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7_0537_a_01L불설십력경(佛說十力經)
037_0537_a_01L佛說十力經


대당정원신역십지등경기(大唐貞元新譯十地等經記)
037_0537_a_02L大唐貞元新譯十地等經記


새로 번역한 『십지경(十地經)』과 『회향륜경(迴向輪經)』 그리고 『십력경(十力經)』은, 바로 수도[上都]에 있는 장경사(章敬寺) 사문(沙門)이자, 법명이 법계(法界)인 오공(悟空)1)이 계빈국[罽賓]에 사신으로 갔다가 중천축국(中天竺國)에서 얻은 것이다. 대사는 본래 경조(京兆) 운양인(雲陽人)으로, 고향에서는 청룡(靑龍)이라 불렸으며, 고을에서는 의로운 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다. 속성(俗姓)은 차씨(車氏)이고, 자(字)는 봉조(奉朝)이며, 후위(後魏) 탁발씨[拓拔]2)의 후예이다. 대사는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영민하였으며, 마음으로 항상 오전과 삼분[典墳]3) 같은 고서를 흠모했다. 또한 집안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었으며, 나라 일을 맡아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절개가 곧았다.
037_0537_a_03L新譯『十地經』及『迴向輪經』『十力經等』卽上都章敬寺沙門悟空本名法因使罽賓於中天竺國之所得也師本京兆雲陽人也鄕號靑龍里名嚮義俗姓車氏字曰奉朝後魏拓拔之胤裔也天假聰敏志尚典墳孝悌居家忠貞奉國
당나라 현종(玄宗)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4) 대에 이르러, 효로써 천하(天下)를 다스리니 만국(萬國)이 기뻐하였고, 팔방의 나라들[八表]이 신하로서 받들었으며, 사방의 국경 밖 나라들[四夷]도 그 덕화를 흠모하였다. 이때에 계빈국(罽賓國)이 당나라[聖唐]에 복속하기를 원하여, 대수령(大首領) 살파달간(薩波達幹)과 본국의 삼장(三藏) 사리월마(舍利越魔)를 보내었다. 이들이 천보(天寶) 9년 경인(庚寅, 750)년에 당의 궁궐[闕庭]에 와서 정성을 다해 예물을 바치며 화친을 원하고, 사신을 보내어 살펴주기를 요청하였다.
037_0537_a_10L玄宗至道大聖大明孝皇帝孝理天萬國歡心八表稱臣四夷欽化罽賓國願附聖唐使大首領薩波達幹與本國三藏舍利越魔天寶九載庚寅之歲詣闕庭獻款求和請使巡按
037_0537_b_01L 이에 다음해 신묘(辛卯, 751)년에 현종황제(玄宗皇帝)가 중사(中使) 내시성(內侍省) 내사백(內寺伯) 사비어대(賜緋魚袋) 장도광(張韜光)에게 칙령을 내려 국신물(國信物)5)을 가지고서 계빈국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고, 행관(行官)으로는 시중들 사람 40여 명을 배정해 주었다. 황제의 은혜를 받아 봉조(奉朝 : 대사의 속명)도 좌위경주사문부별장(左衛涇州四門府別將) 원외치동정원(員外置同正員)에 임명한다는 명령을 받아, 사신(使臣)을 따라 안서로(安西路)로 들어가 소륵국(疏勒國)과 도총산(度蔥山)을 거쳐서, 양흥령(楊興嶺)을 넘고 파밀천(播蜜川)을 건너 오적닉국(五赤匿國)에 도착했다.또한 식닉(式匿)이라고도 부른다. 그 후 호밀국(護蜜國)⋅구위국(拘緯國)⋅갈람국(葛藍國)⋅남바국(藍婆國)⋅얼화국(孽和國)⋅오장나국(烏仗那國)또는 오장(烏長) 및 오전국(烏纏國)이라 부른다.⋅망아(茫誐)평성(平聲)으로 발음하고, 학(虐)과 가(伽)의 반절[反]이다.발국(勃國)을 거쳐 고두성(高頭城)에 이르렀다. 그 다음 마단국(摩但國)⋅신도성(信度城)신도하(信度河)에 가깝다. 또한 신비(信啚) 혹은 신두성(辛頭城)이라고 부른다.을 지나, 천보 12년 계사(癸巳, 753)년 2월 21일에 건타라국(乾陁羅國)범어의 올바른 발음은 건타라국(健馱邏國)이다.에 도착했다. 이곳은 계빈국[罽賓]의 동쪽 수도에 해당하는 성(城)이다. 왕이 겨울에는 이곳에 머물고, 여름에는 계빈(罽賓)에 거처하니, 그 지역의 따뜻하고 서늘함에 따라 기후에 순응한 것이다.
037_0537_a_16L次於明年辛卯之祀玄宗皇帝勅中使內侍省內寺伯賜緋魚袋張韜光將國信行官奉傔四十餘人蒙恩授奉朝左衛涇州四門府別將員外置同正員令隨使臣取安西路次疏勒國度蔥山至楊興嶺及播蜜川五赤匿亦云式匿次護蜜國次拘緯國次葛藍國次藍婆國次孽和國次烏仗那國亦云烏長及烏纏國茫誐平聲呼虐伽反勃國及高頭城次摩但國次信度城近信度河也亦云信啚或云辛頭城至十二載癸巳二月二十一日乾陁羅國梵音正曰健馱邏國此卽罽賓東都城也王者冬居此地夏處罽賓隨其暄涼以順其性
사신단이 도착하자 계빈국 왕은 아주 정성스럽게 사신단을 예로써 맞아주었고, 당나라의 은혜를 공경히 받들었으며, 사신이 돌아갈 때는 겸양의 예로 대하고, 아울러 신물(信物)을 받쳤다. 이것은 정성을 다해 예물을 바쳐 당나라를 받든 것으로, 대국 당나라에게 복속할 뜻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나 봉조(奉朝)는 당시 큰 병에 걸려 오래도록 낫지 않아, 당나라로 돌아가는 여정을 감당하지 못하여서 건타라국(健馱邏國)에 머물게 되었다. 사신이 당나라 조정으로 돌아간 후 점차 봉조의 병은 나아졌으나, 봉조는 부처님께 귀의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마침내 사리월마(舍利越魔) 삼장(三藏)에게 투신하여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게 되었다.
