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7_0516_c_01L대승본생심지관경 제6권
037_0516_c_01L大乘本生心地觀經卷第六


대당 계빈국 삼장 반야 한역
037_0516_c_02L大唐罽賓國三藏般若奉 詔譯


6. 이세간품(離世間品)
037_0516_c_03L離世閒品第六

이때 모임 중에 낙원리행(樂遠離行)이라는 한 보살마하살이 있으니, 부처님의 위력(威力)을 이어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대중들 가운데서 널리 일체 보살에게 아란야의 행을 말하였다.
“출가한 보살이 아란야에 머무를 적에는 응당 ‘무슨 인연으로 세간을 멀리 떠나 아란야에서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닦는가’ 하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모든 불자들이여, 일심으로 자세히 들을지어다. 내가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받아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아란야 행을 분별하여 연설하겠노라.”
037_0516_c_04L爾時會中有一菩薩摩訶薩名樂遠離行承佛威力從坐而起於大衆中爲諸菩薩說阿蘭若行普告一切諸菩薩言出家菩薩住阿蘭若應作是以何因緣遠離世閒修阿蘭若淸淨妙行諸佛子等一心諦聽我承佛今爲汝等分別演說阿蘭若行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사(大士)여. 저희들의 무리와 미래세(未來世)에 보리를 구하는 이를 위해서 오직 원하건대 말씀해주십시오. 저희들이 듣기를 좋아하나이다.”
037_0516_c_11L菩薩言善哉大士爲我等輩及未來世求菩提者唯願說之我等樂聞
037_0517_a_01L이때 낙원리행 보살이 모든 대중에게 말하였다.
“일체 세간은 모든 두려움이 많으므로 출가한 보살이 세간의 갖가지 두려움을 여의기 위하여 부모와 모든 권속을 떠나 아란야에 머물러 멀리 여의는 행을 닦는 것이다. 어떤 것을 갖가지 두려움이라 하는가. 어떤 보살은 이런 생각을 짓는 이도 있으니 ‘내가 두려움을 느끼니, 일체 번뇌가 나로부터 생기는 까닭이다’라고 하며, 어떤 보살은 ‘나의 것(我所)이 바로 공포가 되니, 일체의 번뇌가 나의 것에서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보살은 ‘일곱 가지 아만이 바로 공포가 되니, 갖가지 아만을 일으켜 착한 사람을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보살은 ‘저 삼독(三毒)이 공포가 되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어서 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어떤 보살은 ‘저 5욕(欲)이 공포가 되니,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하여 8난(難)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6_c_13L時樂遠離行菩薩告諸大衆一切世閒多諸恐怖出家菩薩爲厭世閒種種恐怖捨離父母及諸眷屬住阿蘭若修遠離行云何名爲種種恐怖有菩薩而作是念我爲恐怖一切煩惱從我生故或有菩薩而說我所是爲恐怖一切煩惱我所生故或有菩而說七慢是爲恐怖起種種慢不敬善人故或有菩薩以彼三毒而爲恐造無量罪墮惡道故或有菩薩彼五欲而爲恐怖耽著世樂墮八難
비유건대 세간에 칠보사(七步蛇)가 있는데 만일 사람을 해하게 되면 독의 기운이 치성(熾盛)하여 일곱 발자욱을 지나면 곧 목숨이 마치는 것과 같나니, 한 뱀의 독력도 오히려 능히 사람을 다치게 하거든 하물며 다섯 뱀이 함께 살상(殺傷)함이랴. 독력이 더하여져 치성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간의 5욕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하나하나의 욕락(欲樂)이 각기 능히 8만 4천의 미세한 진로(塵勞)를 끌어 일으켜서 어리석은 범부를 흐리게 하여 지옥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그 외 어려운 곳에 떨어져 큰 고뇌(苦惱)를 받게 하거든, 하물며 모든 번뇌에 탐착(貪著)한 것을 구족함에랴. 항하사와 같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나시어 설법하고 교화하시더라도 세월[隙光]이 빨라서 끝내 뵙지 못하여 항상 악도에 있기를 자기 집같이 하고, 겨를 없는 가운데 처하기를 놀이터 동산처럼 하는 것이다.
037_0517_a_02L譬如世間有七步蛇若害人時毒力熾盛出過七步卽便命終一蛇毒力尚能損人何況五蛇共爲傷殺力轉盛命難得全世閒五欲亦復如一一欲樂各能引起八萬四千微細塵勞迷惑愚夫令墮地獄餓鬼生及餘難處受大苦惱何況具足貪著諸塵如恒河沙無數諸佛出興於世說法教化隙光迅疾終不得見在惡道猶於自家處無睱中如戲園
과거에 어떤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5욕을 버리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37_0517_a_12L過去有佛欲令衆生厭捨五欲說偈言

비유컨대 날아다니는 나비가 불빛을 보면
그를 사랑하여 다투어 뛰어들다가
불꽃의 태우는 힘을 알지 못하여
불속에서 목숨 버리는 것을 달게 여기듯이
037_0517_a_13L譬如飛蛾見火光
以愛火故而競入
不知焰炷燒然力
委命火中甘自焚

세간의 범부도 이와 같아서
사랑을 탐하고 색을 좋아하여 구하나니
색욕이란 사람을 물들이고 집착하게 해서
불타듯이 모든 괴로움이 옴을 모르네.
037_0517_a_15L世閒凡夫亦如是
貪愛好色而追求
不知色欲染著人
還被火燒來衆苦

비유컨대 사슴 떼가 숲에 살면서
풍부한 풀을 먹으며 스스로 크다가
사냥꾼이 거짓으로 어미사슴 소리를 내면
소리를 찾다가 화살을 맞아 죽음에 이르듯이
037_0517_a_17L譬如群鹿居林藪
食於豐草而自養
獵師假作母鹿聲
尋聲中箭皆致死

세간 범부도 이와 같아서
갖가지 뜻에 맞는 소리를 탐착하나니
소리가 사람을 물들여 집착하게 함을 알지 못하여
3도(塗)에서 모든 괴로움의 과보를 받으며
037_0517_a_19L世閒凡夫亦如是
貪著種種可意聲
不知聲能染著人
還受三塗諸苦報

비유컨대 벌이 능히 멀리 날아
봄 숲에 노닐면서 뭇 꽃들을 따는데
코끼리 뺨 위의 향기에 취해 애착하다가
코끼리 귀에 덮여 죽듯이
037_0517_a_21L譬如蜜蜂能飛遠
遊於春林採衆花
爲愛醉象頰上香
象耳因之而掩死
037_0517_b_01L
세간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 수용하는 향을 애착하나니
향기가 능히 마음을 물들임을 알지 못하여
생사에 윤회하여 긴 밤새도록 괴로움 받는다네.
037_0517_a_23L世閒凡夫亦如是
愛著一切受用香
不知香能染著心
生死輪迴長夜苦

비유컨대 용과 고기가 물에 처하여
헤엄치고 잠기고 떠다니며 스스로 노니는데
향기로운 미끼를 탐하다가 낚시를 삼켜
맛을 애착하여 삶을 잊고 죽음에 이르듯이
037_0517_b_02L譬如龍魚處於水
游泳沈浮而自樂
爲貪芳餌遂呑鉤
愛味忘生皆致死

