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왕이시여, 희유한 법은 깊고 깊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모든 법은 적멸(寂滅)의 모습입니다. 취함도 아니고 버림도 아니며, 모임도 아니고 흩어짐도 아니며, 인연을 따라 생겨서 주재(主宰)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아니고 타인도 아닙니다. 모든 법이 자성(自性)이 없는 것은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얻는 것이 없으며,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이 적정(寂靜)입니다. 적정의 모습이 바로 진실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마땅히 바른 신심(信心)을 일으켜서 이와 같이 닦아 배우고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모든 모양을 여의어서 배우는 바가 있는 것[有所學]도 아니고 배우는 바가 없는 것[無所學]도 아니어서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깨달아 아는 것이 곧 바른 해탈입니다. 해탈의 모습[解脫相]이 바로 모든 법이며, 모든 법의 본성이 공한 것이 곧 진실의 뜻입니다. 어떤 집착도 없고 어떤 제한이나 걸림도 없는 것을 최상의 희유한 법[最上希有之法]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대왕이시여, 안근(眼根)이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안근은 그 자성(自性)이 본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ㆍ의근(意根) 또한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어서 저들의 자성도 본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색(色)이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또한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온(蘊)의 자성이 본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 다 이와 같아서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니, 그 자성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040_0026_c_02L대왕께서는 마음이란 형상(形相)이 없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이란 머무는 곳이 없어서 안이니 밖이니 중간이니 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자성이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어서 늘어남과 줄어듦도 없고 변하여 달라짐[動轉]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이시여, 마땅히 진실대로 보아서 의혹을 일으키지 말고 진실의 법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 마음이 진실이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역시 이와 같습니다.
묘길상보살이 이와 같이 법을 설하자, 마가타 왕은 법의 본성이 공(空)함을 깨닫고 크게 기뻐서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희유심(希有心)을 발하여 합장한 채 공경하게 묘길상보살에게 여쭈었다. “보살께서는 크게 자비하시며 그 방편이 훌륭해서 설하신 법이 참으로 희유하고, 미묘하고 심원(深遠)하여 전에 듣지 못하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에야 비로소 모든 의혹을 끊고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묘길상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그런 말씀을 마십시오. 의혹을 없앴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모든 모양[相]을 끊어 없애지 못한 것이니, 마음에 어떤 모양이 남아 있는 것이 바로 큰 의혹입니다. 대왕께서는 모든 법은 적멸이어서 설함도 없고 보임도 없고,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음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어찌 제거할 만한 의혹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보살이시여, 만약 그렇다면 탐(貪)ㆍ진(瞋)ㆍ치(癡) 등 모든 번뇌는 마음에 어떤 걸림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040_0026_c_23L王言:“菩薩!若如是者,貪、瞋、癡等一切煩惱應不礙心耶?”
040_0027_a_02L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제가 앞에서 허공은 본래 청정해서 물들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치가 이와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마음이란 본래 청정하고 번뇌는 본성이 공이어서 둘 모두 얻을 것이 없는데, 거기에 무슨 걸림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당연히 어떤 죄구상(罪垢相)도 마음에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과거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법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3세(世)를 통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머무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들어가는 것도 없고 돌아가는 것도 없어서, 모든 망상(妄想)을 여의어 지견(知見)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지견을 여의는 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때 대왕이 묘길상보살에게 여쭈었다. “보살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지금 마음의 자성(自性)을 깨달아 알았으며, 모든 법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어떤 장애에 물들거나 또한 얻을 만한 어떤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보살께 허물어지지 않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040_0027_b_02L그런데 이때 보살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숨어버려서 보이지 않았으며,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습[所見相]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자기 몸도 보이지 않고 남의 몸도 보이지 않는 것이며, 베푸는 사람[能施]도 없고 베풂을 받는 사람[所施]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든 법도 역시 이와 같아서 어떤 것을 본다고 하는 모양이 없으며 취착(取着)의 마음을 여읩니다. 대왕이시여, 그 모직천을 보시할 것이라면 몸을 보이는 자에게 보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지당(智幢)이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다. 그래서 왕은 즉시 그 모직천을 이 보살에게 받들어 보시하였다.