037_0537_b_08L時王極垂禮接祇奉國恩使還對辭幷得信物獻款進奉旋歸大唐奉朝當爲重患纏緜不堪勝留寄健馱邏國中使歸朝後漸痊誓心歸佛遂投舍利越魔三藏髮披緇
원래 봉조는 서둘러 고향에 돌아가 황제[明主]를 알현하고 부모님을 가까이 모셔 충(忠)과 효(孝)를 온전히 이루길 원하였으나, 그때 사리월마 삼장은 봉조에게 법호(法號)를 내려주었다. 범어로는 달마타도(達摩馱都)라 부르는데, 이것을 당나라 말로 번역하면 법계(法界)가 된다. 당시 봉조가 출가할 때의 나이는 27세였으니, 곧 당나라 숙종(肅宗) 곧 문명무덕대성대선효황제(文明武德大聖大宣孝皇帝) 지덕(至德) 2년 정유(丁酉, 757)년이었다.
037_0537_b_13L願早還鄕對見明主侍覲父母忠孝兩全時蒙三藏賜與法號云達摩馱都唐言以翻名爲法界年二十有七方得出家卽當肅宗文明武德大聖大宣孝皇帝至德二載丁酉歲也
037_0537_c_01L 그리고 대사는 29세에 이르러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에 가서 구족계[近圓]를 받았는데, 문수시열지(文殊矢涅地)지(地)와 치(袳)의 반절[反]이고, 평성(平聲)으로 발음한다. 당나라 말로 번역하면 정지(正智)가 된다.에게는 오파타야(鄔波▼(亭*也)耶)당나라 말로 친교사(親教師), 안서(安西) 지역 말로는 화상(和上)이라 부른다.를, 오불찬제(鄔不羼提)당나라 말은 빠져 있다.에게는 갈마아차리야(羯磨阿遮利耶)당나라 말로는 궤범사(軌範師)이다. 사진(四鎭)과 안서(安西) 지역에서는 아사리(阿闍梨)라고 부르는 데, 잘못 전해져 생략된 것이다.를, 타리위(馱里魏)외(巍)와 굴(屈)의 반절[反]이다. 입성(入聲)으로 발음한다.지(地)평성(平聲)이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당나라 말은 빠져 있다.에게는 교수아차리야(教授阿遮利耶)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가 돼주기를 요청하였다. 세 사람의 스승(三師)과 일곱 명의 증명사[七證]6)에게서 율의(律儀)를 전수받았고, 몽제사(蒙鞮寺)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계율을 들었으며, 외우는 것을 마치면 근본이 되는 율의(律儀)를 듣고 익혔다. 그런데 북천축국(北天竺國)은 모두 살바다학(薩婆多學)당나라 말로 근본설일체유(根本說一切有)라 한다.이었다. 또 이 몽제사(蒙鞮寺)는 북천축(北天竺)의 왕이 왕위에 오른 후 세운 절이었는데, 범어로 몽제미하라(蒙鞮微賀羅)라고 부른다. 미하라(微賀羅)는 당나라 말로 머무르는 곳이란 뜻인데, 머무르는 곳은 곧 절이다. 몽제사 다음으로 아미타바만(阿彌陁婆挽)면(免)과 번(煩)의 반절[反]이고, 평성(平聲)으로 발음한다.사(寺)가 있고, 그 다음으로 아난의사(阿難儀寺), 계자잠사(繼者岑寺), 뇌야라사(惱也羅寺), 야야(惹惹)이(而)와 자(者)의 반절[反]이다.사(寺), 장군사(將軍寺), 야리특근사(也里特勤寺)가 있는데, 돌궐(突厥) 왕자(王子)가 세운 것이다. 또 가돈사(可敦寺)가 있는데, 돌궐(突厥) 황후(皇后)가 세운 것이다.
037_0537_b_18L洎二十九於迦濕彌羅國進受近圓請文殊矢涅地地袳反平聲呼唐言翻爲正智爲鄔波▼(亭*也)耶唐言親敎師安西云和上鄔不羼提唐言闕爲羯磨阿遮利耶唐言軌 範師至四鎭安西云阿闍梨訛略耳馱里魏巍屈反入聲呼平聲同上唐言闕爲敎授阿遮利耶同上三師七證授以律儀於蒙鞮寺諷聲聞戒諷畢聽習根本律儀然於北天竺國皆薩婆多學也唐言根本說一切有然此蒙鞮寺者北天竺王踐位後建茲寺矣梵云蒙鞮微賀羅微賀羅者唐言住處住處卽寺也次有阿彌陁婆挽免煩反平聲呼次有阿難儀次有繼者岑寺次有惱也羅寺有惹惹而者反次有將軍寺次有也里特勤寺突厥王子置也次有可敦突厥皇后置也
이 나라의 가람(伽藍 : 절)은 300여 곳이 있고 신령한 탑과 상서로운 불상도 그 수가 아주 많았는데, 그 중 더러는 아육왕(阿育王)과 500 아라한(阿羅漢)이 세운 것이었다. 이와 같이 법계는 순례(巡禮)를 하고 동시에 범어(梵語)를 익히면서 4년을 돌아다녔는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처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虔心]을 잠시도 버린 적이 없었다. 이 나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모두 세 방향으로 길을 뚫고 국경에 요새[關防]7)를 설치하였다. 동쪽으로는 토번(吐蕃)과 붙어 있고, 북쪽으로는 발율(勃律)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쪽 관문[西門]의 나머지 한 길은 건타라(乾陁羅)와 연결되어 있었다. 별도로 하나의 길이 더 있었는데, 항상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으며, 왕의 직속 군대[天軍]가 다닐 때만 잠시 길을 열었을 뿐이었다.
037_0537_c_10L此國伽藍三百餘靈塔瑞像其數頗多或阿育王及五百阿羅漢之所建立也如是巡禮兼習梵語經遊四年夙夜虔心未曾暫捨其國四周山爲外郭摠開三路以設閞防東接吐蕃北通勃律西門一路通乾陁羅別有一途常時禁斷天軍行幸方得暫開
037_0538_a_01L법계(法界 : 대사의 법호)는 순례를 하며 돌아다닌 지 4년이 된 후에, 가습밀국(迦濕蜜國)을 나와서 건타라성(乾陁羅城)으로 들어가, 나쇄왕사(羅灑王寺) 같은 절들에 머물게 되었다. 나쇄왕사는 왕이 건립하였는데, 왕의 이름을 따서 사찰의 이름을 정하였다. 나쇄왕은 곧 상고 시대 계니타왕(罽膩咤王)의 직계 자손[胄胤]이다. 다음으로 가홀리사(可忽哩寺)가 있었는데 왕자(王子)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고, 빈지사(繽芝寺)는 왕녀(王女)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또한 전단홀리사(旃檀忽哩寺)는 왕의 동생[王弟]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모든 사찰들은 이들 왕족들이 주도하여 건립된 것으로, 그들의 이름을 따라 사찰의 이름을 정하였다. 다음으로 특근쇄사(特勤灑寺)가 있었는데 돌궐(突厥) 왕자가 지은 것이다. 가돈사(可敦寺)는 돌궐 황후가 지은 것이다. 다시 아슬타사(阿瑟咤寺)⋅살긴홀리사(薩緊忽哩寺)⋅계니타왕성탑사(罽膩咤王聖塔寺)⋅계니타왕연제쇄사(罽膩咤王演提灑寺)가 있었는데 이 사찰들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정골사리(頂骨舍利)가 있으며, 또한 계니타왕복룡궁사미사(罽膩咤王伐龍宮沙彌寺)가 있었다.
