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9_0755_a_01L법원주림 제46권
039_0755_a_01L法苑珠林卷第四十六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039_0755_a_02L西明寺沙門釋 道世 撰


44. 사신편(思愼篇)[여기에는 5부가 있다.]
039_0755_a_03L思愼篇第四十四儉約篇第四十五思愼篇此有五部
039_0755_b_02L
술의부(述意部) 신용부(愼用部) 신화부(愼禍部)
신경부(愼境部) 신과부(愼過部

(1) 술의부(述意部)
신중히 생각하여 허물을 막는 것은 근심을 없애는 이치이고, 입을 다물고 잡념을 그치는 것은 악을 떠나는 근본이다. 시작을 경계하고 마침을 삼가는 것은 군자의 염매(鹽梅)요, 처음을 공경하고 끝을 조심하는 것은 생명을 기르는 요긴한 이치이다. 인연의 일어남을 깨치고 생멸의 덧없음을 알며, 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임을 분별하고 평등의 묘한 문(門)을 비추어 보아, 그 이치를 보존하고 그 발자국을 버리며, 그 화를 경계하고 그 복을 부르면, 이것은 신(神)의 영(靈)을 편하게 하고 사물의 도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2) 신용부(愼用部)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국왕은 국내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가려 대신을 삼으려 했다. 왕은 사람을 시험하여 그의 행동을 따라 중죄를 주려고 신하들에게 명령하되, 발우에 기름을 가득히 담아 그 사람을 시켜 그것을 들게 하고는 북문에서 남문으로 나와 20리 밖에 있는 조희(調戱)라는 동산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 한 방울이라도 기름을 땅에 떨어뜨리면 그 머리를 베라 하고 그 이유는 묻지 말라 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따라 발우에 기름을 가득 부어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들고 매우 조심하면서 길을 떠났다. 수레와 말을 타고 길을 메운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걸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친척과 처자들이 다가와도 안정된 마음은 좌우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온 나라 사람들이 몰려나와 떠들어도 마음을 단정히 하여 그들을 보지 않았고, 왕녀와 미녀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다가올 때 사람들은 다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으나 그는 일심으로 발우를 받들고 흔들리지 않고 또한 망상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오로지 발우를 받들고 그들의 말소리는 듣지 않았다.
이런 게송이 있다.

교묘한 재주를 조용히 부리면서
그 춤은 가장 아름다워
모든 사람들 거기 빠졌네.

비유하면 저 예쁜 악마 계집이
애욕을 떠난 자를 움직임과 같거늘
하물며 저 평범한 사람들이랴.

그들이 그의 곁을 오갔지만
발우를 든 마음은 기울지 않았네.

또 사나운 코끼리와 말이 성 안에서 뛰어나오고 성 안에서는 불이 일어나 백성들은 서로 부르짖으면서 ‘빨리 불을 피하고 구덩이에 떨어지지 말라’고 외칠 때, 관리들이 모두 나와 불을 꺼도 그는 일심으로 발우를 받들어 한 방울의 기름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또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리며 사나운 바람이 나무를 꺾고 먼지가 일며 번개가 번쩍거리고 벼락이 때려 새와 짐승이 맞아 죽고 사람이 놀라 부르짖어도, 그는 오로지 기름을 생각하고 그런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기름 발우를 들고 그 동산까지 갔는데 기름은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신하들은 이 사실을 왕에게 여쭈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그를 대신으로 삼았다.
수도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같다. 비록 저 사나운 음욕과 분노와 수치가 일어나 그 마음을 흔들 때라도 안으로 살피고 밖으로 다스리며 마음을 거두어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니, 삼매의 고요한 뜻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마치 기름 발우를 받든 사람이
흔들리지 않아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고
미묘한 슬기의 뜻, 바다와 같아
일심으로 기름 그릇을 잘 받드는 것처럼.

만일 누구나 도를 배우려거든
그 마음을 붙잡기 이렇게 하라.
마음에 모든 덕의 등불을 밝혀
일체의 더러움을 모두 없애라.

여러 가지의 색(色)의 욕심이
분노와 수치를 일으킬 때에
뜻이 있으나 방일하지 않으면
그것들 사라지고 자제하게 되리.

사람의 몸에 병이 있을 때
약으로 그것을 고치는 것처럼
마음의 병도 그와 같나니
4의(意)로 그것을 없애 버려라.”
또 『대집경(大集經)』의 「제룡품(濟龍品)」에서 말하였다.
“그 때 그 대중 가운데 파라기리사(頗羅機梨奢)라는 눈 먼 용이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큰 성인이신 세존이시여, 나를 구제해 주소서. 나를 구제해 주소서. 나는 몸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갖가지 벌레들이 내 몸을 파먹고 끓는 물 속에서 잠시도 즐거움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리사야, 너는 전생에 불법 안에서 비구가 되어 계율을 깨뜨리고, 마음에는 온갖 거짓을 가졌으면서 밖으로는 좋은 상을 나타내며, 권속을 널리 탐을 내어 제자를 많이 두었으며 이름이 사방에 널리 퍼졌었다. 이리하여 ≺우리 스승님이 아라한의 과(果)를 얻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공양을 받는다≻하면서 혼자 그것을 다 먹었었다. 그리고 계를 지키는 비구를 보면 도리어 욕설을 퍼부어 그를 괴롭혔다. 그들은 고민하면서 속으로 ≺나는 세상에 날 때마다 네 몸의 살을 먹으리라≻고 이렇게 맹세하였다. 그런 악업으로 너는 죽어 용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네 몸이요 중생들은 그 맹세의 힘으로 네 살을 먹는 것이며, 그 나쁜 업의 인연으로 너는 장님의 과보를 받은 것이다. 또 전생의 무량한 겁 동안 적동(赤銅)지옥에 있으면서 항상 온갖 벌레들의 밥이 되었느니라.’
용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은 지금 모두 지성으로 참회하나이다. 원하옵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이 고통을 빨리 벗어나게 해 주소서.’
그 용들 중에서 26억의 굶주린 용들은 모두 과거의 몸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은 지난 세상에 불법 안에서 출가했으나, 온갖 악업을 다 짓고 셀 수 없이 많은 몸이 악도에 떨어졌으며, 그 남은 과보로 용으로 태어나 큰 고통을 받습니다. 마치 우리는 저 푸른 빛깔의 용과 같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용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물을 가지고 와서 내 발을 씻으라. 너희들의 그 재앙이 점점 사라지게 하리라.’
그리하여 용들은 다 손으로 물을 움켜 들었다. 그러나 그 물은 다 큰 돌이 되어 손에 가득하고 또는 불로 변하여 크고 사나운 불꽃이 일어났다. 그들은 그것을 버리면 다시 생기고, 이렇게 일곱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들은 다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눈물이 비 오듯 했다. 부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큰 서원을 세우게 하고, 그들이 그렇게 하자 불은 다 꺼졌다. 이렇게 여덟 번 되풀이 한 뒤에 그들은 물을 떠서 여래의 발을 씻고 진심으로 참회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희들은 미륵불 때에 사람의 몸을 얻고, 그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정진하고 계를 지녀 모두 아라한이 되리라.’
그 때 그 용들은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스스로의 과거를 생각했다.
‘불법 안에서 혹은 속인이 되었고, 친족의 인연으로 다시 설법을 들으러 오갔으며, 그 인연으로 신심을 지녀 갖가지 꽃과 과실과 음식으로 보시하고, 여러 비구들과 함께 차례를 따라 그것을 먹기도 했다.’
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거에 4방승(方僧)의 꽃을 받고 그 과일과 음식을 먹었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에 가서 여러 스님께 보시하고 혹은 예배하며 이렇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바시불 때부터 그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속인으로 있었습니다.’
내지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석가모니불의 법 가운데에서 속인이 되어 친구를 문안하는 인연과 혹은 오가면서 설법을 듣는 인연으로 절을 오갔으며, 신심이 있는 사람이 스님에게 공양하려고 꽃과 과일과 갖가지 음식을 보시하면, 비구는 그것을 먹고 다시 내게 돌려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얻어먹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옥에서 무량한 겁 동안 사나운 불 속에서 혹은 타고 혹은 구워졌으며, 혹은 구리쇳물을 마시고 혹은 뜨거운 철환(鐵丸)을 머금었습니다. 이 지옥에서 나와서는 축생이 되었고 축생의 몸을 버리고는 아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갖가지로 고통을 받았으나 악업이 다하지 않아 다시 용으로 태어나서 항상 고뇌를 받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용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악업은 부처님 물건을 훔친 것과 다름이 없고, 5역업(逆業)에 비하면 그 죄는 반 정도이다. 너희들은 지금 다 3귀계(歸戒)를 받아 일심으로 선을 닦으면 이 인연으로 그 현겁(賢劫)에서 최후의 부처님인 누지불(樓至佛)을 만나 그 부처님 세상에서 죄가 모두 없어질 것이다.’
그 때 그 용들은 이 말을 듣고 다 지극한 마음으로 몸과 목숨을 다해 각각 3귀계를 받았다.
그 때 대중 가운데 눈 먼 용의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입안이 다 문드러지고 온갖 벌레가 가득하여 그 꼴은 마치 대소변과 같고, 내지 극히 더러워 마치 여자의 생식기에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과 같아 보기조차 싫었다. 갖가지 피고름이 흘러나오며 온몸에는 항상 모기와 등에가 피를 빨고 있어 보기도 어려웠다.
그 때 세존께서는 크게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으로 그 눈 먼 용의 아내가 그처럼 고통받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여자 용아,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이런 나쁜 몸을 받았는가? 지난 세상에 무슨 업을 지었는가?’
그는 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지금 제 몸은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잠시도 그치지 않습니다. 비록 말하고자 하나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과거 36억 년의 일을 기억합니다. 백천 년 동안은 악룡으로 태어나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 하루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과거 91겁에 비바시불의 법에서 비구니가 되었으나 온갖 애욕을 생각하기가 술에 취한 사람 같았습니다. 비록 출가는 했으나 법답지 못하여 계를 범하고 항상 3악도에서 태워지고 구워졌습니다. 이 몸을 구제해 주소서, 이 몸을 구제해 주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마치시고 그 용의 입안에 물을 쏟아 넣었다. 그러자 불은 꺼지고 고름과 벌레들은 모두 없어졌다. 그녀는 시원하고 깨끗해진 입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큰 성인 여래시여, 저는 과거 일을 기억합니다. 가섭불 때에 속인으로 있으면서 논을 갈고 있었습니다. 어떤 비구가 제게 와서 돈 50전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에게 ≺좀 기다리십시오. 곡식이 익으면 나는 당신에게 음식을 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비구는 다시 ≺만일 50전이 안 되겠으면 10문(文)이라도 주십시오≻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성을 내어 그 비구에게 ≺10전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비구는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절에 가서 숲 속에 들어갔다가, 스님들 소유인 암라 열매 10개를 몰래 훔쳐먹었습니다. 그 업의 인연으로 지옥의 고통을 받았고, 그 업이 다하지 않아 늪 속의 주린 용의 몸을 받고는 항상 온갖 벌레에게 먹혀 고름과 피가 흘러 넘치며 배고프고 목마름에 괴로워했습니다. 또 저 비구에게 성을 낸 그 악업의 인연으로, 그가 죽어서는 조그만 독룡이 되어 내 겨드랑 밑에 나서 내 피를 빨며 그 뜨거운 기운이 내 몸에 닿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내 몸에는 뜨거운 피와 고름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나를 가엾이 여겨 구제하여 이 원수의 독룡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손으로 물을 뜨시고 성실(誠實)한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에 흉년의 세상에서 몸의 길이와 넓이가 한량이 없는 큰 중생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신통의 힘으로 공중에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
≺저 늪 속에 부진(不瞋)이라는 큰 벌레가 있다. 너희들은 저기 가서 그 벌레 살을 먹으면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세상의, 사람인 듯 하면서도 사람이 아닌 것들은 내 말을 듣고 모두 거기 가서 서로 다투어 그 살을 먹었다.’
이렇게 진실하고 성실한 말로 말씀하셨을 때 이 용의 겨드랑이 밑의 작은 용이 곧 기어 나왔다. 그리고 이 두 용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언제나 이 용의 몸을 버리고 이 재앙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악업은 5무간(無間)지옥의 다음으로 크고 무겁다. 왜냐 하면 4방승(方僧)의 물건이나 혹은 현재 거기 사는 스님의 물건이나 독실히 믿는 단월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한 꽃ㆍ과일ㆍ과수원 등의 음식과 생활에 필요한 평상ㆍ침구ㆍ방석ㆍ약품 등 일체 생활 필수품을 제 마음대로 사사로이 쓰거나, 혹은 가지고 나가 친구나 고향 속인들에게 주면, 이 죄는 아비지옥에서 받는 과보보다 더 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삼귀계를 받고 삼보에 귀의하면 저 시원한 물 속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세 번 외우고 세 번 받고는, 곧 몸이 안온해져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용들을 위해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차라리 저 예리한 칼로 그 몸의
4지(支)와 피부와 또 살을 벨지언정
신심이 있는 시주들이 보시한 음식을
속인이 먹으면 실로 큰 재난이 되리.

차라리 수미산 같은 큰 불덩이를
손으로 잡아먹을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은
스님에게 보시한 음식일랑 먹지 말라.

