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세존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다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여 모든 보살행을 닦아야 하며, 성문의 과(果)에 즐겨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자여, 모든 중생들이 윤회하는 가운데 처하여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해탈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크게 정진함을 일으켜서 윤회하는 속에서 갖가지로 교화하고 제도하여 생사를 두려워하게 하여 삼계(三界)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대가 만약 단지 성문의 과만 즐겨한다면, 큰 보리심을 일으켜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고 제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들이 만약 보살들을 만나 정진을 발하여 일으킬 것을 권고 받으면 곧장 생사로부터 해탈을 얻고,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040_0015_c_02L사리자여, 과거 세상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구족공덕(具足功德)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이 부처님의 모임 중에 백 구지(俱胝)의 성문의 무리들과 8천 명의 보살의 무리가 있었는데, 그 부처님의 수명이 10만 세였다. 두 성문이 가장 상수(上首)였는데, 한 사람은 이름이 출현(出現)으로서 지혜제일(智慧第一)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신질(迅疾)로서 신통제일(神通第一)이었다. 이때 구제공덕(具諸功德)여래께서 공양 때가 되어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앞뒤로 대중들에 둘러싸여 어느 왕성으로 들어갔는데, 그 성은 묘음(妙音)이라 이름하였다. 거기서 차례로 걸식하였다.
부처님께서 성을 들어갈 때 지혜(智慧) 성문이 부처님의 오른쪽에 서고 신통(神通) 성문이 부처님의 왼쪽에 섰으며, 나머지 성문의 무리들은 모두 부처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보살의 무리들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다. 또 대범천왕(大梵天王)과 제석천주(帝釋天主)와 호세사왕(護世四王)과 여러 하늘의 무리들이 세존을 에워싸고 저 왕성(王城)으로 들어갔다.
이때 성안에 세 명의 동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길거리를 갖가지로 꾸며놓고 함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세 동자가 멀리 세존을 바라보니, 그 상호(相好)가 단정하고 엄연하며 위의와 덕망이 한량없었다. 내뿜는 찬란한 광명이 마치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과 같았으며, 의용(儀容)이 높고 중후하기가 마치 큰 용왕과 같았다. 동자들은 이와 같은 모습을 보자 기뻐서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첫 번째 동자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저 부처님 세존이 보이느냐? 저 분은 모든 중생들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위여서 그 복취(福聚)가 다함이 없으며, 천상과 인간이 모두 다 같이 존경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마땅히 이 분을 함께 공양하여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큰 과보를 얻을 것이다.’
040_0016_a_02L
이때 나머지 두 동자는 이 동자가 공양을 드리는 것을 보고 역시 각각 몸에 차고 있던 영락을 풀어서 앞의 동자를 향하여 이렇게 가타로 말하였다.
040_0016_a_02L是時,餘二童子見此童子獻供養已,亦各脫身所著瓔珞,向一童子說伽陀曰:
일체 최승정각존(最勝正覺尊)께 내가 지금 영락을 바쳐 공양하리라. 이처럼 성심을 일으켜 공양 드리고 맹세코 부처님의 바른 법을 구하리라.
040_0016_a_05L我以瓔珞伸供養, 一切最勝正覺尊,
發此誠心供養已, 誓願求於佛正法。
이때 앞의 동자는 이 두 동자가 또한 영락을 풀어 바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너희들이 지은 복덕의 이익이 한량없는데, 불법에 있어서 그 어떤 과보를 구할 것인가?’ 두 번째 동자가 말하였다. ‘나는 원컨대 미래에 세존의 오른쪽 제자가 되어 지혜 제일의 자리를 얻고 싶다.’ 세 번째 동자가 말하였다. ‘나는 원컨대 미래에 부처님의 왼쪽 제자가 되어 신통 제일의 자리를 얻고 싶다.’ 이들 두 동자가 이처럼 각기 자신의 소원을 말한 다음, 다시 첫 번째 동자에게 물었다. ‘너는 잘 열어서 이끌어 주어 우리의 좋은 벗이 되었지만, 너는 공양을 바치고 무엇을 구하느냐?’ 대답하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얻어서 일체지를 갖추고 광명을 내어 비추어서 이를 보는 모든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서 보리심을 발하게 하며, 마치 사자왕(師子王)이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지금의 부처님과 똑같이 아무런 차이가 없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저 세 동자가 이와 같이 각각 서원(誓願)을 발하자, 허공에서 8천 명의 천자들이 함께 외치기를, ‘참으로 훌륭하구나. 너희들이 이와 같이 좋은 말을 하였으니, 희망하는 승과(勝果)가 분명[決定]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세 동자들은 각기 영락을 들고 부처님 앞으로 갔다.”