037_0537_c_17L法界至於第四年後出迦濕蜜國入乾陁羅城於如羅灑王寺中安置其寺王所建立王爲名王卽上古罽膩咤王之胄胤次有可忽哩寺王子名也繽芝寺王女名也復有旃檀忽哩寺王弟名此皆隨人建立從彼受名次有特勤灑寺突厥王子造也可敦寺突厥皇后造也復有阿瑟咤寺薩緊忽哩罽膩咤王聖塔寺罽膩咤王演提灑寺此寺復有釋迦如來頂骨舍利罽膩咤王伐龍宮沙彌寺
이와 같이 순례하기를 다시 2년이 지난, 즉 대종권문효무황제(代宗眷文孝武皇帝) 광덕(廣德) 2년 갑진(甲辰, 764) 년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남쪽으로 중천축국(中天竺國)을 돌아다니며 직접 팔탑(八塔)에 참배하였는데, 가비라벌솔도성(迦毘羅伐窣睹城)으로 가서 불강생처탑(佛降生處塔)에 참배하였고, 다음으로 마게제국(摩揭提國)으로 가서 보리도량성불처탑(菩提道場成佛處塔)에 참배하였다. 그리고 보리사(菩提寺)에 머무르며 여름 좌안거(坐安居)를 하였다. 다음으로 파라닐사성(波羅痆斯城) 선인녹야원(仙人鹿野苑)에 있는 전법륜처탑(轉法輪處塔)에 참배하였고, 다음으로 취봉산(鷲峯山)의 설법화등경처탑(說法華等經處塔)에 참배하였으며, 다음으로 광엄성(廣嚴城)의 현불사의처탑(現不思議處塔)에 참배하였다.
037_0538_a_05L如是巡禮又經二年卽當代宗眷文孝武皇帝廣德二年甲辰歲也從此南遊中天竺國親禮八塔往迦毘羅伐窣睹城佛降生處塔摩揭提國菩提道場成佛處塔於菩提寺夏坐安居次波羅痆斯城仙人鹿野苑中轉法輪處塔次鷲峯山說法華等經處塔次廣嚴城現不思議處
다음으로 니부말다성(泥嚩韤多城)의 종천강하삼도보계탑(從天降下三道寶階塔)또한 보교(寶橋)라고도 한다.에 참배하였다. 다음으로 실라벌성(室羅伐城)에 있는 서다림급고독원(逝多林給孤獨園)의 설마아반야바라밀다도제외도처탑(說摩訶般若波羅蜜多度諸外道處塔)에 참배하였다. 마지막으로 구시나성(拘尸那城)에 있는 바라쌍림(娑羅雙林)의 현입열반처탑(現入涅槃處塔)에 참배하였다. 이와 같이 팔탑(八塔)을 찾아 가서 오른쪽으로 돌며 공양(供養)을 드리고 우러러 예배를 올리며 돌아다녔다.
037_0538_a_14L次泥嚩韤多城從天降下三道寶階亦云寶橋次室羅伐城逝多林給孤獨說摩訶般若波羅蜜多度諸外道處塔次拘尸那城娑羅雙林現入涅槃處塔如是八塔右遶供養瞻禮略
다음으로 나란타사(那爛陁寺)에 머문 지 3년이 지난 후, 오장나국(烏仗那國)으로 가서 부처님의 자취를 찾아 예배하였으며, 망아(茫誐)평성(平聲)으로 발음하고, 학(虐)과 가(迦)의 반절[反]이다.발사(勃寺)에 머물렀다. 또한 소가발제사(蘇訶拔提寺)당나라 말로는 일궁사(日宮寺)이다., 발망발제사(鉢茫拔提寺)당나라 말로 연화사(蓮花寺)이다.에도 머물렀다. 이와 같이 오고 가며 두루 부처님의 자취를 찾아 다녔으니,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비교해도 그 내용에 조금의 차이도 없다.
037_0538_a_19L次於那爛陁寺中住經三載又至烏仗那國尋禮聖蹤住茫誐平聲呼虐迦反勃寺復有蘇訶拔提寺唐言日宮寺也鉢茫拔提寺唐言蓮花寺如是往來徧尋聖迹與『大唐西域記』說無少差殊
037_0538_b_01L법계는 당나라 조정과 자신을 낳아준 부모 그리고 내외 친척을 생각하고 그리워할수록, 마음에 근심이 점점 불같이 타올랐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가 하늘처럼 넓고 끝이 없음을 생각하면서, 귀국하여 임금과 어버이를 찾아뵙기로8) 마음을 먹고, 간곡히 머리를 조아리고 월마(越魔) 삼장을 찾아가 의논하였다. 월마 삼장은 처음에는 법계의 생각을 듣고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에 법계(法界)는 사람의 도리를 들어 간절히 두 번 세 번 요청하였다. 삼장은 일찍이 천보(天寶) 9년(750)에 당나라에 간 적이 있었고, 평소에 당나라[摩訶支那]를 사모하고 우러러 보았기 때문에, 법계의 간절한 요청을 받자 드디어 대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에 월마 삼장은 직접 범본(梵本) 『십지경(十地經)』, 『회향륜경(迴向輪經)』 그리고 『십력경(十力經)』을 같이 묶고, 아울러 대성석가모니불(大聖釋迦牟尼佛)의 치아사리[一牙舍利]도 덧붙여서, 모두 이마에 대는 예[頂戴]로써 경의를 표하고 눈물을 흘리며 정중히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것들을 신물(信物)로 삼아 당나라 황제에게 바치게 하여, 중국 땅[漢地]에서 불법이 널리 전해지고 중생들[群品]이 널리 이롭게 되기를 간곡히 기원하였다. 법계(法界)는 이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며 신물을 받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예로써 떠남을 고하였다. 대사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파도 때문에 위험하다고 염려하여, 이에 북쪽 길을 택하여 당나라 수도[帝鄕]로 돌아왔다.