차라리 예리한 칼로
온몸의 껍질을 회쳐 먹을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로서
스님들의 잡식(雜食)을 받아먹지 말라.

차라리 그 몸을 저 방에 가득한
사나운 큰 불꽃 속에 던질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은
스님들의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

차라리 불에 달군 예리한 저 송곳을
손으로 잡아 그 손이 다 탈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은
스님들의 물건을 사사로이 쓰지 말라.

차라리 훌륭하고 좋은 쇠 다듬잇돌에
그 몸의 살을 펴서 저밀지언정
집을 떠난 저 청정한 사람에게
잠깐이나마 성을 내지 말지니라.

차라리 제 손으로 두 눈을 후벼 빼어
저 땅에 던져 버릴지언정
저 선한 법을 잘 닦아 행하는 사람에게
성낸 마음을 품고 바로 보지 말라.

차라리 뜨거운 쇠로 그 몸을 얽어
이리 저리 움직이고 앉거나 누울지언정
성낸 마음으로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스님이 보시 받은 깨끗한 옷을 입지 말라.

차라리 잿물이나 짠물을 마셔
뜨거운 그 물이 불처럼 입을 태울지언정
탐욕의 독하고 악한 마음으로
스님들이 보시 받은 깨끗한 옷을 입지 말라.

세존께서 이 게송을 다 읊고 나자 1만 4천의 모든 용이 다 3귀계를 받고 과거ㆍ현재의 모든 업보의 고뇌에서 벗어나게 되어 3보를 깊이 믿는 그 마음이 물러나지 않았다. 또 80억의 용들도 다 3보에 귀의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혹은 비구가 되어 얻은 갖가지 생활 도구는 다 신심이 있는 단월이 보시한 것이니, 혹은 그것을 스스로 먹거나 혹은 남에게 주거나 혹은 여럿이 그것을 훔쳐 숨겨 두거나 사사로이 쓰면, 그는 이런 업으로 3악도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다.
또 어떤 중생은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 때문에 집을 나와 부유함과 해탈과 안락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출가한 뒤에는 게으르고 타락하여 경전을 독송하지 않고, 선정과 슬기와 정진을 익히지 않고 내버리며, 승려의 모든 일만을 알기를 좋아한다.
또 어떤 비구는 밤낮으로 정진하여 선법을 즐겨 닦고 경전을 독송하며 좌선하고 슬기를 익히면서 잠깐도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이 인연으로 4배(輩)의 갖가지 공양을 얻는다. 그런데 일만을 아는 사람은 이익을 얻어서는 혼자만 먹거나 혹은 훔쳐서 속인 친구에게 준다. 이런 인연으로 오랫동안 악도(惡道)에 있으며, 거기서 나와서는 다시 이런 우매한 인간이 되어 미래 과보의 가볍고 무거움을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 분부하노니, 너희 사문 제자들은 내 법을 항상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문이다. 나는 진실된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칭하지 말라. 여러 스님에 의해 받은 보시, 즉 떡이거나 나물이거나 과일이나 꽃 등, 이것들은 다 스님들이 쓸 물건들이니, 부디 이것을 저 속인들에게 주지 말라. 또 ‘이것은 내 물건이다’ 하면서 스님들과는 그것을 따로 쓰지 말라. 또 여러 스님들 물건을 따로 저축하여 이자놀이를 하거나 갖가지로 팔아 ‘이득을 본다’고 여겨져서 세상의 비웃음을 사지 말라. 또 비싼 것을 내어 싼 것을 거두어들이면서 세상 사람들과 이익을 다투지 말라. 또 음식을 위해서나 스님들의 인연을 빙자하여 저 중생들을 3악도에 떨어지지 말게 하고, 부디 선법을 권하고 그리로 인도하여 저 비구들로 하여금 3보를 참으로 믿게 하고, 중생들과 내지 부모를 잘 거두어 모두 안온하고 해탈을 얻게 하라.”
또 『십륜경(十輪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4방승(方僧)의 생활 기구와 잡물(雜物) 등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계를 지키거나 계를 깨뜨리는 사람들에게 주지 말라. 그렇게 하면 이 인연으로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다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의 「제룡품(濟龍品)」에서 말하였다.
“그 때 사가라용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용들 중에서 혹 어떤 용들이 받는 즐거운 과보는 마치 저 하늘사람들과 같고, 혹은 그 즐거움이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혹은 아귀, 혹은 아수라, 혹은 저 지옥의 중생처럼 큰 고통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이 용왕의 아들 청련화면(靑蓮華面)이 부처님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나는 어떤 악업의 인연으로 이 용으로 태어나서, 몸은 크고 단정하나 모든 색(色)과 촉(觸)의 수용(受用)이 마치 불에 타는 것 같으며 항상 옷이 없이 맨몸으로 다니는 것입니까? 그러하온데 우리 부왕(父王)이 받는 즐거움은 가장 훌륭하여 저 전륜성왕의 과보와 다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청련화면아, 그 이유를 말하리라. 과거 31겁 전에 시기라는 부처님께서 계셨고, 그 때 배다부사(培多富沙)라는 왕이 있었다. 그 왕은 3개월 동안 저 부처님과 4종의 사문과(沙門果)를 얻은 무량 백천의 큰 보살들에게 의복ㆍ음식ㆍ약품 등 갖가지를 공양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그 설법을 듣고는 곧 보리심을 내었고 또 절을 지어 공양했다.
그 왕의 첫째 태자 배다사수제(裵多娑樹帝)는 부처님을 뵈옵고 설법을 듣고는, 생사 유전에 대해 큰 공포를 느껴 그 부왕에게 출가하기를 청했다.
왕은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하라.’
그는 출가한 뒤에 그 왕에게 다시 청했다.
‘저는 절에 가서 있고 싶습니다.’
왕은 또 말했다.
‘언제든지 가라.’
그 때 그 시기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은 그 절에 있으면서 음식을 마음대로 수용했다. 배다사수제는 이것을 보고 질투하여 항상 성을 내어 스님들을 꾸짖었다. 그 때문에 그 스님들은 모두 그 절에서 떠나 버렸다. 스님들이 떠나는 것을 그는 기뻐하면서 혼자 생각했다.
‘저들이 가서 좋구나. 나는 이제 아주 편하다.’
그리하여 절 안의 의복과 음식을 마음대로 수용하면서 누가 와서 머물려 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이 악업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큰 지옥에 떨어져 무량 천만 나유타 동안을 지내면서 갖가지로 불에 탔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서는 아귀 속에 태어나 무량겁 동안 고통을 받았다. 아귀로 죽어서는 다시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을 벗어나서는 다시 아귀로 태어났다. 이렇게 30겁을 지내면서 그 유전 속에서 갖은 고통을 다 받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청련화면아, 저 배다사수제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너는 과거 악업의 인연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가운데 나서 돌아다니면서 고통을 받았다. 이 31대겁 동안 갖은 고통을 다 받으면서 잠깐도 끊이지 않았으나, 또 업이 남았기 때문에 이 용으로 태어나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 것이다.’
청련화면은 이 말씀을 듣고 큰 소리로 울면서 온몸을 땅에 던져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나는 진심으로 부처님께 참회하고 다시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나는 지금 지극한 정성을 골수에 넣어 3보께 귀의하오며, 내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다, 장하다. 이렇게 내게 귀의하면 그 업이 다 없어지고 여기서 죽으면 미륵부처님을 만나 사람의 몸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미륵불 앞에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될 것이다.”

(3) 신화부(愼禍部)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다. 5곡(穀)은 풍성하고 백성은 편안하고 아무 병이 없으며 밤낮 음악이 울리고 사람들은 걱정이 없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는 천하에 어떤 화(禍)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신하들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왕은 한 신하를 시켜 이웃 나라에 가서 구해 보라 했다. 그 때 천신(天神)은 사람으로 화(化)해 시중에서 그것을 팔고 있었는데 그 모양은 돼지와 같았다. 그는 그것을 철사에 묶어 팔고 있었다. 신하는 그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천신이 말하였다.
‘이것은 화모(禍母)라는 것입니다.’
신하는 말했다.
‘이것을 팔겠는가?’
‘팔 것입니다.’
신하는 물었다.
‘값이 얼마요?’
천신은 답하였다.
‘천만 냥입니다.’
신하는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먹고 사오?’
천신은 대답했다.
‘바늘 한 되씩 먹습니다.’
신하는 곧 집집마다에 명령하여 바늘을 내놓아라 했다. 이리하여 백성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바늘을 구하느라고 온 고을이 시끄러웠으므로 백성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그 폐가 적지 않았다.
신하는 왕에게 아뢰었다.
‘화모는 얻었사오나 백성들을 소란하게 하여 남녀들이 모두 할 일을 잃었습니다. 저것을 죽여 버리고 싶사온데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곧 허락하였다. 그래서 성밖으로 끌고 나가 죽이려 했다. 그러나 창으로 찔러도 창이 들어가지 않고 도끼로 찍어도 찍히지 않으며 칼로 해부해도 죽지 않았다. 나무를 쌓고 불에 살라 몸이 불처럼 붉게 타자 곧 달아났다. 그러자 마을을 지나면 마을을 태우고 저자를 지나면 저자를 태우며 성에 들어가면 성을 불사르고 나라에 들어가면 나라를 불살랐다. 그래서 백성들은 소란하고 굶주리며 곤궁했다. 이것은 다 앉아서 즐거움에 싫증이 나서 화모를 삼음으로써 받는 고통이니라. 이상은 여색(女色)을 탐하는 욕망에 불타는 남자들이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고통을 모름[不知]에 비유한 것이다.”

(4) 신경부(愼境部)
공작(孔雀)보살이 여러 하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비구로서 악명(惡名)을 두려워하거든 저 모든 허물에서 빨리 떠나라. 이른바 여자들이 시시덕거리는 곳에 들어가지 말고, 술집에 들어가지 말며, 술장수를 가까이 하지 말고, 그와 서로 말하지도 말며, 술을 즐기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그와 함께 말하지도 말라. 큰 악을 먼저 지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며, 음흉하고 독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를 버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도박꾼을 가까이 하지 말고, 광대를 가까이 하지 말며, 어린애를 가까이 하지 말고, 여색(女色)에 빠진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탐욕이 많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며, 남을 속이는 장사치를 가까이 하지 말고, 시장의 사기꾼으로서 남의 미움을 사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강을 파는 사람[掘河池人]을 가까이 하지 말고, 황문(黃門)의 여자와 한 걸음도 동행하지 말며, 코끼리 다루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말 부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생선회 장수를 가까이 하지 말라. 단견(斷見)에 떨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등, 이런 악인들과는 친하지 말라. 이런 사람과 친하면 반드시 그 행이 같아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비구는 악명을 두려워하여 이런 행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과는 한 걸음도 동행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만일 누구나 불선(不善)을 가까이하면
그는 곧 선하지 않은 사람된다.
그러므로 모든 악을 떠나고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지 말라.

어떤 사람을 친하기에 따라
자주자주 서로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함으로써 그 행이 같아져
혹은 선하고 혹은 선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을 구하는 모든 사람은
부디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라.
그렇게 하면 즐거움 얻고
선하면 곧 곤고(困苦)하지 않다.

선을 가까이 하면 공덕이 늘고
악을 가까이 하면 악이 더 심해진다.
공덕과 또 악한 모습을
이제 이렇게 대강 말했다.

만일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로써 좋은 명예를 얻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어느새 남의 천대받는다.
언제나 선인을 가까이 하고
악한 벗일랑 멀리 떠나라.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함으로써
모든 악업을 버릴 수 있다.”

(5) 신과부(愼過部)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철환(鐵丸)을 불 속에 넣어 그것이 불빛과 같아졌을 때 그것을 부드러운 솜으로 싸면 어떻겠느냐? 비구들아, 그 솜은 빨리 타겠느냐?’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비구가 촌락 근처에 산다 하자. 그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그 촌에 들어가 걸식할 때, 몸을 잘 단속하지 않고 근문(根門)을 지키지 않고 생각을 잡아매지 않은 채, 만일 젊은 여자를 보면 좋지 못한 생각으로 그 얼굴에 집착하여 애욕을 일으킬 것이다. 애욕은 그 마음을 태우고 그 몸을 태워 그만 계를 버리고 타락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어리석은 비구는 오랫동안 의로운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는 그 몸을 단속하고 근문을 잘 지키고 생각을 매고 촌락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삵 한 마리가 몹시 굶주려 쥐구멍 앞에서 쥐새끼를 엿보면서, 쥐새끼가 나오기만 하면 잡아먹으리라 하고 있었다. 마침 쥐새끼가 구멍에서 나와 놀고 있었다. 그 때 삵은 곧 그것을 잡아 삼켰다. 쥐새끼는 몸이 작았으므로 바로 삵의 뱃속으로 들어가 그 내장을 갉아먹었다. 내장을 갉아먹을 때 삵은 고통을 못 견뎌 미친 듯이 빈집과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칠 줄 모르다가 드디어 죽고 말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우치한 비구는 마을을 의지해 있으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그 몸을 잘 단속하지 않아 근문을 지키지 않고 생각을 잡아매지 않고 있다가, 여자를 보고는 부정한 생각을 일으키고 그 얼굴에 집착하여 애욕을 낸다. 애욕의 불길이 그 몸과 마음을 태우면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절을 좋아하지 않고 계를 버리고 타락한다. 그리하여 이 우치한 사람은 오랫동안 항상 이롭지 못한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비구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근문을 잘 지키며 바른 생각에 마음을 잡아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해야 하느니라.’”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나무 절구공이를 쉬지 않고 항상 쓰면 그것이 밤낮으로 닳는 것처럼, 이와 같이 비구도 본래부터 늘 근문(根門)을 닫지 않고 음식의 양을 모르며, 초저녁에도 새벽에도 깨어 있지 않고 선법을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선법이 밤낮 닳아 늘지 않는 것이 저 나무절구공이와 같으니라.’”
또 『자애경(自愛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갈 때 마음에 독한 생각을 품고 입으로 독한 말을 뱉으며 몸으로 독한 업을 행하면, 이 세 가지는 마음과 입과 몸에서 나와 그 악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가해진다. 중생은 그 해독을 입고 곧 원한이 맺혀 기어코 그것을 갚으려 한다. 혹은 현세에서 갚고 혹은 죽은 뒤에 혼령이 천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갚는다. 그래 인간과 축생과 귀신으로 태산에서 서로 싸우게 된다. 이것은 다 숙명(宿命)에 의한 것이요 함부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은 법을 위한 마음이요
마음에서 속마음을 귀하다 한다.
마음을 시켜 악을 짓게 하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죄의 괴로움이 스스로를 쫓아오는 것이
수레가 바퀴자국 밟는 것과 같다.

