하고 불수불착(不受不著)하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 본래 없었지만 지금은 있고, 또 지금 있더라도 다시 없어지므로 공(空)한 것이다. 그래서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고 부른다.
  4. 4)범어 aśaikṣa를 번역한 것으로, 유학(有學)의 상대가 되는 말이다. 불교의 진리는 이미 알았으나 미혹을 미처 끊지 못하여 여전히 배워야 하는 사람을 유학이라 부르고, 무학은 이미 불교 진리의 극치에 도달하여 끊어야할 미혹도 없고 또한 배울 것도 없는 자이다. 성문승 4과 중에서 앞의 3과는 유학이고, 제4아라한과는 무학이다.
  5. 5)대통지승(大通智勝)은 범명 Mahābhijñā-jñānābhibhū를 한역한 것으로, 대통중혜여래(大通衆慧如來)ㆍ대통혜여래(大通慧如來)라고도 한다. 과거 3천진점겁 이전에 출현하여 『법화경』을 연설한 부처님이다.
  6. 6)보안(普眼)이란 번뇌와 미혹의 업을 끊은 평등안(平等眼)이라는 말이다.
  7. 7)모니(牟尼)는 범어 muni의 음역으로, 문니(文尼)ㆍ무니(茂泥)로도 쓴다. 적묵(寂黙)ㆍ적(寂)ㆍ현인(賢人)ㆍ인(仁)ㆍ선(仙)의 뜻이다. 존귀하고 수승한 성자나 선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8. 8)패엽(貝葉)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 대신 사용한 패다라 나뭇잎을 말한다. 불경을 이 패다라 잎에 주로 썼으므로 불경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9. 1)섭률의계(攝律儀戒)ㆍ섭선법계(攝善法戒)ㆍ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혹은 율의계ㆍ섭선법계ㆍ요익중생계(饒益衆生界)로 분류한다.
  10. 2)망상이 일어나기 전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6진(塵)을 말한다.
  11. 3)타법처색(墮法處色)ㆍ법처색(法處色)이라고도 하며, 유식종(唯識宗)에서 말하는 11색법(色法)의 열한번 째이다. 의식이 반연하는 법처가 잡고 있는 색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12. 4)범어 bhūmyākramaṇa를 번역한 말로, 천태종에서 보살행에 의지하여 초지(初地)의 계위에 이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승 보살의 수행 계위에는 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迴向)ㆍ10지(地)ㆍ등각(等覺)ㆍ묘각(妙覺) 등 52위가 있는데, 그 가운데 초지(初地)의 계위에 오르는 것을 등지라 하며, 1대아승기겁의 수행을 거쳐야 이를 수 있다고 한다.
  13. 5)나무 가운데 왕이 되는 것으로, 보리수(菩提樹) 또는 파리질다라수(波利質多羅樹)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수왕(天樹王)이라고도 한다. 의역하면 고편수(高遍樹), 주도수(晝度樹)라고 하며, 도리천에 있는 수왕이다.
  14. 6)2취(取)란 견취(見取)와 계취(戒取)이니, 5견(見) 가운데 견취견(見取見)과 계금취견(戒禁取見)을 말하는 것이다.
  15. 7)사람의 마음이 외계를 반연하여 항상 동요하고 고요하지 못한 모양을, 말이 달아나고 원숭이가 까부는 데 비유하여 의마심원(意馬心猿)이라고 표현한다. 『조주록(趙州錄)』 「유표(遺表)」에 “심원은 뛰기를 그치고 의마는 달리기를 멈추어라”라는 말이 있다.
  16. 8)유식종(唯識宗)에서 말하는 부처가 갖는 최상의 지혜인 4지(智) 가운데 하나인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말한다. 4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ㆍ평등성지(平等性智)ㆍ묘관찰지(妙觀察智)ㆍ성소작지(成所作智) 등이다.
  17. 9)파유(破有)는 삼계의 생사를 깨뜨린다는 말이다. 여래는 삼계의 생사를 깨뜨리기 위해 세상에 나오셨으므로 파유의 법왕이라고 부른다.
  18. 10)범어 catasraḥ pratisaṃvidaḥ를 4무애해(無礙解)라고 하며, 줄여서 4무애(無礙)ㆍ4해(解)ㆍ4변(辯)이라고 한다. 네 가지 자유자재하여 막힘이 없는 이해 능력인 지해(智解)와 언어 표현 능력인 변재(辯才)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두 지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4무애지(無礙智)라고도 한다.
  19. 11)제일적멸(第一寂滅)을 말하는 것으로, 실상의 묘리와 열반의 적정(寂靜)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상의 묘리는 본래 제법 가운데 제일의(第一義)이므로 제일이라고 하였고, 일체 언사(言辭)의 상을 여의었기 때문에 적멸이라고 하였다.
  20. 12)범어 catur-vidhā īryā-pathāḥ를 번역한 것으로,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의 네 가지 위의를 가리킨다. 비구와 비구니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칙(儀則)으로, 일상의 기거동작을 근신하며 게으르고 나태하지 않고 엄숙하고 장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21. 13)부처님은 만청정자(滿淸淨者)이고 보살은 분청정자(分淸淨者)이니, 부처님과 보살을 합하여 만분청정자(滿分淸淨者)라고 한다. 원래 뜻은 완전하게 청정한 자를 가리킨다.
  22. 14)여래가 증득한 법은 진실하고 항상 머무는 것이어서 진상(眞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