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음에 어떤 외부 사람이 말한다. 승의제 중에는 그 눈[眼] 등과 제행의 법[諸行法]이 있으며, 그것은 화합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의 법이 있으니, 말하자면 안근(眼根)ㆍ색경(色境)ㆍ안식(眼識)이 합하므로 촉(觸)을 생한다”1)라고 하셨다. 이러한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귀[耳] 등의 법도 역시 또한 이와 같이 따라 일어나 모두 결합한다. 이것을 화합이라 이름하며, 거북이 틸 등처럼 없지 않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혹은 모든 법에 화합하는 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論】능히 보는 것[能見] 및 보이는 것[所見]과 보는 자[見者] 등은 각각 달라서 그것이 다시 서로 마주 대해도 일체는 모두 화합이 없다.
041_0136_a_14L能見及所見, 見者等各異,
彼更互相望, 一切皆無合。
【釋】이 의미는 곧 줄줄이 서로 마주 대한다는 것이다.
041_0136_a_16L釋曰:此義卽是二二相望。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a_17L復次,頌言:
【論】이와 같이 탐욕과 탐욕자 및 그 탐욕의 법과 성냄 등의 나머지 번뇌와 나머지 처(處)2)도 셋이 합하는 일이 없다.
041_0136_a_18L如是染染者, 及彼所染法,
瞋等餘煩惱, 餘處三無合。
【釋】그 일체법은 다시 서로 마주 대해도 모두 전부 합하는 일이 없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36_a_20L釋曰:彼一切法更互相望,皆悉無合。何所以邪?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a_22L復次,頌言:
【論】다름이 다름과 함께 합하는 일이 있어도 그 보는 것(見] 등의 모든 법에는 다른 성품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합하는 일을 말할 수 없다.
041_0136_a_23L異共異有合, 彼見等諸法,
異性無所有, 故不可說合。
041_0136_b_02L【釋】자체가 이와 같으므로 다시 서로 마주 대해도 다른 성품에는 자체가 없다.
041_0136_b_02L釋曰:自體如是故,更互相望,異性無體。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b_03L復次,頌言:
【論】오직 보는 것 등의 법에 다른 성품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041_0136_b_04L非唯見等法, 異性無所有。
【釋】어떻게 다른 성품이 있겠는가? 그것은 병이나 옷 등과 같다.
041_0136_b_05L釋曰:云何異性?如甁、衣等。
다음에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次下頌言:
【論】나머지 모든 법도 모두 동일하게 다른 성품을 얻을 수 있지 않다.
041_0136_b_06L餘諸法皆同, 無異性可得。
【釋】이렇게 말하는 것은 언어 중에서 다른 성품의 원인이 없다는 것에 능히 믿음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36_b_07L釋曰:此等所說,非語言中而能生信,無異性因,此復云何?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36_b_09L復次,頌言:
【論】다름은 다름으로 인하여 다름이 있으며, 다름은 다름을 여의고 다름이 없다. 만약 법이 원인으로부터 나온다면 그것은 다름을 얻을 수 없다.
041_0136_b_10L異因異有異, 異離異無異。
若法從因出, 彼無異可得。
【釋】다른 법은 다른 법을 인대하여야 곧 그 다름이 있다. 이 의미를 마땅히 알면, 법의 자성 등에 어떻게 다름이 있겠는가? 만약 먼저는 다름이 없고 나중에야 다름으로 인하여 다름이 있다면, 이것은 곧 서로 어긋난다. 또한 모든 법은 다름을 상대하여 다른 성품을 얻을 수 있지 않다. 이것을 마땅히 생각하여 간택하라.
【論】만약 다름이 다름에 대해서 다르다면 다름을 여의고는 얻는 바가 없으며, 그 다름은 다름에 다르지 않고 다름을 여의고는 다름이 있지 않다.
041_0136_b_17L若異異於異, 離異無所得。
彼異不異異, 離異無有異。
【釋】또한 다른 원인을 상대하여 있지 않으며, 다른 법 중에서 여의고는 얻는 바가 없다. 불의 자성처럼 자체를 여의고는 곧 뜨거운 성품이 없다. 비유하면 병 등처럼 자체를 여의고 다른 성품을 보지 못한다. 여기에서 마땅히 승의제에는 다른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論】다름의 중에는 다른 성품이 없으며, 다르지 않음 중에도 또한 없다. 다른 성품이 있지 않으므로 곧 이것과 저것의 다름이 없다.
