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7_1059_a_01L
석마하연론 제8권
037_1059_a_01L釋摩訶衍論 卷第八


용수 지음
벌제마다 한역
이인혜 번역
037_1059_a_02L龍樹菩薩造 姚秦三藏筏提摩多奉 詔譯


【論】 이제까시 해석분(解釋分)을 설해 마쳤다. 다음으로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을 설하겠다.
【釋】 이 수행신심분은 일곱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교화의 방법과 교화의 대상을 짝 지워 보는 문[能治所治契當門], 둘째는 신심의 종류를 구분하는 문[信心品類分剖門], 셋째는 수행의 선교방편을 제시하는 문[修行方便善巧門], 넷째는 마의 양상을 자세히 해석하고 퇴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문[廣釋魔事對治門], 다섯째는 삼매의 공덕을 찬탄하는 문[讚歎三昧功德門], 여섯째는 양쪽 수레바퀴 같은 두 가지 수행을 동시에 갖추느냐 빼먹느냐에 따른 이익과 손길을 밝히는 문[兩輪具闕益損門], 일곱째는 열등한 무리들에게 수승한 곳으로 향상하여 물러남이 없기를 권하는 문[勸劣向勝不退門]이다. 이상이 수행신실분의 일곱 가지 문이다. 능치소치계당문은 어떤 내용을 갖는가?
037_1059_a_03L已說解釋分次說修行信心分就此分中卽有七門云何爲七一者能治所治契當門者信心品類分剖門三者修行方便善巧門四者廣釋魔事對治門五者讚歎三昧功德六者兩輪具闕益損門七者勸劣向勝不退門是名爲七能治所治契當門者其相云
【論】 여기서는 정정취(正定聚)에 들지 못한 중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행신심분을 설한다.
【釋】 ‘여기서는 정정취에 들지 못한 중생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 구절은 교회의 대상[所治]에 해당한다. 이른바 교화될 바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행신심분을 설한다’고 한 구절은 교화의 방법[能治]에 해당한다. 교화의 수단이 되는 교법을 뜻하기 때문이다. 교화될 바의 경계에는 어느 만큼이 해당하는가? 두 가지 취에 속하는 중생을 다 거두어들여 교화함을 말한다. 무엇이 두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사정취중생(邪定聚衆生)이고 둘째는 부정취중생(不定聚衆生)이다. 이것이 교화될 바 경계가 되는 두 가지 취의 중생이다. 어째서 그런가? 이 두 가지 중생은 다 아직 정정취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화의 방법과 교화의 대상을 짝지어 본다[契當]고 한 것은 어떤 내용인가? 두 가지 중생에게는 각기 맞는 교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떤 중생에게 어떤 법문이 맞는다는 말인가? 사정취중생을 위해서는 신심문(信心門)을 설하고, 부정취중생을 위해서는 수행문(修行門)을 설한다. 어째서 그런가? 정진해 들어가는 순서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즉, 신심을 성취하지 못한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심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며, 이미 신위에 들어간 자는 바로 수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두 가지 중생에게 공통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능치소치계당문을 설하였다. 다음으로 신심품류분부문을 설하겠다.
037_1059_a_10L本曰是中依未入正定聚衆生故說修行信心分論曰言是中依未入正定聚衆生者卽是所治所謂所化之境界故故說修行信心分者卽是能治所謂能化之教法故所化境界其量云何謂攝二聚之衆生故何爲二一者邪定聚二者不定聚是名爲二所以者何此二衆生皆悉未入正定聚故契當者其相云何謂二衆生中各契教說故契相云何謂欲邪定聚衆生故說信心門彼不定聚衆生故說修行門所以者何進入次第其法爾故謂未信人先起信故其已信人直修行故復次通利益故已說能治所治契當門次說信心品類分剖門
037_1059_b_01L【論】 어떤 것이 신심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신심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을 즐겨 사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부처님에게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가까이 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므로 선근을 일으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고자 발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다. 세 번째는 법에는 커다란 이익이 있다는 점을 믿는 것으로서, 갖가지 바라밀을 수행할 것을 항상 염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스님은 바르게 수행해서 자리와 이타를 행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니, 모든 보살의 무리를 가까이 하기를 항상 즐겨하여 여실행 공부하기를 구하기 때문이다.
【釋】 위 본론은 세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신심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묻는 문[直問信心品類門]이고, 둘째는 수행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묻는 문[直問修行品類門]이고, 셋째는 간략히 답함으로써 신신을 밝히는 문[略答顯示信心門]이다. 이것이 세 가지다. 직문신심품류문은 신심의 양에 대해 전체적으로 묻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어떤 것이 신실이며’라고 하였다. 직문수행품류문은 수행의 양에 대해 전체적으로 묻는다다는 뜻에서 시설한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세 번째 문은 다시 세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전체적으로 답을 내리는 문[總答門]이고, 둘째는 전체적인 내용을 묻는 문[總問門]이고, 셋째는 자세히 답하는 문[廣答門]이다.
037_1059_a_22L本曰何等信心云何修行略說信心有四種云何爲四一者信根本所謂樂念眞如法故二者信佛有無量功德常念親近供養恭敬發起善根願求一切智故三者信法有大利益常念修行諸波羅蜜故四者信僧能正修行自利利常樂親近諸菩薩衆求學如實行故論曰就此文中卽有三門云何爲三一者直問信心品類門二者直問修行品類門三者略荅顯示信心門是名爲三言直問信心品類門者所謂摠問信心量故如本何等信心言直問修行品類門者所謂摠問修行量如本云何修行故就第三門中卽有三門云何爲三一者摠荅門二者摠問門三者廣荅門
037_1059_c_01L총답문이란 설한 내용을 전체적으로 답한다는 뜻에서 시설된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신심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고 하였다. 총문문은 설하는 내용 전체를 묻는다는 뜻에서 시설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무엇이 네 가지인가?’라고 하였다. 세 번째 문은 다시 네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근관을 믿어 마음을 평등하게 하는 문[信本令心平等門]이고, 둘째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에게 있는 공덕을 기꺼워하는 문[信佛欣有功德門], 셋째는 법을 믿어 정진하고 수행해 나가는 문[信法精進修行門]이고, 넷째는 스님을 믿어 마음에 다툼이 없게 하는 문[信僧令心無諍門]이다. 이상 네 가지다. 신본령심평등문은 자신의 근본이 되는 진여의 이법(理法)을 즐겨 믿음으로써 무명의 힘에 의해 갖가지로 차별된 모든 마음들을 하나로 모아 평등하게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첫 번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을 즐겨 사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신불흔유공덕문은 무상의 대각이신 여래세존을 즐겨 믿어서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기꺼이 구하고자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두 번째는 부처님께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가까이 하여 공양하고 공경함으로써 선근을 일으켜 일체지를 구하고자 발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신법 정진수행문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자신의 은혜로운 아비가 되고 자신의 은혜로운 어머니가 되고 자신의 은혜로운 스승이 된다는 사실을 즐겨 믿으며, 그것은 바꾸거나 무너뜨릴 수 없고 생하거나 멸하게 할 수도 없으며, 허공이나 금강처럼 움직이지 않는 법칙이라서 불가사의한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하고 수승한 이익이 된다는 점을 즐겨 믿음으로써 어느 곳이나 어느 때나 항상 전전(轉轉)하는 가운데 도를 얻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행[助道品]을 닦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037_1059_b_13L言摠荅門者所謂摠荅其所說故如本略說信心有四種故言摠問門者所謂摠問其所說故如本云何爲四故就第三門中故有四種門云何爲四一者信本令心平等門二者信佛欣有功德門三者信法精進修行四者信僧令心無諍門是名爲四言信本令心平等門者所謂樂信爲自根本眞如理由無明力種種差別一切諸心皆悉會一令平等故如本一者信根本所謂樂念眞如法故故言信佛欣有功德門者所謂樂信無上大覺如來世尊欣求所有無量無邊一切功德故如本二者信佛有無量功德常念親近供養恭敬發起善根願求一切智故故信法精進修行門者所謂樂信三世諸佛自恩父爲自恩母爲自恩師不能改壞不能生滅虛空金剛不動軌則有不可思議中不可思議殊勝利益常恒轉轉於一切時於一切處修行一切助道品故
이를 본론에서는 ‘세 번째는 법에는 커다란 이익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갖가지 바라밀을 수행할 것을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신승렬심무쟁문은 셀 수 없이 많은 모든 스님들과 보살들이 두 가지 뛰어난 행을 사신의 내면적인 덕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즐겨 믿음으로써 멀거나 가깝거나를 막론하고 듣는 대로 보는 대로 사유한 대로 스님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서 갖가지 깊은 법과 갖가지 깊은 경과 갖가지 깊은 논과 갖가지 깊은 이치와 갖가지 묘한 일을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그런 일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네 번째는 스님은 바르게 수행해서 자리와 이타를 행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니, 모든 보살의 무리를 가까이 하기를 항상 즐겨하여 여실행 공부하기를 구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신심품류분부문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세 번째) 수행방편선교문을 설하겠다.1)
037_1059_c_06L如本三者信法有大利益常念修行諸波羅蜜故故言信僧令心無諍門者所謂樂信一切無量菩薩僧衆以兩勝行爲自內德若遠若近隨自聞時隨自見時隨自思時往詣僧所至心聽受種種深法種種深經種種深論種種深理種妙事不斷絕故如本四者信僧能正修行自利利他常樂親近諸菩薩衆求學如實行故已說信心品類分剖門次說修行方便善巧
【論】 수행에는 다섯 가지 문이 있으니 이 문을 닦아야 신심을 성취할 수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베푸는 것[施門], 둘째는 계를 지키는 것[戒門], 셋째는 참는 것[忍門], 넷째는 정진하는 것[進門], 다섯째는 지와 관을 닦는 것[止觀門]이다.
