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40_0940_c_01L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 제13권
040_0940_c_01L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 卷第十三


서천 법호 한역
김달진 번역
040_0940_c_02L西天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卿傳梵大師賜紫沙門臣 法護 等奉 詔譯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묘한 선정[等引]1)에 머무는 마음을 얻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몸의 생각 두는 곳[身念處]을 잘 실천하고, 둘째 느낌의 생각 두는 곳[受念處]을 잘 실천하며, 셋째 마음의 생각 두는 곳[心念處]을 잘 실천하고, 넷째 법의 생각 두는 곳[法念處]을 잘 실천하며, 다섯째 경계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고, 여섯째 고요함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며, 일곱째 도시ㆍ성읍ㆍ촌락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고, 여덟째 명예와 이익 따위 일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며, 아홉째 여래가 시설한 학문(學門)에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고, 열째 번뇌와 딸린 번뇌의 잡염(雜染)의 생각 두는 곳을 잘 끊는 것이라.
040_0940_c_03L復次善男子菩薩若修十種法者得常住妙等引心何等爲十一者行身念處二者善行受念處三者行心念處四者善行法念處五者行境界念處六者善行阿蘭若念處七者善行王都國城聚落念處八者善行名聞利養等事念處九者善行如來施設學門念處十者善斷煩惱及隨煩惱雜染念處
선남자여, 보살이 몸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일어나는 그 죄와 옳지 못한 법을 뛰어난 지혜로써 세밀히 생각해 골라내어 모두 완전히 없애며, 또 몸의 모든 허물을 관찰하되 아래 발꿈치로부터 위로 이마 꼭대기에 이르기까지의 힘줄과 맥이 서로 연결된 온 몸을 두루 관찰함에 있어 일체 나라는 것이 없느니라. 그래서 잠시도 머물지 않고 파괴되어가는 법이 바로 이 몸의 깨끗하지 않고 모든 성숙되지 않은 것이어서 냄새 나고 더럽고 싫증이 나는 뭇 나쁜 빛깔과 모양이 함께 쌓인 것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그것이니라.
040_0940_c_12L善男子云何是菩薩善行身念處謂若菩薩所有身中從我所起罪不善法以其勝慧審細思擇皆悉遠離又復觀察身諸過下從足心上至頂門筋脈纏縛觀其身而悉無我不得暫停敗壞之是身不淨諸不成熟臭穢可惡惡色相共所積集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만약 몸을 탐애하는 모든 욕심으로 몸을 헤아리거나 나라는 생각을 하거나 몸에 집착을 갖는다면 이러한 법은 다 있을 수 없느니라. 이 때문에 몸과 함께하는 모든 옳지 못한 법은 자유롭지 못하고 몸을 떠난 일체 옳은 법은 자유롭기 마련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몸의 생각 두는 곳을 잘 행하는 것이니라.
040_0940_c_19L菩薩作是觀時身中身貪愛諸欲身計我想身所執是等諸法悉不可得以是緣故身俱者諸不善法不得自在餘與身俱一切善法而得自在如是名爲善行身念處
040_0941_a_02L다음 보살이 느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모든 느낌이 다 괴로움이거늘, 어째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가운데 뒤바뀐 생각을 내어 즐거움이라 하는가?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성인들만이 이 괴로움을 다 아시리라’ 하고는, 보살이 스스로 부지런히 실천하여 그 괴로움의 느낌을 끊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다 자기처럼 그렇게 수학(修學)하게 하며,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또 그 느낌에 애착을 내지 않고, 성내거나 미워함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스스로 부지런히 실천하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그와 같이 수학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느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a_02L云何是菩薩善行受念處謂若菩薩作是思惟所有諸受皆悉是苦云何愚人於中顚倒計以爲樂諸愚癡者不識苦樂唯諸聖人悉知是苦菩薩自能勤行斷苦受已復教佗人亦悉同己如是修學菩薩作是觀時又於彼受不生染愛不起瞋恚自勤行已復令佗人亦如是學如是名爲善行受念處
다음 보살이 마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마음은 실상 무상(無常)한 것인데 헤아려서 상(常)이라 집착하고,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여기며 나 없음[無我]을 나[我]라 하고, 맑고 깨끗하지 않는 것을 맑고 깨끗하다고 여기느니라. 이 마음의 움직임이 잠시도 머물지 않아 마치 가볍게 흔드는 바람과 같으니, 이것이 곧 번뇌의 최초 근본이 되고 다시 모든 딸린 번뇌의 인연이 되어서 나쁜 갈래의 문을 열어 좋은 갈래를 파괴하느니라.
