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040_0159_a_02L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망울이 거듭 터진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040_0159_b_02L 높고 밝은 것이 처음으로 나뉘자 삼진(三辰)22)이 비로소 차례로 나타났고, 두텁게 실어주는 것이 비로소 안정되자, 만물이 이로써 실마리를 일으켰으니, 맑음과 탁함의 본체가 이미 밝혀진 것이요, 선과 악의 근원이 여기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다음에 문물(文物)로 그 가르침을 세우고 바른 법전[正典]으로 그 세속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익의 공은 모두 이치로 돌아간다. 이렇게 상법(像法)이 서쪽 나라에서 와 진제(眞諦)가 중국에 유포되었지만 천고의 세월을 관통하는 진실한 이치는 궁구할 방법이 없고, 구위(九圍)23)를 포괄하는 현묘한 문은 궁구할 수가 없다. 허망한 생각으로 말하자면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참된 모습을 나타내자면 터럭 하나에도 원만하니, 광대한 그 가르침을 어찌 기술할 수 있겠는가!
삼가 살피건대,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께서는 법성이 두루 원만하시어 인자함을 널리 베푸셨다. 오랑캐들을 교화하시자 만방(萬邦)이 바큇살처럼 몰려들어 온 백성을 인수(仁壽)의 영역에 올려놓으셨고, 교법을 숭상하시자 사해(四海)가 구름처럼 뒤따라 창생에게 풍요로운 땅을 베푸셨다. 존귀한 경전이 방대함을 보시고는 방편을 시설해 물에 빠진 자들을 구제하셨고, 법계가 광활함을 알시고는 정진을 행하여 나태한 자들을 거두셨다. 이에 아늑한 절을 선택해 저 참된 문서24)들을 교열하고는 천축의 고승들에게 명령하여 패다라(貝多羅)의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게 하셨다.25) 상아 붓대가 휘날리며 황금의 글자를 완성하고, 구슬을 엮어 다시 낭함(琅函)에 안치하자26) 용궁(龍宮)의 성스러운 문장27)이 새롭게 탈바꿈하였으니, 취령(鷲嶺)의 필추(苾芻)28)들마저 우러러 감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삼승(三乘)이 모두 하나로 꿰뚫어지고 사제(四諦)가 함께 원만해졌으니, 고(苦)가 공하다는 참되고 바른 말씀을 완전히 밝히고, 정밀히 연구한 비밀스러운 뜻을 환히 드러냈다. 상(相)을 찬탄하는 상이 바로 진실한 상이고, 공(空)을 논하는 것도 공하여 모조리 공이라 하였으니, 화엄(華嚴)의 이치와 궤도를 같이하고, 금상(金像)29)의 가르침과 규구(規矩)30)가 동일하였다.
040_0159_c_02L짐은 대업(大業)을 계승하여 삼가 황위에 임했기에 항상 조심하면서 만백성을 어루만지고 매일 긍긍하면서 선황의 훈계를 지켜왔다. 불교경전[釋典]에 대해서는 더구나 정밀하지도 상세하지도 못하니, 진실로 그 그윽하고 심오한 뜻을 어찌 탐색하고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경원(譯經院)31)의 서역 승려 법현(法賢)32)이 간절한 글을 올리고 그 뜻을 너무도 열심히 피력하였다. “선황제께서는 참된 교화의 바람을 크게 펼치고 부처님의 뜻을 높이 전하셨으며, 전대의 왕들이 빠뜨린 전적을 흥성시키고 각로(覺路)33)의 무너진 기강을 다시 떨치셨다”고 하면서, 하늘이 이룬 공로를 높이 휘날리고 성황의 글34)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나에게 서문을 지어 성인의 가르침을 계승해달라고 청하였다.
성고(聖考)35)께서 승하하시고 추호(追號)36)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는데 정사 밖에 마음을 둘 겨를 어디 있었겠는가? 담제(禫祭)37)를 마치고 이제야 생각이 은미하고 오묘한 곳에 미치게 된 것이다. 어려서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능통한 재주가 본래 부족한 걸 어쩌랴. 법해(法海)의 나루터와 언덕을 어찌 궁구하리오! 공문(空門)의 문턱으로 나아가질 못하니, 대략 대의나마 서술하여 이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부응할 따름이다. 소발자국에 고인 빗물이라 태양을 씻는 파도에 빗대기에는 부족하니, 한척짜리 채찍이 어찌 드넓은 하늘의 그림자를 측량할 수 있으랴! 이렇게나마 짧은 서문을 지어 이로써 성인들의 공로를 기록할 따름이다.
