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모임 중에 낙원리행(樂遠離行)이라는 한 보살마하살이 있으니, 부처님의 위력(威力)을 이어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대중들 가운데서 널리 일체 보살에게 아란야의 행을 말하였다. “출가한 보살이 아란야에 머무를 적에는 응당 ‘무슨 인연으로 세간을 멀리 떠나 아란야에서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닦는가’ 하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모든 불자들이여, 일심으로 자세히 들을지어다. 내가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받아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아란야 행을 분별하여 연설하겠노라.”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사(大士)여. 저희들의 무리와 미래세(未來世)에 보리를 구하는 이를 위해서 오직 원하건대 말씀해주십시오. 저희들이 듣기를 좋아하나이다.”
037_0516_c_11L諸菩薩言:“善哉大士!爲我等輩及未來世求菩提者,唯願說之,我等樂聞。”
037_0517_a_01L이때 낙원리행 보살이 모든 대중에게 말하였다. “일체 세간은 모든 두려움이 많으므로 출가한 보살이 세간의 갖가지 두려움을 여의기 위하여 부모와 모든 권속을 떠나 아란야에 머물러 멀리 여의는 행을 닦는 것이다. 어떤 것을 갖가지 두려움이라 하는가. 어떤 보살은 이런 생각을 짓는 이도 있으니 ‘내가 두려움을 느끼니, 일체 번뇌가 나로부터 생기는 까닭이다’라고 하며, 어떤 보살은 ‘나의 것(我所)이 바로 공포가 되니, 일체의 번뇌가 나의 것에서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보살은 ‘일곱 가지 아만이 바로 공포가 되니, 갖가지 아만을 일으켜 착한 사람을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보살은 ‘저 삼독(三毒)이 공포가 되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어서 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어떤 보살은 ‘저 5욕(欲)이 공포가 되니,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하여 8난(難)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비유건대 세간에 칠보사(七步蛇)가 있는데 만일 사람을 해하게 되면 독의 기운이 치성(熾盛)하여 일곱 발자욱을 지나면 곧 목숨이 마치는 것과 같나니, 한 뱀의 독력도 오히려 능히 사람을 다치게 하거든 하물며 다섯 뱀이 함께 살상(殺傷)함이랴. 독력이 더하여져 치성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간의 5욕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하나하나의 욕락(欲樂)이 각기 능히 8만 4천의 미세한 진로(塵勞)를 끌어 일으켜서 어리석은 범부를 흐리게 하여 지옥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그 외 어려운 곳에 떨어져 큰 고뇌(苦惱)를 받게 하거든, 하물며 모든 번뇌에 탐착(貪著)한 것을 구족함에랴. 항하사와 같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나시어 설법하고 교화하시더라도 세월[隙光]이 빨라서 끝내 뵙지 못하여 항상 악도에 있기를 자기 집같이 하고, 겨를 없는 가운데 처하기를 놀이터 동산처럼 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날아다니는 나비가 불빛을 보면 그를 사랑하여 다투어 뛰어들다가 불꽃의 태우는 힘을 알지 못하여 불속에서 목숨 버리는 것을 달게 여기듯이
037_0517_a_13L譬如飛蛾見火光, 以愛火故而競入,
不知焰炷燒然力, 委命火中甘自焚。
세간의 범부도 이와 같아서 사랑을 탐하고 색을 좋아하여 구하나니 색욕이란 사람을 물들이고 집착하게 해서 불타듯이 모든 괴로움이 옴을 모르네.
037_0517_a_15L世閒凡夫亦如是, 貪愛好色而追求,
不知色欲染著人, 還被火燒來衆苦。
비유컨대 사슴 떼가 숲에 살면서 풍부한 풀을 먹으며 스스로 크다가 사냥꾼이 거짓으로 어미사슴 소리를 내면 소리를 찾다가 화살을 맞아 죽음에 이르듯이
037_0517_a_17L譬如群鹿居林藪, 食於豐草而自養,
獵師假作母鹿聲, 尋聲中箭皆致死。
세간 범부도 이와 같아서 갖가지 뜻에 맞는 소리를 탐착하나니 소리가 사람을 물들여 집착하게 함을 알지 못하여 3도(塗)에서 모든 괴로움의 과보를 받으며
037_0517_a_19L世閒凡夫亦如是, 貪著種種可意聲,
不知聲能染著人, 還受三塗諸苦報。
비유컨대 벌이 능히 멀리 날아 봄 숲에 노닐면서 뭇 꽃들을 따는데 코끼리 뺨 위의 향기에 취해 애착하다가 코끼리 귀에 덮여 죽듯이
037_0517_a_21L譬如蜜蜂能飛遠, 遊於春林採衆花,
爲愛醉象頰上香, 象耳因之而掩死。
037_0517_b_01L 세간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 수용하는 향을 애착하나니
향기가 능히 마음을 물들임을 알지 못하여 생사에 윤회하여 긴 밤새도록 괴로움 받는다네.