040_0941_a_10L云何是菩薩善行心念處謂若菩薩作是思惟心實無常計執爲常以苦爲樂無我謂我淨謂淨是心動搖不得暫停如風輕而爲煩惱最初根本亦復爲諸隨煩惱緣開惡趣門破壞善趣
또 이것이 인연이 되어 탐욕과 진심(瞋心)과 우치를 내도다. 그런가 하면 일체 법과 더불어 그 뛰어난 주재(主宰)가 되어서 일체 법 가운데 마음이 바로 선도(先導)인 만큼 만약 마음이 알음이 있으면 일체 법도 알음이 있는지라, 마음은 마치 화가(畵家)가 모든 물건의 모양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마음을 보지는 않지만 마음은 눈이 옳은 업과 옳지 못한 업을 쌓아 모으나니, 이 마음이 돌고 도는 것은 마치 불을 돌리는 바퀴[火輪]와 같고, 이 마음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달아나는 말[馬]과 같으며, 마음은 들불이 활활 거침없이 타오르는 것과 같고, 마음은 큰물이 만물을 자라내는 것과 같도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니라.
040_0941_a_15L又復爲緣生貪瞋癡與一切法爲勝主宰切法中心爲先導若心有知卽一切法亦有所知心如畫師畫諸物像不見心心能積集善不善業是心循環如旋火輪是心迅轉其猶奔馬如野火熾焰燒然心如大水滋長衆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실상 그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모든 보살은 스스로가 그 마음을 다스리느니, 마음이 다스려지면 곧 일체 법이 다 다스려지기 마련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마음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a_22L菩薩作是觀時而實其心不得自諸菩薩者自能調伏心若調伏一切法悉得調伏如是名爲善行心念處
040_0941_b_02L다음 보살이 법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옳지 못한 법에 있어서 탐욕ㆍ진심ㆍ우치 따위와 거기에 의지하는 탐욕의 모든 옳지 못한 법과 진심ㆍ우치의 모든 옳지 못한 법을 사실대로 분명히 알아서 그것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 옳지 못한 법을 부지런히 끊어 제거하고는, 곧 일체 옳은 법을 분명히 알아 그 옳은 법 가운데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바른 생각에 머물며, 나아가선 저 법에 성취할 것을 구하여 스스로 실천하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와 같이 수학(修學)하게 하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법(法)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b_02L云何是菩薩善行法念處謂若菩薩於不善法如實了知所謂貪瞋癡等及所依止貪之對治餘不善法瞋癡對治諸不善法菩薩於是不善法中勤斷除已卽能了知一切善法於善法中起心愛樂住正念處而於彼法求所成辦自能行已復教佗人如是修學如是名爲善行法念處
다음 경계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 뜻에 맞거나 뜻에 맞지 않거나 모든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접촉의 경계 가운데에 탐욕의 애착을 내지 않고 진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그것이니라. 이럴 때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형체도 모양도 없는 법 가운데 욕심을 내고 애착을 내지 않아야 하리라. 만약 욕심을 낸다면 이는 곧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성질을 갖추는 것으로 바로 명료(明了)하지 않는 성질이고 옳지 못한 성질이리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만약 욕심을 낸다면 곧 염착하는 어리석음의 계교와 고집을 일으켜 옳은 법과 옳지 못한 법을 분별할 수 없을 뿐이다. 더구나 이 때문에 나쁜 갈래 가운데 떨어지리라’고 한다.
