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박가범께서 이와 같이 정계바라밀다를 설하여 나타내시니 자씨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 발에 경례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안인(安忍)바라밀다를 수행하려면 어떻게 구하여야 원만하게 얻습니까? 그리고 이 안인은 다시 몇 가지가 있으며 만약 수행하면 그 공용(功用)은 어떠합니까? 저희들이 즐겨 들으리니 열어 보여 주소서.”
그때 부처님 박가범께서 자씨보살마하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그대는 지금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자 능히 이와 같이 깊고 깊은 의취(義趣)를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듣고 잘 그것을 생각하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야, 마땅히 알라. 생사와 열반은 다 평등하여 분별할 수가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고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만약 어리석고 천한 광란(狂亂)의 중생이 와서 꾸짖고 욕한다면 안인하며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유하면 취한 코끼리는 막아 제지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쇠갈고리로 그를 조복하여야 되느니라. 성내는 마음이라는 취한 코끼리도 이와 같아 인욕의 갈고리로 그것을 제어하며 조복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고 하느니라.
037_0365_a_01L또 만약 모든 규정이 저 36구지(俱胝)의 하늘ㆍ마귀ㆍ귀신ㆍ약차ㆍ나찰의 침해를 입을 때에도 보살은 오직 안인바라밀다로써 능히 그 마군을 깨뜨릴 것이며, 나아가 8만 4천 번뇌의 원적(怨賊)을 꺾어 복종시키고자 하는 자도 안인으로써 그를 없애야 한다. 비단 이와 같은 천마(天魔)의 대군과 번뇌의 원적만이 아니라 지극히 낮은 사소한 원적에 이르기까지 안인으로써 그를 조복해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고 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왕자가 왕의 법을 잘 익히는 것과 같아서 부왕이 세상을 떠나면 왕위를 이어서 마땅히 정법을 펴서 사방에 고한다. 그러면 온 천하가 한결같이 다섯 가지 정법으로 받들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생명을 끊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도둑질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탐욕과 삿된 행을 여읨이요, 넷째는 헛되이 속이지 아니함이요, 다섯째는 몫을 넘어서는 세금이나 재물을 부과하지 아니함이니라.
만약 왕의 경계 안에서 살생을 범한 자가 있으면 그 왕은 곧 제6분(分)의 죄(6분의 1)를 얻는다. 도둑질ㆍ삿된 행 및 거짓말도 이와 같으니, 무슨 까닭인가? 가령 법이거나 법이 아니거나 이것은 모두 왕이 근본이 되기에 죄나 복에도 제6분의 1은 다 왕에 속한다.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 마음은 국토요 대비(大悲)는 왕이라 다섯 가지 인욕하는 법을 경계 안에 선포하나니, 말하자면 때리고 욕하고 한스러워하고 성내고 희롱하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을 다 안인하느니라. 만약 어기고 범한다면 크고 중한 죄를 범하는 일이 된다.
037_0365_b_01L또 자씨여, 비유하면 농부가 종자를 심으려 할 때 물을 끌어와야 하므로 먼저 시내와 도랑을 파서 공을 들여가다가 중간에 산이나 돌을 만나면 뚫고 파되,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이에 중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보살마하살은 곧 이와 같지 않나니, 생사 유전하는 대광야에서 지혜의 도랑을 뚫어 감로수를 이끌어 오고자 하여 차례로 닦고 익히다가 성냄이라는 돌을 만나 치워버릴 방법이 없으면 오직 안인으로 자세히 살펴 관찰하여 그것을 뚫고 깨야 한다. 또 모든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는 항상 영락으로 장엄하지만 모든 부처님ㆍ법왕ㆍ대보살 등은 항상 안인의 영락으로 스스로 장엄하며, 만약 이치에 맞지 않게 속이고 배반하는 중생을 만나면 대비안인(大悲安忍)으로 그를 구호할 것이니라.
또 이 안인(安忍)은 비구ㆍ비구니의 스승과 모범이 되며, 믿음과 정진과 기억과 선정과 지혜를 나무숲으로 삼고, 정계(淨戒)를 가지와 잎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숲에 성냄의 불이 홀연히 일어나 지계[戒]의 가지와 잎을 태움에 멈추게 할 길이 없으면 안인의 비로 꺼서 없애어 현재와 미래의 일체 고난에 영원히 근심이 없게 한다. 안인하지 않는 자는 현세에서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누움에 안락함이 없거늘 미래세에 어찌 즐거움이 있으리오. 보살마하살은 안인의 힘으로 갑옷과 투구를 삼는다. 저 죄짓는 사람이 전다라(旃茶羅)가 되어, 성냄의 손으로 망상의 화살을 잡고 추악한 말이라는 화살을 놓아 안인의 갑옷을 쏜다. 그러나 그 화살은 저절로 꺾이어 안인의 갑옷과 투구를 조금도 다치지 못한 채 그 부러진 화살은 연꽃으로 변한다. 마땅히 알라. 보살은 이와 같이 수행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 하느니라.