세간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혀뿌리로 맛을 탐하여 몸을 돕는데
남은 죽이고 자기만 살자는 마음이 공평치 못해
3도(塗)에서 지극히 무거운 괴로움을 감득하네.
037_0517_b_04L世閒凡夫亦如是
舌根耽味以資身
殺佗自活心不平
感得三塗極重苦

비유건대 흰 코끼리가 산기슭에 살면서
자재함이 마치 사자왕과 같으나
욕심에 취해 어지러워 흐린데 처하여
어미를 찾으려고 탐욕에 물든 마음을 내듯이
037_0517_b_06L譬如白象居山澤
自在猶如師子王
欲心醉亂處昏迷
追尋母象生貪染

일체 범부도 이와 같아서
저 묘한 닿음[觸]에 나아감이 미친 코끼리같이
사랑에 얽힘이 쉬지 아니하여
죽어서 지옥에 들어 괴로움이 헤아리기 어렵다네.
037_0517_b_08L一切凡夫亦如是
趣彼妙觸同狂象
恩愛纏緜不休息
死入地獄苦難量

세간 남녀가 서로 탐구하는 것이
모두 색욕을 집착함으로 말미암나니
사람과 하늘도 이로 말미암아 얽매이게 되어
3도의 어두운 가운데 떨어지나니
037_0517_b_10L世閒男女互貪求
皆由樂著諸色欲
人天由此被纏縛
墮墜三塗黑闇中

만일 능히 탐욕의 마음을 여의고
아란야에 머물러 범행을 닦으면
반드시 생사의 괴로움을 뛰어넘어
빨리 일삼음이 없는 상락궁(常樂宮)에 든다네.
037_0517_b_12L若能捨離貪欲心
住阿蘭若修梵行
必得超於生死苦
速入無爲常樂宮