040_0941_b_09L何是菩薩善行境界念處謂若菩薩於諸可意及不可意色聲香味觸諸境界中不生貪著不起恚心菩薩作是思惟我今不應於此無體相法中而生貪著若生貪者卽是愚人具愚癡性是不明了性是不善性如佛所若生貪者卽起染著愚癡計執能分別善不善法以是緣故墮惡趣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 공한 법 가운데에 진심을 내지 않을지니, 진심을 내는 자는 곧 스스로가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어서 모든 성인들의 꾸지람과 범행(梵行)을 같이하는 이들의 버림을 받기 마련이라’고 한다. 보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 그 경계 얻을 것에 탐착하지 않을 것을 보살 스스로가 실천하고 나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그와 같이 배우게 하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그 경계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b_18L菩薩又作是念我今不應於此空法之中而起恚心起恚心者卽不能忍發生瞋恚爲諸聖人之所譏毀梵行者而共厭棄菩薩作是觀時爲境壞不著所得菩薩自能行已教佗人亦如是學如是名爲善行境界念處
040_0941_c_02L다음 보살이 그 고요함[阿蘭若]2)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다툼이 없는 실천과 적정(寂靜)한 실천이 곧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일진대,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 따위로서도 남의 마음을 아는 자라면 능히 나의 이 마음과 마음의 작용하는 법을 알 것이라. 이 때문에 나는 이제 이치답지 않은 뜻 가짐과 그 밖의 다른 생각을 완전히 없애고, 일체 장소에 있어서 이치답지 않은 뜻 가짐을 항상 없애며, 나아가 이치다운 법 가운데에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법을 늘어내고 넓히기 위해 수습(修習)하리라고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고요함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b_24L云何是菩薩善行阿蘭若念謂若菩薩作是思惟修無諍行及寂靜行是卽名爲住阿蘭若處有諸夜叉乾闥婆等佗心通者能知我心及心所法是故我今應當遠離不如理作意及異思惟於一切處亦復常離不如理作意於如理法中心愛樂增廣修習如是名爲善行阿蘭若念處
다음 보살이 도시ㆍ성읍ㆍ촌락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도시ㆍ성읍ㆍ촌락에 들어갈 때 마땅히 보살로서의 실천할 행동을 일으켜서 가서는 안 될 모든 곳을 다 버리고 출가한 사람으로서 가서는 안 될 모든 곳도 다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출가한 사람으로서의 가서는 안 될 곳인가? 이른바 왕관(王官)의 집과 도박의 모임과 술 가게 또는 환락이 어지러운 연회의 자리와 노래하고 춤추는 광대들이 머무는 장소와 그 밖의 일체 출가한 사람으로서 가서는 안 될 곳이 그것이니라. 이 모든 곳을 멀리 떠나서 결코 가지 말아야 하느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도시ㆍ성읍ㆍ촌락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c_09L云何是菩薩善行王都國城聚落念處謂若菩薩入於王都國城聚落之時當起菩薩所行之行諸非處皆悉捨離非出家人所應行亦悉捨離何等是非出家人所應行處所謂王官之舍博弈之會酒肆歡宴歌舞倡伎所住之處及餘一切非出家人所應行處當遠離之而悉不往如是名爲善行王都國城聚落念處
다음 보살이 명예와 이익 따위 일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모든 명예와 이익 따위 일에 있어서 다만 시주를 위해 복밭[福田]이 되어야 하니라. 이 때문에 시주가 마음을 쓰는 대로 받기는 하지만, 그 받는 것에 대해 탐애(貪愛)를 일으키지 않고 취착(取着)을 내지 않으며, 또 계교하거나 고집하지 않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도 않고 내 것이라는 상(相)을 일으키지도 않으면서, 얻는 것에 따라 곧 일체 중생들과 더불어 함께하여 모든 고뇌에 허덕이는 자를 구제해 길러 주어야 하는 것이니라.