040_0160_a_02L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취봉산(鷲峯山)에서 큰 비구 무리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모든 누(漏)를 다하여 번뇌가 남음이 없었으며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로 잘 해탈하였으니, 마치 위대한 용왕과도 같았다.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갖추었고 무거운 짐을 버렸으며 크고 좋은 이익을 얻었고, 모든 유결(有結)을 다하였고 지혜는 올바르며 걸림이 없었고 마음이 고요함에 머물러 이미 자재로움을 얻었다. 그러나 오직 존자 한 사람만은 보특가라(補特伽羅)에 머물러 있었으니, 이른바 아난이었다.
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사리자가 이와 같은 색(色)과 이와 같은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알고 나서 즉시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세존의 모든 성문(聲聞) 제자가 모든 법 중에서 만일 스스로 널리 설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할 경우 이것은 전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능히 수학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능히 모든 법의 자성을 증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을 증득함으로써 모든 언설이 전부 모든 법과 더불어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모든 법의 성품에 수순하나니, 모든 선남자들은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040_0160_b_02L그런 다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 맘껏 응하는 바에 따라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뜻을 보살이라고 이름합니까? 장차 어떤 법을 설하여야만 보살법을 설하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보살이라고 이름하는 법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반야바라밀다라고 이름하는 법이 있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뜻으로 인하여 보살과 보살법은 전부 있지 않고 볼 수 없으며 얻을 수 없습니다. 반야바라밀다 또한 있지 않으며 볼 수 없고 얻을 수 없습니다. 제가 장차 어떤 보살에게 어떤 반야바라밀다를 가르쳐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을 듣고서 마음에 흔들림이 없고 놀라지 않으며 겁내지 않고 또 물러서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에게 반야바라밀다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름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반야바라밀다를 환히 아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반야바라밀다를 관조하여 생각[觀想]할 경우 이와 같이 배워야 하되, 저 보살이 비록 이와 같이 배울지라도 ‘나는 이와 같이 배웠다’라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마음이 아니며 마음의 성품은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040_0160_b_15L爾時,尊者舍利子白須菩提言:“云何,須菩提!有彼心非心不?”
이때 존자 사리자가 수보리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수보리시여, 그 마음은 마음이 있습니까?”
040_0160_b_17L須菩提言:“舍利子!於汝意云何,若心非心於有於無爲可得耶?”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자여,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마음이 아닌 마음을 있고 없는 것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040_0160_c_02L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수보리를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수보리시여, 진정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대는 무쟁삼매(無諍三昧)를 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나고 으뜸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와 같이 배우는 자가 있다면 그 즉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불퇴전(不退轉)을 얻을 것입니다. 이런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성문법을 배우고자 하는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받으며 읽고 외우며 기억하고 사유하며 설해진 대로 수행한다면, 이 사람은 곧 반야바라밀다에서 수학한 것과 상응하게 됩니다. 만일 연각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장차 이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받으며 읽고 외우며 기억하고 사유하고 설해진 대로 수행한다면, 이 사람은 곧 반야바라밀다에서 수학한 것과 상응하게 됩니다. 만일 보살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장차 이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받으며 읽고 외우며 기억하고 사유하고 설해진 대로 수행한다면, 이 사람은 곧 반야바라밀다의 훌륭하고 오묘한 방편으로부터 모든 보살법의 덩어리를 얻어 완전히 갖추는 것과 상응하게 됩니다.
