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자가 출가할 때 외도 두 사람과 어린 사미[驅烏小兒]와 아라한과 병든 여인이 함께했도다.
037_0895_a_04L舍利子出家, 幷外道二人, 及驅烏少兒,
阿羅漢病女。
따로 거두어 게송으로 말한다.
037_0895_a_06L別攝頌曰:
사리자가 출가할 때 구족계[近圓法]을 받아서 소군(小軍)을 조복시키니 외도의 다섯 가지 종류로다.
037_0895_a_07L舍利子出家, 許受近圓法, 調伏謂小軍,
外道幷五種。
그때 점파국(占波國)에 왕이 있었는데 이름을 앙가(央伽)라 하였고 다시 그 이웃에 마갈타(摩揭陀)가 있으니 왕의 이름을 대연화(大蓮華)라 하였다. 두 나라의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었는데 두 나라 모두 백성이 활기차고 풍요로우며 안락하였다. 군대도 두 나라 모두 강하여서 서로 침공하여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난 어느 날, 앙가왕은 국력이 튼튼하고 백성의 사기가 오르자 옛 원수를 갚으려고 무기를 수선하고 군대를 모은 뒤에 침공할 시기를 정하고는 “다 같이 가서 죽여 없애자”고 대중과 함께 맹세했다.
그때 변방에 있던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는 급히 사신을 보내 연화임금에게 알리게 되었다. 연화임금은 곧 군대를 내보내 맞붙어 싸웠으나 결국 연화국은 패했고 군대를 거두어 성문을 굳게 닫고 완강하게 항거하였다. 앙가왕은 이 싸움에서 이기는 데 뜻이 있는지라, 사신을 보내어 말하였다. “만약 성문을 나와 항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끝까지 쫓아가 용서하지 않으리라. 하늘로 올라간다면 그물을 날려 잡을 것이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그물을 쳐서 찾아내고야 말 것이며 산에 올라 숲 속으로 숨는다 하더라도 도망칠 길이 없을 것이다.”
037_0895_b_01L 임금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임금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이다. 무너진 나라는 다시 일으켜 세우지만
끊어진 목숨은 다시 잇기 어려우리라.
037_0895_a_24L有王便有國, 無王國不存, 國破可還興,
命殞終難續。
나라와 목숨은 다른 것이니 사람의 목숨은 잘 보존해야 하며 나라는 무너져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목숨이 끊어지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으리라.
037_0895_b_02L國命兩相違, 人應善護命,
國破還成立, 命斷更難期。
이렇게 하여 신하들이 임금에게 나아가 항복하기를 권하니, 임금은 신하들의 뜻에 따라 목을 들고 앙가왕에게 가서 ‘영원히 세금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하였다. 이 일이 끝나고야 임금은 풀려나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때 보살이 도솔천궁에서 세계를 관찰하고, 다섯 가지가 갖추어진 곳에 하생하고자 하였다.
이때 육욕제천(六欲諸天)이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 정반왕궁의 세 가지가 깨끗한 마야부인의 태 안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마련하고 마야부인으로 하여금 상서로운 꿈을 꾸게 하였으니, 보살이 흰 코끼리의 모습으로 변하여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순간 대지가 진동하고 금색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었는데, 해와 달빛을 넘어 위로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이르기까지 밝음이 사무쳐 일체의 어둠이 다 사라졌다. 가령 해와 달빛이 미치지 않아 분간조차 할 수 없었던 긴 어둠도 한번 신령한 빛을 만나니 만상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것이 성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임을 세간에서는 알지 못했다.
037_0895_c_01L이때 네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첫째는 왕사성(王舍城)의 대연화왕(大蓮華王)이고, 둘째는 실라벌성(室羅伐城)의 마라대왕(摩羅大王)이며, 셋째는 오사니성(鄔舍尼城)의 사다미대왕(奢多彌大王)이며, 넷째는 교사미성(驕奢彌城)의 아난다니미대왕(阿難多泥彌大王)이었다. 이 네 대왕은 보살이 강생(降生)하는 날에 각각 내궁(內宮)에서도 태자가 탄생했다. 대연화왕은 아들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보고는 아들의 서광이라 하고는 이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내 아들의 위덕(威德)은 마치 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으니 내 아들의 위광이야말로 능히 세상을 비출 것이며, 그 수승(殊勝)한 빛의 상스러움을 나타내야겠다” 이로 인해 이름을 영승(影勝) 태자라 하였다.
한편 마라대왕도 대연화왕처럼 광명 속에서 태어난 것은 아들의 상서로움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의 아들이 태어날 때 상서로운 길조가 수승하여 광명이 가득차고 나라가 맑고 평안하니 마땅히 그 덕을 나타내고 이름을 떨치리라.” 이로 인해 이름을 승군(勝軍) 태자라 하였다.
또 사다미왕 역시 앞의 왕과 같이 아들의 서광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들은 덕이 있구나. 광명이 나타났으니 마땅히 이름을 떨칠 것이니 이 상서로움을 길이 나타내야겠다.” 이로 인해 이름을 출광(出光) 태자라 하였다. 이때 아난다니미왕도 역시 앞의 왕과 같이 아들의 서광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들의 탄생은 마치 해가 막 솟아오르는 것과 같아 뻗어가는 빛이 어둠을 부수고 광채가 승천하니 그 상서로움을 널리 나타낼 것이다.” 이로 인해서 이름을 일초(日初) 태자라 하였다.
이래서 네 나라의 왕들은 각각 아들의 상서로움을 표방하여 이름을 지었지만 이 모두가 석가보살(釋迦菩薩)이 대위신력(大威神力)을 나타내어 그렇게 된 것임을 다 몰랐다. 그러나 왕자들은 모두가 오래부터 승인(勝因)을 쌓아 왔고 대원력도 있었기에 각기 권속을 거느리고 성인을 따라 태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 영승 태자가 태어난 것은 역시 인간과는 다르게 출현한 것이기에 처음 탄생하던 날에 5백의 대신들도 모두 아들 하나를 얻어 그 족성(族姓)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037_0896_a_01L영승 태자는 8명의 유모를 두고 길렀는데 일취월장하는 것이 마치 물에서 연꽃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학문으로는 경서(經書)ㆍ기예ㆍ역수(歷數)ㆍ산계(算計) 및 일체의 찰리관정왕법(刹利灌頂王法)까지 이해하지 못함이 없었다. 거기에다 공교(工巧)로운 일에도 마음을 두어 코끼리 조복시키기, 말 부리기, 수레 타는 법 등과 활 쏘는 일, 탑색(塔索)하는 방법과 칼 쓰는 법, 병을 치료하는 법 등 온갖 기술에 능통했으며, 4종류의 베다도 꿰뚫었다. 아울러 5백 대신의 아들 역시 모두 통달하였다.