어떤 보살은 ‘많은 재물을 탐하는 것이 공포가 되니, 자기의 재물과 보배를 항상 쌓아 모아서 구하고 받아쓰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능히 가난하고 궁핍한 중생에게 보시하랴’라고 한다.
자기 재물과 보배는 깊이 탐착하고 남의 재물과 보배는 덜어 없어지게 하므로, 이런 인연으로 목숨을 마친 뒤에 큰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으니, 이와 같이 괴로운 과보를 제1정감과(第一正感果)라고 한다.
지옥으로부터 나와서는 축생의 몸으로 태어나 항상 수고롭고 괴로우며 물과 풀도 부족하여 많은 때를 지내는 가운데 손상시켰던 남의 재물을 갚나니,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을 제2정감과라고 하는 것이다.
037_0517_b_14L或有菩薩以貪多財而爲恐怖自己財寶恒求積聚而不受用何況能施貧乏衆生於己財寶深生貪著於佗財寶欲令損減以是因緣命終之後墮大地獄受無量苦如是苦報名爲第一正感之果從地獄出受畜生身身常勞苦水草不足經多時中酬損佗財如是衆苦名爲第二正感之果
037_0517_c_01L이 죄를 받고서는 아귀(餓鬼)가운데 태어나 굶주리며 목마른 고통으로 곤란을 겪으며 한량없는 천겁 동안 간장과 음식의 이름조차도 듣지 못하여, 그 목구멍은 바늘과 같고 그 배는 산과 같아서 비록 음식을 얻을지라도 따라 변하여 불이 되나니, 이와 같이 괴로운 몸을 제3정감과라고 하는 것이다.
이 죄를 마친 뒤에는 인간에 와서 태어나지만 빈궁하고 하천(下賤)하여 남에게 부림을 당하며, 모든 재물과 보배를 구하는 대로 얻기 어려워 모든 때에 자재하지 못하나니, 이와 같이 남은 과보를 상사과(相似果)라고 하는 것이다.
일체 보살은 분명히 이와 같은 인과(因果)를 알고 보아서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해탈을 구하고, 이 공포로 말미암아 권속을 멀리 떠나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다.
037_0517_b_22L受是罪已生餓鬼中困飢渴苦無量千劫不聞漿水飮食之名其咽如鍼其腹如山縱得飮食隨變爲火如是苦名爲第三正感之果畢是罪已來生人閒貧窮下賤爲佗所使於諸財寶所求難得於一切時而不自在如是餘報名相似果一切菩薩分明知見如是因常生恐怖欲求解脫由是恐怖遠離眷屬住阿蘭若
어떤 보살은 ‘몹시 사랑하는 마음이 두려움이 되니, 모든 재물과 보배를 얻지 못하면 낮과 밤으로 쫓아 구하여 목마르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견해가 두려움이 되니 모든 번뇌가 의지할 데를 짓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모든 법견(法見)이 두려움이 되니, 소지장(所知障)과 더불어 의지할 데를 짓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62견(見)이 두려움이 되니, 삿되게 보는 숲에 들어가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이다’라고 한다.
037_0517_c_08L或有菩薩以渴愛心而爲恐怖於諸未得一切財寶日夜追求生渴愛故或有菩薩我我所見而爲恐爲諸煩惱作依止故或有菩薩諸法見而爲恐怖與所知障作依止或有菩薩六十二見而爲恐怖邪見林難出離故
어떤 보살은 ‘의심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정진법(正眞法)에 대해 의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단견(斷見)이 두려움이 되니, 후세가 없고 인과가 없다고 집착해서 큰 사견(邪見)을 일으켜 지옥에 드는 까닭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상견(常見)이 두려움이 되니, 5취(趣)의 몸이 항상 결정(決定)되어 있다고 집착하여 선과 악의 업을 따라 변역(變易)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7_c_14L或有菩薩疑爲恐於眞正法生疑惑故或有菩薩彼斷見而爲恐怖執無後世撥無因生大邪見入地獄故或有菩薩彼常見而爲恐怖執五趣身恒常決隨善惡業無變易故
037_0518_a_01L어떤 보살은 ‘저 질투(嫉妬)가 두려움이 되니, 남의 영화를 참지 못하여 악한 마음을 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항상 마음이 들떠 있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마음이 고요하지 아니하여 산란(散亂)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믿지 않는 마음이 두려움이 되니, 사람이 손이 없으면 아무리 보배산에 이를지라도 끝내 얻는 것이 없듯이 믿음의 손이 없으면 아무리 3보를 만날지라도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뉘우침이 없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안으로 부끄러움이 없으면 항상 모든 악을 지어 업장과 무명(無明)으로 부처님을 뵙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밖으로 부끄러움이 없으면 은혜를 저버리고 덕을 배반하여 생사에 윤회하며 3도(塗)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7_c_19L或有菩薩彼嫉姤而爲恐怖不耐佗榮懷惡心或有菩薩常以掉擧而爲恐怖不寂靜生散亂故或有菩薩以不信心而爲恐怖如人無手雖至寶山終無所得無信手者雖遇三寶無所得或有菩薩以彼無慚而爲恐怖無羞恥常造諸惡業障無明難見佛或有菩薩以無愧心而爲恐怖無羞恥棄恩背德生死輪迴墮三塗
어떤 보살은 ‘화내고 원한을 갖는 것 등이 두려움이 되니, 자기와 남을 손상하여 서로 원수를 맺어 많은 겁 가운데 부처님의 도를 장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잊어버리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들은 법을 능히 기억하여 갖지 못하고 글의 뜻을 잊어버려서 어리석음을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일체의 착하지 못한 어두운 업[黑業]이 두려움이 되니, 왜 그런가 하면, 일체의 착하지 못한 것이 바로 생사의 인(因)이 되어 3계(界)에 유전하고 벗어남을 얻지 못하여 이에 한량없고 끝없는 공포가 모두 능히 출세의 수승한 법을 장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다섯 가지 덮임[蓋]이 두려움이 되니, 다섯 가지 번뇌가 보살의 보리의 마음을 덮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증오하는 마음이 두려움이 되니, 모든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보리의 행을 닦는데 많이 물러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계(戒)를 깨뜨리는 때[垢]가 두려움이 되니, 성인의 법을 더럽히어 과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근심하고 고뇌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망령된 생각이 치열하게 타올라 선법(善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a_06L或有菩薩以忿恨等而爲恐怖損自佗互爲怨結於多劫中障佛道或有菩薩以彼忘失而爲恐怖所聞法不能憶持忘失文義增愚癡或有菩薩乃至一切不善黑業而爲恐怖何以故一切不善是生死因輪轉三界不得出離於是無量無邊恐怖皆能障礙出世勝法或有菩薩以五種蓋而爲恐怖五種煩惱覆蓋菩薩菩提心故或有菩薩以憎惡心而爲恐怖於諸衆生無憐愍心修菩提行多退轉故或有菩薩以破戒垢而爲恐怖污穢聖法難得果故或有菩薩以彼憂惱而爲恐怖妄想熾然失善業故
037_0518_b_01L어떤 보살은 ‘악으로 마음을 짓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선을 닦으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미칠 정도로 취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선과 악을 알지 못하고 높고 낮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때 아닌 죽음이 두려움이 되니, 바른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여 덧없음[無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망령된 말의 업이 두려움이 되니, 나고 나는 세상 마다 말하는 것을 일체 중생이 믿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이 두려움이 되니, 네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생사에 윤회하여 번뇌의 업을 일으키고 성불하기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악한 벗이 두려움이 되니, 착하지 못한 벗을 따라 악업을 짓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5온(蘊)의 마(魔)가 두려움이 되니, 이 5온의 몸이 번뇌로부터 생기고, 생긴 뒤에는 곧 한량없는 번뇌를 일으켜 모든 번뇌로 인하여 선하지 못한 업을 지으며, 모든 혹업(惑業)으로 말미암아 크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므로, 이런 인연으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한다.
037_0518_a_20L或有菩薩以惡作心而爲恐怖於所修善生追悔故或有菩薩而說狂醉是爲恐怖不識善惡無尊卑故或有菩薩以非時死而爲恐怖不住正念歸無常故或有菩薩以妄語業而爲恐怖生生世世所有言說一切衆生不信受故或有菩薩以四顚倒而爲恐怖由四顚倒輪迴生死起煩惱業不求佛故或有菩薩而說惡友是爲恐怖隨不善友造惡業故或有菩薩以五蘊魔而爲恐怖是五蘊身從煩惱生生已卽起無量煩惱因諸煩惱造不善業由諸惑業墮大深坑以是因緣而生恐怖
어떤 보살은 ‘번뇌의 마가 두려움이 되니, 크고 작은 번뇌가 능히 생사를 이어서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 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죽음을 싫어하는 마가 두려움이 되니, 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물러나지 않더라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마치면 물러나 전전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모든 하늘의 마가 두려움이 되니, 하늘 마의 권속들이 욕계(欲界)에 가득 차서 도 닦는 사람을 장애하여 보리에서 물러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무기심(無記心)이 두려움이 되니, 모든 선법에 능히 나아가 닦지 아니하고 공연히 긴 시간만 보내어 선한 업에서 물러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8난(難)이 두려움이 되니, 8난에 떨어지는 이는 어두운 데로부터 어두운 데로 들어가 생사의 긴 밤에 밝음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지옥을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한 번 지옥에 떨어지면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록 큰 고뇌를 받아 해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b_10L或有菩薩以煩惱魔而爲恐怖大小煩惱能續生死退菩提心墮惡道故或有菩薩厭患死魔而爲恐怖發菩提心未得不退身壞命終生退轉故或有菩薩以諸天魔而爲恐怖天魔眷屬充滿欲界障修道人退菩提故或有菩薩以無記心而爲恐怖於諸善法不能進修空過長時退善業故或有菩薩以彼八難而爲恐怖墮八難者從冥入冥生死長夜難遇明故或有菩薩觀彼地獄而爲恐怖一墮地獄經無量劫受大苦惱難解脫故
