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朕)이 듣건대, 법문은 둘이 아니라서1) 현인ㆍ성인이 아니면 모두에 통할 길이 없고, 청정은 스스로 그러해서[自然] 지혜가 아니면 장구(長久)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경문의 묘각은 식(識)의 종자가 반연이 깊으니, 『화엄경(華嚴經)』을 독송함으로써 성해(性海)가 분명해지고 보리가 베풀어짐으로써 진정한 수행을 실행하게 된다.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법상(法相)은 두루 원만해서 조화의 근원을 깊이 살펴보면 그 허망함이 단절되고, 탄탄한 길이 평평해지면서 막히고 걸림이 없어지고 인아(人我)의 차별을 없애서 음양의 이치에 순응한다.2) 무릇 불교의 이치는 사유가 지극해서 한계가 없으며, 멀리 동방으로 번역되어 전해진 가르침은 뜻을 세워서 방편을 행하고 조어(調御)하였다. 그러나 서역의 안목은 맑고 적멸하지 않음이 없어서 끊임없이 깊은 이익을 주니, 진제(眞際:실상)의 항사(恒沙)는 일천 세계에 비유되고 피안(彼岸)은 하나의 법에 섞여 있다. 넓고 광활하게 그윽함을 이야기해서 오직 어두운 거리를 타파할 수 있다면 신령한 광명이 찬란히 비추니, 그것을 어찌 범상한 흐름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교화와 인도는 기연에 응하고 선악은 인연에 따른다. 나는 무위(無爲)의 대교(大敎)를 일으켜서 힘써 창생을 구제하는 복업을 닦기를 날마다 쉬지 않고 하였다. 인과(因果)는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이라서 항상 백성들의 마음을 나의 염원으로 삼고 일체를 널리 베풀어 이익을 행하였지만, 성인의 돈독함 같은 아름다움은 아직 얻지 못하였고 천자의 풍모와 같은 두루함도 얻지 못하였다. 오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탁 트여서 맑고, 사민(士民)은 마음을 펴고서 태평하지만, 어찌 감히 여기에서 어물어물할 수 있겠느냐? 상천(上天)은 막대한 은혜를 드리우시고 밟고 있는 땅에는 노래를 읊는 즐거움이 있어서 담박하여 욕심이 없고 허무(虛無)하지만, 그러나 오직 염두에 두는 것은 예양(禮讓)으로 제사를 밝히는 일이니 이는 서로 닦을 만하다. 중년에 이르러 믿음을 보이고 마음에 진실함을 표시하면서 남방에 이르기까지 발원하고 회포를 일으켰더니, 상서로운 구름이 높이 북두성까지 이어졌고, 생각[意]을 따라 회향하니 모두가 법계의 사람이 되었다. 경계를 보며 소요하면서 이 나라를 변화시켜 화서국(華胥國)3)을 이루게 하였노라. 신(身)ㆍ구(口)ㆍ의(意)의 3업(業)이 청정해지면서 번뇌에서 벗어나게 되자 신(神)의 맑음과 영원히 계합하였으며, 10선(善)4)이 창달되면서 무생(無生)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자비는 인욕(忍辱)이 되어 끊임없이 공덕을 이루니, 가없이 찬란히 빛나는 광명의 불꽃이 멀든 가깝든 더욱 밝아져서 중생들을 손바닥 안에서 비추어 보고, 지혜의 등불을 무극의 경계에서 불태워서 향기는 흩어지고 구름은 치솟아 보찰(寶刹)을 번뇌 가운데 간직하게 되었다. 깊은 묘용을 궁극까지 따지니 비로소 선정(禪定)의 힘을 알게 되었고, 진여(眞如)의 맹렬한 날카로움으로 마음을 쫓으니 가고 머묾에 자유자재하였다. 망상으로 헛된 것을 구하면서 그림자를 쫓다가는 부질없이 헷갈린 정[迷情]의 나루터를 만들게 된다. 요컨대 색상(色相)에 담연(湛然)해야 편안하고 한가로우니, 품류[類]의 모임은 아지랑이 담장이풀로 장엄한 것과 같다. 관정(灌頂)하고 귀의하면서 큰 믿음으로 기술하여 서문을 지었노라.