훗날 어느 때, 태자는 나라 일을 돌보다가 쉬는 틈을 타서 코끼리를 타고 나라 안을 순행하다가 어떤 사람이 조세(租稅)를 징수하는 걸 보고는 시종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조세를 거두는 것인가?” 대답했다. “저들은 이웃나라 잉가왕의 사자(使者)인데, 멀리까지 와서 조세를 거두어 갑니다.” 태자가 물었다. “우리나라가 무슨 연고로 다른 나라에 조세를 주는 것인가?” 대답했다. “이렇게 바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에 태자는 즉시 사자를 불러 말했다. “그대 나라도 찰리관정왕이고, 우리나라도 역시 찰리관정왕이다. 통치와 교화가 다르고, 백성도 각기 다른데 무슨 연유로 국경을 넘어와서 부세를 거두는가? 즉시 돌아가라. 지금부터 영원히 끊을 것이다.“
사자는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지금 이 태자는 성품이 사나워 옛 약속을 어기려고 우리들에게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니 대연화왕께 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다시 징수케 하는 것이 좋겠다.” 이윽고 임금을 뵈니 다시 명령을 내려주기에 전과 같이 세금을 거두게 되었다. 태자가 돌아오다가 보니 여전히 사자들이 세금을 거두고 있기에 다시 말하였다. “내가 이미 돌아가라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냐. 당장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만일 돌아가지 않으면 엄벌을 가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두려워하며 모두 돌아갔고 자기 나라에 이르러 이 사실을 낱낱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영승 태자는 성품이 거칠고 사나워서 옛 약속을 어기고 신용을 저버려서 조세를 받을 수 없으니, 대왕께서는 빨리 계책을 쓰소서.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때 임금은 곧 게송으로 사신에게 답하였다.
037_0896_b_01L 나무가 떡잎으로 있을 때엔 손톱으로도 끊어낼 수 있지만 큰 아름드리로 우거지면
도끼로도 꺽지 못하리라.
037_0896_a_23L樹木在萌芽, 爪甲便能斷, 枎疏大連抱,
斤斧莫能摧。
앙가왕은 대노하여 사신에게 편지를 보내 연화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영승은 명을 거역하였으니 목을 매어 보내시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몸소 그곳을 무찌를 것이니, 나의 뜻을 잘 알아들으시오.” 이 말을 들은 연화왕과 군신들은 겁을 먹게 되었고 나라가 망하게 될까 걱정하였다. 곧 영승 태자를 불러 옛 맹세를 거역한 것에 대해 책망하고 사신이 보내 온 서신을 보여 주었다.
영승이 말하였다. “그 나라도 찰리관정왕이고 우리나라 또한 찰리관정왕이기는 하지만 국경이 다른데 무엇 때문에 조세를 바쳐야 합니까. 대왕이시여, 저에게 사병(四兵)을 주소서. 몸소 나가 싸워서 결판을 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연화왕은 태자 영승이 능히 큰 일을 감당할 것이라고 믿고 앙가왕에게 글로써 대답을 보냈다. “영승의 목을 잡아매어 보내라는 서신을 받았는데 영승은 선왕의 대를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에 엄중한 통고가 거듭 있다 할지라도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또 대왕이 막강한 힘으로 우리나라를 뒤엎고자 하여 포악하게 우리를 업신여기고 군대를 동원한다면 오직 죄를 기다리는 일만 있는 줄 아옵소서.”
이 서신을 본 앙가왕은 대노하여 곧 명령을 내렸다. “온 나라에 군대를 일으키고 무기들을 연마하라. 내 친히 가서 연화왕을 파멸시키고 영승의 목을 벨 것이다.” 앙가왕은 드디어 수많은 군대를 일으켰으니 병마의 기세가 등등하고 수많은 깃발들이 땅을 덮었으며, 종과 북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 이렇게 앙가왕이 마갈타국으로 쳐들어오자, 연화왕은 크게 놀라 영승을 불러 사병을 주었다.
037_0896_c_01L부왕의 분부를 받은 태자는 대신의 아들들을 인솔하고 명령을 내렸다. “앙가왕과 우리나라는 오랜 원수로서 이제 내가 보복을 하고자 한다. 적군의 군대가 국경에 침입하였으니 나라를 구할 좋은 계책들을 말해 보라. 너희들은 대대로 공을 쌓아 나라의 은총을 받았다. 무슨 방법을 써야 나를 도와 적을 부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는가?” 대신의 아들들이 대답했다. “저희들에게 별다른 계략은 없지만 태자의 손발이 되어 따르겠습니다.” 태자 영승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보호해야 하느니 나라를 빼앗기면 백성은 의지할 곳을 잃게 되네.
037_0896_c_02L治國養黎人, 應當善守護, 爲他所侵奪,
萬姓失歸依。
다시 태자는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마음을 모아 온 힘으로 나라를 지키라.” 그리고는 삼군(三軍)에게 호령하니 병마가 일시에 출발하였다. 그때 연화왕은 높은 누각 위에 올라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군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저 군대는 어느 쪽 군대인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영승 태자의 군대입니다.” 연화왕이 말했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병사들이 저렇게 많으니 군중(群衆)의 영승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 중 어떤 사람은 ‘커다란 사다리인 영승’이라고도 하는 등 이같이 갖가지로 태자의 위풍당당함을 찬탄하였다.
이때 태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싸움을 잘 하는 군인은 군대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앙가왕에게는 엄청난 병마가 있어 대항한들 이기지 못할 것이며, 더구나 우리의 군사를 다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권모와 은밀한 방법으로 앙가왕을 사로잡는 것이 최선책이리라.” 그리고는 태자는 곧 용맹한 군사를 모아 전의 방비가 허술한 것을 틈타 앙가왕을 죽이니 많은 군사가 일시에 흩어졌다. 병사를 다시 정비하여 후퇴하는 적군을 앞질러 진격하니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임금이 죽은 것도 모르고 태연히 성을 지키고 있었다.
037_0897_a_01L영승 태자는 곧 앙가왕의 머리를 창에 매달아 성안에까지 보이게 하고 호령하였다. “이것은 너희 나라 앙가왕의 머리이다. 너희들은 빨리 성문을 열어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도 이와 같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성문을 열었고 모든 대신들은 목을 매어 투항하였으며 백성들도 순순히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성안으로 들어간 영승 태자는 사신을 보내 부왕인 연화왕에게 아뢰었다. “다행히 대왕의 위엄을 받자와 신하와 백성이 힘을 다하여 역적 앙가왕의 머리를 베었고 따라서 온 국경이 걱정 없이 편안하고 조용합니다.”
