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방 금강수(金剛手)보살 【經】 동방금강수보살마하살(東方金剛手菩薩摩訶薩)께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청색 광명을 내뿜으면서 4구지(俱胝)나 되는 보살들과 함께 가서 그 국토를 수호하시느니라. 【解】 ‘금강수’란 삼장(三藏)께서 지니고 계신 범본(梵本) 『금강정유가경(金剛頂瑜伽經)』에 의하면, ‘견고하다’, ‘이용하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이 경에 의하면, 다섯 방위의 보살은 두 가지 바퀴[輪]에 의해 몸을 나타내는데, 이에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첫 번째는 법륜(法輪)인데, 진실한 몸[眞實身]으로 행원(行願)을 닦아서 과보로써 얻은 몸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교령륜(敎令輪)인데, 분노한 모습의 위엄을 갖춘 몸[威怒身]으로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켜서 위엄과 용맹을 드러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금강수’는 바로 보현보살이다. ‘금강저를 손에 들고’라는 것은, 마치 금강과 같은 바른 지혜를 일으켜서 아(我)와 법의 미세한 장애를 능히 끊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교령륜에 의지하여 위엄있고 분노한 모습의 항삼세금강(降三世金剛)의, 머리는 넷이고 팔이 여덟인 몸으로 나투어서, 마혜수라대자재천(摩醯首羅大自在天)들과 악마의 군중들을 조복시키는 모습을 즉각 지어낸다. 이는 정법을 해치고 중생을 해치는 자를 조복시키기 때문이다. ‘청색 광명을 내뿜는다’는 것은 악마의 군중들을 제거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건달바(乾闥婆) 무리와 비사사(毘舍闍) 무리가 그의 권속이 되어 4구지나 되는 보살과 함께 그 국토를 수호하신다는 것이다.
2) 남방 금강보(金剛寶)보살 【經】 남방금강보보살마하살께서 손에 금강마니(金剛摩尼)를 들고 백색의 광명을 내뿜으면서 4구지나 되는 보살들과 함께 가서 그 국토를 수호하시느니라. 【解】 ‘금강보(金剛寶)’란 저 경에서 말하는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이다. 앞의 법륜에 의지하여 수승하고 현묘한 몸을 드러내어 보시(布施) 등의 삼륜청정(三輪淸淨)을 행한다. ‘손에 금강마니를 들고’라는 것에서 ‘마니’는 범어를 그대로 말한 것으로, 보배[寶]라고 번역한다. 몸이 청정하고 견고하며 조밀하기가 마치 금강과 같으니, 이것은 곧 금강여의보(金剛如意寶)라고도 하는데 유정(有情)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얻게 되기 때문이다. 교령륜에 의지하여 위엄 있고 분노한 모습의 감로군다리금강(甘露軍茶利金剛)의 모습을 지어 내어 여덟 개의 팔이 달린 모습으로 나타나서 모든 아수라들의 권속과 악한 귀신들을 조복시키는데, 유정들을 고뇌하게 하고 해치고 질병에 시달리게 하는 자를 조복시키기 때문이다. ‘백색의 광명을 내뿜는다’는 것은 남아 있는 아수라 등을 제거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공반다(恭畔茶) 무리와 례려다(薜荔多:餓鬼) 무리가 그의 권속이 된다. ‘4구지(俱胝)’라는 것에서, 1구지는 『화엄경』에서, ‘백 낙차(洛叉)를 1구지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은데, 이는 곧 남방이 백억이나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 3구지는 이에 준하며, 이와 같은 수의 군중들이 그 국토를 수호하신다는 것이다.
3) 서방 금강리(金剛利)보살 【經】 서방금강리보살마하살께서 손에 금강검(金剛劍)을 들고 금색 광명을 내뿜으면서 4구지나 되는 보살과 함께 가서 그 국토를 수호하시느니라. 【解】 ‘금강리(金剛利)’란 저 경에서 말하는 문수사리보살이다. 앞에서의 법륜에 의지하여 수승하고 현묘한 몸을 드러내어 바른 지혜의 원만함으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손에 금강검을 들고’라는 것은 자신과 남에게 생기는 온갖 장애를 능히 끊을 수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교령륜에 의지하여 위엄 있고 분노한 모습의 육족금강(六足金剛)으로 나타나며, 손과 팔이 각각 여섯이 있으며 물소 위에 앉아서 모든 악한 독룡(毒龍)들을 조복시키고, 악한 바람과 비를 일으켜 유정을 해치는 자를 조복시키기 때문이다. ‘금색의 광명을 내뿜는다’는 것은 남아 있는 악한 독룡 등을 없앨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과 셀 수 없이 많은 용부단나(龍富單那) 무리가 그의 권속이 되어 4구지나 되는 보살과 함께 그 국토를 수호하신다는 것이다.
4) 북방 금강약차(金剛藥叉)보살 【經】 북방의 금강약차보살마하살께서 손에 금강방울을 들고 유리빛의 광명을 내뿜으면서 4구지나 되는 야차 보살들과 함께 그 국토를 수호하시느니라. 【解】 ‘야차(藥叉)’란 범어인데 위덕(威德)의 뜻이고, 또는 모두 없앰[盡]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모든 원망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경에서 ‘모든 마군들이 보살을 원망하는 것을 물리친다’고 한 것과 같다. 앞에서의 법륜에 의지하여 수승하고 현묘한 몸을 드러내어 유루지[事智]의 원만함으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손에 금강방울을 들고’라는 것은 그 진동하는 방울소리로 유정들을 깨우치는 것이니, 반야(般若)로 중생들의 미혹함을 깨우쳐 준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교령륜에 의지하여 위엄 있고 분노한 모습의 정신금강(淨身金剛)으로 나타나 팔을 네 개 지닌 모습을 드러내어 모든 두려운 야차들을 조복시키며 밤낮없이 온갖 방편으로 사람의 정기(精氣)를 빼앗아 유정들을 해치는 자들을 조복시키기 때문이다. ‘유리빛의 광명을 내뿜는다’는 것은 남아 있는 야차들을 없앨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과 셀 수 없이 많은 야차의 무리들과 나찰(羅刹)의 무리들이 모두 그의 권속이 되어 4구지나 되는 보살과 함께 그 국토를 수호하신다는 것이다.
5) 중방 금강바라밀다(金剛波羅蜜多)보살 【經】 중방의 금강바라밀다보살마하살께서 손에 금강륜(金剛輪)을 들고 오색의 광명을 내뿜으면서 4구지나 되는 보살과 함께 그 국토를 수호하신다. 【解】 ‘금강바라밀다’는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到彼岸]는 것을 말하며, 저 경에서 ‘전법륜(轉法輪)보살’을 말하는 것과 같다. 앞에서의 법륜에 의지하여 수승하고 현묘한 몸을 나타내며, 행원(行願)이 원만하여 등각위(等覺位)에 머물게 된다. ‘손에 금강륜을 들고’라는 것은 비로자나불께서 처음 정각을 이루셨을 때 법륜을 굴리시기를 청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법륜으로 유정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유정들을 피안에 이르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교령륜에 의지하여 위엄 있고 분노한 모습의 부동금강(不動金剛)의 모습으로 나투어 모든 귀신과 도깨비들이 유정들을 미혹하게 하고 혼란하게 하는 것을 물리치고, 모든 장애와 번뇌를 조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오색의 광명을 내뿜는다’는 것은 많은 덕을 갖추고 모든 어둠을 물리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제석천과 셀 수 없이 많은 천(天)들이 모두 그의 권속이 되어 4구지나 되는 보살과 함께 그 국토를 수호하신다는 것이다.