041_0136_c_07L異中無異性, 不異中亦無。
無有異性故, 卽無彼此異。
【釋】다름과 다른 성품이 합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다름과 다르지 않음도 또한 서로 어긋난다. 다른 성품이 없는 중에서 그 다른 성품은 결정적으로 마땅히 부정된다. 만약 그 다른 성품을 얻는 바가 있다면, 결정적으로 서로 어긋난다. 다른 성품을 상대하여 다르지 않은 성품이 있다면, 필경 성품 중에 이미 다른 성품이 없으며, 또한 다르지 않음도 없다. 왜냐 하면 본래 다른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승의제 중에는 저것과 이것의 다름이 없다.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만약 법 자체의 모습이 서로 쇠잔하여 변한다면, 그것은 다름이 있으므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041_0136_c_15L復有人言:若法自相互相衰變,彼有異故,可說爲異。
【論】만약 다른 모습이 있어 그 법을 상대하여 이것을 곧 그 쇠잔하여 변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미 먼저 모습이 없는데 나중에 쇠잔하여 변함이 있다는 것은 곧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혹시 먼저 쇠잔하여 변함이 있어도 이 또한 옳지 않다.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그 쇠잔하여 변함을 여의고 다른 모습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른 성품과 다르지 않은 성품이 화합하는 일이 있지 않다.
041_0137_a_02L【釋】어찌하여 그러한가? 합하는 의미는 자체가 없기 때문에, 다름 중에는 곧 다른 법이 있을 수 없다. 만약 다른 성품이 있다면, 곧 별다른 과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도 법이 합하는 일이 있지 않다. 합하는 법과 합하는 때를 만약 분별한다면, 합하는 일은 곧 합함이 없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만약 스스로 분별하여 성립된 것이 있다면, 그 일체법은 그 자성이 있어 모두 허망한 법이다. 그러나 그 제행(諸行)을 그대가 또한 허망한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능히 성립하는 것[能成]과 성립되는 것[所成]이 서로 어긋남이 있다.
분별하지 않는 지혜가 일어날 때 여실하게 비추어 안다. 만약 얻는 바가 있다면 모두 세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인연이 나타나는 것과 서로 어긋남이 있으니, 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도 법을 얻는 일이 있다면, 그 법의 자체는 전부 있는 바가 없다.
041_0137_b_02L【釋】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먼저 자성이 있다면 어떻게 그 인연으로부터 성립되겠는가?
041_0137_b_02L釋曰:無自性故,若先有自性,云何從彼因緣所成?
다음에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次下頌言:
【論】만약 인연으로부터 생한다면 곧 자성은 작위가 있으리.
041_0137_b_04L若從因緣生, 卽自性有作。
여기에 응당 질문이 있다. 만약 이것이 작위법이라면 어떠한 과실이 있는가?
041_0137_b_05L此中應問:若此作法,有何過失?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답한다.
041_0137_b_06L故頌答言:
【論】자성을 작위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어떻게 타당하겠는가. 자성은 허망한 거짓이 없어서 다른 법으로 성립되는 것을 여읜다.
041_0137_b_07L自性名作法, 云何當可得?
自性無虛假, 離佗法所成。
【釋】본래 자성은 만들어지는 법이 아니다. 만약 보는 것이 있고 얻는 바가 있다면, 모두 인연으로 성립된 것이다. 이 중에서 이와 같이 부정하여 대치한다.
041_0137_b_09L釋曰:本非自性有所作,法若有所見及有所得皆因緣成,此中如是止遣對治。
【論】나의 이 비량(比量)3)으로는 승의제에서 자성이 모두 공하다. 이와 같이 존재하는 눈 등의 모든 법이 마땅히 모두 인연으로 생한 성품이며 환상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 등의 그 모습이 만약 자성이 있어서 얻을 수 있다면, 곧 인연을 상대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며, 열반 등과 같다. 이것은 곧 타비량(他比量)4)과 서로 어긋남을 말하는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진실한 의미 같은 것은 다만 불이 뜨거움으로 자성을 삼는 것과 같다. 만약 불이 먼저 인연으로부터 생한다면, 곧 만들어진 바가 있다. 이에 자성은 만들어지는 도리를 얻을 수 있음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불은 곧 그 먼저가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법의 자성은 허망한 거짓이 있지 않고, 다른 법으로 성립됨을 여의었음을 알아야한다.
041_0137_c_02L아비담(阿毘曇)5) 사람이 말한다. 모든 법의 자성이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허망한 거짓이 없고 다른 법을 여의어 인연으로 성립된 것이라면, 불의 뜨거운 성품 이것은 또 어떻게 먼저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중에서 만약 먼저 자체가 있어 얻을 수 있다면, 곧 자성이 아니니 불이 어떻게 있겠는가?