037_0538_a_23L思戀聖朝本生父母內外戚屬焚灼其心念鞠育恩深昊天罔極發願歸國膽君親稽首諮詢越魔三藏三藏初聞至意不許法界以理懇請于再三三藏已於天寶九年曾至唐國日常讚慕摩訶支那旣見懇誠方遂所請乃手授梵本『十地經』及『迴向輪經』幷『十力經』共同一夾幷大聖釋迦牟尼佛一牙舍利皆頂戴慇懃悲淚而授將爲信物奉獻聖皇伏願漢地傳揚廣利群品法界頂跪拜受悲淚禮辭當欲汎海而歸又慮滄波險阻乃卻取北路還歸帝鄕
우리 성신문무황제(聖神文武皇帝)9)는 성스러운 덕이 멀리 전해져 그 명성이 온 세상[五天]을 진동시키고, 도(道)는 복희와 헌원[羲軒]에 이르러서 그 위엄이 전 세계[八表]에 미쳤으며, 삼보(三寶)를 우러르고 사모하며 일승(一乘)을 믿고 소중히 여기니, 먼 외국[異域]에서도 재물을 보내고 불경을 자신들의 말로 번역하며 찾아와서 조공하였다.
037_0538_b_14L我聖神文武皇帝聖德遠被聲震五道邁羲軒威加八表慕仰三寶信重一乘異域輸金重譯來貢
법계(法界)는 사리(舍利)와 범본경(梵本經)을 가지고 중천축에서 출발하여 중국 땅에 이르렀다. 그가 돌아오는 길에 도화라국(睹貨羅國)의 57개 번(蕃) 가운데 한 성(城)이 있는데, 골돌국(骨咄國)이라고 불렀다. 성(城)의 동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바다[小海]가 있는데, 그 수심이 아주 깊었다. 당시 법계는 사리와 범본경을 지니고 그 바다의 남쪽 해안을 따라 지나가고 있었다.
037_0538_b_17L法界所將舍利及梵本經自彼中天來至漢凡所經歷睹貨羅國五十七蕃中有一城號骨咄國城東不遠有一小其水極深當持牙經南岸而過
037_0538_c_01L 그때 그 바다의 용신(龍神)이 사리(舍利)가 있음을 알자, 땅이 요동치고 검은 구름이 일어나 하늘을 덮으며, 벼락과 천둥 그리고 우박과 비가 사납게 몰아쳤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나무아래에 여러 상인들이 피해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꺾어지고 잎이 떨어지자 두려운 마음이 활활 타올랐다.
037_0538_b_21L彼龍神知有舍利地土搖動玄雲揜霹靂震雷雹雨驟墮有一大樹不遠海邊時與衆商投於樹下枝葉摧落空心火然
그때 우두머리 상인[首領商]이 그곳에 있던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누가 사리(舍利)나 진귀한 보물[異寶殊珍]을 지니고 있는가. 이것들이 아니면 용신(龍神)이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며 화를 내겠는가. 보물을 지니고 있는 자가 있으면, 즉시 바다 속에 보물을 던져 넣고, 사람들이 이처럼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법계(法界)는 이때 간절한 마음으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 본국(本國)에 도착하여 나라[邦家]를 구제하고, 사리와 범본경을 지닌 것[福因]으로 용의 힘을 부리길 기도하였다.
037_0538_c_02L時首領商普告衆曰將舍利異寶殊珍不爾龍神何斯拗有卽持出投入海中無令衆人受茲惶怖法界是時懇心祈願放達本國利濟邦家所獲福因用資龍力
해가 뜬 후로 신시(申時)10)에 이르기까지 기도를 지성으로 드리자, 구름이 걷히고 비가 개어, 초개같은 목숨[草命]을 겨우 보전하게 되었다. 점차 앞으로 나아가 구밀지국(拘蜜支國)에 이르렀는데, 왕의 이름은 둔산쇄(頓散灑)이었다. 다음에 이른 곳은 야슬지국(惹瑟知國)이고, 왕의 이름은 흑미매(黑未梅)였으며, 그 다음은 식닉국(式匿國)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행장을 짊어지고 다닌 지 3년,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면서 몸을 내 던지고 목숨을 부처님께 맡긴 채, 마음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다짐하고 임금과 어버이의 성스러운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였다.
037_0538_c_06L從日出後洎于申時祈祝至誠雲收雨霽僅全草命漸次前行至拘蜜支國名頓散灑次惹瑟知國王名黑未梅次至式匿國如是行李經歷三年涉艱難捐軀委命誓心報國願奉君親聖慈
037_0539_a_01L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나아가자 거의 소륵(疏勒)다른 이름은 사륵(沙勒)이다.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왕은 배령령(裵泠泠)이었고 진수사(鎭守使)는 노양(魯陽)이었는데, 그곳에서 5개월을 머물렀다. 그 다음은 우전(于闐)또는 우둔(于遁), 혹은 송단(訟丹)이라고 부른다.에 이르렀는데, 범어로는 구살달나(瞿薩怛那)당나라 말로는 지유국(地乳國)이러고 한다.로 부른다. 왕은 위지요(尉遲曜)이고, 진수사(鎭守使)는 정거(鄭據)이며, 이곳에서는 기간을 늘려 6개월을 머물렀다. 그 다음은 위융성(威戎城)인데, 다른 이름으로 발완국(鉢浣國)이라 하고, 바르게 말하면 포오국(怖污國)이며, 진수사(鎭守使)는 소잠(蘇岑)이었다. 다음은 거슬득성(據瑟得城)이고, 진수사는 가전(賈詮)이었다. 그 다음은 안서(安西)11)에 이르렀는데, 사진절도사(四鎭節度使) 개부(開府) 의동삼사(儀同三司) 검교(撿挍)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안서부대도호(安西副大都護) 겸(兼) 어사대부(御史大夫)인 곽흔(郭昕)이 있었고, 구자국왕(龜茲國王)은 백환(白環)또한 구자(丘茲)라고도 부른다.이었으며, 바르게 말하면 굴지성(屈支城)이다. 굴지성 서문(西門) 밖에 연화사(蓮花寺)가 있었고, 삼장(三藏) 사문(沙門)이 있었는데, 이름이 물제제서어(勿提提犀魚)당나라 말로 연화정진(蓮花精進)이라고 한다.였다. 물제제서어가 지극한 정성으로 『십력경(十力經)』의 번역을 간절히 요청하여, 『십력경(十力經)』의 번역본이 나왔는데, 3장[紙] 정도로 1권(卷)을 이루었다. 물제제서어 삼장(三藏)은 사진(四鎭) 사람들과 말도 통하였고, 범어와 한문[梵漢]에 모두 능했다. 이 『십력경(十力經)』은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있을 때 말씀하신 것이다.
