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도다, 지극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이여. 그 자손은 만백성2)이로다. 반야의 배로 고해의 바다를 가르고 지혜의 검으로 빽빽한 견해의 숲을 잘라서, 육합(六合)3)을 얽어 묶고 시방(十方)4)에 그물과 통발을 놓으셨으니, 널리 선포하신 가르침은 심오하고 중생에게 응하신 그 뜻은 크셨도다. 시작[權輿]은 천축이었지만, 헤엄치다 튄 물방울은 한나라 조정이라.5) 이로부터에 무연(無緣)6)의 자비를 행하여 영원히 안락한 세계로 거두셨으니, 진실로 그분의 광대한 베푸심은 겨자씨 성을 다 비워도 까마득하게 멀기만 하며,7) 우러러 보는 저 맑고 고요함은 언어와 형상을 초월하고도 더욱 아득하기만 하다. 다섯 가지 시초8)로도 그 처음을 궁구하지 못하고, 어쩌다 한번 얻었다 해도9) 그 바탕에 뿌리내리지는 못하니, 저것으로 이것을 비교해보면10) 어찌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짐이 욕되게도 큰 복록을 이어서 큰 보배11)를 계승하였지만 진창에 빠진 수레를 밀어야 하기에12) 저녁마다 걱정이었고, 바야흐로 베개를 치우고 선잠을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릇 그분께서는 하늘과 땅을 진압하고 악랄한 도적떼를 막았으며, 바람과 비를 조화롭게 다스리고 뭇별과 북극성을 밝게 하였으며, 만물과 더불어 조작을 일삼지 않고 사람을 다스림에 괴롭히는 법이 없으셨으니, 반야를 지니지 않았다면 그분이 어찌 이럴 수 있었겠는가? 짐은 일찍이 선정의 샘에서 몸을 씻고 비밀스러운 도에 마음을 깃들이고는 용궁(龍宮)의 창고13)를 뒤지다가 영취산 봉우리의 뜻14)에 머물러 계합한 적이 있었다. 아, 나라를 보호하는 법이 진실로 이 경15)에 있었기에 나름대로는 파사닉왕[波斯]16)을 모범으로 삼아 조어장부[調御]17)를 천양하고자 하였다. 드높이 펼치신 오인(五忍)18)의 가르침에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깊음을 밝히기에 충분하였고, 온갖 재난을 영원히 없애신 것은 참으로 이것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교화의 근본이었다. 이름도 거짓이고 법도 거짓이며, 마음도 공하고 색도 공하니, 없음으로 나아가면 곧 경계와 지혜가 모두 고요해지고, 있음으로 끌어당기면 이에 나루터와 다리[津梁]19)가 끝이 없었다.
037_0053_a_01L이에 만백성과 함께 실상(實相)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했지만 제유(緹油)20)와 패엽(貝葉)21)의 문자가 사뭇 다르고, 동쪽 중국과 서쪽 천축의 발음에 오류가 많았다. 따라서 옛날과 지금의 번역에 맑고 탁함의 차이가 생기고, 앞과 뒤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가볍고 무거움이 한결같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임금이 타는 수레처럼 결국 사업을 계승하여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야만 하는 것이며, 저 단단한 얼음에 비유하자면 물이 모여 고이는데도 근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22) 옛날에 번역된 것은 언어의 바탕이 조화롭지를 못해 이를 읽으려는 자들은 문장을 세 번은 거듭 봐야 했기에 모든 스님[釋氏]들이 실로 개탄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선대 성황(聖皇)23)께서 옥호(玉毫)24)에 온 정성을 바치고 참된 경계를 조용히 사유하여 원만한 가르침을 드러내고 빠진 문장을 찾아내 보완하셨다. 그래서 대덕 삼장인 사문 불공(不空)에게 원만하지 못한 경전들을 가려 뽑아서 교정하고 상세히 번역하도록 조칙을 내리셨다.
불공삼장께서는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는 이제(二諦)25)를 궁구하고, 가르침을 전하는 데에는 삼밀(三密)26)의 스승이며, 도리를 밝히심에는 종지의 궁극을 깨달으셔서 이자(伊字)를 원으로 완성하신27) 분이다. 그는 바지를 걷고28) 서쪽으로 향하여 남쪽 바다에 찻잔을 띄웠으며,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며29) 오랜 세월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인도의 성명(聲明)30)에 능통하고 중화의 음운과 곡조를 통달하여 단 이슬로 짐을 적시고 향기로운 바람을 나에게 스며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범본을 담은 상자를 멀리서 가지고 왔지만 큰 종은 쳐주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만 가지 소리를 내는 피리31)를 미뤄두고 삼승(三乘)32)을 열어주는 전적으로 이끌어 가르치셨다.
짐은 슬픔에 잠긴 수척한 상주33)로서 서리와 이슬에도 슬픔에 젖었으니,34) 남기신 말씀을 받들어 실행함에 감히 게으르거나 한가할 수 없었다. 이에 석장을 떨치는 영웅들을 이끌고 결국 아홉 길의 산을 만들었다.35) 개부(開府)36) 조은(朝恩)37)은 온 나라를 자기 몸으로 삼아 목숨 바쳐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된 가르침으로 나를 보필해 오묘한 문을 펼치는 자이다. 이에 경성(京城)의 의학대덕 양분(良賁) 등과 한림학사 상곤(常衮) 등을 모이게 하여 대명궁(大明宮) 남도원(南桃園)에서 『호국인왕반야경』을 상세히 번역하는 작업을 마쳤고, 아울러 『밀엄경密嚴經』 등을 다시 필사하고 교정하였다. 경판을 붙잡고 붓 끝을 물고서 심오한 도리를 정밀히 연구하여 옛날의 오류와 생략된 것들을 다듬고 교정해 분명하게 하였고, 지난날 감춰지고 숨겨졌던 것들을 끄집어 찾아내 환하게 밝혔으니, 해와 달이 높이 떠서 어두운 거리를 크게 밝힌 것이요, 윤택한 구름과 비가 동식물에게 두루 흘러넘친 것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삼가 바라옵니다. 위로 밑거름이 되어주신 선가(仙駕)들께서 온 천하에 지혜의 구름을 드날리고, 진로(塵勞)38)를 아득히 벗어나 십지(十地)에서 황금연꽃을 밟게 하소서.
037_0053_a_22L伏願上資仙駕,飛慧雲於四天,迥出塵勞,躡金蓮於十地。
037_0053_b_01L짐은 이치로는 그윽한 관문을 알지 못하고 문장으로는 아름다운 법칙에 부끄럽기에 서문을 지으라는 추대를 받고 헛헛한 마음을 쓰다듬으며 한탄해야 했다. 이렇게나마 첫머리에 서문을 써서 후손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희망하니, 장차 일어날 황손들은 길이길이 대도를 받들어 실천할 수 있으리라.39)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취봉산(鷲峰山)에서 대비구 대중 천팔백 인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阿羅漢)으로서 온갖 누(漏)가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였으며, 9지(智)ㆍ10지(智)로 지을 것을 이미 갖추었고, 3가실관(假實觀)41)과 3공문관(空門觀)42)과 유위공덕(有爲功德)과 무위공덕(無爲功德)을 다 성취하였다.
