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바탕[大朴:본체]이 이미 흩어지자, 유위(有爲)가 마침내 일어나, 명리(名利)가 교대로 이끌고 교묘한 지혜[巧智]가 진실을 상하게 하였구나. 사랑과 미움이 그 성정(性情)을 해치고, 인연은 그 염습(染習)을 굳건히 세워 안으로 백 가지 생각에 절제함[節]이 없어지며, 밖으로 6근(根)이 다투어 유혹함이라. 천리(天理)가 없어져도 알지 못하고 도의 근원이 미혹[迷]하여도 돌아옴을 잃었도다. 고해(苦海)에 빠졌으나 겁이 다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나니, 오직 성인[至人]만이 만물의 종지[宗]를 아시고 삼계(三界)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확연히 홀로 섰으나 고치지 아니하고, 모든 중생에 두루하시되 항상 그러하다. 그러므로 능히 많은 의심을 개도(開道)하여 온갖 중생[流品]을 구제하고 건져 주신다.
『육바라밀경(六波羅蜜經)』이란 온갖 법의 나루터요, 대들보이며 건너가는 문[度門]으로 가장 원만하고 지극한 것이다. 옛날 일월등명여래(日月燈明如來)께서 보살을 위하여 설법하신 이래로 지나온 겁수가 아득하나 진실한 게송은 고요하고 고요하다. 문수사리가 기사굴의 큰 모임에 나아가 일찍이 미륵보살과 이 일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러 일체종지를 이루고 무량의(無量義)의 원인을 회통하였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알고 설법하실 수 있다. 가르침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으니, 여기에 있도다. 이런 까닭으로 석가여래께서 법을 위하여 나투시고 때를 기다려 드러내신다.
037_0326_a_01L3신(身)은 다르지 않은 까닭에 장소와 때를 항상 여의고, 만행(萬行)은 닦음이 없는 까닭에 방위에 따라 자재롭다. 자비의 힘을 움직여 보호하고 포섭하는 문을 열며, 그 6진(塵)을 인연하여 6도(度)를 열어 법의 일부분으로 인도하여 법신을 증득하게 하고 뒤섞인 번뇌와 습기는 이치에 입각하여 깨닫게 하나니, 이것이 진실한 반야의 뜻이다. 그러므로 자씨(慈氏)께서 잘 여쭈어 큰소리로 찬탄하여 말씀하였다. 하늘이 보배 꽃 드리우고 구름이 모여 신선의 덮개를 이루며, 감로의 물이 흘러내리고 광명이 어둠을 밝혀 방위의 얕고 깊음에 미혹한 자들로 하여금 다 자연의 지혜를 얻게 하며,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중생들은 능히 반야의 지혜에 통함이라. 일찍이 시험하여 그것을 논하여 선대의 유생들이 말하였으니, 성(誠)이란 스스로 이루어지고 도(道)는 저절로 이르는 것이다.
무릇 성이란 자기 안[內:내면]이 성실해지면 곧 힘쓰지 않고도 이치에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으며, 밖[外:외면]으로 다른 사람에게 성실하다면 곧 말하지 않아도 응하여지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나니, 그 안[內]이라는 것은 법을 증득하는 몸이요 그 밖이라는 것은 대비(大悲)의 힘이니, 덕이 나오는 극치이며 은밀하게 화육(化育)하는 공(功)이다. 크게 봄바람이 불어 만류(萬類)를 다 자라게 하고, 태양이 밝게 떠올라 낮이 되니 온갖 그늘이 다 없어졌다. 건곤(乾坤)의 쉽고 간명한 도리는 곧 대동(大同)이요, 신명(神明)이 그윽하게 돕는 정(情)을 누가 구별한다 말했으리오? 나아가는 길은 다르지만 끝내 하나에 이르나니, 그 이치는 본래 그러하다.
짐이 삼가 큰 계책을 받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기르고자 황극(皇極:大道)을 세워서 큰 꾀[大猷:大道]를 올리려 생각하고 멀리 신령한 자취를 생각하며 계합하기를 기약하였다. 그런데 왕사성의 미묘한 설법이 범문(梵文)에 오래도록 비밀스레 감추어졌고 한갓 병 속의 물을 쏟듯이 하고 싶었으나 아직 유협(遺夾)을 열지 않고 있었는데, 미언(微言)이 어둡지 않아 장차 혹 나를 일으킬까 하였다. 이에 계빈(罽賓) 사문 반야가 왕의 교지를 받아 선양하고 광택사(光宅寺) 사문 이언(利言)이 그것을 번역하였는데 그때 대덕이 있었으니, 자성사(資聖寺) 도액(道液)ㆍ예천사(醴泉寺) 초오(超悟)ㆍ자은사(慈恩寺) 응진(應眞)ㆍ장엄사(莊嚴寺) 원조(圓照)ㆍ광택사 도안(道岸)ㆍ서명사(西明寺) 원조(圓照)ㆍ장경사(章敬寺) 변공(䛒空)ㆍ서명사 양수(良秀) 등으로 그들은 법문에 으뜸이요 사람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들이었다. 바른 뜻을 증명하고 문장에 빛나고 이치가 깊어 석가의 보배성이 있는 곳을 알고 뭇 존자들의 대승교[滿字]를 식별하였다.
037_0326_b_01L정원(貞元) 4년 무진 12월 28일 서명사에서 번역을 완성하여 올리니, 모두 1부 10권이었다. 용신(龍神)이 돕고 보호하니, 부처님의 말씀[金口]을 전함에 따르는 것과 같고 범행을 닦는 무리가 보호하여 지니니, 호광(毫光:부처님의 몸에서 사방으로 빛이 비치는 모양)의 현현함과 다름이 없다.