어제연식(御製緣識) 제1권
태종(太宗) 지음 이창섭 번역
허무(虛無)로 대도(大道)를 알게 되니 뜻과 사유를 극진히 해도 유연하다. 늠연한 해는 구름 속의 기러기와 같고 소상강(瀟湘江)의 물은 흡사 하늘과 같네. 외로운 봉우리는 멀든 가깝든 높고 보월(寶月)은 아름답고 두루 둥글다. 신해(信解)로 밝게 깨달음 여니 푸른 하늘이 눈앞에 있네.
지나간 일 사람의 감회를 일으키니 배회(徘徊)하면서 생각이 고요하도다. 담연하게 옛길을 궁구하니 만물이 서로 맞이하는 듯하구나. 춘대(春臺)1)의 소나무와 잣나무 고요하고 가을바람은 바다와 산을 흔들어대니, 시절의 변천이 어찌 한가롭게 지나겠는가? 낙엽이 스스로 떨어져 나부끼네.
누가 현묘한 기틀의 성스러움을 헤아리겠나, 하늘과 땅의 공덕이 장구하도다. 모든 생명은 다 성품이지만 도덕은 둥글고 모난 것이 있도다. 곱고 추한 것은 정의(情意)에 따른 것이니 아, 자세히 짐작하고 헤아려라. 달인(達人)은 담박함을 알아서 묵묵히 비상(非常)함을 본다.
그대 보았는가? 뜬 구름 같은 업(業)을 아침에 기뻐하다가 저녁에 슬퍼하네. 웃으면서 맞이한 사람, 울면서 눈을 감고 어려운 일 닥치면 모여서 걱정하네. 곧고 우회하고 비끼고 굽음을 바로잡을 뿐 원수를 만나도 추궁할 필요 없다. 소인의 마음 짐승과 같으나 군자는 정녕 속임수가 없느니라.
황홀한 경지 사람들은 깨닫기 어려우니 하늘의 신선은 말과 침묵이 현묘하다. 마음 닦는 데 도리가 없으면 종일 스스로 바쁘기만 하느니라. 내 목숨의 참[眞] 속으로 나아가 장생불사가 숙세의 인연임을 인지하니 기연과 방편을 많이 사용했다 해도 성인의 일은 허망하게 전해진 것 아니로다.
대도(大道)는 항상 공손하고 삼가서 밝고 신령함은 위력을 낮추지 아니한다. 말이 적으면 믿음이 있음을 알고 일이 많으면 스스로 잘못을 초래한다. 오래 사는 것은 소나무 잣나무를 보고 관 쓰고 벼슬하는 길은 짧아 백성이 되었노라. 나의 마음 바빠도 즐거워서 청정함에 함께 귀의할 수 있었네.
맑고 고요한 진공(眞空)의 이치 없지 아니하나 해득하긴 어려워라. 종횡으로 성품을 보는 데 의지하고 텅 트였음을 지혜 속에서 비추어 본다. 평탄하고 호탕하게 어진 도덕으로 돌아가서 부지런히 수고하면서 구원(久遠)을 보라. 역순(逆順)이 되지 않게 해야 하니 평지에서 구름 끝에 들어간다.
적멸의 고요함을 사람들은 노래하고 읊지만 어리석은 정으로는 어찌 쉽게 알겠는가? 다만 마음의 자체 즐거움만 구할 뿐이라서 얼굴 마주보며 속이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도다. 굽은 것 바로잡고 사악함을 길하게 되돌려서 뒤바뀌고 미친 마음을 도덕으로 지니게 한다. 방촌(方寸:마음)이 어디로 가려는지 높고 밝게 항상 비추어 볼지니라.
