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41_0136_a_01L대승중관석론 제10권
041_0136_a_01L大乘中觀釋論 卷第十
안혜 지음
유정 등 한역
041_0136_a_02L安慧菩薩造
西天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卿傳梵大師賜紫沙門臣 法護 奉詔譯
14. 관합품(觀合品)
041_0136_a_05L觀合品第十四
또 다음에 어떤 외부 사람이 말한다. 승의제 중에는 그 눈[眼] 등과 제행의 법[諸行法]이 있으며, 그것은 화합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의 법이 있으니, 말하자면 안근(眼根)ㆍ색경(色境)ㆍ안식(眼識)이 합하므로 촉(觸)을 생한다”1)라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귀[耳] 등의 법도 역시 또한 이와 같이 따라 일어나 모두 결합한다. 이것을 화합이라 이름하며, 거북이 틸 등처럼 없지 않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혹은 모든 법에 화합하는 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041_0136_a_06L復次有外人言勝義諦中有其眼等及諸行法彼說和合如佛所言有三種法謂眼根色境眼識合故生觸此所說餘耳等法亦復如是隨起諸此名和合非不有故如龜毛等故世尊或說諸法有所和合
【論】세존께서 말씀한 이것들은 결정적으로 승의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a_12L論者言世尊說者此等決定非勝義是故頌言
【論】능히 보는 것[能見] 및 보이는 것[所見]과
보는 자[見者] 등은 각각 달라서
그것이 다시 서로 마주 대해도
일체는 모두 화합이 없다.
041_0136_a_14L能見及所見
見者等各異
彼更互相望
一切皆無合
【釋】이 의미는 곧 줄줄이 서로 마주 대한다는 것이다.
041_0136_a_16L釋曰此義卽是二二相望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a_17L復次頌言
【論】이와 같이 탐욕과 탐욕자 및
그 탐욕의 법과
성냄 등의 나머지 번뇌와
나머지 처(處)2)도 셋이 합하는 일이 없다.
041_0136_a_18L如是染染者
及彼所染法
瞋等餘煩惱
餘處三無合
【釋】그 일체법은 다시 서로 마주 대해도 모두 전부 합하는 일이 없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36_a_20L釋曰彼一切法更互相望皆悉無合何所以邪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a_22L復次頌言
【論】다름이 다름과 함께 합하는 일이 있어도
그 보는 것(見] 등의 모든 법에는
다른 성품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합하는 일을 말할 수 없다.
041_0136_a_23L異共異有合
彼見等諸法
異性無所有
故不可說合
041_0136_b_02L【釋】자체가 이와 같으므로 다시 서로 마주 대해도 다른 성품에는 자체가 없다.
041_0136_b_02L釋曰自體如是故更互相望異性無體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b_03L復次頌言
【論】오직 보는 것 등의 법에
다른 성품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041_0136_b_04L非唯見等法
異性無所有
【釋】어떻게 다른 성품이 있겠는가? 그것은 병이나 옷 등과 같다.
041_0136_b_05L釋曰云何異性如甁衣等
다음에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次下頌言
【論】나머지 모든 법도 모두 동일하게
다른 성품을 얻을 수 있지 않다.
041_0136_b_06L餘諸法皆同
無異性可得
【釋】이렇게 말하는 것은 언어 중에서 다른 성품의 원인이 없다는 것에 능히 믿음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36_b_07L釋曰此等所說非語言中而能生信無異性因此復云何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b_09L復次頌言
【論】다름은 다름으로 인하여 다름이 있으며,
다름은 다름을 여의고 다름이 없다.
만약 법이 원인으로부터 나온다면
그것은 다름을 얻을 수 없다.
041_0136_b_10L異因異有異
異離異無異
若法從因出
彼無異可得
【釋】다른 법은 다른 법을 인대하여야 곧 그 다름이 있다. 이 의미를 마땅히 알면, 법의 자성 등에 어떻게 다름이 있겠는가? 만약 먼저는 다름이 없고 나중에야 다름으로 인하여 다름이 있다면, 이것은 곧 서로 어긋난다. 또한 모든 법은 다름을 상대하여 다른 성품을 얻을 수 있지 않다. 이것을 마땅히 생각하여 간택하라.
041_0136_b_12L釋曰異法因待異法卽有其異此義應知法自性等云何有異若先無異後乃因異有異此卽相違亦非諸法有異對待異性可得此應思擇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b_16L復次頌言
【論】만약 다름이 다름에 대해서 다르다면
다름을 여의고는 얻는 바가 없으며,
그 다름은 다름에 다르지 않고
다름을 여의고는 다름이 있지 않다.