마음은 법의 근본이 되고
마음은 마음 부림을 귀하다 한다.
마음속으로 선을 늘 생각하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복과 즐거움이 스스로를 따라오는 것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집에 있는 보살은 혹 계를 깨뜨리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에게 성을 내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가엾이 여기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그치기를 권하여 착한 마음을 내게 하라. 애써 충고해도 고치지 않는다 해서 비방하거나 또 성을 내어 함부로 그의 허물을 보지 말지니, 그렇게 함으로써 이 현겁(賢劫)에서 어떤 보살의 비방이 있었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구류손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독인(禿人)으로서 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중생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것이니,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거늘 내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만일 남을 알려고 하면 혹 스스로 다칠 수 있는 것이니, 중생을 헤아리는 것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경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남을 해치려 하면 곧 스스로를 해칠 것이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개가 있어도 빈 병이 있고
마개가 없어도 빈 병이 있으며
마개가 있어도 찬 병이 있고
마개가 없어도 찬 병이 있다.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이런 네 종류의 사람이 있어
그 위의와 공덕의
있고 없음도 그와 같음을.

만일 일체지가 아니면
어떻게 사람을 헤아릴 수 있으며
어떻게 그 위의만 보고
곧 그 공덕을 알 수 있으랴.

바로 알고 선한 마음 있으면
그것을 현인(賢人)의 모습이라 하나니
다만 외양의 위의만을 보고
어떻게 그 속을 알 수 있으랴.

만일 외양으로 그 속을 헤아려
업신여겨 천대하는 마음을 내면
그 몸과 선근을 모두 망치고
죽어서는 저 악도에 떨어지리.

겉으로 거짓의 위의를 나타내어
어질고 착한 체 돌아다니면
그것은 다만 말뿐인 것이
천둥치며 비 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경전에 말하였다.
“배우지 못했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배운 사람은 부처님처럼 공경하라. 오직 지혜가 있는 이라야 번뇌를 부술 수 있으며, 만일 남을 헤아리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오직 부처의 지혜만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니, 이런 일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디 계를 깨뜨린 사람에 대해서도 성을 내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자라 한 마리가 있었다. 큰 가뭄이 들어 호수가 다 말라 버렸으므로 자라는 먹이가 있는 다른 못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 때 큰 학 한 마리가 그 곁에 왔다. 자라는 그에게 구제해 주기를 청했다. 학이 자라를 물고 도시 위를 날아 지나갈 때, 자라는 잠자코 있지 못하고 물었다.
‘여기가 어딘데 왜 자꾸 가기만 하는가?’
학이 곧 대답하자, 그만 입이 열렸으므로 자라는 땅에 떨어져 사람들이 잡아먹었다.
대개 사람도 어리석어 입을 삼가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비유한 것이다.
또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네 가지 일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복을 얻어 가난하지 않게 된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한창 젊었을 때에도 삼가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늙어서도 정진하며 음탕함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재물이 있어 항상 보시하기를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스승에게 나아가 공부하면서 바른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 네 가지를 행하지 않고 세상이 항상 있다고 생각하여 성패(成敗)를 헤아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모두가 흩어지면, 마치 늙은 학이 이 빈 못을 지키나, 아무 소득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에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게으르며
늙어서도 음행을 그치지 않고
재물 있어도 보시하지 않으며
부처님 말씀을 받들지 않는 등
이런 네 가지 악행 있으면
스스로 침노하고 속임 되나니

아아 어느새 늙음이 닥쳐
몸이 변하여 7ㆍ80이 되었구나.
젊어서는 마음대로 다 하였으나
늙어지자 짓밟히고 천대받는다.

청정한 행을 닦지도 않고
또 부유하거나 귀하지도 못하면서
늙어지면 마치 빈 못 지키는
저 흰 두루미와 다름없어라.

계도 이미 지키지 않았거니와
또 재물도 쌓아 두지 않았고
늙어 기력은 쇠진해버렸으니
옛날을 생각한들 어이 미치리.

늙음은 마치 가을 나뭇잎 같아
행색은 더럽고 남루한데
목숨은 빨리 죽음에 이르렀거니
후회한들 그 무슨 소용 있으리.

게송을 읊는다.

처음과 마지막을 신중히 생각하여
힘써 보존하고 몸을 바르게 하며
입에는 두 가지 말이 없으며
마음은 함부로 일으키지 말라.

욕심을 줄이고 족함을 알며
마음에 남과 나를 잊어버리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힘써 기쁨과 근심을 경계하라.

감응연(感應緣)[대략 11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나라 하비(下邳)의 주식(周式)
한(漢)나라 회계(會稽)의 구장(句章) 사람
한(漢)나라 제기(諸曁)의 오상(吳祥)
진(晋)나라 의흥(義興) 사람 주씨(周氏)
진(晋)나라 회남(淮南)의 호무회(胡茂回)
송(宋)나라 예장(豫章)의 호비지(胡庇之)
송(宋)나라 태시(泰始) 때의 장을(帳乙)
송(宋)나라 양성(襄城)의 이이(李頤)
주(周)나라 선제(宣帝) 때의 우문빈(宇文贇)
제(齊)나라 경사(京師)의 석혜예(釋慧豫)
당(唐)나라 친위(親衛)인 고법안(高法眼)

한(漢)나라 하비(下邳)의 주식(周式)
한(漢)나라 하비현(下邳縣)의 주식(周式)은 일찍이 동해(東海)로 가다가 길에서 관리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는데, 배를 태워 달라고 했다. 10리쯤 가다가 그가 주식을 보고 말했다.
“내 잠깐 들를 데가 있습니다. 이 책을 배에 두고 내리니, 삼가 이것을 펴보지 마십시오.”
그가 떠난 뒤 주식은 가만히 그 책을 펴 보았다. 그것은 모두 죽을 사람들의 기록인데 아래에 가서 주식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잠깐 사이에 그가 돌아와 주식이 먼저 책을 읽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어 말했다.
“일부러 그것을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식은 머리를 조아리며 피를 흘렸다.
한참 있다가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나를 멀리까지 태워다 주었소. 그러나 이 책에서 당신 이름을 지울 수는 없소. 지금부터 집에 가거든 3년 동안은 문 밖을 나가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구제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 책을 보았다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마시오.”
주식은 집에 돌아와 2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른 집에서 모두 이상히 여기던 차에 그 이웃집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주식의 아버지는 주식을 시켜 조문하러 가라 했다. 주식은 할 수 없이 이웃집으로 가려고 막 문을 나서자 문득 그 관리가 나타나 주식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3년 동안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소. 그러나 이제 보았으니 어찌 하겠소. 나는 당신을 나타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계속해 매를 맞았소. 이제 당신을 보았으니 어찌할 수 없소. 사흘 뒤에는 당신을 데리고 가겠소.”
주식은 들어와 울면서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이 말을 믿지 않았고, 그 어머니는 밤낮 울면서 그 곁을 지켰다. 사흘이 되어 점심때에 그가 나타나자 주식은 이내 죽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한(漢)나라 회계(會稽)의 구장(句章) 사람
한(漢)나라 때 회계현(會稽縣)의 구장(句章) 사람이 동야(東野)에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 돌아오는데 아직 집에 닿기 전에, 길가의 어떤 오막살이집의 등불을 보고 거기 들어가 투숙하게 되었다. 그 집에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사내와 한 집에 자기를 꺼려 그 이웃집 여자를 불러 함께 잤다. 밤에 그녀는 공후(箜篌)를 타면서 노래했다.
“줄줄이 칡넝쿨이 등나무에 오르나니 한 가닥은 늘어지고 한 가닥은 조여 매네. 그대는 내 성명을 알고 싶어하는가? 내 성은 진(陳)이요 내 이름은 아등(阿登)이네.”
그는 이튿날 동쪽 성밖으로 나가 어느 음식점에 들렀다. 그 집 여주인에게 어젯밤의 일을 다 이야기했다. 그 여자는 ‘아등’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면서 말했다.
“그 아이는 내 딸인데, 근자에 죽어 성 밖에 장사지냈습니다.”
한(漢)나라 제기(諸曁)의 오상(吳祥)
한(漢)나라 때 제기현(諸曁縣)의 관리 오상(五祥)은 역사에 시달려 못내 고달파하다가 깊은 산으로 도망쳤다. 어떤 시냇가에 이르러 해가 저물었다. 비단 옷을 입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어떤 젊은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혼자 몸이요, 또 고향도 없습니다. 오직 고독한 노파 한 사람과 여기서 한 10여 보 밖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상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반가워하면서 그녀를 따라갔다. 한 1리 남짓 걸어 그 집에 이르렀다. 집은 매우 가난하고 누추한데 오상을 위해 음식이 나왔다. 1경(更)쯤 지나 한 노파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고자(張姑子)야”
그녀는 답하였다.
“예.”
오상은 물었다.
“저이는 누굽니까?”
그녀는 말했다.
“아까 말한 그 고독한 노파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함께 잤다. 새벽닭이 울었다. 상이 떠날 때 그녀는 연연한 정표로서 자주색 수건을 오상에게 주고 오상은 베 손수건을 그 정표로 갚았다. 오상은 어제 오던 곳으로 가다가 시내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날 밤에 온 비로 물이 갑자기 불어 넘쳐 건널 수가 없었다. 오상은 부득이 그녀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집은 보이지 않고 다만 무덤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진(晋)나라 의흥(義興) 사람 주씨(周氏)
진(晋)나라 의흥(義興) 사람의 성은 주(周)씨였다. 그는 영화(永和) 연간에 서울을 떠나 말을 타고 두 사람의 종자를 데리고 가다가, 아직 마을에 이르기 전에 해가 저물었다. 길가에 새로 지은 조그만 초가가 있었다. 한 여자가 문 밖에 나와 바라보는데 나이는 16ㆍ7세쯤이요 얼굴은 단정하며 옷은 깨끗했다. 그녀는 주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주씨에게 물었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앞마을은 아직 멀었습니다. 임하(臨賀)께서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주씨가 곧 묵기를 청해 그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녀는 불을 때어 밥을 지었다. 1경(更)쯤 있다가 문 밖에서 어떤 아이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향님.”
“예.”
이 여자가 대답하자, 이내 말했다.
“관청에서 우리 수레를 보내어 당신을 부릅니다.”
그녀는 주씨에게 말하였다.
“지금 일이 있어 떠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갔다. 그 날 밤에 과연 큰 우레가 울며 비가 오고 새벽에 그녀는 돌아왔다. 주씨는 말에 올라 돌아보았다. 어제 묵은 곳에는 새로 된 무덤 하나가 있고, 무덤 앞에는 말똥과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주씨는 매우 놀라며 슬퍼했다. 그리고 5년 뒤에 그는 과연 임하 태수(臨賀太守)가 되었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진(晋)나라 회남(淮南)의 호무회(胡茂回)
진(晋)나라 회남(淮南)의 호무회(胡武回)는 귀신을 볼 수 있어서 아무리 보지 않으려 해도 항상 보았다. 후에 양주(楊洲)에 갔다가 역양성(歷陽城)으로 돌아올 때였다. 그 동쪽에 신사(神祠)가 있어 마침 백성들이 무당을 데리고 와서 그 사당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조금 있다가 귀신들이 말했다.
“상관(上官)이 오신다.”
그리고는 각각 사당 밖으로 나와 달아났다. 돌아보니, 어떤 스님 두 사람이 와서 그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귀신들은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서로 안고 사당 앞 풀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 뒤에 그 스님들이 떠나자 다시 사당으로 들어갔다.
무회는 이것을 본 뒤로 곧 불교를 믿고,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받들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송(宋)나라 예장(豫章)의 호비지(胡庇之)
송(宋)나라 때 예장(豫章)의 호비지(胡庇之)는 일찍이 무창군승(武昌郡丞)으로 있었다. 원가(元嘉) 26년에 관청에 들어갔을 때 괴상한 귀신이 나타났다. 한밤중 으스름달에 창문이 조금 열려 있고, 아이 같은 어떤 사람이 창문에 기대 서 있었다. 문이 닫히자 그가 떠나는 데 나막신 소리가 나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되풀이해 있었다.
그 뒤 28년 3월에 온 집안 사람이 모두 유행병에 걸렸다. 공중에서 말소리가 나면서 기왓장이나 돌멩이를 던지고 혹은 마른 흙덩이를 던지는데 여름의 병자들은 다 그것에 맞았다. 그 말소리와 물건을 던지는 세력은 더욱 사나워져 갔다. 그래서 도인을 청해 재계하고 밤을 새워 경을 읽었다. 던지는 물건은 전보다 더욱 많아 비처럼 쏟아졌으나 오직 도인의 경에만은 떨어지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자 차츰 소리가 나면서 기왓장과 돌을 사람에게 던졌다. 그것에 맞은 사람은 푸르스름하게 멍은 들었으나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호비지가 잘 아는 어떤 노파는 욕설하기를 좋아했다. 귀신은 그 곁에 와서 그녀를 크게 위협했다. 비지는 제주(祭酒)를 맞이하여 하늘에 글을 올리고 부적(符籍)을 그려 붙여 귀신들을 쫓았다. 귀신들은 차츰 사라졌다.
29년에 이르러 귀신은 다시 와서 먼저보다 더 극성스러웠고, 이듬해에는 관청 4방에서 불이 자주 일어나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모두 유행병으로 죽어갔다. 귀신은 늘 개소리를 내었으므로 그 집의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흘람(吃嚂)이라 불렀다.
그 뒤에 귀신이 갑자기 말하였다.
“나는 소와 같다.”
밤중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비지가 물었다.
“그 누구냐?”
그것은 대답하였다.
“정소릉(程邵凌)이오.”
비지가 불을 들고 나가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초저녁에 다시 문밖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있었다. 비지는 그것을 꾸짖었다. 그것은 말하였다.
“당신은 나를 꾸짖지 마십시오. 나는 선신(善神)입니다. 전에 왔던 그런 자가 아닙니다. 도어사(徒御史)가 나를 보내 당신에게 알리라 했습니다.”
비지는 말하였다.
“나는 도어사를 모른다.”
귀신은 말하였다.
“도경현군(陶敬玄君)입니다. 그는 옛날 당신과 서로 오가면서 지냈습니다.”
비지는 말했다.
“나는 그와 서울에 있을 때 형양(衡湯)을 함께 섬긴 일은 있으나 그가 어사(御史)가 된 적은 없었다.”
“그 도어사는 지금 복지(福地)에 있으면서 천상의 어사가 되었는데, 여러 번 와서 해친 것은 다 심공(沈公)의 짓입니다. 이 관청은 본래 심공의 집이었으므로 그 때문에 그는 와서 집을 보고 불평이 있어서 말소리와 물건을 던짐으로써 당신을 해친 것입니다. 당신이 그를 너무 심하게 물리치고 심지어 꾸짖으며 여종들을 시켜 무례하게 대했으며, 또 제주를 시켜 글을 올렸으니, 이 죄의 정상이 천조(天曹)에까지 들렸습니다. 심공은 지금 천상으로 올라가면서 ‘그대는 부처님께 3귀계(歸戒)를 받은 제자로서 왜 불가(佛家)에 복을 청하지 않고 제주를 시켜 하늘에 글을 올렸는가? 지금부터는 오직 마음을 오로지 하여 불법을 받들면 저 나쁜 귀신들의 곤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비지는 여러 비구니를 청해 경을 읽고 재를 지내었다. 그리고 하루를 지낸 뒤에 또 문 밖의 어사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심공을 찾아가 알아보았더니, 그는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만일 그의 말과 같다면 그대는 너무 무리한 짓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만일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귀의하고 경을 읽고 계를 지키면 모든 요사스러움이 다 없어질 것이다. 전날의 정을 잊지 못해 지금 와서 알리는 것이다.”