하늘 세계의 뛰어난 이치 어리석은 범부는 쉽게 알지 못하니 지난 세월의 인연을 누가 규명할 수 있는가? 하찮은 지식 때문에 짐짓 의심을 품게 되니 적실(的實)하게 진성(眞性)으로 돌아가서 삿됨을 가려내고 바른 길로 들어가 간직하라. 즐겁도다. 대도(大道)를 가까이 하니 보응(報應)은 자연히 찾아가도다.
뜬구름 인생의 사람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니 개미 같은 목숨이라도 어찌 가볍게 여기겠는가? 복업(福業)은 인연을 따르면서도 적멸하고 자비는 훌륭한 이름에 향응(響應)한다. 집에 있을 때는 효도와 사랑을 행하고 관직에 나아갔을 때는 충성과 곧은 절개 다하라. 천도(天道)는 바뀌고 옮기지 아니하며 불심(佛心)은 유정들을 교화하네.
소요하는 현인ㆍ성인은 즐거우나 나는 답답하게도 속세의 정(情)에 어리석도다. 비열하고 상스러움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양(量)을 짐작하고 말고 펴는 것을 이해한다. 악한 인연 모두 가버렸으니 좋은 일 서로에게 있도다. 바쁘고 급한 일 진실로 꿈과 같으니 하늘과 땅의 조화는 특별하도다.
겸손은 명연(明然)함을 얻으나 많은 문장은 도리(道理)와 소원하다. 영고성쇠(榮枯盛衰)는 모두가 정해진 분수이니 솜씨 있고 서툰 것 또 어찌하겠는가? 풍속을 무마하며 어진 감응을 따라가고 백성에 임할 때는 돈독한 은혜를 펼친다. 높고 밝게 보필하는 덕으로 돌아가니 건립(建立)되는 공(功)은 책에 기록되리라.
형체와 그림자, 사람 따라 얻으니 정성으로 수도하면 미망에 빠지지 않는다. 깊은 진리의 길, 끝까지 연구하면 조화의 실마리 숨어 있다. 용이 신음하는 구멍에 구름이 끌려가고 호랑이 부르짖는 계곡에는 바람이 생긴다. 앎이 부족한 어리석은 사람이 어찌 해득하겠나? 남쪽과 북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무궁한 생각 넓고 커서 그윽이 숨은 이치, 문득 그 깊이를 알았네. 지혜로 천 가지 경론(經論)을 통달해서 바야흐로 한 치의 마음을 열었노라. 총명(聰明)으로 지난 옛날 생각하니 지나간 겁을 따라 지금에 이르렀네. 이 이치를 사람들은 믿어야 하나니, 돌고 도는 이치를 자세히 살펴보라.
복장(伏藏:잠복해 있는 이치)을 끝내 보지 못하여 능숙하든 서툴든 시비(是非)가 생긴다. 지극한 도가 빛난 옛날을 생각하면 두루 통하는 성인의 기틀 숨어 있다. 맑은 하늘은 어떤 물성(物性)이기에 혼탁한 땅과 짐짓 서로 의지하는가? 수련은 진실로 아낄 만하니 소홀하고 게으르면 따름과 어김이 있도다. 사람됨이 자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고요함에 나아가도 또한 모두 바쁘다. 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나 일 년 열두 달은 멀고도 길다. 꽃다운 자태는 끝내 달라지는 날 있으니 천한 품성도 충분히 뒤바뀌고 미친다. 꿈틀거리는 함령(含靈:有情)의 성품도 선함이 생기면 악은 저절로 없어지도다.
이를 알고 법을 수련하면 곧 이것이 성인 가운데 사람이니라. 상(象)은 있어도 구름은 경계가 없으니 사악한 인연으로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항상 공행(功行)의 이익 지니면 향응(響應)이 매우 평등하고 고르니, 혼연(渾然)함은 천지의 이치이고 대도(大道)는 건곤(乾坤)에 두루하다.