연화왕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이 그지없어 곧 여러 가지 의복과 영락ㆍ장신구ㆍ칠보개 등을 영승에게 보내면서 명하였다. “점파국의 임금이 되어 앙가왕을 대신하라.” 그리하여 점파국의 백성들은 영승 태자를 영승대왕이라 불렀고 그 뒤로도 성덕과 신령한 공덕을 모든 사람들에게 입혔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은 풍요롭고 안락하여 도둑이 물러갔고, 영승대왕의 위덕과 명성은 먼 곳까지 퍼졌다.
그 뒤 어느 날 연화왕이 죽게 되었고 마갈타국의 군신들은 슬퍼하면서 영승대왕이 본국으로 돌아와 통치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영승 태자는 점파국의 일은 그 나라의 군신들에게 맡기고, 곧 수레를 준비하여 슬피 울며 황급히 귀국하였다. 상(喪)을 마치고 영승은 왕위를 이어 받아 바른 법으로 통치하여 사람들을 교화했으니 비와 바람이 고르고 순조로워 백곡이 풍성하였고 온 백성이 풍요와 안락을 누렸다. 이러한 영승대왕의 높은 덕망은 이웃나라에까지 감화를 주었고 모두 흠모하여 원수도 도적도 없었다.
이때 이 나라의 중앙지방에 한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법술을 배우고자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점차 남쪽으로 가서 남인도에 이르렀다. 그때 남인도에 대바라문이 있었으니, 이름은 지사(地師)였다. 그는 사론(四論)에 매우 밝아서 세상에서는 대사라고 불렀다. 그 바라문은 지사에게 가서 발 아래 머리 숙여 공손히 절하고 두 손을 마주하고 아뢰었다. “저는 스승에게 제자의 예를 다하겠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가?” 바라문이 대답했다. “저는 지금 사명대론(四明大論)을 배우고자 합니다.” 스승이 말하였다. “마음대로 배우라.” 그는 곧 모든 사법(事法)을 배웠다.
037_0897_b_01L바라문의 법에 매월 셋째 날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목욕을 하거나 성(城)에 들어가거나, 혹은 땔나무로 불을 피우도록 되어 있다. 이 날이 되자 모든 바라문들이 다 같이 땔나무를 하여 불을 지피려고 길을 따라가다가 서로의 종성(種姓)과 태어난 곳을 묻게 되었는데 독자(犢子) 등 네 성바지에서 하나씩 대답했다. 또 서로 어디서 왔는지를 묻게 되었는데 어떤 이는 동방이라 하고, 어떤 이는 남방이라 하고, 어떤 이는 서방이라 하고, 어떤 이는 북방이라 하고, 어떤 이는 모든 고장을 두루 견문했다고 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혜는 동방에서 나오고 이간질하는 말은 서방에 있고 공경하는 것은 남방에서 생기고 나쁜 말은 북방에 있다네.
037_0897_b_07L智慧出東方, 兩舌在西國, 敬順生南國,
惡口居北方。
바라문들은 네 곳의 것은 다 알았으나 중앙에 있는 나라는 어떠한지 알 수가 없어서 모두 스승에게 가서 물었다. “오파타야(鄔波馱耶)시여, 저희들은 지금 중앙에 있는 나라에 가서 그곳을 구경하고, 또 그곳의 물에 목욕하고 그곳의 여러 스승을 받들어 섬기며, 그곳의 논사들에게서 항복을 받고자 합니다. 반드시 저희들의 명성이 먼 곳까지 알려지게 하고 많은 보배를 얻어 이익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스승인 바라문은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두터웠으므로 필요한 옷가지와 물건들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채비가 끝나고 제자들은 모두 길을 떠나 중앙에 있는 나라로 향했다. 길을 따라 가다가 지혜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과 논쟁하여 이기곤 하였는데 굴복하는 이에게는 병에 재를 담아 그의 머리에 부어 주기도 하였다. 또 사람들이 향화나 당번ㆍ보개 등을 가지고 와서 맞이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스승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037_0897_c_01L이렇게 점점 걸어서 여러 성읍과 촌락들을 지나면서 곳곳마다에서 논쟁하여 이기고, 드디어 중앙의 나라에 이르게 되었다.
바라문들은 생각하였다. “듣기에 지식인들은 임금이 계시는 곳에 많이 있다고 하니 우리들도 그곳에 가서 논의하여 이긴다면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동안 여러 곳을 지나오면서 논의하여 승리한 것을 나무로 비유해 가지나 잎이라고 한다면 임금이 계시는 곳에서 승리하는 것은 나무뿌리를 치는 것과 같으리니, 우리는 지금 당장 임금이 계신 곳으로 가야겠다.” 그리고는 곧 그곳을 떠났다.
임금이 계신 곳에 이르러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고 모든 장애가 없어지이다’라고 축원하고는 한쪽 편에 서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은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조금 익히기는 했으나 왕국 내의 여러 스승들과 담론하기를 원합니다.” 임금은 곧 ‘뜻대로 하라’고 하고는, 이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저들 같은 바라문이 있어 저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겠는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나라촌(那羅村)에 바라문이 있는데 사명론(四明論)에 능통하여 지혜가 불과 같이 밝습니다. 그는 논(論)을 짓기도 하였는데 그 논의 제목을 ‘마타라(摩吒羅)’라고 하고 그 때문에 이름을 마타라라고 부릅니다.” 임금은 곧 “그 오파타야를 불러오라”고 말하였다. 대신들은 명에 의하여 그를 청하여 임금에게로 데려오자, 그는 앞에서와 같이 축원을 마쳤다. 임금이 말하였다. “네가 저 바라문들과 내 앞에서 논의할 수 있겠느냐?” 그가 대답했다. “임금님의 엄명을 받들어 힘을 다하여 저들과 담론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법에 의해 만다라(曼茶羅)를 만들고 그 양쪽에 자리 하나씩을 마련하였다.
037_0898_a_01L임금이 물었다. “누가 먼저 할 것인가?” 대신이 대답하였다 “손님으로 온 바라문은 이름이 지사(地師)인데 먼저 그를 시키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지사가 먼저 5백 송을 암송하고 말없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타라도 그 송을 되짚어 암송하였는데 지사의 적지 않은 과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라타가 말하였다. “지사가 암송한 것은 말과 뜻이 전혀 맞지 않으며 도리에도 합당치 못합니다.” 지사는 이 말을 듣고도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었다. 논의하는 법에 이렇게 잠자코 말이 없으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어 있다.