시문(施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와서 구하거나 찾는 중생을 보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힘닿는 대로 내줌으로써 자신의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을 기쁘게 하며, 횡액이나 곤란에 빠져 두려움과 위급함을 느끼는 중생을 보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대로 두려움을 없애 준다. 와서 법을 구하는 중생이 있으면 자신이 능력껏 이해한 대로 방편을 써서 그를 위해 설명을 하되, 명리나 남의 공경을 탐해서는 안 되고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할 것 만을 생각하여 이 공덕을 깨달음으로 회향해야 한다.
037_1059_c_15L本曰修行有五門能成此信云何爲五者施門二者戒門三者忍門四者進門五者止觀門云何修行施門若見一切來求索者所有財物隨力施與以自捨慳貪令彼歡喜若見厄難恐怖危逼隨己堪任施與無畏有衆生來求法者隨己能解方便爲說不應貪求名利恭敬唯念自利利他迴向菩提故
037_1060_a_01L계문(戒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살생[煞]과 도둑질[盜]과 간음[婬]을 하지 않고 이간질[兩舌]이 나 욕설[惡口]이나 헛된 말[妄言]이나 꾸미는 말[綺語]을 하지 않음으로써 탐욕[貪]ㆍ질투[嫉]ㆍ속임수[欺]ㆍ거짓말[詐]ㆍ아첨 [諂]ㆍ왜곡[曲]ㆍ성냄[瞋恚]ㆍ그릇된 견해[邪見]를 멀리 떠난다. 게다가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조복받기 위해 마땅히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항상 고요한 곳에 거처하면서 적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두타행(頭陁行) 등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나아가 조그마한 죄에도 두려운 마음을 내어 부끄러움을 알고 개선하도록 뉘우치며, 여래께서 하지 말라고 정해 주신 금기법[禁戒]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그 암기법을 비방타거나 꺼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함부로 허물이나 쇠를 짓지 않도록 한다.
037_1059_c_21L云何修行戒門所謂不殺不盜不婬不兩舌不惡口不妄言不綺語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邪見若出家者爲折伏煩惱故亦應遠離憒鬧常處寂靜修習少欲知足頭陁等行乃至小罪心生怖畏慚愧改悔不得輕於如來所制禁戒當護譏嫌不令衆生妄起過罪
인문(忍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남에게 시달림을 당해도 참고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 이익[利]이나 손실[衰]ㆍ훼손[毁]과 명예[譽]ㆍ칭찬[稱]이나 조롱[譏]ㆍ괴로움[苦]이나 즐거움[樂] 등의 법에 대해 참을성을 갖는 것이다.
037_1060_a_04L云何修行忍門所謂應忍他人之惱心不懷報亦當忍於利衰毀譽稱譏苦樂等法故
진문(進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모든 선한 일에 대하여 나태하거나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굳세게 뜻을 세워 겁을 먹거나 나약한 마음을 멀리 떠난다. 그리고는 과거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몸과 마음에 헛되이 큰 고통을 받아 온 일이 아무 쓸모없음을 염하기 때문에 모든 공덕을 닦을 것을 권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남을 이롭게 하여 갖가지 고통에서 속히 떠난다. 진문을 닦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신심을 수행하더라도 숙세로부터 내려오면서 중지와 악업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삿된 마귀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세간의 일에 갖가지로 얽매이기도 하고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는 등 이렇게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일이 필요하다. 밤낮으로 여섯 차례 여러 부처님께 예배하고 성심껏 참회하여 법을 권청하고 따라 기뻐하며 깨달음[菩提]으로 회향하는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일 없이 항상한다면 갖가지 장애에서 면제되어 선근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037_1060_a_05L云何修行進門所謂於諸善事心不懈退志堅强遠離怯弱當念過去久遠已來虛受一切身心大苦無有利益是故應勤修諸功自利利他遠離衆苦復次若人雖修行信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爲魔邪諸鬼之所惱亂或爲世閒事務種種牽纏爲病苦所惱有如是等衆多障㝵是故應當勇猛精進晝夜六時禮拜諸佛誠心懺悔勸請隨喜迴向菩提常不休廢得免諸障善根增長故
지관문(止觀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지(止)란 경계로 나타난 모든 상을 쉬어서 사마타(奢摩他)에 수순(隨順)하는 관을 뜻한다. 관(觀)이란 생멸하는 인연의 상을 분별하여 비발사나(毘鉢舍那)에 수순하는 관을 뜻한다. 어떻게 수순한다는 말인가? 이 두 가지 뜻을 점차로 수습(修習)하여 분리되지 않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현전한다. 지(止)를 수행하는 자는 조용한 곳에 머물러 반듯이 앉아서 마음을 바로 하되 기식(氣息)에 의존하지도 않고 형색(形色)에 의존하지도 않으며 공(空)에 의존하지도 않고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견문각지(見聞覺知)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모든 생각[想]이 염하는 대로 다 없어지며, 없앤다는 생각까지도 떨어버린다. 일체법은 본래가 상(相)이 없는 것이라서 염념에 생하지 않고 염념에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따라 바깥으로 경계를 염하다가 뒤에 가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제거해서도 안 되니, 마음이 만일 바깥을 망해 치닫거든 즉시 거두어들여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한다.
037_1060_a_15L云何修行止觀門所言止者謂止一切境界相隨順奢摩他觀義故所言觀者分別因緣生滅相隨順毘跋舍那觀義故何隨順以此二義漸漸修習不相捨離雙現前故若修止者住於靜處端坐正意不依氣不依形色不依於空不依地水火風乃至不依見聞覺知一切諸想隨念皆除亦遣除以一切法本來無相念念不生念念不滅亦不得隨心外念境界後以心除心心若馳卽當攝來住於正念
037_1060_b_01L이 정념이란 무엇인가? 오직 마음일 뿐[唯心]이라서 바깥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니, 이 마음이란 것 역시 자제의 상이 없어서 염념에 얻을 수 없다.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하고 가고 머무는 사이에 무엇인가 하게 되면 언제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고 수순하여 관찰해야 한다. 오래도록 익혀서 순수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된다.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됨으로써 점점 날카롭고 강성해져서 진여삼매(眞如三昧)에 수순(隨順)하여 깨달아 들어갈 수 있으며, 번뇌를 깊이 조복 받고 신심이 더욱 늘어나 속히 물러남이 없는 경지를 성취한다. 그러나 의혹을 갖는 사람, 믿지 못하는 사람, 법을 비방하는 사람, 중죄를 지어 업장이 두터운 사람, 아만심이 있는 사람, 나태한 사람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이 삼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법계가 한 모습임을 안다. 즉,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중생신과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서, 이를 두고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진여가 바로 이 삼매의 근본이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수행하면 점점 무량한 삼매를 낼 수 있다.
037_1060_a_24L是正念者當知唯心無外境界卽復此心亦無自相念念不可得若從坐起去來進止所作於一切時常念方便隨順觀察久習淳熟其心得住以心住故漸漸猛利隨順得入眞如三昧深伏煩惱心增長速成不退唯除疑惑不信誹謗重罪業障我慢懈怠如是等人所不能入復次依是三昧故則知法界一相謂一切諸佛法身與衆生身平等無二卽名一行三昧當知眞如是三昧根本若人修行漸漸能生無量三
【釋】 위 본론은 다섯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수행의 종류를 전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앞서 던졌던 물음에 답하는 문[摠標答前所問門]이고, 둘째는 전체적으로 물은 내용을 통괄하는 문[通達摠問所說門]이며, 셋째는 간략한 답을 제시하면서 수행의 가지 수를 건립하는 문[略答建立門數門]이고, 넷째는 간략한 질문에 자세히 답하면서 이런 저런 각도에서 설명하는 문[略問廣答散說門]이며, 다섯째는 삼매의 수승한 점을 찬탄하는 문[讚歎三昧殊勝門]이다.
총표답전소문문은 저 앞에서 한 질문에 대해 전체적으로 답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본론에서는 이를, ‘수행에는 다섯 가지 문이 있으니 이 문을 닦아야 신심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통달총문소설문은 설하는 내용을 통괄적으로 물었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본론에서는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라고 하였다.