037_0517_a_23L世閒凡夫亦如是, 愛著一切受用香,
不知香能染著心, 生死輪迴長夜苦。
비유컨대 용과 고기가 물에 처하여 헤엄치고 잠기고 떠다니며 스스로 노니는데 향기로운 미끼를 탐하다가 낚시를 삼켜 맛을 애착하여 삶을 잊고 죽음에 이르듯이
037_0517_b_02L譬如龍魚處於水, 游泳沈浮而自樂,
爲貪芳餌遂呑鉤, 愛味忘生皆致死。
세간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혀뿌리로 맛을 탐하여 몸을 돕는데 남은 죽이고 자기만 살자는 마음이 공평치 못해 3도(塗)에서 지극히 무거운 괴로움을 감득하네.
037_0517_b_04L世閒凡夫亦如是, 舌根耽味以資身,
殺佗自活心不平, 感得三塗極重苦。
비유건대 흰 코끼리가 산기슭에 살면서 자재함이 마치 사자왕과 같으나 욕심에 취해 어지러워 흐린데 처하여 어미를 찾으려고 탐욕에 물든 마음을 내듯이
037_0517_b_06L譬如白象居山澤, 自在猶如師子王,
欲心醉亂處昏迷, 追尋母象生貪染。
일체 범부도 이와 같아서 저 묘한 닿음[觸]에 나아감이 미친 코끼리같이 사랑에 얽힘이 쉬지 아니하여 죽어서 지옥에 들어 괴로움이 헤아리기 어렵다네.
037_0517_b_08L一切凡夫亦如是, 趣彼妙觸同狂象,
恩愛纏緜不休息, 死入地獄苦難量。
세간 남녀가 서로 탐구하는 것이 모두 색욕을 집착함으로 말미암나니 사람과 하늘도 이로 말미암아 얽매이게 되어 3도의 어두운 가운데 떨어지나니
037_0517_b_10L世閒男女互貪求, 皆由樂著諸色欲,
人天由此被纏縛, 墮墜三塗黑闇中。
만일 능히 탐욕의 마음을 여의고 아란야에 머물러 범행을 닦으면 반드시 생사의 괴로움을 뛰어넘어 빨리 일삼음이 없는 상락궁(常樂宮)에 든다네.
037_0517_b_12L若能捨離貪欲心, 住阿蘭若修梵行,
必得超於生死苦, 速入無爲常樂宮。
어떤 보살은 ‘많은 재물을 탐하는 것이 공포가 되니, 자기의 재물과 보배를 항상 쌓아 모아서 구하고 받아쓰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능히 가난하고 궁핍한 중생에게 보시하랴’라고 한다. 자기 재물과 보배는 깊이 탐착하고 남의 재물과 보배는 덜어 없어지게 하므로, 이런 인연으로 목숨을 마친 뒤에 큰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으니, 이와 같이 괴로운 과보를 제1정감과(第一正感果)라고 한다. 지옥으로부터 나와서는 축생의 몸으로 태어나 항상 수고롭고 괴로우며 물과 풀도 부족하여 많은 때를 지내는 가운데 손상시켰던 남의 재물을 갚나니,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을 제2정감과라고 하는 것이다.
037_0517_c_01L이 죄를 받고서는 아귀(餓鬼)가운데 태어나 굶주리며 목마른 고통으로 곤란을 겪으며 한량없는 천겁 동안 간장과 음식의 이름조차도 듣지 못하여, 그 목구멍은 바늘과 같고 그 배는 산과 같아서 비록 음식을 얻을지라도 따라 변하여 불이 되나니, 이와 같이 괴로운 몸을 제3정감과라고 하는 것이다. 이 죄를 마친 뒤에는 인간에 와서 태어나지만 빈궁하고 하천(下賤)하여 남에게 부림을 당하며, 모든 재물과 보배를 구하는 대로 얻기 어려워 모든 때에 자재하지 못하나니, 이와 같이 남은 과보를 상사과(相似果)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 보살은 분명히 이와 같은 인과(因果)를 알고 보아서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해탈을 구하고, 이 공포로 말미암아 권속을 멀리 떠나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다.
어떤 보살은 ‘몹시 사랑하는 마음이 두려움이 되니, 모든 재물과 보배를 얻지 못하면 낮과 밤으로 쫓아 구하여 목마르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견해가 두려움이 되니 모든 번뇌가 의지할 데를 짓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모든 법견(法見)이 두려움이 되니, 소지장(所知障)과 더불어 의지할 데를 짓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62견(見)이 두려움이 되니, 삿되게 보는 숲에 들어가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이다’라고 한다.