임금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진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마타라의 논의가 승리하였습니다.” 임금은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던가.” 임금은 다시 마타라에게 물었다. “오파타야여, 어느 마을에 사는가?” 마타라가 대답했다. “나라촌에 삽니다.” 임금은 곧 나라촌에 상을 내려 주었고 필요한 것을 뜻대로 수용하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환락을 구하며 사는데, 이 바라문은 남편감을 구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행복하게 살았으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는 크게 잔치를 베풀고 아들의 몸이 장대하였으므로 이름을 장체(長體)라고 지었다. 음식을 골고루 먹여 키우니 몸이 점점 장대해지자 예(藝)를 가르쳤다. 산계(算計)와 수인(手印)과 바라문의 행인 깨끗이 씻는 법과 재[灰]를 구하는 법과 흙을 구하는 법과 4베다를 찬탄하는 법과 제사하고 독송하는 법과 시주하는 물건을 받는 법 등 여섯 가지를 모두 익혔다.
그 후 어느 날 마타라는 다시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의 눈매가 구욕조(鴝鵒鳥:눈에 무늬가 있는 아름답고 귀한 새)와 같아서, 여러 친지들이 모여 딸의 이름을 구욕이라고 지었다. 딸이 성장하자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문자와 논의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 뒤 딸은 오빠와 함께 논의를 하곤 했는데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다가 딸이 이기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남자가 되어가지고 여자에게 지는구나. 나는 후사가 없는 것과 같고 수용할 모든 재물도 다른 이에게 잃을 것만 같다.”
037_0898_b_01L그 뒤 남천축국에 한 바라문의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저사(底沙)였고 무후세론(無後世論)에 매우 밝았다. 그런 그는 법을 구하여 남방으로 왔고 마타라에게 이르러 그의 발에 절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사이시여, 저는 오파타야에게서 학문을 닦고자 합니다.” 스승이 물었다.
“어떤 예능을 배우고자 하는가.” 저사가 말하였다. “무후세론을 배우고자 합니다.” 스승이 말했다 “뜻대로 하라.” 이렇게 법을 받은 뒤 방학 때가 뇌면 논의를 하게 되었는데, 서로 토론한 내용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뒷날 저사는 임금 앞에서 스승과 함께 논의하였는데, 각기 다른 주장을 세우며 다시 싸우게 되었다. 이때 마타라의 나이가 많으므로 먼저 말하게 되었는데, 마타라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바라문의 동자인 저사는 새로운 논리를 배워 익혔으니 그와의 토론에서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꼭 그의 틀린 곳을 잡아내리라.’ 생각을 마친 마타라는 먼저 긴 5백 송을 암송했고, 저사는 곧 뒤이어 잘못된 곳을 지적했다. “이는 실로 말이 맞지 않으며 유사하지도 않고 옳지 못한 설입니다.” 마타라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논란함에 있어 상대방만 못하여 대답이 없으면 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임금이 대신들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누가 승리한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저사 바라문이 승리하였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승리한 자에게는 그가 사는 촌읍을 하사하겠노라.” 모든 대신들은 임금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만일 이곳에 와 토론하여 승리하는 사람마다 촌락을 하사한다면 마갈타국은 머지않아 전부 없어질 것이오니 마타라촌을 빼앗아 저사에게 주어 수용케 함이 옳겠습니다.” 임금은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마타라촌을 빼앗아 저사가 수용할 것을 봉하고 그에게 하사하였다.
마타라는 곧 아내에게로 와서 분부의 말을 하였다. “어진 아내여, 속히 짐을 꾸려 다른 지방으로 가야 하오.” 아내가 물었다. “무슨 까닭입니까?” 남편이 대답했다. “나는 오랫동안 국왕을 섬겨왔는데 오늘 논의에서 지게 되었고 따라서 나의 촌읍도 빼앗겼소.” 아내는 짐을 꾸려 떠날 준비를 하였다.
037_0898_c_01L그러자 여러 친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물었다. “오파타야여, 왜 짐을 꾸리는 것입니까?” 마타라가 대답했다. “나는 오랫동안 임금을 섬겨왔는데 오늘의 논의에서 지게 되었고 따라서 다른 지방으로 떠나야 하는 것이오.” 친족들이 말했다. “여기가 가장 좋은 곳이니 여기에 사십시오. 우리는 서로 친족 사이이니, 여기에 머무르시오.” 친족들은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본국에서 업신여김을 당하고 외국에서 나가 사는 것이 가장 좋긴 하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곳도 있으니 오직 본국의 친족이라오.
037_0898_c_03L本國被人欺, 外國住最勝, 不被欺之處,
是本國親族。
그때 저사 바라문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말하였다. “오파타야여, 나는 손님으로서 잠시 머물다가 곧 떠날 것이니 이 고을의 수용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마타라는 비록 저사의 은혜가 고맙기는 하지만 머물고자 하지 않았다. 저사가 다시 말하였다. “우선 오파타야께서 여기에 사시면서 고을의 반을 가지십시오. 저 또한 반을 가지겠습니다.” 마타라는 “좋다”고 대답하고, 곧 아내에게 분부의 말을 하였다. “어진 아내여, 나는 오랫동안 국왕을 섬겼으나 논의에서 졌다고 해서 보호해 주지 않았는데 저사는 지금 큰 은혜로 나에게 고을의 반을 주었으니 우리 딸을 그의 아내가 되게 해야겠소.”
아내가 대답했다. “맏이인 아들 구슬치라(俱瑟恥羅)의 반대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국왕을 섬겨왔지만 논의에서 졌다 하여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는데 저사 바라문이 큰 은혜를 베풀어 고을의 반을 나에게 주었다. 그러니 사리(舍利:딸 구욕을 지칭함)를 저사에게 시집보내 아내로 맞이하게 하리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저사는 아버지의 원수입니다. 고을을 빼앗아 갔건만 어찌 친척으로 합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말하였다. “너는 어리석어 알지 못하는구나. 부모의 바른 뜻을 자식이 어기면 안 되는 것이니라.” 그리고는 예법에 따라 딸을 저사에게 시집보냈다.
037_0899_a_01L구슬치라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지금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배운 것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사 바라문은 무후세론을 해득함으로써 논의에서 승리한 것이다. 나도 꼭 배워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구슬치라는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느 곳의 누가 무후세론을 가장 잘 알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남쪽 나라가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는 곧 점점 길을 떠나 남천축에 이르러 국내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누가 무후세론에 가장 밝은가?” 하고 물으니,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그 사람은 범지(梵志)입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곧 범지에게로 가서 아뢰었다. “존자여, 저는 존자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하오니 받아주소서.” 스승이 물었다. “무엇을 구하는가?” 구슬치라가 대답했다. “무후세론을 배우고자 합니다.” 범지인 스승이 말하였다. “나는 속인 거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구슬치라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출가하겠습니다.”