약답건립문수문은 대료적인 수행의 수를 들어 건립했기 때문에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첫째는 베푸는 것[施門], 둘째는 계를 지키는 것[戒門], 셋째는 참는 것[忍門], 넷째는 정진하는 것[進門], 다섯째는 지와 관을 닦는 것[止觀門]이다’라고 하였다. 무슨 이유로 이러한 차례로 시설하는가? 여섯 가지 바라밀을 수행하는 차례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약문광답산설문에는 본디 다섯 가지 문이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로 나누니, 잘 관찰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문은 각각 두 가지 문을 구비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간략히 묻는 것[略問門]이고, 둘째는 자세히 답하는 것[廣問門]이다. 이것이 두 가지다. 순서에 맞추어 그 수량이 섞이는 일이 없으니, 자세히 사유해서 가려 보아야 한다.
037_1060_b_10L論曰就此文中卽有五門云何爲五者摠標荅前所問門二者通達摠問所說門三者略荅建立門數門四者略問廣荅散說五者讚歎三昧殊勝門是名爲五言摠標荅前所問門者所謂摠荅彼前問故如本修行有五門能成此信故言通達摠問所說門者所謂摠問其所說故如本云何爲五故言略荅建立門數門者所謂建立大門數故如本一者施門二者戒門三者忍門四者進五者止觀門故何故次第如是謂修行六度次第法如是故次就略問廣荅散說門中故有五門故故有五門應審觀察此五種門中各各具二門云何爲二一者略問門二者廣荅門是名爲二如其次第不亂數量應審思擇
037_1060_c_01L첫 번째로 시문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설하겠다. ‘시문(施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하는 구절은 간략히 물은 것에 해당한다. 즉, 질문을 터놓는 대목이니, 계속해서 뒤로 이어지는 갖가지 문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광답문은 세 가지 보시[施]로 나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재물을 주는 것[財物施]이고, 둘째는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주는 것[隨應施]이고, 셋째는 교법을 주는 것[敎法施]이다. 재물을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떤 중생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내가 가진 것을 달라고 하면 즉시 의심해 볼 것도 없이,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다시 생각해 보지 않고 아낌없이 다 내주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재물이라고 하며, 몇 가지나 있는가? 두 가지 재물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안에 속하는 재물[內物]이고, 둘째는 바깥에 속하는 재물[外物]이다. 이것이 두 가지 재물이다. 안에 속하는 재물에도 두 가지가 있다.
037_1060_b_24L第一修行施門中言云何修行施門者卽是略問門所謂開問故後後諸門應如是就廣答門中卽有三種施云何爲三一者財物施二者隨應施三者教法施言財物施所謂若有衆生來到我所乞我所有卽便不疑隨時隨處皆悉施與無所顧惜故何等物名爲財物耶有幾種物所謂有二種財物云何爲二一者內物二者外物是名爲二就內物中亦有二種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형태를 갖지 않는 물건[無色]이고, 둘째는 형태를 갖는 물건[有色]이다. 형태를 갖지 않는 재물이란 심식(心識)을 말하며, 형태를 갖는 재물이란 갖가지 근[諸根]을 말한다. 어떤 중생이 내 처소에 와서 나의 심식을 구걸하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언제라도 제공하여 그를 기쁘게 하며, 어떤 중생이 내 처소로 와서 그가 필요한 대로 나에게 유색(有色)의 묘한 근[妙根]2)을 하나하나 구걸하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언제라도 제공하여 그를 기쁘게 한다. 이것이 안에 속하는 두 가지 재물을 보시하는 일이다. 바깥에 속하는 재물에도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식이 있는 것[有識]이고, 둘째는 식이 없는 것[無識]이다. 식이 있는 재물이란 처자나 노비 등을 말하고, 식이 없는 재물이란 궁전이나 집ㆍ옷ㆍ장식품 따위를 말한다. 어떤 중생이 내 처소에 와서 이러한 물건을 구걸하면 그 자리에서 아낌없이 언제라도 제공하여 그를 기쁘게 한다. 이것이 바깥에 속하는 두 가지 재물로 보시하는 것이다.
037_1060_c_08L云何爲二一者無色者有色言無色者卽是心識言有色者卽是諸根若有衆生來到我所乞我心識卽便不隨時施與令彼歡喜若有衆生來到我所隨其所用乞我一一有色妙根卽便不惜時施與令彼歡喜是名爲二種內財物就外物中亦有二種云何爲二一者有識二者無言有識者卽是妻子奴婢等類言無識者卽是宮殿舍宅衣服嚴具等類若有衆生來到我所乞此等物卽便不惜隨時施與令彼歡喜是名爲二種外財物
037_1061_a_01L이를 본론에서는, ‘와서 구하거나 찾는 중생을 보면 가지고 있는 재물을 힘닿는 대로 내줌으로써 자신의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을 기쁘게 하며’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수응시(隨應施)에 대해 설명하겠다. 무엇을 수응시라고 하는가? 오근(五根)이 손상되어서 온전하지 못한 중생이나 한없는 병고에 시달리느라고 편안치 못한 중생이나 마음이 어리석어 똑똑하지 못한 중생이 있으면, 이때 수행하는 이는 어진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맞는 것, 그들에게 적당한 것, 그들의 편의에 맞는 것, 그들에게 소유되는 것을 잘 선택하고 분별해서 저들의 고뇌를 없애고 기쁨을 준다. 이런 뜻에서 수응시라고 한다.3)
037_1060_c_18L如本若見一切來求索者所有財物隨力施與以自捨慳貪彼歡喜故已說財物施次說隨應施云何名爲隨應施耶謂或有衆生五根壞失不能具或有衆生病苦無量不得安隱或有衆生其心愚癡不能明了行者爾時以賢士則其所應隨其所當隨其所宜隨其所用能善揀擇能善分別除彼苦惱令歡喜故是故說言隨應施焉
이를 본론에서는, ‘횡액이나 곤란에 빠져 두려움과 위급함을 느끼는 중생을 보면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대로 두려움을 없애 준다’고 하였다. 이상이 수응시에 관한 설명이다. 다음으로 교법시(敎法施)에 관해 설명하겠다. 무엇을 교법시라고 하는가? 어떤 중생이 적당한 때든 아니든, 친하든 친하지 않든, 귀한 사람이든 아니든, 어리석든 아니든, 남자든 아니든, 여자든 아니든, 악인이든 아니든, 사람이든 아니든, 이러한 갖가지 무리들이 내 처소로 와서 법을 구할 때는 즉시 아낌없이 무량무변하고 광대원만한 대자비심을 내서 그들의 의심을 결단하여 부분적으로나마 번뇌를 세거하여 서서히 지혜를 늘려주며 저들을 다 거두어들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위없는 대보리에 이르도록 한다. 이런 뜻에서 교법시라고 이름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와서 법을 구하는 중생이 있으면 자신이 능력껏 이해한 대로 방편을 써서 그를 위해 설명을 해주되, 명리나 남의 공경을 탐해서는 안 되고 오직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할 것 만을 생각하여 이 공덕을 깨달음으로 회향해야 한다’고 하였다.