많은 일에 정(情)으로 많이 감응하며 광음(光陰)은 예로부터 장구하다. 탐욕이 엉키면 어떻게 버리겠는가? 어리석은 무리들이여, 누구를 위해 바쁜가? 붉은 나뭇잎은 때에 따라 변하고 흰 머리는 가장 상심하기 쉽구나. 세상길에서 능히 중생들에게 착하게 베풀 수 있다면, 그 짙은 향기 멀리 퍼져나가리라.
청허하고 한가하고 청정하게 도를 받들면 진리의 귀의처[眞歸]를 보고 계합(契合)하면 모두 쓸 만해서 인연 있는 일에 의지함이 좋도다. 정성으로 구하고 크게 믿으면 모름지기 옳고 그름을 아울러 겸하니 활달하면서도 그윽이 깊고 멀며 오묘함으로 현묘한 기틀에 들어가도다.
종일 경사(經史)를 궁구하니 사유하는 일이 더욱 깊구나. 공직에 충실한 선비의 뜻 품고서 이 이치는 서로 찾는 것이 좋으리라. 총명한 지혜로 현묘한 진리를 높이 거울삼아 삿되고 잘못된 마음 씀을 되돌려서 조용하면서도 한가한 세월로 옛 길을 배우니 문득 지금을 알겠구나.
진실한 경계 기대고 의지할 만한데 두루 변천하면서 사계절이 옮겨간다. 사람들은 바쁘더라도 성인의 자취는 한가하니 마음이 통달하면 여우같은 의심도 끝이 난다. 걸출한 사람은 모두 등급이 있으니 능한 사람 만나면 바로 스승이라네. 둘이 투합하여 추위와 더위가 변하니 용은 봉황의 못에서 목욕하였네.
한 번 만나면 또 한 번 헤어지니 오고 가며 쉬었던 세월이 얼마인가? 세상에 처하는 것 모두가 명예와 이익이고 생(生)을 탐내서 떠나가도 남겨두지 아니하네. 좋은 인연 꿈같이 보고 악한 일에는 임하지 말라. 병든 것처럼 마음은 항상 두려워하니 생(生)하기 전의 즐거움은 스스로 말미암는다.
천지를 머리 위에 받들고 존중하고 총명으로 식견은 높으며 무위(無爲)는 진리의 성품과 통하니 사납고 날카로움이 어찌 헛된 노력이겠느냐? 출몰하는 것은 끝내 인식하기 어렵고 인연은 피할 수 없으니, 중원(中原)엔 성스러운 경계가 많으며 사해(四海)는 도도하게 용솟음친다.
죄를 피하고 복은 닦음은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인 이치 자산과 재물의 이익이 풍요로워도 공도(公道)에서는 속이지 않는다. 탁한 세상에서는 높은 관직을 탐내지만 밝은 시대에는 선정 베푸는 관리가 돼야 한다. 강한 것을 막고 능히 약함을 무마하면서 윗사람의 세(勢)를 용납하고 정세를 관망하라.
물처럼 맑아서 교류가 소원하고 찾고 생각하면 길은 더욱 달라지네. 뒤틀리고 전복되는 것은 쉬우니 자기를 알면 문득 서로 도움이 된다. 길은 탄탄함이 평평한 손바닥과 같아서 바람이 전하는 말은 써 놓지 않는다. 아득한 하늘, 밝은 달은 고요한데 뜻[志]을 업고 청허한 경지 이야기하네.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서 현명하든 어리석든 잠시도 한가롭지 않아서 정성으로 닦아 지극한 이치에 귀의하라. 도는 커서 현관(玄關)을 숨기고 있고 성스러운 경계 모두 기묘하기 짝이 없으니 범부의 정으로 어찌 쉽게 오를 수 있는가? 많은 신선들은 너그럽고 평탄해서 늙음을 물리치고 모두가 동자의 얼굴이라네.