037_0365_c_01L또 비유하면 세간의 아가타약(阿伽陀藥)이 능히 나와 남의 온갖 독한 병을 없애주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이 안인이라는 아가타약으로 능히 나와 남의 모든 성냄과 번뇌의 독한 병을 고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비유하면 상인이 세간의 명월보주(明月寶珠)를 가지고 큰 광야를 건너갈 때 모래와 자갈이 펼쳐진 물이 전혀 없는 곳을 지나는데, 달밤에 그 구슬을 가지고 달을 향하면 구슬이 그릇이 되어 거기서 물이 나와 상인이 그것을 마시고 광야를 건너가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러하여 이 안인의 명월보주를 가지고 자갈이 펼쳐진 생사의 대광야를 건너갈 때, 지혜의 물이 끊어진 번뇌의 장소에 이르면 이에 부처님 지혜라는 달과 인욕이라는 구슬을 가지고 부처님 법의 물을 받들어 보살이 그것을 마시고 생사를 벗어나 열반의 언덕에 이르느니라.
또 자씨여, 비유하면 대지는 모든 초목이 의지하여 살아가고 일체 유정은 초목에 의지하여 살아감과 같으니, 안인도 그러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10지(地) 가운데에서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닦고 익히며, 거기에 의지하여 생장하고 이로 말미암아 머무느니라. 또 아주 높고 넓은 사다리가 있어서 중생이 바로 범천(梵天)에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이 안인의 사다리가 높고 큰 것도 그러하여 보살은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佛]에 오르느니라. 또 솜씨 좋은 화가가 가지가지 형상을 그려서 그림을 완성하는 것과 같이 안인의 화가도 이와 같아 공덕으로 장엄하여 원만히 성취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허공이 크고 두꺼운 구름을 일으켜 비를 퍼부으면 폭포수가 흘러넘쳐 모든 초목ㆍ꽃ㆍ과일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다가 항하[殑伽河]에 흘러들어서 점점 큰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러하여 마음이 허공과 같아 능히 일체의 대비(大悲)의 두터운 구름을 일으켜서 큰 법의 비를 내리어 안인을 폭포수같이 흘러내리니 온갖 성냄의 초목과 어리석음의 꽃과 과일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다가 지혜의 강에 들어가 이윽고 열반의 청정한 큰 바다에 이르게 되느니라.
037_0366_a_01L또 보살이 비록 생사에 유전하는 모든 고통을 보고 안인의 힘으로 그것을 대신 받아서 무량겁을 지날지라도 싫어하거나 게으름으로 사양하지 말 것이며, 또한 포기하거나 저버리지 않으면 열반을 취하게 되느니라. 다시 다음에 보살마하살은 안인의 힘으로 능히 모든 머리ㆍ눈ㆍ골수ㆍ몸통ㆍ살갗ㆍ수족 및 생명을 베푸는 데 인색함이 없으나, 범부는 지혜가 없어 그것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여 온몸의 털이 곤두서니 어떻게 능히 그것을 베풀겠는가. 보살은 이와 같은 안인의 힘으로 태어나는 곳에서 용모가 단정하며, 일체 중생이 그를 보기를 즐거워하며, 큰 모임에서는 항상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된다.
또 보살마하살은 편안히 머물러 참아내는 힘이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나니, 마치 묘고산(妙高山:수미산)이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에도 능히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안인의 묘고산도 이와 같아 성냄의 거센 바람도 능히 움직이지 못하느니라. 또 일체 외도는 악지식(惡知識)으로 인하여 삿된 견해를 일으켜 모든 고행을 닦나니, 벌거벗거나 스스로 굶주리거나 5열(熱)로 몸을 지지거나 바위에 몸을 부딪치거나 불 속에 뛰어드는 고행을 하면 하늘에 태어난다고 말하면서 정법을 믿지 않는다. 보살은 그것을 보고는 대비심을 일으켜 같이 고행하여 그들보다 곱절로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이 모든 외도는 보살을 존경하여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그런 후에 그들을 인도하여 정법을 보여서 그 삿된 무리를 바른 견해에 머물게 한다.