041_0136_b_17L若異異於異
離異無所得
彼異不異異
離異無有異
【釋】또한 다른 원인을 상대하여 있지 않으며, 다른 법 중에서 여의고는 얻는 바가 없다. 불의 자성처럼 자체를 여의고는 곧 뜨거운 성품이 없다. 비유하면 병 등처럼 자체를 여의고 다른 성품을 보지 못한다. 여기에서 마땅히 승의제에는 다른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41_0136_b_19L釋曰亦無異因對待而有於異法中離無所得如火自性離自體中卽無熱性譬如甁等離於自體不見異性此中應知勝義諦中無有異性
041_0136_c_02L승론사(勝論師)는 말한다. 만약 다른 성품을 말한다면 곧 같은 법이다. 만약 공능(功能)을 달리한다면, 지금 이것도 또한 마땅히 다름이 있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물이 자체적으로 상대함이 없는 것과 같다.
041_0136_b_23L勝論師言若說異性者卽是同法差別功能今此亦應有異可得如無異自體對待
【論】만약 그 다른 사물이 자신의 모습을 여의고도 다름이 있어 취할 수 있다면, 그 같은 법은 다른 법 중에서 머무는가, 다르지 않은 법 중에서 머무는가?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041_0136_c_03L論者言若彼異物離於自相有異可取者而彼同法爲異法中住爲不異法住此復云何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c_06L復次頌言
【論】다름의 중에는 다른 성품이 없으며,
다르지 않음 중에도 또한 없다.
다른 성품이 있지 않으므로
곧 이것과 저것의 다름이 없다.
041_0136_c_07L異中無異性
不異中亦無
無有異性故
卽無彼此異
【釋】다름과 다른 성품이 합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다름과 다르지 않음도 또한 서로 어긋난다. 다른 성품이 없는 중에서 그 다른 성품은 결정적으로 마땅히 부정된다. 만약 그 다른 성품을 얻는 바가 있다면, 결정적으로 서로 어긋난다. 다른 성품을 상대하여 다르지 않은 성품이 있다면, 필경 성품 중에 이미 다른 성품이 없으며, 또한 다르지 않음도 없다. 왜냐 하면 본래 다른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승의제 중에는 저것과 이것의 다름이 없다.
041_0136_c_09L釋曰異與異性合無此道理異與不異亦互相違無異性中而彼異性定當止遣若其異性有所得者決定相異性對待有不異性畢竟性中旣無異性亦無不異何以故本無異性勝義諦中無彼此異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만약 법 자체의 모습이 서로 쇠잔하여 변한다면, 그것은 다름이 있으므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041_0136_c_15L復有人言若法自相互相衰變彼有異故可說爲異
【論】만약 다른 모습이 있어 그 법을 상대하여 이것을 곧 그 쇠잔하여 변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미 먼저 모습이 없는데 나중에 쇠잔하여 변함이 있다는 것은 곧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혹시 먼저 쇠잔하여 변함이 있어도 이 또한 옳지 않다.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그 쇠잔하여 변함을 여의고 다른 모습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성품과 다르지 않은 성품이 화합하는 일이 있지 않다.
041_0136_c_17L論者言若有異相對待彼法此卽可說有其衰變旣先無相後有衰變非道理若或先有衰變此亦不然是決定離其衰變異相不有是故異非異性無有和合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c_22L復次頌言
【論】한 법은 스스로 합하지 않고
다른 법도 또한 합하지 않는다.
041_0136_c_23L一法不自合
異法亦不合
041_0137_a_02L【釋】어찌하여 그러한가? 합하는 의미는 자체가 없기 때문에, 다름 중에는 곧 다른 법이 있을 수 없다. 만약 다른 성품이 있다면, 곧 별다른 과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도 법이 합하는 일이 있지 않다. 합하는 법과 합하는 때를 만약 분별한다면, 합하는 일은 곧 합함이 없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36_c_24L釋曰何所以邪合義無體故異中卽無異法可有若有異性卽有別異過失可見是故無有少法可合合法合若分別者合卽無合此復云何
다음에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7_a_05L下頌言
【論】합하는 법 및 합하는 때와
합하는 자는 전부 모두 없다.
041_0137_a_06L合法及合時
合者悉皆無
【釋】이와 같음으로 말미암아 작자와 작업 및 만드는 법도 전부 있지 않다. 어떻게 보는 것 등의 모든 법이 다시 서로 마주 대하여 합하는 일이 있겠는가.