경부(經部)6)의 스승이 말한다. 만약 법의 자성이 허망한 거짓이 없고 다른 법으로 성립됨을 여의었다면, 이 중에서 결정적으로 혹은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있지 않다. 그러므로 자성이 만약 혹시 조금이라도 법을 만들 수 있음을 허용한다면, 곧 다른 법을 상대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성은 작자가 있지 않으니, 이것이 또 어떻게 그 만들어진 바가 있겠는가? 만약 먼저 인연으로 만들어진 바가 없다면 곧 과실이 없으며, 만약 먼저 법이 있다면 어떻게 자체가 없다고 이름하겠는가?
【論】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 하면 그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알라, 만들어지는 것은 모두 인연법을 상대하여 얻는 것이라, 그것은 곧 조금도 법을 만들 수 없다. 왜냐 하면 만약 법이 나타나 전이하면, 곧 먼저는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드는 것이 있겠는가? 만약 법이 나타나 전이하면, 이것은 또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름하겠는가? 만약 나타나 전이하는 데에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혹은 먼저는 없었다가 전이할 때 만들어진 것이 있음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과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먼저 법이 없으면 곧 만들어진 바가 없으니, 토끼의 뿔 등과 같다.
041_0138_a_02L 그것이 어찌하여 만드는 것이 없는가? 만약 혹시 작자가 그 역능이 있다면, 그는 곧 만드는 것이 있다. 비유하면 돌여인[石女]에게 자식이 없는 것과 같이, 어떻게 이름이 있는 것으로서 비슷한 법의 가능과 불가능을 드러내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주체와 객체의 분별도 또한 말로 분별하지 못함이 없다. 왜냐 하면 있음으로 인하여 없음을 말하는데, 이 없음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전부 말로써 분별할 수 없다. 설혹 능히 사물의 자성이 있다 해도 또한 다른 원인과 다른 법을 얻을 수 없으니, 어떻게 결정적으로 그 만들어진 것이 있겠는가?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만약 자성을 말하면 또한 타성을 이름한다. 이와 같이 다른 법이 화합하여 접촉을 생하는 것이 곧 타성이다.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타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있지 않다. 그러므로 타성이 있지 않은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왜냐 하면 만약 자성이든 타성이든 둘 다 성품이 없으며, 얻는 바가 있다면 그러한 말은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論】만약 자성과 타성에 혹은 자체가 있음과 자체가 없음을 본다면 그는 곧 여래의 진실한 의미를 볼 수 없다.
041_0138_b_09L若見自佗性, 或有體無體,
彼則不能見, 如來眞實義。
【釋】이것은 화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불자(佛子)들은 널리 세간이 다하도록 전부 섭수하여 능히 오랜 동안 무거운 짐들을 지며, 자성과 타성에 있어서 전혀 보는 바가 없으며, 분별하지 않는 지혜로 일체의 별다르게 일어나는 자성과 타성을 그쳐 버린다. 이것은 어떻게 아는가? 『잡아함(雜阿含)』 등의 교리에 의거하여 입증된다.
【論】세존은 이미 있음을 여의고 또한 없음을 여의는 것을 성취하여 가전연(迦旃延)에게 응당 있음과 없음의 둘을 여의라고 가르치셨다.
041_0138_b_16L世尊已成就, 離有亦離無,
敎授迦旃延, 應離有無二。
【釋】부처님께서 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중생은 두 가지 법에 의지하니, 시초 없는 예로부터 있음에 집착하고 없음에 집착한다.”
041_0138_b_18L釋曰:佛告迦旃延:“世閒衆生依止二法,無始以來著有著無。
또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중생은 있음을 고집하여 항상함에 집착하고, 없음을 고집하여 단멸에 집착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여기에 마땅히 질문이 있다. 만약 승의제에 자성 등이 없다면, 어떻게 그 진실한 의미를 볼 수 있겠는가? 대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을 본다는 것은 마땅히 모두가 인연으로 생한 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세속의 상태에서는 성립되는 것이므로, 여실하게 관찰할 때는 승의제가 아니다.
【論】만약 그 다른 성품을 본다면 모든 법에 자체가 있지 않다. 어떻게 자체가 없는데 다른 성품을 마땅히 얻을 수 있으리오.
041_0138_c_12L若見彼異性, 非諸法有體,
云何自體無, 異性當可得?