또 비구니(比丘尼) 대중 팔백 인이 함께 있었으니, 다 아라한이었다. 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실지(實智)가 평등하여 영원히 미혹의 장애를 끊고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큰 행원(行願)을 일으켰으며, 4섭법(攝法)으로 유정(有情)을 이롭게 하고 4무량심(無量心)으로 널리 일체를 감싸주며, 3명(明)을 거울 같이 통달하고 5신통(神通)을 얻었으며, 끝없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아 익혔고 교묘한 기예(技藝)가 모든 세간을 초월하였다. 연기하여 생기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에 깊이 들어갔고 멸진정(滅盡定)에 마음대로 나오고 들어가며 나타내 보이는 것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마군[魔怨]을 꺾어 항복받고 2제(諦)를 함께 비추며, 법안(法眼)으로 널리 보아 중생의 근기를 알았으며, 4무애해(無碍解)로 두려움 없는 법[無畏法]을 연설하였으며, 10력의 미묘한 지혜[十力妙智]로 법의 소리를 우뢰처럼 울렸고 무등등(無等等)에 가까운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었다. 이와 같은 공덕을 다 갖추었다.
037_0053_c_01L또 한량없는 우바새(優婆塞) 대중과 우바이(優婆夷) 대중이 다 성제(聖諦)를 보았다. 또 한량없는 7현행(賢行)을 닦은 이가 있었으니,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8승처(勝處)ㆍ10변처(遍處)ㆍ16심행(心行)으로 체현관(諦現觀)에 나아갔다.
또 열여섯 큰 나라의 왕이 있었으니, 바사닉(波斯匿)왕 등이 각기 여러 천만 권속과 함께 있었다. 또 6욕천(欲天)의 왕이 있었으니 석제환인(釋提桓因) 등이 그 권속인 한량없는 천자와 함께 있었고, 색계(色界) 4정려(靜慮)의 모든 대범왕(大梵王)도 권속인 한량없는 천자와 함께 하였으며, 모든 중생이 사는 세계에 변화하여 나타난 한량없는 유정(有情)인 아수라(阿修羅) 등이 여러 권속과 함께 하였다.
또 시방정토에 변화한 백억 개의 사자좌(獅子座)가 나타났는데 부처님께서 그 위에 앉아 법의 요체를 자세히 말씀하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자리 앞에 각각 한 송이 꽃이 나타났다. 이 백억의 꽃은 온갖 보배로 장엄하게 장식되었고 모든 하나하나의 꽃 위에 다시 한량없는 변화한 부처님과 한량없는 보살이 계셨으며 한량없는 사부대중[四衆]과 팔부신중[八部]도 있었다.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각각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법하시어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불국토에 두루 퍼지니, 이와 같은 등의 거기에 온 모든 대중이 각각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초년(初年) 정월(正月) 팔일(八日)에 대적정묘삼마지(大寂靜妙三摩地)에 들어서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 큰 광명을 놓아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불국토를 널리 비추셨다. 이때 욕계(欲界)의 한량없는 모든 하늘이 온갖 아름다운 꽃을 내리고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도 하늘의 꽃을 내리니, 온갖 색깔이 서로 섞이어 매우 사랑하고 즐거워할 만하였다. 이때 무색계(無色界)에서도 여러 가지 향과 꽃을 내리니, 향기는 수미산(須彌山)처럼 드높았고 꽃은 수레바퀴와 같았는데, 구름처럼 내리어 대중을 두루 덮으니 널리 부처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037_0054_a_01L그때 대중들이 제각기 서로 말하였다. ‘대각(大覺) 세존께서 전에 이미 우리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다(摩訶般若波羅蜜多)』ㆍ『금강반야바라밀다(金剛般若波羅蜜多)』ㆍ『천왕문반야바라밀다(天王問般若波羅蜜多)』ㆍ『대품반야바라밀다(大品般若波羅蜜多)』 등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반야바라밀다를 설하셨는데, 오늘은 여래께서 큰 광명을 놓으시니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걸까?’
이때 실라벌국(悉羅筏國)의 바사닉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부처님께서 희유한 모습을 나타내시니, 반드시 진리의 비[法雨]를 내려 널리 모두를 이롭고 안락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는 곧 보개무구칭(寶蓋無垢稱) 등의 모든 우바새들과 사리불(舍利弗)ㆍ수보리(須菩提) 등의 여러 큰 성문(聲聞)과 미륵(彌勒)ㆍ사자후(獅子吼) 등의 여러 보살마하살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나타내신 것은 어떤 상서로운 모습입니까?”
037_0054_b_01L이 부처님의 광명이 널리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불국토에 인연 있는 곳에 비추니, 그 타방의 부처님 나라 가운데 동방에는 보광(普光)보살마하살, 동남방에는 연화수(蓮華手)보살마하살, 남방에는 이우(離憂)보살마하살, 서남방에는 광명(光明)보살마하살, 서방에는 행혜(行慧)보살마하살, 서북방에는 보승(寶勝)보살마하살, 북방에는 승수(勝受)보살마하살, 동북방에는 이진(離塵)보살마하살, 상방(上方)에는 희수(喜受)보살마하살, 하방(下方)에는 연화승(蓮華勝)보살마하살 등의 각각 한량없는 백천 구지(俱胝)보살마하살이 모두 이곳에 와서 가지가지 향을 지니고 가지가지 꽃을 흩으며 한량없는 음악을 연주하여 여래께 공양하고,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잠잠히 물러나 앉아서 합장 공경하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그때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사자좌에 앉으시고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열여섯 여러 나라 왕들이 모두 ‘세존께서 대자비로써 널리 모두를 이롭고 안락하게 하여 주시니 우리들 여러 왕은 어떻게 나라를 보호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선남자여, 나는 지금 먼저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불과(佛果)를 지키고 십지행(十地行)을 보호하는 법을 설할 것이니, 너희들은 모두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생각하라.”
이때 대중들과 바사닉왕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 같이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리고는 곧 한량없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보배 꽃을 흩으니, 허공에서 보배 일산으로 변하여 모든 대중을 덮어 두루하지 않는 데가 없었다. 이때 바사닉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무릎 꿇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하여야 불과(佛果)를 보호하고 십지행을 지키겠습니까?”
037_0054_c_01L부처님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불과를 보호하려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일체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을 교화하되, 색의 모습[色相]을 보지 말고 색의 여여함[色如]를 보지 말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과 나와 남의 지견(知見)과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과 4섭(攝)ㆍ6도(度)ㆍ2제(諦)ㆍ4제(諦)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 등 일체의 행(行) 나아가 보살과 여래도 이처럼 모양[相]을 보지 말 것이요, 여여함[如]도 보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곧 진실(眞實)이기 때문이니,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과 동등하며 둘도 없고 다름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모습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과 중생의 성품이 둘이 없다면 보살은 어떤 모양으로 중생을 교화합니까?”