범지가 출가를 허락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내가 만일 이 이론을 해득하지 못하면 끝내 손톱을 깍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손톱이 점점 자라나자 사람들은 그를 장조범지(長爪梵志)라고 불렀다. 이때 사리와 저사 바라문은 환락을 누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어느 정거천(淨居天) 사람이 오랫동안 선근을 심어 마지막 몸을 받았다. 생사를 싫어하고 오로지 열반을 구하며 다음 생에 몸 받기를 구하지 않던 그는 오로지 최후신으로서 정거천에서 명이 다하자 곧 사리의 뱃속에 수태되었다. 수태되던 날 그 어머니의 꿈에 어떤 사람이 횃불을 들고 뱃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늘로 날아갔으며, 또 여러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았다.
037_0899_b_01L꿈을 깬 사리는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저사 바라문은 몽서(夢書)를 좀 터득하기는 했으나 이 일은 감당할 수 없어 몽서에 밝은 바라문을 찾아가 물었다. “저의 아내가 어젯밤에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바라문은 “매우 좋은 꿈이오” 하면서 예언하였다. “마땅히 착한 아들을 낳을 것이니 나이 열네 살이 되면 천제론(天帝論) 등을 능히 잘 외울 것이며, 또 모든 논의와 문답에서 가장 뛰어날 것입니다. 이른바 큰 산에 올라 하늘을 날고 모든 사람이 절했다는 것은 출가하여 크나큰 위덕을 갖추고 대계를 성취하여 천인(天人)의 공경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예언을 받은 뒤 어느 날 저사 바라문은 아내인 사리와 토론하였는데 사리가 이기자 저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난 날 토론할 때는 내가 승리하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무슨 까닭일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히 수태에 기인한 것이니, 아기의 위덕일 것이다.’ 그 뒤 열 달이 차서 한 사내아이를 낳으니 그 모습이 단엄하고 상호를 구족하여 몸은 자금색이요, 정수리는 둥글어서 일산과 같고 손을 드리우면 무릎을 넘고 이마는 넓고 평정하고 코는 높고 곧으니 그 자세한 기록은 다른 경전에 나오는 것과 같다.
한편 친척들이 모여 이름을 무엇이라 지어야 할까 생각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이 아이는 외조부께 데리고 가서 이름을 짓는 것이 좋겠소.” 그리하여 외조부 앞에 이르러 아뢰었다. “외조부시여, 이 아이를 무어라 이름지어야 좋겠습니까?” 외조부가 말했다. “저사의 아들이니 오파저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아들을 데리고 가 이름을 지어 돌아오자 저사가 물었다. “이름을 무엇이라 하던가?” “오파저사라고 하였습니다.”
저사는 생각하였다. ‘이 이름은 부족을 따라 지은 것이니, 나는 다시 모족을 따라 사리자(舍利子)라고 이름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사리자라고도 하고, 혹은 오파저사라고도 하였다. 이 아이는 곧 여덟 명의 유모에게 맡겨져 유모가 주는 가강 좋은 우유와 제호를 먹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이 마치 연꽃이 물속에서 피어오르는 것과 같았다. 점점 장대하여지자 학업을 닦게 하니 세간의 기예를 다 통달하지 못함이 없고 베다론을 모두 익혀 가슴속에 간직하였다. 나이 열여섯에 이르자 제석성명(帝釋聲明)을 잘 깨우쳐서 상대방의 논설을 능히 굴복시켰다.
037_0899_c_01L그 뒤 어느 날 마침내 아버지 앞에서 베다론을 독송하고는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지금 독송한 것은 무슨 뜻이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아들이 말했다. “이 송은 옛 선인이 지은 찬송인데 그때 사람들이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선인의 이 찬송은 결코 이치가 없는 게 아닙니다.” 사리자의 학문은 이렇듯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전부터 거느리던 5백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모두가 사리자에게 귀의하였다. 사리자는 이 여러 제자들에게 모든 명론(明論)을 두루 다 가르쳤다.
그때 임원(林園)이라는 마을에 이름이 형영(形影)인 한 대신이 있었는데 그는 큰 부자로서 재산도 많고 수용이 풍족하였으나 아내를 맞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자식이 없었다. 아들을 얻고자 항상 가는 곳마다 기도하여 모든 산림과 나무 신에게 빌지 아니한 적이 없었으니,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그리하여 그때 최후의 몸을 받은 사람이 정거천에서 명이 다하여 그곳을 내려와 어머니의 뱃속에 수태하니, 자세한 것은 역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렇게 하여 아들을 낳은 뒤 널리 친족들을 모아 아들의 이름을 지으려 하니 사람들이 말하였다. “하늘이 안고 왔으니 천포(天抱)라 이름하고, 또한 목건련(目乾連)이라 하는 것이 좋겠소.”
그때 장자는 여덟 유모에게 맡겨 양육하였으니 튼튼하게 자라는 것이 마치 물속에 연꽃이 피어오르듯 하였으며,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말한 것과 같고 나아가서 6종법사(種法事)와 4베다론도 두루 통달하였다. 그때 천포는 5백 제자를 가르쳤는데 공부를 마치고 제자들이 송찬을 하면서 성안으로 들어갔고 오파저사의 제자들도 송찬을 하면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저사의 제자가 목련의 제자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왜 논을 잘못 암송하고 있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037_0900_a_01L저사의 제자들이 다시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에게 배웠는가?” 대답하였다. “우리들의 스승은 해와 달처럼 일체지를 원만히 갖추셨다. 임원의 마을에 사는 대신의 아들이시니 이름이 목건련이시다. 우리는 그에게 배웠다.” 오파저사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학문이 더 구족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거리낌 없는 기쁜 마음으로 곧 스승에게로 갔다. 스승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것인가?” 대답하기를 “아무 일 아닙니다”라고 하니, 스승은 곧 게송으로 일러 주었다.
마음속의 정다운 뜻도 헤아려 알 수 있으니 목소리와 표정을 보면 감출 수 없는 마음을 안다네.
037_0900_a_05L所有內情意, 亦應准可知, 以聲色根形,
知隱不可得。
송을 마치고 제자에게 말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제자들이 앞의 사연을 자세히 고하자, 스승은 곧 말하였다. “그들이 암송한 것은 내가 문장을 다듬어 볼 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말없이 침울해졌다. 그때 목건련의 제자들도 스승에게로 가서 침울한 표정을 하니, 스승인 목건련이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즐겁지 않은가?” 대답하기를 “아무 일 없었습니다.”라고 하니, 스승이 말하였다. “반드시 일이 있었을 터인데 왜 말하지 않는 것인가?”