짐이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생각을 씻고 우러러 종지의 근원[宗源]을 맛보고 일찍이 듣지 못했던 것을 들으니 진실로 희유하도다. 그러나 중생을 인도하는 취지는 유포하는 것이 먼저요, 백성은 진전(眞筌)에 의지하여 부질없는 세속에서 영원히 제도되나니 오직 한가한 날을 인연하여 이 경을 거듭 반복하다 보면 비록 법의 바다는 매우 깊을지라도 흐르는 물결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개략적인 것을 들어 장래 깨달음을 비추노라.
한때 박가범(薄伽梵:세존)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다가(迦蘭多迦)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다. 이때 많은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위계(位階)인 10지(地)에 머물러 10바라밀다가 이미 원만하였다. 또 많은 큰 필추가 있었으니 다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이미 이로움을 얻어 마음이 잘 해탈하였고 지혜도 잘 해탈하였다. 또한 아승기야(阿僧企耶)의 모든 유정(有情)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그때 자씨(慈氏)보살마하살이 이 모임 가운데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여기에 모인 대중 속의 모든 유정들은 빈궁하고 외로워 믿고 의지할 곳이 없이 생사에 유전하면서 애욕의 강물에 빠져 있다. 피안(彼岸)에 이르고자 하여 법을 듣기 위한 까닭에 세존을 뵙고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기를 원하나 능력이 없다.’
037_0326_c_01L그때 자씨보살은 매우 깊은 뜻을 여쭙고자 하였다. ‘일체 유정이 어떻게 보리심을 일으켜야 부처를 구(求)하며, 결정코 3무수겁(無數劫) 동안 피로와 싫증을 내지 않을까? 지금 부처님 세존의 뜻은 알기 어렵고 광대하여 매우 깊으나, 문구(文句)가 교묘하여 원만함을 구족하였으니, 유정의 인과(因果)의 차별에 따라 수기를 주어[記別] 속히 위없는 보리를 구하게 하리라.’ 이에 미륵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리하고 6근(根)을 잘 조복하여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모두 적정하였다. 그 6근은 백 가지 복에서 생기는 미묘한 상(相)인 80종호(種好)로 장엄되어 3무수겁 동안 원만하였고 마하반야바라밀다 등 백천만의 태양 광명의 상이 그 몸을 장엄하니, 일체 유정이 우러러 쳐다봄에 싫어함이 없었으며, 비할 바 없는 부처님의 과(果)인 깨달음에 가까웠다. 이와 같은 몸으로써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오체(五體)를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또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된 손을 새로 피어난 연꽃처럼 합장하여 공경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시여, 세존께서는 일념 중에 능히 일체 유정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마음을 아시니, 어떤 유정은 여쭘으로 인하여 청정한 마음을 얻고, 혹은 어떤 유정은 수기를 받을 때 수다원과(須陀洹果)에서부터 아라한과나 벽지불과(辟支佛果)에 이르기까지를 얻고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얻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께 우러러 여쭈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분별하여 해설하여 주옵소서. 세존께서는 지금 3세(世)의 유정이 의지할 주인이오니 유정이 대승행을 행함에 그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로워질 것이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자비로써 불쌍히 여기시어 얻으신 감로법(甘露法)을 홀로 수용하지 마시고 그 맛을 함께하게 하여 주소서.
037_0327_a_01L어떻게 하면 모든 유정을 대열반의 안온한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며, 이들 유정은 마땅히 어떤 일을 하여야 일체지에서 물러나지 아니함을 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보시[檀]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원만하게 하겠습니까? 또 이 반야바라밀다는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다의 모체가 됩니다. 어떻게 닦고 익혀야 능히 원만해지겠습니까? 또 이 큰 서원을 어떻게 드러내고 발하며, 또 모든 유정은 열반 피안을 어떻게 닦고 익혀야 하는지를 세존이시여, 분별하여 해설하여 주소서. 일체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여 환희를 얻게 하고자 하나이다.”
그때 박가범께서 자씨보살마하살을 칭찬하시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네가 지금 일체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려고 이 깊은 뜻을 묻는구나. 모든 유정에게 선업을 닦도록 권하려는 까닭이요, 항상 유정을 위해 부지런히 닦고 익히게 하려는 까닭이요, 너는 지금 일심으로 널리 유정이 단번에 얽매인 쇠사슬을 끊고 부지런히 법을 구하게 하려는 까닭이요, 너는 지금 이 대자비심으로 3아승기겁에 여섯 가지 바라밀다의 큰 바다 같은 법을 원만히 하려는 까닭이요, 너는 지금 이미 보리도량의 열반 언덕에 가까운 까닭이다. 마치 명성(明星)이 사라지면 빛나는 태양이 곧 비추는 것처럼 너도 지금 또한 그러하여 부처님의 태양[佛日]을 짓는구나. 너는 이제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생각하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아주 깊은 뜻을 구족하게 분별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잘 사유하니, 생사의 험한 길 가운데서 잘 관찰하여 믿고 의지할 것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짓지 말 것이다. 비유하면 큰 바다로 나가는 배에 선장이 없으면 그 속의 유정은 표류하거나 빠지고 말 것이다. 물결이 일렁이고 소용돌이치면 끝내 부서져 가라앉게 되는데, 이러한 온갖 어려움으로 항상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길상스럽고 위없는 선장[船師]을 구하여 믿고 의지하는 것과 같다.