송(宋)나라 태시(泰始) 때의 장을(帳乙)
송(宋)나라 태시(泰始) 때에 장을(張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 맞은 자리가 부스럼이 되어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죽은 사람의 뼈를 가루를 내어 그것을 붙이라고 했다. 같은 방에 있는 아이를 시켜 산에 가서 해골을 파 가지고 와서 불에 태우고 가루를 만들어 붙였다. 그 날 밤에 방안의 화로에 불을 피우고 그 아이가 불을 감시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무엇이 내려와 이 아이의 머리를 불 속에 넣어 누르면서 꾸짖었다.
“너는 왜 내 머리를 불태웠느냐? 지금 이 불로 너에게 앙갚음한다.”
아이는 크게 부르짖으면서 말했다.
“장을이 불태웠습니다.”
그것은 말했다.
“네가 가지고 가서 장을에게 주지 않았으면 장을이 어떻게 태울 수 있었겠느냐?”
그리고 한참 동안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털이 다 타고 피부가 다 문드러진 뒤에야 놓아주었다.
장을은 크게 두려워하여 남은 뼈를 보내어 본 자리에 묻고 술과 고기로 제사지내 주었다. 그 뒤로는 재앙이 다시는 없었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술이기(述異記)』에 나온다.]

송(宋)나라 양성(襄城)의 이이(李頤)
송(宋)나라 양성(襄城)의 이이(李頤)의 아버지는 그 성질이 요사(妖邪)한 일을 믿지 않았다. 어떤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본래부터 흉가(凶家)여서 아무도 살지 않았는데 거기 사는 사람은 예사로 죽었다. 아버지는 그 집을 사서 들어갔으나 여러 해 동안 안길(安吉)하고 자손도 번성하고 살림은 2천 석이나 되었다. 또 벼슬길에 올라 이사하게 되어 그 집에서 떠나려 할 때 그는 내외 친척들을 청해 모으고 음식이 나오자 말하였다.
“천하에 과연 길흉(吉凶)이 있는가? 이 집은 원래 흉가라 했지만 나는 이 집에서 오랫동안 편안하고 길하였으며 더구나 벼슬까지 승진하게 되었거늘 귀신이 어디 있는가? 지금부터 이 집은 길택(吉宅)이 될 것이다. 여기 사는 사람이 마음만 바로 가진다면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변소에 갔다. 갑자기 변소 벽에 큰 자리를 말아 세운 듯한 어떤 물건이 나타났다. 높이는 5척쯤 되는 새하얀 것이었다. 그는 칼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찍어 두 동강을 내었다. 그것은 곧 두 사람으로 화했다. 그는 다시 가로로 잘랐다. 그것은 또 네 사람으로 화해, 그가 가진 칼을 빼앗아서는 그를 도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다시 대중이 모인 자리로 가서 그의 자손 및 이씨의 성을 가진 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때 이이는 아직 어려서 유모의 품에 있었는데, 그 유모는 이 변괴가 나자, 이 이를 안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다른 집에 숨겨 두었기 때문에 그 혼자만이 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이의 자는 경진(景眞)이요 그 벼슬은 상동태수(湘東太守)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주(周)나라 선제(宣帝) 때의 우문빈(宇文贇)
주(周)나라 선제(宣帝) 우문빈(宇文贇)이 태자로 있을 때 그 부왕(父王)인 무제(武帝)는 태자를 매우 엄하게 훈육하여, 항상 관리와 성신(成愼)을 시켜 그를 감찰하게 했다. 만일 조그마한 죄라도 숨기고 아뢰지 않으면 성신을 죽이기로 했었다. 이리하여 성신이 항상 태자의 불미한 일을 아뢰면 무제는 태자를 1백여 개의 매로 때렸다.
선제가 임금이 되어 즉위(卽位)할 때, 그 어깨 위의 매 맞은 상처를 돌아보고 곧 성신의 있는 곳을 물었다. 그 때 성신은 이미 군(郡)으로 전근해 가 있었으므로 선제는 곧 신하를 보내어 성신에게 가서 죽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성신은 원통하여 말했다.
“이것은 당신 아버지가 한 짓이다. 이 성신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한 번의 화를 낸 나머지 내가 무리하게 죽는구나. 만일 내가 죽더라도 앎이 있다면 끝내 놓아두지 않으리라.”
그 때 궁중에서는 모두 금기(禁忌)하여 서로 만나더라도 눈으로만 인사하고 서로 이야기하거나 웃지도 않았다. 선제는 4방에 감관(監官)을 두어 궁인(宮人)들의 죄를 낱낱이 기록했다.
그 때 좌황후(左皇后) 밑의 한 딸이 하품을 하다가 눈물이 나왔다. 그녀는 그 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니, 이른바 누구를 사모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금 앞에서 취조를 받았다. 처음에 그녀의 머리를 한 번 내리쳤다. 그러자 임금의 머리가 아팠다. 다음에 그녀의 목을 한 번 내리치면 곧 임금의 목이 아팠다. 임금은 크게 화를 내어 말하였다.
“이것은 내 원수다.”
그리고 곧 사람을 시켜 그녀의 허리를 잡아 꺾자 곧 임금의 허리가 아팠다. 그 날 밤에 임금은 남궁(南宮)으로 나갔으나 병은 점점 더해갔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돌아오려 했으나 허리가 아파 말을 탈 수 없었으므로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그 여자가 죽은 곳에서 사람의 형상 같은 검은 무리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녀의 피라 하고 다 닦아 버리면 다시 생겨났다. 이렇게 두세 번 되풀이했다. 부득이 유사(有司)는 그 흙을 치워버리고 새 흙으로 덮었다. 한 밤을 지내자 그것은 다시 여전했다. 이 때문에 임금의 병은 자꾸 더해 7ㆍ8일 뒤에는 온몸이 문드러져 죽었다.
처음으로 그 시체를 상(床)에 모시자 그 상다리가 모두 굽어지면서 까딱하지 않아 바르게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 여자가 누웠던 평상만이 다리가 곧았으므로 그것으로 대신했으니, 이것은 다 귀신의 뜻이었다. 임금이 죽은 뒤에 성신이 죽으니, 그 사이는 겨우 20여 일 이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제(齊)나라 경사(京師)의 석혜예(釋慧豫)
제(齊)나라 서울의 영근사(靈根寺)에 있는 석혜예(釋慧豫)는 본래 황룡(黃龍)사람으로서 서울에 왔다가 영근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학문에 힘써 여러 스승을 두루 찾아다녔다. 아름다운 일이면 즐겨 담론하지만 사람의 선악에 관한 평을 들으면 곧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먼저 『열반경』과 『법화경』과 『십지(十地)』 등을 외우고 또 선정을 익혀 5문(門)에 정통했다. 일찍이 자다가 세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의관(衣冠)이 깨끗하고 손에는 꽃 일산을 들고 있었다. 혜예는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그들은 말했다.
“법사님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마중하러 왔습니다.”
혜예는 물었다.
“아직 일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1년만 여유를 줄 수 없습니까?”
그들은 말했다.
“좋습니다.”
이듬해 1년을 채우고 혜예는 죽었다. 때는 제나라 영명(永明) 7년이요, 그의 나이는 57세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나라 친위(親衛)인 고법안(高法眼)
당(唐)나라 옹주(雍州) 장안현 (長安縣)의 고법안(高法眼)은 수(隋)나라 때의 복야(僕射)인 고영지(高潁之)의 현손(玄孫)이다. 그는 용삭(龍朔) 3년 정월 25일에 중대(中坮)로 가서 선과(選科)를 보고 정오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은 의령방(義寧坊)의 동남 모퉁이에 있었는데, 거리를 향해 문을 열면 화도사(化度寺) 동쪽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자성(子城) 서쪽 순의문(順義門)으로 나가려다가 성안에 말을 탄 두 사람이 그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았는데, 성을 나서자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 길 북쪽에는 보광사(普光寺)가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달려가서 보광사 문을 지키고 있다가 저 사람을 그 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법안을 놓칠까 하여 그는 달려가 절 문을 지키고 있었다. 법안은 겁이 나서 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곧 서쪽으로 달려가 서쪽 거리의 금성방(金城坊)에 이르렀다. 남문의 길 서쪽에는 회창사(會昌寺)가 있었다. 저들은 다시 네 사람이 되었다. 새로 온 사람은 먼저의 두 사람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회창사 문을 지켜라.”
저들은 그 말대로 달려가서 절 문을 지켰다. 법안은 두려워하면서 저들에게 말했다.
“당신네는 어떤 사람인데 나를 이처럼 쫓아오는가?”
저들은 말하였다.
“대왕님이 우리를 보내 너를 잡아가려고 왔다.”
법안은 물었다.
“어떤 왕이 보내서 왔느냐.”
저들은 말했다.
“염라대왕님이 보내서 왔다.”
법안은 이 말을 듣고 이들이 귀신임을 알고는 곧 버티고 서 있었다.
저들은 크게 화를 내며 저희끼리 말했다.
“빨리 그 머리털을 베어라.”
그리고는 한 귀신이 칼을 들고 곧 법안의 두 상투를 베었다. 상투는 살이 붙은 채 땅에 떨어졌다. 법안은 서쪽 거리까지 가서는 까무러쳐 말에서 떨어져 깨어나지 못했다. 이미 큰 거리까지 나갔으므로 잠깐 사이에 구경꾼이 천 명이 넘었다.
거리를 순찰하던 과이(果毅)는 거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 화를 내며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처럼 모였느냐?”
거리 지키는 사람들이 모인 까닭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다음의 서쪽 거리 끝에는 법안의 집이 있었다. 곧 그 집의 사람을 불러 법안을 수레에 싣고 집으로 갔다. 이튿날 비로소 법안은 깨어나 그 집안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지옥에 들어가 염라대왕을 보았다. 그는 높은 자리에 앉아 나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는 무엇 때문에 화도사의 명장(明藏) 스님 방에 가서 상주승(常住僧)들의 과일을 먹었느냐? 너는 마땅히 뜨거운 쇠알[鐵丸] 4백 개를 4년 동안 다 먹어야 한다.’”
인간의 하루는 지옥의 1년이니, 4일 동안에 다 먹어야 하고 정월 26일에서 29일까지인데 1일에 1백 알씩 먹어야 한다.
법안이 깨어난 26일에 또 귀신들이 그를 잡으러 왔다. 그는 또 귀신들과 싸웠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고, 다시 지옥에 들어가 쇠알을 먹게 되었다. 그것을 먹을 때에는 목구멍이 틔었다 막혔다 하고 몸은 타서 빨갛게 되었다. 다 먹고 나면 깨어나고 깨어나자 염라대왕은 또 말하였다.
“너는 무엇 때문에 3보(寶)를 공경하지 않고 스님들의 허물을 말했느냐? 너는 쇠알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쇠쟁기로 네 혀를 1년 동안 갈아야 한다.”
29일에 쇠알을 모두 먹고 정월 30일 아침에 다시 죽어 지옥에 가서는 다시 쇠쟁기로 혀를 갈리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제 혀의 길이가 여러 리(里)가 되는 것을 보았고 곁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1척 남짓이나 혀를 토해 내었다. 왕은 다시 옥졸(獄卒)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3보(寶)의 장단점(長短點)을 말했으니, 큰 쇠도끼로 그 혀뿌리를 찍어 끊어라.”
옥졸들이 도끼로 찍었으나 혀는 끊어지지 않았다. 왕은 다시 말했다.
“그 도끼로 그 혀를 잘게 썰어 끓는 솥에 넣어 삶아라.”
그러나 삶기지 않자 왕은 그 까닭을 법안에게 물었다. 법안은 말했다.
“나는 일찍부터 『법화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처음에는 믿지 않고 신하를 시켜 공덕부(功德部)를 조사해 보라 했다. 책상 안에 있는 『독법화경(讀法華經)』 1부(部)를 보고 왕이 직접 점검해 보고는,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서야 비로소 놓아 보냈다. 법안은 깨어나자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장꾼과 함께 구경한 사람들도 모두 발심하였고, 그 집안 사람들도 다 불교를 믿어 뜻을 가다듬어 정진하면서 보시와 인욕에 이지러짐이 없이 지성을 다해 게으르지 않았다.
이상의 사실은 서울의 승려와 속인들이 다 아는 일이라 굳이 인증하지 않는다.
