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보살은 궁안의 유희하는 장소에 있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는 지금 세 명의 부인과 6만 명의 채녀가 있는데, 만약 그들과 세속적인 즐거움을 즐기지 않는다면, 바깥사람들이 나를 남자가 아니라고 의심할 터이니, 나는 지금 야수다라와 합방할 것이다.’ 야수다라는 그 길로 임신하였다. 임신하고 나서 속으로 생각하길 ‘내일 아침에 이 사실을 보살에게 알려야겠다’라고 하였다. 그때 보살은 그날 밤에 잠자리[生理]를 약속하고 게송을 읊었다.
이날 밤 채녀와 기생들은 모두 피로하여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머리털은 어지럽게 헝클어졌고, 입에서는 침이 흘렀다. 어떤 자는 잠꼬대를 하였고, 어떤 자는 반나체였다. 이 광경을 본 보살은 비록 깊은 궁중에 있지만 마치 무덤에서 죽은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음을 느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다가 게송을 읊었다.
037_0759_b_01L
보살은 이 게송을 마치고, 곧 잠이 들었다. 이때 대세주(大世主) 부인은 밤중에 네 가지 꿈을 꾸었는데, 하나는 월식을 보는 꿈이요, 둘째는 동쪽에서 해가 솟았다가 갑자기 지는 꿈이요, 셋째는 많은 사람들이 부인에게 절하는 꿈이요, 넷째는 부인 자신이 웃다가 울다가 하는 꿈이었다.
야수다라도 그날 밤 여덟 가지 꿈을 꾸었는데, 첫째는 친정어머니의 가족이 파산하는 꿈이요, 둘째는 보살과 함께 앉아 있는 침상이 저절로 부러지는 꿈이요, 셋째는 양쪽 팔이 갑자기 부러지는 꿈이요, 넷째는 이가 다 빠지는 꿈이요, 다섯째는 머리카락과 귀밑머리가 다 빠지는 꿈이요, 여섯째는 길상신(吉祥神)이 집 밖으로 나가는 꿈이요, 일곱째는 월식을 보는 꿈이요, 여덟째는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갑자기 지는 꿈이었다.
보살도 밤에 다섯 가지 꿈을 꾸었는데, 첫째는 자신이 땅에 누워 머리는 수미산(須彌山)을 베고, 왼손은 동해에 넣고, 오른손은 서해에 넣고, 두 발은 남해에 넣는 꿈이요, 둘째는 심장에 길상초(吉祥草)가 자라나서 공중에 높이 솟는 것을 본 꿈이요, 셋째는 백조의 머리가 검정색이 되어 보살에게 절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으나 보살의 무릎 밑을 벗어나지 못함을 본 꿈이요, 넷째는 온갖 빛깔의 새들이 사방에서 모여드는데 보살 앞에 오면 다 동일한 빛깔로 되는 것을 본 꿈이요, 다섯째는 보살이 더러운 산꼭대기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함을 본 꿈이었다. 보살은 이 꿈을 꾸고 즉시 일어나서 즐거운 상념에 젖었다. ‘이제 나는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위없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037_0759_c_01L그때 야수다라는 곧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꾼 여덟 가지 꿈을 보살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때 보살은 야수다라가 걱정할까 염려되어 방편을 써서 그 꿈을 해몽하여 그를 기쁘게 하였다. ‘당신 친청 어머니의 종족들이 다 파산하는 것을 보았다지만 지금 어느 누가 파산되었는지 보라. 나와 함께 앉았던 침상이 저절로 부러지는 것을 보았다는데 지금 보면 침상은 여전히 멀쩡하지 않는가, 어디가 부러졌는가? 당신의 두 팔이 갑자기 부러지는 것을 보았다는데 지금 다친 데가 아무 곳도 없지 않은가. 또 당신의 이빨이 다 빠지는 것은 보았다는데 지금 당신의 이빨은 모두 그대로이다.
당신의 머리카락과 귀밑머리가 저절로 빠지는 꿈을 꾸었다는데 지금 보니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길상신이 당신의 집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데 부인의 길상신은 바로 남편인데 지금 내가 여기 있지 않소. 월식을 당신이 보았다는데 지금 달은 둥글게 떠 있고, 또 해가 동쪽에서 떠서 갑자기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보았다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해가 아직 뜨지도 않았거늘 어떻게 진다는 말이오.’
그때 야수다라는 이 해몽을 듣고 잠자코 있었다. 이때 보살은 꿈에 대해서 생각했다. ‘야수다라가 꿈에서 본 모습들은 내가 오늘 밤에 출가할 것임을 말해 주고 있구나.’ 또 이렇게 생각했다. ‘방편을 써서 나의 출가를 대략이나마 알리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야수다라에게 말하였다. ‘나는 출가하고 싶소.’ 야수다라가 말했다. ‘대천(大天)이시여, 당신이 가시려는 곳에 저를 데려가세요.’ 보살은 열반을 얻거든 데리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야수다라에게 대답했다. ‘내가 갈 곳에 당신을 데리고 가겠소.’
037_0760_b_01L 보살은 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서 하늘들에게 ‘훌륭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천제석은 곧 짙은 어둠을 일으켜 모든 것을 덮었다. 모든 군사들과 정반왕ㆍ기녀들ㆍ채녀들, 그 밖에 가비라성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잠에 빠져 깨지 못하도록 하고는, 야차대장(夜叉大將) 산지가(散支迦)에게 명하여 사다리를 놓게 하였다. 보살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차닉(車匿)에게 가서 잠든 차닉을 흔들어 깨우니, 차닉이 조금 후에 깨어났다. 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일어나라 차닉아, 빨리 건척(乾陟:말의 이름)을 몰고 와라. 과거에 있던 승자림(勝者林)으로 지금 가서 선정의 고요에 들리라.