040_0941_c_18L云何是菩薩善行名聞利養等事念處謂若菩薩於諸名聞利養等但爲施主作福田故隨所起心而乃受之然其所受不起貪愛不生取復不計執不作己有之想不起我所之相隨其所得卽與一切有情共諸苦惱者濟其資養
040_0942_a_02L이 때문에 보살은 언제나 명예와 이익 따위의 일에 훌륭한 척하지 않고 아만을 내지 않으며, 함부로 교만하거나 방일하지 않고서 보살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모든 명예와 이익 따위의 일은 자신의 일이건 남의 일이건, 다 잠시 일어나 오래 머물지 않고,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일체 얻는 것이 없는 것이니라. 그 누가 슬기로운 자로서 이 무상하고 오래가지도 않으며 견고하지 않고 안온하지도 않은 법 가운데에 염착하는 마음과 탐애하는 마음을 내겠으며, 또 훌륭한 척하거나 아만을 부리거나 함부로 교만하고 방일하겠느냐?’고 하나니,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그 명예와 이익 따위 일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1_c_24L以是緣故於名聞利養等事不生高擧不起我不恣驕逸菩薩作是思惟諸有名聞利養等事若自若佗暫時所起而不久停以暫起故於一切時及一切處悉無所得誰諸智者於此無常不久不堅不安隱法中生染愛心及生高擧我慢驕逸如是名爲善行名聞利養等事念處
다음 보살이 여래께서 베풀어 설치하신 학문(學門)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과거세의 일체 여래께서 다 이렇게 배우셨고, 이렇게 배우셨기 때문에 이미 바른 깨달음을 이룩해 큰 열반에 드셨구나. 미래세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이렇게 배울 것이고,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앞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룩해 큰 열반에 드실 것이며, 현재세의 일체 여래께서도 다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현재 바른 깨달음을 이룩하여 큰 열반에 드셨도다’ 하고는, 이 때문에 보살이 이 학문에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서 존경함과 동시에 부지런히 힘써 수습한다. 이러한 것이 이른바 보살이 여래께서 베풀어 설치하신 학문의 생각 두는 곳을 잘 실천하는 것이니라.
040_0942_a_09L云何是菩薩善行如來施設學門念處謂若菩薩作是思所有過去一切如來皆如是學是學故已成正覺入大涅槃未來世中一切如來皆如是學如是學故成正覺入大涅槃及現在世一切如來亦如是學如是學故現成正覺入大涅槃以是緣故於此學門起淸淨而生尊敬勤勇修習如是名爲善行如來施設學門念處
다음 보살이 번뇌와 딸린 번뇌의 잡염(雜染)의 생각 두는 곳을 잘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바른 생각 때문에 일체 딸린 번뇌의 잡염(雜染) 따위 법이 무슨 인(因)으로 일어나고 무슨 연(緣)으로 생기는가를 잘 깨달아 아는가 하면, 보살이 이러한 인으로 일어나고 이러한 연으로 생겨나는 것을 다 분명히 깨달아 앎으로써 그 모든 잡염을 다 완전히 없애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이 이른바 번뇌와 딸린 번뇌의 잡염 따위 법의 생각 두는 곳을 잘 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항상 묘한 선정에 머무는 마음을 얻으리라.
040_0942_a_18L云何是菩薩善斷煩惱及隨煩惱雜染念處謂若菩薩以正念故善能了知一切煩惱及隨煩惱雜染等法何因所起何緣所生菩薩悉知如是因起如是緣生以了知故而悉遠離如是名爲善斷煩惱及隨煩惱雜染念處善男子薩若修如是十種法者常住妙等引
040_0942_b_02L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누더기 옷[糞掃衣]3)을 입을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서원(誓願)을 굳게 하고, 둘째 마음을 겸손하게 하며, 셋째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 넷째 모든 집착을 없애며, 다섯째 과실로 보지 않고, 여섯째 공덕으로만 보며, 일곱째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여덟째 남을 헐뜯지 않으며, 아홉째 계행이 두루 갖추어지고, 열째 성현들에 친근한 것이 그것이니라.