037_1061_a_02L如本若見厄難恐怖危逼隨己堪任施與無畏故已說隨應施次說教法施云何名爲教法施耶謂有衆生若時不時親不親若貴不貴若愚不愚若夫不夫若女不女若惡不惡若人不人如是等類來到我欲求法時卽便不惜發起無量無邊廣大圓滿大慈悲心決斷彼疑分除煩惱徐增智攝取彼人不墮惡道令到無上大菩提故是故說言教法施焉如本若有衆生來求法隨己能解方便爲說不應貪求名利恭敬唯念自利利他迴向菩提故故
이제까지 수행시문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수행계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네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계상을 건립하여 계를 설한 목적을 표방하는 문[建立戒相標宗門]이고, 둘째는 계품을 성취하려면 수승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문[成就戒品勝處門]이며, 셋째는 계행을 구족히 닦아 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문[具足戒行不輕門]이고, 넷째는 계를 수호하여 비방이 일지 않도록 하는 문[守護不令誹謗門]이다. 이상이 네 가지다. 건립계상표종문이란 열 가지 청정한 방전계(防轉戒)4)를 건립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계문(戒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살생과 도둑질과 간음을 하지 않고 이간질이나 욕설이나 헛된 말이나 꾸미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탐욕ㆍ질투ㆍ속임수ㆍ거짓말ㆍ아첨ㆍ왜곡ㆍ성냄ㆍ그릇된 견해를 멀리 떠난다’고 하였다. 성취계품승처문이란 계품을 구조하려면 산란스럽고 잡된 처소를 항상 멀리 떠나야 되며, 조용하고 수승한 처소를 항상 가까이 해서 거기서 멀어지지 않고 안주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037_1061_a_12L已說修行施次說修行戒門就此門中卽有四門云何爲四一者建立戒相標宗門二者成就戒品勝處門三者具足戒行不輕門四者守護不令誹謗門是名爲四言建立戒相標宗門者所謂建立十種淸淨防轉戒故如本云何修行戒門所謂不殺不盜不婬不兩舌不惡口不妄言不綺語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見故言成就戒品勝處門者所謂若爲具足戒品常當遠離散亂雜處常當親近寂靜勝安住其中不捨離故
037_1061_b_01L이를 본론에서는, ‘게다가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어 조복받기 위해 마땅히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항상 고요한 곳에 거처하면서’라고 하였다. 구족계행불경문이란 갖가지 묘한 행을 닦을 때 신심을 일으켜 여래께서 정해주신 바 스승이 되고 어머니가 될 만한 계[師母戒]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적은 욕심으로 만족할 줄 아는 두타행(頭陀行)5) 등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나아가 조그마한 죄에도 두려운 마음을 내어 부끄러움을 알고 개선하도록 뉘우치며 여래께서 하지 말라고 정해 주신 금기법[禁戒]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수호불령비방문이란 부처님의 눈동자가 될 만한 계[佛眼晴戒]를 보호하고 지켜서 결코 파괴되거나 유실되는 인이 없도록 하여 자리(自利)를 갖추며, 방일하여 금계(禁戒)를 비방하거나 싫어하는 중생들이 망상의 죄과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여 이타(利他)를 갖춤으로써 대각의 바다를 원만하게 장엄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상대방이 그 금기법을 비방하거나 꺼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함부로 허물이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037_1061_a_22L如本若出家者爲折伏煩惱故亦應遠離憒鬧常處寂靜故言具足戒行不輕門者所謂修行種種妙行起深信心不得輕賤如來所制師母戒故如本修習少欲知足頭陁等行乃至小罪心生怖畏慚愧改悔不得輕於如來所制禁戒故言守護不令誹謗門者所謂護持佛眼睛戒終不破失具足自利種種放逸譏嫌衆生不令發起妄想過罪具足利他圓滿莊嚴大覺海故如本當護譏嫌不令衆生妄起過罪故故
이제까지 수행계문을 설하였다. 다음으로 수행인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간략히 인욕을 밝힘으로써 아집을 조복받는 문[顯示略忍伏我門]이고, 둘째는 자세히 인욕을 밝힘으로써 무아가 되게 하는 문[顯示廣忍無我門]이다. 이것이 두 가지다. 현시약인복아문이란 어떤 중생이 악한 아세야(阿世耶)의 경계를 지어서 내 마음을 괴롭힌다면, 이때 행자는 자신의 마음을 참아서 그 괴롭힘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037_1061_b_07L說修行戒門次說修行忍門就此門中卽有二門云何爲二一者顯示略忍伏我門二者顯示廣忍無我門是名爲二言顯示略忍伏我門者所謂若有衆生造作惡阿世耶之境令惱我心行者爾時其心能忍不動惱故
이를 본론에서는, ‘인문(忍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남에게 시달림을 당해도 참고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으며’라고 하였다. 현시광인무아문은 무슨 뜻에서 시설한 문인가? 음식이나 의복 등 갖가지 재물을 내 처소로 가져와서 주면서 이익과 환락을 꾀하는 중생이 있는가 하면, 칼이나 몽둥이 등 갖가지 무서운 것을 내 처소로 가져와서 나의 환경[依]과 나의 몸[正]을 손상시키거나 없애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려는 중생도 있고, 거칠고 악한 말과 비방 등 갖가지 더러운 말의 먼 데서나 가까운 데서 와서 나를 헐뜯고 나에게 혐의를 씌우는 중생도 있으며, 혹은 바른 일을 하는 등 갖가지 덕으로 나의 몸을 찬탄하는 중생도 있다. 인욕을 닦는 자는 이러한 갖가지 일에 대해 수미산처럼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고 마음에 평정을 유지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이익이나 손실ㆍ훼손과 명예ㆍ칭찬이나 조롱ㆍ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의 법에 대해 참을성을 갖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037_1061_b_12L如本云何修行忍門所謂應忍他人之惱心不懷報故言顯示廣忍無我門者所謂或有衆生以飮食衣服等種種財物施與我所利益歡樂或有衆生以劍杖等種種怖相來到我所損滅我依正令不得自在或有衆生麤惡誹謗等種種穢語若遠若近毀嫌於我或有衆生以正作等種種之德讚歎我身於如是等種種事中其心平等堅固不動如須彌如本亦當忍於利衰毀譽稱譏苦樂等法故故
037_1061_c_01L이제까지 수행인문을 설하였고, 다음으로 수행진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정진을 수행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제시하는 문[通示修行精進門]이고, 둘째는 정진을 수행하는 것을 각각 해석하는 문[別釋修行精進門]이다. 통시수행정진문은 갖가지 묘한 일에 임해서 수행자의 마음이 점점 더 수승해져서 열심히 정진하려는 욕구를 내어 결코 쉬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진문(進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모든 선한 일에 대하여 나태하거나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굳세게 뜻을 세워 겁을 먹거나 나약한 마음을 멀리 떠난다’고 하였다. 별석수행정진문은 본디 두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037_1061_b_22L已說修行忍門次說修行進門就此門中卽有二門云何爲二一者通示修行精進二者別釋修行精進門言通示修行精進門者所謂於諸種種妙事其心轉勝勤欲精進終不息故如本云何修行進門所謂於諸善事心不懈退立志堅强遠離怯弱故就別釋修行精進門中故有二門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장애 없이 정신을 닦는 문[無障修行精進門]이고, 둘째는 장애를 결으면서 정진을 닦는 문[有障修行精進門]이다. 무장수행정진문이란 어떤 것인가? 수행자가 생각하기를, ‘나는 시작도 없는 오랜 과거로부터 오로지 허망하여 실답지 못한 몸과 마음만을 받았을 뿐, 금강처럼 무너지지 않는 몸과 마음은 도대체 받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묘한 행을 열심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태만해서 이제껏 해 왔던 것처럼 닦지 않는다면 미래로 갈수록 역시 도대체 득될 것이라고는 없는 허망한 몸과 마음만을 받아서 빠져나올 기약이 없다. 나 자신도 빠져나을 수 없어서 자신을 이익되게 하는 일마저 잃어버릴 터에, 하물며 갖가지로 고통받는 다른 중생을 구제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구족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크게 정진할 마음을 일으켜 행인(行因)의 바다를 닦아서 공덕으로 가득 찬 과(果)를 장엄함으로써 자리와 이타 양쪽을 건립하여 그 중에 빠지거나 치우치는 것이 없게 한다. 이런 뜻에서 무장수행정진문을 시설하였다.
037_1061_c_04L云何爲二一者無障修行精進門二者有障修行精進門無障修行精進門者所謂行者作如是念從無始過去時來唯受虛妄不實身心都不能受金剛不壞之身心者無餘因緣唯妙行中不勤行故我若懈怠如前不行向未來去亦復受都無有利益虛妄身心無出離期自身尚不得出離都失自利何況救濟所餘種種有苦衆生具足利他作是念已卽便發起大精進心修行行因之海莊嚴滿德之建立兩利無闕偏故
037_1062_a_01L이를 본론에서는, ‘그리고는 과거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몸과 마음에 헛되이 큰 고통을 받아온 일이 아무 쓸모없음을 염하기 때문에, 모든 공덕을 닦을 것을 권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남을 이롭게 하여 갖가지 고통에서 속히 떠난다’고 하였다. 유장수행정진문이란 어떤 것인가?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쌓아온 남은 업장 때문에 마군이나 외도 나쁜 귀신에게 시달려서 수행을 할 수 없는 중생이 있는가 하면. 현세에 해야 하는 갖가지 사무에 매여서 수행할 수 없는 중생도 있고, 갖가지 온갖 병고에 쫓기느라고 수행하지 못하는 중생도 있다. 이러한 중생들은 비록 귀로는 법칙과 훌륭한 말씀을 듣고 눈으로는 문자로 베풀어진 가르침을 본다 해도 부지런히 수행하시 못하므로 생사를 싫어하고 해탈을 구하려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만일 그런 사람이 마음을 내서 용맹스럽게 정진하고, 갖가지 뛰어나고 오로만 방편을 일으켜서 감당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지킨다면, 바다 같은 업장이 파도가 자듯 점차 수그러들고 산악 같은 공덕이 봉우리처럼 점점 높아진다. 그리하여 팔풍(八風)6)에도 날아가지 않고 구결(九結)7) 얽히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유장수행정진문을 시설하였다.
