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8_0958_b_01L대반열반경 제25권
038_0958_b_01L大般涅槃經卷第二十五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038_0958_b_02L 宋代沙門慧嚴等依泥洹經

23. 사자후보살품(師子吼菩薩品) ①
038_0958_b_03L師子吼菩薩品第二十三之一

그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너희들이 만일 부처님이 있는지 없는지, 법이 있는지 없는지, 승가가 있는지 없는지, 괴롬이 있는지 없는지, 집(集)이 있는지 없는지, 멸(滅)이 있는지 없는지, 도(道)가 있는지 없는지, 실제[實]가 있는지 없는지, 내[我]가 있는지 없는지, 즐거움이 있는지 없는지, 깨끗함이 있는지 없는지, 항상한지 무상한지, 승(乘)이 있는지 없는지, 유(有)가 있는지 없는지, 인이 있는지 없는지, 과(果)가 있는지 없는지, 지음이 있는지 없는지, 업이 있는지 없는지, 과보가 있는지 과보가 없는지를 의심하거든, 너희 마음대로 물으라. 내가 너희들에게 낱낱이 해설하리라.
038_0958_b_04L爾時佛告一切大衆諸善男子汝等若疑有佛無佛有法無法有僧無僧有苦無苦有集無集有滅無滅有道無道有實無實有我無我有樂無樂有淨無淨有常無常有乘無乘有性無性有衆生無衆生有有無有有眞無眞有因無因有果無果有作無作有業無業有報無報者今恣汝問‚吾當爲汝分別解說
선남자여, 나는 진실로 하늘이나 사람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내게 와서 묻는 것을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노라.”
038_0958_b_13L善男子我實不見若天若人若魔若梵若沙門若婆羅門‚有來問我不能答者
이때에 그 회중에 이름이 사자후(師子吼)라고 하는 한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용모를 단정히 하며 의복을 바로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여쭙겠사오니, 여래께서는 크게 어여삐 여기시어 허락하시옵소서.”
038_0958_b_15L爾時會中有一菩薩名師子吼卽從座起斂容整服前禮佛足長跪叉手白佛言世尊我適欲問‚如來大慈‚復垂聽許
038_0958_c_01L이때에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희들은 이 보살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존중하고 찬탄하며, 가지각색 향과 꽃과 풍류와 영락과 번과 일산과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의약과 집과 전당으로 공양하며,영접하고 전송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지나간 부처님들께 선근을 깊이 심어 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지금 내 앞에서 사자후를 하려는 것이니라.
038_0958_b_18L爾時‚佛告諸大衆言諸善男子汝等今當於是菩薩深生恭敬‚尊重讚歎‚應以種種香花伎樂瓔珞幡蓋衣服飮食臥具醫藥房舍殿堂而供養之‚迎來送去所以者何是人已於過去諸佛深種善根福德成就‚是故今於我前欲師子吼
선남자여, 마치 사자가 자기의 기운을 알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뽐내며 네 발로 땅을 짚고 굴속에 있으면서 꼬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내지르듯이, 이런 여러 가지 모양을 갖추면 이는 크게 사자후하려는 줄을 알 것이다. 참말 사자왕이 새벽에 굴 속에서 나와 몸을 다듬고 입을 벌리고 사방을 살피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열한 가지 일을 위함이니라.
그 열한 가지란, 첫째는 사자가 아니면서 사자 행세를 하는 무리를 부수려는 것이요, 둘째는 몸에 있는 기운을 시험함이요, 셋째는 있는 곳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요, 넷째는 새끼들로 하여금 있는 처소를 알게 하려는 것이요, 다섯째는 여러 동무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요, 여섯째는 자는 놈을 깨우려 함이요, 일곱째는 마음 놓은 짐승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 함이요, 여덟째는 여러 짐승들로 하여금 와서 복종케 하려는 것이요, 아홉째는 향상(香象)들을 조복하려 함이요, 열째는 새끼들을 가르치려는 것이요, 열한째는 자기의 권속들을 장엄하려는 것이니라. 모든 짐승이 사자후하는 소리를 들으면, 물에 사는 짐승들은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뭍에 사는 짐승들은 굴속에 숨고, 날아다니는 놈들은 떨어지고, 향상들은 넋을 잃고 똥을 싸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여우는 사자를 백 년 동안 따라다니어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는데, 사자의 새끼는 3년만 되어도 큰 사자처럼 사자후하느니라.
038_0958_c_04L善男子如師子王自知身力牙爪鋒四足據地安住巖穴振尾出聲有能具如是諸相當知是則能師子眞師子王‚晨朝出穴頻申欠呿向顧望發聲震吼‚爲十一事何等十爲欲壞實非師子詐作師子故爲欲試自身力故爲欲令住處淨故爲諸子知處所故爲群輩無怖心故爲眠者得覺悟故一切放逸諸獸不放逸故爲諸獸來依附故爲欲調諸香象故教告諸子息故十一爲欲莊嚴自眷屬故一切禽獸聞師子吼水性之屬潛沒深淵陸行之類藏伏窟穴飛者墮落諸大香象怖走失糞諸善男子如彼野干‚雖逐師子至于百年終不能作師子吼也若師子子始滿三年則能哮吼如師子王
038_0959_a_01L선남자여, 여래 정각(正覺)께서는 지혜의 이빨과 발톱이며, 4여의족(如意足)과 6바라밀을 만족한 몸에, 10력이 용맹하고대비로 꼬리를 삼아서 4선정의 청정한 굴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사자후하나니, 마군을 쳐부수고 중생에게 10력을 보이며, 부처님이 행하는 곳을 나타내어 사견(邪見)을 가진 사람에게 귀의할 바를 지으며, 생사를 두려워하는 중생들을 무마하여 무명의 졸음에서 깨어나게 하며, 나쁜 짓을 행하는 이가 뉘우침을 내게 하고, 사견을 가진 중생들을 깨우치느니라. 육사외도는 사자후가 아닌 줄을 알게 하려는 연고며, 부란나(富蘭那)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려는 연고며, 2승들로 하여금 뉘우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연고며, 5주(住) 보살들로 하여금 큰 힘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연고며, 바른 견해를 가진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사견을 가진 4부중에게 두려운 생각이 없게 하려는 까닭으로, 거룩한 행ㆍ청정한 행ㆍ하늘의 행을 하는 굴속으로부터 몸을 쭉 펴면서 나오는 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교만을 깨뜨리려는 까닭이며, 입을 벌리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법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며, 사방을 살피는 것은 중생들을 4무애(無礙)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며, 네 발로 땅을 짚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지계(持戒)바라밀에 구족히 머물게 하려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사자후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라 함은 결정한 말이니, 모든 중생이 모든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항상 계시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038_0958_c_22L善男子如來正覺智慧牙爪四如意六波羅蜜滿足之身十力雄猛悲爲尾安住四禪淸淨窟宅爲諸衆生而師子吼‚摧破魔軍示衆十力佛行處爲諸邪見作歸依所‚安撫生死怖畏之衆覺悟無明睡眠衆生‚行惡法者爲作悔心開示邪見一切衆令知六師非師子吼故‚破富蘭那等憍慢心故‚爲令二乘生悔心故‚爲教五住諸菩薩等生大力心故‚爲令正見四部之衆於彼邪見四部徒衆不生怖畏故‚從聖行梵行天行窟宅頻申而出爲欲令彼諸衆生等破憍慢故‚欠呿爲令諸衆生等生善法故‚四向顧望爲令衆生得四無㝵故‚四足據地爲令衆生具足安住尸波羅蜜故‚故師子吼師子吼者名決定說‚一切衆生悉有佛性如來常住‚無有變易
선남자여, 성문이나 연각들은 한량없는 백천 아승기겁 동안에 여래 세존을 따라다니더라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거니와, 10주 보살이 이 세 가지 행을 닦기만 하면 능히 사자후할 것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이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이제 이러한 대사자후를 하려는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히 여기고 찬탄하여야 하느니라.”
038_0959_a_18L善男子聲聞緣覺雖復隨逐如來世尊無量百千阿僧祇劫而亦不能作師子吼十住菩薩若能修行是三行處當知是則能師子吼諸善男是師子吼菩薩摩訶薩今欲如是大師子吼‚是故汝等應當深心供養恭敬尊重讚歎
038_0959_b_01L그때에 세존께서 사자후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으려거든 이제 마음대로 물으라.”