037_0327_b_01L또 모든 유정은 생사 가운데서 항상 겁내고 두려워하는 일이 많아 그 까닭으로 힘 있고 세력 있는 사람을 구하여 의지해야만 원수의 침해를 입지 아니하니, 설령 그 원수에게 커다란 힘이 있을지라도 이 사람이 왕에 의지하여 붙으면 그 원수는 두 번 다시 능히 손해를 끼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그 원수는 이미 세력을 보았으므로 영원히 원한의 마음을 버리고 순종하며, 바르게 교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일체 유정도 이와 같아 각각 이렇게 생각하되, ‘누가 나에게 귀의처가 되어 쇠약한 근심을 없애고 안락을 얻게 해줄 수 있을까? 이 삼계 5도(五道) 가운데 하늘ㆍ용ㆍ야차ㆍ아수라ㆍ가루라ㆍ건달바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과 사람 아닌 것 등 모든 무리 속에서 귀의처를 구하고 찾아도 능히 귀의처가 될 자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그 모든 하늘 등은 스스로도 능히 생사의 쇠사슬을 벗지 못하였고, 번뇌에 얽매어 삼계에 유전하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온갖 고통을 받으며, 모든 두려운 일을 삼키며 탐욕의 그물에 얽혀 있으니, 하물며 능히 나의 귀의처가 될 수가 있겠는가?
또 모든 하늘 등은 항상 갑옷과 투구와 전쟁의 장비를 갖추고 저 아수라에게도 두려움을 품는데 어찌 사람과 다른 모든 중생[趣]에게 있어서랴. 이로써 삼계 6도를 관찰하니 능히 나를 감당하여 이끌어 제도할 자가 없는 까닭에 마땅히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여야 하리라. 불ㆍ법ㆍ승을 제하고는 나를 구호할 자가 없다. 일체 유정이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열반락(涅槃樂)을 구하고자 하면 불보ㆍ법보ㆍ승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며, 이 인연으로 모든 유정은 불ㆍ법ㆍ승에 귀의하게 해야 한다.”
037_0327_c_01L그때 자씨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불보ㆍ법보ㆍ승보라고 이름하며, 어떻게 귀의합니까?”
037_0327_b_23L爾時,慈氏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云何名爲佛法僧寶?云何歸依?”
부처님께서 자씨에게 말씀하셨다. “불보(佛寶)란 곧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 몸이요, 다른 하나는 부처님의 덕이니라. 부처님의 몸이란,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 이미 과거 무량무변 아승기겁에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6도만행(六度萬行)을 원만히 닦고,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번뇌의 도적을 끊고 일체지를 얻어 등정각을 이루었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미묘한 공덕을 구족하였으므로 부처라 하느니라. 부처님의 덕이라는 것은, 곧 부처님 몸 가운데서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와 대희대사(大喜大捨)와 3해탈문(解脫門)과 세 가지 드러내 보여 인도함[三示導]과 6신통과 마음을 따르는 삼매[隨心三摩地]와 네 가지 지혜[智]와 두 가지 지혜[智]와 아는 경계[知境]에서 떠나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모든 습기(習氣)를 여의며 공용(功用)이 없는 도(道)로써 여여한 변화[如如化]를 일으키며,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노닐거나 멈춤에 자재롭고 장애가 없으며, 한 알의 겨자씨에 능히 한량없는 묘고산(妙高山)을 들여놓으니, 이와 같은 무량무변한 공덕을 모든 부처님 여래는 다 구족하시느니라.
037_0328_a_01L또 1겁에서 무량겁에 이르도록 수명이 자재하여 능히 줄어듦이 없으며 신족통[神境通]으로 왕래하여 변화를 나타내시는 것이 장애가 없고 마음대로 자재롭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다니시는 성읍이나 부락에 먼저 미묘한 금색광명을 놓아 그곳에 비추면 그곳에 있는 중생으로서 이 빛을 받는 자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 다 없어져 나으며, 마음의 울화가 없어지고 몸이 맑고 시원해진다. 등이 굽은 자는 펴지고 절름발이는 걷게 되며, 눈이 어두운 이는 보게 되고 귀먹은 이는 듣게 되고 벙어리는 말할 수 있게 되며, 마음이 어지러운 이는 곧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며 귀신병ㆍ미친병ㆍ도깨비병 등 온갖 병이 다 없어지고 치유된다. 벌거벗은 자는 옷을 얻고 교만한 마음이 있는 자는 겸손해지게 되며, 근심하고 고뇌하는 자는 마음이 안온해지고 길을 잃은 자는 바른 길을 얻게 된다.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음식을 얻고 죄수로 묶인 자는 풀려나고 겁에 질린 자는 두려움이 없어진다.
또 구릉이나 구덩이나 산이나 물, 언덕은 마치 손바닥으로 친 것처럼 평평해지며, 저택의 문이 낮고 작은 것은 자연히 높고 커지며 좁은 길은 모두 다 넉넉하게 넓어지며, 저잣거리도 자연히 활짝 열리고 더럽고 부정한 것은 즉시 향기롭고 맑아지며 가시나 독가시나 기와나 조약돌ㆍ모래ㆍ돌 등이 다 나타나지 않게 된다. 햇빛이 내리쬐는 극심한 더위에도 고통을 받지 않으며 향기로운 바람이 불고 화창하며 온갖 먼지가 날리지 않는다. 백학과 공작ㆍ앵무ㆍ사리(舍利:황새)ㆍ가릉빈가(迦陵頻伽)ㆍ구지라(拘枳羅)ㆍ구나라(拘那羅)ㆍ명명(命命) 등의 새는 그 소리가 아름답고 미묘하여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물소[水牛]ㆍ검정소[犁牛]ㆍ들소[犎牛]ㆍ죽우(竹牛) 등이 각각 자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미묘하다. 그리고 공후(箜篌)ㆍ피리ㆍ비파ㆍ북ㆍ부는 악기 등 이와 같은 악기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린다. 그 밖의 갖가지 교묘하고 희유하고 기이하며 모든 신통스러운 일이 다 변화하여 나타난다. 이와 같은 온갖 희유한 일이 날마다 각각 달리 나타나되, 수승한 것이 더하여지니 이 모두가 여래의 위신력이다.