040_0016_b_02L이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구제공덕여래께서는 이들 세 동자가 영락들을 들고 부처님 앞으로 오는 것을 보고는 해혜(海慧)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필추여, 그대는 이들 세 동자들을 보았느냐?’ 해혜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필추여, 첫 번째 동자는 그 마음으로 희구하는 것이 다른 두 동자와는 서로 다르며, 그 걸음걸이[擧足下足]가 마치 전륜성왕처럼 자재하고 특별히 존귀하여[特尊] 설사 백천의 범왕(梵王)이나 제석(帝釋)이라 해도 미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께 와서 그 도심(道心)을 열어 발하는 것은 위없는 보리를 취증(趣證)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 세 동자가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각기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존께 영락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이 영락을 받자, 성문의 마음을 일으킨 자가 바친 영락은 부처님 앞에 머물고, 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자가 바친 영락은 부처님께서 계신 허공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이것이 네 기둥의 보대(寶臺)로 모양을 바꿔 사면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 위에는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계셨는데, 온갖 상호(相好)를 나타내어 갖가지로 장엄해서 그 뛰어남이 한량없었다.
040_0016_c_02L이때 구제공덕여래께서 곧 삼매에 들어가서 모든 부처님 여래의 변화의 모습을 두루 관찰하니, 그 입[面門]으로부터 갖가지 색깔의 빛이 나왔는데, 이른바 파랑[靑]ㆍ노랑[黃]ㆍ빨강[赤]ㆍ하양[白]ㆍ분홍[紅]ㆍ자주[紫]ㆍ감벽[碧]ㆍ초록[綠]의 광명들이 끝없는 세계를 두루 비추었으며, 위로 범천에 이르러 해와 달을 가리어서 그 광명이 전혀 나오지 못하였다. 광명이 비추고 난 뒤, 그 빛이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감아 돈 다음 다시 세존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이때 해혜 필추가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이 광명을 놓으십니까? 오직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부디 저에게 이를 알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두 동자가 바친 영락이 부처님 앞에 머문 것을 보았느냐?’ 필추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필추여, 이들 두 동자는 성문의 과를 구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즐겨 자신만을 이익되게 하는 열반을 구하고자 하였으며, 큰 보리의 마음은 발하여 일으키지 못했다. 필추여, 그대는 앞의 첫 번째 동자가 바친 영락이 부처님이 계신 위의 허공에 머물러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보았느냐? 이 사람은 위없는 보리를 취증(趣證)하여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저 두 동자는 단지 지혜나 신통만을 즐겨하고,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이롭고 즐겁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친 공양 또한 뛰어난 모습이 없었다. 그러나 큰 보리의 마음을 발한 자는 그가 짓는 복덕의 일들이 또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대는 마땅히 지금 성문의 마음을 버리고 당연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대승(大乘)의 마음을 발한 동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바로 나 자신이며, 지혜를 좋아한 자는 바로 그대이고, 신통을 좋아한 자는 바로 목건련(目乾連)이다. 그러니 너희 성문들은 비록 윤회를 면하고 오직 열반에 나아가기를 좋아하지만 끝내 널리 중생들을 이롭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처님들과 같아서 저 허공처럼 무궁무진하다면 그 복취(福聚)가 한량없고 공덕이 한량없어서 성문과 연각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사리자여, 그러니 그대들은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도록 하라.”