038_0959_b_01L爾時世尊告師子吼菩薩摩訶薩言善男子汝若欲問今可隨意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불성이라 하오며, 무슨 뜻으로 불성이라 이름하오며, 무슨 까닭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나이까? 만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있는 불성을 보지 못하나이까? 10주 보살은 무슨 법에 머물렀으므로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무슨 법에 머물렀으므로 분명하게 보나이까? 10주 보살은 무슨 눈이기에 분명하게 보지 못하며, 부처님께서는 무슨 눈이기에 분명하게 보나이까?”
038_0959_b_03L師子吼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云何爲佛以何義故‚名爲佛性何故復名常樂我淨若一切衆生有佛性者何故不見一切衆生所有佛性十住菩薩住何等法不了了見佛住何等法而了了見十住菩薩以何等眼不了了佛以何眼而了了見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장하고 장하다. 어떤 사람이나 법을 위하여 물으면, 이는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나니, 하나는 지혜요 다른 하나는 복덕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런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한 이라면 곧 불성을 알며, 불성이라 이름하는 것도 알 것이며, 내지 10주 보살은 무슨 눈으로 보고, 부처님 세존들은 무슨 눈으로 보는 줄을 알 것이니라.”
038_0959_b_10L佛言善男子善哉善哉若有人能爲法諮啓則爲具足二種莊嚴一者二者福德若有菩薩具足如是二莊嚴者則知佛性亦復解知名爲佛乃至能知十住菩薩以何眼見佛世尊以何眼見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지혜 장엄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복덕 장엄이라 하나이까?”
038_0959_b_16L師子吼菩薩言世尊云何名爲智慧莊嚴云何名爲福德莊嚴
“선남자여, 지혜 장엄이라 함은, 1지(地)로부터 10지에 이르는 것을 지혜 장엄이라 하고, 복덕 장엄이라 함은 보시바라밀로부터 내지 반야에 이르는 것이요, 반야바라밀은 아니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장엄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말함이요, 복덕 장엄은 성문ㆍ연각과 9주 보살을 말하는 것이니라.
038_0959_b_18L善男子莊嚴者謂從一地乃至十地‚是名慧莊嚴福德莊嚴者謂檀波羅蜜乃至般若非般若波羅蜜復次善男子莊嚴者所謂諸佛菩薩福德莊嚴者謂聲聞緣覺九住菩薩
038_0959_c_01L또 선남자여, 복덕 장엄은 함이 있는 것이요, 유루(有漏)요,유(有)가 있고 과보가 있고 걸림이 있고 항상하지 아니한 것이니, 그는 범부의 법이요, 지혜 장엄은 함이 없는 것이요 무루요 유가 없고 과보가 없고 걸림이 없고 항상 머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으므로, 깊고 묘한 이치를 묻는 것이며, 나도 이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으므로, 이 이치를 대답하는 것이니라.”
038_0959_b_23L復次善男子福德莊嚴者有爲有漏有有有果報有㝵非常‚是凡夫法莊嚴者無爲無漏無有無果報無㝵善男子汝今具足是二莊嚴‚是故能問甚深妙義我亦具足是二莊嚴能答是義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이러한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다면 한 가지 두 가지를 물을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두 가지를 대답한다 하시나이까? 왜냐 하면 모든 법에는 한 가지 두 가지가 없는 까닭이니, 한 가지 두 가지라 함은 범부의 집착이니이다.”
038_0959_c_06L師子吼菩薩摩訶薩言世尊若有菩薩具足如是二莊嚴者則不應問一種二種‚云何世尊說言能答一種二所以者何一切諸法無一二種‚一二種者是凡夫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두 가지 장엄이 없다면, 한 가지 두가지를 알지 못하려니와, 보살이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으므로 한 가지 두 가지를 이해하느니라. 모든 법이 한 가지 두 가지가 없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한 가지 두 가지가 없다면, 모든 법은 하나도 없고 둘도 없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한 가지 두 가지가 범부의 집착이라 하면 이는 곧 10주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요, 범부가 아니니라. 왜냐 하면 하나라 함은 열반이요 둘이라 함은 생사이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하나를 열반이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요, 어찌하여 둘을 생사라 하는가, 애(愛)와 무명인 까닭이니라. 항상함을 열반이라 함은 범부의 모양이 아니요, 생사를 둘이라 함도 범부의 모양이 아니니, 이런 뜻으로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한 이는 능히 묻고 능히 대답한다 하느니라.
038_0959_c_11L佛言善男子若有菩薩無二種莊嚴則不能知一種二種若有菩薩具二莊嚴則能解知一種二種若言諸法無一二者是義不然何以故若無一云何得說一切諸法無一無二善男子若言一二是凡夫相是乃名爲十住菩薩非凡夫也何以故一者爲涅槃二者名爲生死何故一者名爲涅槃以其常故何故二者名爲生愛無明故常涅槃者非凡夫相死二者亦非凡夫相以是義故具二莊嚴者能問能答
038_0960_a_01L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어떤 것을 불성이라 하느냐’ 하였으니, 자세히 들으라.내가 그대에게 하나하나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불성은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하고, 제일의공은 지혜라 이름하느니라. 공이라 말하는 것은 공한 것이니 공하지 아니한 것을 보지 않는 것이요, 지혜라 함은 공한 것이나 공하지 아니한 것과, 항상한 것이나 무상한 것과, 괴로운 것이나 즐거운 것과, 나인 것이나 내가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니라. 공이란 것은 온갖 생사요 공하지 않다는 것은 대열반이며, 내지 내가 없다는 것은 생사요 나라는 것은 대열반이니라. 온갖 공한 것만 보고 공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중도(中道)라 이름할 수 없으며, 내지 온갖 내가 없는 것만 보고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중도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중도란 것은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불성은 항상하여 변하지 아니하거니와, 무명에 덮이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볼 수 없게 하느니라. 성문과 연각은 모든 공한 것만 보고 공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하며, 내지 모든 내가 없는 것만 보고 나인 것은 보지 못하나니, 이런 뜻으로 제일의공을 얻지 못하며, 제일의공을 얻지 못하므로 중도를 행하지 못하고, 중도가 없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038_0959_c_23L善男子汝問云何爲佛性者‚諦聽吾當爲汝分別解說善男子佛性者‚名第一義空第一義空‚名爲智慧所言空者不見空與不空智者見空及與不空常與無常苦之與樂我與無我空者‚一切生死不空者‚謂大涅乃至無我者卽是生死我者‚謂大涅槃見一切空不見不空不名中道‚乃至見一切無我不見我者不名中中道者名爲佛性以是義故佛性常恒‚無有變易‚無明覆故令諸衆生不能得見聲聞緣覺見一切空不見不空乃至見一切無我不見於我是義故不得第一義空不得第一義空故‚不行中道無中道故‚不見佛性
038_0960_b_01L선남자여, 중도를 보지 못하는 데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결정코 즐거운 행이요, 둘은 결정코 괴로운 행이요, 셋은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행[苦樂行]이니라. 결정코 즐거운 행이라 함은,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므로 비록 아비지옥에 있더라도 3선천락과 같이 여김이요, 결정코 괴로운 행이라 함은 범부들을 말함이요,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행이라 함은 성문과 연각이니, 성문과 연각은 괴롬과 즐거움을 행하면서 중도라는 생각을 하나니, 이런 뜻으로 비록 불성이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그대가 묻기를 ‘무슨 뜻으로 불성이라 이름하느냐’ 하나니 선남자여, 불성이라 함은 곧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중도 종자니라.
038_0960_a_15L善男子不見中道者凡有三種定樂行定苦行三者苦樂行樂行者所謂菩薩摩訶薩憐愍一切諸衆生故‚雖復處在阿鼻地獄‚如三禪樂定苦行者謂諸凡夫苦樂行者謂聲聞緣覺聲聞緣覺行於苦樂中道想以是義故雖有佛性而不能如汝所問以何義故名佛性者‚善男子佛性者卽是一切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中道種子
또 선남자여, 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와 상과 중이니라. 하라 함은 범천이 무상함을 항상하다고 잘못 보는 것이요, 상이라 함은 생사가 무상함을 항상하다고 잘못 보고, 삼보가 항상함을 무상하다고 잘못 여기나니, 어찌하여 상이라 하는가. 가장 위 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음이니라. 중이라 함은 제일의공이라 이름하나니, 무상한 것은 무상하다 보고 항상한 것은 항상하다 보느니라. 제일의공은 하라고 이름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온갖 범부들이 얻지 못하는 까닭이며, 상이라고 이름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곧 상인 까닭이니라. 부처님과 보살들의 닦는 도는 상도 아니고 하도 아니니, 이런 뜻으로 중도라 하느니라.