어떤 보살은 ‘의심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정진법(正眞法)에 대해 의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단견(斷見)이 두려움이 되니, 후세가 없고 인과가 없다고 집착해서 큰 사견(邪見)을 일으켜 지옥에 드는 까닭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상견(常見)이 두려움이 되니, 5취(趣)의 몸이 항상 결정(決定)되어 있다고 집착하여 선과 악의 업을 따라 변역(變易)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a_01L어떤 보살은 ‘저 질투(嫉妬)가 두려움이 되니, 남의 영화를 참지 못하여 악한 마음을 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항상 마음이 들떠 있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마음이 고요하지 아니하여 산란(散亂)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믿지 않는 마음이 두려움이 되니, 사람이 손이 없으면 아무리 보배산에 이를지라도 끝내 얻는 것이 없듯이 믿음의 손이 없으면 아무리 3보를 만날지라도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뉘우침이 없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안으로 부끄러움이 없으면 항상 모든 악을 지어 업장과 무명(無明)으로 부처님을 뵙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밖으로 부끄러움이 없으면 은혜를 저버리고 덕을 배반하여 생사에 윤회하며 3도(塗)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보살은 ‘화내고 원한을 갖는 것 등이 두려움이 되니, 자기와 남을 손상하여 서로 원수를 맺어 많은 겁 가운데 부처님의 도를 장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잊어버리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들은 법을 능히 기억하여 갖지 못하고 글의 뜻을 잊어버려서 어리석음을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일체의 착하지 못한 어두운 업[黑業]이 두려움이 되니, 왜 그런가 하면, 일체의 착하지 못한 것이 바로 생사의 인(因)이 되어 3계(界)에 유전하고 벗어남을 얻지 못하여 이에 한량없고 끝없는 공포가 모두 능히 출세의 수승한 법을 장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다섯 가지 덮임[蓋]이 두려움이 되니, 다섯 가지 번뇌가 보살의 보리의 마음을 덮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증오하는 마음이 두려움이 되니, 모든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보리의 행을 닦는데 많이 물러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계(戒)를 깨뜨리는 때[垢]가 두려움이 되니, 성인의 법을 더럽히어 과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근심하고 고뇌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망령된 생각이 치열하게 타올라 선법(善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b_01L어떤 보살은 ‘악으로 마음을 짓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선을 닦으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미칠 정도로 취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선과 악을 알지 못하고 높고 낮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때 아닌 죽음이 두려움이 되니, 바른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여 덧없음[無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망령된 말의 업이 두려움이 되니, 나고 나는 세상 마다 말하는 것을 일체 중생이 믿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이 두려움이 되니, 네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생사에 윤회하여 번뇌의 업을 일으키고 성불하기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악한 벗이 두려움이 되니, 착하지 못한 벗을 따라 악업을 짓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5온(蘊)의 마(魔)가 두려움이 되니, 이 5온의 몸이 번뇌로부터 생기고, 생긴 뒤에는 곧 한량없는 번뇌를 일으켜 모든 번뇌로 인하여 선하지 못한 업을 지으며, 모든 혹업(惑業)으로 말미암아 크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므로, 이런 인연으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한다.
어떤 보살은 ‘번뇌의 마가 두려움이 되니, 크고 작은 번뇌가 능히 생사를 이어서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 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죽음을 싫어하는 마가 두려움이 되니, 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물러나지 않더라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마치면 물러나 전전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모든 하늘의 마가 두려움이 되니, 하늘 마의 권속들이 욕계(欲界)에 가득 차서 도 닦는 사람을 장애하여 보리에서 물러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무기심(無記心)이 두려움이 되니, 모든 선법에 능히 나아가 닦지 아니하고 공연히 긴 시간만 보내어 선한 업에서 물러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8난(難)이 두려움이 되니, 8난에 떨어지는 이는 어두운 데로부터 어두운 데로 들어가 생사의 긴 밤에 밝음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지옥을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한 번 지옥에 떨어지면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록 큰 고뇌를 받아 해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c_01L 어떤 보살은 ‘축생의 길을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방생계(傍生界)1) 가운데 어리석은 과보를 받아 한없는 겁을 지나도록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아귀의 도를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항하사 같은 겁에 주리고 목마른 괴로움을 받아 가히 불ㆍ법ㆍ승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욕계에 태어남을 생각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번뇌가 섞여 일어나 모든 악업을 지어 3도(塗)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색계(色界)가 두려움이 되니, 덮는 번뇌가 있으면 능히 정(定)을 장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무색계가 두려움이 되니, 3계 가운데 가장 고요하여 마치 열반 같으므로 유정이 망령되게 집착하여 구경(究竟)이라고 여기지만 겁(劫 )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면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보살은 ‘자주 자주 나고 죽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삿되게 보는 가문에 태어나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생사를 싫어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여기서 죽고 저기에 태어나 항상 고뇌를 받아서 보살의 행을 장애하고 열반을 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세간의 말이 두려움이 되니, 마음이 항상 어지러워서 선업(善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마음과 뜻의 알음알이가 두려움이 되니, 인연 있는 행의 모양[行相]2)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만일 속가(俗家)에 있으면 이런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밤낮으로 선한 마음을 흔들어 어지럽게 해서 능히 두려움이 없는 법을 증득하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 모두 능히 두려움이 없는 법을 증득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미래 보살도 아란야에 머물러 모두 다 두려움이 없는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현재 시방의 모든 큰 보살들도 아란야에 머물러 일체 업장을 끊고 두려움이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출가한 보살은 아란야에 머물러 어떠한 업을 지으며, 어떠한 생각을 지어야 하는가. 