040_0027_b_03L時有菩薩名曰智幢,其王卽時復持其㲲而以奉施。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을 가진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이생(異生)과 이생법에 집착하지 않고, 유학(有學)과 유학법에 머물지 않으며, 무학(無學)과 무학법을 증득하지 않고, 연각과 연각법을 지향하지 않으며, 또한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해탈과 열반을 구하여 과보를 증득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법에 대하여 어떤 집착의 모습도 없으며, 베푸는 사람과 베풂을 받는 사람 둘이 모두 청정하여 이익도 없고 얻음도 없는 보시라면 가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또 선적해탈(善寂解脫)이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다. 그래서 왕은 즉시 이 모직천을 받들어 그에게 보시하였다.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040_0027_b_14L是時復有菩薩名善寂解脫,其王卽時持㲲奉施。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을 일으키지 않으며, 번뇌에 즉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정심(定心)에 머물지도 않고 산란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아 모든 취하고 버림을 여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보시는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최승작의(最勝作意)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왕은 즉시 그 모직천을 이 보살에게 받들어 보시하였다.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040_0027_b_22L復有菩薩名最勝作意,其王卽時持㲲奉施。
040_0027_c_02L“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모든 모양을 일으키지 않아서 신업(身業)을 행하지 않고 어업(語業)을 일으키지 않고 의업(意業)을 일으키지 않으며,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법이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의지할 바 없는 허공과 같이 맑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은 보시는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상의(上意)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왕은 즉시 그 모직천을 그 보살에게 받들어 보시하였다.
040_0027_c_07L復有菩薩名曰上意,其王卽時持㲲奉施。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취상(取相)과 희구(希求)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고 하면 이것이 곧 취상이며 바로 희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상심(有相心)을 여의는 것이 곧 보살마하살의 마음이며 이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이니, 보리심이 또한 평등하며 이 보리심이 곧 모든 여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법은 평등하여 둘인 것이 없고 차별이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어서 취함과 버림을 여의기 때문에 아상(我相)이 생기지 않고, 아상이 단멸되면 희구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보시라면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삼매개화(三昧開華)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왕은 즉시 이 모직천을 받들어 보시하였다.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040_0027_c_20L復有菩薩名三昧開華,其王卽時持㲲奉施。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모든 삼마지문(三摩地門)을 통해서 증득하여 모양이 없고 분별함이 없으며, 모든 법의 자성이 어떤 움직임도 없어서 곧 삼마지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보시라면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성취의(成就意)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왕은 즉시 이 모직천을 받들어 그에게 보시하였다.
040_0028_a_05L復有菩薩名成就意,其王卽時持㲲奉施。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모든 언어나 문자가 그 자성이 본래 공하여 집착하는 모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무릇 마음을 일으켜서 모든 법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그 모양 속에 떨어지기 때문에 성취(成就)라고 이름할 수 없습니다. 만일 모든 법에 대하여 그 얻는 바가 없음을 이해한다면 곧 모든 이치를 성취하여 모든 것이 뜻과 같을 것입니다. 이러한 보시라면 가히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왕은 즉시 이 모직천을 받들어 그에게 보시하였다.
040_0028_a_14L復有菩薩名三輪淸淨,其王卽時持㲲奉施。
그러자 그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저쪽 베푸는 자[能施]도 없고 이쪽 받는 자[能受]도 없으며, 받는 자가 얻는 것이 없고 주는 자는 과보(果報)가 없는 것입니다. 나[我]란 것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의 것[我所]이란 것 또한 공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보시라면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법화(法化)라 이름하는 보살이 있었는데, 왕은 즉시 그의 모직천을 받들어 그에게 보시하였다.
040_0028_a_21L復有菩薩名曰法化,其王卽時持㲲奉施。
040_0028_b_02L 그러자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성문ㆍ연각의 열반으로 과증(果證)을 삼지 않으며, 또한 대반열반(大般涅槃)으로 과증을 삼지 않으며, 윤회법(輪廻法)을 여의지 않고 열반법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사와 열반은 둘이 모두 평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보시라면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왕은 그가 보시할 모직천을 받들어 이와 같이 많은 여러 대보살들에게 보시하려 하였으나, 보살들은 모두 몸을 감추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040_0028_b_06L是時大王以所施㲲奉如是等諸大菩薩,各各隱身,皆不納受。
이때 대왕은 즉시 이 모직천을 가지고 존자 대가섭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 가섭이시여, 존자께서는 성문들 중에서 연세가 많으시고 덕망이 있어서 부처님께서 두타(頭陀) 제일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원컨대 제가 이처럼 가득한 베푸는 마음[施心]으로 바치는 멋진 모직천을 부디 받아 주소서.”
가섭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어떤 보이는 모양이 있는 것을 저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은 탐(貪)ㆍ진(瞋)ㆍ치(癡)를 단멸하지 않더라도 물들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며, 나아가 무명(無明)이나 유(有)나 애(愛)를 모두 단멸하지 않아도 역시 관여함이 없이 모두 없어서 고통을 관찰하여 집합(集合)을 단멸해서 적멸(寂滅)을 증득하여 도(道)를 닦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보지 않고 법을 듣지 않고 중수(衆數)에 들지 않으며, 얻거나 증득할 만한 지혜가 다하는 것도 아니고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며, 베푸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큰 과보도 없고 작은 과보도 없으며, 싫어할 만한 윤회도 없고 증득할 만한 열반도 없어서, 모든 법이 청정하여 모든 모양을 여의면 이와 같은 보시는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왕은 5백 명의 대성문들에게 모두 이 모직천을 받들어 보시했으나 모두 받지 않고 몸은 감추어 나타내지 않았다.