2. 만다라궤의(漫茶羅軌儀)를 건립함
무릇 경에 의지하여 국토를 수호하고 가정을 지키고 몸을 보호하여 재난을 없애고 장애를 돌려놓아서 범부에서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유가(瑜伽)를 닦고 행하여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건립한다. 만다라는 먼저 고요하고 청결한 곳으로 사리(舍利)가 있는 곳이 가장 훌륭한데, 혹 조용한 방[精室]이거나 숲이 우거진 산속의 바위굴이나 두 강이 합쳐 흐르는 곳이거나 나무와 꽃, 과실이 흐드러지게 핀 연못 옆이거나 또는 현인이나 성인이 도를 이루신 장소이거나 수행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장소이거나 또는 배 위, 이층 누각 위, 반석(盤石) 위, 열의림(悅意林) 나무 아래와 같은 곳에 만다라 단(壇)을 세울 수도 있다. 길상일(吉祥日)을 택해 땅을 파는데 깊이는 팔꿈치 두 개 길이, 넓이는 팔꿈치 네 개, 여섯 개에서 열두 개의 길이로 파서, 기와ㆍ자갈ㆍ머리카락ㆍ터럭ㆍ재ㆍ뼈를 비롯한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다 제거한 다음, 따로 강 양쪽에 있는 깨끗한 흙을 가져와서 여법하게 단을 만든다. 흙을 판 곳에는 어떤 더러운 물건도 없도록 한 다음 파낸 흙으로 다시 메운다. 땅은 수승하고 가장 좋은[上] 곳에 있는 땅을 택하고, 속히 원만해지기를 기원하면서 흙을 메우는데, 메울 때는 평평하고 원만하도록 한다. 그 땅이 중간 수준[中]이면 기원하는 것도 중간이 된다. 메운 흙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땅은 곧 나쁜[下] 것이 되어 기원하는 것도 더디고 늦어져서 성취하기가 어려워지니 평탄하고 원만하게 메우고 쌓아야 한다. 사리탑 아래거나 배 위이거나 이층으로 된 누각 위이거나 반석 위나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땅이라면 여법하게 만다라(漫茶羅)를 건립하되 땅을 파지 않아도 된다. 단의 중심을 평탄하게 메우고 나서 길상일을 택한다. 초순[日初分]일 때에 한 척[尺] 깊이로 파고, 가로ㆍ세로도 이와 같이 파고 나서 그 속에 다섯 가지 곡식의 종자와 향과 약(藥)을 조금씩 뿌리고는 지천진언(地天眞言)을 염송한다.
나막사만다몯다남필리 티 미예 사바 하 曩莫三漫多沒䭾南畢哩二合恥聽以反微曳二合娑嚩二合訶
이 진언을 스물한 번 외우고는 가지향(加持香) 등을 그 속에 넣고 흙으로 평탄하고 원만하게 메운다. 그 다음에는 단상에서 동쪽을 향하여 앉아서 단의 중심에서 가로ㆍ세로 팔꿈치 하나 되는 곳에 향물[香水]을 들고 한 바퀴 돌리며 바른다. 그리고 제철에 피는 꽃들을 그 위에 두루 퍼지게 뿌려 놓고, 우유죽과 진귀한 과자와 음식을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한 다음 오른손을 단 위에 올려 놓고 지천진언을 108번 염송하고 나서 곧 게송으로 말한다.
부처님 계신 곳에서 친히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하늘이시여, 제가 지금 만다라를 세우오니 항상 가호해 주시길 기원하나이다.
이 게송을 세 번 외우고는 구마이(瞿摩夷:단 둘레에 바르는 쇠똥)를 가져다가 땅에 대지 말고 향물과 섞어서 깨끗한 것으로 만들고 앞에서의 지천진언을 21번 염송한 다음, 오른손을 단(壇)의 동북쪽 모서리로부터 점차 여법하게 오른쪽으로 돌리며 바르면서 앞의 진언을 염송하는데, 단 바르는 것이 끝날 때까지 그치지 말고 해야 하며, 이때 다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단이 다 마르면 이번에는 순전히 구마이즙(瞿摩夷汁)만으로 앞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다시 바르는데 앞의 지천진언을 위에서와 같이 외운다. 이것이 다 마르면 또 연자초(蓮子草)나 촉규엽(蜀葵葉)이나 용규엽(龍葵葉)을 찧어서 단을 깨끗하게 닦은 다음 단 위를 청색 덮개로 덮고 나서 크고 작은 단을 정해 놓고 단 둘레에 스물네 개의 번(幡)을 건다. 그리고는 단 중앙에 여법하게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목욕을 하고 깨끗한 새 옷을 입고 근주계(近住戒)를 받는다. 단은 세 겹으로 하되 피교(皮膠)를 쓰지 말고 향교(香膠)를 사용한다. 만약 향교가 없다면 찹쌀물을 끓여서 고루고루 칠한다. 단의 중심에는 열두 개의 살[股]을 가진 바퀴를 그리고, 동쪽에는 다섯 개의 살을 가진 금강저(金剛杵)를 그리고, 남쪽에는 금강보(金剛寶)를 그리며, 서쪽에는 금강검(金剛劍)을 그리고, 북쪽에는 금강령(金剛鈴)을 그려 넣는다. 이상의 다섯 가지는 오방(五方)의 보살이 손에 들고 있는 비밀계(秘密契)를 말한 것이다. 동남쪽에는 세 개의 살[股]을 가진 금강저를 그리고, 서남쪽에는 보관(寶冠)을 그리며, 서북쪽에는 공후(箜篌)를 그리고, 동북쪽에는 갈마금강저(羯磨金剛杵)를 그린다. 네 모서리에는 금ㆍ은ㆍ동ㆍ사기[瓷] 네 가지 현병(賢甁)을 놓아두는데, 새 질그릇[瓦]을 써도 되며 1승(升)이 안 되도록 물을 받는다. 병에는 물을 가득 담아 꽃가지를 꽂아 놓고, 청색ㆍ황색ㆍ적색ㆍ녹색의 네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각각의 길이가 4척[尺]인 비단을 병 네 개의 목부분에 위와 같은 순서대로 묶는다. 그 다음에는 세 번째로 동쪽문에는 금강구(金剛鉤)를 그리고, 남쪽문에는 금강삭(金剛索)을 그리며, 서쪽문에는 금강쇄(金剛鎖)를 그리고, 북쪽문에는 금강령(金剛鈴)을 그린다. 동남쪽 모서리에는 향로(香爐)를 그리고, 서남쪽 모서리에는 연잎을 그리되 그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꽃들을 그려 넣으며, 서북쪽 모서리에는 등(燈)을 그리고, 동북쪽 모서리에는 도향그릇[塗香器]을 그려 넣는데, 이들 금강저(金剛杵) 등에는 모두 불꽃을 그려 넣어야 한다. 세 겹[三重]으로 된 단(壇) 밖에는 한 겹으로 된 계도(界道)가 있는데, 네 방향에 문을 그려 넣고, 문은 계도(界道) 밖에 있게 한다. 단의 네 모서리에는 거다라목궐(佉陀羅木橛)1)을 박는데, 이 말뚝이 없으면 철궐(鐵橛)이나 자단목궐(紫檀木橛)과 궐자단목궐(橛紫檀木橛)을 써도 된다. 