041_0137_a_07L釋曰由如是故作者作業及所作法亦悉不有云何見等諸法更互相望而有合邪
15. 관성품(觀性品)
041_0137_a_10L觀性品第十五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만약 스스로 분별하여 성립된 것이 있다면, 그 일체법은 그 자성이 있어 모두 허망한 법이다. 그러나 그 제행(諸行)을 그대가 또한 허망한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능히 성립하는 것[能成]과 성립되는 것[所成]이 서로 어긋남이 있다.
041_0137_a_11L復有人言如汝所說若自分別有所成立彼一切法有其自性皆虛妄法然彼諸行汝亦說爲虛妄法者卽能成所成而有相違
【論】모든 법의 자성이 만약 인연으로부터 일어난다면, 그것은 자성이 아니다. 자성은 지어지는 도리가 없어서 연기법이 나타나는 것과 서로 어긋남이 있기 때문이다. 승의제에서 만약 법이 그 모습을 증광시킨다면, 자체의 모습을 얻을 수 없기 해문이다.
041_0137_a_15L論者言諸法自性若從因緣有所生起彼非自性以自性無所作道理現緣法有相違故勝義諦中若法增相自相不可得故
분별하지 않는 지혜가 일어날 때 여실하게 비추어 안다. 만약 얻는 바가 있다면 모두 세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인연이 나타나는 것과 서로 어긋남이 있으니, 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도 법을 얻는 일이 있다면, 그 법의 자체는 전부 있는 바가 없다.
041_0137_a_19L無分別智起時實照了若有所得皆是世俗所行止遣者卽與現緣有所相違以不生勝義諦中若有少法而可得者法自體悉無所有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7_a_23L復次頌言
【論】인연으로 화합한다면
모든 법은 곧 생함이 없다.
041_0137_a_24L從因緣和合
諸法卽無生
041_0137_b_02L【釋】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먼저 자성이 있다면 어떻게 그 인연으로부터 성립되겠는가?
041_0137_b_02L釋曰無自性故若先有自性云何從彼因緣所成
다음에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次下頌言
【論】만약 인연으로부터 생한다면
곧 자성은 작위가 있으리.
041_0137_b_04L若從因緣生
卽自性有作
여기에 응당 질문이 있다. 만약 이것이 작위법이라면 어떠한 과실이 있는가?
041_0137_b_05L此中應問若此作法有何過失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답한다.
041_0137_b_06L故頌答言
【論】자성을 작위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어떻게 타당하겠는가.
자성은 허망한 거짓이 없어서
다른 법으로 성립되는 것을 여읜다.
041_0137_b_07L自性名作法
云何當可得
自性無虛假
離佗法所成
【釋】본래 자성은 만들어지는 법이 아니다. 만약 보는 것이 있고 얻는 바가 있다면, 모두 인연으로 성립된 것이다. 이 중에서 이와 같이 부정하여 대치한다.
041_0137_b_09L釋曰本非自性有所作法若有所見及有所得皆因緣成此中如是止遣對治
【論】나의 이 비량(比量)3)으로는 승의제에서 자성이 모두 공하다. 이와 같이 존재하는 눈 등의 모든 법이 마땅히 모두 인연으로 생한 성품이며 환상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 등의 그 모습이 만약 자성이 있어서 얻을 수 있다면, 곧 인연을 상대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며, 열반 등과 같다. 이것은 곧 타비량(他比量)4)과 서로 어긋남을 말하는 것이다.
041_0137_b_12L論者言我此比量勝義諦中自性皆如是所有眼等諸法應知皆是因生性如幻所作男女等相彼相若有自性可得卽非因緣對待所成涅槃等此說卽與佗比量相違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진실한 의미 같은 것은 다만 불이 뜨거움으로 자성을 삼는 것과 같다. 만약 불이 먼저 인연으로부터 생한다면, 곧 만들어진 바가 있다. 이에 자성은 만들어지는 도리를 얻을 수 있음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불은 곧 그 먼저가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의 자성은 허망한 거짓이 있지 않고, 다른 법으로 성립됨을 여의었음을 알아야한다.
041_0137_b_17L或有人言如實義者旦如火以熱爲自性若火先從因緣所生卽有所作乃非自性容有所作道理可得若爾火卽有其先知是故當知諸法自性無有虛假離佗法成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모든 법의 자성은 별다른 것이 있지 않다. 이것은 과실이 없다. 만약 설명한 것처럼 인연으로부터 생한다면, 불의 뜨거운 성품을 어떻게 먼저 알겠는가?