세상길에는 만상이 포함되어 있어서 옛일을 되돌아보면 문득 현재를 알 수 있도다. 큰 나무는 맑은 그림자 드리우고 꽃과 같은 파란 봉오리 빛나도다. 헛된 노력이라 공연히 자백하나 덕행은 황금보다 뛰어나니, 허물 있어도 고칠 수 있다면 무위(無爲)라도 선행(善行)을 쌓음이 깊도다.
법을 쌍림(雙林) 아래서 베푸시어 범부의 정과 세간의 눈으로 관하니, 담박한 연무는 비 속에도 빛나고 외로운 달은 구름 끝에 맑구나. 뜻과 생각은 모두 잠시의 일이니 종횡으로 큰 가르침이 넉넉하다. 정(情)을 버리면 사념을 쉴 수 있어서 사물 밖에서 상관하지 아니하리라.
표리(表裏)를 분명히 말하였음에 깊이 궁구하니, 묘하고 다시 현오하구나.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은 행해도 이르지 못하니 성스러운 일은 법문 속에 전하졌도다. 욕계(欲界)의 정(情)은 정해짐이 없으나 진공(眞空)은 본래 자연이니라. 금생(今生)은 지난 겁을 따르나니 청정함이 삼천(三天)2)을 비추도다.
노인을 사랑하고 또 가난한 사람 연민할지니 만나고 맞이하면서 착한 사람과 가까이 하라. 도는 높고 밝아서 태양과 같으나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가? 수루(戍樓)3)에 몸담아 모기떼4)들을 관찰하고 깊은 곳의 물고기는 바다의 나루터를 찾는다. 한가하고 바쁨은 모두가 스스로 얻은 것이니 겨울이 간 후에야 봄이 옴을 알게 되도다.
말 많은 사람은 마음이 착하지 않나니 입에서 뱉은 말은 뒤쫓아 거둘 수 없느니라. 꿈과 같은 오락(娛樂)을 기뻐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성쇠(盛衰)를 말하게 된다. 장차 무엇에 쓰려고 견주는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에서 공사(公私)를 구별하네. 가슴 속에 교묘히 시설해도 소인은 역시 슬퍼할 만하도다.
고아한 담박함을 현묘함에서 얻으니 보통 사람은 그래서 알 수 없도다. 그윽하고 심오함에는 멀고 가까운 차별이 없으니 도(道) 밖에서 자세히 추구해 보라. 하늘의 신선의 경계에는 연하(煙霞)의 세월이 따르니 두루 우주 안을 살펴보면 옳고 그름이 어찌 떨어져 있겠느냐?
세간에 무슨 이익이 되든 선한 일 즐기면 짙은 향기 있느니라. 귀천이 비록 차등 있어도 비위(非違)는 정녕 상서롭지 못하다. 춘대(春臺)는 승지(勝地)에 알맞으나 꽃나무는 된 서리에 진다. 입신(立身)의 행(行)을 찾아 취하여 항상 지니면서 다만 영원하여라.
소요하면 자유자재할 수 있으니 대도와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담박하게 정 따라 세월 보내고 고요함에 한가롭게 노니 악함이 없어지도다. 봄에 생겨남은 무릇 법칙을 만들고 가을에 물러남은 두루 슬프고 성기다. 이익을 현묘한 하늘에 비추어 보고 공평함은 역사책을 믿으라.
홍진(紅塵) 속의 붉은 언덕에서 명예와 이익 탐내며 다투기를 좋아하니, 세정(世情)은 모두 어지러워도 대도(大道)는 매우 종횡하도다. 거문고 줄은 곧아서 끝내 굽지 않으니 마음이 간사하면 스스로 평안하지 못하다. 만약 능히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선생(先生)에게 다시 법을 배워라.