제자들이 그 사연을 상세히 고하자 스승이 말하였다. “그들이 암송한 것은 그들의 스승이 총명한 지혜로 장론(長論)과 단론(短論)의 짧은 글과 긴 글을 잘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두 스승은 서로의 소문을 듣고 만나기를 바랬다. 오파저사가 아버지에게 가서 아뢰었다. “제가 잠시 임원 마을에 가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거기의 형영이라는 대신에게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구리다입니다. 저는 그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말하였다. “그 사람의 지혜가 너보다 뛰어나느냐?” 아들이 대답하였다. “지혜는 뛰어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는 큰 부자로써 재산이 많아 여러 사람들이 좋다고 찬탄합니다.” 오파저사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037_0900_b_01L 연장자를 존중해야 하고 재산이 많은 자도 존중해야 하지만 지혜가 많은 자도 역시
존중히 받들어야 하리라.
037_0900_a_23L年長是爲尊, 多財人亦尊, 若有多聞者,
咸共尊承事。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고서 일렀다. “그 사람이 오거든 가르쳐 주는 것은 좋으나 가지는 말아라.” 이때 구리다도 아버지에게 가서 아뢰었다. “저는 나라타 마을에 가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무슨 까닭이냐?” 하고 물으니, 아들이 대답했다. “그곳에 저사라는 바라문이 있는데, 그의 아들인 오파저사를 만나보고 싶어서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그가 너보다 부자냐?” 아들이 대답했다. “저보다 부자는 아니오나 그는 지혜가 저보다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구리다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연장자를 존중하고 재산이 많은 자도 존중해야 하지만 지혜가 많은 자도 역시 존중히 받들어야 하리라.
037_0900_b_09L年長是爲尊, 多聞人亦尊, 若有多財者,
咸共尊承事。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여기에 오면 재물을 줄지언정 꼭 가지는 말아라.” 그 후 어느 날 왕사성(王舍城)에서 큰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의 왕법에는 모임에 임금이 직접 나가기도 하고, 혹은 태자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그때 임금은 다른 일이 있어 몸소 나가지 못하고 태자인 미생원(未生怨)을 보내 성 밖에 나가 놀다 오게 하였다. 이때 형영은 태자가 놀러 나간다는 말을 듣고 문득 생각하였다. ‘영승왕이 죽고 미생 태자가 왕위를 이어 받으면 내 아들 구리다로 하여금 그를 받들어 섬기는 신하가 되게 하리라.’
037_0900_c_01L이런 생각을 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어서 태자가 놀고 있는 곳으로 가서 네 개의 높은 자리를 마련할지니, 이른바 왕의 자리와 대신의 자리와 음성(音聲)의 자리와 바라문의 자리이니라.”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너는 꼭 대신의 자리에 앉도록 하여라.” 그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그곳에 가서는 꼭 그 자리에 앉았다. 이때 저사 또한 영승왕이 태자를 성 밖으로 내보내 놀게 한다는 말을 듣고 아들에게 말했다. “너도 그곳에 가서 네 개의 높은 자리를 살펴본 뒤에 네가 가지고 가는 병으로 된 발우와 지팡이는 세 번째 자리에 놓고 너는 네 번째의 높은 자리에 앉으라. 해가 뜨고 해가 지기까지의 있는 바 모든 논사들은 너와 대등할 자가 없느니라.”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친 대로 곧 가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여러 음악과 함께 노래 부르며 찬탄하였는데 오파저사는 잠자코 앉아 있었으니, 사람들이 서로 수근거리기를 “저 사람은 반드시 크게 어리석거나 아니면 지혜가 출중하거나 할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모든 음악이 그치자, 구리다가 오파저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음악과 함께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가?” 오파저사가 대답했다. “나는 안으로 관(觀)을 가지런히 하오. 그런 일은 전혀 보지 못하였소.” 구리다가 다시 물었다. “보지 못하였다면 귀로도 듣지 못하였는가?” 그때 오파저사가 게송으로 답하였다.
죽은 자의 가죽과 힘줄로 음악을 지어 뭇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무상(無常)이 빠르기가 바퀴 구르는 것과 같으니 지혜 있는 사람, 기쁨이 아닌 줄 안다네.
037_0900_c_11L死皮筋作樂, 令衆有歡喜, 無常急若輪,
智者知非樂。
그때 이 게송을 들은 구리다와 사람들이 물었다. “그대는 오파저사가 아닌가?” 대답하였다. “대중은 알아야 한다. 내가 오파저사이니라.” 그리고 다시 구리다에게 물었다. “그대는 앞서 음악과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는가?” “보지 못하였소.” 또다시 오파저사가 말했다. “그대는 안으로 관(觀)을 하느라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였구려.” 구리다가 게송으로 답하였다.
모든 영락(瓔珞) 등으로 몸을 귀중히 치장하고 춤을 추며 몸을 흔들어대지만 모두가 허황한 미치광이 짓이요
037_0900_c_19L一切瓔珞等, 莊嚴身受重, 作儛動形軀, 皆是虛誑攝。
노래하며 놀아대는 저들의 소리가 지옥의 부르짖음과 같거니 이것들은 다 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기쁠 리 있으리오.
037_0900_c_20L歌詠作戲者,
譬如號叫聲, 此等皆無常, 思之有何樂。
037_0900_c_01L 오파저사가 말했다. “그대가 바로 구리다가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오파저사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대를 위해 왔소. 나와 함께 출가합시다.” 구리다가 대답했다.
“모든 제사나 또 화신(火神)에게 제사지내는 뜻은 복을 구하기 위한 고행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대신의 종족으로서 그 모든 과보를 손 안에 쥐고 있고, 또 늘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하겠소?” 그러자 오파저사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무가 쓰러지려 할 때 가지와 잎으로는 구제할 수 없듯이 죽을 때도 이와 같아서 수용으로는 능히 구제할 수 없으리.
037_0901_a_05L樹若欲倒時, 枝葉不相濟, 死時亦如是,
受用不能救。
게송을 마친 오파저사는 다시 말했다. “그대여, 함께 출가하세.” “그러면 부모님께 여쭈어 허락하시면 가겠소.” 이렇게 대답한 구리다는 곧 아버지께로 가서 말했다. “아버지, 저를 놓아 주소서. 청정한 믿음으로 출가할 것이며, 대장부를 따라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모든 제사나 또 화신에게 제사하여 고행을 하면서 복을 구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너는 이미 그 과보를 다 얻었고, 또 대신의 아들로서 코끼리를 타는 선비이며 장차 대신이 될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출가하려고 하는가?” 구리다가 아버지께 게송으로 말하였다.