037_0518_c_01L 어떤 보살은 ‘축생의 길을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방생계(傍生界)1) 가운데 어리석은 과보를 받아 한없는 겁을 지나도록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아귀의 도를 보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항하사 같은 겁에 주리고 목마른 괴로움을 받아 가히 불ㆍ법ㆍ승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욕계에 태어남을 생각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번뇌가 섞여 일어나 모든 악업을 지어 3도(塗)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저 색계(色界)가 두려움이 되니, 덮는 번뇌가 있으면 능히 정(定)을 장애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무색계가 두려움이 되니, 3계 가운데 가장 고요하여 마치 열반 같으므로 유정이 망령되게 집착하여 구경(究竟)이라고 여기지만 겁(劫 )이 다하여 목숨을 마치면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b_22L或有菩薩觀畜生道而爲恐怖傍生界中受愚癡報經無量劫難出離故或有菩薩觀餓鬼道而爲恐怖於恒沙劫受飢渴苦可値遇佛法僧故或有菩薩想欲界生而爲恐怖煩惱雜起造諸惡業墮三塗故或有菩薩以彼色界而爲恐有覆煩惱能障定故或有菩薩無色界而爲恐怖三界之中最爲寂靜猶如涅槃有情妄執而爲究竟盡命終墮地獄故
어떤 보살은 ‘자주 자주 나고 죽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삿되게 보는 가문에 태어나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생사를 싫어하는 것이 두려움이 되니, 여기서 죽고 저기에 태어나 항상 고뇌를 받아서 보살의 행을 장애하고 열반을 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세간의 말이 두려움이 되니, 마음이 항상 어지러워서 선업(善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어떤 보살은 ‘마음과 뜻의 알음알이가 두려움이 되니, 인연 있는 행의 모양[行相]2)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37_0518_c_09L或有菩薩數數生死而爲恐怖生邪見家難出離故有菩薩厭離生死而爲恐怖死此生彼常受苦惱障菩薩行求涅槃故有菩薩以世閒語是爲恐怖心常散亂妨善業故或有菩薩以心意識而爲恐怖所緣行相不可知故
만일 속가(俗家)에 있으면 이런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밤낮으로 선한 마음을 흔들어 어지럽게 해서 능히 두려움이 없는 법을 증득하지 못하지만, 과거에는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 모두 능히 두려움이 없는 법을 증득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미래 보살도 아란야에 머물러 모두 다 두려움이 없는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현재 시방의 모든 큰 보살들도 아란야에 머물러 일체 업장을 끊고 두려움이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037_0518_c_15L若在俗家由斯恐怖晝夜相續擾亂善心能證得無恐怖法過去菩薩住阿蘭皆能證得無恐怖法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未來菩薩住阿蘭若悉皆當得無恐怖法阿耨多羅三藐三菩提現在十方諸大菩薩住阿蘭若斷一切障得無恐怖阿耨多羅三藐三菩提
037_0519_a_01L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응함에 따라 3세(世) 보살을 닦고 배워서 몸과 마음을 거두어 들여 아란야에 머물러 망령된 생각을 조복(調伏)시키면 영원히 두려움을 없애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037_0518_c_23L汝等當知隨應修學三世菩薩攝念身心住阿蘭若調伏妄想永無恐怖究竟阿耨多羅三藐三菩提
출가한 보살은 아란야에 머물러 어떠한 업을 지으며, 어떠한 생각을 지어야 하는가.
밤낮으로 항상 이런 생각을 지으니, 세간에 있는 일체의 두려움은 모두 나로부터 생기나니 일체의 두려움이 나에 집착하여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내가 근본이 되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나를 사랑하는 데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나라는 생각에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나라는 견(見)에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내가 머무르는 곳이 되어 일체의 두려움이 나로 인하여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분별(分別)하는 데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두려움은 번뇌에서 생기는 까닭이며, 일체의 번뇌는 나를 사랑하는데서 생기는 까닭이니, 만일 내가 아란야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능히 나와 나의 것이란 집착을 여의지 못하면 아란야 가운데 머무는 것이 되지 못하여 도리어 백의(白衣)의 집에 머무르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037_0519_a_02L復次出家菩薩住阿蘭若當作何業何等念日夜常作如是思惟世閒所有一切恐怖皆從我生一切恐怖著我生一切恐怖我爲根本故一切恐怖我愛生故一切恐怖我想生故一切恐怖我見生故一切恐怖我爲住處一切恐怖因我生故一切恐怖分別生故一切恐怖煩惱生故一切煩惱我愛生故若我住在阿蘭若處不能捨離我我所不應住是阿蘭若中不如還住白衣屋舍
왜 그런가 하면, 만일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보특가라(補特伽羅)3)의 모양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어떤 사람이 나와 나의 것이란 집착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법견(法見)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만일 네 가지 뒤바뀜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037_0519_a_13L何以故若有我想不應住止阿蘭若處若有補特伽羅相者不應住止阿蘭若處若人具有我我所執應住止阿蘭若處若有法見不應住止阿蘭若處若有具此四顚倒執應住止阿蘭若處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만일 수행하는 이가 열반상(涅槃相)을 짓는다 해도 아란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다시 모든 번뇌의 모양을 일으킴에랴.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만일 일체 법의 모양에 집착함이 없으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니, 이것을 집착함이 없는 도량에 앉았다고 하는 것이다.
037_0519_a_18L汝等諦聽若有修行作涅槃相不應住止阿蘭若處況更起諸煩惱相汝等諦聽若有不著一切法相應當安住阿蘭若處是名當坐無著道場
037_0519_b_01L일체의 모든 법을 다 얻을 수 없을지라도 만일 마음이 고르고 부드러워 쟁논(諍論)이 없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세간 인연에 모두 집착하는 바가 없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빛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닿음 등의 법에 의지함이 없으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일체 법을 평등하게 본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4위의(威儀)에 능히 자기 마음을 조복시킨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일체의 모든 두려움을 버릴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다.
037_0519_a_22L一切諸法皆不可得若心調柔無有諍論應當安住阿蘭若處於世因緣都無所著應當安住阿蘭若處於色聲香味觸等法無依止者應當安住阿蘭若處於一切法有平等見應當安住阿蘭若處於四威儀能調自心應當安住阿蘭若處能捨一切諸恐怖者應當安住阿蘭若處
모든 불자들이여, 요약해서 말한다면, 모든 번뇌에서 해탈을 얻으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만약 열반의 인(因)을 성취한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능히 잘 네 가지 무구성(無垢性)을 수행한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만일 욕심을 적게 하여 능히 만족함을 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많이 들음을 만족하여 지혜가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다.
037_0519_b_07L諸佛子等以要言之於諸煩惱得解脫者應當安住阿蘭若處若得成就涅槃因者應當安住阿蘭若處能善修行四無垢性應當安住阿蘭若處若有少欲能知足者應當安住阿蘭若處具足多聞有智慧者應當安住阿蘭若處
만약 세 가지 해탈을 수행할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영원히 속박과 번뇌의 맺음을 끊을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자세히 열 두 인연을 관찰할 수 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할 일을 이미 다했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모든 무거운 짐을 버렸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요, 진여(眞如)의 깊고 묘한 이치를 깨달아 증득한다면 아란야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이 될 것이다.
037_0519_b_13L若能修行三解脫者當安住阿蘭若處永斷能縛煩惱結者應當安住阿蘭若處能審觀察十二因應當安住阿蘭若處所作已辦者當安住阿蘭若處捨諸重擔者應當安住阿蘭若處證悟眞如深妙理者應當安住阿蘭若處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아란야라는 곳은 갖가지 약초(藥草)와 크고 작은 풀과 나무가 아란야에서 자라며, 일찍이 두려움이 없었으며 또한 분별도 없나니, 보살마하살이 아란야에 머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보기를 마른 나무나 담(墻)ㆍ벽(壁)ㆍ기와장과 다름이 없이 여기어 일체 법에 분별이 없으며, 내가 몸과 마음을 보건대 허깨비 같은 꿈속에는 진실함이 없듯이 생각 생각이 쇠(衰)하고 늙어지며 숨이 나오고서는 다시 들어가지 않으니, 선과 악의 인(因)으로 말미암아 업에 따라 보를 받으며, 이 몸이 덧없어서 빨리 일어났다가 빨리 멸하는 것이며, 이 몸은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어서 마침내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이다.
037_0519_b_19L汝等當知阿蘭若處種種藥草大小樹木生阿蘭若曾無恐怖亦無分別菩薩摩訶薩住阿蘭若亦復如是觀自身心猶如枯牆壁瓦礫等無有異於一切法無有分別我觀身心猶如幻夢中無有念念衰老其息出已更不復入善惡因隨業受報是身無常速起速是身虛假終不久停