037_0538_c_12L曲臨漸屆疏勒一名沙勒 時王裵泠泠鎭守使魯陽留住五月次至于亦云于遁或云訟丹梵云瞿薩怛那唐言地乳國王尉遲曜鎭守使鄭據延住六月威戎城亦名鉢浣國正曰怖污國鎭守使蘇岑次據瑟得城使賈詮次至安西四鎭節度使開府儀同三司撿挍右散騎常侍安西副大都護兼御史大夫郭昕龜茲國王白環亦云丘茲正曰屈支城西門外有蓮花寺有三藏沙門名勿提提犀魚唐云蓮花精進至誠祈請譯出『十力經』可三紙許以成一卷三藏語通四鎭梵漢兼明此十力經佛在舍衛國說
안서(安西)의 경계 내에는 전천산(前踐山)이 있고, 전천사(前踐寺)가 있었다, 또 야바슬계산(耶婆瑟鷄山)이 있었는데, 이 산에는 물방울이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곳이 있어, 매년 한 차례 이 소리를 본떠 악곡을 만들어서, 야바슬계사(耶婆瑟鷄寺)가 있었다. 그리고 동서척궐사(東西拓厥寺)와 아차리이사(阿遮哩貳寺)가 있어서, 이 성(城)에서 1년 넘게 머물렀다. 그 다음에는 오기국(烏耆國)에 이르렀는데, 왕은 용여림(龍如林)이고, 진수사(鎭守使)는 양일우(楊日祐)이며, 기간을 늘려 3개월을 머물렀다.
037_0539_a_02L安西境內有前踐山前踐復有耶婆瑟鷄山此山有水滴霤成音每歲一時採以爲曲故有耶婆瑟鷄寺東西拓厥寺阿遮哩貳寺此城住一年有餘次至烏耆國王龍如林鎭守使楊日祐延留三月
또한 이곳에서 출발하여 북정주(北庭州)에 이르렀는데, 본도절도사(本道節度使 : 북정절도사) 어사대부(御史大夫) 양습고(楊襲古)가 용흥사(龍興寺) 승려들과 함께 우전국(于闐國) 삼장 사문 시라달마(尸羅達摩)당나라 말로는 계법(戒法)이다.에게 『십지경(十地經)』을 번역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시라달마 삼장(三藏)은 법문(梵文)을 번역해 읽어주었고, 사문 대진(大震)이 글씨를 썼으며, 사문 법초(法超)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었고, 사문 선신(善信)이 경문의 뜻을 검토했고, 사문 법계(法界)는 범문(梵文)과 번역문(譯語)을 다시 검토했다. 『회향륜경(迴向輪經)』의 번역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037_0539_a_07L從此又發至北庭州本道節度使御史大夫楊襲古與龍興寺僧請于闐國三藏沙門尸羅達摩唐言戒法譯『十地經』藏讀梵文幷譯語沙門大震筆授門法超潤文沙門善信證義沙門法界證梵文幷譯語『迴向輪經』翻譯准
경(經)의 번역을 마치게 되고, 틀린 부분을 고치며 필사하는 것도 끝나갈 때, 당나라 안서 사진(四鎭)과 북정(北庭)의 의위사(宜慰使) 중사(中使) 하명수(叚明秀)가 북정(北庭)12)에 이르게 되자, 정원(貞元) 5년 기사(己巳, 789)년 9월 13일에, 법계는 본도주사관(本道奏事官) 절도압아(節度押衙) 우흔(牛昕)과 안서도주사관(安西道奏事官) 정악(程鍔) 등과 함께, 중사 하명수를 따라 당나라 수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사하(沙河)13)를 통과할 수가 없어 회골(迴鶻)14)로 거쳐 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회골의 족장[單于]도 또한 불법(佛法)을 믿지 않아서, 가져온 불경[齎梵]을 지니고 그곳을 지나갈 수가 없어, 북정(北庭)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에 불경을 보관하였고, 한문 번역본만 가지고 중사 하명수를 따라 수도로 왔다.
037_0539_a_14L翻經旣畢繕寫欲終時逢聖朝四鎭北庭宜慰使中使叚明秀來至北洎貞元五年己巳之歲九月十三日與本道奏事官節度押衙牛昕安西道奏事官程鍔等隨使入朝當爲沙河不通取迴鶻路又爲單于不信佛法所齎梵夾不敢持來留在北庭龍興寺藏所譯漢本隨使入都
037_0539_b_01L정원 6년(790) 2월에 수도[上京]에 도착하였다. 칙령(勅令)이 내려져 약용문(躍龍門) 사원(使院)에 법계를 머무르게 했다. 중사(中使) 하명수(叚明秀)는 석가모니[釋迦]의 진신 치아 사리[眞身一牙舍利]와 역경(譯經)을 가지고 궁으로 들어가 바쳤다. 황제의 은혜[天恩]로 이것들은 좌신책군(左神策軍)에게 넘겨졌고, 칙령이 내려져 이 경문을 필사하여 석가모니의 진신 치아 사리와 함께 바치게 하였다.
037_0539_a_21L六年二月來到上京有勅令於躍龍門使院安置使叚明秀遂將釋迦眞身一牙舍利及所譯經進奉入內天恩宣付左神策軍令寫此經本與佛牙舍利一時進來
당시 좌가공덕사(左街功德使) 두문장(竇文場)은 칙령에 따라 필사본을 장정하여 궁궐[闕庭]에 바치며 아울러 황제에게 아뢰기를, “안서(安西)에서 온 무명승(無名僧) 오공(悟空)은 나이는 60세이고, 옛 법명은 법계(法界)이며, 속성(俗姓)은 차(車)씨이고 속명은 봉조(奉朝)인데, 장경사(章敬寺)에 머물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해 2월 25일 조칙을 받들어 올바른 법도에 따라 요청한 대로 장경사에 머물게 해주었다.
037_0539_b_03L時左街功德使竇文場准勅裝寫進奉闕庭兼奏從安西來無名僧悟空年六十舊名法界俗姓車名奉請住章敬寺其年二月二十五日勅宣與正度餘依
또 본도절도사주사관(本道節度奏事官)이 속성(俗姓) 차봉조(車奉朝)의 이름[名銜]을 황제께 아뢰었다. 5월 15일에 이르러, 칙령으로 법계를 장무장군수좌금오오위대장군원외치동정원겸시태상경(壯武將軍守左金吾衛大將軍員外置同正員兼試太常卿)에 제수하였다. 그리고 제일(制日)15)이 있자, 법계에게 조칙을 내려 이서정절도주사관(伊西庭16)節度奏事官) 절도압아동절도부사(節度押衙同節度副使) 운휘장군수좌금오위대장군원외치동정원(雲麾將軍守左金吾衛大將軍員外置同正員) 우흔(牛昕) 등과 더불어 유사(流沙)17)를 넘어 우금국(于陰國)으로 건너가서, 삼군(三軍)의 복속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잘 받들고, 온 세상[萬里]에 황제를 사모하는 정성된 마음을 펴도록 하였다. 그래서 눈과 비가 쏟아져 내려도 앞으로 나아가는 데 그침이 없어서, 공물[方貢]이 잘 도달하였고, 돌아와 복명(復命)18)을 했다.