040_0161_a_02L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보살장법(菩薩藏法)을 자세히 말하는데,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 사람은 보살법과 곧 상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수학하고자 하는 사람이 장차 이 반야바라밀다를 듣고 받으며 읽고 외우며 기억하고 사유하고 설해진 대로 수행한다면, 이 사람은 곧 이 반야바라밀다에서 방편을 구족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을 모으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자세히 설하는데,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위없는 법과 상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야기하고 있는 보살마하살을 저는 보지도 못했고 또한 얻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살은 단지 이름과 글자가 있을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즉 이 이름과 글자 또한 보지 못하고 얻지 못합니다. 반야바라밀다 또한 오직 이름과 글자만이 있을 뿐이며 보지 못하고 얻지 못합니다. 장차 어떤 보살이 어떤 반야바라밀다를 가르쳐야 합니까? 저는 이런 뜻으로 말미암아 의심이 일어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름과 글자 가운데에서 보살마하살을 구하였으나 끝내는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이름과 글자는 머무는 곳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결정된 것도 아니며 결정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 이름과 글자의 성품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머무는 곳도 없고 머무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며, 결정된 것도 아니며 결정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지극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듣고서 흔들림이 없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퇴전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으며, 보살지(菩薩地)에 머물되 퇴전하지 않고 잘 머무르며, 머묾이 없음[無住]과 상응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040_0161_b_02L다시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반야바라밀다를 관조하여 생각할 경우 색에 머물지 않고 수・상・행・식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색에 머물면 곧 색의 행을 행하는 것이 되고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상・행・식에 머물면 곧 수・상・행・식을 행하게 되고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법에 머물면 곧 능히 반야바라밀다를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며, 반야바라밀다와 상응하지 못하게 되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며, 능히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는 색을 받지 않고 수・상・행・식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색을 받지 않으면 곧 색이 아니며, 수・상・행・식을 받지 않으면 곧 수・상・행・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또한 받는 바가 없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받는 것이 없는 법 가운데서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 사람은 곧 보살마하살이라 이름하게 되며, 모든 법의 무수삼마지(無受三摩地)가 광대원만하고 한량없고 결정되어 있어 모든 성문・연각이 허물지 못한다고 이름하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저 일체지는 모양[相]이 있지 않아 취할 바가 없습니다. 만일 모양이 있어 취할 수 있다면 저 실리니가파리몰라야가(室哩尼迦波哩沒囉惹迦)38)와 같은 사람은 일체지에 믿음을 내지 않게 됩니다.
040_0161_c_02L왜냐하면 이 사람이 일체지의 형상(形相)에 대해 믿음과 이해를 낸다면 한정적인 지혜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법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일체지는 색을 받지 않고 수・상・행・식을 받지 않으며 희락법(喜樂法)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닙니다. 안의 색(色)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밖의 색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안과 밖의 색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또한 안과 밖의 색을 떠나서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이와 같이 안의 수・상・행・식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밖의 수・상・행・식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안과 밖의 수・상・행・식으로써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며, 또한 안과 밖의 수・상・행・식을 떠나서 관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닙니다. 그런데 저 실리니가 등은 이와 같은 법과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대해 바르고 깊은 믿음과 이해를 내고 모든 법의 성품을 증득하여 해탈을 얻습니다. 또 일체법에 취함도 없고 취함이 아닌 것도 없으며, 나아가 열반 또한 취함도 없고 취함이 아닌 것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법을 닦는 자는 비록 색・수・상・행・식에서 받을 바가 없다고 해도 그가 아직 여래의 10력(力)・4무소외(無所畏)・18불공법(不共法)을 원만하게 구족하지 못했으면 끝내 수행의 중도에서 열반을 취하여 증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이와 같이 인식해야 합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와 반야바라밀다를 관조하여 생각할 때에 이렇게 관해야 합니다. ‘어떤 법이 반야바라밀다인가? 반야바라밀다는 어떤 모습인가? 모든 법은 생하는 바도 없고 또한 얻을 바도 없는데 반야바라밀다는 어떻게 있는 것인가?’ 보살이 이와 같이 관할 때에 마음에 흔들림이 없고 놀라지 않으며 두려움이 없고 또한 퇴전하지 않는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존자 사리자가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만일 모든 색법이 색의 자성을 떠나고, 수・상・행・식이 수・상・행・식의 자성을 떠나며, 반야바라밀다가 반야바라밀다의 자성을 떠나며, 일체지가 다시 반야바라밀다의 자성을 떠나고, 반야바라밀다가 다시 일체지의 자성을 떠나며, 일체지가 일체지의 자성을 떠난다면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까?”
040_0162_a_02L수보리가 사리자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색법은 색의 자성을 떠났으며, 수・상・행・식은 수・상・행・식의 자성을 떠났으며, 나아가 일체지는 일체지의 자성을 떠났으며, 반야바라밀다의 모습은 반야바라밀다의 자성을 떠났으며, 모든 모습의 자성을 떠났고 성품이 없음 또한 자성을 떠났습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그는 능히 일체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생함이 없고 또한 생함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환히 알고 이와 같이 행한다면 곧 저 일체지를 수순하고 친근하여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고 모든 모습이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불국토를 화려하게 장식할 것이며, 유정을 성숙시켜서 모든 부처님 법을 구족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여 일체지에 다가가는 것이라 합니다.”