이와 같이 몸 가운데는 나와 나의 것이 없으며, 유정(有情)도 없으며, 목숨도 없으며, 길러서 자라게 하는 것도 없으며, 젊은 남자 양반[士夫]도 없으며,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없으며, 업을 지음도 없으며, 어린아이도 없으니, 이런 것들의 모양은 본디 텅 비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거품과 같은 것이다.
항상 생각마다 이와 같은 관(觀)을 지으면 나무에는 공포가 없는 것과 같이 일체의 두려움에서 모두 해탈을 얻을 것이다.
이때 모든 보살이 큰 안락무외(安樂無畏)의 앉을 곳을 얻나니, 이것을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아란야에 머물면서 밤낮으로 응당 이와 같이 보는 것이다.
037_0519_c_04L如是身中無我我所無有情無命者無養育者士夫者無補特伽羅者無作業者童兒者如是等相本來空寂猶如虛亦如泡沫常應念念作如是觀切恐怖皆得解脫如彼樹木無有恐諸菩薩得大安樂無畏坐處名菩薩住阿蘭若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復次出家菩薩住阿蘭若夜相續應如是觀是阿蘭若善能修習四無垢性安樂之處
이 아란야는 네 가지 무구성(無垢性)을 잘 닦을 수 있는 안락한 곳이며, 이 아란야는 만족할 줄 앎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모든 번뇌에서 해탈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많이 들어서 지혜를 구족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조복시키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능히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에 드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8해탈을 잘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열 두 인연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037_0519_c_14L是阿蘭若能修習知足之處是阿蘭若於諸煩惱得解脫處是阿蘭若具足多聞智慧之處是阿蘭若伏斷煩惱所知障是阿蘭若能入三種解脫門處阿蘭若善能證得八解脫處是阿蘭善能觀察十二緣處
이 아란야는 업장을 잘 끊어서 여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초과(初果)인 예류과(預流果)4)를 잘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제2의 일래과(一來果)5)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제3의 불환과(不還果)6)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제4과인 아라한(阿羅漢)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벽지불과(辟支佛果)를 증득할 수 있는 곳이다.
037_0519_c_20L是阿蘭若能斷除業障之處是阿蘭若能得初果預流之處是阿蘭若能得第二一來果處是阿蘭若能得第三不還果處阿蘭若得第四果阿羅漢處是阿蘭證得辟支佛果之處
037_0520_a_01L이 아란야는 이미 할 일을 다 하여 자재함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모든 무거운 짐을 여의어 가볍고 편안함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둘 다 공(空)한 진여(眞如)를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한량없이 큰 인자한 마음을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한량없이 큰 동정심을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기쁨이 한량없음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버림이 한량없음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다.
037_0520_a_01L是阿蘭若辦所作得自在處是阿蘭若捨諸重擔得輕安處是阿蘭若證得二空眞如之處是阿蘭若能修證無量大慈心是阿蘭若修證無量大悲心處阿蘭若能善修習喜無量處是阿蘭善能修習捨無量處
이 아란야는 능히 보리의 마음을 발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보살이 닦아 지녀서 10신(信)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또 다시 닦아서 10주(住)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차근차근 더 닦아서 10행(行)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차근차근 수행해서 10회향(廻向)에 이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네 가지 선근(善根)을 잘 닦을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육도바라밀(六度波羅密)을 수행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초지(初地)를 수행해서 10지에 이르는 곳이다.
037_0520_a_07L是阿蘭若發菩提心處是阿蘭若菩薩修持到十信處是阿蘭若復次進修到十住是阿蘭若展轉增修到十行處阿蘭若展轉修行十迴向處是阿蘭善能修習四善根處是阿蘭若行六度波羅蜜處是阿蘭若修行初地至十地處
이 아란야는 6근(根)의 청정함을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천안통(天眼通)을 잘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천이통(天耳通)과 숙주지(宿住智)ㆍ생사지(生死智)ㆍ명신경타심(明神鏡他心) 등 이와 같은 신통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부끄러워함이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게으름 부리지 않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5근(根)을 닦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삼매를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끝없는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어 자재함을 증득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무생인(無生忍)을 깨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영원히 삼계를 벗어나 생사를 끊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물러나지 않음을 얻는 곳이다.
037_0520_a_14L是阿蘭若證得六根淸淨之處是阿蘭若善能證得天眼通是阿蘭若得天耳通及宿住智死智明神境佗心如是通處是阿蘭有慚愧處是阿蘭若不放逸處阿蘭若修五根處是阿蘭若證得無量無邊三昧之處是阿蘭若能得恒沙陀羅尼門證自在處是阿蘭若無生忍是阿蘭若永出三界斷生死是阿蘭若得不退轉
037_0520_b_01L이 아란야는 일체 여러 마군과 원수와 적을 항복시키고 업장을 녹여 없애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듣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부처님의 소승과 같지 아니한 최상의 법문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계(戒)와 온(蘊)을 닦아 익혀 청정하게 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샘이 없는 삼마지(三摩地)7)를 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능히 반야(般若)를 내어 해탈을 증득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능히 해탈을 알고 봄을 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얻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2두타(頭陀)를 잘 닦아 거둘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지혜로 능히 분별하여 진실한 이치가 머무르는 곳이다.
037_0520_a_23L是阿蘭若伏一切衆魔怨敵銷除業障見佛聞如是之處是阿蘭若得佛不共最上法門是阿蘭若修習戒蘊淸淨之是阿蘭若出生無漏三摩地處阿蘭若能生般若證解脫處是阿蘭能生解脫知見之處是阿蘭若三十七菩提分法是阿蘭若善能修攝十二頭陀是阿蘭若智能分別諦理住處
이 아란야는 샘이 있는 5온(蘊)이 생기는 것을 영원히 여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2입(入)을 해탈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샘이 있는 18계(界)를 영원히 여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8공(空)을 미묘하게 관찰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일체 모든 법의 공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10선법(善法)이 생겨남을 더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견고한 보리의 마음을 자라나게 하는 곳이며, 이 아란야는 3세의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일체 보살이 공경하고 찬탄한 곳이다.
037_0520_b_08L是阿蘭若永離有漏五薀生處是阿蘭若能得解脫十二入處是阿蘭若永離有漏十八界處是阿蘭若微妙觀察十八空是阿蘭若容受一切諸法空處阿蘭若增長十善法生之處是阿蘭增長堅固菩提心處是阿蘭若世諸佛讚歎之處是阿蘭若一切菩薩恭敬讚歎如是之處
037_0520_c_01L이 아란야는 비바시(毘波尸) 부처님이 니구타(尼俱陀)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시기(尸棄) 여래께서 시리사(尸利沙)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비사(毘舍) 여래께서 아시사다(阿尸娑多)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구류손(俱留孫) 부처님이 무우수(無優樹) 아래에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구나함모니(俱那含牟尼) 여래께서 우담(優曇) 나무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가섭(迦葉) 여래께서 바타(婆陀)나무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신 곳이며, 이 아란야는 석가(釋迦) 여래께서 필발라(畢鉢羅)나무 아래에서 도를 이루신 곳이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아란야라는 곳은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과 수승한 이익이 있는 곳이다.”
037_0520_b_16L是阿蘭若婆尸佛於尼俱陀樹下成道是阿蘭尸棄如來於尸利沙樹下成道阿蘭若毘舍如來阿尸婆多樹下成是阿蘭若俱留孫佛無憂樹下成等正覺是阿蘭若俱那含牟尼如來優曇樹下成等正覺是阿蘭若迦葉如來婆陀樹下成等正覺是阿蘭若釋迦如來於畢鉢羅樹下成道之處汝等當知阿蘭若處有如是等無量無邊功德勝利
이때 낙원리행 보살이 모든 대중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037_0520_c_02L爾時樂遠離行菩薩爲諸大衆而說偈言