하늘 위의 일에 백성은 어둡지만 이치에 통하면 한마디로 말한다네. 신선은 천 년의 수명을 쌓지만 사람은 끝내 백 살이 기한이로다. 예의와 용모로 차례를 나누고 넓은 사랑으로 존비(尊卑)를 구별한다. 복업에는 경중(輕重)이 있으니 어찌 어지러운 행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세상에는 허망한 꾸밈이 많으니 바야흐로 일체의 마음을 알겠도다. 무리 짓지 아니하면 끝내 기이하고 학문에 치우침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숨어 사는 선비는 넉넉하게 광휘를 품고 관리가 되면 다스리는 도리가 깊다. 때가 지나도 홀로 봄이 아니어서 나로 하여금 생각에 골몰하게 하누나.
참다운 도[眞一]는 천지(天地)를 낳고 이에 근거하여 숙세의 인연을 알 수 있도다. 지혜 높으면 이치의 성품에 통하고 범속하고 하열하면 주선(周旋)이 적도다. 말과 침묵이 어찌하여 기묘한가? 그윽하고 심오함에 성현이 숨어 있네. 누가 나의 뜻 알겠느냐? 대도의 한 치 마음의 현묘함이네.
석실(石室)에 새로 제비집 지으니 사람의 마음이 눈앞에 있네. 날아가는 구름은 높이 그림자를 없애고 썩은 나뭇잎은 흐르는 샘을 에워싸니, 취하고 버리는 일, 누구에게 의지하여 정하는가? 오르고 내려감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라. 가난함을 지켜야 대도를 알지만 성대한 일에는 반연(攀緣)함이 좋도다.
탁 트인 뜻이 얼마나 청정한가? 어리석은 사람, 믿지 않아 미혹하고 만다. 돌 바위 위에는 외로운 야학(野鶴)이 깃들고 신선의 길에서 구름사다리를 오른다. 좋은 나무는 깊은 골짜기에서 자라나고 추운 까마귀는 밤이 되자 울지만, 흐뭇한 얼굴로 나그네를 대접할 수 있어서 술을 사가지고 돌아와 닭을 삶는다.
근성(根性)에는 오히려 날카로움과 무딤이 있으니 마음을 잘못 쓰는 데 반연하지 말라. 삿되게 구하는 것은 모두가 상(相)이고 바른 선정(禪定)은 이치가 현묘하고 깊도다. 교묘하고 서투름은 함식(含識)이 높지만 가볍게 뜨는 힘은 머물지 못한다. 대승(大乘)은 말과 침묵을 통하니 옛날을 되돌아보면 문득 지금을 안다.
지혜는 덕의 수많은 작용을 부리니 생각하고 헤아리면 크게 어리석은 일이다. 황혼(黃昏)이 곧바로 새벽에 이르게 되면 밝은 해가 아름답게 더러운 거리를 비춘다. 상서로운 전례(典禮)는 삼계(三界)에 통하고 화서국(華胥國)에서는 사방 구석진 곳까지 즐겁다. 방편을 열고 깨우쳐 다스리니 평탄하여 기구(崎嶇)함이 끊어졌네.
모두 눈앞의 급한 일만 구제하니 송곳과 칼은 날카로운 이름 쌓고 있네. 어리석은 마음은 거룩한 길을 어기지만 지혜로운 눈은 스스로 분명하다. 큰 바다는 파도가 깊고 깊은 산에서 좋은 나무가 성장한다. 널리 구하여 옛 뜻을 간직하고 후학들은 먼저 태어난 사람[先生]을 본받아라.
득도하면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이 되니, 소요는 본시 인연이로다. 미혹한 무리는 이해해서 회통하기 어렵지만 나도 또한 헛되게 전하는 것 아니다. 오직 믿고 항상 단절됨이 없어야 하고 정밀히 궁구(究窮)해서 용의(用意)를 오로지하여 총명한 비유 살펴보고 속세의 정에 끌려가지 말라. 예전부터 뜻이 높은 선비 헤아려 보면 얼마나 많이 있었던가? 덕을 쌓으면 모든 꽃이 빼어나고 따뜻하고 선량하면 7보(寶)가 진귀하다. 인연이란 끝내 지을 수 있는 것 좋은 일에는 복덕도 나란히 찾아온다. 나라 안의 세월은 빠르지만 신선의 하늘에는 밤의 달도 봄이로다.