길이는 손으로 열두 뼘이 되야 하며 그 중에서 네 뼘을 땅에 박아 넣는다. 아래의 세 번째 금강진언(金剛眞言)을 외우고 말뚝[橛]을 21번 가지(加持)한 다음에 박아 넣는다. 다섯 가지 색실로 동녀(童女)가 오른쪽으로 묶어가게 하는데 새끼손가락[小指]이 들어갈 만한 간격으로 궐(橛) 끄트머리 주위를 단 위에 묶는다. 단의 네 방향에 있는 문에는 네 개의 향로를 놓는데 침향(沈香)ㆍ단향(檀香)ㆍ훈향(熏香)ㆍ육향(陸香)ㆍ소향(酥香)ㆍ합향(合香) 따위의 향을 사룬다. 단의 네 모서리에는 살이 세 개 반인 금강저를 그려 넣고, 네 모서리 위에는 각각 잔등(盞燈) 하나씩을 켜 놓는다. 네 방향의 문 바깥쪽의 좌우 양쪽에는 각기 두 개의 사기그릇을 놓아둔다.금이나 은, 동 등의 그릇도 쓸 수 있다. 그 속에는 알가향수(閼伽香水)를 채워 놓는데, 때마다 물을 갈아 넣어야 하며 그 물을 깨끗한 곳에 뿌리되 발로 밟으면 안 된다. 만약 기도를 하려고 한다면 초칠일이나 이칠일에서 칠칠일 동안 매일 새벽 우유죽 여덟 그릇과 낙밥[酪飯] 여덟 그릇, 진귀한 과자 괸 것 여덟 그릇, 달콤하고 바삭이는 과자[甛脆] 괸 것 여덟 그릇을 공양하는데, 날마다 깨끗한 것으로 공경스럽게 공양을 올린다. 만약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평소 하는 대로 보통 공양을 올리고 향을 사루고 등을 켜며 알가도향(閼伽塗香)을 사루고 제철에 나오는 꽃을 꺾어 일상적인 공양을 올리며, 매월 14일과 15일 이틀은 죽이나 밥, 과자 등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공양 올린다. 국가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자신을 위해 재난을 소멸하려는 사람은 북쪽을 향하여 앉아 마음속으로 본존(本尊)과 모든 공양물이 흰색이라고 관상(觀想)하면서 고요히 속으로 염송한다. 더 좋은 이익을 구하려는 사람은 동쪽을 향하여 앉아서 본존 등이 모두 황색이라고 생각하면서 환희하고 고요히 소리를 내지 않고 염송한다. 마군을 항복 받으려는 사람은 남쪽을 향해 앉아서 본존 등이 청흑색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대비심을 일으키고 바깥으로는 위엄 있고 분노한 모습[威怒]을 드러내면서 큰 소리로 염송한다. 존경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서쪽으로 향하여 앉아 본존 등이 모두 적색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과 분노한 마음으로 소리를 내어 염송한다. 이러한 네 가지 경우에 의지해 재난을 없애려는 사람은 1일에서 8일까지 행하고, 더 좋은 이익을 구하려는 사람은 9일에서 15일까지 행하며, 존경과 사랑을 구하려는 사람은 16일에서 22일까지 행하고, 조복 받으려는 사람은 23일에서 말일까지 행한다. 도량의 건립을 끝낸 다음에 또 급박한 일이 있을 때에는 날짜에 구애받지 말고 밤과 낮으로 나누어 때에 따라 건립한다. 만약 재난을 없애려는 사람은 초저녁[初夜]에 하고, 더 좋은 이익을 구하려는 사람은 이른 아침[初日]에 하며, 존경과 사랑을 구하려는 사람은 늦은 밤[後夜]에 하고, 조복 받으려는 사람은 한낮[日中]이나 한밤중[中夜]에 행한다. 만약 도량을 건립하고 염송으로 네 가지에 대해 기도하려고 한다면 위에서 말한 일시(日時)에 의하며 이것을 보통의 방법이라고 한다. 만약 번뇌를 벗어나 위없는 보리를 구하여 유가(瑜伽)를 닦으려고 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네 번, 늦은 밤ㆍ한낮ㆍ황혼 무렵ㆍ한밤중에 운심공양(運心供養)하는 것이 가장 수승한 방법이고, 그 아래의 것들은 모두 알기 어렵기 때문에 단(壇)에 그려 넣기만 할 뿐이다.
3. 도량(道場)에 들어가는 의궤(儀軌)
만약 의궤를 행하는 사람이 재난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먼저 목욕을 하고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재가자(在家者)라면 근주계(近住戒)를 받아서 은근하고 진중한 대승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하며, 구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몸이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끝없이 많은 유정들을 대비심으로 구제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속히 성취한다. 도량에 들어가면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여 법계에 계신 모든 삼보님께 두루 예를 올리는데,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신ㆍ구ㆍ의 3업으로 지은 모든 죄의 업장을 참회하고 시방에 계신 부처님들께 정법의 바퀴를 굴려 주시기를 권청하고, 모든 여래께 세간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청하여 삼승(三乘)으로서 닦은 복덕과 지혜를 기뻐하고, 나 아무개가 닦은 공덕을 모두 위없는 보리로 회향하여 법계에 있는 모든 유정들이 다함께 속히 원만하게 되기를 발원한다. 그 다음에는 결가부좌를 하되 이유 없이 목욕을 해서는 안 된다. 두 손에 향을 바르고 은근하고 진중한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인(淸淨印)을 맺는데, 두 손은 조심스럽게 아직 피지 않은 연꽃 모양을 만들어 허심 합장(虛心合掌)2)을 하고 다음의 진언을 외운다.
옴사바 바 바슈 다 살바달마 사바 바바슈도함 唵娑嚩二合婆引嚩輸入鐸引薩嚩達磨入引娑嚩二合婆嚩輸度撼
이 진언을 세 번 외우는데, 염송을 할 때에는 마음이 널리 퍼지도록 한 다음 모든 법은 본래가 청정하므로 나의 몸도 역시 청정하다고 생각한다. 즉, 눈을 감고 마음을 움직여, 허공이 꽉 차도록 일체 부처님과 보살의 도량에 모인 모든 대중이 여러 가지 묘한 향과 꽃을 들고서 3업(業)에 대해 정성을 다해 머리를 조아리고 예경을 올린다고 생각한다.