041_0137_b_22L復有人言諸法自性無有別異此無過失若如所說從因緣生火之熱性云何先知
041_0137_c_02L아비담(阿毘曇)5) 사람이 말한다. 모든 법의 자성이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허망한 거짓이 없고 다른 법을 여의어 인연으로 성립된 것이라면, 불의 뜨거운 성품 이것은 또 어떻게 먼저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중에서 만약 먼저 자체가 있어 얻을 수 있다면, 곧 자성이 아니니 불이 어떻게 있겠는가?
041_0137_c_02L阿毘曇人言諸法自性如是決定無有虛假離於佗法因緣所成者火之熱性此復云何先有所得此中若先有體可得卽非自性火云何有
경부(經部)6)의 스승이 말한다. 만약 법의 자성이 허망한 거짓이 없고 다른 법으로 성립됨을 여의었다면, 이 중에서 결정적으로 혹은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자성이 만약 혹시 조금이라도 법을 만들 수 있음을 허용한다면, 곧 다른 법을 상대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성은 작자가 있지 않으니, 이것이 또 어떻게 그 만들어진 바가 있겠는가? 만약 먼저 인연으로 만들어진 바가 없다면 곧 과실이 없으며, 만약 먼저 법이 있다면 어떻게 자체가 없다고 이름하겠는가?
041_0137_c_06L經部師言若法自性無有虛假離佗法成此中決定或有所得彼卽不有是故自性若或容有少法可作卽佗法對待此不和合如是自性無有作此復云何有其所作若先不有因緣所作卽無過失若先有法何名無體
【論】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 하면 그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알라, 만들어지는 것은 모두 인연법을 상대하여 얻는 것이라, 그것은 곧 조금도 법을 만들 수 없다. 왜냐 하면 만약 법이 나타나 전이하면, 곧 먼저는 있지 않기 때문이다.
041_0137_c_12L論者言此說不然何以故彼無所有云何無所有當知有作皆是緣法對待所得彼卽無有少法可作何以故若法現轉卽先不有
어떻게 만드는 것이 있겠는가? 만약 법이 나타나 전이하면, 이것은 또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름하겠는가? 만약 나타나 전이하는 데에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혹은 먼저는 없었다가 전이할 때 만들어진 것이 있음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과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먼저 법이 없으면 곧 만들어진 바가 없으니, 토끼의 뿔 등과 같다.
041_0137_c_16L何有所作若法現轉此復云何說名所作若於現轉有所作者其或先無轉時容有所作此卽過失是故若先無法卽無所作如兔角等
041_0138_a_02L 그것이 어찌하여 만드는 것이 없는가? 만약 혹시 작자가 그 역능이 있다면, 그는 곧 만드는 것이 있다. 비유하면 돌여인[石女]에게 자식이 없는 것과 같이, 어떻게 이름이 있는 것으로서 비슷한 법의 가능과 불가능을 드러내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주체와 객체의 분별도 또한 말로 분별하지 못함이 없다. 왜냐 하면 있음으로 인하여 없음을 말하는데, 이 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전부 말로써 분별할 수 없다. 설혹 능히 사물의 자성이 있다 해도 또한 다른 원인과 다른 법을 얻을 수 없으니, 어떻게 결정적으로 그 만들어진 것이 있겠는가?
041_0137_c_20L彼何無作若或作者有其力能彼卽有作譬如石女無子云何有名而可詮表相似之法能與不能能所分別亦非不有言說分別何以因有說無是無亦不可得如是決定悉不可以言說分別設或能有物亦無異因異法可得云何決定有其所作
만약 법이 인연의 쌓임이라 하여도, 그 인연의 차별 또한 성립하지 못한다. 이 법에서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 중에서 작자의 성품을 보는 것은 비유하면 허공의 꽃과 같다. 그러므로 승의제에서 법은 자성이 없다. 승의제에 법이 있다면 모두 자성에 상대된다.
041_0138_a_04L若法緣聚彼緣差別而亦不以於是法不明了故卽於是中見作者性譬如空花是故勝義諦中法無自性勝義諦中有法皆是自性對待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a_07L復次頌言
【論】만약 법에 자성이 없다면
어떻게 타성(他性)을 보리오.
자성이 타성에서
또한 타성으로 이름되는 것이다.
041_0138_a_08L若法無自性
云何見佗性
自性於佗性
亦名爲佗性
【釋】만약 자성이 없다면 곧 타성이 없다. 왜냐 하면 만약 자성이 성립되면, 그 성품이 변하여 허물어져 타성이 있게 됨을 허용하는데, 이미 자성이 없으니 어떻게 타성이 있겠는가.
