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9_0597_c_01L법원주림 제32권
039_0597_c_01L法苑珠林卷第三十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039_0597_c_02L西明寺沙門釋道世 撰

25. 변화편(變化篇)[여기에 3부가 있다.]
039_0597_c_03L變化篇第二十五眠夢篇第二十六變化篇 此有三部
039_0598_a_02L
술의부(述意部) 통변부(通變部) 염욕부(厭欲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성인의 활동은 현묘(玄妙)함을 통달해 걸림이 없어, 여러 방면에 감응하는 것이니, 한 길로만 구할 수 없는 것이요 한 이치로만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친 것은 거친 것으로써 응하고, 미세한 것은 미세한 것으로써 응한다. 거칠고 미세한 그 상대를 따르는 것은 이치가 본래 그런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큰 광명을 놓고 온갖 신변(神變)을 나타내는 것은, 시방의 모든 큰 보살이 장차 거룩한 지위를 이으려는 것일 뿐이다. 만일 속세에 있어서 거친 것에 접하고 삿됨을 눌러 바른 데로 돌아가는 자는, 다시 인연을 따라 신통 변화로 사물의 형편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묘한 이치만으로 사물을 가리킴을 다 깨칠 수 있는 것이지만, 불가사의한 형질(形質)을 변화해 나타내고 그로써 불가사의한 미련한 견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성인도 사슴과 말을 구제하려면 사슴과 말 속에 있어야 하나니, 그렇다고 어찌 그가 사슴이나 말과 같겠는가. 만일 사슴이나 말과 다르지 않으려면 때를 따라 항상 흘러 이 신통 변화를 기다리지 않아야 함이 명백한 것이다.


(2) 통변부(通變部)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불자야, 한 여래께서 하나의 화신(化身)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은 말로는 할 수 없는 비유로 교화하고, 일체의 법계와 허공계(虛空界) 등의 세계를 털 끝으로써 두루 다 헤아리고, 하나하나의 털 끝에 말할 수 없이 수많은 불찰(佛刹)의 티끌과 같이 많은 화신을 순간마다 나타내어 교화하되 미래의 겁이 다하도록 하나니, 그 하나하나 화불(化佛)의 몸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머리가 있고, 그 낱낱 머리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혀가 있고, 그 낱낱 혀로 수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소리를 내며, 그 낱낱 소리로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과 같이 많은 수다라(修多羅)를 설명하고, 그 낱낱 수다라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법을 연설하며, 그 낱낱 법 안에서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구신(句身)과 미신(味身)3)을 설명한다.
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의 티끌과 같은 겁 동안 다른 구신과 미신을 설명하는 음성이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 중생이 그것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항상 법륜을 굴리는 여래의 음성은 변함도 없고 끊임도 없어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과 대력나라연당불(大力那羅延幢佛)의 머무르는 법이라 하느니라.”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에게는 여덟 가지의 미묘한 음성이 있고 그 낱낱 음성에는 다 5백의 미묘한 음성의 권속이 있어서 셀 수 없는 백천의 음성으로 장엄하였다. 무량 무변한 묘한 소리의 음악은 다 청정하고 모든 부처님 정법의 뜻을 두루 잘 연설하여, 모두 공포를 여의고 무외(無畏)에 편히 머물면서 사자처럼 외쳐, 모든 법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음성을 다 듣게 하고, 그 본행(本行)의 갖가지 선근을 따라 다 깨닫게 하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가장 훌륭하고 위없는 구업(口業)의 장엄이라 하느니라.”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그 입에서 5색의 광명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로 하여금 묻는 인연과 묻는 이익이 있게 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웃으실 줄 모른다고 말할까 염려해서이며, 셋째는 입 안의 광명을 나타내기 위해서이고, 넷째는 지극한 정성이 아니기 때문에 웃는 것이며, 다섯째는 아라한이 공(空)을 지켜 보살의 도를 얻지 못함을 웃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광명이 다시 정수리로 들어가는 것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큰 광명이 있을 것을 보이기 위해서니라.”
또 『불설심명경(佛說心明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범지(梵志)를 위해 웃으셨다. 5색의 광명이 입에서 나와 시방 5취(趣)의 무리들을 비추었다. 그것은 지극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아귀들을 배부르게 하며, 지옥의 고통을 쉬게 하고, 축생들의 뜻이 열리고 죄가 없어져 광명을 찾아 부처님께 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웃으시는 법에는 다 떳떳한 조짐이 있다. 보살에게 기별(記別)을 줄 때는 그 광명이 시방을 두루 비추다가 정수리로 들어가고, 연각(緣覺)에게 기별을 줄 때는 광명이 입으로 들어가며, 성문(聲聞)에게 기별을 줄 때는 광명이 어깨로 들어가고, 천상에 날 일을 말할 때는 광명이 배꼽으로 들어가며, 인간에 내려올 일을 말할 때는 광명이 무릎으로 들어가고 3취(趣)의 고통을 말할 때는 광명이 발바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실 적에는 탐욕 때문에 웃지 않고, 분노 때문에 웃지 않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웃지 않고 방탕 때문에 웃지 않으며, 이욕(利欲) 때문에 웃지 않고 영귀(榮貴) 때문에 웃지 않으며, 부하고 넉넉함 때문에 웃지 않으신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두루 평등하게 가엾이 여겨 대자(大慈)를 행하시기 때문에 웃는 것이니, 여기에는 이상의 일곱 가지가 없는 것이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 응지(應持) 보살이 다른 지방에서 와서, 부처님 몸의 양(量)을 알려고 그 위의 허공과 무량한 불찰(佛刹)을 지나 화상(華上)세계에 이르러 부처님 몸의 여전함을 보았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허공이 그 끝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공덕도 또한 그렇네.
부처님 몸을 재어 보려 하여도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할 뿐 알 수 없었네.

저 위로 허공의 세계와
무량한 모든 불토를 지나서
석사자(釋師子)의 몸을 뵈오니
예전과 같아 다름이 없었네.

부처님의 몸은 금산(金山)과 같아
큰 광명을 쏟아 내나니
상호(相好)로 몸소 장엄한 것이
마치 봄날에 핀 꽃과 같네.”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저 하늘ㆍ귀신ㆍ용ㆍ사람 등이 다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설법을 들었다. 수백천 겁이나 지났지만 그 앞뒤에서 다 부처님의 얼굴을 보았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전생에, 앞뒤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누울 때 부처님 계신 곳으로 머리를 두는 것은 부처님을 향하여 존경하기 위해서니라.”

(3) 염욕부(厭欲部)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왕사성(王舍城) 안에 음녀(婬女)가 있었다. 음녀의 이름은 금색(金色)이었으며 그녀에게는 광명(光明)과 위덕(威德)이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지은 선근의 인연 때문에 얼굴이 단정하고 온갖 상호[相]를 원만하게 갖추었다. 몸은 순금색으로 광명이 번쩍이고 얼굴은 아름다워 세상에 드문 존재였다. 신기한 지혜와 총명하고 민첩함과 걸림없는 말솜씨를 갖추고 있었으며 음성은 맑고 미묘하며 깊이가 있고 부드러우며 말할 때는 늘 웃음을 머금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다 금빛으로 비추고 입은 옷도 다 금색이었다. 그녀를 보는 사람은 다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가 노니는 곳에는 어디든 따라다녔다.
어떤 장자(長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상위덕(上威德)이라 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여 많은 재물을 주었는데 서로 마음이 맞아 장엄한 수레를 타고 동산으로 갔다. 그 때 금색녀는 전생 인연의 감응으로 문수사리에게 교화를 받아 도에 들어가서 신통 변화가 자재하였기 때문에 위덕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잤다. 곧 신통의 힘으로 누운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의 상(相)을 나타내었다. 몸은 퉁퉁하게 부어 오르고 문드러지고 냄새가 나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잠깐 사이에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찢어지면서 오장이 모두 드러나고 냄새가 지독했다. 대소변이 나오는 곳으로는 더러운 물질이 줄줄 흘러 넘치고 모든 기관과 사지에는 파리떼가 엉겨서 빠는 등, 그 참상은 다 말할 수 없었다.
그 때 장자의 아들은 이 시체를 보고 매우 두려워 온몸의 털이 모두 일어섰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를 구원할 사람이 없을까?’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귀의할 데가 없었으므로 더욱 무서워져 크게 두려워 떠는 목소리를 내었다. 장자의 아들은 두 가지 인연 때문에 크게 두려워했으니, 하나는 일찍이 이런 나쁜 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대중이 그가 그녀와 같이 온 것을 아는데 그녀가 갑자기 거기서 죽었으니 그가 일부러 죽였다고 생각할까였기 때문이니 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억울하게 자기를 죽일까 걱정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장자의 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숲 속에는 나 혼자뿐이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범부나 성인이나 누가 나를 구제해 주겠는가?’
그 장자의 아들은 과거의 선근이 비록 익숙해지기는 했으나 문수사리에게 금색녀와 함께 설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는 곧 신통의 힘으로, 모든 나무들로 하여금 게송을 외우게 했다. 장자의 아들은 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스스로 경하하며 다행스럽게 여겼다. 시체를 버리고 곧 숲을 나와 바로 부처님께 가서 이 두려운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마땅히 너에게 일체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 네가 부처님께 귀의하면 일체 두려움이 없어지리라.’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두려움은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인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두려움은 주인도 없고 짓는 이도 없고 집착하는 이도 없다. 너의 지난번 그 애욕의 감정은 지금 어디 있느냐?’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범부들은 이 세간에 보이는 좋은 색상과 나쁜 느낌에 집착하지만 성인의 법에는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갖가지 방편으로 설법하셨다. 그리하여 그 때 장자의 아들은 순법인(順法忍)을 얻었다.
그 때 금색녀는 장자의 아들이 이미 교화된 것을 알고, 장엄한 5백 거마(車馬)에 앞뒤로 둘러싸이어, 부처님께로 가서 한쪽에 서 있었다.
그 때 문수사리가 장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이 여자를 알겠느냐?’
장자의 아들이 대답했다.
‘나는 잘 압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너는 어떻게 아느냐?’
장자의 아들은 곧 문수사리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건대, 색(色)은 물거품 같고
모든 느낌[受]도 물거품 같으며
저 상상[想]은 아지랑이와 같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보건대 저 행(行)은 파초와 같고
식(識)도 또한 환상과 같나니
여자란 거짓으로 되어 있는 것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몸이란 감각 없는 나무와 같고
또 풀이나 기왓장과 조약돌 같으며
마음이란 도저히 볼 수 없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모든 범부들 취한 것 같아
착각으로 그 나쁜 감정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물들지 않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마치 저 숲 속의 시체가
문드러져 더러운 냄새 나듯이
몸의 성질도 이와 같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과거는 본래 없어진 것 아니요
미래도 또한 생겨나는 것 아니며
현재는 잠깐도 머무르지 않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문수여, 부디 잘 들으시오.
저 은혜는 갚기 어렵네.
나는 본래 탐욕이 많았지만
그 더러움 보고 해탈하였소.

저 몸은 진실로 죽지 않았지만
나를 교화하려고 죽음 보였네.
중생을 슬퍼하여 보이었거니
누가 그것 보고 발심하지 않으리.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
또 모든 번뇌는 이런 것이며
저 법의 체성(體性)은 이러하나니
좋구나, 참으로 미묘하구나.

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금색녀와 상위덕 남자는 이미 과거에 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내게 하였었는데, 지금 또 설법을 듣고 순법인(順法忍)을 얻었다. 이 금색녀는 앞으로 90백천 겁을 지나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 그 명호를 보광(寶光) 여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위덕 장자는 보광여래의 처소에서 보살의 몸을 얻어 이름을 덕광(德光)이라 할 것이요, 보광이 멸도한 뒤에는 그도 마땅히 부처가 되어 명호를 보염(寶焰)여래라 할 것이다. ’”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옛날 하안거(夏安居)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바라내국(波羅柰國)에 묘의(妙意)라는 음녀(婬女)가 누각 위에 있었다. 그녀는 과거에 부처님과 인연이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세 소년을 만들었다. 나이는 다 15세이고, 얼굴은 단정하여 세간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이 여자는 저들을 보고는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저들에게 말하였다.
‘장부(丈夫)여, 지금 나의 이 집은 공덕천(功德天)과 같고 부유하고 힘이 있어 자재로워 온갖 보배로 장엄했습니다. 지금 나는 내 노비들과 함께 장부님을 받들고 몸소 쓸고 닦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 주신다면 모든 것을 다 공급하여 아무것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저 화인(化人:소년)이 밥상 앞으로 나가 미처 밥을 들기 전에, 다시 그 앞으로 가서 아뢰었다.
‘장부님, 내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화인은 거스리지 않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서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하루 동안은 마음이 피로하지 않았으나, 이틀이 되자 사랑하는 마음이 차츰 식어졌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장부에게 아뢰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십시오.’
화인은 일어났으나 그녀를 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싫증이 나서 장부에게 말하였다.
‘장부님, 다른 사람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화인이 말하였다.
‘우리 집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법에 무릇 여자와 통할 때에는 12일이 지나야 그만두게 되어 있다.’
그녀는 이 말을 듣자, 마치 음식이 목에 걸려 토할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것과 같고, 몸이 고통스러운 것이 마치 절구에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나흘째 되던 날에는 수레에 갈리는 것 같았고 닷새째 되는 날에는 쇠탄알이 몸에 박히는 것 같았으며 엿새째 되는 날에는 사지 마디마다 다 아프고 화살이 심장에 박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들으니 가비라성(迦毘羅城)에 있는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은 몸이 자금색이고 32상(相)을 갖추었으며, 장님들을 가엾이 여기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제하시는데 항상 이 성에 계시면서 늘 복의 구제를 행하고 금색의 광명을 놓아 모든 사람을 제도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왜 오늘은 나를 구제하러 오시지 않는가. 나는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결코 색(色)을 탐하지 않으리라. 차라리 호랑이나 이리와 한 굴에서 지낼지언정 색을 탐함으로써 이런 고통은 받지 않으리라.’
화인도 성을 내며 말하였다.
‘아아, 이 나쁜 여자는 내 사업을 다 망쳐 놓았구나. 내가 지금 너와 함께 한 곳에서 몸을 합한다는 것은 일찍 죽는 것보다 못하다. 만일 부모와 종친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어디 숨을까? 나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런 치욕은 견디지 못하겠다.’
여자가 말하였다.
‘다 떨어진 물건, 내게는 필요 없다. 너는 죽고 싶으면 죽으려무나.’
이때 화인이 칼을 들고 제 목을 찔렀다. 쏟아져 흐르는 피가 여자의 몸을 더럽히면서 그 화인은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여자는 할 수 없어 그대로 두었다. 이튿날에는 푸르딩딩해지고 사흘째에는 퉁퉁 부어 올랐으며 나흘째에는 썩어 문드러졌고 닷새째에는 점점 더 문드러졌으며 엿새째에는 살이 떨어져 나갔고 이레째에는 냄새나는 뼈만 남아 마치 아교나 칠처럼 그녀의 몸에 붙었다. 일체의 대소변과 온갖 나쁜 벌레와 피와 고름 등이 여자의 온몸에 묻었다. 여자는 매우 싫고 미웠으나 떼어 버릴 수가 없었다. 여자가 발원했다.
‘만일 모든 천신(天神)이나 선인(仙人)이나 정반왕의 아드님이 저를 이 고통에서 구해 주시면 저는 우리집과 일체의 보배를 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발원했을 때 부처님께서 아난(阿難)과 난타(難陀)를 데리고 그리로 떠나셨다. 제석천은 앞에서, 범천왕은 뒤에서 따랐다. 부처님께서는 늘 광명을 놓아 천지를 비추시고 모든 대중은 다 여래께서 이 여자가 있는 누각으로 가시는 것을 보았다. 이때 여자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부끄러워하였으나 그 뼈를 숨길 수가 없었다. 흰 모포로 그 시체를 싸 놓았지만 냄새가 여전하여 감출 수가 없었다. 여자가 세존을 보고 예배하고 부끄럽기 때문에 몸으로 뼈 위를 덮어 가렸다. 냄새나는 뼈는 갑자기 여자의 등 위에 있었다. 여자는 더욱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여래의 공덕과 자비는 한량이 없으십니다. 만일 저를 이 고통에서 구해 주신다면 저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결코 퇴진하지 않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신력(神力)으로 그 냄새나는 뼈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제가 가진 보배를 모두 부처님께 보시하겠나이다. 저를 위해 축원해 주소서.’
부처님의 범음(梵音)은 유창했다. 여자는 이 축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고, 5백의 시녀들은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다 위없는 보리심(菩提心)을 내었으며 한량없이 많은 범중(梵衆)들은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보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제석천왕이 데리고 온 모든 하늘은 보리심을 낸 자도 있었고 아나함(阿那含)을 얻은 자도 있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성(舍衛城)의 어떤 장자(長者)의 부인이 한 아들을 낳았다. 그 얼굴이 너무도 추하고 형상은 사나운 귀신 같아서, 누구나 보면 다 버리고 떠나갔다. 차츰 자라나자 그 부모는 미워하여 쫓아내어 멀리 가게 하였다. 심지어는 축생까지도 그 추함을 보고는 오히려 겁을 냈거늘 하물며 사람들이겠는가. 또 어느 때에는 숲 속에 들어가 과일을 따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날아다니는 새와 기어다니는 짐승들이 모두 겁을 내어 달아나 자취를 끊고 살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그를 가엾이 생각하여 비구들을 데리고 그 숲으로 가시어, 그를 제도하려 하셨다. 그는 부처님을 보고 피해 달아났으나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나무 밑에서 가부좌하고 선정에 들어 있었다.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한 추한 사람으로 변화하여 밥이 가득한 발우를 들고 점점 추한 사람을 향해 갔다. 그는 형상이 자기와 같은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며 말하였다.
‘지금 이 사람은 참으로 내 벗이 될 만하다.’
그리고는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하면서 발우 밥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밥을 다 먹었을 때, 그 화인(化人:부처님)은 갑자기 단정한 얼굴이 되었다. 추한 사람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떻게 갑자기 그처럼 단정한 얼굴이 되었는가?’
화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 밥을 먹고 선한 마음으로 저 나무 밑에 앉아 참선하는 비구들을 보았기 때문에 단정한 얼굴이 되었다.’
추한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그것을 본받아 이내 단정하게 되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곧 화인에 대해 깊은 신해(信解)를 내었다. 이에 화인은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추한 사람은 부처님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와 그 광명이 백천의 해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는 곧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그는 곧 수다원의 과(果)를 얻고,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기를 희망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여.’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그는 곧 사문이 되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이 일을 보고, 부처님께 전생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무량한 세상에 불사(弗沙)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셔서, 한 나무 밑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계셨다. 나와 미륵은 다 보살이 되어 그 부처님께 나아가 갖가지로 공양하고, 한 발을 든 채 7일 동안 다음 게송으로 그 부처님을 찬탄했었다.