1) 불부삼매야인(佛部三昧耶印)을 맺음 양손을 조심스럽게 안으로 서로 교차하게 하고 주먹을 쥔 다음 두 엄지손가락을 나란히 세우고 다음의 진언을 외운다.
옴이나이가사바 하 唵尒那尒迦娑嚩二合訶去引
이 진언을 소리 내지 않고 세 번 외운 다음에는 정수리 위에서 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계(印契)를 맺고 불부삼매야진언(佛部三昧耶眞言)을 외우면 시방의 법계에 계신 부처님께서 모두 구름처럼 모이셔서 허공을 두루 채우시게 된다. 가지(加持)를 행하는 사람은 모든 장애와 번뇌를 여의어서 3업이 청정해지며 자신이 닦은 행원(行願)이 빨리 성취된다.
2) 제보살부(諸菩薩部)삼매야인을 맺음 양손을 조심스럽게 앞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주먹을 쥐고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구부려 손바닥 가운데로 오게 하고 다음의 진언을 외운다.
옴아 로 륵가사바 하 唵阿引嚧引力迦娑嚩二合訶
앞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세 번 외우고는 정수리 위에서 푼다. 이러한 인계(印契)를 맺고 제보살부삼매야진언을 외우면 곧 관자재보살 등 시방 법계에 계신 모든 보살들이 모두 구름처럼 모여서 허공을 두루 채우게 된다. 가지를 행하는 사람은 3업이 청정해져서 모든 재난이 없어지게 되나니 이것을 모든 보살들이 계승하시는 근본적인 자비의 원력[本悲願]이라고 하며, 이를 구하려는 사람은 모두 원만하게 구족하게 된다.
3) 금강부(金剛部)삼매야인을 맺음 오른손은 앞에서와 같은 인(印)을 하고 왼손의 엄지손가락은 펼치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은 손바닥의 중앙을 향해 굽히고 나서 진언을 외운다.
옴바아라 디륵가사바 하 唵嚩日囉二合地力迦娑嚩二合引訶
앞에서의 방법으로 진언을 세 번 외우고 나서 정수리 위에서 푼다. 인계를 맺고 금강부삼매야진언을 외우면 곧 시방의 법계에 있는 모든 금강이 위엄 있고 분노한 몸을 드러내어 구름과 같이 모여서 허공계를 가득 채우게 된다. 가지를 행하는 사람은 3업이 마치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되는데, 이러한 성자(聖者)를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은 이라고 한다. 스스로의 원력(願力)이 크면 국토와 삼계를 수호하여 재난을 없애게 되고, 원력이 작으면 자기 한 몸의 액난을 없애게 된다.
4) 호신인(護身印)을 맺음 세 가지 부[三部]를 사용하여 인계를 맺고 진언을 외우며 5처(處)를 가지하는데, 이마ㆍ오른쪽 어깨ㆍ왼쪽 어깨ㆍ심장ㆍ목의 다섯 군데를 말한다. 정수리 위에서 풀면 곧 금강의 견고한 갑옷과 투구를 입게 된다. 이러한 가지를 두루 행하는 사람은 몸에 위엄이 있고 눈부신 광채가 나게 되어, 모든 마군과 장애와 번뇌를 일으키는 자들은 감히 그를 눈으로 볼 수 없게 되며, 속히 물러가게 된다.
5) 벽제인(僻除印)과 금강방우보계인(金剛方隅寶界印)을 맺음 오른쪽은 앞에서의 금강부인계를 맺고 그 진언을 외우면서 단을 왼쪽으로 세 번 돌면, 큰 힘을 가진 마군들을 피하거나 없애게 되고, 불보살을 따라 숨거나 드러나는 사람은 멀리 다른 세계[他界]로 가게 된다. 마음[心]의 크고 작음에 따라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 금강방우보계(金剛方隅寶界)가 이루어진다. 불보살들께서도 아직 거스르시거나 뛰어넘지 않으시거늘 하물며 장애와 번뇌가 있는 사람들이 어찌 그 이익[便]을 얻을 수 있겠는가? 정수리 위에서 푼다.
6) 청성중강단인(請聖衆降壇印)을 맺음 오른쪽은 앞에서의 세 가지 부의 인계를 맺고 진언을 외운다. 엄지손가락은 몸을 향하게 하고 세 번 소청(召請)하고 세 번 부르면[三招], 앞에서의 허공을 가득 채운 삼부성중(三部聖衆)이 각기 본래의 지위에 의해 서로 장애되지 않고 적연(寂然)하게 머물게 된다. 정수리 위에서 푼다.
7) 헌알가향수인(獻閼伽香水印)을 맺음 오른쪽에서 양손으로 마니로 된 보배 그릇[寶器]을 받들고 그 안에 향물을 가득 채운 다음 눈썹 중간에 오게 하고는 진언을 외운다.
옴바아로 나가훔 唵嚩日嚧二合引娜迦吽引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진언을 세 번 외우면 운심(運心)하여 마음이 넓게 퍼져 모든 성중(聖衆)을 차례대로 널리 관욕[浴]한다. 정수리 위에서 푼다. 알가향[閼伽]을 바치면 승해행지(勝解行地)에서 법운지(法雲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지위에 있는 시방 법계의 불보살들이 모두 관정(灌頂)을 얻을 수 있도록 가호하신다.
8) 헌보좌인(獻寶座印) 오른쪽으로 마음을 비운 채 양손을 조심스럽게 합장한다. 양손의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서로 붙인 다음 약간 구부린다. 나머지 여섯 개의 손가락은 각각 떼어서 약간 구부려 활짝 핀 연꽃과 같이 만든 다음 진언을 외운다. 옴가마라사바 하 唵迦磨攞娑嚩二合引訶
인계를 맺고 진언을 외우면 봉헌한 보좌(寶座)를 성중(聖衆)들이 모두 여실하게 받고 사용하게 되니, 이를 행하는 사람은 과위(果位)에 이르게 되어 금강의 견고한 보좌를 얻게 된다.
9) 보공양인(普供養印)을 맺음 오른쪽에서 양손을 합장하고는 다섯 손가락을 서로 교차하여 오른손으로 왼손을 누른 다음 심장 위에 갖다 대고 진언을 외운다.