037_0366_b_01L또 어떤 외도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몸은 〈나〉가 있어서 마음속에서 머무른다. 마치 큰 엄지손가락과 같은데, 장애가 없고 또한 형상이 없으며 오직 하늘 눈[天眼]만이 그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안근(眼根)은 나를 모시는 자로서 눈[眼]이 이미 얻고 나서 과보를 찾아서 나에게 알려준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런 인연으로 만약 어떤 중생이 나를 헐뜯고 욕할 때 사람이 능히 그를 죽이면 천상에 태어나지만, 참고 욕함을 받아들이는 자는 죽어서 3도(塗:3악도)에 떨어진다. 비유하면 많은 사람이 같이 한 장수를 섬기는데 만약 나라는 장수를 무너뜨리면 대중이 같이 그를 죽일 것이요, 만일 죽이지 아니하면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게 된다.’ 보살은 안인의 힘으로 저 삿된 견해를 불쌍히 여겨 다 참고 받아들이며, 가지가지 방편으로 그들의 삿된 견해를 없애야 한다. 비유하면 때맞추어 내리는 비는 그 초목들에게 저마다 능히 자양분이 되어 주어서 탐스럽게 자라게 한다. 보살의 안인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상속하는 육신의 힘은 호탕하고 강함을 믿지만 지혜로운 이는 허깨비나 불꽃같다고 자세히 관찰하네. 한 생각 사이에 티끌이 되니 코끼리가 흙봉우리 밟아 모두 무너지는 것과 같네.
037_0366_b_04L相續色力恃豪强, 智者諦觀如幻焰,
一念之頃作微塵, 如象蹈封皆散壞。
숨쉬는 찰나에 급속히 나고 죽어 가고 서고 앉고 눕는 그 모두가 고통이네. 이 몸이 고통이요 무상하다고 알면 지혜로운 이가 여기에 어찌 탐착하리오.
037_0366_b_06L眴息剎那速生滅, 行住坐臥皆爲苦,
若了色身苦無常, 智人於此何貪著。
모든 하늘과 범(梵)이 고행에 머무르면 독사가 침범하여도 해칠 수 없고 설사 상처 입어도 주술과 약으로 고치겠지만, 무상(無常)의 독은 벌레가 쏘는 것과 같으니 누가 구원하리오.
037_0366_b_08L諸天梵住苦行者, 毒蛇視觸無能害,
設有中傷呪藥解, 無常毒螫誰爲救。
선한 법은 닦기 쉬우나 모두 버리고 욕락은 무너지는 유(類)이나 괴로이 탐하고 구하네. 지혜로운 이 그것을 보니 이룸이 없어 마치 헌옷에 물감[鬱金] 물들이듯 하네.
037_0366_b_10L善法易修悉棄捨, 欲樂敗類苦貪求,
智者觀之無所成, 猶如垢衣鬱金染。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외도를 위하여 무아법(無我法)을 설해야 한다. 그대가 집착하는 나라는 것이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앞[前際]에서 오느냐, 뒤[後際]로 가느냐? 그대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의 명이 마칠 때는 응당히 능히 구할 수 없도다. 이미 능히 구하지 못하면 나[我]가 없음을 밝게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충신이 일심으로 임금을 받들되, 만약 위난이 있으면 임금은 반드시 그를 구원하여 주는 것과 같다. 지금 이미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나라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다. 만약 나라는 것이 있다면 자재로울 수 있어야 하거늘, 어떻게 무상(無常)에 허물어지랴. 그런데 모든 중생들도 무상이라는 귀신의 온갖 고통에 시달려 사지와 뼈마디가 분리되어 갑작스럽게 떠난다. 만약 나라는 것이 있다면 응당히 그것을 면해야만 할 것이다. 이미 면하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037_0366_c_01L이런 인연으로 그대 모든 외도는 무시이래로부터 〈나〉를 받들어서 온갖 악업을 지어 끝없는 고통을 받나니, 마땅히 알라. 이 〈나〉는 조금도 은혜[恩分]가 없도다. 그대가 오래 그를 섬기었으나 그대를 버리고 가니, 드디어 장차 그대의 몸은 모두 악한 짐승인 승냥이ㆍ이리ㆍ호랑이ㆍ표범에게 맡겨져 먹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를 버리고 달리 다른 몸을 찾아 무시이래로 그대들을 버렸다. 만약 그 수를 헤아린다면 한량없고 끝이 없으리니, 현재 미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도다.