037_0328_b_01L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세존과 부처님의 공덕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의심하면 마땅히 부처님과 공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말해야 한다. 비유하면 등불의 기름과 심지는 불빛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기름과 심지를 떠나서 달리 불빛이 없는 것과 같다. 만약 등불의 빛이 기름과 심지를 떠나 있다고 말하면 빛이 비치는 곳은 모두 다 타버릴 것이다. 부처님 몸과 공덕도 이와 같으니, 이 미묘한 몸은 바로 부처님 공덕이요, 번뇌가 없는 법신이라 나와 남이 수용하여 평등하게 의지한다. 그러나 부처님 몸 또한 이 몸이 아니요 이 몸을 떠나 밖에 달리 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몸이란 것은 밖의 물건과 같아 4대(大)의 모양이 있다. 그러므로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만약 모양이 아니라면 큰 허공과 같으며, 큰 허공과 같다면 성품이 곧 이에 항상하여 방편의 허물이 없다. 자기 성품이 청정하여 물들거나 집착함도 없으며, 매우 깊고 한량이 없으며, 변하거나 바뀌는 것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미묘하고 고요하다. 한이 없이 진실하고 항상한 공덕을 갖추어서 모든 희론이 끊어졌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하여 아실 바요 다른 이는 미칠 바가 아니며, 또한 비유로써 비교하며 헤아릴 것도 아니니라.
자씨야,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몸이란 곧 이 과거ㆍ미래ㆍ현재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신의 모양이다. 부처님의 보신(報身:과보신)이란 모든 여래가 3무수겁 동안 닦아 모은 한량없는 복과 지혜의 양식[資糧]으로서 일어난 한없는 진실한 공덕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하고 모든 근(根)의 상호(相好)의 지혜 광명이 두루 법계에 퍼지니, 다 출세간의 무루 선근에서 생긴 까닭이다. 불가사의하여 세간의 지혜를 뛰어넘어 근기가 무르익은 유정을 위하여 이런 모양을 나타내니, 다함이 없는 법을 펼쳐서 널리 끝없이 이익하게 하느니라. 자씨야, 마땅히 알라. 이것은 곧 여래의 원만한 보신이니라.
037_0328_c_01L화신(化身:응신)이란 저 유정을 위하여 그를 따라서 응하여 변화한 것이니,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변화한 부처님의 몸[化佛身]을 나타내신다. 그 변화한 몸은 혹 지옥에서 그 몸을 나타내어 유정을 제도하여 온갖 고통을 여의게 하며, 정법으로써 인도하여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고, 사람이나 하늘에 다시 태어나서 수승한 쾌락을 받게 하며, 부처님 법 가운데서 믿음의 즐거움을 깊이 일으켜 부처님 법의 일부분을 얻고 성인의 도과를 얻게 한다. 혹은 아귀의 갈래에 태어나 그 유정을 교화하여 목마름과 굶주림과 온갖 핍박을 여의게 하여 정법으로써 교화하여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여 사람이나 하늘에 다시 태어나서 모든 쾌락을 받고 깊이 불법에 들어가서 성인의 도과(道果)를 얻게 하느니라.
혹은 축생으로 변화하여 그 무리에 있으니, 가루라의 몸이 되기도 하고 용의 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사자ㆍ코끼리ㆍ말ㆍ곰ㆍ호랑이ㆍ표범ㆍ승냥이ㆍ이리ㆍ들개[野干]ㆍ여우[狐]ㆍ토끼ㆍ독사ㆍ뱀ㆍ살모사ㆍ전갈ㆍ물고기ㆍ자라ㆍ큰 자라ㆍ악어ㆍ백학ㆍ공작ㆍ봉황ㆍ원앙ㆍ앵무ㆍ사리(舍利) 등 여러 가지의 몸이 되어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서로 해치는 마음을 떠나 자비한 마음으로 서로 대하게 하며, 능히 갖가지 모든 두려운 일을 여의게 하고 정법을 보여 불ㆍ법ㆍ승을 깊이 믿어 즐거이 귀의하게 한다.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서 모든 쾌락을 얻고 불법의 일부분을 얻어 성인의 도과를 얻게 한다.
혹은 다른 국토에서 유정으로 교화하여 해와 달의 빛이 능히 비치지 못하는 곳인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부처님 법이 없는 곳에 정법을 세워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머리를 삭발하고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받아 비구[苾芻]ㆍ비구니[苾芻尼]나 혹은 우바새[鄔波索迦]ㆍ우바이[鄔波斯迦]가 되게 하여, 승방을 세워 정법을 잘 지키고 한량없고 수없는 유정을 편안하게 하며, 사람과 하늘을 열반의 피안에 안치하여 과(果)를 증득하게 한다. 혹은 하늘의 세계에 태어나 그곳의 유정을 교화하여 5욕(欲)을 여의어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게 하고 정법으로 인도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고,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깊이 정법에 들어가 열반 해탈의 과를 증득하여 머물게 한다.