040_0017_a_02L이때 사리자(舍利子)ㆍ대목건련(大目犍連)ㆍ대가섭(大迦葉)ㆍ아니로태(阿泥盧駄)ㆍ우파리(優波離)ㆍ부루나(富樓那)ㆍ수보리(須菩提) 등 모든 대성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잘 열어 이끌어서 큰 보리의 마음을 발하게 하여 주시니 말입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ㆍ선여인이 많은 선근을 심어서 해탈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광대심(廣大心)과 광대행(廣大行)의 원을 발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자는 마땅히 백천의 부처님들을 얻어 보고 그 바른 법을 들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옛날부터 지혜가 좁고 하열하여 감히 부처님의 가없는 지혜를 희구(希求)하지 못하였기에, 이제 깊이 스스로 책망하면서 대심(大心)을 발하겠습니다. 이는 비유컨대 마치 어떤 자가 온갖 선하지 못한 업을 지은 것과 같나니, 만일 잘못을 뉘우치고 악을 고쳐서 선을 따르지 않는다면 온갖 고뇌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희 성문들이 다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하열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며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면 결코 무여열반(無餘涅槃)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마치 운명(殞命)에 임박한 자가 심식(心識)이 혼란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해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할 수 없는 것처럼, 저희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열반만을 구하고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는 이들을 교화하여 제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음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이때 마가타국(摩伽陀國) 왕이 어가(御駕)를 갖추어서 부처님 처소에 찾아왔다. 그는 부처님의 모임에 도착하여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다음 한쪽 자리에 가 앉았다. 왕은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한 채,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경하게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이 무엇에 인연하여 업을 지으며, 업을 짓는 인연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입니까?”
040_0017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모든 중생들은 수명(壽者)이거나 내지 보특가라(補特伽羅)이거나 간에 모두 아신견(我身見)에 의지하여 머물러서 전도(顚倒)하여 분별하며, 분별하기 때문에 미혹[惑]을 일으켜서 업을 짓고, 업을 짓기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시(無始)이래로 여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평등하지 못한 마음이라 합니다.”
040_0017_b_08L佛言:“無始時來不如實知,名爲不平等心。”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고 이름합니까?”
040_0017_b_09L又問:“云何名爲不如實知?”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들이 무시이래로 헤아려 있다고 함[計有]이 없는 것이 여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040_0017_b_10L佛言:“一切衆生無始時來於無計有,是爲不如實知。”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헤아려 있다고 함이 없다고 합니까?”
又問:“云何於無計有?”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분별의 법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실도 아닌데 헤아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040_0017_b_12L佛言:“分別之法不生、不實,計而爲有。”
또 여쭈었다. “만일 법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 어떻게 말씀을 하십니까?”
040_0017_b_13L又問:“若法不生,今何所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아신(我身)이 오히려 공(空)이어서 설할 법이 없습니다.”
040_0017_b_14L佛言:“大王!我身尚空,法無所說。”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몸이 만약 공이라면 어떻게 지으며 어떻게 머물러 있습니까?”
040_0017_b_15L又問:“世尊!身若空者,何作?何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비록 짓는 것이 있어도 집착하는 바가 없습니다.”
佛言:“大王!雖有所作,亦無所著。”
또 여쭈었다. “여기에 즉(卽)하여 집착함이 없다면 마땅히 어떻게 설하십니까?”
040_0017_b_16L又問:“卽此無著,當云何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집착함이 없는 법이란 여실하게 말하면 이것은 성인(聖人)이 한 말입니다.”
040_0017_b_17L佛言:“無著法者,如實而說,是聖所說。”
또 여쭈었다. “무엇을 여실(如實)한 말이라 이름하며, 무엇을 성인이 한 말이라고 이름합니까?”