040_0942_b_03L善男子菩薩若修十種法者著糞埽衣何等爲十一者堅固誓願二者謙下其心三者不生疲倦四者離諸有著五者不觀過失六者唯觀功德七者不自讚譽八者不毀謗佗九者戒行具足十者聖賢親近
선남자여, 보살이 서원을 굳게 하고 성현들에 친근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스스로가 맑고 깨끗한 신심을 갖고 뜻이 두루 갖추어져 모든 여래의 신뢰를 받음으로써 설혹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인연을 만나더라도 서원 세운 것을 파괴하지 않고 능히 서원 그대로를 고치거나 바꾸는 일이 없으며, 저 서원을 굳게 함으로 말미암아 곧 그 마음을 겸손하게 하여 아만을 내지 않느니라.
040_0942_b_08L善男云何是菩薩誓願堅固乃至聖賢親近謂若菩薩自有淨信志意具足爲諸如來之所信許設或遇於護命因緣亦不破毀所發誓願能於誓願無所改轉由能堅固彼誓願故卽能謙下其心不生我慢
또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에 능히 일체 사람들의 버려둔 누더기 물건을 끌어 모아 깨끗이 씻고 물들이며 바느질을 하지만 싫어하지도 않고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도 않고, 싫어하지 않고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하는 일에 따라 모든 집착을 없애고 뛰어난 업을 닦아 나아가 성취하되 능히 이 누더기 옷을 과실로 보지도 않느니라. 그런가 하면 비록 이 옷이 허물어지고 낡아빠진데다가 다시 벼룩과 이가 수두룩하여 온 몸을 덮은 더러운 때가 주렁주렁하더라도 보살은 끝내 그것을 과실로 보지 않으니라.
040_0942_b_14L心謙下故能以一切人所嫌棄糞埽之物而悉取之取已洗滌治染縫綴不生厭惡而不疲倦不疲倦故隨所作已離諸有著乃至勝業修進得成而能於此糞埽之衣不觀過失雖云此衣壞爛故弊復多蚤蝨若被於身而生垢污菩薩終不觀其過失
040_0942_c_02L왜냐하면 이 옷을 공덕으로만 보기 때문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이 옷은 선인(仙人)들의 입는 옷이므로, 비록 욕심을 없앤 성자(聖者)라도 다 여기에 수순함을 그 성종(聖種)4)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도 좋은 상서라고 칭찬하신 만큼 이 때문에 스스로가 자랑하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나니, 스스로가 자랑하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기 때문에 곧 계행을 두루 갖출 수 있는가 하면, 맑고 깨끗한 계행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일체 성현들에게 친근할 수 있어 그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고 모든 보살들이 수호하며,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도 다 서로 돕고, 모든 바라문ㆍ찰제리와 일체 백성들도 함께 와서 예경하고 범행(梵行)을 같이하는 이도 모두들 찬탄하기 마련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누더기 옷을 입을 수 있으리라.”
040_0942_b_21L何故此衣唯觀功德謂此糞埽衣者仙人所服離欲聖者亦悉隨順順聖種故佛讚吉祥佛所稱歎以是緣故不自讚譽不毀謗佗由離自讚不謗佗故卽得戒行具足淸淨戒具足故一切聖賢之所親近諸佛稱讚及諸菩薩之所守護人等而共佑助諸婆羅門及剎帝利一切人民咸來禮敬同梵行者而悉咨嗟善男子菩薩若修如是十種法常著糞埽衣
그때 제개장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은 으레 광대한 실천을 갖추는데, 무엇 때문에 이 추잡하고 졸렬한 실천을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이 세간을 구호하기 위해 세간에 수순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곧 이러한 실천을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로서도 큰 세력을 갖춘 자가 있고 갖추지 못한 자가 있으므로 저 큰 세력을 갖추지 못한 자로 하여금 대치(對治)를 일으켜서 번뇌를 자라내지 못하게 하므로 이러한 실천을 하는 것이니라.
040_0942_c_08L爾時除蓋障菩薩前白佛言世尊菩薩者具廣大心何故行斯麤劣行佛言善男子菩薩爲護世間隨順轉故乃行斯行善男子菩薩有具大勢力者有不具者爲彼不具大勢力令起對治未生煩惱故行斯行
또 선남자여, 그대 생각엔 어떠하냐?. 그대는 여래의 실천과 풀이[行解]를 관대하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천열(淺劣)하다고 하겠느냐?”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변재가 없어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실천과 풀이를 측량할 이가 없을 뿐더러 여래께서는 법을 증(證)할 것도 없고 법을 볼 것도 없으시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어떤 법을 실천하고 풀이할 것이 없으시리라 합니다.”