또 그대가 만약 마음이 바로 신(神)이요, 나의 몸은 하인이 된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몸은 곧 나의 것이기에 무시이래로 몸을 받음이 한량없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몸은 하나의 나이겠는가, 많은 나이겠는가? 만약 나가 많다면 곧 무상(無常)이요 무상한 까닭에 나라는 뜻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나가 하나라면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하며, 항상 한 몸을 지켜서 옮겨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머물지 아니하는 까닭에 하나의 나도 또한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대는 많은 나도, 하나의 나도 모두 성립될 수 없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로써 마땅히 알라. 마음은 이 나가 아니다.
037_0367_a_01L또 마땅히 관찰해야 한다. 몸은 나의 것이 아니요 또한 하인도 아니다. 몸이 만약 나에 속한다면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생로병사가 다 내가 처리하여 다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 교칙(敎勅)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차례로 오니, 나에 속하지 아니함이 분명하다. 만약 나에 속한다면 태어나면 언제나 살아 있어야 하니, 늙고 죽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야 하나 쉽게 바뀌고 항상 있지 아니하니,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이로써 반드시 나와 나의 것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 마땅히 알라. 집착의 대상인 나라는 것은 그대의 큰 원수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대가 전생에 쌓은 선근(善根)은 5욕의 과보로 지금 현생에 다 받고 현재에 지은 가지가지 악업은 업력(業力)으로 말미암아 옥졸(獄卒)에 맡겨진다. 만약 나가 있다면 어찌 서로 구하지 아니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안인의 힘으로 나와 나의 것이라는 악귀 가운데에 처해 있는 유정을 건져내어 바른 견해가 있는 곳에 안치하여 나와 나의 것을 여의고 일체법의 본성이 공적함을 보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안인바라밀다를 닦고 익힌다고 이름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자씨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가시가 발을 찌르므로 여러 개의 가죽으로 두루 덮고 그 위를 다녀 그런 아픔을 면하려 한다. 지혜로운 이가 ‘그대는 가죽을 구하여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라고 물으니, 이 사람이 위와 같은 인연을 자세히 대답하자 지혜 있는 자가 혀를 차면서 꾸짖어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아, 그렇게 하지 말라. 약간의 가죽으로 가죽신을 만들어 신고 다니면 손상을 입지 아니하고 편안히 다닐 것인데 어찌 많은 가죽을 써서 대지를 덮으려 하느냐’라고 함과 같다. 범부 중생도 이와 같아 두루 원한과 해침[怨害]을 지어놓고 칼을 가지고 대지의 원수집을 찾아 죽이고자 한다. 보살은 그것을 보고 깊이 불쌍히 여겨 ‘다만 안인으로 가죽신을 삼으면 그대의 몸과 마음을 보호할 것인데, 어찌 온갖 원수를 칼로 두루 해치려느냐’라고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 하느니라.
037_0367_b_01L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악독한 말로 가지가지 헐뜯고 욕하더라도 보살은 그것을 듣고 갑작스럽게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마땅히 그것을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욕하는 자는 누구인가? 헐뜯고 욕함을 받는 자는 다시 누구인가? 피차의 두 몸은 각각 12처(處)가 있으니, 안처(眼處)는 색(色)을 보고, 이처(耳處)는 소리를 듣고, 비처(鼻處)는 냄새를 맡고, 설처(舌處)는 맛을 보고, 신처(身處)는 감촉을 느끼고, 의처(意處)는 법을 안다. 그러나 이 안처는 실로 나라고 할 수 없으니 만약 내가 아니라면 나와 남의 안처는 누구의 허물인가? 만약 허물이 있다면 응당히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나, 이와 같이 관찰함에 모두 허물이 없다. 이미 허물이 없다면 누가 성을 내며 누가 그 성을 받는가? 이와 같이 관찰하여 나아가 법처(法處)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 12처 외에는 다시 한 물건도 없으니 욕하는 자와 받는 자 둘 다 공하다.’ 이와 같이 사유하면 성내는 마음은 한꺼번에 없어진다.
만약 거친 말을 들으면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말은 무엇이 거친 것인가? 거친 말[麤語]이란 두 글자는 동시에 생긴 것이 아니다. 거칠다 할 때[麤時]는 말이 없고[非語], 말한다 할 때[語時]는 거칠 것이 없다. 찰나에 생겼다 없어져서 각각 서로 기다리지 아니하니[相時] 두 글자가 없는데 하물며 많이 헐뜯고 욕함이리오. 이로써 백천 겁을 관찰하건대 이 거친 말을 하여도 욕이 되지 않는다.’