차라리 숲 속에서 나무껍질로 옷을 삼고 짐승과 함께 살면서 과일로 끼니를 이을지언정 나랏일의 복잡함에 매이는 인연을 짓지 않겠으니 지혜 있는 사람은 두려운 일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037_0901_a_15L寧於林內樹皮衣, 共獸同居食諸果,
不緣國事禁閉縛, 智者不爲恐懼事。
게송을 듣고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나의 하나뿐인 자식이어서 초생달처럼 사랑하였다.” 이와 같이 전부터의 일을 말해 주었으나, 무릇 부모는 자식을 믿고 의지하려 하건만 아들의 의지와 소원이 도저히 바뀌지 않으므로 “너의 출가를 허락하노라”라고 하였다. 허락을 받은 뒤 벗들이 달려오니, 구리다는 거룩한 마음으로 몸과 뜻을 바르게 하고서 나라타 마을을 향해 떠났다.
037_0901_b_01L그때 오파저사는 항상 고요함을 즐기면서 아란야처(阿蘭若處)에서 5백 제자를 거느리고 범정신주(梵靜神呪)를 독송하고 있었다. 이때 구리다는 점점 걷고 걸어서 나라타 마을에 이르러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오파저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마을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지금 아란야처에서 5백 대중을 거느리고 범정신주를 독송하고 있습니다.”
구리다는 곧 아란야처로 가서 서로 만나 본 뒤, 오파저사에게 말했다. “출가하기가 지금이 적당한 때입니다.” 오파저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아버지께 출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소?” “받았소.” 오파저사가 다시 말했다. “그럼 그대는 잠시 기다려 주시오. 내 또한 아버지께 출가해도 좋은가를 묻고 오겠소.” 구리다가 물었다. “지금 물으러 가면 그대는 언제 돌아올 수 있겠소?” “잠시 갔다가 곧 돌아오겠소.”
오파저사는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지금 제게 청이 있사오니 들어주소서. 저는 청정한 출가를 원합니다.” 부모가 말했다. “매우 좋은 일이다. 너의 소원대로 출가를 허락하노라.” 허락을 받은 오파저사는 구리다에게로 돌아와 말하였다. “구리다여,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셨으니 함께 출가하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다시 여러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도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던가?” 제자들이 대답했다. “이미 허락하였습니다.”
구리다가 물었다. “나는 부모에게 허락 받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그대들은 어떤 계책을 썼기에 갔다가 그토록 빨리 허락을 받아 돌아오는가?” 오파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집안의 인연이 두텁고 세었으므로 늦었고, 나는 집안의 인연이 가벼웠기 때문에 빠른 것이니, 오늘 뿐만 아니라 지난 5백 생 동안 출가하기를 발원하였는데 그때마다 나는 ‘원컨대 태어날 적마다 귀하지도 않고 천하지도 않는 집에 태어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으니, 이 인연으로 얽매임이 가벼워서 빨리 허락을 받고 돌아온 것이오.” 구리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가문은 고귀한데 어찌 함부로 출가하겠는가. 다 함께 왕성으로 가서 청정한 수행자들에게 물어봅시다.”
037_0901_c_01L그때 성안에는 자칭, 신통이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는 육사외도들이 있었는데, 오파저사와 구리다는 그 여섯 외도 중의 하나인 포라나에게 물었다. “어떤 법안(法眼)을 행하며, 어떤 교법(敎法)을 익히며, 또 어떤 과위를 얻었는가? 만일 범행을 가지면 어떤 훌륭함을 얻는가?”
그 스승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보며 이렇게 말한다. 주는 것도 없고, 사랑도 없고, 보는 것도 없고, 제사도 없으며, 선한 일도 없고, 악한 일도 없다. 선악의 업보와 이숙과(異熟果)도 없으며, 금생도 없고 내생도 없으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 화생(化生)도, 유정(有情)도, 세간도 없으며, 아라한도 없어야 바른 행이며 바른 성취이다. 혹 금생과 후세를 본 사람이 나의 이 법에서 신통을 증명하고 원만히 말하기를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도 이미 이루어지고 해야 할 일도 이미 끝냈다’고 한다. 뒤에 몸을 받지 않고 오직 이 생의 몸만 받아 내생의 존재를 끊되, 목숨이 끝나면 곧 무너진다.
4대(大)가 함께 모여 잠시 사람의 몸이 되었으나 이 목숨이 끊어질 때 사대는 제각기 본 자리인 제5 공계(空界)로 돌아간다. 몸이 바뀌면 이 시체는 숲 속에서 태워 재가 되어버리고 그 해골은 비둘기 빛이 되는 것이니, 사람은 곧 없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 나면 지혜로운 사람이며, 보시를 행하고 보시를 받는 자이다.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두가 공허하고 허망한 말이며 헛되게 부르짖는 말이어서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이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생의 몸이 조각조각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고 내생의 존재도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구리다와 오파저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스승은 그릇된 도에 머물러 잘못된 지혜를 행하고 있으니, 어진 자라면 당연히 저 험준한 도를 배워 닦지 않아야 하리라.’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삿된 견해는 옳은 말이 아니며 뜻으로만 즐거워함은 낮은 법이다. 좋은 가르침이라고 여태껏 말한 것이 그릇된 법인데야 어찌하리오.
037_0901_c_22L邪解非善說, 情樂下劣法, 善教若如是,
非法當云何。
037_0902_a_01L
이 말을 마치자, 그는 빈 그릇만 두드릴 뿐이라는 것을 알고 떠나버렸다. 다음은 말갈리구사리자에게로 가서 아뢰었다. “그대는 어떤 법안을 행하며, 어떤 교법을 익히며, 또 어떤 과위를 얻는가. 만일 범행을 닦으면 어떤 뛰어난 경지를 얻는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는 것인데 중생들은 고통을 받는다. 인도 없고 연도 없으므로 깨끗함[淨]을 얻는 것이니, 인연에 의하지 않고 자연히 깨끗함을 얻는다. 인도 없고 연도 없으므로 중생은 지혜가 없고 소견도 없으며, 인도 없고 연도 없으므로 중생은 지혜가 있기도 한다.
힘도 없고 정진도 없고 장부도 없고 세간의 힘도 없으며 나의 형상도 없고 타인의 형상도 없고 내가 하는 것도 없고 타인이 하는 것도 없다. 모든 중생과 모든 목숨이 있는 것과 모든 중생류가 장소도 없고 거처도 없고 관찰하는 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결정코 바른 도이다. 이에 귀의하는 중생은 고통과 즐거움을 깨닫게 되리니, 이른바 6도중생이 다 해당된다.” 이 말을 들은 구리다와 오파저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스승도 삿된 도에 머물러 있고 삿된 도를 의지하고 있으니,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멀리 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 험준한 길이다.’ 이렇게 알고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삿된 견해는 옳은 말이 아니며 뜻으로만 즐거워함은 낮은 법이다. 바른 법이라고 지금껏 말했으나 그릇된 법인데야 어찌하리오.