038_0960_b_02L復次善男道有三種‚謂下下者梵天無謬見是常上者生死無常謬見是三寶是常撗計無常何故名上得最上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名第一義空‚無常見無常常見於第一義空不名爲下何以故一切凡夫所不得故不名爲上何以故是上故諸佛菩薩所修之道不上不以是義故‚名爲中道
038_0960_c_01L또 선남자여, 생사의 본고장[本際]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명이요 하나는 애(愛)니라. 이 두 가지 중간에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나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중도가 생사를 깨뜨리므로 중도라 하며, 이런 뜻으로 중도의 법을 불성이라 이름하며, 그러므로 불성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건만 모든 중생들이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다 하거니와, 불성은 진실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마치 가난한 집에 숨은 보배[寶藏]가 있지만 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연고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하다가, 어떤 선지식이 말하기를 ‘그대의 집에 숨은 보배가 있거늘, 어찌하여 이렇게 빈궁하고 곤고하여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아니한가’ 하면서 방편으로 보게 하거든, 이 사람이 보았으므로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보지 못하며,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아니하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하거니와, 선지식인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방편으로써 가지가지로 가르쳐 보게 하면, 보았으므로 중생이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느니라.
038_0960_b_11L復次善男子生死本際凡有二種無明二者有愛是二中閒則有生老病死之苦‚是名中道如是中道能破生死‚故名爲中以是義故中道之法名爲佛性是故佛性常樂我淨諸衆生不能見故無常無樂無我淨‚佛性實非無常無樂無我無淨男子譬如貧人家有寶藏是人不見‚以不見故無常無樂無我無淨有善知識而語之言汝舍宅中有金寶藏‚何故如是貧窮困苦‚無常無樂無我無淨卽以方便令彼得見‚以得見故是人卽得常樂我淨佛性亦爾衆生不見‚以不見故無常無樂無我無淨‚有善知識諸佛菩薩以方便力種種教告令彼得見‚以得見故衆生卽得常樂我淨
또 선남자여, 중생들이 소견을 일으킴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하다는 소견[常見]이요 둘은 아주 없다는 소견[斷見]이니라. 이러한 두 소견은 중도라 이름하지 아니하니라. 항상함도 없고 아주 없다는 것도 없음은 곧 12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니, 이것을 불성이라 하니라. 2승들은 비록 12인연을 관찰하여도 불성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불성이 항상하지만 모든 중생들은 무명에 덮였으므로 보지 못하느니라. 또 12인연의 강을 건너지 못함은 토끼나 말과 같나니, 왜냐 하면 불성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12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종자니, 이런 뜻으로 12인연을 불성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오이[胡苽]를 열병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열병의 인연이 되는 연고며, 12인연도 그와 같으니라.
038_0960_c_05L復次善男子衆生起見凡有二種常見二者斷見如是二見不名中無常無斷乃名中道無常無斷卽是觀照十二緣智‚如是觀智是名佛性二乘之人雖觀因緣猶亦不得名爲佛性佛性雖常以諸衆生無明覆故不能得見又未能渡十二緣猶如兔馬何以故不見佛性故男子是觀十二因緣智慧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種子以是義故二因緣名爲佛性善男子譬如胡苽名爲熱病何以故能爲熱病作因緣十二因緣亦復如是
038_0961_a_01L선남자여, 불성은 인이 있고 인의 인[因因]이 있으며, 과가 있고 과의 과[果果]가 있느니라. 인은 12인연이요 인의 인은 곧 지혜며, 과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과의 과는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무명이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식(識)이 과도 되고과의 과도 되나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12인연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항상하지도 않고 아주 없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니니라. 선남자여, 인이요 과가 아님은 불성과 같고, 과요 인이 아님은 대반열반과 같고, 인도 되고 과도 됨은 12인연으로 생긴 법과 같거니와,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님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인도 과도 아니므로 항상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038_0960_c_18L善男子佛性有因有因因有果有果果有因者卽十二因緣因因者卽是智慧有果卽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果卽是無上大般涅槃善男子譬如無明爲因諸行爲果行因識果以是義故彼無明體亦因亦因因‚識亦果亦果果‚佛性亦爾善男子以是義故十二因緣不出不滅不常不斷非一非二不來不去非因非果善男子因非果如佛性是果非因如大涅槃是因是果如十二因緣所生之法 ‚非因非果名爲佛性非因果故常恒無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서 말하기를 ‘12인연은 그 뜻이 매우 깊어서,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으므로 부처님과 보살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으로 미칠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매우 깊다 하는가. 중생의 업행(業行)은 항상하지도 않고 아주 없지도 않지만 과보를 얻으며 비록 잠깐잠깐에 멸하지만 잃어지지 아니하며, 짓는 이는 없지만 짓는 업은 있으며, 받을 이는 없지만 과보는 있으며, 받는 이가 멸하더라도 과보는 없어지지 아니하며, 생각하여 앎이 없지만 화합하여 있느니라. 모든 중생들은 12인연과 함께 행하면서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보지도 알지도 못하므로 나중과 처음이 없느니라. 10주 보살은 나중만 보고 처음을 보지 못하거니와, 부처님 세존은 처음도 보고 나중도 보나니, 이런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불성을 본다 하느니라.
038_0961_a_08L以是義故我經中說十二因緣其義甚深無知無見‚不可思惟乃是諸佛菩薩境界非諸聲聞緣覺所及何義故‚甚深甚深衆生業行不常不斷而得果報雖念念滅而無所失‚雖無作者而有作業‚雖無受者而有果報‚受者雖滅果不敗亡‚無有慮知合而有一切衆生雖與十二因緣共行而不見知不見知故無有終始住菩薩唯見其終不見其始‚諸佛世尊見始見終以是義故‚諸佛了了得見佛性
038_0961_b_01L선남자여, 모든 중생은 12인연을 보지 못하므로 바퀴돌 듯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누에가 고치를 만들어서 스스로 나고 스스로 죽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스스로 번뇌의 업을 짓고는 나고 죽는 데서 헤매나니, 공을 치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12인연을 보는 이는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이는곧 부처님을 본다 하였으니, 부처님께서는 곧 불성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이 이것으로 성품을 삼는 연고니라.
038_0961_a_19L善男子一切衆生不能見於十二因緣是故輪轉善男子如蠶作繭‚自生自死一切衆生亦復如是見佛性故自造結業流轉生死‚猶如拍鞠善男子是故我於諸經中說‚若有人見十二緣者卽是見法‚見法者卽是見佛佛者卽是佛性何以故切諸佛以此爲性
선남자여, 12인연을 보는 지혜에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하(下)요 둘은 중이요 셋은 상이요 넷은 상상이니라. 하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불성을 보지 못하나니, 보지 못하는 연고로 성문의 도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불성을 보지 못하나니,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연각의 도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보아도 분명치 못하나니, 분명치 못하므로 10주지(住地)에 머물고, 상상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분명히 보나니,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를 얻느니라.이런 뜻으로 12인연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불성은 곧 제일의공이요, 제일의공은 중도라 하고 중도는 부처라 이름하며 부처는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038_0961_b_03L善男子觀十二緣智凡有四種一者二者三者四者上上下智觀者不見佛性以不見故‚得聲聞道中智觀者不見佛性以不見故‚得緣覺道上智觀者見不了了不了了故‚住十住地上上智觀見了了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以是義故十二因緣名爲佛性佛性者卽第一義空第一義空名爲中道中道者卽名爲佛佛者名爲涅槃
그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과 불성이 차별이 없다면, 모든 중생들은 도를 닦아서 무엇하오리까?”
038_0961_b_12L爾時師子吼菩薩摩訶薩白佛言若佛與佛性無差別者一切衆生何用修道
038_0961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것은 옳지 아니하다. 부처님과 불성이 비록 차별이 없으나, 모든 중생들이 모두 구족하지 못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어미를 살해하고 해한 뒤에 뉘우침을 내었다면, 두 가지 업이 비록 선하더라도 이 사람은 지옥 사람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니라. 이 사람에게 비록 지옥의 5음과 18계와 6입이 없더라도 오히려 지옥 사람이란 이름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어떤 이가 선한 일을 닦으면 하늘 사람을 본다 하고 나쁜 일을 행하면 지옥을 본다 하나니, 왜냐 하면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하였으나, 모든 중생이 참으로 32상과 80종호를 갖추지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이 경에서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038_0961_b_15L佛言善男子如汝所問‚是義不然佛與佛性雖無差別然諸衆生悉未具足善男子譬如有人惡心害母害已生悔‚二業雖善是人故名地獄人也何以故是人定當墮地獄是人雖無地獄陰界諸入猶故得名爲地獄人善男子是故我於諸經中說若見有人修行善者名見天人修行惡者名見地獄何以故定受報善男子一切衆生定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是故我說一切衆生悉有佛性‚一切衆生眞實未有三十二相八十種好以是義故我於此經而說是偈

본래는 있으나 지금은 없으며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으니
이 세상 앞세상 지난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나니.