천상에도 세간에도 부처님 만한 이 없고
저 시방세계에도 또한 이런 이 없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두루 모두 보아도
부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네.

그 보살이 이 게송을 마쳤을 때, 그 산에 있던 어떤 귀신(鬼神)이 누추한 형상을 지어 와서 우리를 두렵게 했다. 나는 신통력으로 그가 다니는 곳을 험한 벼랑으로 만들어 그가 지나 다닐 수 없게 했다. 그 때 그 산신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나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협했다. 그러므로 저들은 지금 내가 다니는 곳을 다 험난하게 만들어, 나를 지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나는 저들에게 가서 아까 지은 죄를 참회하리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우리에게 와서 참회하고 또 발원하고 갔다.’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산신은 나를 위협했기 때문에 5백 세(世) 동안 형상이 누추하여 그를 보는 사람들마다 다 달아났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참회했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게송을 읊는다.

큰 성인의 신통 변화는
일을 따라 몽매한 이 깨우치며
머금은 꽃이 활짝 피어나
서로 호응하여 깨치게 하네.

그릇된 도를 항복받으려
변화로 신통력을 나타내되
숨었다 나타났다 세상 이롭게 하여
고상한 행적의 법이 되었네.

어떤 중생도 비방을 그치고
느끼고 깨쳐 다 일어나며
가만히 운행하여 자재하시니
보는 사람들 다 공경하네.

만나기 어려운 이런 성인은
세상에 뛰어난 신령스런 용이라.
중생들 모두 큰 복이 있어
아름다운 공덕을 만났구나.”
감응연(感應緣)[대략 스물다섯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신기한 조화(造化)의 여러 가지 변화를 통틀어 서술
주(周)나라 때에 좌자(左慈)의 변화
설타산(舌埵山)에 제녀(帝女)의 변화
하곤(夏鯀)과 조왕(趙王) 여의(如意)의 변화
위(魏)나라 양왕(襄王) 때 여자의 변화
한(漢)나라 건평(建平) 때 남자의 변화
한나라 건안(建安) 때 남자의 변화
진(晋)나라 원강(元康) 때 여자의 변화
진나라 혜회(惠懷) 때 남녀의 변화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의 변화
한나라 선제(宣帝) 때 닭의 변화
진(晋)나라 태강(太康) 때 방게와 게의 변화
공자(孔子)가 진(陳)의 여관에서 거문고로 노래할 때 메기의 변화
양조(梁朝)의 거사 위영(韋英)의 아내 양(梁)씨가 시집 가서의 변화[이 이야기는 본문에 없음:역자]
진(晋)나라 예장군리(豫章郡吏) 역발(易拔)의 변화
진나라 의양현(宜陽縣)의 팽아(彭娥)라는 여자의 변화
진나라 태말현(太末縣)의 오도종(吳道宗) 어머니의 변화
진나라 부양현(復陽縣)에 소의 변화
염제(炎帝)의 딸의 변화
제전잡기(諸傳雜記)의 변화
진(秦)나라 때 강남(江南)에 정묘신(亭廟神)의 변화
진(秦)나라 때 남방(南方)에 낙민(落民)의 머리가 날아다닌 변화
고양씨(高陽氏)가 부부(夫婦)를 같이 낳은 변화
위(魏)나라 심양현(尋陽縣) 북산(北山)의 오랑캐가 요술을 부린 변화
위나라 청하(淸河) 송사(宋士)의 어머니가 목욕으로 인한 변화
① 신기한 조화(造化)의 여러 가지 변화를 통틀어 서술
대개 자비로 구제하는 도는 옛날의 법에서 보지만 신통 변화의 방법은 원래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방외(方外)의 큰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역내(域內)의 범부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궁구해도 그 근원을 다 캐낼 수 없고 아무리 연구해도 다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범부와 성인은 비록 다르다 해도 그 변화는 같은 것이 있으니, 이것은 진실로 지혜의 얕고 깊음이 있고 업장(業障)의 거칠고 섬세함이 있으며 작용의 크고 작음이 있고 변화의 넓고 좁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생사의 근본은 그 변화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 의거하면 인과(因果)를 분명히 믿어 인연이 서로 의지해야 비로소 변화를 이루는 것이요, 만일 외속(外俗)에 의거하면 대방(大方)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오직 연기(緣起)만 믿고 인성(因成)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보기(千寶記)』에서 말하였다.
“하늘에는 5기(氣)가 있어 만물이 변화생성[化成]하는 것이다. 정목(精木)은 인(仁)이요, 화정(火精)은 예(禮)요, 금정(金精)은 의(義)요, 수정(水精)은 지(智)요, 토정(土精)은 은(恩)이다. 5기가 다 순수하면 성인의 덕이 갖추어진다. 목(木)이 탁(濁)하면 허약[弱]하고, 화(火)가 탁하면 음란[淫]하며, 금(金)이 탁하면 포악[暴]이요, 수(水)가 탁하면 간탐[貪]하고, 토(土)가 탁하면 미련[頑]하다. 5기가 모두 탁하면 민(民)이 하열[下]하다.”
중토(中土)에는 성인이 많으니 화기(和氣)가 합하기 때문이요 절역(絶域)에는 괴물(怪物)이 많으니 이기(異氣)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진실로 이 기(氣)를 받으면 반드시 이런 형상[形]이 있고, 진실로 이런 형상이 있으면 반드시 이런 성품[性]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곡식을 먹는 것은 지헤로우면서 아름답고, 풀을 먹는 것은 힘이 세면서 어리석으며, 뽕을 먹는 것은 실이 있는 나방이요 고기를 먹는 것은 용감하면서 사나우며, 흙을 먹는 것은 마음이 없으면서 쉬지 않고, 기운을 먹는 것은 정신이 밝으면서 오래 살며,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은 죽지 않으면서 신기롭다.
굵은 허리치고 수컷이 없고 가는 허리치고 암컷이 없다. 수컷이 없으면 밖에서 교접하고 암컷이 없으면 밖에서 기른다. 3화(化)의 벌레는 먼저 새끼를 배고 뒤에 교접하며 겸애(兼愛)의 짐승은 스스로가 수컷ㆍ암컷이 된다. 겨우살이는 높은 나무를 남편으로 삼고, 여라(女蘿)는 복령(伏苓)에 의탁한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박고 부평(浮萍)은 물에 떠서 살아간다. 새는 허공을 밀치며 날고 짐승은 열매를 밟고 달린다. 벌레는 흙 속에서 엎드려 살며 물고기는 못 속에 잠겨 산다. 하늘을 근본으로 하는 것은 위를 친근히 하고, 땅을 근본으로 하는 것은 밑을 친근히 하며, 때를 근본으로 하는 것은 곁을 친근히 하나니, 이것은 각각 그 유(類)를 따르기 때문이다.
천 년된 꿩은 바다에 들어가 대합조개가 되고, 1백 년된 참새는 강에 들어가 조개[虫合]가 되며, 1천 년된 거북과 자라는 능히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고 1천 년된 여우는 일어나 미녀가 되며, 1천 년된 뱀은 끊어도 다시 붙고, 1백 년된 쥐는 능히 점을 치나니, 이것은 수(數)의 지극함이다.
춘분(春分) 날에는 매가 변해 비둘기가 되고, 추분(秋分) 날에는 비둘기가 변해 매가 되나니, 이것은 때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썩은 풀이 개똥벌레가 되고 썩은 갈대가 귀뚜라미가 되며, 벼가 메뚜기가 되고 보리가 호랑나비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깃과 날개가 생기고 눈이 생기며 심지(心智)가 생기니, 이것은 무지(無知)가 유지(有知)로 변화하는 것으로서 기(氣)가 바뀌는 것이다. 또 학이 노루가 되고 뱀이 자라가 되며 귀뚜라미가 두꺼비가 되는 것은 그 혈기(血氣)를 잃지 않고 형성(形性)이 변하는 것이니 이런 따위의 일들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변함을 따라 움직이면 이것은 상도(常道)에 순응함이나, 조금이라도 그 상도에서 어긋나면 곧 요망한 재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체(下體)가 위에 생기면 이것은 기(氣)의 배반이요, 사람이 짐승을 낳고 짐승이 사람을 낳으면 이것은 기의 어지러움이며, 남자가 여자로 변화하고 여자가 남자로 변화하면 이것은 기의 질박함[質]이다.
노우애(魯牛哀)는 병을 얻어 7일 동안 앓다가 호랑이로 변화하였는데, 형체가 변하고 발톱과 이빨이 길게 자라났다. 그 형이 그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더니 그 형을 잡아먹었다. 그가 사람으로 있을 때는 장차 호랑이가 될 줄 몰랐고 호랑이로 있을 때는 사람이 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또 진(晋)나라 태강(太康) 때의 진유원사(陳留院士)란 사람은 살무사에게 물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 상처를 자꾸 냄새 맡았는데 조금 있다가 살무사 두 마리가 코 속에서 생겼다.
또 원강(元康) 연중에 역양(歷陽)의 기원재(紀元載)는 길을 가다가 거북을 잡아먹었는데 조금 있다가 병이 생겨 의사가 약을 썼다. 그는 여러 되나 되는 거북의 새끼를 항문으로 낳았다. 크기는 작은 엽전만하고 머리와 발과 알과 무늬와 껍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약에 중독이 되어 죽고 말았다.
대개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화육(化育)의 기운이 아니요 코는 새끼를 배는 곳이 아니며 형도(亨道)는 사물의 도구가 아니다. 이로써 관찰하건대 만물의 생사와 그 변화는 통신(通神)의 생각이 아니다. 비록 그것을 자기 몸에서 찾아 보더라도 어찌 어디서부터 온 것임을 알겠는가. 그러나 썩은 풀이 개똥벌레가 되는 것은 풀이 썩었기 때문이요, 보리가 불나방이 되는 것은 촉촉한 기운 때문이니, 그렇다면 만물의 변화는 다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농부가 보리의 변화를 막으려면 그것을 잿물에 담그어야 하고 성인이 만물의 변화를 다스리려면 도로써 구제해야 하는 것이니, 그 이치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지금 느낀 일만으로는 진실로 그 변화의 극치를 궁구하기에 부족하다. 이것은 곧 중생들의 본식(本識)이 온갖 업을 만들고 인종(因種)이 이미 익으면 연(緣)이 외형(外形)을 빌어,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그 연을 따라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먼저 종자가 없으면 비록 그 연을 만나더라도, 연이 성글고 힘이 약하여 혼자서는 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因)은 연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종자는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연은 인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연은 홀로 갖출 수 없는 것이다. 인과 연이 화합하고 힘과 작용이 서로 도와야 만물이 그로 인해 생기는 것이요 하나만으로는 건립할 수 없는 것이다. 바라노니 장래의 철인(哲人)들로서 어찌 다른 점 따위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② 주(周)나라 때에 좌자(左慈)의 변화
좌자(左慈)의 자(字)는 원방(元放)이고 여강(廬江) 사람이며 신통이 있었다. 일찍이 조공(曹公)의 좌석에 앉아 있을 때 조공이 말하였다.
“오늘 같은 이런 좋은 모임에 오(吳)나라 송강(松江)의 농어회를 먹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원방이 말하였다.
“농어회를 구할 수 있소.”
그리고는 구리쇠 쟁반에 물을 담아 오라 했다. 원방은 낚시에 미끼를 단 낚시대를 쟁반에 드리웠다. 조금 있다가 농어 한 마리를 낚아 내었다. 조공은 크게 손뼉을 치고 그 모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다 놀랐다. 조공이 말하였다.
“한 마리로는 이 좌석에 다 돌릴 수 없소. 두 마리면 좋을텐데.”
원방은 다시 미끼를 단 낚시를 넣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마리를 낚아 올렸는데, 모두 3척 남짓하며 매우 싱싱하고 좋았다. 조공은 곧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좌석에 두루 돌렸다.
조공이 또 말하였다.
“회는 다 얻었는데 이제는 촉(蜀)나라의 생강이 없어 유감스럽구나.”
원방이 또 말하였다.
“그것도 얻을 수 있소.”
그러자 조공은 어디 가까운 데서 사오려는가 보다고 생각하고는 말하였다.
“나는 전에 사람을 시켜 촉나라에 가서 비단을 사오라 했소. 지금 그대가 생강을 사러 보내는 사람 편에 먼저 내가 보낸 사람에게 비단 두 필을 더 사오라 해야겠소.”
원방은 사람을 보냈다. 조금 있다가 그 사람은 생강을 사가지고 돌아와서 말하였다.
“비단 점방에서 조공께서 먼저 보낸 사람을 만나 비단 두 필을 더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후 한 해 남짓 지난 뒤에 조공이 먼저 보냈던 사람이 과연 비단 두 필을 더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물었다.
“아무 달 아무 날에 점방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들으니 비단 두 필을 더 사오라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 뒤에 조공은 가까운 교외에서 사인(士人)과 그 종자(從者) 1백 명과 함께 있었다. 원방은 술 한 항아리와 고기포 한 조각을 내어놓고 손수 항아리를 기울여 백관(百官)들에게 술을 돌렸다. 백관들은 다 취하고 배불러 했다. 조공은 돌아와 술집을 조사해 보았더니 어제 술과 포가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조공은 원방을 미워해 원방을 죽이려 했다. 원방이 조공과 한 자리에 있을 때 조공이 그를 잡으려 했으나 원방은 벽 속으로 들어가 자취가 묘연했다. 조공은 사방에 사람을 보내 잡으려 했다. 혹 시장에서 보고 잡으려 하면 시장 사람들의 형상이 다 원방과 닮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어떤 이가 원방을 양성산(陽城山) 꼭대기에서 보았다고 하여 사람을 보내 쫓게 하였다. 그러자 원방은 염소떼 속으로 들어갔다. 쫓아간 사람들은 그 염소떼 속에 원방 있음을 알고 그에게 말하였다.
“조공이 그대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그대의 술(術)이 어떤가를 이미 징험해 본 것일 뿐이다. 다만 만나고 싶어할 뿐이다.”
염소들 속에서 갑자기 한 큰 늙은 숫양이 앞에서 두 무릎을 굽히고 사람처럼 서서 말하였다.
“빨리 잡아가라.”
그들이 말하였다.
“저 숫양이 바로 원방이다.”
그리고는 다투어 쫓아가 잡으려 했다. 수백 마리의 양들은 다 숫양이 되어 모두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사람처럼 서서 말하였다.
“빨리 잡아가라.”
그래서 사람들은 잡아갈 수 없었다.
노자(老子)가 말하였다.
“내게 큰 걱정이 되는 것은 내게 몸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 몸이 없을 때엔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만약 노자와 같은 무리라면 능히 몸을 없앨 수 있을 만하다.
그런 일이 어찌 어렵겠는가.
③ 설타산(舌埵山)에 제녀(帝女)의 변화
설타산(舌埵山)에 있던 임금의 딸이 죽어서 괴상한 풀로 변했다. 그 잎은 위유(萎蕤) 같고 꽃은 황색이며 열매는 토사자(菟絲子)와 같았다. 그러므로 그 괴상한 풀을 먹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에게 아첨했다고 한다.
주(周)나라 선왕(宣王) 33년에 유왕(幽王)이 태어났다. 이 해에 어떤 말이 여우로 변화하였다.
진(晋)나라 헌공(獻公) 2년에 주(周)나라 혜왕(惠王)이 정(鄭)나라에 있었다. 정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왕부(王府)에 들어가서 물여우로 변화해 사람들을 쏘아 많이 죽였다. 그 때 장홍(萇弘)이 죽자 촉(蜀)나라 사람이 그 피를 간직했는데 그 피는 3년이 지나 푸른 색[碧]으로 변했다.
한(漢)나라 영제(靈帝) 때에 강하(江夏)의 황씨(黃氏) 어머니는 반석물에 엎드려 목욕하였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더니 그만 자라로 변했다. 그 여종이 놀라 달려가서 이웃에 알리니 이웃집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라는 점점 깊은 못으로 들어가더니 그 뒤로는 가끔 한 번씩 나타났다. 처음 목욕할 때의 머리핀과 은비녀는 그 머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황씨는 여러 대 동안 감히 자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오(吳)나라 보정(寶鼎) 원년(266) 6월 그믐날, 단양(丹陽) 선건(宣騫)의 어머니는 나이가 80세였는데, 못에서 목욕하다가 변하여 자라가 되었다. 그 형상은 위의 황씨(黃氏) 이야기와 같았다. 선건의 형제 네 사람은 문을 닫고 어머니를 호위했다. 그리고 그 방 안에 큰 구덩이를 파고 물을 대어 놓았더니 그 자라는 거기 들어가 헤엄치며 놀았다. 하루 이틀 동안 항상 물 위로 목을 길게 뻗어 문을 엿보다가, 문이 조금 열리자 곧 몸을 뒤쳐 깊은 못으로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④ 하곤(夏骨系)과 조왕(趙王) 여의(如意)의 변화
하(夏)나라의 곤(骨系)은 천자(天子)의 아버지요 조왕(趙王) 여의(如意)는 한조(漢祖)의 아들이다. 그런데 하나라의 곤은 누런 곰이 되고, 여의는 푸른 개가 되었다.