037_0539_b_07L又本道節度奏事官以俗姓車奉朝名銜奏至五月十五日勅授壯武將軍守左金吾衛大將軍員外置同正員兼試太常卿爰有制日勅伊西庭節度奏事官節度押衙同節度副使雲麾將軍守左金吾衛大將軍員外置同正員牛昕竝越自流沙涉于陰國奉三軍向化之慕申萬里戀闕之誠雨雪載霏行邁無已方貢善達復命言旋
이것은 범강(范羌)19)이 큰 눈을 뚫고 소륵으로 들어간 수고를 떠올리게 하고, 반초(班超)20)가 멀리 서역을 정벌했던 뜻을 다시금 생각나게 했다. 이에 봉록[祑]을 높여주었으니, 신하에게 권하여 예전의 사례를 따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이 해에 황상의 은혜로 이름을 바로잡았고, 관면(冠冕)21)을 겸하여 쓰게 되었다. 옛날 이름은 법계(法界)이고, 지금의 자(字)는 오공(悟空)이 되었다. 이 은혜를 받들기가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장경사로 돌아간 다음에는 고향[鄕園]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방을 찾고 물었으나, 부모님 무덤 주위의 나무들은 이미 한 아름이나 된 뒤였다. 또한 형제(兄弟)나 아들과 조카도 집에 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외에 지인들도 모두 소원해져서 거의 볼 수도 없고 그 소식을 들을 수도 없었다.
037_0539_b_16L擧范羌入計之勞慰班超出遠之思俾昇崇祑以勸使臣可依前件是歲也恩正名冠冕兼履昔名法界今字悟捧戴慚惶不任感懼乃歸章敬次及鄕園訪問二親墳樹已拱兄弟子姪家無一人疏遠諸房少得聞見
037_0539_c_01L무릇 천축에서 중국까지 오고가기를 40년 세월이니, 신묘(辛卯, 751)년에 서쪽으로 먼 길을 떠나 지금은 경오(庚午, 790)년이 되었다. 어버이를 봉양(奉養)하지 못함을 슬퍼하였지만 평화로운 시기[明時]를 만난 것을 기뻐하며, 나라에 바친 석가모니 치아 사리와 역경이 황상의 장수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진상된 『십지경(十地經)』은, 일반적인 방법[常途]에 따라 121장[紙]을 필사하여 부(部)로 만들고, 종이를 묶어서 9권(卷)으로 만들었다. 이 경(經)은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룬 뒤 27일이 지나,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의 마니보장전(摩尼寶藏殿)에 머무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회향륜경(迴向輪經)』은 부처께서 금강마니보산봉(金剛摩尼寶山峯)에서 대보살(大菩薩)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3장 반으로 번역되어, 한 권(卷)이 되었다. 『십력경(十力經)』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3장으로 번역되었고, 역시 한 권(卷)으로 되어 있다. 『십지경』⋅『회향륜경』⋅『십력경』 세 부(部)는 모두 합쳐 129장으로 되어 있고, 총 11권(卷)이며, 세 부 모두 동일하게 한 질(帙)로 만들었다.
037_0539_b_22L所來往經四十年辛卯西征于今庚悲不奉養喜遇明時所進牙經願資聖壽其所進『十地經』依常途寫一百二十一紙成部勒爲九卷此經佛初成正覺已經二七日住他化自在天宮摩尼寶藏殿說『迴向輪經』佛在金剛摩尼寶山峯中與大菩薩說譯成三紙半以爲一卷其『十力經』如前所譯成三紙復爲一卷三部都計一百二十九紙㧾十一卷同爲一帙
그러나 이 경(經)은 아직 목록(目錄)에 집어넣지 못해서, 나중에 시간이 아주 멀어지면 사람들이 위경(僞經)으로 의심할 것이 두려우니, 지금 『대당정원속개원석교록(大唐貞元續開元釋教錄)』에 편입시킬 것을 간절히 부탁한다. 삼가 한마디 말로 지금까지의 당나라 4대(代)22)를 표현한다면, ‘서리와 눈밭을 헤치며 지나온 40년’이라고 하겠다. 부처님의 자취를 찾아 예배하기 위해 지나온 나라와 고을들에서, 혹은 1일을 첨례(瞻禮)하고, 더러는 점차 늘어나 10일을 하며, 혹은 수십 일을 지내고, 때로는 수개월을 채웠다. 혹은 1년⋅2년⋅3년⋅4년을 머무르며, 어떤 때는 좋은 일을 만나고 어떤 때는 강도[劫賊]를 만나기도 하였다. 편안하고 즐거울 때에도 소소한 근심과 번뇌는 많았으니,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일일이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우리 명철한 임금[明聖]께서 불법의 큰 그물을 드셨으니, 엎드려 간청컨대 불법을 시행하여 왕조가 영원히 대를 잇기를 기원한다.
037_0539_c_09L爲斯經未入目錄伏恐年月深遠人疑僞經今請編入大唐貞元『續開元釋敎錄』伏以一辭聖唐于今四代凌霜冒雪經四十年尋禮聖蹤所經國邑或一瞻禮或漸旬時或經累旬或盈數月或住一歲二三四年或遇吉祥或遭劫賊安樂時少憂惱處多不能宣心一一屢說幸逢明聖略擧大網伏乞施行流傳永代
037_0540_a_01L사문(沙門) 원조(圓照)는 스스로 허물도 많고 자질이 천박하며 재주와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기쁘게도 평화로운 때를 만나 불경 번역(翻譯)에 다시 등용되어, 『도기(圖紀)』를 계속해서 편찬하고, 진실한 교법[眞乘]을 찬술하며, 아울러 『대당정원속개원석교록(大唐貞元續開元釋教錄)』을 편찬하게 되었다. 오공(悟空) 대덕(大德)은 그의 수행과 그 이유를 갖추어 서술하고, 나에게 이것을 기록하여 도록(圖錄)에 덧붙이기를 부탁하였으니, 이 기록은 오직 그 사실이 검증된 것이다. 세월이 오래 지난 후,23) 누군가 그 근원(根源)을 따져 물으면, 구결(口訣)24)을 공손히 받들었으나, 문장은 치밀하지 못하고 그 뜻은 옹색하니, “아름다운 덕과 큰 재주를 가진 사람이 그 의미를 상세히 밝히기를 원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할 것이다.