040_0942_c_14L善男子於汝意云何汝謂如來行解爲廣大邪爲淺劣邪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我無此辯不堪酬對所以者何無能測度如來行解之者以如來無法可證無法可見是故如來無有少法可爲行解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 생각엔 또 어떠하냐? 여래가 무엇 때문에 이 4대주(大洲)의 모든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과 그 밖의 믿고 아는 것이 저열한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들 가운데에서 이 추잡하고도 졸렬한 실천을 나타내며, 한편으로 또 그들 앞에서 두타(頭陀)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겠느냐?”
040_0942_c_20L佛言善男子於汝意云何汝謂如來以何緣故於四大洲中諸人非人及餘劣信解者夜叉乾闥婆等衆中現斯麤劣之行及於彼前稱讚頭陀功德
040_0943_a_02L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든 중생들을 위해 화도(化度)하려 하시기 때문이고, 또는 처음 대승에 머무는 보살들로 하여금 대치(對治)를 일으켜서 번뇌를 자라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실천을 하시는 것입니다.”
040_0942_c_24L除蓋障菩薩白佛言世尊如來爲欲化度諸有情故及爲初住大乘菩薩令起對治未生諸煩惱故乃行斯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고 그러하니라. 큰 힘을 지닌 보살로서 중생들을 성취하고 화도하기 위해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은 이 또한 졸렬하거나 추잡한 실천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보살이 항상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다만 3의(衣)를 받고서 지낼 수 있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만족함을 기뻐하고, 둘째 욕심을 적게 부리며, 셋째 희구(希求)하는 것은 완전히 없애고, 넷째 쌓아 모으는 것을 완전히 없앤다.
040_0943_a_04L佛言善男如是如是諸有大力菩薩爲欲成就化度有情故著糞埽衣斯亦非爲下劣麤行以是緣故菩薩常著糞埽之衣善男子菩薩若修十種法者但受三衣何等爲十一者喜足二者少欲三者遠離希求四者離所積聚
다섯째 쌓아 모으는 것을 없애기 때문에 헐리거나 잃어버림이 없고, 여섯째 헐리거나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에 모든 고뇌를 없애며, 일곱째 즐겁지 않는 뜻을 없애고, 여덟째 근심과 한탄을 완전히 없애며, 아홉째 느끼는 것이 없고, 열째 부지런히 수습(修習)하기 때문에 번뇌를 다 끊을 수 있는 것이니라.
040_0943_a_10L五者離積聚故無所壞失六者無壞失故離諸苦惱七者離不悅意八者遠離愁歎九者無所受十者勤修習故而得漏盡
선남자여, 보살이 만족함을 기뻐하고 부지런히 수습하기 때문에 번뇌를 다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그곳을 얻음에 따라 만족하게 여겨 기뻐하기 때문에 능히 욕심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기 때문에 희구하는 것이 없어 모든 쌓아 모은 것을 없애며, 쌓아 모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헐리거나 잃어버림이 없고, 곧 헐리고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에 곧 헐리고 잃어버림에서 생기는 고뇌를 없애느니라. 즐겁지 않는 뜻이 없기 때문에 곧 근심과 한탄이 없고, 근심과 한탄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느낌이 없으며, 느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부지런히 수습하여 곧 번뇌를 다 끊을 수 있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3의만을 받고서 지낼 수 있으리라.
040_0943_a_14L善男子云何是菩薩喜乃至勤修習故而得漏盡謂若菩薩隨所得衣便生喜足由喜足故而能少欲以少欲故無所希求離諸積無積聚故而無壞失無壞失故離壞失所生苦惱離苦惱故無不悅離不悅意故乃無愁歎無愁歎故而無所受無所受故勤行修習乃得漏盡善男子菩薩若修如是十種法但受三衣
040_0943_b_02L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곧 다른 실천을 따르지 않으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탐욕의 실천을 따르지 않고, 둘째 진심(瞋心)의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셋째 우치의 실천을 따르지 않고, 넷째 미워하거나 해치는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다섯째 간탐하거나 질투하는 실천을 따르지 않고, 여섯째 아만의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일곱째 다른 벗들이 명예가 되는 일을 찾는 실천을 따르지 않고, 여덟째 이익 되는 일을 바라는 실천을 따르지 않으며, 아홉째 천마(天魔)를 공경하는 실천을 따르지 않고, 열째 훌륭한 척하거나 애착하는 실천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다른 실천을 따르지 않으리라.