038_0961_c_05L本有今無‚
本無今有‚
三世有法‚
無有是處
038_0962_a_01L
선남자여, 있다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음에 있는 것이요 둘은 지금에 있는 것이요 셋은 지난적에 있는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오는 세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것을 불성이라 하고, 모든 중생이 지금에 번뇌의 결박이 있으므로 현재에 32상과 80종호가 없으며, 모든 중생이 지나간 세상에 번뇌를 끊은 일이 있었으므로 현재에 불성을 보게 되는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내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으며, 내지 일천제들도 불성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일천제들은 선한 법이 없으며 불성도 선한 법이거니와, 오는 세상에 있을 것이므로 일천제들이 불성이 있다 하나니, 왜냐 하면 일천제들도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집에 우유와 타락이 있는데, 다른 이가 묻기를 그대에게 소(酥)가 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있노라 함과 같나니, 타락이 실로 소는 아니지만, 공교한 방편으로 소를 만들 수 있으므로 소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중생도 그와 같아서 모두 마음이 있으며, 마음이 있는 이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중생이다 불성이 있다고 내가 떳떳하게 말하느니라.
038_0961_c_07L善男子有者凡有三種未來有現在有過去有一切衆生未來之世當有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佛性一切衆生現在悉有煩惱諸結是故現在無有三十二相八十種好一切衆生過去之世有斷煩惱‚是故現在得見佛性以是義故我常宣說一切衆生悉有佛性‚乃至一闡提等亦有佛性一闡提等無有善法佛性亦善以未來有故‚一闡提等悉有佛何以故一闡提等定當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善男子譬如有人‚家有乳酪有人問言汝有酥耶我有酪實非酥‚以巧方便‚定當得故‚故言有酥衆生亦爾悉皆有心有心者定當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是義故我常宣說一切衆生悉有佛性
선남자여, 필경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장엄필경(莊嚴畢竟)이요 둘은 구경(究竟)필경이며, 하나는 세간필경이요 둘은 출세간필경이니라. 장엄필경은 6바라밀이요 구경필경은 모든 중생이 얻을 1승(乘)이며, 1승은 불성이라 하나니,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다 1승이 있건만 무명에 덮이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북구로주나 33천은 과보가 덮이어서 여기 있는 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불성도 그러하여 번뇌에 덮이었으므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느니라.
038_0962_a_02L善男子畢竟有二種一者莊嚴畢竟二者究竟畢竟一者世閒畢竟二者出世畢竟莊嚴畢竟者六波羅蜜竟畢竟者一切衆生所得一乘一乘者‚名爲佛性以是義故我說一切衆生悉有佛性一切衆生悉有一乘無明覆故‚不能得見善男子如鬱單三十三天‚果報覆故此閒衆生不能得見佛性亦爾諸結覆故衆生不見
또 선남자여, 불성은 곧 수릉엄삼매니 성품이 제호(醍醐)와 같으며, 여러 부처님의 어머니이니, 수릉엄삼매의 힘으로써 부처님들로 하여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게 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다 수릉엄삼매가 있건만 닦아 행하지 않으므로 보지 못하며,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수릉엄삼매에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하나는 수릉엄삼매요 둘은 반야바라밀이요 셋은 금강삼매요 넷은 사자후삼매요 다섯은 불성이다. 그 짓는 대로 따라서 곳곳마다 이름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한 삼매가 가지가지 이름을 얻나니, 마치 선(禪)에는 4선이라 하고, 근(根)에는 정근(定根)이라 하고, 역(力)에는 정력이라 하고, 각(覺)에는 정각(正覺)이라 하고 정(正)에는 정정(正定)이라 하고, 8대인각에는 정각(正覺)이라 하는 것과 같아서, 수릉엄삼매도 그와 같으니라.
038_0962_a_11L復次善男子佛性者‚卽首楞嚴三昧‚性如醍醐卽是一切諸佛之母以首楞嚴三昧力故而令諸佛常樂我淨一切衆生悉有首楞嚴三昧以不修行故不得見‚是故不能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善男子首楞嚴三昧者‚有五種名一者首楞嚴三昧二者般若波羅蜜三者金剛三昧四者子吼三昧五者佛性隨其所作處處得名善男子如一三昧得種種名‚如禪名四禪根名定根力名定力覺名定覺正名正定八大人覺名爲定覺首楞嚴定亦復如是
038_0962_b_01L선남자여, 모든 중생이세 가지 정(定)을 구족하였으니 상과 중과 하니라. 상정은 불성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이며, 중정은 모든 중생이 초선(初禪)을 구족한 것이니, 인연이 있으면 닦아 익히고 인연이 없으면 닦지 못하느니라. 인연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화재(火災)요, 둘은 욕계의 결박을 깨뜨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모두 중정을 구족하였다고 말하느니라. 하정은 10대지(大地) 중에 심수정(心數定)이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다 하정을 구족하였다고 말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지만, 번뇌에 덮이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10주 보살이 비록 1승을 보지만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인 줄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10주 보살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치 못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수릉(首楞)이라 함은 온갖 일이 필경이란 말이요, 엄(嚴)은 견고하단 말이니, 온갖 일이 필경에 견고함을 얻으므로 수릉엄이라 하며, 그러므로 수릉엄정(首楞嚴定)을 불성이라고 이름하느니라.
038_0962_b_01L善男子一切衆生具足三定謂上上者謂佛性也‚以是故言一切衆生悉有佛性一切衆生具足初禪‚有因緣時能修習若無因緣則不能修因緣二種‚一謂火災二謂破欲界結‚以是故言一切衆生悉具中定下定者十大地中心數定也‚以是故言一切衆生悉具下定一切衆生悉有佛性煩惱覆故‚不能得見十住菩薩雖見一乘不知如來是常住法‚以是故言十住菩薩雖見佛性而不明了善男子楞者‚名一切畢竟嚴者‚名堅一切畢竟而得堅固名首楞嚴以是故言首楞嚴定名爲佛性
038_0962_c_01L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 니련선하에서 아난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목욕하려 하니 너는 옷과 비누를 가져오라 하고 물에 들어갔더니, 온갖 나는 새와 물에 살고 뭍에 사는 붙이들이 모두 와서 나를 보고, 또 5백의 범지(梵志)들이 강가에 왔다가 나에게 와서 서로 말하기를 ‘어떻게 금강 같은 몸을 얻었는가, 만일 구담이 아주 없다는 소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를 따라서 재계하는 법을 받으리라’ 하거늘, 내가 그때에 타심통[他心智]으로 범지의 마음을 알고 범지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가 아주 없다는 소견을 말한다 하는가?’
범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구담이여, 먼저부터여러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내가 없다고 하였다. 내가 없다고 하였으니 어찌 아주 없다는 소견이 아니라 하겠는가. 만일 내가 없다면 계행을 갖는 이는 누구며, 계행을 파하는 이는 누구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모든 중생이 모두 내가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였고, 모든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불성이 어찌 내가 아니겠는가. 이런 뜻으로 나는 아주 없다고 말하지 않았건만, 모든 중생이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이것을 아주 없다는 소견이라 하느니라.’
038_0962_b_15L善男子我於一時住尼連禪河告阿難言我今欲洗汝可取衣及以澡豆我旣入水一切飛鳥水陸之屬悉來觀我爾時復有五百梵志來在河邊因到我所各相謂言云何而得金剛之身若使瞿曇不說斷見我當從其啓受齋法善男子我於爾時以他心智知是梵志心之所念告梵志言何謂我說於斷見彼梵志言瞿曇於處處經中說諸衆生悉有無我言無我云何而言非斷見耶若無我持戒者誰破戒者誰佛言我亦不說一切衆生悉有無我‚我常宣說一切衆生悉有佛性佛性者豈非我耶以是義故‚我不說斷一切衆生不見佛性‚故無常無我無樂無淨‚如是則名說斷見也
이때에 여러 범지들은 불성이 곧 나라고 말함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고는 마침내 출가하여 보리도를 닦았으며, 나는 새와 물에 살고 뭍에 사는 붙이들도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마음을 내고는 곧 몸을 버리었느니라. 선남자여, 이 불성이 실로는 내가 아니지만 중생을 위하여 나라고 이름한 것이니라.