037_0760_b_04L‘起起汝車匿, 速被乾陟來, 過去勝者林, 我往彼寂默。’
그때 차닉은 반은 졸고 반은 깬 상태에서 게송으로 답하였다.
037_0760_b_06L爾時車匿若睡ㆍ若覺,以頌報曰:
지금은 유람할 때가 아니며 태자에겐 원수나 적이 없네. 원수와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밤에 말을 찾나이까.
037_0760_b_07L‘今非遊觀時, 汝先無怨敵, 旣無怨賊來, 云何夜索馬?’
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037_0760_b_09L菩薩以頌告曰:
차닉아, 너는 옛적부터 나의 지시를 어긴 적이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니 내 명을 어기려 하지 말라.
037_0760_b_10L‘車匿汝昔來, 不違我言教, 勿於末後時, 方欲違我命。’
차닉이 대답하였다. ‘지금은 한 밤중이라 저는 무서워서 말을 몰고 올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보살은 생각하였다. ‘내가 차닉과 입씨름을 계속하다가는 다른 사람이 듣고 내 갈 길을 방해할지 모른다. 내가 직접 가서 건척을 몰고 오는 것이 낫겠다’ 보살은 그 길로 곧장 마구간으로 갔다. 그때 보살이 다가오는 것을 본 건척이 맹렬한 불꽃처럼 성을 내고 이리저리 날뛰는 바람에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보살의 손바닥엔 백보륜상(百寶輪相)이 있어 두려움에 떠는 모든 중생들을 이 백보수(百寶手)로 어루만져 주면 즉시 위안을 얻어 온순하고 편안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즉시 그 손으로 건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게송을 읊었다.
037_0760_c_01L
어떤 중생이든 상법(常法)에 남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즉시 배워 익힐 수 있게 되어 있다. 건척도 보살의 게송을 듣자 즉시 다소곳해졌으며 보살도 기쁜 마음으로 끌고 나왔다. 범천왕 제석은 4천자(天子)를 시켜 함께 건척을 붙들고 보살을 호위하게 하였다. 4천자란, 첫째 천자의 이름은 피안(彼岸)이요, 둘째 천자의 이름은 근안(近岸)이요, 셋째 천자의 이름은 향엽(香葉)이요, 넷째 천자의 이름은 승향엽(勝香葉)인데, 그들은 모두 위력(威力)을 가지고 있다. 보살은 곁에 호위하고 서 있는 4천자에게 물었다. ‘누가 나를 태우고 공중을 날아갈 수 있느냐?’ 4천자가 대답하였다. ‘우리들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보살이 또 물었다. ‘너희는 어떤 신통력을 가지고 있느냐?’ 피안이 대답했다. ‘저희는 이 땅을 들 수도 있고, 또 운반할 수도 있습니다.’ 근안이 다시 말했다. ‘사대해(四大海)의 바닷물과 모든 강물을 짊어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향엽이 또 말했다. ‘저는 모든 산과 바위를 짊어지고 갈 수 있습니다.’ 승향엽이 또 말했다. ‘모든 숲과 나무와 풀들을 다 짊어지고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다 듣고 나자, 보살은 땅에 발을 내려 버티고 서서 4천자들로 하여금 힘껏 들어 올리게 하였다. 이때 4천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들어보았지만 힘만 빠져 지치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4천자는 모두 놀라서 보살께 말했다. ‘보살께 이런 큰 위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만약 저희들이 보살께 이런 힘이 있는 줄 일찍 알았더라면, 감히 들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037_0761_a_01L그때 차닉은 보살과 4천자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 즉시 달려가서 보살이 계시는 곳에 이르렀다. 보살은 즉시 건척에 올라탔으며, 4천자는 각각 말의 발을 붙잡고 따랐다. 이때 차닉은 한 손엔 고삐를 또 한 손엔 칼을 쥐고 있었다. 보살과 하늘들의 위력에 감응하여 말 건척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궁중의 선신(善神)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목 놓아 우니 눈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를 본 차닉이 보살에게 말했다. ‘비가 오는 것입니까?’ 보살이 대답했다. ‘이것은 비가 아니고 궁중의 선신(善神)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보살의 설명을 들은 차닉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보살은 코끼리처럼 고개를 돌려 궁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이곳은 내가 여러 여인들과 함께 살던 곳이다. 이제 이번에 이별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동문(東門)으로 가서 부왕께 작별을 고하지 않는다면 한이 생길지 모른다’고 하였다. 보살은 모든 병사들로 하여금 더 이상 지키거나 막지 말도록 하고, 즉시 동문으로 가서 보니, 부왕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보살은 부왕을 세 바퀴 돈 뒤에 발밑에 꿇어앉아 절하고 말하였다. ‘제가 지금 떠나는 것은 불효(不孝)도 아니며 불경(不敬)도 아닙니다. 다만 생로병사로 인하여 마멸(磨滅)하는 중생을 위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출가하여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함으로써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즉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때 석가대명(釋迦大名) 장군은 순찰을 돌던 중에 동문에 이르렀는데, 공중으로 솟아오른 보살을 보고 목 놓아 울면서 보살께 말했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무엇을 하시렵니까?’ 보살이 대답하였다. ‘대장은 알아야 하오. 나는 출가하고 싶소.’ 대명장군이 말하였다. ‘그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037_0761_b_01L보살이 대답하였다. ‘나는 일찍이 3아승지겁 동안 항상 고행을 행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구하였으니,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고난을 뽑아 주어야 한다. 어찌 내가 궁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바른 법을 위해서 떠나노라.’ 이 말을 들은 대명석가는 다시 울었다. ‘슬프도다, 슬프도다. 정반대왕과 석가 종족들은 큰 원을 발하여 태자를 만류하려고 사랑을 쏟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구나. 아 괴롭구나, 괴롭구나.’ 석가대장이 다시 게송을 읊었다.