040_0162_b_02L다시 존자 수보리가 말했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색법(色法)을 행하면 이것은 행상(行相)이 되며, 색상(色相)을 행하면 이것은 행상이 됩니다. 만일 색행(色行)을 일으키면 이것은 행상이 되며, 색행을 멸하면 이것은 행상이 됩니다. 만일 색행을 무너뜨리면 이것은 행상이 되며, 색행을 텅 비게 하면 이것은 행상이 됩니다. 내가 모든 행을 행하면 이것 또한 행상이 되며, 내가 보살행을 행하면 이것 또한 행상이 됩니다. 보살법에서 내가 얻는 것 또한 행상입니다. 이와 같이 만일 수・상・행・식을 행하면 이것은 행상이 되며, 수・상・행・식의 상을 행하면 이것은 행상이 됩니다. 만일 수・상・행・식을 일으키면 이것은 행상이 되며, 수・상・행・식을 멸하면 이것은 행상이 됩니다. 만일 수・상・행・식을 무너뜨리면 이것은 행상이 되며, 수・상・행・식을 텅 비게 하면 이것은 행상이 됩니다. 내가 모든 행을 행하면 이 또한 행상이 되며, 내가 보살행을 행하면 이 또한 행상이 됩니다. 보살법에서 내가 얻는 것 또한 행상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능히 이와 같이 행하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고 이름하는 것 또한 행상인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이 행하는 자라면 이 보살은 아직 선교방편을 구족하지 못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색을 행하지 않고 색상을 행하지 않고, 색의 생함을 행하지 않고 색의 멸함을 행하지 않고, 색의 무너짐을 행하지 않고 색의 텅 빔을 행하지 않고, 나의 행을 행하지 않고 내가 보살행을 행한다는 것을 일으키지 않으며, 이와 같이 수・상・행・식을 행하지 않고 수・상・행・식의 상을 행하지 않으며, 수・상・행・식의 생함을 행하지 않고 수・상・행・식의 멸함을 행하지 않으며, 수・상・행・식의 무너짐을 행하지 않고 수・상・행・식의 텅 빔을 행하지 않으며, 나의 행을 행하지 않고 내가 보살행을 행한다는 것을 일으키지 않으며, ‘만일 이와 같이 행하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고 이름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고 이름합니다.
040_0162_c_02L그런데 저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하고서 곧 내가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행한다고도 행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행하는 것도 아니요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다시 행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바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행하는 바가 있기도 하고 행하는 바가 없기도 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행하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니고 행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생각이 없으며, 취함이 없으며, 취함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의 무수삼마지에서 광대원만하고 한량없고 결정되어 있어서 모든 성문・연각이 허물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삼마지는 모든 삼마지의 행에 두루 들어가며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능히 이와 같이 행한다면 그는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비록 헤아릴 수 없는 삼마지를 행하면서도 행한다는 상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삼마지를 보면서도 보는 바가 없으며, 저 보살이 ‘나는 이 삼마지에 이미 들어갔다. 나는 이 삼마지에 앞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삼마지에 들어간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와 같이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종류에서나 모든 상을 떠나 일으키는 것이 없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이미 앞서의 부처님을 따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별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040_0163_a_02L그러자 세존께서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수보리야, 바로 그렇다. 수보리야, 부처님 세존과 같은 위신력과 변재와 가피력으로 이와 같이 널리 설하였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수학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배운다면 이것은 반야바라밀다를 배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법은 있지 않으며 또한 다시 배울 바가 없음을 환히 안다면, 이것을 수행하고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저 모든 법은 전부 있지 않은데, 어리석은 범부들이 법이 없는 가운데서 분별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리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법이 있지 않다면 지금 어떻게 있습니까?”
040_0163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모든 법은 있지 않으나 지금 이와 같이 있다. 저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은 법이 없음을 환히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무명(無明)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에 집착하고, 집착함으로써 분별심을 일으키며, 분별을 말미암아 두 극단에 떨어진다.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모든 법에서 갖가지로 분별하며 얻는다는 상을 일으킨다. 저 분별이 이미 두 극단에 의지하여 집착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과거의 모든 법들을 분별하고 미래의 모든 법들을 분별하며 현재의 모든 법들을 분별한다. 모든 분별로 말미암아 명색(名色)에 집착한다.”