이 인을 맺고 진언을 외우면 마음이 넓게 퍼져서 법계에 두루 펼쳐져 있는 모든 불보살들의 도량해회(道場海會)에 일체의 공양구를 비 내리게 한다. 처음에 진언을 한 번 외우면 티끌과 모래로 된 보배 그릇[塵沙寶器]에 가루향[塗香]이 가득 차 성중들이 두루 바를 수 있게 된다. 진언을 두 번째로 외우면 갖가지 화만(花鬘)이 두루 퍼지며 장엄하게 된다. 진언을 세 번째로 외우면 갖가지 향이 사루어져 두루 퍼져서 공양하게 된다. 진언을 네 번째로 외우면 하늘에 있는 으뜸가는 미묘한 음식이 비 내려 보배 그릇에 담겨져서 두루 공양하게 된다. 진언을 다섯 번째 외우면 마니가 비 오듯 내려 등불과 같이 밝아지게 되어 모든 불보살들께 두루 공양하게 된다. 진언을 외우는 가지의 힘으로 봉헌한 향 등의 공양물이 모든 해회(海會)에서 한결같이 진실해져서 성중이 받고 사용하게 되니, 이를 행하는 사람은 미래세에 언제든지 그 과보를 얻게 된다.
10) 반야바라밀다근본인(般若波羅蜜多根本印)을 맺음 또 양손 등을 붙이고는 양손의 손가락 끝을 오무린 다음 양손의 새끼손가락을 손바닥 가운데를 향해 구부린다. 엄지손가락으로 양손의 손가락 끝을 하나씩 누르고 나서 심장 위에 갖다 대고 경에 있는 다라니를 일곱 번 외운다. 이러한 인을 맺고 다라니를 외우면 이를 행하는 사람은 곧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인 반야바라밀다보살로 변하게 된다. 그 보살의 형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흰 연꽃 위에 앉아 있으며 몸은 황금빛이고 갖가지 보물과 영락으로 그 몸을 두루 장엄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관에 매여 있는 흰 비단이 양쪽으로 드리워져 있다. 왼손에는 반야의 경권[梵夾]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유작설법인(乳作說法印)을 하고 있는데, 엄지손가락으로 약손가락 끝을 누르면서 보살이 머리에서 발쪽으로 가고 있으며, 몸에서는 털구멍마다 광명이 흘러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갖가지의 빛[色]이 법계에 두루 퍼져 가득 차게 되며, 그 광명은 하나하나의 빛 속에는 수없이 많은 부처님이 변화하셔서 허공계에 두루 퍼지며, 모든 세계에서 널리 중생을 위해 반야바라밀다의 깊고도 깊은 법을 설하시어 중생들이 모두 깨닫고 알아서 삼마지(三摩地)에 머무르게 하신다고 생각한다. 이를 행하는 사람은 이것을 모두 관한 다음에 정수리 위에서 인을 맺은 손을 풀고 약간의 구슬[珠]을 들어 손바닥 가운데에 놓고 합장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진언을 외운다.
옴미로자나 마라사바 하 唵尾嚧者那引麽攞娑嚩二合引訶
이 진언을 세 번 외운 다음에 약간의 구슬을 가지하여 정수리 위에 얹어놓는다. 그런 다음에 조심스럽게 왼손으로 구슬을 받들고 오른손으로 구슬을 옮기면서 마음속으로 찰나찰나마다 불모(佛母)께서 머무시는 삼매에 상응한다고 관하되, 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끊어지지 않게 하며 진언을 108번을 외우거나 또는 21번을 외운다. 몇 걸음 옮겨 정수리에 얹은 구슬들을 본래의 자리에 놓고는 삼마지인(三摩地印)을 맺는다. 양손을 옆으로 펴서 오른손으로 왼손을 누르고는 배꼽 아래에 놓는다. 몸을 단정히 하고 눈을 감고 머리는 약간 굽히고는 마음을 기울여 심장 위를 주시한다. 원명경지(圓明鏡智)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팔꿈치 하나 되는 길이를 종횡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법계의 포자(布字) 행렬로 점차 퍼져나가 오른쪽으로 돌면서 순서대로 관하되 글자 하나마다 광명이 비치고 있다고 관한다. 바깥쪽에서 안쪽을 향하여 디[地]자에 이르기까지 관한 다음, 다시 안에서 바깥쪽으로 향하여 모든 글자들을 차례로 관한다. 이렇게 하기를 마치면 다시 시작하는데 세 번째 할 때에 이르면 마음이 고요해져서 정에 머물게 되고,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뜻을 관하여 뚜렷하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평등하여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으며,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정(定)과 혜(慧)를 함께 운용하게 되어 모든 모양[相]을 영원히 여의면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다의 삼마지를 관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반야바라밀다인을 맺으려고 한다면 다라니를 일곱 번 외우고 정수리 위에서 푼다. 그 다음에 보공양인(普供養印)을 맺고 나서 앞에서와 같은 순서대로 운심(運心)하여 공양을 한다. 성중(聖衆) 앞에서 공덕을 닦거나 생겨나도록 자구(資具)와 이익이 다하도록 서원[願]을 구하되 국가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이익되게 하고 만족하도록 한다. 그런 뒤에 중생에게 베풀어 회향하고 정토를 장엄하여 회향하며, 실제(實際:진여)를 향하여 회향하고 위없는 보리를 구하여 회향하여 모든 유정들이 다 함께 속히 피안으로 가기를 발원한다. 그런 다음에 앞에서의 계인(界印)을 맺고 앞에서의 진언을 세 번 외우면서 왼쪽으로 돌면 곧 계가 해제[解界]된다. 그 다음에는 앞에서의 삼부인(三部印)을 맺고 앞에서의 진언을 세 번 외우면서 엄지손가락을 바깥쪽을 향해 펴면 곧 가도록 재촉하게[發遣] 되어 성중들이 각기 본래의 국토로 돌아가게 된다. 행하는 사람은 예를 올리고 가되 항상 경행하고 대승경을 수지독송하되 산란해지거나 동요되지 않도록 한다.
4. 다라니문자(陀羅尼文字)에 의한 관행법(觀行法)의 해석
나모 라다나 다라 야 야 娜謨此云歸命囉怛曩二合此云寶怛囉二合夜引耶
이것은 세 가지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귀명삼보(歸命三寶)란 경(經)을 수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라니를 외우는 사람이 비밀스러운 말[密語]로 ‘삼보님께 목숨 바쳐 귀의한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귀(歸)라고 하는 이유는 범본(梵本) 『금강정유가경(金剛頂瑜伽經)』에서, “부처님께 귀의한다[歸依佛]라는 것은, 곧 모든 부처님과 다섯 보살 등 일체의 보살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권속들과 함께 와서 가호하시는 것인데 모든 보살들은 보리심을 존중하고 예경하므로 보리심을 일으키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가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법에 귀의한다는 것[歸依法]은, 바로 제석(帝釋)과 그의 권속들과 사천왕(四天王)과 천(天)들이 모두 와서 가호해 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제석은 위험과 재난으로 부터 반야법을 얻도록 가호하여 이익을 얻게 해주기 때문이다. 항상 스님을 존경하고 귀의한다[歸依僧]는 것은 곧 색구경천(色究竟天)과 다섯 정거천[五淨居天] 등, 또 모든 권속들이 모두 와서 가호해 주게 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보살승과 성문승은 저 하늘[天]에 많이 머물면서 현세[現法]의 즐거움에 머물기 때문에 항상 존경받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막 알 -야 娜謨此云歸命阿上引哩也二合引
이것은 선하지 않은 나쁜 법을 멀리 여의는 것을 말하는데, 뜻에 따라 번역하면 성스러운 사람[聖者]이라고 한다.