출가한 보살은 난야에 머물러
어떤 생각과 업을 지어야만 하는가.
세간에 있는 모든 두려움은
다 나라고 봄과 나의 것이라고 하는데서 생겨나니
037_0520_c_03L出家菩薩住蘭若
當作何念及何業
世閒所有諸恐怖
皆從我見我所生

만일 능히 나와 나의 것이란 것을 끊으면
일체의 두려움이 의지할 데가 없으며
만일 나라고 봄을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끝내 보리의 도를 이루지 못하리라.
037_0520_c_05L若能斷除我我所
一切恐怖無所依
若有能執我見心
畢竟不成菩提道

열반과 상주(常住)가 다 모양이 없는데
하물며 번뇌의 그른 법의 모양임에랴
모든 법과 중생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 다툼이 없이 바른 생각을 닦으며
037_0520_c_07L涅槃常住皆無相
何況煩惱非法相
不著諸法及衆生
心無諍論修正念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마음을 조복하여
난야의 항상 고요한 곳에 머무르며
능히 번뇌를 끊고 마음에 만족함을 알면
난야의 텅 비어 조용한 집에 머무르며
037_0520_c_09L四威儀中調伏心
應住蘭若常寂靜
能斷煩惱心知足
住於蘭若空寂舍

3해탈의 모양 없는 문에 들어가
난야에 머물러 티끌과 때를 여의면
능히 12인연법과
4제(諦)와 2공(空)의 참되고 미묘한 이치를 보며
037_0520_c_11L入三解脫無相門
住於蘭若離塵垢
能觀十二因緣法
四諦二空眞妙理

세간 8법에 치우쳐 움직이지 않는
이와 같은 대사가 난야에 머무르며
자신을 마른 나무나
물거품, 허깨비 같은 꿈처럼 보고
037_0520_c_13L世閒八法不傾動
如是大士住蘭若
能觀自身如枯木
亦如水沫及幻夢

양 끝의 평등상(平等相)에 집착하지 않는
이런 살타(薩埵)가 난야에 머무르며
죄업에 얽힌 덧없는 몸은
본래 거짓이요 진실됨이 없어서
037_0520_c_15L不著二邊平等相
如是薩埵住蘭若
罪業纏縛無常身
本來虛假元無實

나와 법 두 집착과 죄의 모양을
3세 가운데 얻을 수 없으므로
자기 몸과 남의 몸이 둘이 없나니
일체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다네.
037_0520_c_17L我法二執及罪相
於三世中不可得
自身佗身無有二
一切諸法亦如是

법성(法性)은 가고 옴이 없음을 자세히 보는
이와 같은 보살이 난야에 머무르며
전단을 몸에 바르고 찬탄하거나
칼로 베고 꾸짖고 욕하여도
037_0520_c_19L諦觀法性無去來
如是菩薩住蘭若
栴檀塗身及讚歎
以刀屠割幷罵辱

이런 두 사람에게 사랑과 미워함이 없는
이와 같은 보살이 아란야에 머무나니
출가하여 아란야에 머무름을 즐기어
낮과 밤으로 이와 같이 봄을 지으라.
037_0520_c_21L於此二人無愛憎
如是菩薩住蘭若
出家樂住阿蘭若
晝夜應作如是觀
037_0521_a_01L
아란야라는 곳은 참된 도량이어서
일체 여래가 정각을 이루며
아란야라는 곳은 미묘한 법이 공하여
출세의 바른 법이 나는 곳이며
037_0520_c_23L阿蘭若處眞道場
一切如來成正覺
阿蘭若處妙法空
出世正法之所生

아란야라는 곳은 성인이 높이는 바이니
능히 3승의 성스러운 도(道)를 내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성인이 집으로 여기는 바이니
일체 성현이 항상 머무르기 때문이며
037_0521_a_02L阿蘭若處聖所尊
能生三乘聖道故
阿蘭若處聖所宅
一切聖賢常住故

아란야라는 곳은 여래의 집이니
시방 모든 부처님이 의지하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금강의 자리이니
3세 모든 부처님이 도를 얻었기 때문이며
037_0521_a_04L阿蘭若處如來宮
十方諸佛所依故
阿蘭若處金剛座
三世諸佛得道故

아란야라는 곳은 열반의 집이니
3세 여래가 원적(圓寂)에 드셨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큰 자애의 집이니
보살이 이곳에 머물러 자애를 닦기 때문이네.
037_0521_a_06L阿蘭若處涅槃宮
三世如來圓寂故
阿蘭若處大慈室
菩薩住此修慈故

아란야라는 곳은 동정심의 밭이니
3세 모든 부처님이 동정심을 닦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6통(通)의 집이니
보살이 여기에서 노닐기 때문이며
037_0521_a_08L阿蘭若處是悲田
三世諸佛修悲故
阿蘭若處六通室
菩薩於此遊戲故

아란야라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능히 일체 공포를 끊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삼마지이니
도를 구하는 모든 이가 적정을 얻기 때문이며
037_0521_a_10L阿蘭若處大無畏
能斷一切恐怖故
阿蘭若處三摩地
諸求道者得定故

아란야라는 곳은 다라니이니
주문하는 모든 사람이 신력을 갖기 때문이며
아란야라는 곳은 선한 법의 집이니
일체 선한 법을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며
037_0521_a_12L阿蘭若處陀羅尼
諸持呪人神力故
阿蘭若處善法堂
增長一切善法故

아란야라는 곳은 보리의 집이니
보살이 도를 닦아 인을 얻기 때문이다.
만일 영원히 삼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보리와 열반을 닦아 증득하라.
037_0521_a_14L阿蘭若處菩提室
菩薩修道得忍故
若欲永超三界苦
菩提涅槃當修證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응당 아란야 보리의 집에 머물러야 하니
닦은 바 6도(度)와 4섭법(攝法)을
3유(有)와 4은(恩)에 돌려 베풀어
037_0521_a_16L徧周法界利群生
應居蘭若菩提室
所修六度四攝法
迴施三有及四恩

나와 남이 함께 감로의 성에 들어가
함께 하나의 여진법계(如眞法界)를 증득하네.
037_0521_a_18L自佗俱入甘露城
同證一如眞法界
037_0521_b_01L
이때 낙원리행 보살마하살이 모든 대중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한 뒤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대중들과 미래세에 불도를 구하는 이를 위하여 아란야의 수승한 공덕을 분별하여 연설해서, 현재와 미래의 일체 중생에게 이익이 되고 안락하게 하여 보리정진각도(菩提正眞覺道)에 나아가게 하였으니, 네가 성취한 한량없는 공덕은 천 분의 부처님이 함께 말할지라도 능히 다 하지 못할 것이다.”
037_0521_a_19L爾時樂遠離行菩薩摩訶薩爲諸大衆說是法已佛言善哉善哉善男子汝爲大衆及未來世求佛道者分別演說阿蘭若處殊勝功德利益安樂現在未來一切衆生趣向菩提正眞覺道汝所成就無量功德千佛共說不能窮盡
이때 모임 가운데 지광 보살과 한량없는 아승기의 보살 대중이 아란야의 가장 수승한 공덕을 듣고는 곧바로 다라니문을 들어 지님을 얻었으며, 한량없는 중생이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물러나지 않음을 얻었으며, 천억 중생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안이 청정함을 얻었다.
037_0521_b_03L爾時會中智光菩薩無量阿僧祇菩薩大衆聞阿蘭若最勝功卽得聞持陀羅尼門無量衆生發無等等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得不退轉千億衆生遠塵離垢得法眼淨