040_0017_b_18L又問:“云何名爲如實之說?復何名爲聖所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모든 법은 번뇌[塵]를 여의며 견해[見]를 여의므로 이것이 진실한 말이며 여실한 말이라 이름합니다. 여실한 말은 바로 성인이 한 말인데, 성인이 한 말이란 모든 법이 본래 생기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깨달아 아는 것이며,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며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040_0017_c_02L이때 마가타국 왕은 이처럼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마음에 기뻐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처럼 법을 잘 설하심은 실로 전에 없던 일입니다. 부처님 세존 같으신 분께서 무루(無漏)의 지혜로 널리 모든 중생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하시지만 모든 중생들은 죄업(罪業)에 얽혀서 이를 듣고 받아들여 수행하지 못하며 저 또한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생각하건대 저는 예전부터 좋은 벗을 만나지 못하였으며, 선하지 못한 마음으로 널리 온갖 선하지 못한 업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세존을 가까이하여 바른 법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깊은 대궐에서 마냥 놀고 장난치며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밤낮으로 잠시도 이를 싫어하여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처님께 와서 바른 법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꾸짖으며 전에 지은 죄악들을 깊이 스스로 추상(追想)하느라 밤낮으로 편안할 시간이 없으며, 마치 죄를 지은 자처럼 언제나 두렵고 떨립니다. 세존께서는 크게 자비하신 중생들의 아버지로서 의지가 없는 자에게는 의지가 되어 주시고, 눈이 없는 자에게는 인도하여 이끌어 주시며, 모든 고뇌하는 자에게는 안락하게 해 주시고, 모든 길 잃은 자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 모든 가난한 자에게 진귀한 보물을 베풀어 주시니, 그 마음이 평등하여 나태함[懶怠]이 없으며, 널리 이롭고 즐겁게 하여 원망과 친절이란 생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 구제해서 도탈하여 주소서. 제가 생각하건대 이미 먼저 지은 죄가 실로 두렵고 무서워서 마치 벼랑에 매달린 자가 오직 구원만 바라는 심정입니다. 저는 악도(惡道)에 떨어질까 두렵사오니 부디 부처님께서 구제하시어 그 죄의 때[罪垢]를 없애고 바른 법을 깨닫도록 해 주소서.”
040_0018_a_02L이때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 부처님의 생각을 알아차리고는 즉시 마가타국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묘길상보살은 변재가 한량없고 지혜가 한량없어서 법의 요체를 잘 설하므로 반드시 왕을 위하여 바른 법을 베풀어 설해서 왕으로 하여금 이를 이해하여 크게 안락함을 얻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그 분을 왕궁에 초청하여 음식을 공양한다면 그 이익이 한량없을 것이며, 왕사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예를 올리고 찬탄하며, 보고 들어 즐기도록 한다면 모든 선근을 심어 뛰어난 복을 얻을 것입니다.”
묘길상보살이 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왕의 청을 받아들여 왕의 소원대로 하겠습니다. 왕께서는 뛰어난 마음을 발하여 내가 이미 공양을 받았으니, 즐겨 법을 듣겠다면 내가 베풀어 설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법에 대하여 집착함이 없도록 왕을 위해 설법하겠으며, 모든 법에 대하여 의혹이 없도록 왕을 위해 설법하겠으며, 모든 법에 대하여 3세(世)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도록 왕을 위해 설법하겠으며, 모든 법에 있어서 성문과 연각의 열반으로 적멸의 모양[寂滅相]을 삼지 않도록 왕을 위해 설법하겠습니다.”
왕이 묘길상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시고 희유하십니다. 부디 보살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여러 대중들과 함께 같이 공양을 받으소서.”
040_0018_a_18L王白妙吉祥菩薩言:“善哉,希有。惟願菩薩哀愍我故,與諸大衆同受供養。”
040_0018_b_02L묘길상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은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대왕께서 대중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공양하는 것은 이를 불쌍히 여겨서 공양하는 것이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복덕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공양이란 법에 대하여 희유심(希有心)을 일으키는 것으로 짓는 것이 없고, 나란 것이 없으며, 중생이란 것도 없고, 수명이란 것도 없으며, 보특가라(補特伽羅) 등의 생각도 없습니다. 자상(自相)에 집착하지 않고 타상(他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공양입니다. 마땅히 모든 법이 취함[取]이 없고 온(蘊)ㆍ처(處)ㆍ계(界)가 없으며,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삼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삼계를 떠나는 것도 아님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으며,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며, 유루(有漏)도 아니고 무루(無漏)도 아니며,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며,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번뇌를 여의는 것도 아니며, 윤회도 아니고 적멸도 아니므로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바로 공양입니다.”