베로자나야 吠𡀔者娜野 두루 비추는 것[遍照]을 말한다. 또는 대일(大日)이라고도 한다. 마치 세간에서의 태양[日]은 다만 한쪽만을 비추고 다른 쪽은 비추지 못하기 때문에 비추는 쪽은 낮이고 비추지 못하는 쪽은 밤이 되며, 오직 한 세계만을 비추고 다른 세계는 비추지 못하기 때문에 일(日)이라고 할 뿐 대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비로자나(毘盧遮那)를 대일이라고 하는 것은 색신과 법신이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세계를 모두 밝게 비추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목숨을 다해 귀의하여 예배를 한다면 곧 법계의 모든 불보살과 성현들과 나아가 팔부신중들이 가지(加持)하고 수호하시게 된다.
다타 아다야 라하 뎨 怛他引蘗多野此云如來囉訶二合諦
응공(應供)을 말한다. 또는 원한을 없앰[害怨]을 말하기도 하고, 불생(不生)이라고도 한다.
삼먁 삼몯다 야 三藐此云正三沒䭾引野
등각(等覺)을 말한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성자(聖者) 변조(遍照) 여래ㆍ응공ㆍ정등각(正等覺)께 목숨을 다해 귀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막 알 -야 사만다 바나라 야 娜莫此云歸命阿引哩野二合此云聖者三滿多此云遍亦云普亦云等跋捺囉此云賢野
성명법(聲明法)에 의거하면 8전성(轉聲) 중에서 네 번째인 소리로, 다른 사람을 위해 예배를 한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爲)라고 부른다. 다음에 나오는 야(野)자들은 모두 이것에 준하여 해석한다. 이는 보살이 3밀문(密門)을 설하여 행원(行願)을 자세히 밝혀 주는 것을 말한다. 어떤 부처님이든 3밀문을 닦지 않고 보현행원에 의지하지 않고 성불하신 분은 없다는 것이다. 혹 이미 성불을 했다고 할지라도 3밀문과 보현행원에 있어서 열반[休息]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다해 귀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디사다바 야 冒地薩怛嚩二合野
구역(舊譯)에서는 보리(菩提)라고 하고, 여기에서는 모디(冒地)라고 한다. 구역에서 말하는 살타(薩埵)는 지금 여기에서의 사다바(薩怛嚩二合)이다. 위의 다섯 자에서 이 말을 간추려 세 글자를 생략하여 보살(菩薩)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하사다바 야 마하가로니가 야 摩訶薩怛嚩二合引野此云大勇猛者摩訶迦嚕抳迦引野
대비자(大悲者)를 말한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성자 보현보살 대용맹대비자(大勇猛大悲者)께 목숨을 다해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귀의함으로 인해 곧 시방에 계신 모든 불보살의 가호를 얻게 된다. 불보살들은 3밀문을 닦고 보현행을 하여 수승한 과[果]를 증득하게 되므로 항상 존경받는 것이다.
다냐-타 怛你也他引
말한다[所謂]는 것이다. 구역에서는 즉설(卽說)이라고 한다.
기야나 바라 니 볘 抧穰那此云智鉢囉二合你引閉
등불을 말한다. 이러한 지혜의 등불로 인해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석(瑜伽師地論釋)』에서는, “무소득지(無所得智)를 방편으로 삼아 지혜도 없고[無智] 얻는다는 것도 없어지면[無得] 곧 반야바라밀다지(般若波羅蜜多智)의 등불을 얻어 모든 법계를 두루 비출 수 있게 된다. 이는 분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아 惡
범본(梵本)에서는 아(阿)자로 되어 있으며, 무(無)로 번역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장의 내용에 따라 아(惡)자로 한 것이다.
가사 야 乞叉二合也
진[盡]으로 번역한다.
구 세 句引勢
장(藏)으로 번역하며, 한없이 많이 함장(含藏)하고 있다[無盡藏]는 의미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아(阿)자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아자는 일체법은 본래 생겨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아자는 모든 글자의 어머니로서, 모든 글자를 생겨나게 할 수 있다. 만약 아자문(阿字門)을 얻어 유가(瑜伽)와 상응하면 곧 부처님들이 갖고 계신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증득하게 되며, 일체법은 본래 생겨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하나의 상[一相]이 청정하고 평등하여 둘이 아니며 곧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바라 뎨바 나 바리 鉢囉二合底婆引娜此云辯才嚩底
갖추고 있음[具]을 말한다. 이것에 따라 말하면 말재주를 갖추고 있다[具辯才]고 할 수 있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바라(鉢囉二合)자(字)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바라(鉢囉二合)자는 반야바라밀다를 얻었다는 생각이 없음[無所得]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법은 본래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획득하게 되며, 후득지(後得智)에 있어서 네 가지의 무애해변설자재(無碍解辯說自在)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살바 몯다 바로 기뎨 薩嚩此云一切沒䭾此云覺者嚩路引抧諦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모든 부처님께서 실상(實相)을 관찰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살[薩]자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살자는 일체법이 평등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유가(瑜伽)에서는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이 모두 평등해져서 지혜로 진리를 증득하여 법으로 속히 흘러들어가면 곧 가없이 넓어져 모든 법에 대해 부처님께서 관찰하신 것과 같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유 아 바리니사바 녜 瑜引誐此云相應跛哩你澁跛二合𩕳
원만하게 성취함(圓成)을 말한다. 이것에 따라 말하자면 상응을 원만하게 성취한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유(瑜)자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유자는 어떠한 승(乘)에 대해서도 얻었다는 생각이 없음[無所得]으로 해석한다. 지혜와 상응하는 것을 관찰하여 진리가 원만하게 성취됨을 증득하면 곧 그것이 어떠한 승(乘)이든 교리(敎理)와 행과(行果)에 대해서 하나의 진실된 법성(法性)을 증득하게 된다”고 한다. 암비 라 노라바아 혜 儼避引囉此云甚深努囉嚩誐引係
짐작하기 어려움[難測]을 말한다. 앞에서 원만하게 성취한 것이 깊고도 깊어서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암(儼)자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암자는 진여의 법에는 오고 감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성(性)을 여의었다는 말은 오직 스스로 성인의 지혜[聖智]를 깨달아야만 상(相)을 여의어서 증득하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라고 한다.
디리야 다바 바리니사바 녜 底哩野三合特嚩二合此云三世跛哩你澁跛二合𩕳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圓成]을 말하는데, 이는 곧 삼세가 원만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디리야(底哩也三合)는 세 자이지만 범어로는 한 자이며, 이것을 종자(種子)로 한다. 디리야는 일체법의 진여(眞如)는 평등하여, 진사(塵沙:所知障)로 인해 얻는 공덕의 자성이 저절로 성취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진여법은 비록 일체법의 체(體)에 두루 있긴 하지만 삼세에 두루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세ㆍ현재세ㆍ미래세는 허망분별로 인해 생기는데, 이는 불상응행온(不相應行蘊)에 속하는 유위법이기 때문이다. 진여는 유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허망분별을 모두 여읜다”라고 한다.