사리자야, 저 모든 범부들이 온갖 법의 무소유성(無所有性)을 환히 알지 못하고 분별을 일으키면 여실한 도를 능히 환히 알지 못하고 능히 보지 못한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삼계를 떠나지 못하고 실제법(實際法)에 안주하지 못하며 믿음을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 어리석은 범부의 무리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이것은 일체지를 배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로서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일체지를 배우는 것이 아니며, 보살마하살로서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또한 일체지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또한 모든 법을 배우며 일체지에 가까이 다가가 일체지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5취온은 곧 환인(幻人)임을 알아야 한다. 어째서인가? 색이 환과 같고 수・상・행・식 또한 환과 같다고 말하였는데 저 색・수・상・행・식은 곧 이 6근(根)이며 5온(蘊)이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 또한 환과 같다.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 배우고자 한다면 마땅히 환과 같이 배우는 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040_0163_c_08L須菩提白佛言:“世尊!若有初住大乘菩薩,聞作是說得無驚怖耶?”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처음으로 대승에 머무는 보살이 있어 이와 같은 말씀을 듣는다면 놀라고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반야바라밀다에 대하여 스스로 널리 설한 것을 전전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악마의 업과 악마의 과실을 자세하게 나타내고, 권하여 깨달아 알게 하고, 깨달은 뒤에 다시 멀리 떠나게 하며, 또다시 권하여 모든 부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자이니라.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대승의 갑옷을 입고 대승을 장엄하며 대승에 안주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이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고 한다.”
040_0164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구절의 뜻이 아닌 것이 보살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법에서 걸림이 없고 모든 법을 여실하게 환히 알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한 걸림이 없고 여실히 안다. 이것이 보살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040_0164_a_06L“又復,世尊!云何得名摩訶薩?”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마하살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까?”
040_0164_a_07L佛言:“於有情聚中而爲最上,以是義故,名爲摩訶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유정의 무리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나니,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마하살이라고 이름하게 된다.”
040_0164_a_09L爾時,尊者舍利子白佛言:“世尊!我亦樂說摩訶薩義。”
이때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즐겨 마하살의 뜻을 말합니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만일 보리심(菩提心)・일체지심(一切智心)・무루심(無漏心)・무등심(無等心)・무등등심(無等等心) 등 이와 같은 마음에 걸림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온갖 성문・연각이 무너뜨리지 못하면,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마하살이라고 이름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살마하살의 무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040_0164_a_22L時,尊者舍利子白須菩提言;“云何彼心無礙無著?”
이때 존자 사리자가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그 마음에 걸림이 없고 집착이 없습니까?”
040_0164_a_23L須菩提言:“以無心故,心無障礙亦無所著。”
수보리가 말하였다. “마음이 없는 까닭에 마음에 장애가 없고 집착하는 바가 없습니다.”
040_0164_a_24L舍利子言;“心義云何?”
사리자가 말하였다. “마음의 뜻은 어떤 것입니까?”
040_0164_b_02L須菩提言:“舍利子!心於有無爲可生耶?爲可得耶?”
040_0164_b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사리자여, 마음은 있고 없음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까, 얻을 수 있습니까?”
040_0164_b_03L舍利子言:“不也,須菩提!”
사리자가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040_0164_b_04L是時,須菩提告舍利子言:“心於有無若不可得者,何故於心有所說耶?”
이때 수보리가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마음을 있고 없음에서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마음을 설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나는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열반으로 건너게 하리라’고 생각하고서, 비록 이와 같이 중생을 건너게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중생에 대해 건너게 한다는 생각이 없고 더구나 열반을 얻은 중생은 하나도 없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은 본래 이와 같으므로 모든 일으킴과 지음을 떠났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요술쟁이가 사거리에서 요술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들었다가 즉시 감추었다고 하자.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이 모든 환인(幻人)들은 따라서 온 곳[所從來]이 있어 실재하는가? 멸해 사라지는 것[所滅法]이 있어 무너지게 되는가?”