038_0962_c_09L時諸梵志聞說佛性卽是我故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尋時出家修菩提道一切飛鳥水陸之屬亦發無上菩提之心‚旣發心尋得捨身善男子是佛性者實非我也‚爲衆生故說名爲我
선남자여, 여래는 인연이 있으므로 내가 없는 것을 말하여 나라 하였으나, 실로는 내가 없으며 비록 이런 말을 하였으나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나를 말하여 내가 없다 하였으나, 실로는 내가 있는 것이며, 세계를 위하여서 내가 없다 하였으나,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불성은 내가 없건만 여래가 나라 말한 것은 이것이 항상한 까닭이며, 여래는 나건만 내가 없다고 말한 것은 자재함을 얻은 까닭이니라.”
038_0962_c_14L善男子如來有因緣故說無我爲我眞實無我雖作是說無有虛妄善男有因緣故說我爲無我‚而實有我爲世界故雖說無我而無虛妄佛性無我如來說我‚以是常故如來是我而說無我得自在故
그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는 것이 금강역사와 같을진댄 무슨 이치로 모든 중생들이 보지 못하나이까?”
038_0962_c_20L爾時師子吼菩薩摩訶薩白佛言若一切衆生悉有佛性如金剛力士者以何義故一切衆生不能得見
038_0963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마치 색법(色法)이 비록 푸르고 누르고 붉고흰 것이 다르고, 길고 짧은 모양이 있지만, 소경은 보지 못하는 것이며, 소경이 보지 못한다 하여서,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길고 짧은 모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소경은 비록 보지 못하나 눈이 있는 이는 보는 까닭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은 보지 못하나 10주 보살은 일부분을 보고 여래는 전부를 보나니, 10주 보살이 불성을 보는 것은 밤에 빛깔을 보는 것과 같고, 여래가 보는 것은 낮에 빛깔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애꾸눈이 물체를 분명하게 보지 못하지만, 용한 의원이 눈병을 치료하면 약의 효력으로 분명하게 보게 되듯이 10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치 못하지만, 수릉엄삼매의 힘으로 분명하게 볼 수 있느니라.
038_0962_c_23L佛言善男子譬如色法‚雖有靑白之異長短質像盲者不見雖復不亦不得言無靑短質像何以故盲雖不見有目見故佛性亦一切衆生雖不能見十住菩薩見少分故‚如來全見十住菩薩所見佛如夜見色如來所見‚如晝見色男子譬如瞎者見色不了‚有善良醫而爲治目以藥力故得了了見十住菩薩亦復如是雖見佛性‚不能明了以首楞嚴三昧力故能得明了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온갖 법[一切法]도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로 본다면, 이런 사람은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온갖 법은 생사라 이름하고, 온갖 법 아닌 것은 삼보를 이름한 것이니, 성문과 연각은 온갖 법이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을 보고, 온갖 법 아닌 것도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로 보나니, 이런 뜻으로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10주 보살은 온갖 법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을 보고, 온갖 법 아닌 것은 부분적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나니, 이런 뜻으로 십분 가운데서 일분을 보느니라. 부처님 세존은 온갖 법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로 보고, 온갖 법 아닌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느니라. 이런 뜻으로 불성 보기를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 열매를 보듯 하나니, 이런 뜻으로 수릉엄정을 필경이라 이름하느니라.
038_0963_a_11L善男若有人見一切諸法無常無我無淨見非一切法亦無常無我無樂無淨‚如是之人不見佛性一切者‚名爲生死非一切者‚名爲三寶聲聞覺見一切法無常無我無樂無淨一切法亦見無常無我無樂無淨是義故不見佛性十住菩薩見一切法無常無我無樂無淨非一切法分見常樂我淨以是義故十分之中得見一分諸佛世尊見一切法無常無樂無淨非一切法見常樂我淨以是義故見於佛性如觀掌中阿摩勒菓以是義故首楞嚴定名爲畢竟
038_0963_b_01L선남자여, 마치 초하루 달을 볼 수는 없으나 없다고 할 수도 없나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범부들이 보지 못하지만 불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느니라.
038_0963_b_01L善男子譬如初月‚雖不可見不得言佛性亦爾一切凡夫雖不得見不得言無佛性也
선남자여, 불성이라 함은 10력과 4무소외(無所畏)와 크게 불쌍히 여김과 3념처(念處)니라. 모든 중생은 모두 세 가지로 번뇌를 깨뜨림이 있으므로, 그런 뒤에야 보는 것이요, 일천제들은 일천제를 깨뜨린 뒤에, 10력과 4무소외와 크게 가엾이 여김과 3념처를 얻나니, 이런 뜻으로 내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038_0963_b_04L善男子佛性者所謂十力四無所畏大悲三念處一切衆生悉有三種‚破煩惱故然後得見一闡提等‚破一闡然後能得十力四無所畏大悲念處以是義故我常宣說一切衆生悉有佛性
선남자여, 12인연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가진 것이며,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느니라.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과거의 번뇌를 무명이라 하고, 과거의 업을 행(行)이라 하고, 현재 세상에 처음으로 태에 드는 것을 식(識)이라 하고, 태에 들어서 5분(分)과 4근(根)이 구족하지 못한 것을 명색(名色)이라 하고, 4근을 구족하였으나, 촉(觸)이라 이름할 수 없는 때를 6입(入)이라 하고, 괴롭고 즐거움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촉이라 하고, 한 가지 사랑[一愛]에 물드는 것을 수(受)라 하고, 5욕을 익히어 가까이함을 애(愛)라 하고, 안과 밖으로 탐하여 구함을 취(取)라 하고, 안과 밖의 일을 위하여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일으킴을 유(有)라 하고, 현재 세상의 식을 미래의 생(生)이라 하고, 현재의 명색ㆍ6입ㆍ촉ㆍ수를 미래 세상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라 하나니, 이것을 12인연이라 이름하느니라.
038_0963_b_10L善男子十二因緣一切衆生等共有之‚亦內亦外何等十二過去煩惱‚名爲無明過去業者‚則名爲行現在世中初始受胎‚是名爲識入胎五分‚四根未具‚名爲名色具足四根‚未名觸是名六入未別苦樂‚是名爲觸習一愛‚是名爲受習近五欲‚是名爲內外貪求‚是名爲取爲內外事起身口意業‚是名爲有現在世識‚名未來生現在名色六入名未來世老病死也是名十二因緣
038_0963_c_01L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비록 12인연을 가지었으나 혹은 구족하지 못하니, 가라라(歌羅羅) 때에 죽으면 12인연이 없고, 생으로부터 늙고 죽는 데 이르면 12인연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색계의 중생들은 세 가지수와 세 가지 촉과 세 가지 애가 없고, 늙고 병드는 일이 없지만, 12인연을 구족하였다 이름하며, 무색계의 중생들은 색도 없고 내지 늙고 죽음도 없지만 역시 12인연을 구족하였다 이름하나니, 반드시 얻을 것인 까닭이며, 그러므로 중생들이 평등하게 12인연을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내가 말하느니라.
038_0963_b_21L善男子切衆生雖有如是十二因緣或有未具‚如歌羅邏時死‚則無十二從生乃至老死得具十二色界衆生無三種三種觸三種愛無有老病亦得名爲具足十二無色衆生無色乃至無有老死亦得名爲具足十二以定得故名衆生平等具有十二因緣男子佛性亦爾一切衆生定當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是故我說一切衆生悉有佛性
선남자여, 설산에 이름을 인욕(忍辱)이라 하는 풀이 있는데, 소가 먹으면 제호가 나는 것이요, 또 이상한 풀이 있으니 소가 먹으면 제호가 없어지느니라. 비록 제호가 없어지더라도 설산에 인욕초가 없다고 말할 수 없나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설산이라 함은 여래를 말함이요 인욕초는 대반열반을 말함이요, 이상한 풀은 12부경을 말함이니라. 중생이 만일 대반열반을 듣고 물으면 불성을 볼 것이니, 12부경 가운데서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나, 불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038_0963_c_08L善男子雪山有名爲忍辱‚牛若食者則出醍醐有異草牛若食者則無醍醐雖無醍不可說言雪山之中無忍辱草性亦爾雪山者‚名爲如來忍辱草者‚名大涅槃異草者‚十二部經衆生若能聽受諮啓大般涅槃則見佛性二部中雖不聞有不可說言無佛性也
038_0964_a_01L선남자여, 불성은 색(色)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기도 하고,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니며, 모양이기도 하고 모양이 아니기도 하고,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하나이기도 하고 하나 아니기도 하고, 하나도 아니고 하나 아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아주 없음[斷]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고 아주 없지 않음도 아니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며, 다하기도 하고 다하지 않기도 하고 다함도 아니고 다하지 않음도 아니며, 인이기도 하고 과이기도 하고,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기도 하며, 뜻이기도 하고 뜻이 아니기도 하고 뜻도 아니고 뜻 아님도 아니며, 글자이기도 하고 글자 아니기도 하고 글자도 아니고 글자 아님도 아니니라.