또 다시 관찰해야 한다. ‘능히 욕하는 사람과 욕을 먹는 대상의 둘이 함께 무상(無常)하여 찰나도 머물지 아니하는데 어찌 성냄이 있으리오. 이로써 마땅히 알 것이다.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나니, 욕도 법도 이미 공하다. 나의 몸도 또한 그러하며 그도 같이 무상하며 나고 죽어 머물지 아니하며, 머물지 아니하는 까닭에 일체가 다 공하다.’ 이렇게 관찰할 때 한량없는 원수와 도적은 일시에 소멸한다. 만약 이런 관찰을 떠나 상(相)을 취하여 분별하면 안인이라고만 이름하고 바라밀다라고는 이름하지 않느니라. 5온(蘊)은 나가 없고 나아가 18계(界) 등도 다 또한 나가 없어 환(幻)과 같고 화(化)한 것 같아 헐뜯고 칭찬함에 평등하며, 본래 성품이 공적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037_0367_c_01L또 다음에 자씨여, 보살마하살은 헐뜯고 욕하는 자를 보거든 마땅히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성냄의 악마에 붙들려 있고, 번뇌에 덮여서 이렇게 헐뜯고 욕하는구나. 나는 지금 이 악마를 물리쳐 없애야 하니, 마땅히 인(忍)다라니를 잘 배우고 닦아 성내고 한탄하지 않으며 성냄과 다른 번뇌들이 중생을 해치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만약 성내면 내 몸은 환(幻)에 홀린 것이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저 성내는 자에게 대비(大悲)의 불쌍한 마음을 내어 그에게 안인하리라.’ 비록 능히 이와 같아도 다만 안인이라 이름할 뿐이니, 만약 분별을 떠나면 이것을 이름하여 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또 다음에 자씨여, 보살마하살이 안인을 행할 때 만약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칼을 잡고 나의 수족을 끊는다면 마땅히 이 사람에게 기쁘게 위로하는 마음을 내며 선지식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보시를 하고 난 뒤에 기뻐서 ‘나는 지금 큰 복의 과보를 얻었으니, 저 받은 이에게 항상 은덕을 품으리라’ 하면 곁의 사람이 그것을 보고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내는 것과 같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베고 자르는 자를 보고 크게 경사스럽고 위로하는 마음을 내어 ‘나의 죄업을 없애주고 나에게 법의 재물을 보시하는구나. 나를 위하는 까닭에 악한 명성이 나고 사람과 하늘에서의 해탈의 즐거움을 잃으며 3악도의 고통을 받는구나. 이런 인연으로 나의 착한 벗이 되고 나의 어진 도반이 되어 나의 안인바라밀을 이루어 주었으니, 나는 그 사람을 응당히 공경 존중해야 하고 나아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은덕을 잊지 않아야 하거늘, 어찌 도리어 성을 내겠는가. 만약 성을 내면 이것은 은덕을 저버림이니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공경심을 갑절로 내고 선한 스승이라는 생각을 내야 한다. 비록 능히 이와 같이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았다 할지라도 나와 남을 분별함을 아직 잊지 아니하였기에 안인이라고만 이름할 뿐, 바라밀다라고는 이름하지 아니하느니라.
037_0368_a_01L또 보살이 한적한 곳에 머물고 있는데 어떤 이가 찾아와서 비방하여 말하기를 ‘너는 주지 아니한 것을 가졌고, 음욕을 행하였다’라고 하며 치고 욕하고 벌로 다스려도 보살마하살은 그것을 안인하며 이렇게 사유해야 한다. ‘이는 다른 이의 과실이 아니요 바로 내가 전생에 일찍이 남을 비방하고 치고 욕하고 벌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나의 나머지 재앙이 저 사람의 헐뜯음을 불러왔도다. 그는 나를 괴롭힘으로 인연하여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응당히 이 사람에게 대비의 불쌍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또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나의 지금 이 마음은 지극히 간사하고 요사스러워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안인의 마음을 내는구나. 또 스스로 안인바라밀을 이루고자 하여 베고 자르는 자를 마땅히 3악도에 떨어지게 하였도다.’ 이와 같이 사유하고 깊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보살은 이때 자기의 허물을 보고 나서 베고 자른 자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고 선지식이라는 생각으로 깊이 존중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안인이라고만 이름할 뿐이고 바라밀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와 남에 분별이 있음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라.