041_0138_a_10L釋曰若無自性卽無佗性何以故自性有成彼性變壞容有佗性旣無自性何有佗性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만약 자성을 말하면 또한 타성을 이름한다. 이와 같이 다른 법이 화합하여 접촉을 생하는 것이 곧 타성이다.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타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있지 않다. 그러므로 타성이 있지 않은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왜냐 하면 만약 자성이든 타성이든 둘 다 성품이 없으며, 얻는 바가 있다면 그러한 말은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041_0138_a_13L此復云何若說自性亦名佗性如是異法和合生觸此卽佗性法無自性故若說有佗性彼卽不有是故無有佗性此亦不然何以若自性若佗性二俱無性有所得彼說皆空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a_18L復次頌言
【論】자성과 타성을 여의고
또 어떻게 법이 있으리.
만약 자성과 타성이 있으면
곧 모든 법이 성립하리라.
041_0138_a_19L離自性佗性
復云何有法
若有自佗性
卽諸法得成
【釋】존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의 자성은 차별이 없는 중에서 법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만약 다시 부정되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도리어 법을 얻을 수 있음을 성립시킨다.
041_0138_a_21L釋曰無所有故諸法自性無差別中無法可有此中若復有所遮遣如是還成有法可得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a_24L復次頌言
041_0138_b_02L【論】있는 법이 만약 성립하지 못하면
없는 법도 또한 성립하지 못한다.
있음의 허물어짐을 없음이라 이름하여
세상 사람은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041_0138_b_02L有法若不成
無法亦不成
有壞名爲無
世人說無體
【釋】이러한 설명은 도리에 맞는다. 왜냐 하면 법이 허물어짐을 없음이라 이름하는데, 세상 사람은 그것으로써 자체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이 허물어질 수 없다면, 그가 말하는 없음도 또한 곧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없음도 또한 수립될 수 없다.
041_0138_b_05L釋曰此說如理何所以邪法壞名無世人說彼以爲無體若無法可壞所說無亦卽不有是故此無亦不可立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b_08L復次頌言
【論】만약 자성과 타성에
혹은 자체가 있음과 자체가 없음을 본다면
그는 곧
여래의 진실한 의미를 볼 수 없다.
041_0138_b_09L若見自佗性
或有體無體
彼則不能見
如來眞實義
【釋】이것은 화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불자(佛子)들은 널리 세간이 다하도록 전부 섭수하여 능히 오랜 동안 무거운 짐들을 지며, 자성과 타성에 있어서 전혀 보는 바가 없으며, 분별하지 않는 지혜로 일체의 별다르게 일어나는 자성과 타성을 그쳐 버린다. 이것은 어떻게 아는가? 『잡아함(雜阿含)』 등의 교리에 의거하여 입증된다.
041_0138_b_11L釋曰此不和合是故諸佛子等普盡世閒悉爲攝受而能長時荷諸重擔於自佗性悉無所見以無分別智息一切別異所起自性佗性此云何爲依『雜阿含』等敎理證成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한다.
是故頌言
【論】세존은 이미 있음을 여의고
또한 없음을 여의는 것을 성취하여
가전연(迦旃延)에게
응당 있음과 없음의 둘을 여의라고 가르치셨다.
041_0138_b_16L世尊已成就
離有亦離無
敎授迦旃延
應離有無二
【釋】부처님께서 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중생은 두 가지 법에 의지하니, 시초 없는 예로부터 있음에 집착하고 없음에 집착한다.”
041_0138_b_18L釋曰佛告迦旃延世閒衆生依止二無始以來著有著無
또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중생은 있음을 고집하여 항상함에 집착하고, 없음을 고집하여 단멸에 집착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여기에 마땅히 질문이 있다. 만약 승의제에 자성 등이 없다면, 어떻게 그 진실한 의미를 볼 수 있겠는가? 대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을 본다는 것은 마땅히 모두가 인연으로 생한 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세속의 상태에서는 성립되는 것이므로, 여실하게 관찰할 때는 승의제가 아니다.
041_0138_b_20L又如佛告阿難言世閒衆生執有著常執無著斷此中應問若勝義諦中無自性等何能見彼眞實義荅此說見實者知皆是因緣生法世俗分位所成立如實觀時非勝義諦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b_25L復次頌言
041_0138_c_02L【論】만약 자성과 타성에
혹은 자체가 있음과 자체가 없음에
자체에 다른 성품이 있다면
법은 곧 얻을 수 없다.