037_0329_a_01L혹은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니 왕국의 석(釋)씨 집안에 태어나서 교묘한 방편으로 모든 유정을 교화하여 삼계의 번뇌와 근심과 걱정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끊어 없앤다. 일부러 현재의 생을 받아 성을 넘고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서 길상초(吉祥草)를 받고 도량의 금강좌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하고 등정각을 이룬다. 그리고 유정을 교화하기 위하여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어 큰 광명을 놓아 두루 일체에 펴서 세간을 비추며,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모두 원만하게 하며 혹은 고요함[寂靜]을 나타내어 대열반에 드시니, 이것을 곧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이와 같이 가지가지 선교방편이 무량무변하니, 이것은 다 여래의 자재로운 신통력이며, 이것이 곧 3신(身)의 체(體)로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이때 박가범께서 자씨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부처님께 귀의하는 자는 모든 부처님의 청정법신에 귀의해야 하며, 만약 부처님의 법신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나와 저 일체 유정이 이와 같은 공덕의 법신을 얻게 하여지이다’라는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왜 이와 같은 원을 말하게 하는가? 부처님의 응신(應身)은 찰나 동안에 변천하고 화신불(化身佛)은 속히 열반에 들며, 공덕법신(功德法身)은 고요하게 항상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정법신에 귀의하는 것이니, 법신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과거ㆍ현재ㆍ미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든다면 곧 함께 지옥의 모든 고통을 받을 것이요, 만약 유정과 같이 해탈하면 비록 지옥에 처하여도 열반과 다름이 없느니라.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 법신에 귀의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니 구경에는 여여(如如)하여 체(體)가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법신은 바로 참된 안락이니, 이런 까닭으로 다만 부처님 법신에 귀의하게 하는 것이다.
037_0329_b_01L또한 자씨여, 무엇을 청정법보라고 이름하는가? 법보라고 말하는 것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 번째 법보는 열반ㆍ감로ㆍ해탈이니,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을 체의 성품으로 삼아서 능히 온갖 생ㆍ노ㆍ병ㆍ사ㆍ근심ㆍ슬픔ㆍ고뇌를 다한다. 무엇이 태어남의 고통인가? 부모가 혼인하여 한 몸이 되었을 때 부정한 종자가 모태 가운데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업력의 바람을 가지고 아홉 달을 지나는데, 머물러 있는 곳은 캄캄하게 어두워서 빛이라고는 전혀 없다. 오장육부에서 살면서 커가되, 더럽고 부정한 8만 가지 벌레와 섞여서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어머니를 따라 행하고 입은 능히 말을 못하고 눈은 볼 수 없으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운 가지가지 모든 고통이 몸과 마음을 절실하게 핍박한다.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모든 중생을 자재할 수 없게 만드는 까닭에 태어남의 고통이라고 이름한다. 비록 이런 고통을 받을지라도 한 가지 덕이 있는데, 어떠한 원수들도 그를 보지 못하고 또한 능히 시비(是非)와 잘못이나 죄악을 말하지 않으니, 비할 데 없는 열반의 안락한 법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고통이 없느니라.
037_0329_c_01L무엇이 늙음의 고통인가? 중생이 젊음에서 점차 늙어감에 세월이 흘러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오니, 충실하던 것은 한결같이 차차 감소해지며 근력이 쇠하여 이지러져서 가고 멈춤에 떨리고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은 주름진다. 눈과 귀는 흐리고 어두워지며, 이는 빠져 성글어지고, 얼굴은 추하고 비루해지고, 몸은 구부러져 사람들이 불쾌하고 천하게 여기게 된다. 모든 말과 가르침은 말하자마자 곧 잊어버리고 몸은 무거워서 짐을 진 것 같으니라. 비유하면 등불에 기름이 이미 다하면 오래지 않아 꺼지는 것과 같다. 늙음도 이와 같아 왕성하던 기름이 다하면 오래지 않아 죽음에 이른다. 또 소막차(蘇莫遮:가면) 모자를 사람의 머리와 얼굴에 쓰면 모든 유정이 그것을 보고 희롱하는 것처럼 늙음의 소막차도 이와 같아 한 성읍(城邑)에서 다른 성읍에 이르름에 일체 중생이 쇠약하고 늙은 모자를 쓴 것을 보고 모두들 희롱하니, 이 인연으로 늙음은 큰 고통이 되는 것이다. 죽지 않고 약으로 능히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제외한다. 비록 늙음의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의 귀신에 기도하여 항상 장수하기를 원하니, 비할 데 없는 열반의 안락한 법 가운데는 이런 늙음의 고통이 없느니라.
무엇이 병의 고통인가? 땅과 물ㆍ불ㆍ바람이 서로 어긋나고 해치며, 온갖 고통이 그 몸에 와서 모이니, 모든 중생은 젊은이나 늙은이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병의 고통을 지니고 있다. 안락하고 몸에 맞는 수승하고 미묘한 5욕(欲)과 금ㆍ은ㆍ보배ㆍ가족ㆍ권속을 모두 다 버리며 온갖 가르침을 남녀 친척이 따르지 아니하며 모든 원수가 짐짓 다가와서 친한 듯 아부하니, 이와 같은 병의 고통을 모두 원하거나 구하지 아니한다. 이로써 병은 큰 고통임을 알아야 한다. 안락한 열반의 비할 데 없는 법 가운데는 청정하고 고요하니, 이런 병의 고통이 없느니라.