040_0943_a_23L善男子菩薩若修十種法者不隨佗行何等爲十一者隨貪行二者不隨瞋行三者不隨癡四者不隨恚害行五者不隨慳嫉六者不隨我慢行七者不隨求佗知識名稱事行八者不隨希取利養事行九者不隨恭敬天魔而行十者不隨高擧染愛而行如是名爲不隨佗行善男子菩薩若修如是十種法卽不隨佗行
또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항상 걸식을 실천하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중생들을 거둬 주기 위해 걸식을 실천하고, 둘째 차례대로 걸식을 실천하며, 셋째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않고서 걸식을 실천하고, 넷째 만족함을 기뻐하여 걸식을 실천하며, 다섯째 분포(分布)하기 위해 걸식을 실천하고, 여섯째 탐착하지 않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며, 일곱째 분량을 잘 알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고, 여덟째 좋은 품행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며, 아홉째 모든 선근을 원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고, 열째 몸의 생각을 없애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는 것이라.
040_0943_b_09L善男子菩薩若修十種法者常行乞食何等爲十一者爲欲攝受有情故行乞食二者次第而行乞食三者不生疲倦而行乞食四者喜足而行乞食五者爲欲分布而行乞食六者不耽著故而行乞食七者善知量故而行乞食八者爲令善品得現前故而行乞食九者令得圓滿諸善根故而行乞食十者離身想故而行乞食
040_0943_c_02L선남자여, 보살이 중생들을 거둬 주고 나아가 몸의 생각을 없애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보살이 모든 중생들 가운데 고뇌를 받는 자의 그 선근이 미약한 것을 보고는 그들을 거둬 모든 선근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에 걸식을 실천하느니라. 보살이 도시나 촌락에 들어갈 때에는 바른 생각에 머물러서 그 몸을 단정히 하고 행동을 볼 만하게 하며 위의를 올바르게 하고 모든 감관을 고요히 하여, 순리대로 휘둘러보고 옳은 법에 생각을 두어 다니는 곳마다 걸식하지만 차례에 의지함으로써 끝내 빈곤한 사람의 집을 버린 채 바라문ㆍ찰제리ㆍ장자ㆍ거사 등 큰 부호의 집만을 골라 걸식하지 않느니라.
040_0943_b_18L善男子云何是菩薩攝受有情乃至離身想故而行乞食謂若菩薩見諸有情受苦惱者善根微少爲欲攝受令其具足諸善根故而行乞食菩薩若入城邑聚落行乞食時當住正念端直其身進止可觀威儀有則諸根寂靜如理瞻視繫念善法所行乞食依其次第終不棄捨貧寠之舍而從富乞謂於婆羅門帝利長者居士諸大族舍
한 집에서 또 한 집으로 차례차례 걸식하여 그 얻어지는 음식의 분량을 알아 만족하면 그치지만, 걸식하러 가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은 사나운 개를 기르는 집과 송아지를 갓 나은 집, 맑고 깨끗한 계율을 파괴하여 지옥에 떨어져 능히 요란을 일으킬 자의 집, 그 밖의 남자ㆍ여인ㆍ동남ㆍ동녀들이 다 싫어하는 집들이 그것이니라.