041_0138_c_02L若自性佗性
或有體無體
自體有異性
法卽不可得
【釋】이 중에서 모든 색의 모습에 대한 견해를 부정하고 마땅히 진실을 관찰하라.
041_0138_c_04L釋曰此中止遣諸色相見當觀眞實
존자 제바(提婆)가 설한 게송에서 말하였다.
041_0138_c_05L如尊者提婆所說頌言
식(識)으로부터 종자가 생하여
삼유(三有)7)의 경계가 성림한다.
경계에 자아가 없음을 본다면
세 가지 있음의 종자가 소멸한다.
041_0138_c_06L從識種子生
成三有境界
見境界無我
三有種子滅
【論】만약 법의 자체에 다른 성품이 있다면, 또한 마땅히 결정적으로 법이 있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의 자체는 만약 인연을 여의면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의도하는 바는 지어진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041_0138_c_08L論者言若法自體有異性者亦應決定有法可得何以故諸法自體若離因緣無所得故此中意者無所作性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c_11L復次頌言
【論】만약 그 다른 성품을 본다면
모든 법에 자체가 있지 않다.
어떻게 자체가 없는데
다른 성품을 마땅히 얻을 수 있으리오.
041_0138_c_12L若見彼異性
非諸法有體
云何自體無
異性當可得
【釋】만약 있음에 집착하면, 이것은 과실을 이룬다. 만약 법의 자체에 성품이 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곧 인연에서 생한 것이 아니다. 먼저 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자체의 모습이 그치어 소멸한 뒤 얻는 바가 있다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먼저 마음으로 좋아하는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은 이 중에도, 또한 다시 드러내 표시할 것이 없다. 어떻게 자성으로 성립된 것이면서 다른 성품을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자성의 있음과 자성의 없음이 상대하여 화합하지도 않는다.
041_0138_c_14L釋曰若著於有此成過失若法自體有性可得卽非因緣以先無法有所造作若彼自相息滅後有所得此亦不然如先意樂因緣所作此中亦復無所詮表云何自性所成而有異性可得亦非性與無性相對和合
이 중에서 만약 법이 소멸하지 않고 나중에 얻는바가 있다면, 그것도 또한 있지 않다. 어떻게 자체에 진실로 다른 성품이 있어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법 자체의 색 모습 중에 자체가 진실로 있지 않으며, 또한 법의 모습이 없는 중에서 다른 성품과 화합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자성과 자성이 없음의 둘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041_0138_c_20L此中若法不滅後有所得彼亦不有云何自體實有異性可得亦非有法自色相中自體有實亦非無法相中異性和合何以故性與無性二相違故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8_c_24L復次頌言
041_0139_a_02L【論】있음을 말하는 것은 곧 항상함에 집착하는 것이고,
없음을 말하는 것은 곧 단멸의 견해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의 성품에
지혜로운 자는 의지하여 집착하지 않는다.
041_0139_a_02L言有卽著常
言無卽斷見
是故有無性
智者無依著
【釋】이것은 어찌하여 그러한가? 있음과 없음의 성품에 집착하여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041_0139_a_04L釋曰此中云何著有無性墮斷常見故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9_a_05L復次頌言
【論】만약 법에 자성이 있어,
없지 않으면 곧 항상함이다.
먼저 있다가 지금은 없다면
이것은 도리어 단견을 이룬다.
041_0139_a_06L若法有自性
非無卽是常
先有而今無
此還成斷見
【釋】법에는 자성이 없으며, 또한 다시 그 자성이 없음을 얻을 수도 없다. 만들어지는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는 성품을 고집하면 이에 상견을 집착하고, 만약 법이 먼저 있다가 지금은 없다면 이것은 곧 법을 허무는 것이 되어 또한 단견을 이룬다.
041_0139_a_08L釋曰法無自性亦復非彼無性可得以離所作性故若執有性乃著常見若法先有而今無者此卽壞法亦成斷見
만약 그렇다면 곧 일체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결과로 얻는 바는 전부 허물어져 단견과 상견에 떨어지고, 세간의 법과 서로 어긋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만약 모든 법에 자성이 있지 않음을 본다면, 곧 진실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중도(中道)의 의미를 입증하여 이룬다.
