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40_0479_c_01L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


용수(龍樹) 지음
송(宋) 서천(西天) 역경삼장(譯經三藏)1) 시호(施護) 한역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성품을 가지신
모든 부처님의 집착 없는 진실한 지혜에 귀의하옵니다.
모든 법은 말이 아니고 말이 아닌 것도 아니니
부처님께서는 자비 때문에 잘 말씀하셨네.

제일의제(第一義諦)에는 발생이 없고
수전[隨轉]2)하여 성품도 없네.
부처님과 중생은 한 모습이니
마치 허공과 같이 평등하네.

이 언덕과 저 언덕에는 발생이 없으나
자성(自性)은 인연에서 발생하는 것이네.
그 모든 작용은 다 공(空하)니
일체지(一切智)3)의 지혜의 작용이네.
오염 없는 진여(眞如)의 성품은
둘 없고 평등하고 적정하니
모든 법성(法性)과 자성(自性)에는
그림자처럼 차별이 없네.

범부의 분별심은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는데도 자아에 대해 계탁하네.
그러므로 모든 번뇌[煩性]4)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 등을 일으키네.

세간의 늙음과 병듦과 죽음은
괴롭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으니
모든 업에 따라 결국 (六道에) 떨어지므로
이것은 실로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네.

하늘[天趣]의 뛰어나고 미요한 즐거움과
지옥의 극심한 고통은
모두 진실한 경계가 아니네.
육도의 존재[六趣]는 항상 윤회하네.

중생의 미망된 분별과
번뇌의 타오르는 불꽃에 의해
지옥 따위의 세계에 떨어지니
마치 들녘의 불길이 숲을 태우는 것과 같네.

중생은 본래 허깨비 같으나
또다시 허깨비 경계를 받아들여
불도[佛道]를 이루는 과정이 허깨비에 뒤덮여 있으니
인연에 따라 발생함을 이해하지 못하네.

마치 세간의 화가가
야차의 모습을 그려놓고
자기 그림에 자기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를 지혜 없는 자라 하네.

중생은 자기 스스로 번뇌[染]를 일으켜
그 윤회의 원인을 짓고
원인을 지은 뒤에는 결국 윤회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니
지혜가 없기 때문에 해탈을 못하네.

중생의 허망한 마음은
의혹의 때를 일으키니
성품이 없는데 성질이 있다고 계탁하여
괴로움 중에서도 아주 극심한 괴로움을 받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도 구제할 수 없었으니
마침내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시고
그리하여 깨달음의 마음[菩提心]을 일으켜
널리 깨달음의 수행 닦으셨네.

무상지(無上智)의 과보를 얻어
세간을 관찰하시니
분별에 얽매여 있었네.
그러므로 이익을 짓게 하였네.
발생하는 것과 이미 발생한 것에서
모든 바른 참된 의미를 보시고
나중에 세간이 공함을 관찰하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여의셨네.

생사(生死)와 열반[涅盤]5)을 관찰하면
이 두가지 모두 무아(無我)이니
오염도 없고 또한 허물어짐도 없으니
본디 청정하고 항상 적정하네.

꿈 속의 모든 경계가
깨어나면 다 볼 수 없듯이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의 잠에서 깨어나면
역시 삶과 죽음을 보지 않네.

우매하고 아둔한 자는
결국 생사의 바다에 떨어져
발생이 없는데도 발생이 있다고 계탁하여
세간의 분별을 일으키네.

만약 발생이 있다고 분별하면
중생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
생사(生死)의 법에서
영원[常]ㆍ즐거움[樂]ㆍ자아[我]에 대한 망상(妄想)을 일으키네.

이 온갖 것들은 오직 마음뿐인데
허깨비 같은 형상을 잘 세워
착한 업[善業]과 착하지 못한 업[不善業]을 지어
좋은 삶과 좋지 못한 삶을 받네.

만약 마음의 바퀴를 소멸한다면
모든 법이 소멸할 것이네.
이 모든 법은 무아(無我)이며
모든 법은 다 청정하네.

부처님께서는 널리 세간의 법을 말씀하셨으니
무명(無明)의 인연을 알아야 하리라.
만약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모든 중생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 모든 법의 법성(法性)에서
실로 한치의 법을 구할래도 얻을 수 없나니
세간의 요술쟁이가 요술을 부리듯이
지혜로운 자는 이처럼 알아야 하리.