또 보살은 5온(蘊)의 몸에서 다섯 가지 허물을 관찰해야 한다. 즉 여러 가지 고통이 모아진 것으로 찰나에 무상하고, 다섯 가지 부정한 서른여섯 개의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나와 내 것도 없이 일체가 공하며, 외도의 삿된 견해에서는 몸은 안락하다고 집착하며,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는 이것은 청정한 법이라 나와 내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보살은 이 다섯 가지 법을 자세히 관찰하나니, 일체 유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이것을 안 뒤에는 욕설을 들어도 성내지 아니하고 칭찬에도 기뻐하지 않지만, 이것도 안인이라고 이름할 뿐 바라밀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037_0368_b_01L또 자씨여, 간략히 보살이 안인(安忍)하는 서른두 가지를 설하리라. 즉, 탐함이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해치지 아니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애타는 고뇌[熱惱]가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성냄이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원한이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분심(忿心)이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쟁론(諍論)이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욕심의 경계에 물들지 아니하면 이것이 안인이다. 능히 나와 남을 보호함이 이것이 안인이요, 보리심에 순종함이 이것이 안인이요, 분별심이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생사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업의 과보에 순종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몸이 청정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입과 뜻이 청정하면 이것이 안인이다.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말[言說]에 자재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변계(遍計)가 없으면 이것이 안인이요, 스스로 성지(聖智)를 깨치면 이것이 안인이요, 나아가 상대의 뜻을 보호해 주면 이것이 안인이요, 네 가지 범행(梵行)을 닦고 선정을 따르지 아니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사람과 하늘의 즐거움을 얻음에 자재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상호가 원만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범음(梵音)이 깊고 미묘하면 이것이 안인이다. 모든 악을 없애면 이것이 안인이요, 인색함의 때[垢]를 멀리 여의면 이것이 안인이요, 질투를 끊어버리면 이것이 안인이요, 모든 원수와 도적을 버리면 이것이 안인이요, 보리분법을 가까이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모든 착하지 못한 것을 여의면 이것이 안인이요, 고요한 곳에 있기를 즐겨하면 이것이 안인이요, 모든 부처님의 법을 얻으면 이것이 안인이다. 자씨여, 이와 같은 서른두 가지의 안인바라밀다를 보살이 수행하면 능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037_0368_c_01L또 자씨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고 하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악독하게 욕하면 그 소리를 마치 산골짜기의 메아리같이 볼 것이요, 만약 때린다면 이 몸을 거울 속의 형상같이 볼 것이며, 만약 성을 낸다면 이 마음을 환(幻)과 같고 화(化)와 같다고 볼 것이며, 만약 분노하면 이 마음의 성품은 소란스럽거나 흔들림이 없다고 볼 것이다. 만약 이양(利養)을 얻으면 이 마음은 자성이 조복되었다고 보아 환희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만약 이양을 잃으면 이 마음은 착하고 미묘하고 고요하다고 보아 성을 내지 말 것이다. 만약 헐뜯고 비방함을 만나면 이 몸을 마치 허공과 같다고 보아서 앙갚음을 하지 말 것이며, 만약 기리어 칭찬함을 만나거든 자신의 성품이 아만(我慢)이 없다고 보고 스스로를 높이지 말 것이다. 만약 감탄하여 칭찬하거든 마땅히 심성이 본래 공적하다고 보아 기쁨에 젖지 말아야 하며, 만약 헐뜯고 미워함을 만나거든 본심의 성품은 두려움을 여의었다고 보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만약 고통을 만날 때는 마땅히 법의 성품에는 본래 핍박이 없음을 보고 괴로운 모습을 나타내지 말 것이요, 만약 즐거움을 받을 때는 마땅히 진실의 성품은 항상 불변하여 괴롭거나 즐거운 모양이 없다고 볼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안인에 머물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바람[八風]에 능히 움직여 넘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리심을 가지고 진실의 상(相)에 머물러 남과 나를 여의고 법신을 보는 까닭이니라. 또 불안한 일이 있어도 다 참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니, 모든 악마의 원한을 항복시키고자 하는 까닭이며, 마땅히 일체의 난행과 고행을 수행하여 외도의 모든 사건을 조복하고자 하는 까닭이니라. 자씨여, 내가 지금 안인바라밀다를 간략히 설한 줄을 알아야 한다.