실달 태자가 지금 떠나려고 하오니 대왕께서는 서둘러 말리소서. 그리하여 그가 떠난 뒤에 아들 때문에 고뇌하지 말고요.
037_0761_b_15L‘悉達今欲去, 王當速制之, 勿於彼後時, 爲子常憂惱。’
037_0761_c_01L 대명석가는 왕을 두 번 세 번 깨워보았지만, 왕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 석범천(釋梵天) 등이 무수한 백천 하늘 권속들과 함께 보살에게 와서 보살을 에워쌌다. 대범천왕과 색계(色界)의 여러 하늘들은 말없이 엄숙하게 보살의 오른쪽에 있었고, 석제환인과 욕계(欲界)의 하늘들은 보살의 왼쪽에 있었다. 혹은 깃발과 일산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혹은 공중에서 온갖 향과 꽃을 뿌려서 보살에게 공양하였으니, 이른바 우발라화(優鉢羅花)ㆍ파두마화(波頭摩花)ㆍ분타리화(分陀利花)ㆍ만타라화(曼陀羅花)ㆍ마하만타라화(摩訶曼陀羅花)와 전단향[栴檀]ㆍ침수향(沈水香)ㆍ말향(粖香)ㆍ화향(和香) 등을 보살에게 흘어 뿌렸다. 또 갖가지 좋은 의복들을 공중에 뿌렸으며, 또한 공중에선 북을 치고 고동을 불며 춤을 추면서, 게송을 읊었다.
하늘들은 공중에서 기뻐 어쩔 줄 모르네. 보살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보살을 찬탄한다네.
037_0761_c_06L‘諸天在空中, 悉皆大踊躍, 抃儛菩薩前, 歌讚於菩薩。
끝없는 여러 하늘들은 마구니들을 야유하며 혹은 음악을 연주하고 혹은 앞길을 인도하네.
037_0761_c_08L無邊諸天衆, 揶揄彼魔軍, 或有作音樂, 或有引前者。
혹은 문을 열고 혹은 꽃을 뿌리며 어떤 이는 말의 발을 떠받들고 보살을 추앙하며 따르네.
037_0761_c_09L或復開諸門, 或以花來散, 或有扶馬足, 瞻仰隨從行。
어떤 이는 왼쪽으로 돌고 어떤 이는 좌우에 있으며 다문천과 범천ㆍ제석천은 앞에서 보살에게 길을 인도하네.
037_0761_c_10L或復左旋繞, 或復居左右, 多聞及梵釋, 先引菩薩路。
위덕 있는 모든 하늘들 따르지 않는 자 없으니 마치 별들 가운데 달처럼 저 성자림(聖者林)에 머무네.
037_0761_c_12L一切威德天, 無不隨從者, 如月在星中, 往彼聖者林。’
이렇게 보살은 가비라성을 나왔다. 범천과 제석천 등은 크게 즐거워하면서 보살에게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어진 분이시여, 당신은 옛적 긴긴 밤에 ≺나는 어느 때에 장애 없는 수행처[閑林]에 있게 되려나≻ 하고 말했지요. 옛날 당신의 원을 이제 원만하게 성취했으니, 당신이 만약 위없는 도를 증득한다면 저희들을 거두어 주십시오.’ 보살이 대답했다. ‘그대들의 원대로 하겠소.’ 이때 보살은 마치 코끼리처럼 오른쪽으로 돌아보면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037_0762_b_01L그때 보살은 차닉이 손에 갖고 있던 칼을 빼앗았는데, 그 칼은 가볍고 날카로웠으며, 칼날은청련화 잎[靑蓮花葉]처럼 짙은 푸른빛이 서려 있었다. 보살은 빼앗은 칼로 스스로 머리털을 잘라 허공중에 던졌다. 석제환인은 공중에서 공손이 받아 들고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갔는데, 해마다 이날이 되면 삼십삼천의 중생들을 모아서 보살이 머리털을 깎았던 땅을 돌면서 공양하였다. 또 신심이 있는 장자와 바라문들은 이곳에 보탑(寶塔)을 세우고 탑 이름을 할발지탑(割髮地塔)이라고 하였는데, 비구들과 속인들이 늘 이 탑에 공양하였다.
보살은 머리털을 자르고 나서 차닉에게 말하였다. ‘나를 보아라. 겉모습이 망가지니 마음은 더욱 굳건해지는구나.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인간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차닉은 혼자 생각했다. ‘지금 이 태자는 찰제리(刹帝利)족으로서 자존심이 매우 세다. 내가 아무리 애써서 권하더라도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보살의 발밑에 절하였다. 말 건척도 역시 보살에게 절하고, 혀로 보살의 발을 핥았다. 보살은 백보륜(百寶輪)이 있는 손으로 말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건척아, 떠나거라. 내가 보리를 증득하면, 항상 너의 은혜를 생각하마.’
보살은 또 차닉에게 일렀다. ‘너는 건척을 데리고 궁안으로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차닉은 슬피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참지 못하였으며, 눈앞이 아련해지면서 어지러웠다. 돌아갈 때에는 계속 보살 쪽을 뒤돌아보았다. 보살은 신덕력(神德力)으로 인해 2경(更) 동안 이곳에 왔지만, 차닉이 돌아갈 때는 7일(日)이 지나서야 비로소 본국에 이르렀다.
037_0762_c_01L성문에 다다르자 차닉은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말과 함께 성으로 들어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탓하고 원망하게 될 것이며, 혹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차닉은 동산 숲속에 몰래 들어가 먼저 말부터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건척이 성안으로 들어가 슬피 우니, 궁안에 있던 사람들이 말울음 소리를 듣고 분주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살이 보이지 않자 건척의 목을 안고 슬피 울며 괴로워하였다. 축생이라 할지라도 세간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마왕(馬王)이랴.