037_1061_c_14L如本當念過去久遠已來虛受一切身心大苦無有利益是故應勤修諸功德自利利他速離衆苦故言有障修行精進門者所謂若有衆生有無始過去之餘業障故爲魔外道及惡鬼神之所惱亂不能修行或有衆生爲現在世種種事務之所牽纏不能修行或有衆生爲一切諸種種病苦之所逼惱不能修行如是等諸衆生雖耳聽聞軌則尊辭眼中觀見文教說相而不能勤修行生厭求心然若其心勇猛精發起種種勝妙方便存堪任心業障之海漸漸波息功德之嶽彌彌峯高八風不飄結不縛故
이를 본론에서는, ‘진문을 닦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신심을 수행하더라도 숙세로부터 내려오면서 중죄와 악업을 만이 지었기 때문에 삿된 마귀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세간의 일에 갖가지로 얽매이기도 하고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는 등 이렇게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일이 필요하다. 밤낮으로 여섯 차례 여러 부처님들께 예배하고 성심껏 참회하여 법을 권청하고 따라 기뻐하며 깨달음[菩提]으로 회향하는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일 없이 항상한다면 갖가지 장애에서 면제되어 선근이 자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037_1062_a_02L如本復次若人雖修行信心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爲魔邪諸鬼之所惱亂或爲世閒事務種種牽纏或爲病苦所惱有如是等衆多障㝵是故應當勇猛精勤晝夜六時禮拜諸佛誠心懺悔勸請隨喜迴向菩提常不休廢得免諸障善根增長故故
이제까지 수행정진문을 설하였다. 다음으로 수행지관문을 설하겠다. 이 문은 네 가지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지에 관해 전체적인 표제를 내걸고 전체적인 해석을 내리는 문[摠標摠釋止輪門]이고, 둘째는 관에 대해 전체적인 표제를 내걸고 전체적인 해석을 내리는 문[摠標摠釋觀輪門]이며, 셋째는 지관에 수순해 들어가는 방법을 간략히 해석하고 결택을 내리는 문[略釋決擇隨順門]이고, 넷째는 지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고 결택하는 문[廣釋決擇止輪門]이다. 이것이 네 가지다.
총표총석지륜문은 사려를 통해 아는 마음을 그치고[止] 산란한 사유를 막아서 하나[一]이면서 중심[中]이 되는 적정한 성품에 안주하여 모든 경계상을 내지 않고 정표타아라관(定標陀阿羅觀)8)으로써 근본에 수순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지관문(止觀門)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지(止)란 경계로 나타난 모든 상을 쉬어서 사마타(奢摩他)에 수순(隨順)하는 관을 뜻한다’고 하였다.
037_1062_a_08L已說修行精進門次說修行止觀門就此門中卽有四門云何爲四一者摠標摠釋止輪門二者摠標摠釋觀輪門三者略釋決擇隨順門四者廣釋決擇止輪門是名爲四摠標摠釋止輪門者謂止慮知之心㝵散亂之思安住於一中寂靜性不出於一切境界隨順定標陁阿羅觀義故如本云何修行止觀門所言止者謂止一切境界相隨順奢摩他觀義故故
037_1062_b_01L총표총석관륜문은 인연의 도리를 분명히 간택하고 그 인연이 무상(無常)한 형상이라는 점을 자세히 분별하여 잘 통달하고 빠짐없이 잘 알아서 수순관인 표타아라관에 수순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관(觀)이란 생멸하는 인연의 상을 분별하여 비발사나(毘鉢舍那)에 수순하는 관을 뜻한다’고 하였다.
약석결택수순문이란 정(定)이 수시로 될 때에는 관(觀)이 따라오고 관이 수시로 될 때에는 정이 따라와서 두 가지가 동시에 구족하여 분리되지 않고 작동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어떻게 수순한다는 말인가? 이 두 가지 뜻을 점차로 수습(修習)하여 분리되지 않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현전한다’고 하였다.
광석결택지륜문에 네 가지 문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지를 성취하는 인연을 밝힌 문[成就止輪因緣門]이고, 둘째는 지를 수행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直示修行止輪門]이며, 셋째는 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히는 문[修行止輪得益門]이고, 넷째는 취에 들어갔느냐 아니냐의 구분을 가리는 문[揀入不入分際門]이다. 이상이 네 가지다.
037_1062_a_16L言摠標摠釋觀輪門者謂明揀擇因緣之道理審分別無常之形相能善通達能善遍知隨順觀標陁阿羅觀義故如本所言觀者謂分別因緣生滅相順毘跋舍那觀義故故言略釋決擇隨順門謂定隨時彼觀卽順觀隨時中彼定卽具足具足不離轉故如本云何隨順以此二義漸漸修習不相捨離雙現前故故廣釋決擇止輪門中卽有四門云何爲四一者成就止輪因緣門二者直示修行止輪門者修行止輪得益門四者揀入不入分際門是名爲四
첫 번째인 성취지륜인연문에는 열다섯 가지가 있다. 무엇이 열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고요한 곳에 거처하는 법[住處寂靜因緣], 둘째는 혼자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하지 않는 법[獨一不共因緣], 셋째는 거처하는 방위를 잘 선택하는 법[所居方善因緣], 넷째는 옷을 갖추어 입는 법[衣服具足因緣], 다섯째는 음식을 갖추는 법[飮食具足因緣], 여섯째는 결계9) 밀교에서 불법을 닦는 데 장애가 될 만한 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일정 지역을 한정하는 것을 결호(結護)라고 한다.
를 해서 청정함을 유지하는 법[結界護淨因緣], 일곱째는 집을 짓는 법[舍宅造立因緣], 여덟째는 말을 내지 않는 법[言語不出因緣], 아홉째는 좌상을 조성하는 법[坐像造立因緣], 열째는 자리에 앉는 법[坐其座中因緣], 열한째는 드나드는 때를 가리는 법[出入時節因緣], 열두째는 선지식과 좋은 도반을 만나는 법[知識善友因緣], 열셋째는 옳고 그름을 확실히 아는 법[印知邪正因緣], 열넷째는 좋은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는 법[植善林樹因緣], 열다섯째는 자륜10)을 복응하는 법[字輪服膺因緣]이다. 이상이 지를 닦는 일을 자세히 풀이하고 결택하는 문에 속하는 열다섯 가지 큰 인연이다. 고요한 곳에 거처하는 법은, 저 지문(止門)을 닦고자 한다면 산림 같은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에 거처하며 산란한 마을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산란한 곳에서는 저 지문을 성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037_1062_b_03L就第一成就止輪因緣門中卽有十五種云何爲十五一者住處寂靜因緣者獨一不共因緣三者所居方善因緣四者衣服具足因緣五者飮食具足因緣六者結界護淨因緣七者舍宅造立因緣八者言語不出因緣九者坐像造立因緣十者坐其座中因緣十一者出入時節因緣十二者知識善友因緣十三者印知邪正因緣十四者植善林樹因緣十五者字輪服膺因緣是名十五種大因緣言住處寂靜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居山林等空閑處中遠離散亂聚落處故所以者何散亂處中彼止輪門難成就故
037_1062_c_01L혼자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하지 않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한 구역 안에 두 사람이 거처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서로 간에 번거로움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거처하는 방위를 잘 선택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동쪽과 서쪽 방향에 머물러야지 남쪽과 북쪽에 거처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동쪽과 서쪽에 각륜(覺輪)이 있기 때문이다.11)옷을 갖추어 입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옷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세 가지 옷인가? 황색과 적색과 백색, 이것이 세 가지 옷으로서 한꺼번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비차라(毘叉羅)12) 벌레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갖추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말려서 정제한 가마이타야(伽摩伊陀耶)13)가 반드시 필요하고 다른 곡식들은 사용할 수가 없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저 가마이타야에는 선성(仙性)14)이 있기 때문이며, 사용하지 않는다면 파니라(婆尼羅)15) 등은 수용하는 시한에서 오직 자체의 것만을 써야 하기에 일정함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037_1062_b_15L言獨一不共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一界內中二人共住不得理故所以者何互動煩故言所居方善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居止東西之兩方中南北方中不得居故所以者何有覺輪故言衣服具足因緣謂若爲修彼止輪門必當用三種衣故何爲三一者黃色二者赤色三者白色如是三衣一時用故所以者何毘叉羅虫不能入言飮食具足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必當用乾練伽摩伊陁耶所餘穀等不能用所以者何彼伽摩伊陁耶有仙性故復次若無用婆尼羅等故受用時節唯用自中無有定故
결계를 해서 청정함을 유지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자신의 방을 떠나서 일 구로사(俱盧舍)16)쯤 되는 곳에서 대신주를 백열 번 외운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떻게 외우는가? 외우는 신주는 다음과 같다.
037_1062_c_03L言結界護淨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離自居室一俱盧舍量中誦一百十遍大神呪其相云何謂卽誦呪言

다냐타나라제 바차니 아마야가타제바 바아아바바미타 사거나 오가이타
▼(口*恒)▼(口*絰)咃那羅帝 婆叉尼 阿摩㖿迦陀帝 婆婆阿阿婆婆𡄣陀 闍佉那 鄔呵伊陀
제 옴옴옴옴제 다발타타야 마나시지제 사타니발 차라니구하아하구다시
帝 奄奄奄奄帝 哆跋陀陀㖿 摩那尸只帝 奢陀尼筏 叉羅尼鳩訶阿訶鳩多㕧
옴아타타제 마하가야제 마하아가야제 건다니 아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奄囂陀陀帝 摩訶伽耶帝 摩訶阿伽耶帝 鍵多尼 阿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
아제사바하
阿帝娑婆呵
037_1062_c_05L咃那羅帝 婆叉尼 阿摩㖿迦陁帝婆婆阿阿婆婆𡄣陁 闍佉那 鄔呵伊陁帝奄奄奄奄帝 哆跋陁陁㖿 摩那尸只帝奢陁尼筏 叉羅尼鳩訶阿訶鳩多㕧奄啊陁陁帝 摩訶伽耶帝 摩訶阿伽耶帝鍵多尼 阿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羅阿帝娑婆呵

이 주문을 다 외우고 나서 결계(結界)를 하고 깨끗함을 유지한다. 어째서 그렇게 하는가?