039_0755_a_06L述意部 愼用部 愼禍部愼境部 愼過部述意部第一夫思愼防過無患之理緘口息慮惡之原誡始愼終是君子之鹽梅初護末是養生之要趣庶寤因緣之興起鑑生滅之非常識苦空之無我照平等之妙門而存其理棄其迹其禍招其福是和神之靈順物之道愼用部第二修行道地經云昔有國王選擇一國明智之人以爲輔臣王欲試之欲知何如以重罪加勅告臣吏盛滿鉢油而使擎之從北門來至於南門去城二十里園名調戲令將到彼若墮一滴便級其頭不須啓問爾時群臣受王重教盛滿鉢油以與其人兩手擎甚大愁憂縱有車馬觀者塡道見是非而不轉移縱有親族妻子來其人專心不左右視縱有合國觀者擾攘其人心端不見衆庶縱有玉女國內無雙歌儛相逼見者皆喜人一心擎鉢志不動轉亦不觀察妄起片心專精擎鉢不聽其言於是巧便而安庠 其儛最巧妙一切人貪樂 譬如魔之后能動離欲者 何況於凡人來往其人邊 擎鉢心不傾縱有象暴馬奔城中失火焚燒百姓展轉相呼教言避火莫墮坑塹官兵悉來一時救火其人一心擎鉢一滴不遺縱有天雷地動猛風亂起折樹塵飛掣電霹靂禽獸墮落人畜驚專心念油其人不聞爾時擎油至彼園觀一滴不墮諸臣啓王具陳斯王聞嗟歎此人難及人中之雄顧萬事其王歡喜立爲大臣行道行者御心如是雖有諸惡婬怒癡來擾大寧亂諸根內察外防攝心不散三昧定意亦復如是於是頌曰如人擎油鉢 不動無所棄妙慧意如海 專心擎油器若人欲學道 執心當如是意懷諸德明 皆除一切瑕若干之色欲 而興於怒癡有志不放逸 寂滅而自制人身有疾病 醫藥以除之心疾亦如是 四意止消之又大集經濟龍品云爾時衆中有盲龍名曰頗羅機梨奢擧聲大哭作如是言大聖世尊願救濟我願救濟我我今身中受大苦惱日夜常爲種種諸蟲之所唼食居熱水中無時暫樂佛言梨奢汝過去世於佛法中曾爲比丘毀破禁戒內懷欺詐外現善相廣貪眷屬弟子衆多名聲四遠莫不聞知我和尚得阿羅漢果以是因緣多得供養獨受用之見持戒人反惡加說彼人懊惱如是念言世世生中願我所在食汝身肉如是惡業死生龍中是汝前身衆生願故食噉汝惡業因緣得此盲報又於過去無量劫中在融赤銅地獄之中常爲諸蟲之所食噉龍聞此語憂愁啼哭如是言我等今者皆悉至心咸共懺願令此苦速得解脫彼龍衆中十六億諸餓龍等念過去身皆悉雨念過去身於佛法中雖得出家造惡業經無量身在三惡道以餘報在龍中受極大苦如靑色龍我亦如是爾時世尊語諸龍言汝可持水洗如來足令汝殃罪漸得除滅切龍以手掬水水皆成火變作大石滿於手中生大猛焰棄已復生如是至七一切龍衆見如是已驚怖懊惱啼泣雨淚佛教立大誓願已焰火皆乃至八過以手捧水洗如來足至心懺悔佛記諸龍彌勒佛時當得人身値佛出家精進持戒得羅漢果諸龍等得宿命心自念過業於佛法中或爲俗人親屬因緣或復聽法來去因緣所有信心捨施種種華菓飮共諸比丘依次而食或有說云我曾喫噉四方衆僧華菓飮食或有說言我往寺舍布施衆僧或復禮拜如是喫噉或復說言我從毘婆尸如來法曾作俗人乃至有說我釋迦牟尼佛法之中曾作俗人或以親舊問訊因緣或復來去聽法因緣往還寺舍有信心人供養僧故捨施華菓種種飮食比丘得已迴施於我我得便食彼業因緣於地獄中經無量劫大猛火中或燒或煮或飮洋銅或吞鐵丸從地獄出墮畜生中捨畜生身生餓鬼中如是種種備受辛苦惡業未盡生此龍中常受苦惱佛告諸龍此之惡業與盜佛物等無差別比五逆業其罪如半汝等今當盡受三歸一心修善以此緣故於賢劫中値最後佛名曰樓至於彼佛世罪得除滅龍等聞是語已皆悉至心盡其形壽各受三歸彼衆中有盲龍女口中胮爛滿諸雜蟲狀如屎尿乃至穢惡猶若婦人根中不淨臊臭難看種種噉食膿血流出一切身分常爲蚊蝱諸惡毒蠅之所唼食身體臭處難可見聞爾時世尊以大悲心見彼龍婦眼盲困苦如是問言妹何緣故得此惡身於過去世曾爲何業龍婦答言世尊我今此身衆苦逼迫無暫時得停設復欲而不能說我念過去三十六億百千年生惡龍中受如是苦乃至日夜剎那不停爲我往昔九十一劫毘婆尸佛佛法之中作比丘尼思念欲事過於醉人雖復出家不能如法於伽藍內犯於法律常受三惡道諸燒煮說此語已願救濟我身爾時世尊說實語已卽以少水瀉龍口中火及蟲膿悉皆滅盡龍口淸涼作如是言大聖如來我憶過去迦葉佛時曾作俗人在田犂地有一比丘來從我乞求五十錢我時報言聽待穀熟與汝食比丘復言若當五十不可得願乞十文我於爾時瞋彼比丘語之言乃至十錢亦不相與彼比丘心生懊惱又於餘時往寺舍中入樹林下輒便盜取現在僧物十菴羅而私食之彼業因緣地獄受苦業未盡生野澤中作餓龍身常爲種種諸蟲食噉膿血流溢飢渴苦惱彼比丘以瞋忿心惡業緣故死便卽作小毒龍身生我腋下嗽於我血氣觸身不可堪忍是故我身熱膿血滿龍白佛言大悲世尊唯願慈哀濟於我令我脫彼怨家毒龍爾時尊以手抄水發誠實語作如是言曾往昔於飢饉世爾時願作大身衆長廣無量以神通力於虛空中如是言彼野澤中有大身蟲名曰不汝等可往取其身肉以爲飮食得不飢彼世中人非人等聞此聲一切悉往競取食之說是眞實諦信語時彼龍腋下小龍卽出此二龍俱白佛言世尊我等夂近離此龍解脫殃罪佛告龍言此業大重次五無閒何以故若有四方常住僧物或現前僧物篤信檀越重心施物華果樹園飮食資生牀褥敷具疾病湯藥一切所須私自費用或持出外乞與知識親里白衣此罪重於阿鼻地獄所受果報是故汝等可受三歸三寶已乃可得往於冷水中如是三稱三受身卽安隱得入水中爾時尊卽爲諸龍而說偈言寧以利刀自割身 肢節身分肌膚肉所有信心捨施物 俗人食者實爲難寧吞大赤熱鐵丸 而使口中光焰出所有衆僧飮食具 不應於外私自用寧以大火若須彌 以手捉持而自食其有在家諸俗人 不應輒食施僧食寧以利刀自屠膾 身體皮膜而自噉其有在家諸俗人 不應受取僧雜食寧以自身投於彼 滿室大火猛焰中其有在家俗人輩 不應坐臥僧牀席寧以大熱尖鐵錐 拳手握持便燋爛其有在家俗人等 不應私用於僧物寧以勝利好刀碪 而自臠切其身肉勿於出家淸淨人 發起一念瞋恚心寧以自手挑兩眼 捐棄投之擲於地其有習行善法者 不應懷忿瞋心視寧以熱鐵鍱其身 東西起動行坐臥不應瞋忿心妒嫉 而著衆僧淨施衣寧飮灰汁鹹鹵水 熱沸爍口猶如火不應懷貪毒惡心 服食衆僧淨施藥爾時世尊說此偈已一萬四千諸龍衆等悉受三歸所有過去現在業報諸苦惱中而得解脫深信三寶其心不退復有八十億諸龍衆等亦於三寶起歸敬心又大集經云或作比丘所得種種資生之具皆是信心檀越所施而是衆生或自食噉或與他人或共衆人盜竊隱藏私處自用如是業故墮三惡夂受勤苦復有衆生貧窮下賤得自在是故出家望得富饒解脫安旣出家已懈怠懶墯不讀誦經慧精勤捨而不習樂知僧事復有比晝夜精勤樂修善法讀誦經典禪習慧不捨須臾以是因緣感諸四輩種種供養知事人得利養已自私食或復盜與親舊俗人以是等夂處惡道出已還入如是愚冥不見當來果報輕重我今戒勅沙門弟子念法住持不得自稱我是沙門眞法行人倚衆僧故受他信施物或餠或菜或菓或華但是衆僧所食之物不得輒與一切俗人亦不得云此是我物別衆而食又亦不得以衆僧物貯積興生種種販賣云有利益招世譏嫌又亦不得出貴收賤與世爭利又亦不得爲於飮食及僧因緣使諸衆生墮三惡道應須勸引安善法中令比丘衆眞信三寶攝諸衆生乃至父母令得安隱置三解脫又十輪經云若有四方僧物資生雜物等持戒破戒如是人等悉不與之以是因緣命終已後皆墮阿鼻地獄又大集經濟龍品云娑伽羅龍王白佛言而此龍中或有諸龍所受樂猶如諸天或有受樂如人有如餓有如畜生有如地獄受大辛苦是語已時娑伽羅大龍王子名靑蓮華面前白佛言世尊我何惡業罪因緣故來生龍中身大端正所有色觸受用猶如火燒常無衣服赤體而行如我父王受樂最勝如轉輪王果報不異佛言華面當爲汝說乃往過去三十一劫有佛世尊名曰尸棄世中有王名曰培多富沙彼富沙王於三月中供養彼佛幷及無量百千四沙門果大菩薩衆以種種衣服湯藥而供給之至心聽法已卽發菩提心幷爲造寺種種供養彼王第一太子名裵多娑樹帝見佛聞法流轉中生大怖畏從父王邊願求出王報任意旣出家已又白父言欲寺上停止王言亦隨尸棄佛衆僧弟子在彼寺中受用飮食彼富沙子裵多樹帝妒嫉心生常瞋罵之僧衆被瞋罵已悉離寺去見僧去已生歡喜心卽自念言彼去者好我大安隱恣用寺內衣服飮食有餘人來卽不聽住由具惡業命終之後生大地獄經無量千萬那由他歲受諸火地獄得脫生餓鬼中復經無量受辛苦餓鬼中死還墮地獄脫地獄已生餓鬼中如是經由三十一劫於流轉中具足如是受諸辛苦佛言華面彼娑樹帝者豈異人乎卽汝身是也乃往過去惡業因緣故生大地獄畜生輪轉受苦經是三十一大劫中備受衆苦未曾暫捨以殘業故生龍中受是惡報華面龍聞是語大聲號哭擧身自投四肢布地拜白佛作如是言我今至心從佛懺不敢覆藏我今至誠入於骨髓依佛乃至壽盡作優婆塞佛言善哉善哉如是歸依我者得盡彼業此中死已値彌勒佛得於人身於彌勒佛法中出家證羅漢果愼禍部第三如舊雜譬喩經云昔有一國五穀熟人民安寧無有疾病晝夜伎樂無憂惱王問群臣我聞天下有禍何荅曰臣亦不見王便使一臣至於鄰國求覓買之天神則化作一人市中賣之狀類如豬持鐵鎖繫縛賣臣問此名何等荅曰禍母臣曰荅曰問索幾錢荅曰千萬問曰此食何等荅曰食鍼一升臣便家家發求覓鍼如是人民兩兩三三相逢求鍼使諸郡縣處處擾亂百姓所在之處患毒無聊臣白王曰雖得禍母致使民亂男女失業欲殺棄之未審許不王言大善便於城外將殺剌便不入斫則不傷剖而不死積薪燒之身赤如火便走出去過里燒里過市惠暉燒市入城燒城入國燒國擾亂人民飢餓困苦坐由厭樂買禍所致苦也此喩女色欲火所燒男子貪毒至死不知苦也愼境部第四如正法念經孔雀菩薩告諸天衆若有比丘畏於惡名則離諸過所謂不女人戲笑之處不入酒肆不近酤酒不與共語不近嗜酒人亦不與語不近賊人不近先作大惡之人不近好鬪人不近陰惡懷毒人不近無常數捨道人不近博戲人不近伎樂人不近小兒不近繫縛女色人不近輕躁人不近不護口人不近食人不近販賣欺誑人不近巧僞市道世所惡賤人不近掘河池人不近黃門女人同路一步不近調象人不近魁膾人近調馬人不近斷見人不近無人如是惡人不應親近近如是人必與同行是故比丘當畏惡名不應此不淨業人同路行於一足之地而說頌曰若人近不善 則爲不善人是故應離惡 莫行不善業隨近何等人 數數相親近近故同其行 或善或不善一切人求善 當近於善人如是能得樂 善則非苦因近善增功德 近惡增尤甚功德及惡相 今如是略說若近於善人 則得善名稱若近不善人 令人速輕賤常應親善人 遠離於惡友以近善人故 能捨諸惡業愼過部第五如雜阿含經云爾時世尊告諸比丘譬如鐵丸投著火中與火同色盛著劫貝緜中云何比丘當速燃不比丘白佛如是世尊佛告比丘愚癡之人依聚落住晨朝著衣持鉢入村乞食善護身不守根門心不繫念若見年少女人不正思惟取其色相起貪欲欲燒其心欲燒其身身心燒已戒退減是愚癡人長夜當得非義饒是故比丘當如是學善護其身諸根門繫念入村爾時世尊告諸比過去世時有一貓貍飢渴羸瘦孔穴中伺求鼠子若鼠子出當取食有時鼠子出穴游戲彼貓貍疾取吞之鼠子身小生入腹中入腹中食其內藏食內藏時貓貍迷悶西狂走空宅塚閒不知何止遂至於如是比丘有愚癡人依聚落住朝著衣持鉢入村乞食不善護身守根門心不繫念見諸女人起不正思惟而取色相發貪欲心已欲火熾燒其身心已馳走狂逸不樂精舍捨戒退減此愚癡人長夜常得不饒益苦是故比丘當如是學善護其身守諸根門繫心正念入村乞食又雜阿含經云爾時世尊告諸比丘譬如木杵常用不止日夜消減如是比丘從本已來不閉根門食不知量初夜後夜不勤覺寤修習善法當知是輩終日損減不增善法如彼木杵又自愛經云佛言夫人處世心懷毒口施毒言身行毒業斯三事出于唱成其惡以加衆生衆生被卽結怨恨誓心欲報或現世獲身終後魂靈昇天卽下報之人中畜生鬼神太山更相剋賊皆由宿命非空生也佛說偈言心爲法心 心尊心中 使心作惡卽言卽行 罪苦自追 車轢乎轍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善卽言卽行 福樂自追 如影隨形又十住毘婆沙論云在家菩薩若見破戒之人不應生瞋輕慢之心應生憐愍利益之心方便勸止令生善心苦諫不改而生誹謗亦不得瞋妄見他過故此賢劫中聞有菩薩誹謗拘樓孫佛言何有禿人而當得道如是衆生難可得知自作自受何預於我若欲知彼或自傷害籌量衆生佛所不許如經中說佛告阿難若人籌量於他卽自傷身如偈說曰有甁蓋亦空 無蓋亦復空有甁蓋亦滿 無蓋亦復滿當知諸世閒 有此四種人威儀及功德 有無亦如是若非一切智 何能籌量人寧以見威儀 而便知其德正知有善心 名爲賢人相但見外威儀 何由知其內若以外量內 而生輕賤心敗身及善根 命終墮惡道外詐現威儀 游行以賢善但有口言說 如雷而無雨是故經云勿輕未學敬學如佛唯有智慧可破煩惱若稱量者則爲自傷唯佛智慧乃能明了如此事者非我所卽於破戒人中不生瞋恚輕慢之又舊雜譬喩經云昔有一鼈遭遇枯湖澤乾竭不能自致有食之池有大鶴集住其邊鼈從求哀乞相濟鶴啄銜之飛過都邑鼈不默聲問此何等如是不止鶴便應之口開鼈人得屠食夫人愚頑不謹口舌其譬如是又法句喩經云佛告婆羅門世有四人不能行行者得福不致此貧謂爲四一者年盛力壯愼莫憍慢者年老精進不貪婬泆三者有財珍常念布施四者就師學問聽受正如此老公不行四事謂之有常不計成敗一旦離散譬如老鶴守此空池永無所得於是世尊卽說偈言晝夜慢墯 老不止婬 有財不施不受佛言 有此四弊 爲自侵欺咄嗟老至 色變作耄 少時如意老見蹈賤 不修梵行 又不富貴老如白鶴 守伺空池 旣不守戒又不積財 老羸氣竭 思故何逮老如秋葉 行穢襤縷 命疾脫至不用後悔頌曰思愼始終 務存正己 口無二言心無妄起 少欲知足 妄懷彼此戰戰兢兢 誡勖憂喜感應緣略引十一驗漢下邳周式 漢會稽句章人漢諸曁吳詳 晉義興人周晉淮南胡茂回 宋豫章胡庇之宋泰始中 張乙 宋襄城李頤周宣帝宇文贇 齊京師釋慧豫唐親衛高法眼漢下邳周式嘗至東海道逢一吏一卷書求寄載行十餘里謂式曰暫有所過留書寄君船中愼勿發之去後式盜發視書皆諸死人錄下條有式名須臾吏還式首視書吏怒曰故以相告而勿視之式叩頭流血良久感卿遠相載此書不可除卿今日已去還家三年勿出門可得度也勿道見吾書式還不出已二年餘家皆怪鄰人卒亡父怒使往弔之式不得適出門便見此吏吏曰吾令汝三年勿出而今出門知復奈何吾求不連相爲得鞭杖今已見汝無可柰後三日日中當相取也式還涕泣具道如此父故不信母晝夜與相守涕泣至三日日中時見來取便死右此一驗出搜神記漢時會稽句章人至東野還暮不及見路傍小屋然火因投宿止有一少女不欲與丈夫共宿呼鄰人家女自伴夜共彈箜篌歌戲曰連緜葛上藤 一緩復一絙汝欲知我姓 姓陳名阿登明至東郭外有賣食母在肆中此人寄坐因說昨所見母聞阿登驚曰此是我女近亡葬於郭外漢時諸曁縣吏吳詳者憚役委頓投竄深山行至一溪日欲暮見年少女子綵衣甚端正女云我一身獨居又無鄕里唯有一孤嫗相去十餘步詳聞甚悅便卽隨去行一里餘至女家家甚貧陋爲詳設食至一更聞一嫗喚云張姑子女應曰是誰荅云向所道孤獨嫗也二人共寢息至曉雞鳴詳去二情相戀以紫巾贈詳詳以布手巾報行至昨所應處過溪其夜水大瀑溢深不可乃迴向女家睹不見昨處但有一塚耳晉義興人姓周永和年中出都乘馬從兩人行未至村日暮道邊有一新小草屋見一女子出門望年可十六姿容端正衣服鮮潔見周過謂曰日已暮前村尚遠臨賀詎得至周便求寄宿此女爲然火作食向有一更聞外有小兒喚阿香聲女應曰諾官喚汝推雷車女乃辭行云今有事當去夜遂大雷雨向曉女還周旣上馬看昨所宿處正見一新塚塚口有馬屎及餘草周甚驚惋至後五年果作臨賀太守右此三驗出續搜神記晉淮南胡茂回此人能見鬼雖不喜而不可止後行至楊州還歷陽城東有神祠中正値民將巫祝祀之須臾頃有群鬼相叱曰上官來各逬走出祠去迴顧見二沙門來入祠中諸鬼兩兩三三相抱持在祠邊草中伺望沙門皆有怖懼須臾沙門去後諸鬼皆還祠中回於是信佛遂精誠奉佛右此一驗出續搜神記宋時豫章胡庇之嘗爲武昌郡丞元嘉二十六年入廨便有鬼怪中宵籠月戶牖少開有人倚立戶外狀似小兒戶閉便聞人行如著木屧聲則無所見如此甚數二十八年三月擧家悉得時病空中語擲瓦石或是乾土夏中病者皆著而語擲之勢更乃請道人齋戒竟夜轉經倍來如唯不著道人及經卷而已秋冬漸有音聲瓦石擲人肉皆靑黯而不甚庇之有一老嬭好罵詈鬼在邊大嚇庇之迎祭酒上章施符驅逐漸復歇絕至二十九年鬼復來劇於前年丞廨火頻四發狼狽澆沃竝得時鬼每有聲如犬家人每呼爲吃嚂後忽語吾似吳三更叩戶庇之問誰荅曰程邵陵把火出看了無所見數日二更中復戶外叩掌便復罵之云答君勿罵我我是善神非前後來陶御史見遣報君庇之云我不識陶御史鬼云陶敬玄君昔與之周旋庇之云吾與之在京日伏事衡陽不嘗作御史陶今處福地作天上御史前後相侵是沈公所爲此廨本是沈宅來看宅聊復語擲狡獪忿君攘卻太過乃至罵詈命婢使無禮向復令祭酒上章苦罪狀之事徹天沈今上天言君是佛三歸弟子不從佛家請福乃使祭酒上章自今唯願專意奉法不須與惡鬼當相困庇之請諸尼讀經仍齋訖經一宿復聞戶外御史相聞白胡丞見沈相訟甚苦如其所言君頗無理若能歸誠正覺習經持戒則群邪屛絕依依曩情故相白也宋泰始中有張乙者被鞭瘡痛不歇人教之燒死人骨末以傳之雇同房小兒登岡取一髑髏燒以傅瘡其夜戶內有鑪燒火此小兒守火空中有物按小兒頭內火中罵曰汝何以燒我頭今以此火償汝小兒大喚曰乙燒耳答曰汝不取與張乙張乙那得燒之按頭良久髮燃都盡皮肉燋然後捨之乙大怖送所餘骨埋于故處酒肉醊之無復災異也右二驗出述異記宋襄城李頤其父爲人不信妖邪一宅由來凶不可居居者輒死父便買居之多年安吉子孫昌熾爲二千石當徙家之官臨去請會內外親酒食旣行父乃言曰天下竟有吉凶不此宅由來言凶自吾居之多年安吉乃得遷官鬼爲何在自今已後便爲吉宅居者住正心無所嫌也訖如廁須臾見壁中有一物如卷席高五尺許正白便還取刀斫之中便化爲兩人復橫斫之又成四人便奪取刀反斫李殺持刀至座上斫殺其子弟凡姓李必死唯異姓無他頤尚幼在抱家內知變乳母抱出後藏他家止其一身獲免頤字景眞位至湘東太守右一驗出續搜神記周宣帝宇文贇在東宮時武帝訓篤甚嚴常使官者成愼監察之若有纖毫罪失匿而不奏許愼以死於是常陳太子不法之事武帝杖太子百及卽位顧見膊上杖瘢乃問成愼所在愼于時已出爲郡遂勅追之便賜死愼奮厲曰此是汝父所爲愼何罪勃逆之餘濫以見及死若有知終不相放于時宮掖禁忌相逢以不得輒共言笑分置監官記錄愆左皇后下有一女子欠伸淚出被奏劾謂其所思憶便勅對前考竟之初打頭一下帝便頭痛次打項一下帝又項痛遂大發怒曰此是我怨家乃使拉折其腰帝卽腰痛其夜出南宮病遂漸增明旦早還患腰得乘馬御車而入所殺女子處有黑如人形謂是血隨掃刷之旋復如故如此再三有司掘除舊地以新土埋之一宿之閒亦還如本因此七八日擧身瘡爛而崩及初下屍諸牀竝曲牢不可脫唯此死女子所臥之獨是直腳遂以供用蓋亦鬼神之意焉帝崩去成愼死僅二十許此一驗出冥祥記齊京師靈根寺有釋慧豫黃龍人游京師止靈根寺少而務學徧訪衆善談論美風則每聞臧否人物輒塞耳不聽先誦大涅槃法華十地習禪業精於五門嘗寢見有三人來扣戶竝衣冠鮮潔執持華蓋豫問覓誰答云法師應死故來奉迎豫曰小事未了可申一年不荅云可爾至明年滿一周而卒是歲齊永明七年春秋五十有七右此一驗出梁高僧傳唐雍州長安縣高法眼是隋代僕射高穎之玄孫至龍朔三年正月二十五日向中臺參選日午還家舍在義寧坊東南隅向街開門化度寺東卽是高家欲出子城西順義門城內逢兩騎馬逐後旣出城已漸近逼之城門外道北是普光寺一人語騎馬人云汝走捉普光寺門勿令此人入恐難捉得此人依語馳走守門眼怕不得入寺便向西走復至西街金城坊南門道西有會昌寺復加四馬騎更語前二乘馬人云急守會昌寺門此人依語走捉寺門法眼怕便語乘馬人云汝是何人敦逼於我乘馬人云王遣我來取汝法眼語云王遣來乘馬人云閻羅王遣來法眼旣聞閻羅王使來審知是鬼卽共相鬼便大怒云急截頭髮卻一鬼捉卽截法眼兩髻附肉落地便至西街悶絕落馬暴死不覺旣至大街要踟躕之閒看人逾千有巡街果毅瞋守街人何因聚衆守街人具述逗次西街首卽是高宅便喚家人輿向舍至明始蘇便語家內人云吾入地獄見閻羅王昇大高座瞋責吾云汝何因向化度寺明藏師房內食常住僧菓子宜吞四百顆熱鐵丸令四年吞了人中一日當地獄一年四日便了從正月二十六日至二十九日便或日食百顆當二十六日惺了之復有諸鬼取來法眼復共鬼鬪相趁力屈不加復悶暴死至地獄令吞鐵丸當吞之時咽喉開縮身體燋捲變爲紅色吞盡乃蘇蘇已王又語言汝何因不敬三寶說僧過惡汝吞鐵丸盡已宜受鐵犂耕舌一年至二十九日旣吞鐵丸了到正月三十日平復死至地獄中復受鐵犂耕舌見其舌長數里傍人看見吐出一尺王復語獄卒此人以說三寶長短以大鐵斧截卻舌根獄卒斫之不斷王復語云以斧細剉其舌將入鑊湯煮之煮復不爛王復怪問所由法眼啓王云臣曾讀法華經王初不信檢功德部見案內有讀法華經一部檢知實始放出來其人見在蘇惺如觀者如市見者發心合門信敬勵志精勤檀忍不虧誡誠無倦京城道俗共知不煩引證