이에 건척은 사람들이 울부짖는 것을 보고는, 기절하여 곧 죽고 말았다. 그러나 건척은 과거부터 6종근사(種勤事)를 갖춘 바라문의 집에서 태어났으므로 보살이 위없는 도를 얻을 때 ‘나쁜 성품을 타고난 말[惡性馬]아, 곧 숙세의 염원을 얻어 생사의 길을 뛰어넘고, 구경열반의 언덕에 올라라’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때 보살은 가사(袈娑)가 필요했다. 무비성(無比城)에 한 거사가 있었는데, 그는 재물과 보배가 풍부하여 창고가 넘쳤으며, 많은 권속을 거느리고 있어서 흡사 폐실라마나천왕[薜室羅末拏天王]과 같았다. 이 거사는 이때 같은 종족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서로 즐기며 속례(俗禮)로 화합하여 한 아들을 낳았고, 이와 같이 계속해서 열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열 명의 아들이 다 출가하여 벽지불도(辟支佛道)를 증득하였다. 이때 아내는 삼베로 옷을 지어 열 명의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 열 명의 아들이 다 같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희는 곧 열반에 들 터이니, 이 옷이 필요 없습니다. 정반왕의 태자 석가모니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 옷을 그에게 주신다면 반드시 한량없는 과보를 얻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즉시 궁안에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나타내고, 스스로 불에 들어가 입정하고 멸(滅)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었다.
037_0763_a_01L그 어머니는 나이도 많고 병들어 죽음이 가까웠으므로 그 옷을 딸에게 부탁하고, 그 사연을 설명하였다. 그의 딸은 병이 들어 죽음에 가까워지자, 그 옷을 나무 위에 걸어두고 나무신[樹神]에게 말했다. ‘이 옷은 나를 위해서 잘 지니고 있다가 정반왕의 태자가 출가하는 날 그에게 전해 주시오.’
이때 제석천이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다가 나무 위에 그 옷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즉시 가지고 가서 자신이 입었다. 그는 늙은 사냥꾼으로 변신하여 활과 화살을 들고 보살에게 접근했다. 보살이 사냥꾼에게 말했다. ‘그것은 출가인의 옷이고 내 옷은 값비싼 속인의 옷이니, 우리 서로 바꾸지 않겠소?’ 사냥꾼이 대답했다. ‘나는 바꾸지 않겠소. 왜냐하면 만약 내가 당신의 그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당신을 죽이고 이 옷은 빼앗았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오.’
보살이 대답하였다. ‘사냥꾼아, 이것은 알아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의 용맹과 지혜는 아무도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 누가 이 옷을 보고 나를 죽였다고 생각하겠느냐? 너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때 제석천은 즉시 무릎을 꿇고 보살에게 옷을 바쳤다. 그때 보살은 옷을 얻어 입고 보니, 옷은 작고 몸은 커서 몸을 다 덮지 못하였다. 보살은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이 출가복(出家服)이 적어서 몸에 맞지 않는구나. 만약 내게 위력이 갖추어져 있다면, 저절로 커져서 내 몸을 다 덮어라.’
이에 보살과 하늘의 위력 때문에 옷은 금방 커졌다. 그때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내가 이미 이 옷을 입고 출가상(出家相)을 갖추었으니, 마땅히 고뇌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리라’ 하고, 즉시 먼저 입고 있던 좋은 옷을 제석천에게 주어서 장차 삼십삼천에게 돌려줌으로써 옷을 바꾼 곳을 공경하고 공양하게 하였다. 이에 모든 바라문과 거사, 장자들이 이 땅에 함께 제저(制底:佛塔)를 만들고, 이름을 출가의를 받은 탑[受出家衣塔]이라고 붙였다.
037_0763_b_01L그때 보살은 머리 깎고 가사 입고서 숲속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바가바(婆伽婆) 선인(仙人)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손으로 턱을 괴고 사유(思惟)하고 있는 선인을 보자, 보살이 물었다. ‘큰 선인이시여, 무엇을 그렇게 생각합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내가 머무는 곳에 다라수(多羅樹)가 있는데, 원래는 금꽃[金花]이 피고 금열매[金菓]가 열렸었다. 그런데 그 꽃과 열매가 갑자기 다 떨어졌으므로, 나는 지금 이 일을 생각하고 있다.’
보살이 대답했다. ‘이 나무의 주인은 생로병사의 고뇌를 두려워하여 그 핍박에서 벗어나려고 출가하여 수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꽃과 과일이 저절로 떨어진 것입니다. 만약 꽃과 열매의 주인이 출가하지 않았다면, 이곳은 당연히 원원(園苑:정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선인은 이 말을 듣고 눈을 들어 보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보살의 모습이 단정함을 보고 생각하다가 곧 보살에게 말했다. ‘출가했다는 그 사람이 혹시 당신인가요?’
보살이 대답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선인은 매우 놀랍고 기뻐서 눈을 떠 보살을 똑똑히 살펴보고는, 즉시 몸을 굽혀 앉기를 청한 뒤 꽃과 과일로써 공경을 다하여 공양하였다. 보살이 잠시 동안 앉아 있다가 선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가비라성까지는 몇 리나 되나요?’ ‘12유순[踰膳那]입니다.’보살이 생각하였다. ‘이곳은 도성이 매우 가까워 석가 종족들의 수가 적지 않을 터이니, 번잡하고 어지럽겠구나. 긍가하(弶伽河:恒河, 갠지스 강)를 건너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긍가하를 건너 점차 유행(遊行)하여 왕사성에 이르렀다.