037_0054_c_07L波斯匿王白佛言:“世尊!若菩薩、衆生性無二者,菩薩以何相而化衆生耶?”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색ㆍ상ㆍ행ㆍ식과 상ㆍ낙ㆍ아ㆍ정의 법성은 색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색 아닌 것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수ㆍ상ㆍ행ㆍ식과 상ㆍ낙ㆍ아ㆍ정도 청정함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청정하지 아니함에도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고 세제(世諦)를 말미암기 때문이고 3가(假)를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체 유정(有情)의 온ㆍ처ㆍ계의 법은 복(福)이거나 복이 아니거나 움직이지 아니하는 행[不動行] 등을 지어 인과(因果)가 다 있으며[有] 삼승(三乘)의 현성이 닦은 모든 행과 나아가 부처님의 과(果)에 이르기까지 다 있다고 이름하며 62견(見)도 있다고 이름한다. 대왕이여, 만약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여 모든 법을 분별하면 6취(趣)ㆍ4생(生)ㆍ3승(乘)의 행과(行果)에서 곧 이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은 청정하고 평등하여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데 지혜가 어떻게 비춥니까?”
037_0054_c_18L波斯匿王白佛言:“諸法實性,淸淨平等,非有非無,智云何照?”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지혜로 참된 성품을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고 비춘다.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 곧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12처(處)ㆍ18계(界)ㆍ사부(士夫)ㆍ6계(界)ㆍ12인연(因緣)ㆍ2제(諦)ㆍ4제(諦) 등의 일체가 다 공하기 때문이다.
037_0055_a_01L이 모든 법들은 생기자마자 소멸하고 존재하자마자 공하나니, 찰나찰나도 이와 같다. 왜냐하면 한 생각 가운데 구십찰나(九十刹那)가 있고 일찰나(一刹那)가 지나는 동안에 구백 번 생하고 멸하니,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로써 모든 법을 비추어 보면 일체가 다 공하니,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승의공(勝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무시공(無始空)ㆍ필경공(畢竟空)ㆍ산공(散空)ㆍ본성공(本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일체법공(一切法空)ㆍ반야바라밀다공(般若波羅蜜多空)ㆍ인공(因空)ㆍ불과공(佛果空)ㆍ공공(空空)이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위법은 법이 모인[法集] 까닭에 있고[有:존재], 수가 모인[受集] 까닭에 있고, 이름이 모인[名集] 까닭에 있고, 원인이 모인[因集] 까닭에 있고, 결과가 모인[果集] 까닭에 있고, 6취(趣)인 까닭에 있고 십지(十地)인 까닭에 있고 불과(佛果)인 까닭에 있으니, 일체가 다 있다.
선남자여, 만약 보살이 법의 모양[法相]에 머물러서 나라는 모습이 있고[我相] 남이라는 모습[人相]이 있고 중생(有情)의 지견(知見)이 있어 세간에 머물면 곧 보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이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법에서 움직이지 아니함을 얻으면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고 모양도 없고 모양 없음도 없으니, 마땅히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법이 다 여여[如]하기 때문이요, 모든 불(佛)ㆍ법(法)ㆍ승(僧)도 여여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지혜[聖智]가 앞에 나타나는 최초의 한 생각에 팔만 사천 바라밀다를 구족함을 환희지(歡喜地)라 하고 번뇌가 다하여 해탈하도록 실어서 운반하는 것을 승(乘)이라 하며 움직이는 모양이 멸할 때를 금강정(金剛定)이라 하며, 체(體)와 상(相)이 평등한 것을 일체지지(一切智智)라 한다.
037_0055_b_01L대왕이여, 이 반야바라밀다의 문장과 구절은 백 부처님ㆍ천 부처님ㆍ백천 만억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같이 설하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하고 대천세계 일체 유정이 다 아라한과(果)를 얻게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서 한 생각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만 못하니, 하물며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여 주는 자이겠는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는 문자의 성품을 여의고 문자의 모양이 없으며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가 공한 까닭에 보살도 공하다. 왜냐하면 십지(十地) 가운데는 지(地)마다 모두 시생(始生)ㆍ주생(住生)ㆍ종생(終生)이 있으니 이 30생(生)이 다 공하고 일체지지도 다 공하기 때문이다.
대왕이여, 만약 보살이 경계를 보고 지혜를 보고 설함을 보고 수(受:감수)를 보면 곧 성인의 견해가 아니고 범부(凡夫)의 견해이다. 유정의 과보는 삼계가 허망하여 욕계(欲界)의 분별로 짓는 모든 업(業)과 색계(色界)의 4정려정(靜慮定)에서 짓는 업과 무색계 4공정(空定)에서 일으키는 업 등, 3유(有)의 업과(業果) 일체가 공하며 삼계의 근본인 무명(無名)도 공하다.
성현의 지위의 모든 지(地)와 무루(無漏)와 생멸(生滅)과 삼계 가운데 남은 무명의 습기[無明習]와 변화하는 과보도 다 공하고, 등각(等覺)보살이 얻은 금강정(金剛定:금강삼매)과 이사(二死)의 인과(因果)도 공하고 일체지(一切智)도 공하며,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이신 원만한 종지(種智)와 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과 진실로 청정한 법계와 성품과 모양이 평등하게 작용하는 것도 공하다.
037_0055_c_01L바사닉왕이 아뢰었다. “몸의 실상을 보나니, 부처님도 그렇게 봅니다. 전제(前際)도 없고 후제(後際)도 없고 중제(中際)도 없어서 삼제(三際)에 머물지 아니하고 삼제를 여의지 아니하며, 5온(蘊)에 머물지 아니하고 5온을 여의지도 아니하며, 4대(大)에 머물지 아니하고 4대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6처(處)에 머물지 아니하고 6처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3계(界)에 머물지 아니하고 3계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방향에 머물지 아니하고 방향을 여의지도 아니하며, 명(明)과 무명(無明)이 같아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아니하며,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며, 깨끗하지도 아니하고 더럽지도 아니하며, 유위(有爲)도 아니요 무위(無爲)도 아니며, 자기의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으며, 보일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으며, 베풀 것도 없고 아낄 것도 없으며, 계를 지킬 것도 아니요 범할 것도 아니며, 참을 것도 아니요 성낼 것도 아니며, 정진할 것도 아니요 게으를 것도 아니요, 적정할 것도 아니요 산란할 것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어리석음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들어오는 것도 아니요 나가는 것도 아니요, 복밭[福田]도 아니요 복밭이 아님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요 모양 없는 것도 아니며, 가지는 것도 아니요 버리는 것도 아니며, 큰 것도 아니요 작은 것도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요 듣는 것도 아니며, 깨닫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이 사라지고 말의 길이 끊어져서 진제(眞際) 와 같고 법성(法性)과 동등하니, 저는 이러한 모양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다.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힘과 두려움 없음 등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공덕과 모든 불공법(不共法)들은 모두 다 이와 같으니,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자는 응당히 이와 같이 볼 것이며, 만약 다르게 보는 자는 삿되게 본다고 한다.”