또한 자씨여, 무엇이 죽음의 고통인가? 중생이 기운이 끊어지고 알음알이[識]가 없어져서 지각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모든 고통 가운데서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나고 늙고 병듦의 고통은 다섯 갈래 가운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일정하지 않으나 이 죽음의 고통은 모두 다 지니고 있다. 비유하면 빈곤한 고통은 영화로움으로 능히 물리칠 수 있고, 원망과 미움의 고통은 친근하고 사랑함으로써 능히 물리칠 수 있지만, 만약 죽음의 고통이 이르면 늙은이와 젊은이,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 귀한 이와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 몸을 버리고 어둡고 컴컴한 곳에 들어간다. 의복이나 눕는 도구며 일체 재물이나 보배는 쓸모가 없어지고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낸 채 가게 된다. 게다가 반려할 자 없고 돈과 재물로도 면할 수 없으며 하소연할 곳도 없다.
037_0330_a_01L아, 무상(無常)이 능히 이런 해를 끼친단 말인가. 비루하고 추악함이 너무 커서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않으며, 삼계 중생은 이것을 벗어나거나 떠나지 못한다. 누구나 죽음의 침노를 받으니 무엇으로 구하랴. 설령 전륜왕이나 나라연(那羅延)의 힘이라도 다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마땅히 알라. 죽음의 고통은 한량없고 끝이 없으니, 이로써 죽음이 커다란 고통임을 관찰한다. 해탈 열반의 비할 데 없는 법 가운데는 고요하고 안락하여 이러한 죽음의 고통이 없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거센 강물에 빠져서 떠돌다가 높은 산에 오르면 겁나고 두려운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중생도 그러하여 항상 일체 생사의 거센 강물에 빠져 표류하다가 열반의 산에 오르면 생사의 두려움을 여의게 된다. 또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능히 지독한 열과 먼지와 더러움과 같은 장애를 없애주어 사람들이 안락해지고 몸과 뜻이 맑고 시원해지며, 온갖 초목이 우거지고 과실이 열리는 것과 같이 여래의 법의 비도 다시 이와 같아 능히 일체 번뇌의 지독한 열을 없애주시니, 중생이 안락해지고 해탈하며 맑고 서늘해진다. 그리고 일체의 밝고 깨끗한 선의 종자를 번성하게 자라게 하며 과실을 맺어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이 인연으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무상의 몸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시느니라.”
부처님께서 자씨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라. 첫 번째 법보는 바로 마하반야해탈법신(摩訶般若解脫法身)이니라.
037_0330_c_10L佛告慈氏:“當知第一法寶卽是摩訶般若解脫法身。
또한 자씨여, 마땅히 알라. 두 번째 법보는 곧 지계ㆍ선정ㆍ지혜의 모든 미묘한 공덕이니라. 말하자면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니, 4념주(念住)와 4정단(正斷)과 4신족(神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성도(聖道)이니라. 이 37가지 법은 앞의 청정법보에 방편이 된다. 무엇을 방편이라 하는가? 이 법을 닦아서 능히 그 청정법신을 증득하니 이것이 곧 두 번째 법보임을 알아야 한다.
037_0331_a_01L또한 자씨여, 무엇을 세 번째 법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과거 무량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설하신 정법이고, 내가 지금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니라. 말하자면 8만 4천 모든 미묘한 법장[法蘊]이 인연 있는 중생을 조복하고 근기가 무르익게 하고, 아난타 등 모든 제자가 한 번 듣고 다 기억하게 함이다. 다섯으로 나누니, 첫째는 소달람(素呾纜:經)이요, 둘째는 비내야(毘奈耶:律)요, 셋째는 아비달마(阿毘達磨:論)요, 넷째는 반야바라밀다요, 다섯째는 다라니문이다. 이 다섯 가지 법장은 유정을 교화하되 응하는 바에 따라서 제도하여 그들을 위하여 설하느니라.
만약 그 유정이 산림(山林)에 있기를 즐기고 항상 한적한 곳에 살며 삼매[靜慮]를 닦는다면 그를 위해서는 소달람장을 설하고, 만약 그 유정이 위의를 즐겨 익히고 정법을 보호하여 가지며, 한맛으로 화합하여 오래 머물게 하면 그를 위하여 비내야장을 설하며, 만약 그 유정이 정법 설함을 즐겨하고 성품과 모습을 분별하며, 순환하면서 연구하여 구경에 매우 깊어지면 그를 위하여 아비달마장을 설한다. 만약 그 유정이 대승의 진실한 지혜를 익히기를 즐겨하며 아집과 법집의 분별을 여의면 그를 위하여 반야바라밀다장을 설하며, 만약 그 유정이 능히 계경(契經)이나 조복(調伏)이나 대법(對法)이나 반야를 지니지 못하거나 혹은 다시 유정이 모든 악업을 짓되, 4중(重:비구의 네 가지 중죄)이나 8중죄(重罪:비구니의 여덟 가지 중죄)나 5무간죄(無間罪:五逆罪)나 『방등경(方等經)』을 비방하는 일천제(一闡提) 등 가지가지 중죄를 지으면, 그것을 소멸하게 하여 속히 해탈을 돈오(頓悟)하여 열반을 얻게 하고자 그를 위하여 모든 다라니장을 설하느니라.