⑤ 위(魏)나라 양왕(襄王) 때 여자의 변화
위(魏)나라 양왕(襄王) 3년에 어떤 여자가 머리로부터 남자로 변화하여, 그 아내와 더불어 아들을 낳았다. 그러므로 『경방역전(京房易傳)』에서 말하였다.
“여자가 남자로 변화하면 이것은 음(陰)이 성하기 때문이며, 천한 사람이 왕이 되는 징조이다. 남자가 여자로 변화하면 이것은 음(陰)이 양(陽)을 이기는 것으로서 재앙이 없어지는 징조이다.”

⑥ 한(漢)나라 건평(建平) 때 남자의 변화
한(漢)나라 건평(建平) 때에 예장(豫章)에 사는 어떤 남자가 여자로 변화해서는 시집가서 남의 아내가 되어 한 아들을 낳았다. 장안(長安)의 진봉(陳鳳)이 말하였다.
“양(陽)이 변해 음(陰)이 되었으니 장차 그 계통이 끊어질 것이다. 그들이 낳은 아들도 장차 한 대(代)만 지나면 곧 끊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애제(哀帝)는 죽고 평제(平帝)는 망하여 왕망(王莽)이 그 왕위를 빼앗았던 것이다.

⑦ 한(漢)나라 건안(建安) 때 남자의 변화
한(漢)나라 건안(建安) 7년(202)에 월준(越嶲)에 사는 어떤 남자가 여자로 변화하였다. 주군(周群)이 말하였다.
“애제(哀帝)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장차 대(代)가 바뀌는 일이 있을 것이다.”
25년에 이르러 헌제(獻帝)가 산양공(山陽公)으로 봉(封)해졌다.

⑧ 진(晋)나라 원강(元康) 때 여자의 변화
진(晋)나라 원강(元康) 때에 안풍(安豊)에 사는 주세녕(周世寧)이라는 여자는 나이 8세가 되자, 차츰 남자로 변화하더니 나이 17, 8세 때에는 남자로서의 기질과 성품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자의 몸으로도 완전하지 못하고 남자의 몸으로 변화해서도 철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내를 두었으나 아들이 없었다.

⑨ 진(晋)나라 혜회(惠懷) 때 남녀의 변화
진(晋)나라 혜회(惠懷) 때, 경락(京雒)에 어떤 사람은 한 몸에 남녀의 두 몸을 가졌으면서도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었는데 더욱 음(婬)을 좋아했다. 천하의 병란(兵亂)은 남녀의 기(氣)가 어지러워 요사스런 몸이 되기 때문이다.
또 중흥(中興) 연간에는 어떤 여자의 음부[陰]가 배에 있었다. 그녀는 양주(楊州)에 살았는데 그 성질이 음색(婬色)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경방역전(京房易傳)』에서 말하였다.
“요사스런 사람이 자식을 낳아 음이 머리에 있으면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그것이 배에 있으면 천하에 일이 있으며, 그것이 등에 있으면 천하에 후사가 없다.”

⑩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의 변화
한(漢)나라 경제(景帝) 원년 9월에, 교동(膠東)에 사는 하밀(下密)이라는 사람은 나이 70여 세에 머리에 뿔이 나고 그 뿔에 털이 났다. 그러므로 『경방역전』에서 말하였다.
“몽매한 재상이 정치를 잘못하면 요사스런 사람에게 뿔이 난다.”
또 『오행지(五行志)』에서 말하였다.
“생각하건대 사람에게 부당하게 뿔이 나면 이것은 마치 제후(諸侯)가 부당하게 군사를 일으켜 경사(京師)로 향하는 것과 같다.”
그 뒤에 7국(國)의 난리가 일어났다.

⑪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 닭의 변화
한(漢)나라 선제(宣帝) 황룡(黃龍) 원년(B.C. 49)에 미앙전(米央殿) 낙령구(車各軨廐) 안에 있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화하였는데 털까지도 변했다. 그러나 울지도 못하고 암탉을 거느리지도 못하며 뒷발톱도 없었다.
또 원제(元帝) 초원(初元) 때에는 승상 부사(丞相府史)의 집에서 기르던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는데 볏과 뒷발톱이 있고 울기도 하고 암탉을 거느리기도 했다.
또 영광(永光) 연간에는 어떤 이가 바친 수탉에 뿔이 났다.
『오행지(五行志)』에서 말하였다.
“이것은 왕씨(王氏)에 상응하는 것이다.”

⑫ 진(晋)나라 태강(太康) 때 방게와 게의 변화
진(晋)나라 태강(太康) 4년(283)에 회계군(會稽郡)에서 방게와 게가 다 쥐로 변화하여 온 들을 덮고 벼를 먹는 재난이 있었다. 처음 된 쥐라서, 털과 살은 있으나 뼈가 없었다. 그래서 다닐 적에도 밭두덕을 지나가지 못하다가 며칠 뒤에야 완전히 장성했다.
6년에 이르러 남양(南陽)에서 두 발을 가진 호랑이를 잡았다. 호랑이는 음정(陰精)으로서 양(陽)에 사는 것이다. 금(金)은 짐승이요 남양은 불의 이름이니, 금정이 불에 들어가면 그 몸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왕실(王室)이 어지럽게 될 요괴(妖怪)스런 일이다.

⑬ 공자(孔子)가 진(陳)나라 여란에서 거문고로 노래할 때 메기의 변화
공자(孔子)는 진(陳)나라에서 액난(厄難)을 만나, 여관에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밤에 키가 9척 남짓한 어떤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쓰고 있었다. 그가 큰 소리로 꾸짖자 좌우가 진동했다. 자공(子貢)이 나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는 곧 자공을 들어 옆구리에 꼈다. 자로(子路)가 그를 끌고 나와 뜰에서 싸웠으나 한참 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공자는 살펴보다가 그 갑거(甲車) 사이를 보니 가끔 열리는 모습이 마치 손바닥 같았다. 공자가 말했다.
“왜 그 갑거를 찾아서 그것을 끌어내어 휘두르지 않는가?”
자로가 그대로 따랐다. 그러자 손이 없는 어떤 물건이 땅에 엎어지는데 그것은 곧 큰 메기였다. 길이는 9척이 넘었다. 공자가 탄복하면서 말하였다.
“이 물건이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내 들으니, 물건이 늙으면 온갖 정령(精靈)이 거기 의지한다고 한다. 내가 이처럼 노쇠해서 이것이 온 모양이다. 어찌 내가 액난을 만나 양식이 떨어졌다 해서 종자(從者)까지 병들게 하겠는가. 대개 6축(畜)과 거북ㆍ뱀ㆍ물고기ㆍ자라ㆍ풀ㆍ나무 등이 오래 되면 신(神)이 거기 붙어 요괴(妖怪)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5유(酉)라 한다. 5유란 5행(行)의 방위마다 다 그 물건이 있다는 것이다. 유(酉)는 늙다[老]라는 뜻이니 그러므로 사물이 늙으면 요괴(妖怪)가 된다. 죽이면 그 뿐인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혹은 하늘이 사문(斯文)을 죽이지 못해 이것으로 내 목숨을 매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게 하겠는가.”
거문고와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자로가 그것을 삶으니 그 맛이 아주 좋았다. 그 고기를 먹은 병자도 병이 다 나았다.
그들은 이튿날 다 그곳을 떠났다.[이상 열세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⑭ 양조(梁朝)의 거사 위영(韋英)의 아내 양(梁)씨가 시집 가서의 변화[이 이야기는 본문에 없음:역자]

⑮ 진(晋)나라 예장군리(豫章郡吏) 역발(易拔)의 변화
진(晋)나라 때 예장군(豫章郡)의 아전 역발(易拔)이 의희(義熙) 연간에 휴가를 맡아 집에 돌아왔다가 기일을 어기고 돌아가지 않았다. 군(郡)에서 사자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다. 역발은 평상시와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또 일도 하였다. 사자가 떠날 채비를 하라고 독촉하자 역발이 말하였다.
“너는 내 얼굴을 보라.”
사자가 그의 얼굴을 보았더니 그의 눈이 모로 찢어지고 몸에 누런 반점이 있었다. 그가 곧 문 밖으로 한 발을 내딛자, 그가 전에 살던 집이 있는 산에서 사슴이 세 발 가진 큰 호랑이로 변하고 그가 세운 다리는 꼬리로 변하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이원(異苑)』에 나온다.]
진(晋)나라 의양현(宜陽縣)의 팽아(彭娥)라는 여자의 변화
진(晋)나라 영가(永嘉)의 난리에 그 군현(郡縣)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어 강자와 약자가 서로 횡포를 부렸다. 의양현(宜陽縣)에 팽아(彭娥)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부모와 형제 열 식구가 모두 장사(長沙)의 적(賊)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 때 팽아는 물동이를 이고 시내에 나가 물을 긷다가 적이 온다는 말을 듣고 곧 달려 돌아왔다. 그 집의 벽이 다 부서진 것을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적과 격투했다. 적은 팽아를 결박하고 시내로 끌고 나가 죽이려 했다. 시냇가에 높은 산이 있었는데 그 석벽이 수십 길이나 되었다. 팽아는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어 말하였다.
‘황천(皇天)이여, 과연 신(神)이 있습니까. 내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변을 당하게 하나이까?’
그리고는 곧 산을 향해 달려갔다. 산은 곧 갈라져 너비가 수장이나 되었고 평탄한 길은 숫돌과 같았다. 또 도적떼가 쫓아 오므로 팽아는 그 산 사이로 들어갔다. 산은 무너지면서 다시 합쳐져 전과 같아졌고, 도적들은 모두 죽어 땅 속에 묻히면서 머리만 나와 있었다. 팽아는 숨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팽아가 버린 물그릇은 돌로 변해 그 모양이 닭과 같았으므로 그 지방 사람들은 그것을 돌닭산[石雞山]이라 하고 그 물을 ‘팽아의 못’이라 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유명록(幽冥錄)』에 나온다.]

진(晋)나라 태말현(太末縣)의 오도종(吳道宗) 어머니의 변화
진(晋)나라 의희(義熙) 4년(408)에 동양군(東陽郡) 태말현(太末縣)에 살고 있는 오도종(吳道宗)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 있으면서 아직 아내를 두지 못했었다. 하루는 도종이 품팔이로 나가 집에 없었는데, 그 집에서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 사람들은 가만히 엿보다가, 그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검은 반점이 있는 호랑이만을 보았다. 그들은 놀라면서 호랑이가 그 어머니를 잡아먹을까 봐 두려워해, 곧 북을 울려 사람을 모으고 함께 가서 그녀를 구출하려고 집을 에워싸고 돌진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그 어머니만 있어 평상시와 같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말 뜻은 알 수가 없었다.
그 아들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다.
“전생에 지은 죄에 쫓김을 당해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그 고을에 호랑이 재앙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들은 모두 말하였다.
“그 어머니가 검은 반점의 호랑이로 변화해 백성들을 해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풀어 호랑이를 잡으려 하다가 여러 사람이 죽었다. 뒤에 사람들은 그 호랑이를 활로 쏘고 또 창으로도 그 배를 찔렀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며칠 뒤에 호랑이는 그 집에 돌아와 옛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드디어 평상에 엎드려 죽고 말았다. 그 아들은 울부짖으며 그 어머니를 법대로 장사지내고, 아침 저녁으로 거기 가서 곡(哭)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제해기(齊諧記)』에 나온다.]

진(晋)나라 부양현(復陽縣)에 소의 변화
진(晋)나라 부양현(復陽縣) 어느 마을에 어떤 집 아이가 소를 쳤다. 그 소는 갑자기 이 아이를 핥았는데, 소가 핥은 자리의 살이 다 하얗게 되면서 아이는 조금 뒤에 죽었다. 그 집에서는 이 아이를 장사지내고 그 소를 잡아 손님들을 대접했다. 이 쇠고기를 먹은 남녀 20여 인은 다 호랑이로 변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고미광주기록(顧微廣州記錄)』에 나온다.]

염제(炎帝)의 딸의 변화
염제(炎帝)의 딸 아(娃)는 동해(東海)에서 헤엄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정위(精衛)로 변화해 그 형상이 마치 까마귀와 같이 되었다. 그것은 항상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고 와서 동해를 메우려 했다.
과부(夸父)는 해와 경주하면서 목이 말라 강물을 마셨다. 강물이 다 말라 버리자 다시 북쪽으로 가서 큰 못물을 마시러 갔으나 미처 거기에 가기 전에 길에서 죽었다. 그가 버린 지팡이는 등림(鄧林)으로 변화하였다.[위의 한 가지 증험은 『산해경(山海經)』에 나온다.]

제전잡기(諸傳雜記)의 변화
『박물지(博物志)』에서 말하였다.
“송지(松脂)가 땅에 스며들어 천 년이 되면 복령(伏苓)으로 변화하고 복령이 천 년이 되면 호박(虎魄)이 된다. 호박은 일명 강주(江珠)라고 하는데 태산(太山)에는 복령은 있으나 호박은 없고, 익주(益州) 영창(永昌)에서는 호박은 나지만 복령은 없다.”
혹은 또 말하기를 “벌집을 태워 만든다”고도 한다. 이 두 가지 설(說)이 있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신농본초경(神農本初經)』에서 말하였다.
“계란의 흰자위와 노란자위를 한데 섞어 삶되, 아직 연할 때에 마음대로 거기에 무슨 물건이나 새긴 뒤에 쓴 술에 담가 며칠 밤 지나 이미 단단해지거든 분(粉) 속에 묻어 둔다. 이것은 가짜로 진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이것은 세상에서 흔히 하는 일인데 무엇이나 만들 수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서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늙은 부추[韮:향초의 일종]는 늙으면 관(雚)이 되고 부들은 늙으면 갈대가 된다.”
또 『수신기(搜神記)』에서 말하였다.
“토봉(土蜂)을 과라(蜾蠃:나나니벌)라 하는데, 요새 세상에서 말하는 열옹(蠮螉:나나니벌)으로서 허리가 가는 벌의 일종이다. 그것은 수컷만 있고 암컷은 없어 교접도 못하고 새끼를 낳지 못한다. 항상 뽕나무 벌레의 새끼를 잡아다가 그것을 길러 제 새끼로 만든다.”

진(秦)나라 때 강남(江南)에 정묘신의 변화
진(秦)나라 주방(周訪)은 젊을 때에는 상인(商人)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저녁이 되어 궁정묘(宮亭廟) 밑에서 잤다. 저희들끼리 의논하였다.
“누가 저 사당 안에 들어가 잘 수 있겠는가?”
주방의 성품이 담대하고 용감하였으므로 주방이 사당에 올라가 잤다. 밤이 다 지날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는 사당 안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을 보고 그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숫오리로 변화했다. 주방은 그것을 잡아 가지고 배로 돌아와서 삶으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곧 날아가 버렸다.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술이기(述異記)』에 나온다.]

진(秦)나라 때 남방(南方)에 낙민(落民)의 머리가 날아다닌 변화
진(秦)나라 때에 남방(南方)의 어떤 낙민(落民)은 그 머리가 날아다녔다. 그 종족 사람들의 부락에서 지내는 제사를 충락(蟲落)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오(吳)나라 때 장군(將軍) 주환(朱桓)은 한 계집종을 두었는데, 밤마다 누운 뒤에는 문득 그녀의 머리가 날아가곤 했다. 혹은 개구멍으로 드나들기도 하고 혹은 창문으로 드나들기도 했다. 그 때는 그 귀를 날개로 삼아 새벽이 될 때면 다시 돌아오곤 했다. 자주 이렇게 하였으므로 곁의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밤중에 불을 켜고 살펴 보았다. 오직 몸만 있고 머리는 없었다. 그 몸에는 약간 찬 기운이 돌았고 숨은 겨우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불로 덮어 두었다. 새벽이 되어 머리는 돌아왔으나 몸이 이불에 덮여 있었으므로 붙을 수가 없어 두 번 세 번 땅에 떨어지면서 한숨지으며 매우 시름했다. 그 몸은 숨길이 급하고 곧 죽을 것 같았는데 이불을 벗기자, 머리는 다시 목에 붙어 조금 있다가 평온을 되찾았다.
주환은 큰 괴물이라 하여 두려워서 그녀를 집에 둘 수 없어 쫓아냈다. 그 뒤에 그것이 큰 괴물임을 알았다.
그 때 남정대장(南征大將)도 가끔 그것을 만났다. 또 전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구리쇠 소반으로 덮어두었더니 머리가 다시 붙지 못해 드디어 죽고 말았다.