037_0369_a_01L또 자씨여, 만약 덧없다고 관하고 남과 나라는 생각[彼我相]을 여의어 마음에 안인을 얻어도 진실한 인(忍)이 아니며, 만약 모든 법의 선과 불선의 모양을 관하여 마음에 안인을 얻어도 진실한 인이 아니며, 만약 자세히 12처(處)의 인(忍)을 관하여 모든 근(根:六根)과 진(塵:六境)에서 성내거나 욕함을 여의어서 안인을 얻어도 진실한 인이 아니며, 만약 성내고 욕함을 관하여 전도된 인(忍)을 진실로 바르게 하여도 사(邪)와 정(正)을 가리는 인이니, 진실한 인이 아니다. 또 인을 보고 이치가 있다 하고 성냄과 욕함을 보고는 이치가 없다 하면 이것은 상(相)을 취하는 인이라 진실한 인이 아니리라. 또 8정인(正忍)에 머물고 8사인(邪忍)을 여의어도 도(道)와 도 아닌[非道] 인이니, 진실한 인이 아니니라.
또 모든 법이 무상하고 무아(無我)이며 부정(不淨)하며 괴로움이라는 인을 관하지 않고, 오직 모든 법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관하면 이것은 서로 어긋나는 인이라 진실한 인이 아니니라. 또 공법(空法)은 인(忍)이요 모든 견해는 불인(不忍)이며, 무원법(無願法)은 인이요 유원(有願)은 불인이며, 무행법(無行法)은 인이요 유행(有行)은 불인이며, 무번뇌법(無煩惱法)은 인이요 번뇌법은 불인이며, 모든 선법(善法)은 인이요 불선(不善)은 불인이며, 출세간법(出世間法)은 인이요 세간은 불인이며, 무과법(無過法)은 인이요 유과(有過)는 불인이며, 무루법(無漏法)은 인이요 유루(有漏)는 불인이며, 열반법은 인이요 생사(生死)는 불인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모든 인은 바로 대치하는 인이요 구경인(究竟忍)은 아니니라.”
그때 박가범께서 자씨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진실한 인(忍)이란 바른 지혜로써 일체법의 본성이 다 공함을 환히 깨닫는 것이니, 곧 이 공의 성품은 일체법의 본성과 둘이 아닌 까닭이요, 일체법성의 공성(空性)과 바른 지혜의 본성은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른 것도 아니니, 끊을 수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세간법이 곧 공이요 공이 바로 세간법이니, 두 법의 본성이 서로 여의지 않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이름하여 구경인이라고 하느니라.
037_0369_b_01L또 바른 지혜로 일체 법의 성품이 상(相)이 없는 성품임을 깨달으면 상이 없는 성품이 곧 일체 법의 성품이니, 본래 성품은 둘이 아닌 까닭이다. 일체 법의 성품은 본래 상이 없는 성품이니, 바른 지혜[正智]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도 없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으며 끊어짐도 없는 까닭이다. 이로써 마땅히 알라. 일체 법은 곧 상이 없으며 상이 없음이 곧 일체 법이니, 두 법의 본성이 서로 여의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이름하여 구경인이라 하느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일체 법의 성품은 곧 원(願)이 없는 성품이요, 원이 없는 성품이 바로 일체 법의 성품임을 환히 알며,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에 원이 없는 성품과 일체 법의 성품은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正智本性]이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른 것도 아니며 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이로써 마땅히 알라. 일체 법은 곧 원이 없으며 원이 없음이 곧 일체 법이니, 두 법의 본성이 서로 여의지 않은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이름하여 구경인이라 하느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일체 행(行)의 성품이 곧 행이 없는[無行]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 행이 없는 성품은 일체행의 성품이니,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일체 행의 성품과 행이 없는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으며, 다른 것도 아니고 끊어질 수도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구경인이라 하느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번뇌의 성품은 번뇌가 없는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번뇌가 없는 성품이 곧 번뇌의 성품이니 본래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번뇌의 성품과 번뇌가 없는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른 것도 아니고 끊을 수도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구경인이라고 하느니라.
037_0369_c_01L또 바른 지혜로써 일체 선(善)의 성품이 곧 불선(不善)의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불선의 성품이 곧 일체의 선한 성품이니,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선한 성품과 불선의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며,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른 것도 아니고 끊어질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참는 것을 구경인이라고 하느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출세간법[出世法]의 성품이 곧 세간법의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세간법의 성품이 곧 출세간법의 성품이니, 본성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출세간법의 성품과 세간법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른 것도 아니고 끊어짐도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구경인이라고 하느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과실이 없는 성품이 곧 과실의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과실의 성품이 곧 과실이 없는 성품이니,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과실이 없는 성품과 과실의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도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름도 없고 끊어짐도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이 바로 구경인이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무루법의 성품이 곧 유루법(有漏法)의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유루법의 성품은 곧 무루법의 성품이니,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무루법의 성품과 유루법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고, 다름도 없고 끊어짐도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바로 구경인이라 하느니라.