갖가지 독충의 무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집을 짓는 법은, 집을 짓는 데 열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문을 만드는 일인데, 반드시 동쪽으로 내야하며 다른 방향으로 내서는 안 된다. 둘째는 높이를 정하는 일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높게 서쪽으로 갈수록 낮게 세운다. 셋째는 넓이를 정하는 일인데, 사방을 각각 한 길[丈] 정도 되게 한다. 넷째는 품중(品重)을 정하는 일인데, 열 겹으로 짓는다. 다섯째는 물건을 쓰는 일인데, 반드시 다섯 가지로 제한하고 다른 것은 쓰지 않는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금, 둘째는 은, 셋째는 구리, 넷째는 쇠, 다섯째는 소나무 목재, 이것이 다섯 가지다. 여섯째는 문턱을 만드는 일인데, 지면과 차이가 없게 한다. 일곱째는 문을 몇 겹으로 만드느냐 하는 일인데, 열 겹으로 만든다. 여덟째는 문의 지도리를 만드는 일인데, 문을 열고 닫을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든다. 아홉째는 벽과 담장을 만드는 일인데, 높이는 한 길[丈], 담장의 두께는 열 겹으로 한다. 열째는 드나드는 일인데, 각각의 문을 드나들 때마다 주문을 외운다.
어떤 주문인가?
037_1062_c_12L若誦此呪已訖卽便結界護淨所以者何種種毒類不能入故言舍宅造立因緣者若爲造修定舍宅當具十事云何爲十一者門戶事唯向東方非餘方故二者高下事方漸高西方漸下故三者方角事於一方中各一丈故四者品重事重十重故五者作物事唯用五種非餘種故云何爲五一者二者銀三者銅四者鐵五者松木是名爲五六者戶塌事等其地量無差別故者戶重事重十戶故八者戶樞事無音聲九者壁牆事其高一丈重十重故十者出入事彼諸戶中各誦呪故其相云何謂若爲出卽誦呪言
037_1063_a_01L
남마야제 마하구비나아 아라바제 타타아가타 반지아지니 차사니락제
喃嚤㖡帝 摩訶鳩毘那呵 阿羅婆提 陀陀阿伽度 般枳阿枳尸 遮娑䛏諾帝
파지마비마 파지마아나 아나시지니시지 사바하
婆枳摩毘摩 婆枳摩阿那 阿那尸枳尼尸枳 娑婆呵
037_1063_a_01L喃嚤㖡帝 摩訶鳩毘那 呵阿羅婆提陁陁阿伽度 般枳阿枳尼 遮娑䛏諾帝婆枳摩毘摩 婆枳摩阿那 阿那尸枳尼尸枳 娑婆呵

이 신주(神呪)를 천 번 외우면 수시로 길이 뚫린다. 들어갈 때는 이 주문을 외워야 한다.
037_1063_a_05L若此神呪誦一千遍卽便順時皆悉開通爲入時卽誦呪言

나무남지나 나무벌시타 나무남하제 나무남아리나 나무건타니사바하
南無喃枳那 南無筏尸陀 南無諵阿帝 南無諵阿唎那 南無鍵陀尼娑婆呵
037_1063_a_07L南旡喃枳那 南旡筏尸陁 南旡諵何帝南無諵阿唎那 南旡鍵陁尼娑婆呵

이 신주를 천오백 번 외우면 어느 때라도 문이 열리고 닫힌다.
말을 내지 않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어느 때건 어느 곳에서건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째서 그런가? 말이 나오는 대로 심식(心識)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좌상(坐像)을 조성하는 법은, 정에 들어 있는 좌상을 조성하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를 구비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무엇으로 만드느냐 인데, 소나무를 쓴다. 둘째는 높이와 크기를 정하는 일인데, 자기 몸의 반 장도로 하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한다. 셋째는 앉히는 자리의 크기를 정하는 일인데, 한 자리[一方]가 각각 넉 자가 되게 한다. 넷째는 상을 앉히는 방향을 정하는 일인데, 반드시 동쪽으로 앉히며 다른 쪽으로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는 자리 위에 갖추어야 할 물건인데, 반드시 노란색 타라제(陁羅帝)17)와 노란색 좌구(坐具)를 써야 한다. 이상이 좌상을 조성하는 데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일이다.
037_1063_a_09L若此神呪誦一千五百遍已訖卽便順時皆悉關閉言言語不出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於一切時於一切處不出言故所以者何隨其言說心識出故言坐像造立因緣者謂若爲造修定坐像當具五事云何爲一者作物事用松木故二者高量事如自身半不增減故三者方角事於一方中各四尺故四者方向事唯向東方非餘方故五者坐上具事唯用黃陁羅帝及黃坐具故是名爲五
037_1063_b_01L자리에 앉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하면 열 가지를 갖추어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발의 자세인데, 양쪽 무릎 끝에 엄지발가락이 오게 하여 흐트러짐 없이 딱 맞추도록 한다. 둘째는 무릎의 자세인데, 양쪽 무릎이 오차 없이 평행을 이루도록 한다. 셋째는 허리를 반듯이 하는 자세인데, 허리가 굽거나 튀어나오지 않도록 곧은 자세를 유지한다. 넷째는 손을 포개는 일인데, 양손을 마주해서 오른손이 위로 가면 왼손은 아래로, 왼손이 위로 가면 오른손은 아래로 하며, 하루씩 위치 바꾸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손을 근(根) 위에 놓는다. 다섯째는 목의 자세인데, 목을 반듯이 해서 움직임 없이 곧게 세운다. 여섯째는 얼굴의 자세인데, 얼굴이 위를 보거나 아래를 보지 않고 평행이 되게 한다. 일곱째는 입 안의 모양인데, 쉽게 하지도 말고 좁게 하지도 말며 가운데는 열린 상태로 둔다. 여덟째는 코에 관한 것인데, 숨을 내쉬는 데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며 한 번이라도 어긋나가서는 안 된다. 아홉째는 눈의 모양인데, 눈을 치켜뜨지도 말고 내리깔지도 말며 눈동자를 편히 한다. 열째는 눈을 어디에 그쳐 머물게 하느냐인데, 대허공자륜(大虛空字輪)18)에 두고 언제나 떼지 않도록 한다. 이상이 자리에 앉을 때 갖추어야 할 열 가지다.
드나드는 때를 가리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진시(辰時)와 오시(午時) 두 때를 이용해야 하며 다른 때는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선지식과 좋은 도반을 만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지혜가 깊은 사람을 벗 삼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옳고 그름을 확실히 아는 법은, 저 지물을 닦고자 한다면 상(像)의 형태에 따라 금강인(金剛印)을 지어서 옳고 그름을 착실히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떻게 상을 짓는가? 다음 주문을 외운다.
037_1063_a_19L言坐其座中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當具十事坐其座中云何爲十一者足等事兩膝末中其兩母指互相契當令無差二者膝等事兩膝平攝令無差故三者腰端事其腰端直無𤰭%(出+面)故四者手累事兩手相對右手爲下左手爲上左手爲右手爲經一日已互互易變不忘失故亦復其手置根上故五者頸端事其頸之質端直不動定建立故六者面端事其面相貌不仰不俯令平相故七者口相事其口之相不癀不狹開中閒故八者鼻相事出其氣息令無差不出一故九者眼相事其眼根量不上不下平等舒故十者止眼事置其眼處安置大虛空字輪中恒不離故是名爲十言出入時節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唯用辰及午之二時此餘時中不出入故言知識善友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深智慧人以爲友言印知邪正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隨至像量須金剛印卽便了知邪及正故相云何謂卽誦呪言

다냐타만나오타제 바라지타니 차시미다야 옴아시제나사바하
坦咥咃▼(口*曼)那鄔陀帝 婆羅枳陀尼 遮㕧𡄣哆耶 掩阿尸帝那娑婆呵
037_1063_b_14L怛姪咃謾那鄔陁帝 婆羅枳陁尼 遮㕧𡄣哆耶掩阿尸帝那娑婆呵
037_1063_c_01L
이 신주를 사천 육백오십 번을 외우면 저 상에 두 가지 자륜(字輪)이 붙는다. 즉, 삿된 사람에게는 삿된 자륜이 붙고 바른 사람에게는 바른 자륜이 붇는다. 이로써 옳고 그름이 가려진다.
좋은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자신이 거처하는 방 앞에 길상(吉祥)을 나타내는 두 가지 풀을 심는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소나무고, 또 하나는 석류나무다. 이것이 두 가지 길상초다.