040_0164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 또한 이와 같다. 비록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건너게 해주어 열반에 들게 한다 해도 건넌 중생이 있지 않으며,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말을 듣고도 놀라거나 두려움을 내지 않으면 이 보살마하살은 대승의 갑옷을 입고 스스로를 장엄한 자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진실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색은 묶이지 않았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수・상・행・식도 묶이지 않았으며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색 진여(眞如)는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수・상・행・식 진여 또한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이때 존자 만자자가 수보리에게 물었다. “존자께서 말한 바와 같이 색은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수・상・행・식은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색 진여는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수・상・행・식 진여도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무엇이 색으로서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은 것입니까? 무엇이 수・상・행・식으로서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은 것입니까? 무엇이 색 진여로서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은 것입니까? 무엇이 수・상・행・식 진여로서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는 것입니까?”
040_0165_a_02L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만자자여, 그대는 알아야 합니다. 환인(幻人)의 색은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환인의 수・상・행・식은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환인의 색 진여는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환인의 수・상・행・식 진여는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있지 않은 까닭에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떠났기 때문에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생하지 않기 때문에 묶여 있지도 않고 풀려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환히 안다면 이것이 바로 대승에 안주하여 대승의 갑옷을 입고 대승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존자 만자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곧 침묵하여 머물렀다.
이때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대승에 안주하여 대승의 갑옷을 입고 대승을 장엄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뜻으로 대승이라고 이름합니까? 보살은 무엇을 환히 압니까? 이 승(乘)은 어디서 나왔으며, 나온 뒤에는 어느 곳에 머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대승이란 한량없고 분수(分數)가 없으며 변제(邊際)39)가 없다. 이런 뜻으로 대승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곧 이와 같이 환히 아는 것이다. 또 대승이 어디서 나와서 어느 곳에서 머무느냐고 물었는데, 이 승은 삼계에서 나와서 바라밀다에 머문다. 그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일체지에 머물며 이것으로부터 보살마하살이 출생하는 것이다.
040_0165_b_02L다시 수보리야, 만일 법이 나온 곳이 없고 또한 머무는 곳도 없다면 머묾이 없음으로 곧 일체지는 머묾이 없음[無住]과 상응한다. 또 이 대승은 또한 있지 않으므로 곧 나온 바가 없다. 나옴이 없으므로 이와 같이 나온다. 왜냐하면 나온 바가 있거나 나온 바가 없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은 모두 얻을 수 없으므로 생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체법 중에서 나올 수 있는 법도 없고 나올 수 있는 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다는 이와 같이 출생하는 것이다.”
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 대승법은 모든 세간과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 중에서 가장 훌륭하여 허공과 같이 평등하다. 저 허공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저 대승법 또한 이처럼 능히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받아들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대승법에서 옴이 있음을 보지 않고 감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또한 머무는 곳도 없으며, 전제(前際)도 얻을 수 없고, 후제(後際)도 얻을 수 없고, 중제(中際)도 얻을 수 없어 삼세가 평등하여 생하는 곳이 없는 까닭에 대승의 뜻을 이와 같이 설합니다.”
이때 세존께서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야, 바로 그렇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대승법에서 이와 같이 수행하고 배운다면 저 보살마하살은 곧 일체지를 이루게 될 것이다.”
1)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 : 이 서문은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982)에 천식재(天息災)가 『성불모경(聖佛母經)』을, 법천(法天)이 『길상지세경(吉祥持世經)』을, 시호(施護)가 『여래장엄경(如來莊嚴經)』을 각각 번역하여 올리자 송나라 태종(太宗)이 이를 치하해 지은 것이다.
2)상법(像法) : 부처님의 열반 뒤에 정법(正法)ㆍ상법(像法)ㆍ말법(末法)으로 나누어진 교법의 세 시기 중의 하나이다. 열반 후 500년부터 1000년까지의 시기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따르지만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는 시기를 말한다.
3)육정(六情) : 육근(六根) 또는 육근이 발생시키는 정식(情識)을 말한다.
4)설산은 인도, 패엽은 불교경전을 뜻한다.
5)연라(煙蘿) : 연하등라(煙霞藤蘿)의 준말로, 안개와 노을이 자욱하고 등나무 여라덩굴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이다. 깊은 산이나 은둔처를 의미한다.
6)향계(香界) : 향기 자욱한 세계라는 뜻으로,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7)십성(十聖) : 10지(地)의 보살을 말한다.
8)삼현(三賢) : 10주(住)・10행(行)・10회향(回向)의 위(位)에 있는 보살을 말한다.