037_0056_a_01L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5인(忍)의 법에 의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복인(伏忍)ㆍ신인(信忍)ㆍ순인(順忍)ㆍ무생인(無生忍)인데, 모두 상ㆍ중ㆍ하가 있고 적멸인(寂滅忍)에도 상ㆍ하가 있다. 이것을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고 한다.
선남자여, 처음 복인(伏忍)의 위치에서 습종성(習種性)을 일으켜 십주행(十住行)을 닦는다. 처음 발심한 모습은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중생이 있어서 불ㆍ법ㆍ승을 보고 10신(信)을 일으키니, 이른바 믿는 마음[信心]ㆍ생각하는 마음[念心]ㆍ정진하는 마음[精進心]ㆍ지혜의 마음[慧心]ㆍ선정의 마음[定心]ㆍ물러나지 않는 마음[不退心]ㆍ계를 지키는 마음[戒心]ㆍ서원을 세우는 마음[願心]ㆍ법을 보호하는 마음[護法心]ㆍ회향하는 마음[廻向心]이다. 이 열 가지 마음을 갖추면 능히 적은 부분으로도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이승(二乘)의 일체 선(禪)의 경지를 뛰어넘나니, 이것이 보살의 처음 마음을 길러서 성태(聖胎)가 되는 것이다.
또 성종성(性種性)보살은 열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여 열 가지 대치(對治)하는 법을 일으키니, 이른바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은 부정(不淨)하고 괴로움이며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라고 관찰하여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세 가지 선하지 못한 뿌리를 다스리고, 보시ㆍ자비ㆍ지혜의 세 가지 선한 뿌리를 일으키고 삼세의 과거 원인의 인[因忍]ㆍ현재 원인과 결과의 인[因果忍]ㆍ미래 결과의 인[果忍]을 관찰하니, 이 위치의 보살은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며 나라는 견해와 남이라는 견해와 중생이라는 등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외도의 전도된 생각으로는 능히 허물지 못한다.
037_0056_b_01L또 도종성(道種性)의 보살은 10회향(回向)을 닦아 10인심(忍心)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5온을 관찰하여 계인(戒忍)ㆍ정인(定忍)ㆍ혜인(慧忍)ㆍ해탈인(解脫忍)ㆍ해탈지견인(解脫知見忍)을 얻고 삼계의 인과를 관찰하여 공인(空忍)ㆍ무상인(無想忍)ㆍ무원인(無願忍)을 얻고, 2제(諦)의 거짓과 진실[假實]과 모든 법의 무상(無常)함을 관찰하여 무상인(無常忍)을 얻고 일체법이 공함을 관찰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니, 이 위치의 보살은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널리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이롭게 할 것이다.
또 신인(信忍)의 보살은 환희지(歡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발광지(發光地)에 이른 보살이니, 색번뇌(色煩惱)의 결박인 세 가지 장애를 끊고, 보시ㆍ애어(愛語)ㆍ이행(利行)ㆍ동사(同事)의 4섭법(攝法)을 행하고, 자무량심(慈無量心)ㆍ비(悲)무량심ㆍ희(喜)무량심ㆍ사(捨)무량심의 4무량심(無量心)을 닦고, 네 가지 넓은 서원을 갖추어 모든 번뇌를 끊고, 부처님의 지견을 닦아 항상 중생을 교화하며, 무상각(無上覺)을 이루어 공해탈문ㆍ무상(無相)해탈문ㆍ무원(無願)해탈문의 3해탈문(解脫門)에 머문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초발심에서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의 근본이니, 일체중생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한다.
037_0056_c_01L또 적멸인(寂滅忍)이라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은 같이 이 인(忍)에 의지하니,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하인(下忍)의 지위에 머물면 보살이라 이름하고 상인(上忍)에 이르면 일체지라 하며, 승의제(勝義諦)를 관찰하여 무명의 모양[無明相]을 끊으면 이것을 등각(等覺)이라 한다. 일상(一相)과 무상(無相)이 평등하여 둘이 아니며 제 십일의 일체지지(一切智地)가 되나니,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맑고 청정하여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않고,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이 평등하며, 인연 없는 대비[無緣大悲]로 항상 중생을 교화하며 일체지의 수레[乘]를 타고 와서 삼계를 교화한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 각 부류[類]의 모든 번뇌는 이십이 근(根)의 업(業)의 이숙과(異熟果)로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의 응신(應身)ㆍ화신(化身)ㆍ법신(法身)이 인도하여 보이는 것도 또한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삼계 밖에 달리 다시 하나의 중생세계가 있다고 말한다면, 곧 이것은 외도의 『대유경(大有經)』의 설이다.
대왕이여, 내가 항상 모든 중생에게 말하였다. 다만 삼계의 무명(無明)을 끊어 다한 자를 곧 부처라 이름하고, 자성이 청정한 것을 본각성(本覺性)이라 이름하니, 곧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지(一切智智)이며, 이것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의 근본이 되며, 또한 이것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행의 근본이 되니, 이것이 보살이 본래 수행하는 5인법(忍法) 가운데 14인(忍)이다.”
037_0057_a_01L만약 보살마하살이 백 부처님 나라에 머물며 섬부주(贍部洲)의 전륜성왕이 되어 백법의 명문[百法明門]을 닦아 단(檀:布施)바라밀로써 평등심에 머물며 사천하(四天下)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천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도리천왕(忉利天王)이 되어 천법의 명문[千法明門]을 닦아 10선도(善道)를 설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만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야마천왕(夜摩天王)이 되어 만법의 명문[萬法明門]을 닦아 4선정(禪定)에 의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도솔천왕[覩史多天王]이 되어 억법의 명문[億法明門]을 닦아 보리분법(菩提分法)을 행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백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화락천왕(化樂天王)이 되어 백억법의 명문을 닦아 이제사제(二諦四諦)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천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이 되어 천억법의 명문을 닦아 12인연의 지혜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만억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초선천의 범왕[初禪梵王]이 되어 만억법의 명문을 닦아 선량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백만 미진수의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제이선천의 범왕이 되어 백만 미진수 법의 명문을 닦아 원지(願智)의 신통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제삼선천의 범왕이 되어서 백만억 아승기 미진수법의 명문을 닦아 4무애지(無碍智)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거나, 혹은 보살마하살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에 머물며 제사선천의 대범천왕[四禪天大梵天王]이 되어 삼계의 왕이 되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법의 명문[不可說不可說法明門]을 닦아 이진삼매(理盡三昧)를 얻어 부처님이 행한 곳[行處]과 같이 삼계의 근원을 다하여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함이 부처님 경계와 같이 한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왕의 몸으로 나타나 교화하고 인도하는 일이다. 시방 여래도 이와 같아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하여 항상 법계를 두루하여 중생을 이롭고 안락하게 한다.”
염혜(焰慧)ㆍ난승(難勝)ㆍ현전(現前)지의 보살은 세 가지 장애인 미혹한 마음의 번뇌 능히 끊고 공의 지혜 고요히 인연 없음 관하여 도리어 마음 공한 무량경계 비추네.