040_0028_b_22L如是,大王於五百大聲聞所持㲲奉施,亦各不受,隱身不現。
040_0028_c_02L이때 대왕은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보살과 성문들이 모두 내가 보시하는 모직천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것을 가지고 후궁(後宮)으로 가서 부인(夫人)과 권속(眷屬)들에게 보시한다면 그들은 마땅히 받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모직천을 가지고 궁에 가서 보시하려 하였다.
이때 대왕은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멋지고 고운 모직천을 어디에도 보시할 곳이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모직천을 집어서 자신이 입으려 하였다. 그러자 즉시 왕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으면서 공중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만일 몸을 볼 수 있다면 마땅히 보시해야 할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자신의 몸의 색상(色相)을 보십시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처럼 자신의 몸을 보아도 그 모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남들의 몸을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자신이나 타인의 모양을 모두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본다면 곧 진실의 법을 보는 것으로서, 진실의 법은 모든 소견(所見)을 여의며 모든 소견을 여의기 때문에 곧 평등의 법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때 대왕은 이 공중의 소리를 듣고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모든 유상심(有相心)을 여의고 의혹의 생각이 끊어져 없어졌다. 그러자 즉시 궁성의 건물들과 후비(后妃)와 권속들이 그 색상을 드러내어 다시 전과 같이 되었다. 그래서 곧장 보살과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보니, 모든 보살들의 모습이 본래와 아무런 다름이 없었다.
대왕이 대답하였다. “보살 대사시여, 제 생각에는 모든 부처님 여래가 방편에 따라서 생사와 열반을 잘 설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여 열반의 즐거움에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여실하게 말한다면 생사와 열반의 둘이 모두 평등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다 공(空)하여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인데, 저 모든 법의 성품이 곧 법계(法界)의 성품이며, 법계의 성품은 둘의 차별이 없으며 이런 이치에 연유하여 모든 법은 생기는 것도 없고 가는 곳도 없으며,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으므로 제가 지금 바른 믿음을 일으켜서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묘길상보살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유상(有相)을 여의는 데 대하여 잘 말씀하였습니다.”
040_0029_a_23L妙吉祥菩薩言:“善哉,大王!善說此語,離諸有相。”
040_0029_b_02L왕이 말하였다. “보살이시여, 나의 성품이 본래 공한 것이니 누가 무엇을 설한다 하겠으며, 법이 본래 모양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여의겠습니까?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진실법 속에 아상(我相)이란 본래 없으며, 정(情)과 비정(非情)을 여의므로 모든 행은 짓는 것이 없으며 또한 이를 받는 자도 없습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그대는 진실법에 대하여 비록 깨달아 알기는 했지만 아직 집착이 있습니다.”
040_0029_b_03L菩薩告言:“大王!汝於眞實法中雖復解了,猶生執著。”
왕이 다시 여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집착을 여읩니까?”
王復白言:“云何離著?”
보살이 말하였다. “악취상(惡趣相)을 허물지 않는 것이 바로 집착이 없는 것입니다.”
040_0029_b_05L菩薩曰:“不壞惡趣相,是爲無所著。”
왕이 말하였다. “보살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제 생각에는 악취상은 변하여 달라짐[動轉]도 없으며 허물어지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제가 이제 모든 집착을 여의어서 영원토록 다시는 유상(有相)의 소견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 비유컨대 이는 마치 득인(得忍)보살이 다시는 3독(毒)에 대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묘길상보살과 여러 대사들이 왕궁에서 바른 법을 설할 때 마가타 왕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 왕궁에는 서른두 명의 여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묘길상보살의 신통변화한 일들을 보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또 이 모임에는 5백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도 또한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다. 그리고 이 왕사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온갖 이름난 꽃과 향을 가지고 왕궁의 문 앞에 모여서 멀리 묘길상보살과 대중들에게 공양을 바쳤다.
040_0029_c_02L이때 묘길상보살은 이 성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가련하게 여겨서 이들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 위해 발가락으로 땅을 문질렀다. 그러자 곧 대지가 폐유리(吠琉璃) 색깔로 바뀌어 깨끗하고 투명해서 안팎이 서로 환하게 비치었다.