왕이 다시 묘길상보살에게 여쭈었다. “보살이시여,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가 즐겁고 이익이 되도록 공양을 받아주소서.”
040_0018_b_08L王復白妙吉祥菩薩言:“菩薩哀愍、利樂我故,願受供養。”
묘길상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익과 복락(福樂)은 구할 일이 아니며 불쌍히 여길 것도 없습니다. 이 마음이란 집착함이 없으며, 움직이는 것도 없고 구르는 것도 없으며, 찬탄도 없고 비난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이익과 복락을 구함도 없고 불쌍히 여기는 바도 없습니다. 따라서 법과 법이 평등하여 얻는 것이 없는 것을 ‘공양을 받는다’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이익이며 복락인 것입니다.”
왕이 묘길상보살에게 여쭈었다. “법은 본래 모양이 없으며 움직여 짓는 것이 없는 것이며, 제가 드리는 공양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040_0018_b_14L王白妙吉祥言:“法本無相而無動作,我獻供養亦應如是。”
묘길상이 말하였다. “공성(空性)은 모양이 없으며 또한 움직여 짓는 것이 없어서 법을 구하는 자는 생각이 없고 원(願)이 없으며 행하는 것이 없고 짓는 것이 없지만, 또한 짓는 것이 없음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왕이시여, 모든 법은 자성(自性)이 본래 움직임이 없고 짓는 것도 없으니, 중생은 그 자성이 본래 공하여 3업(業)이 움직임이 없고 짓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는 모든 행이 다 짓는 것이 없음을 보아서 모든 법은 그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040_0018_c_02L묘길상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마치 과거의 법은 이미 멸하였고, 미래의 법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의 법은 생기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행이나 유위(有爲)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3세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법은 늘어남이 없으며 줄어듦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모든 행에 대하여 이와 같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묘길상이 말하였다. “이 둘은 평등한 것이며 또한 늘어나고 줄어듦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햇빛이 나올 때 어둠과 합쳐집니까?”
040_0018_c_05L妙吉祥言:“此二平等,亦無增、減。大王!日光出時與暝合乎?”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햇빛이 나올 때 모든 어둠은 사라집니다.”
040_0018_c_06L王言:“不也。日光出時,衆暝皆遣。”
묘길상이 말하였다. “햇빛이 나올 때 저 모든 어둠은 어디로 가버립니까?”
040_0018_c_07L妙吉祥言:“日光出時,而彼衆暝當歸何處?”
왕이 말하였다. “저 어둠 또한 아무 데도 가는 곳이 없습니다.”
040_0018_c_08L王言:“而彼闇暝亦無所往。”
묘길상이 말하였다. “번뇌와 거룩한 도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대(待對)하지 않으며, 또한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으며, 머무는 것도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번뇌는 평등하며 거룩한 도도 또한 평등합니다. 이 두 가지가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다 평등한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번뇌는 그 성질이 공하여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며, 이 번뇌로써 거룩한 도를 얻고 거룩한 도를 얻으므로 다시는 번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으며 차별도 없습니다.”
묘길상이 말하였다. “마음을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번뇌 또한 생기는 것이 없으며, 번뇌가 생기지 않으면 거룩한 도도 또한 생기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뇌를 이와 같이 보아야 하며, 거룩한 도도 또한 이와 같이 보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보고 나면 마음에 얻어지는 바가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거룩한 도가 계(戒)ㆍ정(定)ㆍ혜(慧)를 얻어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까?”
040_0018_c_23L王言:“聖道得非戒、定、慧之所住耶?”
040_0019_a_02L묘길상이 말하였다. “모든 법은 행함이 없고 모양이 없어서 모든 희론(戱論)을 여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ㆍ정ㆍ혜로 말하면 이것은 곧 희론으로서 행함이 있고 모양이 있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머문다고 함은 머무는 것도 아니고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한 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보리행(菩提行)을 닦는 자는 거룩한 도를 얻습니까?”