45.검약편(儉約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039_0763_c_23L儉約篇第四十五此有二部
039_0764_a_02L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공허한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사실로 증명하는 것보다 못하고, 비슷한 상(像)을 듣는 것은 귀와 눈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믿음은 배움만 못하고 말은 행동보다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틀을 연구하고 이치에 맞춤은 실로 지극한 성인의 큰 기본이요, 반연을 버리고 검약하기 힘씀은 바로 지극한 사람의 큰 도량이니, 한계 밖의 마음을 세우지 않으면 어찌 끝이 없는 감응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한 개의 털과 하나의 낟알로도 마침내 4생(生)을 구제하고 한 생각과 한 찰나로도 항상 6도(度)를 돕는 것이니, 이것은 그 공은 절반의 숨길을 내어 가득 채우는 미래를 뛰어나며 소박하고 검약함을 가지는 것도 그 덕은 높은 법보다 나은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신바사론(新婆娑論)』에서 말하였다.
“【문】 모든 제자들 중에서 대가섭(大迦葉)은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두타행(頭陀行)을 갖추었으며, 박구라(薄矩羅)는 병이 적고 절약하고 검소하며 깨끗한 계행(戒行)을 갖추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다릅니까?
【답】 존자 대가섭은 그 얻은 음식이 거칠거나 맛나거나 차례를 따라 먹으면서 구별하지 않나니, 마치 좋은 말이 얻는 대로 먹는 것과 같다. 존자 박구라는 그 얻은 음식이 거칠거나 맛날 때, 그 맛난 것은 버리고 거친 것을 먹나니, 그는 마치 경전에 말한 것과 같다. 즉 4종의 성종(聖種)이 있다. 첫째는 얻는 대로의 음식에 기꺼이 만족하는 성종이요, 둘째는 얻는 대로의 의복에 기꺼이 만족하는 성종이며, 셋째는 얻는 대로의 침구에 기꺼이 만족하는 성종이요, 넷째는 있고 없음에 의해 즐겨 끊고 즐겨 닦는 성종이다.”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어떤 이학(異學)이 있었다. 이 사람은 존자 박구라가 출가하기 전부터 좋은 벗을 잘 친했다. 그는 박구라에게 가서 그 뜻을 물었으므로 박구라는 그를 위해 설법했다.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 동안 욕상(欲想)을 일으킨 일이 없었다. 나는 분소의(糞掃衣)를 입은 지 80년 동안 잘났다는 생각을 일으킨 일이 없었고, 또 일찍이 거사(居士)의 옷을 받은 일이 없었으며, 옷을 마름한 일이 없었고, 옷을 바늘로 꿰맨 일이 없었으며, 바늘이나 실이나 주머니나 내지는 실 한 오라기도 가진 일이 없었다. 나는 걸식한 지 80년 동안 잘났다는 생각을 일으킨 일도 없고 거사의 초청을 받은 일도 없으며 차례를 뛰어넘어 걸식한 일도 없고 저 큰 집에 가서 걸식하면 깨끗하고 좋으며 아주 맛나고 풍부한 음식을 얻을 것이라 하여 걸식한 일이 없었다.
아직 여자의 얼굴을 본 일이 없고 아직 비구니의 방에 들어간 일이 없으며 비구니를 생각하여 서로 문안하거나 내지는 길에서도 서로 말한 일이 없었다. 아직 사미를 기른 일이 없고, 속인을 위해 설법하되 내지는 4구게(句偈)도 설명한 일이 없었다. 아직까지 병이 있거나 내지는 잠깐 동안 머리 아픈 일도 없고 아직 약으로서 한 조각의 하리륵도 먹은 일이 없었다. 나는 가부(跏趺)하고 앉은 지 80년 동안, 아직 벽이나 나무를 기댄 일이 없고, 나는 3일 만에 3달(達)을 얻었으며, 나는 가부하고 앉아 열반에 들었으니, 이것이 이 존자 박구라의 미증유(未曾有)의 법이니라.’”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달이가(達膩伽)아라한은 스스로 깊이 경하하면서 다음 게송을 읊었다.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언제나 사문의 법을 익혀라.
그것 버리면 살아가기 위하여
뱀이 쥐구멍에 드는 것 같다.