어찌하여 색이라 하는가. 금강 같은 몸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색이 아니라 하는가. 18불공법(不共法)은 색법이 아닌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닌가. 색과 색 아닌 데에 일정한 모양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모양이라 하는가. 32상인 까닭이니라.어찌하여 모양이 아니라 하는가. 모든 중생의 모양이 나타나지 않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모양과 모양 아닌 데에 결정치 못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하나라 하는가. 모든 중생이 다 1승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하나가 아니라 하는가. 3승을 말하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하나도 아니고 하나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세는 법이 없는 까닭이니라.
038_0963_c_15L善男子佛性者亦色非色非色非非亦相非相非相非非相亦一非一非一非非一非常非斷非非常非非亦有亦無非有非無亦盡非盡盡非非盡亦因亦果非因非果亦義非義非義非非義亦字非字非字非非字云何爲色金剛身故云何非色十八不共非色法故云何非色非非非色無定相故云何爲相三十二相故云何非相一切衆生相不現云何非相非非相非相不決定云何爲一一切衆生悉一乘故何非一說三乘故云何非一非非一無數法故
어찌하여 항상함이 아니라 하는가. 인연을 따라 보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아주 없음이 아니라 하는가. 아주 없다는 소견을 여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고 아주 없지 않음도 아니라 하는가. 나중과 처음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있다 하는가. 모든 중생이 모두 가진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없다 하는가. 알맞은 방편을 따라서 보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라 하는가. 허공의 성품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다한다 하는가. 수릉엄삼매를 얻은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다하지 않는다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다함도 아니고 다하지 않음도 아니라 하는가. 모든 다했다는 모양이 없어진 까닭이니라.
038_0964_a_06L云何非常從緣見故云何非斷離斷見故云何非非常非非斷無終始故云何爲有一切衆生悉皆有故云何爲無從善方便而得見故云何非有非無虛空性故云何名盡得首楞嚴三昧故云何非盡以其常云何非盡非非盡一切盡相斷故
어찌하여 인이라 하는가. 요인(了因)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과라 하는가. 결정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뜻이라 하는가. 뜻에 장애 없음[義無礙]을 모두 거두어 가진[攝取]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뜻이 아니라 하는가.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뜻도 아니고 뜻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필경까지 공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글자라 하는가. 이름이 있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글자가 아니라 하는가. 이름하는 것이 이름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글자도 아니고 글자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온갖 글자가 없어진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괴롬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라 하는가. 온갖 받는 것[受]을 없앤 까닭이니라.
038_0964_a_12L云何爲因以了因故云何爲果以決定故云何非因非果以其常故云何爲義悉能攝取義無㝵故云何非義不可說故云何非義非非義畢竟空云何爲字有名稱故云何非字無名故云何非字非非字斷一切字云何非苦非樂斷一切受故
어찌하여 내가 아니라 하는가. 여덟 가지 자재함[八自在]을 갖추지 못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나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나도 아니고 나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짓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공이라 하는가. 제일의공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공이 아니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공도 아니요 공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선한 법을 위하여 종자가 되는 까닭이니라.
038_0964_a_19L云何非我未能具得八自在故云何非非以其常故云何非我非非我不作不受故云何爲空第一義空故云何非空以其常故云何非空非非空爲善法作種子故
038_0964_b_01L선남자여, 어떤 사람이대반열반의 이러한 뜻을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불성을 본 것이니, 불성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부처님 여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불성은 5음도 18계도 6입도 아니요, 본래는 없다가 지금은 있는 것도 아니며, 있었다가 도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선한 인연으로야 중생들이 보게 되느니라. 마치 검은 쇠[黑鐵]가 불에 들어가면 붉어지고, 나와서 식어지면 도로 검어지는 것과 같나니, 이 검은 빛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인연으로 있는 것이니라. 불성도 그러하여 모든 중생의 번뇌의 불이 꺼지면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히 성취하였나니, 불성도 그러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으로 성취하였느니라.”
038_0964_b_01L善男子若有人能思惟解了『大涅槃經 』如是之義當知是人則見佛性佛性者不可思議是諸佛如來境界非諸聲聞緣覺所善男子佛性者非陰非本無今有非已有還無從善因緣‚衆生得譬如黑鐵‚入火則赤出冷還黑是黑色非內非外因緣故有佛性亦一切衆生煩惱火滅則得聞見男子如種滅已芽則得生而是芽性非內非外乃至花菓亦復如是從緣故有善男子是大涅槃微妙經典成就具足無量功德佛性亦爾悉是無量無邊功德之所成就
이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몇 가지 법을 구족히 성취하였길래,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며, 부처님들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셨길래 분명하게 보나이까?”
038_0964_b_14L爾時師子吼菩薩摩訶薩言世尊薩具足成就幾法得見佛性而不明諸佛世尊成就幾法‚得了了見
“선남자여, 보살은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성취하였으므로 불성을 보면서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욕심이 적고[少欲] 둘은 만족함을 알고[知足] 셋은 고요함[寂靜]이요 넷은 정진이요 다섯은 바른 생각[正念]이요 여섯은 바른 정[正定]이요 일곱은 바른 지혜[正慧]요 여덟은 해탈이요 아홉은 해탈을 찬탄함이요, 열은 대반열반으로 중생을 교화함이니라.”
038_0964_b_17L男子菩薩具足成就十法雖見佛性‚而不明了云何爲十一者少欲二者知足三者寂靜四者精進五者正念六者正定七者正慧八者解脫九者讚歎解脫十者以大涅槃教化衆生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욕심이 적은 것과 만족함을 아는 것이 어떻게 다르나이까?”
038_0964_b_22L師子吼菩薩言世尊少欲知足有何差別
038_0964_c_01L“선남자여, 욕심이 적은 것은 구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음이요, 만족함을 아는것은 적게 얻었을 적에 후회하지 않는 것이니라. 욕심이 적은 것은 하고자 함이 적음이요 만족함을 아는 것은 불법의 일만 위하고 마음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욕심은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나쁜 욕심이요, 둘은 큰 욕심이요, 셋은 욕망의 욕심[欲欲]이다. 나쁜 욕심이란 것은 만일 비구가 탐욕을 내어서, 모든 대중의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비구들이 나의 뒤에 따르고, 여러 사부대중이 모두 나에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찬탄하고 존중하기를 바라며, 내가 가장 먼저 사부대중에게 법을 말하거든 모든 사람들이 나의 말을 믿으며, 국왕ㆍ대신ㆍ장자들도 모두 나에게 공양하여 나로 하여금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와 의약과 훌륭한 가옥을 많이 얻어서, 생사의 욕망을 만족하려 하면 이것은 나쁜 욕심이니라.
038_0964_c_01L善男子少欲者不求不取知足得少之時心不悔恨少欲者少有所欲知足者但爲法事‚心不愁惱男子欲者有三一者惡欲二者大欲三者欲欲惡欲者若有比丘心生貪欲爲一切大衆上首令一切僧隨逐我後‚令諸四部悉皆供養恭敬尊重於我‚令我先爲四衆說法令一切信受我語‚亦令國王大臣者皆恭敬我‚令我大得衣服飮食醫藥上妙屋宅爲生死欲‚是名惡
어떤 것이 큰 욕심인가. 만일 비구가 욕심을 내어서, ‘어찌하면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내가 초주(初住)에서부터 내지 10주를 얻었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아라한과에서부터 내지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4선(禪)과 4무애지(無礙智)를 얻은 줄을 알게 하리요’ 하며, 이양을 위한다면 이것은 큰 욕심이니라.
욕망의 욕심이라 함은, 만일 비구가 범천에나 마왕천에나 자재천에나 전륜성왕이나 찰제리나 바라문으로 태어나서 자재하려 하면, 이는 이양을 위하는 것이므로 욕망의 욕심이라 하느니라.