037_0539_c_18L沙門圓照自惟疵賤素無藝能喜遇明時再登翻譯續修『圖紀』讚述眞乘幷修大唐貞元『續開元釋敎錄』悟空大德具述行由託余記之以附圖錄聊以驗其事也夂積歲年詰問根源恭承口訣詞疏意拙編其次云大雅碩才願詳其志也


불설십력경(佛說十力經)
037_0540_a_02L佛說十力經


안서(安西) 물제제서어(勿提提犀魚) 한역
송성수 번역
037_0540_a_03L三藏沙門勿提提犀魚於安西蓮花寺譯畢進上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37_0540_a_04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苾芻]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ㆍ여래ㆍ응ㆍ정등각은 10력을 구족하였다. 10력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맑은 범륜(梵輪)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獅子吼)하는 것이다.
037_0540_a_05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苾芻汝等當知諸佛如來應正等覺具足十力十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大衆中正師子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여래ㆍ응ㆍ정등각은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여실히 알고, 그릇된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여실히 알아 모든 것을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은 옳은 것은 옳은 것임을 여실히 알고, 그릇된 것은 그릇된 것임을 여실히 알아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라 하니, 그 첫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a_10L何等爲十所謂如正等覺於是處如實知是處非處如實知非處皆如實知若諸如正等覺於是處如實知是處非處如實知非處以如實知處非處是名第一處非處智力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吼
037_0540_b_01L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有情)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업과 온갖 법의 서로 받는 이숙(異熟)에 대하여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의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업과 온갖 법의 서로 받는 이숙에 대하여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이라 하니, 그 둘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a_18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過去未來現在諸業及諸法互觸應異熟皆如實知若諸如來等覺於諸有情過去未來現在諸業及諸法互觸應異熟如實知故是名第二業異熟智力具此力故得名如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
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의 일체 정려(靜慮)ㆍ해탈(解脫)ㆍ등지(等持)ㆍ잡염청정(雜染淸淨)ㆍ해탈청정(解脫淸淨)에 대한 차별을 건립하여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의 일체 정려ㆍ해탈ㆍ등지ㆍ잡염청정ㆍ해탈청정에 대해 차별을 건립하여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정려해탈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智力)이라 하니, 그 셋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b_03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於一切靜慮解脫等持雜染淸淨解脫淸建立剎別皆如實知若諸如來正等覺於諸有情於一切靜慮解脫等持雜染淸淨解脫淸淨建立剎別如實知故是名第三靜慮解脫等持智力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吼
또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는 모든 유정의 여러 근기의 나음과 못함을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모든 유정의 여러 근기의 나음과 못함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이라 하니, 그 넷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b_12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諸根勝劣皆如實知若諸如來正等覺於諸有情諸根勝劣如實知故是名第四根上下智力具此力故得名如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
037_0540_c_01L또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는 모든 유정의 갖가지 낙욕(樂欲)과 승해(勝解)의 차별을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모든 유정의 갖가지 낙욕과 승해의 차별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종종낙욕승해찰별지력(種種樂欲勝解刹別智力)이라 하니, 그 다섯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셨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으셨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b_19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種種樂欲勝解剎別皆如實知若諸如來正等覺於諸有情種種樂欲勝解剎別如實知故是名第五種種樂欲勝解剎別智力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吼
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과 일체 세간의 하나만이 아닌 갖가지 모든 경계와 종성의 차별을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모든 유정과 일체 세간의 하나만이 아닌 갖가지 모든 경계와 종성의 차별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종종제계지력(種種諸界智力)이라 하니, 그 여섯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c_03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於一切世閒非一種種諸界種性剎別皆如實知若諸如來正等覺於諸有情於一切世閒非一種種諸界種性剎別如實知故是名第六種種諸界智力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吼
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의 변취행(遍趣行)을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모든 중생의 변취행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이라 하니, 그 일곱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c_11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於徧趣行皆如實知若諸如來正等覺於諸有情於徧趣行如實知故是名第七徧趣行智力具此力故得名如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
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의 과거 한량없는 전생 일을, 가령 1생 내지 10생, 혹은 20생 내지 백 생 천 생, 혹은 한량없는 생, 혹은 1증감겁(增減劫) 내지 백 천의 한량없는 증감겁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실히 안다.
037_0540_c_18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過去無量諸宿住事假使一生乃至十生或二十生乃至百生千生或無量生或一增減劫乃至百千無量諸增減劫皆如實知
037_0541_a_01L 모든 유정들의 여러 이름을 알고 어떤 장소에, 어떤 종성으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고락을 겪으며, 수명은 얼마였는지 그 머문 시간의 길고 짧음을 알며, 저곳에서 목숨이 다해 저곳에 태어나고 이곳에서 목숨이 다해 이곳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며, 저곳에서 수명이 있는 동안에 지은 모든 행(行)과 모든 식(識)과 모든 상(想)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숙주지력(宿住智力)이라 하니, 그 여덟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0_c_23L諸有情類若干名字是方所如是種姓如是飮食如是苦如是壽命住時脩短彼處壽命盡彼處受生此處命盡此處受生彼處壽命所有諸行諸識諸想如實知故是名第八宿住智力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吼
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유정과 인간의 눈보다 뛰어난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모든 유정의 죽을 때와 태어날 때, 좋고 나쁨, 받는 육체의 수승함과 열등함 등의 행과 좋고 나쁜 행이 초래하는 좋고 나쁜 과보를 보아 모두 여실히 안다.
037_0541_a_08L復次如來正等覺於諸有情以淨天眼超過於人見諸有情死時生時善不善色勝劣等行行善不善感善不善皆如實知
또 유정이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업을 일으켜 성현을 훼방하고, 크게 삿된 소견을 일으켜 삿된 소견의 업을 짓고는, 이러한 업의 인연이 갖춰진 까닭에 몸이 무너져 목숨을 마치고는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
037_0541_a_12L復見有情起身惡行及口意業毀謗賢聖起大邪見作邪見業具此業緣身壞命終墮三惡道
또 유정이 몸의 선행과 입과 뜻의 선업을 일으켜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믿음으로 헐뜯지 않으며, 마음으로 바른 견해를 지어 바른 견해의 업을 일으키고는, 이러한 업의 인연이 갖춰진 까닭에 몸이 무너져 목숨을 마치고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이처럼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사생지력(死生智力)이라 하니, 그 아홉째이다.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1_a_14L復見有情起身善行及口意業不謗賢聖不毀正信心爲正見起正見業具此業緣身壞命終得生天上如實知故是名第九死生智力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尊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輪於大衆中正師子吼
037_0541_b_01L또 여래ㆍ응ㆍ정등각은 모든 번뇌가 다한 정려(靜慮)에서 심해탈(心解脫)ㆍ혜해탈(慧解脫)ㆍ자증통혜(自證通慧)에 머무르며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범행(梵行)은 이미 이룩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이미 갖추었으니 후생에 몸을 받지 않는다’고 모두 여실히 안다. 모든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모든 번뇌가 다한 정려에서 심해탈ㆍ혜해탈ㆍ자증통혜에 머무르며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범행은 이미 이룩되었으며 해야 할 일을 이미 갖추었고 후생에 몸을 받지 않는다’고 여실히 아는 까닭에 이것을 누진지력(漏盡智力)이라 하니, 그 열째이다.