037_0763_c_01L보살은 이미 선교(善巧)의 힘을 가졌고, 또 모든 지혜를 다 갖추었었다. 가라비라구나(迦囉毘囉拘那:나무이름)잎사귀 열 개를 엮어서 만든 발우 하나를 들고 성안에 들어가 고요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걸식하였다. 이때 빈비사라왕(頻毘娑羅王)은 누각에서 관망(觀望)하다가 보살이 멀리서 단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법에 맞는 승가리[僧伽胝: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법에 맞는 시선과 모습으로 조용조용 차례로 걸식하는 보살을 보고, 혼자 말하였다. ‘우리 왕사성에는 저와 같은 출가인은 없다.’ 게송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지금 출가를 찬탄하노니 저렇게 어질고 훌륭한 이가 나고 죽음 생각한 끝에 출가를 선택했네.
037_0763_c_05L‘我今讚出家, 如是賢善者, 思惟生死故, 彼人要出家。
속가의 온갖 고통 오물처럼 몸서리쳐져 출가를 통해 기쁨 얻고자 지혜로운 분 기꺼이 출가하셨네.
037_0763_c_07L 在家諸苦逼, 糞穢來煎迫, 出家味禪悅, 智者樂出家。
몸도 마음도 함께 출가하니 모든 악은 다 떨쳐 버리고 입으로 짓는 업마저 청정하여 바른 생활로 살아가네.
037_0763_c_08L 身心俱出家, 諸惡皆捨離, 口業亦淸淨, 正命以自活。
마갈타국[摩竭國]에 유람하여 점차로 왕사성에 이르렀네. 마음을 선정으로 거두어 잡고 차례로 다니며 걸식하네.
037_0763_c_09L 聖遊摩竭國, 漸至王舍城, 攝心在禪念, 次第行乞食。’
임금이 높은 누각에서 이 성자를 바라보고 즉시 환희심이 생겨서 가까운 신하에게 말하였네.
037_0763_c_11L 國主在高樓, 遙見此聖者, 卽發歡喜心, 告諸近臣曰,
너희는 저 성자를 보아라. 훌륭한 상호를 두루 갖추고 얼굴 또한 단정하며 땅을 보면서 법답게 걷고 있구나.
037_0763_c_12L‘汝等當觀彼, 勝相皆具足, 形容甚端嚴, 視地如法行。
지혜로운 자는 멀리 보지 않는 것 그는 결코 천인 출신이 아닐 것이니 즉시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 사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보라.
037_0763_c_14L智者不遙視, 此非賤種生, 卽令使者觀, 彼住在何處?
사자는 왕명을 받들어 즉시 그 사람에게 가서 그 출가인이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는지 관찰하였네.
037_0763_c_15L使者奉王命, 卽隨彼人行, 觀此出家人, 當於何處住?
그는 차례대로 걸식하며 여섯 집을 다녔고 발우 안에 음식이 차니 법대로 발우를 받들었네.
037_0763_c_16L彼次第乞食, 歷門至六家, 鉢中食旣滿, 如法捧其鉢。
보살은 걸식하기를 마치고 묵묵히 성 밖으로 나가서 저 반다림(般茶林)에 머물러 청정하고 조용하게 앉아 있었네.
037_0763_c_17L菩薩乞食已, 默然出城外, 往彼般茶林, 淸淨自安止。
사자가 거처를 알게 되자 즉시 한 사람을 보내 지키게 하고 간단히 알린 후 속히 성안으로 돌아와 그의 국왕에게 보고하였네.
037_0763_c_19L 使者知處已, 卽遣一人守, 一報速還城, 報彼國王曰。
대왕이시여, 저 비구는 지금 반다산에 있습니다. 용맹한 새끼사자처럼 앉아서 사자처럼 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037_0763_c_20L‘天王彼苾芻, 今在般茶山, 坐如猛虎兒, 處山如師子。’
대왕은 이 말을 듣고 즉시 수레에 올라 많은 신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비구가 있는 곳으로 황급히 떠났네.
037_0763_c_21L王聞說是言, 卽登諸寶輅, 群臣共圍遶, 速詣彼所居。
다반산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린 왕은 걸어서 보살 앞으로 가 보살과 대면하였네.
037_0763_c_23L 至彼般茶山, 王從車輅下, 步行前往詣, 便卽睹菩薩。
037_0764_a_01L 공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합장하여 인사하고
왕은 그 앞에 마주 앉았네. 고요하게 앉아 있는 보살을 보고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네.
037_0764_a_01L 恭敬相問訊, 王卽相對坐, 見彼寂靜住, 便作是言曰。
그대 젊은 비구여, 이제 한창 장성한 나이에 단정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찌하여 스스로 걸식하는가.
037_0764_a_03L‘汝少年苾芻, 今是盛壯時, 端嚴多技藝, 如何自乞食?
당신의 태생은 어느 종족인가. 내가 그대에게 집과 동산과 온갖 궁녀를 주어 모든 것을 갖추게 하리라.
037_0764_a_04L汝生何族姓? 我與汝園宅, 幷給諸婇女, 種種令具足。’
보살은 이 말을 듣고,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037_0764_a_05L菩薩聞是言,以頌而荅曰:
대왕이여, 저의 나라는 설산(雪山) 옆에 있으며 재물이나 음식이 풍족하니 교살라(嬌薩羅)라 하네.
037_0764_a_06L‘大王有一國, 住在雪山傍, 財食甚豐足, 名曰嬌薩羅。
감자(甘蔗)를 교답(喬答)이라 하니 그 나라엔 석가 종족이 사는 곳이요 나는 찰제리 종족으로서 세간의 욕망 기쁘지 않다네.
037_0764_a_08L 甘蔗曰喬答, 彼中住釋迦, 我是剎利種, 不樂世閒欲。
사람이란 땅 위의 모든 산림과 바다와 온갖 진귀한 보배를 가진다 해도 탐심은 오히려 만족이 없네.