038_0964_c_12L云何大欲若有比丘生於欲心何當令四部之衆悉皆知我得初住地乃至十住得阿耨多羅三藐三菩得阿羅漢果乃至須陁洹果我得四禪乃至四無閡智爲於利養‚是名大欲欲欲者若有比丘欲生梵天魔天自在天轉輪聖王若剎利婆羅門皆得自在爲利養故‚是名欲
038_0965_a_01L만일 이런 세 가지 나쁜 욕심의 해가 되지 아니한다면, 이는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느니라. 욕심은 25애(愛)라 하나니, 25애가 없으면 욕심이 적다 하고, 미래에 하고자 하는 일을 구하지 아니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얻고도 집착하지 아니하면 만족한 줄 안다 하며, 공경을 구하지 아니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얻고도 쌓아 두지 아니하면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욕심은 적으나 만족함을 안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 있으며, 만족할 줄은 아나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도 있으며, 욕심도 적고 만족함도 안다고 할 것이 있으며, 만족한 줄도 모르고 욕심도 적지 않다고 할 것이 있느니라. 욕심이 적은 이는 수다원이요, 만족함을 아는 이는 벽지불이요, 욕심도 적고 만족함도 아는 이는 아라한이요, 욕심도 적지 않고 만족함도 모르는 이는 보살이니라.
038_0964_c_20L若不爲是三種惡欲之所害者名少欲欲者‚名爲二十五愛無有如是二十五愛是名少欲不求未來所欲之事是名少欲得而不著是名知不求恭敬是名少欲得不積聚名知足善男子亦有少欲不名知足‚有知足不名少欲‚有亦少欲亦知足‚有不知足不少欲少欲者謂須陁洹知足者謂辟支佛少欲知足者謂阿羅漢不少欲不知足者所謂菩薩
선남자여,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데 또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선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선하지 않은 것이니라. 선하지 않은 것은 범부요 선한 것은 성인과 보살이니라. 모든 성인은 비록 도과(道果)를 얻었으나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며, 말하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시끄럽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만족함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대승 대열반경을 닦아서 불성을 보려 하나니, 그러므로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것을 닦아 익혔다 하느니라.
038_0965_a_06L男子少欲知足復有二種一者不善不善者所謂凡夫善者‚聖人菩薩一切聖人雖得道果不自稱說不稱說故心不惱恨‚是名知足善男菩薩摩訶薩修習大乘『大涅槃經 』欲見佛性‚是故修習少欲知足
어떤 것을 고요함이라 하는가. 고요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마음이 고요하고 둘은 몸이 고요함이니라. 몸이 고요함은 몸으로 하는 세 가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함이고, 마음이 고요함은 뜻으로 하는 세 가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하느니라. 몸이 고요한 이는 사부대중을 친근하지 아니하고, 사부대중의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아니하며, 마음이 고요한 이는 마침내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을 익히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하느니라.
038_0965_a_12L云何寂靜寂靜有二一者心靜二者身靜身寂靜者終不造作身三種惡心寂靜者‚亦不造作意三種惡是則名爲身心寂靜身寂靜者不親近四衆預四衆所有事業心寂靜者終不修習貪欲是則名爲身心寂
038_0965_b_01L어떤 비구는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이가 있고 마음은 고요하나 몸이 고요하지 못한 이도 있고,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도 있고, 몸과 마음이 모두 고요하지 못한 이도 있느니라.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것은, 어떤 비구가 고요한 데서 좌선(坐禪)하느라고 사부대중을 멀리하였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쌓아 두나니, 이를 일러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다 하느니라. 마음은 고요하나 몸이 고요하지 못한 것은, 어떤 비구가사부대중과 국왕과 대신을 친근하면서도, 마음에는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을 끊었으면, 이것을 말하여 마음은 고요하나 몸은 고요하지 못하다 하느니라.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는 부처님과 보살이요, 몸과 마음이 모두 고요하지 못한 이는 모든 범부들이니라. 왜냐 하면 범부들은 몸과 마음이 비록 고요하더라도,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음을 깊이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런 뜻으로 범부들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법을 고요하게 하지 못하고, 일천제들은 4중금을 범하고 5역죄를 지으므로, 이런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038_0965_a_19L或有比丘身雖寂靜心不寂靜心寂靜身不寂靜有身心寂靜又有身心俱不寂靜身寂靜‚心不寂靜者或有比丘坐禪靜處遠離四衆心常積集貪欲癡‚是名身寂靜‚心不寂心寂靜‚身不寂靜者或有比丘親近四衆國王大臣斷貪癡‚是名心寂靜‚身不寂靜身心寂靜者謂佛身心不寂靜者謂諸凡夫何以故凡夫之人‚身心雖靜不能深觀無常無樂無我無淨以是義故凡夫之人不能寂靜身口意業一闡提輩犯四重禁作五逆罪‚如是之人亦不得名身心寂靜
어떤 것을 정진이라 하는가. 어떤 비구가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 업이 깨끗하기 위하여, 온갖 선하지 못한 업을 멀리 여의고, 모든 선한 업을 닦는 것을 정진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렇게 부지런히 정진하는 이는 여섯 군데에 생각을 두나니, 부처님과 법과 승가와 계율과 보시와 하늘이니라. 이것을 바른 생각[正念]이라 하느니라.
바른 생각을 갖춘 이가 얻는 삼매는 이것을 바른 정[正定]이라 하느니라.
바른 정을 갖춘 이는 모든 법을 관찰하되 허공과 같이 하나니, 이것을 바른 지혜[正慧]라 하느니라.
바른 지혜를 갖춘 이는 온갖 번뇌의 결박을 여의었나니 이것을 해탈이라 하느니라.
해탈을 얻은 이는 중생들을 위하여 해탈을 칭찬하면서, 이 해탈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 하나니, 이것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해탈은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요, 열반은 곧 번뇌로 결박한 불이 꺼지는 것이니라. 또 열반은 집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번뇌라는 사나운 비바람을 막는 까닭이니라. 또 열반은 귀의할 데라 하나니, 왜냐 하면 능히 모든 공포를 없애는 까닭이니라. 또 열반은 섬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네 가지 빠른 물결[四暴流]로도 떠내려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니라.
038_0965_b_09L云何精進若有比丘欲令身口意業淸淨遠離一切諸不善業修習一切諸善業者是名精進是勤進者念六處所謂佛是名正具正念者‚所得三昧是名正定正定者‚觀見諸法猶如虛空是名正具正慧者‚遠離一切煩惱諸結名解脫得解脫者爲諸衆生稱美解言是解脫常恒不變‚是名讚歎解解脫卽是無上大般涅槃涅槃者卽是煩惱諸結火滅又涅槃者名爲屋宅何以故能遮煩惱惡風雨故涅槃者名爲歸依何以故能過一切諸怖畏故又涅槃者名爲洲渚何以四大暴河不能漂故
038_0965_c_01L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욕심 빠른 물결[欲暴流]이요 둘은 유(有)의 빠른 물결이요 셋은 소견의 빠른 물결이요, 넷은 무명의 빠른 물결이니라. 그러므로 열반을 섬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열반은 필경에 돌아갈 데니, 왜냐 하면 모든 필경의 낙을 얻는 까닭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갖추면 불성을 보기는 하나 분명치 못하느니라.
038_0965_c_01L何等爲四欲暴二者有暴三者見暴明暴是故涅槃名爲洲渚又涅槃者名畢竟歸何以故能得一切畢竟樂若有菩薩摩訶薩成就具足如是十法雖見佛性‚而不明了
또 선남자여, 출가한 사람에게 네 가지 병이 있어서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지 못하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병이라 하는가. 네 가지 나쁜 탐욕이니, 하나는 의복을 위한 탐욕이요 둘은 음식을 위한 탐욕이요 셋은 와구를 위한 탐욕이요 넷은 유(有)의 탐욕이니, 이것을 네 가지 나쁜 탐욕이라 하느니라. 이 출가한 이의 병은 네 가지 좋은 약이 있어 치료하나니, 누더기옷[糞掃衣]으로는 비구의 의복을 위하는 탐욕을 고치고, 걸식함으로는 음식을 위한 탐욕을 깨뜨리고, 나무 밑에 앉음으로는 와구를 위한 탐욕을 깨뜨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함으로는 비구들의 유의 탐욕을 깨뜨린다. 이 네 가지 약으로 네 가지 병을 치료하는 것을 성인의 행이라 하며, 이런 성인의 행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038_0965_c_06L復次善男子出家之人有四種病故不得四沙門果何等四病謂四惡爲衣欲爲食欲爲臥具欲爲有欲是名四惡欲是出家病四良藥能療是病謂糞掃衣能治比丘爲衣惡欲‚乞食能破爲食惡欲‚樹下能破臥具惡欲‚身心寂靜能破比丘爲有惡欲以是四藥除是四病‚是名聖行如是聖行‚則得名爲少欲知
고요함은 네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하나는 출가한 즐거움이요 둘은 고요한 즐거움이요 셋은 영원히 멸하는 즐거움이요 넷은 끝까지 즐거움이라. 이 네 즐거움을 얻었으므로 고요하다 이름하느니라.