모 디짇다 산자 야니 冒引地質多此云覺心散惹引曩你
생겨나게 할 수 있는 것[能生]을 말한다. 이것에 따라 말하자면 앞에서 삼세(三世)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능히 보리심을 생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모(冒)자가 종자가 되나니, 모자는 일체법이 번뇌에 묶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만약 자신의 몸속에 있는 보리심에 대해 안다면 자성(自性)이 성취되어 삼세에 있어 평등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허공이 모든 모양[相]을 여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즉 모든 유정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같아서, 마음은 본래가 청정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깊은 대자비의 마음이 일어나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갖가지 방편으로 유정들이 고통을 떠나고 벗어나도록 해주고, 궁극에는 묶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해주는데, 이것이야말로 광대한 보리심이다”라고 한다.
살바 비새가 비새가뎨 薩嚩引毘曬迦引此云一切灌灑毘色訖諦二合
관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뜻에 의해 번역한 것이다. 관정법이란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것이다. 관정법에 대해 저 경(經)에서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보관(寶冠)ㆍ인계(印契)ㆍ물ㆍ빛ㆍ명호(名號)로 관정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살(薩)자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살자는 일체법에는 잡염[染]이나 집착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 그리고 부처님의 마음은 모두 똑같은 진여(眞如)라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염오도 없고 집착도 없는 경지를 획득하게 되며,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들께서 법의 비[法雨]로 관정을 해주시어 수승한 지위[地]를 얻게 된다. 이른바 10지(地) 가운데 각 지(地)마다 모두 가장 수승한 관정으로 3업(業)의 가지(加持)를 얻어 수 없이 많은 경을 펼치는 데에 있어 자재롭게 된다”라고 한다.
달마 사아라 삼보뎨 達磨此云法娑誐囉此云海三步諦
나오는 것[出生]을 말한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법의 바다에서 나와서 장애 없이 해탈한다는 것인데, 이는 간단(間斷)없이 없앴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달(達)자가 종자(種子)가 되나니, 달자는 일체법에서 염오와 청정의 두 가지 체(體)는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정체지(正體智)로 본식(本識) 가운데에 있는 구생지(俱生智)의 장애를 끊으면 곧 법의 바다가 이루어져 교법(敎法)이 흘러나와서 널리 이익되고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아 모 카 阿去聲短呼暮引伽
끊어짐이 없는 것[無間斷]을 말하며, 구역(舊譯)에서 공하지 않은 것[不空]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라 바니 室囉二合嚩儜
듣는 것[聞]을 말하며, 이에 따라 말하자면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는 끊어짐이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여기서는 성명론(聲明論)에 의해 끊어짐이 없다[無間]고 해석한다. 아(阿)자가 종자가 되나니, 아자는 일체법은 본래 적정하고 본래 열반이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법(法)을 증득하면 법계에 두루한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열리는 큰 집회(集會)에서 모든 부처님들이 직접 펼치시는 법에 대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으며, 이를 모두 기억하고 수지하여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나오는 것[出]을 말하는데, 이에 따라 말하자면 앞에서의 모든 지(地)에서 닦은 행원(行願)에서 이러한 대보현지(大普賢地)가 나오는데, 이는 10지(地) 이후인 등각지(等覺地)이다. 그런데 유가(瑜伽)에서는 범부에서 성현까지를 모두 네 가지의 지[四地]로 나눈다. 첫째는 승해행지(勝解行地)로, 지 이전[地前]을 꿰뚫어 볼 수 있고, 둘째는 보현행원지(普賢行願地)로, 10지(地)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셋째는 대보현지(大普賢地)로, 이는 곧 등각지(等覺地)이며, 넷째는 보조요지(普照曜地)로, 이는 곧 성정각지(成正覺地)이다. 이것에 의해 해석하면 마(摩)자가 종자가 되나니, 마자는 일체법의 아(我)와 법(法)이 공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유가(瑜伽)에서는 미세한 장애를 끊으면 아와 법의 공함을 증득한다고 하는데, 이는 곧 이 대보현지를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 보조요지와 성등정각지를 증득하면 복(福)과 지혜로 장엄하게 되는데, 이는 법신(法身)을 수용하게 되어 원만함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미야 가라나 바리발라 바니 尾野二合羯囉拏此云受記跛里鉢囉二合跛儜
획득(獲得)을 말한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수기를 획득하는 것으로, 먼저 수기를 얻었으니 이제는 만족(滿足)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미야(尾野二合)자가 종자가 되나니, 미야(尾野二合)자는 일체법은 필경에는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과(果)가 원만하여 구경에는 모든 법의 자성(自性)이 적정함과 자성이 열반임을 증득하여 능증(能證)과 소증(所證)의 성품이 모두 같게 되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듬도 없이 항상 원만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살바싣다(薩嚩悉駄)성취한 사람(成就人)을 말하는데, 이는 10지(地)에 오른 보살들이다.
나마새가리 뎨 娜麽塞訖哩二合諦
예를 올리는 것[作禮]을 말한다. 예(禮)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반야로서의 법에 대해 예를 올리는 것이고, 둘째는 정각을 이룬 사람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뜻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10지 보살이 예를 받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살(薩)자가 종자가 되나니, 살자는 생멸(生滅)의 뜻으로 해석한다. 살자 가운데 있는 아(阿)자는 무생(無生)의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과위(果位) 안에서 아(阿)자를 증득했기 때문에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체(體)가 항상하고 견고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금강(金剛)의 수승한 공용이 자재한 것과 같다. 이는 곧 가없이 넓은 응화(應化)의 갖가지 이익과 즐거움을 널리 드러내어 생멸이 있는 것은 실제로는 생멸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한다.
살바 모 디사다바 산자야니 薩嚩此言一切冒引地薩怛嚩二合此云菩薩散惹曩你
태어나는 것[出生]을 말한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모든 보살이 태어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살(薩)자가 종자가 되나니, 살자는 일체법은 평등함이 없다[無等]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 글자를 관하게 되면 마음이 진여(眞如)와 평등해지고 동일한 모양이 되며 청정해지는데,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이며, 이로써 일체의 보살지(菩薩地)에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바아바디 婆誐嚩底
대적함[敵對]으로 번역하며, 복(福)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의미에 의해 번역하면 세존을 말한다.