밤낮으로 항상 이런 생각을 지으니, 세간에 있는 일체의 두려움은 모두 나로부터 생기나니 일체의 두려움이 나에 집착하여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내가 근본이 되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나를 사랑하는 데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나라는 생각에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나라는 견(見)에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내가 머무르는 곳이 되어 일체의 두려움이 나로 인하여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분별(分別)하는 데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번뇌에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번뇌는 나를 사랑하는데서 생기는 까닭이니, 만일 내가 아란야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능히 나와 나의 것이란 집착을 여의지 못하면 아란야 가운데 머무는 것이 되지 못하여 도리어 백의(白衣)의 집에 머무르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만일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보특가라(補特伽羅)3)의 모양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어떤 사람이 나와 나의 것이란 집착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법견(法見)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네 가지 뒤바뀜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만일 수행하는 이가 열반상(涅槃相)을 짓는다 해도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다시 모든 번뇌의 모양을 일으킴에랴.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만일 일체 법의 모양에 집착함이 없으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니, 이것을 집착함이 없는 도량에 앉았다고 하는 것이다.
037_0519_b_01L일체의 모든 법을 다 얻을 수 없을지라도 만일 마음이 고르고 부드러워 쟁논(諍論)이 없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세간 인연에 모두 집착하는 바가 없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빛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닿음 등의 법에 의지함이 없으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일체 법을 평등하게 본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4위의(威儀)에 능히 자기 마음을 조복시킨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일체의 모든 두려움을 버릴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불자들이여, 요약해서 말한다면, 모든 번뇌에서 해탈을 얻으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만약 열반의 인(因)을 성취한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능히 잘 네 가지 무구성(無垢性)을 수행한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만일 욕심을 적게 하여 능히 만족함을 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많이 들음을 만족하여 지혜가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세 가지 해탈을 수행할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영원히 속박과 번뇌의 맺음을 끊을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자세히 열 두 인연을 관찰할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할 일을 이미 다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모든 무거운 짐을 버렸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진여(眞如)의 깊고 묘한 이치를 깨달아 증득한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아란야라는 곳은 갖가지 약초(藥草)와 크고 작은 풀과 나무가 아란야에서 자라며, 일찍이 두려움이 없었으며 또한 분별도 없나니, 보살마하살이 아란야에 머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보기를 마른 나무나 담(墻)ㆍ벽(壁)ㆍ기와장과 다름이 없이 여기어 일체 법에 분별이 없으며, 내가 몸과 마음을 보건대 허깨비 같은 꿈속에는 진실함이 없듯이 생각 생각이 쇠(衰)하고 늙어지며 숨이 나오고서는 다시 들어가지 않으니, 선과 악의 인(因)으로 말미암아 업에 따라 보를 받으며, 이 몸이 덧없어서 빨리 일어났다가 빨리 멸하는 것이며, 이 몸은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어서 마침내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몸 가운데는 나와 나의 것이 없으며, 유정(有情)도 없으며, 목숨도 없으며, 길러서 자라게 하는 것도 없으며, 젊은 남자 양반[士夫]도 없으며,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없으며, 업을 지음도 없으며, 어린아이도 없으니, 이런 것들의 모양은 본디 텅 비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거품과 같은 것이다. 항상 생각마다 이와 같은 관(觀)을 지으면 나무에는 공포가 없는 것과 같이 일체의 두려움에서 모두 해탈을 얻을 것이다. 이때 모든 보살이 큰 안락무외(安樂無畏)의 앉을 곳을 얻나니, 이것을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아란야에 머물면서 밤낮으로 응당 이와 같이 보는 것이다.
이 아란야는 네 가지 무구성(無垢性)을 잘 닦을 수 있는 안락한 곳이며, 이 아란야는 만족할 줄 앎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모든 번뇌에서 해탈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많이 들어서 지혜를 구족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조복시키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능히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에 드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8해탈을 잘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열 두 인연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아란야는 업장을 잘 끊어서 여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초과(初果)인 예류과(預流果)4)를 잘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제2의 일래과(一來果)5)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제3의 불환과(不還果)6)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제4과인 아라한(阿羅漢)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벽지불과(辟支佛果)를 증득할 수 있는 곳이다.