040_0019_a_03L王言:“所有善男子、善女人修菩提行者得聖道乎?”
보살이 말하였다. “보리를 닦는 자는 적은 법도 얻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보리의 도[菩提道]는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며, 아(我)도 아니고 무아(無我)도 아니며,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며, 깨끗함도 아니고 더러움도 아니며, 싫어할 만한 윤회도 없으며, 증득할 만한 열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모두 얻을 수가 없으며, 거룩한 도의 법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왕이 다시 묘길상보살에게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대사(大士)시여, 희유하십니다. 법의 요체를 잘 설하시니 제가 모두 믿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진정한 마음으로 공경하여 공양을 마련해서 음식으로써 대중들에게 공양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보살께서는 지금 저의 소청(所請)을 받아 주소서.”
이때 세존께서 묘길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왕의 소청(所請)을 받아들여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큰 이익을 짓도록 하라.”
040_0019_a_14L爾時,世尊告妙吉祥菩薩言:“今正是時,受王所請,當爲多人作大利益。”
그러자 묘길상보살이 부처님께 나와서 말씀드렸다. “제가 지금 부처님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왕의 청을 받아들였으니, 대중들과 더불어 함께 공양을 받겠습니다.”
040_0019_a_16L妙吉祥菩薩前白佛言:“我今承佛聖旨,已受王請,當與大衆同受供養。”
이때 마가타국 왕은 묘길상보살이 자신의 청을 받아들인 것을 알고는 마음이 기뻐서 매우 편안함을 얻었다. 그래서 세존과 묘길상보살과 모든 대중들에게 예를 올려 공경하였다. 그런 후에 존자 사리자한테로 가서 물었다. “묘길상보살이 장차 저의 공양을 받으러 오실텐데 함께 오실 보살들의 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040_0019_b_02L이때 마가타국 왕은 먼저 궁중으로 돌아와서 넓은 궁전을 찬란하게 장식하고 모든 급사(給使)들에게 마음을 정결하게 가지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장만하고 당번(幢幡)과 진기하고 오묘한 보개(寶蓋)들을 벌려 놓았으며, 온갖 아름다운 꽃들을 뿌리고 갖가지 향을 태웠으며, 진주와 영락으로 그 화려함을 다하여 5백 개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또 왕성 안의 모든 길들을 깨끗이 손질하고 꽃을 뿌리며 향을 태워서 먼지나 오물이 없이 맑고 엄숙하게 하였다. 이때 성안의 사람들은 묘길상보살이 왕궁을 방문하여 왕의 공양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다들 기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다리면서 각자 향과 꽃을 들고 깊 옆에 서서 기다렸다.
이때 묘길상보살은 초저녁이 되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내일 아침에 왕의 초청에 나가야 하는데 나와 함께 갈 보살들이 적다. 그러니 지금 불국토[佛刹]들을 찾아가서 여러 대보살들에게 왕궁에서 준비하는 장엄한 승회(勝會)에 함께 가자고 청해야겠다. 그러면 내가 왕을 위하여 법을 설할 때 저 보살들이 능히 이를 증명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곳에서 몸을 숨기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동쪽으로 8만의 불국토들을 경과하여 어떤 세계에 이르니, 상성(常聲)이라 이름하였으며, 부처님은 길상성(吉祥聲)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이라고 이름했다. 이 부처님께서 지금 법을 설하고 계셨는데 모든 보살들을 위해 대승법(大乘法)을 설하고 있었으며, 이들 보살들이 모두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있었다. 이 불국토에 칠보수(七寶樹)란 나무가 있었는데 갖가지로 꽃을 피워 열매를 맺었으며, 나무의 잎에서는 언제나 미묘한 소리가 났으니 이른바 부처님을 찬탄하는 소리였다. 이처럼 언제나 삼보(三寶)의 소리를 내었는데 이를 상성세계(常聲世界)라 이름하였다.