자륜을 복응(服膺)19)하는 법은, 저 지문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囗$(王/(王*王))]자륜을 복응해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인연이다. 어디에 복응하는가? 방촌처(方寸處)에 복응한다. 무슨 이유로 반드시 이 자륜을 붙여야 하는가? 이 자륜은 삼세 여러 부처님과 무량무변한 보살의 은혜로운 큰 스승이며 은혜로운 큰 부모이며 은혜로운 큰 대지이며 은혜로운 큰 바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저 지를 닦는 자라면 당연히 이 자륜을 붙여야 한다. 이러한 인연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 『마하연론』에서는 첫 번째 인연만을 밝힌 것이다. 다른 인연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 것을 들어서 뒤의 것들까지 포함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지(止)를 수행하는 자는 조용한 곳에 머물러’라고 하였다.
037_1063_b_16L若此神呪誦四千六百五十遍已訖卽彼像中付二字輪謂若邪人付邪字輪若正直人付正字輪以之爲別言植善林樹因緣者若爲修彼止輪門人自室前中植二種大吉祥草故云何爲二一者松木二者石榴木名爲二言字輪服膺因緣者謂若爲修彼止輪門人必當服%(囗*(王/玨))字輪而已服何處耶謂方寸處故以何義故必付此輪謂此字輪三世諸佛無量無邊一切菩薩大恩師長大恩父大恩天地大恩海故此因緣故爲修止人當付此輪如是因緣雖有無量而今此摩訶衍論中明第一因緣不明餘者擧初攝後故如是而已如本若修止者住於靜處故
이제까지 지를 성취하는 인연을 밝힌 문[成就止輪因緣門]을 설했고, 다음으로 지를 수행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直示修行止輪門]을 설하겠다. 이 문은 일곱 문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어디에 마음을 확고히 두느냐는 문제[存心決定門]로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진공(眞空)의 이치 가운데 마음을 확고히 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반듯이 앉아서 마음을 바로 하되’라고 하였다. 둘째는 신체에 집착하지 않는 문[不着身體門]으로서, 이 몸은 공무(空無)하여 그 성품을 본래적으로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통달하고 있기 때문에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기식(氣息)에 의존하지도 않고 형색(形色)에 의존하지도 않으며 공(空)에 의존하지도 않고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의존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셋째는 심식에 집착하지 않는 문[不着心識門]으로서, 사려를 통해 아는 마음은 자성이 공무하여 있다 할 바가 없음을 아주 잘 통달했기 때문에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나아가 견문각지(見聞覺知)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모든 생각[想]이 염하는 대로 다 없어지며, 없앤다는 생각까지도 떨어버린다’고 하였다. 이 아래로는 그 신체(身體)와 심식(心識)이 공무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037_1063_c_05L已說成就止輪因緣門次說直示修行止輪就此門中卽有七門云何爲七一者存心決定門不生不滅眞空理中其心定故如本端坐正意故二者不著身體門能善通達此身空無其本自性不可得故如本不依氣不依形色不依於空不依地水火風故者不著心識門能善通達慮知之心自性空無所有故如本乃至不依見聞覺知一切諸想隨念皆除亦遣除想故自此已下作其身心空無因緣
본론에서는 이를, ‘일체법은 본래가 상(相)이 없는 것이라서 염념에 생하지 않고 염념에 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따라 바깥으로 경계를 염하다가’라고 하였다. 넷째는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문[不着不着門]으로서, 능히 떨어보내는 마음마저 떨어 없애야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나. 이를 본론에서는, ‘뒤에 가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제거해서도 안 되니’라고 하였다. 다섯째는 흩어지는 것을 모아서 하나로 되돌리는 문[集散會一門]으로서, 뜯어져 움직이는 마음을 거두어 모아 하나에 둔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마음이 만일 바깥을 향해 치닫거든 즉시 거두어들여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여섯째는 정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문[顯示正念門]으로서, 제법이 오직 일실임을 밝히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이 정념이란 무엇인가? 오직 마음일 뿐[唯心]이라서 바깥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니, 이 마음이란 것 역시 자체의 상이 없어서 염념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곱째는 떠나지 않고 항상 상속함을 밝히는 문[不離恒行門]으로서, 이러한 정심(定心)이 어느 때건 어느 곳에서건 떠날 사이없이 항상 이어진다는 뜻에서 시설한 문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하고 가고 머물고 하는 사이에 무엇인가 하게 되면 언제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고 수순하여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다.
037_1063_c_15L如本以一切法本來無相念不生念念不滅亦不得隨心外念境界故四者不著不著門能遣之心亦遣除故如本後以心除心故五者集散會一門攝散動心置一中故如本心若馳散卽當攝來住於正念故六者顯示正念門顯示諸法唯一心故如本是正念者當知唯心無外境界卽復此心亦無自相念念不可得故七者不離恒行如是定心於一切時於一切處常恒相續不捨離故如本若從坐起去來進止所作於一切時常念方便隨順觀察故
037_1064_a_01L이제까지 지를 수행하는 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을 설했고, 다음으로 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히는 문[修行止輪得益門]을 설하겠다. 어떤 사람이 능히 이 정(定)을 수행할 수 있다면 점점 나아가 바다 같은 번뇌가 말라버리고 산악 같은 업장이 무너져 진여의 삼매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일체법을 통달하여 물러남이 없는 자리에 도달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오래도록 익혀서 순수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된다. 마음이 안주를 얻게 됨으로써 점점 날카롭고 강성해져서 진여삼매(眞如三昧)에 수순하여 깨달아 들어갈 수 있으며, 번뇌를 깊이 조복받고 신심이 늘어나 속히 물러남이 없는 경지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037_1064_a_01L已說直示修行止輪門次說修行止輪得益門謂若有人能修此定漸漸轉轉竭煩惱海崩業障入眞如定達一切法到不退故如本久習淳熟其心得住以心住故漸漸猛利隨順得入眞如三昧深伏煩惱信心增長速成不退
이제까지 지를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밝히는 문을 설했고, 다음으로 취에 들어갔는지 아닌지의 구분을 가리는 문[簡入不入分際門]을 설하겠다.20) 이 문은 두 가지 뜻에서 시설했다. 무엇이 두 가지 뜻인가? 첫째는 취에 들어간다는 뜻[入趣意]이고, 둘째는 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不入意]이다. 취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아무 의심도 없이 길은 법에 들어가며, 어떤 중생은 아주 길은 법을 듣고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어떤 중생은 깊은 법을 듣고는 존중하는 마음을 내서 비방을 하지 않으며, 어떤 중생은 무거운 업장이 없으며, 어떤 중생은 아만심이 없으며, 어떤 중생은 게으른 마을을 내지 않는다. 이상 여섯 종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불(佛)의 종성(種性)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의심할 여지없이 착실하니, 이런 것을 두고 취에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와 어긋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삼보의 종자를 영원히 단절한다는 사실이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니, 이런 것을 두고 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러나 의혹을 갖는 사람, 믿지 못하는 사람, 법을 비방하는 사람, 중죄를 지어 업장이 두터운 사람, 아만심이 있는 사람, 나태한 사람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037_1064_a_07L已說修行止輪得益門次說簡入不入分際門就此門中卽有二意云何爲二一者入趣意二者不入意言入趣意者所謂或有衆趣入深法心無所疑或有衆生聞甚深法其心決定不生不信或有衆生聞甚深法便尊重不生誹謗或有衆生無重業障有衆生無我慢心或有衆生無懈怠心如是六人入佛種性決定不疑是名入趣意焉不入意者所謂若有衆生此六相違永斷絕三寶之種子#決定不疑是名不入意焉如本唯除疑惑不信誹謗重罪業障我慢懈怠如是等人所不能入故
037_1064_b_01L이제까지는 간략한 질문에 대해 자세히 답하면서 이런 저런 각도에서 그것을 설명하는 문[略問廣答散說門]을 설하였고,21) 다음으로 삼매의 수승함을 찬탄하는 문[讚歎三昧殊勝門]을 설하겠다. 이 문은 두 가지 문으로 나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체대가 한량없고 수승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문[體大無邊殊勝門]이고, 둘째는 진여삼매의 권속이 다함이 없고 수승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문[眷屬無盡殊勝門]이다. 이것이 두 가지 문이다. 체대무변수승문은, 이 삼매를 닦음으로써 한량없는 모든 불법이 동일한 체이며 한 모습이라 차별 없음을 통달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런가 하면 이 삼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법계가 한 모습임을 안다. 즉,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중생신과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아는 것으로서, 이를 두고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한다’고 하였다. 권속무진수승문은, 이 진여삼매가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금강삼매(金剛三昧)에게 근본이 되어 이 모든 삼매를 낳고 자라게 한다는 뜻에서 시설한 것이다. 이를 본론에서는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진여가 바로 이 삼매의 근본이 된다. 이렇게 수행하는 자라면 점점 무량한 삼매를 낼 수 있다’라고 하였다.