037_0520_a_01L이 아란야는 이미 할 일을 다 하여 자재함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모든 무거운 짐을 여의어 가볍고 편안함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둘 다 공(空)한 진여(眞如)를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한량없이 큰 인자한 마음을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한량없이 큰 동정심을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기쁨이 한량없음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버림이 한량없음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다.
이 아란야는 능히 보리의 마음을 발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보살이 닦아 지녀서 10신(信)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또 다시 닦아서 10주(住)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차근차근 더 닦아서 10행(行)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차근차근 수행해서 10회향(廻向)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네 가지 선근(善根)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육도바라밀(六度波羅密)을 수행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초지(初地)를 수행해서 10지에 이르는 곳이다.
이 아란야는 6근(根)의 청정함을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천안통(天眼通)을 잘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천이통(天耳通)과 숙주지(宿住智)ㆍ생사지(生死智)ㆍ명신경타심(明神鏡他心) 등 이와 같은 신통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부끄러워함이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게으름 부리지 않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5근(根)을 닦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삼매를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끝없는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어 자재함을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무생인(無生忍)을 깨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영원히 삼계를 벗어나 생사를 끊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물러나지 않음을 얻는 곳이다.
037_0520_b_01L이 아란야는 일체 여러 마군과 원수와 적을 항복시키고 업장을 녹여 없애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듣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부처님의 소승과 같지 아니한 최상의 법문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계(戒)와 온(蘊)을 닦아 익혀 청정하게 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샘이 없는 삼마지(三摩地)7)를 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능히 반야(般若)를 내어 해탈을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능히 해탈을 알고 봄을 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2두타(頭陀)를 잘 닦아 거둘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지혜로 능히 분별하여 진실한 이치가 머무르는 곳이다.
이 아란야는 샘이 있는 5온(蘊)이 생기는 것을 영원히 여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2입(入)을 해탈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샘이 있는 18계(界)를 영원히 여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8공(空)을 미묘하게 관찰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일체 모든 법의 공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0선법(善法)이 생겨남을 더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견고한 보리의 마음을 자라나게 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3세의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일체 보살이 공경하고 찬탄한 곳이다.
037_0520_c_01L이 아란야는 비바시(毘波尸) 부처님이 니구타(尼俱陀)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시기(尸棄) 여래께서 시리사(尸利沙)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비사(毘舍) 여래께서 아시사다(阿尸娑多)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구류손(俱留孫) 부처님이 무우수(無優樹) 아래에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구나함모니(俱那含牟尼) 여래께서 우담(優曇) 나무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가섭(迦葉) 여래께서 바타(婆陀)나무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석가(釋迦) 여래께서 필발라(畢鉢羅)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아란야라는 곳은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과 수승한 이익이 있는 곳이다.”
출가한 보살은 난야에 머물러 어떤 생각과 업을 지어야만 하는가. 세간에 있는 모든 두려움은 다 나라고 봄과 나의 것이라고 하는데서 생겨나니
037_0520_c_03L出家菩薩住蘭若, 當作何念及何業?
世閒所有諸恐怖, 皆從我見我所生。
만일 능히 나와 나의 것이란 것을 끊으면 일체의 두려움이 의지할 데가 없으며 만일 나라고 봄을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끝내 보리의 도를 이루지 못하리라.
037_0520_c_05L若能斷除我我所, 一切恐怖無所依,
若有能執我見心, 畢竟不成菩提道。
열반과 상주(常住)가 다 모양이 없는데 하물며 번뇌의 그른 법의 모양임에랴 모든 법과 중생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 다툼이 없이 바른 생각을 닦으며
037_0520_c_07L涅槃常住皆無相, 何況煩惱非法相?
不著諸法及衆生, 心無諍論修正念。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마음을 조복하여 난야의 항상 고요한 곳에 머무르며 능히 번뇌를 끊고 마음에 만족함을 알면 난야의 텅 비어 조용한 집에 머무르며
037_0520_c_09L四威儀中調伏心, 應住蘭若常寂靜,
能斷煩惱心知足, 住於蘭若空寂舍。
3해탈의 모양 없는 문에 들어가 난야에 머물러 티끌과 때를 여의면 능히 12인연법과 4제(諦)와 2공(空)의 참되고 미묘한 이치를 보며
037_0520_c_11L入三解脫無相門, 住於蘭若離塵垢,
能觀十二因緣法, 四諦二空眞妙理。
세간 8법에 치우쳐 움직이지 않는 이와 같은 대사가 난야에 머무르며 자신을 마른 나무나 물거품, 허깨비 같은 꿈처럼 보고
037_0520_c_13L世閒八法不傾動, 如是大士住蘭若,
能觀自身如枯木, 亦如水沫及幻夢。
양 끝의 평등상(平等相)에 집착하지 않는 이런 살타(薩埵)가 난야에 머무르며 죄업에 얽힌 덧없는 몸은 본래 거짓이요 진실됨이 없어서
037_0520_c_15L不著二邊平等相, 如是薩埵住蘭若,
罪業纏縛無常身, 本來虛假元無實。
나와 법 두 집착과 죄의 모양을 3세 가운데 얻을 수 없으므로 자기 몸과 남의 몸이 둘이 없나니 일체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다네.