040_0019_c_02L묘길상보살이 이곳에 도착하여 길상성여래 앞에 나아가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사바세계에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저는 지금 마가타국 왕의 초청을 받아서 그 궁중에서 음식을 공양 받게 되어 있는데, 보살들의 수가 적어서 지금 이렇게 와서 여러 대보살들과 상사(上士)들을 청하니 내일 새벽에 저와 함께 궁중에 들어가서 그 공양을 받은 뒤,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복덕을 받게 해 주십시오. 부디 세존께서는 보살들에게 지시하여 저의 청을 들어주도록 하소서.”
이때 길상성여래가 즉시 8만 명의 대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지금 묘길상보살이 와서 그대들이 저 사바세계로 가서 마가타국 왕의 궁중에서의 음식 공양에 함께 갈 것을 청하여 왔다. 그러니 그대들은 지금 같이 가서 함께 불사(佛事)에 참여하도록 하라.” 이때 보살들은 즉시 세존의 지시에 따라서 받들어 행하였다.
040_0020_a_02L 이때 묘길상보살은 여러 보살들과 함께 앉아서 즉시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제가 법문을 가지고 있는데 대총지(大總持)라고 이름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 대사(大士)들을 위해서 이를 분별하여 풀어 설하겠습니다. 무엇을 일러 총지법문(總持法門)이라 이름하는가 하면, 이른바 이 총지법문을 취증(趣證)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바른 생각[正念]에 머물러서 마음의 산란함이 없이 모든 어리석음과 분노를 여의고 모든 법에 대해 지혜로 통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래의 도[如來道]를 행하여 변재문(辯才門)을 얻어서 무상(無相)에 머물러 일체법총지지문(一切法總持智門)에 들며, 거룩한 도를 상속(相續)해서 능히 삼보를 맡아 지니고, 무엇을 논하거나 어떤 막힘이나 걸림도 없어서 모든 중생들의 언어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논난(論難)이 있어 이를 분별을 하여야 할 경우, 대중들에 대하여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人非人), 나아가 제석(帝釋)ㆍ범왕(梵王)과 아래로 방생(傍生)과 이류(異類)의 족속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말의 소리들이 차이가 있어 다르지만 능히 이들 갖가지 말의 소리들을 따라서 법을 설할 수 있으며, 중생들의 근성(根性)의 이둔(利鈍)을 잘 알아서 그 종류에 따라 이해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감관[根]이 청정하여 모든 사견(邪見)을 여의며, 총지법문에 평등하게 안주합니다. 세간의 여덟 가지 거역하고 순종하는 법[八種違順之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출세간의 선법(善法)에 원만하고 모든 중생들을 위해 그들의 행업(行業)과 인연과 과보에 대해 설해서 그들로 하여금 크게 안락함을 얻게 하고, 모든 곳에 지혜로 통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벗고 마음에 근심과 걱정 없이 법의 자성(自性)을 알도록 하며, 근기(根機)에 따라 병통에 대응하는 법을 풀어 설하여 정진을 일으켜서 모든 선리(善利)함을 얻도록 합니다.
보살들은 마음에 기쁨이 생겨서 과보를 바라지 않으며, 모든 선근을 다만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하므로 일체지를 구합니다. 널리 모든 중생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 위해 6도행(度行:6바라밀행)을 모두 성취하며, 시행(施行:보시행)을 원만히 하여 일체지에 회향하며, 계행(戒行:지계행)을 원만히 하여 중생에게 안락함을 회향하며, 인행(忍行:인욕행)을 원만히 하여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얻어서 구족하게 장엄하며, 정진(精進)을 원만히 하여 모든 선근을 성숙시키며, 선정(禪定)을 원만히 하여 상응법(相應法)을 얻어서 자재하여 걸림이 없으며, 지혜를 원만히 하여 모든 법에 통달해서 자재하여 모든 과실을 여읩니다.
모든 선남자들이여, 이와 같이 총지법문은 이 법문을 얻고 나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림이 없으며, 일체지(一切智)를 모두 맡아 지닐[任持] 수 있기 때문입니다.