037_0057_c_10L焰慧難勝現前地, 能斷三障迷心惑,
空慧寂然無緣觀, 還照心空無量境。
원행지 보살은 초선천의 왕이 되어 무상(無相) 무생인(無生忍)에 머물면서 교묘한 방편으로 다 평등하게 항상 만억 국토 중생 교화하시네.
037_0057_c_12L遠行菩薩初禪王, 住於無相無生忍,
方便善巧悉平等, 常萬億土化群生。
부동(不動)의 법류지(法流地)에 들면 영원히 생사의 분단(分段) 없이 모든 존재 뛰어넘어 항상 승의제(勝義諦)로 둘 없음을 비추니 스물한 생(生)의 공적한 행이네.
037_0057_c_14L進入不動法流地, 永無分段超諸有,
常觀勝義照無二, 二十一生空寂行,
도법에 순종하여 애(愛)와 무명(無明)의 습기[習]를 원행지 보살은 홀로 능히 끊고 부동지 보살 이선천(二禪天) 왕은 변역신(變易身)을 얻어 항상 자재로워
037_0057_c_16L順道法愛無明習, 遠行大士獨能斷。
不動菩薩二禪王, 得變易身常自在,
능히 백만억 미진 세계에서 그들의 모양 따라 중생 교화하시며 삼세의 무량겁 다 알아서 제일의(第一義)에서 움직이지 않도다.
037_0057_c_18L能於百萬微塵剎, 隨其形類化衆生,
悉知三世無量劫, 於第一義而不動。
선혜지 보살 삼선천의 왕은 능히 천 항하사(恒河沙)에 일시에 몸 나투며 항상 무위(無爲)의 공적한 행으로 항하사 부처님 법장(法藏) 한 생각에 깨쳤네.
037_0057_c_20L善慧菩薩三禪王, 能於千恒一時現,
常在無爲空寂行, 恒沙佛藏一念了。
037_0058_a_01L 법운지 보살인 사선천의 왕은 억 항하사 세계의 많은 중생 교화하고 비로소 금강정(金剛定)에 들어 일체를 요달하고 스물아홉 생(生)을 영원히 건넜네.
적멸인(寂滅忍) 가운데 하인(下忍)을 관하여 한 번 바뀌어 묘각(妙覺)의 무등등(無等等)되시네.
그때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사닉왕은 이미 과거 십천겁(十千劫) 전에 용광왕(龍光王)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사지(四地) 보살이었고 나는 팔지(八地) 보살이었는데, 지금 나의 앞에서 큰 사자후(獅子吼)를 하니,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의 설함과 같다. 진실한 뜻을 얻은 것은 불가사의하니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 일을 아신다.
037_0058_b_01L선남자여, 이 14인(忍)은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요 모든 보살의 행이며, 생각하여 의논할 수 없고 헤아려 말할 수도 없다. 일체 모든 부처님은 다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서 생겨나서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서 교화하고 반야바라밀다 가운데서 멸한다. 그러나 진실로 모든 부처님은 생(生)하였으나 생한 바도 없고, 교화하였으되 교화한 바도 없고, 멸(滅)하였으나 멸한 바도 없으며, 제일이요 둘도 없으며, 모양도 아니요[非相] 모양 없음도 아니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옴도 없고 감도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의 성품은 생하고 멸함이 없고 모든 법은 모임으로 말미암아 환화(幻化)처럼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모양이 있으며 모임[合]도 없고 흩어짐[散]도 없으니, 법은 법성(法性)과 같아 고요하고 공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은 자성이 청정하여 지은 모든 행이 얽매임[縛]도 없고 풀림[解]도 없으며,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고 인과가 아님도 아니며, 행으로 받는 모든 고통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때문이다. 나라는 모양ㆍ남이라는 모양ㆍ알고 보고 받아들이는 것 모두가 공한 까닭으로 법의 경계도 공하다. 공함[空]과 모양 없음[無相]과 짓지 않음[無作:無願]은 거꾸로 된 생각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환화(幻化)에도 순종하지 아니하여 6취(趣)라는 모양도 없고 4생(生)이라는 모습도 없고 삼보(三寶)라는 모습도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037_0058_c_01L법의 모양이 이와 같아 얻을 것이 있는 마음이나 얻을 것이 없는 마음을 다 얻지 못하니, 이런 까닭으로 반야는 5온과 상즉(相卽)한 것도 아니요 5온과 상리(相離)한 것도 아니며, 중생과 상즉한 것도 아니요 중생과 상리한 것도 아니며, 경계와 상즉한 것도 아니요 경계와 상리한 것도 아니며, 수행과 지혜[行解]와 상리한 것도 아니요 수행과 지혜와 상리한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은 등의 모양을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모든 보살마하살이 닦는 모든 행은 아직 구경에 이르지 못하였으되 그 가운데서 행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은 환화(幻化)와 같다고 알아서 모양에 머무는 것이 없이[無住相] 그 가운데서 교화한다. 그러므로 14인(忍)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설한 이 공덕의 창고[藏]는 일체 중생에게 큰 이익이 있다. 가령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십지 보살이 설한 이 공덕의 백천억 분이니, 바다의 물 한방울과 같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여실히 능히 아시며 일체 현성이 다 칭찬하신다. 이런 까닭에 내가 지금 간략히 공덕의 일부분만 설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 14인은 시방세계의 과거ㆍ현재 일체 보살이 수행하는 바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바이니, 미래 모든 부처님과 보살마하살 또한 이와 같다. 만약 보살이 이 문을 따르지 아니하고 일체지를 얻는다는 이런 이치는 없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주인(住忍)ㆍ행인(行忍)ㆍ회향인(回向忍)ㆍ환희인(歡喜忍)ㆍ이구인(離垢忍)ㆍ발광인(發光忍)ㆍ염혜인(焰慧忍)ㆍ난승인(難勝忍)ㆍ현전인(現前忍)ㆍ원행인(遠行忍)ㆍ부동인(不動忍)ㆍ선혜인(善慧忍)ㆍ법운인(法雲忍)ㆍ정각인(正覺忍)을 듣고 능히 한 생각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는 자는, 이 사람은 백 겁 천 겁, 한량없고 끝이 없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겁의 일체 고난을 뛰어넘어 악도[惡趣]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오래지 않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037_0059_a_01L이때 십억의 이름이 같은 허공장(虛空藏)보살마하살과 한량없고 수없이 모인 모든 대중이 뛸듯이 기뻐하였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널리 시방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각각의 도량에서 14인(忍)을 설하심을 뵙고는 ‘우리 세존께서 설하신 바와 다름이 없다’라고 하고는 각각 환희하며 설하심과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먼저 ‘다시 어떤 모습으로 머물러서 관찰하옵니까?’라고 물었는데,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자신의 환화(幻化)로 된 몸으로써 남을 환화라고 보아서 바로 평등함에 머물러 남과 내가 없다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여야 중생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오랜 세월에 처음 찰나의 식(識)이 나무나 돌과는 달라서 나면서 더럽고 깨끗함을 얻어서 각각 스스로 능히 한량없고 수없는 더럽고 깨끗함을 식의 근본으로 삼았다. 최초에 말할 수 없는 찰나에서 나아가 금강(金剛)이 되는 마지막 찰나에 이르기까지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식이 있어서 모든 유정(有情)의 색(色)ㆍ심(心) 두 법이 생겼는데, 색은 색온(色蘊)이라 하고 심은 4온(蘊)이라 이름하니, 다 성품을 적취(積聚)하고 있고 진실을 가려 덮고 있다.