또 바른 지혜로써 열반의 성품이 곧 생사의 성품임을 깨닫는 것이다. 생사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니, 본래 성품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열반의 성품과 생사의 성품의 바른 지혜의 본래 성품은 청정하여, 둘이 아니고 둘로 나눌 수도 없으며, 다름도 없고 끊어짐도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인을 바로 구경인이라 하느니라.”
037_0370_a_01L부처님께서 자씨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진실한 구경의 안인은 일체 법에서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생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멸하지도 않고 멸하지 아니함도 아니니라. 이 인을 얻는 것은 이름하여 참된 구경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하고, 이것을 이름하여 안인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안인바라밀다를 설하실 때 자씨보살이 상수(上首)가 되어 한량없는 여러 큰 보살마하살 대중과 이 모임에 모인 이들이 함께 이구동성으로 박가범을 찬탄하였다. “훌륭하시도다, 훌륭하시도다. 희유하신 선서(善逝)시여, 매우 기이하신 세존이시여.” 그리고 나서 곧 한량없는 보배롭고 미묘한 공양구[供具]로써 공양하니, 즉 가지가지 미묘한 향ㆍ첨복(瞻蔔)ㆍ꽃향ㆍ태우는 향ㆍ바르는 향ㆍ가루향ㆍ가지가지 꽃 꾸미개ㆍ의복ㆍ증채(繒綵)ㆍ당번(幢幡)ㆍ보개(寶蓋)를 허공 중에 던져서 공양하고 가지가지 음악을 울려 즐기며 가지가지 노래와 게송으로 여래를 찬탄하였다. 이 모든 중생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안인바라밀다를 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겁내지도 아니하며, 다 여래의 진실한 법인을 열었으며, 흩을 향과 꽃과 가지가지 공양이 허공 중에 두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였다.
037_0370_b_01L자씨보살이 이렇게 말하고는 곧 일체색신(一切色身)삼매에 들어갔다. 이 정(定)에 들어가니, 모든 삼천대천세계의 허공에 가득 차있던 가지가지 꽃과 향ㆍ의복ㆍ증채와 나아가 번개에 이르기까지 선정의 힘으로 다 자씨의 배꼽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서로 장애되지 아니하였으며 모든 공양구도 또한 조금도 감소하지 아니하였고 보살의 몸도 또한 넓어지거나 커지지 아니하였다.
037_0370_c_01L이때 자씨보살은 오래 이와 같은 삼매를 닦고 익혀서 잘 얻고 무르익어서 아무런 장애 없이 모든 보살과 다른 곳의 대중들과 이 모임에 있던 모든 비구승과 불ㆍ세존 일체가 다 자씨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유정들은 또한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고 일찍이 없었던 심신의 편안함을 얻었다. 비유하면 동방으로 무량아승기 세계를 지나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보영락장엄(寶瓔珞莊嚴)이다. 그곳의 중생이 쓰는 물건은 가지가지 보배로써 장엄되었고 모든 즐거움을 누리는 것과 같이, 이 몸속에 있는 하늘ㆍ사람ㆍ대중이 받는 즐거움도 그 세계와 같아 다르지 않았다. 이같이 모임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 자씨의 몸에 있지만 조금도 장애됨이 없음을 환히 깨달았다.
자씨보살이 말하였다. “어진 이여, 다만 이 모임의 모든 대중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뿐 아니라 삼천대천세계 묘고산과 십보산(十寶山)ㆍ대철위산(大鐵圍山)ㆍ큰 바다ㆍ강ㆍ바다ㆍ달ㆍ별ㆍ천궁ㆍ용궁ㆍ모든 높은 신궁ㆍ5취(趣)ㆍ4생(生)ㆍ인비인(人非人) 등이 다 몸속에 들어와도 방해가 없으며, 내 몸은 늘어나지도 아니하고 그들이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중생도 또한 왕래하는 모습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나니, 법의 성품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 모임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자씨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잠시라도 이 안인바라밀다의 이름을 듣고서 능히 신심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결코 지옥ㆍ아귀ㆍ축생[傍生]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아니할 것이니라. 내가 지금 이 안인바라밀다를 설하여 구경에 원만하게 일체 유정을 이익하고 안락하게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