고양씨(高陽氏)가 부부(夫婦)를 같이 낳은 변화
옛날 고양(高陽)씨의 때에 함께 나서 부부가 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은 그들을 공동산(崆峒山) 들로 쫓아내었다. 그들은 서로 안고 죽었다. 신조(神鳥)가 불사초(不死草)로 그들을 덮어 두었다. 7년 뒤에 아들과 딸이 한 몸으로 태어났는데, 머리는 둘이요 발은 넷이며 손도 넷이었다. 이것을 몽쌍씨(蒙雙氏)라 한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위(魏)나라 심양현(尋陽縣) 북산(北山)의 오랑캐가 요술을 부린 변화
위(魏)나라 때 심양현(尋陽縣) 북쪽 산중에 어떤 만인(蠻人)이 있었는데 술수[術]가 있었다. 그는 능히 사람을 호랑이로 변화시켰는데 그 털 빛과 그 몸이 진짜 호랑이와 같았다.
다른 고을 사람 주진(周畛)은 종 한 명을 두고 있었는데 그를 시켜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라고 했다. 그 종은 그 아내와 누이동생과 함께 갔다. 산에 이르러 종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우선 저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
그들은 그 말대로 했다. 조금 있다가 종은 풀 속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누런 반점이 있는 큰 호랑이가 되어 풀 속에서 나왔다. 대단한 기세로 부르짖으니 매우 무서웠으므로, 두 사람은 크게 두려워했다. 한참 있다가 그것은 다시 풀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다시 사람이 되어 나와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집에 돌아가서는 부디 이런 말을 하지 말라.”
그러나 그 뒤에 그들은 결국 친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종도 그런 줄을 알았다. 이에 그들은 그에게 독한 술을 먹여 아주 취해 잠들게 하고는 사람을 시켜 그 옷을 벗기고 몸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그 상투 속에 종이 한 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큰 호랑이가 그려져 있고 호랑이 곁에 부적(符籍)만 있었다. 주진은 가만히 그것을 다 베껴 간직했다.
종이 술에서 깨어나자 그들은 그를 불러 따져 물었다. 종은 사실이 다 탄로난 줄을 알고 드디어 그 본말을 자세히 말했다.
“전에 내가 만인들에게서 쌀을 사들일 때, 어떤 만인의 스승이 ‘내게 술(術)이 있다’고 말하기에, 베 석 자와 백미 한 말과 붉은 수탉 한 마리와 술 한 말을 그에게 주어 이 법을 얻었다.”

위(魏)나라 청하(淸河) 송사(宋士)의 어머니가 목욕으로 인한 변화
위(魏)나라 때에 청하(淸河)에 살고 있던 송사종(宋士宗)의 어머니는 황초(黃初) 연간 여름에 욕실에서 목욕하려고, 집안 자녀들을 다 문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방 안에 있었다. 한참 있다가 그 집 사람들은 그녀의 뜻을 알 수 없어 벽 틈으로 가만히 엿보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욕통에는 큰 자라 한 마리만이 있었다. 그래서 모두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끝내 사람의 모습이 되지 않고, 전에 꽂고 있던 은비녀는 머리 위에 그대로 있었다. 모두 지켜 보면서 울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으며, 나가라고 하고 싶었으나 영 들어 주지 않았다.
며칠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스스로 문 밖으로 튀어 나와 빨리 달아났는데 아무리 쫓아도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드디어 어떤 물로 들어갔다. 며칠 뒤에 그것은 갑자기 집에 돌아와 평상시와 같이 집을 돌아다니다가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그 때 사람들은 사종에게 상례(上禮)를 지내고 복(服)을 입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종은 “어머니의 몸은 비록 변했으나 살아 있으니 이치로 보아 아직 그렇게 할 수 없다” 하고 끝내 치상(治喪)하지 않았다. 이것은 강하(江夏)의 황모(黃母)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위의 두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양(梁)나라 때의 개선사(開善寺)는 경조(京兆) 사람 위영(韋英)의 저택이었다. 위영은 일찍 죽고 그 아내 양(梁)씨는 초상도 치르지 않고 다시 하내(河內)의 향자집(向子集)을 남편으로 맞이했다. 비록 개가(改嫁)는 했다 하나 위영의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었다. 위영은 이것을 알고 대낮에 말을 타고 여러 사람을 데리고 그 집 뜰에 와서 “아양(阿梁)아, 그대는 나를 잊었는가?”라고 했다. 자집이 놀라 활을 쏘니 위영은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그는 곧 복숭아 사람으로 변하고 그가 탔던 말도 띠풀말로 변했으며 데리고 온 여러 사람도 다 부들 사람으로 변했다. 양씨는 두려워하여 드디어 자집을 버리고, 그 집을 절로 만들었다.[이것은 『낙양사기(洛陽寺記)』에 나온다.]
039_0597_c_06L述意部 通變部 厭欲部述意部第一夫聖人之用玄通無礙致感多方可作一途求不可以一理推故麤以麤應細以細應麤細隨機理固然矣所以放大光明現諸神變者此應十方諸大菩薩將紹尊位者耳若處俗接麤按邪歸正者復須隨緣通變量稱物情不可以妙理通寤指事而變現不思議之形質用遮不思議之頑見也譬聖人亦入鹿馬而度脫之在鹿馬豈同於鹿馬哉若不異於鹿應時常流不待此神變明矣通變部第二如華嚴經云佛子如一如來一化身如是等不可說譬喩法輪雲一切法界虛空界等世界悉以毛端周徧善孝度量一一毛端處於念念中化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身乃至盡未來際劫一一化佛身有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頭一一頭有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舌一一舌出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音聲一一音聲說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修多羅一一修多羅說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法一一法中說不說不可說佛剎微塵等句身味身復不可說不可說佛剎微塵等劫說異句身味身音聲充滿法界一切衆生無不聞者盡未來際常轉法輪如來音聲無異無斷不可窮盡是爲一切諸佛大力那羅延幢佛所住法又華嚴經云一切諸佛悉有八種微妙音聲一一音聲悉有五百妙音聲眷屬不可稱數百千音聲以爲莊無量無邊妙音聲伎樂皆悉淸淨普能演說一切諸佛正法義味悉離恐怖安住無畏大師子吼悉令一切界一切衆生聞其音聲隨其本行種種善根皆令開解是爲一切諸佛最了眞勝無上口業莊嚴又處處經云爾時佛笑口中有五色光出者有五因緣一欲令人有所問所問有益故二恐人言佛不知笑三爲現口中光故四笑諸不至故五笑阿羅漢守空不得菩薩道光還從頂上入者當示後人大明故又佛說心明經云爾時世尊爲梵志乃笑五色光從口出照十方五趣之類夫欲至人心喜令餓鬼飽地獄痛息畜生意開罪除尋光來詣佛所諸佛笑法皆有常瑞若授菩薩決徧照方光從頂入授緣覺決光入面門授聞決光入肩斗說生天事光從入說降人中光從膝入說趣三苦光從足心入諸佛之欣不以欲笑不以瞋笑不以癡笑不放逸笑不利欲笑不榮貴笑不富饒笑今佛普等愍傷群生行大慈笑無斯七也又智度論云如佛初轉法輪時應持菩薩從他方來欲量佛身上過虛空無量佛剎至華上世界見佛身如故而說偈言虛空無有邊 佛功德亦爾設欲量佛身 唐勞不能盡上過虛空界 無量諸佛土見釋師子身 如故而不異佛身如金山 演出大光明相好自莊嚴 猶如春華敷又處處經云佛在世時諸天鬼神人民皆到佛所聽經數百千重前後皆見佛面所以者何佛前世時言語無前後故是故無不見佛面者人臥皆隨佛所首向佛尊故厭欲部第三如大莊嚴法門經云爾時王舍城中有婬女女名金色光明威德彼女宿世善根因緣形貌端正衆相具足身眞金色光明照曜容儀媚麗世所希有神慧聰敏辯才無礙音辭淸妙深邃柔軟言常含笑隨所行處皆金光照所著衣服亦皆金色一切人衆見者繫心愛著無捨隨所游處皆悉隨從有長者子名上威德爲欲樂故多與財寶共相要契車乘莊嚴往詣園林爾時金色女宿緣冥感爲文殊師利化令入道神變自在故以頭枕彼威德膝上而睡卽以神力於其臥處爲死相胮脹臭爛難可附近須臾腹破肝腸剖裂五藏露現臭穢可惡小便道流溢不淨諸根肢節蠅蛆唼不可稱說長者子見此死屍大恐怖身毛皆豎而作是念我今無徧觀四方無歸依處倍增怖畏大怖聲彼長者子二因緣故生大怖一昔所未見如是惡事是故生怖二大衆知我與彼同來在此而今忽死謂我故殺阿闍世王不鑑此理橫見加戮是故生怖長者子獨於此林不見一人一切凡聖誰能救者彼長者子過去善根雖熟以不聞見文殊共金色女所說法故文殊師利卽以神力令諸樹林悉說偈言長者子聞已心大歡喜深自慶幸捨棄死屍從林而出卽往佛所具說怖緣爾時佛告長者子汝莫憂怖我當施汝一切無汝歸佛者一切無怖長者白佛切怖畏從何而生佛言從貪癡因緣故畏當知一切諸怖無主無作無有執者汝先欲覺今何所在長者子此中所見好色惡覺凡夫貪著聖法中無如是事於是佛爲種種方便說法長者子得順法忍金色女知長者子受教化已莊嚴五百馬車前後圍繞來詣佛所卻住一面爾時文殊問長者子言汝識此妹不長者子言我今實識文殊師利言云何識長者子卽向文殊而說偈見色如水沫 諸受悉如泡觀想同陽焰 如是我識彼見行如芭蕉 知識猶如幻女名假施設 如是我識彼身無覺如木 亦如草瓦礫心則不可見 如是我識彼諸凡夫如醉 顚倒生惡覺智者所不染 如是我識彼如彼林中屍 臭爛惡不淨身體性如是 如是我識彼過去本不滅 未來亦不生現在不暫住 如是我識彼文殊當善聽 彼恩難可報我本多貪欲 見不淨解脫彼身實不死 爲化我現死愍衆故示現 誰見不發心如是貪瞋癡 及一切煩惱如是體法性 善哉甚微妙爾時佛告阿難此金色女上威德男已於過去教化令發菩提今更聞法得順法忍此金色女於當來世過九十百千劫當得作佛號曰寶光如來威德長者於寶光佛所得菩薩身曰德光寶光滅後當得作佛號曰寶焰如來又觀佛三昧經云佛告阿難我昔夏安居時波羅柰國有一婬女在樓上名曰妙意昔日於佛有緣爾時世尊化三童子年皆十五面貌端正勝諸世閒一切人類此女見已身心歡喜白言丈夫我今此舍如功德天富力自在衆寶莊嚴我今以身及與奴婢奉上丈夫可備灑掃若能顧納隨我所願一切供給無所愛惜作是語已化人就牀未及食頃女前親近白言丈夫願遂我意化人不違隨己所欲旣附近已一日一夜心不疲厭至二日時愛心漸息至三日時白言丈夫可起飮食化人卽起纏緜不已女生厭悔白言丈夫異人乃爾化人告言我先世法凡與女通經十二日爾乃休息聞此語如人食噎旣不得吐又不得身體苦痛如被杵擣至四日時被車轢至五日時如鐵丸入體至六日時支節悉痛如箭入心女作念言我聞人說迦毘羅城淨飯王子身紫金色三十二相愍諸盲冥救濟苦人常在此城常行福度放金色光濟一切人今日何故不來救我我從今日乃至壽終終不貪色寧與虎狼同處一穴不貪色欲受此苦惱化人亦瞋弊惡婦女廢我事業我今共汝合體一處不如早死父母宗親若來覓者何處自藏我寧經死不堪恥辱弊物我不用爾欲死隨意是時人取刀剌頸血流滂沱塗污女身萎陁在地女不能勝二日靑淤三日胮脹四日爛潰五日漸爛六日肉落七日唯有臭骨如膠如漆粘著女身一切大小便利及諸惡蟲逬血諸膿塗漫女身女極惡厭而不得離女發誓願若諸天神及與仙人淨飯王子能免我苦我持此舍一切珍寶以用給施作是念時佛將阿難難陁帝釋在前梵王在後佛放常光照曜天地一切大衆皆見如來詣此女樓女見佛心懷慚愧藏骨無處取諸白㲲纏裹臭屍臭氣如故不可覆藏女見世尊爲佛作禮以慚愧故身映骨上臭骨忽然在女背上女極慚愧流淚而言如來功德慈悲無量若能令我離此苦者願爲弟子心終不退佛神力故臭骨不現女大歡喜爲佛作禮白佛世尊我今所珍一切施佛佛爲祝願梵音流暢女聞祝願心大歡喜時卽得須陁洹道五百侍女聞佛音皆發無上菩提道心無量梵衆見佛神變得無生忍帝釋所將諸天發菩提心者有得阿那含者又百緣經云佛在世時舍衛城中有一長者婦產一男兒形貌極醜狀似惡鬼有人見者捨之而去年漸長大父母厭惡驅令遠棄乃至畜生見此醜陋尚懷怖懼何況人類又於一時林採菓以自存活飛鳥走獸無不怖絕迹無住世尊慈念將諸比丘林欲度見佛避走佛以神力使不得諸比丘在樹下跏趺繫念世尊化作醜陋人執持應器盛滿中食向醜人形狀類己心懷喜悅今此人者眞是我伴尋求共語同器而食食已彼化人忽然端正醜陋問言汝今何以忽然端正化人荅言我食此食以善心觀彼樹下坐禪比丘使我端醜陋聞已尋復效之尋得端正懷喜悅卽向化人深生信解於是人還復本形醜陋見佛三十二相十種好光明普曜如百千日前禮佛卻坐一面佛卽爲其種種說法須陁洹果卽於佛前求索出家佛告善來比丘鬚髮自落法服著身便成沙門精勤修習得阿羅漢果諸比丘見是事已請佛爲說宿本因緣告比丘乃往過去無量世中有佛出號曰弗沙在一樹下結跏趺坐及彌勒俱爲菩薩到彼佛所種種供而翹一足於七日中說偈讚佛天上世閒無如佛 十方世界亦無有世界所有悉能見 無有能及如佛者爾時菩薩說此偈已彼山中有一鬼神作醜陋形來恐怖我我以神力令彼行處懸崖嶮岨不能得過山神卽作是念我以惡心恐怖他故令我今者行處嶮難不可得過今當往彼懺悔先罪作是念已尋卽往詣懺悔訖已發願而去佛告比丘欲知彼山神恐怖我故五百世中形體醜陋見者驚走由彼懺悔故今遭値我出家得道比丘聞已歡喜奉行頌曰大聖神變 隨事開曚 含英秀發開寤相應 服以邪道 化現神通隱顯利物 乃軌高蹤 群生息謗感寤興隆 潛運自在 見者生恭罕逢斯聖 絕代靈籠 含生有福遇此休功感應緣略引二十五驗通敍神化多種之變周時有左慈能變舌埵山有帝女能變夏鯀及趙王如意變魏襄王年中有女變漢建平中有男子變漢建安中有男子變晉元康中有女變晉惠懷時有男女變漢景帝時有人變漢宣帝時有雞變晉太康年中有蟛蜞及蟹變孔子於陳絃歌館中有鯷魚變梁朝居士韋英妻梁氏嫁變晉豫章郡吏易拔變晉宜陽縣有女姓彭名娥變晉太末縣吳道宗母變晉復陽縣有牛變炎帝之女變諸傳雜記之變秦時有江南亭廟神變秦時南方有落民飛頭變高陽氏同產夫婦變魏時尋陽縣北山蠻人作術變魏時淸河宋士母因浴變夫慈濟之道震古式瞻通化之方由來難測此是方外之大聖非是域中之凡能窮之不可原究之不可盡凡聖雖別變化有同良由智有淺深障有麤細機有大小化有寬陜蓋達生死之本可以言變化矣若依佛教明信因果因緣相假方成變化若據外俗未達大方唯信緣起不賴因成故千寶記云天有五氣萬物化成精則仁火精則禮金精則義水精則土精則恩五氣盡純聖德備也濁則弱火濁則淫金濁則暴水濁則土濁則頑五氣盡濁民之下也土多聖人和氣所交也絕域多怪物異氣所產也茍稟此氣必有此形有此形必生此性故食穀者智慧而食草者多力而愚食桑者有絲而食肉者勇憨而悍食土者無心而不息食氣者神明而長壽不食者不死而神大腰無雄細腰無雌無雄外接無雌外育三化之蟲先孕後交愛之獸自爲牡牝寄生因夫高木蘿託乎伏苓木株於土萍植於水排虛而飛獸蹠實而走蟲土閉而蟄魚淵潛而處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本乎時者親旁則各從其類千歲之雉入海爲蜃百年之雀入江爲蛤千歲龜黿能與人語千歲之狐起爲美女千歲之蛇斷而復續年之鼠而能相卜數之至也春分之鷹變爲鳩秋分之日鳩變爲鷹之化也故腐草之爲螢也朽葦之爲蛬也稻之爲𧉪也麥之爲蛺蠂也翼生焉眼目成焉心智存焉此自無知而化爲有知而氣易也鶴之爲獐蛇之爲鼈也蛬之爲蝦也不失其血氣而形性變也若此之類不可勝應變而動是謂順常茍錯其方則爲妖眚故下體生於上氣之反者也人生獸獸生人氣之亂者也男化爲女化爲男氣之質者也魯牛哀得疾七日而化爲虎形體變易爪牙施其兄將入搏而食之當其爲人不知將爲虎當其爲虎不知當爲人故晉太康中陳留阮士禽傷於虺不忍其痛數嗅其瘡已而雙虺成於鼻中元康中曆陽紀元載客食道龜已而成瘕醫以藥攻之下龜子數升大如小錢頭足殼備文甲皆具唯中藥已夫嗅非化育之氣鼻非胎孕之所享道非物之具從此觀之萬物之生死也與其變化也非通神之思雖求諸己惡識所自來然朽草之爲螢由乎腐也麥之爲蛺蠂由乎濕也爾則萬物之變皆有由也農夫止麥之化漚之以灰聖人理萬物之化者之以道其與不然乎今所覺事者未足以究其變化之極也此乃由衆生本識雜業熏成因種旣熟緣假外情與非情隨緣興變若先無種縱遇其緣緣疏力弱亦未能獨變故假緣故種不獨成緣假因故緣不獨因緣和合力用相齊萬類由生非能建庶將來哲豈猜餘卜也左慈字元放廬江人也有神道嘗在曹公坐公曰今日高會恨不得吳松江鱸魚爲鱠放云可得也求銅盤貯放以竹竿餌釣盤中須臾引一鱸公大撫掌會者皆驚公曰一魚不周座席得兩爲佳放乃復餌釣之臾引出皆三尺餘生鮮可愛公便目前鱠之周賜座席公曰今旣得鱸不得蜀生薑耳放曰可得也公恐其近道買因曰吾昔使人至蜀買錦勅人告吾使使增市二端人去須臾還得生薑又云於錦肆下見公使勅增市二端後經歲餘公使還果增市二端錦問之云昔某月某日見人於肆下以公勅勅之增市二端錦公近郊士人從者百許人放乃齎酒一罌脯一片手自傾罌行酒百官官皆醉飽公還驗之酤賣家昨悉亡其酒脯矣公惡之陰欲殺元放元放在公座將收之放卻入壁中霍然不乃募取之或見於市乃捕之而市人皆放同形後或見放於陽城山頭行人逐之放入於群羊行人知放在羊中告之曰曹公不復相殺本成君術旣驗但欲與相見羊中忽有一大老羝屈前兩膝人立而言曰遽如許人卽云此羊是競往欲取而群羊數百皆爲羝羊竝屈前膝人立云遽如於是莫知所取焉老子曰吾之所以爲大患者以吾有身也及吾無身吾有何患哉若老子之疇可謂能無身矣豈不遠哉舌埵山帝之女死化爲怪草其葉甤其華黃色其實如菟絲故服怪草常媚於人焉周宣王三十三年幽王生是歲有馬化爲狐晉獻公二年周惠王居于鄭鄭人入王府多取化爲蜮射人萇弘見殺人藏其血故三年而爲碧漢靈帝時江夏黃氏之母浴伏磐水夂而不起變爲黿矣婢驚走告家人來黿轉入深淵其後時時出現初浴簪一銀釵猶在其首焉於是黃氏累世不敢食黿肉吳寶鼎元年六月晦日丹陽宣騫母年八十矣亦因池浴化爲黿其狀如黃氏騫兄弟四人閉戶衛之掘堂上作大坑瀉水其黿入水中游戲一二日閒常延頸出亦望伺戶小開便輪自擢入于深淵遂不復還夏鯀天子之父趙王如意漢祖之子而鯀爲黃能意爲蒼狗魏襄王三年有女子自首化爲丈夫與妻生子故京房易傳曰女人化爲丈夫茲謂陰昌賤人爲王丈夫化爲女子茲謂陰勝陽厥咎亡漢建平中豫章有男子化爲女子爲人婦生一子長安陳鳳曰陽變爲將亡繼嗣生一子者將復一世乃絕也故使哀帝崩平帝沒而王莽篡漢建安七年越嶲有男子化爲女子周群曰哀帝時爾有此變將有易代之事也至二十五年獻帝封山陽公晉元康中安豐有女子曰周世寧八歲漸化爲男至十七八而氣性成體化而不盡男體成而不徹畜妻而無晉惠懷之世京雒有人一身而有男女二體亦能兩幸而尤好婬天下兵由男女氣亂而妖形作也當中興之閒又有女子其陰在腹肚居在楊亦性好婬色故京房易曰妖人生子陰在首則天下大亂若在腹則天下有事若在背則天下無後漢景帝元年九月膠東下密人年七十餘生角角有毛生故京房易傳曰家宰政闕妖人生角五行志以爲人不當生角猶諸侯不當擧兵向京師其後有七國之難起漢宣帝黃龍元年未央殿輅軨廏中雌雞化爲雄雞毛衣亦變不鳴不將無距元帝初元中丞相府史家雌雞化爲雄雞冠距鳴將至永光年中獻雄雞生角者五行志以爲王氏之應也晉太康四年會稽郡蟛蜞及蟹皆化爲鼠其衆覆野大食稻爲災始成有毛肉而無骨其行不能過田塍數日之後則皆爲壯至六年南陽獲兩足虎虎者陰精而居乎陽金獸也南陽火名也金精入火而失其形王室亂之妖也孔子戹於陳弦歌於館中夜有一人長九尺餘著皁衣高冠大咤聲動左子貢進問何人耶便提子貢而挾子路引出與戰于庭有頃未勝子察之見其甲車間時時開如掌子曰何不探其甲車引而奮之子路如之沒手仆於地乃是大鯷魚也九尺餘孔子歎曰此物也何爲來哉吾聞物老則群精依之因衰而至此其來也豈以吾遇戹絕糧從者病乎夫六畜之物及龜草木久者神皆依憑能爲妖怪故謂之五酉酉者五行之方皆有其物酉者老也故物老則爲怪矣殺之則已夫何患或者天之未喪斯文以是繫予之命乎不然何爲至於斯也弦歌不輟子路烹之其味滋病者興明日遂行右十三驗出搜神記晉時豫章郡吏易拔義熙中受番還家違遁不反郡遣追見拔言語如常亦爲施設使者催令裝束拔因語曰看我面仍見眼目角張身有黃斑便豎一足徑出門去家先依山爲居至鹿變成三足大虎所豎之腳卽成其尾右此一驗出異苑晉永嘉之亂郡縣無定主强弱相暴宜陽縣有女子姓彭名娥父母昆弟十餘口爲長沙賊所殺娥負器出汲於溪聞賊至走還正見塢壁已破不勝其哀與賊相格賊縛娥驅出溪邊將殺之溪際有大山石壁高數十娥仰呼曰皇天寧有神不我爲何而當如此因奔走向山山立開廣數丈平路如砥群賊亦逐娥入山遂崩合泯然如初賊皆壓死山裏頭娥遂隱不復出娥所捨汲器化爲石形似雞土人因號曰石雞山水爲娥右此一驗出幽冥錄晉義熙四年東陽郡太末縣吳道宗少失父單與母居未有婦兒宗賃不在家鄰人聞其屋中砰磕之聲闚不見其母但有烏斑虎在其屋中鄕里驚怛恐虎入其家食其母便鳴鼓會共往救之圍宅突進不見有虎見其母語如平常不解其意兒還語之曰宿罪見追當有變化事後一月日便失母縣界內虎災屢起皆云母烏斑虎百姓患之發人格擊之數人後人射虎白鷹幷戟剌中其腹然不能卽得經數日後虎還其家牀上不能復人形伏牀上而死其兒號泣如葬其母法朝冥哭臨之右此一驗出齊諧記晉復陽縣里民有一家兒牧牛牛忽舐此兒處肉悉白兒俄而死其家葬此兒殺牛以供賓客凡食此牛肉男女二十餘人悉變作虎右此一驗出顧微廣州記錄炎帝之女娃惡佳反游于東海溺而死化爲精衛其狀如烏常銜西山之木石以堙東海堙者塞也其音曰因夸父與日競走渴飮河河涸不足北飮大澤未至道死棄其杖化爲鄧林右此三驗出山海經博物志曰松脂淪入地千年化爲伏伏苓千年化爲虎魄虎魄一名江今太山有伏苓而無虎魄益州永昌出虎魄而無伏苓或復云燒蜂巢所作未詳此二說孰是神農本草經取雞卵殼黃白渾雜者熟煮及尚軟隨意刻作物以苦酒漬數宿旣堅內著粉中假者亂眞此世所常用無作不成韓詩外傳曰孔子曰老韮爲雚老蒲爲葦搜神記曰土蜂名曰蜾蠃今世謂蠮螉細腰之類其爲物雄而無雌不交不產常取桑蟲之子育之則皆化成己子也秦周訪少時與商人泝江俱行夕止宮亭廟下同侶相語誰能入廟中宿訪性膽果決因上廟宿竟夕宴然起廟中見有白頭老公訪遂擒之爲雄鴨訪捉還船欲烹之因而飛去後竟無他右此一驗出述異記秦時南方有落民其頭能飛其種人部有祭祀號曰蟲落故因取名焉時將軍朱桓得一婢每夜臥後頭輒飛去或從狗竇或從天窗中出入耳爲翼將曉復還數數如此傍人怪夜中照視唯有身無頭其體微冷氣息裁屬乃蒙之以被至曉頭還礙被不得安兩三墯地噫咤甚愁而其體氣急狀若將死乃去被頭復起傳有頃平和桓以爲巨怪畏不敢畜乃放遣之旣而詳之乃知天怪也南征大將亦往往得之又嘗有覆以銅盤者頭不得進遂死昔者高陽氏有同產而爲夫婦帝放性良之於崆峒之野相抱而死神鳥以不死草覆之七年男女同體而生二頭四足四手是爲蒙雙氏右二驗出搜神記魏時尋陽縣北山中蠻人有術能使人化作虎毛色介身悉如眞虎餘鄕人周畛有一奴使入山伐薪奴有婦及妹亦與俱行旣至山奴語二人云汝且上高樹視我所爲如其言旣而入草須臾一大黃斑虎從草出奮迅喚甚爲可畏二人大怖良久還草少時復還爲人語二人歸家愼勿道後遂向等輩說之周尋復知乃以醇酒飮之令熟醉使人解其衣服及身體事事詳視了無異唯於髻髮中得一紙畫作大虎虎邊有符周密取錄之奴旣醒喚問之見事已露遂具說本末云先嘗於蠻中告糴有一蠻師云有此術以三尺布一斗米精一赤雄雞一斗酒受得此法魏時有淸河宋士宗母以黃初中夏天於浴室裏浴遣家中子女盡出戶獨在室中良久家人不解其意於壁穿中闚不見人木瓫水中有一大鼈遂開戶大小悉入了不與人相承嘗先著銀釵猶在頭上相與守之啼泣無可柰何意欲求去永不可留視之積日轉解自投出戶外而去駛逐之不及遂便入水復數日忽還巡行宅舍如平生了無所言而去人謂士宗應行喪治服士宗以母形雖變而生理尚存竟不治喪與江夏黃母相似右二驗出續搜神記時開善寺京兆人韋英宅也英早卒其妻梁氏不治喪而嫁更納河內向子集爲夫雖云改嫁仍居英宅英聞嫁白來歸乘馬將數人至於前呼曰阿梁卿忘我耶子集驚怪張弓射之應箭而倒卽變爲桃人所騎之馬亦化成茅馬從者數人盡爲蒲人梁氏惶懼遂捨爲寺見雒陽寺記傳