037_0764_a_09L 若人御大地, 山林及海濱, 具有諸珍寶, 貪心猶未足。
사나운 불길에 나무가 타듯 탐욕 또한 이와 같으며 험난한 길이 두려워 근심하는 마부와 같도다.
037_0764_a_10L以薪投猛火, 貪欲亦如是, 怖畏嶮途中, 御者常憂懼。
모든 괴로움은 탐욕이 뿌리가 되어 능히 선법(善法)을 뒤덮나니 나는 이미 출가할 적에 모든 욕심 다 버렸네.
037_0764_a_12L 諸苦欲爲根, 能覆於善法, 我昔出家時, 諸欲皆棄捨。
마치 저 큰 설산은 바람이 불어도 꿈쩍 않듯이 내 마음 해탈에 의해 어떤 욕망에도 끌리지 않네.
037_0764_a_13L 譬如大雪山, 風吹尚能動, 我心依解脫, 諸欲不能牽。
세상의 욕망은 치달리려 하고 생사의 수레바퀴는 항상 구르네. 임금은 부디 내가 능히 모든 두려움을 해탈하도록 하소서.
037_0764_a_14L世閒欲驅馳, 生死輪常轉, 國主唯我能, 解脫諸怖畏。
나는 욕망의 허물을 알고 열반적정(涅槃寂靜)도 보았으니 나는 이제 모든 욕망 버리고 저 청정한 즐거움으로 나아가려네.
037_0764_a_16L 我知欲愆過, 見涅槃寂靜, 我今當捨棄, 往詣淸淨樂。’
그때 빈비사라왕은 이 게송을 듣고, 보살에게 물었다. ‘출가한 비구여, 이런 고행을 통해 무슨 원을 성취하려 하오.’ 보살이 대답하였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원하오.’ 왕이 말했다. ‘당신이 만약 도를 얻게 되면, 마땅히 나도 기억하시오.’ ‘왕의 원대로 해주겠소.’
037_0764_b_01L이렇게 대답한 보살은 그 길로 기사굴산(耆闍崛山) 옆 선인림(仙人林) 밑으로 갔다. 그곳에서 보살은 선인들을 따라서 그들과 똑같이 일상생활을 함께하였다. 보살이 그들의 고행을 보니, 늘 한쪽 발을 들고 있다가 1경(更)이 지나야 쉬곤 하였다. 보살도 한쪽 발을 들고 있다가 2경(更)이 되어야 쉬었다. 또 선인들의 고행을 보니, 5열(熱)로 몸을 태우는 수련[炙身]1)을 하면서 1경이 되어야 쉬고 있었다. 보살 또한 5열로 몸을 태우는 수련을 하여 2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쉬었다. 이와 같이 보살은 그들보다 갑절이나 고통스러운 수행을 하였다. 선인들은 이것을 보고 서로 의논하였다. ‘이 사람은 실로 고행이 대단한 사문(沙門)이다.’ 이러한 연유로 대사문(大沙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때 보살은 선인들에게 물었다. ‘이와 같이 고행하는 여러 선인들께서는 어떤 원을 가지고 계십니까?’ 한 선인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제석천왕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한 선인이 말하였다. ‘우리는 대범천왕이 되기를 원합니다.’ 한 선인이 말하였다. ‘우리는 욕계(欲界)의 마왕(魔王)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보살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 선인들은 천상과 인간에 윤회하는 것이 끊이지 않겠구나. 이는 분명 삿된 도이며, 청정한 도가 아닐 것이다.’
보살은 선인들이 행하는 깨끗하지 못한 도를 보고는, 즉시 그 도를 버리고 가라라(歌羅羅) 선인의 처소로 갔다. 합장 공경하고 마주 앉아 그 선인에게 물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함께 범행(梵行)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 선인이 대답하였다. ‘어진 교답마(喬答摩)여, 나에겐 존자(尊者)가 없습니다. 당신이 배우고자 한다면, 당신의 뜻대로 거리낌 없이 하시오.’ 보살이 물었다. ‘대선(大仙)은 어떤 법과(法果)를 얻었습니까?’ 선인이 대답하였다. ‘어진 교답마여, 나는 무상정(無想定)을 얻었습니다.’
보살이 이 말을 듣고 혼자 생각하였다. ‘가라라[羅羅]가 신심(信心)이 있다면 나도 신심이 있다. 가라라가 정진(精進)하여 생각도 있고 선도 있고 지혜도 있듯이 나도 그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 가라라 선인이 이렇게 허다한 법들과 나아가 무상정(無想定)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법이 어찌 나에겐들 없겠는가?’ 그리하여 보살은 말없이 나와서 그 모든 법들을 생각하였다. 얻지 못한 것을 얻고자 했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고자 했으며, 보지 못한 것을 보고자 하였다.
037_0764_c_01L이때 보살은 홀로 한가로운 숲속에 있으면서 오로지 그 도(道)를 생각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그러고 나서 오래지 아니하여 그 도를 증득하여 깨달았다. 이 법을 증득하고 난 보살은 가라라 선인의 처소로 돌아와 가라라에게 말했다. ‘이 법과 무상정(無想定)을 당신이 스스로 얻었습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그렇소. 교답마여, 무상정까지 내 스스로 증득한 것이오.’ ‘어진 분이시여, 그러한 지혜와 나아가 무상정까지를 나도 얻었습니다.’
선인이 대답하였다. ‘교답마여, 당신이 이미 얻은 것을 나도 얻었으며, 내가 이미 얻은 것을 당신도 얻었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똑같은 이치[義理]를 얻었으니, 이 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칩시다.’ 이 가라라 선인이 곧 보살의 첫 번째 가르침을 준 아사리[阿遮利耶]이다. 저 가라라 선인은 보살의 지혜 때문에 즐겁게 공양하며 가까이서 잘 대해 주었다.