9)건원(乾元) : 하늘의 도(道)이며, 천덕(天德)의 시초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이를 힘입어 비롯되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하도다.[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하였다.
10)태역(太易) : 기(氣)가 분화되기 이전 최초의 상태이다.
11)천식재(天息災) 등 : 역경원에서 번역을 주도했던 천식재(天息災)와 법천(法天)과 시호(施護)를 말한다.
12)사인(四忍) : 무생법인(無生法忍)・무멸인(無滅忍)・인연인(因緣忍)・무주인(無住忍)을 말한다. 인(忍)은 인가(忍可)・안인(安忍)의 뜻으로, 진실을 수긍하고 안주(安住)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13)오성(五聲) : 오음(五音)이라고도 한다.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가지 음조를 말한다.
14)풍율(風律) : 시나 음악의 운율을 말한다.
15)사시(四始) : 사성(四聲)이라고도 한다.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이니, 사성으로 음운(音韻)의 고저(高低)와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을 구분한다.
16)화택(火宅) : 삼계(三界)가 탐욕 등의 번뇌로 어지러운 것을 불타는 집에 비유한 것이 『법화경』 「비유품」에 나온다.
17)천식재(天息災)가 『분별선악업보경(分別善惡報應經)』을 번역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8)금륜왕[金輪] : 4종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제왕을 말한다.
19)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 : 비람풍(毘嵐風)을 말한다. 우주가 파괴되는 시기에 이 바람이 불어 인간세계로부터 위로 색구경천까지 차례로 파괴한다고 한다. 유정천은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가장 마지막에 파괴된다.
20)석전(釋典) : 석가의 가르침을 담은 전적, 즉 불교서적을 말한다.
21)이 서문은 송나라 진종(眞宗)이 함평(咸平) 원년(998)에 법현(法顯) 등에게 내리고, 태종의 성교서(聖教序) 뒤에 붙이게 한 것이다.
22)삼진(三辰) : 해와 달과 별의 세 가지를 말한다. 『좌전(左傳)』에 “하늘에는 삼진이 있고, 땅에는 오행이 있다[天有三辰 地有五行]”고 하였다.
23)구위(九圍) : 구주(九州)와 같은 말로, 온 천하를 뜻한다.
24)진문(眞文) : 천식재를 비롯한 서역승들이 가져온 범어 경전을 말한다.
25)송 태종은 태평흥국 5년(980)에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 서쪽에다 역경원(譯經院)을 세우고, 천식재(天息災)・법천(法天)・시호(施護) 등에게 수집한 범어경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26)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 이를 귀한 상자에 보관했다는 뜻이다. 낭함(琅函)은 천자의 문서를 보관하던 옥으로 만든 함이다.
27)범어경전의 문장을 말한다. 용수 보살이 용궁의 창고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가져와 유포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28)인도출신 승려들을 말한다. 취령(鷲嶺)은 영취산 봉우리란 뜻으로, 곧 인도를 의미한다. 필추(苾芻)는 Ⓢbhikkhu의 음역어로, 비구(比丘)라고도 한다.
29)금상(金像) : 황금 같은 형상이란 뜻으로 곧 부처님을 지칭한다.
30)규구(規矩) : 목수가 사용하는 컴퍼스와 곱자로, 곧 기준・척도・법규를 뜻한다.
31)역경원(譯經院) : 송 태종이 태평흥국 5년(980)에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에 설치한 번역기관이다. 후에 전법원(傳法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32)법현(法賢) : 중인도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법천(法天)이었는데, 송 태종이 법현(法顯)이란 법명을 하사하였다. 973년(개보 6)에 중국에 와서 천식재(天息災) 등과 함께 평생 역경사업에 종사하였다.
33)각로(覺路) : 깨달음의 길, 즉 불교를 뜻한다.
34)태종이 쓴 〈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를 말한다.
35)성고(聖考) : 임금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칭하는 말이다.
36)추호(追號) : 죽은 임금에게 올리는 시호(諡號)를 말한다.
37)담제(禫祭) : 죽은 지 만 2년 기일에 지내는 제사가 대상(大祥)이고, 대상을 치른 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가 담제(禫祭)이다.
38)파리몰라야가는 수행을 위해 유행하는 편력 행자를 가리킨다. 『사분율(四分律)』 「명의표석(名義標釋)」에는 “이것은 출가 외도(出家外道)의 총칭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