대왕이여, 이 하나의 색법(色法)은 한량없는 색을 생하니, 눈이 얻으면 색(色)이 되고 귀가 얻으면 소리가 되고 코가 얻으면 냄새가 되고 혀가 얻으면 맛이 되고 몸이 얻으면 촉감이 된다. 견고함을 지닌 것을 땅이라 하고 윤택한 것을 물이라 하고 따뜻한 성품을 불이라 하고 가볍게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 한다. 5식(識)이 생기는 곳을 5색근(色根)이라 하니, 이와 같이 전전하여 한 색[一色]과 한 마음[一心]이 생겨 말할 수 없고 한량없는 색심(色心)이 생기지만, 다 환(幻)과 같다.
선남자여, 유정이 받는 것은 세속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은 다만 유정의 망상과 생각으로 생기는 것이니,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세속의 진리[世諦]이다. 삼계 6취(趣)의 일체 유정인 바라문(婆羅門)ㆍ찰제리(刹帝利)ㆍ비사(毘舍)ㆍ수다라(首陀羅), 나와 남, 지견(知見), 색법(色法)ㆍ심법(心法)이 꿈 속에서 보는 것과 같다.
037_0059_b_01L선남자여, 일체 모든 이름은 다 거짓으로 시설해 놓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직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세상의 진리[世諦]는 환(幻)과 같은 법이라 이름도 없고 뜻도 없고 또한 몸[體]도 모양도 없으며 삼계의 이름, 선악의 과보, 6취의 이름자도 없었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어 유정을 위하는 까닭에 3계ㆍ6취ㆍ염정(染淨) 등의 한량없는 이름자를 설하셨다.
이와 같이 일체는 소리의 메아리와 같아 모든 법이 상속하여 생각생각이 멈추지 아니하고 찰나찰나가 같지도 아니하고 다르지도 아니하며, 급속히 일어나고 급속히 멸하며 끊어지지도 아니하고 항상 있지도 아니하니,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아지랑이와 같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서로 상대하여 있는 것이니, 이른바 색계(色界)ㆍ안계(眼界)ㆍ안식계(眼識界)와 나아가 법계(法界)ㆍ의계(意界)ㆍ의식계(意識界)에 이르기까지 마치 번갯불과 같아 일정하게 서로 상대하여 일어나지 아니하니, 있는 것과 없는 것, 같고 다른 것이 두 개의 달과 같아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온ㆍ처ㆍ계의 법은 물 위의 거품과 같으니,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지고 일체 유정은 구시인과(俱時因果)와 이시인과(異時因果)로 이루어지며 삼세의 선악은 공중의 구름 같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분별함이 없고 피차의 모양도 없고 나와 남의 모양도 없는데 머물러서 항상 교화하여 이롭게 행하되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모양이 없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라. 범부는 식(識)이 때묻어서 허망함에 물들고 집착하게 되어 모양[相]에 얽매어 있지만 보살은 비추어 봄에 환(幻)과 같음을 안다. 몸[體]과 모양[相]이 없고 다만 허공에 꽃과 같으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데 머물러서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037_0059_c_01L 그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승의제(勝義諦) 가운데 세속제(世俗諦)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고 말씀하시면 지혜가 마땅히 둘이 아니요 만약 있다고 말씀하시면 지혜가 마땅히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와 둘의 뜻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대는 과거 용광왕(龍光王)부처님 법 가운데서 이미 이 뜻을 물었다. 내가 지금 설하지 아니하면 그대는 지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설하지 아니하면 들을 수 없으리니, 이것이 곧 하나의 뜻, 둘의 뜻이다.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양 없는 승의제(勝義諦)는 몸[體]은 나와 남이 지은 것 아니요 인연은 환(幻)이 있는 것 같아 또한 나와 남이 지은 것 아니니라.
037_0059_c_06L無相勝義諦, 體非自他作, 因緣如幻有,
亦非自他作。
법의 성품은 본래 성품이 없고 승의제의 공함도 같아 모든 존재[有]는 환(幻)으로 있는 법 세 가지 거짓[三假]이 모여 거짓으로 있네.
037_0059_c_08L法性本無性, 勝義諦空如,
諸有幻有法, 三假集假有。
없도다 없도다 진리[諦]는 실로 없네. 적멸한 열반의 공[勝義空] 모든 법 인연으로 있는 것 있고 없는 뜻도 이와 같다네.
037_0059_c_09L無無諦實無,
寂滅勝義空, 諸法因緣有, 有無義如是,
있고 없는 것 본래 스스로 둘이라 비유하면 소의 두 뿔 같아 지혜[解]로 비추어 보면 둘이 없나니, 이제(二諦) 항상 가깝지 않네.
037_0059_c_10L有無本自二, 譬如牛二角, 照解見無二,
二諦常不卽。
마음 알면 둘 없는 것 볼 수 있나니 둘을 구해도 얻지 못한다. 이제가 하나라 말하지 말라. 하나도 또한 얻지 못하리.
037_0059_c_12L解心見無二, 求二不可得,
非謂二諦一, 一亦不可得,
깨달으면 항상 스스로 하나이지만 제(諦)에는 언제나 스스로 둘이니 이 하나와 둘을 깨달아 알면 진실로 승의제에 들어가리라.
037_0059_c_13L於解常自一,
於諦常自二, 了達此一二, 眞入勝義諦。
세상 진리[世諦] 환화(幻化)가 일어난 것을 비유하면 허공의 꽃과 같고 그림자 같고 털수레[毛輪]같아 인연으로 말미암아 환(幻)이 있는 것.
037_0059_c_14L世諦幻化起, 譬如虛空花, 如影如毛輪,
因緣故幻有。
환화(幻化)로 된 것이 환화를 보니, 어리석은 이는 진리[幻諦]라 하고 환사(幻師)가 환법(幻法)보면 진리[諦]나 환이 모두 없다네.
037_0059_c_16L幻化見幻化, 愚夫名幻諦,
幻師見幻法, 諦幻悉皆無。
만약 이 같은 법 요달하면 곧 하나와 둘의 뜻에서 해탈하느니라. 일체법에 두루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할 것이니라.