26. 면몽편(眠夢篇)[여기에 5부가 있다.]
039_0605_c_20L眠夢篇第二十六此有五部
039_0606_a_02L
술의부(述意部) 삼성부(三性部) 선성부(善性部)
불선부(不善部) 무기부(無記部)

(1) 술의부(述意部)
원래 이 한 마음이 쌓여 삼계(三界)가 되었는데 어리석은 무리들은 자만하다가 거기 떨어져 헤매고 있다. 그 한계를 알고자 하나 그 근본을 헤아리기 어렵구나. 그러므로 저 멀리 무시(無始)로부터 지금의 몸에 이르기까지 생사에 떠돌아다님은 티끌처럼 많은 겁으로도 견줄 데 없다. 밝고 어두움이 번갈아 오고 섶과 불로는 비유할 수 없으며, 흘러가는 물이 빠른 것이 아니라, 그릇의 달을 보전하기 어렵도다.
또 성쇠(盛衰)의 도(道)는 시간과 더불어 서로 얽히고 수몽(睡夢)의 길은 마음으로 인해 움직인다. 움직임은 내식(內識)을 말미암고 경계는 외훈(外熏)을 말미암으며 연(緣)은 아름답고 추함[好醜]을 훈(熏)하고 꿈은 3성(性)에 통한다. 만일 잠에 선악이 있으면 꿈에 길흉(吉凶)이 있으니 이것을 유기(有記)라 하고, 만일 습관에 선악이 없으면 평범한 일을 두루 보나니 이것을 무기(無記)라 한다. 만일 낮에 청황(靑黃)을 만연하면 꿈의 생각도 도리어 같나니 이것을 생각의 꿈이라 하고, 만일 오르고 잠김을 보면 물과 불이 번갈아 침노하나니, 이것을 병(病)의 꿈이라 한다. 비록 꿈이 3성(性)에 통하나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나니 이 일을 알고자 하면 그것은 아래의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2) 삼성부(三性部)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꿈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4대(大:온몸)가 고르지 못한 꿈이요, 둘째는 먼저 보았던 것을 꾸는 꿈이며, 셋째는 천인(天人)의 꿈이요, 넷째는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다.
【문】 어떤 것이 4대가 고르지 못한 꿈인가?
【답】 만약 잠을 잘 때 혹은 꿈에서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허공으로 날아 오르기도 하며 혹은 호랑이ㆍ이리ㆍ사자ㆍ도적 등에게 쫓기기도 하나니 이것이 바로 4대가 고르지 못한 꿈으로서 거짓이요 참이 아니다.
【문】 어떤 것을 먼저 보았던 것의 꿈이라고 하는가?
【답】 혹은 낮에 해를 보았거나 혹은 흰 것을 보았거나 혹은 검은 것을 혹은 남자를 혹은 여자를 보면 밤에 잠을 잘 때 꿈에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먼저 보았던 것을 꾸는 꿈이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참이 아니다.
【문】어떤 것을 천인의 꿈이라 하는가?
【답】만약 선지석(善知識)이나 천인들이 그를 위하여 선(善)한 꿈을 나타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선하게 하거나, 또는 악지식(惡知識)이 그를 위해 악한 꿈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진실한 것이다.
【문】 어떤 것을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라고 하는가?
【답】 이 사람의 전신(前身)이 혹 복덕이 있거나 혹은 죄장(罪障)이 있는 것이니, 만일 복덕이 있으면 좋은 꿈이 나타나고 죄장이 있으면 나쁜 꿈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어머니와 같은 경우이니 보살이 처음 어머니의 태 안에 들어갈 때에, 꿈에 흰 코끼리가 도리천(忉利天)에서 내려와 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다. 또 만일 꿈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전을 독송하며 지계ㆍ보시 등의 갖가지 공덕을 지으면 이것도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문】 꿈은 선(善)인가, 불선인가, 무기인가?
【답】 선도 되고 불선도 되며 무기도 된다. 만일 꿈에 부처님께 예배하거나 법을 듣거나 설법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바로 선한 공덕이요 만약 꿈에 살생ㆍ도둑질ㆍ음행 따위를 보면 이것은 바로 불선한 꿈이며 만약 꿈에서 청ㆍ황ㆍ적ㆍ백ㆍ흑 등의 빛깔을 보면 이것은 무기의 꿈이다.
【문】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하는가?
【답】 과보를 받지 않는다. 왜냐 하면 마음으로 지은 업은 미약하여 과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律)에서 말하기를 ‘꿈 속에서 생긴 일은 제외하나니 범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가전연론(迦旃延論)』에서 말하였다.
“【문】 어떤 것을 일체의 잠[睡]과 꿈이 서로 상응(相應)한다고 하는 것인가?
【답】 혹은 수(睡)하되 면(眠)하지 않는 것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니, 마치 면하지 않을 때에는 몸도 마음도 유연[軟]하지 않고 몸도 마음도 무거우며 몸도 마음도 몽매하고 몸도 마음도 시끄러우며 몸도 마음도 수(睡)하나니 이렇게 수에 얽매이는 것을 수와 불면(不眠)이 서로 호응한다고 말한다.
【문】 어떤 것을 면(眠)과 불수(不睡)가 서로 호응한다고 하는가?
【답】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의 면몽(眠夢)이니, 이것을 면(眠)과 불수(不睡)가 서로 호응한다고 말한다.
【문】 어떤 것을 수와 면이 서로 호응한다고 하는가?
【답】 더럽고 물든 마음의 면몽을 바로 수와 면이 서로 호응한다고 한다.
【문】 어떤 것을 수하지도 않고 면하지도 않는다 하는가?
【답】 이상의 사실을 다 제외한 것이다.
【문】 면이란 선인가, 불선인가, 무기인가?
【답】 면은 혹 선이 되기도 하고, 혹은 불선 혹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문】 어떤 것이 선이 되는가?
【답】 선한 마음의 면몽이다.
【문】 어떤 것이 불선이 되는가?
【답】 불선한 마음의 면몽이다.
【문】 어떤 것이 무기가 되는가?
【답】 이상의 사실을 제외한 것이다. 꿈 속에서 보시하여 복을 짓거나 계를 지키고 재(齋)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잠을 잘 때에 지은 복과 같은 것은 마땅히 다른 복의 회향(迴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을 선이라고 한다.
【문】 어떤 것을 잠을 잘 때에 지은 복이 아니라 하며, 마땅히 회향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 마치 꿈 속에서 살생하거나 도둑질하는 것 등과, 불선한 마음으로 잠을 잘 때와, 다른 복을 짓지 않는 마음의 회향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불선이라고 한다.
【문】 어떤 것이 잠을 잘 때에 복과 복이 아닌 것을 짓는 것이며, 마땅히 회향이라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 잠을 잘 때에 복의 마음도 아니요 복이 아닌 마음도 아닌 회향과 같은 것이니 마치 무기와 같은 마음이다. 잘 때에 지은 복이나 복이 아닌 것은 마땅히 회향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무기라고 한다.
【문】 꿈이란 어떤 등류의 법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이것은 다섯 가지 번뇌[蓋] 가운데 무명개(無明蓋)이다.”

(3) 선성부(善性部)
『출생보리심경(出生菩提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 가지의 좋은 꿈은 훌륭한 법을 얻는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잠자다가 꾼 꿈에 연꽃을 보거나 혹은 일산을 보거나 혹은 달을 보거나 또는 부처님의 형상을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는 스스로 경행(慶幸)해야 하느니라. 즉 ≺나는 훌륭한 법을 만났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만일 꿈에서 연꽃을 보거나
또 꿈에서 일산을 보거나
또 혹은 꿈에서 달을 보면
반드시 큰 이익을 얻으리라.