7. 염신품(厭身品)
037_0521_b_07L大乘本生心地觀經厭身品第七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어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출가한 보살마하살이 세간을 떠나서 아란야에 머물러 그 마음을 조복하고 때[垢] 없는 행을 닦음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이 보살이 텅 비어 한적한 곳에 머물러 스스로 이 몸에 대하여 어떤 관(觀)을 지어야 하나이까?”
037_0521_b_08L爾時彌勒菩薩摩訶薩卽從座起袒右肩右膝著地合掌恭敬而白佛世尊我等旣悟出家菩薩摩訶薩厭離世閒住阿蘭若調伏其心修無垢行然此菩薩住空閑處自於是身應作何觀
이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중생을 위하여 큰 동정심을 일으켜 여래께 성지관묘행법문(聖智觀妙行法門)에 들어감을 청하여 물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잘 들어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노라.”
037_0521_b_14L爾時佛告彌勒菩薩言善哉善哉善男汝爲衆生起大悲心請問如來入聖智觀妙行法門汝當善聽今爲汝
“그렇게 하십시오, 세존이시여. 듣기를 원하나이다.”
唯然世尊願樂欲聞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이 아란야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 네 가지 위의(威儀) 가운데 자세히 관찰하면, 이 샘이 있는 몸은 37가지 청정하지 못한 더럽고 악한 것이어서 사랑할만한 것이 못되며 견고하지 못한 것이니, 마땅히 이 몸을 보기를 아직 굽지 않은 질그릇같이 보라.
밖에는 여러 가지 빛나는 금과 은과 7보로 교묘하게 꾸며 장엄하고 안에는 똥과 더러운 갖가지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꽉 채우고서 두 어깨에 걸머지고 길을 따라 가면, 보는 이는 모두 사랑하고 즐거워하지만 그릇 안에는 정결하지 못한 것이 가득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여섯 마리 검은 뱀이 항상 이 그릇 안에 있는데 한 뱀이 움직이면 그릇이 곧 파괴되어 독하고 해로운 악취를 마침내 견딜 수 없으니, 세간 사람이 그 몸을 장엄하는 것이 저 색으로 곱게 칠한 것에 정결하지 못한 것을 담은 그릇과 같은 것이다.
037_0521_b_18L善男子出家菩薩住阿蘭若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四威儀中微細觀察是有漏身三十七種不淨穢惡是不可愛不堅牢當觀此身猶如坏器外以雜彩金銀七寶巧飾莊嚴內以糞穢種種不淨塡塞充滿兩肩擔負隨途而其有見者皆生愛樂不知器中盛滿不淨有六黑蛇常在此器一蛇隨器卽破壞毒害臭惡竟無所堪閒之人莊嚴其身如彼彩畫盛不淨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를 마음의 병이라 하고, 풍병(風病)과 황담병(黃痰病)과 심화병[癮病]은 몸의 병이라 하는 것인데, 안팎의 여섯 가지 병이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이 마치 저 여섯 마리 뱀이 그릇 안에 살면서 하나가 움직이면 그릇이 곧 깨지는 것과 같아서 한 가지 병만 발생해도 몸이 곧 덧없어지는 것이다.
037_0521_c_06L貪嗔癡三名爲心病風黃痰癊名爲身病內外六病能害身心如彼六蛇居於器內一一蛇動器卽破壞一病發身卽無常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이 텅 비어 한적한 곳에 처하여 이 몸을 관찰하는 것을 제1부정관상(不靜觀相)이라고 한다. 출가한 보살은 밤낮으로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더럽고 청정하지 못하여 마치 죽은 개[狗]와 같다고 보니, 왜냐 하면 저 몸이 또한 부모의 정결하지 못한데서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뭇 개미들이 개미집에 편안히 머물 때, 흰 코끼리가 밟아서 집이 곧 부서지는 것과 같이 보는 것이다.
037_0521_c_09L善男子出家菩薩處於空閑觀察是身名爲第一不淨觀相出家菩薩於日夜中又觀自身臭穢不淨猶如死狗何以故彼身亦是父母不淨爲生緣故出家菩薩又觀自身如蟻子臺安住衆蟻有白象來至臺邊以身觸臺臺卽崩碎
선남자여, 이 집은 이른바 5온(蘊)의 몸이요 ,흰 코끼리는 염마라사(琰魔羅使)이며, 몸이 다음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코끼리가 집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제 이 몸이 이마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가죽과 살과 뼈, 골수가 함께 서로 화합하여 그 몸을 이룬 것이니 마치 파초(芭蕉)가 그 속은 실함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037_0521_c_15L男子此臺所謂五蘊之身白象是爲琰魔羅使身歸後世如象壞臺出家菩薩又觀自身而作是念我今此身從頂至足皮肉骨髓共相和合以成其身猶如芭蕉中無實故
037_0522_a_01L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에 강한 힘이 없다고 관(觀)하니, 가죽과 살은 담장에 칠한 듯이 얇으며 억만의 털은 풀이 땅에 난 것과 같아서 미세한 바람이 털구멍으로 드나드니 어느 지혜 있는 이가 이 몸을 즐기겠는가. 찰나 찰나에 노쇠함이 점점 더하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독사를 길러 해침을 당하는 것과 같이 보니, 내가 이제 비록 음식과 의복으로 이 몸을 돋우고 기를지라도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필경에 다시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비유하면 마치 원수가 거짓으로 친구가 되어 그의 틈[便]을 기다렸다가 독약으로 저의 목숨 뿌리를 끊는 것과 같아서 내 몸도 이와 같이 본디 진실 된 것이 아니므로 마침내 덧없는데 이른다고 보니, 거룩하게 여겨 사랑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037_0521_c_20L出家菩薩又觀自身無有强力皮肉薄覆如塗附牆億萬毛髮如草生地微細風大出入毛孔誰有智者當樂此身剎那剎那衰敗轉故出家菩薩又觀自身如養毒蛇而取其害我今雖以飮食衣服資長是身而不識恩畢竟還令墮於惡道出家菩薩又觀自身譬如怨家詐作親友伺求其便而將毒藥斷彼命根我身如是本非眞實終致無常非聖愛故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이 마치 물거품이 비록 묘하고 좋은 유리나 구슬빛 같지만 찰나의 인연이 일어났다 없어지면 덧없음과 같다고 보나니 함이 있는 생각마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까닭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물 위의 물방울이 비록 아름답고 미묘한 유리구슬 모양이지만 찰나의 인연으로 생겼다 없어져 항상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니, 함이 있는 생각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건달바(乾闥婆) 성이 비록 모양은 나타내지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보니, 이제 나의 몸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그림자처럼 보니, 나의 몸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있기는 하지만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 자기 몸을 관하되 비유하면 마치 나라 밖의 강성한 원적 같아서 이제 내 몸도 또한 이와 같이 이 번뇌라는 원적이 선근을 침략한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썩은 집은 비록 수리(修葺)하더라도 반드시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비록 사랑하는 마음을 더할지라도 반드시 덧없음을 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037_0522_a_07L出家菩薩又觀自身如水上泡雖復妙好瑠璃珠色剎那因緣起滅無恒有爲念念不久住故出家菩薩又觀自身如乾闥婆城雖現相狀而不實有今者我身亦復如出家菩薩又觀自身猶如影像身亦爾雖有非眞出家菩薩又觀自譬如外國强盛怨敵今者我身亦復如是煩惱怨敵侵掠善根出家菩薩又觀自身如朽舍宅雖加修葺當必崩壞我身亦爾雖加愛念當必無