037_0331_b_01L이 다섯 가지 법장을 비유하면 우유[乳]ㆍ타락[酪]ㆍ생소(生酥)ㆍ숙소(熟酥)ㆍ미묘한 제호(醍醐)와 같으니, 계경(契經)이란 우유와 같고 조복은 타락과 같고 대법(對法)의 가르침이란 저 생소와 같고 대승반야는 숙소와 같으며 총지문(摠持門)은 비유하면 제호와 같으니라. 제호의 맛은 우유ㆍ타락ㆍ연유[酥] 가운데 미묘하기가 제일이라 능히 모든 병을 없애며,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안락하게 한다. 총지문이란 계경 등 가운데 가장 제일로서 능히 무거운 죄를 없애어 모든 중생이 생사를 해탈하고 속히 열반의 안락한 법신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또한 자씨여, 내가 멸도한 후에 아난타로 하여금 내가 설한 경장[素呾纜藏]을 받아지니게 하고, 오바리(鄔波離)는 설한 율장[毘奈耶藏]을 받아 지니며, 가전연[迦多衍那]은 설한 논장[阿毘達磨藏]을 받아 지니고 문수사리[曼殊室利]보살은 설한 대승반야바라밀다를 받아 지니며, 금강수(金剛手)보살은 설한 매우 깊고 미묘한 모든 총지문을 받아 가질 것이니, 이와 같은 교문(敎門)은 능히 유정의 길고 긴 생사의 번뇌라는 어둠을 없애고, 속히 여의고 벗어나 해탈의 과(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밝은 등불은 능히 어둠을 없애어 길을 보게 하듯이 부처님도 이와 같아, 지혜의 횃불로 능히 유정의 열 가지 착하지 않은 어둠을 비추어 착한 도를 보게 한다. 설령 그 유정이 재물과 보배를 아껴도 이 법을 듣고서 곧 능히 모든 빈궁한 이에게 은혜를 베풀며, 만약 악업 중생이 이 법을 들으면 악을 버리고 선을 닦으며, 성내는 자는 곧 능히 인욕하고, 게으른 유정이 들으면 정진하며, 산란한 중생이 들으면 고요하여지고, 어리석은 유정이 이 법을 들으면 곧 지혜를 내고 지혜를 얻고 나면 다 능히 마음을 돌려 가지가지 선을 닦느니라. 또 모든 유정은 이 법을 들으면 악으로 나아가는 길은 닫고 열반의 길을 여느니라. 마치 단 이슬이 해탈의 열매를 얻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라. 이것이 곧 세 번째 법보이니라.
037_0331_c_01L이 세 가지 법보는 일체 중생이 귀의해야만 할 무위(無爲)의 법보로써 일체 법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가장 우수하니, 무위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생사의 큰 고통의 바다 가운데서 능히 배와 뗏목이 되고 능히 유정을 위해 감로의 좋은 약이 되기 때문이니라. 또 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불ㆍ보살이 3무수겁 동안 6도(度) 만행으로 증득한 과(果)가 이와 같이 묘법의 공덕이 원만함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무위의 법보에 귀의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중생이 경을 받아 가진다면 마땅히 이런 서원을 세워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은 법보에 귀의하기 원하나이다.’ 이 법에 귀의하고 나서는 다섯 갈래의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또한 ‘나도 지금 귀의하이기 원하나이다’라는 서원을 세우기를 기원하며, 또한 유정으로 하여금 이 공덕의 법에 안주하게 하여 이끌어서 열반의 진실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게 하느니라. 자씨여, 마땅히 알라. 이것을 이름하여 세 번째의 법보라 하느니라.
또한 자씨여, 무엇을 진실한 승보(僧寶)라 이름하는가? 승보라 하는 것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제일의승(第一義僧)이다. 말하자면 모든 부처님의 성스러운 승가는 여법하게 머물러서 볼 수도 없고 잡지도 못하고 파괴하지도 못하고 불에 태워서 해를 입힐 수도 없으니, 불가사의한 일체 중생의 진실한 복전(福田)이니라. 비록 복전이 되나 받고 취할 것이 없고, 모든 공덕의 법은 항상하여 변하거나 바뀌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것을 제일의승이라 이름하느니라.
두 번째의 성스러운 승가[聖僧]란, 말하자면 수다원향(須陀洹向)ㆍ수다원과(果), 사다함향(斯陀含向)ㆍ사다함과, 아나함향(阿那含向)ㆍ아나함과, 아라한향ㆍ아라한과, 벽지불향(辟支佛向)ㆍ벽지불과와 8대인각(大人覺)과 3현10성(三賢十聖)이니, 이와 같은 것은 것을 이름하여 두 번째의 승보라 하느니라.
037_0332_a_01L세 번째의 복전승(福田僧)이란, 말하자면 필추와 필추니 등이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지혜 법문을 많이 들어 마치 하늘의 의수(意樹)와 같이 능히 중생에게 그들을 드리워주며, 또한 광야의 자갈밭에서 목말라 물을 기다릴 때 때마침 하늘에 구름이 덮였다가 때 맞춰 감로의 비를 내려 충분히 만족해지는 것과 같고, 또한 일체의 보배가 큰 바다 가운데서 나오는 것과 같다. 복전의 승보도 이와 같아서 능히 유정에게 안온하고 쾌락함을 주며, 또한 이 승보는 청정하고 때가 없어서 능히 중생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어둠을 없애니 마치 보름밤에 꽉찬 달빛과도 같아 일체 유정이 우러러 쳐다보지 아니함이 없다. 또 마니보주와 같아 유정의 온갖 착한 소원을 만족하게 해주니, 이와 같음을 이름하여 세 번째의 승보라 하느니라.
이 세 가지 승보는 일체 유정이 마땅히 귀의해야 할 무의의 승보이니라. 이 세 가지 승보에 일체 유정은 어떻게 귀의해야 하는가?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마땅히 제일의제(第一義諦)의 무위승보에 귀의하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이 무위에 항상 머무는 승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승보는 무루요 무위며, 변하지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스스로 증득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무루의 승보에 귀의하여 능히 유정의 일체 고통을 없애주는 까닭이니라. 또한 유정들이 마땅히 이와 같은 무루공덕을 얻기 원해야 하며, 이 법을 얻고 나서는 삼승법을 연설하여 유정들을 제도하고 내가 귀의하는 불ㆍ법ㆍ승보는 3악도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또한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기를 기꺼이 원하지 아니하며, 맹세코 유정을 생사의 고통에서 구원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곧 승보에 귀의한다고 하느니라.