037_0520_c_17L我法二執及罪相, 於三世中不可得,
自身佗身無有二, 一切諸法亦如是。
법성(法性)은 가고 옴이 없음을 자세히 보는 이와 같은 보살이 난야에 머무르며 전단을 몸에 바르고 찬탄하거나 칼로 베고 꾸짖고 욕하여도
037_0520_c_19L諦觀法性無去來, 如是菩薩住蘭若,
栴檀塗身及讚歎, 以刀屠割幷罵辱。
이런 두 사람에게 사랑과 미워함이 없는 이와 같은 보살이 아란야에 머무나니 출가하여 아란야에 머무름을 즐기어 낮과 밤으로 이와 같이 봄을 지으라.
037_0520_c_21L於此二人無愛憎, 如是菩薩住蘭若,
出家樂住阿蘭若, 晝夜應作如是觀。
037_0521_a_01L 아란야라는 곳은 참된 도량이어서 일체 여래가 정각을 이루며
아란야라는 곳은 미묘한 법이 공하여 출세의 바른 법이 나는 곳이며
037_0520_c_23L阿蘭若處眞道場, 一切如來成正覺,
阿蘭若處妙法空, 出世正法之所生。
아란야라는 곳은 성인이 높이는 바이니 능히 3승의 성스러운 도(道)를 내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성인이 집으로 여기는 바이니 일체 성현이 항상 머무르기 때문이며
037_0521_a_02L阿蘭若處聖所尊, 能生三乘聖道故,
阿蘭若處聖所宅, 一切聖賢常住故。
아란야라는 곳은 여래의 집이니 시방 모든 부처님이 의지하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금강의 자리이니 3세 모든 부처님이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037_0521_a_04L阿蘭若處如來宮, 十方諸佛所依故,
阿蘭若處金剛座, 三世諸佛得道故。
아란야라는 곳은 열반의 집이니 3세 여래가 원적(圓寂)에 드셨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큰 자애의 집이니 보살이 이곳에 머물러 자애를 닦기 때문이네.
037_0521_a_06L阿蘭若處涅槃宮, 三世如來圓寂故,
阿蘭若處大慈室, 菩薩住此修慈故。
아란야라는 곳은 동정심의 밭이니 3세 모든 부처님이 동정심을 닦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6통(通)의 집이니 보살이 여기에서 노닐기 때문이며
037_0521_a_08L阿蘭若處是悲田, 三世諸佛修悲故,
阿蘭若處六通室, 菩薩於此遊戲故。
아란야라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능히 일체 공포를 끊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삼마지이니 도를 구하는 모든 이가 적정을 얻기 때문이며
037_0521_a_10L阿蘭若處大無畏, 能斷一切恐怖故,
阿蘭若處三摩地, 諸求道者得定故。
아란야라는 곳은 다라니이니 주문하는 모든 사람이 신력을 갖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선한 법의 집이니 일체 선한 법을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며
037_0521_a_12L阿蘭若處陀羅尼, 諸持呪人神力故,
阿蘭若處善法堂, 增長一切善法故。
아란야라는 곳은 보리의 집이니 보살이 도를 닦아 인을 얻기 때문이다. 만일 영원히 삼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보리와 열반을 닦아 증득하라.
037_0521_a_14L阿蘭若處菩提室, 菩薩修道得忍故,
若欲永超三界苦, 菩提涅槃當修證。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응당 아란야 보리의 집에 머물러야 하니 닦은 바 6도(度)와 4섭법(攝法)을 3유(有)와 4은(恩)에 돌려 베풀어
037_0521_a_16L徧周法界利群生, 應居蘭若菩提室,
所修六度四攝法, 迴施三有及四恩。
나와 남이 함께 감로의 성에 들어가 함께 하나의 여진법계(如眞法界)를 증득하네.
037_0521_a_18L自佗俱入甘露城, 同證一如眞法界。
037_0521_b_01L 이때 낙원리행 보살마하살이 모든 대중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한 뒤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대중들과 미래세에 불도를 구하는 이를 위하여 아란야의 수승한 공덕을 분별하여 연설해서, 현재와 미래의 일체 중생에게 이익이 되고 안락하게 하여 보리정진각도(菩提正眞覺道)에 나아가게 하였으니, 네가 성취한 한량없는 공덕은 천 분의 부처님이 함께 말할지라도 능히 다 하지 못할 것이다.”