또 만일 꿈에서 부처님 형상이나
모든 상(相)을 구족한 장엄한 몸을 보면
그것을 본 중생은 기뻐하면서
틀림없이 조어사(調御師) 되리라 생각하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악생왕(惡生王)은 잔인하고 사나운 행을 행하고 자비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이 사견(邪見)만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가전연(迦旃延)을 보내어 그가 태어난 본국을 교화하게 하여 악생왕과 그 부인으로 하여금 신심을 내게 하였다. 왕의 대부인 시바구사(尸婆具沙)가 뒤에 태자를 낳았는데 그 이름을 교파라(喬波羅)라고 하였다.
그 때 왕은 잠을 자다가 꿈에 여덟 가지 일을 보았다. 첫째는 머리에 불이 붙은 것이고, 둘째는 뱀 두 마리가 왕의 허리를 감은 꿈이며, 셋째는 가는 쇠그물이 왕의 몸을 얽어맨 꿈이고, 넷째는 붉은 물고기 두 마리가 왕의 두 발을 문 것이며, 다섯째는 흰 학 네 마리가 왕을 향해 날아오는 꿈이고, 여섯째는 핏빛 진흙탕을 걸어가는데 그 진흙이 겨드랑이까지 올라온 꿈이며, 일곱째는 태백산(太白山)을 올라가는 꿈이고, 여덟째는 황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꿈이었다.
왕은 꿈에서 깨어나 매우 불길하다 생각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곧 외도 바라문을 찾아갔다. 외도는 이 왕의 꿈 이야기를 듣고, 평소부터 왕을 꺼리었고 또 존자 가전연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 꿈 이야기를 듣고 곧 왕에게 말하였다.
‘그 꿈은 매우 불길합니다. 만일 신에게 빌지 않으면 그 화가 대왕님께 미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는 진실로 그러리라고 믿고는 더욱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 신에게 기도를 하려면 어떤 물건이 필요하오?’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다 대왕님이 매우 아끼는 물건들입니다. 내가 만약 말하더라도 대왕님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이 꿈이 너무도 나빠서 다만 큰 화가 내 몸에 미칠까 두려울 뿐이오. 내 몸 외에 아무것도 아낄 것이 없으니 부디 날 위해 거기에 필요한 물건을 말해 주시오.’
바라문은 왕의 간절함을 보아 그 마음의 지극함을 알고는 곧 왕에게 말하였다.
‘그 꿈이 여덟 가지이니 거기에 필요한 것도 여덟 가지라야 그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왕이 공경하는 부인 시바구사를 죽여야 하고, 둘째는 왕이 사랑하는 태자 교파라를 죽여야 하며, 셋째는 재상[輔相]인 대신을 죽여야 하고, 넷째는 왕의 소유인 오신(烏臣)을 죽여야 하며, 다섯째는 하루에 3천 리를 가는 왕의 코끼리를 죽여야 하고, 여섯째는 하루에 3천 리를 가는 왕의 낙타를 죽여야 하며, 일곱째는 왕의 좋은 말을 죽여야 하고, 여덟째는 왕이 존경하는 스님 가전연을 죽여야 합니다. 지금부터 7일까지 이 여덟 가지를 죽이고 그 피를 모아 가지고 다니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자기 목숨이 중하기 때문에 곧 허락했다. 그리고는 궁중으로 돌아와 근심하고 괴로워했다.
그 부인이 왕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왕은 부인에게 이상의 불길한 꿈에 대하여 다 이야기하고, 또 바라문이 말한 재앙을 물리치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서도 다 말했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다만 대왕의 몸만 걱정이 없고 편안하게 된다면 이 천한 첩의 몸이야 무엇이 귀하다 하겠습니까.’
이어 또 아뢰었다.
‘지금부터 7일 뒤면 나는 죽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저 존자 가전연에게 가서 6일 동안 계를 받고 법을 들으려고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그럴 수 없소. 만일 그대가 저기에 가서 혹 이런 사정을 다 이야기해, 만일 그가 알게 되면 나를 버리고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오.’
그러나 부인이 하도 간절히 청하였으므로 왕은 허락하였다. 부인이 존자에게 가서 예배하고 문안한 지 사흘이 지나갔다. 존자가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부인은 지금까지 여기 와서 잔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왜 평상시와 다릅니까?’
부인은 왕의 나쁜 꿈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고 ‘지금부터 7일 후면 왕은 우리들을 죽여 액땜을 할 것입니다. 남은 목숨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와서 설법을 듣는 것입니다’ 하고 다시 왕의 꿈을 이야기했다.
존자 가전연이 말하였다.
‘그 꿈은 매우 좋은 꿈입니다. 반드시 경사가 있을 것이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첫째 머리에 불이 붙었다는 꿈은 보주국(寶主國)에서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있는 천관(天冠)을 가지고 와서 왕에게 공물(貢物)로 바칠 것이니 정녕코 그렇게 될 꿈입니다.’
부인은 마음이 급했다. 앞으로 7일이 차면 왕에게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천관이 오는 시기가 늦어질까 걱정이 되어 부인은 존자에게 물었다.
‘그것이 언제 오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오늘 저녁 때에는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두 번째 꿈인 두 마리 뱀이 허리를 휘감았다는 것은, 월지국(月支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있는 쌍검(雙劍)을 바칠 꿈이니, 그것도 오늘 저녁 때 올 것입니다. 세 번째 가는 쇠그물이 몸을 얽어맨 꿈은 대진국(大秦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구슬 영락을 바칠 꿈이니, 그것은 내일 새벽에 올 것입니다. 네 번째 빨간 물고기가 발을 물었다는 꿈은 사자국(師子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비유리(毘琉璃)신을 바칠 꿈이니, 그것도 내일 아침 밥 먹을 때가 되면 올 것입니다. 다섯 번째 흰 학 네 마리가 왔다는 꿈은, 발기국(跋耆國)의 왕이 금을 바칠 것이니, 그것도 내일 점심 때에 올 것입니다. 여섯 번째 핏빛 진흙탕 속을 거닐었다는 꿈은, 안식국(安息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사슴털로 짠 흠바라의(欽婆羅衣)를 바칠 꿈이니, 그것도 내일 해질 때에 올 것입니다. 일곱 번째 태백산으로 올라갔다는 꿈은, 광야국(曠野國)의 왕이 큰 코끼리를 바칠 꿈이니, 내일 저녁 때에 올 것입니다. 여덟 번째 황새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는 꿈은, 왕과 부인 사이에 비밀한 일이 있을 것이니, 그 일은 닥치면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과연 존자의 말과 같이 기한이 되자 여러 나라에서 바치는 물건들이 모두 도착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시바구사 부인이 전에 썼던 천관(天冠)에다 보주국에서 바친 천관을 겹쳐 씌워 주었다. 왕은 그리고 다시 장난삼아 시바구사 부인이 쓰고 있는 천관 하나를 벗겨 금만(金鬘) 부인의 머리에 씌웠다. 그러자 시바구사 부인이 성을 내면서 말했다.
‘만일 나쁜 일이 있었다면 내가 먼저 당했을 것인데, 지금 얻은 천관을 저이에게 씌우십니까?’
그러면서 타락 그릇을 왕의 머리에 던졌다. 왕의 머리에는 온통 타락이 묻어 더러워졌다. 왕은 매우 화를 내어 칼을 뽑아 부인을 치려 했다. 부인은 두려워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걸어버렸다. 왕은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왕은 존자가 말한 ‘남모르는 사사로운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왕은 부인과 함께 존자 가전연에게 가서 위의 사실을 자세하게 이야기한 뒤에 ‘만일 우리가 법답지 않은 사악한 말을 믿었더라면 존자님과 처자와 대신과 사랑하는 것들을 다 죽일 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존자의 은혜를 입어 그런 나쁜 일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하고는 존자를 공경하며 받들어 공양하였다. 그리고는 이도 바라문들은 다 멀리 국경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왕이 존자에게 물었다.
‘어떤 인연이 있어 저 여러 나라에서 그런 보물을 내게 바쳤습니까?’
존자는 대답하였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毘婆尸)라는 부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출현하셨을 때에 반두(槃頭)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태자는 불법을 믿고 좋아하면서 정진하였습니다. 그는 그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공양하고 예배한 다음에 자신이 쓰고 있던 천관과 보검ㆍ영락ㆍ큰 코끼리ㆍ보배 수레ㆍ흠바라의(欽婆羅衣) 등을 그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이 복의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존귀하게 되어 가지고 싶은 모든 보물이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삼보(三寶)에 대하여 깊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왕은 예배하고 궁중으로 돌아왔다.”

(4) 불선부(不善部)
『발각정심경(發覺淨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스무 가지의 수면(睡眠)의 온갖 허물을 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 스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수면을 즐기는 자는 마땅히 게으를 것이요, 두 번째는 몸이 무거울 것이며, 세 번째는 피부가 더러울 것이요, 네 번째는 피부가 꺼칠꺼칠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모두가 크게 더럽고 탁하며 위덕(威德)이 박약할 것이요, 여섯 번째는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을 것이며, 일곱 번째는 몸에 부스럼이 생기고 여덟 번째는 게으름을 많이 피울 것이다. 아홉 번째는 어리석음의 그물이 증장할 것이요, 열 번째는 지혜가 약할 것이며, 열한 번째는 피곤해지기 쉬울 것이요, 열두 번째는 어둠 속으로 나아갈 것이며, 열세 번째는 남들이 공경하지 않을 것이요, 열네 번째는 성품이 어리석을 것이다. 열다섯 번째는 온갖 번뇌가 많고 마음이 온갖 번뇌로 향할 것이요, 열여섯 번째는 선법(善法)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며, 열일곱 번째는 모든 깨끗한 법이 감소될 것이며, 열여덟 번째는 항상 두려움 속에 있을 것이요, 열아홉 번째는 정진하는 사람을 보면 헐뜯고 욕할 것이요, 스무 번째는 대중 속에서 남의 천대를 받을 것이다.’”
또 『국왕불리선니십몽경(國王不黎先泥十夢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불리선니(不黎先泥)라는 어떤 나라의 왕이 열 가지 꿈을 꾸었다. 첫 번째는 세 개의 병이 나란히 있는데, 양쪽 가에 있는 병에서는 가득한 기운이 나와 서로 오가면서도 가운데의 빈 병에는 들어가지 않는 꿈이었고, 두 번째는 어떤 말이 입으로도 먹고 꽁무니로도 먹는 꿈이었다. 세 번째는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꿈이었고, 네 번째는 조그만 나무에 열매가 맺어 있는 꿈이었다. 다섯 번째는 어떤 사람이 새끼를 꼬고 있는데, 그 뒤로 염소와 염소 주인이 새끼를 먹는 꿈이었고, 여섯 번째는 여우가 금평상 위에 앉아 금그릇의 밥을 먹고 있는 꿈이었다. 일곱 번째는 큰 소가 도리어 송아지의 젖을 먹는 꿈이었고, 여덟 번째는 네 마리 소가 사방에서 울며 와서 서로 싸우려 하면서 싸움이 붙을 듯 말 듯하다가 사라지는 꿈이었다. 아홉 번째는 큰 물이 복판은 흐릿하고 네 가장자리는 맑은 꿈이었고, 열 번째는 큰 개울물이 빨갛게 흐르고 있는 꿈이었다.
왕은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그 나라와 자신과 처자들이 망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튿날 왕은 공경(公卿) 대신과 모든 도인과 꿈 해몽(解夢)에 밝은 자들을 불러서 물었다.
‘내가 어젯밤에 이런 열 가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몹시 불안함을 느꼈다. 누가 이 꿈을 해몽할 수 있겠는가?’
어떤 바라문이 말했다.
‘제가 그 꿈을 풀이할 수는 있으나 왕이 들으시면 몹시 근심하고 불쾌해 하실까 두렵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경이 아는 대로 숨기지 말고 다 말하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대왕님의 꾸신 꿈은 다 나쁜 징조입니다. 그 애지중지하는 부인과 태자 및 친척ㆍ시자(侍者)ㆍ노비 등을 다 죽여 하늘에 제사 지내야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가지신 침구와 몸에 장식한 보배 장식품들을 모조리 불태워 하늘에 제사 지내야 다른 탈이 없을 것입니다.’
왕은 꿈이 아주 나쁘다는 말을 듣고 매우 걱정이 되고 불안하여 곧 재실 방에 들어가서 이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인 마니(摩尼)가 왕에게 와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재실방에 들어와 걱정하고 불안해 하고 계십니까? 혹 내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소. 그저 내게 걱정이 있을 뿐이오.’
부인이 다시 묻자 왕이 말하였다.
‘내게 묻지 마시오. 당신도 들으면 불쾌할 것이오.’
부인이 다시 말했다.
‘나는 왕의 반쪽 몸입니다. 설사 좋건 나쁘건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해야 할 터인데, 왜 말하지 않습니까?’
왕이 할 수 없이 열 가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 말했다. 부인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아무 걱정 마십시오. 마치 사람이 금을 살 적에 돌에 갈아보면 좋고 나쁜 빛깔이 저절로 돌에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지금 부처님께서 여기서 멀지 않은 가까운 정사(精舍)에 계십니다. 왜 거기 가서 물어 보지 않습니까? 만일 부처님께서 해몽해 주시거든 왕께선 그 말씀을 따르십시오.’
왕은 그 말을 따라 곧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장엄하게 꾸며 타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내가 어젯밤에 열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갖추어진 내용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내 나라와 처자들이 망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열 가지 꿈에 대하여 해몽해 주십시오. 그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왕이 꾼 꿈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 꿈의 내용은 모두 후세에 다가올 일이지 금세의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이 뒷세상의 사람들은 법으로 금하는 계율을 두려워하지 않고 음일하고 이익을 탐하고 질투하며 만족할 줄 모르고, 의리가 적고 자비심이 없으며 기뻐하고 성내면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첫 번째 꿈에서 본, 나란히 있는 세 개의 병에서 가득한 기운이 나와 가에 있는 두 병에만 서로 왕래하면서 가운데 빈 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부귀한 사람은 부귀한 사람끼리만 서로 따르고 가난한 사람과 친근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꾼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라와 태자와 부인에게도 다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두 번째 꿈에 보인 말이 입으로도 먹고 꽁무니로도 먹었다는 것은, 후세 사람이 제 왕과 대신은 국고에서 먹고 현관(縣官)은 봉록(俸祿)에서 먹으면서 또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먹으면서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세 번째 꿈에 보인 작은 나무에 꽃이 핀 것은, 후세 사람들은 나이 30세도 못되어 머리에 백발이 나고 탐하고 음란하고 욕심이 많아서 나이는 젊은데도 쉽게 늙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네 번째 왕의 꿈에 보인 작은 나무에 열매가 맺은 것은, 후세의 여자들은 나이 15세가 못 되어 시집갔다가 아이를 안고 돌아오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꿈에 보인 어떤 사람이 새끼를 꼬고 있는데 그 뒤로 염소와 염소 주인이 새끼를 먹은 것은, 후세 사람들은 남편이 장사하러 밖으로 나가면 그 아내는 뒤에서 남의 집 남자와 간통하면서 그 재물을 먹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여섯 번째 왕의 꿈에 보인 여우가 금평상 위에 앉아서 금그릇의 음식을 먹은 것은, 후세 사람은 미천한 사람이 갑자기 존귀해지고 재산이 있어 여러 사람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공후(公侯)의 자손들은 다시 빈천하게 되어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뒤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일곱 번째 왕의 꿈에 보인 큰 소가 도리어 송아지의 젖을 먹은 것은, 후세 사람들은 예의(禮儀)가 없어, 어머니가 도리어 딸을 위해서 중매를 서서 다른 집 남자를 꾀어다가 딸과 간통하게 하고는 재물을 구해 살아가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덟 번째 왕의 꿈에 보인 네 마리 소가 사방에서 울며 와서 서로 싸우려 하면서 싸움이 붙을 듯 말 듯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후세의 제왕과 장리(長吏) 및 백성들이 지성스런 마음이 없고 서로 속이고 거짓말하고 어리석고 성내면서 친지를 공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가 제때에 오지 않으면 장리와 백성들은 기도하여 비가 오기를 빕니다. 사방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번개 치고 천둥 치면 장리와 백성들은 다 비가 올 것이라고 좋아하나, 잠깐 사이에 구름은 흩어지고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왕과 장리와 백성들이 충성하고 정직하며 사랑하고 어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아홉 번째 왕의 꿈에 보인 큰 물이 복판은 흐릿하고 네 가장자리는 맑은 것은, 후세에 중국은 시끄럽고 다스려지지 않아 백성들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나 변방 나라는 사면이 다 맑고 평온하여 백성들은 화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따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열 번째 왕의 꿈에 보인 큰 개울물이 빨갛게 흐른 것은, 후세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다투어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지어 서로 공격할 때 거병(車兵)ㆍ보병ㆍ기병을 만들어 서로 싸우고 죽여 그 수를 셀 수 없어 길에서 죽은 사람들의 피가 빨갛게 흐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라와 태자와 부인에게도 다 별일 없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꿇어앉아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지금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 아주 안온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예배하고 돌아가, 정부인과 궁중 신하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이로부터는 모든 외도와 바라문들을 믿지 않았다.”

(5) 무기부(無記部)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비구가 대중 속에 있으면서 졸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로 머리를 씻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래도 졸음이 온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비구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 법으로써 물로 남을 씻어 주게 하셨다. 첫째는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서이고, 둘째는 남을 괴롭히지 않으려는 것이며, 셋째는 잠을 졸거나 잘 때요, 넷째는 머리를 벽에 기댈 때이며, 다섯째는 다리를 펴고 앉을 때이다.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는 공을 던지는 것을 허락하셨고, 또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는 선장(禪杖)으로 때리는 것을 허락하셨다. 만약 선장을 취할 때에는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두 손으로 선장을 잡고 졸고 있는 사람의 정수리 위에 가볍게 놓는다.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마땅히 일어나서 졸고 있는 다른 사람을 살펴 선장으로 때리고, 때리고 난 뒤에는 도로 자리에 앉는다. 만약 조는 이가 없으면 선장을 본래 있던 자리에 두고 앉는다.
만약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는 선진(禪鎭)을 쓰도록 허락하셨다. 홀(笏) 같은 것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안에 노끈을 꿰고 그 끝에 매듭을 지어서 귀에 걸되, 이마에서부터 거리가 네 손가락쯤 떨어지게 한다. 선진을 착용할 때 선진이 땅에 떨어지면 잠에서 깨어나는 방식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진을 떨어뜨린 사람은 곧 일어나서 거위의 걸음처럼 천천히 걸어야 한다.’
게송을 읊는다.