040_0020_a_22L諸善男子!如是摠持法門—得此法門已,無所忘失,摠能任持一切智故。
040_0020_b_02L또 선남자여, 총지법문은 다시 능히 모든 법을 받아 지니어 이른바 모든 법은 공(空)하고 형상이 없고[無相] 원이 없으며[無願] 움직임이 없고 지음이 없음을 요해하는 것이며, 분별을 여의어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단(斷)도 아니고 상(常)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허물어지는 것도 아니며,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자성(自性)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성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며, 희론(戱論)을 여의어서 나[我]도 아니고 남[人]도 아니고 중생(衆生)도 아니고 수명[壽]도 아니고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아니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니며, 깨닫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닌 것을 일체법을 받아 지닌다고 이름합니다.
또 선남자여, 총지법문은 모든 법의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마치 꿈에 본 듯하고, 물거품ㆍ아지랑이ㆍ허공 등과 같고, 또 모든 법이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적멸(寂滅)인 것으로 그 자성은 짓는 것이 없으며, 즐거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얻는 것도 없고 증득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지닙니다. 또 총지법문은 비유하면 마치 대지(大地)가 세간을 지니는 것과 같아서 크고 작음의 구별이 없이 모든 것을 지니면서도 여전히 게으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040_0020_c_02L보살마하살이 총지법문을 얻는 것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을 위하여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선근을 끌어안아 흩어져서 잃어버리지 않게 하며, 비록 아승기겁을 지나더라도 잠시도 게으름으로 퇴전(退轉)함이 없습니다. 또 마치 대지가 만물을 길러내는 것과 같아서 총지(總持)를 얻은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여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치 대지가 초목을 낳고 중생을 자양(滋養)하는 것과 같아서 총지를 얻은 보살은 모든 선법(善法)을 생출(生出)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합니다. 또 마치 대지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면서 모든 만물을 높고 낮음의 구별 없이 맡아 지니는 것처럼, 총지를 얻은 보살의 마음 또한 이와 같아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이 중생들을 맡아 지니어 원(怨)과 친(親)의 차별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또 마치 대지가 단비에 젖으면서도 이를 싫어하거나 만족하게 여김이 없듯이 총지를 얻은 보살은 불보살의 법을 사랑하고 기뻐하여 들어서 받아들이며 일찍이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습니다. 또 마치 대지가 모든 종자를 지니어 때에 따라 이를 생장시키되 결코 쉬는 일이 없는 것처럼, 그 총지를 얻은 보살은 모든 선법의 종자를 지니어서 때에 따라 이를 생장시키되 또한 휴식이 없습니다. 또 마치 세간의 용맹한 무사가 그 위력이 강성하여 다른 군사를 항복시키는 것처럼, 총지를 얻은 보살은 큰 정진을 갖추어서 신통(神通)과 위덕(威德)으로 능히 마군(魔軍)을 항복시킵니다.
또 선남자는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법은 그 자성(自性)이 잊어버림도 없고 기억하여 생각함[記念]도 없으며, 상(常)이고 무상(無常)이며, 괴로움이고 즐거움이며, 깨끗함이고 깨끗하지 못함이며, 아(我)이고 무아(無我)이며, 유정(有情)이고 유정이 아니며[非有情], 수명(壽命)이고 수명이 아니며, 보특가라(補特伽羅)이고 보특가라가 아닌 것들입니다. 총지법문도 이와 같아서 역시 기억하여 생각하는 것이 없으며, 모든 법이 둘이라는 상(相)을 여의기 때문에 역시 잊어버리는 것도 없습니다.
또 선남자여, 총지법문은 마치 허공이 대지를 맡아 가지고 있되 가지고 있다는 어떤 생각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을 총지하지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또 마치 태양의 광명이 모든 형상을 비추듯이 총지도 능히 모든 법을 비추어 봅니다. 또 마치 중생들이 모든 번뇌의 종자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끝내 이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총지법문도 또한 모든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역시 이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또 마치 모든 불보살의 기심륜(記心輪)이 능히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굴리면서도 그 능전상(能轉相)이 없는 것처럼, 총지법문 또한 모든 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능지상(能持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