이때 모임 가운데 지광 보살과 한량없는 아승기의 보살 대중이 아란야의 가장 수승한 공덕을 듣고는 곧바로 다라니문을 들어 지님을 얻었으며, 한량없는 중생이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물러나지 않음을 얻었으며, 천억 중생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안이 청정함을 얻었다.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출가한 보살마하살이 세간을 떠나서 아란야에 머물러 그 마음을 조복하고 때[垢] 없는 행을 닦음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이 보살이 텅 비어 한적한 곳에 머물러 스스로 이 몸에 대하여 어떤 관(觀)을 지어야 하나이까?”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자세히 관찰하면, 이 샘이 있는 몸은 37가지 청정하지 못한 더럽고 악한 것이어서 사랑할만한 것이 못되며 견고하지 못한 것이니, 마땅히 이 몸을 보기를 아직 굽지 않은 질그릇같이 보라. 밖에는 여러 가지 빛나는 금과 은과 7보로 교묘하게 꾸며 장엄하고 안에는 똥과 더러운 갖가지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꽉 채우고서 두 어깨에 걸머지고 길을 따라 가면, 보는 이는 모두 사랑하고 즐거워하지만 그릇 안에는 정결하지 못한 것이 가득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섯 마리 검은 뱀이 항상 이 그릇 안에 있는데 한 뱀이 움직이면 그릇이 곧 파괴되어 독하고 해로운 악취를 마침내 견딜 수 없으니, 세간 사람이 그 몸을 장엄하는 것이 저 색으로 곱게 칠한 것에 정결하지 못한 것을 담은 그릇과 같은 것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를 마음의 병이라 하고, 풍병(風病)과 황담병(黃痰病)과 심화병[癮病]은 몸의 병이라 하는 것인데, 안팎의 여섯 가지 병이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이 마치 저 여섯 마리 뱀이 그릇 안에 살면서 하나가 움직이면 그릇이 곧 깨지는 것과 같아서 한 가지 병만 발생해도 몸이 곧 덧없어지는 것이다.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이 텅 비어 한적한 곳에 처하여 이 몸을 관찰하는 것을 제1부정관상(不靜觀相)이라고 한다. 출가한 보살은 밤낮으로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더럽고 청정하지 못하여 마치 죽은 개[狗]와 같다고 보니, 왜냐 하면 저 몸이 또한 부모의 정결하지 못한데서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뭇 개미들이 개미집에 편안히 머물 때, 흰 코끼리가 밟아서 집이 곧 부서지는 것과 같이 보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 집은 이른바 5온(蘊)의 몸이요 ,흰 코끼리는 염마라사(琰魔羅使)이며, 몸이 다음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코끼리가 집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제 이 몸이 이마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가죽과 살과 뼈, 골수가 함께 서로 화합하여 그 몸을 이룬 것이니 마치 파초(芭蕉)가 그 속은 실함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037_0522_a_01L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에 강한 힘이 없다고 관(觀)하니, 가죽과 살은 담장에 칠한 듯이 얇으며 억만의 털은 풀이 땅에 난 것과 같아서 미세한 바람이 털구멍으로 드나드니 어느 지혜 있는 이가 이 몸을 즐기겠는가. 찰나 찰나에 노쇠함이 점점 더하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독사를 길러 해침을 당하는 것과 같이 보니, 내가 이제 비록 음식과 의복으로 이 몸을 돋우고 기를지라도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필경에 다시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비유하면 마치 원수가 거짓으로 친구가 되어 그의 틈[便]을 기다렸다가 독약으로 저의 목숨 뿌리를 끊는 것과 같아서 내 몸도 이와 같이 본디 진실 된 것이 아니므로 마침내 덧없는데 이른다고 보니, 거룩하게 여겨 사랑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이 마치 물거품이 비록 묘하고 좋은 유리나 구슬빛 같지만 찰나의 인연이 일어났다 없어지면 덧없음과 같다고 보나니 함이 있는 생각마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까닭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물 위의 물방울이 비록 아름답고 미묘한 유리구슬 모양이지만 찰나의 인연으로 생겼다 없어져 항상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니, 함이 있는 생각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건달바(乾闥婆) 성이 비록 모양은 나타내지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보니, 이제 나의 몸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그림자처럼 보니, 나의 몸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있기는 하지만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비유하면 마치 나라 밖의 강성한 원적 같아서 이제 내 몸도 또한 이와 같이 이 번뇌라는 원적이 선근을 침략한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썩은 집은 비록 수리(修葺)하더라도 반드시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사랑하는 마음을 더할지라도 반드시 덧없음을 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037_0522_b_01L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원수의 나라 성읍(城邑)이 가까우면 인민이 항상 두려움을 품듯이 이제 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덧없는 원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한량없는 