037_0332_b_01L 또한 자씨여, 만약 중생이 3보에 귀의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을 낼 것이니라. 나의 지금 이 몸은 이미 사람으로 태어나서 8난(難)을 여의고 얻기 어려움을 능히 얻었으니, 좋은 방편으로 마땅히 수승하고 미묘한 법을 익혀야 한다. 만약 내가 이 같은 서원을 어기고 선한 법을 구하지 아니하면 곧 스스로를 속인 것이 될 것이며, 또한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 보배가 있는 곳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으리라. 이와 같이 불ㆍ법ㆍ승보에 귀의하여 고통의 방편에서 벗어날 것이다. 만약 귀의하지 아니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오. 이미 이런 것을 알고 나면 모름지기 힘써 정성스럽고 은근하게 닦고 익혀서 속히 원하는 것을 성취하여 착한 법이 이미 이루어지면, 과거의 죄를 마땅히 참회하여 없애고 다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비롯함이 없는 옛날부터 나고 죽음을 반복하여 온 이래로 몸ㆍ입ㆍ뜻의 업으로 지은 온갖 죄는 한량없고 끝이 없으나 다 허망하고 뒤바뀐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부모나 친교사(親敎師:和上)ㆍ스승ㆍ어른ㆍ불ㆍ법ㆍ승보의 존경할 만한 곳에서 지은 모든 죄를 지금 다 참회합니다.’
또 두 가지 일로써 모든 죄를 지어서 지극히 중한 악업이 묘고산(妙高山)과 같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친애하는 것이요, 둘째는 원망하며 미워하는 것이다. 만약 생사의 위급하고 험난한 가운데서 그 두 종류로 유정을 원망하고 친애하면 나의 몸에는 능히 이익됨이 없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두루 그것을 관찰해야 할 것이다. 그와 나의 몸이 결국엔 마멸(磨滅)되고 말 것인데 내가 어떻게 그런 죄를 짓겠는가.
037_0332_c_01L또한 시방세계 일체 유정에게 모든 선업을 짓고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독각(獨覺)ㆍ성문(聲聞)ㆍ부처님 그리고 제자와 모든 어질고 성스러운 이들을 내가 다 따라서 기뻐할 것이다. 또한 시작이 없는 생사를 돌고 돌아 다섯 갈래의 세계에서 몸을 받아 한량없이 원망하고 친애하나, 나에게는 일찍이 털끝만큼의 이익되는 일이 없었고 현재와 미래도 또한 얻지 못하는데, 내가 처음부터 그 원망과 친애 때문에 지은 모든 죄를 나는 스스로 받기를 원하며 맹세코 다른 일체 중생을 끌어들이지 아니할 것이다. 만약 내가 무거운 병이 들어 친애하는 사람을 구했을 때, 비록 자비로운 마음으로 돌보고 살피며, 나의 몸을 붙잡고 시중들되 목욕할 때는 만지고 닦으며 음식을 공급하여 주고, 병들고 야윈 사람에겐 약과 의원이 되어 여러가지로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내 몸에 병든 것을 대신할 자가 없는데, 하물며 미래에 누가 능히 생사의 큰 고통에서 구해주겠는가. 그리고 이 몸은 현세에도 의지할 곳 없고 믿을 곳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미래이겠는가. 내 몸이 이미 그러하니 유정도 또한 그러하여 나와 남이 다 의지할 것이 없느니라. 이 때문에 진실한 3보에 귀의하여야 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항상 머무는 까닭이니라. 비유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 험난한 곳에 처하면 힘 있는 자를 구하여 구호를 받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도 또한 그러하여 생사의 험난함에 처하면 3보에 귀의하여 이로써 주인을 삼아야 바야흐로 생사의 큰 강을 건널 것이니라. ‘내가 만약 얻고 나면 또한 그 주인이 되어 일체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보호하고 덮어 주리라’고 이와 같이 크게 서원하는 자는 큰 신심을 얻게 되니, 부처님 앞에 길게 꿇어 앉아 합장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이렇게 불ㆍ법ㆍ승보에 귀의해야 한다. 비유하면 세간의 빈천한 사람은 일체 유정이 그를 보고 모두 경멸하고 일꾼으로 부리기를 꾀하여 가지가지로 꾸짖고 그 몸을 능욕(凌辱)하니, 이미 가벼이 천대받은 뒤에는 마침내 존귀하고 힘 있는 사람을 구하여 그를 주인으로 삼으면 곧 능히 가지가지 속임과 욕됨을 면하여 여의듯이, 유정도 또한 그러하여 혹 악도에 태어나거나 사람 가운데 있거나 항상 여러 가지 고통을 입어 그 몸을 핍박하지만, 이것을 면하여 여의려면 3보에 귀의하여야 할 것이다.
037_0333_a_01L이와 같이 모든 고통이 다 해탈을 얻으리니, 3보에 귀의하고 나서는 다시 이런 서원을 발하기를 ‘나는 일체 중생을 구호하여 생사의 대해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리라’고 한다. 마치 큰 상인이 모든 상인을 인도하여 광대한 광야의 모래 자갈의 험로를 지나 두려움이 없는 곳까지 이르게 하듯 3보의 도사(導師)도 이와 같아 유정을 적막한 광야에서 생사의 기나긴 밤을 지나 대열반에 이르게 인도하여 두려움이 없음을 얻게 하느니라. 자씨여, 마땅히 알라. 발심하여 수행하는 대승의 수행자는 이와 같이 3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