040_0943_c_04L從一至一次第行乞所獲飮食知量止足唯除異處而悉不往謂異處者惡犬畜家及有新生犢子之舍破壞淨戒墮畜生中能起嬈亂之者若男若女童男童女共所嫌棄
이러한 곳만을 다 멀리 떠나고 그 차례에 따라 걸식하기 때문에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고 나무라거나 헐뜯음도 없으며, 저 중생들에게 염애(染愛)하지 않고 성냄과 미워함을 일으키지도 않고 싫어하여 버리지도 않으며, 그 얻는 음식을 주는 대로 받되 곧 만족하고 기뻐하면서 받고나서는 자신이 거처하는 승방(僧坊)에 돌아와 그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여래의 불상 앞에서나 여래의 탑 앞에서 존중 공경하여 공양을 마치느니라.
040_0943_c_09L如是等處皆悉遠離由其次第行乞食故不生疲倦亦無譏毀於彼有情不生染愛不起瞋恚亦不厭棄所得之食隨應而受便生喜足受已還復所居僧坊收其衣鉢盥手濯足於如來像前或如來塔前尊重恭敬作供養已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그 걸식한 음식을 네 몫으로 나눠서, 한 몫은 범행(梵行)을 같이 하는 이에게 주고, 다른 한 몫은 빈곤한 중생에게 보시하고, 또 한 몫은 나쁜 갈래에 떨어진 자에게 보시하고, 나머지 한 몫을 자신이 먹느니라. 그런가 하면 보살이 그 음식을 받음에도 염애(染愛)를 내지 않고 교만하거나 방일하지도 않으며, 다만 몸을 유지하기 위해 먹기는 하지만 역시 그 몸을 너무 수척하게 하지도 않느니라.
040_0943_c_15L入自舍中以所乞食而爲四分一分授彼同梵行者一分施於貧苦有情一分當施墮惡趣者一分自食菩薩雖受其食不生染愛不起驕逸亦不取著其所受食但爲資養身故亦不令其身極羸瘦亦不沈重
040_0944_a_02L왜냐하면 만약 너무 수척해질 경우엔 옳은 법을 닦을 때 방해가 되고, 너무 비대해질 경우엔 졸음과 잠만을 증장하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그 옳은 품행을 나타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음식을 받으면 바로 정진을 일으켜 모든 게으름을 없애고 점점 보리의 옳은 법을 닦아 나아가 원만하게 하며, 그 보리의 법을 닦아 나아가 원만케 함으로써 아집을 일으키지 않고 아집이 없기 때문에 그 몸의 살[身肉]로써 중생들에게 보시할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항상 걸식을 실천할 것이니라.”
040_0943_c_21L何以故若極羸瘦妨修善若極沈重增長睡眠菩薩爲令善品得現前故隨受食已發起精進離諸懈怠漸當修進菩提分法令得圓滿以其修進菩提分法得圓滿故不起我執無我執故乃至能以身肉施諸有情善男子菩薩若修如是十種法者卽常行乞食
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卷第十三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삼마혜다(三摩呬多)라 음역. 정(定)의 다른 이름. 등(等)은 마음에 혼침과 도거(掉擧)가 없고 평정 평등한 것. 사람이 선정을 닦으면 이 등(等)을 일으키게 되므로 등인이라 한다.
  2. 2)아련야(阿練若)ㆍ아란나(阿蘭那)ㆍ아란양(阿蘭攘). 적정처(寂靜處)ㆍ무쟁처(無諍處)ㆍ원리처(遠離處)라 번역. 시끄러움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수행하기에 적당한 삼림(森林)ㆍ넓은 들ㆍ모래사장 등을 가리키는 말. 보통 촌락에서 1구로사(拘盧舍)나 반 구로사쯤 떨어진 곳이다.
  3. 3)세속 사람이 버린 헌 옷을 주어다 빨아서 지은 가사(袈裟). 이 버린 옷은 똥을 닦은 헝겊과 같기 때문에 분소의라 한다. 또 이 헌옷 조각조각을 기워 모아서 만든 옷이므로 납의(衲衣)라고도 부른다. 비구나 비구니가 이 옷을 입는 것은 탐심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4. 4)①성자의 종성(種性)이란 뜻. 불도에 들어가 계ㆍ정ㆍ혜 3학을 닦는 사람. ②성자되는 행법. 현재의 의복ㆍ음식ㆍ와구(臥具)에 만족하며, 악을 끊고 선을 닦기를 좋아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