이때 성중에 사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묘길상보살과 대중들을 아무런 막힘이 없이 얻어 보았는데, 마치 깨끗한 둥근 거울처럼 그들의 얼굴 모습이 비쳤으며, 모든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보살들의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그리하여 묘길상보살이 각각 설법에 응할 때처럼 하였는데, 성중의 8만 4천 명의 사람들이 법안의 청정함[法眼淨]을 얻었으며, 5백 명의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이때 보살이 왕궁을 떠나 얼마쯤 왔는데, 길 위에서 한 사람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사람은 울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살인의 업[殺業]을 지었으니 너무나 무섭다. 앞으로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때 보살이 이 사람을 보고 그 근기의 인연을 살펴보니 이미 무르익어서[成熱] 충분히 교화하여 제도할 만하였다. 그래서 보살은 즉시 그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변해서 그 사람 옆에 가서 같이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살인의 업을 지어서 너무나 무섭다. 앞으로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040_0030_a_02L그러자 앞사람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나 또한 그대와 마찬가지로 살인의 업을 지었다. 우리가 지금 우연히 서로 만났는데, 누가 어떤 방편으로 구해줄 수 있겠는가?”
040_0030_a_02L前人聞已,而卽謂言:“我亦如是造於殺業,偶會今時,誰生方便能爲救度?”
그러자 변화하여 나타난 사람[化人]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어서 이처럼 무섭건만 능히 구해줄 자가 없다. 그러나 부처님 세존께서는 큰 방편을 가지고 있어서 구해주실 수 있을 것이니, 우리가 지금 같이 부처님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변화하여 나타난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곧장 앞서서 갔다. 그러자 앞사람도 이를 보고는 역시 그를 따라 부처님을 찾아갔다.
이때 세존께서는 즉시 이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선남자여, 지금 부처님 앞에서 성실한 말로 자기가 한 일을 사실대로 말하는구나. 만일 그대가 말한 대로라면 그대는 살인의 업을 지음에 있어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것이 과거의 마음이었느냐, 미래의 마음이냐, 현재의 마음이냐? 만일 과거에 일어났던 마음이라면 과거는 이미 사라졌으니 그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만일 미래에 일어날 마음이라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그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만일 현재에 일어난 마음이라면 현재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니 또한 얻을 수 없다. 이처럼 3세를 모두 얻을 수가 없으니 이는 곧 짓고 일어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짓고 일어나는 것이 없는데 그 죄상(罪相)에서 무엇이 보인다고 하겠느냐?
040_0030_b_02L선남자여, 마음이란 머무는 곳이 없어서 안에도 밖에도 가운데도 있는 곳이 없다. 마음에는 빛깔[色]이나 모양[相]이 없으며 파랑[靑]ㆍ노랑[黃]ㆍ빨강[赤]ㆍ하양[白]도 아니다. 마음에는 짓고 만드는 것이 없으니 짓는 자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은 환화(幻化)가 아니니 근본이 진실하기 때문이며, 마음은 가없으니 한량없기 때문이며, 마음은 취하고 버림이 없으니 선악이 아니기 때문이며, 마음은 변하여 달라짐[動轉]이 없으니 생멸이 아니기 때문이며, 마음은 허공과 같으니 장애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은 염오도 청정도 아니니 모든 수(數)를 여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며, 이렇게 보는 자는 모든 법 가운데서 마음을 구하더라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의 자성(自性)이 곧 모든 법의 성품이며,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은 곧 진실한 성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지금 괜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때 모습을 변화하여 나타난 자[化人]가 부처님께서 설하는 진실의 법을 듣고 크게 기뻐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법계(法界)의 자성이 청정함을 잘 말씀하셔서 제가 지금 죄업(罪業)의 본성이 공(空)한 것임을 깨달아서 두렵지 않으며, 제가 지금 불법에 출가하여 이를 닦아서 범행(梵行)을 지니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세존께서는 저를 받아들여 주소서.”
이때 실제로 살인의 업을 지은 자가 이 변화한 사람이 이처럼 출가(出家)하는 것을 보고 또 부처님이 설하는 법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죄업을 지었는데 저렇게 먼저 해탈하였다. 그러니 나도 지금 불법을 구해 교화하고 제도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즉시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살인의 업을 지었기에 미래에 대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구해주소서.”
이때 세존께서 황금빛 오른손을 들어 그의 이마 위에 얹자 즉시 그 사람의 몸의 불이 꺼지고 고뇌를 여의며 쾌락을 얻어서 깨끗한 신심(信心)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합장한 채 여쭈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먼저 부처님께서 자세히 설하시는 청정한 법계(法界)가 모양을 여읜 법을 듣고, 지금 그 죄업(罪業)의 본성이 바로 공임을 깨달아서 다시는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 또한 불법에 출가하여 범행을 닦아 지니고 싶사오니 부디 부처님께서는 받아주소서.”
이때 세존께서는 그를 위해 4제(諦)의 법을 설하셨다. 그러자 그는 법을 듣고는 곧 번뇌[塵]를 멀리하고 더러움[垢]을 여의어 법안의 청정을 얻었다. 또 4제의 이치를 자세히 관찰하여 바로 이 모임 중에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열반에 들고자 하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