혼침(昏沈)과 수면(睡眠)의 번뇌도
온갖 생각에 노니는 허망함을 나타내나니
친족들이 헛되이 모여
부질없이 좋은 잔치 음식 먹는다.

깨고 나면 허무한 것을
망령되게도 애착하고 그리워하니
비록 3성(性)을 통했으나
마침내 7변(變)을 이룬다.”

감응연(感應緣)[대략 여섯 가지의 증험을 인용하였다.]

한(漢)나라 감릉부승(甘陵府丞) 문영(文穎)
송(宋)나라 진수원(陳秀遠)
송(宋)나라 태수(太守) 제갈복(諸葛覆)
송(宋)나라 마건백(馬虔伯)
제(齊)나라 사문 석승호(釋僧護)
당(唐)나라 사문 석지흥(釋智興)

① 한(漢)나라 감릉부승(甘陵府丞) 문영(文穎)
한(漢)나라 남양(南陽)에 사는 문영(文穎)의 자(字)는 숙량(叔良)이다. 건안(建安) 연간에 감릉부승(甘陵府丞)이 되어 국경을 지나다가 거기서 머물러 잤다. 밤 3경(更) 때 꿈에 어떤 사람이 앞에 와서 꿇어앉아 말하였다.
“옛날 내 선인(先人)이 나를 여기에 묻었습니다. 물이 내 무덤을 돌아 흘러 내 관이 물에 잠겨, 반쯤은 말랐지만 그래도 따뜻한 기운이 없습니다. 들으니 마침 당신이 여기에 있다 하기에 와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내일 잠깐 여기 머무르면서 나를 높고 마른 곳으로 옮겨 주셨으면 다행스럽겠습니다.”
귀신은 그의 옷을 헤쳐 문영에게 보였는데 그 옷이 다 젖어 있었다. 문영은 꿈에서 깨어 슬퍼하는 마음으로 결국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측근 사람들이 말하였다.
“꿈이란 허망한 것이라, 어찌 족히 괴상하다 하리요.”
그래서 문영은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려 할 때 다시 꿈에 그 사람이 나타나 문영에게 말하였다.
“나는 몹시 곤궁하여 당신에게 알렸는데, 당신은 왜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까?”
문영은 꿈 속에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본래 조(趙)나라 사람으로서 지금은 주송민(注送民)의 신(神)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문영이 다시 말하였다.
“당신 무덤은 지금 어디 있소?”
그는 대답하였다.
“당신이 있는 천막 북쪽 10여 보쯤의 물가에 있는 마른 버드나무 밑에 있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날이 장차 밝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니, 당신은 잘 기억해 두십시오.”
문영은 승낙하고 이내 잠을 깨었다. 날이 밝아 떠나게 되자 문영은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비록 꿈이라 괴상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찌 이대로 떠날 수 있겠는가?”
좌우 사람들이 말하였다.
“어찌 잠깐 동안 징험해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영은 곧 일어나 수십 명의 사람을 데리고 물을 따라 올라가다가 과연 마른 버드나무를 보고는 말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는 곧 그 밑을 파게 했다. 얼마 안 내려가 과연 관을 발견했는데, 그 관은 매우 썩고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문영은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 말을 들을 때는 헛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상에 전하는 말이 다 징험이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는 그 관을 옮긴 뒤에 철제(醊祭)를 지내고 거기서 떠났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② 송(宋)나라 진수원(陳秀遠)
송(宋)나라 진수원(陳秀遠)은 영천(穎川) 사람이다. 일찍이 상주(湘州)의 서조(西曹)가 되어 임상현(臨相縣)에서 나그네로 있었다. 젊어서부터 삼보(三寶)를 신봉하여 나이 60세가 넘도록 가업에 더욱 독실히 하여 쇠퇴하지 않게 하였다.
송나라 원휘(元徽) 2년 7월 어느 날 저녁 때에 한가히 누워 잠을 자지 못하고, 만물이 생사에 유전하면서 안정하지 못함을 탄식하며 생각하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일심으로 기원하면서 꿈의 영감이 있기를 바랐다. 그 날 저녁은 날씨가 음산하였는데 밤에는 촛불조차 없었다. 한참 있다가 베갯머리에서 반딧불 같은 것이 반짝거리면서 날아가더니, 조금 있다가는 온 방이 환하여 마치 낮과 같이 밝았다.
수원은 급히 일어나 합장했다. 잠깐 사이에 뜰 한복판에 4, 5장 높이로 한 다리가 놓여 있었다. 붉게 채색한 난간이 공중에 우뚝 서 있었다. 수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떠오르는 듯하더니, 조금 있다가 자신이 다리 옆에 편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다리 위에는 남녀들이 왕래하면서 거리를 메웠다. 그 의복과 장식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끝에는 나이가 30세쯤 된 여자가 위에는 푸른 옷을 입고 아래에는 흰 베치마를 입었으며 수원의 왼쪽에 와서 서 있었다. 조금 있다가 또 어떤 부인이 온몸에 흰 베옷을 입고 왼쪽으로 머리 따아 올리고 손에는 향과 꽃을 들고 수원의 앞에 서서 수원에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 전생의 몸을 알고 싶습니까? 내가 곧 그것입니다. 이 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했기 때문에 여자의 몸을 바꾸어 당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흰 옷 입은 여자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여자는 바로 내 전생의 몸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떠나갔다. 그녀가 떠난 뒤에 다리도 점점 사라지면서 수원은 홀연히 밑으로 내려가는 듯했다. 그 때 빛도 차츰 사라졌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③ 송(宋)나라 태수(太守) 제갈복(諸葛覆)
송(宋)나라 낭야(琅邪)의 제갈복(諸葛覆)은 송나라 영가(永嘉) 연간에 구진군(九眞郡)의 태수(太守)가 되었다. 그 집은 여러 대를 내려오도록 양도(陽都)에 있었고 오직 맡아들 원숭(元崇)만을 데리고 와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제갈복이 구진군에서 병으로 죽자 나이 겨우 19세된 원숭은 고향에 돌아가 초상을 치르려고 했다. 제갈복의 문생(門生)인 하법승(何法僧)이 그의 재물을 탐하여 친구들끼리 짜고 원숭을 밀어 물에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고 그 재물을 나누어 가졌다.
그 날 밤에 원숭의 어머니 진(陳)씨가 꿈을 꾸었다. 원숭이 돌아와 그 아버지가 죽은 일과 자신이 피살된 일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고 “시체는 물에 떠다니며 지극한 원한이 비길 데 없습니다. 여러 해로 받들지 못하다가 하루 아침에 영원히 하직하게 되었으니 머금은 슬픔과 씹는 한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흐느낌을 이기지 못해 했다. 그리고 또 말하였다.
“너무 빨리 오느라고 피로가 극심하여 그대로 창 앞에 누웠다가 지금 평상 위에서 머리를 창에 기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누워 있는 자리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진씨는 슬픔에 놀라 깨어 일어나 불을 들고 아들이 누웠던 자리를 비추어 보았다. 그 자리는 마치 사람의 몸처럼 축축히 젖어 있었다. 이에 온 집안 사람들은 슬피 울고 비로소 그 사정을 들어 알았다.
그 때 서삼지(徐森之)는 처음으로 교주(交州)에 제수(除授)되었고 서도립(徐道立)은 장사(長史) 태수가 되니 도립(道立)은 곧 진씨 종고(從姑)의 아들이었다. 진씨는 꿈에 본 일을 글로 적어 두 서씨에게 그것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도립은 길에서 제갈복의 시체를 실은 배를 만나, 그 부자의 죽은 날과 맞추어 보니 그 귀신(원숭)의 말과 같았다. 이에 흉악한 짓을 한 범인 두 사람을 잡아 자백 받고, 법에 의해 그들을 죽이고, 다시 사람을 서울로 보내어 장례를 치루게 하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원혼지(寃魂志)』에 나온다.]