041_0139_a_12L若爾卽於一切愛非愛果所得悉壞墮斷常見世法相違是故應知若見諸法無有自性卽見眞實此卽證成中道之義
16. 관박해품(觀縛解品) ①
041_0139_a_15L觀縛解品第十六
여기에 응당 질문이 있다. 어찌하여 모든 법은 승의제(勝義諦)에 있어서 성품이 있거나, 성품이 없거나, 둘 다 자체가 없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곧 태어나고 죽음도 없으며, 또한 열반도 없고 계박도 없고 해탈도 없을 것이다. 승의제에서는 모든 법이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므로 마땅히 일체가 모두 없을 것이다. 이에 어떻게 중생이 저 모든 취(趣)8)에서 오고 가며 거듭거듭 생하고 소멸한다고 말하는가?
041_0139_a_16L此中應問云何諸法於勝義諦有性無性二俱無體若其然者卽無生死亦無涅槃無縛無解以勝義諦中諸法無性故如是卽應一切皆無此云何說衆生於彼諸趣往來數數生滅
대답한다. 만약 모든 현상(現象)이나 혹은 저 중생(衆生)이 오고 감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분별하는 것은 항상한 것인가, 항상하지 않은 것인가? 둘 다 옳지 않다.
041_0139_a_21L若言諸行或彼衆生有往來者所分別爲是常邪爲無常邪二俱不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故下頌言
041_0139_b_02L【論】모든 현상[諸行]이 만약 윤회하여 도는 것이
항상하다면 곧 오고 감이 없고,
항상하지 않아도 오고 감이 없으리.
중생도 또한 이와 동등하다.
041_0139_a_24L諸行若輪轉
常卽無往來
無常無往來
衆生亦同等
【釋】만약 항상하다면, 곧 생하고 소멸하는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항상하다면 곧 필경에 적멸한 성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항상하지 않다면, 이미 소멸한 모든 법이 다시 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041_0139_b_03L釋曰若是常者卽無所作生滅無性又常卽畢竟寂滅性故若無常者已滅諸法不復生故
로가야타(路伽耶陀)9) 사람이 말한다. 그대가 모든 현상 및 저 중생이 오고 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취한다. 왜냐 하면 진실로 다른 세상에서 와서 이 세상에 태어남도 없고, 또한 이 세상에서 다시 다른 세상으로 돌아감도 없기 때문이다.
041_0139_b_06L路伽邪陀人言汝說諸行及彼衆生無往來者成我所成何以故實無佗來生此世亦無此世復還佗世
우리 종파에서 게송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041_0139_b_09L我宗頌言
그대는 이제 우선 이와 같이 사람이
모든 근(根)을 원만히 구족한 것과 그 행하는 것을 관찰하라.
또 만약 그가 들은 것이 많다거나,
혹은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말한다면,
041_0139_b_10L汝今且觀如是人 諸根圓具及所行
又若說佊有多聞 或爲惡獸所食噉
방자하여 그것에게 먹히는 바가 되어 버림받게 된 것이고,
과거에 그의 육신 그것은 곧 사라진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으니 두려운 마음도 없다.
응당 이 육신은 오직 행취(行聚)뿐임을 알아야 한다.
041_0139_b_12L恣佗所食爲所棄 過去佗身彼卽無
不還後世無怖心 應知此身唯行聚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만약 자각하는 일이 항상 머무른다면, 곧 이와 같이 중생 및 행(行)이 오고 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바는 응당 이와 같이 행하여진다.
041_0139_b_14L此中意者若有覺常住卽非如是衆生及行可說往來故我所說應如是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지금의 생애 이전에 과거의 생애가 있어 지금 생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태(胎) 속으로 처음 들어갈 때 처음의 자각이 결정적으로 자체가 상속하여 들어가고, 그 다음에 앞의 자각심이 경계를 여의지 않고 능히 취함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자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041_0139_b_17L若有人言此生之前有過去生可爲因此不遮遣何以故如入胎初覺決定自體相續有入次前覺心不離境界有能取故如後起覺
우리 종파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우선 지금 생애에서는 눈[眼] 등의 의지하는 기관을 여의고 결정코 자각함이 있지 않다. 만약 자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다음에 태 속으로 들어갈 때 처음 자각한다면, 곧 눈 등 의지하는 기관을 결정코 얻는 일이 있을 것이다.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 애초부터 오고 가며 태어남과 죽음을 따라 유전할 것이며, 저 미래의 생애에서도 또한 서로 원인이 되어 죽지 않고도 자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 현재에 자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을 것이다.
041_0139_b_20L我宗說此亦不然且非今生離眼等所依決定有覺若有覺心次於入胎初覺卽眼等所依定有所得以先有故卽有無始往來生死隨轉彼未來生亦可相因未死有覺如現起覺
041_0139_c_02L 만약 자각하는 것이 상속하여 원인이 될 수 있다면, 또 그 의지하는 기관을 여의고는 상속하는 자각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오직 하나의 자각이 있을 뿐이며, 내지 끝없이 항상 이렇게 머무르기 때문이다.