037_0902_a_16L邪解非善說, 情樂下劣法, 正法若如此,
非法當云何。
037_0902_b_01L 이렇게 말하고, 빈 그릇을 두드리는 것처럼 잘못되었음을 알고는 그곳을 떠났다. 다음은 산서이비라지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그대는 어떤 법안(法眼)을 행하며, 어떤 교법을 익히며, 또 어떤 과위를 얻으며, 어떤 수승함이 있으며, 어떤 범행을 닦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마납파(摩衲婆)여,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노니, 그대들도 꼭 이와 같이 하도록 하여라. 마땅히 생명을 죽이고 남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또 몸소 생명을 태우거나 남을 시켜 태우게 하라. 나아가 쪼개고 끊고 생명을 해치는 일도 이와 같이 하라. 주지 않는 물건을 취할 것이며, 음욕의 경계가 오면 행할 것이며, 허망한 말을 할 것이며, 술도 마땅히 마시라.
사람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예리한 칼로 죽이거나 짓이겨서 무더기를 만들라. 이와 같이 갖가지로 살해하여도 죄업은 없는 것이며, 또한 과보도 없다. 항하(恒河)의 남쪽 언덕에서 갖가지 살생을 하고 북쪽 언덕에서는 여러 가지 제사를 베풀더라도 아무런 죄나 복이 없다. 만일 보시와 지계와 정진 등의 법과 4섭법(攝法)을 행한다 하여도 실천하지 않는 자가 도리어 큰 과위를 얻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구리다와 오파저사는 서로 말하였다. “이 말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아울러 삿된 가르침이니,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멀리 여의어야 한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삿된 견해는 옳은 말이 아니며 뜻으로만 즐거워함은 낮은 법이다. 바른 법이라고 지금껏 말한 것이 그릇된 법인데야 어찌하리오.
037_0902_b_11L邪解非善說, 情樂下劣法, 正法旣如是,
非法當云何。
게송을 마치고, 역시 빈 그릇을 두들기는 것이나 같다고 하면서 떠나버렸다. 다음은 아시다계사감발라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뢰었다. “그대는 어떤 법안을 행하며, 어떤 가르침을 보이며, 어떤 수승함이 있으며, 어떤 범행을 닦으며, 또 어떤 과위를 얻는가?” 그는 곧 대답하였다. “마납파여, 나는 이렇게 보며 이렇게 말하노라. 7신(身)이 있으니 무엇이 일곱인가 하면 이른바 지ㆍ수ㆍ화ㆍ풍과 고(苦)와 낙(樂)과 명(命)이니, 그것은 다 짓는 이도 없고 지을 것도 없으며, 변화하는 것도 없고 변화를 받는 것도 없으며 손상하는 이도 없다. 그것들은 제자리에 모여 있으니, 마치 나뭇가지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다 나는 것도 아니고 바뀌어 변화하는 것도 아닌 까닭에 서로 해치지 않게까지 되는 것이다.
037_0902_c_01L혹은 복, 혹은 죄, 혹은 죄와 복, 혹은 고, 혹은 낙, 혹은 고와 낙으로써 말하건대, 그 일곱 가운데 어느 것이 주체[丈夫]이기에 서로 살해한단 말인가. 죽이는 이나 죽임을 당하는 쪽 모두 주재자가 없어서 이 세간은 결국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명(命)이란 육신의 구멍에 머물면서 육신의 주인이 되어 주나 끝내 손해됨이 없다. 이 가운데에서 서로 해치는 것도 없고 투쟁하는 이도 없으며 깨닫는 것도 없고 깨침을 일으키는 자도 없으며, 또한 생각하고 기억하는 이도 없고 성찰하는 이도 없다. 또한 나타내는 이도 없고 드러내 보이는 이도 없어서 1만 4천6백 가지의 법도에 나아가는 법문을 최고로 삼고 있다.
또한 다섯 가지 업이 있으니, 세 가지는 스스로 짓는 것이고 두 가지는 지을 상대이다. 또한 온전한 업과 반 업(半業)이 있으며, 6만 4천 친속이 있고 60중겁(中劫)이 있고 130나라가(那剌迦:죄를 받는 사람)의 여러 근기가 있다. 또 136병(病)의 경계가 있고 4만 9천의 용의 권속과 4만 9천 묘시조(妙翅鳥: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새)와 4만 9천의 니건자(尼犍子)의 권속과 4만 9천의 외도권속과 7유명겁(有名劫)과 7무량겁과 7아수라세계와 7비사차세계(毘舍遮世界)와 7천거(天居)와 7인간과 7대지(大池)와 7소지(小池)와 7대몽(大夢)과 7백 소몽(小夢)과 7대전항(大巓坑)과 7백 소전항(小巓坑)과 7대오(大悟)와 7백 소오(小悟)와 6단엄생(端嚴生)과 10증장(增長)의 대장부가 있으니, 이것이 곧 8만 4천 대겁(大劫)이다.
이 동안에는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가 모두 생사에 유전하여야 괴로움이 다하여 비로소 해탈을 얻는다. 비유하자면 밧줄 끝에 무거운 물건을 매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던지면 마침내 밧줄이 다 풀려 내려가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도 이와 같아서 8만 4천 겁을 지나도록 생사에 유전하여 겁이 다하여야 해탈을 얻는다.
037_0903_a_01L이 중에 어떤 바라문이나 사문이 말하기를 ‘내가 이 금계(禁戒)로써 고행해 가면서 범행을 닦으면 성숙치 못한 것을 성숙케 하여 그 성숙한 사람은 고통이 다하여 과위를 얻으리라’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옳지 못하다. 당연히 고와 낙은 항상 머무르는 것이어서 더함도 모자람도 없으며 알 수도 없다. 나는 말하노니 생사는 진실로 헛되지 않음을 분명히 아노라.” 이 말을 마치자 구리다와 오파저사가 함께 생각하였다. ‘이 스승도 그릇된 도에 머물러 있으니, 험준한 길에 비유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그를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을 한다. 모든 중생들이 받는 과보는 다 숙세의 업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과거의 나쁜 업은 금생의 범행을 닦음으로 해서 그 고통이 다하는 것이고 금생에 닦는 착한 업이 인연이 되어 과위를 얻은 다음 다시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면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다한 뒤엔 고통의 업이 다하고 고통의 결과가 다하면 마침내 그 끝에 이르게 된다.” 이 말을 들은 구리다와 오파저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스승의 말도 역시 그릇된 도에 머물고 있다. 험준한 길과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반드시 멀리 여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