④ 송(宋)나라 마건백(馬虔伯)
송(宋)나라 마건백(馬虔伯)은 파서(巴西) 낭중(閬中) 사람이다. 젊어서 불법을 믿었고 일찍이 선한현(宣漢縣)의 현령이 되었었다. 원가(元嘉) 12년(437) 7월 어느 날 밤에 현에서 꿈을 꾸었다. 하늘 끝에 세 사람이 있는데 키는 2장이 넘고 얼굴은 엄숙하고 아름다웠으며 구름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하늘의 음악 소리가 공중에 가득 찼다. 그들은 건백을 보고 말하였다.
“그대의 재액(災厄)은 형초(荊楚)에 있고 그 날짜는 무인년(戊寅年) 8월 4일이다. 그대가 만일 산이나 못에 있으면 그 화(禍)는 사라질 것이요 인간에서 재계(齋戒)해도 또한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기일만 무사히 지나가면 도를 깨칠 것이다.”
그 때 건백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잘 알고 지내던 양섬(楊暹) 등 여덟 사람이 다 사슬에 묶이고 차꼬에 채워져 있었다. 또 도사(道士) 호료(胡遼)도 보였다. 몸이 반쯤은 땅 속에 있고 반쯤은 하늘 복판과 하늘 끝에 걸쳐 있는 신인(神人)들은 다 이 여덟 사람의 목숨이 다할 연월(年月)을 적고 오직 호료에게만 말하였다.
“만일 공덕을 닦아 쌓으면 목숨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양섬 등은 다 기약한 날에 죽었고, 호료는 두려워해 법을 받들고 산에 살면서 더욱 정진했다.
그 뒤에 건백은 양주(梁州)의 서조(西曹)가 되었는데 그 때 양주의 장군은 소사화(蕭思話)였다. 소사화는 남만(南蠻)으로 옮겨가서 다시 행참군(行參軍)이 되었다. 건백은 ‘형초의 액’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더욱 두려워하였다. 소사화에게 해직(解職)하고 형산(衡山)으로 가겠다고 청했다. 그러나 소사화는 애써 허락하지 않았다.
15년은 곧 무인(戊寅)년이었다. 6월 말에 병에 걸려 8월 4일에 이르러서는 더욱 위독해져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날 황혼에 갑자기 눈이 트여 세상이 환히 보였다. 즉 멀리 서쪽에 어떤 세 사람이 있는데 키는 다 2장이 넘어보였다. 앞의 사람은 옷이 풍족하고 수염은 아래로 길게 드리워졌으며 정수리의 광명이 원만하게 밝았다. 뒤의 두 사람은 몸 바탕이 금빛처럼 빛났고 위의가 단정하며, 땅에서 두어 길 되는 공중에 늘어서 있었다. 건백이 자세히 살펴보니 다 전날 꿈에 보았던 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금 후 보이지 않고, 남은 향기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져갔다. 같이 있던 여러 사람들도 다 그 향내를 맡았다. 건백은 곧 땀을 흘리고 병이 조금 나았다. 건백의 본래 거처하던 곳은 누추했다. 그 때에 스스로 큰 전당에 있었는데 행랑채 온 벽이 다 빛났으며 그것은 다 보배처럼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병은 차츰 회복되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⑤ 제(齊)나라 사문 석승호(釋僧護)
고제(高齊) 때에 석승호(釋僧護)는 도를 지키고 마음이 곧았으나 혜업(慧業)을 구하지 않았다. 1장 8척의 석상(石像) 만들기를 원하였으므로 모두 그 말을 괴상하게 여겼다.
나중에 그 절 북쪽 골짜기에서 그는 누워 있는 돌 하나를 보았는데 그 길이가 1장 8척이었다. 이에 장인(匠人)을 고용하여 석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1년이 지나 얼굴은 대강 완료되었으나 그 등은 땅에 그대로 붙어 있었으므로 6구(具)로 그것을 들려 했으나 처음과 같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이 되자 돌은 스스로 뒤집어졌다. 곧 석상을 만들어 마치고 불당으로 옮겨 안치했다.
진주(晋州)가 함락되던 날에 그 석상에서 땀이 흘렀다. 주(周)나라의 군대가 제나라에 들어와 모든 절을 다 불살랐으나 이 석상만은 빛깔도 변하지 않았다. 또 그것을 넘어뜨리려고 사람과 소 등 60명이 잡아당겼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이상한 스님이 나타나 그 석상 주위에 기와와 나무와 흙으로 참루(塹壘)를 둘러 쌓았는데 잠깐 사이에 다 마치고 그 스님은 간 곳이 없었다.
뒤에 그 석상은 어떤 신심 있는 사람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내 손가락에 질환이 생겨 아프다.”
그 사람은 꿈에서 깨어나 가보았더니 과연 나무에 두 손가락이 손상되어 있었으므로 곧 그것을 보수(補修)했다.
개황(開皇) 10년(590)에 어떤 도적이 그 석상의 번기와 일산을 훔치려 했다. 도적의 꿈에 1장 8척쯤 되는 사람이 그 방에 들어와 그를 꾸짖었다. 도적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참회하고 사과했다. 그 석상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⑥ 당(唐)나라 사문 석지흥(釋智興)
당(唐)나라 서울에 있는 대장엄사(大莊嚴寺) 석지흥(釋智興)은 속성은 송(宋)씨이고 낙주(洛州) 사람이다. 겸손하고 검소하고 노력하며 열심히 실천하고 굳고 총명했다. 수율사(首律師)에 의지하여 경을 외우고, 계율을 지키면서 마음과 입이 서로 도와 밤낮을 쉬지 않았다.
대업(大業) 5년(609) 중동(仲冬)에 유나(維那)의 직책을 맡을 차례가 되어 때를 맞추어 종을 쳤으나 스님들은 조금도 동요함이 없었다.
그 절에 삼과(三果)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의 형은 양제(煬帝)를 따라 남쪽으로 강도(江都)로 가다가 도중에 죽었다. 그러나 그 흉변을 통고해 온 적이 없었는데 그 아내의 꿈에 그가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팽성(彭城)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병으로 죽었소. 그러나 나는 재계(齋戒)를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지금 지옥에 떨어져 5고(苦)를 겪으면서 고생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누가 내 고통을 알겠소. 그러나 다행히 이 달 초하룻날에 장엄사의 지흥 스님이 치는 종소리가 이 지옥까지 울려 퍼져서 이 지옥을 진동시키는 은혜를 입어 같이 고통을 받던 자들까지 한꺼번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소. 지금은 안락한 곳에 태어나서 그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오. 그대는 비단 열 필을 가지고 가서 그 스님에게 드리고 또 내 뜻을 전하면서 지성으로 사례하시오.”
아내는 놀라 잠에서 깨어나 괴상한 꿈의 연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얼마쯤 지나서 다시 되풀이해서 그런 꿈을 꾸었는데 또 여러 무당들도 다 전에 말한 것과 같은 말을 하였다.
10일이 지난 뒤에 갑자기 그 흉보(凶報)가 왔는데 그 꿈과 꼭 같았다. 그녀는 곧 비단을 가지고 가서 지흥에게 주었다. 그러나 지흥은 그것을 받을 공덕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 비단을 대중들에게 골고루 보시했다. 그 절의 주지 공선(恭禪) 스님과 온 절의 대덕(大德) 스님들이 다 지흥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종을 쳤기에 이런 감응이 있단 말이오.”
지흥이 말하였다.
“내게는 특별한 술법[術]이 없습니다. 『부법장전(付法藏傳)』에 보면, ‘계니타왕(罽膩吒王)이 고통을 받을 때 종소리를 듣고 그로 인해 그 고통이 멎었다’고 했고,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명종게(鳴鐘偈)에는 ‘복과 공경이 이 자취를 따르는 것이니, 부디 힘써 행하라’고 했습니다.”
한겨울에 누각에 올라 바람이 살을 에일 때, 다른 스님이 염소가죽 장갑을 지흥에게 주면서 그것을 손에 끼고 종방망이를 잡고 종을 치라고 했다. 그러나 지흥은 뜻을 가다듬고 맨손으로 종을 치다가 손바닥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다.
“또 종을 칠 때는 먼저 좋은 서원을 세웁니다. 즉 ‘원컨대 모든 성현이 다 함께 도량에 들어와 법의 음식을 함께 받으소서’ 하고 그 다음에 세 번 칩니다. 길게 치려 할 때는 먼저처럼 정성을 드리고 ‘원컨대 모든 악취(惡趣)들이 이 종소리를 듣고, 다 함께 고통을 여의고 빨리 해탈을 얻어지이다’ 합니다. 이런 원행(願行)을 항상 받들어 닦거늘, 어찌 오직 이번만 정성이 지극해 멀리 감응했겠습니까.”
모두 이 말에 감복하고 그 징험이 틀림없으리라는 믿음을 배나 더 내었다.
정관(貞觀) 6년(632) 3월에 잠깐 동안 병을 앓았는데 그 몸을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는, 스승과 벗을 불러 음식을 먹고 작별을 고하고는 곧 장엄사에서 죽으니 나이는 45세였다.[위의 두 가지 징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오는 것이다.]
039_0605_c_21L 述意部 三性部 善性部 不善部 無記部述意部第一原是一心積爲三界癡流慢墯昏滯沈沒欲討其際難測其本所以遠自無始至於今身生死輪轉塵轢莫之明闇遞來薪火不能譬逝水非駛器月難保且夫盛衰之道與時交搆睡夢之途因心而動動由內識境由外熏緣熏好醜夢通三性若宿有善則夢有吉凶此爲有記若習無善汎睹平事此爲無記若晝緣靑黃夢想還同此爲想夢若見升沈水火交侵此爲病夢雖夢通三性然有報無報欲知斯事如下經說三性部第二如善見律云夢有四種一四大不和二先見夢三天人夢四想夢云何四大不和夢眠時夢見山崩或飛騰虛空或見虎狼師子賊逐此是四大不和夢虛而不實云何先見夢或晝日見或白或黑或男或女夜剋夢見是名先見夢此亦不實云何天人夢若善知識天人爲現善夢人得善若惡知識者爲現惡夢此卽眞實云何想夢者此人前身或有福德或有罪障若福德者現善夢現惡夢如菩薩初欲入母胎時見白象從忉利天下入其右脅此是想夢也若夢禮佛誦經持戒布施種種功德此亦想夢夢爲善不善無記亦善不善無記若夢見禮佛聽法說法此是善功德若夢見殺是不善夢若夢見靑色等是無記夢也問曰若爾者應受果報荅曰不受果報何以故以心業羸弱不感報是故律云除夢中不犯也又迦延論云云何一切睡眠相應耶荅曰或睡不眠相應如未眠時身不耎心不耎身重心重身𧄼瞢心𧄼身憒心憒身睡心睡爲睡所纏是謂睡不眠相應云何眠不睡相應荅曰不染污心眠夢是謂眠不睡相云何睡眠相應荅曰染污心眠夢是謂睡眠相應云何不睡不眠荅曰除上爾所事眠當言善不善無記答曰眠或善或不善或無記云何爲善答曰善心眠夢云何不善荅曰不善心眠夢云何無記荅曰除上爾所事如夢中施與作福持戒守齋如善心眠時所作福當言餘福迴名善云何眠時所作不福當言迴耶荅曰如夢中殺盜等如不善心眠餘不福心迴是名不善云何眠時所作福不福不當言迴答曰如眠時非福心非不福心迴如無記心眠時所作福非福不當言迴是名無記夢名何等法荅曰是五蓋中無明蓋也善性部第三如出生菩提心經云爾時世尊告迦葉婆羅門言汝善男子有四種善夢得於勝法何等爲四所謂於睡眠中夢見蓮華或見繖蓋或見月輪及見佛形如是見已應自慶幸我遇勝法爾時世尊而說偈言若有睡夢見蓮華 及以夢見於繖蓋或復夢裏見月輪 應當獲得大利益若有夢見佛形像 諸相具足莊嚴身衆生見者應歡喜 念當必作調御師又雜寶藏經云有惡生王爲行殘無悲邪見如來遣迦旃延化其本惡生王及夫人皆得生信王大夫人號爲尸婆具沙後生太子字喬波王於寢夢見八事一頭上火然二兩蛇絞腰三細鐵網纏身四見二赤魚吞其雙足五有四白鶴飛來向六血泥中行泥沒其腋七登大白八鸛雀咽頭於夢寤已以爲不愁憂慘悴尋卽問諸外道婆羅門外道聞王此夢素嫌於王兼嫉尊者迦旃延因王此夢言大不吉不禳厭之禍及王身王聞其語信以爲然增憂惱卽問之言若禳厭時當須何諸婆羅門言所須用者王所珍愛我若說者王必不能王荅言此夢甚惡但恐大禍殃及我身除我以往餘無所惜請爲我說所須之物諸婆羅門等見其殷勤知其心至卽語王所可用者此夢有八還須八種得禳災一殺王所敬夫人尸婆具沙二殺王所愛太子喬婆羅三殺輔相大臣四殺王所有烏臣五殺王一日能行三千里象六殺王一日能行三千里駝七殺王良馬八殺王所敬禿頭迦旃延卻後七日若殺此八聚集其血入中而行可得消災王聞其言以己命重卽便許可還至宮中愁憂懊惱夫人問王何故如是王荅夫人具陳說上不祥之夢幷道婆羅門禳夢所須夫人聞已而作是言但使王身平安無患妾之賤身豈足貴耶王言卻後七日我當歸死聽我往彼尊者迦旃延所六日之中受齋聽法王言不得汝若至彼或語其實彼若知者捨我飛去夫人殷勤王不能免卽便聽往夫人到彼尊者所禮拜問遂經三日尊者怪問王之夫人曾至此經停信宿何故今者不同於夫人具說王之惡夢卻後七日殺我等用穰災患餘命未幾故來聽因向尊者說王所夢尊者迦旃延此夢甚吉當有歡慶不足爲憂頭上火然者寶主之國當有天冠十萬兩金來貢於王正爲斯夢夫人心急七日向滿爲王所害懼其來晩問尊者言何時來到尊者荅言晡時必當來至二兩蛇絞腰者月支國王當獻雙劍價直十萬兩金今日當至三細鐵網纏身者大秦國王當獻珠瓔價直十萬兩金後日朝晨當四赤魚吞足者師子國王當獻毘琉璃寶屐價直十萬兩金後日食時當至五四白鶴來者跋耆國王當獻金寶後日日中當至六血泥中者息國王當獻鹿毛欽婆羅衣價直十萬兩金後日日昳當至七登大白山者曠野國王當獻大象後日晡時當至八鸛雀咽頭者王與夫人當有私密之事事至自當知之果如尊者所言期限旣至諸國所獻一切皆到王大歡喜尸婆具沙夫人先有天冠重著寶主國所獻天冠王因校戲脫尸婆具沙夫人所著一重天冠著金鬘夫人頭上夫人瞋恚而言若有惡事我先當之今得天冠與彼而著尋以酪器擲王頭上王頭盡污王大瞋恚拔劍欲斫夫人夫人畏王走入房中卽閉房戶王不得前王尋自寤尊者占夢云有私密事正此是耳及夫人尋至尊者迦旃延所具論上來信於非法惡邪之言幾於尊者妻子大臣所愛之物行大惡事今蒙尊者離於惡事卽詣尊者敬奉供養驅諸外道婆羅門等遠其國界卽問尊者有何因緣如此諸國各有所珍奉獻於我尊者荅言乃往過去九十一劫爾時有佛名毘婆尸彼佛出有一國名曰槃頭王之太子信樂精進至彼佛所供養禮拜卽以所著天冠寶劍瓔珞大象寶車欽婆羅衣用上彼佛緣是福慶生生尊貴所欲珍寶不求自至王聞是已於三寶所深生敬信作禮還宮不善部第四如發覺淨心經云佛告彌勒菩薩言菩薩當觀二十種眠睡諸患何等二一樂睡眠者當有懶墯二身體沈三膚皮不淨四皮肉麤澀五諸大穢濁威德薄少六飮食不消七體生瘡皰八多有懈怠九增長癡網十智慧羸弱十一善欲疲倦十二當趣黑十三不恭敬十四稟質愚癡十五多諸煩惱心向諸使十六於善法中而不生欲十七一切白法能令減少八常行驚怖之中十九見精進者而毀辱之二十至於大衆被他輕賤國王不黎先泥十夢經云佛在世時時有國王名不黎先泥夜夢十事夢見三甁倂兩邊甁滿氣出相交往不入中央空甁中二夢見馬口食尻亦食三夢見小樹生華四夢見小樹生菓五夢見一人索繩人後有羊羊主食繩六夢見狐坐於金牀上於金器中食七夢見大牛還從犢子乳八夢見四牛從四面鳴來相趍欲鬪當合未合不知牛處九夢見大陂水中央濁四邊淸十夢見大谿水流正王夢見是事已卽寤大怖恐亡其國及身妻子王至明日卽召公卿大臣及諸道人曉解夢者卽言昨夜夢見十事寤卽恐怖意中不樂誰能解有一婆羅門言我爲王解之恐王聞者愁憂不樂王言如卿所睹說之勿有所諱婆羅門言王夢皆惡取所重愛夫人太子及邊親近侍人奴婢皆殺以祠天王可得無他王有臥具及著身珍寶好物皆當燒已祠如是者王身可得無他王聞夢惡愁憂不樂卽入齋房思念是事王正夫人名摩尼到王所問王言何爲入齋房愁憂不樂耶我身有過於王耶王言汝無過於我我自愁耳夫人復王言汝莫問我聞者令汝不樂人復言我是王身半設有善惡王語我云何不相語耶王便爲夫人具說夜夢十事夫人言王莫愁憂如人買金磨石好醜善惡其色自見於石上今佛近在精舍去國不遠何不往問如佛所解王當隨之王卽勅群臣駕而出到佛所頭面佛足卻坐白佛言我昨夜夢見十事具如前述所夢如寤卽恐怖恐亡我國及身妻子佛爲解所夢十事願聞教誡佛言莫恐怖夢者無他乃爲後世當來之非今世惡此後世人當不畏法禁泆貪利嫉妒不知厭足少義無慈喜怒無慚愧佛言第一夢見三甁倂兩邊甁滿氣相交往來不入中央空甁中者後世人豪貴者自相追隨不親貧者王夢甁倂正謂是耳王莫恐怖於國於太子於夫人皆亦無他佛言第二王夢見馬口食尻亦食者此後世人作帝王及大臣稟食縣官俸祿復採萬民不知厭足王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三夢見小樹生華者此後世人年未滿三十而頭生白髮貪婬多年少强老王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四王夢見小樹生菓者此後世女人年未滿十五行嫁抱兒而歸不知慚愧王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五王夢見一人索繩人後有羊羊主食繩者此後世人夫壻出行賈作其婦於後便與他家男子交通食其財物王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六王夢見狐坐金牀上於金器中食此後世人下賤便尊貴有財產衆人敬畏公侯子孫更經貧賤於下坐飮食在後王夢正是王莫恐佛言第七王夢見大牛還從小犢子乳者此後世人無有禮義母反爲女作媒誘恤他家男子與女交通求財物以自供給不知慚愧王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八王夢見四牛從四面鳴來相趨欲鬪當合未合不知牛處者此後世帝王長吏及人民皆無至誠之心相欺詐愚癡瞋恚不敬天地是故雨澤不時長吏人民請禱求雨天當四面起雲雷電有聲長吏人民咸言當雨須臾之閒雲散不墯所以者何帝王長吏人民無有忠正慈仁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九王夢見大陂水中央濁四邊淸者此後世中國當擾亂治行不人民不孝父母不敬長老邊國四面當淸平人民和穆孝順二親王夢正是王莫恐怖佛言第十王夢見大谿水流正赤者此後世諸國當忿爭興軍聚衆更相攻伐當作車兵步兵騎兵共鬪相殺傷不可數死者於路血流正赤王夢正是王莫恐怖於國於大子於夫人皆亦無他王聞長跪心卽歡喜今受佛恩令得安隱作禮還歸重賜宮臣從今已後不信諸異外道及婆羅門無記部第五如十誦律云有比丘衆中睡佛言水洗頭猶睡不可信令比丘以五法用水洗他一者憐愍二者不惱他者睡眠四者頭倚牆壁五者舒腳坐猶睡不止聽以手撐若故睡不止聽以鞠擲若故睡不止佛聽用禪杖若取禪杖時應生敬心以兩手捉杖放戴頂上若坐睡不止應起看餘睡者以禪杖築築已還坐若無睡者還以禪杖著本處已坐若故睡不止佛聽用禪鎭安孔作之以繩貫孔中繩頭施紐挂耳上去額前四指著禪鎭墯地佛言禪鎭墯者應起庠行如鵝行法頌曰昏沈睡蓋 游想妄現 親族虛聚徒霑美宴 旣寤空無 妄生愛戀雖通三性 終成七變感應緣略引六驗漢甘陵府丞文穎 宋陳秀遠宋太守諸葛覆 宋馬虔伯齊沙門釋僧護 唐沙門釋智興漢南陽文穎字叔良建安中爲甘陵府丞過界止宿夜鼓三時夢見一人跪前曰我先人葬我於此水來湍棺木溺漬水處半燥然無以自溫聞君在此故來相依屈明日暫住臾幸之相遷高燥處鬼披衣示穎而皆沾濕穎心中愴然卽寤寤已語左左右曰夢爲虛耳何足可怪穎乃還眠向晨復夢見謂穎曰我以窮苦告君柰何不相愍悼乎穎夢中問曰子爲是誰對曰吾本趙人今屬注送民之神穎曰子棺今爲所在對曰在君帳北十數步水側枯楊樹下是吾也天將明不復得見君必念之穎荅曰忽然便寤天明可發穎曰雖云夢不足怪此何大適左右曰何惜須臾不驗之耶穎卽起幸之數人將導順水上果得一枯楊曰掘其下未幾果得棺棺甚朽壞半水中穎謂左右曰向聞於人謂爲虛矣世俗所傳不可無驗爲移其棺醊之而去右一驗出搜神記宋陳秀遠者穎川人也嘗爲湘州西曹客居臨相縣少信奉三寶年過耳順篤業不衰宋元徽二年七月中昏夕閒閑臥未寢歎念萬品死生流轉無定自惟己身將從何來一心祈念冀通感夢時夕結陰室無燈燭頃見枕邊如熒火者冏然明照流飛而去俄而一室盡明爰至空中有如朝晝秀遠遽起坐合掌喘息頃見中庭四五丈上有一橋閣焉欄檻朱采立於空中秀遠了不覺升動之時己自見平坐橋側見橋上士女往還塡衢衣服莊束不異世人末有一嫗年可三十許上著靑襖下服白布裳行至秀遠左邊而立有頃復有一婦通體衣白布爲偏環髻手持花香當前而立語秀遠曰汝欲睹前身我是也以此華供養佛故得轉身作迴指白嫗曰此卽復是我先身也言畢而去去後橋亦漸隱秀遠忽然不覺還下之時光亦尋滅去右一驗出冥祥記宋琅邪諸葛覆宋永嘉年爲九眞太家累悉在陽都唯將長子元崇送覆於郡病亡元崇年始十九送喪欲還覆門生何法僧貪其資貨與伴共推元崇墯水而死因分其財爾夜元崇母陳氏夢元崇還具敍亡父事及身被殺委曲屍骸流漂怨酷無雙違奉累載一旦長辭銜悲茹恨如何可說歔欷不能自勝又云行速疲極因臥窗下牀上以頭枕窗母視兒臥處知非虛矣陳氏悲怛驚起把火照兒眠處沾濕猶如人形於是擧家號泣便始問于時徐森之始除交州徐道立爲長史道立卽陳氏從姑兒也疏所夢託二徐撿之二徐道遇諸葛喪船驗其父子亡日如鬼語乃收得行凶二人卽皆款服依法殺之更差人送喪達都右一驗出冤魂志宋馬虔伯巴西閬中人也少信佛法嘗作宣漢縣以元嘉十二年七月於縣得夢見天際有三人長二丈餘姿容嚴麗臨雲下觀諸天伎樂盈牣空中告曰汝厄在荊楚戊寅之年八月四日若處山澤其禍剋消人中齋戒亦可獲免若過此期當寤道也見相識楊暹等八人竝著鎖械又見道士胡遼半身土中天中天際神人皆記八人命盡年月唯語遼曰若能修立功德猶可延長也暹等皆如期終亡遼益懼奉法山居勤厲彌至伯後爲梁州西曹州將蕭思話也轉南蠻復命爲行參軍虔伯思荊楚之言心甚懼然求蕭解職將適衡山蕭苦不許十五年卽戊寅歲也六月末得病至八月四日危篤守命其日黃昏後忽朗然徹視遙見西面有三形可二丈前一人衣帢垂鬚頂光圓明後二人資質金曜儀相端備于空中去地數仞虔伯委悉詳視是前所夢者也頃之不見餘芳移時方歇同居大小皆聞香氣因而流汗病卽小差虔伯所居宇卑陋于時覺處在殿堂廊壁瑰曜皆是珍寶是所患以漸平復右一驗出冥祥記高齊時有釋僧護守道直心不求慧願造丈八石像咸怪其言後於寺北谷中見一臥石可長丈八乃雇匠營造向經一周面復粗了而背猶著以六具拗擧之如初不動經夜至忽然自翻卽就營訖移置佛堂州陷日像汗流地周兵入齊燒諸佛此像獨不變色又欲倒之人牛六十頭挽不動忽有異僧以瓦木土塹壘而圍之須臾便了失僧所在像後降夢信心者日吾患指痛其人寤而視焉乃木傷其二指也遂卽補之皇十年有盜像幡蓋者夢丈八人室責之賊遂慚怖悔而謝焉其像現唐京師大莊嚴寺釋智興俗緣宋氏洺州人也謙約成務勵行堅明依首律師誦經持律心口相弔不輟昏曉至大業五年仲冬次當維那鳴鍾依僧徒無擾同寺僧名三果者有兄從煬帝南幸江都中路身亡初無凶通夢其妻曰吾行達彭城不幸病由齋戒不持今墯地獄備經五苦辛酸叵述誰知吾苦賴以今月初日蒙莊嚴寺僧智興鳴鍾發響聲振地同受苦者一時解脫今生樂處思報其恩汝可具絹十疋早奉與之陳吾意寄禮殷誠從眠驚寤怪夢所與人共說初無信者尋又重夢諸巫覡咸陳前說後經十日凶告奄恰與夢同果乃奉絹與之而興自陳無德竝施大衆寺主恭禪師等合寺大德咸問興曰何緣鍾鳴乃感斯興曰余無他術見付法藏傳云罽膩咤王受苦由鳴鍾得停及增一阿含經鳴鍾偈福敬遵此轍勵力行之嚴冬登樓風切皮肉僧給羔神用執鍾椎興自勵意露手鳴椎掌中傷破不以爲苦兼鳴鍾之始先發善願願諸賢聖同入道場同受法食然後三下欲長打如先致敬願諸惡趣聞此鍾俱時離苦速得解脫如斯願行志常奉修豈惟徹誠遂能遠感衆服其倍驗非謬以貞觀六年三月遘疾少時自知後世捨緣身資召諸師友因食陳別尋卒莊嚴春秋四十有五右二驗出唐高僧傳法苑珠林卷第三十二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3)구신(句身)은 두 개 이상의 문장이 모여서 된 글귀. 예를 들면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리켜서 한 말이다. 미신(味身)은 집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