041_0139_c_02L有覺相續可爲因者又離彼所依無相續覺何以故唯有一覺乃至未終常如是住故
【論】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비유는 자체가 없으며, 또한 도리에 맞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제바달다(提婆達多)10)가 상속 중에서 색(色)을 자각하고 소리[聲]를 자각하는 것이 다름이 없지 않으니, 경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상속하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같다.
041_0139_c_05L論者言汝此所說譬喩無體亦非道何以故且如提婆達多於相續中色覺與聲覺彼非不異境界別故佗人相續覺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그가 취하는 모든 법은 동일하거나 만약 다르거나, 항상하거나 항상하지 않거나 모두 말할 수 없다.
041_0139_c_09L復有人言彼諸取法若一若異常與無常皆不可說
【論】모든 취(趣)를 가고 오는 것이 항상하고 항상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과실을 이룬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39_c_11L論者言諸取往來常與無常俱成過何所以邪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故下頌言
【論】사람이 만약
온(蘊)ㆍ처(處)ㆍ계(界) 중에서 가고 오는 일이 있다면,
다섯 가지로 추구하여도 없으니
누가 가고 오는 자를 거두리오.
041_0139_c_13L人若有往來
於蘊處界中
五種推求無
誰受往來者
【釋】온ㆍ처ㆍ계의 모든 색법(色法) 가운데 모습이 있음을 취할 수 없다. 행(行) 및 식(識)을 여의고 자세히 추구하여 보아도 얻을 수 없어, 석녀(石女)의 자식과 같다. 다섯 가지로 추구하여도 그가 말하는 가고 오는 자를 얻을 수 없다.
041_0139_c_15L釋曰非蘊處界諸色法中有相可取離行及識審細推求悉不可得如石女子五種推求彼說往來亦不可得
여기에 마땅히 질문이 있다. 만약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온(蘊) 밖에 별다른 온의 자체가 없고, 또한 이 온과 상즉하지도 않는다면, 어찌하여 여래는 또한 오온(五蘊)을 구족하였는가?
041_0139_c_18L此中應問若如所說此蘊之外無別蘊體亦不卽此蘊者云何如來亦具五蘊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답하여 말한다.
故頌答言
【論】능히 취하는 것[能取]과 취해지는 것[所取]에는
모든 존재의 가고 옴이 없다.
존재가 없다면 곧 취함이 없으니
어떻게 가고 오는 자가 있으리오.
041_0139_c_21L能取及所取
無諸有往來
無有卽無取
何有往來者
041_0140_a_02L【釋】만약 먼저 취함을 여읜다면, 곧 다시 취함이 없으며, 또한 동시에 취하는 자체가 생할 수 없다. 그것은 동시적인 성품이 아니기에 존재가 수립될 수 없고, 혹은 다시 자체를 여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는 곧 별다르게 취함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이와 같기 때문에 능히 취하는 것과 취해지는 것이 없으며, 이로 말미암아 또한 태어나고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041_0139_c_23L釋曰若先離取卽復無取亦非同時取體可生彼不同時性無有可立復離體而不有故此義卽是無別有以衆生無體故此中意者如是卽無能取所取由此亦無生死可得
大乘中觀釋論 卷第十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이와 근(根)ㆍ경(境)ㆍ식(識)의 세 가지가 합하여 촉(觸)이 생한다고 근본불교 이래 설명되고 있다.
  2. 2)나머지 처(處)는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 육처(六處) 가운데, 이미 예를 든 눈의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를 말한다.
  3. 3)세 가지 인식방법 중의 하나로, 추론 또는 추리.
  4. 4)타인을 이해시키기 위한 추리 논식.
  5. 5)아비달마(阿毘達磨:abhidharma)를 말한다. 소승불교와 그 논서 등을 의미한다.
  6. 6)경량부(經量部:sautrāntika)를 말한다. 소승불교 20여 부파 중의 하나임.
  7. 7)세 가지외 생존.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유(無色界)에 생존하는 것으로, 곧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를 말한다.
  8. 8)중생이 지은 업에 이끌려 다음 세상에 태어나 머무는 처소, 그것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육취(六趣). 또는 육도(六道)라고도 한다.
  9. 9)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순세파(順世派:Lokāyata)를 말한다.
  10. 10)제6 「관염법염자품(觀染法染者品)」의 주 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