【釋】만약 있음에 집착하면, 이것은 과실을 이룬다. 만약 법의 자체에 성품이 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곧 인연에서 생한 것이 아니다. 먼저 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자체의 모습이 그치어 소멸한 뒤 얻는 바가 있다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먼저 마음으로 좋아하는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은 이 중에도, 또한 다시 드러내 표시할 것이 없다. 어떻게 자성으로 성립된 것이면서 다른 성품을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자성의 있음과 자성의 없음이 상대하여 화합하지도 않는다.
이 중에서 만약 법이 소멸하지 않고 나중에 얻는바가 있다면, 그것도 또한 있지 않다. 어떻게 자체에 진실로 다른 성품이 있어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법 자체의 색 모습 중에 자체가 진실로 있지 않으며, 또한 법의 모습이 없는 중에서 다른 성품과 화합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자성과 자성이 없음의 둘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 일체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결과로 얻는 바는 전부 허물어져 단견과 상견에 떨어지고, 세간의 법과 서로 어긋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만약 모든 법에 자성이 있지 않음을 본다면, 곧 진실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중도(中道)의 의미를 입증하여 이룬다.
여기에 응당 질문이 있다. 어찌하여 모든 법은 승의제(勝義諦)에 있어서 성품이 있거나, 성품이 없거나, 둘 다 자체가 없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곧 태어나고 죽음도 없으며, 또한 열반도 없고 계박도 없고 해탈도 없을 것이다. 승의제에서는 모든 법이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므로 마땅히 일체가 모두 없을 것이다. 이에 어떻게 중생이 저 모든 취(趣)8)에서 오고 가며 거듭거듭 생하고 소멸한다고 말하는가?
그대는 이제 우선 이와 같이 사람이 모든 근(根)을 원만히 구족한 것과 그 행하는 것을 관찰하라. 또 만약 그가 들은 것이 많다거나, 혹은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말한다면,
041_0139_b_10L汝今且觀如是人 諸根圓具及所行,
又若說佊有多聞 或爲惡獸所食噉。
방자하여 그것에게 먹히는 바가 되어 버림받게 된 것이고, 과거에 그의 육신 그것은 곧 사라진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으니 두려운 마음도 없다. 응당 이 육신은 오직 행취(行聚)뿐임을 알아야 한다.
041_0139_b_12L恣佗所食爲所棄 過去佗身彼卽無,
不還後世無怖心 應知此身唯行聚。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만약 자각하는 일이 항상 머무른다면, 곧 이와 같이 중생 및 행(行)이 오고 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바는 응당 이와 같이 행하여진다.
041_0139_b_14L此中意者,若有覺常住,卽非如是衆生及行,可說往來故,我所說應如是行。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지금의 생애 이전에 과거의 생애가 있어 지금 생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태(胎) 속으로 처음 들어갈 때 처음의 자각이 결정적으로 자체가 상속하여 들어가고, 그 다음에 앞의 자각심이 경계를 여의지 않고 능히 취함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자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우리 종파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우선 지금 생애에서는 눈[眼] 등의 의지하는 기관을 여의고 결정코 자각함이 있지 않다. 만약 자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다음에 태 속으로 들어갈 때 처음 자각한다면, 곧 눈 등 의지하는 기관을 결정코 얻는 일이 있을 것이다.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 애초부터 오고 가며 태어남과 죽음을 따라 유전할 것이며, 저 미래의 생애에서도 또한 서로 원인이 되어 죽지 않고도 자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 현재에 자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을 것이다.
여기에 마땅히 질문이 있다. 만약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온(蘊) 밖에 별다른 온의 자체가 없고, 또한 이 온과 상즉하지도 않는다면, 어찌하여 여래는 또한 오온(五蘊)을 구족하였는가?
041_0139_c_18L此中應問:若如所說,此蘊之外無別蘊體,亦不卽此蘊者,云何如來亦具五蘊?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답하여 말한다.
故頌答言:
【論】능히 취하는 것[能取]과 취해지는 것[所取]에는 모든 존재의 가고 옴이 없다. 존재가 없다면 곧 취함이 없으니 어떻게 가고 오는 자가 있으리오.
041_0139_c_21L能取及所取, 無諸有往來,
無有卽無取, 何有往來者?
041_0140_a_02L【釋】만약 먼저 취함을 여읜다면, 곧 다시 취함이 없으며, 또한 동시에 취하는 자체가 생할 수 없다. 그것은 동시적인 성품이 아니기에 존재가 수립될 수 없고, 혹은 다시 자체를 여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는 곧 별다르게 취함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이와 같기 때문에 능히 취하는 것과 취해지는 것이 없으며, 이로 말미암아 또한 태어나고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