037_0541_a_21L復次如來正等覺於諸漏盡靜慮心解脫慧解脫自證通慧而住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受後有皆如實知若諸如來正等覺於漏盡靜慮心解脫慧解脫自證通慧而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受後有如實知故是名第十漏盡智
이 힘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여래ㆍ응ㆍ정등각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높고 훌륭하며 특별하고 굳세고 용맹하며 자재하여, 더할 나위 없는 깨끗하고 맑은 범륜을 굴리며 대중 가운데서 바르게 사자후하는 것이다.”
037_0541_b_06L具此力故得名如來正等覺勝殊特雄猛自在能轉無上淸淨梵於大衆中正師子吼
그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여러 비구 대중과 하늘ㆍ용왕ㆍ약차(藥叉:야차)ㆍ건달바ㆍ아소락(阿素洛:아수라) 등이 모두 크게 기뻐하여 믿어 받고 받들어 행하였다.
037_0541_b_08L爾時世尊說是經已諸苾芻衆藥叉乾闥婆阿素洛等皆大歡喜受奉行
佛說十力經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오공(悟空)은 당나라 때의 역경승(譯經僧)이다. 이름은 봉조(奉朝)이고, 법명은 법계(法界)이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10년(751) 좌위경주사명부별장(左衛涇州四明府別將)이 되어 계빈국(罽賓國)에 사신으로 갔다가, 숙종(肅宗) 지덕(至德) 2년(757) 돌아올 때 병에 걸려 돌아오지 못했다. 27살 때 병이 낫자 사리월마(舍利越魔) 삼장(三藏)을 따라 출가해서 달마타도(達摩馱都)라 이름했다. 정원(貞元) 5년(789) 2월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는데, 나라에서 장무장군시태상경(壯武將軍試太常卿)에 임명하고, 장경사(章敬寺)에 머물게 했다. 그 때 나이는 60여 살이었다. 번역한 책에 『십력경(十力經)』과 『십지경(十地經)』, 『회향전경(回向轉經)』 등 3본 11권이 있다.
  2. 2)탁발(拓拔)은 삼국 시대와 진나라 시기의 선비족의 하나인 탁발선비의 성씨로서, 이들은 후에 북위(北魏)를 건립하였다. 북위의 효문제가 한화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 탁발씨를 원씨(元氏)로 바꾸었다.
  3. 3)전분(典墳)은 중국 고대 오제(五帝)의 책인 『오전(五典)』과 삼황(三皇)의 책인 『삼분(三墳)』이라는 뜻으로, ‘고서(古書)’를 이르는 말이다.
  4. 4)당 현종(唐玄宗:712~756)의 시호(諡號)이다.
  5. 5)국가와 국가 사이에 신뢰를 보이기 위해 서로 교환하는 물품을 말한다.
  6. 6)삼사칠증(三師七證)은 비구(比丘)가 구족계를 받을 때, 세 명의 스승과 일곱 명의 증명사가 필요하다. 세 명의 스승은 계화상(戒和尚)⋅갈마사(羯磨師)⋅교수사(教授師)이고, 일곱 명의 증명사는 계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곱 명의 비구이다.
  7. 7)원문에는 ‘변방(閞防)’으로 되어 있는데, ‘관방(關防)’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8. 8)원문은 ‘담(膽)’으로 되어 있는데, ‘첨(瞻)’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9. 9)당나라 덕종(德宗)의 생전 존호이다. 시호는 신무효문황제(神武孝文皇帝)이다.
  10. 10)오후 3시에서 5시 사이를 가리킨다.
  11. 11)당나라 때 서북지역에 설치했던 도호부이다. 여러 오아시스국과의 무역 및 상업로 확보를 위해 설치된 이 통치기구는 그 관할에 안서4진(安西四鎭)을 두고 90여 속주(屬州)를 통할하였다. 구차[龜玆]가 치소(治所)이다.
  12. 12)중국 당나라 때에 북흉노(北匈奴)가 살던 지역으로, 법계가 머물던 지역 근처를 말한다.
  13. 13)몽골의 거대 사막을 가리킨다.
  14. 14)북방의 위구르족을 말한다. 회흘(回纥)이라고도 한다.
  15. 15)천간(天干)이 지지(地支)를 이기는 날이다. 이날은 군대를 이동시키거나 정벌을 떠나기에 이로운 날이다.
  16. 16)북정(北庭)의 옛 이름이다.
  17. 17)몽골의 대사막을 가리킨다.
  18. 18)명령을 받고 그 일을 처리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다.
  19. 19)범강(范羌)은 후한 무기교위(戊己校尉) 경공(耿恭)의 부하였던 군리(军吏)이다. 경공(耿恭)이 소륵성(疏勒城)에서 흉노(匈奴)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어려움을 겪자, 범강(范羌)은 직접 원군(援军) 2천 명을 이끌고 큰 눈을 헤치고 소륵에서 경공을 구하였다.
  20. 20)후한 초기 무장이다. 자(字)는 중승(仲升)이고,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 출신이다. 변경에 흉노족이 침범하여 자주 약탈하고 주민을 살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인(武人)으로 자원하여 흉노 원정군으로 가담하였다. 31년간 서역(西域)에 머물며, 선선(躇善), 우전(于蚊 : 코탄), 소륵(疏勒 : 카슈가르), 구자(龜玆 : 쿠차), 언기(焉耆 : 카라샤르) 등지의 오아시스 국가들을 정복하고, 부하 감영(甘英)을 페르시아만 방면으로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많은 공적을 세웠다.
  21. 21)옛날 임금이나 관리가 쓰던 모자로, 고위관리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22. 22)오공이 살아오면서 겪은 당나라 현종⋅숙종⋅대종⋅덕종의 4대를 가리킨다.
  23. 23)원문에는 치(夂)로 되어 있으나, 내용 상 ‘구(久)’로 고쳐 번역하였다.
  24. 24)구수비결(口授秘訣)에서 온 말로, 스승이나 대학자가 파악한 경전의 내용이 제자들에게 계속 이어져 전해진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