037_0522_b_01L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원수의 나라 성읍(城邑)이 가까우면 인민이 항상 두려움을 품듯이 이제 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덧없는 원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한량없는 섶이 불에 태워지더라도 이 맹렬한 불은 일찍이 만족함이 없는 것처럼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탐애의 불로 5욕의 섶을 태울지라도 그 마음이 자라나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새로 낳은 아들을 자비한 어머니가 어여삐 여겨 항상 지키고 보호하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만일 병든 몸과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면 곧바로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037_0522_a_18L出家菩薩又觀自身如近怨國城邑人民常懷恐怖今者我身亦復如於念念中畏無常怨出家菩薩又觀自身如無量薪爲火燒爇然是猛火曾無厭足我身亦爾以貪愛火燒五欲薪其心增長亦復如是出家菩薩又觀自身如新生子慈母憐愍恒加守護我身亦爾若不守護病之身心卽便不能有所修證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본성이 청정하지 못하다고 보니, 비유컨대 마치 어떤 사람이 숯[炭] 빛깔을 싫어하여 모든 방편을 베풀어서 물로 씻더라도 한량없는 시간이 지나면 검은 빛은 옛날 그대로이며 나아가 숯이 다하더라도 끝내 이익 되는 것이 없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샘이 있고 청정하지 못하므로 설령 바다 물로 미래세가 다하도록 씻을지라도 이익 됨이 없는 것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마치 기름으로 섶을 적시어 불로 태우는데 큰 바람을 만나면 그 기세를 끊을 수 없듯이, 내 몸도 또한 그러하여 5온(蘊)의 섶에다 탐애(貪愛)라는 기름을 적시어 성냄의 불을 놓으면 어리석음의 바람 기운이 쉬지 않고 분다고 보는 것이다.
출가한 보살은 또한 자기 몸을 관하되 악한 질병과 같다고 보니, 404가지 병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며, 또한 대장(大腸)과 같이 8만 4천의 벌레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037_0522_b_03L出家菩薩又觀自身本性不淨譬如有人厭患炭色設諸方便以水洗之經無量時黑色仍舊乃至炭盡終無所益我身亦爾有漏不淨假使海水盡未來際洗之無益亦復如是出家菩薩又觀自身如油沃薪以火焚燒又遇大風勢不可止是身亦爾名五蘊薪沃貪愛油縱瞋恚火愚癡風力無有休息出家菩薩觀於自身猶如惡疾四百四病所住處故亦如大腸八萬四千蟲所住故
이것은 덧없는 곳이니 숨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곧 덧없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무정물[非情]과 같나니 정신과 알음알이가 쉽게 벗어나서 기와나 돌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며, 또한 강물과 같나니 찰나에 흘러서 잠시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기름 짜는 것과 같나니 일체의 일에 대하여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의지할 데 없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은 것과 같기 때문이며, 구호할 이 없는 것이 마치 개구리가 뱀에게 먹힌 것과 같기 때문이며, 밑 없는 굴[無底窟]과 같으니 마음[心]과 마음의 대상[心所]인 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요, 항상 만족함을 알지 못하니 5욕락에 대하여 마음에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요, 항상 자재롭지 못하니 단(斷)과 상(常) 2견(見)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비록 양육의 은혜를 입더라도 주인을 버리기 때문이다.
037_0522_b_14L是無常處出息不還卽無常故如非情神識易脫同瓦石故亦如河剎那前後不蹔住故亦如壓油一切事受勞苦故無所依者猶如嬰兒失父母故無救護者猶如蝦蟆蛇所吞故如穴無底心心所法不可知恒不知足於五欲樂心無厭故不自在斷常二見所繫縛故不生慚愧雖蒙養育棄捨主故
037_0522_c_01L또한 죽은 시체와 같으니 낮과 밤으로 거의 소멸하고 무너지기 때문이요, 오직 모든 괴로움을 받으니 일체의 곳에서 참된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요, 괴로움이 의지하는 바가 되니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몸에 의지하여 머무르기 때문이요, 빈 취락(聚落)과 같으니 이 몸 가운데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마침내 텅 비어 고요한 것이니 치우치게 헤아려서 집착하여 멋대로 그리기 때문이요, 골짜기 가운데 메아리와 같으니 모두 이 허망한 것이 나타난 바이기 때문이요, 또한 배와 같으니 만일 뱃사공이 없으면 떠다니다 가라앉기 때문이요, 또한 큰 수레에 재물과 보배를 싣고 운전하는 것과 같으니 왜 그런가 하면 큰 수레[大乘]를 타고 보리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037_0522_b_22L亦如死於日夜分近滅壞故唯受諸苦一切處無眞樂故爲苦所依一切衆苦依身住故如空聚落於是身中無主宰故畢竟空寂徧計所執妄搆畫如谷中響皆是虛妄所顯現故如船舶若無船師卽漂沒故亦如大車運載財寶何以故乘於大乘到菩提故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은 밤낮으로 관찰하여 이와 같은 몸일지라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중생들이 생사의 바다를 벗어나서 저 언덕에 이르도록 하고자하기 때문이니라.”
037_0522_c_07L善男子出家菩薩日夜觀察不愛惜如是之身欲令衆生出生死海到彼岸故
이때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신 뒤에, 미륵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행을 닦으면 이를 곧 출가한 불자가 본 바의 법요(法要)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불자가 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기 위해 아란야에 머물러 이와 같이 37관(觀)을 닦으며, 또한 남을 가르쳐 이와 같은 법요를 닦게 하며, 풀어 말하고 쓰며 받아 지니고 읽고 익혀서 일체 나와 내 것이란 집착을 멀리 여의고, 영원히 5욕의 세간의 즐거움에 탐착함을 끊으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의 마음을 빨리 성취할 수 있어서 큰 보리를 구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세간에 있는 보배임에랴.
037_0522_c_09L爾時世尊說是法已告彌勒菩薩摩訶薩言善男子修如是行此則名爲出家佛子所觀法要若有佛子發菩提心爲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住阿蘭若修習如是三十七觀亦教佗修如是法要解說書寫受持讀習離一切我我所執永斷貪著五欲世速能成就不壞信心求大菩提不惜軀命何況世閒所有珍寶
현재의 몸이 반드시 구경에 일체 여래의 금강지인(金剛智印)을 성취하여 위없는 도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6도만행(度萬行)에 빨리 원만함을 얻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037_0522_c_18L現身必得究竟成滿一切如來金剛智印無上道永不退轉六度萬行速得圓滿疾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때 모임 가운데 8만 4천의 새로 뜻을 발한 보살들이 세간을 깊이 싫어하여 대인력(大忍力)을 얻어 위없는 도에서 다시는 물러나지 않았으며, 3만 6천의 선남자와 선여인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어 법안이 청정함을 얻었다.
037_0522_c_21L爾時會中八萬四千新發意菩薩厭世閒得大忍力不復退轉於無上百千婆羅門發菩提心成熟信根得不退轉三萬六千善男子善女人遠離塵垢得法眼淨
大乘本生心地觀經卷第六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몸을 옆으로 눕히고 다니는 축생들을 말한다.
  2. 2)심식(心識)의 각자 고유한 기능을 말한다. 소승에서는 주관의 인식 대상, 곧 객관 의 사물이 주관인 마음 위에 비친 영상을 말하며, 대승에서는 주관의 인지하는 작용 을 말하니, 곧 마음에 비친 객관의 영상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이다.
  3. 3)다시 태어나서 죽어가는 주체를 말한다. 단순히 사람을 이렇게 지칭하기도 한다.
  4. 4)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고 비로소 성인의 자리에 참여한 자리이므 로 초과라 하고, 장차 성인의 자리에 오를 문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예류과라 한다.
  5. 5)욕계수혹(欲界修惑)의 9품 중 앞의 6품을 끊은 성자를 말한다. 인간에 있으면서 이 과를 얻으면 반드시 천상에 났다가 다시 인간에 돌아와서 열반에 들고, 또 천상에 있으면서 이 과를 얻으면 우선 인간에 갔다가 다시 천상으로 돌아와 열반에 든다. 이와 같이 인간과 천상을 한번 왕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6. 6)욕계의 9품 수혹을 다 끊고 남은 것이 없으므로 다시 욕계에 돌아와서 나지 않는 지위에 도달한 성자.
  7. 7)삼매(三昧)를 말한다. 정(定)으로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