037_0059_c_17L若了如是法,
卽解一二義, 遍於一切法, 應作如是觀。
037_0060_a_01L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승의제에 머물러서 모든 유정을 교화하나니, 부처님과 유정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왜냐하면 중생과 보리 이 둘은 다 공하기 때문이다. 중생이 공함으로 보리가 공함을 얻고 보리가 공함으로 중생이 공함을 얻으니 일체법이 공하며 공도 공하다. 왜냐하면 반야는 모양이 없고 2제(諦)도 다 공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무명에서부터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모양도 없고 남이라는 모양도 없으며 제일의(第一義) 견해에서는 보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수행하면 가지어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요 만약 수행하지 아니하여도 또한 가지고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며, 수행하지 않거나 수행하지 아니하지 않아도 또한 가지고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니 일체법에 다 가지고 집착하지 아니할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일체 보살은 어떻게 문자를 여의지 아니하고 실상(實相)을 행합니까?”
037_0060_a_08L波斯匿王白佛言:“十方諸佛、一切菩薩,云何不離文字而行實相?”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문자란 계경(契經)ㆍ응송(應頌)ㆍ기별(記別)ㆍ풍송(諷誦)ㆍ자설(自說)ㆍ연기(緣起)ㆍ비유(譬喩)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희유(希有)ㆍ논의(論議) 등이니, 펴서 설하는 음성과 언어ㆍ문자ㆍ글귀가 있는 것이다. 일체가 다 같이 실상이 아님이 없으나 만약 문자의 모양만을 취하는 자는 곧 실상이 아니다.
대왕이여, 실상을 닦는다는 것은 문자를 닦는 것과 같다. 실상은 곧 이 모든 부처님 지혜의 어머니요 일체 유정의 근본이 되는 지혜의 어머니이니, 이것이 곧 일체지의 체(體)다. 모든 부처님께서 아직 성불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마땅히 부처님의 지혜의 어머니가 되고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성불하면 곧 일체지가 되니, 얻지 못하였을 때는 성품이 되고 얻고 나면 지혜가 된다. 삼승(三乘)의 반야는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자성은 항상 머물러서 일체 유정은 이것을 깨달음의 성품으로 삼는다. 만약 보살이 문자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면 문자의 모양[文字相]이 없기도 하며 문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능히 이와 같이 닦되 닦는다는 모양[修相]을 보지 않으면, 이것이 곧 문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그래서 능히 반야의 참된 성품을 얻나니,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이다.
037_0060_b_01L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불과(佛果)를 보호하고 십지행(十地行)을 보호하니, 유정을 보호하며 교화함이 이와 같다.”
037_0060_a_23L大王!菩薩摩訶薩護佛果、護十地行、護化有情,爲若此也。”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된 성품은 이 하나이나 유정의 품성의 종류와 근기의 행함[根行]은 한량없으니 법문은 한 가지입니까, 한량이 없습니까?”
037_0060_b_02L波斯匿王白佛言:“眞性是一,有情品類根行無量,法門爲一、爲無量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법문은 한 가지가 아니요 또한 한량없는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유정은 물질[色法]과 마음[心法]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5취온(取蘊)의 모양, 나와 남, 지견(知見) 등, 가지가지 근기의 행과 품성의 종류는 끝이 없고 법문은 근기를 따르므로 또한 한량이 없다. 이 모든 법의 성품은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보살이 모든 중생을 따라서 하나로 보거나 둘로 보면 이것은 곧 하나나 둘의 뜻을 보지 못함이니, 하나와 둘이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님을 깨달아 알면, 곧 승의제(勝義諦)요, 하나와 둘에 집착하여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면 곧 세속제(世俗諦)이다. 이런 까닭에 법문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다.
037_0060_c_01L대왕이여, 이 반야바라밀다의 공덕은 한량없나니, 만약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말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이 계셔서, 이 한분 한분의 부처님께서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면, 이 한사람 한사람의 중생이 다 성불하니, 이 모든 부처님들이 다시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중생을 교화하여도 또한 다 성불할 것이다. 이 모든 부처님들이 설하신 반야바라밀다는 한량없고 말할 수 없는 나유타(那庾多) 억의 게송이 있는데 말로써 다할 수 없으며 모든 게송 가운데에서 한 게송을 취하여 천 개로 나누고 다시 천 개로 나누어서 그 중 한 구절의 뜻의 공덕을 설하는 것도 오히려 끝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이와 같은 한량없는 구절이 가진 공덕이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 가운데에서 한 생각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곧 백 겁ㆍ천 겁ㆍ백천만 겁의 생사의 고난을 뛰어넘는데, 하물며 베껴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얻는 공덕이겠는가? 이는 곧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같아 다름이 없으니,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여 주시니 오래지 않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을 알라.”
1)대당신번호국인왕반야경서(大唐新翻護國仁王般若經序) : 당나라에서 새롭게 번역된 『호국인왕반야경』의 서문이란 뜻이다. 이 서문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인왕반야바라밀경(仁王般若波羅蜜經)』을 당나라 영태(永泰) 원년(765)에 불공(不空)이 새롭게 번역하여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이라 칭하자 대종(代宗) 이를 치하해 지은 것이다.
2)원원(元元) : 원래 근본 또는 근원이란 뜻이지만,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란 의미에서 일반 백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3)육합(六合) : 천지와 사방, 곧 온 세계를 뜻한다.
4)시방(十方) : 팔방과 상하, 역시 온 세계를 뜻한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5)서역에서 불교가 번창하여 그 여파가 중국까지 미쳤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67)에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낙양으로 오면서 불교가 전해졌다.
6)무연(無緣) : 대상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한없이 베푼다는 뜻이다.
7)부처님께서 널리 보시를 행한 세월은 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겨자씨 성[芥城]은 아득한 세월, 즉 겁(劫)을 뜻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사방 100유순(由旬)인 성에 겨자를 가득 채우고 이 겨자를 장수천인(長壽天人)이 100년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겨자가 다 없어져도 1겁은 오히려 끝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8)오시(五始) : 『속일체경음의(續一切經音義)』에서 “기의 형상이 나뉘기 이전을 태역(太易)이라 하고, 원기(元氣)가 처음 싹튼 것을 태초(太初)라 하고, 기의 형상이 시작된 것을 태시(太始)라 하고, 형상의 변화에 바탕이 있는 것을 태소(太素)라 하고, 바탕과 형상이 이미 갖춰진 것을 태극(太極)이라 하니, 이것이 오시五始이다”라고 하였다.
9)일득(一得) : 천려일득(千慮一得)의 준말로, 어리석은 사람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어쩌다 도리에 맞는 생각을 했다는 뜻의 겸사이다.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어리석은 자도 천 가지 생각 중에 반드시 하나의 옳음이 있다.[愚者千慮 必有一得]”고 하였다.
10)‘저것’은 부처님의 한없는 자비행과 고요한 마음을 말하고, ‘이것’은 자신을 비롯한 중생들의 우매하고 나약한 행리를 말한다.
11)대보(大寶) : 임금 자리를 뜻한다.