4정진을 갖추었으므로 정진이라 하고, 4념처(念處)를 갖추었으므로 바른 생각이라 하고, 4선정을 갖추었으므로 바른 정이라 하고, 네 가지 진실한 이치[四聖實]를 갖추었으므로 바른 지혜라 하고, 모든 번뇌의 결박을 영원히 여의었으므로 해탈이라 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꾸짖으므로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머물러 구족하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038_0965_c_16L寂靜者有四種樂何等爲四一者出家樂寂靜樂永滅樂畢竟得是四樂名爲寂靜具四精進名精進具四念處故名正念具四禪故名正定見四聖實故故名正慧永斷一切煩惱結故故名解脫呵說一切煩惱過故故名讚歎解脫善男菩薩摩訶薩安住具足如是十雖見佛性而不明了
038_0966_a_01L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경을 듣고 친근하고 닦아서 모든 세상일을 멀리 여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출가한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면 만족함을 안다 하고, 고요한 곳을 가까이하고 시끄러운 데를 멀리 여의면 고요하다 하느니라.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이는 고요한 데를 좋아하지 못하거니와, 만족함을 아는 이는 고요한 데를 좋아하고, 고요한 데서 항상 생각하기를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말하여 사문의 도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얻지 못하였거늘, 어찌 사람을 속이리요’ 이렇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사문의 도과를 닦는 것을 정진이라 하고, 대반열반을 친근하여 익힘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하늘의 행을 따라 익힘을 바른 정이라 하고, 이 정에 편안하게 머물러 옳게 보고 옳게 아는 것을 바른 지혜라 하고, 옳게 보고 옳게 아는 이가 번뇌의 결박을 멀리 여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10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열반을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물러 구족하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느니라.
038_0966_a_01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聞是經已親近修習遠離一切世閒之事‚是名少欲旣出家已不生悔心是名知足旣知足已近空閑處遠離憒鬧是名寂靜不知足者不樂空閑夫知足者常樂空寂‚於空寂處常作是念切世閒悉謂我得沙門道果然我今者實未能得我今云何誑惑於人是念已精勤修習沙門道果‚是名精親近修習大涅槃者是名正念順天行是名正定安住是定正見正是名正慧正見知者能得遠離煩惱結縛是名解脫十住菩薩爲衆生稱美涅槃‚是則名爲讚歎解脫男子菩薩摩訶薩安住具足如是十雖見佛性而不明了
038_0966_b_01L또 선남자여, 욕심이 적다는 것은 비구가 고요한 데 있어서 단정하게 앉아 눕지 않거나, 나무 밑에 있거나 무덤 곁에 있거나 한데에 있거나 풀밭에 가서 앉았으며, 걸식하여 먹으면서 얻는 대로 만족하고, 혹은 한 자리에서 먹으면서 한 때만 먹고, 세 가지 가사와 누더기옷과 취의(毳衣)만을 가지면, 이것을 욕심이 적다 하고, 이런 일을 행하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면 만족함을 안다 하고, 공삼매(空三昧)를 닦는 것을 고요하다고 하고, 4과를 얻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마음을 쉬지 아니함을 정진이라 하고,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다고 마음을 두어 생각함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8해탈을 닦음을 바른 정이라 하고, 4무애를 얻는 것을 바른 지혜라 하고, 일곱 가지 누(漏)를 여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열반에는 열 가지 모양이 없다고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나니, 열 가지 모양은 낳는 것ㆍ늙는 것ㆍ병나는 것ㆍ죽는 것ㆍ빛ㆍ소리ㆍ향기ㆍ맛ㆍ닿임ㆍ무상이라, 이 열 가지를 여의는 것을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머물러 구족하면, 불성을 보면서도 분명하지 못하느니라.
038_0966_a_17L復次善男子夫少欲者若有比丘住空寂處端坐不臥或住樹下或在塚或在露處隨有草地而坐其上食而食隨得爲足‚或一坐食不過一唯畜三衣糞衣毳衣是名少欲行是事心不生悔是名知足修空三是名寂靜得四果已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不休息‚是名精進心思惟如來常恒無有變易是名正修八解脫是名正定得四無㝵名正慧遠離七漏是名解脫稱美涅槃無有十相名歎解脫十相者無常遠離十相者名大涅槃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安住具足如是十法雖見佛性而不明了
038_0966_c_01L또 선남자여, 탐욕이 많아서 국왕ㆍ대신ㆍ장자ㆍ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를 친근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수다원과나, 내지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여 이양을 위하며, 가고 서고 앉고 눕거나 내지 대소변을 하다가도 단월을 만나면 공경을 행하거나 상대하여 말을 하여 나쁜 욕심을 파하는 이는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며, 모든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였더라도, 여래의 행하는 곳과 같이 하면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은 바른 생각과 바른 정에 가까워지는 인연이며, 스승이나 함께 공부하는 이의 칭찬을 받으며, 나도 항상 여러 경전에서 이 두 가지 법을 찬탄하였으니, 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는 이는 대반열반과 다섯 가지 낙에 가까워지리니 이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계행을 굳게 지니는 이를 정진이라 하고, 부끄러움이 있는 이를 바른 생각이라 하고, 마음의 모양을 보지 않는 것을 바른 정이라 하고, 모양이 없어져서번뇌가 끊어짐을 해탈이라 하고, 이러한 대반열반을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문다 하나니,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아니하니라.
038_0966_b_10L復次善男子爲多欲故親近國王長者剎利婆羅門毘舍首陁‚自稱我得須陁洹果至阿羅漢果爲利養故行住坐臥乃至大小便利若見檀越猶行恭敬接引語言破惡欲者名爲少欲雖未能壞諸結煩惱而能同於如來行處‚是名知足善男子是二法‚乃是念定近因緣也‚常爲師宗同學所讚‚我亦常於處處經中稱美讚歎如是二法若能具足是二法則得近於大涅槃門及五種樂‚是名寂靜堅持戒者名爲精進有慚愧名爲正念不見心相名爲正定求諸法性相因緣是名正慧無有相煩惱則斷是名解脫稱美如是『大涅槃經 』名讚解脫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安住十法雖見佛性而不明了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10주 보살은 무슨 눈이길래,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고, 부처님 세존은 무슨 눈이길래 불성 보기를 분명히 하는가 하였나니, 선남자여, 혜안(慧眼)으로 보는 까닭으로 분명하지 못하고, 불안(佛眼)으로 보는 까닭으로 분명한 것이며, 보리행을 하는 까닭으로 분명하지 못하고, 행함이 없으므로 분명한 것이며, 10주에 머물렀으므로 보는데도 분명하지 못하고,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므로 분명한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지혜의 인이므로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인과를 끊었으므로 분명하게 보느니라. 온갖 것을 깨달은 것을 불성이라 하거니와, 10주 보살은 온갖 것을 깨달았다 이름할 수 없으므로, 비록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038_0966_c_05L善男子如汝所問十住菩薩以何眼故雖見佛性‚而不了了諸佛世尊以何眼故見於佛性而得了了男子慧眼見故不得明了佛眼見故故得明了爲菩提行故則不了了無行故則得了了住十住故雖見不不住不去故得了了菩薩摩訶薩智慧因故見不了了諸佛世尊斷因果故見則了了一切覺者‚名爲佛性十住菩薩不得名爲一切覺故‚是故雖見‚而不明了
선남자여, 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부처님 세존은 눈으로 불성을 보시므로,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 열매를 보듯 하고, 10주 보살은 불성을 들어서 보므로 분명치 못하니라. 10주 보살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을 스스로는 알지만,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038_0966_c_15L善男子見有二種眼見二者聞見諸佛世尊眼見佛如於掌中觀阿摩勒十住菩薩聞見佛性故不了了十住菩薩唯能自知定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能知一切衆生悉有佛性
大般涅槃經卷第二十五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