이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도법(道法)은 지혜도 아니고 정견(正見)도 아니며, 이것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도 없으니, 이것은 깨끗하지 못한 도이다.’ 이렇게 알고 난 보살은 가라라 선인에게 말했다. ‘어진 분이여, 잘 계십시오. 나는 이제 떠날 것입니다.’
보살이 산림을 다니다가 수달단정(水獺端正) 선자(仙子:선인)를 만났다. 구역(舊譯)에 ‘울두람(鬱頭藍)’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보살이 가까이 가서 공손히 물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저도 함께 배우고 닦겠습니다.’ 선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스승이 없소. 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배우시오.’ 보살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도(道)를 깨달았습니까?’ 선인이 대답하였다. ‘어진 교답마여, 나는 비비상정(非非想定)을 얻었소.’
037_0765_a_01L보살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 수달 선인이 신심이 있듯이 나도 역시 신심을 가졌다. 이 선인이 가지고 있는 정진(精進)과 염(念)과 선(善)ㆍ지(智)를 나도 가지고 있다. 그가 이런 법(法)과 나아가 비비상정(非非想定)을 얻었는데, 나라고 해서 얻지 못하겠는가?’
그리고 그는 말없이 떠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법들을 늘 생각하며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고,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고 하였다. 곧 조용한 숲으로 가서 일념으로 도를 닦으며 더욱 정진한 결과 오래지 아니하여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었다. 이 정(定)을 얻고 나서 보살은 다시 수달 선인에게 가서 말하였다. ‘당신은 이 법들을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까?’ 선인이 답하였다. ‘그렇소.’
보살이 또 말하였다. ‘대선이시여, 그 지혜와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나도 얻었습니다.’ 수달 선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얻은 것을 나도 얻었고, 내가 얻은 것을 당신도 얻었으니,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제자들을 가르칩시다. 왜냐하면 얻은 법이 같으니까요.’ 그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도는 지혜도 아니고 정견(正見)도 아니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얻을 수 없는 깨끗하지 못한 도이다.’ 보살은 선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잘 있으시오. 나는 떠나겠소.’ 이 선인은 보살의 두 번째 아사리이다.
보살은 그 뒤로 산 속으로 돌아다녔는데, 이때 정반왕은 보살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시켜 길목을 살피게 하고, 모든 산과 숲을 샅샅이 찾아보도록 하였다. 태자가 수달 선인을 떠나서 시자(侍者) 한 사람 없이 혼자 산속을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동자 3백 명을 보내 태자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천시성왕(天示城王)도 이 말을 듣고 2백 명의 동자를 선발하여 태자의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보살은 5백 명의 동자의 호위를 받으며 산에서 마음대로 유관(遊觀)하였다.
037_0765_b_01L그때 보살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숲속에서 고요하게 머물고 싶은데,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서 감로(甘露)의 법을 구할 수 없으니, 나는 다섯 명의 시종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되돌려 보내야겠다.’ 그리하여 보살은 어머니의 친족에서 두 사람을 남기고, 아버지의 친족에서 세 사람을 남겼다. 이 다섯 사람은 보살을 잘 받들어 시중들기로 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때 보살은 이 다섯 사람에게 에워싸여 가야성(伽耶城) 남쪽에 있다가 오류빈라(烏留頻螺)의 서쪽 나야니(那耶尼) 부락으로 갔다. 니련선하(尼連禪河) 물가에서 사방으로 노닐다가 한 군데 좋은 곳을 발견하였는데, 수목이 아름답고 울창하였으며, 물이 맑고 시원하였다. 그 밑에 깨끗한 모래 둑이 있었는데, 그 안에 물이 가득하여 물을 긷기에 편리했으며, 들판엔 푸른 풀이 깔려 있고 넓게 솟은 둑엔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무성하여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절경을 보고 보살은 생각하였다. ‘이곳은 수목이 무성하고 물이 맑으며, 그 밑은 부드러운 모래로 되어 있고 언덕은 평평하고 물이 맑아 물을 긷기 쉬우며, 들판에 푸른 풀이 깔려 있고 넓게 솟은 둑엔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이렇듯 아름다우니, 선정과 지혜를 닦으려는 자는 누구나 이곳을 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모든 적정(寂定)을 생각하고, 이 숲속에서 모든 번뇌를 끊겠다.’
037_0765_c_01L이런 생각을 한 보살은 곧 나무 밑에 단정히 앉아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두 이를 다물어서 숨을 잘 조절하고 마음을 거두어 안정시킨 뒤, 억누르고 뉘우쳐 마음을 다스리니, 모든 털구멍에서 땀이 흘러 나왔다. 마치 힘세고 용감한 군사가 약한 사람을 잡아 꺾고 비틀고 누르면서 그를 괴롭히면 그 사람의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게 되듯이 보살도 또한 그의 몸과 마음을 조복하길 이와 같이 하였다. 이렇게 점점 정진하여 잠시도 놓지 않은 끝에 몸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져 아무런 장애도 없어졌으며, 마음엔 의혹이 없어졌다. 보살은 이렇듯 극도로 괴로운 고통을 일으켜서 고통과 즐겁지 않은 고통을 견뎠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온갖 고통을 받았지만, 그 마음은 오히려 바른 선정에 안주할 수 없었다.