적멸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언제나 사문의 법을 익혀라.
신명이 옷과 음식에 매였나니
좋거나 나쁘거나 얻는 대로 써라.

적멸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언제나 사문의 법을 익혀라.
모든 것에 만족할 줄을 알고
오로지 열반의 도를 닦아라.”

또 『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비구가 한적한 나무 밑에 앉아 참선하고 있었다 한 번은 그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가 이 비구가 밥 먹는 것을 보고 나무에서 내려와 비구 곁으로 갔다. 비구는 먹던 밥을 나누어 원숭이에게 주었다 원숭이는 그 밥을 얻어먹고 바로 가서 물을 가지고 와서 비구에게 주어 손을 씻게 했다.
이렇게 여러 달을 지내다가 한 번은 그만 잊어버리고 그 원숭이에게 줄 밥을 남기지 않았다. 원숭이는 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크게 화를 내어 이 비구의 가사를 가지고 나무에 올라가 찢어 버렸다. 비구는 화를 내어 지팡이를 던졌다가 잘못 맞아 원숭이가 당장 죽었다. 다른 여러 원숭이들이 몰려와 죽은 원숭이를 메고 절로 갔다. 다른 비구들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비구에게 캐어물었다. 이 비구는 그 동안의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그 뒤로 불교에서는 비구가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중 얼마를 덜어 중생에게 주고 혼자서 다 먹지 못하게 했다.”
또 『오분률(五分律)』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항하강 가에 어떤 선인(仙人)이 석굴 속에 살고 있었다. 그 때 용왕이 날마다 물에서 나와 몸으로 그 선인을 일곱 겹으로 싸고 머리를 세워서는 그 위에 두고 선인을 밑으로 공손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은 선인이 여행을 떠나고 그의 제자가 혼자 굴을 지키고 있었다. 용은 전날처럼 와서 제자를 공경했다. 제자는 두려워하여 몹시 수척해졌다.
나는 그 때 보살도를 닦으면서 항하강 가로 갔다가 이 상황을 보고 그 까닭을 물어 그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너는 그 용이 보기 싫으냐?’
‘예, 그렇습니다.’
나는 또 물었다.
‘너는 그 용의 턱 밑에서 어떤 물건을 보지 못했는가?’
그는 대답했다.
‘거기 여의주(如意珠)가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일러 주었다.
‘만일 그 용이 또 오거든 너는 그 용에게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라. 즉 ≺나는 당신 턱 밑에 있는 그 마니주[摩尼珠]를 가지고 싶습니다. 그것을 내게 주십시오≻ 그 선인의 제자는 내 말을 듣고는 그 용이 오자 곧 그것을 달라고 했다. 용은 이 말을 듣고는 꼼짝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선인의 제자는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용왕이여, 나는 지금 당신 턱 밑의
그 여의주를 가지고 싶다.
나는 지금 몹시 그것이 좋거늘
왜 잠자코 말이 없는가?

용왕도 곧 게송으로 답하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
그것을 모두 이 구슬로 얻는데
네가 지금 그것을 달라 하나니
이제는 다시 여기 오지 않으리.

마치 불이 갑자기 터지는 소리가
사람 마음을 두렵게 하지만
내가 지금 네 말을 듣는
이 두려움은 저것보다 더하다.’

이리하여 나는 옛일을 인용해 다음 게송을 읊었다.

“사람들은 달라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자주 달라고 하면 미움을 산다.
용왕은 달라는 그 말을 듣고
한번 가서는 다시 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가이국(迦夷國)의 어떤 왕은 곤궁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했다. 그 때 이 왕은 어떤 범지왕(梵志王)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범지왕은 아직 한번도 이 왕에게 무엇을 청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 왕은 저 범지왕에게 다음 게송으로 말했다.

‘사람들 모두 멀리서 와서
무엇이고 내게 달라 하는데
당신은 지금 여기 있으면서
아무 것도 안 청하는 것은 그 무슨 뜻인가?’

범지왕도 곧 게송으로 답했다.

‘사람들은 달라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자주 달라고 하면 미움을 산다.
그러므로 잠자코 구함 없나니
친애의 정이 떨어질까 두렵다.

왕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달라는 것 덕의 행을 해치는 것 아니요
또한 몸과 입의 허물 될 것도 없다
있는 것 덜어 없는 것 채우거니
무엇 때문에 달라하지 않는가?’

범지왕도 다시 게송으로 답하였다.
현명한 사람 달라 하지 않나니
달라고 하는 것은 현명한 것 아니다.
잠자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음
이런 사람을 대인(大人)이라 하느니.

그 때 왕은 이 현인의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우왕(牛王) 한 마리와 또 다른 소 천 마리를 그에게 보시했느니라.”
게송을 읊는다.

6정(情)에 교만하고 방자함이 없으며
4섭(攝)은 깊숙한 마음을 연다.
검약함으로써 사람 세상 피하고
고요히 누워 산림(山林)을 사모하네.

굽이치는 시내에는 말울음이 그치고
얽힌 나무 가지에는 휘장 그늘이 떨어진다.
못 가의 돈대[臺]에는 겨울눈이 쌓이고
처마 밑창에는 돌아오는 새가 날아든다.

돌의 무늬에는 새것 옛것 없는데
봉우리 형상에 어찌 예와 이제 있으랴.
큰 수레는 어찌 그리 아득한가.
달리는 말을 보내어 빠르구나.