군자는 그윽한 취향을 품고 겸양과 공손으로 예악의 재능 지녔도다. 경전의 마음을 다 알아채서 보고 책과 역사 모두 파악하여 통달하도다. 덕 있으니 향기 멀리 퍼지고 텅 빔을 주관하니 길도 또한 열리노라. 먼저 태어난 사람을 마땅히 법칙으로 삼아야 하니 숙세(宿世)에 익힌 것이 나날이 오리라.
깊은 바위 골짜기에 자취를 감춘다면 몸은 한가로워도 아직 한가로움 아닐세. 깊게 궁구해야 말과 침묵을 감당하나니 적정(寂靜)은 묘진(杳眞:깊은 참됨) 사이에 있네. 비밀히 삿된 견해를 만나게 되면 대도(大道)의 관문 열기 어렵다. 금단(金丹)도 효용이 없으니 어찌 어린아이 얼굴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부터 마음 밭[心田]이 고요한데 기관(機關)이 옳고 그름을 산다네. 총명하게 절개와 지조를 간직하면 굽음과 곧음이 스스로 서로를 의지한다. 생각이 적멸하면 현묘하고 심오함을 알리니 구분해 보면 순위(順違)가 있느니라. 중생들의 성품에 정통(精通)하고 이치와 뜻[義]에 즐거워하기 바란다.
행함[行]과 그침[止]은 수련을 말미암으니 빛나는 광채는 자연히 밝아진다. 깊은 산에는 호랑이와 표범 숨어 있고 큰 바다에는 용의 샘이 숨어 있다. 학은 아득한 하늘에 치솟아 울고 거북은 태어나면서 오래 사는 나이를 얻는다. 느긋한 정 속에서 도의 식(識)을 머금으니 넓고 아득한 구중(九重)의 하늘5)이로다.
누가 나의 말을 믿겠느냐? 나의 말 또한 심상한 말이 아니다. 고행(苦行)이 분명 즐거운 일이고 인연이 깊으면 아는 즉시 바쁘니라. 뒤틀리게 간직하면 꿈꾸는 것과 같고 도를 사모하면 청량함을 얻는다. 그림자와 메아리 따르면서 호응하면 진리의 문[玄門]을 헤아릴 수 있느니라.
1)1권에는 일정하지 않다는 뜻의 ‘불일(不一)’로 되어 있고, 2권, 3권, 4권, 5권은 둘이 아니라는 뜻의 ‘불이(不二)’로 되어 있어서 후자를 따랐다.
2)이 서문은 똑같은 내용이 권마다 붙어 있다. 그러므로 편집자는 이 서문 하나만 두고 나머지 권에서는 삭제하였다.
3)『열자(列子)ㆍ황제(黃帝)』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황제가 아침 잠에 들었다가 꿈에 화서씨의 나라에서 노닐었다.……그 나라에는 우두머리가 없어서 스스로 그러할[自然] 뿐이고, 백성들도 욕심이 없어서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화서씨의 나라가 화서국이며, 나중에는 이상적인 평화롭고 안락한 세상을 가리켰다.
4)불교에서는 10악(惡)을 범하지 않으면 10선이라고 한다. 10악은 살생, 도적질, 음란한 짓, 허망한 말,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 험한 말을 하는 것, 말만 번드르르한 것, 탐욕, 성냄, 삿된 견해이다.
1)봄날에 뛰어난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올라가는 누대.
2)도교에서는 청미천(淸微天), 우여천(禹餘天), 대적천(大赤天)을 삼천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삼천이라 한다.
3)변방 국경을 지키는 병루(兵樓)를 말한다.
4)오랑캐의 침입을 비유한 것이다.
5)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아홉 층(層)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하늘을 ‘구중천(九重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