그때 보살은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모든 근(根)을 닫아 막아서 방일하지 못하게 하고 헐떡이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고요하게 머무는 것이 좋겠다.’ 이에 먼저 기(氣)를 거두 들여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다. 기가 나가지 못하게 되니, 기가 정수리로 올라가 정수리가 매우 아팠으니, 마치 역사(力士)가 철 방망이로 약한 사람의 정수리를 내려치는 것같이 아팠다. 이때 보살은 점점 더 정진하여서, 물러나거나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몸이 가볍고 편안해졌으며, 수행하는 바에 따라 그대로 마음이 전일하게 안정되어 의혹이 없어졌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스스로 힘쓰고 다그치며 극도로 괴로운 고통과 즐겁지 않은 정도의 괴로움은 참고 견뎠지만, 바른 선정[正定]에는 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러 생을 사는 동안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보살은 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점점 부지런하고 꿋꿋하게 수행하여 모든 근(根)을 닫아 막고 기(氣)를 선정으로 옹립해 들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마치고 즉시 기를 폐쇄하여 숨을 쉬지 못하게 하니, 그 기는 다시 정수리로부터 내려 와서 귀를 때렸고, 그 기는 귀에 가득 차서 마치 쌓인 기가 입을 봉한 듯하였다. 이런 갖가지 괴로움을 받고도 바른 선정에 들 수 없었으니, 왜냐하면 오랜 동안의 훈습(熏習) 때문이었다.
037_0766_a_01L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갑절로 정진하여 안으로 기를 거두 둘여 한껏 팽창시켜서 선정에 들도록 하리라.’ 입과 코를 닫아 숨을 차단하여 숨이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숨이 나오지 않자, 기는 배와 오장(五臟)으로 들어가 배가 팽팽하게 부풀게 되었다. 이에 다시 기공(氣功)을 더하니, 몸이 편안해지고 수행하는 바에 따라 그대로 마음이 안정되어 의혹이 없어졌다. 보살은 이렇게 갖가지 괴로움을 받았지만, 그 마음이 오히려 바른 선정에 들지 못한 것은 수많은 시간 동안 훈습되었기 때문이다.
보살은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갑절이나 배를 불룩하게 하여 선정에 들어야 한다.’ 선정에 들고 나서 기를 막으니, 기가 올라가 정수리에 부딪쳐 정수리가 아팠다. 마치 역사(力士)가 약한 사람을 끈으로 힘껏 졸라매듯이 머리와 정수리가 모두 터질 것처럼 아팠다. 보살은 이렇게 가장 극심한 괴로움을 받는데도 바른 선정에 들 수 없었으니, 왜냐하면 수많은 시간 동안에 훈습되었기 때문이다.’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제 공을 갑절로 들여서 배를 팽창하게 하여 선정에 들어야 한다.’ 선정에 들고 난 후에 기(氣)가 가득 차서 배가 아팠으니, 마치 소를 잡는 사람이 날카로운 칼로 소의 배를 찌를 때 소가 느끼는 아픔과 같았다. 보살이 이와 같은 괴로움을 받는데도 바른 선정에 들 수 없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 동안에 훈습되었기 때문이다.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제 배로 정진하여 배를 팽창하게 하는 선정에 들어야 한다.’ 선정에 든 뒤에 입과 코를 닫고 막으니, 기가 가득 차서 온몸에 두루하여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마치 두 사람의 역사(力士)가 약한 사람을 들어 이글거리는 불 속에 넣은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이 보살은 갖가지 고통을 받았지만, 바른 선정에 들 수 없었다.
보살은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제 모든 음식을 끊는 것이 낫겠다.’ 그때 여러 하늘들은 보살이 모든 음식을 끊은 것을 보고, 보살에게 와서 말하였다. ‘보살[大士]이시여, 이제 당신이 인간의 음식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마땅히 당신의 털구멍으로 감로를 넣어 줄 것이니, 받아 주시오.’
037_0766_b_01L보살은 문득 생각하였다. ‘내가 이미 인간의 음식을 끊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감로를 받는다면 이는 헛된 말[妄語]이 되고 삿된 견해[邪見]가 된다. 모든 중생은 헛된 말과 삿된 견해 때문에 죽은 뒤에 악취(惡趣)인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결코 이 감로를 받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인간의 음식을 소량은 먹을 필요가 있다. 팥[小豆]이나 콩[大豆], 나팔꽃 씨[牽牛子]를 삶아서 그 즙을 취하여 조금씩 먹어야겠다.’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고, 하늘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드디어 팥과 콩, 나팔꽃 씨를 삶아서 취한 그 즙을 조금씩 먹었다. 그리하여 보살의 몸은 차츰차츰 살이 빠져 수척해져서 흡사 80세 먹은 노파의 몸과 같이 보살의 몸도 여위게 되었다. 또 보살은 이때 소식(少食)을 했던 탓에 머리가 몹시 아프고 말랐다가 다시 부었다. 마치 덜 익은 열매의 줄기를 끊으면 햇볕에 말라 시들듯이 보살의 머리도 그와 같았다. 보살은 이때 더욱 정진하여 몸이 가볍고 편안하게 되었으며, 생각하는 대로 닦아 갖은 괴로움을 감수하였지만, 마음은 바른 선정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때 보살은 소식(少食)으로 말미암아 눈자위가 푹 꺼져 마치 사람이 눈을 빼어간 것 같았고, 우물 속에 보이는 별과 같이 눈동자만 반짝였다. 이에 보살은 정진을 배나 더하여 모든 괴로움을 견뎠지만, 바른 선정에 들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 동안에 훈습되었기 때문이었다. 소식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양쪽 갈비뼈 밑이 움푹 들어가 마치 3백 년 된 초가집 지붕과 같았다. 보살은 이때 더욱 부지런히 마음을 다지며 온갖 괴로움을 견뎠으나, 바른 선정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 동안에 훈습되었기 때문이었다.
037_0766_c_01L보살은 소식으로 말미암아 등골이 굽어서 마치 공후(箜篌)2)와 같았다. 일어서려고 하면 엎어지고, 앉으려 하면 뒤로 넘어졌다. 허리를 단정하게 세우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손으로 몸을 문지르니 털이 모두 빠졌다. 보살은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내가 행한 것은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이 아니므로 무상보리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