어떻게 하면 6념(念)을 닦아
그 정성을 오로지 일음(一音)에 두랴.
자비의 배는 띄워 보지 못하고
헛되이 깊은 바닷물을 떠내려고 수고한다.
감응연(感應緣)

진(晋)의 단도개(單道開)
당(唐)의 두지개(杜智揩)

진(晋)의 단도개(單道開)
진(晋)나라 나부산(羅富山)의 단도개(單道開)는 성이 맹(孟)씨이니 돈황(燉煌)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숨어살면서 40만 언(言)의 경을 외웠다. 곡식을 끊고 잣을 먹다가 잣을 얻기 어려우면 다시 송진을 먹고 뒤에는 세석자(細石子)를 먹되, 한 입에 두어 개씩 며칠에 한 번씩 먹으며 혹은 생강이나 후추를 얼마씩 먹었다. 이리하여 7년 뒤에는 추위와 더위가 겁나지 않아,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 여름에도 홑옷을 입으며 밤이고 낮이고 자지 않았다.
도개와 함께 공부하는 10인도 다 도개와 같이 생활했으나 10년 뒤에는 혹은 죽고 혹은 타락했지만 도개만은 그 뜻을 변하지 않았다. 진릉 태수(進陵太守)가 말을 보내어 도개를 맞이했으나 도개는 말을 사양하고 걸어서 2백 리를 하루에, 그것도 일찍이 왔었다. 산과 나무의 여러 신(神)들이 혹 이상한 형상을 나타내어 시험했으나 도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석호 건무(石虎建武) 12년에 도개는 서평(西平)에서 안도(安度)로 올 때는 하루에 7백 리를 걸었다. 어떤 아이가 사미(沙彌)가 되었다. 나이는 14세로서 도개에게 교법(敎法)을 받고 그 행은 도개를 따라갔다. 어느 때 태사(太史)가 석호에게 아뢰었다.
“선인(仙人)의 별이 나타났으니 반드시 고사(高士)가 국내에 들어올 것입니다.”
석호는 여러 고을에 두루 영을 내려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알리라고 했다. 그 해 11월에 진주(秦州) 자사(刺史)가 글을 올리면서 도개를 보냈다. 도개는 처음에는 업성(鄴城)에 있다가 뒤에 임장(臨障)의 소덕사(昭德寺)로 옮겨, 그 방 안에 중각(重閣)을 짓고 거기서 좌선(坐禪)할 때 석호가 모든 것을 매우 융숭하게 공급했다. 도개는 그것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시했다. 그 때 선도(仙道)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물었으나 도개는 일체 답하지 않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나는 괴로워하는 중생 가엾이 여겨
집을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네.
세상을 이롭게 하려면 밝음을 배워야 하나니
밝음을 배우면 악을 끊을 수 있네.

마을이 멀어 곡식 얻기 어려워
곡식을 끊는 이런 꾀를 세웠으나
이것은 신선 되기 위해서가 아니거니
부디 나를 신선이라 전하지 말라.

불도징(佛圖澄)은 말하였다.
“이 도사는 나라의 흥하고 쇠함을 관찰하기 때문에 만일 그가 떠나면 그 나라에는 장차 큰 재앙이 있다.”
석호 태령(太寧) 원년에 도개는 그 제자들과 함께 남방의 허창(許昌)으로 갔는데, 과연 석호의 아들과 조카가 서로 죽이는 바람에 그 업도(鄴都)가 매우 어지러웠다. 그는 진(晋)나라 승평(升平) 3년에 건업(建鄴)으로 와서 조금 있다가, 뒤에 나부산(羅浮山)에 들어가 혼자 초막에 살면서 세상을 멀리 벗어나 있었다. 나이 1백여 세에 그 산에서 죽을 때, 그 제자들에게 부탁하여 시체를 석실(石室)로 옮기라 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시체를 석실로 옮겼다.
강홍(康泓)이란 사람이 옛날 북간(北澗)에 있을 때 그 제자들에게 도개가 옛날 산중에 있을 때 늘 신선들이 오갔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멀리서 도개를 사모하고 예배하다가, 뒤에는 남해(南海)에서 도개를 만나 보고 곁에서 모시면서 그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도개의 찬(贊)을 지었다.

고요하여라, 착한 그 사람
티끌 세상을 멀리 떠났네.
겉으로는 소승(小乘)과 같았지만
안으로는 빈 몸을 알았네.

이상한 별이 나타나더니
존귀하신 걸음이 여기 오시다.
지초의 싹을 늘 자시며
산으로 물로 유랑하시네.

진(晋)나라 흥녕(興寧) 원년에 진군(陳郡)의 원굉(袁宏)이 남해 태수(南海太守)가 되어 그 아우 영숙(潁叔) 및 사문 지법방(支法防)과 함께 나부산에 올라가 석실 어구에서 도개의 유골(遺骨)과 향불과 질그릇이 아직 그대로 있음을 보았다. 원굉은 말하였다.
“법사(法師)님의 업행(業行)은 사람들보다 뛰어났으니 매미가 허물을 벗었을 뿐이다.”
이에 다음 찬(贊)을 지었다.

뛰어난 인물이라 기이하지만
덕이 있으매 외롭지 않았네.
아득하구나 그윽한 사람이여,
바위를 바라보며 승리하고 들어갔네.

걸림 없이 떠도는 신령한 신선
여기 와서 놀면서 함께 보였네.
남기신 신발이 숲 속에 있나니
영원히 그 한 벌뿐이네.

그 뒤에 사문 승경(僧景)ㆍ도점(道漸) 등이 모두 나부산에 올라가 보려 했으나 끝내 꼭대기까지는 가지 못했다.[『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두지개(杜智揩)
당(唐)나라 조주(曹州)의 이호(離狐) 두지개(杜智揩)는 젊어서부터 불경을 좋아하여 벼슬도 하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았다. 항상 승복(僧服)을 입고 태산(泰山)에 숨어살면서 오직 불경을 읽고 외움으로 일을 삼았다.
정관(點觀) 21년에 산에서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가사로 몸을 덮고 누워 있었다. 아름아름 꿈같은 속에 어떤 노파와 미녀 수십 인이 자주 와서 시끄럽게 했다. 그러나 지개는 전연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차츰 다가와서 모두 말하였다.
“이 사람을 메어다가 북쪽 개울에 던져 버리자.”
그리고는 모두 앞에 와서 일시에 그를 붙들었다. 그 때 가사를 잡은 자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염불하고서 뒤로 물러가 모두 참회하고, 아미타불 조성하기를 청한 뒤에 관세음보살을 30번 불렀다. 조금 있다가 그는 깨어났는데, 온몸에 땀이 흐르고 병은 곧 나았다.[『명보습유록(冥報拾遺錄)』에 나온다.]
039_0763_c_24L述意部第一夫謬之於空談不如證之於事實之於髣像不如決之於耳目故信不如言不如行所以硏機適理寔極聖之洪基息緣儉務是至人之大量樹無方之心寧有不窮之應是以一毫一粒而意濟四生一念一彈而常資六度斯則功超半息發彌來際抱素儉約而亦德逾高範也引證部第二如新婆沙論云諸弟子中大迦葉波少欲喜足具杜多行舊云頭陁薄矩羅少病節儉具淨戒行此二何別者大迦葉波所得飮食若麤若妙次第食無所簡別猶如良馬隨得而尊者薄矩羅所得飮食或麤或簡去妙者而食麤者如契經說四聖種一依隨所得食喜足聖種依隨所得衣喜足聖種三依隨所得臥具喜足聖種四依有無有樂斷樂修聖種又中阿含經云爾時有一異學是尊者薄拘羅未出家時親善朋友往詣薄拘羅所請問其義薄拘羅因爲說我於此正法律中學道以來八十未曾起欲想我持糞埽衣來已八十年亦無起貢高想亦未曾憶受居士衣未曾割截作衣未曾倩他比丘作衣未曾用鍼縫衣未曾持鍼線囊乃至一縷我乞食來已八十年亦無起貢高想亦未曾受居士請亦未曾超越乞食未曾從大家乞食於中當得淨好極妙豐饒食噉含消未曾視女人面未曾入比丘尼房中未曾憶與比丘尼共相問訊乃至道路亦不共語未曾畜沙彌未曾憶爲白衣說法乃至四句偈未曾有病乃至彈指頃頭痛者未曾憶服藥乃至一片訶梨勒我結跏趺坐於八十年未曾倚壁倚樹我於三日夜中得三達證結跏趺坐而般涅槃是謂尊者薄拘羅未曾有法又僧祇律云達膩伽羅漢深自慶而說偈言欲得寂滅樂 當習沙門法止則支身命 如蛇入鼠穴欲得寂滅樂 當習沙門法衣食繫身命 精麤隨衆得欲得寂滅樂 當集沙門法一切知止足 專修涅槃道又舊雜譬喩經云有比丘於空閑樹下坐禪行道樹上有一獼猴見比丘食下住其邊比丘以飯與之獼猴得食輒行取水以給澡洗如是連月後日食竟忽忘不留獼猴以不得食大怒取比丘袈裟上樹裂破比丘忿以杖誤中獼猴卽死餘數獼猴竝來共輿死獼猴到佛寺中比丘僧知必有所以推問其意比丘具說於是佛教自從今日比丘每食皆當割省留餘以施蠢動不得盡之又五分律云佛告比丘乃往去世殑伽河邊有一仙人住於石窟爾時龍王日從水出以身七帀圍繞仙人舒頭在上下向敬視仙人仙人游行弟子守窟龍亦如前日來恭敬弟子怖畏卽大羸瘦我於爾時行菩薩道游行殑伽河邊見如此卽故問意荅如是我復問言汝今欲不復見龍荅言又問汝見龍胭下有何等荅言有摩尼珠吾復語言龍若來汝便合掌向龍作如是語我今須汝胭下摩尼寶珠願以施我爾時人弟子聞我語已龍從水出便從索龍聞乞珠不前不卻默然而住仙人弟子復爲龍王說偈言龍王今須汝 胭下摩尼珠意甚愛樂之 如何默無言龍卽以偈答言我一切所須 皆由此珠得汝今從吾乞 永絕不復來如火急爆聲 使人心恐懼我今聞汝言 惶怖逾於此於是世尊引古說偈乞者人不愛 數則致怨憎龍王聞乞聲 一去不復還又告比丘過去世時有迦夷國王喜布施給諸窮乏有梵志王甚愛重未嘗從王有所求乞爾時彼王爲說偈言人皆從遠來 無妨從吾乞而汝今在此 不求有何意梵志卽以偈荅言乞者人不喜 不與致怨憎所以默無求 恐離親愛情王復說偈答言乞非傷德行 亦無身口過損有以補無 何爲而不索梵志復以偈荅言賢人不言乞 言乞必不賢默然不有求 是謂爲大人王聞說賢人之偈心大歡喜卽以牛王一頭及餘千牛而施與之頌曰六情無憍恣 四攝啓幽心儉約避人物 偃息慕山林曲㵎停騶響 交枝落幔陰池臺聚凍雪 簷牖參歸禽石采無新故 峯形詎古今大車何杳杳 奔馬送駸駸何以修六念 虔誠在一音未汎慈舟寶 徒勞抒海深感應緣略引二驗晉單道開唐杜智揩晉羅浮山有單道開姓孟燉煌人懷棲隱誦經四十餘萬言絕穀餌柏柏實難得復服松脂後服細石子一吞數枚數日一服或時多少噉薑如此七年後不畏寒暑冬袒夏溫晝夜不臥開學十人共契服食十年之外或死或退唯開全志進陵太守遣馬迎開開辭能步行三百里路日早至山樹諸神或現異形試之無懼色以石虎建武十二年從西平一日行七百里至南安度一童子爲沙彌年十四稟受教法行能及開太史奏虎云有仙人星現當有高士入境虎普勅州郡有異人令啓開其年冬十一月秦州剌史上表送開初止鄴城西法綝祠中後徙臨漳昭德寺於房內造重閣坐禪虎資給甚開皆以慧施樂仙者多來諮問開都不荅迺爲說偈云我矜一切苦 出家爲利世利世須學明 學明能斷惡山遠糧粒難 作斯斷食計非是求仙侶 幸勿相傳說佛圖澄曰此道士觀國興衰若去者當有大災至石虎太寧元年開與弟南度許昌虎子姪相殺鄴都大亂至晉升平三年來之建鄴俄而至南後入羅浮山獨處茅茨蕭然物外春秋百餘歲卒于山舍勅弟子以屍置石穴中弟子迺移之石室有康泓昔在北㵎聞開弟子敍開昔在山每有神仙來去迺遙心敬挹及後役南海親與相見側席鑽仰稟聞備至迺爲之傳贊曰蕭哉若人 飄然絕塵 外軌小乘內暢空身 玄象暉曜 高步是臻飡茹芝英 流浪巖津晉興寧元年陳郡袁宏爲南海太守與弟穎叔及沙門支法防共登羅浮山至石室口見開形骸及香火瓦器猶宏曰法師業行殊群正當蟬蛻耳迺爲贊曰物儁招奇 德不孤立 遼遼幽人望巖凱入 飄飄靈仙 茲焉游集遺屣在林 千載一襲後沙門僧景道漸等竝欲登羅浮中守不至頂出梁高僧傳錄唐曹州離狐人杜智揩少好釋典不仕不妻娶被僧衣服隱居泰山以讀誦爲事貞觀二十一年於山中遇患垂死以袈裟覆體昏然如夢見老母及美女數十人屢來相擾智揩端然不動群女漸相逼斥竝云輿將擲置北㵎裏遂摠近前同時執捉有攬著袈裟者遂齊聲念佛卻後懺悔請爲造阿彌陁佛幷誦觀音菩薩三十餘徧少閒遂覺體上大汗便卽瘳愈出冥報拾遺錄法苑珠林卷第四十六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