037_1064_a_18L已說略問廣答散說門次說讚歎三昧殊勝門就此門中卽有二門云何爲二一者體大無邊殊勝門二者眷屬無盡殊勝門是名爲二言體大無邊殊勝門修此三昧通達一切無量諸佛法同體一相無差別故如本復次依此三昧故則知法界一相謂一切諸佛法身與衆生身平等無二卽名一行三昧故言眷屬無盡殊勝門者謂卽是眞如三昧能爲一切無量無邊金剛三昧作正根本而能出生增長故如本當知眞如是三昧根本若人修行漸漸能生無量三昧故
釋摩訶衍論卷第八
  1. 1)수행신심분을 일곱 가지 문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이다.
  2. 2)신체의 부위를 말한다.
  3. 3)현수법장(賢首法藏)은, 수응시(隨應施)란 무외시(無畏施)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용수가 ‘응(應)’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通玄 卷4, 卍續藏經 73, 259하)
  4. 4)방전계(防轉戒)란 십선(十善)으로 악을 막고 금지하는 방편으로 삼아서 살생(殺生) 등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6상)
  5. 5)두타(頭陀)는 닦아서 번뇌를 퇴치한다[修治], 털어낸다[抖擻], 버리고 제거한다[棄除], 씻어낸다[洗浣], 걸러낸다[陶汰]라 번역하며, 번뇌의 티끌을 씻어내고 의식주를 간편히 하는 청정한 행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12두타를 든다.
  6. 6)이상 여덟 가지는 중생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팔풍(八風)이라고 한다. 재물을 불려 내게 이익을 주는 것을 이익[利]이라 하고, 나의 물건을 훼손 및 소모시키는 것을 손실[衰], 자신의 허물보다 심한 비방을 받는 것을 훼손[毁], 자신이 가진 덕보다 분에 넘치게 칭찬받는 것을 명예[譽], 자신의 덕에 맞게 칭찬받는 것을 칭찬[稱], 자신의 허물에 맞게 비난받는 것을 조롱[譏], 자신의 몸을 조이고 침해하는 것을 괴로움[苦], 몸과 마음을 쾌적하게 하는 것을 즐거움[樂]이라 한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6하)
  7. 7)중생을 결박하여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아홉 가지 번뇌를 말한다. 즉, 애착[愛結]ㆍ성냄[恚結]ㆍ아만[慢結]ㆍ무명[無明結]ㆍ그릇된 견해[見結]ㆍ집착[取結]ㆍ의심[疑結]ㆍ질투[嫉結]ㆍ인색함[慳結]을 말한다.
  8. 8)정표타아라관(定標陀阿羅觀)에서 표타는 주(主), 아라는 반(伴)을 뜻한다. 정혜(定慧)가 주반(住伴)의 관계를 갖고 서로 의지함을 말한다. 즉, 가행(加行)의 관혜(觀慧)를 반(伴)으로 삼고, 근본(根本)의 지정(止定)으로 주를 삼아 가행을 닦아나감으로써 근본에 수순하기 때문에 수순(隨順)이라는 말을 붙인다.(通玄 卷4, 卍續藏經 73, 260하)
  9. 9)작법(作法)에 의해 일정지역을 구획해서 제한하는 일, 또는 그 제한구역을 말한다. 여기에는 섭승계(攝僧界), 섭의계(攝衣界), 섭식계(攝食界) 세 가지가 있다. 섭승계는 비구가 한 곳에 모여 포살(布薩) 등의 행사를 하는 데 장애를 없애기 위해 설치하는 구획이다. 여기에 자연계(自然界)와 작법계(作法界)가 있다. 자연계는 부작법계(不作法界)로서 작법하지 않고 자연의 형세에 따라 정해지는 구역이며, 취락(聚落)ㆍ난야(蘭若)ㆍ도행(道行)ㆍ수(水)의 네 곳이 이에 속한다. 작법계에는 대계(大界)ㆍ계장(戒場)ㆍ소계(小界)의 구별이 있다. 섭의계는 비구가 의복을 벗고 자는 허물을 범하지 않도록 지역을 구획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도 자연계와 작법계가 있다. 섭식계는 비구가 음식에 관한 금지사항을 범하지 않도록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 구역[淨地]으로 지정된 곳. 이상의 결계를 풀 때는 백이갈마(白二羯磨)의 작법을 행한다.
  10. 10)자륜(字輪)은 밀교에서 쓰는 용어로서, 자륜을 관하는 수행을 법계체성삼매관(法界體性三昧觀)ㆍ입법계삼매관(入法界三昧觀)ㆍ입법계관(入法界觀)이라고도 한다. 윤(輪)은 윤생(輪生), 또는 부동(不動)의 뜻으로서 진언 하나하나의 문자는 그 한 자로부터 많은 글자를 내므로, 또 아(阿)자로부터 모든 문자를 내는 것도 아자가 본래 상주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니, 그래서 자륜이라고 한다. 진언을 닦는 행자가 심장(心臟)을 월륜(月輪)으로 관하고 이 심월륜(心月輪) 위에 본존(本尊)의 종자나 진언의 문자륜(文字輪)을 자재로이 관하여 자기 심월륜상(心月輪上)의 자륜과 본존의 심월륜상의 자륜이 융합하여 일체가 도미을 관상(觀想)하는 밀교의 행법을 자륜관이라 한다. 먼저 법계정인(法界定印)이나 미타정인(彌陀定印)의 자세에 들어서 자신의 심월륜 위에 아(阿)ㆍ바(縛)ㆍ라(羅)ㆍ하(賀)ㆍ카(佉)의 5자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관한다. 즉, 아(阿)자의 제법본불생불가득(諸法本不生不可得)의 원리로부터 바(縛)자의 자성언설불가득(自性言說不可得), 바(縛)자의 자성언설불가득(自性言說不可得)의 원리로부터 라(羅)자는 진구불가득(塵垢不可得), 라(羅)자의 진구불가득(塵垢不可得)의 원리로부터 하(賀)자는 인업불가득(因業不可得), 하(賀) 자(字)의 언업불가득의 원리로부터 카(佉)자는 등허공불가득(等虛空不可得)인 도리를 차례로 관한다. 그리고 다음에 등허불가득인 ‘지’자의 원리로부터 거꾸로 관하여 마침내 본불생(本不生)의 본성을 체득해 들어가는 것을 통관(通觀)이라 한다. 별관(別觀)이란 본존의 소주(小呪)를 관하는 것과 본존의 종자(種子)를 관하는 것과 제존(諸尊)의 범명(梵名)을 관하는 세 가지를 말한다.
  11. 11)이에 대해서는 예부터 세 가지 번역이 있었다. 동쪽과 서쪽에 각지(覺智)가 있다는 뜻에서 각(覺)이라 하였고, 산란한 마음을 꺾는다는 뜻에서 윤(輪)이라 하여 각륜(覺輪)이라는 표현을 썼다.(通玄 卷4, 卍續藏經 73, 261상) 동쪽은 해가 뜨는 곳으로서 신령스럽고 밝은 본각(本覺)을 나타내며,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서 어두운 무명(無明)을 나타낸다. 수행자는 진(眞)을 관하여 망(妄)을 대치하는 사람이므로 동서쪽에 머문다고 한 것이다. 또 남쪽은 너무 덥고 독충이 많으며 북쪽은 춥고 바람이 심하며 눈이 와서 수행하기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7하)
  12. 12)번역어를 찾아낼 수 없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8상)
  13. 13)‘합집(合集)’이라 번역하며, 쪄낸 전분의 일종이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8상)
  14. 14)정(定)을 돕는 성품을 말한다. 여러 가지 음식물이 지닌 각각의 성분은 희로애락의 심성과 연관된다. 즉, 인삼은 뜻[志]을 돕고, 마늘과 부추는 화[瞋]를 돋구는 것이 그 사례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8상)
  15. 15)논기(卷6, 卍續藏經 73, 148상)에서는 국[羹]의 일종이라 하였고, 통현(卷4, 卍續藏經 73, 261상)에서는 곡식의 가루[粮]라 하였다.
  16. 16)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다. 통현(卷4, 卍續藏經 73, 261상)에서는 구로사를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의 중간으로서, 활[弓] 오백 개 정도 되는 거리라고 하였다. 『논기(論記)』에서는 소 한 마리의 울음이 들릴 만 한 거리라고 하였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8상)
  17. 17)번역어를 찾을 수 없다.(論記)
  18. 18)각주 10번 참조.
  19. 19)응(膺)은 가슴[胸臆]을 뜻하는 말로서, 자륜을 가슴[方寸處]에 둠으로써 수행인이 정(定)을 닦는다는 표시를 한다.(論記 卷6, 卍續藏經 73, 149하)
  20. 20)광석결택지륜문 중 네 번째이다.
  21. 21)수행의 종류를 전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앞서 던졌던 물음에 답하는 문[摠標答前所問門], 전체적으로 물은 내용을 통괄하는 문[通達摠問標所說門], 간략한 답을 제시하면서 수행의 가지 수를 건립하는 문[略答建立門數門], 간략한 질문에 대해 자세히 답하면서 이런 저런 각도에서 그것을 설명하는 문[略問廣答散說門], 삼매의 수승함을 찬탄하는 문[讚歎三昧殊勝門], 이렇게 다섯 문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가운데 네 번째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