생사윤회(生死輪廻)의 큰 바다에
중생 번뇌의 물결 가득하니
대승에 실려 운행하지 않으면
마침내 저 언덕에 어찌 도달하리오.
040_0479_c_01L大宋新譯三藏聖教序 大乘二十頌論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製大矣哉我佛之教也化導群迷闡揚宗性廣博宏辯英彦莫能究其旨微妙說庸愚豈可度其源義理幽玄眞空莫測包括萬象譬喩無垠綜法網之紀綱演無際之正教拔四生於苦海譯三藏之祕言天地變化乎陰日月盈虧乎寒暑大則說諸善惡細則比於恒沙含識萬端弗可盡述若窺像法如影隨形離六情以長存歷千劫而可久須彌納藏於芥子來坦蕩於無邊達磨西來法傳東土宣揚妙理順從指歸彼岸菩提愛河生滅用行於五濁惡趣拯溺於三業途中經垂世以難窮道無私而永泰雪山貝葉若銀臺之耀目歲月煙蘿起香界之自遠巍巍罕測杳杳難名所以道資十聖德被三賢至道起於乾元衆妙生乎太易摠繁形類竅鑿昏明絕彼是非開茲蒙昧有西域法師天息災等常持四忍早悟三乘貝葉之眞詮續人天之聖教芳猷重甫守啓運偶昌時潤五聲於文章暢四始於風律堂堂容止穆穆輝華曠劫而墊重明玄門昭顯軌範而彌光法淨界騰音利益有情俱登覺岸無鄣礙救諸疲羸冥昧慈悲浩汗物表柔伏貪很啓滌昏愚演小乘聲聞合其儀論大乘正覺立其性含靈而蒙福藏教缺而重興幻化迷途火宅深喩雖設其教不知者多善念而無量潛臻惡業興而隨緣皆墯調御四衆積行十方澍華雨於金輪護恒沙於玉闕有頂之風不可壞無際之水弗能漂澄寂湛然圓明淸淨智慧性空無染妄想解脫之因緣可離煩惱於心田可以得淸涼於宇宙朕慚非博學釋典微閑豈堪序文以示來者如縻螢爝火不足比之於皎日將微蠡量海未能窮盡於深淵者哉繼作聖教序御製高明肇分三辰方乃序其次厚載初定萬彙於以發乎端淸濁之體旣彰善惡之源是顯然後以文物立其教以正典化其俗利益之功同歸於理於是乎像法來於西國眞諦流於中洞貫千古眞實之理無以窮囊括九圍玄妙之門莫能究言乎妄想五蘊皆空現乃眞容則一毫圓滿大之教豈能紀述者哉伏睹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法性周圓仁慈普布化蠻貊則萬邦輻湊躋烝民於仁壽之鄕崇教法則四海雲從惠蒼生於富庶之域見尊經之浩汗設方便以救沈淪知法界之恢宏精進而攝懈怠乃擇其邃宇校彼眞命天竺之高僧譯貝多之佛語管翻成於金字珠編復置於琅函宮之聖藻惟新鷲嶺之苾芻仰歎是三乘共貫四諦同圓盡苦空眞正之言顯祕密精硏之義讚相相乎實論空空乎盡空華嚴之理合軌轍金像之教同規矩朕纘嗣丕搆恭臨寶圖常翼翼而撫兆民兢兢而守先訓以至釋典尤未精詳諒其幽深曷能探測有譯經西域僧法賢奏章懇切致意專勤先皇帝大闡眞風高傳佛旨興前王之墜典振覺路之頹綱欲旌天造之功庸用廣聖文之述作請予製序繼聖教焉聖考上僊追號罔恩政事之外何暇經心今已禫除思臻微奧雖幼承慈奈夙乏通才焉窮乎法海之津涯莫造乎空門之閫域略敷大意以徇輿情蹄涔不足擬浴日之波尺箠豈能量昊天之影聊述短序以紀聖功者焉大乘二十頌論龍樹菩薩造西天譯經三藏朝奉大夫試光祿卿傳法大師賜紫臣 施護 奉 詔譯歸命不可思議性 諸佛無著眞實智諸法非言非無言 佛悲愍故善宣說第一義無生 隨轉而無性佛衆生一相 如虛空平等此彼岸無生 自性緣所生彼諸行皆空 一切智智行無染眞如性 無二等寂靜諸法性自性 如影像無異凡夫分別心 無實我計我故起諸煩性 及苦樂捨等世閒老病死 爲苦不可愛隨諸業墜墮 此實無有樂天趣勝妙樂 地獄極大苦皆不實境界 六趣常輪轉衆生妄分別 煩惱火燒燃墮地獄等趣 如野火燒林衆生本如幻 復取幻境界履幻所成道 不了從緣生如世閒畫師 畫作夜叉相自畫己自怖 此名無智者衆生自起染 造彼輪迴因造已怖墜墮 無智不解脫衆生虛妄心 起疑惑垢染無性計有性 受苦中極苦佛見彼無救 乃起悲愍意故發菩提心 廣修菩提行得無上智果 卽觀察世閒分別所纏縛 故爲作利益從生及生已 悉示正眞義後觀世閒空 離初中後際觀生死涅盤 是二俱無我無染亦無壞 本淸淨常寂夢中諸境界 覺已悉無見智者寤癡睡 亦不見生死愚癡闇蔽者 墜墮生死海無生計有生 起世閒分別若分別有生 衆生不如理於生死法中 起常樂我想此一切唯心 安立幻化相作善不善業 感善不善生若滅於心輪 卽滅一切法是諸法無我 諸法悉淸淨佛廣宣說世間法 當知卽是無明緣若能不起分別心 一切衆生何所生於彼諸法法性中 實求少法不可得如世幻師作幻事 智者應當如是知生死輪迴大海中 衆生煩惱水充滿若不運載以大乘 畢竟何能到彼岸大乘二十頌論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다른 판본에는 송(宋) 서천(西天) 역경삼장(譯經三藏)이라 기술한 것이 있다. 시호(施護) 스님이 송나라에서 역경사업을 했으므로 송 서천 역경삼장이라 하는 것이 더 옳은 번역일 것이다.
  2. 2)수전(隨轉)은 현행(現行, pravartate)을 말한다. 즉 현상의 존재계(存在界)를 말하는 것이다.
  3. 3)일체지(一切智)는 산스끄리뜨어 sarvajña를 한역한 것이다. 일체를 아는 자란 뜻으로 즉 부처님을 말한다. 살바야(薩婆若)라 음역(音譯)하기도 한다.
  4. 4)대정신수대장경의 다른 판본에는 번성(煩性)이 번뇌(煩惱)로 되어 있다. 의미상 번성보다 번뇌가 더 옮다고 여겨지므로 정정하여 번뇌로 옮기겠다.
  5. 5)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다른 판본에는 열반(涅盤)이 열반(涅槃)으로 되어 있다. 열반(涅盤)보다 열반(涅槃)이 문맥상 맞으므로 열반(涅槃)이라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