몯다 마 뎨 沒䭾此云覺麽引諦
어머니[母]를 말한다. 이에 따라 말하자면 부처님 세존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바가범(婆伽梵)이란 남자의 소리[男聲]로 부르는 것이고, 바아바디(婆誐嚩底)는 여자의 소리[女聲]로 부르는 것이다. 이 둘을 합해서 그 의미로써 번역하면 세존이 된다. 만약 성명(聲明)에 의해 번역하면 대적함[敵對]이 된다. 바가(婆伽)는 물리치는 것[破]을 말하며, 범(梵)은 능(能)이라고 번역한다. 네 마왕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므로 바가범이라고 한다. 또는 박아범(薄阿梵)이라고도 하는데, 성명론에서의 글자 분석에 의하면 박(薄)은 물리치는 것[破]이고, 아(阿)는 태어남이 없는 것[無生]을 말하며, 범(梵)은 지혜를 증득하는 것[證智]이다. 아(阿)를 능히 증득할 수 있으므로 아범(阿梵)이라고 한다. 아범으로 인해 번뇌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세존께서는 태어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으며[不生不滅],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不去不來],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不一不異], 항상한 것도 아니고 단멸되는 것도 아니며[不常不斷],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不增不減]. 이와 같은 덕(德)을 갖추고 있으므로 박아범(薄阿梵)이라고 한다. 또는 박가범이라고도 하는데, 박가(薄伽)란 복(福)과 지혜[智]를 말한다. 범(梵)은 갖추고 있음[具]을 말하는데, 이는 곧 의미에 의해 번역한 것으로, 복과 지혜가 장엄하고 만족되게 갖추어져 있으므로 박가범이라고 한 것이며, 또 이것은 남자의 소리[男聲]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바[婆]자가 종자가 되나니 바자는 일체법에 있어서 있음[有]은 증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마음이 번뇌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생사(生死)가 있으며,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열반이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여읜 마음은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야(般若)를 생료인(生了因)으로 하여 모든 부처님들을 태어나게 할 수 있으므로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다. 위의 열여섯 구[十六句]에 대해 『유가경』에서는 보현보살의 16행(行)이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아라녜가라녜아라나가라녜 阿囉妳迦囉妳阿囉拏迦羅妳
그러므로 이 열두 자는 세 가지의 비밀스러운 것과 3업(業)의 청정함을 밝히는 것이다. 아(阿)자는 일체법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은 본래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체법은 번뇌를 여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라자문(囉字門)은 일체법이 번뇌를 여의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일체법이 번뇌를 여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無諍]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녜자문(妳字門)은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일체법에는 행위함[造作]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자문(迦字門)은 일체법에 행위함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행위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체법이 청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라자문(羅字門)은 일체법은 청정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은 청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녜자문(妳字門)은 일체법에 다툼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일체법은 본래 적정(寂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자문(阿字門)은 일체법은 본래 적정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은 본래 적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곧 일체법에는 더러움[垢]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라자문(囉字門)은 일체법에는 더러움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더러움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자문(拏字門)은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다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일체법에는 만들어짐[造作]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자문(迦字門)은 일체법에는 만들어짐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무분별지(無分別智)를 깨닫게 된다. 라자문(囉字門)은 일체법에는 분별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분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일체법에는 동요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녜자문(妳字門)은 일체법에는 동요됨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체법에는 동요됨이 없기 때문에 곧 마하반야바라밀다(摩訶般若波羅蜜多)는 도(道)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증득하게 된다.
마하 바라 기나 바 라미뎨 摩訶引此云大鉢囉二合枳穰二合此云極智播引囉弭諦
성명론(聲明論)에 의거해 분석하면, 바람이다(播藍伊上聲多)라고 풀 수 있다. 이다(伊多)라는 것은 이 언덕[此岸]이고, 바람(播藍)은 저 언덕[彼岸]이다. 크고 지극한 지혜를 타고 생사(生死)인 차안을 여의고 열반인 피안에 이르러, 머무르는 곳 없는 대반열반[無住處大般涅槃]을 얻는 것이다.
사바 하 娑嚩二合引訶
성취한다는 의미이다. 또는 길상(吉祥)의 의미도 있고, 또는 원적(圓寂)의 의미이기도 하며, 또는 재난을 그치게 하고 이익을 더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머무름이 없다[無住]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머무름이 없다는 의미로 쓰여서 머무름이 없는 열반[無住涅槃]이 된 것이다. 이 열반에 의지하여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유정(有情)들에게 이익이 있고 즐거움이 있기를 끝없이 바라기 때문이다. 위에서 종자(種子)라고 말한 것은 다른 것을 생겨나도록 이끄는 의미[引生義]와 섭수하여 지니게 하는 의미[攝持義]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열 자[十字]가 합해 한 구절[一句]을 이루며 첫 자를 종자로 하고, 다음의 아홉 자는 관찰하는 지혜[觀智]를 갖고 있어서, 첫 자가 생겨나도록 이끌고 섭수하여 첫 자에 들어오도록 한다. 이로 보아 만약 하나의 법을 알면 일체법을 알게 되고, 하나의 법이 공함(空)을 알면 곧 일체법이 공함을 알게 되며, 한 자[一字]를 지극한 마음으로 살펴서 관찰하여 행원(行願)을 닦으면 행원의 원만함을 모두 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다라니관상포자륜(陀羅尼觀想布字輪)
만약 행하는 이가 이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에 대하여 유가(瑜伽)의 관지(觀智)를 닦는다면, 이 다라니에 있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자(文字)의 한 구절ㆍ한 글자를 하나하나 사유하고 관찰하는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청정하고 원만하며 밝고 크고 둥근 거울 위에 금 수레바퀴[金輪]를 떠올린다. 바깥쪽 첫 번째 겹에 있는 열여섯 개의 바퀴살[輻]을 따라 차례대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열여섯 구절을 생각하되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그 다음에는 두 번째 겹에 있는 열두 개의 바퀴살을 따라 열두 자(字)를 생각하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잘 퍼지게 한다. 그 다음에는 세 번째 겹에는 열 자를 펴서 나열한다. 열 자 중에는 디(地)자가 하나 있는데, 이것의 의미는 앞에 있는 장행(長行)과 모든 집회의 대반야(大般若) 등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거두어서 열여섯 구(句)로 하고, 열여섯 구를 거두어서 열두 자로 하며, 열두 자를 거두어서 열 자로 하며, 그 열 자를 거두어서 한 자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는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점점 줄여서 점점 깊어지게 하는 것으로, 한 글자로 법계를 두루 현전하게 하는데, 이는 자성과 모양[性相]이 평등하여 구경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모든 범자(梵字)를 뚜렷하고 분명하게 관찰해야 하는데, 관찰이 다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모든 문자를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살피되 만약 마음에 다른 대상[緣]이 없으면 곧 정품(定品)을 성취하게 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치를 잘 관찰하면 곧 혜품(慧品)을 성취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법이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 그 뜻을 장애 없이 통달하는 것이 목전에서 이루어져서 모든 업의 장애[業障]ㆍ과보의 장애[報障]ㆍ번뇌의 장애[煩惱障]가 찰나찰나 모두 소멸되고, 몸과 마음이 전의(轉依)하여 자재를 얻게 되며, 모든 신통력을 얻어 구경위(究竟位)에 이르게 되고, 부처님의 세 가지 몸[三身]을 구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