12)국가를 재난에서 건지려고 고심했다는 뜻이다. 대종(代宗)이 즉위하고 그 이듬해(763년)에 7년 동안 당나라를 어지럽힌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난이 진압되었다. 하지만 반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 또한 이 와중에 티베트 토번(吐番)의 왕 치쏭데짼(赤松德贊)이 장수 다짜뤼공(達扎樂宮)와 20만 대군을 파견하여 장안을 11일간 점령하기도 하였다.
13)용궁지장(龍宮之藏) : 불교 경전, 특히 대승경전을 일컫는 말이다. 용수 보살이 용궁의 창고에서 『화엄경(華嚴經)』을 얻어 유포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14)부처님 가르침의 뜻, 곧 불법의 종지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신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15)『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말한다.
16)파사닉왕[波斯] : 파사(波斯)는 파사닉(波斯匿, ⓈPrasenajit)의 준말이다. 부처님 재세 시 코살라국의 왕이었다. 『인왕반야경』은 파사닉왕을 비롯한 인도의 16국왕이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7)조어(調御) : 조어장부(調御丈夫) 또는 조어사(調御師)의 준말로, 여래 10호 중 하나이다. 다양한 방편으로 중생을 조복시켜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18)오인(五忍) :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 나오는 보살의 수행법이자 계위로, 복인(伏忍)・신인(信忍)・순인(順忍)・무생인(無生忍)・적멸인(寂滅忍)을 말한다. 복인(伏忍)은 번뇌를 끊지는 못했으나 이를 굴복시키는 것이고, 신인(信忍)은 관하는 마음이 진전되어 진리를 확신하는 것이고, 순인(順忍)은 보다 수승한 지혜를 연마하여 진리에 순응하는 것이고, 무생인(無生忍)은 제법무생(諸法無生)을 깨닫는 것이고, 적멸인(寂滅忍)은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고 적정(寂靜)에 안주하는 것이다.
19)진량(津梁) : 고해(苦海)를 건너는 요긴한 방법, 즉 방편을 비유하는 말이다.
20)제유(緹油) : 기름을 먹인 비단으로, 고대 중국에서 종이 대신 사용했다.
21)패엽(貝葉) : 패다라엽(貝多羅葉)의 준말이다. 패다라(貝多羅)는 ⓈPattra의 음역으로 고대 인도에서 종이 대신 사용했던 나뭇잎이다.
22)기존 번역에서 작은 오류들을 고치지 않고 내버려둠으로 인해 결국 큰 병폐가 되었다는 것이다. 단단한 얼음[堅冰]은 재앙을 의미한다. 『주역(周易)』 곤괘(坤卦) 초육(初六)에서 “서리를 밟고 나면 두꺼운 얼음이 어는 계절이 온다[履霜堅氷至]”고 하였다. 이는 조짐을 보고 재앙을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23)대종의 아버지인 숙종(肅宗)을 말한다.
24)옥호(玉毫) : 부처님 32상의 하나로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난 백옥처럼 새하얀 털이다. 여기에서는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25)이제(二諦) :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26)삼밀(三密) : 밀교에서 법성으로서의 부처님이 신(身)・구(口)・의(意) 3업(業)을 통해 발현되는 것을 신밀(身密)・어밀(語密)・의밀(意密)이라 한다. 불공삼장은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으로부터 유가오부삼밀법(瑜伽五部三密法)을 전수받아 전파하였다.
27)열반의 덕을 완전히 성취하였다는 뜻이다. 실담 문자의 이(∵)는 세 개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열반에 갖추어진 세 가지 덕상(德相), 즉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을 상징한다.
28)영광스러운 자리를 아낌없이 버렸다는 뜻이다. 원래 인도사람이었던 불공삼장은 스승인 금강지삼장이 열반하자, 그의 유지를 받들어 『금강정경(金剛頂經)』을 구하기 위해 731년에 다시 인도로 떠났다. 건상(褰裳)은 순(舜)이 우(禹)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면서 “정화가 이미 고갈되었으니, 나는 이제 바지 걷고 물을 건너가련다.[精華已竭 褰裳去之]”고 노래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29)외롭고 고단한 처지를 뜻하는 말이다.
30)성명(聲明) : 오명(五明)의 하나로, 음운(音韻)과 문법(文法)에 관한 학문이다.
31)불성에서 펼치는 다양한 법문을 뜻한다. 여기서는 불공삼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들을 지칭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무릇 하늘 피리란 만 가지 소리를 내면서 제각기 자기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스스로 집착한 것일 뿐이니, 그렇게 부르짖는 자는 누구인가?[夫天籟者 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32)삼승(三乘) :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에 대한 세 가지 교법(敎法)을 말한다.
33)수척한 상주를 뜻한다. 『시경』 「회풍(檜風)」 ≺소관(素冠)≻에 “흰 관을 볼 수 있을까, 극인의 그 수척함을.[庶見素冠兮 棘人欒欒兮]”이라 하였는데, 주(註)에서 “극(棘)은 급하다는 뜻이다. 상주는 급하여 경황이 없기 때문에 상주를 극인(棘人)이라 한다. 난란(欒欒)은 수척한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34)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의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는 그것을 밟으며 반드시 슬픈 마음을 갖게 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로 땅이 촉촉이 젖으면 군자는 그것을 밟으며 반드시 섬뜩한 마음을 갖게 되니, 이는 죽은 부모를 다시 만날 것 같기 때문이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35)부지런히 노력하여 뜻하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이른 새벽 깊은 밤에도 부지런하지 못한 점이 혹시라도 없게 하라. 자그마한 행동에 신중하지 못하면 결국 큰 덕에 누를 끼친다. 아홉 길의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 그 공이 허사가 되는 법이다[夙夜 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고 하였다.
36)개부(開府) : 관청을 설치해 속관(属官)을 둘 수 있는 삼공(三公)이나 대장군(大將軍)을 지칭하는 말이다.
37)조은(朝恩) : 당나라 대종(代宗) 때 환관(宦官)으로, 성은 어씨(魚氏)이다. 현종(玄宗) 때 환관이 되었고, 대종 때 천하관군용선위처치사(天下觀軍容宣慰處置使)가 되어 군권(軍權)을 장악했다.
38)진로(塵勞) :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이 먼지처럼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육경을 육진(六塵)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 육진이 온갖 번뇌를 일으켜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을 진로라 한다.
39)추이행지(推而行之)는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나온 말이다. 공자(孔子)가 “우리의 도가 잘못된 것인가? 어째서 우리가 이런 곤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자, 안회(顔回)가 “선생님의 도는 지극히 큽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선생님께서는 그 도를 받들어 실천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왜 걱정하십니까? 세상이 받아들지 못한 뒤에야 군자를 알아볼 수 있는 겁니다.[夫子之道至大 故天下莫能容 雖然 夫子推而行之 不容何病 不容然後見君子]”라고 대답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40)전몽(旃蒙)은 고갑자(古甲子)로, 십간(十干) 가운데 을(乙)에 해당한다. 『불조통기』 권41에 따르면 대종은 이 서문을 영태(永泰) 원년(765) 을사(乙巳) 10월에 지었다. 따라서 무궁화 꽃이 피는 달[木槿榮月]은 10월을 가리키는 말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