섶이 불에 태워지더라도 이 맹렬한 불은 일찍이 만족함이 없는 것처럼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탐애의 불로 5욕의 섶을 태울지라도 그 마음이 자라나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새로 낳은 아들을 자비한 어머니가 어여삐 여겨 항상 지키고 보호하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만일 병든 몸과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면 곧바로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본성이 청정하지 못하다고 보니, 비유컨대 마치 어떤 사람이 숯[炭] 빛깔을 싫어하여 모든 방편을 베풀어서 물로 씻더라도 한량없는 시간이 지나면 검은 빛은 옛날 그대로이며 나아가 숯이 다하더라도 끝내 이익 되는 것이 없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샘이 있고 청정하지 못하므로 설령 바다 물로 미래세가 다하도록 씻을지라도 이익 됨이 없는 것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기름으로 섶을 적시어 불로 태우는데 큰 바람을 만나면 그 기세를 끊을 수 없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5온(蘊)의 섶에다 탐애(貪愛)라는 기름을 적시어 성냄의 불을 놓으면 어리석음의 바람 기운이 쉬지 않고 분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악한 질병과 같다고 보니, 404가지 병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며, 또한 대장(大腸)과 같이 8만 4천의 벌레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덧없는 곳이니 숨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곧 덧없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무정물[非情]과 같나니 정신과 알음알이가 쉽게 벗어나서 기와나 돌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며, 또한 강물과 같나니 찰나에 흘러서 잠시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기름 짜는 것과 같나니 일체의 일에 대하여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의지할 데 없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은 것과 같기 때문이며, 구호할 이 없는 것이 마치 개구리가 뱀에게 먹힌 것과 같기 때문이며, 밑 없는 굴[無底窟]과 같으니 마음[心]과 마음의 대상[心所]인 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요, 항상 만족함을 알지 못하니 5욕락에 대하여 마음에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요, 항상 자재롭지 못하니 단(斷)과 상(常) 2견(見)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비록 양육의 은혜를 입더라도 주인을 버리기 때문이다.
037_0522_c_01L또한 죽은 시체와 같으니 낮과 밤으로 거의 소멸하고 무너지기 때문이요, 오직 모든 괴로움을 받으니 일체의 곳에서 참된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요, 괴로움이 의지하는 바가 되니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몸에 의지하여 머무르기 때문이요, 빈 취락(聚落)과 같으니 이 몸 가운데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마침내 텅 비어 고요한 것이니 치우치게 헤아려서 집착하여 멋대로 그리기 때문이요, 골짜기 가운데 메아리와 같으니 모두 이 허망한 것이 나타난 바이기 때문이요, 또한 배와 같으니 만일 뱃사공이 없으면 떠다니다 가라앉기 때문이요, 또한 큰 수레에 재물과 보배를 싣고 운전하는 것과 같으니 왜 그런가 하면 큰 수레[大乘]를 타고 보리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이때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신 뒤에, 미륵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행을 닦으면 이를 곧 출가한 불자가 본 바의 법요(法要)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불자가 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기 위해 아란야에 머물러 이와 같이 37관(觀)을 닦으며, 또한 남을 가르쳐 이와 같은 법요를 닦게 하며, 풀어 말하고 쓰며 받아 지니고 읽고 익혀서 일체 나와 내 것이란 집착을 멀리 여의고, 영원히 5욕의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함을 끊으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의 마음을 빨리 성취할 수 있어서 큰 보리를 구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세간에 있는 보배임에랴.
2)심식(心識)의 각자 고유한 기능을 말한다. 소승에서는 주관의 인식 대상, 곧 객관 의 사물이 주관인 마음 위에 비친 영상을 말하며, 대승에서는 주관의 인지하는 작용 을 말하니, 곧 마음에 비친 객관의 영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이다.
3)다시 태어나서 죽어가는 주체를 말한다. 단순히 사람을 이렇게 지칭하기도 한다.
4)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고 비로소 성인의 자리에 참여한 자리이므 로 초과라 하고, 장차 성인의 자리에 오를 문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예류과라 한다.
5)욕계수혹(欲界修惑)의 9품 중 앞의 6품을 끊은 성자를 말한다. 인간에 있으면서 이 과를 얻으면 반드시 천상에 났다가 다시 인간에 돌아와서 열반에 들고, 또 천상에 있으면서 이 과를 얻으면 우선 인간에 갔다가 다시 천상으로 돌아와 열반에 든다. 이와 같이 인간과 천상을 한번 왕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6)욕계의 9품 수혹을 다 끊고 남은 것이 없으므로 다시 욕계에 돌아와서 나지 않는 지위에 도달한 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